스포츠 외교2019. 11. 16. 03:55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올림픽콘돔실록(When Condom meets Olympics/40)]

 

 

<올림픽 콘돔 실록(When Condom meets Olympics)>

 

 

 

 

필자의 기억으로는 올림픽대회에 콘돔이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Lillehammer)에서 개최된 제17회 동계올림픽부터라고 생각되었지만 실제로는 놀랍게도 제24회 서울1988올림픽 때부터라고 한다.

 

 

 

 

(출처: ESPN제공)

 

 

 

 

신성하다고까지 생각했던 올림픽대회에서, 그것도 선수들의 보금자리인 올림픽선수촌(Olympic Village)에서, 그리고 자국의 국위선양은 물론 개개인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올림픽정신으로 무장하여 페어플레이(Fair Play)를 펼치며 경기에 임해야 할 당사자인 각국 대표선수들을 대상으로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콘돔을 사용토록 조장하고 배포한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성 의식이 몸에 배어 있는 「동방예의지국」의 가치판단기준으로는 확실히 충격(Shocking)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요람이자 합숙훈련장인 태릉선수촌에서 남·여 구분된 별도의 숙소를 쓰고 남·여 선수들의 공공연한 교제도 터부시하던 우리 선수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으리라.

 

 

물론 태릉선수촌에서 남·여 대표 선수들 간 로맨스(Romance)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문은 접한 바 있지만 만리타국에서 4년간 갈고 닦은 기량을 세계무대에서 선보여, 국가와 개인의 명예를 추구해야 할 올림픽 선수들이 과연 그러할까 의문이 제기되었다.

 

 

필자는 실제상황 점검 차 올림픽선수촌 숙소지역(Residential Zone) 내에 위치한 의무실(Medical Clinic)을 방문하였다.

 

 

 

거기서 자원봉사자인 듯한 노르웨이 여성에게 「호기심 반, 의구심 반으로 올림픽 선수촌 안에 콘돔이 존재하고 배포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빙그레 웃으며 몇 개가 필요하냐고 되물으면서 그 충격적인 콘돔을 꺼내 보이는 것이었다.

 

 

문화적 충격이라는 말은 그럴 때를 대비해서 있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올림픽 콘돔」과 처녀 상봉한 순간이었다. 그 올림픽 콘돔은 Lillehammer1994 마스코트와 로고가 사각형태로 예쁘고 앙증맞게 각인된 채 포장되어 있었다.

 

 

무늬와 색상도 선명하고 과감했다. 그것은 필자의 신성한(?) 손위로 날름 올려졌다. 발음하기도 쑥스러웠던 콘돔이 올림픽과의 동거를 선언한 순간이기도 했다. (When Condom meets Olympics,)

 

 

그 역사적인 올림픽 콘돔(필자는 하루에 1인당 3개까지 배급한다고 해서 3개를 받았다.) 배포사실을 한국 선수단에게 홍보(?)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필자는 그냥 올림픽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돌아와 필자가 2004년 연 아시아 최초의 개인스포츠 박물관인 평산 스포츠박물관에 전시하기로 했다.

 

 

그것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도 올림픽 로고와 함께 고색창연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2015 10월 중순 평산 스포츠 박물관 소장품 전체를 통째로 강릉시에 무상기증 하였으므로 이제 그 올림픽 콘돔은 강릉시가 평창2018 동계올림픽 이후 Ice Arena 피겨 쇼트트랙 빙상경기장 내에 설치될 올림픽 기념 박물관 내에 영구 전시될 것이다.

 

 

 

(Nagano1998동계올림픽 마스코트가 겉봉에 새겨진 콘돔)

 

 

 

 

올림픽 관련 질문 및 발언에 관한 한 주제별 영역에 관계없이 무불통지의 경지로 아직까지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필자지만 각종 국제대회에서 올림픽 콘돔에 대해서만은 아직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이러한 사실이 공개되어 아직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국가의 순진무구한 올림픽참가선수들로 하여금 올림픽 선수촌 내에서 혹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언제든지 콘돔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풍기문란방조죄」를 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1988올림픽을 거쳐 Lillehammer1994동계올림픽으로 연계된 에이즈 방지(Anti-AIDS) 목적의 올림픽 콘돔 배포는 다음 대회인 제18 Nagano1998동계올림픽에서도 계속되어 올림픽지식전달프로그램(Olympic Games Knowledge Transfer Program)의 일환으로 올림픽선수촌 내 의무실을 통해 배포되었다.

 

 

Sydney2000올림픽에서는 비공식 집계를 갖고 있던 한 조직위원회 관계자가 세계적인 위생용품 기업인 안셀(Ansell)에서 시드니올림픽 선수촌으로 공수했던 10만 개의 콘돔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며칠 만에 동나자 추가로 40만 개를 긴급 공수했다고 알려주었다.

 

 

올림픽대회 참가선수 1 5백 명과 임원진을 포함 약 1 5천 명이 올림픽 참가 인원이었는데 이것을 나누어 보면 1인당 33개를 사용했다는 통계를 얻게 된다.

 

 

만약 선수들만 사용하였다고 가정한다면 1인당 약 50개씩 사용했다는 결론이다.

 

 

비공식이고 통계상의 수치이므로 꼭 믿을 필요는 없겠지만 엄청난 개수임에는 틀림없다.

올림픽 성문화와 에이즈퇴치 운동의 절묘하고 기가 막힌 타이밍이 주된 원인 중의 하나이리라.

 

 

쿠베르탱 남작이 들으면 격세지감(隔世之感), 대경실색(大驚失色), 아연실색(아연실색), 경천동지(驚天動地), 오호통재(嗚呼痛哉)일 것이다.

 

 

Torino2006동계올림픽에 참가했던 필자는 가히 폭발적이었던 올림픽 콘돔 사용실태와 추세에 대하여 수소문해 보았다.

 

 

그러나 필자는 정말 의외의 소식을 접했다.

 

올림픽 콘돔이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호기심은 반드시 풀어야 하는 법!

 

필자와 친한 올림픽 고위관계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올림픽 콘돔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평소 절친한 외신기자들에게 물어봐도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었다. 

 

 

드디어 무불통지의 국제적 모 스포츠지도자와 칵테일 회동 시 「올림픽 콘돔 Torino2006동계올림픽 현지 실종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추정이유는 간단명료 그 자체였다.

「이탈리아는 가톨릭 국가다.

 

 

Beijing2008올림픽콘돔이 당시 외신을 타고 흥미로운 반향을 일으킨 것 같다.

콘돔 겉봉에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힘차게(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라는 공식올림픽표어(Olympic Motto)문구가 영문과 중문으로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과연 IOC와 사전협의를 거쳤던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London2012올림픽선수촌에 무료로 배포된 바 있었던 사상 최다의 15만개의 콘돔이 개막 5일만에 동이 났다는 보도도 있었다.

 

London2012올림픽에서는 단순 계산으로 보면 1명당 콘돔 15개가 공급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지 않을까?’ 하는 의에 대해 듀렉스사는 "기념품으로 가져가는 선수도 있는 것 같다. 다만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들의 체력을 얕잡아 보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추가 공급을 검토하여 제공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London2012올림픽에는 204개국, 지역에서 1 500여명이 참가한 바 있는데 콘돔 무료배포 효시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울1988올림픽 때라고 하며 8,500개의 콘돔이 배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Sydney2000올림픽에선 콘돔 7만개가 1주만에 바닥나 2만개가 추가된 바 있었다고 한다. 2010년 밴쿠버에선 동계올림픽사상 최다의 10만개가 준비되는 등 대회규모의 확대에 수반해 공급되는 콘돔의 숫자도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에 모두 10만개의 콘돔이 배포된다는 소식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한 바 있었다.

 

당시 미국의 가십(Gossip) 전문매체인 'TMZ'에 따르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인 17일간 올림픽선수촌에 모두 10만개의 콘돔을 배포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하였다.

 

IOC 'TMZ'와의 인터뷰를 통해 "콘돔 배포는 에이즈(AIDS) 감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었는데 미국 언론인 '폭스 스포츠(Fox Sports)'는 이와 같은 현상이 올림픽선수촌 내 2주간 행해지는 모종의 '사회화'를 경계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고 한다.

 

올림픽이 열리는 시즌 올림픽선수촌에는 세계각국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유로 항상 많은 양의 콘돔이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지난 Vancouver2010 Sochi2014동계올림픽에서는 각각 10만개의 콘돔이 일주일 만에 동이나 추가 공급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으며 Beijing2008올림픽에서는 올림픽선수촌에 10만개를 포함 베이징 시내 호텔까지 합해 무려 40만개의 콘돔이 무료로 배포되었다고 전해져 세간의 화제를 낳기도 한 21세기 올림픽문화의 한 추세가 되고 있다.

 

Rio2016올림픽에서는 남녀 선수용 2종류의 무려 45만개의 콘돔이 무료 배포되었다고 한다

 

콘돔 45만개는 London2012올림픽에서 배포된 콘돔수의 3배나 많은 수라고 알려졌다.

 

 

(Rio2016 올림픽 성화/사진출처:insidethegames)

 

 

특이한 사실은 100,000개에 달하는 여성용 콘돔(female condoms)도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남성용 콘돔(condoms for men) 350,000개였다고 한다.

 

또한 175,000갑에 달하는 윤활제(packets of lubricant)역시 제공되었다고 한다.

 

브라질 일간지인 Folha de Sao Paulo지는 콘돔사용증가가 Zika바이러스와 연관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건강공포증(the health scare) Rio2016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의 골치거리였다.

 

IOC는 콘돔사용으로 10,5000명에 달하는 참가선수들과 직원들로 하여금 안전한 섹스를 하도록 고무시켜 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IOC said the condoms would encourage 10,500 athletes and staff to practice safe sex.)

 

이 콘돔들은 724일 개장한 Rio2016올림픽 선수촌 내에 위치한 진료소(clinic)또는 자판기로부터(from vending machines)도 무료로 배포되었다고 한다.

 

평창2018동계올림픽 때에는 Vancouver2010 Sochi2014동계올림픽(각각 10만 개씩)보다도 1만개를 초과하는 11만개가 무료 배포되었다고 한다.

 

무료콘돔은 올림픽선수촌, MPC(각국 취재기자 센터: Main Press Center), 기자촌 및 의무센터(Medical Center) 등지에서 배포되었는데 콘돔이 담긴 바구니가 각 건물 남녀 화장실에 비치되어 대회참가자 아무나 가져갈 수 있었다고 한다.

 

무료 콘돈 10만개를 기부한 국내 회사인 컨비니언스(Convenience)측은 평창2018동게올림픽의 성공과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확산예방차원에서 기부하게 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평창2018 무료 콘돔 바구니/출처: 스포츠서울 사진)

 

 

일각에서는 전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이 2주간의 올림픽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방탕한 문화를 즐기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제 올림픽 트렌드(Trend)로 자리매김한 올림픽 콘돔이 Rio2016올림픽과 평창2018동계올림픽을 넘어 Tokyo2020올림픽, Beijing2022동계올림픽, Paris2024올림픽, Milano-Cortina d’Ampezzo2026동계올림픽, Los Angeles2028올림픽 등에서 어떠한 형태로 지속, 계승 발전될 것인지 그 향방과 대책, 추이, 추세 그리고 그 실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Vancouver 2010 Condom)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15. 12:50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올림픽한류1호 김치실록(39)]

 

<올림픽 김치실록>

 

 

김치는 대한민국, 우리 한민족의 혼과 얼과 정신과 문화와 지혜와 웰빙(Well-being)의 콘텐츠(Contents)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인류의 식생활과 건강을 지켜줄 한국의 먹거리 인류문화유산(World's Food Cultural Heritage) 1호이다.

 

미국의 지배계층인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s: 앵글로 색슨계 백인 신교도)Well-Being 식단의 단골메뉴로도 자리 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 한국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인생동반자(Life Partner)인 셈인데 한국선수단 올림픽금메달지킴이 올림픽공식메뉴 한류1호이기도하다

 

현대인의 고질병인(chronic disease)인 당뇨병(Diabetes), 고혈압(High Blood Pressure; Hypertension), 각종 암(Cancers)은 물론, 치질(Hemorrhoids), 변비(Constipation), 치매(Dementia), 심장질환(Cardiac disorder)등 생로병사(生老病死) 중 병(Disease)발생을 사전에 예방(prevention)하고, 조절해주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김치를 먹고 있는 한국인은 근본적으론 글로벌건강체민족이다.

 

신토불이(Our body and soil are inseparable each other)정신에 입각하여 보면, 요즘 즐겨 먹는 서양 음식 중 치즈의 영양성분은 이미 김치 안에 다 들어가 있다.

 

김치의 영양성분을 보면, 다양한 종류의 비타민(a variety of Vitamins), 칼슘(Calcium), 젖산균(Lactic Acid Bacteria)등이 함유되어 있어 우리 체내의 병균(pathogenic bacteria)번식을 억제해 준다. 또한 면역체계(immune system)를 활성화 해줌으로써 에이즈(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나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그리고 조류독감(AI: Avian Influenza/Bird Flu) 각종 질병퇴치의 선봉장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 있어서 감기(Cold; Influenza; Flu)는 가벼운 질병(slight disease)이 아니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from time immemorial) 감기를 '고뿔'이라 칭하고,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땀 흘리고 자고 나면 쉽게 낫는 병으로 취급해 왔다.

 

이는 우리민족의 체내에 축적되어있는 김치성분 중 마늘(garlic)이 함유되어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마늘의 주성분(main constituents)중의 하나인 알리신(allicin)은 인체(human body)내에서 단백질(Proteins)또는 탄수화물(Carbohydrate)과 결합될 때(when combined with) 강력한 살균제(tough disinfectant) 겸 항생물질(Antibiotic)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며, 항암(fight against some cancers)작용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아무나 김치만 먹으면 단숨에 사스 등 질병을 단숨에 퇴치(SARS Fighters)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나, 우리민족처럼 조상대대로(hand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김치성분이 체내에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체질(physical constitution)의 소유자들에겐 AIDS SARS나 조류 독감 균이 침투하기 매우 어려운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김치는 고추 가루(Chili Pepper Powder), 마늘(Garlic), 소금(Salt), 생강즙(Ginger Juice) 및 젓갈 류(Pickled fish foods with salt)등이 오묘하게 어우러져서 생성된 독특한 종합양념(spices and condiments), 절인 배추(Fermented Chinese Cabbage)와 버무린 화끈한(fiery) 반찬(side dish) 겸 샐러드(salad) 류이기도 하지만, 완전식품이다.

 

필자는 1984년 제23 LA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선발대 임원으로 현지에 도착하여 당시 선수촌(Olympic Village)으로 꾸며진 남 가주 대학(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사전 입촌하여 선수촌 식당의 식단을 보고 놀랐다.

 

미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대회의 메뉴에 한국의 김치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미국인다운 발상으로서 LA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한인들로부터 추천 받은 아시아대륙대표 음식인 셈이었다.

 

선수촌 식단에 김치가 제공되기 때문에 올림픽에 참가하는 우리 한국 선수들은 따로 김치를 한국으로부터 공수해올 필요가 없어졌고, 미국 특유의 정통 스테이크에 김치를 얹어먹은 우리 대한의 대표선수들은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이래,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LA1984올림픽대회부터 가장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있었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2kg급의 김원기 선수, 레슬링 자유형 68kg급 유인탁 선수, 양궁의 여자부 서향순 선수, 유도 하프헤비급의 하형주 선수, 유도 라이트급의 안병근 선수, 복싱 미들급의 신준섭 선수 등 한국 선수단은 6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개최지 미국 하늘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수 있었다.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에서는 주최국으로서 당연히 김치가 올림픽 선수촌 메뉴로서 전 세계 올림픽 참가 선수 임원들에게 소개되었지만, 이는 개최국의 음식으로써의 프리미엄(premium)이라고나 할까.

 

다음 번 올림픽 대회인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대회에서도 한국의 김치가 올림픽메뉴로 등장할 것인가는 미지수였다.

 

필자는 1991년 한국선수단 사전조사단장자격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지에 도착, 조직관계자들과 각 부분별 협의를 하였다.

 

선수촌 급식담당자와의 업무협의 중 올림픽 선수촌 식당메뉴리스트를 보고 싶다고 하니까,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추천할 음식이 있느냐고 필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백문이 불여일견(Seeing is believing. / A picture is worth a hundred words.)이라.

 

필자는 그 날 저녁 COOB’92 바르셀로나올림픽조직위원회 급식담당관을 어렵게 수소문하여 바르셀로나 시내 한국 식당으로 초청하였다.

 

불고기와 쌀밥 그리고 김치 등을 주문하였고, 맛을 본 담당관은 김치를 샐러드(Salad)로 적극 추천하겠노라고 하면서 조직위원회 메뉴 관련 급식 회의를 한 후 진행사항에 대해 연락을 하겠다고 하였다.

 

사전 조사 협의를 마치고 귀국한 지 1주일가량 지나서 드디어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COOB)로부터 팩스 한 장이 날아왔다.

 

회신내용은 긍정적이었고, 다만, 김치물량확보와 조달방법 그리고 김치 생산업체를 소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종택 체육회 사무총장과 故 김종열 체육회장께 보고 드리고, 급히 김치 조달 및 공수를 위한 수소문에 들어갔다.

 

당시 백성일(대한체육회 국제본부장 및 평창2018경기운영사무차장 역임)씨가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한국 선수단 파견 실무자로써 필자와 함께 바르셀로나 현지 조사활동을 한지라 백성일 씨도 이리저리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그 때까지만 해도 김치는 대부분 담가 먹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김치를 대량생산하여 시중에 유통 판매하는 업체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성일 씨가 사무실에 출근해서 김치 팩 샘플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닌가?

 

내용인즉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조달할 김치이야기를 하니까 백성일 씨 부인이 동네슈퍼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하여 그 김치 팩을 구입하여 가져온 것이다. 그 김치가 바로 ‘두산 종갓집 김치’였던 것이다.

 

필자는 ‘두산 종갓집 김치’회사로 전화를 하고 담당자를 사무실로 불러,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올림픽 선수촌 식당에 납품이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하였고, 그 담당자도 처음엔 얼떨떨한 표정이었으나, 곧 자신 있게 가능할 것 같다고 하여 천신만고 끝에 김치가 본격적인 올림픽 공식메뉴로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마련된 셈이었다.

 

올림픽대회기간 중 올림픽 선수촌 식당에 가보니, 바르셀로나 현지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한국인 사범이 김치담당관으로서 발탁되어 올림픽 조직위원회측 공식 김치 매니저(Manager) 겸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전달자로서 근무 하고 있었다. 참 자랑스럽고 흐뭇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한국선수단이 올림픽무대에서 금메달을 회득하는 쾌거 뒤에는 항상 김치가 기운을 북돋워준 셈이다. 여자 공기소총의 여갑순 선수는 올림픽 선수촌에서 김치로 컨디션을 조절하여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제1호 금메달을 조국 대한민국에 안겨주었고,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는 김치의 힘으로 올림픽 최고의 메달이자 대회 마지막 금메달인 마라톤 금메달을 쟁취함으로써 한국 스포츠의 황금기를 구가하는데 감격적인 기여를 하였다.

 

(좌로부터 Berlin1936올림픽 마라톤 영웅 고 손기정 옹, Barcelona1992올림픽 마라톤 몬주익영웅 황영조 및 필자)

 

 

대한민국 만세! 김치 만세! , 필승코리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에서 김치가 공식 메뉴가 되었다고 해서 1996년 애틀랜타대회, 2000년 시드니대회, 2004년 아테네 대회, 2008년 베이징대회에도 계속 공식메뉴로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미래를 대비하여, IOC 집행위원회와 NOCs(국가올림픽위원회; National Olympic Committees)와의 연석회의, 각국 단장회의 등 각종 국제회의 때마다 해당 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의 준비상황 보고 시 반드시 균형 있는 식단(balanced food)을 강조하면서, 아시아권의 음식이 올림픽 메뉴에 선택(Selection)되도록 공식적으로 발언하여 운을 뗀 뒤, 해당조직위원회와의 사전협의회의 시 김치와 쌀밥을 넣도록 각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실제로 Atlanta1996올림픽대회, Nagano1998동계올림픽대회,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Sydney2000올림픽대회,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대회, Athens2004올림픽대회 Torino2006동계올림픽대회 포함 향후 올림픽에서도 김치가 공식메뉴로 채택되어 한국선수들은 물론, 전 세계 선수들의 맞춤입맛(tailored taste)화 하는데 최선을 다해온 1등 공신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Salt Lake City2002동계 올림픽대회가 시작되기 직전 필자는 올림픽 선수촌으로 사용될 유타주립대학교(University of Utah)기숙사 식단주방에 초대받게 되었다.

 

이유인즉, 대회시작 전 선수촌 회의실에서 개최된 각국 선수단장회의에서 필자가 발언한 쌀밥, 그것도 찰밥(Sticky rice) 조리법에 대한 확인 요청과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도착 첫 날 배식된 밥은 뜸이 들질 않아서 설익은 밥이 여러 날 계속되었기 때문에 일일 단장회의석상에서 필자가 요청한 내용을 점검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원래 올림픽 선수촌 주방시설은 안전상(for security reason)통제가 엄격한 지역인바, 필자는 색다른 특권(privilege)를 부여 받은 셈이었다.

 

주방장은 쌀을 씻고 조리한 과정을 필자에게 일일이 브리핑(briefing)해 주었다.

 

쌀은 찰지고 질도 양호해 보였다. 주방기구도 훌륭했다.

 

그러나 밥은 여전히 설익은 맛이었으므로 주방에 1시간가량 머물면서 함께 직접 밥을 지어 보였다.

 

조리 과정에서 한 가지 미흡한 점이 발견되었다. 바로 뜸 들이는 과정이 생략되었던 것이다.

 

쌀에 적당량의 물을 붓고 익혔다가 불기운을 조금 낮추고 김을 조금씩 빼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만 쌀이 숙성과정(maturing process)을 거쳐 본래의 밥맛이 난다고 설명하면서 이 같은 조리법을 3일에 걸쳐 실습해 준 결과 밥다운 밥이 제공 되었던 것이다.

 

「뜸 들인다」(to be patiently steamed to a proper degree at different heating intervals)는 말을 영어로 설명해도 감(feeling of awareness)이 오질 않을 수밖에...

 

그 비결은 5000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 참을성 있게 지켜봐 주고 정성을 드리는 과정인데. 그 이후로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은 필자 영어 이름인 로키(Rocky)에다 찰밥(sticky rice)를 붙여, Sticky Rice Rocky」로 부르기도 했다.

 

입에 착 달라붙는 따뜻한 쌀밥에 김치! 이 맛은 기운을 북돋아주고 우리 선수들에게는 금메달이 착 달라붙는 올림픽의 맛이리라. 이 맛 영원하여라!

 

* 외국인에게 김치 담그는 법 영어로 설명하기(Kimchi Recipe)

 

1.   배추를 깨끗이 씻고, 반으로 쪼갠 뒤 소금물에 절인다.

(Clean the cabbage, and split in half and pickle in salt.)

2. 무와 파를 가늘게 썰어 둔다.

(Slice radish and green onions into thin strips.)

3. 마늘과 생강을 갈아 둔다.

(Ground garlic and ginger.)

4. 고춧가루와 무채를 버무린다.

(Mix ground red pepper with radish.)

5. 미나리, , , 마늘, 및 생강을 버무린다.

(Mix in dropwort, leaf mustard, green onions, garlic and ginger.)

6. 젓갈 류와 소금을 양념으로 사용한다.

(Use fermented sea pickles and salt for seasoning.)

7. 준비된 각종양념을 배춧잎 사이사이에 골고루 넣는다.

(Put the prepared ingredients evenly between cabbage leaves.)

8. 배추 겉 잎사귀로 배추 전체를 싸고 땅에 묻힌 김장용 항아리 안에 넣어 보관한다.

(Use an outer leaf to wrap the cabbage and pack the heads in an earthened jar)

 

 

2006 4월초 서울에서 개최된 제115 ANOC(국가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 총회 및 IOC 집행위원회 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Jacques Rogge IOC 위원장은 방한 마지막 날인 4 8일 아침 Coex Intercontinental 호텔 조찬 장에서 아침 뷔페 식단 중 김치를 접시 가득 담고 있었다.

 

필자가 다가가 "김치는 인류 5대 최고 건강음식 중 하나이며 20여년 이상동안 올림픽 공식메뉴로 이미 자리매김 했다.(Kimchi is one of 5 Best Human Health Foods, and has been positioned as an official food item in the Olympic Games Menu for the past 20 plus years.)" 고 말을 건네면서 전날 조정원 WTF(세계태권도연맹) 총재로부터 부여 받은 태권도 명예 10단에 대한 축하인사를 건네자, Rogge IOC위원장은 "Thank You, my friend."라고 미소 지으며 필자와 악수를 나누기도 하였다.

 

식탁에 함께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Jacques Rogge IOC 위원장 부부에게 "Bon Apetit et Bon Voyage.(식사 맛있게 하시고 좋은 여행되시길 바랍니다.)"라고 작별인사를 한 후 ANOC서울 총회에 참석했던 IOC 수장과의 서울 만남을 결산한 바 있다.

 

 

<김치가 올림픽 공식 메뉴로 오른 사연 (한국일보 2016426일 자 기사)>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원장 특별기고

 

출처 한국일보 | 입력 2016.04.26 14:56 | 수정 2016.04.26 21:57

기사 내용

 

필자는 1984 LA올림픽 한국선수단 선발대 임원으로 남가주 대학에 입촌해 선수촌 식당의 식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LA올림픽 대회의 메뉴에 김치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연인즉 LA지역 한인들로부터 아시아대륙 대표 음식으로 김치가 추천된 것이었다. 선수촌 식단에 김치가 제공되기 때문에 올림픽에 참가하는 우리 선수들은 따로 김치나 고추장 등을 한국으로부터 공수해올 필요가 없어졌고, 스테이크에 김치를 얹어먹은 우리 대표선수들은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이래, 그때까지 가장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있었다. 한국 선수단은 당시 6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이것을 ‘김치 금메달’로 명명하면 어떨까.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에서는 주최국으로서 당연히 김치가 선수촌 메뉴로서 전 세계 참가 선수 임원들에게 소개되었지만, 이는 개최국 음식으로서의 프리미엄이었다.

 

 

 

실제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대회에서도 김치가 올림픽메뉴로 등장할 것인가는 미지수였다. 필자는 1991년 한국선수단 사전조사 단장자격으로 바르셀로나에 도착, 조직위관계자들과 각 부분별 협의를 하였다. 선수촌 급식담당자와의 업무협의 중 올림픽 선수촌 식당메뉴리스트를 보고 싶다고 하니까,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추천할 음식이 있느냐고 자문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그 날 저녁 조직위 급식담당관을 수소문하여 바르셀로나 시내 한국식당으로 초대하였다. 불고기와 쌀밥 그리고 김치 등을 주문하였고, 맛을 본 담당관은 김치를 샐러드로 적극 추천하겠노라고 귀띔했다. 사전 조사 협의를 마치고 귀국한 지 1주일가량 지나자 바르셀로나 올림픽 조직위로부터 팩스 한 장이 날아왔다. 회신내용은 긍정적이었고, 다만, 김치물량확보와 조달방법 그리고 생산업체를 소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종택 체육회 사무총장과 故 김종열 체육회장께 보고 드리고, 급히 김치 조달 및 공수를 위한 수소문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김치 팩을 구입해 올림픽 공식 메뉴로 제공할 수 있었다.

 

 

이것이 올림픽 한류 음식문화 제1호 대사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김치가 공식 메뉴가 되었다고 해서 차기 대회에서도 공식메뉴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필자는 IOC 집행위원회와 NOCs(국가올림픽위원회)와의 연석회의, 각국 단장회의 등 각종 국제회의 때마다 KOC 대표로 참석해 해당 동 하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준비진척상황 보고 시 균형 있는 식단을 강조하면서, 아시아권의 음식이 올림픽 메뉴에 선택되도록 운을 뗀 뒤, 해당조직위원회들과의 사전협의회의 시 ‘김치와 쌀밥’(Kimchi and Sticky Rice)을 넣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덕분에 1996년 애틀랜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2004년 아테네, 2006년 토리노 대회까지 김치가 공식메뉴로 채택되어 한국선수들은 물론, 전 세계 올림피언들에게 김치를 전파했다고 자부한다./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원장과 Jacques Rogge IOC위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14. 06:29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대한민국 첫 올림픽4관왕 전이경 스포츠외교관의 한국 첫 IOC선수위원선출실록(38)]

 

 

대한민국 첫 동계올림픽 4관왕에 빛나는 전이경은 스포츠 외교요원 양성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여성 국제스포츠외교관이다.

 

 

Calgary1988동계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첫 선을 보인 쇼트트랙 빙상종목(Short Track Speed Skating)이 제16 Albertville1992 동계올림픽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제5Saint Moritz1948 동계올림픽 참가 이래 노 골드 메달로 일관했던 한국 동계 스포츠 계에 쇼트트랙에서만 금메달 2, 동메달 1개를 획득하여 금빛 찬란한 서광을 비춰주었던 올림픽금메달효자-효녀 동계종목이다.

 

 

17Lellehammer1994 동계올림픽에서는 김기훈 선수가 남자 1000m 쇼트트랙 종목에서 첫 번째 금메달을, 전이경, 김소희, 윤혜경, 김윤미 등 여자 선수들이 여자 3000m 계주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채지훈 선수가 남자 500m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그리고 전이경 선수가 여자 1000m에서 네 번째 금메달을 획득하여 총 6개 중 4개의 금메달을 한국 선수들이 캐냈다.

 

 

(전이경 올림픽 4관왕과 IOC올림픽박물관에서)

 

 

이로써 한국이 동계 스포츠에 있어서도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게 되는 터전을 공고히 하였다.

 

18Nagano1998 동계올림픽에서도 쇼트트랙의 전이경 선수는 단체로 1개 및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하나 더 추가함으로써 드디어 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올림픽 첫 4관왕이 되었다.

 

2002년 미국의 Salt Lake City에서 개최된 제18회 동계올림픽대회에서 전이경 선수는 IOC 선수위원으로 한국을 대표하여 출마하였으나, 당시 인지도 측면에서 부족해 선수로서는 올림픽 4관왕이란 화려한 경력이었지만 아깝게도 고배를 마셨다.

 

IOC 선수위원 선출발표가 있었던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 선수촌(유타대학교, University of Utah) 국기 광장 근처 입촌식(Flag-raising Ceremony/Team Welcome Ceremony)이 거행되던 장소에서 Anita DeFrantz 미국 여성 IOC 위원 겸 선거위원장이 당선자 발표 후 단상에서 내려와 전이경 선수의 손을 꼭 잡고 격려하면서, 훌륭한 자질과 경력을 가지고도 IOC 선수위원에 선출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전이경 선수에게 IOC 위원이 될 수 있는 IOC 선수위원에는 뽑히지 못했지만, 전 선수와 같이 훌륭한 아시아의 여성 스포츠 인이며 올림피안(Olympian)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Jacques Rogge 당시 IOC 위원장에게 전이경 선수를 개인자격 IOC 선수위원으로 강력하게 추천하겠노라고 약속했으며 필자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Anita DeFrantz 미국 IOC 위원은 2001 IOC 위원장 후보 중 1명이었고, IOC 사상 최초의 IOC 부위원장을 역임하였고, IOC 여성과 스포츠 분과위원장이기도 하며, 21Montreal1976올림픽 당시 미국대표 여성조정 선수로서 동메달을 획득한 바 있는 전 세계 여성 스포츠 계의 대모(God Mother)격으로 존경 받는 인물이다.

 

LA1984올림픽 대회 시 필자와 처음 상면한 이래 벌써 30여년 동안이나 형제자매처럼 지내왔다.

 

 

(필자가 2008 Beijing개최 ANOC총회 개회식에서 대한민국 최초 ANOC공로훈장 수상 시 축하해 주던 Anita DeFrantz IOC부위원장과 함께)

 

 

그녀는 LA올림픽 대회 잉여금으로 설립한 아마추어 체육재단(Amateur Athletic Foundation) 초대이사장 직도 역임한 바 있다.

 

그녀는 2003 7월 체코 프라하에서 대한민국의 평창2010이 캐나다의 밴쿠버2010에게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간발의 차이로 석패하자 필자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흰 손수건을 건네면서, Rocky, it's all right! You will have it in 2014!”라고 격려해준 덩치 큰 누님 같은 분이다.

 

필자는 그 흰 수건을 얼마 전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2007년 과테말라 IOC 총회에서 실시될 투표 전에 2014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반드시 쟁취하고, 한국의 색동 손수건을 그분에게 돌려드리고 싶었지만 다시 러시아의 Sochi2014에게 석패하는 바람에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유치에 성공하고 난 다음에 그 흰 손 수건과 함께 동양자수가 새겨진 손 수건을 돌려 준 바 있다

 

Salt Lake2002 동계올림픽이 끝난 다음 달인 2002 3월경 필자는 IOC로부터 한통의 휴대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당시 IOC 사무국 최고실력자인 Gilbert Felli IOC 수석국장(올림픽 대회 총괄)이었다.

 

 

(Gilbert Felli IOC수석국장과 Rio de Janeiro 예수상 앞에서)

 

 

통화의 요지는 IOC 선수위원 구성 마무리 단계에서 개인자격 선수위원으로 추천된 한국의 전이경 선수에 대하여 Jacques Rogge IOC 위원장과 함께 최종 결단을 내리려고 하는데, 전이경 선수의 영어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고 솔직하게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영어실력이 떨어지면 개인자격 선수위원으로 내정할 수 없는 상황이며, 필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묻는 것이라고 첨언하였다.

 

필자는 Felli 수석국장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IOC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고, 또한 당시 김운용 IOC 부위원장 겸 KOC 위원장도 강력 추천해 놓은 상황이므로, 영어실력만 웬만하면 전이경 선수는 IOC 선수위원으로 확정되는 따 논 당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필자의 머리 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당시 IOC 위원 겸 IOC 선수분과위원장이었으며 필자와 2008년 올림픽 대회 IOC 평가위원(Evaluation Commission) 활동을 같이 하면서, 친형제처럼 절친해진 우크라이나 출신 Sergey Bubka였다.

 

당시 Bubka 선수는 서울1988올림픽 대회 때 세계신기록을 연거푸 경신하며 “나는 인간 새(Flying Human Bird)”라는 칭호를 받은 바 있고, IOC 내부에서도 올림픽 선수 전체를 대표하는 좌장 격의 영향력 있는 IOC 위원이기도 하였다.

 

Bubka 위원은 IOC 평가위원으로서 필자와 중국(Beijing), 일본(Osaka), 캐나다(Toronto), 터키(Istanbul), 및 프랑스(Paris) 등 최종결선에 오른 5개 최종 유치후보 도시를 순회하면서 아침 새벽마다 필자를 깨워서 아침 조깅을 늘 함께 하곤 했다.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5개 후보도시현지실사 방문 후 최종보고서작성회의를 위해 Lausanne IOC본부 IOC집행위원회 회의실에서 함께한 Sergey Bubka<-2>및 한국최초 IOC평가위원으로 활동한 필자<-3>)

 

 

당시 Bubka는 솔직하게 자신의 영어실력이 아직 뛰어나지 않으니 질문 사항 등을 필자더러 만들어 달라고 하기도 하고, 농담도 서로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필자의 영어 이름 Rocky(로키) 이외에 Yuri(유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고 해서 승낙하자 필자를 만날 때마다 “My twin brother, Yuri!?”라고 칭했다.

 

Bubka 위원과의 아침 운동은 조깅이라기보다 러닝(running)에 가까워 어떤 때는 필자가 보조를 맞추려고 빨리 뛰다 무리가 되어 다리에 쥐가(Cramp)난 적이 있었다.

 

Bubka 위원은 곧 필자를 사우나로 데려가 온탕 속으로 함께 들어가 쥐가 난 정강이를 손으로 마사지(Massage)해 주는 등 인간적이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런 Bubka 위원이 그 순간 생각이 난 것이다.

 

 

(Sergey Bubka IOC집행위원 겸 우크라이나 NOC위원장이 2006년 서울개최 ANOC총회시 필자가 설립한 양평소재 평산스포츠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당시 Felli 수석국장에게 전이경 후보의 영어실력은 Sergey Bubka 위원이 처음 IOC 선수위원으로 입문할 당시의 실력이라고 대답하자 Felli 수석국장은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Bubka 위원도 의식하고 전이경 선수의 훌륭함도 함께 고려하여 드디어 대한민국 최초의 첫 IOC 선수위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전이경 선수는 IOC 선수위원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고 평판 또한 호평을 받았다.

 

Athens2004올림픽 대회 당시 IOC 선수위원 자격으로 동료 위원인 중국의 여자 탁구 영웅 등야핑과 단짝을 이루어 올림픽선수촌과 올림픽 경기장을 부지런히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등야핑 IOC선수위원과 Athens2004올림픽 IOC본부호텔에서 함께)

 

 

당시 전이경 선수는 배우기 시작한 시간에 비하면 영어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더구나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 중 영어도 잘하고 IOC선수위원출신과도 소통이 좋아서 유승민 현 IOC위원과 함께 선수출신 IOC 위원들과 가장 잘 통하는 국제 통 중 한 명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훌륭한 한국의 스포츠 외교관으로서 자질이 충분하다.

 

그녀 역시 2032년 남북한 올림픽 공동유치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스포츠외교관들 중 한 명이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13. 22:05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Athens2004올림픽현지생생현장스포츠외교실화실록(37)]

 

 

2004년 아테네올림픽!

 

 

스포츠 외교는 단순히 올림픽 대회 및 국제스포츠기구총회 유치나 국제기구 임원피선을 위한 로비활동에만 국한되어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회(2004 813~829)에 자크 로게(Jacques Rogge) IOC 위원장의 특별 게스트(IOC Distinguished guest)자격으로 정식 초청받아 힐튼 호텔에 설치된 IOC 본부 호텔에 체류하면서 VIP ID 카드(Gi)를 발급받고, 차량도 신청만 하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혜택(T3)을 누리면서 IOC 총회 및 올림픽 대회 기간 동안 지속적인 한국스포츠외교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IOC 본부 호텔에 숙박하다 보니 매일 IOC 위원장을 포함한 전 세계 IOC 위원들, 국제경기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s :IFs)회장들, 전 세계 스포츠 지도자들과 번갈아 가면서 만나고 자연스럽게 조찬도 같이 하고, 경기장도 같이 가고,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늦은 저녁 무렵에는 칵테일도 한잔하면서 각종 정보와 근황 및 동향에 대하여 귀중하고도 신빙성 있는 교감을 갖는 기회를 많이 맞이하게 되었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여 ID 카드 발급을 위하여 IOC 본부 호텔인 아테네 힐튼호텔에 가보니 테러경계태세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IOC 위원장 초청장 사본을 보여 주고 나서야 힐튼호텔 뒤편 지하 1층에 위치한 등록 센터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ID 카드 발급을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 30분 후에 IOC 총회 개회식이 예정되어 있어, 그곳 책임자에게 IOC 위원장 초청장 서한을 제시하자 곧바로 IOC 위원장 집무실 책임자에게 확인하더니 IOC 총회 개회식에서 IOC 위원장이 필자를 기다린다는 전갈이 왔다고 했다.

 

 

통상적으로는 인터폴(Interpol) 등에 문의하는 등 안전 확인절차를 위해서 최소 3일 간의 대기시간이 소요되지만 예외 경우(exceptional case)로 분류하여 10여 분만에 그야말로 초고속 수속절차를 거쳐 그것도 애초 배정예정카드보다 격상된(upgraded: IOC 위원장의 특별 지시라고 함) Gi’ 카테고리(IOC 특별 게스트)로 발급받게 되었다.

 

 

아무튼 서둘러 힐튼호텔 건너편에 위치한 IOC 총회 개회식장으로 향했다.

 

 

IOC 위원들조차도 정식초청장을 지참하여야 출입이 가능했으나 Athens2004조직위원회 의전요원에게 IOC 위원장 초청장 서한을 보여 주자 워키토키(Walkie Talkie)로 누군가와의 교신을 한 후, 필자를 직접 에스코트(escort)까지 하면서 총회 개회식장 2층 좌석으로 안내했다.

 

 

마침 올림픽찬가(Olympic Hymn)가 울려 퍼지면서, 개회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주최국 그리스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부요인들과 IOC 위원들, 및 국제 스포츠 계 거물들이 모두 총 집결되어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세계 스포츠정상회담”(World Sports Summit)장을 방불케 하였다.

 

 

개회식 직후 베풀어진 리셉션(Reception) 장에서 많은 IOC 위원들과의 해후가 이루어졌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은 큰 키에 국제매너가 세련된 북한의 국제 스포츠외교통이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Athens2004올림픽 당시 장웅 북한 IOC위원과 함께)

 

 

 

 

그 사이 Jacques Rogge IOC 위원장이 리셉션 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 필자가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되었다.

 

 

 

 

(Jacques Rogge IOC위원장과 함께/Torino2006동계올림픽 당시)

 

 

 

 

"Mr. President, thank you most awfully for your kind invitation and for upgrading my accreditation!"(위원장님, 초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본인 ID 카드를 VIP급으로 격상시켜주신 배려에 정말 감사 드립니다.)

 

 

 

필자가 이렇게 말을 건네자, IOC 위원장은 간단하게 한마디로 압축해서 응답하였다.

Rocky, you are always our friend!"(로키, 귀하는 늘 우리의 동지일세!)

 

 

<양태영 체조 금메달 받을 수도 있었을 현장 스포츠외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 중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체조의 양태영 선수 금메달 유감 사건이었다.

 

 

필자는 당시 로게 IOC 위원장 특별 게스트 자격으로 초청받아 IOC 위원들 및 그들 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한국 선수단과는 무관한 신분이었던 관계로 직접 개입은 불가능했다.

 

 

마침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던 구소련(러시아) 출신 유리 티토프(Yuri Titov) 전 국제체조연맹(FIG) 회장(20여 년간 장기집권) 겸 前 IOC위원과 만나 서울올림픽 당시 즐거웠던 회고담 등을 나눈 다음날 「양태영 선수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IOC 본부 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필자와 Titov 前 회장은 조찬장에서 다시 조우했다.

 

 

Titov FIG회장 겸 前 IOCC위원은 필자에게 해줄 말이 있다며 조찬장 한쪽 구석으로 가서 “양태영 선수의 금메달을 찾을 수 있으니, 내가 말해주는 방법을 시도해봐라.”고 조언해 주었다.

 

 

 

(4년 뒤인 2008 Beijing올림픽에서 재회한 Yuri Titov 전임 FIG회장)

 

 

 

 

 

2004년 당시 “국제체조연맹(FIG) 규정에는 ‘심판 판정 결과 번복 불가’란 항목이 수년 전부터 삭제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번복이 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 “우선 IOC FIG를 국제적으로 흔들어 놔야 한다. 그러려면 내일 당사자인 미국의 폴 햄(Paul Hamm) 선수의 시합이 있으니 관중석에서 한국 측 응원단이 금메달을 돌려 달라(Return Gold Medal to Korea!)는 현수막을 들고 흔들어대면 전 세계 TV 및 취재 보도진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되고, 그리하면 외신 기사로 다루어지게 될 것이며, 그러면 IOC FIG는 아테네 올림픽의 공정성과 대회 개최의 성공을 위해 타협점을 찾게 될 것이므로, 양태영 선수 금메달 건에 힘을 받게 되어 금메달을 되돌려 받든지 추가 금메달을 받든지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미국 비자 신청 시 문제점이 생길지 모르니 본인의 이름은 거명하지 말아달라고 필자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탁하면서 그야말로 위험을 무릅쓴 자문을 해 주었다.

 

 

 

필자는 KOC 관계자가 아닌 관계로 이러한 전략을 IOC 본부 호텔에서 만난 KOC 고위 임원을 통해 KOC 위원장 및 한국 선수단장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에 따른 후속 조치는 시의 적절하게 취해지지 않았다.

 

 

필자가 생각건대, 관중석에서 한국 응원단이 자발적으로 하는 평화적인 시위행위는 KOC도 한국선수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밑져야 본전」이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하는가 보다.

 

 

 

 

(좌로부터 Athens2004올림픽 남자체조 개인종합 은메달리스트 김대은 선수, 떳떳하지 못한 표정의 Paul Hamm미국 금메달리스트, 양태영 동메달리스트)

 

 

 

 

그 이후 내외신 기자들이 양태영 금메달 사건을 연일 앞다투어 보도하고, 한국 내 여론도 네티즌을 중심으로 「양태영 금메달 되찾기」 쪽으로 가열되자, 대책회의를 열고 값비싼 수임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한국 내 유수한 법률사무소(Law Firm)를 경유하여 영국 법률사무소소속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고 스포츠 중재재판소에 정식으로 제소했다.

 

 

그러나 IOC 스포츠 중재재판소(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s)에 제소했던 양태영 선수 금메달 되찾기 소송은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억울하지만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리라.

 

 

이제부터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Locking the stable door after the horse is stolen)를 해야 한다고 지면을 통해 자문하기도 하였다

 

 

그래야 Beijing2008을 포함한 향후 올림픽 등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 제2, 3의 양태영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 향후 이러한 억울한 경우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처방은 뭐가 있고 어떻게 하면 될까? 

 

 

필자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고 쉬운 대비책을 제시하고 간접적으로 자문한 바 있었다.

 

 

유창한 영어나 불어도 필요 없다.

 

 

각 해당국제연맹(IFs)종목별 규정 집을 보면 판정 결과가 틀렸다고 판단될 경우 소청(appeal)할 수 있는 규정과 함께 각 연맹 별 영문 소청 양식이 별도로 구비되어 있다.

 

 

회원국 연맹은 누구라도 이러한 영문 소청 양식 사본을 얼마든지 사전에 취득, 지참할 수 있다.

 

 

국제연맹마다 소청 양식이 약간씩 다르겠지만 소청 신청 금(대개 20불미만)과 함께 소청 양식에 해당 종목과 해당 경기 참가 선수 명, 코치 명 및 서명, 그리고 날짜를 기입 필 한 후 해당 종목 경기장에서 그냥 감독관에게 제출하면 된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2부씩 영어로 무조건 경기 시작 전에 해당 종목과 관련된 소청 양식을 사전 대비용으로 작성해 가지고 몸에 지니고 있다가 소청의 경우가 발생할 경우 미리 작성 준비된 소청 양식 1부를 그 자리에서 제출하고 나머지 1부에는 제출 받은 감독관의 접수확인 서명 등을 받아 지참하고 있으면, 모든 소청 절차가 끝나게 되고 상응하는 결과를 떳떳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양태영 선수의 경우도, 만일 이러한 사전 준비가 있었더라면, 손쉽고 당당하게 점수가 수정되고, 당연히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나간 일에 대하여 누구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생산적이 아니다.

 

 

양태영 금메달 유감 사건을 거울삼아 앞으로는 이러한 눈뜨고 코 베이는 억울한 사태는 유비무환 정신으로 철저히 대비해 나가기를 소망한다.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IOC위원)겸 당시 대한카누협회 회장 현지 스포츠외교지원 실화실록>

 

 

당시 Jacques Rogge IOC위원장 특별 게스트(Gi) 자격으로 초청받아 AD카드를 비롯하여 공식차량서비스를 포함 Athens2004올림픽 IOC위원 전용본부호텔인 아테네 힐튼호텔에서 준 IOC위원 대우를 받아가며 체제하면서 IOC위원들과 날마다 스포츠외교활동을 전개할 시절이었다.

 

 

대회 기간 어느 날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를 역임한 최만립 당시 IANOS-APOSA국제생활체육연합회 회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요점은 아테네올림픽 한국대표선수단 임원으로 현지에 온 당신 이기흥 대한카누연맹회장에 대한 스포츠외교지원 요청이었다.

 

 

사연인 즉, 국제카누연맹(ICF: International Canoe Federation)회장 및 사무총장과 만나려고 이 메일과 전화통화 시도를 반복했지만 답신(feed-back)이 종무소식이니 이기흥회장이 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쾌히 승낙하고 이기흥회장이 필자투숙 힐튼호텔로 오면 즉시 만남을 주선하겠노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 당시 이기흥 대한카누협회장은 힐튼호텔로 방문하였으며 한국선수단 임원차량을 가지고 왔으므로 필자가 별도로 올림픽패밀리 배정차량을 요청할 필요가 없어 이회장 차량으로 즉시 올림픽 카누경기가 열리고 있는 카누경기장으로 향했다.

 

 

사전에 ICF회장 및 사무총장에게 별도의 연락을 취하지 않은 까닭은 올림픽 기간 중 그들의 핵심일상업무가 올림픽카누종목 경기운영 총괄지휘감독이기 때문에 그들은 무조건 카누경기장 임원실에 상주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ICF회장 및 사무총장은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GAISF(Global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Federations: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회장시절 항상 보좌했던 필자를 카누경기장 임원실로 이기흥회장과 함께 들어서자 먼저 필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좌로부터 Jose Perurena Lopez 당시 ICF사무총장, 이기흥 당시 대한카누협회회장/현 대한체육회장 겸 IOC위원, 당시 독일출신 ICF회장, 필자)

 

 

 

 

필자는 이기흥회장을 이들에게 소개하면서 돈독한 협조관계유치를 요청하였으며 Athens2004올림픽 직후인 2004년 가을에 한국에 초청토록 이기흥회장에게 제안하도록 자문하고 통역도 겸하였다.

 

 

 

대한카누협회입장으로는 국제연맹회장 및 사무총장이 방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카누 스포츠외교에 도움이 되는 프리미엄 급 국제스포츠외교활동이 되기 때문이었다.

 

 

 

 

 

 

 

당시 ICF회장은 독일 출신이었으며 사무총장은 스페인 출신 Jose Perurena Lopez(1945.4.4일생)였는데 동 사무총장은 뒤이어 ICF후임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0년 뒤인 2011 IOC위원이 되어 4년 뒤 2015년에는 70IOC위원정년에 이르렀지만 2014년 국제월드게임협회(IWGA: International World Games Association)회장에 당선됨으로 2015년 올림픽헌장 신 규정(Olympic Agenda2020)에 힘 입어 Thomas Bach IOC위원장의 후광으로 IOC위원임기가 4년 연장되었다.

 

 

 

그는 2019 IOC위원임기는 끝내지만 ICF IWGA회장 직은 유지하고 있다.

 

 

 

(좌로부터 Jose Perurena Lopez ICF IWGA회장 겸 스페인 IOC위원, 필자, Mariso Casado 국제트라이애슬론 연맹회장 겨 스페인 IOC위원)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11. 13. 15:32

[우리들교회 2019 1110일 주일말씀요약(사도행전 5:1~ 11/성령의 두려움)]

 

 

 

<사도행전 5:1~11>

1 <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
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Prologue>

 

결혼 전부터 우리들교회를 다니고 그래서 역기능 가정에 대하여 해석이 되었다.

그래서 남편을 우리들교회에서 잘 만나서 결혼을 하고 보니까 초대교회의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환경 가운데 주님 만난 것은 감사하지만 그 변하지 않는 환경이 지겹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십일조도 안 한다고 한다

요즘 초대교회를 넘어 중대교회와 말대 교회로 가는 분도 있다.


성령의 공동체는 은혜가 있지만 이 땅은 공중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이기에 그 은혜로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보호하셨지만 사랑의 하나님만 알면 안 되고 공의 의 하나님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도 쥐 새끼도 못 잡아 돼지가 되고 나면 그 다음엔 못 잡게 된다.

그래서 교회가 시작되는 이 때에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라는 것도 알려 주셔야 영적 질서가 잡히기 때문에 성령의 두려움을 오늘 알려주신다

 

<말씀요약>

 

그래서 성령의 두려움은,

1.   성령을 속이고 감춘 것을 드러내게 하신다


1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아나니아(Ananias)와 삽비라(Sapphira)가 왜 땅을 팔았는데 그 동기가 중요하다

성령의 은혜공동체의 중심에 바나바(요셉)가 있었다.

사도들은 밭을 팔아 가져온 바나바를 위로의 아들이라 불렀고 나중에 보면 안디옥에서 큰 무리를 가르치면서 대단한 권위자가 되는 보게 된다

그는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팔아 나누고 회개하고 돌이킨 지체에 믿음을 돕고자 함이었는데 이 공동체에 바나바가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아나니아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삽비라는 청옥, 아름답다는 뜻을 지닌다.

이들은 겉으로는 믿음이 있어 보이는 선남선녀였는데 바나바가 너무 존경을 받으니까 바나바에 대한 경쟁심으로 헌금을 했다.

이것도 훌륭한 일이다. 맹렬한 질투로 땅을 팔아 헌금을 하기로 한 것까지는 좋았고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교회와 구제를 위해서 땅 팔고 집 팔아 본 적이 있나?

그러니 이 사람들은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

이들은 또 나아가서 맹렬한 질투로 인해서 존경도 받아 보려고 땅이 있으니까 팔자라는 것까지 좋았다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문제는 결단한 뒤에 그 판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라고 하는 것이다

돈을 보니까 마음이 달라진 것인데 그래서 아내와 함께 둘 다 마음의 기쁨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계시라고 하면서 얼마를 감추었는데 누가 알겠냐고 하면서 갖다 바쳤다

3(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이 사실을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분별을 했다.

베드로는 성령 충만함으로 헌금하러 온 사람에게 사탄이 임했음을 도사처럼 감지한다

예수 믿고 받은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가득하다충만하다와 같은 단어이다.

초대교회에서도 사탄이 역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초대 교회 시절에는 성령도 사탄도 역사하였다

진리의 성령께서 우위에 있으면 성령 충만하지만 이것이 약화되면 사탄이 충만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그 땅을 팔 때까지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지만 돈을 보면서 사탄이 성령을 물리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롯 유다와 같은 케이스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성령님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결단을 변경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나니아의 땅과 그 값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그 땅을 팔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그 땅에 대한 권리가 있는 것에 대해 되묻는다.

팔기 전에도 그 땅이 당신 것이었고 판 뒤에도 그 돈을 임의로 할 수
있었는데 왜 하나님을 속이는가?

그 땅은 하나님의 소유인데 왜 하나님이 달라고 하시겠나?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 잘 몰랐다

이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만 알고 거짓으로 행하면 무섭게 다루신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의 땅이 아니라 그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있음을 몰랐다

아나니아도 사람의 영혼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거짓되게 하는 것이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

자녀 때문에, (명예 때문에, 자랑 때문에) 돕는 대상이 우상이 되어 나의 결정을 돕는 것이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경건의 모양이 있어서 그럴 득해 보이지만 그 안에 사랑이 없어서 오래가지 못 하는 것이다

노력도 하니 속기가 쉬운 것이다.

악을 행하기에 담대해 지는 것은 목적과 결과가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바나바는 고향 구브로(Cyprus)의 땅을 팔아서 다 바쳤다.

아나니아는 소유를 바쳤지만 소유의 일부인 조그만 밭을 팔아 그 중에서도 일부만 바친 것이다.

처음부터 진심으로 자친 것이 아니다

일부를 드리면서 전부를 드렸다고 거짓말하고 속인 것이 나쁜 것이다

액수가 아니라 중심이 중요한데 속인 것이 문제였다.

아나니아가 사전에 베드로에게 가서 미리 사정을 고했다면 뭐라고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아간(Achan/봉헌 물을 훔친 범죄자)이 온전히 바친 물건(외투)으로 범죄한 사실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여호수아 7:1)

그는 제비 뽑기에 의해 범죄 사실이 밝혀져 돌에 맞아 죽었다(여호수아 7:16~22, 25)

여리고(Jericho)함락 후에 아이(Ai) 성을 염탐하라고 하셨는데 막상 이기고 보니 자만심이 생겨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우습게 여기고 삼천 명을 내보냈는데 36명이 죽었다.

가장 위험한 때가 승리한 때이다

성도들에게 사소한 전쟁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떤 작은 유혹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노력한 것 같아서 내가 하고 싶은 부분이 생긴다.

결혼만 되면, 건강만 되면 감추고 취하고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생긴다

감추고 생색내고 가고 싶은 곳이 많게 되는 것이다

 

주의 일에 많은 것을 봉사했고 열심히 바쳤다고 하면서 이제 가고 싶은 곳도 많으니 목자 직분도 내려놓고 싶다고 한다.

겉으로는 내가 여태껏 헌신했으니 좀 쉬어도 된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5(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아나니아는 사탄에게 내어 줌으로 거짓으로 속인다

엎드러져(망하게 되어) 혼이 떠나니 심판을 받은 것이다.

베드로의 말이 선포되자 마자(듣고, 듣자마자) 아나니아는 곧바로 죽은 것이다.

혼이 떠나는 것은 심판에 따른 형벌로 표현한 단어이다.

이 사건을 통해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심판임을 인정하면서 성령의 두려움이 생겼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속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 서원기도를 자발적으로 하고는 감추면서 지지부진하며 시간을 끄는 것이다.

본문 설교가 기분 나쁘더라도 본문 따라 설교하는 것이니 기분 나빠하지 말기 바란다

6(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일반적 장례절차도 없이 묻었는데 동정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비참 그 자체다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아내도 알지 못하는 장례를 치렀다

(적용 1)

-우리는 성령을 속이고 감추면서 가고 싶고 놀고 싶고 자랑하고 싶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여 성령의 두려움이 임한 적이 있는가?

2. 외식을 드러나게 하신다.

1.2절에 보면 아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찰떡궁합인 아내인 삽비라(Sapphira)가 조력자가 된 것이다.

부인으로서 알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모르드개(Mordecai)를 죽이려는 간신 하만(Haman)이 부인 세레스(Zeresh)와 찰떡궁합이었다.

그들이 모의하여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다.

이세벨(Jezebel)과 아합(Ahab)이 찰떡궁합으로 나라를 우상숭배천국으로 만들었다

진정한 믿음 안에서의 찰떡궁합은 서로 신앙을 격려해 주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알려 주어야 했는데 이들 부부는 둘 다 마음이 같아서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마음이 같았다.

배우자 중 한 사람이라고 성령의 두려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외식한 것이다

바리새인도 추앙을 받다 보니 외식 하게 된다

외식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이다.

그들이 기도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헌금도 충실하게 내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외식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임을 오늘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들교회도 밖에서 외식할까? 안에서 외식할까?

교양이 있어서 없는 곳에서 할 것이다.

아는 것이 많아 안 해야 한다고 알면서도 한다.

배울수록 외식도 많아진다.

외식하는 자들이 가는 곳의 결론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다.

삭개오(Zacchaeus)처럼 무식하면 외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박사를 자처하면서 아는 것이 많아 외식을 하는 것이다

물질이 없으면 외식 하지 않는데 물질이 생기니 감추게 된다.

물질이 있는 것이 사탄의 밥이다.

물질을 관리하며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예수 잘 믿기 위해서는 말씀의 검을 대야 한다.

너무 세상적으로 사이가 좋은 것도, 문제가 없는 것도 문제이다

남편과 아내 중 말씀의 검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나중엔 땅끝까지 가야 하는데 성령 충만 하다고 순종을 우상 삼아서 맨날 기다린다고 하며 시간만 보내는 것은 문제이다.

10, 20, 30년이 되어도 계속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교회같이 외식과 가증함이 드러나는 쉬운 곳이 없다.

종교인들이 교회에 모여 있으면 염증이 나고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난다.

큐티로 매일 점검하니 문제가 매일 일어나도 매일 회개하기에 문제가 저절로 풀어지고 넘어가는 것이다.

누구도 특별한 자는 없으며 죄 많은 것이 특별한 것이다

별 인생 없으니 자만할 사람이 없다.

교회 다닌다고 다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믿음으로 함께 가지 않으면 결론이 비참한 것이다.

다윗이 외식의 끝판왕인 미갈을 책망했다.

사울왕의 딸이기도 한 미갈이 교양으로 다윗을 보면서 바지가 내려갈 정도로 다윗이 춤추는 것을 교양 없고 천박하다 정죄했다.

아비가일은 반면 부자 남편 때문에 애통해 했다.

진리의 그릇인 우리의 태도가 아름다워야 하기에 본질에 충실하며 진리가운데 서야 한다.

진리를 전하기 위해 예쁜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목장나눔)

 

재혼한 부부가 하나되지 못하고 십일조를 각각하고 있었다. 가정의 머리가 남편이니 한 이름으로 하라니 부인이 힘이 빠지고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것은 내 것이라는 마음이 깨달아졌다.욕심 많은 부목자의 나눔, 예전부터 아내와 풀 뜯어 먹는 곳’(목장공동체모임)에서 너무 쓸데없이 많은 말을 한다고 뭐라 했다. 목자가 부목자님이 10년간 부동산과 분양권 이야기만 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했다. 믿음의 기준이 뭐냐 남편이 부목자고 아내가 목자인 것이 베스트. 이것이 거꾸로 되는 것은 늘 불안하다. 권찰의 믿음이 더 좋아야 한다는 것이 안일한 것이다. 내가 수고하는 것이 낫지 아내가 수고하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십 년을 꾸준히 목장에 나온다. 이분에게 성령의 두려움이 나오고 약 처방도 받기 바란다.


(
적용 2)

-부부간에 찰떡궁합이라 모든 것을 같이 공모하는가?

-믿음의 가치관이 달라 성령의 두려움 때문에 매사에 갈등이 있는가? 그 갈등은 몇%인가? (높은 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의 외식은 몇 점인가? (자기. 타인의 평가)

3.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을 드러내신다.

7절에 삽비라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다고 한다.

대문자로 단락을 구분하여 표현하였다.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우리 인생이 세시간 뒤를 모르니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것이다.

120년간 방주를 짓는데 조선소가 물가에 있으나 노아는 산에서 방주을 짓는 것은 홍수를 대비한 것이다

노아가 한결같이 되는 것도 없이 120년을 보여주는 것이 없으니 자기 식구밖에 들어가는 이들이 없었다.

세시간 뒤를 몰라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것이다.

8(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아나니아는 사실을 말할 기회도 없이 죽었다.

그런데 아내 삽비라에게는 한번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 거짓말을 했으니 삽비라가 더 악했던 것이다.

9(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패역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성령을 속인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을 하신 것은 초대교회시절 성령을 속이는 것을 얼마나 미워하시는 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너무도 성령님의 역사가 강력하니 바로 심판이 이뤄졌다.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삽비라 역시 즉사했다.

엎드려져(먼저 망하고) 혼이 떠난다

심판이 즉각적으로 집행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불행은 단순히 즉사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의 애도도 받지 못하는 비참한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3시간 만에 이것이 심판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하다 여호와 불로 불태워져 죽었다.

가나안 광야생활의 시작이었는데 머리 풀고 옷 찢고 슬퍼하지 말고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슬퍼하라고 하였다.

죄짓고 죽은 아들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한 것을 애통하라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하나님의 두려움을 알려주는 수고를 했다

11(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인해 큰 두려움이 임했다.

이것으로 다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강조한 것이다

두려움과 찔림을 통한 일벌백계로 이 두 사람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요즘에 이런 세례와 성찬과 치리가 다 사라진 이 땅에서 우리들교회가 처음부터 치리를 했기에 성령의 두려움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간(Achan)의 반역으로 아골 골짜기가 만들어 졌고 아이(Ai)성 전투의 징계도 죽은 이들을 위해 슬퍼하지 말고 200만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성령이 두려움이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수고하신 사건이다

서원하고는 감춘 것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많은가?

내 죄를 보고 이 본문을 보며 회개해야 한다.

그냥 기복적으로 헌금 안 해서 죽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달라고 하지도 않으시지만 우리는 감춘 것이 많은 것이다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인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내 대신 죽었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소유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드리니 생색나고 아까우며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전히 헌금 떼어먹고도 불평한다

이 사건 이후로 동일한 심판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아시면서도 참고 또 참으시며 마지막 심판 날에 이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하는지 알고 계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미리 role model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성령의 두려움을 갖고 정직하게 행해야 한다.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라고 주신 본문이라고 생각된다


(
적용 3)

-타인의 심판을 보고 성령의 두려움을 가지고 내가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성령의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처럼 주의 영도 속이고 외식도 하지만 공동체에 붙어가며 하나씩 가지치기를 하니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다고 한다.

(암송구절)
*
신명기 20: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Epilogue>

 

성령의 두려움은 성령을 속이고 감춘 것을 드러내시고 외식을 드러내고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을 드러내신다.

성령의 두려움을 느끼면 세상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성령의 두려움을 가질 때 이 땅에서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을 줄 믿는다.

예수 믿고 받은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진리의 성령께서 우위에 있으면 성령 충만하지만 이것이 약화되면 사탄이 충만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만 알고 거짓으로 행하면 무섭게 다루신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거짓되게 하는 것이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

자녀 때문에, (명예 때문에, 자랑 때문에) 돕는 대상이 우상이 되어 나의 결정을 돕는 것이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경건의 모양이 있어서 그럴 득해 보이지만 그 안에 사랑이 없어서 오래가지 못 하는 것이다

악을 행하기에 담대해 지는 것은 목적과 결과가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때가 승리한 때이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떤 작은 유혹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결혼만 되면, 건강만 되면 감추고 취하고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생긴다

감추고 생색내고 가고 싶은 곳이 많게 되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심판임을 인정하면서 성령의 두려움이 생겼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속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 서원기도를 자발적으로 하고는 감추면서 지지부진하며 시간을 끄는 것이다.

배울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게 되어 외식하게 되는 자들이 가는 곳의 결론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다.

삭개오(Zacchaeus)처럼 무식하면 외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박사를 자처하면서 아는 것이 많아 외식을 하는 것이다

물질이 없으면 외식 하지 않는데 물질이 생기니 감추게 된다.

물질이 있는 것이 사탄의 밥이다.

물질을 관리하며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우리 인생이 세시간 뒤를 모르니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하나님의 두려움을 알려주는 수고를 했다

하나님은 달라고 하지도 않으시지만 우리는 감춘 것이 많은 것이다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인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내 대신 죽었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소유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드리니 생색나고 아까우며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전히 헌금 떼어먹고도 불평한다

하나님께서는 아시면서도 참고 또 참으시며 마지막 심판 날에 이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하는지 알고 계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미리 role model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성령의 두려움을 갖고 정직하게 행해야 한다.

성령의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가고 싶고 놀고 싶고 자고 싶을 때 성령의 두려움이 임하게 하소서.

부부간에 성령의 두려움이 임해서 회개하게 하소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즉사할 정도의 죽을 죄를 짓고 사는 우리를 보고 긍휼히 여겨 주시고 유예기간을 주시는 것에 감사하며 회개하게 하소서.

수능을 보는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시험을 잘 치르도록 기도하자.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12. 18:57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Barcelona1992올림픽현지생생체험현장실록(36)]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바르셀로나! Barcelona! Barcelona! 이베리아 반도 동편 지중해 바다 내음을 물씬 풍기는 해안가에 위치한 까딸루냐(Catalunya) 지방의 제1의 항구도시!

 

1992년 제25회 올림픽 대회 개최도시! 대회 마스코트인 바르셀로나 「진돗개」 꼬비(Cobi)의 상냥함과 정겨움이 전 세계 지구촌 올림픽 가족을 온화함으로 맞이하고 있는 1992년 올림픽 중심!

 

 

바다요리(Sea Food)의 상큼함이 한껏 입맛을 돋우어주는 전 세계 식도락가들의 집결지!

 

까스떼야노(Castellano)라 불리는 스페인어와는 조금 다른 액센트(Accento)와 오히려 불란서어와 비슷한 어휘 그리고 큰 목소리의 까딸란(Catalan)어의 독특한 언어 정취를 느끼게 하는 정통 까딸루냐(Cataluna)의 메카!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Champs Elysees) 거리에 필적 되는 람블라스(Las Ramblas) 거리의 낭만과 활력!

 

1492년 미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기상이 높이 세워진 동상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곳!

 

람블라스 거리의 끝에 우뚝 서 있는, 영원한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동상 콜럼버스군은 1992년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국, 뉴욕에 살포시 그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자유의 여신() 양」과 혼례를 치를 예정으로 자못 흥분된 모습으로 손가락을 자신의 신부가 될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가리키고….

 

1882년부터 신축되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1883년 피카소, 미로와 함께 스페인이 자랑하는 예술가인 동시에 건축가인 가우디가 인계 받아 설계하여 건축 중인 싸그라다 화밀리아(Sagrada Familia: 聖家族) 성당이 고풍스런 위용을 자랑하며 아직도 건축 중에 있는(향후 200년 후에나 완공예정이라 함) 흥미진진하고 여유만만한 도시의 풍미!

 

1992년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개회식 날 마치 월리암 텔(William Tell)이 자기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향해 쏜 화살처럼 관객들을 숨 막히게 하며 정확히 명중, 점화되어 전 세계 지구촌 가족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성화대가 우뚝 솟아 있는 몬주익(Monjuic)에 위치한 올림픽 주경기장의 멋들어진 자태!

 

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 지구촌의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과 낭만을 선사하였던 도시 바르셀로나는 진정 1992년도를 빛낸 미스 월드 올림픽(Miss World Olympics)이요 미스터 월드 훼밀리(Mr. World Family)의 찬란한 표상이리라.

 

총인원 344명의 한국 선수단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참가는 배순학 총무임원(체육회 기획운영본부장), 필자/섭외임원(국제기구 과장) 및 오승훈 섭외임원(체육회 태릉선수촌 훈련부 직원) 3명으로 구성된 선발대의 현지 선수촌 입촌으로부터 본격적인 활동의 막을 올리게 되었다.

 

선발대의 주요 임무로는 크게 본단 현지도착에 앞서, 제반 수속 및 편의 사항 사전 확보를 위한 대회조직위원회(COOB '92) 각 부서 책임자 등과의 업무별 협의, 구체적으로 참가선수 임원에 대한 일자 별 입 출국 및 숙박관련 사항, ID 카드 발급은 물론, 경기 별 세부종목 참가 엔트리 제출에 따른 변동 및 추가사항을 비롯하여 국기, 국가, 호칭 등에 따른 의전사항 확인, 대회참가 및 선수단 격려차 현지에 도착하는 모든 한국 VIP에 대한 제반 사항 확인, 한국선수단에 배치될 차량 및 차량스티커 발급 등과 관련된 수송문제 등등에 대하여 타선수단보다 유리한 대우를 받기 위한 본격적인 실무협의를 가졌다.

 

특히, 올림픽 대회 시마다 각국 선수단의 요구사항인 ID/AD 카드 발급에 따른 각종 혜택 코드부여와 관련하여서는 장장 5시간에 걸친 끈질기고 우호적인(?) 협상 끝에 한국선수단 본부임원 거의 전원에 대하여 파격적인 코드(: 무한대->전 경기장 출입 허용) 입력 특전을 부여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물리치료사들에 대하여서도 전 경기장() 및 전 경기장 전 지역(1,2,3) 출입코드를 인정받아, 모든 종목 매 경기 시 해당 경기장의 플로어(floor)까지 접근할 수 있어 한국 선수들의 경기 중 부상 시 자유롭게 선수들에게 접근하여 응급처치 등을 할 수 있어, 간접적으로 한국 선수단의 좋은 성적 고양에 일조할 수 있었다.

 

714일 선발대 도착 후 718일에는 선수단 본단 1진을 비롯한 각국 선수단들이 속속 입촌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대회조직위원회 선수촌 행정운영 본부장은 각국 선수단 입촌식 행사와 관련, 협의회의를 가졌으며, 한국 선수단의 요청에 따라, 선수단 본단 도착 다음날인 719일 오전 11시로 결정하였다.

 

선수단 규모에 따라 소규모 선수단들은 공동 통합 입촌식을 거행하고, 한국 선수단의 경우는 단독 입촌식을 갖게 되어 있어. 맨 먼저 도착하여 기 신청한 덴마크 선수단과 이탈리아 선수단이 오전 10시에 합동으로, 이어 유고연방에서 독립 처녀 출전한 슬로베니아 공화국(Slovenia)과 대만이 함께 1030분에, 그리고 대한민국 선수단은 11시에 각각 입촌식을 갖게 되어 참가국 172개국 중에서 5번째로 선수촌 국제 국기광장에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바르셀로나 하늘 높이 게양하게 되었으며 선수촌에서의 한국 선수단의 공식체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었다.

 

입촌식 일자 결정과 함께 행사 전날인 718일 오전에는 KOC가 임명한 두정수 아타셰(바르셀로나 한국총영사관 영사)와 함께 입촌식 의전 절차 등을 확인한바 조직위원회 측에서는 태극기 대신 북한의 인공기를 게양대에 준비하여 보여주었다.

 

바로 그때가 가장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의전책임자에게 이를 정식으로 항의하여, 태극기로 바로잡아 애국가 연주와 함께 태극기를 연습 게양하였다.

 

물론, 태극기는 사전에 KOC가 제작, 대회조직위원회 및 아타셰(KOC가 임명한 연락관)에게 송부한 문양을 근거로 대회조직위원회 측이 별도로 제작한 것이어서 다행히 잘못된 부분은 없었다.

 

국기 및 국가 그리고 호칭문제는 입촌식뿐만 아니라, 개폐회식 및 각종 시상식에 계속 사용될 주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다음날(719) 아침 8시에 개최된 각국 선수단장/IOC/대회조직위원회(COOB'92)와의 연석회의 시 발언을 통하여, 이를 바로잡고 향후, 모든 공식행사 시 IOC 의전 절차에 따라 착오가 없도록 유념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 바 있었다.

 

대회조직위원회(COOB’92) 측은 정식으로 사과하면서, 개폐회식은 물론, 시상식을 포함한 모든 의전행사 시 정확하게 이행하겠노라고 공식 답변하였다.

 

직전 대회인 서울1988올림픽 대회를 훌륭하게 개최한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아직 분단국이란 쓰라린 현실을 상기시켜 주는 안타까운 장면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Barcelona1992조직위원회 의전 팀이 사과의 뜻으로 수작업으로 만들어 필자에게게 전달해 준 수제태극기/양평소재 평산스포츠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강릉올림픽박물관에 기증)

 

 

각국 선수단 선수 수 규모에 따라 배정받는 차량(한국 선수단의 경우 벤 3: 7인승, 승용차 3: 4인승 배정) 이용의 경우, 당초 조직위원회에서는 제한된 차량 대수로 인해, 풀 차량제도(Pool System)로 운영, 각국 선수단에 많은 불편을 주었으나, 매일 아침 8시부터 개최되는 각국 선수단 단장 회의에서 다양한 발언을 통해 각국 선수단별로 고정 배차방식을 유도해내었고, 각국 선수단이 차량이용 시, 차량사용 신청에 따른 근본적인 애로사항이 해결된 셈이었다.

 

실제로 각국 선수단에 배정된 차량은 배차당일(고정운행시간: 09:00-21:00) 필요에 따라 신청서에 각국 선수단 단장이 서명날인을 하여 PPV(Punto de Pedicion de Vehiculos; 차량신청소)에 이용 희망자가 제출하게 되면, 수송부에서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해당차량 운전기사를 호출하고, 호출된 해당 운전기사는 지정차량 Key를 인수받게 되고, 지정차량 주차지점까지 탑승 이용자와 함께 동행, 해당차량에 탑승하게 되는, 번거로운 절차를 매번 밟아야 하는 까닭에 불필요한 지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었다.

 

하지만 단장회의 등을 통한 협의을 통하여 고정배차 후 해당차량 및 지정 운전기사와 익일 사용시간(1 12시간)을 사전에 조정하여, 차량사용 시작 시각에 따라 밤 늦게 까지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 차량 사용에 관한 한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었다.

 

각국 선수단의 올림픽 선수촌에 일일 허용되는 방문객 역시 선수단 규모별로 허용인원 쿼터가 인정되었고, 이에 따라 익일 방문희망자에 대해 방문 전날 오후 6시까지 신청서에 기입, NOC 서비스센터에 제출하게 되면, 방문신청자들은 여권 또는 ID 카드를 지참, 방문패스교환소에서 방문 증으로 교환하여 선수촌 출입을 하였다.

 

이 경우 올림픽선수촌 방문객 신청인원수에 맞추어 식사쿠폰을 구입하면 선수촌 식당에서 각국 선수들과도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며, 부득이 사전에 방문객 신청이 안 되어 있을 경우는 해당 선수단 단장 또는 대리인이 직접 방문패스 교환소에 출두하여, 배정방문객 쿼터 한도 내에서 직접 동반하면 선수촌 출입이 가능하였다.

 

선수촌 선수단 본부 사무실에서 1km 이상 떨어진 거리를 작열하는 태양과 무더위를 감수하고 매번 도보로 일일이 동반을 위한 절차를 밟고 모시고(?) 와야 했기 때문에 하루 평균 왕복 20km 이상 걷는 것은 예사였다.

 

한국 선수단 본부 사무실은 한국 선수단 숙소(4번섬: Island No 4. 지역과 근접한 Eurocity 빌딩 #3) 5층에 나이지리아 선수단 사무실(의무실)과 대만 선수단 사무실 사이에 위치하였으며, 한국 선수단의 경우, 매일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임원회의(경기임원 및 본부임원)에 대비하여, 체육회 직원으로 구성된 실무급 본부임원들은 숙소 아파트 1세대당 10명이 2개밖에 없는 화장실 목욕탕을 공동 사용해야 하는 관계로 보통 아침 5시경에 기상하여 아침회의 등에 대비하여야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매일 진행되는 경기는 물론 처리해야 할 부속업무 수행 관계로 새벽 1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일상 일과로 되어 있어 올림픽선수촌 내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에 참가한 172개국 선수단 중 가장 바쁘고 부지런하다는(?) 한국인의 평판과 이미지를 심어주었으며, 아마도 이러한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이 한국 선수단의 성적거양에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아침 7시에 시작된 전체 임원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8시부터 개최되는 각국 선수단 단장회의에 참석하여, 선수단 운영에 따른 애로사항, 건의사항, 요구사항 등에 대해 대회조직위원회 선수촌 행정운영본부장 및 실무책임자들과 협의 및 요청을 하였고, 개폐회식 및 경기 참가에 따른 각종 연락사항 등을 비롯한 광범위한 공지사항 등을 빠짐없이 메모하여, 익일 선수단 전체 임원회의 시 전달하여 선수, 임원 모두가 하루하루 차질 없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였다.

 

한국 선수단 본부사무실에 임차한 팩스와 전화기는 연일 한국 선수단의 선전을 축하하는 메시지 전달로 불티나게 작동되고 있었고 한국 선수단에 배치된 6, 7(주로 현지 교포학생들로 구성된)의 자원봉사요원들은 각 경기 종목별 경기일정에 맞추어 경기장 및 연습장까지 동행하여 통역, 안내를 담당하여 한국선수단의 순조로운 행보에 역시 도움을 주었다.

 

바르셀로나 총영사관에 설치된 상황실에는 총영사관 직원들은 물론 마드리드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대회기간을 전후하여 관련요원들을 파견하여 주었으며, 또한 서울에서는 체육청소년부를 비롯한 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파견된 상황요원과 현지 교민후원회에서도 자진 참여하여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현지 대책종합상황실 운영에 일치단결하여 각종 상황을 취합, 정리 전달하는 등 선수촌 외곽지역에서 역시 많은 지원을 하였다.

 

현지 교민들로 구성된 후원회에서는 선수단 응원을 포함하여, 올림픽 대회 참관 일반인들을 위한 민박 알선, 현지안내 등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특히, 라스팔마스(Las Palmas)교민들은 각종 싱싱한 생선 류를 거의 무제한 공급하여, 한국선수단 특별합숙소 특식메뉴의 중요한 식단재료를 제공하여 주는 등, 국내외에서 한국인들이 보여준 열의와 성원은 그야말로 정성스럽고 진심 어린 응원 그 자체였다.

 

선수촌 내 3,000여 명을 동시 수용했던 식당에는 대회조직위원회와 정식 공급계약을 체결한 두산 식품의 6톤 물량의 종가 집 김치가 냉동 컨테이너로 공수되어 하루 300kg씩 아침식사를 제외한 점심, 저녁식사 시 단골 고정메뉴로 공급되어 한국선수단은 물론, 중국, 일본 등 동양권 선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 구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국가 및 유럽 등 거의 지구촌 전 세계 올림픽 참가 선수, 임원들에게 애용되었다.

 

이는 1984 LA올림픽대회에서 채택되기 시작,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거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올림픽가족들에게 전통적인 올림픽 메뉴로서 그 위치를 확고히 차지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한국 선수단은 대회기간 중 선수촌 한국선수단 숙소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일반식당을 임대(임대식당 주인 아들이 현지 한국인 태권도 사범의 제자라고 함)하여 태릉선수촌의 주방장, 영양사 및 조리요원 등 4명을 파견, 상주시켜 한국음식을 제공하는 특별 합숙소를 운영, 경기를 앞둔 종목별 선수들에게 날짜 별로 교대로 정성 들여 준비한 한식 특식을 제공하여 주었다.

 

또한 연습장 및 경기장까지 특식 도시락을 운반, 제공하여 선수들의 입맛을 살려주었으며, 궁극적으로 경기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 유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바르셀로나1992올림픽대회 조직은 선배 격인 서울1988올림픽대회의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조직 및 운영에 비하면 외형적으로는 엉성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스페인 특유의 자유분방한 가운데에서도 나름대로, 맡은 부서별로 철저한 책임의식과 봉사정신이 투철하여 대회를 훌륭히 치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24회 서울올림픽 대회가 한국민 전체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치단결, 한마음 한 뜻으로 총체적이고 철두철미하게 치른 완벽한 대회였다면,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는 카딸루냐 자치정부의 테두리 안에서 바르셀로나 인들이 지혜와 역량을 투입하여 거국적이 아닌 국지적인 까딸루냐 국제올림픽 제전의 성격으로 치러졌던 까닭에 각국 참가선수단으로 하여금, 서울올림픽 대회의 진가와 향수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기도 하였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11. 20:57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역대올림픽 수난사와 최고대회서울1988올림픽평가(35)]

 

 

1896년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부활한 근대올림픽은 고대올림픽 발상 국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대회를 개최하였다.

 

남자선수들만 241명이 달랑 참가하여(1900년 제2회 파리대회부터 여자선수 참가허용) 육상, 사이클, 펜싱, 체조, 사격, 수영, 테니스, 역도 그리고 레슬링 등 모두 통틀어 9개 종목에 출전, 경합을 벌인 것이 근대올림픽의 출발점이었다.

 

1회 동계올림픽은 1924년 프랑스의 샤모니(Chamonix)에서 16개국 258명의 남·여 선수들이 참가한 것이 그 효시이다.

 

그 이후, 올림픽은 1916년 제1차 세계대전과 1940,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세 차례 중단된 바 있다.

 

70년대 들어서 올림픽은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건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일어났다.

 

검은 9월 단(Black September)이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혁명주의자들의 테러로 이스라엘 선수 11명이 올림픽 선수촌에서 희생된 것이다.

 

세계의 화합에 목표를 둔 올림픽에 검은 구름이 그렇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뉴질랜드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권과 지속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는 불만이 표출되어 아프리카 17개국이 집단 불참을 선언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재원이 빈약했음에도 무리하게 올림픽스타디움을 새로 건축하고 개최비용을 과다 지출해서 10억 불의 채무를 떠안게 되었다.

 

몬트리올 시 정부는 2006년까지 이자를 포함하여 20억 불 규모의 부채청산작업을 해야 했다.

 

몬트리올올림픽은 아쉽게도 “실패한 올림픽”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인해 미국의 Jimmy Carter 미국대통령이 자국 선수단 불참을 선언해 버렸고 한국을 포함한 서방진영 65개국이 동반하여 불참대열에 합류하였다.

 

결국, 81개국만 참가한 반쪽 짜리 대회가 되어버렸다.

 

4년 뒤인 1984년의 LA올림픽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 소련과 그 추종세력들은 보복성 집단불참을 선언하여 이념분쟁에 따른 또 한 번의 반쪽 짜리 대회를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과 루마니아 등은 독자노선을 선언하고 과감히 올림픽에 참가를 선언해서 총 참가국은 140개국이 되었다. 

 

이렇게 이념문제의 도돌이표를 오가면서 하향세로 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를 보였던 올림픽은 1981 930일 당시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개최된 제84 IOC 총회에서 81명의 IOC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서울이 경쟁도시인 일본 나고야를 52:27로 여유 있게 제치고 1988년 제24회 올림픽대회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분위기 반전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1981년 서독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1988년 올림픽개최도시로"쎄울"을 발표하고 하고 있는 Samarach 당시 IOC위원장)

 

그러나 그 어느 대회보다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고 북한과 휴전상황에 놓여 있었고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인 휴전선(DMZ)은 서울에서 불과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미국 ABC TV의 명 스포츠 해설가인 하워드 코셀(Howard Cosell) “전쟁 중이나 다름없는 국가에서의 올림픽 개최는 어불성설이다. 또한, 160여 개국의 IOC 회원국 중 불과 60개국과만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있다니 말이나 될 법한가?”라고 비난의 포문을 열기도 하였다.

 

 

(Howard Cosell 과 미국 Alabama소재 미국 스포츠아카데미 시상식 일정 중 조우)

 

 

한국은 1980 1212일 전두환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당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1980 7월 제22 IOC 총회에서 8년 임기의 IOC 위원장으로 선출된 故 사마란치(종신 명예위원장역임)로서는 이 모두가 고난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블록 국가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다른 곳으로 옮겨 개최해야 한다고 연일 비판을 해댔다.

 

1984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제4 ANOC 총회에서 당시 소련 체육 성 장관 겸 NOC 위원장인 그라모프(Gramov)는 강한 어조로 서울올림픽 개최지 변경을 공론화하여 총회의 주요쟁점으로 몰고 가고 있었으며, 열띤 공방이 계속되었다.

 

당시 한국 측에서는 노태우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SLOOC)위원장, 최만립 KOC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김세원 KOC 부위원장, 이태근 KOC 사무국장, 전상진 SLOOC 국제사무차장, 필자 등이 참석하여 각국 NOC 대표단과 막후교섭을 벌이며 현장을 지켜보았다.

 

결국, 친 한파인 마리오 바즈케즈 라냐 ANOC 회장과 사마란치 IOC 위원장 등의 서울올림픽 사수 전략이 대다수 전 세계 NOC 대표단의 호응을 받아 “서울올림픽사수 멕시코선언문”이 채택되었다. 이것으로 서울올림픽 개최지변경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당시 Mario Vazquez Rana ANOC창설회장 겸 최 장수 회장 겸 IOC집행위원 멕시코 집 무실에서 함께)

 

그 결과 서울1988올림픽은 동·서 진영이 모두 참가(159개국)하는 화합과 전진(Harmony & Progress)의 대회가 되었으며,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이념과 정치 갈등의 벽을 넘어선 대회로 평가 받게 되었다.

 

Calgary1988동계올림픽 미국지역 TV중계권료가 3 9천만 불에 ABC TV로 낙찰되었고 1984 LA올림픽 이후 미국광고시장이 활황세를 타게 되자 하계올림픽인 1988 서울올림픽대회는 미국지역 올림픽 중계권료가 10억불에 이를 것이며 최소 6~7억불은 호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었다.

 

이것은 SLOOC 측이 컨설턴트로 고용한 IMG(International Marketing Group)의 배리 프랭크(Bary Frank)가 미국과 한국과의 시차로 인해 소위 미국의 TV 황금시간 대(Prime Time)에 주요 올림픽 방송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간과해버린 상태에서 책정된 금액이어서 곧 문제가 되었었다.

 

또한 미국광고시장의 요구에도 부합하지 못해 올림픽 중계권료 협상사상 최초로 같은 해 개최되는 동계올림픽보다 액수가 적은 3억 불로 NBC TV에 낙찰되고 말았다.

 

겨우 체면유지용으로 SLOOC 측이 설정한 향후 추가발생 광고수익금 배분(Revenue-Sharing)제안만 NBC 측에 받아들여진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 광고수익이 애초 예상 액을 상회하지 못해 명분만 있는 제안이 되고 말았다.

 

1985 10월 초 SLOOC 집행위원장 국제 비서관으로 근무 중이던 필자는 당시 故 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SLOOC 집행위원장을 모시고 미국 뉴욕의 Westbury 호텔에서 1988 서울올림픽 미국 내 TV중계권료 협상계약서 서명 식을 목격하였다.

 

중계권료가 애초 예상보다 훨씬 적은 까닭에 금의환향은 아니었지만 故 이영호 체육부장관께서는 “내가 대한민국 수립 이래 물건 하나 건네지 않고 3억 불이란 거액을 한국 땅으로 가져오는 계약서에 역사적인 서명을 한 최초의 정부각료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한 말씀이 기억난다.

 

 

(이영호 SLOOC집행위원장 겸 체육부장관과 Montblanc정상에서)

 

 

이보다 앞선 1985 9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 IOC 위원장 집무실에서 당시 주 제네바 대표부 박근 대사와 필자가 배석한 가운데, 故 이영호 장관과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 간의 TV중계권 협상 주도권 논쟁 중 사마란치 위원장의 섬뜩한 말 한마디가 생각난다.

 

Technically speaking, Korea may be at war"(기술적인 이야기로 하자면, 한국은 전쟁상태에 있다고도 볼 수 있소.)

 

또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1985 917일은 3년 후 서울올림픽대회 개회식을 거행할 날로서 이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자 당시 NBC 부사장 자격으로 방한한 Alex Gilady 현 이스라엘 IOC 위원은 故 이영호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힐난하는 어조로 “3년 후 같은 날 비가 올 확률이 높은데 개회식 생중계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을 것 같아 염려가 된다.”라고 꼬집었다.

 

이영호 SLOOC집행위원장 겸 체육부장관은 “금년은 홀수 연도(odd year)라서 비가 많이 오지만 1988년은 짝수 연도(even year)라서 비가 올 확률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촌철살인의 재치 있는 답변을 해서 중계권료를 깎으려는 의도를 일축한 바 있다.

 

미국과 한국의 시차로 인해 미국인들의 우상선수들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올림픽의 꽃 육상종목, 특히 100m, 400m 경기의 TV 생중계 문제가 대두된 바 있다.

 

12시간 시차를 극복하고 그네들의 황금시간 대(Prime Time)에 생중계를 하려면 한국시각으로 아무리 늦어도 오전 11시에서 12시 대에 육상경기 결승 시간을 맞추어야 했다.

 

반면, 라틴 마피아의 강력한 한 축을 맡고 있던 이태리 출신 故 프리모 네비올로(Primo Nebiolo) 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은 선수 컨디션 조절 및 최고 기록 경신을 위해 하루 중 인체의 바이오리듬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 즉 적어도 늦은 오후에 경기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밀고 당기는 지루하고도 지루한 논의와 협의와 설득의 시간이 지나고 우여곡절과 천신만고 끝에 오전(Morning)에 결승경기를 치르되 「오전결승(Morning Final)」이란 용어 대신 「중일(Mid-day)」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 「Mid-day Final」로 개칭하여 쓰기로 했다.

 

 

(Primo Nebiolo)

 

 

미국 전역 황금시간대인 미국시각 오후 7시부터 10시 사이에 육상경기 결승전을 생중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IOC 금고에 가장 많은 수입금을 챙겨주는 것은 단연 TV 중계권료 수입이지만 스폰서(Sponsors), 공식공급업체(Official Suppliers) 및 공식상품화권(Official Licencees) 등 마케팅 수익이 차지하는 재정적 수입창출도 지대하다.

 

IOC는 서울올림픽을 시발점으로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마케팅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름하여 TOP(The Olympic Puzzle The Olympic Program The Olympic Partner) 프로그램이다.

 

TOP 프로그램은 세계 각국 NOC 마케팅 권리까지 포함한 모든 올림픽 마케팅 권한을 4년 동안 한데 묶어 독점 마케팅 패키지화하는 개념이었다.

 

처음에는 호응도가 약했으나 서울올림픽을 통해 그 효과가 검증되었고, 4년 단위로 구성된 TOP 프로그램의 명성도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서울1988올림픽에서의 올림픽 마케팅 프로그램을 “TOP Ⅰ”이라 하고 4년 뒤인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과 Barcelona1992올림픽까지를 “TOP Ⅱ”, Lillehammer1994동계올림픽과 Atlanta1996올림픽까지는 “TOP Ⅲ”, Nagano1998동계올림픽과 Sydney2000올림픽까지는 “TOP Ⅳ”,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과 Athlens2004올림픽까지는 “TOPⅤ”, Torino2006동계올림픽과 Beijing2008올림픽까지는 “TOP ", Vancouver2010동계올림픽과 London2012올림픽까지는 “TOP Ⅶ”, Sochi2014동계올림픽과 Rio2016올림픽까지 묶어서 “TOP Ⅷ”, 평창2018동계올림픽과 Tokyo2020올림픽까지는 “TOP IX”, Beijing2022동계올림픽과 Paris2024올림픽까지눈 “TOP X”, Milano/Cortina d’Ampezzzo동계올림픽과 LA2028올림픽까지는 “TOP XI”, 그리고 2030년 동계올림픽과 2032년 올림픽까지는 “TOP XII” 프로그램 범주에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올림픽은 20년 만에 동·서 양대 진영이 공히 함께 축복 속에서 참가한 평화와 화합과 전진의 올림픽이요, IOC의 마케팅 분야에 새 지평을 열어준 마케팅 TOP 프로그램의 발원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애초 우려했던 안전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완벽한 안전올림픽으로서 당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The Most Universal and The Best Games Ever"(가장 보편화한 역대 최고의 올림픽)

 

(Samaranch IOC위원장과 Barcelona소재 Caixa빌딩집무실 방문 시)

 

 

이런 대회는 서울올림픽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서울올림픽은 동양의 태극(시작과 끝), 그리고 서양의 알파와 오메가(Alpha and Omega/시작과 끝)가 공존하는 극동의 타오르는 등불을 올림픽 성화에 점화하여 근대 올림픽의 진정한 제2의 부활을 가져다 준 축복과 영광의 대회로서 청사에 길이 보존되고 칭송 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9. 11:53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역대올림픽슬로건(Olympic Slogan)시리즈Update실록(34)]

 

 

 

 

 

 

슬로건(Slogan)이란 무엇일까?

 

경험 상 슬로건(Slogan)이란 정치적, 상업적, 종교적 그리고 각종 캠페인 등에 목표지향적으로 채택되어 사용되는 표어(motto)또는 문구(phrase)로써 특정 아이디어나 목적을 반복적으로 시각적으로 디자인화하여 그 핵심 메시지를 주입시켜 촌철살인적 효과를 거양하게 해주고 간결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쉽고 마음에 와 닿도록 해주는 특징이 있다.

 

특히 대상 집단을 향한 단일화된 메시지를 전달하여 이미지만들기(image-making)와 컨셉구성(concept-building)을 축약적으로 대표해주기 때문에 슬로건의 사회적 반향효과는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의 역할은 탁월하다.

 

역대 올림픽이나 올림픽유치 캠페인에서 슬로건의 효과와 파괴력이 엄청 강력한 홍보 무기로 사용되어 왔다.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대회마다 나름대로의 슬로건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올림픽대회에 슬로건이 본격적으로 공식적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1988년 대한민국 서울올림픽 때부터라고 한다.


 

화합과 전진(Harmony and Progress)”이란 문구가 먼저 채택되었지만 슬로건이라기 보다는 서울올림픽 주제(theme)로 호평 받았다.

 

실제적으로는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The World to Seoul, Seoul to the World)”가 서울올림픽 슬로건으로써 훨씬 더 인기를 누렸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에는 영원한 친구(Amigos Para Siempre=Friends for Life 또는 Friends Forever)”가 슬로건으로 선 보였다.

이 슬로건은 올림픽참가국들 간에 우정(friendship)을 함께 돈독히 하자는 취지가 반영되었다.


개인적으로 필자의 기억에 가장 감동적이고 촌철살인적 슬로건은 1982년 인도 뉴델리 아시안게임 슬로건이었다.

 

우정, 우애, 영원 하라”(Friendship, Fraternity, Forever)


또한 동계올림픽과 연관된 슬로건 중에는 1932년과 1980년 두 차례 동계올림픽을 개최하였고 평창을 연상시킬 정도로 인구가 25,000명에 불과한 미국 뉴욕주의 조그만 마을인 Lake Placid동계올림픽의 슬로건이다:

 

 

“Small Town, Big Dream”(작은 마을, 큰 꿈)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은 근대올림픽 100주년 기념대회였다. 그러한 취지에서 슬로건은" 일 세기를 축하하자(The Celebration of a Century)"였는데 약간 무미건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04
년 아테네 올림픽은 1896년 제1회 아테네대회 이후 108년 만에 귀환한 셈이었다. 따라서 귀향환영(Welcome Home)”이란 대회 슬로건은 적절해 보인다.

올림픽은 매 대회 때마다 각기 대회 별 목표를 독특하게 인식시켜 주기 위한 소통 캠페인(communication campaigns)일환으로 채택하기 시작하였다.

당시Jacques Rogge IOC위원장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은 바 있다.

 

왜냐하면 대회자체가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이해증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이징 올림픽에 채택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란 대회 슬로건이야말로 베이징 대회의 개념을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Rogge IOC위원장은 평가하였다.

 

 

중국 국영TV매체이면서 2018~2024년 동 하계올림픽, 청소년올림픽 중국 내 독점 방영권자로 IOC와 협약을 맺은 바 있는 CCTV의 회사 슬로건은 베이징2008 슬로건을 응용한 것으로 재치가 있어 보인다.

 

 

“One Click, One World”(한번 클릭으로, 세계를 하나로)

 

 

 



2010
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VANOC)는 원래 캐나다 국가제목인 "오 캐나다(O Canada)를 대회 슬로건으로 선호했었다.

 

캐나다 저작권관리청에서 “ O Canada”라는 문구를 VANOC의장등록 마크와 연계해서 대회공식 표어(motto)로 사용토록 승인할 경우 캐나다 국가(國歌)의 일부 소절사용이 제한될 수도 있었다.

 

캐나다 국가(國歌)“O Canada”강력하고 자유로운(strong and free)”국가(國家)라고 축복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Vancouver2010 동계올림픽 슬로건은 캐나다 국가(國歌)의 두 번째 소절 문구인 열정적인 마음으로(With Glowing Hearts)”로 채택된 바 있다.

 

 

캐나다 국가(國歌) 두 번째 소절의 우리는 그대가 일어나는 것을 본다네(We see thee rise)”다음에 연결되는 문구이다.


역대 올림픽대회 슬로건을 살펴보겠다:

 



1) Athens1896
1회 올림픽대회:

 

"Joy in Participation"(참가하는 기쁨)





2) Mexico City1968
올림픽:

 

"Los Juegos de la Paz"(The Games of the peace: 평화의 대회)


 

3) LA1984 올림픽:

 

 

"Dare to Dream"<공식>(감히 꿈꾸자)
"Play a Part in History"(
역사의 한 부분을 장식하자)




4) Seoul1988
올림픽:

 

 

"Harmony and Progress"(화합과 전진)<표어/motto>

"The World to Seoul, Seoul to the World"(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Slogan)


 

5) Calgary1988 OWG:

 

"Sharing the Passion" (열정을 나누자)

“Come Together”(Ressemblez-vous)

 

6) Albertville1992 OWG:

 

(1) "Faire des Volontaires des Professionels et des Professionels des Volontaires"

(Make the Volunteers the Professionals and the Professionals Volunteers) <자원봉사자는 전문가처럼 전문가는 자원봉사자처럼>

(2) "C'est Beau, un Monde qui Joue."

(It's Beautiful that the World Plays.)<세계가 함께 경기에 임하면 모두 아름다워라>

(3) "The Pride is Alive" <자긍심이 살아 뛰누나>

7) Barcelona1992 Olympics:

 

 "Amigos Para Siempre"

(Friends for Life/ Friends Forever) <영원한 친구>


8) Lillehammer1994 OWG:

 

"From the Heart-Together with Love"

(Official) <진심으로 사랑과 함께>

 

"Security with a Smile"<미소 지으며 안전하게>


9) Atlanta1996 Olympics:

 

"The Celebration of the Century" <한 세기/100년을 축복하라>

* "Dreaming dreams no mortals have ever dreamt before"<그 어느 누구도 감히 꿈꾸어 보지 못 했던 꿈을 꾸어보세>

 

 

10) Nagano1998 OWG:

 

"From Around the World to Flower as One" <세계가 모두 하나로 꽃 피우세>

(Official)

"Let's Celebrate Together" <모두 함께 축하하세>

“Coexistence with the Nature”<자연과 공생>


11) Sydney2000 Olympics:

 

 

"Share the Spirit" <함께하는 그 정신으로>

 

 

 

12) Salt Lake City2002 OWG:

 

"Light the Fire Within"<내면의 불꽃을 지피세>

 

 

13) Athens2004 Olympics:

 

"Welcome home"(Official) <귀향환영>

"From Athens to Athens"<아테네에서 아테네로>

"In the True Spirit of the Games" <대회의 진정한 정신으로>

"Unique Games on a Human Scale" <인간다운 독창적인 대회로 승화시키자>




 

14) 2006 Torino OWG:

 

"Passion Lives Here"(Official)<열정이 살아 숨쉰다네>

<La Passione Vive Qui>

"Passion Lives in Torino"<열정이 살아 숨쉬는 곳, 토리노>

"As Ever Burning Flame"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15) Beijing2008 Olympics:

 

"One World One Dream"(Slogan)<세계도 하나, 꿈도 하나>

(同一個世界, 同一個夢想)

 

"Green Olympics, <환경 올림픽>

High-Tech Olympics,<최 첨단 올림픽>

People's Olympics" <인민들의 올림픽>

 

* The Slogan of the 2008 Beijing Olympic Torch Relay was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슬로건):

 

"Light the Passion, Share the Dream" <열정에 불 지피고 꿈도 함께 나누어 보세>

 

 

16) Vancouver2010 OWG:

 

 "With Glowing Hearts" (타 오르는 열정적인 마음으로)

(Les Plus Brillants Exploits)

 

<"We chose words that are cherished by all of us, words that we believe in", said John Furlong, CEO of the VANOC.

 

"Together the words embody our great Canadian spirit and what results when we give life our very best."

 

'O Canada' was written over 100 years ago and is in the public domain, meaning it can be used by anyone as they like. (The Canadian Press)>

 

 

17) London2012 Olympics:

 

Inspire a Generation(세대에게 영감을)

 

 

 

18) Sochi2014 OWG:

 

Hot. Cool. Yours.(뜨겁게. 쿨하게. <올림픽은>여러분의 것)

 

 

 

 

19) Rio2016 Olympics:

 

Viva Sua Paixao(Live Your Passion/당신의 열정을 달구리라)

 

          “Um Mundo Novo”(A New World/신세계)

 

 

 

20) PyeongChang2018 OWG:

 

New Horizons(새로운 지평/유치 슬로건)

Passion.Connected.”(하나된 열정/대회 슬로건)

Let Everyone Shine(올림픽선화봉송 슬로건)

 

 

 

 

 

 

21) Tokyo2020 Olympics:

 

(1) 유치 슬로건:Discover Tomorrow(내일을 발견하리라)

 

 

 

(2) Tokyo2020올림픽 슬로건: “Discover Tomorrow”

 

 

 

(3) Tokyo2020올림픽 성화봉송 슬로건: “Hope Lights our Way.”

(4) Tokyo2020올림픽 비전(3가지 핵심 Concepts):

A.  Personal Best(개인최고성취)

B.  Unity in Diversity(다양성 안에 통일성)

C.  Connecting to Tomorrow(미래로의 접목)

 

 

 

 

22) Beijing2022 OWG

 

(1) 대회표어/슬로건: 纯洁的冰雪 激情的约会
“Joyful Rendezvous Upon Pure Snow and Ice”

(
청정 눈과 얼음 위에서의 즐거운 랑데부)

 

 

 

23) Paris2024 Olympics: Made for Sharing(Venez Partager)/함께 나누세

 

 

 

 

24) Los Angeles2028 Olympics: Follow the Sun(Motto)/태양을 향하여

 

 

 

<Slogans of Bid Cities for the Olympics>

 

 

1. Candidate Cities for the 2016 Olympic Games

 

 

1)   Chicago: “Let Friendship Shine”

 

 

* The initial one was “Stir the Soul”(When translated into other languages, it would mean “Stir the Insides”.)

 

 

*Pat Ryan, bid leader of Chicago, said Chicago is taking Obama's presidential campaign slogan of “Yes, we can” and adapting it to “Yes, we will”

 

2) Madrid: “Games with the Human Touch”

 

3) Rio de Janeiro: “Live Your Passion”

 

4) Tokyo: “Uniting our Worlds”

 

* Doha/Qatar: “Celebrating Change”

 

 

 

2. Candidate Cites for the 2012 Olympic Games

 

1) London:

 -“Back the Bid”

-“Make Britain Proud”

 

2) Paris:

-“The Love of the Games

-“Des Jeux de Toutes les Couleurs”

 (The Games of All the Colors)

 

3) Madrid:

 -“Ready For You”

-“You'll Love It”

 

4) New York: “Let the Games Begin”

 

5) Moscow: “Imagine It Now”

 

 

3. Candidate Cities for the 2008 Olympics

 

1) Beijing: “New Beijing, Great Olympics”

 

2) Osaka: “Warm Hearts Together” (Cocolo Olympic Games)

 

3) Paris: “Oui! Paris”(Yes! Paris)

 

4) Istanbul: “Let's meet where the continents meet.”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8. 09:53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올림픽모토(Motto)와 목표(Objectives)와 슬로건(Slogan) 구별하기(33)]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목표는 4가지였다.

 

*목표(Objectives): E-C-E-P Games

 

1)경제올림픽: Economy-Focused Games (Economy Olympics)

2)문화올림픽: Culture-Oriented Games(Culture Olympics)

3)환경올림픽: Environment-Centered Games(Environment Olympics)

4)평화올림픽: Peace-Friendly Games(Peace Olympics)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시절 후보도시였던 베이징을 방문했을 당시 베이징 올림픽유치후보도시의 슬로건은 "New Beijing, New Olympics"(새롭게 거듭나는 베이징, 새로워지는 올림픽)이었다.

 

베이징이 2008년올림픽개최도시로 선정되고 나니 새롭게 모토(motto: 표어)가 생겨나고 슬로건(slogan)도 새로워졌다.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시절 유치도시인 베이징 현지실사에 참여한 IOC평가위원들과 함께)

 

*2008년 베이징올림픽모토/motto(표어):

“People's Olympics(인민들의 올림픽),

High Tech Olympics(고도 기술력의 올림픽),

Green Olympics(환경친화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슬로건/slogan(구호):

"One World One Dream/同一個世界,同一個夢想(하나의 꿈으로 하나되는 세계)

 

2012년 런던 올림픽 모토는 '세대에 영감을(Inspire a Generation)이고 슬로건은 '하나의 삶(Live As One)'이었다.

 

 

런던올림픽유치당시 슬로건은 'Back the Bid'(유치를 후원하라)였다.

평창2018은 유치 당시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을 슬로건으로 사용하였다.

2010 1차 도전 시 슬로건: 'Yes, PyeongChang'(그래요, 평창이랍니다)

2014 2차 도전 시 슬로건: 'News Dreams@PyeongChang'(평창에서 새로운 꿈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모토와 슬로건 탄생을 위한 정지작업이 끝나고 2015516 D-1,000일 행사 당일 평창2018 Slogan이 발표된 바 있다.

 

 

 

 

[올림픽대회 모토? 슬로건? '헷갈리네'(뉴시스 2012년 기사내용)]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2012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위원장 세바스찬 코)는 지난 18 2012런던올림픽 개막 D-100일을 앞두고 '세대에 영감을(Inspire a Generation)'이라는 모토(motto)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그동안 매스콤에서는 2012런던올림픽의 슬로건(slogan)으로 '하나의 삶(Live As One)'이라고 소개해왔다. 이전부터 사용해 왔던 슬로건은 무엇이고 D-100일을 기념해 발표한 모토는 또 무엇인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올림픽 모토는 일반적으로 '평화와 화합' 등 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을 반영한다. 한 번 사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 발전 가능한 개념이다.

슬로건은 올림픽 개최국이 홍보를 위해 대중에게 널리 인식되게 만들어지는 만큼 둘간에는 태생적인 차이가 있다. 상하위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슬로건(slogan) '정당 또는 단체의 이념이나 주장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을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모토(motto)' '일상의 행동이나 태도에 지침이 되는 신조'를 일컫는다.

한국 스포츠외교에 정통한 윤강로(56)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은 한 마디로 명쾌하게 구분했다.

슬로건은 올림픽 개최국에서 대회의 특징을 내세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종의 '구호'이며 모토는 IOC가 주창하는 올림픽의 숭고한 가치를 반영한 '좌우명'과 같다는 것이다.

윤 원장은 "일반적으로 슬로건과 모토가 혼용되는데 슬로건은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게 올림픽 홍보용으로 만드는 구호와 같고 모토는 올림픽 정신을 담아 만드는 좌우명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고 말했다.

그는 "슬로건은 사람들의 뇌리에 보다 많이 남는다. 이번에 선정된 '하나의 삶'이라는 슬로건도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쉽게 잘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윤 원장은 "올림픽의 지향점과 특징을 한 문장으로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모토나 슬로건을 만드는 작업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각 분야의 석학과 전문가 등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다"고 말했다.

통상 올림픽의 모토와 슬로건은 개최국 조직위원회의 내부 공모를 거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승인을 통해 결정된다.

김용 대한체육회 홍보마케팅실장은 "올림픽 모토와 슬로건은 반드시 IOC의 협의를 거쳐 탄생하게 돼 있다. 슬로건의 경우는 조직위 내부 공모를 통하거나 현상을 거쳐 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림픽 모토와 슬로건을 보면 개최국의 고유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지난 2008베이징올림픽 당시 모토는 'People's Olympics(피플스 올림픽스, '인민들의 올림픽')이었고, 슬로건은 'One World One Dream(원 월드 원 드림 '세계도 하나, 꿈도 하나')'였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개최되는 특징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자크 로게(70·벨기에) IOC위원장은 "베이징올림픽에 채택된 대회 슬로건이야말로 베이징대회의 의의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IOC
와 올림픽 개최국은 대회가 끝난 후 모토 및 슬로건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나오게 마련이다. 2006토리노 동계올림픽의 모토가 대표적 사례다.

IOC
평가위원을 지내기도 한 윤 원장은 하나의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의 모토는 'Passion Lives Here(패션 리브즈 히어, '이곳에 열정이 살아 숨쉬네')'였다. 토리노대회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올림픽 개최에 애를 먹었다.

윤 원장은 "그 당시 평가위원끼리 'Patience(인내심) Lives Here(인내심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100
일도 채 남지 않은 런던올림픽. 세 번째 올림픽을 여는 그곳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 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하계올림픽 모토 및 슬로건(출처 :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2012런던올림픽 - '세대에 영감을(Inspire a Generation)' / '하나의 삶(Live As One)'

2008베이징올림픽 - 'People's Olympics(인민들의 올림픽)' 'High Tech Olympics(고도 기술력의 올림픽)' 'Green Olympics(환경친화올림픽)' /' One World, One Dream(세계도 하나, 꿈도 하나)'

2004아테네올림픽 - 'Welcome home(귀향 환영)' /' From Athens to Athens(아테네에서 아테네로)'

2000시드니올림픽 - 'Thousands of hearts with one goal(모두의 심장을 하나의 목표로)' /' Share the Spirit, Dare to Dream(정신을 함께 하자, 꿈에 도전하자)'

1996애틀랜타올림픽 - 'The Celebration of the Century(100년을 축복하라)' / 'Dreaming dreams no mortals have ever dreamt before(꿈꾸지 보지 못 했던 꿈을 꾸자)'

1992바르셀로나올림픽 - 'Friends Forever(영원한 친구)'

1988서울올림픽 - 'Harmony and Progress(화합과 전진)' / 'The World to Seoul, Seoul to the World(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1984 LA올림픽 - 'Dare to Dream(감히 꿈꾸자)' /' Play a Part in History(역사의 한 부분을 장식하자)'

kyustar@newsis.com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7. 11:23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 IOC올림픽 슬로건(Citius Altius Fortius)에 도전장을 내다 다양한 명품 슬로건(Slogan) 세계산책(32)]

 

 

베스트 슬로건(Best Slogan)“3-3 필요충분요건으로 3 Easy”,

(1)발음하기 쉽고,

(2)기억하기 쉽고,

(3)연상하기 쉬워야 한다)이다.

 

더불어 3 Strong”이란

(1) 의미전달이 강하고,

(2) 파급효과도 강력하고

(3) 최면 및 마취지속효과 역시 어필해야 한다

 

필자가 40년 가까이 올림픽운동에 종사하면서 스포츠를 비롯한 각 부문 별 슬로건을 많이도 접해 보았다.

그 중 가장 촌철살인의 백미는 올림픽 슬로건(Slogan) 또는 표어(motto)로 라틴어가 원어인 "Citius, Altius, Fortius"(Faster, Higher, Stronger: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이다.

 


 




초 강력 촌철살인의 베스트셀러 슬로건으로 손색이 없다고 느껴진다.

바로 이 슬로건이야말로 올림픽이 지구촌 황금알 낳는 거위”(A global goose that lays golden eggs)로 비유되도록 국제 경쟁력과 글로벌 신뢰도 및 인기도를 급상승시키고 유지시키고 있는 일등공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이 베스트 슬로건(Citius, Altius, Fortius)에 도전장을 낸 바 있었다.

2002년 콸라룸푸르 ANOC총회 시 마지막 날 IOC집행위원회-NOCs연석회의석상에서 2001년 새로 선출된 Jacques Rogge IOC위원장에게 이렇게 발언 하였습니다:

현대 올림픽스포츠가 진화해 왔는바 고전적인 올림픽슬로건/표어(Citius, Altius, Fortius)으로는 28개 하계 올림픽 종목과 7개 동계올림픽종목의 특성을 모두 대변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체조 평균대 종목(balance beam)이나 리듬체조, 사격, 양궁 등 다양한 종목 경기에서 종목 특성 상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만으로는 참가 선수들의 우수성(excellence)의 기량이 인정 받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기존 올림픽 슬로건을 보완 할 필요가 있고 생각되어 개인적으로 생각한 대안을 제시하고 싶은 바 입니다.”

당시 로게 IOC위원장은 그 대안을 제시해 달라.” 라고 하여 그 동안 공들여 생각해 온 필자의 슬로건인 M-VIP< "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보다 생동감 있게, 보다 감명 깊게, 보다 정확하게)를 펼쳐 설명해 드린바 있었다.

로게 IOC위원장은 아주 훌륭하다면서 필자가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IOC로서는 긍정적으로 검토 할 의향이 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즉석에서 필자는 M-VIP슬로건을 IOC 및 올림픽운동에 아무 조건 없이 기꺼이 재능기부형태로 대한민국 스포츠 계를 대표하여 헌납한 바 있다.

세계 올림픽운동에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 지식기부(intelligence donation) 1호로 기록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IOC는 이에 대하여 장고 중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2004년 필자가 창립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International Sport Diplomacy Institute)로고에 붙여 슬로건으로 잠정 사용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IOC와 올림픽운동에 헌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스위스 Lausanne에 가면 IOC본부인근 호숫가에 올림픽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2009 12월에도 Lausanne 방문 시 올림픽 박물관을 다녀온 바 있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모두 함께라면 목표를 높게”(Together we set the bar high.)라는 슬로건이 눈에 띠었다.

영화제목 중 “Aim High!”(높은 곳을 겨냥하라!)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2010년 당시 그 박물관 정면에 육상 높이뛰기(high jump) 기구를 설치해 놓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2018 4월 말 현지 방문 시 아직 존치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당시 Jacques Rogge IOC위원장이 2001년 취임 시부터 12년간 재임 시까지(2001~2013) 내 세운 슬로건은 Zero Tolerance on Corruption and Doping”(부패와 도핑/약물복용은 택도 없다)였다.

올림픽 가치(Olympic Values)에 내재된 슬로건은 Excellence, Friendship, Respect”(탁월함, 우정, 존중)이다.

 

Thomas Bach IOC위원장이 선호하는 문구 슬로건은 Unity in Diversity”(다양 함 속의 단합)이다

도핑방지 세계기구인 WADA(World Anti-Doping Agency)의 슬로건은 “Play True”(진실되게 경기에 임하자)이다.

세계환경단체가 사용해 온 슬로건은 “Think globally, act locally.”(생각은 지구전체를, 행동은 우리 주변에서)이다.

Salt Lake City2002
동계올림픽유치과정에서 불거져 IOC조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Salt Lake City 올림픽유치스캔들을 수습하고 IOC는 개혁안을 세상에 내 놓은 바 있었다.

이로써 1999 IOC가 새롭게 태어난 셈이었다.



 

 

새롭게 태어난 IOC가 채택한 슬로건은 “New Horizon”(새로운 지평)이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무력 침공한 바 있었다.

이 여파로 쿠웨이트 소재 OCA(Olympic Council of Asia: 아시아 올림픽평의회)본부 역시 약탈당한 바 있었다.

당시 OCA초대회장이던 Sheikh Fahad 쿠웨이트 IOC위원이 총격전에서 사망하였다.

1991년 사망한 Sheikh Fahad의 아들인 당시 약관 28세의 현 OCA회장 Sheikh Ahmad Al-Fahad Al-Sabah가 우여곡절 끝에 뉴델리 개최 OCA임시총회에서 OCA신임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OCA본부도 재 정비되었었다.

이후 OCA는 새롭게 태어났다고 자축하면서 뉴스레터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뉴스레터(News Letter) 제목 역시 “New Horizon”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의 슬로건도 공교롭게도 또한”New Horizons”이었으며 평창2018조직위원회 역시 유치 당시 슬로건을 대회종료 시까지 대회개최 핵심 주제로 사용한 바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의 슬로건은 이념 제정위원회의 권고안은 "Kiss of Blue"였으나 전반적인 문화정서 상 시기상조로 채택되지 않았고 그 후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Diversity Shines Here)로 결정된 바 있다.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슬로건은 공모 중이었는데,
대회조직위원회 이념제정위원회가 잠정 작성하여 제출한 슬로건은 “Aura of the New”(새로움을 뿜어내는 아우라/광휘)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빛 고을광주광역시의 상징적 특징과 잘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 공모 수상작으로 최고를 향한 도전/Challenge for the Best”가 최종 선정된 바 있었다가 최종 슬로건은 창조의 빛, 미래의 빛” (Light Up Tomorrow)가 되었다.



 

2019년 빛 고을 광주광역시가 주최하는 제18 2019년 광주 FINA세계수영선수권대회 슬로건은 "Dive into Peace(평화의 물결 속으로)"으로 알려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회(Slogan: One World One Dream/하나된 세계 하나된 꿈) 기간 중 IOC는 새로운 슬로건을 사용한 바 있었다.

베이징 호텔에 본부를 설치한 IOC사무실에는 The Best of Us!”(IOC의 제1공식언어인 불어로는Le Meilleur en Nous!”<우리는 모두 다 최고!>라는 슬로건이 부착되어 있었다.

 

2018년 및 2022 FIFA월드컵 유치 결정이 2010 122일 취리히 FIFA본부에서 24명의 FIFA집행위원들의 투표로 결정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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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유치경쟁국들이 내 세운 슬로건 역시 현란하였다.

2018 FIFA 월드컵 개최국으로 가장 유력했었던 영국의 슬로건인 “England United. The World Invited.”(영국이 단결되었도다. 전 세계가 이곳에 초대되었도다.) 2018 FIFA월드컵 유치성공을 기정사실화하고 사실상 초청장문구처럼 들렸는데 결국 러시아로 개최권이 넘어 갔다.

WFI지표 중간 평가 2위인 러시아의 슬로건인 Ready To Inspire”(놀라움을 기대하시라)는 아주 특별한 차별화를 강조 하는 문구인바 "개봉박두"처럼 들렸는데 당첨되는 행운(?)을 맞혔다.

3위인 미국의 슬로건인 “The Game is in U.S.!”(이제 월드컵은 미국에서/’대회는 우리 안에서라는 이중적 의미도 함축) 1994년 미국 월드컵 개최 이후 미국다운 게임개최가 정답이라는 취지의 대회유치의지가 결연하였는데 고배를 마셨다.

벨기에-네덜란드 연합후보의 슬로건인 “Together for Great Goals!”(위대한 골 사냥을 모두 함께!)는 행운과 결실의 개최지라는 메시지를 띠우고 있었다.

호주의 슬로건은 “Come and Play.”(그냥 와서 축구 경기하면 된다네.)로 단순, 단촐, 단조롭지만 자신감이 엿보인 작품이었다.

스페인-포르투갈 연합후보의 슬로건인 Together we are better.”(함께해야 더 잘한다/백지장도 맞들어야 더 가볍다)는 치밀하고 완벽한 공동작전의 게임조직을 예고하는 메시지가 스며들어가 있었다.

WFI평가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일본의 슬로건인 Truly Universal”(진정한 세계 표준)은 일본의 자긍심과 여유로움도 비쳐진 바 있었다.

2002
년 한-일 공동개최 FIFA월드컵대회의 슬로건은 “New Millennium, New Encounter, New Start”(새 천년, 새로운 만남, 새로운 출발)였다.

다소 정적이고 새 천년 첫 월드컵에 초점을 맞춘 동양적 정서가 묻어나는 문구로 생각된다.

4강신화에 빛나는 한국 FIFA월드컵 응원의 세계적 슬로건은 꿈은 이루어진다”(Dream is coming true.)로써 마치 예언과도 같이 메아리 친 바 있다.

2006년 독일 FIFA월드컵대회의 슬로건은 “A Time to Make Friends”(지금 세계가 친구로)로써 축구의 인기 도를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2010년 남아공 FIFA월드컵의 슬로건은”"Ke Nako Celebrate Africa's Humanity”(이제 때가 도래 했도다. 아프리카에서의 인류축제 축하하라)로써 아프리카 대륙의 첫 FIFA월드컵 축구대회를 기념하고 축복하였다.

1998년 프랑스 FIFA월드컵은 신축 Saint Denis경기장에서의 명승부가 압권이었다.

개최국 프랑스의 FIFA월드컵 우승 그리고 프랑스의 Art Soccer(예술적 경지의 축구)가 프랑스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었다.

프랑스 FIFA월드컵1998 슬로건인 The Beauty of a World at Play”(스포츠가 아우러진 세상은 아름다워라!)는 축구경기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체를 찬미한 감각적 마음이 디자인 된 문구로 보인다.

 

촌철살인의 언어예술의 결정체인 슬로건(Slogan)은 상업적인 면에서 더 치열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인 나이키(Nike)의 대표적 광고 슬로건인 “Just do it!”(그냥 해 버려!/ 그냥 저질러!/일단 해봐!)인데 골프 황제타이거 우즈의 섹스 스캔들과 잘 어울리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독일의 세계적 명품 스포츠용품 메이커인 아디다스(Adidas)는 광고 슬로건으로 "Nothing is impossible."(불가능은 없도다.)를 선 보였다.

다른 스포츠 용품 메이커는 이 문구를 응용하여 "Anything is possible.(무엇이든 가능하도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교묘히 사용하기도 하여 일종의 Ambush Slogan(매복 슬로건)인 셈이다.


가히 응용력이 절묘한 짝퉁 명품 슬로건입니다.

유명 스포츠 음료인 게토레이(Gatorade)의 대표 광고 슬로건은 “Is it in you?”(당신 몸 안에 그 음료가 들어 있나요?/당신도 그 음료를 마셨나요?/성공할 자신이 있느냐?)였다.

그러던 와중에 당시 섹스 스캔들(Scandal)이 일어 났고 그 후 타이거 우즈(Tiger Woods)의 일부 광고주들은 그가 나오는 광고를 중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슬로건이 가미된 관련 Joke를 소개해 본다.

 

 

 


타이거 우즈와 당시 이혼한 부인 Elin Nordegren(출처: Korea Times)

 

*Sports drink Gatorade dropped ads featuring Tiger Woods, because it would be tasteless to say, “Is it in you?”
(
스포츠 음료 '게토레이드'는 타이거 우즈가 나오는 광고를 중단 했다. “그것은 당신 안에 있습니까?”라는 광고 문구가 이제 저속하게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Is it in you?> '게토레이드'를 당신도 마셨습니까?란 뜻도 되고 "성공 할[이길]자신이 있느냐?는 뜻도 된다.)

**Gatorade will soon introduce a new product called: "Get-her-laid"." But they will stick to the slogan "Is it in you?"
(
게토레이드/게로레이드는 곧 새 상품을 출시 할 예정이다. "게럴레이드"[그녀를 눕혀라] 그러나 "그게 당신 안에 들어가 있습니까?"란 광고 문구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NIKE would never drop its sponsorship of Tiger Woods, because he has lived up to their slogan "JUST DO IT!"
(
나이키는 타이거 우즈에 대한 후원 사 계약을 절대로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타이거는 나이키의 슬로건인 "그냥 해버려!"에 충실하게 살아 왔으니까.)

국내 광고시장을 통해 선 보이는 상업광고 슬로건 또한 기발하다.
"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슬로건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과학개념(?)을 주입시켜 주었다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

지성 선수가 등장하여 인기 슬로건이 된 한 정유회사 광고문구인 "I'm your energy." 는 한 TV 개그<Gag> 프로그램에서도 패러디 되어 매주 TV에 등장하기도 한 바 있다.

관련 정유회사(GS)는 따로 광고비용 부담 없이 천문학적 광고 효과를 톡톡히 즐기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르노(Renault) 삼성 자동차 회사의 브랜드 광고슬로건은 "Discover the Difference. (차이를 찾자) Brand Identity를 구가 한 바 있다.

그 외에 "Samsung DigitAll"(Samsung Digital/ Samsung Digit all.)"(삼성은 모든 것을 디지털화 합니다.) 또한 절묘하다는 느낌이다.

현대카드의 광고 슬로건인 기다림을 make, break, make하다라는 슬로건 역시 HyundaiCard Library"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한항공(Korean Air)의 슬로건인 "Excellence in Flight"(탁월한 항공여행의 결정판)은 영국항공(BA: British Airways)의 슬로건인 "The World's Favorite Airlines"보다 훨씬 더 스마트하고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각국의 국가 관광홍보 슬로건 역시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1) “Australia, See You There”(
호주, 그 곳에서 그대를 보리라!)/”Life in a Different Light.”(색 다른 햇빛아래 새로운 삶)

(2) “Incredible India!”(신비로워라! 인도여)

(3) “China Forever!”(중국이여 영원하여라!)

(4) “Malaysia, Truly Asia”(말레이시아, 정말로 아시아!)

(5) “Uniquely Singapore”(싱가포르, 독특함 그 자체!)

(6) “Hong Kong, Live It, Love It!’(홍콩에서 살아보라, 사랑하리라!)

(7) “Amazing Thailand”(놀라워라! 태국이여!)

(8) “100% Pure New Zealand”(100%청정, 뉴질랜드)

(9) “Korea, Colorful Adventures”(대한민국, 형형색색 다채로움)

당시 한국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번화하다(Lively and Prosperous)” 1, 역동적(Dynamic)이다 2위 그리고 아름답다(Beautiful)” 3위를 차지 하였다고 한다.

 

그 후 “Dynamic Korea”, “Creative Korea”로 진화한 것을 보았다

번화하고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강산 대한민국을 홍보할 더 감칠 맛 나고 촌철살인적인 영문 슬로건은 없을까?

다음과 같이 제안해 본다:

1) “Cozy Corea”(포근하고 정겨워라, 대한민국)
2) “Balanced Life in Korea”(
살기 좋고 균형 잡힌 대한민국)
3) “Korea, Love Forever!”(
대한민국, 영원히 사랑하리!)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가 지정한 세계 금연의 날(World's No-Tobacco Day)에 선정한 1990도 주제 슬로건은 “Childhood and Youth Without Tobacco”(담배 없는 어린 시절 그리고 청춘이어라!)였고 1998 금연 슬로건은 “Growing Up Without Tobacco”(담배 연기 없이 자라나게 하자!)였었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