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에 해당되는 글 375건

  1. 2023.07.21 e Book 용광로 은혜(8번째 책 발간 2023년 7월17일 출간/윤강로 지음)
  2. 2023.04.29 우리들교회 스가랴 Zechariah 큐티나눔(음침한 절망과 사망의 골짜기에서 주님 구원의 빛 한줄기 기적 체험이야기)
  3. 2023.03.26 우리들교회 주일설교말씀 요약메모 (3월26일 마태복음 5장7절 "팔복산의 통로")와 느낀 점 1
  4. 2023.03.05 사도행전(Acts)성령(聖靈/Holy Spirit)시리즈 설교 말씀 총정리 및 小考
  5. 2023.02.22 감사(Thanks Giving)와 온 마음 다하는 사랑(Heartfelt Love)의 세계로 (전세계 22개국어로 감사합니다 와 50개국어로 사랑합니다) 2
  6. 2023.02.05 우리들교회 주일예배말씀요약 (2023년 2월5일) 마태복음 5장 1절에서4절로 (八福山에 갑시다 김양재 담임목사) 2
  7. 2022.08.29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10편(“재림과 종말에 대하여”/ 신앙기초양육 제8과/종결편) 2
  8. 2022.08.21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8편(“기도의 특권”, 기도는 일이며, 일을 하며, 일을 하게 한다/신앙기초양육 제6과) 1
  9. 2022.08.14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7편(“교회란 무엇인가?” 성령의 기초 양육 제5과 정리) 2
  10. 2022.08.07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6편(“예수님은 누구신가?” 성령의 기초 양육 제4과 정리) 2
말씀과 마음씀2023. 7. 21. 10:07

[e Book 용광로 은혜(8번째 책 발간 2023717일 출간/윤강로 지음)]

 

 

 

작품소개

 

책소개목차

 

·        eBook > 종교 > 기독교 > 기독교일반

본서는 평창올림픽을 비롯해서 한국 스포츠 역사 발전에 공헌을 하며 그 헌신으로 받은 많은 상들을 이제 모두 내려놓으며 새 은혜의 도가니에 녹아져서 이제 주님 나라를 위해서 더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안고 달려가는 흔적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이 모든 걸음들이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자신의 삶의 인생 여정에 주께서 베풀어주신 용강로 은혜를 독자들에게 나누고자 본서를 준비하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은혜 향이 곳곳에 전달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가정보

 

저자()윤강로

저자 윤강로 작가 프로필
(Prof. Rocky YOON Kang-Ro, Ph.D)

[학력 및 학위]
- 1956
년생 인천 출생/ 원적: 충북 괴산)
-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영어전공) 동시통역대학원《영불과 수학》
-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과 수학》
-
몽골국립스포츠아카데미 명예박사학위
-
중국인민대학교 객좌교수 및 국내 다수 대학교 겸임교수[저서]
-
총성 없는 전쟁 및 스포츠 외교론 등 7권 발간 (영문판 1권 포함)

 

 

[윤강로 약력 24가지 및 스포츠외교실적 12가지]

*윤강로 약력(Prof. Rocky YOON Kang-Ro, Ph.D)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영어 전공/동시통역대학원<영불과 수학>/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과 수학>) 1956518일 생(67세 인천 출생/원적: 충북 괴산)

 

1.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ISDI)원장(2004~)

2.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자문위원(2022~)

3.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 문화 세계화 고문(2022~)

4. 2027 충청권 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 공모 선출 사무총장(2023 324~6월29일)

5. 대한체육회 국제국 참사보(5급 특채)-SLOOC집행위원장 보좌관(파견)-국제 과장-비서실장-국제부장-기획조정실장-국제사무차장-KOC위원 겸 KOC위원장 특보-41대 대한체육회장 예비후보(2020)

6. 대한민국 개최 동-하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모두 근무(서울1988올림픽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겸 체육부장관국제비서관-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보좌역)

7.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제종합대회 30여개 대회 한국선수단본부임원(현지 단장 대행) 국제활동 및 IOC총회-ANOC총회-OCA총회 등 각종국제회의 한국회의대표 200여 차례 참석 및 공식 발언 200회 이상

8. 국내외 초청 특강-학술 및 스포츠 포럼 강연 300여회

9. 남북한 스포츠교류 국내외 접촉 100여회

10. 한국 최초 IOC평가위원(2008년 올림픽현지실사 등)

11. 평창동계올림픽유치 국제사무총장(2) 및 국제자문역(1)

12. 평창 2018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1)위원-(2)기획상임위원-(3)위원장 보좌역

13. 몽골국립스포츠아카데미 명예박사학위

14. 중국인민대학교 객좌교수 및 국내 다수 대학교 겸임교수

15. ANOC 공로훈장2008 한국최초수상-체육훈장/체육포장/대통령표창 등 다수

16. IOC위원장 직접 전수 한국 최초 IOC쿠베르탱 메달리스트 2022

17. 부산 명예시민(78)

18. 국민체육진흥공단(KSPO) 고문(2022 31~2023531)

19. 대한항공 200만 마일리지/밀리언 마일러Two (Millions Miler)

20.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외대동시통역대학원 수학

21.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과 수학

22. 대한트라이애슬론 연맹 부회장

23. 대한 루지(Luge)연맹 창설 사무총장

24. 총성 없는 전쟁 및 스포츠 외교론 등 7(영문판 1권포함) 책 발간

 

*윤강로 스포츠외교인생 40년간 성취한 국제외교실적 12가지

 

1.   세계최초로 김치(K-Food)를 올림픽선수촌 공식 메뉴로 채택 공로(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이후~현재까지

2.   한국 최초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기간 중 남북한 NOC 간 스포츠교류협정 체결 막후 교섭 및 성사(남측: 이연택 KOC위원장/북측: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3.   세계최초로 IOC금지약물리스트에서 카페인(Caffeine) 목록에서 제외토록 ANOC총회 공식 발언 3차례 후 성사(2003년 경)

4.   세계최초로 ANOC총회-IOC집행위원회 연석회의 석상에서 태권도의 올림픽공식종목 채택 당위성 최초 공식 건의(1980년 대)

5.   세계최초로 올림픽 표어(Motto)“Citius, Altius, Fortius”(Faster, Higher, Stronger)보완 Update 대체 표어(VIP: 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 ANOC총회-IOC집행위원회에서 Rogge IOC위원장에게 제안 및 공식 긍정적 답변(2003년 개최 Kuala Lumpur ANOC총회)

6.   한국 최초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대한체육회 IOC TOP마케팅 배당 지분 2배 이상으로 증액 실현(당시 IOC마케팅 대행사/Meridian 대표 협상 및 타결(삼성의 TOP파트너 기업 참여 혜택/1997 이래)

7.   아시안게임 사상 최초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OCA지불이행각서 체결 성사로 유치 당시 공약 기여금(미화 2천만불) OCA지불 대신 Sydney2000올림픽개최지 현장에서 불 이행각서(Non-Performance Bond)서명으로 대체하고 해당 미화2천만불(240억원) 홍콩HSBC은행 위탁 예치 및 대회 종료 후 환불 시 상당 금액의 환차 이익 발생토록 원천 기여

8.   동계아시안게임 사상 최초로 1999년 강원 동계아시안게임 OCA지급수익금 OCA와 교섭 결과 미화300만불(36억원) 절감 및 선수촌 숙박 시설 중 전체침대대신 온돌방+(Korean mattress)대체 제공 각국선수단장설득 결과 미화 200만불(24억원) 도합 60억원 대회 경비절감 직접 기여

9.   IOC총회개최 사상 최초로 1999년 제109 IOC서울총회개최비용 50%이상 개별마케팅으로 조달 선례: (1)KBS TV IOC총회 개회식 중계권료 1억원<대한항공 5천만원, 세라젬 5천만원 KBS로 직접입금방식으로 회계감사문제 해결, (2)IOC총회 소요 차량 일체 필립스 코리아와 후원계약성사로 제공, (3)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교에 각 대학 공문발송으로 국제 인재 선착순 접수 및 직접 면접으로 자원봉사방식으로 우수한 인력의 의전 요원, 안내 요원 확보, (4)서울IOC총회로고 필립스코리아 홍보실 협조 유도로 CAD로 해당 로고() 10가지 출력 후 당시 Samaranch IOC위원장 직접 보고(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KOC위원장 경유)및 결정으로 시간과 제반 비용 절감, (5)IOC총회장소인 신라호텔 로비에 대형 TV화면 삼성전자 협찬으로 무상 설치 (해당부문 IOC TOP 파트너인 일본 Panasonic의 권리 IOC경유 잠정 유보), (6)서울 IOC총회 조직운영 총괄 CEO로서 당시 Francoise Zweifel IOC행정사무총장과 일일 FAX 직접교신으로 당일 해결 후 김운용 KOC위원장에게 후 보고 결과 IOC총회개최사상 최소준비날짜기록 IOC사무국 인정

10.올림픽 사상 최초로 평창2018동계올림픽 이후 빙상개최도시 강릉 시장과 Thomas Bach IOC위원장과 IOC 올림픽 박물관장 3자간 강릉올림픽박물관(GOM)이 스위스 Lausanne IOC본부에서 MoU체결 교섭 및 서명식 막후 교섭 및 체결 성사

11. 한국체육역사상 최초로 양평 소재 평산 개인스포츠박물관 건립 운영(2004~2015) 후 강릉시 요청으로 35년 간 수집 전시 중이던 올림픽 기념품 스포츠 관련 수집품 3만여점 강릉시에 무상 기증 (강릉올림픽박물관 용: 평창2018 유산 제1)

12. 한국 최초로 IOC위원장(Thomas Bach)이 공식초대인사 20명 참석 하에 IOC쿠베르탱메달 정식 수여식에서 IOC쿠베르탱 메달리스트 2022로 기록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3. 4. 29. 09:56

[우리들교회 스가랴 Zechariah 큐티나눔(음침한 절망과 사망의 골짜기에서 주님 구원의 빛 한 줄기 기적 체험이야기)}

 

제가 324일자로 2027년 충청권 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에 임명되어 하나님께 감사 찬양 드렸지만 국내 강력한 세력이 이를 시기하여 저를 끌어내리려는 심각한 정치적 압박 중에 기도하였더니 홀연히 한 줄기 빛을 보내 주셨습니다. 어제 아침 큐티를 하고 나서 세종시에 회의 참석차 내려가는 KTX 열차 객실에서 아침 묵상한 큐티 말씀이 로고스에서 제게 주시는 레마로 다가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큐티를 목장공동체와 나누었습니다.

 

[스가랴(Zechariah 14: 1~11) 427일 아침 큐티 나눔]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라. (7/It will be a unique day, without daytime or nighttimea day known to the LORD. When evening comes, there will be light.)

 

여호와께서는 가장 정확한 때 정확한 장소에 임하시어 직접 구원의 전사가 되어 싸워 주십니다.

그리고 연단을 위해 사용하신 이방나라들은 용광로의 역할을 다 하면 여호와께서 제거해 주십니다

 

최근 들어 충청 2027 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전국 공모로 당당히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지만 소망의 날이 저물어 이를 시기하고 끌어 내리려는 국내 초강력 반대세력이 저의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어 놓고 있을 요즈음 무렵 홀연히 구원의 빛을 비추시어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세계 스포츠 대통령(IOC위원장)으로 하여금 사탄의 모략을 일시에 제거하는 천금과도같은 힘을 실어주는 사무총장선출 축하 서한(425일자)을 유럽 이방 땅에서 보내줌으로 마치 용광로가 쇠 찌꺼기를 녹여 내어 주듯 중상모략에 힘없이 침몰 직전의 저를 기적적으로 起死回生 시켜 주셨습니다.

 

 

사울의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추격과 공격과 압박 와중에 아둘람 공동체에 은신하며 기도하면서 공동체에 붙어있던 다윗을 보호해 주심과 같이 현대판 사울로 인해 절박하게 처한 음침한 사망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저를 건져 주셨습니다. 주님께 감사 찬양이 저절로 흘러 나옵니다.

 

현대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적시 적 때의 하나님이 예비하신 IOC위원장 ‘물맷돌’ 축하서한으로 국내외 준동 세력을 단 한방에 물리쳐 주시고 미소 짓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 하시며 광대무변하신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와 찬양 올려 드립니다. 할렐루야!!!

 

늘 부족하여 주님께 엎드려 기도 드리는 윤강로 올림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3. 3. 26. 16:20

[우리들교회 주일설교말씀 요약메모 (326일 마태복음 57절 "팔복산의 통로")와 느낀 점]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김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

 

 

미국전도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신 김양재 담임목사님이 몇 주 만에 우리들교회 휘문 채플 강대상으로 복귀하셨습니다. 미국 여행이 유럽여행보다 시차 극복의 어려움이 더 심하다는 것을 체휼할 수 있는 것은 40년간 200만 마일이 넘는 대한항공 탑승을 통한 출장을 통해 익히 경험한 바 있어서 입니다.

 

 

(김양재 담임목사님<가운데>과 함께/휘문 채플)

 

 

그럼에도 오늘 주일 첫 1부설교 타임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은혜가 넘치는 설교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 마다 열쇠로 잠긴 곳을 열게 해 주시고, 가는 곳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맺어질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님(파라클레토스)의 감동 감화가 충만한 운행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의 은혜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코이노니아’(교제)가 지구 땅끝까지 흩어져 있는 주님 공동체의 성도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장 좋은 화장품은 (1)몸 건강, (2)마음 건강, (3)정신 건강에서 나오는데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나기에 "천국표 영생화장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최고의 감정인 회개(悔改/repentance)와 긍휼(矜恤/mercifulness/commiseration)의 실천을 통해 평강과 평안과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팔복산의 통로는,

 

1.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1)  긍휼은 동정이 아닙니다

 

-동정은 (1)비교 의식과 (2)우월감과 (3)자기만족에서 나오기에 나중에 생색이 생기는 법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선함을 기억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억울해 하는 것입니다

 

2)긍휼은 조건적이 아닙니다

 

-조건 적, 상식적 측면을 하나님은 바로 잡아 주십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 누구나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고 공평합니다. 고난은 죽음의 예고편입니다. 긍휼은 작은 것부터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내 죄를 보게 되면 타인의 고난과 아픔이 체휼되어 지적 질이나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진정한 긍휼을 느끼게 되어 낮아짐으로 섬기게 됩니다.

 

(적용 #1)

 

1)  남을 불쌍히 여김으로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동정하나요?

2)  의인과 죄인을 차별하는 긍휼인가요? 무조건 적 인 주님의 긍휼인가요?

3)  우리 모두가 밑 둥 짤린 나무라는 인식이 있나요?

 

2.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긍휼은 엘레오스’ (자비) 그리고 헤세드(자비)와 라함’(어머니 자궁에서 유래되어 슬픔과 애통함으로 공감하는 것)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어머니 자궁에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의 여김을 받았습니다.

긍휼은 구원의 반석 위에 서있어야 가능합니다. 긍휼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사랑의 감정으로 어떤 높이와 깊이와 넓이로도 가늠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실천적 긍휼의 예화로 마태복음 18장에 등장하는 1만 달란트의 빚 탕감의 긍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서도 나중에 100데나리온이라는 아주 작은 빚에 대하여 분노하며 긍휼로 나아가지 못하며 힘들어 하는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입니다.

어떤 종류의 고난과 해달별이 떨어지는 환난도 온 집안의 구원을 위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긍휼로 갚아 주시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팔복의 삶은 오늘 죽어도 천국을 갈 수 있는 마음으로 긍휼의 통로가 됩니다. 동정이나 자선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긍휼입니다.

긍휼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받기 때문에 비로서 타인에 대한 긍휼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시던 군중도 본성이 똑 같아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으니 아무도 그 여인을 정죄할 수 없게 하시는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빚진 자는 타인에게도 긍휼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긍휼을 통한 우리는 구원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독된 것의 1위는 자식입니다. 자식이 곧 나니까 나의 분신이 세상에서 잘 나아가야 하는데 그리 못하면 분노가 나오게 되며 기대 못 미치면 나오는 분노는 중증 집착이지 사랑이 아니므로 그것 때문에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자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존재인 것입니다.

 

여로보암 2세 말 선지자 호세아(구원이란 뜻)의 복잡한 가정사 이야기를 통해 30년 후 닥칠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 하셨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여 고멜(끝이 다한 창녀)과 결혼함으로 북 이스라엘 멸망의 메시지를 호세아 결혼 비유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한 소명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들교회 큐티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큐티입니다. 어떠한 황당한 상황에서도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처럼 본 부인이 바람난 남편의 내연 녀 집 앞에서 여보를 외치는 것이 옳고 그름으로 따지지 말고 하나님의 긍휼함으로 하는 헤세드의 적용입니다.

 

(적용 # 2)

 

1)  긍휼을 입을 만한 자격이 없다며 정죄하는 사람이 없나요?

2)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3.   가장 어렵고 힘든 사람을 데리고 팔복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기에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시는 주님말씀처럼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는 용서가 아니라 기도로 슬픔과 애통으로 참자가 끊어지는 듯한 긍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진정한 용서의 종결자는 하나님 뿐입니다. 우리는 힘든 사람을 팔복산으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고난을 겪으며 내 죄를 깨닫고 원수 같은 사람도 구원을 받도록 헤세드라함으로 팔복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야 합니다.

 

긍휼을 바든 존재에 불과한 우리는 긍휼의 근거가 주님이기에 그 앞에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죄와 부족함을 느끼기에 타인의 부족함에 대하여 내 부족함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섬기다 보니 나에게 부족한 긍휼을 채워가는 것입니다. 뽀빠이 이상용처럼 강력하게 손과 발이 함께 가는 적용으로 새 방언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너무 부족하므로 부족한 사람에 대하여 헤세드로 대함으로 나의 부족함이 메워지는 것입니다.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있는 것이 내 복이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그래서 부족해 보이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적용 #3)

 

1)  용서해야 하지만 용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얼마나 인정하나요?

2)  주님만이 용서의 종결자임을 믿나요?

3)  부활절전도축제에 내가 팔복산으로 가는 통로가 되기 위하여 어떤 순종을 하고 있나요?

 

긍휼함을 느끼는 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음욕을 품으면 그것이 다 간음이라고 하신 주님처럼 창자가 끊어지는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긍휼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느끼는 사람이 타인의 긍휼을 체휼하는 것입니다.

 

팔복산의 긍휼을 맛 봅시다! 샬롬!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3. 3. 5. 17:08

[사도행전(Acts)성령(聖靈/Holy Spirit)시리즈 설교 말씀 총정리 및 小考]

 

2019년에 시작된 사도행전 우리들교회 주일설교말씀이 햇수로 장장 5년에 걸쳐 선포되었으며 그 동안 사도바울의 피눈물 나는 전도 여행과 주님사명감당의 고난과 보람찬 전도사역을 말씀을 통해 생생히 듣고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 최초의 전도자이며 열렬한 유대교도로서, 기독교도를 박해하러 가다가 AD 35년 30대 초반 다메섹에서 예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을 바꾸어(회심: 사도행전 9장) 생애를 전도에 힘쓰고 각지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63세쯤 순교하였으며, (1)<데살로니가전후서/고린도에서 기록>, (2)<고린도전후서/에베소에서 기록>, (3)<로마서>, (4)<갈라디아서>, (5)<에베소서>, (6)<빌립보서>, (7)<골로새서>, (8)<빌레몬서>, (9)<디모데후서>, (10) <디고서>, (11)<히브리서> 등을 모두 썼는데 사도행전은 바울의 전도여행을 총망라한 신약성경의 유일한 역사서이지만 누가(Luke)가 썼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에 대한 신상 명세 입니다.

 

(1) 유대인입니다

(2) 길리기아(Cilicia) 다소(Tarsus: 교육도시)출신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입니다

(3)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성장함으로 유대인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4) 가말리엘(Gamaliel)문하에서 엄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5) 산헤드린(Sanhedrin)공회 회원입니다

(6) 그럼에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고 믿음 생활의 금과옥조로 삼는 성경구절은 첫번째로 (1)데살로니가 전서(1 Thessalonians:  5장 16절~18절 말씀으로 “16 항상 기뻐하라 / Rejoice evermore.// Soyez toujours joyeux.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Pray without ceasing/ Priez sans cesse.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In everything give thank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concerning you// Rendez grâces en toutes choses, car c'est à votre égard la volonté de Dieu en Jésus-Christ.)입니다. 두 번째는 (2)마태복음 7장(Matthew 7: 7~8) 7절~8절 말씀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it will be opened to you.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and the one who seeks finds, and to the one who knocks it will be opened)입니다. 세번 째로 특히 제가 주님을 영접하게 해준 결정적인 말씀으로 (3)잠언 16장 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Pride goeth before destruction, and an haughty spirit before a fall.)였습니다.

 

 

2023년 1월15일 주일예배말씀주제는 사도행전(28:28~31)마지막 구절로 피날레에 해당하는 구절이며 ‘성령의 우리들 행전’이란 제목 설교로 마무리 되었는데 “1) 그런즉 차별이 없어야 한다, 2) 여전한 방식으로,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여야 한다, 3) 거침 없이 입니다”의 세가지 소제목으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가말리엘(Gamaliel) 문하의 수제자로서 산헤드린(Sanhedrin)공회 출신인 사도바울은 스테반(Stephen)의 순교로 죄책감과 큰 깨우침을 받고 평생 주님께 헌신한 기독교신앙의 최고봉으로 생각됩니다.

 

오늘 주일설교말씀 중 “자기 죄를 보는 사람만이 담대하고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다”와 “말씀 끝에는 돈과 음란과 이권이 있어서 우리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상대방을 배척하는 것이다”란 말씀에 찔림이 걸어 들어옵니다.

 

십자가와 지혜와 타이밍은 원칙에 근거하며 깨닫는 것이 고침의 시작이라고 하십니다.  나의 정체성이 죄 성이므로 내가 죄인인 것을 보아야하며 성경이 안 깨달아 지는 것 자체가 심판이고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된다고 하십니다. 사건이 오면 감정부터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인데 이해가 안되니 실망, 욕심, 시기, 질투, 비교, 불평 불만, 미움으로 흩어지게 되는 것으로 인간은 각자 악에 대해 우둔한 고집과 아집이 있는데 각자 내 입술이 부정한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내 안에 욕심, 시기, 질투 미움, 음란이 성령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며 성령 말씀 앞에서 눈을 감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침 받는 비결은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입니다. 잠 자는 체하는 사람은 결코 잠을 깨울 수가 없는 것이며 우리가 눈을 감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므로 고침 받고 돌아서는 것이 회개이고 회개는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않아야 하는데 믿는 사람 중 고난을 받은 사람이 많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난이야기를 하면 성도가 반으로 줄고 죄 이야기를 하게 되면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고난의 종류가 가난과 질병에서 배우자고난과 자녀고난으로 바뀌었지만 택자들에게는 마음이 가난해지는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는 ‘자기 확신이라는 함정’(trap of self-confidence)에 빠지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부정(self-denial)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자기부정지수가 99%도 불합격인 것이며 오직 100% 자기부정이 되어야 온전한 것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며 성경은 예수님의 이야기이고 예수님을 권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안에 있어도, 100% 온전하지 못한 가운데 있어도 오직 하나님나라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심판의 Climax는 십자가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오직 성령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시작과 마지막이 모두 구속사(the History of Redemption)입니다. 바울은 연약 함에 매여 있으므로 무식하고 용약한 사람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통해 상대방이 성령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구속사인 것입니다. 자기 죄를 보아야 상처 받은 치유자가 되어 나의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내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소망인 것입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은 주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하지만 미워해야 할 죄는 공의로 떨궈내야 합니다. 목적이 구원 이어야 진정한 동정이 되는 것이며 우리는 존재자체가 가해자인 것인데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히 피해자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성령의 피난처이며 우리가 없는 곳이 유라굴로(a northeaster)라는 광풍(a wind of typhoon)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알면 따뜻한 말이 나오는 것이며 따뜻한 대접을 하면 주님 영접이 쉬워집니다. 행위로는 누구도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나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을 믿으면 비로서 천국에 간다 고 하십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내가 가는 길을 주님께 맡기고 생명을 내 놓고 기도하게 되면 피난처인 곳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구원을 길로 놓고 가는 것은, 이타적인 척하며 이기적인 길로 가려고 한다는 것은 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다림의 결론은 예배인데 위인이 아니라 죄인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충돌하여 깨지는 것이 성령의 구조이며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깨뜨리셨습니다. 구원을 가로막는 저주는 안 깨어지는 것들인 가치관과 미모와 지위 등인데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깨어질 때 영광스런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부활을 믿어야 깨어지는 것인데 그래서 십자가는 지혜이며 타이밍인 것입니다.

 

전도서에서는 허무와 기쁨의 양 날개에 대하여 교훈이 되는 주옥과 같은 진리가 펼쳐집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전도여정에서 길이 좁고 천신만고 끝에 느리게, 더디게, 간신히, 겨우 목적지에 도달하여 마치 완행선 열차에서 내리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내가 만난 성령님을 간증할 수 있어야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서 약함과 죄의 고백을 간증하는 13개의 서신을 써 내려갔습니다.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낼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지겨운 괴롭힘을 통과할 때 기회를 주시는 데 ‘내 죄가 내 고난보다 크다’라는 구속사가 깨달아 지지 않으면 고통을 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지겨운 괴롭힘 그 자체인데 하나님을 모르면서 자기 문제에만 매달리니 괴롭힘을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과시가 아니라 자신의 수치를 드러낼 때 성령의 위엄을 주시는데 세상의 위엄이 허상 임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성실하고 정직 함은 있어도 위엄을 따라오지 않는 것입니다.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죄악이며 죽어가는 목장공동체의 목원(이웃)을 책임질 때 위엄이 주어집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서 받는 호의(학벌, 돈, 지위)는 나를 죽이는 호의이며 하나님이 없으면 죽이는 호의가 되는 것이므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호의를 보여야 하나님의 호의가 은혜가 됩니다. 주님의 호의가 은혜이며 내 죄를 고하고 하나님께 호의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석을 잘해야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묶어 놓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호의이며 용서입니다. 즉 성령의 호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자유 함이 없으면 편함도 갇힘도 못 누리는 것인데 갇힘에도 복음을 전하는 환경이 자유 함이며 복음(Gospel/Good News)을 전하는 자유가 최고의 자유 함입니다.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가 옵니다. 미움의 감옥 시샘의 감옥, 인정의 감옥, 절망의 감옥, 의심의 감옥에서 예수님만이 자유입니다.

 

육체의 기근보다 영적 기근이 들면 허무의 잡초가 무성하여 자기 정체성을 망각함으로 자기 열심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한편에 욕심과 열심 그리고 또 한편에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야훼 이레’(Yahweh-jireh/Jehovah-jireh)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Lord will provide)입니다.

 

말씀의 깨달음의 황홀경이 믿음의 최고의 경지이며 기록된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 것인데 성령의 주시는 말씀은 Voice로 듣는 것으로 황홀의 결론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각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인에게 보내시는 성령 황홀의 목적이며 영성 지수입니다. 세상 황홀의 목적은 안주(安住/peaceful living)이지만 성령 황홀의 목적은 보내심, 즉 파송입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가 당하는 고난보다 큰 것입니다. 자가 義는 내 안에서 빼내야 하는 마지막 우상입니다. “내 죄를 보는 것은 신세계를 보는 것이며, 내 죄를 보는 것은 신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구원의 창시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현재 고난이 내 삶의 결론인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배움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성령이 들어와야 차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거꾸로 하는 것이 믿음이고 또 자기 죄를 보는 것도 믿음입니다. 억울할 때 부인하고 분노하면 오해가 풀리지 않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생색내는 열심과 눈치 보는 열심은 自信敎의 열성 신도이니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타심 입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니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고 자기 죄가 안 보이니까 회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해자 였음을 깨달았을 때 피해의싱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분노를 먹고 사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인간이 100% 악하고 음란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환경이 어떤 결말을 당해도 내가 죄인임을 알고 결박 당하면 천국에 가는 지름길입니다.

 

장차 받을 환란이 복음이므로 기복이 아니라 팔복의 길을 물어야 하며 인생은 한계를 느끼는 것이 축복입니다. 아픔과 수치가 넘치니 예수님 만나는 것이 감사한 것이며 주 안에서 자존 감이 세워지니 손이 가고 발이 가고 지경이 넓혀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차별없이 세워지는 리더십이 되어야 하는데 국가도 인종도, 혈연도, 지연도 넘어선 리더십이 최고의 리더십입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주를 섬겨 자발적으로 금식하면 구별이 되는 것인데 Service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사람을 섬기는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육적인 욕망의 결박이 풀어지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쉬워지게 되며 거룩한 기도와 금식으로 섬기니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선교의 기획자이시며 큐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비결인데 섬기며 기도하는 것이 중요 포인트입니다.

 

헬라어인 Apostle은 원래 ‘파송하다’라는 뜻에서 파생되어 사도라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학자이며, 전도자이며 교사이며 선교사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자산은 건물이나 재산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우리들교회 땅끝 선교지는 가정이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아내는 것도 땅끝 선교입니다. 은혜 아니면 나서지 못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세상 옥에 갇혀 사는데 옥중 광채인 말씀으로 찾아 오시며 금식이 1년간의 기도와 맞먹는 것인데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임 받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교회를 아무리 나와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무엇을 해도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제일 큰 마귀가 있으니 탐욕, 시기, 질투. 미움, 음란의 귀신이며 환경이 겸손한 것이 겸손한 것으로 우리는 작은 자가 되기 어려운 것이데 모두 큰 자가 되려고 하니 힘든 인생인 것인데 금식 3일이 1년 기도보다 위력이 있다고 합니다.

 

성령의 동행은 성령의 구속사를 알려주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며 말씀이 빛과 소금이 되어 천국을 전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교리가 아니라 진리가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것인데 성령이 임해야 분별이 가능하며 우리에게 온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옳고 그름은 없고 오직 ‘예수님 믿고 안 믿고’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애굽 400년, 광야 40년 가나안 정목 전쟁 10년 등 450년 동안을 구속사는 오늘 하루 하루를 잘 살면 만사가 형통한 것으로 세상에서 최고의 복은 하나님과 가깝고 친한 것으로 성령의 구속사가 깨달아 져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니 예배는 드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며 최고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으며 도적질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위대성은 구원의 확신에 있으며 성경은 오직 오실 예수님과 오신 예수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선지자들은 말씀을 정치하는 방향으로 듣는 것이며 만일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교리만 보고 진리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음성으로만 들으니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스테반을 죽이게 되는 것처럼 진영 논리가 종교가 되어 편가름으로 서로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예수님 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고 말씀이 약이 되어 우리를 살리 시는데 만일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고 가는 것입니다.

 

말씀 따라 순종하니 말씀대로 이루어주시는 것이며 구원 따라 살아야 하는데 행복을 위해 사니 파탄이 나게 되고 거룩을 목적으로 놓으면 행복이 따라오는 것이니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인 것이고. 십자가는 plus이며 합쳐 짐 입니다.  

 

흉년이 오지 않은 사람은 육이 무너지지 않으니 부활에 대하여 얄팍하게 다가오는 것이므로 육이 무너져야 영의 세계가 세워지기 쉬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어 시공을 뚫고 그 방에 들어 가셨는데 제자들에게 옆구리 창에 찔렸던 자국을 보여 주시면서 평강을 보여 주셨습니다. 40일 간 여러 번 여러 모양과 모습으로 부활을 증거하셨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이 평강을 누리며 다른 사람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인데 시공을 초월하여 온 인류에게 증거하시며 평강을 누리게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부활 하심은 구속사 약속이며 좋은 소식으로 복음입니다. 약속 말씀에 근거하여 전파하는 것이 일으키심이지만 부활만 또는 십자가만 강조하여 치우치게 되면 이단인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는 날마다 언제나 오늘로서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 땅은 예수님이 없다면 모두 허사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에 순종하면 이 세상에서 거대하게 보이는 것에 하나님이 웃지만 그것은 실제로 비웃는 것으로 내게 주신 고난으로 애통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미워하는 사울이 불쌍한 삶을 살지만 권세자인 사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주적 사명을 주셨기에 어떤 조롱에도 부활의 하나님이 내게 임하시기에 속으로 부러워하지 말고 사망 권세를 이기신 메시아 예수님-하나님의 웃음을 웃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100년 전에 다윗이 미리 보았는데 다윗은 1도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썩임을 당하지 않는 것은 베드로나 다윗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약속과 부활을 미리 본다면 그것이 믿음이고 내 속의 예수를 살리시고 일으키신다. 예수님 부활 모습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영으로 부활을 주님을 보았기에 성령의 일으키심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이며 성령이 임하지 않고 부활의 영이 임하지 않으니 복음전파를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미리 보지 못하니 육신이 썩어 짐을 당하는 것이며 부활의 주님을 못 보니 썩어 짐을 보며 사는 것으로 하나님이 날 살리셨다고 간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속사의 최고의 설교는 바울의 설교이며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끝나는 설교인데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 지루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나는 죽지 않고 환경이 바꾸길 바라니까 두렵고 평강이 없는 것으로 십자가를 거쳤기에 부활이 오는 것인데 하박국의 주제처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이며 부활을 경험하면 썩음을 당하지 않는 것이고 우상이면 따라 죽어야 하는 것이어서 평생 미워하다가 죽으니 따라 죽는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는 육의 죄와 예수 믿지 않는 영의 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나를 낳아 주셨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썩어 짐을 당하지 않는 것인데 예수님을 믿어 죄 명부를 다 없애 주시고 의롭다 하십니다.

 

복음은 죄사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며 은혜 가운데 머무는 것이라 하나님 은혜 가운데 있어야 서로의 관계가 유지되고 때마다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이 은혜입니다.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가는 길에 진리의 성령이 임하니까 삶의 어떤 사건이 와도 성숙하게 반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부활을 경험하면 세상 일보다 하나님의 언어가 고파지게 되어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며 하나님나라의 ‘가 나 다 라’를 배우고 싶어하는 것이고 진정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진정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특징은 불의함이기에 의롭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며 이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고 사는 것이 곧 불의한 것으로 육이 무너져야 비로서 영이 세워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기란 같은 부류에서 자기와 동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의해 느껴지는 마음인데, 이해가 되어야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이해가 되는 것으로 교양이 있으면 시기를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 사함 없이는 하나님나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인데 살기등등하게 교회를 잔멸한 바울도 비방하는 것인데 이생의 삶을 살면서 영생의 삶을 논하니 영생의 복음 전하는 사람을 훼방하는 것으로 영생의 삶에 합당치 않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바울에게 주신 사명처럼 성경은 나로 적용해야 하는 것이며 ‘시기, 반박, 핍박’ 3총사를 보며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이로구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잘 살아지면 잘난 척이 나오는 법인데 유럽에서 미국을 거쳐 복음이 확장되어 한국에도 왔는데 잘 살게 되니 잘난 척을 하고 있습니다

 

다 죄인인데 고백하는 사람과 고백하지 않는 부류만 있을 뿐이며 우리 집안의 이방인이 가장 무서운 이방인이므로 땅끝 선교지가 바로 가정인 것입니다. 믿음이 단 1이라도 있는 사람이 양보하고 손해보는 것이 영생으로 가는 적용이며 성령의 반응이므로 매 삶을 죄로 보고 회개 적용하는 것이 말씀이 퍼지는 역사인 것이고 내 때문에 주 십자가와 부활의 말씀이 흥왕하게 되는 것이 최고의 성영의 반응입니다.

 

이 땅은 불의한 세상이기에 육이 무너져야 영이 살아납니다. 허튼소리에 귀가 솔깃하는 사람을 사탄이 좋아하는 법이며 공동체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것인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으며 어려울 때 무너져 내리는 ‘껍데기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며 말씀 듣고 기뻐하는 성령 충만한 일 대신 나의 일이 보이기 시작하면 낙심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것이므로 고난 가운데 십자가를 길로 놓고 살아갈 때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때마다 여전한 방식은 진리 중의 진리이며 예수 믿으면 죄사함 받고 의로움을 받는 것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 멸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도인데 큐티일기가 개인예배로서 반복 훈련이 최고의 교육이며 반복하는 일상에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는 것이고 큐티와 목장공동체가 노아의 방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같은 행위라도 똑 같은 일상의 패턴이 지루해 보여도 가장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시 좋아 보여도 기쁜 일이 반복되어도 나중에 황폐하고 허무한 것이 인생입니다. 알파 되신 하나님과 오메가 되신 하나님이 끝내시지 않으면 끝낼 자가 없으므로 가치관에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참지 못하는 것이 이 땅의 특징인데 카이로스가 오기까지 주어진 자리 지키며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제대로 배워야 신앙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며 양육이 없는 전도는 미완성의 전도입니다.

 

비비고 닦고 문지르며 살아야 하는데 어떤 환경에서도 비비고 닳도록 사는 것이 여전한 방식으로 최고의 기사가 되어 증거와 증언과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길로 놓고, 장차 받을 환난인 복음을 길로 놓고 가면 주님이 참된 화평을 주십니다. 시기, 반박, 비방을 넘어 사도 바울을 돌로 치며 추방까지 하는 것은 사단의 세력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여전한 방식의 말씀 묵상이 없으면 분별할 수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복음을 들어야 가장 올바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괴로운 것은 앉으나 서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인데 복음을 붙잡고 가면 끝에는 영생이 기다리고 있으며 쾌락을 좋으니 영적 기쁨이 없고 그래서 앉으나 서나 ‘오병이어’만 찾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동적으로 즉각적으로 기복적인데 그래서 인간이란 존재는 늘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고 하나님 자리에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인정 받으면 교만해지는 것은 자기 주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우상 삼으면 (1)쓸 데 없고, (2)무가치하고 (3) 헛되고 (4)망령된 것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자기를 주목하게 하는 자기숭배라면 자기 숭배를 못하게 하는 것을 인생의 주제로 삼아야 성령에 주목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자기 죄를 오픈 하는 것으로 주님을 만나서 깨닫지 못하면 모두 인정 받고자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전적 부패, 전적 무능, 전적 죄인 임을 고백하면서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밖에는 일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간증해야 합니다. 목장이란 구원공동체가 없으면 신앙생활을 안 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물의 논리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통하여 구원을 위해서만 구원의 눈물 흘림이 가능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무서운 열심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의논이 성령의 의논인데 성령의 의논은 승리가 아니라 진리가 그 목적입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고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바리새인처럼 인생의 답을 자신이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죄를 죄로 알라고 주신 것입니다. 육체의 할례를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이 깨끗치 않으니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금식만 하고 할례만 하면서 내 안의 종교적열심과 회개하지 않는 열심을 부적처럼 여기고 있으니 성경을 외우지만 평강이 안 오고 만사형통만 바라는 3천배(불교)를 하며 거짓 위안을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주는 것인데 말씀 해석이 없는 열심이 무서운 것입니다. 전적 무능, 전적 부패라는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고난을 통과하며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답이 안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표적과 기사가 너무 좋아 보이지만 진짜 표적은 십자가 입니다. 주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구원을 위해 자랑 질을 하지 않아야 하며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눈 높이를 맞추는 것이고 성령의 돌보심이며 구원의 목적이므로 앞으로 밑지지만 뒤로 남는 장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없는 구속사는 무능하고 부패한 것인 이유는 사람은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하며 음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하지 않는 나의 열심은 이단인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은 인내이며 성령의 사람은 듣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 얻고 구원으로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도 복음 위에 놓으면 장벽이 되는 것이며 복음이 아닌 것으로 속박하고 내 삶이 안 따라주면 지속적, 반복적, 습관적으로 괴로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인이 아니면서 선지자였던 능수능란한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니골라당은 ‘영혼만 귀하고 육체는 약하니 마음껏 행음하라’ 고 하는 것인데 올무를 놓은 것도 올무에 걸려 넘어가는 것도 모두 죄입니다. 돈 가지고 짓는 죄가 음행인데 앞으로 남고 뒤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임을 그때는 모르나 지금은 알리라. 또 지금은 모르나 나중엔 알리라.

 

 

멀리해야 할 4가지 모압의 교훈은 (1)우상숭배 (2)음행 (3)목매어 죽인 것으로 지내는 제사 (4) 피(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에 속함)인데 예수가 없으면 필요한 게 그렇게 많은 것이며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피/대속의 죽음)이므로 통과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십자가 죄사함과 부활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낙태도 살인이고 정죄와 미움과 살기도 살인입니다.

 

 

행복은 인격이 없는 이기적인 것에서는 올 수 없으며 목장공동체에서 이타적인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각자 안식의 분량이 다르기에 자유함을 먼저 주어야 하며 하나님의 상급은 삶 자체를 잘 사는 것이며 옳게 행하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형제의식-배려=사과-권면-공감은 구원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디아트리보’는 사명의 자리로 반짝반짝 닦고 문지르고 수고하는 삶이며 사명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최고의 결정이고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결정이 망하게 하는 결정입니다.

 

죄 가운데 있으니 불평, 불만, 원망, 시기, 질투가 나오는 것입니다. 고난을 거치지 않으니 결정적일 때 분별이 안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열정과 무서운 열심은 다른 것으로 구원의 관점에서 분별하여야 하는데 구원의 길을 생각하지 않기에 악한 것입니다. 구속사는 1+1=2가 아니고 영적인 것이라 깨닫기 힘든 것입니다.

 

혼혈아이며 믿음으로 섭외된 디모데(Timothy)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뜻인데 그는 본질을 위해 비 본질을 양보하였으며 부르심에 순종한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의 13통의 서한 중 2통이 디모데 전서와 후서에 나옵니다. 순종하고 가면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목적이면 놀라서 물러갔던 돈도 돌아올 수 있으며 지금은 흥하나 예수가 없으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자가 이방인이며 말씀이 들리면 사명을 위해 갇힌 감옥의 고난 속에서도 웃을 수 있습니다. 역할이 아니고 능력위주로 하게 되면지옥이고 제거의 대상이 됩니다.

 

마음에 매듭이 있으면 방언이 안 터집니다. 말씀 회복과 가정 회복이 우리들교회의 정체성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비전이 아니며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의 꿈을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독려-격려-권장-권고-권면으로 한 영혼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라. 내가 깨닫는다는 것은 천지가 놀랄 일이 많게 되는 것이며 자기 죄를 보는 것이 죽은 자를 세우는 것 보다 소중합니다.

 

사명 감당을 위해 성3위일체 하나님이 총출동하시어 순풍으로 직행하게 하시지만 초신자에게는 십자가의 직행은 쓰이지 않으며 사명의 돛을 달아야 순풍이 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쾌락과 행복의 항구처럼 매력적인 곳은 지나쳐야 합니다. 구원을 생각해야 지혜가 생각나게 되며 그 사람의 문화를 헤아려 말씀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겪은 자만이 아픔과 슬픔을 알 수 있으며 고난에는 장벽이 없어서 십자가의 아픔을 알고 전할 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말씀이 들리니 마음이 열리고 따르게 되며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시간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며 주의 일을 위한 만남은 반드시 만남의 순풍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좋은 죄인과 나쁜 죄인이 없이 모두 죄인이기에 구원에는 차별이 없는 것이며 구원을 위해 적용하니까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고 구원이 약이므로 미워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돈 귀신, 음란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영적으로 귀신 들린 사람들인데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유혹들이 넘쳐나는 것이니 괴로움을 인내하며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예수님을 필요로 하니 예수님께 초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으면 누구가 귀신들려 보이는 것이며 예수 안 믿으면 우리 모두 귀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전문가들 보고 ‘귀신 같이 잘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의 고통보다 우선인 것이 나의 유익인데 돈과 하나님과 겨루다 이겨서 내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구원이 되니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도 나눌 수 있는 지체가 있으며 견디며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나누니 더 이상 감옥이 안되는 것이며 입술의 기도가 되니 찬송이 나오는 것이고 응답해주는 지체가 있기에 기도와 찬송이 나오는 것입니다. 인생이 짧은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요?.

 

자기 죄를 보는 대화와 찬송이 최고의 대화이고 찬송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도매금으로 전도하니 찬송이 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죄를 직면하면서 주님을 찬송하면 기쁨이 충만하여 어떤 감옥도 감옥이 되지 않는 것이며 구속사를 모르면 인생이 해석이 안되어서 문제가 해결이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축복이며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예수님만이 해결책인데 고난의 한 방중에 들려지는 찬송이 성령의 찬송입니다.

 

생활 속에서 지진 같은 사건은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죄가 우리의 근본 문제인 바 지닌 같은 사건이 우리 죄를 흔들어 죄악을 깨닫게 하시고 드러나게 하시어 회개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삶을 읽고 지나가야 죄로 막힌 내 인생을 열어주는 성령의 열림으로 하나님이 갑자기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옥 속에 갇힌 것이 내 삶의 결론이라고 하니 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유함이 생기는 그 곳은 더 이상 옥이 아닌 것입니다. 열린 마음의 반대는 닫힌 마음이 아니라 꼬인 마음인데 세상과 다른 마음이 믿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유를 부르짖다가 자유를 반납한 바울은 삶의 소망이 없는 간수와 같은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전도하는데 차별이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기에 지혜로운 사람은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인데 그래서 십자가는 타이밍이고 지혜인 것입니다. 복음의 종이 되는 것이 갇히는 자세이며 빌립보(Philippi/ Little Rome) 감옥이 간수 한 사람 한 영혼에 집중 하였기에 온 유럽이 열린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가 인생 최고의 질문이며 답인데 자신의 죄인 외도를 고백하는 구원의 이야기가 구속사입니다. 나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어 대속하신 것이 구속사이며, 또한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갇힘으로 내 자유를 포기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구속사입니다.

 

옥 터가 열리고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리니 ‘주 예수를 믿으라!’인 것입니다. 영혼의 상처가 씻김을 받고 성령의 교제가 있는 곳이 교회공동체가 되는 것으로 말씀을 전하는 거시 본분이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전할 것은 오직 주의 말씀(복음)입니다.

 

나는 간 곳이 없고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음으로 세상에서 크게 기뻐할 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입니다. 가장 큰 섬김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 이시며 사람은 사랑을 만들 수도 줄 수도 없는 존재이며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존재입니다.

 

용서는 인간의 몫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입니다. 당한 것이 많을수록 사람 살리는 약재료도 풍성한 것입니다. 죄 패는 내 죄를 생각나게 하는 호패인데 평생 지고 갈 죄 패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라고 지니고 다니는 호패입니다. 예수님도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유대인의 왕이란 죄 패를 붙이고 골고다로 가시어 온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내 죄를 보면 내 인생에 ‘날이 새매’가 되는데 그 밤이 지나고 시기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오는데 예수를 만나 덤으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다는 뜻입니다.

 

이 땅의 특권은 구원을 위해 쓰고 구원을 위해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인데 특권을 감추는 것도 드러내는 것도 한 생명 한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구원을 위해 특권을 내려 놓을 때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처음에 내 죄를 (1)부정하다가 (2)분노로 변하고 (3)우울에 빠진 후 (4) (환경과)타협하고 (5((급기야)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이 땅의 특권을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이 높이시고 존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세상에 잃을 것이 많을수록 상관에 대한 두려움이 많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반대는 무서운 열심이라고 합니다.

 

‘파라클레이토스’는 한 영혼을 위해 애통해하며 묶여 있는 것으로 모든 환경에서 놓임 받는 비결로 말씀의 권면으로 일관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빌립보가 말씀의 칼끝이 되어 유럽 전도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구원 때문에 꿇어 엎드리는 사람에게 구원이 있는 것으로 죄패가 호패가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잘 붙어있어야 성령의 놓임을 경험하는 샬롬으로 적용이 믿음과 회개의 결론입니다. 기도하는 존재가 성도이며 만인이 기도하는 곳이 성전으로 하늘은 먼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거룩을 뜻합니다. 공손함이 허물을 덮으며 감정에 놀아나는 것이 교만함입니다.

 

100%죄인인 나와 100% 옳으신 하나님의 만남이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구원의 기쁨인데 말씀이 들리는 것과 들려서 순종하는 것이 참 기쁨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재가 죄인임을 알고 성령의 놓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 덕분에 우리가 아무리 부족해도 죄를 깨달은 만큼 주님의 속량의 분량이 되는 것이며 회개를 경험한 만큼 은혜로 가는 것인데(회개는 은혜로 가는 길) 회개를 할수록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고 그 예수님 때문에 기쁘게 됩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돌아보며 욕심과 교만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오실 예수님 이야기가 구약 39권이고 오신 예수님 이야기가 신양 27권으로 하나님의 전략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므로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제1조전은 당장이 아니라 먼데(장차)를 보는 것인데 ‘깨어있다’는 것은 사건을 영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며 십자가를 지려고 마음만 먹어도 하늘에서 사자가 도와주십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며 말씀과 공동체가 전략이고 습관대로 자기관레대로가 전략입니다. 시기-질투-경쟁심의 뿌리는 똑 같은 것인데 내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에 시기와 질투가 생기면 시기에는 소동이 따릅니다.

 

주님의 구속사의 강론을 통하여 화평의 복음과 샬롬의 복음을 정하십니다. 구원은 선물이기에 5달란트 받은 사람은 10달란트 받은 사람에 대하여 심간이 불편할 뿐이므로 부러워 말지어다.

 

행위구원이란 기도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 성령의 강론이므로 성령의 강론은 한 가정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명의 자리로 비비고 닦고 문지르면 내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으로 맞춰지므로 비비고-닦고-문지르며-광내면서 주님과 완주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신사는 너그러움이며 고정관념을 내려 놓는 것이며 간절함으로 ‘코이노니아’와 ‘디아트리보’입니다. 배 밑창에서 노 젓는 것이 ‘휘파레타스’인데 하나님의 매를 맞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격분은 영혼을 향한 애타는 관심으로, 애통하는 사랑으로 세상의 정신 앞에 격분하고 범사에 기복적으로 종교심이 많음을 알고 격분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한 단어입니다. ‘오늘도 무사히’를 표어로 무사안일주의가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이며 거룩과 경건한 정신을 강조하며 군계일학 형 영지주의가 스토아학파 철학(제논이 창립자)은 단편적인 지식을 모아서 거리의 철학자 또는 말쟁이의 철학인데 복음은 이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오래 되어도 날마다 새로운 것입니다.

 

미인과는 3년 행복하고 맛있는 요리도 얼마 못 가지만 예수 믿고 가는 인생은 평생, 영생 행복한 것입니다.

 

각자의 중독과 우상이 다를 뿐이어서 고난이 축복인 것입니다. 기복적이라는 것은 범사에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에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힘 입어 살아가는 존재란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를 뜻하는데 말씀이 임하여 내가 죄인 임이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심과 부활이 증거인데 믿을 만한 증거가 믿음이며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회개하는 것이 성령의 알리심 입니다.

 

하나님은 육적 흉년, 정신적 흉년(인간 관계), 영적 흉년, 질병의 흉년을 골고루 섞어서 아버지 집으로 오게 하십니다. 고린도는 음란을 뜻하는데 음란의 끝이 동성애입니다. 출신보다 더 절박한 것이 고난이며 고난으로 하나가 되는 것인데 같은 고난을 겪는 지체들이 많아 함께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구속사가 나의 구속사가 되는 것이 성령의 권면입니다. 내 죄가 보인 만큼 눈물이 보이고 하나님께로 나아 갑니다. 말씀 듣는 구조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완악함과 고집 때문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에 붙잡혀 있으면 죄짓는 것과 멀어지 게 되는 것이며 말씀에 붙잡힐 수 있는 구조가 공동체이며 공동체에 안 오는 것이 죄로 향하고 있는 징표인데 죄를 나누면 죄가 힘을 잃게 되고 죄가 많을수록 은혜가 많게 되는 것입니다. 택자에게는 심판의 때가 구원의 때이며 환난과 고난의 때이며 주의 이름을 부를 때인데 그 때 구원의 날이 임합니다.

 

피와 불과 연기 속에 있어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의 날이 입합니다. 인생의 한계와 말세를 느낄 때 상명과 소망의 이름이 주님입니다. 우상의 특징은 언젠가는 반드시 나를 배신한다는 것이며 찾아갈 공동체나 동료가 없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합리화를 내세우는 내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없는 기도는 기복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면서 허사를 경영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내 뜻대로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거룩하게 빚으시려고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물질의십자가, 권리의 십자가, 질병의 십자가라는 고통의 사간을 통해 하나님, 권능자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게 됨을 알고 영생을 받음을 신뢰하니 응답 받는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내 몫의 십자가를 통해 가정의 부활을 비춰 주시는 것이며 호피의 기도가 아니라 직면하는 기도로 내 안에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이 성령충만인데 내가 번하는 것이 구원의역사의 시작으로 욕심 충만의 기도를 하지 않게 되며 응답 받는 기도는 성령 충만의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문제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인데 내가 문제인 것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죄인임을 깨달으면 모든 문제가 성령의 문제가 됩니다.

 

도덕의 유치원 시대(kindergarten Era of Morality)에 살고 있어서 죄의 심각성에 둔감한 것입니다. 내 생각이 죽어지는 것이 이 시대의 순교이며 예수님께로 이사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절대로 공정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의외의 도움으로 문제를 풀리게 하시는데 예수님을 주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율법과 기복과 인과 관계를 합리적이라고 하는데 세상이 승리하는 것이 율법의 길인 것인데 율법에 깨어 있으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성령은 믿을 때 받게 되지만 조건은 아니며 믿을 때 성령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양육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질문하는 것이며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과 구속사가 읽혀지는 것과 십자가를 지는 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성령세례의 표적은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방언은 말씀으로 말하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12는 회복의 숫자로 천국 문도 12개, 12개 보석, 12 천사, 12열매로 온전한 회복공동체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습관이 되면 나중에 큰 세력이 되므로 날마다 큐티, 날마다 기도, 날마다 예배, 날마다 목장이 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아닌 것에 전심전력하면 결국 종 노릇하게 됩니다. 이 세상 각 세력은 힘의 대결인데 말씀에 힘이 있어 세력을 얻어가는 것이며 성령의 세력은 이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이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죄 패 명함으로 걱정주식회사-교만주식회사-인정 중독 주식회사-이기적 주식회사 CEO 겸 ‘디아코노스’ (집사)가 바로 내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내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내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내 능력이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입으로 고백하지만 마음으로 고백하려면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마음속 죄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 큐티이며 큐티가 욕심을 가지 치게 합니다. 살기 좋으면 타락해 지는 법인데 포장 전략이 세상 경영의 특기이며 오징어게임처럼 공감이 인기의 비결인데 세상은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며 이 땅은 인정과 돈이 좋은 것입니다.

 

소동과 요란과 분란과 소요는 세상의 말을 들은 결과로 모든 것이 분노와 요란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무시하는 것 하나로 소동을 일으키고 체면 때문에 나누지 못하는 것이므로 말씀 듣는 지체들 옆에 붙어 있는 것이 세상 소동에 떠내려가지 않는 비결입니다.

 

모든 길 끝에 돈이 있기에 부들부들 떠는 것인데 무시 받고 체면 상하는 것이 분노의 이유이며 인정 받게 되면 모든 소동이 잠재워지는 것으로 내가 날마다 죽어지는 것이 소동을 막는 비결이며 내가 죽기 싫어서 내 속의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내가 죽어지는 것이 소동 속에서 생명 탄생의 비결로서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할 수 있기에 내가 죽어지는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내가 죽어지면 싸움과 소동이 끝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지고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하는 것인데 내가 돈을 좋아하니 소동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죄인들만 모이니 소동이 일어나는 법이며 죄의 파동으로 소동이 일어나는 것인데 말씀이 들리면 죄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고 말씀이 해석이 되어야 소동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파라칼레오는’ 옆에 불러 놓고 외치다, 부르짖다 위로하다라는 뜻인데 ‘파라칼레토스’는 성령님을 지칭하며 고난과 역경은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통과하는 것으로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불평 불만하는 사람 옆에는 군중은 있으니 지혜는 없는 법입니다. 주님 품에 안기어 위로 받아 해석되는 인생이 최고의 인생입니다.

 

‘디아코니아’는 말씀 순종과 섬김이란 뜻인데 극복은 내가 하는 것이고 통과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것으로 성경에 극복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면 모든 것이 그때부터 사명이며 사명이 시작되어 기적이 일어나므로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인 것입니다. 큐티는 말씀 묵상을 통하여 인간적인 내 생각을 죽이는 것으로 오늘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과 ‘가정중수’가 우리들교회 정체성이며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적용의 결론은 영혼구원인데 성경의 비밀은 그 인봉을 아무도 풀 수 없으며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마지막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방이 하나님의 돌보심이며 ‘마지막처럼’ ‘불꽃처럼’ ‘칼끝 물방울처럼’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전세계교회의 주춧돌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큐티복음처럼 사는 것이 마지막처럼 사는 것입니다. 환경에 장사가 없다는 말은 겸손한 사람은 없고 환경이 겸손한 것입니다. 믿음은 분별이며 전도가 추억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인 데 자기 죄를 보는 것이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위해 결박을 잘 당해야 하며 환경에 잘 묶여 가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최고의 준비이고 성령의 각오입니다. 툭 치면 나오는 것이 내 믿음의 현주소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내 정체성의 본질인 것입니다. 믿음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 진행 형입니다. 나는 간 곳이 없고 예수님만 보여야 하는 것인데 무용담과 자랑질과 생색은 간증과 나눔이 변질된 것으로 구원은 생색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론이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구속사입니다. 생명 낳는 열심보다 눈치 보는 열심은 자신교의 열성신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 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타 성인데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니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고 자기 죄가 안 보이니까 회개가 안 되는 것인데 내가 가해자 였음을 깨달을 때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인간은 100% 악하고 음란하고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분노를 먹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환경이 어떤 결박을 당해도 내가 죄인임을 알고 결박 딩하면 천국 가는 지름길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거꾸로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억울할 때 분노하면 오해가 풀리지 않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1)유대인이며 (2)길리기아 교육도시 다소 출신 diaspora로 (3)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성장했음으로 유대인의 정통성과 정체성이 있고 (4)가말리엘 문하에서 엄한 훈련을 받았으며 (5) 산헤드린 공회 회원으로 (6)그럼에도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 있습니다. 내 죄를 보는 것은 신세계를 보는 것으로 신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 의(義)는 내 안에서 빼내야 할 마지막 우상입니다. 구원의 창시자는 예수그리스도인데 현재 내 고난이 내 삶의 결론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배움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므로 성령이 들어와야 차별이 없어 지는 것입니다.

 

말씀 깨달음의 황홀함은 기록된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을 때,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목소리로 듣는 것인데 이것이 최고의 경지이며 황홀이 결론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이방인에기도 보내시고 각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 황홀의 목적이며 영성 지수입니다. 세상 황홀이 목적은 안주인 반면 성령 황홀의 목적은 보내심, 즉 파송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타이밍을 놓치게 되며 사명을 빙자하여 자기욕심을 내미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 임을 아는 권세가 천국의 권세이며 자유하게하는 권세입니다. 성령의 황홀함을 모르면 각자의 황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없으면 받는 호의(학벌, 돈, 출세)는 나를 죽이는 호의입니다.

 

하나님께 내 죄를 고하고 호의를 구해야 합니다. ‘아폴로 게오마이’는 변명하다,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다라는 듯인데 나를 묶어 놓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호의이며 용서입니다.

 

지겨운 괴롭힘을 통과할 때 기회를 주시는데 내 죄가 내 고난보다 크다는 구속사가 깨달아 지지 않아서 괴로움이 지겨운 것입니다. 인생이 지겨운 괴롭힘인데 하나님을 모르고 나에 대하여도 모르면서 자기 문제만 보이니까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성실하고 정직함은 있어도 위엄은 따라오지 않는 것입니다.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죄악인데 죽어가는 목원을 책임질 때 위엄이 주어지는 것이며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낼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사도바울은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서 약함과 죄의 고백을 간증하는 13개의 서신을 썼습니다. 간증의 복음 정점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인데 난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님만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행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되는 것으로 향방이 같아야 하고 결국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구원으로 나의 추함을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 주셨습니다. 충돌하여 깨어지는 것이 성령의 구조(rescue)인데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서 깨뜨리셨습니다.

 

구원을 막는 저주는 가치관과 미모와 지위 같이 안 깨어지는 것들입니다. ‘내가 맞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깨어지면 영광스런 부활을 경험하게 되며 부활을 믿어야 이런 것들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스펙과 권세와 재물은 나를 구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깨어질 뿐입니다. Alexandria호 같은 곳에서 깨어진 널조각 같아야 구조되는 것인데 깨어져야 경사진 항만이 보이는 것이기에 내 속에 경사진 곳을 보아야 합니다.

 

죄인임을 알게 되면 따뜻한 말이 나오는 법이며 따뜻하게 대접을 하면 주님 영접이 쉬워집니다. 누구도 행위로는 천국에 가지 못하며 나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며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내가 가는 길 주님께 맡기리이다’라고 생명을 내놓고 기도해야하는 것인데 피난처인 곳이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빈곤 포르노를 이야기 하는데 목적이 구원 이어야 진정한 동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가해자인 것이기에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히 피해자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하지만 공의로 미워해야 할 죄는 떨궈 버려야 합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은 주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나눔에는 안식이 있는 법인데 모든 이야기가 성령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시작과 마지막이 구속사 이야기입니다. 연약에 휩싸여 매여 있으므로 무식하고 용약한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이야기를 통해 상대방이 성령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구속사인 것입니다. 자기 죄를 보아야 상처 받은 치유자가 되어 나의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내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소망인 것입니다.

 

찬국에 가면 “예수로-모세로-여호수아로-갈렙로-우리아로-사무엘로-스테반로-엘리야로-베드로로-다윗로-솔로몬로-요나단로-요셉로-다니엘로-요나로-야곱로-아브라함로-이삭로-에스겔로-바울로-바나바로-마가로-누가로-마태로-요한로-히스기야로 등이 천국의 도로 명 아닐까요?”

샬롬!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3. 2. 22. 10:15

[감사(Thanks Giving)와 온 마음 다하는 사랑(Heartfelt Love)의 세계로 (전세계 22개국어로 감사합니다 와 50개국어로 사랑합니다)]

 

 

주님께 드리는 가장 정겹고 거룩한 첫 번째 섬김 적용은,

 

1)감사 기도,

2)감사 찬송,

3)감사 찬양,

4)감사 헌금

5)감사 일기

6)감사 말씀이 아닐까요?

 

날마다 감사~ 이판사판 앞뒤 전후 좌우로 감사~ 온 누리에 감사~ 온 사람에 감사~ 세상 온통 감사거리투성이~ 모두 왕창 감사 😊 감사함에 감사~

 

감사하게도 태어나서 감사~감사하게 사니까 감사~ 천국 가게 되니 감사~ 천국 가는 그날까지 감사~하나님께 감사!!! 😊 🙏 온통 감사할 것뿐이라 감사~합니다^^

주님께는 드릴 것밖에 없으니 감사~ 사람에겐 줄 것만 있어서 😊 감사~”

 

*감사 송(Thank –you Song): “그래서 감사, 그래도 감사, 그러나 감사, 그러므로 감사, 그렇지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러니까 감사, 아주 그냥 감사, 그리 하실지라도 감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이래도 저래도 감사, 매일매일 감사, 항상 감사, 쉬지 말고 감사, 범사에 감사, 감사합니다~”

 

날마다 우리 삶에 감사가 없으면,

 

(1)불평과 (2)불만과 (3)원망과 (4)원성과 (4)짜증과 (5)혈기와 (6)생색과 (7)모함과 (8)정죄와 (9)지적 질과 (10)편 가름과 (11)무시와 (12)조롱과 (13)멸시와 (14)질시와 (15)미움과 (16)질투와 (17)시기의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오직 주님 말씀을 통해야만 뿌리 내리는 감사함의 열매가 얼마나 달고 복된 축복인가 묵상해 봅니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고 말 하기 쉽고 전달하기 흥겨운 단어는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입니다.


"
감사합니다", "미안 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제 잘못 입니다", “내 탓입니다”, "죄송 합니다."라는 말들을 서슴없이 나누고 베풀고 용서한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10배 아니 수 백배 더 평화롭고 부드러울 것 같습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는 지 우리가 꼭 알고 외우고 써 먹어야 하는 표현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세계각국어로 된 "감사합니다."를 소개해 드립니다.

읽고 발음하시어 입에 달고 다니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겠습니다.

 

1)Thank you!(English):땡큐!(영어)

2)Merci! (French): 메르흐 씨!(불어)

3)Gracias! (Spanish):그라시아스!(스페인어)

4)Danke! (German): 당케!(독일어)

5)Tak! (Danish): !(덴마크어)

6)Dank U! (Dutch): 당크 유!(네덜란드어)

7)Kiitos (Finnish): 키이토스!(핀란드어)

8)Evhkhahreesto! (Greek):에피크하리스토!(그리스어)

9)Grazie! (Italian): 그라찌에!(이태리어)

10)Takk! (Norwegian): ! (노르웨이어)

11)Dziekuje<dzhenkooyeh>! (Polish): 지엥꾸에!/드젠꾸예!(폴란드어)

12)Obrigado! (Portuguese): 오브리가아도! (포루투갈어)

13)Spahseebah! (Russian): 스빠시이바하! (러시아어)

14)Hvala<hvahiah>! (Serbo-Croatian): 흐발라!/흐바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

15)Tack! (Swedish): ! (스웨덴어)

16)Sieh-Sieh! (Chinese): 씨에 씨에(중국어)

17)Ahri gadoh gozaimas! (Japanese):아리가도 고자이마스!(일본어)

18)Kahp Kun Kahp! (Thai): 캅쿤캅! (태국어)

19)Shu Krahn! (Arabic):슈크란!(아랍어)

20)Terima Kasih! (Malay-Indonesian):떼리마까시!(말레이-인도네시아어)

21)Shu Cria! (Indian):슈크리아!(인도어)

22)“감사 합니다. <Gahm Sah Hahmnida> (Korean)(한국어)

 

 

부족한 저에게 40년 동안 스포츠외교인생에서 하나님이 표적으로 채워주신 7가지 감사 충만한 영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두 번째 섬김 적용이며 보혜사 성령님의 9가지 열매 중 그 첫 번째인 사랑(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의 으뜸은 사랑이라.

 

[고린도 전서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세계각국어로 표현하는 "사랑해요."는 국경과 인종,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 가장 아름다운 말입니다.

정말 "천만 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사랑해~"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걸." "사랑 받는 그 마음보다 더 신나는 건 없을 걸."

모든 것에 "감사하고 사랑해요."를 입으로 이야기 해 봅시다.

해외 전도여행 가서도 아래 50개 국어로 예를 들면

"사랑해요. 터키: 쎄니 쎄비요룸, 튀르키예!."(I love you, Turkey!)라고 그 나라에 도착해서 그 나라 사람에게 말해 보세요.

아무리 꺼칠한 사람에게도 우정과 애정이 꽃 피울테니까요 .
나의 국제관계, 나의 40년 스포츠외교와 국제친선필살기이기도 합니다.
미련 없이 공개합니다.

 

[사랑과 우정이 순식간에 싹트는 50개국어로 말한 "사랑해요" 표현법]

 

<중국어> Wo ai ni (워 아이니)/ Mandarin(만다린어)

Ngo oiy ney a (능오 오이 네이 아)/Cantonese(광동어)

<대만어/Taiwanese)>Wa ga ei li. (와가 에이 리)

<영어> I love you. (아이 러브 유)


<
독일어> Ich liebe dich. (이히 리베 디히)

<스위스-독일어>Ich lieb Di.(이히 리브 디)/Swiss-German


<
불 어> Je taime. (즈 뗌므)/ Je tadore.(즈 따도르)


<
일본어> (あい)している. (아이시떼이루)/Aishiteiru

<태국어> Phom rak khun (프홈라쿤: 여성에게)

Chan rak khum (찬 라쿤: 남성에게)


<
아랍어> Wuhibbuka. (우히부카)

Ana belubek(아나 벨루벡: 여성에게)

Ana belubak(아나 벨루박: 남성에게)

<이란어: Persian> Doo-set daaram. (-세트 다아람)

<레바논어> Balubak. (발루박)

<모로코어> Ana moajaba bik. (아나 모아자바 빅)


<
버마어> Chit pa de(칫 파 데)


<
터키어> seni seviyorum(쎄니 쎄비요룸)


<
러시아어> Я Вас Люблю. (야 바스 류블류)

Ya tebya liubliu(야 떼부야 류블류)

<우크라이나어> Ya tebe kahayu. (야 떼베 카하유)

<벨라루시아어> Ya tabe kahayu. (야 떼베 카하유)

<필리핀어> Mahal kita. (마할 키타)


<
스페인어> Te amo. (떼 아모)

Te quiero. (떼끼에로)

<이태리어> Ti amo.( 띠아모)

<라틴어> Te amo.(떼 아모)


<
헝가리어> Szeretlek (쒜레뜰렉)

<스웨덴어> Jag alskar dig(야 엘스카르 디이)

<노르웨이어> Jeg Elsker Deg. (옉 엘스케르 덱)

<핀란드어> Mina rakastan sinua. (미나 라카스탄 니누아.)

<폴란드어> Kocham Ciebe (코참 씨에베)

<체코어> Miluju te. (밀루에 떼)

<불가리아어> Obicham te. (오비참 떼)

<그리스어> Sagapo. (싸하뽀)

<세르비아어> Volim te. (볼림 떼)

<크로아티아> Volim te. (볼림 떼)

<루마니아어> Te iubesc/Te ubesk. (떼 이우베스크)

<슬로바키아어> Lubim ta. (루빔따)

<슬로베니아어> Ljubim te. (류빔떼)

<스와힐리어> Mimi nakupenda wewe (미미 나쿠펜다 웨웨)

Ninapenda wewe(니나팬다 웨웨)

<타이티어/Tahitain> Ua here Vau ia Oe. (우아 헤레 바우 이아 오에)

<하와이어> Aloha wau ia oi. (알로하 와우 이아 오이)


<
네덜란드어> Ik hou van jou. (이크 하우 반 야우)

<덴마크어> Jeg Elsker Dig. (옉 엘스케르 딕)


<
에스페란토> Mi amas vin. (미 아마스 빈)

<포르투갈어> Gosto muito de te. (고스뜨 무이뜨 드 뜨)/ Eu te amo.(에우 떼 아모)

<인도어/Hindi> Hum Tumhe Pyar Karte hae. (훔 뚬헤 프야르 까르떼 하에)

<인도네시아어> Aku cinta pada mu(아쿠 씬따 빠다 무)
Aku cinta mu (
아꾸 찐따 무)
Saya cinta padamu. (
사야 씬따 빠다무)

<말레이지아어> Saya cintakan mu/Saya cinta mu (사야 씬타() )

Saya cintatan mu(사야 씬따딴 무)/A ku cinta padamu(아꾸 씬따 빠다무)

<캄보디아어> Soro lahan nheeah. (쏘로 라한 느히이아)

<베트남어> Anh ye u em. (안 예우 엠: 여성에게)

Em ye u anh. (엠 예우 안: 남성에게)

<아이스랜드어> Eg elska tig.(이그 엘스카 티그)

<아일랜드어> Taim Ingra leat. (타임 잉그라 레앝)

<히브리 어/Hebrew> Ani ohev otha. (아니 오헤브 오트하: 여성에게)

Ani ohev et otha. (아니 오헤브 에트 오트하 : 남성에게)

<아프리카어> Ek het jou lief. (에크 헤트 조우 리에프)

<한국어> Saaraang Heyo.(사랑해요)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3. 2. 5. 11:49

[우리들교회 주일예배말씀요약 (202325) 마태복음 51절에서4절로 (八福山에 갑시다 김양재 담임목사)]

 

 

<마태복음 5:1~4>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 온지라(And seeing the multitudes, he went up into a mountain: and when he was set, his disciples came unto him)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And he opened his mouth, and taught them, saying,)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y that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Prologue>

 

팔복 많이 받으세요-

디베랴 서쪽 막벨라 하틴산으로 추정(팔복산)

 

1.   제자가 돼야 한다(1~2)

 

가르치고 고치고 전파하는 사역을 하신 예수님

애아도’(헬라어)-보다, 알다, 관찰하다, 자각하다.

산이 없는 구릉 지역(평지 수훈)

누가-인자(평지에서 서서 가르치심)

6-제자들 가운데 12명을 사도로 세우시고 이 설교를 하셨다.

산상수훈 교훈은 마태가 시간 순으로 기록했다.

제자들이 3년 동안 양육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떠날 때도 자리다툼을 했다.

무리를 떠나 주님을 좇음(내리막이 아닌 오르막길이었다)

가장 큰 복은 말씀이 들리는 복으로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무리 가운데 있으면 먹을 것, 선물을 줄 텐데 무리가운데에서는 들을 말씀이 없다. 예수님께 올라가야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는 미완료과거로써 계속 팔복의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뜻이다. 제자훈련의 말씀은 혁명적 복의 개념으로 제자훈련에 역점을 두었다. 나는 교회를 통해, 또 소그룹을 통해 제자훈련을 했다.

나오기만 하면 신체적, 심리적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다. 모세도 그랬다. 감히 접근도 못했는데 천국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께 영육간에 친근하게 말씀이 들렸다.

 

(적용 질문)

 

Q1. 예배의 자리인 팔복산 현장 예배당에 올라와 예배하고 있나?

Q2. 팔복산에 올라오기를 방해하는 더 편하고 좋은 자리는 어디인가?

 

주일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반주를 자청했다.

결정적 순간에 내 신앙을 평가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2.   가난한 자가 가는 곳이다(3)

 

팔복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다. 원문은 시편 1장에 복 있는 사람과도 일맥상통한다. 복은 마카리오스, 바라크, 아쉐레로 표현된다

팔복은 인생의 일반적 한계를 넘어서는 단계에 이루어 지는 것이다

福이란 눈에 보기에 가득한 상태, 만족한 상태를 이른다

우리 주님은 입을 열어 제자를 가르치시자 마자, 복이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자’, ‘가난한 자 심령에서인데 일반적 생각으로는 복과 가난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복이 텅 빈 가난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아닌,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계속되는 모든 복들을 풀어주는 열쇠가 가난한 자의 복이다.

팔복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장차 이루어질 것에 대한 것을 가르쳐준다.

헬라어(가난; 페네스 물질적 개념) 프토코이(심령의 가난, 절대적 가난-웅크리다의 어원에서 유래)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를 수 있고 알아도 인정하지 않고 이를 물고 버티려고 하는 사람은 열등감으로 교만할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내가 가난해 져야지/ 하는 능동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데 성품으로 겸손한 것은 심령의 가난을 모르니까 겸손한 것이 아니다. 이미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다. 가난을 경험하지 않으면 겸손할 수 없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나는 곤고한 사람이고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다

시편69 다윗의 고난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자였지만 자신의 총명과 사랑스러움으로 사울에게 쫓겨 다녔다. 아들의 모함과 배신과 역모로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 인생은 이미 제자의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솔로몬은 하늘을 찌르는 열심으로 성전을 지었다. 그러다가 1000명의 여자를 거느리다가 여호와로부터 돌아섰다. 가난은 물질의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합리적인 유다가 행위 구원을 외친다.

내 자신의 가난에 절망하고 깨달았다면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하고 어디든지 쫓아가야 한다.

내가 주님의 뜻대로 못 사니 심령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주님 자체가 상급이 되었는데도 그렇게 못사니 심령이 가난하다.

날마다 애통할 일이 생긴다. 이혼을 하면 안 되고 죄인 줄 알면서도 안 되는 내 안의 것을 보면서 절망하는 것이 축복이고 상급이다.

우리는 가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가난하게사람들이 없어지게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환경으로, 심령이 가난하게 하기 위해서 괴롭히는 가족들로 인해서 내가 축복받은 인생이다.

 

(적용 질문)

 

Q1. 가난을 통해서 진짜 영생을 누릴 진짜 부자로 사시겠습니까?

택자로 돌이키기 위해 육이 무너지는 사건이 온다

Q2. 여러분은 심령이 가난하나? 그냥 가난한 가? 아니면 부자인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나?

Q3. 여러분이 가난해서 하나님이 쩔쩔매시면서 설명하시는 음성이 들리나?

 

 

3.   애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4)

 

애통은 상황이나 슬픈 장면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다. 압살롬이 죽었을 때 다윗이 슬피 울었을 때 요압이 그 눈물을 이해하지 못해 왕을 반역한 자를 위해서는 울고 충성한 자를 왜 미워하냐?’고 물었다. 다윗의 눈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육적으로 가난하면 원통해 한다. 질병에 걸려도 다 원통이다. 이게 너 때문이다. 자식, 남편, 시어머니 때문이다. 원통이 절통이 된다. 원통은 병이 낫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지옥을 산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사람의 위로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위로를 못 받는다. 나와 너의 구원을 위해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흘리는 눈물이 애통함이다. 죄 때문에 울어야 되는 것이 base로 깔려야 한다. 죄인이라는 말이 도무지 나와는 상관이 없다. 안 들리니 비난하고 조는 것이다. 병 낫기를 바라고 자기 고통에 갇혀 슬퍼하는 자와 같이 있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내 죄를 보면 애통하게 되고, 안 되는 그 사람 때문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 리라) 갈수록 그와 똑같은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이 나온다. 나에게 애통을 가르쳐주는 최고의 공로자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끈질긴 죄성을 계속 인정해야 하는데 자기 열심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어렵다

야곱은 20년 동안 자기 죄를 못 보았다. 하나님은 야곱의 문제를 제거하신 것이 아니다. 타락된 본성, 교만이 내 원수이다. 내 죄를 아는 것이 기도 응답이다.

캄캄한 곳에서 싸우시고 환도 뼈를 위골 시키셨다. 하나님을 붙들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내가 가게 하지 않겠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름을 물으셨다. why? 야곱이라고 대답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이겼다라는 의미의 이스라엘이 되었다

이기적인 이 세상에서 내 이기적인 죄성을 보라고 똑같은 에서와 라반을 붙여 주셨는데 미워했다. 내가 똑같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악함은 내 악함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내가 똑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다.

파라 칼레오(성령의 위로하심)-내 죄를 위해 애통하고 직면할 때 성령이 안아 주시고 위로해주신다.

애통이 크면 위로도 크다. 사람의 위로는 너무 얄팍하다.

토마스 왓슨-“복음적인 애통은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것이다.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상처가 난 사람과 같다. 모든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 애통이다참된 회개자는 낱낱이 죄를 고백하고 슬퍼한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위로, 성령의 위로를 받게 된다

 

(적용 질문)

 

Q1.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애통하나? 소중한 것을 상실해서 애통하나? 자신 때문에 절망하여 애통하나?

Q2. 공동체 안에서 위로를 받기만 하나? 위로를 전하는 통로가 되고 있나?

 

<공동체 고백>

박사님, 교수님인 여자. 맞선 상대를 100명을 만났다. 남편감은 중소기업의 영업팀장 이라고 듣고 결혼했다

남편이 다 맞춰주어서 결혼을 했는데 연봉을 속였더라. 돈을 안 가지고 왔다. 시어머니는 남자가 다 그렇다고 했다. 남편은 가난했었다. 그냥 싸웠다. 온라인으로 남편에게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따라고 했는데 알아보니 고졸. 아들이 이 아빠를 너무 좋아한다.  속인 자보다 속은 자가 죄가 더 큰 것이다

 

<Epilogue>

 

1)  가장 큰 복은 말씀이 들리는 복으로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2)  예수님께 올라가야 말씀을 들을 수 있다.

3)  결정적 순간에 내 신앙을 평가하기에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4)  팔복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다. 팔복은 인생의 일반적 한계를 넘어서는 단계에 이루어 지는 것이다

5)  福이란 눈에 보기에 가득한 상태, 만족한 상태를 이른다

6)  팔복 받은 자에게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며 이 세상이 아닌,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7)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계속되는 모든 복들을 풀어주는 열쇠가 가난한 자의 복이다.

8)  팔복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장차 이루어질 것에 대한 것을 가르쳐준다.

9)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를 수 있고 알아도 인정하지 않고 이를 물고 버티려고 하는 사람은 열등감으로 교만할 수 있다.

10)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내가 가난해 져야지하는 능동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데 성품으로 겸손한 것은 심령의 가난을 모르니까 겸손한 것이 아니며 이미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다.

11) 가난을 경험하지 않으면 겸손할 수 없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나는 곤고한 사람이고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다

12) 내 자신의 가난에 절망하고 깨달았다면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하고 어디든지 쫓아가야 한다.

13) 내가 주님의 뜻대로 못 사니 심령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14) 주님 자체가 상급이 되었는데도 그렇게 못사니 심령이 가난하다.

15) 날마다 애통할 일이 생긴다. 이혼을 하면 안 되고 죄인 줄 알면서도 안 되는 내 안의 것을 보면서 절망하는 것이 축복이고 상급이다.

16) 하나님이 축복하신 환경으로, 심령이 가난하게 하기 위해서 괴롭히는 가족들로 인해서 내가 축복받은 인생이다.

17) 육적으로 가난하면 원통해 하는데 질병에 걸려도 다 원통이고 이게 너 때문이며 자식, 남편, 시어머니 때문이기에 원통이 절통이 되어 원통은 병이 낫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지옥을 산다.

18)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사람의 위로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위로를 못 받는다.

19) 나와 너의 구원을 위해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흘리는 눈물이 애통함으로 죄 때문에 울어야 되는 것이 base로 깔려야 한다.

20) 죄인이라는 말이 도무지 나와는 상관이 없어 안 들리니 비난하고 조는 것인데 병 낫기를 바라고 자기 고통에 갇혀 슬퍼하는 자와 같이 있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21) 내 죄를 보면 애통하게 되고, 안 되는 그 사람 때문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 리라) 갈수록 그와 똑같은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되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이 나온다.

22) 나에게 애통을 가르쳐주는 최고의 공로자가 되는 것이며 자신의 끈질긴 죄성을 계속 인정해야 하는데 자기 열심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어렵다

23) 야곱은 20년 동안 자기 죄를 못 보았으며 하나님은 야곱의 문제를 제거하신 것이 아니며 타락된 본성, 교만이 내 원수이므로 내 죄를 아는 것이 기도 응답이다.

24) 이기적인 이 세상에서 내 이기적인 죄성을 보라고 똑같은 에서와 라반을 붙여 주셨는데 미워한 것은 내가 똑같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25) 상대방의 악함은 내 악함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것인데 내가 똑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다.

26) 파라 칼레오(성령의 위로하심)-내 죄를 위해 애통하고 직면할 때 성령이 안아 주시고 위로해주신다.

27) 애통이 크면 위로도 크지만 사람의 위로는 너무 얄팍하다.

28) 토마스 왓슨-“복음적인 애통은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것으로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상처가 난 사람과 같은데 모든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 애통이다

29) 참된 회개자는 낱낱이 죄를 고백하고 슬퍼하는 것이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위로, 성령의 위로를 받게 된다

30) 속인 자보다 속은 자의 죄가 더 큰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8. 29. 13:46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10(“재림과 종말에 대하여”/ 신앙기초양육 제8과/종결편)]

 

 

 

 

1.   재림과 종말(신앙기초양육 제8/종결편)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성경에 남아 있는 마지막 예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여러 번 말씀하신 약속이며 초대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소원입니다. 재림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완성되어 지며 이 세상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천국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재림의 때와 시기는 정확히 모르지만 지구상에 복음이 다 전파되면 생각하지도 아니한 때에 공중에서 울리는 천사장의 나팔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재림에 대한 말씀을 바로 알고 믿으면 고달픈 우리의 삶이 한결 밝아지고 피곤해 하는 자들의 팔을 힘 있게 붙들어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상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해지면 예수님 재림 약속

 

1)  재림에 대한 약속

 

성경은 주님의 재림이 성경에 남아 있는 마지막 예언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

 

*요한복음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서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사도행전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재림과 종말의 시기와 관련하여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몇 가지 경우에 대하여:

 

2)  노아의 시대와 비교하여 짐작해 볼 수 있는 그 때란? >

 

*마태복음 24:36/39/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떄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장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3)  복음전파와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그 때란?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게 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 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1-6절에 어떤 이에게는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도적같이 임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데살로니가전서 5:1-6/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 할지라.

 

4)  새 하늘 새 땅이 열린다

 

-만약 종말의 시기를 알게 되면 세상은 all-in, 뒤죽박죽, 질서파괴위험.

 

-도적같이 오시리니 항상 깨어 있으라.

 

-17,000종족 중 3,500종족이 미개척 종족 임.

 

-거룩함과 속함의 구별은 이단으로 빠지는 길 임.

 

-칭찬 받을 구 있는 믿음을 지키고 기다려라.

 

-늘 오직 깨어 근신 할지라.

 

5)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

 

말세가 임박하면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아 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 유혹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이에 대해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누가복음 21:8-9/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21:34-36/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진리의 말씀은 지성보다 영성이 더 중요함.

 

*히브리서 11:13-16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에서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히브리서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는 나그네

 

-나그네로서의 삶의 자세-고통을 대하는 삶의 자세

 

-‘돌아 가셨다는 본향으로(하나님의 나라)-하나님과 영원한 교제가 천국의 상급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믿음;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사는 믿음; 감사하지 못했던 믿음 회개하고 부끄러워하는 그런 삶의 자세가 감동적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고통도 애환도 질병도 없다.

 

다음의 성경구절을 통해 주의 재림이 계속해서 늦추어 지고 있는 이유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무신론자였던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말은 지구의 종말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불신앙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으로 이 표현에서 성경적이고 올바른 종말론적인 삶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 봅시다.

 

-Martin Luther 200년 전에 일기 속에 종말이 오더라도 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변함 없이 충성하며 섬기겠다고 함.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진(승천) 에녹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종말론적인 삶의 태도를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 5:21-24/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자세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입증하신다

 

-에녹과 엘리아는 영생한 2명이다.

 

재림과 종말에 대한 교리는 성경 속을 흐르는 진리의 큰 물줄기 가운데 하나를 이룰 정도로 중요합니다.

 

특히 신약성경에는 마지막 때에 대한 언급이 300회 이상 나오는데 이것은 25절마다 한 번의 빈도로 기록된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약에서 세상 종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곳이 하나도 없다. 믿음이나 예수의 보혈, 심지어 사랑에 관한 말씀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관한 교리이다라는 어느 성경학자의 말은 매우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말하면 냉소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종말을 순전히 개인의 죽음 정도로만 국한시키거나,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는 진부한 전설로 간주합니다.

 

기독교가 이 천년 동안이나 말세를 강조해 왔지만, 아직도 지구는 건재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세상 종말에 관하여 이야기하면 광신자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기독교 이 천년 역사를 돌아보라고 권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종말과 재림에 대한 믿음이 무시되었던 시대 치고 교회가 쇠퇴하거나 부패하지 않는 때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재림과 종말에 대한 믿음이 교회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생명 지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종말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 치고 정신 차려서 신앙 생활 잘해 보려고 하는 경우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건전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절대 종말에 대하여 회의적이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벽돌이야기란 교회 예배 보는 일은 기쁨 줄 수 있는 일이란 이야기 비유

 

인정의 유혹, 출세의 유혹, 정욕의 유혹, , 지위 학벌 따위는 본향을 생각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이며 결국 . 타협과 사람 이용하는 일 역시 . 하나님 부르시는 자리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자기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리는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사도 바울: ‘내가 알았던 모든 것(career, 시민권, 영예 등)이 배설물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존귀하였다.” 한 알의 씨앗이 썩어야 열매를 맺게 된다. 교회일, 집안 일 모두 다 거룩함이 깃들여 있다-신앙과 (직장/집안)생활은 하나다.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

 

-목사가 먹사되고 교회가 개회가 된다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 된다-요리사 이야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달걀을 뒤집어야 계란후라이도 제대로 된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영광 받고 기쁨 충만하게 된다

 

-“예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기도 하리라. ~”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고,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으며~

 

-톨스토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

1. 지금 2. 만나고 있는 사람 3. 하고 있는 일

 

-줄로 지어진 구역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8. 21. 21:13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8(“기도의 특권”, 기도는 일이며, 일을 하며, 일을 하게 한다/신앙기초양육 제6)]

 

오늘 주일설교말씀(사도행전 25:23~27/성령의 위엄)3가지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1) 위엄은 과시가 아니라 자신의 수치를 드러낼 때 주시는 것이다.

2) 한 영혼을 살필 때 위원이 주어지는 것이다.

3) 무리한 일을 분별할 때 위엄이 주어진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정직함은 있어도 위엄은 따라오지 않는 것이며 세상의 위엄은 허상이고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죄악이고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낼 때 우리의 죄를 직시하고 주님께 회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기도의 특권(기도는 일이며, 일을 하며, 일을 하게 한다/신앙기초양육 제6)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다. 그리고 신앙이 있든 없든 간에 사람들은 기도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람 속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기 대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대상을 잘 몰라서 나무나 돌과 같은 것에 빌기도 하고 다른 종교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빌기도 한다.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대상을 찾는 것이다.

 

 

 

 

1)  기도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 내 마음을 토하므로 하나님과 깊이 잇는 사귐을 이루며, 그 분의 도우심과 역사를 경험해 나가는 것이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라)

 

(1) 구하고 받는 것(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 하는 것(출애굽기 33: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3)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토하는 것(시편 62:8):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그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파난처시로다

(4) 주님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누가복음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토하는 기도는 마음에 평강을 주심으로 응답하신다

 

*하나님께 섭섭한 것도 바닥까지 다 토하라 그리하면 마음 속에 평강이 임한다

 

2)  기도해야 할 이유

 

(1) 하나님과 깊이 있는 사귐(시편 25:14)

(2) 거룩하여짐(디모데전서 4:5)

(3) 죄로부터의 승리(마태복음 26:41)

(4) 넘치는 응답, 하나님의 능력 경험(에베소서 3:20)

(5)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됨(예레미아 33:3)

(6) 기쁨과 평강(빌립보서 4:6, 7)

 

3)  어떻게 기도하나?

 

(1) 절차: 빌립보서 4:6, 7/ 구하지 전의 태도(예상치 못한 고난을 만났을 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 구할 때의 태도(믿고 감사함으로 아뢰라) > 구한 후의 태도(평강으로 기도응답때까지 채워 주신다)

 

(2) 기도의 종류

-찬양(히브리서 13:15): 하나님의 자신의 속성와 성품을 기리는 것

-자백(요한일서 1:9):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시인하는 것

-감사(데살로니가전서 5:18): 당신에게 주신/이루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5:16 Be joyful always, 5:17 Pray continually, 5: 18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중보(야고보서 5:16):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영혼구원을 위해 이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알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남을 구제하는 자는 당신 가정에 구제가 미치고 윤택하게 하면 윤택하게 된다)

-간구(빌립보서 4:6, 7): 내 자신의 필요를 위한 기도

 

   *스스로에게 과도한 자는 궁핍 하리라

   * 나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라 나머지는 덤으로 오리니

 

4)  기도는 100% 응답되나? (영성을 위하여 가장 아름다울 때 응답하신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듣고 계신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분명히 반응하시고 응답하신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면 기도 응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해에서 벗어나라.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분명히 응답하고 계신다

 

(1) 좋다(yes)

(2) 안된다(no): 나쁘고 보복적인 것에 대하여 너나 잘하세요’ ‘네가 바꾸어라본인이 바뀐다

(3) 좀더 기다려라(wait/in His time)

(4) 그건 내 문제다. 내가 알아서 하마(on His own)

(5) 네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마(change)

(6) 기도만 하고 있지 말고 스스로 뭔가를 해라 네가 할 일이다(do your part)--->구하고 찾고 두드려라

 

*특별한 기도 응답*

 

(예레미아 33:3):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에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네게 보이리라

(에베소서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5)  기도 응답 받으려면?

  

(1)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요한복음 16:24)/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

(2) 믿음으로 기도할 것(마테복음 21:22)

(3) 말씀을 따라 기도할 것(사무엘하 7:27)/성경구절에 따라

(4)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것(요한일서 5:14. 15)/날마다 큐티하면 영적으로 성장하여 영적인 상태에 이른다

(5) 죄를 자백하고 버릴 것(시편 66:18)

(6) 주님과 연합된 삶(요한복음 15:7)/주님이 알아서 응답해 주신다

(7) 강청과 인내의 기도(누가복음 11:8)/가장 좋을 때 주실지리니

(8) 구하고 행할 것(마태복음 7:7~11)

(9) 열매 맺는 삶에 드려질 것(요한복음 15:16)/다른 영혼을 위해 살 때, 그 응답이 더 빠를 지어다

 

(요한복음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결론:

 

(1) 믿고 구하는 자에게는 응답하신다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일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여호와를 부르라

(3)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 덮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때를 따라 은혜를 주신다

(4) 기도 방법: ‘하나님 아버지 저 왔어요. 하나님 제 기도 들으셨죠?’ 하면 하나님이 메꿔 주시고 고쳐 주신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8. 14. 14:13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7(“교회란 무엇인가?” 성령의 기초 양육 제5과 정리)]

 

오늘 주일설교말씀(사도행전 25:10~22/성령의 상소) 내 죄가 내 고난보다 크다는 구속사가 깨달아 지지 않으니 지겨운 괴롭힘 속에서 지옥을 사는 것이므로 내 죄를 회개하면서 지겨운 괴롭힘을 통과할 때 성령의 상소의 기회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인생이 지겨운 괴롭힘의 연속인데 하나님을 모르고 내 자신을 모르니 자기 문제는 안 보이고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은혜롭습니다.

 

 

(우리들교회 양평-남양주 부부목장 장면)

 

 

1.   교회란 무엇인가? (신앙기초양육 제5)

 

 

(1) 예수를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좋은 교회를 만나면 신앙의 방황이 끝난다

 

(2) 한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그 시간으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회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자녀에게 교회라 신앙의 어머니며 요람입니다.

 

(4) 마치 엄마 품을 떠난 갓난아이가 살아남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도는 교회를 떠나서 건전한 신앙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5) 지상의 교회가 비록 완전하지 못하고 종종 통탄할 만큼 타락을 하는 일이 많지만,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의미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6) 우리가 교회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상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며,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7)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의 몸에 접붙여진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교회가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교회란 바로 우리 삶의 현장이며, 생황 영역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1)  교회란 무엇인가?

 

(1) 교회와 교회당의 구분: 가정과 집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2) 교회란 말은 에클레시아’(Ecclesia)라는 헬라어로 불러냄을 받은 우리들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나 기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고린도전서 1: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3) 교회는 같은 신앙고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마태복음 16:16~1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게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니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4)  하나님의 백성(베드로전서 2:9~10) / 하나님의 가족(에베소서 2:14~18) /그리스도의 몸(고린도전서 12:7~11) /거룩한 성전(에베소서 2:19~22 /그리스도의 신부(에베소서 5:25~27)

 

(5) 우주적 보편교회(Universal Church: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 백성들이 지체로 연결)와 지역교회가 있으며 한 몸 안의 유기체로서 연합(에베소서 4:3~6) /다양성(고린도전서 12:7~11) /상호 연관성(고린도전서 12:14~26)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 7대 교회 분포도)

 

 

2)  교회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가?

 

(1) 천국시민으로서 성장과 훈련(예배, 양육, 훈련, 교제하는 공동체)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to the fellowship, to the breaking of bread and to pray.)

 

(사도행전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는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Day after day, in the temple courts and from house to house, they never stopped teaching and proclaiming the good news that Jesus is the Christ.)

(2) 세상은 섬김(선교, 구제, 섬기는 공동체)

(요한복음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마태복음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사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3)  교회의 직분과 역할

(1) 교회에 새우신 직분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2) 그들이 하는 역할은 어떤 것인가?

 

 

(에베소서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사도행전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사고 하나님의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4)  우리의 책임

 

(1) 모이기를 힘쓴다(히브리서 10:24~25)

(2) 하나 되기를 힘쓴다(에베소서 4:2~3)

(3) 주님께 드려라(고린도전서 9:14, 6: 6)

(4) 인도자들의 말씀에 순종하고 삶의 본을 받으라(히브리서 13:7, 17)

(5) 지도자들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라(골로새서 4:3~4)

 

신앙생활에 있어서 바른 교회생활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기도하듯,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하여 노력 하듯, 좋은 교회를 만나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잇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허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생각없이 이사해 놓고 아무런 부담없이 교회를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교회를 먼저 정하고 그 교회에 맞게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 백 번 천 버 더 지혜로운 일입니다.

 

교회는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곳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중히 여기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열심히 교회생활 하기를 힘쓰십시오.

 

학교생활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잘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듯이 교회생활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잘해야 예수를 발 믿을 수 잇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8. 7. 16:04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6(“예수님은 누구신가?” 성령의 기초 양육 제4과 정리)]

 

(브라질 Rio de Janeiro 코르코바드(Corcovado) 언덕에 선 거대한 예수 그리스도상 앞에서)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신앙기초양육 제4)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같은 신앙고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그분과 관련된 신앙고백위에 세워졌고 교회의 모든 것은 그분의 가르침,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고 하는 엄청난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분에 대한 신앙고백이 없는 모음은 아무리 거룩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교회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견해와 태도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과 관계된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리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의 형체를 위하여 예수님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지니셨습니다.

 

그는 <사람이나 하나님>(man-God)인 동시에 <하나님이신 사람>(God-man)인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인성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고 사람에게서 태어났다(갈라디어서 4:4)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마태복음 2:1)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성장 하듯 성장하셨다(마태복음 2:52)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 예수님은 주리셨다(마태복음 4:2)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앉으셨다(요한복음 4:60)

-하루를 고되게 가르치신 후에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셨다(마가복음 4:38)

-슬픔에 젖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다(요한복음 11:35)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다(히브리서 4:15)

 

(2) 예수님의 신성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이여’ ‘라고 부르셨다(히브리서 1:8)

-예수님께서 자신은 하나님과 똑 같은 공경을 받으실 분이라고 하셨다(요한복음 5:23)

-제자들이 바다와 바람을 순종하게 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본 후 절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다(마태복음 14:22~33)

-의심 많은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져 본 후에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요한복음 20:28)

-말씀(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셨다(요한복음 1:1, 14)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하셨다(마태복음 28:18)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셨고(마테복음 8:23~27), 각색 병을 고치셨고(누가복음 4:40), 귀신을 쫓으시고(누가복음 4:33~36), 죽은 자를 사리셨다(요한복음 11:43~44)

-자신이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셨다(마가복음 2:3~12)

-인간에게 생명과 충성한 삶을 주시는 분이다(10:10)

 

2)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굶주린 군중을 먹이셨으며, 사회의 버림 받은 자와 죄인들에게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의 일술로부터는 그 말씀을 듣는 자를 놀라게 하는 지혜와 능력의 말씀이 흘러 나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원수들에 의해 일반 죄수의 죽음과 같은 죽임을 당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활과 가르침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가 세상에 오신 가장 위대한 목적은 죽으심부활하심승천하심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이사야 선지자는 그릇 행하여 가기 제 길을 가는 양 같은 우리의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고 죽으실 것을 예언했다(이사야 53:5~6)

-예수님은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야만 될 것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마태복음 16:21)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사람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으셨다. 우리 죄를 완전히 기억치 않으시며 우리와의 교제를 회복케 하셨다(히브리서 10:17)

 

(2)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죽은 후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셨다(요한복음 2:19~22)

-예수님의 부활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확인되었다(고린도전서 15:3~8)

-부활로 인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이 입증되었고 사도들은 이 사실을 전했다(로마서 1:4. 사도행전 4:33)

-기독교의 전파가 곧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입증한다(고린도전서 15:14~19)

 

(3) 예수그리스도의 승천하심

 

-제자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구름 속으로 올리어 가셨다(사도행전 1:9~11)

-예수님이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해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오르셔서 우주만물을 주관하시고 계시며(에베소서 1:20~23) 지금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로마서 8:34)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오시고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시고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고 우리를 다시 맞이하러 오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한 일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처소가 없으셨습니다. 감사와 찬양 밖에 드릴 수 없는 처소가 천국인 것입니다.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고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