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9. 11. 27. 09:43

[우리들교회2019 1124일 주일말씀 요약과 어록 Epilogue(사도행전 5: 12~ 16/성령의 표적)]

 

 

(사도행정 5:12~16)

12절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Prologue>

 

여러분들은 여러 가지 표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목자는 아내가 너무 화가 나게 해서 곡예운전을 했는데 살려주셨다고 한다

아버지를 3년 더 살려달라고 했는데 또 살려주셨다고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서 성령의 두려움이 생겼다.

그 두려움을 통해 교회가 정화되니 도리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호호 불어 가신다

무서운 두려움을 주시더니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이번엔 표적을 보여주신다

어떻게 표적이 나타나나 보겠다

 


<
말씀요약>


1.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다

 

아나니아(Ananias)와 삽비라(Sapphira)는 죽었지만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다

사도들의 손을 통한 성령충만과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한 사탄충만이 충돌할 때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보여주신다

사도들은 위협함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치유와 표적과 기사가 자신들의 손을 통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자 응답이 와서 민간에 치유와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왜 사도들의 손을 통한 치유와 표적과 기사가 일어 났을까?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을 통하지 않고 어부출신제자들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성령의 강한 역사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니까 그 지도자들이 제자들을 당장 옥에 가두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옥에서 풀어주시고 다시금 성령의 권능의 설교를 하게 하셨다

예수님 당시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오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라고 약속을 하셨다

주님이 생전에 만든 제자의 수는 1,000명 미만에 불과했지만, 사도들은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보다도 더 많은 결신자를 얻게 하였는데, 이러한 일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오셔서 제자들의 손을 통하여 이루신 일이다.

이는 복음전파를 위해 성령이 주신 결과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 힘을 실어주셔야 했다

회개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받은 사도들의 부지런하고, 깨끗하고 따뜻한 손으로 믿는 자들을 더 많게 하셨다.

율법적으로 의로움과 깨끗함이 아니라 따뜻하게 대하는 사도의 손은 회개의 손이다

쇠 말발굽이 찌르는 듯한 회개의 손이 필요한 것이다

불화와 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으니 상처회복이 목적이 아니었다

내 속에 울고 있는 아이가 있는 것인데 상처 치유를 좇는 기도가 아니며 그것은 진정한 성령사역이 아닌 것으로 성령이 효과적으로 나를 비추어 남 탓이 아닌 내 죄를 직면하여 느끼고 나아가면 성령은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다

표적은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으로 예수를 안 믿으면 병 낫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부드러운 새 영과 새 마음을 갖도록 하심으로 나를 연단하시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진리의 성령이 나의 악을 직면하게 하신다

착하다고 부르짖다가 남편을 통해 연단을 하셨는데 치사하고 악하고 미워하는 마음과 교만이라는 내 죄를 심각하게 직면하게 하셨다

고난이 없으면 착하다고 부르짖다가 지옥 갈 인생이었다

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진정한 안식이 없다

내 죄에 직면하여 괴로우니 예수님께로 인도되는 것이다

상처만 보다 보면 기적의 손만 보게 되는데 이는 완전한 치유가 아니다

내 탓은 나를 보는 것으로 사도를 통항 따뜻하고 부지런하고 깨끗한 손을 보게 하신다

고난 중에 내 악을 직면하는 것은 내 안에 내 죄를 보고 내 오장육부의 더러움을 먼저 직접 직면하는 것이다

주님 제자들도 그렇지만 만인 제사장 시대에는 초원-마을-목자 등 교회 리더십의 손을 통해 성령의 표적을 보여 주신다

성령의 능력으로 유대인들이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하니, 초대교회로 발전하였다.

우리들교회공동체에도 일어나는 표적들은 기적이 목적이 아니라 내 죄를 보게 하시려는 성령의 표적이다.

상처가 치유되고 병 낫기만을 바라는 기도는 응답이 되지 않으면, 남 탓, 하나님 탓만 하게 되는 것이다.

남 탓만 하는 기도는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적용)

-여러분의 회개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 표적과 기사가 있나?
-(
회개를 통해)여러분의 손은 부지런하나, 깨끗하나, 따뜻하나?


 

2.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여야 한다

유무상 여부에 관계 없이 세상에서 한 마음 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표적과 기사는 한 마음 한 뜻 공동체를 통해 나타난다

믿는 사람이 한 마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 오신 때에는 솔로몬 행각에 모여 한 마음이 되었다

사도 공동체와 백성공동체가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

한 마음 되는 사람은 모이기를 즐겨 한다

이러한 사람은 한 마음 한 뜻을 품는다

성령의 Coinonia를 깨달아야 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과 은혜와 마음 합쳐 하나가 되는 Coinonia는 성령의 열매, 지혜, 은사로써 성령의 교통하심과 교제를 의미하는데 Salom이나 Hosanna처럼 Coinonia도 원어로 쓰인다

Coinonia는 비싼 값을 치러야 이룰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믿음의 한 마음 한 뜻으로 실생활에서 실천적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표적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이적이다

표적과 기사가 풍성해야 교회가 살아난다

성령이 공동체를 통하여 증거해 주시니 악을 직면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두려움은 초대교회 사도들에게 영적인 권위를 주고 유대인들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게 하였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앞의 앉은뱅이를 고치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히자, 성도들은 핍박자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합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사도들을 감옥에서 풀어나게 하셨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으로 한 마음이 되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비결은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그러한 공동체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일컬어 ‘Coinonia“공동체라고 한다.

진정한 교제가 있는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있는 우리들 교회공동체(고후1:13)를 말한다.

 

(적용)

-한 마음이 안 되는 곳은 어디인가?
-
가정인가, 목장인가, 회사인가?

3. 상종하는 자가 없게도 하신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서로 상종(相從)하지 않았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표적의 목적이신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아 주께로 가지 않는 것이다

본인이 주께로 나아가지 못하니까 상종이 안 되는 것이다

나를 죽인 원수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공의를 내가 실천하게 되는 것은 내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내 탓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내 속의 오장육부의 악을 보게 하시니 찔려서 그런 나를 주께 나아오게 하는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므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서로 상종하는 것은 공동체의 자연적인 현상이다.

상종은 아교풀로 딱 붙어 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용을 잘 하니 칭송은 해도 가까이 가기는 싫어한다

같은 방향이 아니니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며 아교풀 같은 지체도 아니고 사랑하는 지체도 아니니 우리그릇처럼 다루는 사람이 된다

끼리끼리만 찾고, 믿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다

늘 평행선을 달리는데 끼리끼리니까 모르는 것이며 거리감이 있고 악이 있는 것이다

솔직하지 못한 것을 성령 받은 사람은 안다

이 세상이 너무 좋아 주께로 나아가기 싫은 것이다

이적을 베푸니 사도들을 욕할 수는 없었다

칭송은 하는데 감히 상종하기는 싫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것이다

호의로 칭송은 하지만 거리를 두고 상종은 하지 않는다

유대인 모임과 그리스도인의 모임에는 문화충격으로 인해 함께 하기에는 거북한 것이다

우리들교회의 자기 죄 패 오픈은 문화충격이 되는 것이다

말씀 없이 살던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두 가지가 유형이 있는 것이다

성도들이 사역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 기도다

그 당시 불신자들은 성도들과 상종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그들은 뒤에서 믿는 자들을 칭송하였다.

왜 불신자들이 성도들을 칭송하였을까?

불신자들은 사도들의 모습을 안 보는 것 같아도 유심히 보고 있었고, 그들은 부지런하고, 깨끗하고, 따뜻한 사도들의 손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세상에서도 필요한 믿는 자들의 모습임을 명심해야 한다.

 

(적용)

-여러분은 상종하는 아교풀 같은 지체가 있나, 없나?
-
나를 뒤에서 칭송하는 것 같나, 뒷담화하는 것 같나?

4.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아졌다

성령의 열매가 있으면 전염되게 된다

진정한 성령의 공동체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 주신다

모두가 칭찬하던지 모두가 욕을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회개와 믿음에는 남녀구별이 있을 수 없다

교회를 떠나가는 자가 있어도 믿고 주께로 나오는 사람이 더 많게 하신다

우리들교회는 십자가, 예수님, 고난이 축복임을 외쳐왔다

표적을 보여주셔서 매주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게 하신다

사업이 아니라 영혼구원이기에 애통해 하는 것이다

상종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늘 있어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며 복음이 확실할수록 말씀묵상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어둠에 빛이 들어오니 충돌이 있는 것이며 전적으로 성령의 표적인 것이다

초대교회시대에 신유의 은사가 강력하여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들은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일까 하고 침대와 요에 누워 사도들에게 나와 모두가 다 나음을 입었다고 하였다.

성경도 믿음의 분량대로 읽게 하신다

본다고 하기에 죄가 있음을 알게 되며 육적 소경보다 영적 소경이 더 어려운 것이다

그 시대 모두가 가난하여 치유와 신유의 은사를 표적으로 병 고침의 이적을 주신 것인데 종류와 장르와 수준 별로 예수님을 믿으며 병 고침을 받았다

치유능력이 대단하여 주변지역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질병환자들이 몰려와 병 고침을 받았던 것이다

사도들의 성령사역으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니,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회개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초대교회에 이러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된 것은 사도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우리들교회를 통하여 쓰러져가는 가정이 살아나는 기적을 매일같이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교회공동체를 통하여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가는 약속(1:8)을 이루어 가시고 계신다.

지경이 넓어지는 비결은 우리들교회 목장이 6개월 단위로 편성되어 공동체교제를 지속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성령의 표적을 일으키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적용)

-여러분들의 복음은 지경이 점점 넓어지고 있나? 그대로 있나? 좁아지고 있나?

불평하나?

 

<Epilogue>

 

회개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받은 사도들의 부지런하고, 깨끗하고 따뜻한 손으로 믿는 자들을 더 많게 하셨다.

율법적으로 의로움과 깨끗함이 아니라 따뜻하게 대하는 사도의 손은 회개의 손이다

쇠 말발굽이 찌르는 듯한 회개의 손이 필요한 것이다

불화와 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으니 상처회복이 목적이 아니었다

표적은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으로 예수를 안 믿으면 병 낫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부드러운 새 영과 새 마음을 갖도록 하심으로 나를 연단하시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진리의 성령이 나의 악을 직면하게 하신다

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진정한 안식이 없다

내 죄에 직면하여 괴로우니 예수님께로 인도되는 것이다

상처만 보다 보면 기적의 손만 보게 되는데 이는 완전한 치유가 아니다

내 탓은 나를 보는 것으로 사도를 통항 따뜻하고 부지런하고 깨끗한 손을 보게 하신다

고난 중에 내 악을 직면하는 것은 내 안에 내 죄를 보고 내 오장육부의 더러움을 먼저 직접 직면하는 것이다

우리들교회공동체에도 일어나는 표적들은 기적이 목적이 아니라 내 죄를 보게 하시려는 성령의 표적이다.

상처가 치유되고 병 낫기만을 바라는 기도는 응답이 되지 않으면, 남 탓, 하나님 탓만 하게 되는 것이다.

남 탓만 하는 기도는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유무상 여부에 관계 없이 세상에서 한 마음 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표적과 기사는 한 마음 한 뜻 공동체를 통해 나타난다

한 마음 되는 사람은 모이기를 즐겨 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과 은혜와 마음 합쳐 하나가 되는 Coinonia는 성령의 열매, 지혜, 은사로써 성령의 교통하심과 교제를 의미하는데 Salom이나 Hosanna처럼 Coinonia도 원어로 쓰인다

Coinonia는 비싼 값을 치러야 이룰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믿음의 한 마음 한 뜻으로 실생활에서 실천적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표적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이적이다

표적과 기사가 풍성해야 교회가 살아난다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비결은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그러한 공동체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표적의 목적이신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아 주께로 가지 않는 것이다

내 속의 오장육부의 악을 보게 하시니 찔려서 그런 나를 주께 나아오게 하는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상종은 아교풀로 딱 붙어 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늘 평행선을 달리는데 끼리끼리니까 모르는 것이며 거리감이 있고 악이 있는 것이다

솔직하지 못한 것을 성령 받은 사람은 안다

이 세상이 너무 좋아 주께로 나아가기 싫은 것이다

유대인 모임과 그리스도인의 모임에는 문화충격으로 인해 함께 하기에는 거북한 것이다

성도들이 사역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 기도다

성령의 열매가 있으면 전염되게 된다

회개와 믿음에는 남녀구별이 있을 수 없다

성경도 믿음의 분량대로 읽게 하신다

환경은 나를 연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세팅이시다

주님이 허락하신 환경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사는 삶이 거룩한 삶이다(큐티 말씀)

벼랑 끝으로 몰리는 환경을 통하여 나의 완악함을 깨닫게 하신다

내 악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깨끗한 손, 부지런한 손, 따뜻한 손이 표적이 되어 병이 안 나아도 내 죄에 찔려서 예수님께도 나아가는 것이 성령의 표적과 기사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26. 20:36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11)Beijing2008올림픽 총결산 및 국제스포츠외교동향실록총괄(47)]

 

 

1. Beijing2008 가는 길

 

2008년 제29회 베이징하계올림픽대회는 중국어로는 ‘2008년 베이징하계 올림픽운동회라고 불리며, 2008 8 8일부터 8 24일까지 17일간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개회식은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숫자인 ‘8’(발음이 중국문화에서 재물과 복 그리고 행운을 상징하는 단어와 동일함) 4개가 겹치도록 2008 88일 오 후 8시로 정하여 새 둥지 모양으로 디자인된 베이징국립경기장에서 거행되었다.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개회식은문명과 화합’이라는 주제하에 화려한 불 꽃놀이, 율동적인 춤, 중국 오페라(희극), 현란한 동작의 중국 고유무술인 쿵 푸, 판다곰을 포함한 다양한 곡예묘기 등 중국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5,000년에 빛나는 광대무변의 중국문화와 전통, 그리고 개방과 현재의 약속을 표출하는 퍼포먼스(Performance)의 진수를 선보였다.

 

개회식 총 연출은 중국의 최고 영화 감독으로 평가되고 있는장예모감독이 맡았다. 개회식 당일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하여 37mm포열이 장착된 대공 포가 인근 산 지역에서 하늘을 향해 발사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대공 포는 지붕 없는 베이징 주경기장 상공 하늘에 비구름이 몰려올 경우 베이징기상청 주도하에 은 요오드 화 물질과 기타 화학약품이 함유된 포탄들을 구름을 조준해 발사함으로써 개회식장 하늘을 강제적으로 맑게 만들겠다는 의지와 절절함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베이징2008올림픽과 중국역사유산을 접목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만리장성의 베이징인근 성곽을 중국 자원봉사자들이 13km가 넘는 길이의 형형색색 천으로 제작한올림픽 용을 펼쳐 들고 베이징올림픽성공을 다짐하는 행사도 가졌다.

 

 

 

올림픽 용은 당시 IOC회원국 205개 국의 국기를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2008 6 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IOC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된 이라크 NOC에 대한 자격정지조치에 따라 베이징올림픽 참가국 수는 최대 204 개가 될 전망이었다.

 

IOC의 이 같은 조치는 올림픽헌장 제28 9(.....만일 해당국가의 헌법, 법률, 기타 시행령 또는 정부나 관련기관이 내린 행정처분 이 NOC의 활동, 또는 NOC의 의지력 발휘나 표출을 방해할 경우 IOC 집행위 원회는 해당국 내의 올림픽운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해당 NOC에 대하여 자격 정지 및 취소결정을 내릴 수 있다.....)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라크정부는 당시 부패척결이란 미명하에 이라크NOC와 가맹경기단체(축구협회) 등을 일방적으로 해체시키고 관련된 모든 권한을 이라크청소년체육 부로 잠정 이관키로 한데 대한 IOC의 조치로 해석되었다.

 

베이징2008올림픽의 축구(예선경기 등은 여러 개 도시에서 분산 실시), 요트(산동성 칭따오/청도 시), 10km 마라톤 수영(신규종목), 승마(마장마술경기/홍콩) 등 의 종목이 다른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이로써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Melbourn1956올림픽(승마종목은 호주의 외국 경주마 관련 까다로운 검역규정으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분산 개최)에 이어 2개의 NOC(중국 및 홍콩)가 개최하는 사상 두 번째 올림픽이 되었다.

 

올림픽 공식프로그램(2001년 유치 당시 기준) 28개 종목(2012년 런던은 26 개 종목/야구, 소프트볼 제외)에서 총 302개 금메달(남자 165, 여자 127, 혼합 10)이 주인공을 찾아갔다.

 

베이징2008올림픽 마스코트는푸와인데, 그의 이름은뻬이뻬이’(beibei), ‘징징’(jingjing), ‘환환’(huanhuan), ‘잉잉’(yingying), 그리고니니’(nini)로서 “Beijing huanying ni”(베이징은 당신을 환영합니다)의 영문표기 중 Beijing에서 beibei jingjing huanying에서 huanhuan yingying을 그리고 ni에서 nini를 만들어내어 중국 각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들의 특성을 가미하여 5가지 오륜 색으로 치장시킨 것이다.

 

 

그래도 2008 20주년생일을 맞이하는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호돌이의 위용(?)과 인기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았다.

 

베이징2008올림픽 D31(1개월 앞으로)되던 날인 7 8 IOC베이징올림픽 IOC 조정위원회(12/위원장: Hein Verbruggen 네덜란드 IOC위원)는 베이징2008올림픽조직위원회(BOCOG) 2일간의 총정리회의를 마치고 올림픽 준비현황에 대하여흥분 감과 기대감의 감지란 표현으로 최종종합평가를 발표하였다.

 

또한 국제방송센터(IBC)와 메인프레스센터(MPC)개관식에도 참가한 Verbruggen IOC 조정위원장은베이징올림픽의 압도적인 성공을 위하여 대회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은 올림픽참가 차 베이징에 도착할 다양한 참가자들에 게 약속한 제반 서비스를 철저하게 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방송관계자들과 풀어야 할, 이미 알려진 약간의 숙제가 남아 있으며 베이징의 대기오염에 대한 임시방편의 여파 등은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BOCOG과 함께 점검해본 많은 주요 분야들은 만족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그리고각국 선수단(선수들과 임원진), 관람객, 그리고 각국 취재진이 이곳 에 도착하여서 모든 것들을 그들 스스로의 육안으로 보게 되면, 감명받게 될 뿐만 아니라 중국인민들이 보여줄 환영의 열기에 더 더욱 감동받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라고 마무리하였다.

 

이러한 IOC조정위원장의 공식총평 속에는 베이징 당국이 풀어야 할 방송관련 내용의 미진함에 대한 간접적 아쉬움이 들어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다음 날인 7 9 BOCOG은 다음달 베이징올림픽기간 동안 천안문광장과 다른 주요 장소에서 생중계방송이 가능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당시 불과 얼마 전까지 고수해왔던 선별적 녹화중계방침에서 선회한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서 중국당국이 안전 및 사회문제를 이유로 미국과 유럽의 TV녹화중계방침과 관련 된 일련의 내부방송검열조치실시계획을 사실상 완화 내지 철회함으로써 당초 서방세계가 우려했던 점이 해소된 셈이었다.

 

이에 따라 베이징2008올림픽기간 중 베이징 거리는 물론 천안문광장에서도 생중계가 허용되어 인터넷중계도 하게 됨으로써 베이징대회는열린 올림픽의 장이 되었다. 한편 당시 Rogge IOC위원장은 베이징올림픽대회에서 IOC의 반 도핑노력을 재삼 강조하면서우리는 약물사용을 박멸하는 데 최전방에 서 있다.”라고 굳은 결의를 보여주었다.

 

올림픽선수촌이 개장된 2008 7 27일부터 대회 마지막 날인 8 24일까지 IOC WADA(World Anti-doping Agency) BOCOG(Beijing Organizing Committee for the Olympic Games)과 함께시간불문 장소불문하고 선수들에 대한 약물검사를 실시하였다.

 

다시 말하면 강화된 도핑규제정책 의 일환으로 선수들은 선수촌, 원거리에 위치한 연습장시설, 모든 올림픽경기 장 등에서 무제한 검사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불시검문회오리는 IOC의 총괄지휘하에 WADA는 올림픽경기장 외 의 장소에서, BOCOG은 올림픽경기장 내에서시합 전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올림픽참가선수들이 초긴장상태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사상 초유의 진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태극전사들이여 겁먹지도, 긴장하지도 말지어다.” ‘불문곡직 검사 받으러 가자고 하면 그냥 따라가면 되고, 검사 받기 싫으면 그냥 돌아다니지 않으면 되고, 또 아예 금지약물을 소지하거나 먹지 않았으면 되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냥 편안하고 의연하게 대응하였으면 바랐고 그 결과 한국선수단은 약물복용 양성반응 건수가 전무한 모범선수단으로 평가 받기도 하였다.

 

2. Beijing2008올림픽과 스포츠외교현장

 

전세계 약 12억 명이 지켜본 개회식에 이어 개최된 베이징2008대회는 올림픽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여줌으로써 올림픽대회가지구촌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불후의 위상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중국은 베이징2008올림픽대회를 통해 휘황찬란의 극치를 보여줌으로써 떠오른 중국의 위상과 위용과 위엄을 유감없이 세계만방에 과시하였다.

 

중국의 올림픽 경기력(금메달 51, 은메달 21, 동메달 28)은 지금까지 세계 스포츠의 지존으로 군림하여왔던 미국, 러시아 등의 초강대국을 포함하여 지구촌 204개 참가국(205 NOCs 중 브루나이만 불참) 모두를 중국 안방으로 불러들여 제압함으로써 세계 스포츠 계의 판도를 단숨에 재편성하여 놓았다.

 

同一介世界, 同一介夢想(One World, One Dream)’이란 구호(Slogan)로 중국은 지 구촌 세계를 하나로 묶어 놓았으며, 중화의 꿈도 실현시켰다. 중국은 베이징2008올림픽을 ‘Green Olympics, Hightech Olympics, Peoples Olympics이란 슬로건으로 무장하여 실제로 공해와 오염으로 찌들었던 베이징 상공에푸른 하늘과 흰구름이란 이름의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 전세계 올림픽가족에게 선사하였다.

 

개폐회식에 선보인 첨단기술력, 대회기간 중 한치 의 오차도 없었던 IT기술은 ‘Hightech Olympics에 들어맞는 놀라운 중국기술력의 세계정복이었다.

 

대회의 성공적 성과를 통해 중국인민들에게 자신감, 자부심, 자긍심을 심어 줌은 물론 중국 5,000년 역사상 가장 강한 중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줌으로써 베이징2008올림픽은 명실상부한 ‘People’s Olympics’이 되는데 손색이 없었다.

 

역대 최고의 올림픽으로 칭송된 바 있는 서울1988올림픽 20주년을 맞이한 베이징2008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은 광활한 만주벌판과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종횡무진하며 주름잡았던 광개토대왕(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후예들답게 베이징(현도, 탁군, 연경)벌판과 중국대륙에 한민족의 웅장한 기개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역대 올림픽참가사상 가장 훌륭한 성적(금메달 13, 은메달 10, 동메달 8개 총 31개 메달을 획득하여 세계 G7, 아시아 A2 위상 확립)을 올려 ‘5(상쾌, 유쾌, 통쾌, 명쾌, 경쾌)의 한국’/ ‘O.K Korea!’ 의 쾌거를 대한민국 국민에게 선물하였다.

 

한편 2004년 아테네올림픽 한국 태권도의 영웅 문대성 선수가 베이징2008올림픽에서는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IOC선수위원 겸 IOC위원선출투표에서 최다득표(3,220)를 하여2의 베이징대첩의 주인공이 되었다.

 

대한민국 스포츠외교사에 큰 획을 그어 주었다.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운 쾌거였다.

 

문대성 선수와 함께 IOC선수위원 겸 IOC위원에 선출된 나머지 3명의 주 인공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초대 IOC선수위원 겸 IOC위원을 역임하였던 러시아의 수영선수 출신 Alexander Popov(재선), 독일 펜싱선수 출신 Claudia Bokel, 그리고 쿠바의 배구선수 출신 Yumilka RuizLuaces 등 총 4명 이 선수출신 IOC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문대성 한국최초 선수출신 IOC위원과 함께)

 

 

(좌로부터 Alexander Popov 러시아 선수출신 IOC위원, 필자, Popov아내)

 

 

베이징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개최된 제120 IOC총회(8 5~7)에서는 IOC집행위원 및 IOC신임위원 2명 선출을 위한 투표가 있었다.

 

임기가 만료된 Gunilla Lindberg(스웨덴) IOC부위원장 후임에는 베이징2008올림픽개최국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되어 단일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중국의 Zaiqing Yu(IOC 집행위원: 2004~2008)가 선출되었다.

 

국제스포츠기구 할당 당연 직 IOC집행위원 4명에는 Mario Vazquez Rana (ANOC 회장), Denis Oswald(하계올림픽종목 국제경기연맹연합회 회장 겸 국제조정경기연맹 회장), Rene Fasel(동계올림픽종목 국제경기연맹연합회 회장 겸 국제아이스하키협회 회장) Frank Fredericks(신임 IOC 선수위원장 겸 나미비아 IOC위원) 등이 선출되었으며, 새로운 여성 할당 IOC집행위원으로 Nawal El Moutawakel(1984 LA올림픽 400m 육상 허들종목 금메달리스트 겸 모로코 청소년체육장관 겸 2012 올림픽 IOC평가위원장 겸 모로코 IOC위 원), 그리고 IOC재정분과위원장인 Richard Carrion(푸에르토리코 IOC집행위 원/재선)이 각각 선출되었다.

 

당시 전세계 올림픽운동의 내각 격인 IOC집행위원회위원 총 15(위원장 1, 부위원장 4, 집행위원 10) 중 아시아대륙 출신 집행위원은 3(일본의 Igaya IOC부위원장, 중국의 Zaiqing Yu IOC부위원장, 싱가포르의 Ser Miag NG IOC 집행위원 등 이었다.

 

이들은 IOC 내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아쉽게도 한국출신 IOC집행위원은 2008 8 15일 특별 사면된 바 있는 김운용 전 IOC부위원장(IOC위원 사퇴) 이후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신임 IOC위원 2명은 NOC자격으로 IOC선수위원장 겸 IOC 집행위원을 역 임한 Sergey Bubka 우크라이나 NOC위원장과 국제경기연맹(IF)자격으로 Ugur Erdener(터키) 국제양궁연맹(FITA) 회장(2019년 현재 IOC 1부위원장)이 각각 선출되었다.

 

(Prof. Uğur ERDENER와 함께)

 

 

한편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도시 결정투표를 하게 될 제123 IOC총회 개최도시로는 남아공의 Durban이 홍콩을 67: 32로 누르고 선정되었다.

 

당시 Jacques Rogge IOC위원장은 ‘IOC총회가 아프리카대륙에서 개최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사결과 1938년 제38 IOC총회가 이미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미 개최된 바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 아프리카대륙에서 처음 개최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프레젠테이션에서 Sam Ramsamy 남아공 IOC집행위원이아프리카 처음 개최라는 호소문안을 검증 없이 그냥 인용한 것 같다.

 

베이징2008올림픽 폐회식 당일 오전에 개최된 임시 IOC총회에서는 4명의 신임 선수출신 IOC위원(문대성, Alexander Popov, Claudia Bokel, Yumilka Ruiz Luaces)을 정식으로 선출하였다.

 

한편 2008 80세로 정년 퇴임하는 Roque Napoleon Munoz Pena(도미니카 IOC위원/200911일부터 IOC명예위원) Hein Verbruggen을 신임 IOC명예위원으로 선출하였다.

 

Hein Verbruggen(IOC위원으로 사임직후부터 IOC명예위원으로 활동/네덜란드)은 국제사이클연맹(UCI)회장, 두 번의 IOC위원,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장 겸 베이징2008올림픽 IOC조정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년인 2011년보다 3년 앞서 베이징 IOC임시총회에서 IOC 위원 직을 조기 사임하였다.

 

덴마크 NOC위원장 겸 IOC위원인 Kai Holm과 세네갈의 Youssoupha Ndiaye IOC위원은 2008년 정년 퇴임하였고, IOC총회는 이들에게 올림픽훈장을 수여하였다.

 

따라서 2009 1 1일부로 IOC위원정원(2008 8 24일 현재 111) 115명에서 109(2008년 말 2명 정년퇴임)으로 줄어들게 되어 2009 10월 초 제121차 코펜하겐 IOC총회에서 선출될 수 있는 신임 IOC 위원은 최대 6명까지 충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었다.

 

IOC위원 후보추천 지명위원회 위원장인 Francisco Elizalde(필리핀 IOC위 원)에 따르면 각국 NOC, 국제경기연맹(IF) 자격 등으로 추천되어 IOC위원 후보대기자 명단에 등재된 사람은 늘 150 여명을 상회하고 있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좌로부터 CK Wu대만IOC위원, 이연택 KOC위원장, 필자, Francisco Elisalde 필리핀 IOC위원겸 IOC위원선출위원장)

 

 

2008년 말 현재 가장 많은 IOC위원을 보유한 나라는 스위스(5)와 이탈리아(5)이다. 네덜란드는 당초 4명이었다가 Verbruggen Els Van Breda Vriesman 국제하키연맹(FIH) 회장(IF회장 당연 직 IOC위원)의 사임으로 2명이 되었었다.

 

다음은 2010년 말 당시 2~3명의 IOC위원을 보유한 국가이다.

 

중국(3/홍콩 1명 포함), 영국(3), 러시아(3), 스웨덴(3), 호주(3), 독 일(3), 미국(2), 이집트(2), 모로코(2), 브라질(2), 캐나다(2), 멕시코(2), 일본(2), 핀란드(2), 프랑스(2), 헝가리(2), 우크라이나(2 ), 쿠바(2), 대한민국(2)

 

당시 이론상 한국의 경우 최대 5명까지의 IOC위원을 보유할 수 있는 국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즉 개인자격 1(이건희 IOC위원/2017년 자진사퇴-향후 선출가능성), NOC자격 1(당시 미 보유-현재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국제연맹자격 2 (당시 조정원 WTF 총재<현재 선출자격연령초과> 및 강영중 BWF 회장<임기 만료>로 향후 가능성 시기상조), 선수자격 2(1/문대성, 동계선수/전이경) 등이었지만 현재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NOC자격 IOC위원, 유승민 대한탁구협회회장이 선수자격 IOC위원(2016~2024) 2명의 IOC위원이 활동 중이다.

 

 

3. 베이징올림픽과 스포츠외교현장

 

 

우리 모두가 다 최고입니다. (The best of us.// Le Meilleur est en Nous.)

 

베이징올림픽대회기간 동안 IOC본부 호텔로 사용되었던 베이징호텔 내에 위치한 IOC관련 행사장 전면에는 위와 같은 문구가 걸려있었다.

 

폐회식 전날인 8 22일 국제사이클연맹(UCI)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임기만료 직후 UCI 수석부회장으로서 국제연맹자격 IOC위원에 재 선출(2006~2011 ) Hein Verbruggen 네덜란드 IOC위원 겸 GAISF회장 겸 SportAccord 재단 이사장은 다음날 아침(8 23) IOC임시총회에서 현역 IOC위원직 사임(8 23일 사임 직후 IOC명예위원으로 선출됨과 동시에 2008년 베이징2008올림픽대회 연구임무를 부여 받음)을 염두에 두고 본인이 위원장으로 재직했던 2개의 IOC 분과위원회(2008년 올림픽평가위원회 및 베이징2008올림픽조정위원회) 위원들을 한자리에 초청하여 고별오찬회동을 갖기도 했다.

 

 

(Lausanne소재 SportAccord< GAISF>회장 집무실에서 필자와 함께 IOC평가위원회 수장으로 동고동락하였던 Hein Verbruggen<작고>과 함께)

 

 

이 자리에서 Verbruggen 위원장은 본인의 UCI 회장시절 경험했던 ‘*자전거도핑이란 내용의 기상천외하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었다.

 

일반적으로 도핑이란 선수가 비합법적으로 일확천금 식 경기력 향상을 꾀하기 위 해 인체에 약물이나 본인이 최고기량을 발휘할 때의 신체상태(최 우량 헤모글로빈 함유)에서 혈액을 채혈하여 보관하였다가 기술적으로 처방하여 주기적 또는 경기직전 투여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일명자전거도핑이란 통상 6.9 의 자전거무게를 5.9㎏짜리의 가벼운 사이클로 특별 제작한 후 사전에 자전거 안장과 두 바퀴를 지탱해주는 삼각형태의 철제몸통 내부에 1리터(1) 정도의 물을 주입하여 얼려서 조립한 후 사이클경기 시작 전 자전거 무게계측 시 얼음무게까지 환산하여 5.9㎏짜리 자전거를 6.9㎏짜리로 둔갑시켜 자전거 계체 과정을 무사히 통과케 한다. 이어서 경기가 시작되어 도로를 달리면 얼었던 물이 상온에서 서서히 눈에 뜨이지 않게 녹아 흘러내려 자전거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게 된다. 레이스가 중반을 지나 최종 스퍼트(Spurt) 할 지점에서부터는 다른 선수들보다 1㎏이나 가벼운 자전거로 상대적으로 힘을 덜 들이고 가속하여 유리하게 경기를 마무리한다는 가히천재적인 수단도 동원된 바 있었다는 일 화를 소개해주었다.

 

베이징2008올림픽에서는 올림픽사상 가장 많은 4,770회의 도핑검사가 실시 되었다.

 

이 중에는 3,801회의 소변검사와 969회의 혈액검사가 포함되었고, 소변검사에서는 EPO테스트가 집중적으로 실시되었으며, 혈액검사는 인간성장호르몬(HGH: Human Growth Hormone)테스트가 심도 있게 실시되었다.

 

도핑검사는 7 27일부터 8 24일까지 29일간 IOC의무위원회의 감독하 에 베이징조직위원회(BOCOG)와 세계 반 도핑기구(WADA)가 검사에 공동 참여하였는데, 불시검사 이외에 일반적으로 각 종목별 경기 직후에는 최고상위 성적을 올린 5명과 추가로 낙점된 2명이 각각 검사대상으로 분류되어 테스트를 받았다.

 

베이징2008올림픽의 도핑검사횟수(4,770)는 아테네2004올림픽 때(3,600 )보다 32.5% 증가하였으며, 41개 도핑검사실험실(34개는 베이징, 나머지 7개는 다른 경기가 개최된 지방도시들에 위치)은 수거된 혈액과 소변샘플을 표준형 도핑검사소 시설로서 완벽하게 처리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Jacques Rogge IOC위원장은 8 24일 대회 폐회식 날 아침 개최된 제120 IOC 임시총회에서 베이징대회가 상향된 경기력 수준과 올림픽운동의 보편화를 이룩했다고 평가하였다.

 

올림픽대회사상 최다인 87 NOC가 메달을 공유하였으며, 여자선수참가율이 45%(남자 55%)로 올림픽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40개를 상회하는 세계신기록과 120개가 넘는 올림픽신기록, 전세계의 더 많은 나라와 지역에 올림픽이 중계되었으며, 올림픽사상 최초로 지구촌 디지털 중계시대를 열었다. 시청률도 사상최대였다.

 

베이징2008올림픽은 환경문제들에 대 한 인지도를 괄목할만하게 증대시키기도 하여 에너지소비, 지속발전 가능한 물 소비, 쓰레기처리, 대기오염도 등에 대한 분야에도 중요한 진전을 이룩하였다.

 

베이징2008대회의특별한 순간의 개인목록으로는 사상최대인 8개의 금메달을 획 득한 주인공인 미국의 수영선수 Michael Phelps, 자메이카의 육상 3관왕이자 세계 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Usain Bolt(우사인 볼트의 여자친구는좌사인 Nut’라는 우 수개소리가 인터넷의 지존 국인 한국의 한 네티즌이 회자시켰을 정도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였음)는 잊지 못할 선수들이라고 Jacques Rogge IOC위원장이 거명하였다.

 

또 감동적인 장면으로는 분쟁당사국 출신 경쟁선수들의 포옹, 불행한 부상의 주인공이자 개최국 중국의 육상 허들영웅이며 前 올림픽 선수권자인 Liu Xiang 의 안타까운 모습, 그리고 개인적 참담한 비극과 역경을 극복하고 흘린 환희 의 눈물 등을 꼽았다.

 

Jacques Rogge 위원장은 이어 이러한 모든 감동적이고 감격스러운 기억은 이제 뒤로 하고 중국에 작별을 고한다고 언급하였다.

 

당시 Rogge IOC위원장의 마지막 맺음말은 역시 미래지향적이었다.

“We will cherish these moments, but we cannot simply file away our experiences. As we look to Vancouver 2010, London 2012, and Sochi 2014, we must always remember our responsibility to keep the Olympic dream alive for future generations in all parts of the world. Let us leave China with a renewed dedication to our task. Thank you, colleagues. Thank you, China!”

 

한편 베이징2008대회 개회식 전에 개최된 IOC집행위원회는 당초 2개로 예상되었던 2012년 제1회 청소년동계올림픽대회 공식후보도시로 베이징대회 개최국인 중국에 속한 신청도시인 하얼빈을 예우상 탈락시킬 수 없었든지 이례적으로 4개 신청도시(하얼빈/중국,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쿠오피오/핀란드, 릴리함메르/노르웨이) 모두를 공식후보도시로 선정하였다.

 

4개 공식후보도시들은 2008 11 IOC집행위원회에 공식유치파일(보고 서)을 제출해야 하며, 이 보고서파일 내용에 근거하여 IOC집행위원회는 개최도시투표에 맞추어 또 한 번의 결선투표용 추천절차를 밟게 되었다.

 

개최도시는 2008 12월에 오스트리아의 Innsbruck로 선정되었다.

 

베이징2008올림픽 개회식 전에 개최되었던 제120 IOC총회 본회의에서 Prince Imran 말레이시아 IOC위원은 발언을 통해 지난 2007 7월 과테말라에 개최된 제119 IOC총회에서 결정된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도시 선정절차 및 과정을 상기시키면서 향후 올림픽 개최지선정에 따른 개선안을 개진하였다.

 

Imran IOC위원은평창과 소치 두 후보도시에 대한 IOC평가위원회 최종평가 보고서내용은 그냥 읽어서는 실감나게 이해하기 어려워 오히려 보고서내용해석이 마치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과 진배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진정으로 올림픽개최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투표권자들인 IOC위원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느끼고, 체험하고, 냄새 맡고, 맛을 보아 야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방법론으로 IOC IOC위원들을 그룹별로 나누어 정해진 규정에 근거하여 현장방문을 실시하도록 촉구하였다.

 

(콸라룸푸르 소재 말레이시아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집무실에서 Prince Imran IOC위원과 함께)

 

 

답변에 나선 Jacques Rogge IOC위원장은 “IOC위원들의 올림픽유치 후보도시 방문 건은 이미 1999 IOC개혁방안을 통해 금지되었으며, 2002 IOC임시 총회에서 후보도시 방문 불허방침을 재 결의한 바, 지금 다시 번복할 수 없노라.”고 불가방침을 확실히 하였다.

 

또한 올림픽유치 후보도시들에게 IOC위 원들에 대한 직접홍보기회를 최대한 부여 하기 위하여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도시 선정(2009 10 2일 제121차 코펜하겐 IOC총회 첫날) 13주 전에 IOC위원 전체와 결선 진출 4개 후보도시들(시카고, 도쿄, 마드리드, 리우데자네이루)을 모두 함께 IOC 본부가 있는 Lausanne에 초청하여 사전 연결고리로서 특별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기회를 추가로 마련해주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부언하였다.

 

물론 이러한 추가 프레젠테이션기회 부여방안이 후보도시방문을 허용하자는 부류와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룹 간의 적절한 절충방안으로 작용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추가 프레젠테이션실시와 연관되어 제작될 영상물에 소요되는 엄청난 추가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 이래저래 올림픽유치후보도시들의 유치비용은 상향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IOC위원들의 올림픽유치후보도시 방문 건은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유치 스캔들 이후 IOC로서는뜨거운 감자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IOC평가보고서 결과가 투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뿐만 아니라 IOC위원들의 현장방문이 금지된 상태에서 결정된 Sochi2014가 직면한 여러 가지 심각한 당면 문제를 IOC가 떠안고 가야만 한다는 현실적 어려움 등을 감안할 때 IOC도 향후 점차 통제되고 제한적이고 IOC윤리규정 안에서 그룹별 현지방문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하였다.

 

한편 2008 9 6일부터 9 17일까지 12일간 베이징에서 2008년 패럴림픽 대회가 개최되었다.

 

1960년 로마에서 주로 척수부상 장애인선수들을 위한 올림픽스타일 게임이 효시가 되어 시작된 장애인올림픽은 1976년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장애인그룹들도 함께 참여한 명실 상부한 국제스포츠종합대회로 태동하였다.

 

같은 해인 1976년에는 제1회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가 스웨덴에서 개최되었다.

 

1960년 로마에서 개최된 하계장애인올림픽대회에는 23개국 400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그 이후 장애인올림픽운동이 확산일로에 힘입어 지난 2004년 아테네대회에는 136개 국에서 3,806명이 참가하는 괄목할만한 신장세를 보여주었다.

 

서울1988올림픽과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대회부터는 올림픽대회와 동일한 경기장에서 장애인올림픽(Paralympics)이 개최되어 왔다.

 

2001 6 19 IOC IPC(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 간의 협약서가 체결되어 2012년 올림픽유치과정부터 올림픽개최지로 선정된 도시는 반드시 장애인올림픽도 함께 개최토록 의무조항으로 된 바 있다.

 

2008 8 30(토요일) 공식 개장한 베이징 패럴림픽 선수촌은 베이징2008올림픽선수촌을 개조하여 전세계에서 참가한 각국 장애인올림픽 선수단을 맞이하였다.

 

이 개조한 선수촌은 148개 국가 및 지역에서 참가하는 7,383명의 손님들(이들 중 선수 수는 4,099)을 위한 임시 거처로 사용되고, 참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고층 아파트형태의 선수촌 건물들의 1층에서 3층까지만 사용하며 각종 장애인편의시설들과장벽 없는 시설물이 곳곳이 설치되어 있었다.

 

당시 IPC위원장은 Sir Philip Craven MBE(영국 IOC위원)이었다.

 

13회 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하여 2008 91 13개 종목 에 132명의 한국선수단(선수 78)이 베이징을 향해 출국하였다. 베이징2008올림픽에서 1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종합 7위를 차지한 한국올림픽선수단과 같은 숫자인 금메달 13개를 획득하여 종합 14위를 목표로 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었다.

 

 

4. 베이징올림픽 이후의 국제스포츠 계의 동향과 2009Olympic Congress

 

베이징2008올림픽 이후 국제스포츠 계는 단체별 수장들의 재신임 내지 물갈이 소식이 들렸다. 205 NOC들 중 규모와 역할기능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면서 정부의 예산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을 정도로 재정이 탄탄한 미국올림픽위원회 (USOC/현재 USOPC) 위원장이 교체되었다.

 

베이징2008올림픽종료 시까지만 USOC위원장직을 맡겠다고 천명하고 임기 만료한 Peter E. Ueberroth는 올림픽역사상 최초의 흑자올림픽을 기록한 1984 LA올림픽조직위원회(LAOOC) 위원장을 역임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세계 스포츠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고 조양호 제2대 평창2019조직위원장 초청으로 방한하여 평창2018조직위원회 임직원대상 특강 후 함께/좌로부터 Mrs.Ueberroth, Peter Ueberroth, 필자)

 

 

2009년 말 후임으로 선출된 세계 제일(아직까지) NOC USOC의 신임 위원장은 USOC 집행위원 출신인 Lawrence(Larry) Probst Ⅲ이었다.

 

Probst Ⅲ는 이후 4년간, 그러니까 London2012런던올림픽종료 시까지 USOC위원장직을 1차 수행하였으며 2018년말까지 위원장 직을 끝으로 사임하였다.  

 

그는 미국 최고 인기 비디오게임(Madden NFL Tiger Woods PGA Tour ) 생산업체 임원이며 사업의 귀재로서 그 재능을 인정받아 USOC 집행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발탁 선정되었다.

 

AP에 따르면 Probst Ⅲ USOC신임 위원장은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양방향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알려진 Electronic Arts사 의 사장(CEO)으로서 16년간 연간 회사 총 수입액을 1 7,500만 달러에서 30 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시킨 사업의 귀재이며, 작년에 사장직에서 물러나 이사회 이사장이 된 바 있었다.

 

Probst Ⅲ 신임 위원장은 2008 10 8~12일 플로리다 주 Orlando에서 개최된 USOC 연례총회에서 비준을 받음으로써 4년 임기 (2009~2012) USOC신임위원장 직무를 시작한 바 있었다.

 

 

(Larry Probst USOC위원장 부부와 함께/Sochi2014동계올림픽 당시)

 

 

그는 Chicago2016하계올림픽 유치활동의 전면에 나선 바 있었다.

 

한편 Ueberroth 전임 USOC위원장은 국제스포츠 계 신인 도를 인정받아 USOC 명예위원장으로서 USOC 내에 투표권 없이 잔류하면서 Chicago2016유치의 필수임원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Patrick Hickey 아일랜드 NOC위원장 겸 EOC회장이 2008 10 31일에 실시된 아일랜드 NOC위원장 선출선거에 단일후보로 등록하여 재선이 확정된 바 있었다.

 

Hickey 위원장은 1990년 처음 NOC위원장이 된 이래 2012년까지 6선 위원장이 되었었지만 Rio2016올림픽 입장권 매표 비리혐의로 2017년 물러났다.

 

Carlos Arthur Nuzman 브라질 NOC위원장 겸 IOC위원도 10월 초 실시된 선거에서 NOC위원장으로 재선되었었다.

 

1995년 처음 NOC위원장으로 선출된 Nuzman 위원장은 4선째가 되었었고 자국올림픽유치를 위해 Rio2016유치위원장 직도 맡고 있었던 Nuzman 위원장은 Rio2016하계올림픽유치의 선봉장이며 올림픽역사상 최초의 현역IOC위원/NOC위원장 겸직 올림픽유치위원장 겸 RIo2016올림픽조직위원장 직을 수행하였으나 대회 후 부패스캔들에 연루되어 역시 사임하였다

 

IOC TOP 파트너 중 하나인 코카콜라(본사: 애틀랜타 소재)가 지난 Atlanta1996올림픽 유치를 거래로 성사시켰다는 소문이 국제스포츠 계에 의혹으로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이러한 와중에 역시 본사를 시카고에 둔 세계적인 간이음식업체인 McDonalds(IOC TOP 파트너)의 임원이 최근 뉴욕에서 개최된 한 Sponsorship Symoisium 회의석상에서 Chicago2016올림픽 유치와 연관된 부적절한 발언을 함으로써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The international market is very important to us, but some of the cities they are picking are not. I’m not going to sit here and tell you that if it’s not Chicago, we won’t, but if it is Chicago. We probably will.”

 

이러한 부적절한 발언은 IOC윤리위원회에 제소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McDonalds 사의 회장(Andrew Mckenna)Chicgo2016유치위원회 기금모금 공동회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Madrid2016, Tokyo2016 Chicago2016과 함께 2016년 올림픽 유치후보도시인 Rio2016은 이 발언과 관련 IOC에 공식적인 제소절차를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한때 흘러나왔었다.

 

국제하키연맹(FIH) 2008 11 29일 미국 LA에서 개최된 FIH총회에서 차기 회장을 선출하였다.

 

당시 2001년부터 회장직을 맡아왔으며 3선에 도전 하고 있던 Els Van Breda Vriesman(네덜란드 IOC위원/국제연맹할당 직)과 호주의 Peter Cohen(FIH 명예사무총장) 그리고 스페인의 Leandro Negre(유럽하키연맹 회장) 3파전으로 알려졌다.

 

결과는 의외로 스페인의 Leandro Negre 유럽회장이 신임 FIH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2011년 말 실시될 차기 FIH회장선거에는 대한하키협회회장 겸 FIH 집행위원이었던 신박제 회장이 출사표를 던져 한국국제스포츠외교력도 공고히 하고 향후 국제연맹 자격 IOC위원선출에도 도전해봄 직 하지 않을까 기대해보기도 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신박제 대한하키협회회장 겸 FIH집행위원 겸 KOC부위원장과 함께)

 

 

2008년 말 노르웨이 NOC 2018년 동계올림픽 자국의 신청후보도시인 트롬쇠(Tromsø/북극권에 위치한 매력적인 도시)의 유치신청여부에 대한 집행위원회의 표결을 실시하여 9:3으로 부결시켰다.

 

Tove Paule 노르웨이 NOC위원장은아주 힘든 결정이었다.”라고 술회하였다.

 

그 이유로는 노르웨이 정부용역으로 실시한 연구결과 당초 Tromsø 유치위원회가 대회개최비용으로 산출한 금액의 두 배가 넘는 예산 (US$ 46 8천 달러/34 5Euro/ 5 6천억 원)에 대경실색한 위원회의 표심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노르웨이는 2018 동계올림픽유치 포기선언을 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현지 언론들은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비웃듯이Tromsø 올림픽유치 멜로드라마라고 명명하였다.

 

그 결과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후보 표명 도시로는 독일의 Munich2018(NOC 승인 후 유치위원회 이미 구성), 카자흐스탄의 Almaty2018, 프랑스의 Annecy2018, 미국의 Denver 또는 Reno-Lake Tahoe2018, 불가리아의 Sofia2018, 스위스의 Geneva2018(유치 그룹 결성), 그리고 일찌감치 3수 도전을 선언한 대한민국의 평창2018 등이었다.

 

Sochi2014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Dmitry Chernyshenko 위원장(유치위원장 역임) Leonid Tyagachev 러시아 NOC위원장 겸 FIS 부회장으로 교체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위원장 측근 소식통에 의하면 푸틴 총리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현 위원장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Jacques RoggeIOC위원장은최근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금융위기가 올림픽을 끌어내리지는 않을 것(The global financial crisis will not drag down the Olympics.)’이라고 언급한 반면 USOC는 지난주 11명으로 구성된 긴급이사 회의(화상통화방식)를 소집하여 주식시장의 동요에 따른 USOC 재정관련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4년마다 US$ 6억 달러( 7,200억 원)에 달하는 재정수입원이 모두 국고가 아닌 일반 기업스폰서 및 협찬 금 형태(민간 부문)로 조달되는 관계로 USOC는 세계금융시장의 불안정과 이에 따른 단기 및 장기수입창출에 대한 잠재적 영향에 대한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Rogge IOC위원장은 London2012올림픽은 올림픽선수촌 건설에 따른 재정 위기설에 봉착해 있으나 런던조직위원회 측이 US$ 20억 달러가 소요되는 이 프로젝트에서 US$ 9억 달러 정도는 민간기금으로 조달될 수 있다고 한 바 있으며, 나머지 재정충당과 관련 런던 측이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당시의 경제위기가 올림픽 TV중계권의 가치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크게 염려하지 않으며, 2010~2012년 올림픽 TV중계권협상은 완료되었고 2014~2016년 올림픽 TV 중계권협상에 대해 검토하고 있던 상황인 바, 심각 한 문제점은 앞으로 대회까지 남은 기간 동안의 경제상황의 귀추가 주목의 대 상이지 지금의 상황은 문제 거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IOC가 현재 4년마다 벌어들이는 US$ 수십억 달러 가운데 US$ 3억 달러 가량의 현금보유고를 포함해 잘 관리하고 있으며, IOC가 우량투자정책을 채택하고 있고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IOC 재정 및 회계 양대 분과위원장도 겸임하고 있는 Richard Carrion 푸에르토리코 출신 IOC집행위원이 설명하기도 하였다.

 

한편 베이징2008올림픽대회는 끝났지만 관련 약물검사는 그 후에도 오랜 동안 진행 되었다.

 

IOC는 신종 혈액기능강화도핑약물과 기타 금지약물복용사실을 추적, 발본색원 하기 위하여 베이징올림픽에서 채취한 전 종목 선수들의 도핑샘플들( 1,000 )Lausanne에 소재한 WADA 등록실험실에 보내 재검사한 바 있었다.

 

2008 10 8일 발표된 이 시책은 ‘Tour de France’ 사이클경기에서 수거한 샘플의 재검사과정 중 새롭게 검출된 경기력 향상제로 인해 발단이 된 것이었다.

 

IOC는 올림픽에서 수거한 약물검사용 샘플을 8년간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새로운 검출방법이 고안될 경우 소급해서 재 추적 검사할 수 있는 여 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만일 새로운 검사방법에 의해 적발될 경우 소급 적용하여 징계처분이 내려지며 경기결과에 따른 성적취소는 물론 메달도 박탈당하도록 되어 있다.

 

그야말로 “Back to the future.”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2018대회 샘플들은지구력향상호르몬 EPO계열의 신종으로 알려진 ‘CERA’를 검출하기 위해 다시 열어 재검사에 들어갔었다.

 

프랑스 반 도핑기구 는 혁신된 혈액검사방식으로 ‘Tour de France’ 사이클 대회 참가선수들로부터 채취한 샘플들을 재검사한 결과 ‘CERA’라는 복용금지대상 약물검출에 성공하였다.

 

본래의 소변검사 결과는 의심의 여지는 있었지만 결론에 이르게 해 줄 정도로 확신을 주지는 못한 바 있었다.

 

따라서 IOC는 베이징 샘플들을 소변이 아닌 혈액검사방식으로 재검사에 들어갔다.

 

종종 도핑의혹으로 물의를 빚어온 사이클종목 중남자도로경기는 앞으로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경우 향후 올림픽종목채택에 적신호가 켜질 가능성이 농후해 진 셈이었다.

 

IOC가 베이징2008올림픽 약물검사용 샘플뚜껑을 열어지구력향상목적의 신종 EPO (계열의) CERA’가 혈액샘플 재검사(새로운 검출방식사용)를 실시하여 몇 개국, 어떤 종목, 어떤 유명선수들이 부정행위자인지 밝혀내게 되면 베이징2008올림픽 메달박탈 조치와 함께 새로운 양상의 성적 파문이 예상되었다.

 

Vancouver2010동계올림픽과 관련 세계뉴스통신서비스, 사진, 신문, 인터넷, TV중계권열외 단체대표 등 200명 이상이 2008 11 18~21일로 예정된 2010 밴쿠버 세계 언론브리핑에 참석하였다.

 

당시 브리핑에서는 지면 및 사진관련 언론들을 위한 서비스 및 시설들에 관한 세부정보를 제공하였다.

 

AD등록카드, 숙박, 광고 요율표, 기술 및 수송을 포함한 다양한 올림픽 정보에 관한 설명회도 예정되어 있었다.

 

4일간 진행된 당시 프로그램에는 경기장 및 제반 시설방문도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 언론들을 위한 제반 서비스 관련 정보제공과 경기장 내 미디어센터에 대한 투어도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13Olympic Congress 2009 10 2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개최되었다.

 

함께 열린 121 IOC총회에서는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도시가 IOC위원 전자비밀투표에 의해 선정된 바 남미대륙 최초로 브라질의 Rio2016dl 그 주인공이 되었다.

 

당초 8년 주기로 개최키로 되었던 Olympic Congress는 불규칙하게 열렸었는데, 지금까지 개최된 Olympic Congress의 개최연도, 개최장소, 주제는 다음과 같다.

 

[역대 Olympic Congress의 개최연도, 개최장소 및 주제]

 

(1) 1차 올림픽콩그레스 1894/ 파리/주제: 올림픽대회 재 설립

(2) 2차 올림픽콩그레스 1897/ 르아브르/ 스포츠위생-건강법과 교육학

(3) 3차 올림픽콩그레스 1905년 브뤼셀/ 스포츠와 체육

(4) 4차 올림픽콩그레스 1906/ 파리/ 예술, 문학 및 스포츠

(5) 5차 올림픽콩그레스 1913/ 로잔느/ 스포츠심리와 생리학

(6) 6차 올림픽콩그레스 1914/ 파리/ 올림픽규정

(7) 7차 올림픽콩그레스 1921/ 파리/ 올림픽규정

(8) 8차 올림픽콩그레스 1925/ 프라하 /스포츠교육학-올림픽규정

(9) 9차 올림픽콩그레스 1930/ 베를린/ 올림픽규정

(10)             10차 올림픽콩그레스 1973/ 바르나/ 평화세계를 위한 스포츠-올림픽운동과 그 미래

(11)             11차 올림픽콩그레스 1981년 바덴바덴/스포츠에 의한, 스포츠를 위한 단결올림픽대회의 미래국제협력미래의 올림픽운동

(12)             12차 올림픽콩그레스 1884/ 파리/100주년 올림픽콩그레스/ 단결의 콩그레스근대사회에 끼친 올림픽운동의 기여도동 시대의 선수사회적 맥락에서의 스포츠스포츠와 매스미디어

(13)             13차 올림픽콩그레스 2009년 코펜하겐 /사회에서의 올림픽운동

 

13차 올림픽콩그레스가 IOC로서는 올림픽운동의 흐름에 따른 맥을 짚어 보고, 올림픽운동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함과 동시에 올림픽운동이 직면한 기회와 위험요소 등에 대해 평가해보는 자리가 되었다.

 

2009년 제13차 올림픽 콩그레스의 핵심개념은 현대사회 및 세계 각 지역에서의 올림픽운동의 역할이었다.

 

이러한 주제하에 다음과 같은 5개의 소주제가 논의되었다:

 

● 선수

올림픽대회

올림픽운동의 구조

올림피즘과 청소년

디지털혁명

 

국제스포츠세계는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그 속에서총성 없는 전쟁인 스포츠외교가 첨예하게 자리매김하면서 저마다의 이권과 패권, 헤게모니와 국위선양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국제스포츠 계의 흐름에 정통하고 전세계 스포츠 지도자 군들과 함께 호흡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이론무장, 인맥형성, 판세분석, 임원피선, 주요 이벤트 유치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해서는 도태되거나 낙오된다.

 

이러한 흐름의 파도를 잘 타고 스포츠외교력과 장악력을 확보하기 위하여서는 지속적인 참여와 열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2009년 제13차 올림픽콩그레스는 대한민국 스포츠 외교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세계 속에서 지속발전 가능한 패러다임의 맥을 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향후 KOC주도로 제1차 한국 올림픽콩그레스(총회)를 조직하여 한국 내 올림픽운동의 현주소와 미래구상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마련해 볼 수 있는 총체적인 대 토론회가 개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 베이징2008올림픽의 수입금 결산과 대회유산

 

지상최대의 올림픽 인류축전을 성대하게 개최한 중국은 Beijing2008올림픽을 통해 US$20억 불( 2 8천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 TV방영권, 입장권판매, 기업후원금, 올림픽기념상품판매 등이 개최국 중국의 주수입원이었다.

 

구체적 명세표를 보면 IOC가 총괄협상 및 계약 체 결한 바 있는 TV방송 중계권수입금(US$ 17 3 700만 불) 49%US$8 5 100만 달러, 올림픽 TOP 스폰서 전체 수입금(US$ 8 6 600만 불) 33%US$ 2 8 600만 불와 올림픽 개폐회식 및 각종경기 입장 권 판매수입 US$1 4천만 불, 올림픽 마스코트 등 독점상품 판매 수입금 US$7천 만 불을 포함하여 대회 이후의 제반 물품판매수익, 그리고 개인 및 중국 내 기업 후원 금 등을 총 망라하면 US$ 20억 불을 상회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반면 베이징2008올림픽조직위원회(BOCOG) 측이 밝힌 바 있는 대회조직 순수 운영비용이 US$ 22억 불(3 1,800억 원)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순수 수입지출대비 단순 수치계산상의 수익금은 큰 흑자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베이징2008올림픽 개최를 통하여 이와 같은 직접수입 외에도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유·무형의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하였고 올림픽이 향후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동력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총체적 문화와 전통, 첨단의 과학기술을 전세계에 효과적이고 집중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천문학적인 가치창출효과를 거양하여 중국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또한 환경개선, 사회 저변 제반 인프라구축, 첨단 기술혁신, 중국인민에 대한 자긍심 고취 등과 같은 엄청난 올림픽유산을 축적 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베이징올림픽의 슬로건처럼 “Green Olympics, Hightech Olympics, Peoples Olympics를 달성했고 중국의 무서운 저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6. Beijing2008올림픽 최종결산보고

 

코펜하겐 IOC총회 시 베이징2008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의 최종보고에 따르면 베이징2008대회는 US$ 30 1,500만 불(한화 약 5 1,600억 원)의 총수입금 중 US$ 1 6,700만 불(한화 약 2,5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잉여금은 새로 설립된베이징올림픽발전협회가 기금운용 및 집행 주체 역할을 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서울1988올림픽 이후 설립·운영되고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 (SOSFO)을 벤치마킹 한 듯하다.

 

베이징2008올림픽조직위원회(BOCOG) IOC총회의 최종보고에서 “Beijing: Once an Olympic City, Always an Olympic City” (베이징: 한 번 올림픽개최도시는 영원한 올림픽도시)란 슬로건을 선보이며, 베이징2008올림픽은 기적이 창출되었으며, 꿈이 실현된 올림피아드 (Olympiad where miracles were created, dreams fulfilled)라고 자가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올림픽개최 이후의 베이징은 이제 더욱더 깨끗해졌고, 더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하였으며 올림픽 덕분에 보다 더 편리해진 대중교통시설과 지속발전 가능한 경제성장을 누리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한편 베이징2008올림픽 국제성화봉송루트와 연계된 각종 정치적 시위는 올림픽대회 상징물이 오용된 실제사례로써 우려를 자아내게 하였다.

 

이를 계기로 IOC는 더 이상 국제올림픽성화봉송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Verbruggen 베이징2008올림픽 IOC조정위원장이 언급하였다.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서는 베이징2008대회를 통해 중국이 국제적 대화소통단계수준으로는 향상되었다고 하면서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의 부조리 등에 대해 관심을 쏟는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현실적으로 문제를 대처해야 하며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스포츠와 올림픽대회에 국한된다.”라고 우회적으로 답변하였다.

 

Verbruggen IOC조정위원장은 향후 올림픽개최도시들이 베이징2008올림픽의 규모나 웅대함 면에서 베이징과 필적하려고 따라 하지 않도록 충고하면서 “향후 올림 픽 개최도시들은 나름대로 올림픽비전에 충실한 가운데 독특하고 영감을 주며 기여하는 방식의 올림픽대회를 조직하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2008년 올림픽은 많은 측면서 아마도 앞으로 필적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며 사실 그러하다.”라고 결론지었었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25. 11:43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평창2018동계올림픽유치및 개최일등공신 중 한명인Kasper국제스키연맹(FIS)회장 2020년 은퇴표명과 발자취]

 

 

Kasper FIS회장은 평창2010-2014-2018동계올림픽 3수 도전 내내 평창유치성공을 위해 아낌 없는 지도와 편달과 성원을 보내 주었으며 성공적인 평창동계올림픽유치 및 개최에 국제 스포츠 계 일등공신들 중 한 명이다.

 

 

Gian-Franco Kasper FIS회장은 Olympic Governor란 국제적 닉네임이 붙여질 정도로 평창의 동계올림픽 3수 도전 내내 노심초사 유치성공에 20년 간 공을 들인 바 있는 김진선 초대 평창2018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장(3선 강원도지사)과 각별한 절친이기도 하며 김위원장의 최근 저서인 “(평창실록) 동계올림픽20년 스토리에 상세한 국제스포츠외교현장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Torino2006동계올림픽 기간 중 Rogge IOC위원장<뒷모습>과 면담 중인 김진선 강원도지사 겸 평창2014유치위원회 집행위원장<-2>과 국제사무총장이었던 필자)

 

 

Gian-Franco Kasper 국제스키연맹(FIS)회장은 2019 112322년 간 FIS에서의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국제스키부흥운동의 대장정을 평창2018동계올림픽을 정점으로 화룡점정하고 2020 5 FIS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스스로 발표하였다.

 

Kasper(75)회장은 FIS이사회에 2019 1123일 독일 Constance에서 열린 FIS가을회의에서 은퇴의사를 통보하였다.

 

따라서 Kasper회장의 임기는 2020 522일 태국에서 개최예정인 IFS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Kasper회장은 현재 IOC명예위원으로 IOC집행위원을 역임하였는데, 그는 1975 FIS 사무총장이 된 후 거의 4반세기(half a century)25년 간FIS에 몸담아 온 일평생 국제스키발전에 기여한 스포츠외교관이다.

 

Kasper회장은 2018 5월 새롭게 4년임기의 IFS회장으로 단독후보로 연임된 바도 있어 당초 임기는 Beijing2022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까지였지만 차 세대를 위한 배려의 일환으로 2년이나 앞 당겨 용퇴 결정을 내린 것으로 판단된다.

 

 

(Kasper FIS회장 겸 IOC집행위원과 Athens2004올림픽 본부호텔에서 조찬 후 기념 촬영)

 

 

그의 퇴임을 확인해 주는 FIS성명서에 따르면 Kasper회장은 “2020 5 FIS총회기간 동안 끝날 때까지 회장 직을 충실히 수행할 것”(would lead the organisation with the same full commitment until and during the Congress in May 2020)이라고 하였다.

 

그가 자신의 퇴임결정소식을 이른 시간대에 내리게 된 것은 각국 스키연맹이 해당후보자들의 입후보신청에 따른 준비과정을 적시에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언급하였다”(He stated that the communication of his decision has been made at this early stage to enable a timely process for the National Ski Associations to prepare any applications for candidacies)라고 동 성명서는 덧붙였다.

 

Kasper의 재임 기간 동안 FIS회원국은 100개국에서 133개국으로 늘었다

 

또한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동계올림픽 스키메달 세부종목이 50개로 증가하였다.

 

하지만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몇 몇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건에 의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17년에는 솔직 담백한 스포츠 행정가답게 러시아를 평창2018동계올림픽출전금지 요구를 나치치하 독일의 유태인학살과 비유한 후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다(forced to apologise after comparing calls for Russia to be banned from the 2018 Winter Olympics in Pyeongchang with the persecution of Jews in Nazi Germany)

 

동계올림픽종목 국제연맹연합회장으로 2018년 스위스-독일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소위 기후변화에 관한 언급으로 또 다시 스스로 구설수를 자초한(again landed himself in hot water)바 있었다.

 

동 인터뷰에서 Kasper회장은 독재국가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easier to organise the Olympics in countries governed by a dictatorship)고 언급하였으며 동계올림픽은 이제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다(needed be reduced in size)고 주장하였다가 IOC가 이를 비판 한 바도 있었다.

 

Kasper회장은 자신의 발언(his words)문자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어한 이야기는 결론부분에서 명확하게 전개되지 않았다”(were not meant to be taken literally, but this was not clear in the final story 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Kasper회장은 2005에는 여성선수들이 스키점프종목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반대한다(opposed to women competing in the ski jump )고 언급하였으며 의학적 견지에서 여성들의 경기출전이 적절한지(whether it was appropriate for ladies from a medical point of view) 여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바도 있었다.

 

Kasper회장은 1998 FIS회장으로 선출되었는데 FIS역사상 통산 4번 째 회장이 되었다

 

 

첫 번 째 FIS회장은 (1)스웨덴 출신 Ivar Holmquist 1924~1934(10년 간), 두 번째 FIS회장은 (2)노르웨이 출신 Nicolai Ramm Østgaard 1934~1951(17년 간), 세 번째 FIS회장은 (3)스위스 출신 Marc Hodler 1951~1998(47년 간)장기 집권한 바 있었다  

 

 

Hodler3 FIS회장은 IOC집행위원으로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 및 페럴림픽 유치 스캔들을 폭로한 장본인(exposed the Olympic bid scandal) 으로 80세가 되던 해 FIS회장 직에서 은퇴한 바 있다.

 

 

(Marc Hodler FIS회장 겸 IOC집행위원과 함께)

 

 

Kasper FIS회장은 선출된 지 2년 만인 2000년에 IOC위원으로 선임되어 2018년까지 IOC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Kasper FIS회장은 2014~2018 IOC집행위원으로 재직하였으며 후임으로 국제봅슬레이 및 스켈레톤 연맹(IBSF)회장인 이태리 출신의 Ivo Ferriani이 당연 직 IOC집행위원으로 승계하였다.

 

 

(평창2018동계올림픽 기간 중 Ivo Ferriani IBSF회장 겸 IOC집행위원과 함께)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23. 05:55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10)스포츠외교와 스포츠영어(46)]

 

 

스포츠외교는 축약해서 「안면장사/Face Business」라고도 한다.

 

오랫동안 얼굴을 익히고 스킨쉽(friendly networking)을 통한 인간적 네트워킹 구축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지만, 이들과 「안면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외국어 구사 능력은 물론 국제스포츠 계에서 통할 수 있는 전형적인 스포츠 용어 및 스포츠 영어 표현 숙지도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스포츠 계에서 보다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스포츠 외교력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작은 밀알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자 「스포츠 영어」장르도 소개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그리고 「힘은 키우는 자만의 전유물」이기도 하. 힘을 길러야 한다. 체력(Physical Power), 지력(Intellectual Power), 인내력(Endurance Power), 예지력(Foreseeability/ Predictability), 직관력(Intuition) 모두 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힘」의 근원은 포용력(Tolerance)이 아닐까?

 

[스포츠 영어에 대하여]

 

스포츠(Sport)1980년대 3S(Sport, Screen, Sex) 중 하나로서 정부 주도하에 문화 레저적 가치에 그 중점을 두어 프로 스포츠란 장르를 통하여 일반대중 곁에 더 가까이 다가선 바 있다.

 

그러나 복잡·미묘·다단한 21세기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스포츠는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직접 참여하든, 관전하든, 응원하든 간에 그것 없이는 우리의 삶 자체가 무미건조해 질뿐만 아니라 생활이 영위되지 못할 정도로 물, 공기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웰빙(Well-Being) 3 요소(SAW: Sport, Air, Water)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생활가치창출의 핵심적인 기능과 장르를 점하고 있는 스포츠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아가 국제적 접근과 스포츠 외교적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더 원활히 전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스포츠 영어」분야를 별도로 분류하여 재조명하고자 한다.

 

(필자 최초의 영문 스포츠외교현장실록/Barcelona소재 Samaranch IOC위원장 집무실에서-본 저서는 2007년 전체 IOC위원들을 포함하여 국제연맹회장단 및 주요국가올림픽위원회위원장 사무총장들에게 송부/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발행)

 

 

「스포츠 영어」를 불편 없이 이해하고 구사하려면 다음범주의 내용을 우선 숙지해야 할 것이다:

1) 국제스포츠기구 명/약어

2) 스포츠용어/경기용어

3) 스포츠 적 표현

4) 국제스포츠 계 통용되는 고정 표현

5) 국제스포츠 언론에 자주 사용되고 인용되는 표현

6) 스포츠 언어(Sport language)가 일상용어(Everyday words)로 전환되어 사용되는 표현

7) 국제스포츠회의 및 대회 참가에 필요한 표현 등

 

 

[스포츠에서 파생되어 우리 일상생활에 즐겨 쓰이는 표현모음]

 

(1) Fair-play"

(공명정대함)

(2) The ball is in your court"(테니스)

(당신이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다음 차례는 너다)

(3) Get on the ball"(농구, 야구)

(방심하지 말지어다)

(4) Ball of fire"(야구)

(정력가/ 한 잔의 브랜디/급행열차)

(5) Carry the ball"(야구, 농구)

(책임을 지다/선수를 치다/주도권을 잡다)

(6) Catch the ball before the bound"(야구, 농구)

(선수를 치다/기선을 제압하다)

(7) Hit the ball"(야구)

(착착 진행하다)

(8) That's the way the ball bounces"

(인생이란 다 그런 거란다)

(9) That's not the game"

(그건 정당한 수법이 아니다)

(10) "The same old game"

(똑같은 수법)

(11) None of your little games"

(그런 수에는 안 넘어갈 걸)

(12) I wish I knew what his game is"

(그 작자의 속셈은 뭘까/무슨 꿍꿍이 수작인지 모르겠구먼)

(13) Called game"(야구)

(중단된 경기)

(14) Game and (set)"(테니스)

(게임세트)

(15) Here's the game"

(농담하고 있네. / 놀고 있네.)

(16) Play the game"

(훌륭히 행동하다)

(17) The game is up"

(만사 다 틀렸다)

(18) The game of war"

(전략/戰略)

(19) The game of politics"

(정략)

(20) That's the name of game"

(그게 핵심일세)

(21) A game of inches"

(막상막하)

(22) A ball park figure" ※ ball park: 야구장

(대강의 어림수)

ex) Give me a ball park figure.(대충 어느 정도인지 말해 보구려)

(23) Ball park"

(야구장)

(24) Strike-out"(야구)

(삼진, 실패)

(25) Three strikes-out"

(구제할 여지가 없이 종쳤다네)

 

 

스포츠 언어가 실생활영어에 접목되어 자주 쓰이는 표현들이 많이 눈에 띈다.

 

2007년 당시 필자가 매월 발간되는 「SportsOn」월간지 내에 고정 섹션인「English in sport」란에 2개월간 기고한 바 있는 유용한 영어표현을 소개할까 한다.

 

아무리 어휘력과 표현력이 뛰어나고 Hearing이 출중해도 해당 영어 표현어구에 담겨진 속 이야기를 모르면, 「영어 천하장사」가 되지 못하는 법이.

 

스포츠외교일꾼으로서 진정한 「영어의 달인」의 경지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표현들도 숙지해두어야 하며, 국제스포츠외교 활동 시에도 좋은 보약이 된다.

 

 

스포츠 영어

 

 

◎ A Hop, Skip, and a Jump (뛰어 봤자 벼룩이지/근처의/가까이에)

 

 

- 이 표현은 육상경기의「삼단 뛰기」에서 유래한 것으로써,「삼단 뛰기」는 이 세 가지의 연속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이 표현은, 따라서, 사람이 삼단도약 하여 뛰어보았자 얼마나 되겠냐는 의 미에서 우리 속담의「뛰어봐야 벼룩이다」와 일맥상통한다. 즉 「근처의」「가까이에」라는 뜻이 된다. 비슷한 표현으로는「A Hop, Step, and a Jump」도 있다

 

ex) My home is located just a hop, skip and a jump fran his domicile.

(나의 집은 그의 거처 바로 인근에 위치한다)

 

ex) My friend John who turned 60 recently is only a hop, skip and a jump away from medicare.

(최근 60세가 된 내 친구 존은 얼마 안 있어 연로자 의료보장제도 혜택을 받게 된다.)

 

 

◎ Make a pass(작업을 걸다/ 꼬시다)

 

 

- 이 표현은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의 Pass와는 관계가 없다. 차라리 이 어구는 Romance sex의 영역에 속한다. 어떤 여자한테 마음이 끌린 남자, 특히 저돌적인 남자라면, 사랑의 표시를 하고 싶어한다. 운동경기에서 골인(Goal in)을 하려면, 우선 Pass해야 하듯(make a pass), 사랑의 골인(Goal in)에도 pass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래서「make a pass」라고 하면 점잖치 못한 투로「치근거리다」「작업을 걸다」「꼬시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ex) They have been dating for four weeks, but John has never even made a pass at her.

(4주 동안이나 사귀는 사이건만, 존은 그녀를 전혀 치근덕대거나, 작업에 들어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 Julie was really impressed that he never made a pass at her.

(줄리는 그 남자가 결코 수작을 걸지 않는다는 사실에 정말 감동을 받았다)

 

 

◎ Out in the left field(생뚱맞은/엉뚱한)

 

 

- left field는 야구용어로 「외야의 좌익: 좌익수의 수비위치」가 원래의 뜻인데, 이 표현은 「완전히 잘못 생각한, 전혀 오해하고 있는, 틀린」(completely mistaken/ wrong)따위를 의미하는 속어 표현으로 되었다. 즉 사상이나 생각 또는 의견 따위가 대부분 사람들의 상식적인 것과는 엉뚱하게 다르거나, 틀렸을 경우에 쓰는 표현이다.

 

ex) Don't listen to him, He's out in the left field.

(그놈 얘기는 듣지도 마쇼. 생뚱맞은 놈이니까)

 

ex) Is this proposition out in the left field?

(이 제안에 전혀 상식에 어긋난 엉뚱한 내용인가요?)

 

 

◎ Name of the Game(골자/핵심/실상)

 

 

- 어떤 말 많은 사람이 자기가 본 재미있는 운동경기에 대해 친구에게 얘기를 해주고 있었다. 한점차로 끝날 때 까지 열전만도 다섯 차례였으며, 써브는 단연 자기가 응원하던 팀이 우세하였고 속공에선 상대팀이 다소 우세했다고 하였다. 상대팀 선수중 하나는 키가 작은데도 날렵 하더라는 등 경기 외적인 면까지 자세히 입에 침을 튀겨가며 얘기하고 있었다. 듣고 있던 친구가 「그런데 도대체 게임이름(name of the game)은 무엇이었는데? 배구였나, 테니스 복식이었나, 탁구였나? 또 최종스코어는 어떻게 됐나?」라고 물었다. 별의별 얘기는 다해놓고 정작 핵심(the crux of the matter)은 빼놓은 것이었다. name of the game은 「골자(the main idea)」또는 「실상(What′s really happening)」이라는 표현이 되었다.

 

ex)

 

A : "I hear that several police are looking for this man"

(수명의 경찰관이 이 사내를 찾고 있다면서)

 

B : "Yes, that′s the name of the game"

(그래, 바로 그것이 핵심이라니까)

 

 

◎ Take off the gloves(인정사정 볼 것 없다)

 

 

- 복싱경기에서는 타격의 강도를 줄이기 위하여 복싱장갑(gloves)을 착용하고 경기에 임하도록 되어있다. gloves를 끼지 않고 때리면 진짜 치명적인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표현은 「노골적으로 싸우다, 본격적으로 맞서다」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표현으로는 「fight with gloves off(인정사정 볼 것 없이 치고 받다)가 있다

 

 

ex)

 

A : "Did you hear that her father became angry last night?"

(그녀의 아버지가 어젯밤 노발대발했다며?)

 

B : "Yes. Her father has threatened to take off the gloves if I ever attempt to meet her again"

(알아. 그녀 아버지를 내가 다시 그녀를 다시 만날 요량이면 혼 구멍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네)

 

 

<세계 스포츠 계 비리(wrongdoings)유형 및 관련 영문어휘 및 용어 모음>

 

 

1)   11 Crisis Factors against Fair-Play(페어플레이에 반하는 위기요인 11가지):

 

 

(1) Corruption(부패)

 

(2) Doping (금지약물복용)

 

(3) Cheating(부정행위/속임수)

 

(4) Manipulation of Competitions(경기 조작)

 

(5) Match Fixing(승부조작/짬짬이)

 

(6) Illegal Betting(불법 도박)

 

(7) In & Out of-Competition Violence(경기 안팎 폭력행위)

 

(8) Unethical Behavior(비윤리적 처신)

 

(9) Misconduct(위법행위)

 

(10) Criminal Investigation(범죄조사)

 

(11) Whistle-Blowing(내부고발)

 

*FIFA used to be engulfed in scandal amid a series of corruption allegations, indictments and arrests. (FIFA는 일련의 부패혐의, 기소, 체포 등의 와중에 스캔들로 함몰되어 있었음)

 

 

2)   Offences범죄/위반//Charges혐의/13가지 Types(유형):

 

 

(1) Racketeering Conspiracy(협잡 및 갈취 음모)

 

(2) Wire Fraud Conspiracy(전자통신수단을 이용한 사기 음모)

 

(3) Money Laundering Conspiracy(돈 세탁 음모)

 

(4) Embezzlement(횡령/착복/유용)

 

(5) Misappropriation(착복/횡령)

 

(6) Misuse of public funds(공금유용)

 

(7) Breach/Betrayal of Trust(배임)

 

(8) Disservice(구박/학대/몹쓸 짓)

 

(9) Siphoning-off of Money for one’s Private Use(공금 사적 유용)

 

(10) Soliciting for Money(돈을 달라고 요구하기)

 

(11) Bribes and Kickbacks(뇌물 및 중간착취/intermediary exploitation)

 

(12) Blackmailing(공갈 협박)

 

(13) Breaches of confidentiality(비밀유지 위반)

 

 

 

[Elements to Restore Confidence and Value to a Product named Sport(스포츠 명칭을 지닌 품목에 신뢰와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요소들)

 

 

(1) Financial Resources(재정자원)

 

(2) Brand Resilience(브랜드 복원력)

 

(3) Ethical Culture(윤리 문화)

 

(4) Responsibility(책임감)

 

(5) Responsiveness(민감성/반응 성)

 

(6) Integrity Checks(청렴도 검증)

 

(7) Improved Governance(개선된 지배구조)

 

(8) Greater Transparency(보강된 투명성)

 

(9) More Accountability(증강된 의무감)

 

 

[The Spirit of the Olympic Agenda 2020]

 

 

(1) Flexibility (융통성)

 

(2) Sustainability (지속 가능 성)

 

(3) Good Governance (탄탄한 지배구조)

 

(4) Integrity(청렴 정직성)

 

(5) Transparency (투명성)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22. 11:25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9)영어달인-불어섭렵 실록(45)]

 

 

영어의 달인이 되려면…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 유학 한번 못해보고 ‘영어의 달인’(조선일보) 또는

 

토종영어 고수’(EBS TV)란 호칭까지 듣고 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과분하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한 ‘달인의 경지’에 미치기 위해서는 영어를 날마다 부담 없는 생활의 일부로 호흡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함으로써 평생 실전세계의 수많은 과정을 통해 단련하고, 수련하고, 무엇보다도 대기 중의 공기를 들여 마시듯,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다 보면, 그 과정이 곧 영어 수련이요, 그 자체가 훈련 겸 숙달이 된다. 이렇게 하여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과정의 열매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어느덧 주위에선 「영어 잘하는 부류」로 통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모든 외국어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우선 익숙한 기본 단어와 흥미로운 문형을 찾아서(search) 자연스럽게 외우고(memorize), 대화체 내용을 흉내 내고(mimic), 실전에 응용하다(apply)하다 보면, 그냥 걷는 습관처럼, 자전거타기처럼 저절로 몸에 배고(habituated) 입에서 흥얼거리게(murmur) 되고, 그러면 그 자체로서 평소에 외국인과의 막혔던 대화(dialogue)와 회화(conversation)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지 않을까?

 

“아픈 만큼 성숙하리니.(No pains, no gains.)....

“결코, 부담스러워하지 말지어다!(Never feel pressed!)

 

필자는 외국어 대학교 재학시절 영어를 전공하고 제2외국어는 「독일어」를 하다가 부전공으로 「불어」를 선택하였고, 각고의 노력 끝에 외국어 대학교 부설 동시통역대학원(영·불 동시통역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사실 제2외국어는 과목 자체도 필자를 포함한 대개의 경우, 시간 보내고, 시험 점수 잘 받아 이수학점을 성공 리(?)에 따는 것이 관건이었지, 2외국어 과목설치 취지대로 선택한 제2외국어를 능숙하게 독해하고 말하고 듣는다는 것은 거의 모든 이들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 실제상황이리라.

 

하물며, 머리에 털 나고 처음 접해보는 「불란서어」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요, 무모한 도전으로 실속 못 차린 객기로 느껴졌지만, 어쩌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는데(Dice is cast).

 

대학 2학년 때 시작하는 부전공 불어과목을 불어교육과 1년생들과 합반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난생처음 보는 불어 단어, 발음, 문장을 접할 때마다 두통과 멀미까지 느껴졌다.

 

당시 외대 불어과 주임교수이셨던 서정철 선생님께서 불어 부정관사 「un」이 포함된 문장을 읽어보라고 해서 나름대로 예습까지 해 온 터라 조심스럽게 자신만만하게 「앵」하고 읽었더니 「어디서 파리가 날라 다니냐」라고 하였고, 모든 학생들이 박장대소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그 후 아무리 발음 연습을 해도 「그 놈의 파리」는 나의 혓바닥과 목과 코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그럭저럭 이 눈치 저 눈치 보아가며 근근 적선으로 학점은 겨우 땄지만, 불어 부전공과목 강의 시마다 주눅이 들어서 「못살겠다. 꾀꼬리」를 하염없이 외쳐 대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수소문 끝에 회현동 신세계 백화점 뒤편에 있는 프랑스 문화원 부설 불어 학원인 「알리앙쓰 프랑세즈(Alliance Francaise」에 등록했다.

 

겨울 방학 3개월 동안 낮에는 기초교양불어과정인 「모제(Mauget)」라고 통칭하는 과목(Cours de Langue et de Civilisation Francaises)을 듣고, 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은 뒤 그 건물 내에 있는 도서실(biblioteque)에서 하루 종일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또 저녁때 수강할 불어회화코스(De vive voix)까지 예습까지 하면서 그야말로 불철주야 집중코스(Intensive course) 3개월간 맹진하고 나니까 비로소 불어의 본체를 깨닫게 됐다.

 

그 과정에서 꿈에 불어로 이야기하는 「현몽(Appearance in a dream)」현상까지 생기다 보니 비로소 생소하기만 했던 불어에 대해 애정도 생기고 수업시간에도 인정받다 보니 그때부터 필자에게 펼쳐진 불어의 세계는 실로 예전 같지 않더라는 실제 체험담을 지면을 통해 소개해 보는 것이다. 물론 나도 보통 사람인데 어찌 놀고 싶지 않았겠으며, 불어 공부 자체가 즐겁기만 했었겠는가? 하루에도 열두 번 때려치우고 싶고, 하품과 졸음과 지루함과 지리함이 늘 상 엄습해 왔지만, 이러한 「공부 방해 사탄」의 시련을 극기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가 치러야 할 최소한의 대가가 아닐성싶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어학은 배우고 익힌 문장과 단어를 무대 위의 배우처럼, TV 탤런트처럼 라디오 방송국의 성우처럼 상대방과의 실감나는 감정교류를 하듯 마치 역사의 한 인물처럼 그 감동, 그 느낌을 자기 목소리에 실어 크게 소리 내어 실감나게 실전처럼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연습하게 되면, 외국어를 관장하는 神이 반드시 감응하여 그대들을 기필코 도우리라!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천우신조(天佑神助 Heaven helps and God assists)란 이렇게 간절히 간구하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아래에 필자의 영어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신문에 났던 기사를 실어 보았다.

 

[2000 4 21일 금요일 - 「조선일보 9면」]

영어의 달인 시리즈 중 15번째 인물-윤강로 대한체육회 사무차장

 

대한체육회 국제담당 사무차장 윤강로씨는 한국 체육의 얼굴이다. 각종 체육관계 국제회의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 우리나라 입장을 전달하고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다. 82년 대한체육회에 입사한 뒤 매년 10여 차례, 지금까지 1500회 이상 각종 국제 대회와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왔다. 당연히 영어를 잘하지 않으면 안 될 위치다.

 

그러나 윤씨는 단 일 년도 외국에서 산 적이 없다. 윤씨는 외국어대 영어과 76학번. 아버지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어서 어릴 때부터 영어와 가까이 지냈다. 아버지가 그에게 가르친 것은 영어 단어나 문법이 아니었다. 영어를 대하는 자세.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틀리면 어떠냐? 틀리면서 배워나가는 게 외국어다.

 



"
기다리지 말고 부딪치고...
틀리면서 배워야 실력 붙어"
------------------------
나라마다 발음, 악센트 차이
살아 있는 영어 받아 들어야...

 

 

윤씨는 이후 현장에서 외국인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영어를 배웠다. 그래서 자기 영어를 ‘실전 영어’라고 부른다. 그는 대학 시절 미군 부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한 미군 가족이나 군속, 관광객을 위해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그들로부터 살아 있는 영어를 받아들였다. 판문점이나 경주 등 관광지를 돌며 우리나라 역사와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는 일은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대학 3학년 때 교내 영어 경시대회서 공동 1위를 차지한 것도 영어데 자신을 붙게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스컵(Park’s Cup) 축구대회가 꽤 큰 국제대회였지요. 그 대회와 세계 여자농구 선수권대회, 세계 사격선수권대회 등 국제 체육대회에서 통역을 맡으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쌓았습니다.” 윤씨 영어는 나라에 따라 발음과 악센트가 달라진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온갖 영어를 하다 깨달은 것이, “나라마다 다른 영어가 있다.”는 것. “어학은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 세계 누구와도 통할 수 있는 영어가 진짜 살아 있는 영어 아닙니까?

 

윤씨는 요즘 영어회화 책을 쓰고 있다. 제목은 ‘쪽집게 영어’라고 붙였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영어 표현을 쉽게 찾아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두 자녀에게도 “영어를 즐기라.”고 예기한다는 윤씨는 “잘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부딪쳐야 영어가 는다.”며 다시 한번 ‘실전 영어’를 강조했다.

 

 

아래 글은 <YBM SISA> English World(영어 세계)에 개재되었던 내용이다.


*Dreaming dreams in English(
영어로 꿈을 꾸어보세.)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 한번 나가보지 못한 '신토불이', '토박이', '토종' 영어학도였지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꿈속에서 외국인과 나도 모르게 거의 자유자재로 영어가 되더라고요. 그 이후 자신감과 함께 '한 영어'를 하게 된 셈이라고나 할까요? 여러분들도 반드시 그런 날이 오게 된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Sincerity moves heaven.)

"영어에는 왕도가 없도다."(There is no royal road to learning English.) 이 말은 제가 중학교 시절 영어공부를 시작할 무렵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야기였어요. 전 그 시절 그래도 왕도를 찾아 다녔지만 남는 것은 '허송세월'이란 단어뿐이었죠.

그래서 터득해낸 방법이 영어 교과서는 물론 참고서에 나오는 단어, 숙어, 표현 등을 몽땅 외워버리는 것이었답니다. 그 결과 각종 영어시험 성적에서 제법 좋은 성적을 얻으면서 영어에 자신이 붙게 되었죠.

그러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재학시절 외국인교수와 대화하는 첫 수업시간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로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한심하게 생각했죠.

*Mimicking and memorizing(흉내 내고 암기해 따라 하기)

결국 다시 찾은 방법이 '외국인 찾아 삼 만리.' 그 당시(1970년대) 배낭여행 같은 낭만적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국내에서 당시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위치한 미국봉사기관인 U.S.O.(United Services Organization)홀홀 단신 찾아가 자원봉사자(Volunteer)로 용감하게 지원하여 매 주말마다 펄펄 살아 숨쉬는 실전영어를 익히게 되었답니다.

영어로 전화 받기, 때론 관광가이드로 판문점(JSA: Joint Security Area) 이나 경주 등 관광지를 돌며 갈고 닦았던 국사실력에 미리 준비한 영어시나리오로 설명과 해설을 겸한 떨리는 영어 브리핑을 하게 되었지요.

우리나라 역사와 상황을 설명하는 일은 영어실력을 일취월장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요.

특히 미국 도처에서 온 미국인 그리고 영국인들의 여러 가지 다양한 액센트와 발음 그리고 어휘 구사력 등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습득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때마다 메모지, 수첩 등은 살아있는 표현을 현장에서 담아내는 '영어 보물 만들기'에 필요한 필수도구로써 혁혁한(?) 공헌을 한 셈이었죠.

이러한 현장 학습 덕분에 저는 나라에 따라, 지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눈 높이 맞춤 식 영어를 구사하게 된 계기가 되어 대학과 군대제대 후 스포츠외교관으로 세계 각국 사람들과의 소통 시 어느 나라 어떤 사람과도 어휘수준과 소통가능 발음 등으로 무장 된 전천후 국제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러한 습관은 USO자원봉사자 시절 많은 외국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의 발음을 흉내 내고 암기했던(mimicking and memorizing)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
삼 인행 필 유 아사(三 人行 必 有 我師)'(세 사람이 함께하면 반드시 그 들 중에 자기 스승이 있느니라.) 지구촌 국제소통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스승이요 친구가 되는 법이죠.
매번 메모해 둔 단어들을 시간 날 때마다 외우고 그 말을 했던 외국인의 발음과 액센트 그리고 인간미를 음미해 가며 떠올리고 흉내 내서 연습을 한 셈이죠.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Man propose, God dispose.(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 Life is not about waiting when the storm is over, but about dancing in the storm. (인생이란 폭풍우가 멈추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폭풍우 속에서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이 아니겠는가? )



타고난 재능보다는 갈고 닦은 후천적 재능이 더 빛나고 우수해 지는 거 아니겠어요? 무엇이든 잘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즐기는 마음으로 갈고 닦아야 윤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 법이죠.

식사를 거르면 배고픔이 따르고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피곤함이 따르듯이, 그날그날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하듯이, 그리고 외국어 공부를 하루라도 건너뛰면 허탈감이 생기도록 일상생활화 한다면 모든 외국어는 곧 모국어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에요.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니까요.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21. 11:12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8)스포츠외교관외길인생38년실록-IOC올림픽평가위원(IOC Evaluation Commission Member)임명과 4대 스포츠외교 영예실록(44)]

 

 

 

 

동 하계올림픽 개최도시 결정은 IOC설립 및 존치 근본핵심목적인 동 하계올림픽개최를 실현하기 위하여 개최도시선출결정은 IOC의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일련의 과정들 중 첫 단추이다.

 

 

당초 IOC는 올림픽개최도시 선출투표에 앞서 IOC-IFs(국제연맹)-NOCs(국가올림픽위원회) 3자그룹으로 구성된 후보도시 현황파악 대표단(Fact-Finding Party)을 구성하여 해당 후보도시로 사전에 조사차 파견하였지만 아울러 투표권자인 IOC위원들도 향응이 뒤 따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버린 후보도시의 초청을 받아 임의로 현지방문을 하였었다.

 

 

그러한 관행으로 야기된 Salk Lake City2002동계올림픽유치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부패행위로 말미암아 전 세계 언론의 지탄대상이 되었던 IOC 1999년 제108IOC임시총회를 개최하여 개혁안을 마련하였다.

 

 

 

 

 

동 개혁안에 준하여 IOC IOC위원 윤리 행동강령을 엄격히 적용함으로 IOC위원들의 올림픽후보도시 방문 전격금지 조치가 시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IOC는 올림픽개최신청 후보도시를 대상으로 별도의 IOC평가위원회(IOC Evaluation Commission)을 구성한 후 현지에 파견하여 객관적 현지실사조사를 추진하도록 후속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러한 동 하계올림픽후보도시 대상 IOC평가위원회에 대한민국최초로 필자가 2008년올림픽후보도시 대상 IOC평가위원(2000~2001)으로 선정되어 활동한 바 있다.

 

 

필자의 IOC평가위원 활동 이후 18년 만에 이루어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케이스는 3대 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 재임한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장관이 2026년 동계올림픽후보도시 대상 IOC평가위원(2018~2019)으로 활동하였다.

 

 

이제 IOC는 기존의 IOC평가위원회실사단 제도를 변경하여 향후 올림픽개최지선별위원회”(Future Host Commissions)를 신설하였다.

 

 

물론 서울-평양 공동유치를 선포한 2032년 올림픽 개최지결정도 동 선별위원회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2019 103 IOC집행위원회 결정으로 IOC가 새롭게 출범시킨 향후 올림픽개최지 선별위원회(Future Host Commissions)는 한마디로 올림픽개최도시들 및 국가들에 대한 선별작업을 조정 통제하는 권한을 부여 받은 막강한 위원회로 발족된 셈이다.

 

 

또한 올림픽개최후보도시도 단수도시에서 복수도시 개최허용으로 개최도시(Host City)에서 개최지(Host)로 명칭도 변경되었다

 

 

Sydney2000올림픽대회에 앞서 현지에서 개최된 IOC 집행위원회에서는 2001년 결정할 2008년 하계올림픽 IOC 평가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구성된 위원들은 현역 IOC 위원 7(Hein Verbruggen-네덜란드, IOC 위원 겸 국제사이클연맹 회장, Francisco Elizalde 필리핀 IOC 위원, Craig Readie 영국 IOC 위원 겸 NOC 위원장, Carlos Nuzman 브라질 IOC 위원 겸 NOC 위원장, Tomas Sithole 짐바브웨 IOC 위원 겸 ANOCA 사무총장, Sergei Bubka IOC 집행위원(우크라이나) IOC 선수분과위원장, Mario Pescante 이태리 IOC 위원 겸 EOC 회장, IOC 사무국 대표로 Gillbert Felli 올림픽 대회 수석국장, 국제연맹 대표 3(Els Van Breda Vriesman 국제하키연맹회장( IOC 위원역임), Patrick Baumann 국제농구연맹 사무총장 및 Catrin Norinda 국제승마연맹 사무국장) 전문가(specialist) 대표 3(Simon Balderstone 환경전문가(호주), Bob Elphinston 경기 및 시설전문가(2000 시드니 올림픽 조직위원회 경기총괄 부위원장) 10개 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단장대행을 역임한 필자(Rocky Kang-Ro Yoon), 그리고 장애인올림픽 대표 1(Robert McCULLOUGH) 등 총 14명과 Jacqueline Barrett IOC 유치도시관련 팀장을 비롯한 3명을 합쳐 총 17명이었으나 Mario Pescante 이탈리아 IOC 위원은 도중에 사퇴하였다.

 

 

 

필자가 IOC 평가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간 배경은 다음과 같다.

 

 

 

IOC 집행위원회에서 직능 별 대표들을 선정하는 가운데 전문가그룹 대표후보자들 중 아시아대륙을 거명하며, 적임자가 없는 상태라고 Felli 국장이 사마란치 IOC 위원장에게 보고하자 당시 IOC 부위원장이었던 김운용 KOC 위원장이 「무슨 소릴 하고 있느냐? 한국의 Rocky Yoon이 있지 않느냐?」라고 강하게 Felli 국장을 힐난하며 필자를 추천하자, 그때야 Felli 국장 및 집행위원들은 필자를 미처 생각 못했노라고 인정하면서 적격자라고 평가 받아 뒤늦게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를 김운용 IOC 부위원장에게서 전해 들었다.

 

 

 

IOC는 근본적으로 귀족 백인위주의 클럽으로 시작하였고, 근본적으로 유럽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로 분류되는 지역출신 사람들은 웬만큼 능력 있고, 기가 세고, 강심장을 갖고 세력 구축을 하면서 실력발휘를 하지 않는 한 IOC 등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식이다.

 

 

 

(두 번째 유치후보도시인 Osaka방문 시 Mori일본총리주최 리셉션장 에서 Mori총리< Tokyo2020올림픽조직위원장>과 함께)

 

 

 

 

 

따라서 김운용 IOC 부위원장의 경우는 특별한 예외이며 그만큼 능력과 실력과 세력을 겸비했다는 뜻이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 아시아가 배출한 역사상 최고의 불세출의 스포츠지도자임은 틀림없다.

 

 

 

필자가 아무리 실력과 능력과 경험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어도 당시 김운용 부위원장께서 IOC 집행위원회 회의석상에서 강력한 추천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IOC 30여개 분과위원회 중 가장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대표들로 포진된다는 IOC 올림픽대회 평가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예는 김운용 IOC 부위원장께서 「후배를 잘 키우지 않는다」는 항간의 주장과는 잘 맞지 않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기회를 빌려 작고하신 故 김운용 IOC 부위원장 영전에 필자가 국제무대에서 그 동안 축적된 모든 경험과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본격적으로 한민족의 저력과 「본때」를 보여주고 명성을 날리도록 추천해주신 배려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2000 915일부터 101일까지 개최된 시드니 올림픽대회 시작 전인 2000 829일자로 IOC에서는 필자의 IOC 평가위원회 위원 임명사실을 통보하면서 2000 925일 호주 시드니에서 IOC 올림픽대회 평가위원회 위원 상견례 겸 제1차 회의를 소집하였다.

 

 

 

림픽대회 기간 중 시드니 Regent호텔 Ballroom에서 개최된 회의에는 당시 Samaranch IOC 위원장, Carard IOC 사무총장, Felli IOC 국장, Jacqueline Barrett IOC 유치도시 담당팀장과 IOC 평가위원장 직을 맡은 Verbruggen 네덜란드 IOC 위원 겸 국제사이클연맹(UCI) 회장을 비롯하여 Elizalde 필리핀 IOC 위원, Reedie 영국 IOC 위원, Pescante 이탈리아 IOC 위원, Nuzman 브라질 IOC 위원 등 평가위원 14명이 모두 참석하였다.

 

 

 

Samaranch IOC 위원장이 당부하는 인사말이 있었고 평가위원들 소개에 이어 IOC 평가위원회가 점검, 평가, 실사, 분석할 18개 분야에 대한 책임업무 분장이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주제3(Theme3/Customer and Immigration formalities; 세관 및 입국절차 세부사항)과 주제17(Theme17/Olympism and Culture; 올림픽대회 개폐회식, 올림픽 성화봉송, 시상식 등 제반 의전행사와 문화행사 등)이 책임분야로 지정되었고, 기타 분야는 공동 참여하도록 정해졌다.

 

 

 

 

(-6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 -7 Samaranch IOC위원장, -1 Gilbert Felli IOC올림픽 수석국장,-3이 한국최초 IOC평가위원으로 선정된 필자)

 

 

 

 

5개 유치후보도시에 속한 나라의 IOC 위원들은 투표권이 없으므로 이들 11(중국2, 일본2, 캐나다3, 터키1, 프랑스3) IOC 위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IOC 위원들은 IOC 평가위원회가 작성한 최종 평가위원회 보고서를 숙독한 후, 투표일인 2001 713일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었다.

 

 

 

유치후보도시 실사평가 방문을 모두 마치고 최종 보고서 작성을 위하여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 집결한 IOC 평가위원회 위원들은 Samaranch IOC 위원장의 따듯한 환영과 뼈를 깎는 듯한 길고 힘든 작업에 대하여 치하와 격려와 감사의 말을 들었다.

 

 

 

Samaranch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역대 올림픽대회 IOC 평가위원회 중 아무런 잡음도 없고 평가위원들 간의 화합과 친목 돈독 정도가 최고라고 들었노라고 칭찬하여주면서, 최종 보고서 작성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여 임하되, 정식 분량 보고서 외에 A4 한 장~두 장짜리 축약보고서도 함께 작성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유인 즉, IOC 위원들 대다수가 정식 분량의 최종평가 보고서를 숙독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바, 최소한 축약 본이라도 읽게 하려는 의도라고 간단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드디어 IOC 평가위원회 위원 전체가 IOC 본부 집행위원회 회의장에 모여 23일간 최종평가 보고서 작성작업에 돌입하였다.

 

 

 

 

 

 

(Samaranch IOC위원장이 IOC집행위원회 회의실에서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현지 실사 방문결과 보고서작성 후 필자에게 감사선물을 증정하고 있다)

 

 

 

 

5개 도시 별 18개 항목별 조사평가 내용은 각 유치도시 실사 방문기간 동안 중간 정리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사실에 입각한 기술적인 평가(technical assessment)를 그대로 반영시켰다.

 

 

회의 마지막 날에는 각 유치도시 별 최종평가 결론 내용 작성이었다.

 

 

이 결론 내용(Conclusion)은 유치도시 평가보고서의 핵이므로 정확하고 종합적인 검토와 촌철살인의 집약된 평가와 세심한 주의가 모두 요구되는 극도로 예민하고 첨예한 화룡점정 격의 한판이었다.

 

 

최종 결론 부분(Conclusion) 내용의 초안을 잡아야 하는데, 평소 영연방(Common Wealth) 세력인 영국의 Craig Reedie IOC 위원과 호주의 환경전문가인 Simon Balderstone이 이구동성(in unison)으로 본인들의 모국어가 영어이므로 초안 담당을 하겠노라고 선수를 치고 나왔다.

 

 

딱히 반대할 명분도 없고 해서 그대로 인정되었다.

 

 

 

자칭 영어가 모국어란 이들 두 전문가는 5개 유치도시 최종 결론 중 마지막으로 묘사되는 한 줄을 놓고, 어떤 도시에는 「will」을, 또 다른 도시에는 「would」를, 또는 「could」와 「can」을 뒤섞어서 표현하였다.

 

 

 

필자는 발언을 통해 「문법적으로 동사의 용법을 가지고 뉘앙스(nuance)를 무리하게 처리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한 단어가 주는 영향력(impact)을 공정하게 반영해야 하므로 「would」면 「would」로, will」이면 「will」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Verbruggen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위원들이 필자의 취지에 동의하여 「can」이나 「will」 대신 「could」와 「would」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같은 영연방국가인 캐나다의 유치후보도시인 Toronto2008을 의식한 듯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외신에 집중 거론되었던 중국의 인권문제를 Beijing2008 유치와 연관시켜 문건화하여 결론 맨 끝부분에 삽입할 것을 강력 주장하였다.

 

 

 

필자는 유일한 아시아대표로서 Beijing이 정치적인 사안으로 부당하게 공격받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해당 문건 삽입에 대하여 강력히 반대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자, 이 두 명의 전문가들은, “만일 외신이 집중 거론하고 있는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일언반구(a single word)의 표현도 결론 부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IOC 평가위원회가 여론을 전혀 반영시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라는 취지로 필자의 견해를 반박하였다. 그러면서 대안적인 표현으로서 “Should the Game be awarded to Beijing, the human rights issue would be an on-going debate in the period leading up to the Games(만일 2008년 올림픽대회 개최지가 북경으로 정해진다면, 인권문제는 대회 개최 시까지 끈질긴 토론거리로 쟁점화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제시하면서, 이 문구를 Beijing2008유치후보도시 결론 맨 마지막 부분에 넣어서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거운 정적(gloomy silence)이 회의실에 감돌았다. 필자는 Verbruggen 위원장에게 “우리 IOC 평가위원회는 IOC 집행위원회로부터 기술적인 측면(technical aspects)만 평가(evaluate)하도록 소임을 부여 받았으며, 정치적인 사안은 취급하지 말 것(The Commission is not allowed to touch upon any political issues)이란 지침을 받은 바 있고, 실제로 각 유치도시 실사평가 방문 말미에 행한 각국 기자회견 때마다, Samaranch IOC 위원장께서도 정치적 질문에 대하여 「우리 영역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더구나 대안으로 제시한 표현문구는 투표권 자들인 IOC 위원들에게 마치 Beijing2008에 표를 던져 개최도시로 선정이 되면 인권문제가 2008년까지 계속 골칫거리로 IOC를 괴롭힐 것이니, Beijing은 바람직한 개최도시 후보가 아니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것 같은데, 이는 불공정한 처사로서, 향후 감당치 못할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많으니, 이러한 문구는 절대 거론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향후 중국 측의 반발, 이로 인한 IOC 평가위원회 위원장으로의 책임추궁 등 위원장 본인의 신상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Verbruggen 위원장은 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Paris2008유치후보도시 중심부 지하철 Metro 현지 실사중인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과 필자)

 

 

 

 

따라서 이 문구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중국으로 보아서는 IOC 평가위원회 실사평가 방문과 연계되어 최종적으로 도출된 실사평가보고서 최종결론에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으로 미국을 비롯한 외신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인권문제(human rights issue)를 평가보고서 결론에 한 줄도 거론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사수(desperate defense)해 준 필자가 수훈 갑(Top Contributor)이 되어버렸다.

 

 

필자는 IOC 평가위원회 위원자격으로 2001년 제113차 모스크바 IOC 총회에 정식으로 초청받아 비즈니스클래스 왕복항공권과 IOC 본부호텔 숙식을 제공받으며, IOC 총회장 왼쪽에 마련된 단상에 난생처음 정식으로 IOC 공식자리에 앉아 IOC 위원들과 눈높이를 같이하였고 5개 후보도시 프레젠테이션과 투표결과를 지켜볼 수 있었다.

 

 

다시 시계를 돌려 5개 유치도시 실사 방문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유치도시의 IOC 총회에서의 설명회(Presentation) 순서는 무작위 추첨(random drawing)으로 결정하지만 유치도시 방문일정은 시간절약(time effective)과 항공 일정상의 방문 편의(for travel convenience sake)를 고려하여 잡는다. 보통 가장 먼 지역부터 시작하는 것이 관례로서 중국의 Beijing, 일본의 Osaka, 캐나다의 Toronto, 터키의 Istanbul, 그리고 프랑스의 Paris 순서로 실사방문일정이 짜졌다.

 

 

 

 

 

 

 

 

 

 

(네 번째 유치후보도시인 Istanbul 현지실사 방문 시 필자를 포함한 IOC평가위원들)

 

 

 

(다섯 번째 유치후보도시인 Paris2008 현지실사 중 유치위원회 관계자와 불어로 담소 중인 필자/Paris2008유치 뉴스레터)

 

 

 

 

IOC 평가위원 개별 항공일정 등이 IOC 사무국과 상호협의 하에 정해진 후 비즈니스클래스 왕복항공권이 사전에 지정항공사를 경유하여 지급되었다.

 

 

모든 IOC 평가위원들에게는 가장 먼 거리였지만 필자에게는 가장 가까운 거리인 Beijing2008에 도착한 날짜는 2001 221일 오후였다.

 

 

대한항공 직항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Beijing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중국 당국에서는 필자를 최고 VIP급으로 분류하여 일반 출입국 수속 대를 통하지 않고 번쩍이는 신문기자 카메라와 TV카메라 세례를 한편 받으면서 또 트랩까지 마중 나온 Tu Mingde 중국 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과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의 안내 겸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공항 귀빈실로 모심(?)을 당하였다.

 

 

 

중국 특유의 귀빈접대를 받으면서 TV 인터뷰를 마치자, 간이 공항입국 수속절차를 대리로 끝내고 필자의 짐을 찾은 뒤 곧바로 공항 귀빈 주차장에 준비된 고급 승용차로 안내되어 중국여성 의전요원이 자동차 앞자리에 수행 자격으로 앉고 필자 옆자리에는 Tu Mingde 중국 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이 동석하였다. 중국 공안에서 배려한 듯한 에스코트 선도차량이 필자가 탄 자동차를 인도하였다. 마치 중국 국빈이 된 느낌이었다.

 

 

2000년 당시만 해도 한국 주재 중국대사관으로부터 1년짜리 중국 복수비자 발급대상은 장관급 이상이었다. 필자는 2000 1225일자로 Liu Qi 북경시장 겸 2008년 하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공한을 받았다.

 

 

IOC 평가위원인 필자를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에 정식초청하며, 북경 체재기간 동안 Host로서 성의를 다하겠다는 내용과 비자발급 편의 안내문이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필자는 다음해 221Beijing 도착이라서 2월 초순경 비자발급 신청을 할 작정으로 미루고 있었는데, 2월 중순 어느 날 한국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필자에게 예의를 차린 어조로 「중국 비자발급을 해드릴 테니 직접 오시지 마시고 직원에게 대신 심부름시키면 그 자리에서 발급해 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체육회 지정 여행사 직원에게 부탁하였고, 말 그대로 당일 그 자리에서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그것도 1년짜리 복수비자로. 여행사 직원 말에 의하면 한국인으로서 상당히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예우라고 놀라워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숙소인 베이징반점(Beijing Hotel)에 도착하고 안내된 방은 스위트(Suite)룸으로 VIP 용인 듯싶었다.

 

 

방에서 여장(travelling kit)을 풀고, 시간에 맞추어 동료 IOC 평가위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만찬 장으로 가서 다음날부터 진행될 평가실사회의에 대한 사전회의와 더불어 식사시간에 맞게 합류한 북경유치위원회 간부들과 상견례 겸 환담을 하였다.

 

 

다음날 아침 7시에 IOC 평가위원단 조찬 겸 내부회의에서 오전 830분부터 시작되는 첫 방문 지 첫 브리핑 대비 전략회의였다.

 

 

Verbruggen 위원장은 개별 평가위원 소관 주제와 관계없이 18개 모든 항목에 걸쳐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많이 해줄 것을 주문하였다.

 

 

 

필자의 전공은 질문 그 자체였다. 필자는 당시 20여 년간 10개의 동·하계올림픽대회, 동·하계아시안게임, IOC 총회, ANOC 총회, OCA 총회 참석 등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몸에 밴 각종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역대 올림픽조직위원회 및 국제 스포츠 계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은 그야말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무장된 사람이었다. 첫날 첫 회의 첫 주제부터 필자의 질문공세가 Beijing2008유치위원회 측 주제별 발제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나 보다.

 

 

 

두 번째 날 회의가 끝나고 저녁 리셉션 장에서 미모의 중국여성이 필자에게 다가와서 2일간의 회의를 브리핑 룸 옆방에서 폐쇄회로 TV모니터를 통해 생중계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의 눈부신(?) 활약상에 경의와 감탄을 표한다고 하고 나서, 다음날이 그 여성의 주제발표 순서인데, 질문할 내용을 미리 귀띔해주고 질문을 하더라도 쉽게 다루어 달라는 요청 아닌 애교 성 애원(?)이었다. 마음 약하고 부드러운(?) 남자인 필자는 그 여성의 주문대로 예상 질문내용도 미리 알려주고 질문도 쉽게 하였음은 불문가지이다.

 

 

회의 3일 차에는 강택민(장쩌민) 중국주석도 예방하여 악수도 하고 환담도 하고 사진도 함께 촬영했다. 국빈 급에게만 공개한다는 여름궁전(Summer Palace)과 천안문 근처의 자금 성(Forbidden city) 성곽 망루에도 안내되어 올라가 기념촬영도 하였다.

 

 

 

 

 

 

(Beijing국가주석 궁에서 장쩌민 중국국가주석과의 만남)

 

 

 

 

올림픽 경기장 예정지뿐만 아니라 교통통제센터, 기상센터, 수질관리센터, 첨단 디지털센터 등등 모든 곳에서 올림픽 개최 열기가 펄펄 끓고 있었다.

 

 

 

주제별 발제자들도 전세계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12억 인구 가운데 선별, 총동원하는 등, 발군의 영어 구사능력과 탁월한 지식 등에 힘입어 IOC 평가위원단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하였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부터 매일 아침 운동을 습관으로 삼아왔다. 태권도, 평행봉, 철봉, 달리기, 배드민턴, 팔 굽혀 펴기(push up), 윗몸 일으키기(sit up), 체조, 단전호흡 등을 즐기는 편이다.

 

 

 

 

 

 

 

Beijing에 체재하는 동안 아침 5시 반에 기상하여 호텔 내에 있는 아침 6시에 개장하는 헬스장(Fitness Center)으로 가서 Stretching 등으로 몸 풀고, 러닝 머신(running machine/Treadmill) 위에서 30분 이상 달리기를 한 후 땀이 비 오듯 하면 나머지 정리운동을 하고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도 한 뒤 객실로 돌아와 샤워하고 일정에 임하곤 했다.

 

 

 

유럽에서 중국까지 날아온 위원들이 대부분이어서 시차적응 등으로 아침 운동하는 위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날 아침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 장대높이뛰기(pole vault)의 세계기록 보유자인 「나는 인간 새」 Sergey Bubka IOC 집행위원 겸 IOC 선수분과위원장(우크라이나 NOC 위원장 겸직)이 헬스장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운동에 임하였다.

 

 

 

(5번째 마지막 유치후보도시인 Paris2008방문시 Jacques Chirac 프랑스대통령이 Palais d’Elysee대통령궁에서 IOC평가위원회 대표단을 초청 리셉션에서 필자와 악수하는 장면-이후 친필서명이 담긴 사진을 보내왔다)

 

 

 

 

헬스장에는 헬스 기구들 사이에 마침 실내용 짧은 거리 트랙(Track)이 구비되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Bubka와 함께 주행하는 모양이 되었다.

 

 

한참을 도는데, 아무리 필자가 운동을 습관화해 왔다고는 하지만 세계육상 선수권자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한국인 특유의 오기와 집념으로 숨이 턱까지 차올라 왔지만 소리 죽여 입으로 내쉬면서 지친 기색을 표출하지 않은 채 끝까지 Bubka 뒤를 따라붙자, 그제서야 Bubka도 내심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Bubka는 잠시 멈추고 필자에게 다가와 「몸의 균형을 맞추고, 한쪽으로 쏠린 근육 밸런스(balance)를 위해 트랙 반대방향으로도 뛰자」고 제의하였다.

 

 

 

필자는 힘이 들었지만 쾌히 응하고 Bubka 뒤를 다시 따라붙었다. 마치 「말아톤」을 하는 심정이었다.

 

 

「백만 불짜리 파트너」와 「끝내 주는」 운동을 한 셈이었다. Bubka는 정리운동을 하면서, 필자의 회의장에서의 활력적인 분위기 창출과 다양한 올림픽 관련 지식수준과 운동을 좋아하는 면이 모두 마음에 든다면서, 앞으로 IOC 평가위원 5개국 방문기간 동안 매일 아침 같이 운동하자고 제의하였다.

 

 

이러한 Bubka와 필자가 시작한 아침운동에는 Hein Verbruggen IOC 평가위원장, Gilbert Felli IOC 올림픽대회 총괄수석국장 등 4, 5명이 함께 참여하여, 5개국 평가 방문기간 동안 환자 발생 없는 강철 같은 IOC 평가위원군단으로서 정력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당시 Samaranch IOC 위원장의 평가에 의하면 잡음이 생기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업무수행을 훌륭히 치러낸 역대 가장 뛰어난 IOC 평가위원단이란 찬사도 들었다.

 

 

세 번째 방문 도시인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서는 쌀쌀하다 못해 겨울 날씨를 보이던 날 아침 일찍 Bubka가 필자 객실로 전화를 해왔다.

 

 

 

 

(Istanbul2008현지신문이 보도한 필자 등뒤에 부착한 Istanbul2008유치로고로 승리기원 코스프레장면)

 

 

 

 

 

(Toronto2008유치위원회가 IOC평가위원회 실사방문 기간 중 발행한 뉴스레터/사진 중 회색 패딩을 착용한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과 필자 외 평가위원들 및 Toronto2008관계자 들)

 

 

 

 

날씨가 춥지만 밖으로 나가서 뛰자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반바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로비에 등장한 필자에게, 밖이 너무 추우니 하다못해 목욕 타월 가운(bath robe)이라도 다시 입고 나오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타월 가운(gown)을 입고 토론토의 중심거리를 질주하였다.

 

 

 

(세 번째 유치후보도시인 Toronto2008현지방문 중 Cretien캐나다 총리주최 리셉션 장에서 좌로부터 김숙 당시 Toronto주재 한국총영사, 필자, Jean Cretien총리<1993~2003>, 김숙 총영사부인, 한국교민회장?)

 

 

 

(우로부터 김숙 주 Toronto한국총영사, 필자, 총영사부인, 한국교민여성회장?)

 

 

 

 

다섯 걸음마다 타월 가운이 벌어져서 다시 가운에 달렸던 허리끈을 동여매면서 뛰니까 이는 그야말로 코미디 영화촬영을 방불케 하였나 보다.

 

 

거리의 시민들도 웃고, 이후 그 장면은 IOC 평가위원단뿐만 아니라 토론토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에게도 한동안 회자하여 재미난 에피소드로 기억되었다.

 

 

이러한 해프닝이 생긴 후, Bubka는 필자의 외국명인 로키(Rocky) 이외에 옛 소련의 영웅,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따 「유리(Yuri)」라고 부르면서 모든 공개석상에서 동료 IOC 선수위원들뿐만 아니라 국제 스포츠 계 지도자들에게 필자를 자신의 「Twin Brother」라고 소개해오고 있다.

 

 

 

(IOC평가위원시절 필자와 Sergey Bubka IOC집행위원 겸 우크라이나 NOC위원장)

 

 

 

또 한 가지 추억은 필자와 함께 IOC 평가위원이었던 Els Van Breda Vriesman의 「오렌지색 양말(Orange Socks)」 사건이다. 필자는 오렌지색 넥타이를 공식만찬 등에서 즐겨 맨다. 이를 눈여겨본 Els 회장이 중국의 베이징과 일본의 오사카, 두 후보도시 방문 후 잠시 각자 귀국하여 3~4일 정도의 말미 후 세 번째 평가대상 후보도시인 캐나다의 토론토에 집결하자, Els 회장은 15명의 IOC 평가위원들이 재회한 자리에서 필자에게 선물을 준비해 왔노라고 하면서 「오렌지색 양말」을 펼쳐서 주면서,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반드시 착용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오렌지색은 네덜란드의 상징색깔로서 필자를 친 네덜란드화하자는 친화적 제스처였으므로, 필자도 이에 호응하여 기꺼이 착용하겠노라고 서약(?)하였다. 문제는 다음날 토론토 유치후보도시 방문 공식 공개일정 시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하였을 때 벌어졌다.

 

 

 

 

 

 

물론 출발 직전 Els 회장이 필자의 바지를 걷어보면서 「오렌지색 양말」 착용사실을 확인한 후, 이를 염두에 두었던 호주의 환경전문가인 Simon Balderstone IOC 평가위원이 캐나다 수상 및 VIP들과 캐나다 언론이 운집한 공식행사에서 필자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필자 바지를 슬쩍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짙은 색 바지 아래로 들어낸 오렌지색 양말은 그야말로 「휘황찬란」 그 자체였다. 참석한 모든 이들 눈을 즐겁게 하여 주었음은 물론 카메라 플래시(camera flash) 세례의 대상이 되었음은 불문가지이다.

 

 

 

그 사건 이후 토론토 유치후보도시의 의전담당 미모의 한 여성이 필자에게 오렌지색 넥타이 및 양말과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양복 왼쪽 주머니에 넣는 오렌지색 장식용 손수건(pocket handkerchief)을 선물하여 주었다.

 

 

 

따라서 필자는 스포츠 관련 만찬 등 행사 시 이 세 가지 오렌지색 물건 중 양말을 제외한 두 가지를 애용하게 되었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당시 강원도 평창의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설명회(Presentation)에서 공식 발표자 중 한 명이었던 필자는 이 오렌지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발표를 한 직후 네덜란드 IOC 위원 겸 황태자(Crown Prince) Prince Orange가 필자에게 다가와 “오렌지색 넥타이가 매우 인상적이며,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고 말해줌으로써 실제 투표 시 네덜란드 IOC 위원 3명 중 최소한 확실한 두 표는 확보하지 않았을까 유추해보기도 했다.

 

 

 

(2009 Copenhagen 개최 IOC총회에서 해후한 Prince Orange네덜란드 황태자 겸 IOC위원-현 네덜란드 국왕<좌측>과 담소 중인 필자)

 

 

 

 

각 유치후보도시 별 IOC 평가실사방문 최종 일정은 해당국 언론과의 단 1회뿐인 공식기자회견이다. 유치도시에 대한 실사 평가결과를 브리핑하여 주고 질의응답이 뒤따른다. 캐나다 토론토 유치 실사 최종일 숙소 호텔에서 기자회견장으로 가기 위하여 필자는 Hein Verbruggen IOC 평가위원장 및 몇몇 평가위원들과 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내내 작동이 잘 되었던 엘리베이터가 「동작 그만」으로 멈춰 서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30분이나 계속되어 갇혀버린 셈이 되었다. 모두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필자가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은 “이제 IOC 평가위원회(Evaluation Commission)를 대피위원회(Evacuation Commission)로 바꿔 불러야 할 것 같다.”였다. 필자의 이 말 한마디가 갇혀 불안에 떨던 10여명의 위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것 같다.

 

 

Hein Verbruggen IOC 평가위원장은 늦게 도착한 기자회견장에서 필자가 거명한 Evacuation Commission 이야기를 하면서 지각사유를 설명하였다.

 

 

이것은 「복선의 배치」였다. 결국 가장 좋은 기술평가 점수를 받았던 것으로 여겨졌던 Toronto2008은 중국 Beijing2008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필자는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중국이 스포츠와 관련이 없는 인권 문제로 인해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자연발생적 평등권 보호 본능에 의해 사수(?)한 것이고 토론토나 파리 등 다른 후보도시를 겨냥한 것이 아닌 순수한 올림픽 패밀리의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입장의 발로였음을 밝혀둔다.

 

 

이러한 뒷이야기가 훗날 알려지자 중국 스포츠 계 지도자들은 그 후 필자를 중국, 북경의 2008년 올림픽 개최도시 선정에 있어서 숨은 공로자로서 드러내지 않은 예우를 해주고 있다.

 

 

2010년 평창의 동계올림픽 개최도시 결정 불과 1개월 전인 2003 6월 중순 당시 중국 NOC 신임사무총장 GU Yaoming 명의로 베이징에 공식 초청해 주어 중국 IOC 위원 및 NOC 관계자들과의 회동을 가능케 배려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가 중국에 만연하여 많은 이들이 중국 방문을 기피하는 시기였는데 김치성분이 체내에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체질인지라 서슴지 않고 SARS의 중심지역을 오로지 2010 당시 평창유치를 위해 용감하게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날아갔다. 막판 표 모으기에 뭔들 못하겠는가?

 

 

베이징공항에는 중국 NOC 여성 의전도우미와 영접요원이 필자를 맞이하였으며 예약된 5성급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필자는 아연실색하였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아무도 없다가 필자 도착사실이 통보되자 그제야 객실 열쇠를 주기 위해 두 명의 호텔 직원이 등장했으며, 8대의 호텔 엘리베이터도 단 1대만 가동되었고 필자가 유일무이한 승객인 것 같았다.

 

 

아침식사도 하루 전에 메뉴 예약을 하여 평소 100여 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조찬 장을 독점 전세 낸 듯이 혼자서 이용했던 진풍경을 체험하였다.

 

 

SARS 창궐지역을 무사히 다녀오고 1주일가량 뒤 노무현 대통령께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핵심 관계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프라하 현지 출발에 앞선 격려 오찬간담회를 베풀어 주셨는데 SARS 창궐지역 최근 열흘 이내 방문자는 애초 청와대 방문명단에서 제외되었다가 김진선 강원도지사(유치위원회 집행위원장)의 배려로 필자는 예외적으로 청와대 방문이 허용되었으나, 대통령과의 환영 악수 대상 명단에는 결국 배제되었다.

 

 

그리고 오찬 간담회에서는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된 뒤 행사 후에 노대통령과의 작별 악수는 나눌 수 있었다. 어쨌든 필자는 노대통령의 환영 악수 장면의 사진이 없다. 다행히 작별 악수 때에는 사진 촬영장면(아래)이 있었다.

 

 

 

 

 

 

 

그 후 필자는 중국 개최 국제스포츠관련행사에 공식 초청받는 일이 많아졌으며 2001Beijing하계유니버시아드, 2005 5월에 개최된 2008 Beijing올림픽 유치기념 문화축전, 2005 10월에 4년마다 개최되고 있는 올림픽대회보다 참가규모가 더 방대한 중국전국체전(Nanjing) 등에 초청되어 준 국빈 급 예우를 받은 바 있다.

 

 

 

2005 5월에 베이징에서 개최된 2008Beijing올림픽 유치기념 문화축전에 초청되어 참가한 필자는 함께 초청받은 장웅 북한 IOC 위원과 함께 베이징대, 청화대와 함께 중국 3대 대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민대학교이 객좌교수로 임명되어 임명장을 받고 특별 강연도 하는 등 가문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첫 번째 필자가 생각하는 가문의 영광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성공적 유치와 성공적 개최를 위한 길목에서 얽히고설켰던 국제 스포츠외교문제 해결 등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 10 28일 故 안상영 부산광역시장으로부터 수여 받은 (1)「제78호 부산명예시민증」이고, 두 번째는 2003 11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당시 바가반디 몽골 대통령 참석 하에 수여 받은 (2)「몽골 국립 올림픽 아카데미 제1호 명예박사학위」이며, 세 번째는 2005 5월 중국 3대 대학교인 (3) 인민대학에서의 「객좌교수」임명이며 네 번째는 한국최초로 국제적 스포츠외교활동을 인정 받아 206개국 국가올림픽위원회 대표들이 운집한 가운데 2008년 베이징개최 ANOC총회에서 수여 받은 (4) ANOC공로훈장 수상이다.

 

 

 

 

(몽골 국립올림픽아카데미에서 수여한 명예박사학위 증)

 

 

 

 

 

 

(중국 인민대학교 객좌교수 임명 및 추대 증서)

 

 

 

(2008년 베이징개최 ANOC총회 개회식 장에서 필자에 대한 ANOC공로훈장 수여 장면)

 

 

이 네 가지 스포츠외교로 일군 명예는 제 개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스포츠외교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은 영예이므로 이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20. 15:32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7)스포츠외교관외길인생38년 실록<태극기로 스포츠외교 휘날리다>(43)]

 

 

 

태극기로 스포츠외교 휘날리다

 

 

태극기가 가장 많이 휘날리는 현장은 뭐니뭐니해도 스포츠와 관련된 행사(Events), 경기(Competitions), 시상식(Victory Ceremonies) 등이다.

 

 

 

(Atlanta1996올림픽 한국선수단 금메달리스트 기념촬영장면)

 

 

 

 

우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선수들의 유니폼(Uniform)에 부착된 태극마크를 떠올릴 수 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운동선수들의 숙원(long-cherished desire)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기까지 흘리는 피와 땀(blood and sweat)의 노력은 태극마크로 보상된다.

동·하계 올림픽대회(Winter and Summer Olympic Games; Olympics), 동·하계 아시아 경기대회(Winter and Summer Asian Games), 동·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Winter and Summer Universiade)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World Championships)등 대회 참가를 위해 선발된 국가대표선수단(Selected National Delegation/Team)은 출전을 앞두고 결단식(Inauguration meeting)에서 선수단장(Chef-de-Mission: Chief of Delegation)이 해당 경기단체(National Governing Body)또는 대한 올림픽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Korean Olympic Committee)으로부터 단기(Delegation Flag)로서 태극기를 인수받아 단상(platform)에서 그 태극기를 흔들면서 결전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다.

 

 

 

 

(Lillehammer1994동계올림픽참가 한국선수단 결단식 장면)

 

 

 

 

한국 선수단의 기수(Flag Bearer)는 대회 개·폐회식(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에서 태극기를 들고 선수단을 선도한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개회와 같이 종합대회에서는 선수단의 선수촌(Athletes Village/Olympic Village)에 도착한 다음날에 입촌식(Flag Raising ceremony 또는 Team Welcome Ceremony)을 갖게 되며, 입촌 시 해당국 선수단의 입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기게양식(National Flag Raising/Hoisting Ceremony)를 갖게 된다. 물론 국가연주(Playing of National Anthem)가 함께 수반된다. 개회식과 함께 대회가 시작되어 메달 수여식(Medal-Awarding Ceremony; Victory Ceremony)에서도 금, , 동메달리스트의 국기가 동시에 게양된다.

 

 

 

 

(Vancouver2010동계올림픽에서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되는 장면)

 

 

 

 

 

물론 국가연주는 금메달리스트 국가에 한한다. 이외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경우는, 선수가 금메달이 확정되고 나서 경기장을 돌면서 태극기를 휘날리기도 하고, 응원단에서도 응원(cheering)과 함께 태극기를 열렬히 흔드는 것이다.

 

 

 

필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1992년 제25회 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섭외 임원(Official in charge of International Relations) 겸 선발대장(Chief of Advance Party of Korean Delegation)겸 선수단장대행(Acting chef-de-Mission)으로 선수단 본진(Main Body of Korean Delegation)이 도착하기 열흘 전 현지에 도착하여 대회 조직위원회(OCOG; Organizing Committee of Olympic Games) 각 부서 관계자들과 한국선수단 입촌 및 대회 참가에 따른 세부 확인사항 최종 점검회의를 갖은 바 있다.

 

 

 

ID 카드 (Accreditation)발급, 선수단수송(Transportation), 선수촌 숙박(Accommodation), 의무관련사항(Medical Services), 통관(Customs Clearance Procedures), 의전(Protocol), 단장회의(Chef-de-Mission's meeting), 선수촌 식당메뉴(Menu of Olympic Village Restaurant), 차량배분(Allocation of Vehicles), 입촌식 절차(Procedures of Team welcome Ceremony)등에 대한 선수단 등록 종합 점검 회의(DRM; Delegation Registration Meeting)에서,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국기와 국가 호칭 문제였다.

 

 

 

 

 

 

 

 

왜냐하면, IOC 의전에서 대한민국은 KOREA(약어로 KOR)로 북한은 DPR KOREA(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약어로 PRK)로 되어 있는바, 비록 잘 훈련된 조직위원회 직원들이라 하더라도 현장에서의 혼돈으로 의전상 실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연주 시에도 중대한 착오가 생길 수 있었다.

 

 

 

더욱이 양측 남·북한 양측 국기는 그네들로서는 혼동되기 십상인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에, 한국 선수단 입촌식에 앞서 예행연습(rehearsal)을 갖자고 주장했고, 조직위원회 측의 배려로 다음날 한국 선수단 모의 입촌식(Mock Team Welcome Ceremony)를 하였는데, 그 당시 국기게양을 위해 태극기를 꺼내야만 했는데 엉뚱하게도 조직위원회 담당자가 인공기(북한국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도 주적(Main Enemy) 국기와 태극기를 혼동한다는 것은 국내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과실(Grave Mistake)로 심각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아찔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모의 행사였고, 실제로 게양되기 직전에 발견되었기에 실제상황이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있을 정식 입촌식, 개·폐회식 시상식 등 많은 국기관련 의전행사를 고려하여, 조직위원회 측에 서면으로 정식 항의하였고, 선수촌 내에서 개최되는 일일 각국단장회의에서도 엄중항의 하였으며 조직위원회 측의 정중한 사과와 재발방지서면 약속이 뒤따랐다.

 

 

 

물론, 그 덕분에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기간 중 국가와 국기와 관련된 혼동은 한 건도 발생치 아니하였고, 그 후 대회조직위원회 의전 팀은, 이를 사과하고 대한민국국기를 길이 기리는 의미에서 대회 기간 중 규격에 맞추어 대형 태극기를 의전팀원들이 공동으로 손수 그려서 필자에게 선물하였다.

 

 

 

 

 

 

 

그 역사적인 태극기는 필자가 개장한 평산 스포츠 박물관(PyeongSan Sport Museum)에 전시돼 있다가 평창2018동계올림픽 후 설립예정인 강릉올림픽 박물관에 무상기증 올림픽수집품과 함께 강릉시청에서 전시배치를 위해 보관 중이다.

 

 

 

 

 

 

 

(필자가 강릉시에 기증했던 올림픽수집품 중 뺏지<Olympic Pins>일부가 평창2018 동계올림픽을 전후로 강릉에 설치된 평창2018올림픽 전시관에 전시된 바 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11. 20. 14:31

[우리들교회 2019 1117일 주일말씀 요약 및 요점정리(에스겔 18: 1~4 23~ 32/ 돌이키고 살지니라)]

 

 

 

<에스겔 18:1~4, 23~32>

 

1절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25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26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27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29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 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Prologue>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다

영육간에 추수를 하는 감사절이 되기를 바란다.

신앙도 성격이 적극적이면 탱크(Tank)해서 다 밀어붙이고, 소극적이면 씽크(Sink)해서 가라 앉는다고 한다

우리들교회 THINK목회는 오직 말씀으로 균형을 잡고 Think하면 Thank해서 감사가 나온다

오늘 여러분의 삶도 생각을 잘해서 감사로 결론이 나는 것이 오늘 제목처럼 돌이키고 사는 비결이다.

그래야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말씀요약>

 

나의 사건에서 돌이키고 살기 위해서는,

1. 남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1
~ 4)

사람은 어떠한 사건에서 죄를 지적하면 인정을 안 한다.

내가 누릴지도 모르는 재산, 명예 등을 잃어버릴까 봐 남 탓을 하게 된다.

이번 주. 수능이 있었는데 부모 탓만 줄 창 해대면 그 부모는 얼마나 힘들겠나?

죄의 고리를., 일단 죄를 지으면, 버린 몸이라 생각하고 죄를 안 짓고 다 깨끗해진 다음에 하나님께 가려고 한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며 죄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2절에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아버지 탓을 하기에 아들이 이가 시리다고 한다

에스겔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로 인해 바벨론 땅에 잡혀가게 된다

우리 아까 간증하신 집사님이 부모가 결혼식에 안 오고. 7년 의절을 했다고 하는데 이런 집은 진영 논리가 팽배해 있는 것으로 이혼을 했더니 더 힘들어졌다.

4
절에

지금 아버지와 아들의 영혼은 하나님께 속했고 지금 범죄하는 영혼은 죽는다 하신다.

그것은 아버지 탓, 배우자 탓, 결국 하나님 탓을 한다는 것인가? 죄인의 연좌제는 없다는 것이다


쭉 읽어보면 세 가지 사람의 내용을 드는데 의인은 의인이니까 살지만 아버지는 의인이고 아들은 악인이라면 그 아들은 피 값을 자기가 치르게 된다.

손자는 아버지를 안 따르고 할아버지를 따른다고 한다면 산다는 것이다.

죄는 뭐냐? 죄는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은 100% 죄인 인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
적용)


-
여러분의 고난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나? 부모 탓을 하나? 하나님의 탓까지 하나?

-그래서 여러분의 입에서 내가 부모 탓이야! 의절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나? ‘연줄을 끊어야 돼라고 한 적이 있나? 아니면 이혼을 입에 달고 살고 있나?



2.
공평하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게 다 아버지 탓이니까, 하나님 탓이니까,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는 것이 우리의 주제가다.

24
절부터. 27.
계속. 우리가 불공평하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악인의 판단기준은 공의를 행하는가 아닌가 여부에 있는데 가장 중요한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고 안 믿으면 예수를 통해서만 의인이 되기에죽는 것이다

하나님은 100% 옳으시다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이려는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시므로 이 사건을 허락하셨기에 그런 것이다

남 탓이 인생의 주제인데 교회까지 와서 그런다

하나님은 100% 옳으시고 말 안 들어서 포로로 데려가게 하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죄 가운데 있으니까 내 사건에서 늘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이 안 되니까 영원토록 해결이 안 되는 것인데 인생은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진영 논리가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것을 인정해야 되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할 수 있겠나?

해결이 안 돼서 날마다 형제 탓, 부모 탓, 배우자 탓을 하는 것이다.

남 탓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 불평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28절에
자기가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이제 떠나야 되는데,

29
절에
아무리 말해도 이스라엘 족속은 아니요라고 하면서 하나님 혼자 잘 해 드세요. 나는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 생각해요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뿌리깊은 죄에도 불구하고 아니야, 나는 공평해라고 한다

또 사랑하니까, ‘제발 이 포로로 데려가는 것을 해석을 잘 해라라고 애통해 하시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게 안 들리는 것이다.


(
적용)
-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인가? 불공평하신 분인가?


3. 내 탓이라고 여겨야 한다.

베드로 전서 3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Do not repay evil with evil or insult with insult, but with blessing, because to this you were called so that you may inherit a blessing)말씀처럼,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에 이르기를 원해서 계속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30
, 31, 32절에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라.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라.

맨 마지막에 계속 회개를 촉구했다.

스스로 돌이키고 살려면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수 밖에 없다.

에스겔 36 26절에 또 새 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I will give you a new heart and put a new spirit in you; I will remove from you your heart of stone and give you a heart of flesh.)

부모 탓, 남 탓, 하나님 탓을 하는 게 얼마나 완악하고 강퍅하고 마음인가?

이것이 굳은 마음이라면 굳은 마음의 반대니까 남 탓 하는 것의 반대는 자기 탓을 하는 것인데 남 탓이 내 탓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탓 이라고 하니까 나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고 내 문제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모두가 남 탓해서 진영논리도 나오고 다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새롭게 하는 새 맘이고 새 영이라는 것이다

새 영이 랄랄랄방언하는 게 아니고 내 탓 하는 것이다.

새 영이란 다른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 탓하는 것이 성령 받은 것이다

내 문제로 여기는 것이 성령 받은 것이다


 

(적용)
-
여러분은 이런 새 마음을 가졌나? 남 탓을 하나? 내 탓을 하나?

 


지존파라도 나중에 회개하면 천국 간다

에스겔 18.
마지막이 제일 중요하고. 내가 예수 믿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편도 죄가 없었다. 그래서 도무지 구원 받지 못할 줄 알았지만 28절말씀처럼 스스로 헤아리고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시니 구원 받은 간증을 드리려고 한다.

 

(목사님 남편 간증)

이 땅에 공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남편은 죄가 없어요. 하나님 만이 온전히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인거죠. 바람은 안 폈지만. 음란보다는 명예에 관심이 있고. 그런 남편과 사는 게 너무도 힘들었어요. 겉모습은 너무도 좋았으나. 안으로는. 남편은 수잔이었어요. 수 없는 잔소리를 했어요. 아이를 받는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이었지만. 저에게는 시간과 공간과 모든 것을 금했기에. 한 마디만 붙이면 짜증을 냈습니다. 산모와 환자에게는 잘 했어요. 간호사에게는 엄청 무섭게 했지만 엄청 잘 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저는 밥만 축내는 인간이었지만...

저를 인정해주니까. 저는 병원에 트러블이 생기기를 바랐어요. 그때만 내 세상이 되니까. 금세 말 듣는 게 없었어요. 알코올은 중독이고. 욕도 잘 하고. 술 주사 하고. 매도 맞고. 그러니까 이혼 시도 자살 시도를 괜히 했겠어요?

이제 새로운 가족 때매 제 소개를 하면.

우리 최대규 목사님이 돈도 없는 수능이 끝나고 여섯 살 연상의 아내를 만나러 갔다고 굉장히 후회를 하는 발언을 했어요. 근데 나는 그것도 참 부럽더라고요. 나는 알바 걱정을 했는데수능 끝나고 만나라는 얘기에요? 만나지 말라는 얘기에요? 알아서 생각하고

시어머니의 문제는 남편의 문제기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이 고난을 당하나? 남편 탓, 시댁 탓, 힘이 없는 친정 탓을 하며. 죽자~ 했죠. 땅끝까지 내려간 저는 남편 때문에 내 탓을 했어요.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서 내 탓으로 여기며 스스로 돌이키며 살게 되는 성령의 회개를 하게 됐어요. 팔을 비틀어도 비틀어도 이런 사람은 모두가 인정하는 착한 사람인데. 예수 믿기가 힘들어요. 성경이 뭔 말인지 하나도 안 들려요.

이 부분은 길어서 생략을 합니다.

회개하고 남편이 나를 위해 수고한다 생각이 되고 그리고. 남편을 위해 생명을 내놓는 기도를 하게 되었어요. 무엇보다도 그에게 안식이 없어요. 안식이 생기기를 기도했어요.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영이 세워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죠. 남편은 성격도 성경적이에요. 믿기가 어려워요. 하루하루가 생명 내놓는 사투였습니다.

1 3 23 30 32절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처럼 말씀대로 THINK를 하게 되니까 THANK를 하게 되면서 할 말이 없었어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으며 안식이 없는 것이다

죽는 것과 사는 것 모두가 공평한 것이다

주홍빛 같이 붉은 빛의 죄도 예수만 믿으면 산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로를 의지해서 가는 것이 인생의 감사의 길로 가는 것이다

 

다들 옆에서 나래도 못 살겠다고 부추깁니다. 우리 남편은 안식이 없이 기쁨이 없이 살고 있는 거에요.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왔습니다.

에스겔(Ezekiel) 18(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날도 큐티하는 날이었는데.

남편은 아버지가 우상이에요. 우리 나라에 아버지 같은 분이 대통령을 해야 된다고. 그러면은 이 나라가 살아난다고. 그 존경 받는 장로님 산소에 가서 기도를 안 하고 절을 하는 거에요. 둘이서 예수 얘기를 하나도 안 하는 거에요. 이게 뭔가? 내가, 시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얘기를 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많이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아버지 탓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 남편이 구원이 되냐? 저녁에 우리 남편과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저는 생명 내놓고 토를 달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남들이 보면 정말 참 비굴하게 사는 것 같고 눈치 보는 것 같지만 구원 때문에 순종을 했어요.

저는 병원으로 총알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이 망하라고 죽을 병도 안 걸렸는데 병원도 안 망했는데 기도해줘~ ’하는 거에요. 저는 뭐. 너무 기쁘지만 기쁜 것을 표현하지 않은 거죠. ‘기도하지 마!’ 할까 봐, 이렇게 칼날 위의 물방울 적용을 하면서

대학병원으로 옮겼습니다. ? 자꾸 혈압이 낮아지니까. 간동맥이 파열돼서 그렇다고 하는데 우리 병원은 간 기능 지정 병원이에요. 대민봉사를 한다고. 한 달에 한 번씩 간 기능 검사를 했습니다. 이 완벽주의자 남편이. 그렇게 열심히 우리 나라에 간염보균자가 많아서 자기는 피를 만지기 때문에 전염될 확률이 있다고 하면서 늘 검사를 했어요. 병원의 시약도 아주 신선해야지 되는 거에요. 그런데 간염. 간 기능 검사에서 안 나타난 거죠. 인간의 생사화복은 의사가 주장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이 선명히 나타났어요.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 우리 남편은 사람이 죽는 것은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왜 울고 난리냐? 고요

큐티는 내가 하는데 적용은 항상 그쪽에서 합니다. 딱 병명을 듣자마자. 그렇게 효자고 그렇게 아이들 밖에 모르던 남편이 이제 그때부터 제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야쿠르트 값도 자기가 결제하던 남편이 이것저것 제 걱정을 하기 시작했어요. 식구들은 저보고 철이 없고 왜 살 소망을 끊느냐고

돌 지난 아이, 수 많은 중환자들, 아무도 구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저에게 사진을 찍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것처럼 헐떡이면서. 잠시 후에. 용서해주세요.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메아리처럼 공허한 거에요. 하나도 와서 닿지를 않는 거에요. 그런데 남편이. 중환자실에 제가 안 나가고 있는데. 이 사람이 몸이 약하기 때문에 쓰러진대요. 내보내달래요. 자기는 사형선고 받았는데. 진작에 그러면 좀 좋아요? 그래도 제가 거기서 안 나가고 계속 기도를 하고. 눈물을 흘리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그거를 제가 알아요. 계속 쓰러지는 그 순간부터 계속 제 걱정만 합니다. 누구도 안 불러요. 오직 나, 내 곁에서, 내 걱정만 합니다.

우리는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듯이. 대화를 나눴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우리 남편이 교만하거든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인 일이 없어요. 다 이혼하고 부도난 사람들이니까. ‘너나, 잘 사슈!’ 누구도 복음 전할 일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 목사님을 스스로 찾았어요. 처음 보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부목사님이 오셨습니다. 근데 이 부목사님이 도착하자마자. 오늘 밤 천국 문 앞에 서셨습니다. 거기 어떻게 들어가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숨을 헐떡이고. 처음 보는 목사님 앞에서 예수 이름으로요라고 이렇게 대답을 하는 거에요. ‘제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 죄가 많아서. 교회를 갈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 혹시 제 직업을 아십니까? ‘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잘 살아보세가 영육의 슬로건이었는데 역시 장로님 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이 목사님한테그런데 제가 매를 맞았습니다. 회복시켜주셔도 감사하고 회복시켜주시지 않아도 그래도 감사합니다. 남편이 성경도 찢고 그랬지요. 지나고 와서 보니까, 늘 술로 잊으려고 하는 것이었는데 그 보인 태도가 그 괴로움 때문이라는 것을 제가 알았어요. 사실 죄책감보다 무서운 게 어디 있겠어요? 그것을 술로 잊어보려고 한 거죠. 만 개 중에 한 개가 썩은 것을 알고는 그거를 못 먹어요.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저의 주인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연약한 인생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 숨을 헐떡거리면서 목사님 영접기도를 따라 했어요. 남편이 구원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는 저의 구원 간증 때문에, 식구들을 늘 애통해하고 새 가족에 늘 많은 분들을 초청해오십니다.

목사님이 가신 후에 저에게 우리 병원에 가서 할 일을 지시하면서 산소호흡기 다 뗀다고하면서 나는 이렇게 오래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신세지지 말고 병원비 가져오라고 그랬어요. 병원비 도와줄 사람이 많은데

한 시간 만에 돌아온 저를 보고 남편은 너무 잘 했다고 칭찬을 해주었어요. 큰 일은 작은 일부터 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세 번이나 숨을 헐떡이면서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장례식을 내가 치르게 되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요. 그때가 명절 전이라서 이 간호사들 전부 다 명절 휴가를 줬는데 휴가를 다 반납시키고 사무장 데리고 치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 잘 될 거라고

정말 완벽한 구원이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죽어? 이런 말 한 마디를 해야 되는데. 정말 택자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이제부터인 거에요.

저만 걱정하고 저 위해서만 그러니까. 그 사람이 믿을 사람이 저 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에요. 이 세상에서 제일 믿을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은 거나 다름없죠. 제가 하라는 대로 다 했어요. 영접도 하고. 이 땅에서 이보다 저를 더 사랑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죠. 저는 이런 남편과 수 없이 이혼을 생각하고 자살까지 기도했잖아요?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데. 사람은 죽기 전에 마지막이 다 진실하잖아요? 정말 한치 앞을 모르고 사람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다들 이혼을 하고 죽는 거지요. 생각을 해서 사람들에게 절대로 이혼도 하지 말고 죽지도 말라고 너는 그걸 외치라고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삼십 년 이상 사명을 외치고 오는데. 저는 다른 길로 얼마든지 갈 수도 있었지만. 정말 예수 믿는다는 게 이거구나. 그 사람은. 술을 먹고 어쩌고 저쩌고 해도 다 눈 여겨 봤어요.

제가 삼십 년 이상 감당을 하니까. 우리 남편은 최고의 응답을 해준 거죠. 그거를 네가 살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를 하고 그러고 너도 천국에 와라.

제 사명은 가정중수와 말씀묵상인데요

이상한 거는 여행만 가도 하던 큐티를 남편 앞에서도 했어요. 그렇게 거듭나서 일주일이라도 살아야 되잖아요. 아니, 믿고 하루라도. 우리가 추억의 박물관이라도 쌓아야 하는데 너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쭈욱 읽어보니까 남편이 예수님을 영접한 거는 너무나도 의로운, 공평한 일이지만. 남편이 천국에 간 거는 더 의로운 일이라고.

23
절에.
주님은 아까 읽었지만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겠니? 내 질문을 하나님은 다 해주시는 거에요.

그런데 29절은.
23
절이 없으면 내가 29절 이 말씀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뜻이 있는 거에요. 스스로 헤아리고. 천국 갔다! 주님의 공의로우심을 믿으니까! 믿어지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및 골수와 관절까지 찔러 쪼개기까지 하니까! 이게 뚝 그쳤어요. 삼십 대 과부가 남편이 하루 아침에 갔는데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18장에 몇 번이나 나왔잖아요? 이걸 어떻게 내가 설명을 하겠습니까? 정말 7시에 영접을 하고 12시에 갔으니까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인데.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나님의 공평한 일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길이 사는 길이고 천국 가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그날 큐티노트에. 남편이 구원되었다. 할렐루야. 느낌표 수십 개 썼어요.

보세요? 너는 남편의 구원에 대해서 생명을 내놨는데. 근데 네가 왜 죽고자 하느냐? 남편의 구원.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서 살았다는 거잖아요? 이 말씀이. 내가 큐티를 하면서 내가 성경지식이 없어도 그날그날 사건이 오니까 이런 것들이 정말 다 해석이 되니까. 해결이 돼서 뒤에 침륜에 빠지지 않고 올 수가 있었던 것은 남편 대신에 살았잖아요. 이 구원에 대해서 하루도 애통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우리들교회가 그런 것들이 계속 전염이 되는 거에요.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구원이기 때문에 오늘도 여러분이 오셨다고 생각합니다.

 

<Epilogue>(말씀요점정리)

 

-사람은 어떠한 사건에서 죄를 지적하면 인정을 안 한다.

-내가 누릴지도 모르는 재산, 명예 등을 잃어버릴까 봐 남 탓을 하게 된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며 죄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게 다 아버지 탓이니까, 하나님 탓이니까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는 것이 우리의 주제가다.

-악인의 판단기준은 공의를 행하는가 아닌가 여부에 있는데 가장 중요한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100% 옳으시고 말 안 들어서 포로로 데려가게 하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죄 가운데 있으니까 내 사건에서 늘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기 때문에라며 해석이 안 되니까 영원토록 해결이 안 되는 것인데 인생은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에 이르기를 원해서 계속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새 영이란 다른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 탓하는 것이 성령 받은 것이다

-내 문제로 여기는 것이 성령 받은 것이다

-지존파라도 나중에 회개하면 천국 간다

-마지막이 제일 중요하고. 내가 예수 믿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땅에 공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그렇게 얼토당토않은(be irrelevant) 말을 할 수가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공평하시다고 하신다

-공평하셔서 이 부모를 주시고 공평하셔서 이 모든 환경을 나에게 주셨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나님의 공평한 일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길이 사는 길이고 천국 가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에스겔 18 1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처럼 말씀대로 THINK를 하게 되니까 THANK를 하게 되면서 할 말이 없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으며 안식이 없는 것이다

-죽는 것과 사는 것 모두가 공평한 것이다

-주홍빛 같이 붉은 빛의 죄도 예수만 믿으면 산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 탓이라고 여겨야 하며 진정한 감사는 나는 부족하여도 예수 공로 의지하여서 오직 우리가 예수 공로 의지해서 가는 것이 인생의 감사의 길로 가는 것이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구원이기에 이 자리에 온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19. 11:26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4-5-6)스포츠외교관외길인생38년 실록(42)]

 

 

(4) 아시아의 철인 삼국지와 인도대첩실록

 

 

Sydney2000올림픽 대회 때부터 우리의 국기인 태권도와 함께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올림픽 메달 종목이 된 철인 3종 경기, 영어로는 트라이애슬론(Triathlon)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철인 3종 경기는 올림픽 종목이 아니고 트라이애슬론이 올림픽 정식종목이다.

 

 

 

그러나 트라이애슬론이라고 말하면 일반대중(General Public)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철인경기(Iron man Competition)라고 편의상 혼용해서 말하기도하지만, 사실상 철인 3종 경기 코스가 트라이애슬론의 그것보다 길고 더 힘이 든다.

 

 

오죽하면 철인(Iron man)이라고 부를까?

 

 

올림픽 트라이애슬론은 1.5km 수영 후 바꿈 터에 세워져 있는 각자의 자전거로 사이클 40km를 돌고 나서 마지막 코스인 20km 달리기를 연이어 한 후 소요 시간을 종합 집계하여 순위를 매긴다.

 

 

철인 3종은 수영 3.8km(2회 왕복), 사이클 180.2km 및 마라톤 42.2km를 달리도록 되어 있다.

 

 

필자는 2003 8월의 어느 날 당시 유경선 대한 트라이애슬론 연맹 회장이 필자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전갈을 유문규 대한연맹 전무이사(이후 부회장)로부터 받고 종로구청 근처 옛날 수송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한 유진그룹 회장 사무실에서 유 회장을 만났다.

 

 

 

유 회장과는 대한체육회 국제담당 사무차장 재직 시부터 가끔 공식행사 등지에서 만났었기 때

문에 피차 안면이 있는 사이였고, 특히 당시 Les Mcdonald 국제 트라이애슬론(Internation Triathlon Union: ITU) 회장 방한 시, 대한연맹 부회장들과의 만찬에 동석하기도 했었고, 또 필자와 돈독한 관계인 Chiharu Igaya 일본 IOC 부위원장 겸 일본 트라이애슬론 연맹 회장이 한일 친선 철인 3종 경기 대회 참석차 제주도에 왔을 때에도 함께 자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유 회장은 필자에게 자신이 2개월 후인 2003 1031일 인도 체나이(Chennai)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트라이애슬론 연맹(Asian Triathlon Confederation: ASTC) 총회에서 선출하는 ASTC 회장 출마를 갑자기 하게 생겼는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당초 ITU 부회장을 맡고 있는 Igaya 일본연맹 겸 IOC 위원이 ASTC 회장으로 출마키로 되어 있었고 유 회장은 ASTC 부회장 후보로서 Igaya회장 후보의 러닝메이트(running-mate)격이었는데 경쟁자인 Ramachandra 인도 트라이애슬론 연맹 회장 겸 ASTC 부회장이 기존 세력을 규합하고는 Igaya 일본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14표 중 10표 이상을 이미 확보했으니 포기하라는 엄포를 놓자 Igaya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국제 스포츠 계 및 아시아 스포츠 계의 투표 성향과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이고 경쟁 후보가 10년 넘게 ASTC 부회장 직을 맡고 있으며, 투표 장소가 Ramachandran의 근거지인 인도라는 정황을 분석해 보니, 실제로 이기기도 힘들겠지만 지게 되면 IOC 위원 겸, ITU 부회장, 또 일본 연맹 회장으로서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지게 되어 ASTC 회장 입후보 자체가 그야말로 큰 부담이 되고 말았다.

 

 

 

 

(Cortina d’Ampezzo1956동계올림픽 비 유럽 최초의 스키 은메달리스트 겸 일본 IOC집행위원을 역임하고 평창2014동계올림픽유치 당시 IOC평가위원장으로 평창을 실사 방문한 Chiharu Igaya < IOC명예위원>과 당시 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인 필자와 함께 평창에서)

 

 

 

 

 

그래서 그냥 후보를 철회하자니 상대방이 무혈 입성케 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결론을 내린 Igaya 후보는 패기 있고 열정적인 유경선 한국 트라이애슬론 회장에게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시간이 촉박하여 상대방을 이겨내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겠지만, Igaya 회장과 일본 연맹이 적극 지원사격을 해줄 테니, 자기 대신 ASTC 회장에 출마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유 회장도 그 시점에서 선거운동을 해서 이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상대방 후보 국인 인도가 트라이애슬론의 잠재력이 전무한 상황이고 감투 욕심 때문에 출마한 Ramachandran ASTC 회장이 될 경우 아시아 트라이애슬론의 발전은 물 건너가는 격이 될 것이란 판단 하에 질 때 지더라도 아시아 트라이애슬론의 미래를 위하여 또 차기 회장 포석을 놓기 위해서라도 경쟁 구도에 뛰어들겠다는 시간 상 무모하지만 당찬 출사표를 던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돌아가는 상황을 다 듣고 난 필자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김운용 회장을 보필하면서 각종 국제 스포츠 기구 임원선거, 국제 대회 및 국제회의 유치 투표 전을 수없이 많이 치러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과 노하우(know-how), 특히 기존 국제 스포츠 계 인맥을 잘 활용한다면 전 회원국이 14개국밖에 안 되는 ASTC 회장 투표 전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오기가 발동되었다.

 

 

 

우선 유경선 회장에게 아시아 트라이애슬론 발전을 위한 출마 공약 사항을 구체적이고 실현 및 적용 가능하고 가슴에 와 닿는 내용으로 작성하여 14개 회원국 중 12개국에 우편 발송과 동시에 10개국 정도는 여행가방 챙겨서 일일이 찾아 다니는 방문 캠페인을 벌일 것을 제의하고, 2개월 정도밖에 안 남았지만 12개국 정도만 설득하면 충분한 승산이 있겠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아시아 각국 방문캠페인에 앞서 대한 트라이애슬론 연맹 부회장들과 여러 차례 대책회의를 하고, 국가별 방문 업무분장도 하였다.

 

 

당시 주경혜 부회장, 삼성출판사 사장인 김진용 부회장, 영원한 트라이애슬론 선수인 이석우 부회장, 최윤석 부회장, 오창희 부회장, 유문규 전무이사 등이 주축이 되었다.

 

 

필자도 목적 수행을 위해 국제 부회장이 되었다.

 

 

 

주경혜(Julia) 부회장은 여성 사업가로서 수완이 좋고 대인관계의 폭도 넓고 해서 베트남 등지의 원격 인맥 연결이 가능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최윤석(Dmitri) 부회장은 미국계 유명 금융회사 중역을 역임한 영어에 능통한 국제통으로서 사교에도 뛰어난 실력가이고, 세방여행사 사장이며 작고하신 김운용 회장의 사위이기도 한 오창희(Henry) 부회장도 영어가 뛰어나고 매너가 좋아서 선거 해외 캠페인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유문규 전무이사는 오지인 네팔까지 다녀오고 평소의 트라이애슬론 인맥을 활용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필자는 아시아 각국 NOC와 아시아 지역 IOC 위원들을 교두보로 활용하여 경쟁 후보인 Ramachandran의 기존 지지세력을 허물어뜨려가면서 우리 편으로 전환시키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겼다.

 

 

분기점이 된 곳은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 연맹 회장 및 사무총장에게 유경선 회장 후보의 선거 공약 및 발전을 위한 비전(Vision)을 모두 함께 사명감을 가지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여 우리 편으로 동화시키는 데 드디어 성공했다.

 

 

이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필자와 가장 절친한 IOC 위원들 중의 한 명인 Ser Miang NG(쎄르미앙 능) 싱가포르 IOC 위원( IOC 집행위원) 겸 싱가포르 체육회장의 막후지원이었다.

 

 

 

 

(Ser Miang NG 싱가포르 IOC집행위원과 함께)

 

 

 

NG 위원은 선거유세 막판인 시점에서 싱가포르 연맹 회장 및 사무총장으로 하여금 한국을 지원토록 많은 힘을 아끼지 않았고, 더구나 싱가포르 연맹 대표들은 NG 위원과 더불어 인접국 대표들에게도 유경선 회장을 지지토록 간접지원을 해 주었다.

 

 

뭐니뭐니해도 유경선 ASTC 회장 후보가 가장 많은 신경을 썼고 처음에는 다소 서툴렀던 영어 실력도 선거유세 방문출장 과정에서 일취월장하여 당선된 후 ASTC 회장으로서 회의도 영어로 주재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지만 유 회장 개인의 노력과 열정의 결실이 아닌가 싶다.

 

 

 

싱가포르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우리 팀은 아시아의 허리 부분을 교두보로 확보한 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베트남, 태국, 대만, 중국, 네팔, 일본, 마카오차이나, 홍콩차이나 등을 차례로 방문하는 등 방문 유세활동이 효력을 발휘하였고 점차 유경선 후보에게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으나, 워낙 경쟁 후보의 뿌리 깊은 밀착 방해공작으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기도 했다.

 

 

 

 

(유경선 전 ASTU회장<-2> 및 필자<-3>)

 

 

 

 

 

인도의 Chennai 현지에서 막판 굳히기 작업은 인도 연맹 측의 교란작전으로 순탄치는 않았지만, 불굴의 한국인 저력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 적지인 인도에서 당초의 예상을 깨고 유경선 후보는 경쟁 후보이며 주최국 연맹 회장인 Ramachandran후보를 9:5란 파격적인 표 차이로 누르고 Lu Dapeng ASTC 회장(중국)에 이어 4년 임기(2003-2007)의 신임 ASTC 회장으로 당선되어 한국 스포츠 외교의 한 획을 그었다.

 

 

트라이애슬론 인도대첩의 역사는 그렇게 씌어졌다.

 

 

그 이후, 유경선 ASTC 회장의 열정적이고 탁월한 지도력 하에 아시아 트라이애슬론은 활력 넘치게 전진한 바 있었으며, 각 대륙 별 연맹 중 가장 활발하고 짜임새 있는 순항을 계속해 온 바 있었다.

 

 

유 회장은 20053 KOC부위원장으로도 선임되었었으며 2008년에는 국제 트라이애슬론 연맹(ITU)부회장으로 선출되었고 2012 10월 뉴질랜드 Oakland 개최 ITU총회에서 ITU회장 직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스페인 출신 여성 ITU회장 겸 IOC위원에게 석패하였다.

 

 

한편 2015 6월 대만 Taipei개최 ASTU총회에서는 박석원 두산엔진 부사장 겸 대한 트라이애슬론 연맹부회장이 제3 ASTU회장 직에 올랐다.

 

 

 

(5) 대한민국체육언론과 OCA태동역사 및 ASPU(AIPS Asia)실록

 

 

올림픽대회나 각종 국내외 스포츠 행사에 언론매체의 역할이 없다면 올림픽이 50~100억 달러 규모의 범 지구촌 최대 인류축제(The Greatest Pan Global Festival of mankind)로 승화되지 못했을 것이고, 올림픽을 포함한 모든 스포츠 행사나 대회는 동네잔치 수준에 머물고 지금과 같이 장족의 발전은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

 

 

스포츠 취재는 스포츠와 일반 대중간의 촉매제(Catalyst) 기능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며 보다 나은 사회(a better society), 보다 나은 삶의 질(a better quality of life)을 선도해주고 있다.

 

 

과거 올림픽 운동(Olympic Movement) 3대 지주(pillars)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국제 경기연맹(IF: International Federations)과 각국 올림픽 위원회(NOCs: National Olympic Committees)였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과 기여의 중요성이 특히 부각된 21세기에 들어서 전 세계 올림픽 및 스포츠 운동(Worldwide Olympic and Sport Movement)에 있어서 언론매체(Mass Media)가 중요하게 자리매김(positioning)함으로써 IOC, IFs, NOCs와 함께 Media 4대 중심축의 하나로서 인류의 향상 성 운동에 공헌하고 있다.

 

 

 

필자가 스포츠 취재기자들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1982 9월 대한체육회 당시 국제 국에 특채되어 무교동에 있는 체육회관에서 근무하면서 공보실 옆에 있는 기자실 출입기자들이 대한체육회에 대하여 무임소 감사 내지 감찰 기능 등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였다.

 

 

당시의 전설적인 선배 기자들의 에피소드는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고, 다만 낭만 시대 같기도 하고, 또한 스포츠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역할이 그만큼 지대하다고 볼 수 있으리라.

 

 

전 세계 올림픽과 스포츠를 관장하는 IOC와 대륙 별 국가 올림픽 위원회 연합회와 각국 올림픽 위원회가 있다면 전 세계 스포츠 취재 기자들의 이에 상응하는 조직도 공존하고 있다.

 

 

국제 체육기자연맹(AIPS: International Sports Press Association)과 아시아 체육기자 연맹(ASPU: Asian Sports Press Union/현재 AIPS Asia), 한국 체육기자 연맹(KSPU: Korea Sports Press Union)이 그것이다.

 

 

1982 125일 인도 New Delhi에서는 제9회 아시아 경기대회 개막을 앞두고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던 아시아 스포츠 통괄 관장 단체였던 아시아게임 연맹(AGF: Asian Games Federation)을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OCA: Olympic Council of Asia)로 탈바꿈하는 OCA 창립총회가 조직되었다.

 

 

 

초대 OCA 회장에는 중동의 초 강세 오일 달러를 앞세워 아시아 스포츠 계를 좌지우지하기 위해 쿠웨이트 국왕의 서자 출신 왕족이며 당시 쿠웨이트뿐만 아니라 중동 전반에 걸쳐 무소불위의 파워를 자랑하였던 야심만만한 쿠웨이트 NOC 위원장 출신의 Sheikh Fahad Al-Ahmad Al-Sabah IOC 위원이 파죽지세로 무경쟁 선출되었다.

 

 

 

(1984년 서울개최 OCA총회 당시 좌로부터 故 Sheikh Fahd OCA초대회장, 통역 중인 필자故 정주영 KOC위원장)

 

 

 

 

Sheikh Fahad 초대 OCA 회장은 언론이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지하고 아시아 체육기자 연맹(ASPU)을 출범시킴과 동시에 쿠웨이트 언론인 출신인 알 후사이니(Al-Hussaini)를 초대 ASPU 회장으로 선출되도록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당선시켰다.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Sports Power House in Asia)은 정작 한국, 중국, 일본 및 북한 등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었는데, 오일달러와 조직적인 득표 작전으로 중동이 아시아 스포츠 계의 정책을 주도하는 스포츠 외교 강국으로 급부상하였다.

 

 

Sheikh Fahad 회장은 그 당시 평양에 초청받아 북한의 김일성 주석도 만나는 등 친북 성향의 스포츠 지도자였다.

 

 

4년 후인 1986 9월 서울에서는 제10회 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두고 최종 점검에 여념이 없었고, 대회 개회식에 즈음하여 OCA 총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1982년 인도 New Delhi 이후 회장을 포함한 OCA 집행부 임원 선출이 있었다.

 

 

당연히 한국, 중국, 일본의 스포츠 지도자들은 타도 Sheikh Fahad를 외치며, 최만립 KOC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가 주축이 되어 동남아 NOC 수뇌 진들과 함께 하진량 중국 IOC 위원을 동아시아 대표 OCA 회장 후보로 옹립하였으나, 사전에 낌새를 차린 Sheikh Fahad 회장 측이 쿠웨이트 정부 채널을 통해 중국 정부에 대해 만약 하진량 IOC 위원이 OCA 회장 후보로 나와 당선될 경우 중동 국가 전체가 1990년 제11회 북경 아시안게임을 보이콧(Boycott)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하진량/Zhenliang HE<작고> 중국 IOC부위원장과 함께)

 

 

 

당시 중국으로서는 개방화 정책을 통해 국가 발전과 중흥을 도모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대외에 내놓은 야심 찬 카드가 Beijing1990 아시아게임이었으니, 두말할 나위 없이 OCA 회장선거는 당장에 물 건너간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타도 아시아 스포츠 마피아 작전」은 일단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듬해인 1987년에는 아시아 체육기자 연맹(ASPU) 회장선거가 있었다.

 

 

쿠웨이트의 Al Hussaini 회장이 당연히 연임을 노렸다.

 

 

그러나 한국에는 막강한 ASPU 회장 후보가 버티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시작해서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 및 주장을 맡아온 정통 스포츠 인으로서 불굴의 정신력과 추진력의 소유자인 당시 조선일보 체육부장 박갑철 한국 체육기자 연맹(KSPU) 회장은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마카오, 필리핀, 싱가포르 등 전체 아시아 체육 기자들의 강력한 지지와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ASPU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Vision)을 내세워 막강했던 쿠웨이트 출신 알 후사이니 ASPU 초대 회장의 아성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분명한 쾌거였다. 아시아 스포츠 언론 외교의 헤게모니(Hegemony)를 장악한 순간이었다. 아시아 스포츠 마피아 조직의 한쪽 벽이 이렇게 무너져 내렸다.

 

 

 

(좌로부터 문동욱 현 대구 계명대학교 체육과교수, 박세호 전 SBS국장, 박갑철 전 ASPU회장, 필자)

 

 

 

 

박갑철 ASPU 회장은 영어에 능통한 분은 아니지만 날카로운 예지력과 그때그때 닥친 상황을 잘 읽고 대처하는 순발력과 분별력이 남달랐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런 박회장과 ASPU 회의 및 AIPS(국제 스포츠 기자 연맹) 총회에 여러 번 동참한 바 있다. 현장 증인인 셈이다.

 

 

박회장은 영어 등 외국어가 뛰어나지 않아도 국제 스포츠 외교를 장악할 수 있다는 실증을 몸소 실천해 보여준 스포츠 언론 외교의 대부인 셈이다.

 

 

박회장은 ASPU 회장으로 당선된 후 1987년 세계 체육기자 연맹(AIPS) 총회를 대한민국의 서울로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조직하였다.

 

 

필자는 당시 하정조 KSPU 사무총장(연합통신 편집국장 역임), 이원웅 KOC 전문위원<작고>, 홍종서 관장 등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AIPS 총회를 함께 조직, 운영하였다.

 

 

그 당시 통역요원으로 선발되어 봉사했던 대학생 중에 박용성 국제 유도연맹(IJF) 회장 겸 IOC 위원 비서로 발탁되어 국제 스포츠 계에서 열심히 활동한 바 있는 문희종씨는 탁월한 불란서어를 구사하며 최 측근 비서실장으로 박회장을 보필하였다.

 

 

AIPS는 전세계 스포츠 취재기자들이 회원인 국제 스포츠 언론계의 공인된 최고 권위의 기구로서 당시 영국 기자 출신인 Frank Taylor가 회장을, 이태리 기자 출신인 Massimo De la Pergola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다. 1993 5월초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제56 AIPS 총회가 개최되었다.

 

 

 

(좌로부터 Togay Bayatli AIPS 후임 회장, Frank Taylor 당시 AIPS회장, 필자, 박갑철 AIPS부회장)

 

 

 

 

AIPS 회장 등 집행위원 선거가 있는 중요한 회의여서, 필자는 중국 상해에서 개최되는 제1회 동아시아 경기대회 한국선수단 섭외 임원으로 참가하기에 앞서 AIPS 부회장으로 입후보한 박갑철 ASPU 회장의 선거 지원을 하도록 당시 김운용 KOC 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별도 항공 스케줄에 의해 터키 이스탄불 현지로 날아갔다.

 

 

대세 판단에 뛰어난 박갑철 AIPS 부회장 후보는 당시 Frank Taylor AIPS 회장과 경쟁 후보인 터키 체육기자 출신이며 당시 NOC 사무총장(이후 NOC위원장)Togay Bayatli 와 손을 잡고 공동 연합전선을 전개하였다.

 

 

필자는 Togay AIPS 회장 후보와 박갑철 부회장 후보와 함께 모인 전략회의 석상에서 가능한 무혈입성, 즉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승리이므로 우선, 필자가 1987 AIPS 서울 총회 때부터 친분을 쌓았던 Pergola AIPS 사무총장과 Taylor 회장을 직접 면담해서 AIPS 회장 후보 사퇴를 종용하고 대신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여 예우하는 방향으로 설득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다.

 

 

Pergola 사무총장은 별 이견이 없었으나 Taylor회장은 필자가 선거 판 향방과 대세가 이미 기울었으니 명예롭게 퇴진하도록 간곡히 설득하자 조용히 경청하고 나서 필자의 손을 꼭 잡더니 “배려해줘서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영국인의 전통은 비록 싸움터에서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므로 미련 없이 결전을 치르겠다.”라고 결사항전의 뜻을 밝히며 끝내 후보 철회를 하지 않았다.

투표 결과는 홈 그라운드에서 조직적으로 표를 장악한 Togay가 신임 AIPS 회장에 우선 당선되었고, 이어서 치른 AIPS 부회장 선거에서는 한국의 박갑철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경쟁 후보를 제치고 AIPS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다.

 

 

필자가 AIPS 각국 회의 대표에게 박회장 대신 영어로 유세 연설을 했지만 그 내용은 거의 박회장의 아이디어였다. 1987 AIPS 서울 총회 시부터 쌓아온 친분과 인간적 신뢰의 바탕 아래서.

 

 

 

(6)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Olympic Council of Asia)요약실록 및 OCA 규정위원장 및 사무총장 도전실록

 

 

1990 8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였다.

 

이 와중에서 Sheikh Fahad OCA 회장은 침공한 이라크 군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한 달 후인 1990 8월 중순 OCA 총회가 제10회 아시안게임 개최 도시인 중국의 Beijing에서 대회 직전에 열렸다.

 

Sheikh Fahad OCA 회장이 사망했으므로 선임 부회장인 스리랑카의 로이 데 실바(Roy de silva) OCA 회장 직무대행으로 OCA 총회를 주재하였다. 여러 명의 OCA 회장 후보 중에 사망한 Sheikh Fahad 회장의 친아들인 Sheikh Ahmad Al-Fahad Al-Sabah 쿠웨이트 NOC 위원장(이후 IOC 위원 직도 승계함)이 있었다.

 

 

(Sheikh Ahmad OCA회장과 함께)

 

 

Sheikh Ahmad 후보는 출마 당시인 1990년 만 29(1961년생)로서 당시 OCA 헌장 규정상 35세 이상이 되어야 하는 자격 조건에 문제가 있었지만 중동 국가 NOC 대표들과 친 쿠웨이트 인접국 NOC 대표들의 동조와 인도의 메타(Vice Air Chief Marshall Mehta) 사무총장 등의 교묘한 획책에 힘입어 1년 뒤인 91 9월 인도 New Delhi에서 OCA 특별 총회를 갖고 OCA 헌장 내용 중 회원국 대표들 1/3 이상이 찬성하면 자격 요건 1~2가지는 유예될 수 있다는 해당 규정을 적용시켜 Sheikh Ahmad를 적법한 후보로 만들어 놓고, 사전에 치밀하게 조직된 투표공작을 벌여 Sheikh Ahmad OCA 회장직마저 승계하였고 벌써 29년 째 거의 종신 OCA 회장으로 아시아올림픽운동의 최고 사령관으로 군림하고 오고 있다.

 

(Vice Air Chief Marshall Mehta 인도출신 OCA초대 사무총장과 함께)

 

 

필자는 4년간(1994-1998) OCA 규정위원을 역임하고, 불합리한 OCA 헌장 규정 개정 등을 통해 OCA를 개혁해 보려는 취지에서 1999 11, 쿠웨이트 개최 제18 OCA 총회에서 실시된 OCA 집행부 임원 선출 시 OCA 규정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여 홍콩의 A. de O'Sales 전 홍콩 NOC 위원장 겸 OCA 규정 위원장과 경선을 앞두고 있었으나, 적지 쿠웨이트에서 갖가지 방해 책동으로 인해 결국 Sheikh Ahmad OCA 회장과 차기를 위한 작전상 타협으로 후보 직을 사퇴하였다.

 

물론, 그 대신 OCA 집행위원인 아시안게임 수석조정관(Asian Games Chief Coordinator) 자리를 받는 조건으로. 그 이후 필자는 수석조정관 자격으로 2006년 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카타르 도하를 방문, 조직위원회 관계자들과의 협의, 경기장 시설 등 현지 점검 등 임무 수행을 하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2003 1월 역시 쿠웨이트에서 개최된 OCA 총회 시 OCA 창립 이후 최초로 OCA 사무총장으로 경선 출사표를 던졌으나, KOC 내부의 이해득실에 의한 사퇴종용과 평창2010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둔 한국으로서는 경쟁후보가 IOC 위원(인도의 Randhir Singh)이었던 한계상황으로 이 또한 후보 철회를 해야만 했다.

 

OCA 쪽으로는 오늘날까지도 주도권을 쿠웨이트로부터 쟁취하지 못하고 있지만 ASPU는 박갑철 회장 이후 다시 쿠웨이트가 2019년 현재 ASPU회장 직을 점유하였으나 2021년 예정된 ASPU차기회장 선거에서는 한국체육기자연맹(KSPU)현 회장인 정희돈 SBS기자가 유력하게 입도선매(?)한 상황으로 2019 8월 말 콸라룸푸르개최 ASPU총회 시 확인된 바 있다.

 

 

(20198월말 ASPU/AIPS Asia총회 시 열린 국제스포츠 서밋<Summit>에서 주제발표하고 있는 필자)

 

 

애초 규정에는 ASPU 회장을 4년씩 2차례(8)만 하도록 되어 있으나, 박갑철 ASPU 회장은 4차례나 연임한 바 있었다.

 

아시아 스포츠 언론 외교의 수장은 한국인이 주도해 왔다. 반면, 한국은 OCA 집행위원 급 임원이 전무하였다가 유경선 ASTU회장이 OCA환경과 스포츠분과위원장 자격으로 OCA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2019 3월 태국 방콕개최 제38 OCA총회에서는 유경선 분과위원장을 포함하여 유승민 선수자격 IOC위원(2016~2024) OCA선수관계분과위원장 자격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문대성 前 선수자격 IOC위원(2008~2016)역시 OCA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한국은 총 3명이 OCA집행위원 대열에 합류하였다.

 

4년 마다 OCA총회가 열리는데 향후 OCA 회장, 사무총장을 포함한 집행부 임원 선거 시 한중일 3각 연대체제를 전략적으로 가동하고 조직적으로 대비하여 한국이 OCA회장 또는 사무총장 국으로 아시아 스포츠외교의 실질적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가능하면 OCA 본부도 한국으로 가져오자. 꿈은 꾸는 자의 것이니까.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1. 18. 08:10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1-2-3)스포츠외교관외길인생38년 실록(41)]

 

 

 

(1) KOC국제 통 스포츠외교관 그리고 더블 밀리언 마일러’(Double Million Miler)

필자는 벌써 37년간 국제 스포츠 업무만 전담해왔다. 필자는 늘 그랬듯이 37년 중24년간 올림픽 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 종합대회만 24번 다녀오는 동안 한국선수단 사전조사단, 사전협의회의, 각국 선수단장 회의, DRM(Delegation Registration Meeting: 각국 선수단 도착 직전에 해당 선수단장 또는 지명자가 대회 조직위원회와 종목별 참가선수 최종 엔트리(Entry by Name) 확정, ID 카드 최종 분류 및 확인, 숙박 세부사항 및 차량 등 수송 관련 배정 확인 및 인수, 선수촌 방 배정 및 열쇠 인수, 각 선수단 배정, 현지 보조요원 명단에 따른 사전 면접 및 상견례, 선수단 NOC 사무실/의무실/창고 등 배정 및 확보에 따른 세부점검 사항 확인, 선수단 본단 및 후속 도착 팀 현지 공항과 선수촌 간의 수송과 사격, 펜싱, 양궁, 근대 오종, 바이어슬론 선수들의 총기 및 활 등 무기로 분류되는 장비 반입에 따른 수속과 보관 절차 및 안전 관리 세부사항 사전 조치, 종목별 연습일정 배정 및 해당 수송 계획 사전 확인, ID 카드 카테고리 별 출입 가능지역 코드 추가 확보, 선수 수에 비례한 등급 상향(Upgrade) ID 카드 사전 인수, 선수단 추가 임대 차량에 대한 차량접근 및 주차허가 증’(VAPP: Vehicle Access and Parking Permit) 확보 등을 조직위원회 해당 부서와 사전에 일일이 확인 절차를 거쳐 최종 마무리하는 장시간의 종합점검 협의회의) IOC 집행위원회와 참가국 선수단장 연석회의 등 한국 선수단의 대회 참가와 관련된 국제회의란 회의는 단 1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하였었다.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선수단 파견 실무업무까지 일일이 처리하다 보니 시시콜콜 하지만, 현장에서는 모두 다 챙겨야 하고 챙기지 않으면 언젠가 불편하게 느껴질 사항을 평소에 메모해서 회의 성격에 걸 맞는 항목별 질문 점검 표(check-list)를 사전에 작성하였다.

 

 

 

(Barcelona1992올림픽 참가 후 한국선수단 선수임원을 위한 귀향<Home Coming> Car Parade)

 

 

 

 

그 내용이 숙지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해당 대회 조직위원회나 회의 주최 측에서 설명하는 포인트를 듣고 나면 왜 그렇게 질문하고 건의하고 따져봐야 하는 사항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 필자도 신기할 정도로 많아 마치 신들린 사람 마냥 질문 공세를 했다기보다 퍼(?)대곤 했다.

 

 

물론, 너무 많은 발언을 하다 보면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는 법이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는 법. 더구나, 배포한 매뉴얼 등을 분야별로 페이지마다 사전에 미리 체크하고 메모해서 역대 대회의 경험과 비교해서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과 애매모호하고(ambiguous) 어색한(awkward and clumsy) 부분들을 족집게처럼 집어내어 수준급 질문거리를 당당하고 권위 있게 때로는 유머를 섞고 엮어서 영어면 영어로, 불어면 불어로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신출귀몰(sudden appearance and disappearance)하게 풀어서 발언해 대니 웬만한 사전지식과 경험과 노련미 없는 답변자들은 백발백중 쩔쩔매다가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든지, 확인해서 다음날 대답한다고 미루든지 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회의 참가가 즐겁고 보람찼다. 새벽 회의나 밤중까지 이어지는 회의도 마다하지 않았다. 회의라는 바다에 푹 빠져 「회의벌레」가 된 것 같았다.

 

 

「국제회의 통」, 「총회꾼」으로 탈바꿈했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자연 각국 회의대표나 회의에 참석한 각국 선수단장은 당연히 필자를 젊은 한국 선수단장 아니면 KOC 사무총장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ANOC 총회, OCA 총회, EAGA 총회, IOC 집행위원회 연석회의 등에서도 “지 버릇 남 주나?” 식이었다. 때로는 IOC 해당 국장들을 곤란하게 하는 성격의 질문을 해대고 나면 회의가 끝나고 약간의 변명 성 항의를 받기도 했다.

 

 

불필요한 적을 1명 만드는 것은 아군 10명을 만드는 것보다 유익하지 못하다는 진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대회 기간 중에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부터 단장 회의가 있곤 했는데, 대회 기간 중에 특히 한국 선수단 본부임원(체육회 직원들)들은 새벽 1, 2시까지 담당업무를 매일같이 처리하다 보니 필자가 아침 단장회의에 같이 가자고 하면 피곤한 나머지 모두 꺼리는 눈치였다.

 

 

 

 

 

 

필자도 사람인데 왜 피곤하지 않겠냐 마는 일일 단장 회의에서 건의 및 문의할 사항도 많고 전 세계에서 참석한 각국 선수단장들과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 친목도 다지고 정보 교환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니 「신선놀음」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오버하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이 모든 이야기는 실화이며 사실이고 실제로 기록도 있어 스포츠 외교실록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서는 역대 전 세계 역대 각국 선수단장들 및 회의 대표들이 다 산 증인들이다.

 

 

이러한 필자의 끈질김, 끈덕짐, 집요함, 철두철미함, 대담함, 거침없음, 유머스러움, 깐깐함 등이 어우러지다 보니 필자를 못마땅하게 보는 일부 한국인들이 진짜 내막도 모르면서 겉으로만 보면 필자의 언행이 나서기 좋아하고, 설치고, 잘난척하고, 천방지축 겁 없이 굴고, 이기적이고, 함부로 말하는 것으로 나쁘게 보고는 필자를 폄하하고, 비난하고, 헐뜯고 때로는 중상모략, 모함 등 여러 가지 어처구니없는 누명이 필자에게 덮어 쓰이곤 했건 같이 주지의 사실이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기간 중 당시 이연택 KOC위원장 주최 아시아 IOC위원 전체 대상 오찬에서 진행 설명 중인 필자/좌측부터 박용성 IOC위원, CK Wu대만 IOC위원, 이연택 KOC위원장 등)

 

 

 

 

그때마다 필자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선수단이 해결 못 하는 귀한 ID/AD 카드 추가 발급, 선수단 및 VIP 현지임대차량 접근 및 주차허가증(VAPP: Vehicle Access and Parking Permit) 추가 확보, 선수단 숙소 명당 위치 배치, 각종 추가 혜택 등 눈에 띄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물리적으로 보여주고 나면 없었던 일로 덮어지곤 했다.

 

 

 

(2)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ISDI) 설립과 IOC 등 국제무대에서의 영예와 홀로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런 모함 꾼들의 간사한 모략을 100% 다 피할 수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경우도 왕왕 있었고, 그런 여파로 필자는 결국 200422년간 몸담았던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제담당사무차장(1)을 끝으로 2004 41일부로 졸업(명예퇴직)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 후 국제 스포츠 외교연구원(ISCI: International Sports Cooperation Institute; 원래 Cooperation이란 단어 대신 Diplomacy를 쓰려고 했으나 현 Ser Miang NG 싱가포르 IOC 집행위원의 사려(?) 깊은 자문에 따라 Cooperation으로 대체했음)을 설립하고 사용하다가 다시 원래 취지에 맞도록 ISDI(International Sport Diplomacy Institute)로 제자리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2004년 당시 22년간 국제 스포츠 외교 현장에서 피 눈물 나도록, 억척스럽게, 수집하여 소장 전시한 개인 스포츠 박물관(평산 스포츠 박물관: 경기도 양평 국수리 소재)도 개장하고, 매일 아침 3시간 동안 전 세계 외신 기사 등을 발췌, 번역한 후 필요한 설명과 분석을 추가하여 다듬은 다음 국제 스포츠 동향이란 제목으로 원하는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대가 없이 무료로 e-mail을 전송하면서 동시에 개인 Blogger로서 Blog(윤강로의 스포츠 세상) 등 국제 스포츠 외교 관련 업무를 계속해왔다.

 

 

개인 1명이 아무리 방어를 잘해도 여러 명으로부터 계속 모함과 질시와 질투를 받게 되면 결국에는 견디기 힘든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 와중에 몽골에선 필자에게 2003년 당시 Bagabandi몽골 대통령 등 저명인사들이 운집한 가운데 울란바토르로 초청해서 명예박사학위도 수여해주고, 몽골 NOC 위원 겸 국제 관계 자문역이란 직위도 부여해주고, 2004 2월 아테네 개최 ANOC 총회에 각국에 2명씩만 주어지는 몽골국가회의 대표 자격도 정식으로 부여해 주고, 유병진 관동대학교 전총장께서는 필자를 관동대학교 겸임 교수로 임명해 주어 활동을 계속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필자 몽골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한 Bagabandi 몽골대통령과 함께)

 

 

 

 

당시 Jacques Rogge IOC 위원장은 필자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도 필자의 박물관 활동 등에 전폭적 지지(You have my full support)를 보낸다는 공문까지 보내주고 Athens2004올림픽 대회에 IOC 위원장 특별 게스트로 정식 초청하여 VIP ID 카드(Gi) 차량 및 각종 의전 혜택까지 고루 배려해주어, 대회기간 내내 100여 명 이상의 IOC 위원들과 지속적으로 친분을 나눌 수 있었고, 그 동안 오랫동안 활동에 동참해왔던 많은 IOC 위원들, 국제연맹 회장들, 각국 NOC 위원장 및 사무총장들 등이 격려와 축하 메시지를 필자에게 보내주는 등 눈물겨운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어떤 국제연맹 회장은 국제연맹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도 해왔고, 심지어 북한의 장웅 IOC 위원 등은 필자가 북쪽에 있었으면 NOC 부위원장 겸 서기장(사무총장)도 떼놓은 당상일 텐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함께 걱정 반 격려(?)반을 해주기도 했다.

 

 

 

 

(Athens2004올림픽 IOC본부호텔에서 좌로부터 리용선 현 북한주도 국제태권도연맹<ITF>총재, 장웅 북한 IOC위원 겸 당시 ITF총재 및 필자)

 

또한, 올림픽 대회 및 국제행사에서 필자의 활약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었던 국내 일간지 스포츠 기자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필자에 대한 인터뷰 기사 등을 기꺼이 실어주면서 꽤 많은 지면을 여러 차례 할애해 주었다.

 

 

2004 1221일에는 2004년 체육기자의 밤 겸 이길용 체육 기자상 시상식에서 필자가 22년간 스포츠 외교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체육의 위상을 드높인 스포츠 외교관으로서의 공헌을 인정하는 한국체육기자연맹(KSPU: 박건만 회장/박광재 사무총장) 공로 패를 수여하여 주었다.

 

 

당시 박갑철 아시아체육기자연맹(ASPU: Asian Sports Press Union) 회장 겸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께서도 공로 패를 수여해 주었다. 모두 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더욱더 분발하라는 격려와 채찍으로 알고 대한민국의 위상과 스포츠 외교력 증진을 위해 더욱 매진하려는 마음내면에 불을 지펴 주었다’. 마치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 슬로건인 “Light the Fire Within’과 일맥상통함이 느껴졌다.

 

 

비록 2010년 동계올림픽 대회 유치 경쟁에서 국제적으로 무명이었던 강원도의 평창2010 1차전에서 세계적 강호인 캐나다의 밴쿠버와 오스트리아의 Salzburg2010을 통쾌하게 물리쳤으나(51:40:16) 과반수에 2표가 모자라 결국 2차전 결선에서 아깝게도 3표 차이(56:53)로 석패한 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는 대외 공동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으로 유치 활동 차 2002년 말부터 2003 7월까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평창2010동계올림픽유치 대외공동사무총장으로 프라하 IOC총회에서 IOC제 1공식언어인 불어로 프레젠테이션 중 인 필자) 

 

 

 

그 덕분에 지난 2003 51일부로 대한항공 밀리언 마일러 클럽(Million Miler Club; MMC)에 영광스럽게 등재되어 VIP 대우를 받고 있으며 몇 년 후에는 더불 밀리언 마일러(Two Million Miler)가 되어 있었다.

 

 

이와 더불어 대한항공 기내 잡지에도 인터뷰 기사가 실리는 등 그야말로 명실공히 확실한 「국제 통/해외 통」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필자는 1982 91일부로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 국제부에 처음 입사해서 2004 41일까지 22년간 국제 업무만 줄곧 해왔다.

 

 

1982 112일부터 126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9회 아시아 경기대회(The 9th New Delhi Asian Games) 한국 선수단 선발대 및 국제 섭외임원으로 시작한 국제 종합대회 참가가 이듬해인 1983 211일부터 32일까지 당시 동유럽 공산국이었던 불가리아, Sofia에서 열렸던 1983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83 Winter Universiad)에 한국 선수단 국제 섭외 및 경기 임원으로 이어졌고 또 다음해인 1984 77일부터 816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23회 올림픽 대회(The Games of the 23rd Olympiad LA 1984) 한국 선수단 선발대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으로 연결되었고 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에는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Olympic Council of Asia) 한국 측 회의대표 자격으로 국제 외교 업무를 수행하였고 Calgary1988동계올림픽 대회(KOC 위원장 동반자 자격으로 국제 외교업무 수행), 서울1988올림픽 대회(KOC 위원장 동반자 자격으로 국제외교 업무 수행),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Barcelona1992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Lillehammer1994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Atlanta1996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Nagano1998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Sydney2000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등 입사 이래 올림픽만 10개 대회에 스포츠외교 전담 최전방 공격수로서 참가하였다.

 

 

 

이어지는 Athens2004올림픽-Torino2006동계올림픽-Beijing2008올림픽-Vancouver2010동계올림픽-Sochi2014동계올림픽 등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및 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자문역 등의 역할수행을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평창2018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성공개최공로로 빙상개최도시 최명희 강릉시장으로부터 명예강릉시민증 수여식 참가차 방한한 Thomas Bach IOC위원장과 함께)

 

 

 

1982년 뉴델리 아시아 경기대회를 비롯하여 1986년 서울 아시안 경기대회, 1990년 제2회 삿포로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 경기대회, 1998년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2003Aomori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사무총장 자격으로 유치 활동) 시에도 같은 자격에 같은 업무를 수행하였고, 1999년 강원도에서 개최된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에는 대회 조직위원회 국제 자문역으로 참가국 선수단 단장회의를 주재하였고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시에는 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섭외 임원 역할과 동시에 OCA 아시안게임 수석조정관(OCA Asian Games Chief Coordinator: OCA 집행위원)으로서도 활동하였다.

 

 

 

또한, 1983Sofia 동계유니버시아드, 1987년 체코의 Strbski Pleso동계 유니버시아드, 1987년 유고의 Zagreb 하계 유니버시아드, 1995Fukuoka 하계 유니버시아드 등에도 참가하는 등 37년간 국제 종합대회만 30여 개 대회에서 국제외교 및 섭외와 관련된 각종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니 국제 업무에 관한 한 눈이 크게 뜨이고 귀가 활짝 열리고, 전공인 영어, 불어를 제외하고도 지구촌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외국어도 어느덧 7, 8개 국어를 어느 정도 뇌까릴 정도로 「국제 통」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모든 기회를 부여해 주신 조국 대한민국과 스포츠 계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감사 드리며 이제부터는 스포츠외교 재능기부를 통해 2032년 한반도 올림픽 공동유치 등을 위해 대한민국의 스포츠외교발전을 기하고자 썩어지고 죽어지는 밀알의 역할을 다 하고자 한다.

 

 

그뿐이랴, IOC총회, ANOC총회, GAISF총회, OCA총회, AIPS총회, ASPU총회, 올림픽 콩그레스(Olympic Congress), IOA(International Olympic Academy) 종합연수회, EAGA(East Asian Games Association: 동아시아 대회 협의회) 총회, IOC 심포지엄, 세미나, 스키, 바이어슬론, 아이스하키, 레슬링, 배드민턴, 럭비 등 종목별 국제 및 아시아 연맹총회, 각국 참가선수단 단장회의, 국제 스포츠 워크숍, IOC 실무협의회의, 전 세계 올림픽 박물관장회의, Olympic Solidarity 세미나 등 각종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그야말로 종횡무진 활약하였고 한국에서 개최한 각종 국제대회, 국제회의(1999 IOC 서울 총회 조직 및 운영 총괄), 국제행사 등에 의전 담당하랴 통역하랴, 책자 만들랴, 발로 뛰고 엎어지기도 하고, 이리저리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국내외 다양한 직종, 직급, 직함의 사람들도 많이 접하다 보니, 나름대로 감도 잡히고, 틀도 잡히고, 노하우(KNOW-HOW)도 자리 잡히는 가운데 많은 IOC 위원들과 국제연맹 회장들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인맥(human networking)도 쌓이게 되었다.

 

 

필자는 올림픽 대회,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간 중 거의 매일 아침 일찍(대개 오전 7) 개최되는 각국 선수단장 회의에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앞줄에 앉아 “감 놔라. 배 놔라.”하는 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을 괴롭히는(?) 질문과 건의사항도 「개근상」감이었다.

 

 

아마도 국제회의(ANOC, OCA, IOC 집행위원회/NOC, 연석회의, 단장회의)에 발언 횟수(in terms of the number of interventions)로만 보아도 역대 각국 총회꾼 모두 총동원해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평판과 더불어 악명(?)도 높다고들 한다. 이 부문 세계기록보유자라는 평가도 받았다.

 

 

 

 

(3) ANOC 총회 베사메무초(Besame mucho) 현장실록

 

 

 

지난 2002 520일부터 25일까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제13 ANOC 총회 마지막 날 525일 개최된 IOC 집행위원회/NOC 연석회의가 끝난 후,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Michael Payne IOC 前 마케팅 국장은 필자더러 “질문 및 의견제시 회수를 보면 귀하야말로 기록 보유자입니다(You have a new record in the number of interventions)”라고 평가해 주었다.

 

 

ANOC 총회 전야제 겸 환영 리셉션에서는 여흥 시간에 총회 개최국 Sie kok-Chi 말레이시아 올림픽위원회(Malaysian Olympic Council) 사무총장이 사회자에게 미리 추천을 하는 바람에 아시아 대륙 대표로 등 떠밀려 무대로 나가서 Jacques Rogge IOC 위원장 내외, Mario Vazquez Rana ANOC 회장 내외, 80여 명의 IOC위원, 20여 명의 국제연맹(IFs)회장, 202개국 NOC 위원장 및 사무총장 등 1,000여 명의 관중들 앞에서 노래 한 곡조를 부르게 되었다.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 중에서 밴드 연주가 가능하고 노태우 前 대통령 겸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애창곡이기도 한 스페인어 원어로「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감정을 살려서 부르고, 「앙코르(Bis)」를 받아 「아리랑」을 이어서 한 곡조 더 뽑았다.

 

 

노래는 국제 공용어인가 보다. 모두 흥겨워 보였다. 다음 다음 날 필자가 한국 NOC 대표로서 Rogge IOC 위원장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기타 사항에서 또 다시 발언권을 신청하니까 Rogge IOC 위원장은 농담조로 “Rocky, if you promise to sing one more song, I will give you the floor!(로키, 노래 한 곡조 더 부를 것을 약속하면, 발언권을 드리겠소!)”라고 하면서 발언권을 주었다.

 

 

 

 

(2008 Beijing개최 206개국 ANOC총회 개회식에서 한국 최초 ANOC외교공로훈장수여식에서 좌로부터 Mario Vazquez Rana ANOC 회장, 필자, Jacques Rogge IOC위원장)

 

 

 

 

필자의 질문 내용은 “현재 IOC 헌장에 명시되어 사용되고 있는 올림픽 표어(Olympic Motto)인 「Citius, Altius, Fortius(Faster, Higher, Stronger/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는 현대 스포츠가 진화하여 온 결과 그대로 사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르니 조율(Fine Tuning)이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사격(Shooting), 양궁(Archery), 체조 종목의 평균대, 피겨스케이팅 등에 고전 표어대로 적용하면 잘 어울리지 않으므로(사격할 때 보다 높게, 보다 빠르게, 보다 강하게 쏜다면 좋은 기록은커녕 예선탈락 감이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

 

 

필자의 대안 표어는 “V.I.P”라고 하면서 「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 즉, 「보다 생동감 있게, 보다 인상 깊게, 보다 정확하게」를 IOC에서 연구하여 채택할 의향이 없느냐?”였다.

 

 

Rogge IOC 위원장은 가만히 경청하고 나서, Rocky, if you promise not to claim your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then IOC will positively consider it(로키, 그것과 관련한 지적재산권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IOC로서는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라고 답변하였다.

 

 

물론 IOC 100년 넘게 사용해온 올림픽 표어를 바꾸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국제 스포츠 외교 연구원(ISDI) 2004년 초 설립 운영하면서 ISDI의 표어를 VIP(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로 설정하고 사용해 오고 있다.

 

 

ANOC총회 직후 Mario Vazquez Rana ANOC 회장은 필자더러 “21세기의 새로운 쿠베르탱이 탄생했다.”라면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Rana ANOC 회장의 셋째 딸인 미리암(Miriam)은 출중한 미모와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여 필자가 1984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ANOC 총회 시 Rana 회장 자택에서 베푼 만찬에서 라냐 회장 가족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면서 담소하였는데, 필자는 Miriam과 특히 친해져서 그 당시 필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시(Dash)했다면 Rana 회장 셋째 사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자녀들과 함께 셋째 딸 Miriam은 가운데 필자 우측 옆)

 

 

 

 

30년이 지난 그 당시에도 Rana 회장 부인은 필자더러 “이호(hijo; 아들이란 뜻의 스페인어)”라고 지칭하면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었고, 필자도 사석에서는 Rana 회장 더러 “미 빠빠(mi papa; 나의 아버지 또는 장인), 부인에게는 “미 마마(mi mama;엄마 또는 장모)”라고 부르는 사이이기도 했다.

 

 

Sydney2000올림픽 대회 기간 중 당시 연합뉴스의 김용윤 특파원의 취재 기사 내용을 소개해 본다. 

 

 

2000/09/18 11:57 송고  

 

< 시드니올림픽 > 윤강로 KOC사무차장은 '교과서(?)'

 

 

(시드니=연합뉴스) 특별취재단= "로키의 말은 거의 올림픽에 관한 한 지침서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오아니스 파파도키 아나키스 그리스선수단 단장은 18일 윤강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국제담당 사무차장이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한 각국 선수단 간부들에게 '교과서'가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지난 82년 대한체육회에 들어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등 국제업무만 18년째인 국제통.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도 그의 실력을 인정, 최근 IOC평가위원에 임명했으며 그는 베이징, 파리, 토론토 등 2008년 하계올림픽 유치후보도시들의 '로비대상'이 됐다.

이번 대회에서 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올림픽운동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업무능력 때문.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97 무주전주동계유니버시아드 등 크고 작은 국제대회, IOC 총회를 기획, 운영해 온 노하우로 사실상  '백과사전'이나 다름이 없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지난 29일 선발대로 시드니에 도착, 각국 선수단 단장회의를 통해 IOC 의무분과위원과 조직위원회(SOCOG)의 맹점을 찌르는 질문을 퍼붓는가 하면 선수촌 주방까지 좇아가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는 등 그의 활약은 경계가 없다.

 

특히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나 류성일 조선올림픽위원회 서기장과는 허물이 없을 정도로 깊숙한 대화를 나눠 한반도기를 들 기수를 결정하는 등 미묘한 사안을 절묘하게 해결해 낸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윤강로 사무차장이 IOC, SOCOG 관계자들과 설전을 벌일 때면 각국 대표들은 "정말 많이 배운다. 우리는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를 하고 있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그를 아는 LA타임스 등 일부 외신기자들은 아예 "내년 7월 모스크바총회에서 만일 김운용 집행위원이 IOC 위원장 후보로 출마, 당선된다면 로키 윤은 로잔에서 톡톡히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yykim@yna.co.kr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