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9. 11. 12. 18:57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Barcelona1992올림픽현지생생체험현장실록(36)]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바르셀로나! Barcelona! Barcelona! 이베리아 반도 동편 지중해 바다 내음을 물씬 풍기는 해안가에 위치한 까딸루냐(Catalunya) 지방의 제1의 항구도시!

 

1992년 제25회 올림픽 대회 개최도시! 대회 마스코트인 바르셀로나 「진돗개」 꼬비(Cobi)의 상냥함과 정겨움이 전 세계 지구촌 올림픽 가족을 온화함으로 맞이하고 있는 1992년 올림픽 중심!

 

 

바다요리(Sea Food)의 상큼함이 한껏 입맛을 돋우어주는 전 세계 식도락가들의 집결지!

 

까스떼야노(Castellano)라 불리는 스페인어와는 조금 다른 액센트(Accento)와 오히려 불란서어와 비슷한 어휘 그리고 큰 목소리의 까딸란(Catalan)어의 독특한 언어 정취를 느끼게 하는 정통 까딸루냐(Cataluna)의 메카!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Champs Elysees) 거리에 필적 되는 람블라스(Las Ramblas) 거리의 낭만과 활력!

 

1492년 미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기상이 높이 세워진 동상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곳!

 

람블라스 거리의 끝에 우뚝 서 있는, 영원한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동상 콜럼버스군은 1992년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맞이하여 미국, 뉴욕에 살포시 그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자유의 여신() 양」과 혼례를 치를 예정으로 자못 흥분된 모습으로 손가락을 자신의 신부가 될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가리키고….

 

1882년부터 신축되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1883년 피카소, 미로와 함께 스페인이 자랑하는 예술가인 동시에 건축가인 가우디가 인계 받아 설계하여 건축 중인 싸그라다 화밀리아(Sagrada Familia: 聖家族) 성당이 고풍스런 위용을 자랑하며 아직도 건축 중에 있는(향후 200년 후에나 완공예정이라 함) 흥미진진하고 여유만만한 도시의 풍미!

 

1992년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개회식 날 마치 월리암 텔(William Tell)이 자기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향해 쏜 화살처럼 관객들을 숨 막히게 하며 정확히 명중, 점화되어 전 세계 지구촌 가족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성화대가 우뚝 솟아 있는 몬주익(Monjuic)에 위치한 올림픽 주경기장의 멋들어진 자태!

 

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 지구촌의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과 낭만을 선사하였던 도시 바르셀로나는 진정 1992년도를 빛낸 미스 월드 올림픽(Miss World Olympics)이요 미스터 월드 훼밀리(Mr. World Family)의 찬란한 표상이리라.

 

총인원 344명의 한국 선수단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참가는 배순학 총무임원(체육회 기획운영본부장), 필자/섭외임원(국제기구 과장) 및 오승훈 섭외임원(체육회 태릉선수촌 훈련부 직원) 3명으로 구성된 선발대의 현지 선수촌 입촌으로부터 본격적인 활동의 막을 올리게 되었다.

 

선발대의 주요 임무로는 크게 본단 현지도착에 앞서, 제반 수속 및 편의 사항 사전 확보를 위한 대회조직위원회(COOB '92) 각 부서 책임자 등과의 업무별 협의, 구체적으로 참가선수 임원에 대한 일자 별 입 출국 및 숙박관련 사항, ID 카드 발급은 물론, 경기 별 세부종목 참가 엔트리 제출에 따른 변동 및 추가사항을 비롯하여 국기, 국가, 호칭 등에 따른 의전사항 확인, 대회참가 및 선수단 격려차 현지에 도착하는 모든 한국 VIP에 대한 제반 사항 확인, 한국선수단에 배치될 차량 및 차량스티커 발급 등과 관련된 수송문제 등등에 대하여 타선수단보다 유리한 대우를 받기 위한 본격적인 실무협의를 가졌다.

 

특히, 올림픽 대회 시마다 각국 선수단의 요구사항인 ID/AD 카드 발급에 따른 각종 혜택 코드부여와 관련하여서는 장장 5시간에 걸친 끈질기고 우호적인(?) 협상 끝에 한국선수단 본부임원 거의 전원에 대하여 파격적인 코드(: 무한대->전 경기장 출입 허용) 입력 특전을 부여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물리치료사들에 대하여서도 전 경기장() 및 전 경기장 전 지역(1,2,3) 출입코드를 인정받아, 모든 종목 매 경기 시 해당 경기장의 플로어(floor)까지 접근할 수 있어 한국 선수들의 경기 중 부상 시 자유롭게 선수들에게 접근하여 응급처치 등을 할 수 있어, 간접적으로 한국 선수단의 좋은 성적 고양에 일조할 수 있었다.

 

714일 선발대 도착 후 718일에는 선수단 본단 1진을 비롯한 각국 선수단들이 속속 입촌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대회조직위원회 선수촌 행정운영 본부장은 각국 선수단 입촌식 행사와 관련, 협의회의를 가졌으며, 한국 선수단의 요청에 따라, 선수단 본단 도착 다음날인 719일 오전 11시로 결정하였다.

 

선수단 규모에 따라 소규모 선수단들은 공동 통합 입촌식을 거행하고, 한국 선수단의 경우는 단독 입촌식을 갖게 되어 있어. 맨 먼저 도착하여 기 신청한 덴마크 선수단과 이탈리아 선수단이 오전 10시에 합동으로, 이어 유고연방에서 독립 처녀 출전한 슬로베니아 공화국(Slovenia)과 대만이 함께 1030분에, 그리고 대한민국 선수단은 11시에 각각 입촌식을 갖게 되어 참가국 172개국 중에서 5번째로 선수촌 국제 국기광장에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바르셀로나 하늘 높이 게양하게 되었으며 선수촌에서의 한국 선수단의 공식체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었다.

 

입촌식 일자 결정과 함께 행사 전날인 718일 오전에는 KOC가 임명한 두정수 아타셰(바르셀로나 한국총영사관 영사)와 함께 입촌식 의전 절차 등을 확인한바 조직위원회 측에서는 태극기 대신 북한의 인공기를 게양대에 준비하여 보여주었다.

 

바로 그때가 가장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의전책임자에게 이를 정식으로 항의하여, 태극기로 바로잡아 애국가 연주와 함께 태극기를 연습 게양하였다.

 

물론, 태극기는 사전에 KOC가 제작, 대회조직위원회 및 아타셰(KOC가 임명한 연락관)에게 송부한 문양을 근거로 대회조직위원회 측이 별도로 제작한 것이어서 다행히 잘못된 부분은 없었다.

 

국기 및 국가 그리고 호칭문제는 입촌식뿐만 아니라, 개폐회식 및 각종 시상식에 계속 사용될 주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다음날(719) 아침 8시에 개최된 각국 선수단장/IOC/대회조직위원회(COOB'92)와의 연석회의 시 발언을 통하여, 이를 바로잡고 향후, 모든 공식행사 시 IOC 의전 절차에 따라 착오가 없도록 유념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 바 있었다.

 

대회조직위원회(COOB’92) 측은 정식으로 사과하면서, 개폐회식은 물론, 시상식을 포함한 모든 의전행사 시 정확하게 이행하겠노라고 공식 답변하였다.

 

직전 대회인 서울1988올림픽 대회를 훌륭하게 개최한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아직 분단국이란 쓰라린 현실을 상기시켜 주는 안타까운 장면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Barcelona1992조직위원회 의전 팀이 사과의 뜻으로 수작업으로 만들어 필자에게게 전달해 준 수제태극기/양평소재 평산스포츠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강릉올림픽박물관에 기증)

 

 

각국 선수단 선수 수 규모에 따라 배정받는 차량(한국 선수단의 경우 벤 3: 7인승, 승용차 3: 4인승 배정) 이용의 경우, 당초 조직위원회에서는 제한된 차량 대수로 인해, 풀 차량제도(Pool System)로 운영, 각국 선수단에 많은 불편을 주었으나, 매일 아침 8시부터 개최되는 각국 선수단 단장 회의에서 다양한 발언을 통해 각국 선수단별로 고정 배차방식을 유도해내었고, 각국 선수단이 차량이용 시, 차량사용 신청에 따른 근본적인 애로사항이 해결된 셈이었다.

 

실제로 각국 선수단에 배정된 차량은 배차당일(고정운행시간: 09:00-21:00) 필요에 따라 신청서에 각국 선수단 단장이 서명날인을 하여 PPV(Punto de Pedicion de Vehiculos; 차량신청소)에 이용 희망자가 제출하게 되면, 수송부에서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해당차량 운전기사를 호출하고, 호출된 해당 운전기사는 지정차량 Key를 인수받게 되고, 지정차량 주차지점까지 탑승 이용자와 함께 동행, 해당차량에 탑승하게 되는, 번거로운 절차를 매번 밟아야 하는 까닭에 불필요한 지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었다.

 

하지만 단장회의 등을 통한 협의을 통하여 고정배차 후 해당차량 및 지정 운전기사와 익일 사용시간(1 12시간)을 사전에 조정하여, 차량사용 시작 시각에 따라 밤 늦게 까지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 차량 사용에 관한 한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었다.

 

각국 선수단의 올림픽 선수촌에 일일 허용되는 방문객 역시 선수단 규모별로 허용인원 쿼터가 인정되었고, 이에 따라 익일 방문희망자에 대해 방문 전날 오후 6시까지 신청서에 기입, NOC 서비스센터에 제출하게 되면, 방문신청자들은 여권 또는 ID 카드를 지참, 방문패스교환소에서 방문 증으로 교환하여 선수촌 출입을 하였다.

 

이 경우 올림픽선수촌 방문객 신청인원수에 맞추어 식사쿠폰을 구입하면 선수촌 식당에서 각국 선수들과도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며, 부득이 사전에 방문객 신청이 안 되어 있을 경우는 해당 선수단 단장 또는 대리인이 직접 방문패스 교환소에 출두하여, 배정방문객 쿼터 한도 내에서 직접 동반하면 선수촌 출입이 가능하였다.

 

선수촌 선수단 본부 사무실에서 1km 이상 떨어진 거리를 작열하는 태양과 무더위를 감수하고 매번 도보로 일일이 동반을 위한 절차를 밟고 모시고(?) 와야 했기 때문에 하루 평균 왕복 20km 이상 걷는 것은 예사였다.

 

한국 선수단 본부 사무실은 한국 선수단 숙소(4번섬: Island No 4. 지역과 근접한 Eurocity 빌딩 #3) 5층에 나이지리아 선수단 사무실(의무실)과 대만 선수단 사무실 사이에 위치하였으며, 한국 선수단의 경우, 매일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임원회의(경기임원 및 본부임원)에 대비하여, 체육회 직원으로 구성된 실무급 본부임원들은 숙소 아파트 1세대당 10명이 2개밖에 없는 화장실 목욕탕을 공동 사용해야 하는 관계로 보통 아침 5시경에 기상하여 아침회의 등에 대비하여야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매일 진행되는 경기는 물론 처리해야 할 부속업무 수행 관계로 새벽 1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일상 일과로 되어 있어 올림픽선수촌 내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에 참가한 172개국 선수단 중 가장 바쁘고 부지런하다는(?) 한국인의 평판과 이미지를 심어주었으며, 아마도 이러한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이 한국 선수단의 성적거양에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아침 7시에 시작된 전체 임원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8시부터 개최되는 각국 선수단 단장회의에 참석하여, 선수단 운영에 따른 애로사항, 건의사항, 요구사항 등에 대해 대회조직위원회 선수촌 행정운영본부장 및 실무책임자들과 협의 및 요청을 하였고, 개폐회식 및 경기 참가에 따른 각종 연락사항 등을 비롯한 광범위한 공지사항 등을 빠짐없이 메모하여, 익일 선수단 전체 임원회의 시 전달하여 선수, 임원 모두가 하루하루 차질 없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였다.

 

한국 선수단 본부사무실에 임차한 팩스와 전화기는 연일 한국 선수단의 선전을 축하하는 메시지 전달로 불티나게 작동되고 있었고 한국 선수단에 배치된 6, 7(주로 현지 교포학생들로 구성된)의 자원봉사요원들은 각 경기 종목별 경기일정에 맞추어 경기장 및 연습장까지 동행하여 통역, 안내를 담당하여 한국선수단의 순조로운 행보에 역시 도움을 주었다.

 

바르셀로나 총영사관에 설치된 상황실에는 총영사관 직원들은 물론 마드리드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대회기간을 전후하여 관련요원들을 파견하여 주었으며, 또한 서울에서는 체육청소년부를 비롯한 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파견된 상황요원과 현지 교민후원회에서도 자진 참여하여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현지 대책종합상황실 운영에 일치단결하여 각종 상황을 취합, 정리 전달하는 등 선수촌 외곽지역에서 역시 많은 지원을 하였다.

 

현지 교민들로 구성된 후원회에서는 선수단 응원을 포함하여, 올림픽 대회 참관 일반인들을 위한 민박 알선, 현지안내 등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특히, 라스팔마스(Las Palmas)교민들은 각종 싱싱한 생선 류를 거의 무제한 공급하여, 한국선수단 특별합숙소 특식메뉴의 중요한 식단재료를 제공하여 주는 등, 국내외에서 한국인들이 보여준 열의와 성원은 그야말로 정성스럽고 진심 어린 응원 그 자체였다.

 

선수촌 내 3,000여 명을 동시 수용했던 식당에는 대회조직위원회와 정식 공급계약을 체결한 두산 식품의 6톤 물량의 종가 집 김치가 냉동 컨테이너로 공수되어 하루 300kg씩 아침식사를 제외한 점심, 저녁식사 시 단골 고정메뉴로 공급되어 한국선수단은 물론, 중국, 일본 등 동양권 선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 구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국가 및 유럽 등 거의 지구촌 전 세계 올림픽 참가 선수, 임원들에게 애용되었다.

 

이는 1984 LA올림픽대회에서 채택되기 시작,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거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올림픽가족들에게 전통적인 올림픽 메뉴로서 그 위치를 확고히 차지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한국 선수단은 대회기간 중 선수촌 한국선수단 숙소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일반식당을 임대(임대식당 주인 아들이 현지 한국인 태권도 사범의 제자라고 함)하여 태릉선수촌의 주방장, 영양사 및 조리요원 등 4명을 파견, 상주시켜 한국음식을 제공하는 특별 합숙소를 운영, 경기를 앞둔 종목별 선수들에게 날짜 별로 교대로 정성 들여 준비한 한식 특식을 제공하여 주었다.

 

또한 연습장 및 경기장까지 특식 도시락을 운반, 제공하여 선수들의 입맛을 살려주었으며, 궁극적으로 경기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 유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바르셀로나1992올림픽대회 조직은 선배 격인 서울1988올림픽대회의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조직 및 운영에 비하면 외형적으로는 엉성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스페인 특유의 자유분방한 가운데에서도 나름대로, 맡은 부서별로 철저한 책임의식과 봉사정신이 투철하여 대회를 훌륭히 치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24회 서울올림픽 대회가 한국민 전체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치단결, 한마음 한 뜻으로 총체적이고 철두철미하게 치른 완벽한 대회였다면,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는 카딸루냐 자치정부의 테두리 안에서 바르셀로나 인들이 지혜와 역량을 투입하여 거국적이 아닌 국지적인 까딸루냐 국제올림픽 제전의 성격으로 치러졌던 까닭에 각국 참가선수단으로 하여금, 서울올림픽 대회의 진가와 향수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기도 하였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