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9. 11. 18. 08:10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1-2-3)스포츠외교관외길인생38년 실록(41)]

 

 

 

(1) KOC국제 통 스포츠외교관 그리고 더블 밀리언 마일러’(Double Million Miler)

필자는 벌써 37년간 국제 스포츠 업무만 전담해왔다. 필자는 늘 그랬듯이 37년 중24년간 올림픽 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 종합대회만 24번 다녀오는 동안 한국선수단 사전조사단, 사전협의회의, 각국 선수단장 회의, DRM(Delegation Registration Meeting: 각국 선수단 도착 직전에 해당 선수단장 또는 지명자가 대회 조직위원회와 종목별 참가선수 최종 엔트리(Entry by Name) 확정, ID 카드 최종 분류 및 확인, 숙박 세부사항 및 차량 등 수송 관련 배정 확인 및 인수, 선수촌 방 배정 및 열쇠 인수, 각 선수단 배정, 현지 보조요원 명단에 따른 사전 면접 및 상견례, 선수단 NOC 사무실/의무실/창고 등 배정 및 확보에 따른 세부점검 사항 확인, 선수단 본단 및 후속 도착 팀 현지 공항과 선수촌 간의 수송과 사격, 펜싱, 양궁, 근대 오종, 바이어슬론 선수들의 총기 및 활 등 무기로 분류되는 장비 반입에 따른 수속과 보관 절차 및 안전 관리 세부사항 사전 조치, 종목별 연습일정 배정 및 해당 수송 계획 사전 확인, ID 카드 카테고리 별 출입 가능지역 코드 추가 확보, 선수 수에 비례한 등급 상향(Upgrade) ID 카드 사전 인수, 선수단 추가 임대 차량에 대한 차량접근 및 주차허가 증’(VAPP: Vehicle Access and Parking Permit) 확보 등을 조직위원회 해당 부서와 사전에 일일이 확인 절차를 거쳐 최종 마무리하는 장시간의 종합점검 협의회의) IOC 집행위원회와 참가국 선수단장 연석회의 등 한국 선수단의 대회 참가와 관련된 국제회의란 회의는 단 1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하였었다.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선수단 파견 실무업무까지 일일이 처리하다 보니 시시콜콜 하지만, 현장에서는 모두 다 챙겨야 하고 챙기지 않으면 언젠가 불편하게 느껴질 사항을 평소에 메모해서 회의 성격에 걸 맞는 항목별 질문 점검 표(check-list)를 사전에 작성하였다.

 

 

 

(Barcelona1992올림픽 참가 후 한국선수단 선수임원을 위한 귀향<Home Coming> Car Parade)

 

 

 

 

그 내용이 숙지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해당 대회 조직위원회나 회의 주최 측에서 설명하는 포인트를 듣고 나면 왜 그렇게 질문하고 건의하고 따져봐야 하는 사항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 필자도 신기할 정도로 많아 마치 신들린 사람 마냥 질문 공세를 했다기보다 퍼(?)대곤 했다.

 

 

물론, 너무 많은 발언을 하다 보면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는 법이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는 법. 더구나, 배포한 매뉴얼 등을 분야별로 페이지마다 사전에 미리 체크하고 메모해서 역대 대회의 경험과 비교해서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과 애매모호하고(ambiguous) 어색한(awkward and clumsy) 부분들을 족집게처럼 집어내어 수준급 질문거리를 당당하고 권위 있게 때로는 유머를 섞고 엮어서 영어면 영어로, 불어면 불어로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신출귀몰(sudden appearance and disappearance)하게 풀어서 발언해 대니 웬만한 사전지식과 경험과 노련미 없는 답변자들은 백발백중 쩔쩔매다가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든지, 확인해서 다음날 대답한다고 미루든지 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회의 참가가 즐겁고 보람찼다. 새벽 회의나 밤중까지 이어지는 회의도 마다하지 않았다. 회의라는 바다에 푹 빠져 「회의벌레」가 된 것 같았다.

 

 

「국제회의 통」, 「총회꾼」으로 탈바꿈했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자연 각국 회의대표나 회의에 참석한 각국 선수단장은 당연히 필자를 젊은 한국 선수단장 아니면 KOC 사무총장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ANOC 총회, OCA 총회, EAGA 총회, IOC 집행위원회 연석회의 등에서도 “지 버릇 남 주나?” 식이었다. 때로는 IOC 해당 국장들을 곤란하게 하는 성격의 질문을 해대고 나면 회의가 끝나고 약간의 변명 성 항의를 받기도 했다.

 

 

불필요한 적을 1명 만드는 것은 아군 10명을 만드는 것보다 유익하지 못하다는 진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대회 기간 중에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부터 단장 회의가 있곤 했는데, 대회 기간 중에 특히 한국 선수단 본부임원(체육회 직원들)들은 새벽 1, 2시까지 담당업무를 매일같이 처리하다 보니 필자가 아침 단장회의에 같이 가자고 하면 피곤한 나머지 모두 꺼리는 눈치였다.

 

 

 

 

 

 

필자도 사람인데 왜 피곤하지 않겠냐 마는 일일 단장 회의에서 건의 및 문의할 사항도 많고 전 세계에서 참석한 각국 선수단장들과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 친목도 다지고 정보 교환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니 「신선놀음」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오버하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이 모든 이야기는 실화이며 사실이고 실제로 기록도 있어 스포츠 외교실록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서는 역대 전 세계 역대 각국 선수단장들 및 회의 대표들이 다 산 증인들이다.

 

 

이러한 필자의 끈질김, 끈덕짐, 집요함, 철두철미함, 대담함, 거침없음, 유머스러움, 깐깐함 등이 어우러지다 보니 필자를 못마땅하게 보는 일부 한국인들이 진짜 내막도 모르면서 겉으로만 보면 필자의 언행이 나서기 좋아하고, 설치고, 잘난척하고, 천방지축 겁 없이 굴고, 이기적이고, 함부로 말하는 것으로 나쁘게 보고는 필자를 폄하하고, 비난하고, 헐뜯고 때로는 중상모략, 모함 등 여러 가지 어처구니없는 누명이 필자에게 덮어 쓰이곤 했건 같이 주지의 사실이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기간 중 당시 이연택 KOC위원장 주최 아시아 IOC위원 전체 대상 오찬에서 진행 설명 중인 필자/좌측부터 박용성 IOC위원, CK Wu대만 IOC위원, 이연택 KOC위원장 등)

 

 

 

 

그때마다 필자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선수단이 해결 못 하는 귀한 ID/AD 카드 추가 발급, 선수단 및 VIP 현지임대차량 접근 및 주차허가증(VAPP: Vehicle Access and Parking Permit) 추가 확보, 선수단 숙소 명당 위치 배치, 각종 추가 혜택 등 눈에 띄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물리적으로 보여주고 나면 없었던 일로 덮어지곤 했다.

 

 

 

(2)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ISDI) 설립과 IOC 등 국제무대에서의 영예와 홀로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런 모함 꾼들의 간사한 모략을 100% 다 피할 수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경우도 왕왕 있었고, 그런 여파로 필자는 결국 200422년간 몸담았던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제담당사무차장(1)을 끝으로 2004 41일부로 졸업(명예퇴직)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 후 국제 스포츠 외교연구원(ISCI: International Sports Cooperation Institute; 원래 Cooperation이란 단어 대신 Diplomacy를 쓰려고 했으나 현 Ser Miang NG 싱가포르 IOC 집행위원의 사려(?) 깊은 자문에 따라 Cooperation으로 대체했음)을 설립하고 사용하다가 다시 원래 취지에 맞도록 ISDI(International Sport Diplomacy Institute)로 제자리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2004년 당시 22년간 국제 스포츠 외교 현장에서 피 눈물 나도록, 억척스럽게, 수집하여 소장 전시한 개인 스포츠 박물관(평산 스포츠 박물관: 경기도 양평 국수리 소재)도 개장하고, 매일 아침 3시간 동안 전 세계 외신 기사 등을 발췌, 번역한 후 필요한 설명과 분석을 추가하여 다듬은 다음 국제 스포츠 동향이란 제목으로 원하는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대가 없이 무료로 e-mail을 전송하면서 동시에 개인 Blogger로서 Blog(윤강로의 스포츠 세상) 등 국제 스포츠 외교 관련 업무를 계속해왔다.

 

 

개인 1명이 아무리 방어를 잘해도 여러 명으로부터 계속 모함과 질시와 질투를 받게 되면 결국에는 견디기 힘든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 와중에 몽골에선 필자에게 2003년 당시 Bagabandi몽골 대통령 등 저명인사들이 운집한 가운데 울란바토르로 초청해서 명예박사학위도 수여해주고, 몽골 NOC 위원 겸 국제 관계 자문역이란 직위도 부여해주고, 2004 2월 아테네 개최 ANOC 총회에 각국에 2명씩만 주어지는 몽골국가회의 대표 자격도 정식으로 부여해 주고, 유병진 관동대학교 전총장께서는 필자를 관동대학교 겸임 교수로 임명해 주어 활동을 계속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필자 몽골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한 Bagabandi 몽골대통령과 함께)

 

 

 

 

당시 Jacques Rogge IOC 위원장은 필자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도 필자의 박물관 활동 등에 전폭적 지지(You have my full support)를 보낸다는 공문까지 보내주고 Athens2004올림픽 대회에 IOC 위원장 특별 게스트로 정식 초청하여 VIP ID 카드(Gi) 차량 및 각종 의전 혜택까지 고루 배려해주어, 대회기간 내내 100여 명 이상의 IOC 위원들과 지속적으로 친분을 나눌 수 있었고, 그 동안 오랫동안 활동에 동참해왔던 많은 IOC 위원들, 국제연맹 회장들, 각국 NOC 위원장 및 사무총장들 등이 격려와 축하 메시지를 필자에게 보내주는 등 눈물겨운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어떤 국제연맹 회장은 국제연맹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도 해왔고, 심지어 북한의 장웅 IOC 위원 등은 필자가 북쪽에 있었으면 NOC 부위원장 겸 서기장(사무총장)도 떼놓은 당상일 텐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함께 걱정 반 격려(?)반을 해주기도 했다.

 

 

 

 

(Athens2004올림픽 IOC본부호텔에서 좌로부터 리용선 현 북한주도 국제태권도연맹<ITF>총재, 장웅 북한 IOC위원 겸 당시 ITF총재 및 필자)

 

또한, 올림픽 대회 및 국제행사에서 필자의 활약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었던 국내 일간지 스포츠 기자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필자에 대한 인터뷰 기사 등을 기꺼이 실어주면서 꽤 많은 지면을 여러 차례 할애해 주었다.

 

 

2004 1221일에는 2004년 체육기자의 밤 겸 이길용 체육 기자상 시상식에서 필자가 22년간 스포츠 외교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체육의 위상을 드높인 스포츠 외교관으로서의 공헌을 인정하는 한국체육기자연맹(KSPU: 박건만 회장/박광재 사무총장) 공로 패를 수여하여 주었다.

 

 

당시 박갑철 아시아체육기자연맹(ASPU: Asian Sports Press Union) 회장 겸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께서도 공로 패를 수여해 주었다. 모두 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더욱더 분발하라는 격려와 채찍으로 알고 대한민국의 위상과 스포츠 외교력 증진을 위해 더욱 매진하려는 마음내면에 불을 지펴 주었다’. 마치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 슬로건인 “Light the Fire Within’과 일맥상통함이 느껴졌다.

 

 

비록 2010년 동계올림픽 대회 유치 경쟁에서 국제적으로 무명이었던 강원도의 평창2010 1차전에서 세계적 강호인 캐나다의 밴쿠버와 오스트리아의 Salzburg2010을 통쾌하게 물리쳤으나(51:40:16) 과반수에 2표가 모자라 결국 2차전 결선에서 아깝게도 3표 차이(56:53)로 석패한 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는 대외 공동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으로 유치 활동 차 2002년 말부터 2003 7월까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평창2010동계올림픽유치 대외공동사무총장으로 프라하 IOC총회에서 IOC제 1공식언어인 불어로 프레젠테이션 중 인 필자) 

 

 

 

그 덕분에 지난 2003 51일부로 대한항공 밀리언 마일러 클럽(Million Miler Club; MMC)에 영광스럽게 등재되어 VIP 대우를 받고 있으며 몇 년 후에는 더불 밀리언 마일러(Two Million Miler)가 되어 있었다.

 

 

이와 더불어 대한항공 기내 잡지에도 인터뷰 기사가 실리는 등 그야말로 명실공히 확실한 「국제 통/해외 통」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필자는 1982 91일부로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 국제부에 처음 입사해서 2004 41일까지 22년간 국제 업무만 줄곧 해왔다.

 

 

1982 112일부터 126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9회 아시아 경기대회(The 9th New Delhi Asian Games) 한국 선수단 선발대 및 국제 섭외임원으로 시작한 국제 종합대회 참가가 이듬해인 1983 211일부터 32일까지 당시 동유럽 공산국이었던 불가리아, Sofia에서 열렸던 1983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83 Winter Universiad)에 한국 선수단 국제 섭외 및 경기 임원으로 이어졌고 또 다음해인 1984 77일부터 816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23회 올림픽 대회(The Games of the 23rd Olympiad LA 1984) 한국 선수단 선발대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으로 연결되었고 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에는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Olympic Council of Asia) 한국 측 회의대표 자격으로 국제 외교 업무를 수행하였고 Calgary1988동계올림픽 대회(KOC 위원장 동반자 자격으로 국제 외교업무 수행), 서울1988올림픽 대회(KOC 위원장 동반자 자격으로 국제외교 업무 수행),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Barcelona1992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Lillehammer1994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Atlanta1996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Nagano1998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Sydney2000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등 입사 이래 올림픽만 10개 대회에 스포츠외교 전담 최전방 공격수로서 참가하였다.

 

 

 

이어지는 Athens2004올림픽-Torino2006동계올림픽-Beijing2008올림픽-Vancouver2010동계올림픽-Sochi2014동계올림픽 등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및 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자문역 등의 역할수행을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평창2018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성공개최공로로 빙상개최도시 최명희 강릉시장으로부터 명예강릉시민증 수여식 참가차 방한한 Thomas Bach IOC위원장과 함께)

 

 

 

1982년 뉴델리 아시아 경기대회를 비롯하여 1986년 서울 아시안 경기대회, 1990년 제2회 삿포로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 경기대회, 1998년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2003Aomori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사무총장 자격으로 유치 활동) 시에도 같은 자격에 같은 업무를 수행하였고, 1999년 강원도에서 개최된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에는 대회 조직위원회 국제 자문역으로 참가국 선수단 단장회의를 주재하였고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시에는 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섭외 임원 역할과 동시에 OCA 아시안게임 수석조정관(OCA Asian Games Chief Coordinator: OCA 집행위원)으로서도 활동하였다.

 

 

 

또한, 1983Sofia 동계유니버시아드, 1987년 체코의 Strbski Pleso동계 유니버시아드, 1987년 유고의 Zagreb 하계 유니버시아드, 1995Fukuoka 하계 유니버시아드 등에도 참가하는 등 37년간 국제 종합대회만 30여 개 대회에서 국제외교 및 섭외와 관련된 각종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니 국제 업무에 관한 한 눈이 크게 뜨이고 귀가 활짝 열리고, 전공인 영어, 불어를 제외하고도 지구촌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외국어도 어느덧 7, 8개 국어를 어느 정도 뇌까릴 정도로 「국제 통」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모든 기회를 부여해 주신 조국 대한민국과 스포츠 계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감사 드리며 이제부터는 스포츠외교 재능기부를 통해 2032년 한반도 올림픽 공동유치 등을 위해 대한민국의 스포츠외교발전을 기하고자 썩어지고 죽어지는 밀알의 역할을 다 하고자 한다.

 

 

그뿐이랴, IOC총회, ANOC총회, GAISF총회, OCA총회, AIPS총회, ASPU총회, 올림픽 콩그레스(Olympic Congress), IOA(International Olympic Academy) 종합연수회, EAGA(East Asian Games Association: 동아시아 대회 협의회) 총회, IOC 심포지엄, 세미나, 스키, 바이어슬론, 아이스하키, 레슬링, 배드민턴, 럭비 등 종목별 국제 및 아시아 연맹총회, 각국 참가선수단 단장회의, 국제 스포츠 워크숍, IOC 실무협의회의, 전 세계 올림픽 박물관장회의, Olympic Solidarity 세미나 등 각종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그야말로 종횡무진 활약하였고 한국에서 개최한 각종 국제대회, 국제회의(1999 IOC 서울 총회 조직 및 운영 총괄), 국제행사 등에 의전 담당하랴 통역하랴, 책자 만들랴, 발로 뛰고 엎어지기도 하고, 이리저리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국내외 다양한 직종, 직급, 직함의 사람들도 많이 접하다 보니, 나름대로 감도 잡히고, 틀도 잡히고, 노하우(KNOW-HOW)도 자리 잡히는 가운데 많은 IOC 위원들과 국제연맹 회장들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인맥(human networking)도 쌓이게 되었다.

 

 

필자는 올림픽 대회,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간 중 거의 매일 아침 일찍(대개 오전 7) 개최되는 각국 선수단장 회의에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앞줄에 앉아 “감 놔라. 배 놔라.”하는 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을 괴롭히는(?) 질문과 건의사항도 「개근상」감이었다.

 

 

아마도 국제회의(ANOC, OCA, IOC 집행위원회/NOC, 연석회의, 단장회의)에 발언 횟수(in terms of the number of interventions)로만 보아도 역대 각국 총회꾼 모두 총동원해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평판과 더불어 악명(?)도 높다고들 한다. 이 부문 세계기록보유자라는 평가도 받았다.

 

 

 

 

(3) ANOC 총회 베사메무초(Besame mucho) 현장실록

 

 

 

지난 2002 520일부터 25일까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제13 ANOC 총회 마지막 날 525일 개최된 IOC 집행위원회/NOC 연석회의가 끝난 후,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Michael Payne IOC 前 마케팅 국장은 필자더러 “질문 및 의견제시 회수를 보면 귀하야말로 기록 보유자입니다(You have a new record in the number of interventions)”라고 평가해 주었다.

 

 

ANOC 총회 전야제 겸 환영 리셉션에서는 여흥 시간에 총회 개최국 Sie kok-Chi 말레이시아 올림픽위원회(Malaysian Olympic Council) 사무총장이 사회자에게 미리 추천을 하는 바람에 아시아 대륙 대표로 등 떠밀려 무대로 나가서 Jacques Rogge IOC 위원장 내외, Mario Vazquez Rana ANOC 회장 내외, 80여 명의 IOC위원, 20여 명의 국제연맹(IFs)회장, 202개국 NOC 위원장 및 사무총장 등 1,000여 명의 관중들 앞에서 노래 한 곡조를 부르게 되었다.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 중에서 밴드 연주가 가능하고 노태우 前 대통령 겸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애창곡이기도 한 스페인어 원어로「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감정을 살려서 부르고, 「앙코르(Bis)」를 받아 「아리랑」을 이어서 한 곡조 더 뽑았다.

 

 

노래는 국제 공용어인가 보다. 모두 흥겨워 보였다. 다음 다음 날 필자가 한국 NOC 대표로서 Rogge IOC 위원장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기타 사항에서 또 다시 발언권을 신청하니까 Rogge IOC 위원장은 농담조로 “Rocky, if you promise to sing one more song, I will give you the floor!(로키, 노래 한 곡조 더 부를 것을 약속하면, 발언권을 드리겠소!)”라고 하면서 발언권을 주었다.

 

 

 

 

(2008 Beijing개최 206개국 ANOC총회 개회식에서 한국 최초 ANOC외교공로훈장수여식에서 좌로부터 Mario Vazquez Rana ANOC 회장, 필자, Jacques Rogge IOC위원장)

 

 

 

 

필자의 질문 내용은 “현재 IOC 헌장에 명시되어 사용되고 있는 올림픽 표어(Olympic Motto)인 「Citius, Altius, Fortius(Faster, Higher, Stronger/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는 현대 스포츠가 진화하여 온 결과 그대로 사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르니 조율(Fine Tuning)이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사격(Shooting), 양궁(Archery), 체조 종목의 평균대, 피겨스케이팅 등에 고전 표어대로 적용하면 잘 어울리지 않으므로(사격할 때 보다 높게, 보다 빠르게, 보다 강하게 쏜다면 좋은 기록은커녕 예선탈락 감이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

 

 

필자의 대안 표어는 “V.I.P”라고 하면서 「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 즉, 「보다 생동감 있게, 보다 인상 깊게, 보다 정확하게」를 IOC에서 연구하여 채택할 의향이 없느냐?”였다.

 

 

Rogge IOC 위원장은 가만히 경청하고 나서, Rocky, if you promise not to claim your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then IOC will positively consider it(로키, 그것과 관련한 지적재산권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IOC로서는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라고 답변하였다.

 

 

물론 IOC 100년 넘게 사용해온 올림픽 표어를 바꾸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국제 스포츠 외교 연구원(ISDI) 2004년 초 설립 운영하면서 ISDI의 표어를 VIP(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로 설정하고 사용해 오고 있다.

 

 

ANOC총회 직후 Mario Vazquez Rana ANOC 회장은 필자더러 “21세기의 새로운 쿠베르탱이 탄생했다.”라면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Rana ANOC 회장의 셋째 딸인 미리암(Miriam)은 출중한 미모와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여 필자가 1984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ANOC 총회 시 Rana 회장 자택에서 베푼 만찬에서 라냐 회장 가족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면서 담소하였는데, 필자는 Miriam과 특히 친해져서 그 당시 필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시(Dash)했다면 Rana 회장 셋째 사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자녀들과 함께 셋째 딸 Miriam은 가운데 필자 우측 옆)

 

 

 

 

30년이 지난 그 당시에도 Rana 회장 부인은 필자더러 “이호(hijo; 아들이란 뜻의 스페인어)”라고 지칭하면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었고, 필자도 사석에서는 Rana 회장 더러 “미 빠빠(mi papa; 나의 아버지 또는 장인), 부인에게는 “미 마마(mi mama;엄마 또는 장모)”라고 부르는 사이이기도 했다.

 

 

Sydney2000올림픽 대회 기간 중 당시 연합뉴스의 김용윤 특파원의 취재 기사 내용을 소개해 본다. 

 

 

2000/09/18 11:57 송고  

 

< 시드니올림픽 > 윤강로 KOC사무차장은 '교과서(?)'

 

 

(시드니=연합뉴스) 특별취재단= "로키의 말은 거의 올림픽에 관한 한 지침서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오아니스 파파도키 아나키스 그리스선수단 단장은 18일 윤강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국제담당 사무차장이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한 각국 선수단 간부들에게 '교과서'가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지난 82년 대한체육회에 들어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등 국제업무만 18년째인 국제통.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도 그의 실력을 인정, 최근 IOC평가위원에 임명했으며 그는 베이징, 파리, 토론토 등 2008년 하계올림픽 유치후보도시들의 '로비대상'이 됐다.

이번 대회에서 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올림픽운동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업무능력 때문.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97 무주전주동계유니버시아드 등 크고 작은 국제대회, IOC 총회를 기획, 운영해 온 노하우로 사실상  '백과사전'이나 다름이 없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지난 29일 선발대로 시드니에 도착, 각국 선수단 단장회의를 통해 IOC 의무분과위원과 조직위원회(SOCOG)의 맹점을 찌르는 질문을 퍼붓는가 하면 선수촌 주방까지 좇아가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는 등 그의 활약은 경계가 없다.

 

특히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나 류성일 조선올림픽위원회 서기장과는 허물이 없을 정도로 깊숙한 대화를 나눠 한반도기를 들 기수를 결정하는 등 미묘한 사안을 절묘하게 해결해 낸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윤강로 사무차장이 IOC, SOCOG 관계자들과 설전을 벌일 때면 각국 대표들은 "정말 많이 배운다. 우리는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를 하고 있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그를 아는 LA타임스 등 일부 외신기자들은 아예 "내년 7월 모스크바총회에서 만일 김운용 집행위원이 IOC 위원장 후보로 출마, 당선된다면 로키 윤은 로잔에서 톡톡히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yykim@yna.co.kr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