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9. 10. 16:13

[우리들교회 202096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열왕기 하 25: 22~ 30/ 회복의 약속// 최대규 목사)]



 

<열왕기하 25: 22~30>

 

22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더라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appointed Gedaliah son of Ahikam, the son of Shaphan, to be over the people he had left behind in Judah.)

23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25 칠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26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27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Evil-Merodach)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28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29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30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Prologue>


취학 부를 섬기는 MSG 최대규목사이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

"뚱뚱한 목사 안 뚱뚱한 목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큐티하게 하는 목사가 중요하다."

제가 어느 곳에 갈 때 마다 이것을 이야기 한다.

정지훈 목사님이 살이 빠진 걸 보고 이야기를 한다

큐티하게 하는 목사가 최고다.

열왕기 하를 묵상하는 가운데 적용했다

열왕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미션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고백과 회개가 결론일 텐데 우리 잠시 아이들의 영상을 잠시 보겠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고 한다.

히스기야는 나눈 것이 없었을 것 일까

애굽과 전쟁으로 사망한 후에 남 유다는 갈 곳 잃은 배처럼 악을 행하고 바벨론 포로라는 현실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성벽은 무너지고 성전은 더럽혀졌다

목장에서 성벽이 무너지는 여러 소식을 듣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붙들기를 원하시는 걸까?

 

<말씀 요약>

 

1.   남은 자들에게 말씀을 주신다.


"22절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더라"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남 유다땅에 남긴 자들이 있다고 한다

여호야긴을 비롯한 많은 용사와 장인들이 사로 잡혀갔기 때문에 비천한 자 외에는 없다고 한다

별로 쓸모 없는 사람은 끝까지 남겨지게 된다

쓸모 없다고 데려가지 않으니 얼마나 무시를 당 했겠나

비천한 자들은 그달리야(Gedaliah) 를 총독으로 관할하게 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 아히감(Ahikam) 은 선지자와도 교류했던 사람이다

지금 비록 남 유다는 망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게 하는 여지가 있었다

예리미아가 함께 있었다는 것 이다

예레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비천한 자들에게 말씀이 임했다는 소망이 있는 것 이다

그 사람은 남 유다 땅에만 두지 않고 여호야긴(Jehoiachin)왕의 자녀들에게 다니엘을 붙여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주셨다

하나님이 그곳에 에스겔(Ezekiel) 선지자를 붙여주셔서 말씀을 듣게 해주셨다.

비천하게 여겨 주시기 싫어서 말씀을 전하나 듣는 자가 없어서 비천해지는 것 이다

저는 돈으로 사람으로 평가해서 장인어른을 돈으로 평가했다속으로 많이 무시했었다장인어른이 17살에 이북에서 내려오셔서 장모님과 가정을 이루셨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혼자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온갖 신문 스크랩을 모으시는 것을 좋아하는 거다가장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지 않으니 힘들어 가족들이 왕따를 시키지 않겠나가장이 그러면 주눅이 들어야 하는데 이북 분이라서 성질을 부린다. 돈을 못 벌어도 소리를 지르니 어디 갈 때도 함께하지 않고 따로 행동하게 되었다저를 만날 때마다 목사가 기독교를 망친다고 했다담임목사님의 책을 권했더니 이 여자 봤다고 서울 말씨가 곱다고 했다폐 섬유 종에 골증까지 더 해져서 투병생활을 했다예수님을 전해도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간절한 기도로 어린아이처럼 영접기도를 했는데 올해 1월에 임종이 와서 기도를 드렸다외롭게 한 것을 사과하고 아버님 이제 천국 문 앞에 계시는데 믿으세요?’ 라고 물으니 예수님 앞에 천국 문에 가시는 것을 믿는다고 하셨다가족들 중에 장인어른이 가장먼저 천국 백성으로 배속되었다. 복음으로 분별하지 못하고 돈으로 분별했음이 인정이 되었고 회개하게 되었다.  


(적용#1)

-지금 누구를 비천한 자로 여기고 있나?

-말씀이 없는 자가 비천한 자 임을 믿나?

 

"23절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절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그달리야(Gedaliah)가 총독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몰려들었다

남 유다에는 바벨론의 눈을 피하여 숨어있는 상류계층들이 들어있었다

이들은 가문의 아들들이었다. 23 24절을 자세히 보면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 군사 이것이 반복될 때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벨론이라는 고난을 겪었으니 말씀이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이스라엘의 선지자 사무엘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영적 각성 운동을 전개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몸만 흐트러진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흩어졌다

다 모일 때가 오지 않겠나

각자의 의견과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가 되기를 기도한다.

24절을 보니 이렇게 이야기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면 너희가 평안할 것이다’ 

그달리야의 말을 들어보면 매국노의 말 같이 들려진다

이것은 예레미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 이다. 

"잘 먹고 잘 살고 주인 노릇 한다고 평안한 것이 아닌 것이다

원수의 종 노릇을 할 때 평안하다고 한다

내 원수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 우상을 깨뜨리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 

생각해보시라. 내연녀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본 부인이 꿇는 것이 가능 하겠나

상식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나도 분노가 나지 않겠나

그래서 있어야만 하는 사건이 와야 하는 것이다. 

저희 목장에 10년만에 헤어져 살다가 재결합한 부부가 있다

각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지만 딸이 수고를 해 재결합 했다

히스기야가 기도하며 15년의 연장을 경험했는데 자기 때의 신앙을 흘러 내려가지 못한 것처럼 내 자녀에게 신앙이 흘러내려가지 못할 것 일까 봐 그것이 두렵다고 했다.


(적용 #2)

-여러분은 교회에서 다시 모이기를 기도하나? 흩어진 지금이 좋아 인가?

-‘하늘이 두 쪽 나도 안돼!’ 라고 하는 우상은 무엇인가?


2. 해결이 아니라 회개가 먼저다.


"25절 칠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이스마엘 (Ishmael)이야기가 중요한지 역대 하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스마엘은 왕족 출신이니 혜택이 많았다고 한다

그동안 자신의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을 어려워했을 것이다

그달리야 와의 식사자리에서 그를 쳐서 죽였다

마치심판자가 되어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인 것이다

이때가 7월이라고 하는데 남 유다가 멸망하고 두 달 지나고 7월이 된 것이다.

왜 그달리야를 죽였을까?

40 14절에 보면 암몬의 사주를 받았다고 한다

암몬 족속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훼방을 놓은 민족이다

이스마엘이 암몬의 사주를 받아서 동족을 살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시기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이다

총독의 자리가 탐날 수 있는 자리인가아니다

그 자리가 그저 꼭두각시같은자리 임에도 탐이 난다고 한다

제가 살이 많이 쪘다제가 설교를 하니 옷을 샀다. 그런데 와이셔츠를 못 입어서 옷이 좀 낀다백화점에 갔는데 제 눈에 들어온 것이 백화점 푸드 코트 다백화점 어느 코너도 눈이 들어 오지 않지만 저에게는 푸드 코트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스마엘 눈에는 그달리아의 자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시기심 때문에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제일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보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회개해야 하나이렇게 생각하는 해야하는 것이다

이스마엘은 그달리야를 죽이니 옆에 있는 사람도 죽여야 하는 것이다

아무 연관 없는 사람도 죽여야 하는 것이다울어요 제가 그 말씀을 보니까 연기 같은 것이다

그달리야에게 인도해 준다고 약속하고 죽이고 구덩이에 버리는 것이다

쉽게 해결해버리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연락을 안받는다는 것도 있는 것이다그런 방식을 쓰는 것이다

적용은 반대로 하는 것이니 적용했으면 좋겠다

죽임 당한 그달리야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그달리야도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임 당한 것 이다

예레미아를 보면 그달리야에게 이스마엘의 징후를 감지하고 경고했다

당신을 죽일 것 같다진정이 아니라 믿지 않았다

자기 확산이 젖어서 그냥 무시했다

그 말 한마디를 무시한 것이 남 유다를 도탄에 빠트린 것이다

"분별 못하는 지도자는 모두를 도탄에 빠트리는 것 이다

남 유다의 상황들이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하지 않나?" 

이스마엘도 악하지만 제일 나쁜 것은 그달리야이다.

"26절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스마엘은 이제 암몬으로 도망갔다

이중에서는 요하난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의로운 척을 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싸잡아서 말씀을 불순종하고 애굽으로 피하는 선택을 한다

예레미아가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잘 묻는 것 같은데 묻기만 하고 따르지는 않았다

애굽으로 피하는 길이 살 길이라고 믿었지만 바벨론의 애굽 정벌 때 유대인만 색출해서 처형했다.

예레미아가 반복해서 전하지만 듣고 깨달은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여러분은 세 명중에 누구인 것 같나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건이 찾아왔다저는 초등학교6학년 딸이 있는데 요즘 온라인 수업으로 컴퓨터를 많이 하는데 저와 아내 모르게 채팅을 중학생오빠랑 하게 되었다우리 딸이 욕을 잘하는 줄 몰랐다제가 그것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지고 채팅 계정을 없애겠다고 하니까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서울에 살고있는 중학생 오빠라는 것이다칼을 들었다. 계정을 없애고 핸드폰을 바꾸었다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다. 딸아이의 문자를 보는데 또 연락하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연락한 것인데 소중해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망감이 밀려 왔다곧바로 드는 생각이 핸드폰을 없애야 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고 더 나아가서는 머리를 삭발해야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돌아보니 제가 마치 이스마엘이 죽이는 것처럼 그렇게 가는 것이다기도를 했다. 저희 딸이 책을 좋아하는 것이다제 모습도 보이고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죗값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집에 있는 딸에게 전화했다. ‘많이 속상하지?’라고 물으니 가만히 있었다. ‘아빠가 가은이한테 미안해! 아빠가 미안한 게 많은 것 같아라고 하니 딸이 울었다. ‘미안하다라고 하니까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보여준 게 없어서 하나님에게 죄송하고 취학부를 섬기는데 속상한 부모님들을 만나고 보니 정말 죄송했다

"당하지 않으면 깨달아 지지 않는 것이 있다."

(적용 #3)

-손쉽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폭력, 폭언, 침묵, 돈 모은 체하는 인가?

-사고치는 이스마엘인가도망간 요하난 인가가만히 있는 그달리야 인가?

-셋이 악하다는 것이 인정되나?

3, 종신토록 끊이지 않는 약속을 주신다.

"27절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9Evil-Merodach)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열황기하의 마지막은 여호야긴(Jehoiachin) 왕이 감옥에서 풀려나 왕족으로서 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포로로 끌려간 왕에 대해 기록한 것이 없는데 여호야긴(Jehoiachin)에 대해 기록이 있는 이유는 있었다

다윗과의 약속을 통해 회복시켜 주셨다

남 유다의 왕 여호야긴은 18년보다 37년이라는 시간이 길었다

이것이 얼마나 은혜인가?  

"회복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이다."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의 시간이 된다." 

회복되려면 사로잡힘이 있어야 한다

부르는 것부터 구속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는 다가구주택 살고 있다.  1증 아주머니가 매너가 좋다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교사라고 한다자기의 남편이 싫어하는 사람이 목사라는 것이다우리가족이 목사이고 교사이고 부산사람이다. ‘아주머니, 제가 목사예요, 부산사람 이에요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적잖이 당황했다그 뒤부터 소문이 났다주일 아침에 나와서 목사님 교회 가시죠잘 다녀오세요 분리수거를 하는데 CCTV를 설치했다고 하는데 분리수거를 할 때 손이 떨린다우리 와이프도 안 무서워하는데 그 아줌마를 무서워한다. 제가 일층 아주머니한테 사로잡혀 살고 있다

오늘 말씀에 보니 회복되려면 사로잡힘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분은 사로 잡으려는 사람이 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모든 것을 이겨야 하는 싸움으로 해보자 라는 것 이다.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우리는 보통 힘을 내세요라고 한다.

사로잡힌 분에게는 힘을 잘 빼고 계세요 라고 말해줍시다." 

사로잡힌 여호야긴은 새로운 왕을 통해 감옥에서 나왔다

모든 왕 보다 높은 지위를 얻었다고 한

그랬던 이유는 은혜로 밖에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죄수 복을 벗고 왕의 의복을 입었다

죽는 순간까지 대우받다가 갔다

살기 위해서 도망가다가 죽음을 당했다

여호야긴 왕이 항복하면서 나왔다

죽겠다고 나아가니 여호야긴 만을 회복해 주셨다

살기 위해 도망치고 이혼하겠다고 한다

"사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주시는 약속이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에 있었다

여호야긴을 묵상하면서 37년을 살고 더 살았겠고 더 살았겠으리라

나의 가는 이길 끝에서 나는 주님 보리라

포로의 삶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그 길을 가고자 했던 여호야긴이 주님을 보고자 하지 않았까

제가 우리들교회에 오고 나서 신기하게도 저의 가정의 빚 수천만을 갚게 해주셨다우리들 교회 사역이라는 기회를 주셨다그곳은 양식이 넘쳐나는 것 이다목장에 처음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원들은 웃어주면서 격려해주셨다지금은 목원들이 목사님 그때 이상하셨어요’ 

가시적인 변화도 있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저의 주제를 행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여호야긴처럼 제가 가는 길 끝에 주님이 있으리라 믿는다.

"말씀이 뚫고 들어와서 직면하고 회개를 하는 것이 양식되어 다른 사람을 먹이면 포로 생활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구원이 일어난다."

(적용#4)

-회복되기 위해 3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데 어디까지 왔나?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Epilogue>


1)  남은 자들에게 말씀을 주신다

2)  해결이 아니라 회개가 먼저다.

3)  종신토록 끊이지 않는 약속을 주신다.

4)  잘 먹고 잘 살고 주인 노릇 한다고 평안한 것이 아닌 것이다

5)  원수의 종 노릇을 할 때 평안하다고 한다

6)  내 원수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7)  자기 우상을 깨뜨리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

8)  분별 못하는 지도자는 모두를 도탄에 빠트리는 것 이다

9)  남 유다의 상황들이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하지 않나

10) 당하지 않으면 깨달아 지지 않는 것이 있다.

11) 회복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이다.

12)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의 시간이 된다.

13) 회복되려면 사로잡힘이 있어야 한다

14)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15) 우리는 보통 힘을 내세요라고 한다.

16) 사로잡힌 분에게는 힘을 잘 빼고 계세요라고 말해줍시다

17) 사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다

18) 이것이 우리 가운데 주시는 약속이다. 

19) 말씀이 뚫고 들어와서 직면하고 회개를 하는 것이 양식되어 다른 사람을 먹이면 포로 생활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구원이 일어난다

20) 99% 같고 1% 다른 것이 이단이다

21) 부모가 먼저 h지 고백하고 상식을 보여 주어야 한다

22)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다

23) 자기 애, 자기 확신이 우상이다

24) 회복하려면 사로잡힌 사건이 있어야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25) 37년 간 사로잡힌 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나 왕 대우 받은 일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는데 그런 일이 많은 것이다

26) 살길 찾겠다고 나의 애굽으로 가는 것을 죽는 길이고 하나님 말씀 듣고 따르는 길이 사는 길이다

27) 나의 포로로 사로잡힌 길 끝에 주님이 계신다

28) 나의 가는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의 십자가 지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29) 빚의 감옥에서 여호와 오실 때까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30) 나는 날마다 불순종의 산당을 짓고 있으며 1만 달란트 빚 탕감 받은 죄인이고 새 한 마리 값도 안되는 비천한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31) 말씀이 뚫고 들어와서 회개하고 말씀을 붙들면 소망이 있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말씀과 마음씀2020. 9. 4. 17:05

[우리들교회 2020830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열왕기 하 20: 12~ 21/ 히스기야의 마지막/정지훈목사)]



 

<열왕기 하 20:12~21>

12.At that time Merodach-Baladan son of Baladan king of Babylon sent Hezekiah letters and a gift, because he had heard of Hezekiah's illness.

13  Hezekiah received the messengers and showed them all that was in his storehouses--the silver, the gold, the spices and the fine oil--his armory and everything found among his treasures. There was nothing in his palace or in all his kingdom that Hezekiah did not show them.

14  Then Isaiah the prophet went to King Hezekiah and asked, "What did those men say, and where did they come from?" "From a distant land," Hezekiah replied. "They came from Babylon."

15  The prophet asked, "What did they see in your palace?" "They saw everything in my palace," Hezekiah said. "There is nothing among my treasures that I did not show them."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1. Then Isaiah said to Hezekiah, "Hear the word of the LORD :
  2. The time will surely come when everything in your palace, and all that your fathers have stored up until this day, will be carried off to Babylon. Nothing will be left, says the LORD.
  3. And some of your descendants, your own flesh and blood, that will be born to you, will be taken away, and they will become eunuchs in the palace of the king of Babylon."
  4. "The word of the LORD you have spoken is good," Hezekiah replied. For he thought, "Will there not be peace and security in my lifetime?"
  5. As for the other events of Hezekiah's reign, all his achievements and how he made the pool and the tunnel by which he brought water into the city,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annals of the kings of Judah?
  1.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 여호와의 말씀이 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3.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4.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5.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 Hezekiah rested with his fathers. And Manasseh his son succeeded him as king.
  1.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Prologue>


열왕기서는 여호와 보시기에 의 관점이 중요함을 알려준다.

자녀들에게 여호와 보시기에의 가치관과 삶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이다.


히스기야(Hezekiah)의 눈물의 기도응답으로 죽을 병에서 살리시고 15년의 시간을 더해준 것에 끝나지않고 히스기야의 마지막 기록이 더 남아있다

 

<말씀 요약>



1.
되었다 함이 없는 죄인임을 알아야 한다

히스기야(Hezekiah)의 눈물과 기도응답으로 초자연적인 징조도 보여주시며 연장된 15년의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시간이 됐어야 했지만, 히스기야는 바벨론에서 온 사신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모든 것을 자랑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3
일만에 성전에 올라갈 것이라고 하신 건 병에서 낫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배와 신앙고백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을병에서 살리신 하나님을 만나고 징조를 보고 기적을 경험해도 나를 도와줄 것 같은 바벨론에게 모든 것을 보이며 인간적인 계산을 한 것이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없고 겸손한 환경만 있는 것이다.

(적용 #1)


-
받은 은혜를 잊고 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드러내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2. 물어주고 들어주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신의 방법을 내세우는 히스기야를 이사야가 심방하여 그들이 무슨 말을 했고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지만 히스기야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하고 하고싶은 말만 한다


이사야(Isaiah)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떠올릴 때까지 기다리는데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들어주고 물어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당장은 몰라도 공동체에 붙어있으면 내가 얼마나 교만하고 분별하지 못하고 악한 선택을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중요한 것은 어디에 속해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기에 자녀들이 성령의 만남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자녀들이 예배와 목장에 붙어가게 끔 도와주고 대가도 지불하여야 하며 어려서부터 말씀과 공동체에 붙어있으면 하나님이 책임져주는 인생이다.

 

(적용 #2)

-말씀으로 물어주고 들어주는 공동체를 귀히 여기나?
자녀가 공동체에 붙어 가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 했나?



3.
선하신 말씀 듣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방법과 생각을 신뢰했던 히스기야의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 빼앗기게 되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 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흉년의 예언을 듣기 싫어하지만 포로의 때가 되었을 때 말씀이 생각나야 하고 이것이 내가 하나님을 떠나 살아왔던 내 삶의 결론 임을 깨달아야 한다.


히스기야는 이사야가 전한 책망 듣고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회개를 받아주셔서 악을 행한 므낫세가 바벨론 포로 가서 회개한 부분을 성경에 기록하신다


히스기야의 대단한 업적과 열심에도 남 유다를 구원하지 못했다

업적과 부를 쌓아도 내 자녀 내 가정은 구원하지 못 하는 것이다.
사건 앞에서 부모가 눈물로 자기 죄 고백하며 회개하고 가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믿음의 유산이고 자녀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

15년을 더 살 때 므낫세(Manasseh)가 태어났는데 이것이 기도 응답일까?

 

(적용 #3 #4) 


-
어떤 책망과 심판의 말을 듣고 있나? 자녀에게 회개의 모습 보여주고 있나?

-나는 15년을 더 살기 원하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사는 것을 좋아하나?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말씀과 마음씀2020. 8. 27. 18:42

[우리들교회 2020 823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1:27~ 30/성령의 부조)]



 

<사도행전 11:27~30>

27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During this time some prophets came down from Jerusalem to Antioch.)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One of them, named Agabus, stood up and through the Spirit predicted that a severe famine would spread over the entire Roman world. (This happened during the reign of Claudius.)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The disciples,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decided to provide help for the brothers living in Judea.)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This they did, sending their gift to the elders by Barnabas and Saul.)



                                                                (Barnabas)



<Prologue>

우리가 끝없이 부조를 합니다성령의 부조를 할 수 있도록 오늘 찾아오셔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지금 코로나로 온 나라가 세계가 계산을 하고 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우리들교회가 성령의 성전이 되기를 원하시는 가운데 죽어지는 성령의 순교가 이어 나오고 모두 흩어지고 흩어지는 박해가 있었다

말씀대로라서 놀라고 있다

이제 이 고난을 통해 개개인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함을 받으라는 것이다

지금은 존경받는 칭호가 된 것처럼 지금 개신교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죽어지고 손해를 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부조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말씀 요약>


1.   성령의 예언을 들을 있어야 한다.

 

"27절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선지자들이 왜 안디옥교회에 왔을까

날이 갈수록 부흥해 간다고 하니 잘 믿는 자에게 수준 높은 말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일시적일 수도 있고 예언적인 내용일 수도 있다

앞날을 내다보는 은사가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점쟁이가 되고 만다. 

정치도 여기저기 다닐 수 있다.

이때는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전으로 내려올 때 예언자가 존경을 받을 때였다

사도행전에는 예언의 예시가 몇개 안 나온다

아가보(Agabus)의 이야기가 여기에 나온다

예언의 내용이 뭔지 알지 못하고 그러나 베드로가 잡혀가고 스데반의 순교로 박해가 일어나서 흩어지고 이방인의 사도가 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언이 없는데 왜 그럴까

구약에서 바벨론 포로로 갈 때는 우상숭배가 극심해서 바벨론으로 가라는 예언을 했다

성령이 임해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웬만하게 예언을 하시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은 이미 어떤 앞날을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미 우리의 처소는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주님과의 만남이 확실치 않은 사람은 점쟁이를 따라가는 것이다.

모두 만인 제사장/선지자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예언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니까 이제 모든지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예언이다

오늘 흉년을 생각해볼까 한다.

"28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예언자 중에 아가보(Agabus)그의 사랑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인데 성령의 예언을 했다는 것이다. 

아가보의 예언은 흉년이 글라우디오(Claudius) 때에 있다는 것dl

말하되 하더니로 번역된 동사는 말하다의 동사가 아니라 신호하다 알리다는 의미다

아가보는 장례의 흉년을 예언하기 위해 손짓 발짓 등으로 신호하고 사인을 주며 예언을 했을 것 같다

불신 결혼하나 하지 말라고 하기 위해 자신의 오장 육부를 드러내며 간증해야 할지 모른다

후에는 알기 때문에 목장에서 후일에 흉년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사인을 보내고 알려야겠다

그러나 특별히 성령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선지자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받으시는 고난과 후의 영광이다

고난과 영광을 예언해야 한다

이것을 증언하여 말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무슨 말을 했나? 천하에 흉년이 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난이다 후에 받을 영광이 있다는 뜻이다"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바벨론 포로로 갈 것을 예언한 예레미아(Jeremiah)가 있고 거짓 선지자 아나니아(Ananias)가 있는데 포로들도 다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기 확신을 가지고 하니까 예레미아가 자기 이야기 같다고 한다! 거짓 선지가 이겼다. 때가 될 때까지 거짓 선지자가 이길 수 있는 것이다포로로 가도 돌아온다는 것이고 성전의 어느 것도 안 빼앗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레미아가 자기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반드시 바벨론 왕을 섬기게 하시겠다는 것은 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아나니아에게 말을 하게 했다

참과 거짓 선지자의 차이는 지금 당하는 일은 죄의 결론이니 포로로 가서 순종하라고 하는데 거짓 선지자는 포로로 안 간다고 하는 것이다

망하지 않다고 하는 것인데 누구 이야기가 좋겠나?

흉년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겠나

거짓을 믿게 하는 도다

그래서 너무 안 변하니까 아나니아가 죽었다고 한다

읽어보라. 흉년을 예언하는 것이 어렵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선민의식이 있어 하나님이 지켜주시기에 흉년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고 있는데 안디옥 교인들에게 흉년의 예언을 하니까 사울에게 말씀을 배워서 흉년이 없다고 말을 안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이야기다

괜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선민 의식은 누구로부터 시작됐는데 예수님이 초라하다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에게는 아프고 떨어지고 망하고는 사전에 없는 것이니 그러고 안 망하나?

요즘에 기독교도 두개의 파로 나뉘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으니까 코로나 안 걸린다고 하는 이런 파가 생겼다

검사 안받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날마다 큐티를 통해서 그날 그 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에 이것이 예언인 것이다 

고난이 있을 수 있다

정하시면 언제든지 흉년이 들 때가 온다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만인 제사장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글라우디오(Cladius) 황제 때가 되면 있어야 할 때라고 한다

그 당시는 아나니아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있는 것이다

분별을 잘 해야한다말씀을 읽고 나의 죄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을 찾으면 모든 예언의 완성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성령의 예언자가 되게 하신다.

한편 누가는 예언의 성취의 때는 글라우디오 때에 된다고 했다.

그런데 글라우디오 황제 4~7년 때에 팔레스타인에 심한 기근이 있었다고 한다예언이 실현이 되었던 것이다

누가가 흉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은 흉년에 대한 아가보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가보의 예언을 듣고 기근이 닥쳤을 때 안디옥(Antioch) 교회의 반응에 더 큰 의미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한절로 지나간 것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용#1)

-잘 될 거라는 소리만 듣기 원하나흉년의 소식도 잘 들어내나?


안디옥 교회가 최고인 것은 흉년의 소식을 잘 들어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흉년의 소식을 잘 들어내는 것을 싫어한다.

흉년이 올 때 안디옥교회 교인들은 혈기를 내지 않았다.


2.   각자의 힘대로 작정을 한다. 

"29절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절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힘대로’(according to his ability) 3인칭 단수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능력에 따라 부조를 보냈다고 한다

여기서 안디옥교회의 실력을 알 수가 있는데 흉년을 비껴 간 것이다 

흉년이 들었지만 특별히 예루살렘 교회에는 폭풍 흉년이 왔는데 이것은 성령님이 운행하신 성령의 부조다

왜 예루살렘 교회에는 흉년이 오고 여기 안디옥에는 안 왔을까?

복음이 전 세계에 나가기 위해서는 유대의 선민 주의를 깨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유대교 이때 기독교가 갈라졌다.

그런데 기독교에 선민 주의가 생겨 오늘날 가톨릭이 생겼는데 로마교황청은 베드로의 묘지가 되어서 전 세계가 그곳으로 여행 가고 있다.

유대교의 선민 주의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안디옥의 제자들이 유대의 형제들이 부조하는 것은 성령의 예언을 들은 것이다적용을 한 것이다.

부조는 헬라어로 디아코니아이다

가난한 형제들을 구제하기 위한 건물을 뜻하는데 자손과 구제의 의미를 포함한 말로써 봉사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디아코노스’(집사)에서 나온 말이다

남는 것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중들고 고통분담을 했다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따온 공산주의 이론 이런 것으로 도운 것이 아니라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나누었다는 겁니다.

장신대 최진봉 교수의 논문을 읽었다

청지기는 재물의 논리를 아는 자이다.

청지기가 극단적으로 그렇다고 재물을 포기하고 배척하는 것이니라 재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자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한다.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 영접하리라고 한다

위험한 재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관리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한다. 

나누어주는 일은 소유물과 소유주가 소유지가 없는 형제자매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청지기 직과 기독교의 대표적은 것이 십일조라고 한다

십일조의 신앙고백이 없으면 힘대로 부조를 할 수 없다 

그러면 그것이 너무 중요하지만 어떻게 십일조를 하는 것 가능할까

우리가 십일조를 하게 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온 백성이 즐거우니 십일조가 저절로 쌓였다는 것이다

어떤 지도자가 즐겁게 해주는 지도자일까

풀어서 정리를 하면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섬겼고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명을 따랐고 최강의 예배를 회복했고 성경을 읽히는 지도자라고 한다

날마다 회개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하고 찬송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로 감사하고 사건에 대해 올바른 견해로 정확한 처방과 견해를 보여줄 때 십일조가 쌓인다고 한다. 

그런데 똑같은 본문에 엘리아십과 같이 근심하게 하는 지도자도 있다고 한다

원대 복귀해서 잠시 없는 사이에 십일조를 맡아서 관리하던 엘리아십이 대적 도비아와 혼인을 맺고 그에게 방까지 주었다고 한다

대제사장이 십일조를 맡았으니 얼마나 신뢰를 받던 사람이겠나?

집안 식구끼리 다 맡았으니 백성들이 딱 십일조를 안 하게 되었다 

금세 엘리아십이 맡으니 안 하게 되었는데  백성들이 지도자 한 사람에 좌우되는지 보여준다

"성도는 근심케 하던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가져야 한다

십일조는 신앙고백의 삶이다

땅의 소산으로 응답하는 예배 행위이기 때문이다.

전체의 삶을 드리는 성도의 경건이기 때문이다

신앙고백의 십일조를 신앙이 있을 때에만 각각 힘대로 작정해서 부조를 할 수 있다그래서 성령의 부조인 것이다.


(적용#2)

-십일조를 신앙고백으로 하나의무적으로 하나아예 안 하나

-나는 즐겁게 해주는 지도자인가? 근심케 하는 지도자인가?


3. 실행해야 한다.

"30절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서 이 부조를 예루살렘 교회로 보냈다

작정하고 실행하여 보내니라는 모두3인칭 복수형으로 안디옥교회의 전체 뜻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었는데 보여주기식이 아니다

전부 예루살렘을 도왔다는 것이다

처음에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했기 때문에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인 것이다

맡은 자는 십일조 집행을 잘 해야하는 것이다

믿는 자는 믿는 자를 도와야 한다 

교회가 교회 밖에 십일조를 했다는 것은 안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는 복음 증거가 먼저이고 교회안에서는 봉사와 사랑이 필요하다

구제가 복음 증거보다 우선시되면 안되고 교회 밖의 구제보다 앞설 수 없다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다 

신앙고백의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쓴다면 그것은 신앙고백이라기 보다는 자기의 선한 일로 열매를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근심케하는 지도자라도 십일조를 해야하는데 내 마음대로 쓴다는 것은 아닌 것이다

헌금을 사도가 아니라 장로에게 보냈다고 한다.

원칙적으로 여기서 멀었기 때문이다

조직체계를 갖추어서 시스템이 되었으며 제정은 장로들을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바나바가 사울을 앞서고 있었다 

헌금을 들고 가도 바나바는 사울을 안 만났어요! 공개하는 장로들만 만났다

그 당시에 베드로가 얼마나 대단한지 사울도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다

사울이 다소에서 10년 동안 있다가 낮아졌다 

그러니 "좀 더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안 만나준다고 상처받지 마시길 바란다

잔멸하던 사울이 어떤 대접도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히 베드로를 만날 생각을 못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사울이 낮아졌나?

부조하면서 베드로 만나고 과시했다면 지금의 사울은 없었다." 

어떻게 사회를 위해 부조를 할까?

교회가 건물을 가지지 않고 고등학교 건물을 쓰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했다

지금 예배를 못 드리고 있는데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면 좋은 명분일까? 그런데 말은 멋있는데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런 것들이 사회에 대한 부조는 아닌 것 같다

휘문성전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휘문은 일반고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질서를 지키고 덕을 세워야 한다

아무리 억울해도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일이 때문에 원칙을 지켜야 한다

팩트가 확진자가 700명이 되었기 때문에 사과하고 침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해서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비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될 때까지는 침묵해야 하고 법을 잘 지켜야 한다

믿음은 인내다

성령의 부조란 자발적인 봉사를 말하는 것이지만 자기 열심히 한 봉사는 안 한 것보다 못한 것이다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재물은 하나님과 비슷한 것이다(God: Gold)

그래서 우리는 기복으로 십일조를 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욕심으로 결정 안 한다

하나님께 늘 묻기 때문에 늘 십일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본인의 실수로 망하는 사람은 없다

나라의 정책이나 흉년으로 힘들어질 수 있는데 그때는 십일조 신앙으로 감사로 통과하는 것이다

신앙고백이 절대 맞는다

사회에 대한 부조로 원칙도 너무너무 잘 지킨다벌금도 잘 내야 한다

돈인가 하나님과의 겨룸이 매주 드려 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서든지 자신이 영육 간에 책임지는 태도로 한다늘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의 부조가 아니면 나의 의로 하기 때문에 자기 의로 구제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금만 환경이 나빠지면 남 탓하고 당연히 세상 법도 안 지킨다

신앙고백으로 십일조 하는 성도님들은 기쁨이 있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주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우리를 기쁘게 한 안디옥 교회가 이렇게 부조를 한 것이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통과되지 않게 위해 기도하는데 우리가 원칙을 안 지킨 기독교 때문에 안 좋게 비칠까 걱정된다

지금 어떤 교회도 인터뷰한 것만 가지고 모르겠지만 비 대면으로 하라고 했는데 대면 예배를 했다고 해서 고발당했다고 한다.

24명이 예배 드렸는데 온라인을 예배 드렸는데 고발하고 밥도 안 먹었는데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고 하고 맘 카페 회원들이 파주 시청 청와대 다 고발을 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폐쇄가 되었다 

차별 금지법도 되면 이렇게 우리가 고발당할 수 있는 것이다

고발하면 조사 들어가는 것이고 저는 그래서 우리는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지 않기 위해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본질이다

비 본질은 인내하고 참아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기본법을 지켜야 한다

이것도 이야기를 하면 십일조 하라고 했다고 비난만 하는 것이다 

차별 금지법이 뭔지도 모르고 우리들교회 설교를 듣고도 왜 하는 거냐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도 어떤 부목자님이 한번 회사에서 이것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했더니 동성애는 빼고 해야 한다는 결론을 들었다.

 

(적용#3)

-오늘은 십일조의 축복을 나누어 보셨으면 좋겠다

그 동안의 적용으로 축복을 나눌 때가 된 것 같다

여러분들이 십일조 신앙을 가지고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나누어 보시기바란다

저는 자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안 하시는 분들은 신앙고백을 해보셨으면 좋겠다.


<Epilogue>

1)  참 선지자의 성령의 예언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2)  각자 힘대로 작정을 한다.

3)  잘 실행해야 한다.

4)  흉년에 대한 해석이 잘 되어있어야 각자의 힘대로 부조하지만 그것은 십일조의 신앙 없이 하는 것은 자기 의로 하는 것은 생색이 난다.  

5)  십일조 하면서 나머지의 부조를 얼마나 잘 써야 하는지 십일조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망가지는 것은 순간이다.

6)  주님의 사랑으로 나누자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7)  앞날을 내다보는 은사가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점쟁이가 되고 만다.

8)  내가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은 이미 어떤 앞날을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9)  이미 우리의 처소는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10) 주님과의 만남이 확실치 않은 사람은 점쟁이를 따라가는 것이다.

11) 선지자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받으시는 고난과 후의 영광이다

12) 고난과 영광을 예언해야 한다

13) 분별을 잘 해야한다말씀을 읽고 나의 죄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을 찾으면 모든 예언의 완성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성령의 예언자가 되게 하신다.

14) 날마다 회개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하고 찬송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로 감사하고 사건에 대해 올바른 견해로 정확한 처방과 견해를 보여줄 때 십일조가 쌓인다고 한다. 

15)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했기 때문에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인 것이다

16) 세상에 대해서는 복음 증거가 먼저이고 교회안에서는 봉사와 사랑이 필요하다

17) 구제가 복음 증거보다 우선시되면 안되고 교회 밖의 구제보다 앞설 수 없다

18) 신앙고백의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쓴다면 그것은 신앙고백이라기 보다는 자기의 선한 일로 열매를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19) 때가 될 때까지는 침묵해야 하고 법을 잘 지켜야 한다

20) 믿음은 인내다 (영적 진실성의 결과가 인내다)

21) 성령의 부조란 자발적인 봉사를 말하는 것이지만 자기 열심히 한 봉사는 안 한 것보다 못한 것이다

22)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23) 재물은 하나님과 비슷한 것이다(God: Gold)

24) 그래서 우리는 기복으로 십일조를 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욕심으로 결정 안 한다

25) 하나님께 늘 묻기 때문에 늘 십일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본인의 실수로 망하는 사람은 없다

26) 나라의 정책이나 흉년으로 힘들어질 수 있는데 그때는 십일조 신앙으로 감사로 통과하는 것이다

27) 사회에 대한 부조로 원칙도 너무너무 잘 지킨다벌금(사회적 부조)도 잘 내야 한다

28) 돈인가 하나님인가의 겨룸이 매주 드려 지기 때문에 신앙고백으로 드려지면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않을 수가 없다

29) 어디서든지 자신이 영육 간에 책임지는 태도로 한다늘 생각하는 것이다

30) 이렇게 성령의 부조가 아니면 나의 의로 하기 때문에 자기 의로 구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31) 사울은 정오의 회심으로 확실한 믿음을 보여준다

32) 복음은 장차 받을 환란으로 미리 사전에 말씀 뜯고 대비하면서 환란이 닥쳐도 그럴 수 있고 있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3) 십일조는 신앙고백으로 어디서든지 영육간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인다

34) 사회에 대한 부조와 같은 비 본질은 인내하고 참아 내는 것이다

35)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과 같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은 사탄의 한 수다

36) God-Gold/ 재물은 모든 것으로 기복으로 드려지는 십일조는 신앙고백이 아니다

37)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매사 욕심이 없으며 실수와 실패가 없다.

38) 하나님은 날마다 신앙고백하는 사람들을 지켜 주신다

39) 자기 의로 하는 십일조는 교만으로 이어진다

40) 십일조(1/10)를 잘해야 십의 구조(9/10)도 잘 쓰게 되어 있다.

41) 성령의 그리스도인이니 성령의 부조를 하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말씀과 마음씀2020. 8. 22. 22:08

[우리들교회 2020816일 주일말씀 요약(사도행전11: 22~ 26/ 성령의 그리스도인)]



 

<사도행전 11:22-26>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Prologue>

주님 어찌하면 성령의 그리스도인이 이될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광복 75주년을 맞았다.

어둡던 이 땅에 밝아 옴에 따라 을사늑약이 1905년부터 시작해 40년만에 우리의 흙을 만졌다.

인생의 목적은 거룩인데 거룩한 빛이 우리나라에서 난다고 노랫말로 예언을 했다

우리나라가 소수의 나라인데 그 말대로 되었다.

제헌국회가 성령의 소수가 되어 자리를 잡았는데 안디옥교회처럼 성령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말씀 요약>

오늘 안디옥교인들처럼 이제 진정한 성령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성령의 그리스도인은


1.
좋은 소문이 나는 사람이다.
지금으로 보면 안디옥교회가 부자이고 스펙도 좋은 지역인데 무명의 성도가 안디옥에 주 예수를 전파해서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문이 예루살렘교회에 들렸다.

예루살렘교회보다는 그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 개개인들이 안디옥교회에 대한 소문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들었음을 강조한다.

어떤 교회가 부흥한다고 하면 교인들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사람사이에서 소문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한다.

남의 말을 지껄이는 것만큼 통쾌한 것은 없다고 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악한 사람, 선한 사람, 시끄러운 사람, 조용한 사람 모두 소문나게 되어 있다.

특히 성도는 세상에서 소문나기 가장 좋은 대상이다.

성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것 같이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고 한다.

때문에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 순간부터 세계와 천사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좋은 소문이 나니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다.

좋은 소문은 중요하다.

사람도 늘 좋은 소문이 나는 사람이 있고 분쟁의 소문이 나는 사람도 있다.

교회도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 좋은 구경거리가 그렇게 또 좋은 소문이 좋은 소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결국 이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문은 예수 잘 믿는 소문이다.

안디옥교회는 좋은 소문이 나서 좋은 소문에 걸맞게 가장 좋은 소문의 주인공 바나바를 파송 했다.

바나바는 출중한 교사, 선교사였고 바울의 동역자로서 초대교회에 아주 중심인물이었다.

무명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사도 베드로 앞에서 안디옥교회에 개척공신으로 자기들 이름을 올리기가 정말 황송 했을 것 같다.

저절로 남들이 보기에도 겸손한 자리가 겸손을 유지하기가 쉬운 것 같다.

바나바와 같은 고향 구부로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바나바가 이곳에 간 것은 아주 알맞은 파송이었던 것 같다.

예루살렘 교회도 믿음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바나바를 파송했다.

베드로가 안되는 것이 있었다고 했지만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는 것은 아주 큰 역할이었다.

(적용 #1)

-여러분은 가장 좋은 소문의 주인공이 예수 잘 믿는 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나?
-
그래서 좋은 구경거리가 되고 있나?

2.
믿음과 삶이 일치되는 사람이다.

바나바가 파송되서 가서 보니까 사도들이 전하지도 않고 대신 이 무명의 성도들이 전했는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라면 같은 성령이니까 무조건 기뻐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모든 사역자들은 다른 사역자에게 은혜 받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바나바가 간파했다.

바나바는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그들에게 많은 박해와 시험이 도래할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이 세워질 때 육이 무너지는 만큼 세워지는데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여전한 법칙이기도 하다.

화형에 처해지기도 하고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그런 일을 겪을 것인데 굳건한 마음으로 머물러 있으라는 것은 잘 붙어 있으라는 것이다.

안디옥교회에서 말씀에 예수께 과연 붙어 있기만 하면 안 들리다가도 어떤 기회에 들리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을 수없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붙어있기만 하라고 하는 것인데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확고부동한 마음으로 주를 의지해 나가라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씀을 서로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권고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다.

굳게 붙어 있는 것은 중요하다.

바나바가 이렇게 권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오늘 말씀처럼 그가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 모두 다 연동되는 이야기다.

굳이 나누면 착한 사람이 인격이라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영적으로 풍부한 은혜 믿음 쪽을 얘기한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바나바는 성품과 착한 인격과 믿음을 다 같이 갖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이라는 것이다.

성령충만이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믿음이 삶으로 증명되니까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 진다고 한다.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결국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억지로는 절대 안되는 일이 자기 죄를 보는 것이다.

또한 자기 죄 보는 흉내를 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적용 #2)

-여러분은 착하다는 소리를 듣나?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는 소리를 듣나?
-
둘다 다 듣나? 둘다 다 못 듣나? 성품인가? 믿음인가?

3.
오직 복음 때문에 동역자를 분별한다.


바나바는 안디옥의 이방인의 회심으로 왕성하게 교회가 성장하는 이 시점을 위해 사울이 준비된 사람이라고 딱 믿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도저히 사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완전히 이방인 생짜 안디옥교인들에게 사울은 꼭 필요한 사람이었고 사울에게 드디어 공식적인 사역의 기회가 오게 된 것이다

바나바는 자신의 돌봄으로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 지고 있는 그 때에 더 잘 가르칠 사람을 찾았다는 것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직 복음을 통하여 무엇이 더 유익한지만을 생각하는 바나바이다.

그곳에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원조를 구하거나 다른 지도자를 찾기 위해 묻지 않았다.

사울을 찾으러 갔다는 기록만 있다.

얼마나 간절하게 찾았는지 200킬로 떨어진 그곳에 직접 갔다.

왜 이렇게 직접 갔을까 생각해 보면 바나바도 이 큰 무리가 주께 더하자 홀로 목회를 할 수 없다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며 이것이 착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골라낸 사울이 너무너무 탁월해서 자기가 고른 사울로 인해서 바나바도 베드로도 자신의 자리를 사울에게 저절로 넘겨주게 되었다.

내가 팽 당할 것 때문에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내세우지 않는다.

이런 바나바를 하나님이 기억하셨다.

바나바처럼 오직 복음을 위해 동역자를 분별해야 한다.

안디옥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제 막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 부활, 승천, 보혜사 성령님의 보내심, 재림 등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는 좋은 교역자, 동역자, 좋은 성도들이 이루어낸 좋은 작품이 되어 전 세계 선교의 교두보로 우뚝 서게 되었다.

무명의 성도들이 전도를 했고 바나바가 파송되었고 바울과 바나바가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그들의 말을 잘 들은 성도들에 의해서 안디옥의 성도들은 비로소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간디가 말하기를 자기는 그리스도는 인정하고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 맞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그리스도인은 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처음에는 조롱하는 말로 썼는데 그들이 한결같으니까 나중에는 존경하는 말로 바뀌었다.

예수 믿으면 구별되게 살아야 된다.

지킬 것은 지키고 조심할 것은 조심하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적용 #3)  

사람을 분별할 때 오직 복음으로 하나? 내 유익으로 하나?

 

<Epilogue>

1)  성도는 세상에서 소문나기 좋은 대상이다.

2)  사람사이에서 소문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한다.

3)  남의 말을 지껄이는 것만큼 통쾌한 것은 없다고 했다.

4)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악한 사람, 선한 사람, 시끄러운 사람, 조용한 사람 모두 소문나게 되어 있다.

5)  특히 성도는 세상에서 소문나기 가장 좋은 대상이다.

6)  성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것 같이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고 한다.

7)  때문에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 순간부터 세계와 천사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8)  좋은 소문이 나니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다.

9)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세기와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10) 예수 믿으면서 혼자 살 수 없다

11) 좋은 소문은 중요하다.

12) 사람도 좋은 소문이 나는 사람이었고 분쟁이 나는 사람이 있으며 교회도 나라도 마찬가지다.

13)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문은 예수 잘 믿는 소문이다

14) 구보로 태생의 레위인이며 바울의 동역자인 바나바는 초대교회 공신이다

15) 굳건한 마음으로 머물러 있으라는 것은 잘 붙어 있으라는 것이다

16) 붙어 있기만 해라 수지맞는다고 하는데 붙어 있기만 해도 안 들리기도 해도 어떤 기회에 들리는 것은 수없이 있기에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17) 굳이 나누면 착한 사람이 인격이라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영적으로 풍부한 은혜 믿음 쪽을 얘기한다고 할 수 있다.

18) 배후에서 역사하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과시하면 무너지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으며 모든 것이 순간이다. 

19) 항상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20)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자기 죄를 잘 보는 것이다

21) 믿는 사람은 내용보다는 태도가 너무 중요한 것으로 믿음과 버금간다

22) 사울의 탁월함은 수많은 고난으로 이어지는데 사울은 자기 고향 유대인에게 배신자(예루살렘교회 산헤드린 공회)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잔멸자(스테반을 돌로 쳐 죽임)였다

23) 사람이 세워질 때 육이 무너지는 만큼 세워지는데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여전한 법칙이기도 하다.

24) 지키려면 힘써 나아가야 한다

25) 믿음이 삶으로 증명이 된 사람으로 인격-성품-믿음의 3박자가 300%가 된 바나바는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

26) 믿음이 없이는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니 살지 못 하는 것이다.

27) 내가 팽 당할 것 때문에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내세우지 않는다.

28) 내가 팽 당할 까봐 나보다 나은 사람을 베척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세우신다

29) 이 세상은 탁월함을 배척하는 사회다

30) 배척당하는 탁월함으로 인해 망조가 드는 것이다

31) 베드로는 대제사장 종인 말고의 귀를 자르는 등 쓰임 받은 것 만으로도 감사한다

32) 사람으로서는 그 많은 고난을 감당하지 못했지만 스데반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는 살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33) 스데반의 죽음이 사울의 뇌리에 박혀 스데반에게 빨리 가고 싶었을 것 같다

34) 세상으로 말하면 구경거리 아닌가? 믿는 사람이 아니고 안 믿는 사람은 손가락질할 것이다

35)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자리에 자기가 있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6) 안디옥의 불신자들인 세상 사람들이 처음엔 조롱조로 자중에는 존경조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37) 제자들을 크리스티아누스’(Christianus) ,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구별하기 위해 별명을 붙였을 것이다

38) 안디옥의 이방신자들이 유대교의 종파에 인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말 새로운 신앙으로 인지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39) 이 때로부터 유대교와 기독교로 나누어져서 유대교의 분파가 아닌 것이며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것이다

40) 로마의 군인들을 시저(Caesar)라고 불렀고 안디옥의 사람들을 이렇게 그들을 특징을 나타내었다 

41) 믿어도 성경을 제대로 읽고 양육을 받으면 삶이 구별될 수 있다

42) 베드로 시대였는데 사울이 1년간 가르치면서 혁혁한 공을 세우는 것이다

43) 말씀의 권위와 생기와 매력이 있는 것은 말씀을 듣고 적용을 했기 때문이다

44) 바울이 말씀으로 양육받고 세워지니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생기는 것이다

45) 그들은 흩어진 유대인이고 가난했고 학문도 부족했다

46) 안디옥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 

47) 교회 다니는 사람 중 그리스도인은 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48) 이들이 양육을 잘 받으니 이혼도 안 하고 용서도 잘하고 동성애도 안 하는데 구별이 되는 것으로 세상에서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49) 지킬 것은 지키고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50) 세상 사람이 예수를 어떻게 알겠나? 그래서 안디옥 교인들에게 붙여준 별명이 칭호가 되었다.

51) Christianus는 안디옥 교회의 칭호가 되었다

52) 요즘 기독교의 별명은 개독교라고 펌하 되고 있다.

53) 왕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나라를 의지하고 섬기니 쳐들어오게 하신다

54) 기도하면 사면초가 상대에 있다가도 하루아침에 수 많은 적들이 죽어서 유다를 건져 주시는 것을 본다.

55) 우리나라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10위권에 되었다

56) 믿는 우리가 울며 기도해야 한다사단이 괴롭히나? 사단의 참소를 주님 앞에 내놓읍시다 

57) 남 유다 왕들 다 산당을 패하지 못하다고 한다

58)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59) 믿는 우리들의 부족함으로 기독교가 폄하되고 있는 것이다

60)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그리스도인은 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

61) 예수 믿으면 구별되게 살아야 된다.

62) 지킬 것은 지키고 조심할 것은 조심하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63) 진리가 옳다고 해도 담는 그릇의 태도가 불손 하여 막말을 하면 안되는 것이니 형식도 중요한 것이다

64) 소명은 부르심이 먼저다

65) Loser처럼 있어도 하나님이 찾아 오신다

66) 내가 먼저 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찾아오심을 기다려야 한다

67)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이다

68) 복음을 위해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를 추구하는 사람이 바나바다

69) 욕심이 아니고 복음 때문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찾아 주신다

70) 바나바가 복음만 생각하니까 안디옥처럼 문화와 철학 등 지식이 드센 곳이라서 대처할 인물인 사울이 생각난다

71) 바나바는 이방선교의 획을 긋는 사람인 사울을 찾아낸다

72) 사울은 설교의 아비지이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지만 착하지는 않다

73) 오직 복음을 위해 동역자를 분별하는 바나바는 명실공히 자기보다 탁월한 사람을 발탁한 것이 탁월한 것이다

74) 복음 때문에 분별하고 조롱을 받아도 다음세대 믿음의 밑 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말씀과 마음씀2020. 8. 16. 13:36

[우리들교회 202089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11:19~21/ 성령의 소수)]



 

<사도행전>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Now those who had been scattered by the persecution in connection with Stephen traveled as far as Phoenicia, Cyprus and Antioch, telling the message only to Jews.)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Some of them, however, men from Cyprus and Cyrene, went to Antioch and began to speak to Greeks also, telling them the good news about the Lord Jesus.)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The Lord's hand was with them, and a great number of people believed and turned to the Lord.)

 

<Prologue>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小數가 되어서 인생이 슬픕니다성령의 소수가 되어서 남들을 섬길 수 있는 소수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소수의 인권이 온 나라를 도배하고 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게 소수인 것밖에 없다

팔복이 좁은 길의 복이다

성령의 변명은 세상에서 보기에는 찌질해 보인다

소수가 피해의식이 많으며 교만한 엘리트 소수도 있다

어떤 소수는 좋은 소수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성령의 소수가 될 때 가능하다

성령의 소수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말씀 요약>

 

1.   소수의 여전한 편견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베니게(레바논)-구보로(사이프러스)-인디옥(수리아/앗수르의 수도: 당시 로마제국의 세계 3번 째 큰 도시)


자 그때에는 지난 주일에 연장선상으로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고 성령이 내려오셨을 때라고 생각합니다생각해보니 이상합니다안디옥에 있는 흩어진 자들은 성령의 변명하고 있을 그때에 복음을 전하고 있을 거라고 하잖아요 이방인과의 만남인데 사도가 아닌 평신도들이 믿음이 좋은 건가 부정한 짐승을 먹고 이방인 집에 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을까큐티할 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나오느라 진도가 안 나갔어요전 예전에 모르고 큐티했어요 가르치려고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주님의 뜻을 알아야 살든 죽든 하지 않겠어요그런 것들을 보고 게 섰던 것 같아요성경은 성령의 글을 이기 때문에 원어를 안다고 잘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니에요. 성령 받고 나면 도움 되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이게 너무 이상해서 원어를 보니까 정말 한글 번역이 잘못된 것이라고요. "시간이라 가보다는 진실로, 확실히라는 뜻과 그러므로 그렇다면 이는 뜻의 원어로 되어 이제 그러므로"라는 뜻이에요 18절까지 베드로의 변명이 통해서 이방인에게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소문이 나지 않았겠어요?

그때에는 이제 그러므로 이방인인에게 주저 없이 선교하기 시작했다 이 말이에요한글 번역도 잘못된 것이 많아요잘못된 것도 알아서 묵상을 많이 했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신 것 같아요그러니까 이해가 확 되죠스데반의 선교로 밀려서 유대와 사마리아에 땅 끝인 이스라엘 이방지역 중에서 안디옥과 북쪽 지역으로 가서 전파했는데 안디옥은 시리아의 수도인데 로마 알렉산드리아의 근처 도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어요그 당시에 50만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도시 이겠어요학문이 발전했고 로마처럼 목욕탕처럼 향락 문화도 발전했고 다산을 기원하는 성행위를 대놓고 했고 동성애도 만연했죠이곳에는 2~5만 정도의 유대인이 살고 있을 거라고 해요유대인들이 들어가서 어디 가나 유대인들은 있었어요앗수르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에 망해서 여기저기 있어요이곳까지 복음이 전해진 것이죠복음이 전해졌는데 보니까 곳곳에 유대인들에게만 열심히 전했다고 합니다이방인들에게도 회개를 주셨다고 하면 이방 지역 유대인에게 전했다고 합니다한인들에게만 전도를 했다 이런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베드로의 편견으로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길게 설명하고 변명했음에도 그럼에도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다고 하는 거예요유대인의 개념은 자기들 외의 민족은 다 이방인이고 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동족에 대한 열심이 따라가지 못하는 거예요이 편견은 아무리 강조해도 그대로죠.

어떤 지파냐 하면서 뿌리가 깊어요그래서 모든 지파가 합세를 해서 베냐민 파의 씨를 말릴 뻔했어요유대인은 믿음을 빙자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하고 있는 거예요. "성령님은 편견을 다루고 계십니다."  지역감정 진영 논리를 나누어 보라고 했습니다한국교회에서 정치 진영 논리는 금물 이잖아요정말 많이 좋아지셨어요왜 이렇게 정치 이야기를 하냐 하면 안 된다고 말이 나오더라고요일원론인 거예요결코 분리가 안 돼요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 드려요나라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선지자 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앗수르를 섬겨 나라가 없어졌어요선지자가 왕에게 경고를 하는 거죠 하나님의 심판이니 바벨론에 가서 포로생활 70년 잘하라고 합니다애굽에게 사백 년 식민지 생활을 했으면서 애굽에게 도움을 구하면 된다고 선지자를 구덩이에 던지고 박해합니다말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그래도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전하라고 에스겔 선지자가 전하고 남아서 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고 끌려가서 돕는 다니엘이 있어 다행입니다. "지금이라도 예수님이 인생에 주인처럼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늦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복음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예전에는 제가 구체적으로 나누었어요여러분은 나라가 있으나 자유가 없는 북한을 보면 딴 나라 이야기처럼 보면 안 됩니다소수의 인권이라고 약자라고 여자라고 차별 받으니 남자가 되고 싶으면 성을 바꾸라고 그런 구조는 없는 겁니다우리들교회는 가정 중수와 말씀이 묵상이 핵심가치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은 가정과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법입니다저는 누구보다도 여성 목사로서 차별 받았지요그러나 성경의 역할이 있잖아요남자 목사들을 세우고자 하고 남편을 세우고자 하는 죽음의 복종을 하라고 해서 했어요우리들교회가 가부장적 사각지대입니까?

"수많은 가정이 살아나고 이혼이 없습니다이것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법을 지키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저는 이렇게 상상도 못 했잖아요. 이렇게 도리어 순종을 하니 이런 큰 교회에 리더가 되게 하셨어요흩어진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디 가든 소수였겠지요 그러나 전 세계를 뒤엎었어요그러나 그들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소수가 되었어요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고향 백성들 이잖아요그러니까 더욱 주님을 안 믿어요그들이 소수라도 돈이 많고 엘리트이고 이러다 보니까 이 천년 동안 믿지 않아요우리 옆에도 피해 소수 엘리트 소수의 편견은 대단합니다우리나라가 부정부패로 가난했는데 자유가 들어와서 이렇게 발전을 했어요. 중동의 레바논이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해방이 되었다가 자유를 누릴 자유가 없어서 부정부패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자유를 주어도 누릴 실력이 없으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적용 #1)

-내 속의 여전한 피해의식과 엘리트 의식으로 인한 편견을 무엇인가?

그래도 안 바뀐다성령이 말 하라니 말하는 것이다.

 

2.   무명의 극소수가 편견을 철폐한다

 

그들이 유대인에게만 전파했는데 헬라인에게 전파 했잖아요사실은 소수였겠지만 그 중에서 극소수의 사람이 이방인에게 주 예수를 전파했어요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이 생겼다는 거예요주 예수를 전한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고백입니다로마의 통치를 받는 그들은 목을 내놓은 거예요주 예수는 누구입니까 식민지 출신의 목수 아닙니까 목을 내놓고 전도해야 합니다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안디옥이 대단한 교회입니다교두보 역할을 합니다처음으로 이방인에게 넘어가서 된 교회가 안디옥교회입니다이 영광은 베드로가 얻어야 합니다안 간다고 하다가 성령의 역사를 두 눈으로 봤어요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면 땅끝까지 전해져 증인이 되어야 하잖아요흩어졌을 때도 안 갔어요그래도 안 갔어요이번에는 고넬료 집에 가서도 하나님이 설득했는데도 안 갔어요.


그러니까 무명의 몇명의 극소수가 유대의 경계를 넘어서 전도를 하는데도 베드로는 진도가 꽉 막혔어요저는요. "말씀에 의해서 계속해서 편견을 다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우리의 편견이 무섭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편견도 무섭드라고요여기는 완전 이방인 헬라 사람에게 전한 거에요유대를 넘어섰어요경계를 넘었어요그러니 개척하는 영광을 베드로가 놓쳤어요. 왜 거기가 땅끝이라는 적용을 못 하는 걸까요저는 그냥 베드로에 대해 묵상을 해보고 몇 사람을 묵상해보았어요원수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딴 데를 못 가는 거에요그것도 이해 갑니다안되는 일이었어요유대인들은 덮어놓고 될 것을 해야할 때가 있어요이제 몸에 익힌 것이 있죠히브리 파는 한번도 해외로 나아가지 않은 고향을 지키는 지파 에요베타성 선민의식이 쩔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굉장한 그거가 있었을 것 같아요. 베드로가 무식 하잖아요베드로가 하도 해도 안되니 바울 시대가 시작되죠우리는 늘 훌륭하다고 하면 적용이 안되잖아요 베드로 때문에 위로를 많이 받아요 저도 영어를 못하니 외국 가도 저와 상관이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앞으로 우리들교회 목사는 해외를 넘나드는 목사가 나오면 좋겠습니다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못해서 해외에서 못한 것도 많지만 한 것도 많아요한인교회에서만 가서 말씀 전하니까 영어를 잘하면 훨씬 더 지경이 넓어졌을 것 같아요제가 발음은 본토 발음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 땅끝의 선교 인제 알코올중독 남편 중독 가정 중수인 것이 맞아요이 당시에 로마시대 이잖아요얼마나 상태가 안 좋았던 상태에서 전 했을까요? 이 사람들이 완전히 받아들인 사람이 아니었어요전도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였어요정말 엘리트 에다가 쾌락이 하늘을 찔렀어요유대인들조차 베드로의 말을 안 듣잖아요헬라인들은 지적인 자부심이 하늘을 찔러요십자가를 수치스럽게 여겼어요 그러니 어떻게 받아들이겠어요우리끼리만 놀자 지역감정도 우리끼리 놀잖아요

 

쾌락의 끝에 동성애가 있는 거예요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이잖아요그런데 여자 목사가 감히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는 게 웃기지 않는 리플을 보았어요그런데 어떤 글을 읽었냐 하면 로마서의 구절을 그의 곁에 성 소수자가 있었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라는 글도 보았습니다로마를 향하여서 이런 글을 쓸 수 있겠어요해석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바울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바울이 성 소수자 친구가 있었으면 로마서가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성경을 부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바울을 넘어야 합니다좁은 길이에요이렇게 편견이 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거예요. 반복하지만 이 일을 우리들교회에서 해야 합니다." 확실히 목자 모임이 솔직하고 양육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성도들도 처음보다 많이 달라지셨어요말씀과 공동체에 밖에 없어요무명의 몇 사람이 한 편견을 철폐하고 안디옥의 교회를 세웠어요이방인을 무시했지만 그들과 헬라인과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했다고 합니다그들은 사도들처럼 복음부터 전한 것이 아닙니다말부터 해서 먼저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부터 했다는 거예요그들과는 이질감이 덜 느껴졌어요그들의 고향 언어를 십분 이해해서 말부터 텄어요그럴 때는 같은 고향이 좋아요정말 최고입니다이런 것들이 무서운 편견의 철폐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자기 확신은 문제지만 주님에 대한 확신은 확실한 무기입니다." 안디옥교회 개척자에 무명의 이름들을 올린 거예요.

 

(적용 #2)

-아무도 안 알아줘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신앙고백으로 살고 있나?


3.   주의 손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몇명의 극소수는 태생이 겸손해서 이름이 올라가면 안된다고 했을 겁니다일년이나 있었잖아요 .누가 사도가 기록 했잖아요이 사람들이 거절했다고 생각해요조금이라도 인정받는게 이 세상의 목적인데 이 사람들은 베드로 사도를 제치고 개척했다는 것은 송구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에요이름을 거론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 같아요이들은 믿음이 왜 이렇게 좋을까요환난 당하고 원통한 자가 주인공이라고 했는데이들은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그런 무명의 평신도들이 있네요자기를 낮춘 자에게 준 상은 무엇입니까세상은 안 알아줘도 주의 손이 함께 하셨잖아요"가장 큰 상은 하나님 자체 이잖아요무엇으로 나타났죠 수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 왔잖아요진영 논리의 끝은 잘 살자가 아니라 모두가 주께 돌아오자입니다."어떤 분은 그렇게 나누었어요지역감정은 인간의 편견으로 생겼다고 했는데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편견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이방 선교는 무명의 극소수에 의해 시작되었어요고넬료가 와서 무릎을 꿇고 하늘같이 추앙하는 그때에 안디옥 개척을 무명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돌렸어요고넬료도 이미 경외하는 자였잖아요그러나 지금은 20절의 헬라인은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큰 변화에요사도바울도 활동하기 전이에요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대단한 추앙을 받잖아요무명의 성도 몇 사람이 안디옥교회를 개척했다는 거예요. "자기 자리 잘 지키는 사람이 여전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들교회가 소수였고 시작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지금도 소수이고 있으면 있는 데로 수많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성령의 변명을 하시면서 오니까요 항상 몇 명의 소수가 차별 철폐했다고 합니다우리들교회 소수의 증인이 곳곳에서 증언을 했고 세례를 받았어요.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지만 큐티 간증을 통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방인에게 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무명의 성도들처럼 흩어진 성도 몇 사람이 주인공 이에요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성령의 소수처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줄 믿습니다가정과 회사가 살아날 줄 믿습니다."

"말씀에 기반해서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됩니다성령의 설득과 변명으로 많은 사람을 주께 인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말씀으로 내가 차별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오직 절대선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적용# 3)

-주의 손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나? 아니면 이 땅에서 이기고 이기려는 사람이 되려고 하나?

 

<Epilogue>

1)  성령의 소수는 소수의 여전한 편견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  여전한 피해의식과 그로 인한 소수가 엘리트가 되게 되면 그거를 당할 자가 없는 것이다

3)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하지 않고 무명의 극소수가 이름도 성도 없는 몇 명이 차별을 철폐한다

4)  나는 힘이 없으나 주의 손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이다 

5)  성령의 소수가 되어서 정말 모두를 변화시키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6)  성경은 성령의 글을 이기 때문에 원어를 안다고 잘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니다

7)  성령님은 편견을 다루고 계신다

8)  자기 확신은 문제지만 주님에 대한 확신은 확실한 무기다

9)  진영 논리의 끝은 잘 살자가 아니라 믿고 모두가 주께 돌아오자이다

10) 진영 논리는 상대를 이기려는 목적에 근거한 편견이다

11) 진영 논리에 갇히면 서로 죽이려고 한다

12) 말씀에 기반해서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된다

13) 성령의 설득과 변명으로 많은 사람을 주께 인도 할 수 있다

14) 말씀으로 내가 차별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5) 오직 절대선은 하나님 밖에 없다

16) 팔복이 좁은 길의 복이다

17) 가정에서도 인격이 아니라 역할로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다 (역할론)

18) 어디에서나 순종이 죽음에 이르는 순종이다

19) 흩어진 초대교회성도는 어디 가나 소수였다

20) 베드로에게 땅끝 선교지는 안디옥이었다  

21) 해외파 히브리인은 헬라어도 잘한다

22) 베드로는 배타적인 선민의식이 있었다

23) 쾌락의 끝에 동성애가 있는 것이다

24) 자기 확신은 교만이지만 주님에 대한 확신이 가장 큰 무기다

25) 섬김의 본을 가치관으로 끝까지 붙어 가면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신다

26)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루하루 살아가니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27) 성경은 내 이야기이고 우리들교회 이야기이다

28) 주의 손이 함께 한 사람은 생색이 올라오지 않는다

29)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면 누구에게 인정 받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30) 성령님의 설득과 변명이 많은 사람을 주의 손으로 주께 인도하는 것이다

31) 내가 차별당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차별하는 것을 알아야 길이 보인다

32) 차별은 외모와 스펙으로 남을 판단하는 악행이다

33) 정치인은 말하는 것은 달라도 원하는 것은 모두 권력인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말씀과 마음씀2020. 8. 7. 16:44

[우리들교회 202082일 주일말씀 요약(사도행정 11: 1~ 18/성령의 변명)]


 


<사도행전 11:1~18>


1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Prologue>

 

컬럼비아 대학 경제학박사인 초선여자의원이 상대 당이 자기에게 자기이야기를 듣지 않을 같다고 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변명하는 마음으로 팔까지 떨면서 국회 의정자유발언을 했다.

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고 상대당을 비난일색으로 도배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으로 설명하니 큐티하는 것처럼 성령의 변명이 되어 설득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변명에 대해 알아보겠다.

 

<말씀 요약>


오늘 성령의 변명은

1.
형제가 비난할 때 한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의 이방인의 회심이라는 사건은 교회 전체가 초미의 관심을 갖고 협력하여서 해결해야할 문제지만 그들의 회심 소식에 기뻐하기보다는 그들이 할례 받지 않았는데 왜 그들과 같이 음식을 먹었냐고 따지고 든다.

그래서 공회가 열렸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이방인들의 식탁에는 부정한 음식도 섞여 있을 것이라고 여겼고 자기들의 정결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 할례자의 식탁에 참여하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할례 받지 않고 개종하지 않은 이방인들을 교회로 데리고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자기들끼리 끼리끼리 모여서 거룩하게 살아야 하니까 너무 음식도 철저하게 먹고 너무 율법적이고 그렇다.

이런 것을 적용해보면 동성애자들도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면 기뻐해야 하는데 아니 왜 교회로 데리고 오냐 하는 교회도 있을 수 있다.

"디아크리노는 고백하다 분리하다는 단어다." 

금지 부정어와 함께 의심치 말고 가라고 고넬료에게 그랬다.

그런데 똑같은 단어가 2절에서 미완료 단어로 사용되었다.

반대하다-다투다-논쟁하다는 뜻과 더불어 비난하다는 의미까지 나타내는 완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비난을 한다는 뜻이다

예수 믿는 사람인데. 그런데 베드로가 얼마나 외로웠겠나?

그래서 팔복의 마지막 복이 박해라고 했다 

차별 금지법이 겉으로는 차별하지 말자!’ 이지만 속으로는 동성애를 차별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처럼 똑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별 금지법을 80%가 찬성하지만 반면 동성애를 찬성해야 한다고 하면 80%가 반대한다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성령 받고 돌아와도 안 기뻐하듯이 동성애자들이 돌아왔다고 해도 안 기뻐하는데 무조건 비난이 목적인 것이다

성별과 장애로 하는 차별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하며 개별적인 법이 있다.

23가지 포괄적 법은 성적 지향, 내가 원하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그런 것들을 마음대로 하게 해주는 것으로 그것을 법 속 곳곳에 숨겼다

지난주에 헌법재판관 출신이신 초원지기님께서 초원 지기 나눔에서 법조인들에게 동성애 옹호자나 동성혼을 끝까지 주장한다면 당신의 자녀가 동성애를 지지한다고 할 때 어떻게 하냐고 물으셨다 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법이 동성애 합법화 인식은 다 알고 있다.

법이 제정되면 해석 문제가 남는다.

포괄적 법에 있는 사상과 자유 여러 문제가 생긴다.

저는 법조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길 기도한다

내가 예수 믿고 나서 항상 격려 만 받으면 좋겠나?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항상 격려만 받으면 좋겠지만 내가 올바른 얘기하고 너무 힘든 결정을 했는데 아무도 나서 주지를 않는 것이다.

칭찬은커녕 베드로가 유다-욥바-가이샤라까지 순회 전도를 하고 왔는데 이방인 구원 사역에 이 천년 역사의 획을 긋는 장면이다.

고넬료 전도 사건은 성경의 4대사건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상황인 여기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확인된 역사적인 장면과 장소인데 같은 편끼리 비난이 오는 것이다.

시기 질투로 인해 사도들이 여기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동료들의 위로가 절실한 시점인데 비난을 먼저 하는 것이다 

 성경의 주제, 인생의 주제인 편견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베드로가 왕따가 되었다.

왕따가 되었을 때 잘 대처하라고 미리미리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부활을 보게 하셨다.

여기서 변명을 해야 하는 베드로를 보며 그것이 성령의 변명이 되어 수긍하게 될지를 보겠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의 반대도 충분히 예견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적용 #1)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왕따인가, 은따인가, 별따(별안간 왕따)인가?
-
아니면 여러분은 왕따를 시키고 있나?

2.
차례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함으로 베드로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하면서 원망하지 않고 차례로 설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베드로도 고넬료 집에 가기가 너무 싫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비난을 이해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당해 본 것만 설명할 수 있다.

안 당해 본 사람의 위로는 와 닿지 않는 것이 있다.

성령세례가 임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성령세례가 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가 쉽다.

성령세례가 임한 베드로는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는 뜻이다.

무너진 만큼만 사람을 분별하고 상담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공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친절이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을 때 마음을 녹여내는 힘이 있는 것이다.

주 안에서의 친절한 마음씨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인간 역사상에 나라와 나라간에 감정, 시누이와 동서간에 감정, 부모자식간의 감정 이게 골이 너무 깊은 사람들이 많다.

베드로도 이렇게 힘들게 갔다 왔는데 너무 서운했을 일이지만 자초지종을 차례로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을 했다.

성경 한 구절이 너무 귀한데 10장도 48절까지 길었는데 11장도 또 반복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반복할까?’ THINK 해봐야 한다.

편견이 너무 뿌리깊다는 것이다.

오늘 베드로의 설명은 변명 같지만 솔직한 간증으로 베드로가 한다.

지난번에는 일어난 일이었지만 베드로가 자기 입으로 간증을 한다.

자신도 너희 그 할례 파와 하나도 다름이 없는 가치관을 내가 가졌다는 것이다.

내가 이제 성령 받고 유대에서 전도하고 사마리아를 전도하고 에냐의 중풍병을 낮게 하고 죽은 다비다를 살리고 백정인 무두장이 집에 유숙했지만 거기까지인 것이다
베드로가 변명하는 것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집에 가기 싫었다고 하는데 그 편견은 정말 징하다.

자기가 그랬으니까 사도들도 똑같이 징할 것으로 생각하고 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이렇게 설득하신 것처럼 베드로도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러니까 깨끗하고 더러운 것의 차이는 하나님이 만져 주셨냐 아니냐에 있는 것인데 베드로와 고넬료는 사람의 생각은 들어올 틈이 전혀 없었고 둘 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만나게 된 것이다.

고넬료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도 구원 얻을 말씀이 필요하다.

의인도 성경 박사도 구원 얻을 말씀이 필요하다.

베드로도 엄청난 편견이 있었으며 죽일 듯이 집요하게 비난을 하는 그들에게 당당하게 말했다기보다는 나도 그랬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고 하면서 너희들 하고 같은 입장이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을 전도할 때 내가 안 믿었을 때 힘들었기 때문에 전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간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이고 필연의 시간이다.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성령은 베드로가 받은 성령과 고넬료 가정에 임한 성령이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말씀을 전한 것이다.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다고 이렇게 말을 화평의 복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고넬료와 그 일행에게 성령이 내려오시고 부어 주시고 우리와 성령을 받을 때와 똑같이 그들에게도 내리셨다고 얘기를 했다.

10장부터 고넬료 만난 간증을 보고 느낀 것은 정말 베드로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제 공회에 가서 나는 앉은뱅이도 고쳤고 중풍병자도 고치고 죽은 자들도 살렸다고 하면서 너희가 어떻게 나를 비난할 수 있냐고 이야기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다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게 해주신 것이다.

그딴 이야기는 하나도 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베드로와 스테반 바울의 설교를 보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얘기를 한결같이 하고 언제나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다.

간증을 하면서도 안 그런 척하면서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아픔을 드러내고 은혜 받았다고 하다 보니 교묘하게 자신을 내세울 수가 있는 유혹이 있는 것이다

곤고한 형태로 거기서 내가 이야기를 하면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가감하면서 부풀림이 있을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말못하는 사람이 없다.

변명이 많고 유혹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니까 일단 지나고 봐야 하는 것이고 말씀을 앞뒤로 차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
적용 #2)

-차례로 설명하여서 성령의 변명인 설득으로 바꾼 적이 있나?
-
간증할 때 가감한 적이 있나?


3.
하나님을 능히 막을 자가 없어서 통했다.

특별히 베드로는 여기서 내가 누구이기에 성령의 역사를 막을 수 있겠냐 자기는 하나님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베드로가 이렇게 겸손하게 성령의 변명을 하니까 이게 통해서 그 사람들이 수긍을 했다.

겸손하게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며 나도 그랬으니 내 변명을 잘 듣고 깨닫기를 바란다고 간증했을 때 그들이 변했고 가고 오는 세대에 18절은 이방 선교의 효시가 이제 되었다.

예수님을 저주해서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주님이 가시다가 돌아보시면서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다.

유대인에게 막히고 막힌 이방인의 선교가 바로 베드로 한 사람의 적용으로 뚝이 터졌다.

나는 늘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도 예수님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을 살리신 것처럼 베드로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류가 복을 받았다.

여러분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막힌 여러분이 복을 받고 교회가 복을 받고 목장이 복을 받고 나라가 복을 받을 줄 믿는다.

 
(
적용 #3)

-변명이 통한 적이 있나?

그리고 아무리 교회를 나와도 해결이 안되는 지역감정과 진영 논리를 나눠보시라.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안하기 때문에 우리들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입으로 나눠봐야 하고 시인을 하셔야 한다.

 

<Epilogue>

1)  성도에게는 화가 나도 기본적인 친절이 있어야 한다

2)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야단을 치면 수준을 높게 보는 것이다

3)  더럽다깨끗하다의 차이는 하나님이 만져 주셨냐 의 여부에 달려 있다

4)  당한 것이 있는 사람은 지금 당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5)  고정관념은 편견에 준한다

6)  팔복의 마지막 복이 박해라고 한다

7)  성령세례가 임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성령세례가 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가 쉽다.

8)  무너진 만큼만 사람을 분별하고 상담해 줄 수 있는 것이다.

9)  우리의 친절이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을 때 마음을 녹여내는 힘이 있는 것이다.

10) 주 안에서의 친절한 마음씨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11)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간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이고 필연의 시간이다.

12) 성령의 말씀으로 성령이 함께 하시기 위해서는 듣는 것이 말씀의 적용이다.

13) 성령의 변명은 형제가 비난할 때 차례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14) 여러분들이 싸울 때 가르치지 말고 설명해 보시기 바란다.

15) 하나님을 능히 막을 자가 없어서 변명이 통했다고 여러분의 변명이 통했으면 좋겠다

16) 하나님이 변호해 주시는 것! 자기의 부족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17) 성경을 보고 기도하면 주님이 앞으로의 일을 알려주실 많다.

18) 같이 가고 홀로 가고 결정해야 한다. 함께 사람이 있고 보낼 사람이 있는 것이다

19) 모르면 기도하고 진심으로 가르쳐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0) 말씀보고 진심으로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면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환경으로 보여주신다

21) 의인도 구원 얻을 말씀이 필요하다

22) ‘Get it beauty 대신 Get it QT’하자

23) 가감하는 말에 유혹을 받는다

24) 말씀을 차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25) 말씀이 들리는 곳에서는 창의성이 학벌이 없는 데서 나온다

26) 감사 자랑대회’ “사울아, 사울아 우째 니가 나를 핍박하노?’  -사울아, 사울아 뭣 땀시 느가 나를 징하게 핍박하고 그련다냐 잉?’

27) 설교가 거듭되어도 지역감정이 계속된다

28) 겸손하게 변명하며 상대방에게 나아가니 하나님이 변호해 주신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말씀과 마음씀2020. 8. 2. 10:08

[우리들교회 2020726일 주일말씀 요약(사도행전 10: 44~ 48/ 성령의 세례)]




<
사도행전 10:44-48>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Prologue>


고넬료 일행에게 가이사랴의 오순절이라 부르는 성령 강림이 이루어졌다.

성령이 부어졌으며 그야말로 성령이 내려오셨다.

그러면 어떤 문제도 게임 아웃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이방인이라는 특성에 맞게 임하신 성령 세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1.
말씀 중에 임하신 사건이다.

상상 속에 우상의 하나님을 부숴버리는 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이다.

구속사의 과정에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 위한 주님의 화목제로서의 죽어지는 헌신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는가 하는 것이 와 닿지를 않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내가 죽어지는 고통이 아니면 이게 알기가 어렵다.

주님의 십자가를 깨닫고 내가 벌레보다도 못한 죄인이라는 것을 이제 깨닫고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야 그때부터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돕는 것이다.

이것이 화평의 복음이고 이 복음을 들을 때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고 한다.

내려오신 이로 번역된 동사는 부정 과거가 사용되었는데 성령 강림이 갑자기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그렇게 유대인들은 기다리고 기다려서 받은 성령인데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는 이 성령이 순식간에 내려오셨다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내려오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령께서 말씀 속에서 충만하게 임재하신다.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말씀은 성령을 통해 역사하고 성령은 말씀 안에서 활동을 하신다.

십자가를 질 때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도우셔야 하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님이 말씀을 듣는 중에 내려오셨다.

그렇게 베드로를 설득하시던 하나님의 열심히 드디어 결실을 보신 것이다.

그 이방인 선교, 전도, 복음 전파가 드디어 그 결실을 보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성령이 내려와야 되는 것이다.

(적용 #1)  

-여러분은 말씀 듣는 중에 성령이 내려 오셨나?

주일설교 목장 예배 중에 오늘도 성령이 내려오시기를 소원한다.

-아니면 아직도 성령님이 굳건하게 좌정하고 계시나?

2.
편견을 철폐하신 사건이다.

성령이 내려오신 정도가 아니고 부어 주셨다.

이것은 위로부터 선물이 넘치도록 아낌없이 붓고 흘리고 쏟다 이므로 성령이 철철 홍수 지도록 내려오셨고 부어 주셨다.

특히 이 동사가 수동태로 써진 것은 이 일을 행하시는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할례 받은 신자는 유대인이고 먼저 믿은 자를 말한다.

안 믿는 자는 이방인이고 그들이 천이 여기는 자인데 고백도 안했는데 그냥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을 부어 주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만큼 이방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태어난 지 8일만에 생식기를 칼로 베는 할례를 행하므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전통과 율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유대인들이 지금 베드로와 유대인들이 너무 놀란 나머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편견이 우리 몸에 너무 배어 있어서 우리의 거룩을 가로막는 자장 큰 장애물인 것 같다.

계속 설교 되는 주제는 편견인데 이 편견을 깨트리는 것이 우리의 과정이고 거룩의 주제인 것 같다.

성령의 증언으로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화평의 복음을 전한 후에도 여전히 놀라는 베드로와 이 할례 받은 신자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은 베드로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설교를 했는데 그런데 자기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문제인 것 같다. 우리는 잘 생기고 예쁘면 착할 것 같고 똑똑하면 잘 믿을 것 같고 부자면 그냥 그 앞에 가면 고개가 숙여지고 하는 이런 것이 다 우리의 자연발생적인 본능인 것 같다

우리가 평소에 가장 분명한 진리라고 믿어왔던 일들도 사실은 극히 주관적인 편견과 아집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절대 진리는 하나님 말씀밖에 없다.

(적용 #2)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포기하지 못하는 편견은 무엇인가? 그래서 눈앞에서 일어난 변화나 기적을 믿지 못하는 일은 무엇인가?

3.
표적을 주신 사건이다.

방언이 하나님을 높이는 말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표현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언어가 사랑의 언어, 따뜻한 언어, 정결케 하는 언어로 바로 관계가 해결되는 언어이다.

베드로는 성령세례부터 받은 그들에게 물세례를 베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시고 죽으셨기에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생각해 볼 때 고넬료에게는 성령세례가 먼저 임했고 나중에 물세례를 받았다.

몸 된 교회의 일원인 것을 표하기 위해서 물 세례를 받아야 한다.

회개하기로 작정하고 교회에 들어오기로 작정한 자가 받는 것이 물세례이다.

주님과의 만남은 결혼이 공개적인 물세례라면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사랑의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고 그것이 유지되려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성령은 새로운 삶을 주시는 권능이고 평생에 걸친 변화의 과정을 이제 시작되게 하신다.

성령은 사도행전에 처음 오신 것이 아니고 창세전부터 계시고 오순절에 오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실 성령님 이시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은 물세례와 비교해서 불세례라고도 한다.

그래서 주로 이제 불같은 시험이 올 때 성령세례를 받기가 쉽다.

마지막 절에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간절히 청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베드로를 어부가 아닌 주의 사자로 생각하고 성령이 부어졌기에 성령의 사람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너무너무 성령 받은 사람끼리 너무 좋아서 간절히 청했다.

이것도 성령세례의 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적용 #3)

-내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어찌할 것 같은가?

-포괄적차별금지법이 차별을 편견을 철폐하는 것이 아니고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것이라는 것이 인식 되시나?

-% 인식되시고 몇% 안타깝나?

<Epilogue>

1)  상상 속의 우상(하늘님, 하느님, 한얼님, 옥황상제님)을 부숴버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2)  믿음은 들으면서 나는데 듣다 보니 성령이 임하시기도 하는 것이다

3)  내가 벌레보다 못한 존재임을 깨닫고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야 성령이 효과적으로 도우시는 것이다

4)  성령을 받기 전에는 능력 발휘가 안되는 것이다

5)  자기확신과 연약함 속에서 성령을 받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6)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영감으로 쓰였기에 십자가를 지워서 효과적으로 도와야 하기에 보혜사 성령님이기보다 진리의 성령님이 말씀 중에 내려 오셨다

7)  사소한 죄 된 속성에서 나오는 것이 편견이다

8)  방언은 하나님을 높이는 말로써 방언을 사모함은 성령이 임하심을 뜻한다

9)  온맘과 정성을 다해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절로 나온다

10)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11) 하나님을 높이는 언어는 따뜻한 언어, 사랑의 언어, 정결케 하는 언어, 관계가 회복되는 언어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언어다

12) 성삼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성자 하나님이 점처럼 겸손하게 오시어 십자가로 대속하시기까지 성령하나님의 효과적인 도우심이 임하신 것이다

13) 불 같은 시험이 불 세례같이 올 때 권능이 임하는 성령세례가 올 수 있다

14) 셩령님은 새로운 삶을 주시며 성령님은 인격적이고 초월적이어서 인간의 생각대로 임하지 않으신다

15) 성령의 세례가 임하면 가치관이 달라진다

16) 성적지향자들의 모임을 끼리끼리라고 하는 것이다

17) 순리를 역리로 바꾸면 세상이 뒤집어진다

18) 포괄금지법에 포함된 20가지 중에 성적지향, 성적정체성이란 미명 하에 동성애 차별금지조항도 조용히 집어 넣는 것이다

19) 남녀 외에 성이 있다는 것이 gender라는 것인데 포괄적 금지법이 통과되면 망국병으로 가는 지름길이 완성되는 것이다

20) 그래서 돌들이라도 소리지르라는 것이다

21) 성령님이 임하시면 게임 아웃이다

22) 나를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내가 죽어지는 고통이 아니면 이게 알기가 어렵다.

23) 성령께서 말씀 속에서 충만하게 임재하신다.

24) 왜냐하면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25) 말씀은 성령을 통해 역사하고 성령은 말씀 안에서 활동을 하신다.

26) 십자가를 질 때 성령께서 효과적으로 도우셔야 하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님이 말씀을 듣는 중에 내려오셨다.

27) 우리가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성령이 내려와야 되는 것이다.

28) 편견이 우리 몸에 너무 배어 있어서 우리의 거룩을 가로막는 자장 큰 장애물인 것 같다.

29) 우리가 평소에 가장 분명한 진리라고 믿어왔던 일들도 사실은 극히 주관적인 편견과 아집일 수 있다는 것이다.

30) 절대 진리는 하나님 말씀밖에 없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말씀과 마음씀2020. 7. 24. 10:05

[우리들교회 2020719일 주일말씀 요약 및 후기(사도행전 10:39~ 43/ 성령의 증언)]



 

<사도행전 10:39~43>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Prologue>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담을 허물어야 했다.

선민 의식을 버려야 했고 설득-소개-만남으로 깨달아서 드디어 화평의 복음을 증언하게 된 것이 10 43절까지의 내용이다

화평은 전쟁 같은 환경에서 죽어지고 가불처럼 낮아지고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고쳐져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화평이라고 했다.

그 복음을 전한 예수님이 전한 대로 살아야 예수님이 전한 복음이 진짜일 것이다

그러면 옆에서 본 사람들이 언행의 일치가 되는군하면서 진짜라고 증언을 해 줘야 되는 것이다

오늘은 성령의 증언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1.   성령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한다.

 

사도들을 비롯한 우리는 주님이 행하신 모든 일, 특별히 죽임 당하시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 사 나타내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한다.

여러분이 죽고 나서 여러분이 행한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하며 증언을 해준다면 여러분은 어떤 증언을 받을 것 같나?

그 일이 멀지 않았으며 그것이 내일 일지도 모른다

없어도 정말 줄 것만 있는 인생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이 걸리지만 수넴 여인처럼 집도 생기고 초원 지기로 높이셔서 나타나실 줄 믿는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그들이 나무에 메달아 죽였는데 사람이 범죄 해서 처형당할 경우에 시체를 나무에 달아 경계의 표본에 삼았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면서 십자가라는 표현이 아닌 나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저주였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저주 같아도 저주 같은 삶을 창조주 예수님이 먼저 살아 주신 것이며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이 땅에 이보다 더한 저주는 없다.

하나님의 지하운동을 쓰신 리처드 범 브란트 목사님은 루마니아 감옥에서 14년 동안 성경을 보다가 성경말씀에 두려워하지 말라365번이나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에 달려 있어도 성경에는 화평과 평화라는 단어가 400번이나 나오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365번의 날마다 두려움에 직면해도 화평으로 그 두려움을 덮어 주시는 줄 믿는다

두려움도 있지만 화평이 조금 더 많은 것이다

팔복의 말씀을 성령으로 깨닫지 못하면 화평이 없다. 

7번째 복이 화평이고 8번째 복이 박해라고 한다

그래서 유일하게 기뻐하게 즐거워하고 하라고 하며 박해를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하늘에서 너희의 삶의 크다고 한다 

박해는 완전한 복이 맞는 것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다르다

박해를 받을 수 있고 받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주 안에서 화평과 나무에 달리는 것은 같은 단어 같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것처럼 화평이 임하는 데 이것이 주님의 신비다

십자가 지고 내 환경에 순종하고 있으며 내 증언이 일파만파 퍼지게 된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지체들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이해해서 비유나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언했다.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처럼 시작하는데 내 인생을 통해 나무에 달린 것, 즉 수치와 죄악부터 증언하는 것이 증인의 태도다.

증인은 순교자 마르투스(martyr)와 어원이 같으며 이 언어의 뜻은 수면으로 돌멩이를 던졌을 때 그 파장이 계속 퍼져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십자가 지고 자기 부인을 하면서 내 환경에 순종하고 있으면 내 증언 한마디가 저절로 일파만파 퍼져서 증인 역할을 하게 된다.

주님의 증인이 되어 증언하려면 자기 환경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주셨는데 그렇게 마음대로 짜깁기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증인의 증언으로 써주시는 것이지 감추거나 과장하려고 하면 쓰실 수 없다.

이렇게 주님처럼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는 것처럼 사흘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성령의 증언은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 쓰도록 성령님이 도와 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나에게 적용하도록 해주는 것이 땅의 언어이고 성령의 언어다. 

죽임 당하는 이야기 솔직한 나눔이 매주일 울려 퍼진다. 지난주에 설교하신 목사님도 아내와 치고 받고 싸운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들 공동체에서 하니까 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다슬픈 이야기가 감사한 이야기로 되니 신비한 이야기가 되었다. 다 살아났으니까. 다 우리 이야기다. 이런 말씀이 안 들리게도 미녀 목사가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떠나기도 한다인생이 100% 죄인인데 말이다성령의 증언을 하려면 하나님의 언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날마다 죽자고 성경을 읽으니까 소통이 되어 제가 목회가 쉬워졌다. 땅의 언어로 풀어지니까 신기하게 부흥이 되고 있다.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다시 사흘 만에 살려 주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실패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내가 죽어지면 그 후에는 이런 영광이 있는 것이다.

제가 그렇지 않은가? 집사가 목사가 되어서 인도하고 있는데 학력이 없고 파출부를 해도 초원 지기가 되고 설교를 하는 것이 영광스러워 보이나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나는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적용 #1)

-여러분 옆에는 성령의 증인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성령의 증언을 해 줄 것 같나?
-
여러분은 주로 하늘의 언어를 쓰나,? 땅의 언어를 쓰나?
-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서 쓰나?
-
여러분은 근본적으로 두려움이 많은가? 그것보다 조금 화평이 더 많은가?

 

2.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우리가 할 수 있다.



부활의 예수님은 택하신 자에게만 보이게 되어있다.

특별히 오늘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자인 우리에게 실제적인 부활을 보이셨다

이런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분명한 증거들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실제적이라고 하면서 병 고치고 옥문에서 끌어내 주셨다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실제적인 부활을 증거하면서 주님이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음식 먹어 주셨다는 이야기를 첫 번째로 전하시는 데 이것을 부활의 징표라고 실제적으로 전한 것이다.

 
우리가 가장 즐거워하는 병 고침의 얘기는 금세 지나가버린다.

그런데 그런 얘기보다는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주님 얘기를 하는 것이 가장 실제적이고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 자체가 상급이고 즐거움이기에 목장이나 모임에서 주님 얘기를 하려면 나같은 죄인에게 나타나 주셨다고 감격해하면서 증언을 하게 된다.

나같은 죄인이 목장에 한명이라도 있으면 그 목장은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높은 것이다.

그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수없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것인데 목장이 재미없는 이유는 그 한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 아이들 이야기 부부 이야기 식구들 이야기를 처절하게 하면 어떤 슬픈 일도 다 기쁜 일로 변하는데 이것이 신비인 것이다.

다들 죽임 당하고 살려 주셨기 때문에 권능의 증인들이 많아서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여러분이 가난할 때는 부자가 되는 목표가 있으니까 열심히 성실히 살면서 그것을 믿음으로 착각을 한다.

그런데 먹고 살만 하면 이제 노예가 되고 더높 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비교가 되고 기쁨이 없어진다.

살면서 기쁜 일이 없다는 것이 비극이고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뭐하나? 기쁨이 없고 내가 왜 사나?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하는 것이다.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기쁨이 있고 월급이 400만원 되면 가장 기쁨이고 넘어가면서부터 기쁨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많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적용 #2)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인가?

기쁨의 종류가 이세상 것이면 잠시 후에 바뀌어 질 것이다.

-목장이 기쁨인가? 억지로 하나? 귀찮은가?

이것도 성령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나눠 보시고 심각하게 진단을 해보시라.

3.   심판을 전해야 한다.


주님과 같이 음식을 먹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주님을 봤기 때문에 이제 실제적인 전도를 명하시는 것이다.

목장에서 실제적으로 음식을 먹고 이제 이렇게 기쁨을 누렸으면 전도를 명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산 자와 죽은 자에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언하라고 하신다.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고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에게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이 능력을 주신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단순히 구원의 날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며 그날의 심판이 믿는 자들과는 상관이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주님 앞에서 진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국이야기보다 지옥이야기를 훨씬 많이 하셨다.

복보다 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마태복음 7 21절 이하를 보면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여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리니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가라주님이 그러셨다.

권능은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판이라는 것 자체가 매사에 자기 확신이 차 있는 것에 대한 것이며 그것이 이미 심판인데 자존 감하고 다른 것이다.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같은 말이며 일원론이므로 심판과 구원이 다른 말이 아니다.

그래서 심판의 말도 기쁘게 받아야 한다

성경 말씀을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은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지 그렇게 심판의 말이 아닌 것이며 그때그때 마다 적용이 다를 뿐인 것이다.

(적용 #3)

-여러분은 심판의 말 같아 보이는 공동체에 처방이 쉽나? 어렵나? 화가 나나?

 

4.   죄 사함의 은혜를 전해야 한다. 



죄사함을 받는 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이 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결국 멸망에 처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곧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전도를 해도 희생 이기만 하다면 오래 못하는데 그것은 생색이 나고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심판의 말은 누구나 너무나 싫어하는데 어떻게 전할 수가 있겠나?

죄사함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아주 죽을 노릇 이라서 금 수저들이 교양과 매너로 치장해도 기쁘기가 어렵다.

깨어져야 보배가 보이겠는데 금 그릇이 인간의 힘으로 못 무너뜨린다.

금 그릇이 튼튼하니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이 보배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그래서 당연히 교만하게 되는 법이다.

C.S. Lewis는 교만을 지옥뿌리에서 올라오는 최고의 악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서 음란 정욕 탐욕 시기 등의 수많은 죄는 벼룩에 불과한 아주 작은 죄에 불과하다고 하며 그래서 유대인의 죄가 제일 크다고 했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죄라고 한 것을 죄라고 안 하니 어떤 죄보다 최고의 죄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법으로 정하려고 한다

이 작은 죄를 지은 사람들은 여기 와서 회개가 빨리빨리 되는데 정말 금 그릇들이 말씀이 안 들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교회 밖에 없다.

금 그릇이 깨어져야 보배인 예수그리스도가 보이고 깨어지지 않으면 죄사함을 받을 수가 없으며 죄사함을 받지 않고는 성령의 증언을 할 수가 없다.

죄사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진도가 안 나가는 법이다.

왜 우리들교회가 죄 얘기를 많이 하냐고 하는데 죄사함은 모든 것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없으면 목장의 사람도 못 살리고 처방도 안되는 것이다

이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인데 그 문제가 80%를 차지한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당연히 전도할 수도 없다.

세상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고 관계의 문제가 해결 되야 성령의 증언을 할 수가 있다.

한마디로 하면 자기 죄를 보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역으로 성령의 증언을 할 때 관계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해결이 돼서 화평이 있게 되는 것이다.

본인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본인의 죄를 모르는 것이다.

아무리 모든 것을 치장하고 있어도 죄 사함을 모르니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교만이고 사람을 못 살리는 것이다

죄 사함을 받게 되면 나 같은 것이 벼룩 만도 못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음란한 사람은 빨리 주님을 알게 되는데 진짜 힘든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르는 것이며 한계 상황적인 고난이 이제 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고난은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금 그릇이 깨어지기가 어렵기에 이렇게 내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증언을 하게 되면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배운 걸로 해도 안 되는데 일 만 마디 방언보다 한마디 깨달은 말을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아무리 여기저기 가서 방언을 배워보아도 내 죄를 모르는 사람은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해결이 되는 것이고 내가 화평한 것으로 이것이 해결이 되는 것이다

죄 사함의 은혜는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깔려서 이렇게 이제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거고 모든 일들이 차례차례 해결되는 것이다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심판을 전하는 것도 내가 내 죄를 알아야 되는 일인 것이다.

언젠가 여러분이 행한 일이 증언을 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금 행위로 사람에게 잘 보이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스트레스일 것이다.

예수님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순교한 것이고 성도들 또한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증인이 되지 않고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없지만 택자들을 이 길을 걸어가게 되어있다.

 

(적용 #4)

-본질적인 최고의 악이 교만이라고 생각하는가? 음란, 폭력, 사기, 외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나?

-여러분은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하나? 겸손하다고 생각하나?

 

<Epilogue> 

1)  화평은 전쟁 같은 환경에서 죽어지고 가불처럼 낮아지고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고쳐져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화평이라고 했다.

2)  그 복음을 전한 예수님이 전한 대로 살아야 예수님이 전한 복음이 진짜일 것이다

3)  그러면 옆에서 본 사람들이 언행의 일치가 되는군하면서 진짜라고 증언을 해 줘야 되는 것이다

4)  그러니 내가 아무리 저주 같아도 저주 같은 삶을 창조주 예수님이 먼저 살아 주신 것이며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이 땅에 이보다 더한 저주는 없다.

5)  그러나 나무에 달려 있어도 성경에는 화평과 평화라는 단어가 400번이나 나오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365번의 날마다 두려움에 직면해도 화평으로 그 두려움을 덮어 주시는 줄 믿는다

6)  두려움도 있지만 화평이 조금 더 많은 것이다

7)  팔복의 말씀을 성령으로 깨닫지 못하면 화평이 없다. 

8)  7번째 복이 화평이고 8번째 복이 박해라고 한다

9)  주 안에서 화평과 나무에 달리는 것은 같은 단어 같다.

10) 하루하루가 새로운 것처럼 화평이 임하는 데 이것이 주님의 신비다

11) 십자가 지고 내 환경에 순종하고 있으며 내 증언이 일파만파 퍼지게 된다

12)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처럼 시작하는데 내 인생을 통해 나무에 달린 것, 즉 수치와 죄악부터 증언하는 것이 증인의 태도다.

13) 주님의 증인이 되어 증언하려면 자기 환경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14) 하나님께서 환경을 주셨는데 그렇게 마음대로 짜깁기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15) 예수님의 증인으로 증인의 증언으로 써주시는 것이지 감추거나 과장하려고 하면 쓰실 수 없다.

16) 이렇게 주님처럼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는 것처럼 사흘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17) 성령의 증언은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 쓰도록 성령님이 도와 주시는 것이다

18) 그것을 나에게 적용하도록 해주는 것이 땅의 언어이고 성령의 언어다. 

19)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다시 사흘 만에 살려 주신다.

20)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실패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21)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나는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22) 부활의 예수님은 택하신 자에게만 보이게 되어있다.

23) 특별히 오늘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자인 우리에게 실제적인 부활을 보이셨다

24) 이런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분명한 증거들이다.

25) 그런데 베드로는 실제적이라고 하면서 병 고치고 옥문에서 끌어내 주셨다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실제적인 부활을 증거하면서 주님이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음식 먹어 주셨다는 이야기를 첫 번째로 전하시는 데 이것을 부활의 징표라고 실제적으로 전한 것이다.

26) 우리가 가장 즐거워하는 병 고침의 얘기는 금세 지나가버린다.

27) 그런데 그런 얘기보다는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주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실제적이고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28) 주님 자체가 상급이고 즐거움이기에 목장이나 모임에서 주님 얘기를 하려면 나같은 죄인에게 나타나 주셨다고 감격해하면서 증언을 하게 된다.

29) 나같은 죄인이 목장에 한명이라도 있으면 그 목장은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높은 것이다.

30) 공동체에서 아이들 이야기 부부 이야기 식구들 이야기를 처절하게 하면 어떤 슬픈 일도 다 기쁜 일로 변하는데 이것이 신비인 것이다.

31) 다들 죽임 당하고 살려 주셨기 때문에 권능의 증인들이 많아서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32) 여러분이 가난할 때는 부자가 되는 목표가 있으니까 열심히 성실히 살면서 그것을 믿음으로 착각을 한다.

33) 그런데 먹고 살만 하면 이제 노예가 되고 더높 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비교가 되고 기쁨이 없어진다.

34) 살면서 기쁜 일이 없다는 것이 비극이고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35)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뭐하나? 기쁨이 없고 내가 왜 사나?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하는 것이다.

36)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기쁨이 있고 월급이 400만원 되면 가장 기쁨이고 넘어가면서부터 기쁨이 없다고 한다.

37) 우리가 생각하기에 많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38) 기쁨의 종류가 이세상 것이면 잠시 후에 바뀌어 질 것이다.

39) 주님과 같이 음식을 먹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주님을 봤기 때문에 이제 실제적인 전도를 명하시는 것이다.

40) 목장에서 실제적으로 음식을 먹고 이제 이렇게 기쁨을 누렸으면 전도를 명하시는 것이다.

41) 특별히 산 자와 죽은 자에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언하라고 하신다.

42)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고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에게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이 능력을 주신다.

43)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단순히 구원의 날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44) 물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며 그날의 심판이 믿는 자들과는 상관이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45) 문제는 과연 우리가 주님 앞에서 진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46) 하나님은 천국이야기보다 지옥이야기를 훨씬 많이 하셨다.

47) 권능은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48) 심판이라는 것 자체가 매사에 자기 확신이 차 있는 것에 대한 것이며 그것이 이미 심판인데 자존 감하고 다른 것이다.

49)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같은 말이며 일원론이므로 심판과 구원이 다른 말이 아니다.

50) 그래서 심판의 말도 기쁘게 받아야 한다

51) 성경 말씀을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은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지 그렇게 심판의 말이 아닌 것이며 그때그때 마다 적용이 다를 뿐인 것이다.

52) 죄사함을 받는 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이 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결국 멸망에 처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53)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곧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54) 그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55) 전도를 해도 희생 이기만 하다면 오래 못하는데 그것은 생색이 나고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56) 심판의 말은 누구나 너무나 싫어하는데 어떻게 전할 수가 있겠나?

57) 죄사함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아주 죽을 노릇 이라서 금 수저들이 교양과 매너로 치장해도 기쁘기가 어렵다.

58) 깨어져야 보배가 보이겠는데 금 그릇이 인간의 힘으로 못 무너뜨린다.

59) 금 그릇이 튼튼하니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이 보배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그래서 당연히 교만하게 되는 법이다.

60) C.S. Lewis는 교만을 지옥뿌리에서 올라오는 최고의 악이라고 한다.

61) 그에 비해서 음란 정욕 탐욕 시기 등의 수많은 죄는 벼룩에 불과한 아주 작은 죄에 불과하다고 하며 그래서 유대인의 죄가 제일 크다고 했다

62) 동성애는 하나님이 죄라고 한 것을 죄라고 안 하니 어떤 죄보다 최고의 죄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법으로 정하려고 한다

63) 금 그릇이 깨어져야 보배인 예수그리스도가 보이고 깨어지지 않으면 죄사함을 받을 수가 없으며 죄사함을 받지 않고는 성령의 증언을 할 수가 없다.

64) 죄사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진도가 안 나가는 법이다.

65) 왜 우리들교회가 죄 얘기를 많이 하냐고 하는데 죄사함은 모든 것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66) 이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인데 그 문제가 80%를 차지한다.

67)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68) 세상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고 관계의 문제가 해결 되야 성령의 증언을 할 수가 있다.

69) 한마디로 하면 자기 죄를 보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70) 역으로 성령의 증언을 할 때 관계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

71)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해결이 돼서 화평이 있게 되는 것이다.

72) 본인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본인의 죄를 모르는 것이다.

73) 아무리 모든 것을 치장하고 있어도 죄 사함을 모르니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교만이고 사람을 못 살리는 것이다.

74) 죄 사함을 받게 되면 나 같은 것이 벼룩 만도 못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75) 음란한 사람은 빨리 주님을 알게 되는데 진짜 힘든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76) 하나님이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르는 것이며 한계 상황적인 고난이 이제 오는 것이다.

77) 여러 가지 고난은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78) 금 그릇이 깨어지기가 어렵기에 이렇게 내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증언을 하게 되면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79) 내가 그렇게 배운 걸로 해도 안 되는데 일 만 마디 방언보다 한마디 깨달은 말을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80) 아무리 여기저기 가서 방언을 배워보아도 내 죄를 모르는 사람은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81)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해결이 되는 것이고 내가 화평한 것으로 이것이 해결이 되는 것이다

82) 죄 사함의 은혜는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깔려서 이렇게 이제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거고 모든 일들이 차례차례 해결되는 것이다

83)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심판을 전하는 것도 내가 내 죄를 알아야 되는 일인 것이다.

84) 언젠가 여러분이 행한 일이 증언을 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85) 지금 행위로 사람에게 잘 보이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스트레스일 것이다.

86) 예수님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순교한 것이고 성도들 또한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87) 성령의 증인이 되지 않고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없지만 택자들을 이 길을 걸어가게 되어있다.

88) 성령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한다.

89)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우리가 할 수 있다.

90) 심판을 전해야 한다

91) 좋은 말만 듣기 원하는 사람은 유치원생이다

92) 가장 중요한 죄사함의 은혜를 전해야 한다.

93) 자기확신에 차 있는 것에 심판이 임한다

94) 죄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95) 전도도 희생만 있으면 기쁨이 없다

96) 죄사함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죄다

97) 죄사함이 모든 것의 근본이다

98)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의 문제다(교만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99) 인생이 100%죄인인데 (1)이혼-(2)낙태-(3)동성애가 우리나라를 인구 절벽에 빠뜨리는 3총사다

100)            성령님의 권능을 입고 성령의 증인이 되어야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고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서 전하는 것이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곳곳에서 일어나게 하는 비결이다


l 나를 넘어뜨리는 것은 시험이 아니라 자기 확신과 교만이다 

 

<후기>

내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집 마련에 대한 희망이 있어 기쁨이 있으며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월급이 400만원이 되면 가장 큰 기쁨이고 연봉수준이 점점 올라가게 되면 400만원선을 넘어가면서부터 기쁨이 없다고 합니다. 명예도, 직위도 올라갈수록 그 기쁨을 당연히 여기며 무감각해 지며 하나님 자리로 올라가려가는 습성이 교만이고 죄 성임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니 할렐루야입니다. 주일성수를 안 하면 세상 악으로 흘러 떠내려 가게 된다고 하십니다. “권똥자”(권위 의식과 똥 고집과 자존심)가 과거의 제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살아서 기쁨이 없다면 삶이 허무 해지고 허탈한 것이 진리임을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서는 기쁨의 종류가 자꾸 바뀐다고 하십니다. 인생이 100%죄인인데 심판을 전하고자 하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 주시고 죽이고 살리는 능력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나의 교만함을 모르는 것이 내 죄를 모르는 것이라는 말씀에 찔림이 걸어 들어 옵니다. 아내가 내 교만함을 지적하면 즉각적인 자기합리화로 내 교만함을 방어하고자 하는 또 다른 악이 내게 있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C.S. Lewis가 통찰 한 바대로 교만이 지옥뿌리로부터 올라온 최고의 악이란 말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라는 찬송가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 죄를 인정하고 통회자복함으로 죄사함 받은 은혜를 절절히 간증하며 성령의 증인으로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말씀과 마음씀2020. 7. 15. 18:52

[우리들교회 2020712일 주일말씀 요약 및 후기(열왕기 하 5:9~ 19/ 어떻게 서 있습니까?/이성훈목사)]



 

<열왕기 하 5:9~19>

9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Go, wash yourself seven times in the Jordan, and your flesh will be restored and you will be cleansed.")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I thought that he would surely come out to me and stand and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his God, wave his hand over the spot and cure me of my leprosy.)

12 다메섹 강 아바나(Abana)와 바르발(Pharpar)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As surely as the LORD lives, whom I serve, I will not accept a thing.")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Rimmon)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Go in peace!)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Prologue>



오늘 본문을 보시면 나아만(Naaman)의 변화 가정을 보여주는 3가지로 보여주고 있다.

3종류의 서 있는 태도를 통해서 성령의 성전인 우리가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중심 잡고 잘 서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1.
자기 확신으로 서 있으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자기 확신이 깨어지지 않으면 분노할 수 밖에 없다

나아만(Naaman)이 엘리사(Elisha)의 문 앞에 서 있는 말들과 병거(chariots)를 통해서 힘을 과시함을 보여주고 있다.

자기 힘에 근거해서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엘리사가 직접 나와 서지 않고 사자를 대신 보냈다.

지금까지 고칠수 없었던 그런 병을 강에 가서 씻으라고 하는 별 것 아닌 처방을 내린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해서 분노를 표출한다.

높은 지위와 대단한 권력에 기반한 자기 확신에 가득 차서 서 있다 분노해서 떠난 나아만은 우리 인생의 한 면을 보여준다.

자기 확신이 크면 클수록, 자존심이 세면 셀수록 성령의 화평을 누리지 못하고 사건마다 분노하며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그날 아내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저는 결혼을 결심을 했다.

이후 엄청난 확신으로 아내를 밀어 부쳐 110일만에 결혼을 하였고, 사모가 되는 것을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당신은 사모를 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내 아내만 된다고 제 확신을 아내에게 주입을 시키면서 결혼을 했지만 제 힘으로 남편과 목회자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람에게도 교만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교만이었다.

아내 또한 사모의 역할을 하지 않아 생색과 분노가 나서 칠년 동안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까지 징그럽게 싸워서 이혼을 생각을 해서 이혼서류를 받아다가 아내에게 집어 던지기도 했지만 화평을 생각해서 미국생활이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유학을 갔지만 거기서도 너무 많이 싸워 정말 이혼을 결심하게 되어 아내는 아들과 함께 한국으로 떠났다.

몸으로 떠난 것은 아내였고 저는 몸은 남아 있었지만 마음으로 멀리멀리 떠나서 인생이 끝났기에 죽고 싶다고만 생각을 했다.

자기 확인에 가득 차서 교만하게 서 있다가 분노해서 하나님을 떠나 버린 것은 말씀 없는 삶의 결론이었다.

(
적용 #1)

-여러분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자기 확신은 무엇인가?
-
자기 확신을 가지고 어디에 써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
확신이 보이지 않아서 분노하며 떠났던 사건이 있었나?

2.
받은 은혜로 서 있으면 감사하게 된다.


분노하며 엘리사 집을 떠난 나아만은 지인들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그니 확신은 아니었지만 선지자의 말대로 나병이 깨끗이 낫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질병이라는 고난, 자기 확신이 깨지는 무시를 당하면서 억지로라도 말씀에 순종을 하니 하나님의 놀라운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목적을 이루었으니 그냥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나아만은 엘리사 앞에 서서 하나님이 여호와임을 고백을 하며 예물을 드리니 예수님도 나아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도 했다.


고난이 없었으면 낮아짐이 없을 것이고 낮아짐이 없으면 말씀을 듣지 않았을 것이며 말씀을 듣지 않으면 구원의 경험을 가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축복이다.

고난이야말로 최고의 복인 구원으로 인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고난이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결혼을 아내는 몸으로 저는 마음으로 떠난 후 체면이 중요하였기에 이혼하면 목회는 끝이었고 목회가 아니면 다른 인생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을 했다.

육적 자기 확신이 있었기에 부부싸움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한국으로 떠난 아내가 우리들교회를 가면서 말씀이 들리는 기적으로 인해 이혼에서 구원을 사명으로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라는 책을 읽은 일이라고 하였다.

분수령 적인 회개를 통해 살아난 아내가 같이 큐티를 하자며 큐티책을 저에게 보내 주었다.

처음에는 자존심 때문에 큐티를 같이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나아만의 적용이 저에게도 일어나서 같이 큐티를 하게 되니 아내가 구원 때문에 다시 미국으로 들어왔고, 유학생 가운데 우리들교회에서 온 사역자가 계셔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면접을 통해 우리들교회로 부목사로 왔지만 가정이 치료되는 경험을 하고도 여전히 육적인 자신의 확신에 빠져서 스스로 부자라고 옳다고 여기며 상대방만 탓하니 주신 사명으로 나가지 못하고 부부싸움에 여전히 갇혀 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는 사건이 있었지만 아내는 목자님의 권면으로 저는 사역자님들의 권면으로 잘 인도되었다

예루살렘족에서 갈릴리 족이 되지 않았더라면 자기 확신 감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
적용 #2)

-여러분이 떠나지 말아야 할 은혜의 자리는 어디인가?
-
주신 은혜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나?
-
예배의 자리로 잘 나오고 있나?

3.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있어야 사명으로 인도할 수 있다.

엘리사는 강한 표현(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As surely as the LORD lives, whom I serve, I will not accept a thing.")을 하면서 나아만의 감사를 거절하는 것은 나아만이 받은 은혜가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선물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나아만은 말씀으로 양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이해를 못한다.

엘리사가 하나님보다 사람의 이목을 생각하면서 사람 앞에 선 것처럼 했다면 예물을 거절하지 않았겠지만 선지자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려고 했기에 나아만의 구원을 위해서 분별하며 감사표시를 거절할 수 있었다.


엘리사의 거절로 나아만은 예물을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두 가지 흙과 용서를 구했으니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흙을 요청했고 이방인이기에 장군이기에 하나님께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엘리사는 눈높이에 맞게 나아만을 구원으로, 거룩으로, 사명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엘리사는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순종하려 했기에 나아만에 맞는 처방을 하며 구원의 사람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있어야 예배의 자리로 나올 수 있다

(
적용 #3)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서서 구원을 위해 분별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공동체 안에서 잘 물으며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길 잘 구하고 있나?

 

<Epilogue>

1)  자기 확신이 깨어지지 않으면 분노할 수 밖에 없다

2)  높은 지위와 대단한 권력에 기반한 자기 확신에 가득 차서 서 있다 분노해서 떠난 나아만(Naaman)은 우리 인생의 한 면을 보여준다.

3)  자기 확신이 크면 클수록, 자존심이 세면 셀수록 성령의 화평을 누리지 못하고 사건마다 분노하며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다.

4)  질병이라는 고난, 자기 확신이 깨지는 무시를 당하면서 억지로라도 말씀에 순종을 하니 하나님의 놀라운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5)  고난이 없었으면 낮아짐이 없을 것이고 낮아짐이 없으면 말씀을 듣지 않았을 것이며 말씀을 듣지 않으면 구원의 경험을 가질 수 없다.

6)  고난이야말로 최고의 복인 구원으로 인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고난이 축복인 것이다.

7)  육적 자기 확신이 있었기에 부부싸움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8)  예루살렘족에서 갈릴리 족이 되지 않았더라면 자기 확신 감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9)  엘리사는 눈높이에 맞게 나아만을 구원으로, 거룩으로, 사명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10) 엘리사는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순종하려 했기에 나아만에 맞는 처방을 하며 구원의 사람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11)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있어야 예배의 자리로 나올 수 있다

 

<후기>


자기 확신이 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음을 나아만(Naaman)을 통해 보여 주고 계십니다. 나아만(Naaman)이 마치 우리말로 나만”(me only)잘났다! 고 우월감에 빠져있던 과거의 제 자신과 오버랩 되어 회개가 됩니다.

성령의 자기비우심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신학적 통찰이라는 말씀이 은혜롭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성령공동체로 이루어 가신다고 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내주하고 계심을 일깨워 주십니다. 성자하나님의 성육신되심의 신비와 같은 신비이며 성령님과 교회의 연합이 진정한 건전한 성령공동체임을 믿고 누리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말씀과 마음씀2020. 7. 9. 12:25

[우리들교회 202075일 주일 말씀 요약 및 후기(사도행전 10: 36~38/성령의 화평)]




<사도행전 10:36~38>

36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You know the message God sent to the people of Israel, telling the good news of peace through Jesus Christ, who is Lord of all.)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You know what has happened throughout Judea, beginning in Galilee after the baptism that John preached--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how God anointed Jesus of Nazareth with the Holy Spirit and power, and how he went around doing good and healing all who were under the power of the devil, because God was with him.)

 

<Prologue>

주님 말만 들어도 화평, 성령의 화평을 가지라고 하신다.

요즘처럼 화평이 절실할 때가 없다

부부 간에, 집안에서 모두 화평하신가?

성령의 깨달음으로 와야 할 것이 화평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는데 군사훈련을 거치고 외모를 보지 않는 경지에 가는 깨달음이 와야 화평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되나 보다.

화평의 복음 기쁜 소식이니 오늘은 성령의 화평이 기쁜 소식이 되길 바라며 성령의 화평을 생각해 보겠다.

 

<말씀 요약>

1.   만유의 주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만유의 주되신 예수그리스도가 화평을 전하신다고 한다.

구약 선민 유대인에게 전한 말씀을 구약에서 선민인 유대인에게 전한 말씀을 이방인인 너희에게도 전하겠다고 베드로가 말했다

이방인과의 담을 허물 수 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에서 전 세계로 지나가는 길목으로 지나가는 중인 것이다.

온 세상 인류에게 복음으로 전할 때 피부로 와 닿는 것이 화평이다

이 세상은 화평을 갈등, 다툼, 전쟁이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느 때보다 평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창설된 것이 유엔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이후에도 평화로운 나날이 없었다

평화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은 인간의 죄와 탐욕 때문으로 따라서 이 세상은 화평이 있을 수 없다

성경에 보면 평화라는 말이 400회 나오는데 화평과 평화는 신약에는 "에이레네"(헬라어/그리스 평화의 여신) 구약에는 "샬롬"이라고 쓴다

성경에서 화평이란 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적대감이 없어진 상태라고 하며 그것을 이제 샬롬(히브리어), 평강, 평화라고 한다.

평강, 평화, 화평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선물이다.

번제로 죄를 태우고 속죄제로 회개하고 화목제를 통해 화목과 화평을 구하는데 죄사함이 없이는 화목과 화평이 없는 것이다  

회개하고 죄를 사해 주셔야 화목이 된다는 것이다

회개가 없이는 죄 사함이 없고 죄 사함이 없이는 화평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화평일뿐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은 선물이기에 하나님 자신이 먼저 시작을 하신다

그 선물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삼위의 하나님이 도우셔서 화평하게 된 것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백 프로 인간의 죄는 그럴듯한 환경으로 감춘다고 화평이 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 구할 것이 없다고 하셨다

자력으로 화평을 누릴 수 없다.

화평을 환경으로 누려보려고 보이게 안 보이게 악을 행하면서 바라던 환경을 만들었지만 음란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못 살 때도 동성애가 없었으며 북한도 10년 군 생활을 하니 분출구가 없어 동성애를 한다고 하는데 동성애를 하다 걸리면 총살이라고 하니 남한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이며 그 곳이야 말로 인간의 사각 지대다

남한은 하나님이 죄라고 하는 동성애를 합법화한다고 국회의원들이 법을 발의했다.

남한은 핍박도 없고 풍요 해지니 자발적으로 많은 국민이 우상을 숭배하는데 과연 누구의 죄가 더 클까?

그래서 우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미안해해야 하는데 그들에게 화평이란 어떤 단어일까?

우리가 생각할 때는 우리가 훨씬 더 화평할 것 같지만 바알(Baar)에 무릎 꿇지 않는 7천명이 북에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북한동포들이 훨씬 더 큰 고통을 겪고 그래서 훨씬 더 깊은 하늘의 평화를 맛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분단 70년인데 70년에 기막힌 박해 가운데 믿음을 지킨 그들 덕분에 옷깃을 더 여미게 된다

들리는 소문에 그들의 자녀가 곰배팔이든지 눈이 안 보이든지 어려서부터 약속을 했으면 반드시 보지도 않고 혼인을 시킨다는 것이다

그들끼리 불신 결혼은 상상이 안되는 것이다

남한은 풍요하고 교회도 많은데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어도 불신 결혼을 아무렇지 않게 예사로 한다.

로마 시절에 카타콤이란 지하 감옥에서 313년 동안 믿음을 지켰듯이 북한의 지하교회에 지체들도 믿음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동방의 예루살렘이었던 북한의 장대현교회와 산정현교회에 얼마나 많이 모였었는데 그들이 다 내려오지 못 했는데 어디로 갔겠나?

그들은 주기철 목사의 설교를 들었으며 주기철 목사의 후예들이 퍼지고 퍼져서 지금이 2012년 당시 북한의 지하교회 교인들이 7천명이 아니고 20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발각되면 총살인데 한 할머니 성도가 숨을 죽여가면서 기도하는 음성녹음을 여러분께 들려드리겠다

아바지여, 우리 교회가 다 무너졌습니다. 교회가 무너진 이때에 다시금 신령과 진리가 몸 된 교회가 살아나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순교가 일어났습니까? 이 십자가의 표가 하나가 되고 구원의 표가 되어 아바지, 이 민족을 구원하시고 순교의 피가 구원이 되어….”

이렇게 우리보다 훨씬 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평안은 우리는 알 수도 없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그들의 영혼을 적시고 그들의 평안은 깊이 묻힌 보배이기 때문에 그 보배를 캐내어 가져갈 자 누구랴 안심일세하는 평화인 것이다

70년을 저렇게 왔는데 순교자의 후손이라 다 살아있다고 한다

그들끼리 옛날에 카타콤의 믿음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70년이 지나도 무릎 꿇지 않는 7천 명이 북한에 있는 것이다.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의 평안은 하나님이 평강을 빌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알 수 없는 평안으로 하늘의 곡조가 흘러나와 그들의 영혼을 적신다

평안은 깊이 묻힌 보배이기 때문에 평화를 아무도 캐내어 가져갈 자가 없다.

왜 평화인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이루어질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기 때문에 순교자의 후손이 살아있다고 이야기하신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 안에 평화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웃과 다른사람과의 평화와 화평도 없는 것이다.

큰 교회 성가대와 사람이 평화와 평안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고통의 양이 클수록 화평의 크기가 큰 것이다

우린 자격도 없는데 이렇게 살고 죄만 짓고 있는 우리들인 것이다. 

그들의 기도도 통일을 앞당겨 주시길 바란다.

모든 화평의 근원은 만유의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믿는다.

 

(적용#1)

-여러분의 화평의 개념은 가정과 회사와 교회와 나라에서 전쟁없이 사는 것인가? 그곳에서 내가 죽어지는 것인가?

 

2.   갈릴리의 나사렛 예수로부터 시작한다. 

예수께서 화평의 복음을 갈릴리에서 전하기 시작하신다.

갈릴리는 어딘가? 솔로몬 시대에 건축자재인 목재(백향목과 잣나무)는 물론 건축기술까지 동원하며 도와준 두로 왕 히람(Hiram king od Trye)이 그 당시 필요했던 것은 음식물이었는데 대가로 쓸모 없는 변방경계지역의 땅인 산악지대 가불을 불하 했다.

그 지역은 서로 무가치 하므로 가불 땅’(the Land of Cabul)이라고 이름하였다

가불은 쓸모 없는 땅이었으며 가불은 서로에게 무가치한 것 같아도 약속의 땅이 였으며 경계에 있었지만 약속의 땅이고 가치를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약속의 땅이다. 

솔로몬 본인은 7중기도를 했건만 본인이 죄의 당사자가 되어 땅을 사고 팔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땅을 준 것이다.

솔로몬이 올바로 섬기기 원했다면 예배 드리기 전에 히람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해야 했다.

팟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동생 야곱(Jacob)에게 팔아 넘긴 에서(Esau)처럼 당장 버리고 싶은 무가치한 자녀와 아내를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다행히도 히람이 거절했다.

내가 살고 싶어서 여기에 사는 것이 아닌 것이며 은혜로 살아 온 것이다.

솔로몬이 이런 마음으로 성전을 지었기에 후에는 회개하며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며 전도서를 쓰고 갔다

서로가 보기에 무가치한 가불 땅에 예수님이 오셨고 갈릴리에서 변방 땅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화평은 내가 낮은 곳에 가는 것이다

큐티를 하면서 적용하는 것으로 나의 모든 가불 땅은 무가치 해 보이지만 끝까지 기다리면 보석까지 끼고 있는 약속의 땅이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갈릴리 땅이 흑암의 땅이라고 하는데 이 흑암과 사망의 땅에서 주님이 사역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목장에서 흑암에 앉은 자부터 사역이 시작됐다는 것인데 목장에서 그런 사람 살리면 날개를 달고 부흥이 되는 것이다.

흑암 중에 있던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니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땅이 된 것이다.

주님이 오신 곳이 버리고 싶은 무가치한 가불 땅인데 그 가불 땅, 갈릴리라는 돌덩어리가 금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히람은 화를 낸 게 아니라 오히려 18만 명분 임금에 해당하는 금 일백 이십만 달란트(120 talents of gold)를 솔로몬에게 보낸 것이다.

이런 히람 때문에 솔로몬은 하나님께 가는 길이 막힐 뻔했는데 히람은 친화력이 있어 예수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데 솔로몬은 이 사람하고 친한 거예요.

솔로몬에게 모든 답이 되어주는 사람이 히람인데 히람이야말로 화평케 하는 자 같지 않나?

그러기에 약속의 땅과 가불 땅 결론이 그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다.

무가치한 땅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무슨 차이가 있나

솔로몬은 다윗의 기도로 약속의 자녀로서 이처럼 조상의 기도는 중요한 것이며 택자는 이유가 없는 것이어서 결국 그렇게 회개하고 갔다.

주님은 바로 이런 가불땅에서 시작하신다.

솔로몬을 봐도 잘나서가 아니라 기다리니 가불이 갈릴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전파되게 하신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것이다

진정한 화평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으로 나는 간 곳이 없고 결론은 예수님이 한 것이다. 

SKY대학 나온 집사님이 자기 힘으로 해봐도 결국 예수님 밖에 답이 없는 것이다.

인권 법보다 하나님 법이 최상위에 있는데 하나님의 법을 버리면 후에는 인구 절벽이 되어 나라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이 법을 붙잡아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으로 붙잡아야 한다

솔로몬은 못하지만 누군가가 히람처럼 붙잡아 주길 기도한다.

그럼에도 저는 70년 북한교회 성도들에게도 이런 히람같은 지도자를 주셨으면 좋겠다.

(적용#2)

-내가 적용해야 하는 흑암과 사망의 땅 갈릴리는 결혼인가? 직장인가? 자녀인가? 공동체인가?

-무가치한 가불이 갈릴리가 되어 주님께 쓰임 받게 될 것을 믿나?

-제 설교가 감정에 호소하나? 말씀에 호소하나? 말씀에 찔림이 있나?

내 죄 보는 것은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것이다

3.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친다.

갈릴리에서 시작하시니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었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능력은 충분히 기름부음 받은 능력이었다.

공생애 기간 동안 모든 선한 일을 총칭하는 표현이지만 이어서 나오는 본문에서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는 것이 나온다

마귀에게 눌렸다는 단어가 두 번 나타났다는데 부자의 압제에 대해서 표현하는데 마귀하고 돈은 같은 단어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부자가 돈으로 압제하는데 예수님이 사람들을 거기에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안 되는 건 알아도 압제 당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마귀에게 압제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게 하는 것인데 부모 자식 부부 직장 이혼 재혼의 사연은 모두 돈과 음란이 섞이고 엮어져 있는 것임을 많이 보게 된다. 

화성연쇄살인 범인은 가책이 없는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그분한테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고 누구든 죄가 없나?

그런데 동성애자들의 논리가 논리적인 것인가? 합법화를 한다고 하는데 심각한 것이다.

어떤 곳도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땅은 한 톨의 땅도 없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해를 끼치니 죄이고 동성애는 해를 안 끼쳐서 죄가 아닌가

동성애가 법으로 인정되면 나라가 없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지금도 출산율이 0.8이다.

우리나라가 기독교인이 많으니 이것을 막아야 한다.

최고의 지성인들이 차별 금지법은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 분위기가 차별 금지법을 찬성하면 문명인이고 반대하면 야만인이라고 하는 추세인 시대에 살고 있다.

옛날에는 남자가 여자 있는 것을 자랑했는데 이게 20년 전 이야기이고 요즘에는 동성애 애인을 자랑하는 무서운 시대다.

마귀에게 눌린 자를 하나님이 고쳐 주시길 바란다

마귀에게 눌린 자중에 가장 힘든 자가 거짓에 눌린 자다.

거짓과 거짓말은 마귀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고 불안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불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자아상을 완전하게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거짓과 거짓말은 사탄의 중요한 사역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자아의 상처로 인한 증오를 덮고 있는 분노의 탈을 쓴 매너로 미소와 불끈 쥔 주먹을 비단 장갑으로 감싸고 있는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의 사악성을 그냥 끄집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위장에 대한 판독이 불가능하고 거짓을 조종하고 있는 마귀가 위장술의 도사 그리고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거짓이 사단 왕국 건설에 엄청난 기여를 하여 왔다

그들을 치료하는데 가장 오래 걸린다고 한다.

거짓을 판독한다는 것은 어려운데 이런 미묘하고 교활한 거짓은 평범하고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매사 침착하고 조리 있으며 중요한 자리에서 돈도 잘 보고 어떤 공동체 안에서도 원활하게 있기 때문에 그들의 거짓말은 대단한 게 아니라 법에 접촉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거짓이 사단의 왕국을 세우는데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심리학자들은 거짓으로 위장되어 있는 사람들을 정신질환자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타나는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주장하며 무조건 인정을 요구한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의 사람을 마귀에게 눌린 자라는 것이다

모두가 지금 거짓에 속아서 화평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예수 믿는 지하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공부도 잘 하겠나?

70년 동안 그들은 불신 결혼을 안 하고 있다

반면 잘 사는 남쪽의 우리는 마귀에게 눌려서 다른 마귀에게 눌린 자를 찾아가서 위로 받고 찾아가서 거짓의 사람들을 의식하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무조건적인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자기에게 거슬린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 들어주는 것인데 이것이 이렇게 마귀에게 눌린 자는 성령의 화평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성령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나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화평을 얻겠나

그러니 이제 성령의 화평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 땅에서의 화평이 아니라 성령의 화평이 거짓마귀에 눌린 자를 고치는 것이다

오늘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쳐 주신다고 하니까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화평이 없다는 것으로 죄 사함이 없으니 도저히 화평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죄 사함이 없는데 화목제를 드릴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이 맞는 것이다. 

동성애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것으로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동성애자가 제일 돌아오기 힘든 것을 안다

그래도 우리들 교회는 동성애자들 중에서 말씀으로 돌아온 지체들이 있다

한 사람만 오픈한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다 와서 오픈한다

혼자서 온 사람도 많이 있다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성령의 평화의 아니겠는가?

동성애자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도록 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Epilogue>


1) 만유의 주되신 예수그리스도가 화평을 전하신다고 한다.

2) 온 세상 인류에게 복음으로 전할 때 피부로 와 닿는 것이 화평이다

3) 이 세상은 화평을 갈등, 다툼, 전쟁이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4) 평화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화평이 없는 것이다.

5) 전쟁은 인간의 죄와 탐욕 때문으로 따라서 이 세상은 화평이 있을 수 없다

6) 성경에서 화평이란 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적대감이 없어진 상태라고 하며 그것을 이제 샬롬(히브리어), 평강, 평화라고 한다.

7) 평강, 평화, 화평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선물이다.

8) 번제로 죄를 태우고 속죄제로 회개하고 화목제를 통해 화목과 화평을 구하는데 죄사함이 없이는 화목과 화평이 없는 것이다 

9) 회개하고 죄를 사해 주셔야 화목이 된다는 것이다

10) 회개가 없이는 죄 사함이 없고 죄 사함이 없이는 화평이 없다는 것이다.

11) 만약에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화평일뿐이다

12)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은 선물이기에 하나님 자신이 먼저 시작을 하신다

13) 그 선물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삼위의 하나님이 도우셔서 화평하게 된 것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14) 따라서 백 프로 인간의 죄는 그럴듯한 환경으로 감춘다고 화평이 오는 것이 아니다.

15) 예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 구할 것이 없다고 하셨다

16) 자력으로 화평을 누릴 수 없다.

17) 화평을 환경으로 누려보려고 보이게 안 보이게 악을 행하면서 바라던 환경을 만들었지만 음란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8) 왜냐하면 북한동포들이 훨씬 더 큰 고통을 겪고 그래서 훨씬 더 깊은 하늘의 평화를 맛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19) 이렇게 우리보다 훨씬 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평안은 우리는 알 수도 없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그들의 영혼을 적시고 그들의 평안은 깊이 묻힌 보배이기 때문에 그 보배를 캐내어 가져갈 자 누구랴 안심일세하는 평화인 것이다

20)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의 평안은 하나님이 평강을 빌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알 수 없는 평안으로 하늘의 곡조가 흘러나와 그들의 영혼을 적신다

21) 평안은 깊이 묻힌 보배이기 때문에 평화를 아무도 캐내어 가져갈 자가 없다.

22) 왜 평화인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이루어질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23)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기 때문에 순교자의 후손이 살아있다고 이야기하신다.

24)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 안에 평화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웃과 다른 사람과의 평화와 화평도 없는 것이다.

25) 큰 교회 성가대와 사람이 평화와 평안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26) 고통의 양이 클수록 화평의 크기가 큰 것이다

27) 우린 자격도 없는데 이렇게 살고 죄만 짓고 있는 우리들인 것이다. 

28) 모든 화평의 근원은 만유의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믿는다.

29) 가불은 쓸모 없는 땅이었으며 가불은 서로에게 무가치한 것 같아도 약속의 땅이 였으며 경계에 있었지만 약속의 땅이고 가치를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약속의 땅이다. 

30) 팟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동생 야곱(Jacob)에게 팔아 넘긴 에서(Esau)처럼 당장 버리고 싶은 무가치한 자녀와 아내를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다행히도 히람이 거절했다.

31) 화평은 내가 낮은 곳에 가는 것이다

32) 큐티를 하면서 적용하는 것으로 나의 모든 가불 땅은 무가치 해 보이지만 끝까지 기다리면 보석까지 끼고 있는 약속의 땅이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33) 갈릴리 땅이 흑암의 땅이라고 하는데 이 흑암과 사망의 땅에서 주님이 사역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34) 목장에서 흑암에 앉은 자부터 사역이 시작됐다는 것인데 목장에서 그런 사람 살리면 날개를 달고 부흥이 되는 것이다.

35) 흑암 중에 있던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니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땅이 된 것이다.

36) 주님이 오신 곳이 버리고 싶은 무가치한 가불 땅인데 그 가불 땅, 갈릴리라는 돌덩어리가 금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37) 솔로몬은 다윗의 기도로 약속의 자녀로서 이처럼 조상의 기도는 중요한 것이며 택자는 이유가 없는 것이어서 결국 그렇게 회개하고 갔다.

38) 진정한 화평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으로 나는 간 곳이 없고 결론은 예수님이 한 것이다. 

39) 인권 법보다 하나님 법이 최상위에 있는데 하나님의 법을 버리면 후에는 인구 절벽이 되어 나라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40) 누군가 이 법을 붙잡아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으로 붙잡아야 한다

41) 내 죄 보는 것은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것이다

42) 마귀에게 눌렸다는 단어가 두 번 나타났다는데 부자의 압제에 대해서 표현하는데 마귀 하고 돈은 같은 단어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43) 부자가 돈으로 압제하는데 예수님이 사람들을 거기에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44) 구원의 확신은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45) 안 되는 건 알아도 압제 당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마귀에게 압제 당하고 있는 것이다.

46)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게 하는 것인데 부모 자식 부부 직장 이혼 재혼의 사연은 모두 돈과 음란이 섞이고 엮어져 있는 것임을 많이 보게 된다. 

47) 어떤 곳도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땅은 한 톨의 땅도 없는 것이다

48) 사이코패스는 해를 끼치니 죄이고 동성애는 해를 안 끼쳐서 죄가 아닌가

49) 동성애가 법으로 인정되면 나라가 없어질 수 있다.

50) 사회 분위기가 차별 금지법을 찬성하면 문명인이고 반대하면 야만인이라고 하는 추세인 시대에 살고 있다.

51)옛날에는 남자가 여자 있는 것을 자랑했는데 이게 20년 전 이야기이고 요즘에는 동성애 애인을 자랑하는 무서운 시대다.

52) 마귀에게 눌린 자중에 가장 힘든 자가 거짓에 눌린 자다.

53) 거짓과 거짓말은 마귀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고 불안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54) 거짓의 사람들은 불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55) 거짓의 사람들은 자아상을 완전하게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56) 거짓과 거짓말은 사탄의 중요한 사역이다

57) 거짓의 사람들은 자아의 상처로 인한 증오를 덮고 있는 분노의 탈을 쓴 매너로 미소와 불끈 쥔 주먹을 비단 장갑으로 감싸고 있는 것이다

58) 거짓의 사람들의 사악성을 그냥 끄집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59) 그 이유는 위장에 대한 판독이 불가능하고 거짓을 조종하고 있는 마귀가 위장술의 도사 그리고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60) 거짓이 사단 왕국 건설에 엄청난 기여를 하여 왔다

61) 거짓을 판독한다는 것은 어려운데 이런 미묘하고 교활한 거짓은 평범하고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62) 매사 침착하고 조리 있으며 중요한 자리에서 돈도 잘 보고 어떤 공동체 안에서도 원활하게 있기 때문에 그들의 거짓말은 대단한 게 아니라 법에 접촉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거짓이 사단의 왕국을 세우는데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63) 요즘 심리학자들은 거짓으로 위장되어 있는 사람들을 정신질환자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4) 그렇게 나타나는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주장하며 무조건 인정을 요구한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의 사람을 마귀에게 눌린 자라는 것이다

65) 모두가 지금 거짓에 속아서 화평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것이다 

66) 반면 잘 사는 남쪽의 우리는 마귀에게 눌려서 다른 마귀에게 눌린 자를 찾아가서 위로 받고 찾아가서 거짓의 사람들을 의식하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67) 자기에게 거슬린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 들어주는 것인데 이것이 이렇게 마귀에게 눌린 자는 성령의 화평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68) 성령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69) 이 땅에서의 화평이 아니라 성령의 화평이 거짓 마귀에 눌린 자를 고치는 것이다

70)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화평이 없다는 것으로 죄 사함이 없으니 도저히 화평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71) 죄 사함이 없는데 화목제를 드릴 수 없는 것이다.

72)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성령의 평화의 아니겠는가?

73) 동성애자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도록 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74) 만유의 주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75) 그리고 그것은 갈릴리의 나사렛예수로부터 시작한다.

76) 갈릴리 땅으로 낮아져야 한다

77) 거짓 아비에게 속한 우리 모두는 거짓의 사람들이라 눌려서 날마다 여기저기서 쾌락을 찾는 것이다.

78) 성령의 화평으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는 것이다

79) 오늘 북한의 동포를 생각하면서 찬송하면서 기도합시다

 

<후기>

만유의 주되신 예수그리스도가 화평을 전하신다고 하는데 온 세상 인류에게 복음으로 전할 때 피부로 와 닿는 것이 화평이며 이 세상은 화평을 갈등, 다툼, 전쟁이 없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평화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화평이 없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전쟁은 인간의 죄와 탐욕 때문으로 따라서 이 세상은 화평이 있을 수 없는 것인데 평강, 평화, 화평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시니 평강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최고의 선물임을 알게 하시니 할렐루야입니다

번제로 죄를 태우고 속죄제로 회개하고 화목제를 통해 화목과 화평을 구하는데 죄사함이 없이는 화목과 화평이 없는 것으로 회개하고 죄를 사해 주셔야 화목이 된다는 것이므로 회개가 없이는 죄 사함이 없고 죄 사함이 없이는 화평이 없다는 것임을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니 공자가 논어 편에서 일갈한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의 의미가 오버랩됩니다

풍요 속에서 잘 살고 있는 우리보다 훨씬 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의 평안은 우리는 알 수도 없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그들의 영혼을 적시고 그들의 평안은 깊이 묻힌 보배이기 때문에 그 보배를 캐내어 가져갈 자 누구랴 안심일세하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이고 평강이고 화평임을 일깨워 주시니 감사, 감사합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 안에 평화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웃과 다른 사람과의 평화와 화평도 없다고 하시니 늘 지옥을 살아 가나 봅니다.

화평은 내가 낮은 곳에 가는 것이고 내 죄를 보는 것은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하시니 날마다 내 죄를 보면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새 한 마리 값도 안되는 죄인 됨을 알게 됩니다

거짓의 사람들은 불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하시니 평소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혈기를 부리는 내 자신이 거짓의 사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세상은 ~다 죄다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니까 내 행위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통곡한 어떤 동성애자의 나눔에 체훌이 되며 가슴이 저며 옵니다.

우리 모두는 거짓 마귀에서 나온 자이므로 힘들면 다시 마귀를 찾는 악순환이 계속되니 성령을 안 받으면 어쩔 수 없이 거짓의 아비 마귀를 쫓아 다닐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이 느껴집니다.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성령의 평화라는 말씀이 은혜로운 오늘입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