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7. 24. 10:05

[우리들교회 2020719일 주일말씀 요약 및 후기(사도행전 10:39~ 43/ 성령의 증언)]



 

<사도행전 10:39~43>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Prologue>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담을 허물어야 했다.

선민 의식을 버려야 했고 설득-소개-만남으로 깨달아서 드디어 화평의 복음을 증언하게 된 것이 10 43절까지의 내용이다

화평은 전쟁 같은 환경에서 죽어지고 가불처럼 낮아지고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고쳐져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화평이라고 했다.

그 복음을 전한 예수님이 전한 대로 살아야 예수님이 전한 복음이 진짜일 것이다

그러면 옆에서 본 사람들이 언행의 일치가 되는군하면서 진짜라고 증언을 해 줘야 되는 것이다

오늘은 성령의 증언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1.   성령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한다.

 

사도들을 비롯한 우리는 주님이 행하신 모든 일, 특별히 죽임 당하시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 사 나타내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한다.

여러분이 죽고 나서 여러분이 행한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하며 증언을 해준다면 여러분은 어떤 증언을 받을 것 같나?

그 일이 멀지 않았으며 그것이 내일 일지도 모른다

없어도 정말 줄 것만 있는 인생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이 걸리지만 수넴 여인처럼 집도 생기고 초원 지기로 높이셔서 나타나실 줄 믿는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그들이 나무에 메달아 죽였는데 사람이 범죄 해서 처형당할 경우에 시체를 나무에 달아 경계의 표본에 삼았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면서 십자가라는 표현이 아닌 나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저주였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저주 같아도 저주 같은 삶을 창조주 예수님이 먼저 살아 주신 것이며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이 땅에 이보다 더한 저주는 없다.

하나님의 지하운동을 쓰신 리처드 범 브란트 목사님은 루마니아 감옥에서 14년 동안 성경을 보다가 성경말씀에 두려워하지 말라365번이나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에 달려 있어도 성경에는 화평과 평화라는 단어가 400번이나 나오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365번의 날마다 두려움에 직면해도 화평으로 그 두려움을 덮어 주시는 줄 믿는다

두려움도 있지만 화평이 조금 더 많은 것이다

팔복의 말씀을 성령으로 깨닫지 못하면 화평이 없다. 

7번째 복이 화평이고 8번째 복이 박해라고 한다

그래서 유일하게 기뻐하게 즐거워하고 하라고 하며 박해를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하늘에서 너희의 삶의 크다고 한다 

박해는 완전한 복이 맞는 것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다르다

박해를 받을 수 있고 받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주 안에서 화평과 나무에 달리는 것은 같은 단어 같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것처럼 화평이 임하는 데 이것이 주님의 신비다

십자가 지고 내 환경에 순종하고 있으며 내 증언이 일파만파 퍼지게 된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지체들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이해해서 비유나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언했다.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처럼 시작하는데 내 인생을 통해 나무에 달린 것, 즉 수치와 죄악부터 증언하는 것이 증인의 태도다.

증인은 순교자 마르투스(martyr)와 어원이 같으며 이 언어의 뜻은 수면으로 돌멩이를 던졌을 때 그 파장이 계속 퍼져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십자가 지고 자기 부인을 하면서 내 환경에 순종하고 있으면 내 증언 한마디가 저절로 일파만파 퍼져서 증인 역할을 하게 된다.

주님의 증인이 되어 증언하려면 자기 환경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주셨는데 그렇게 마음대로 짜깁기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증인의 증언으로 써주시는 것이지 감추거나 과장하려고 하면 쓰실 수 없다.

이렇게 주님처럼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는 것처럼 사흘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성령의 증언은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 쓰도록 성령님이 도와 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나에게 적용하도록 해주는 것이 땅의 언어이고 성령의 언어다. 

죽임 당하는 이야기 솔직한 나눔이 매주일 울려 퍼진다. 지난주에 설교하신 목사님도 아내와 치고 받고 싸운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들 공동체에서 하니까 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다슬픈 이야기가 감사한 이야기로 되니 신비한 이야기가 되었다. 다 살아났으니까. 다 우리 이야기다. 이런 말씀이 안 들리게도 미녀 목사가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떠나기도 한다인생이 100% 죄인인데 말이다성령의 증언을 하려면 하나님의 언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날마다 죽자고 성경을 읽으니까 소통이 되어 제가 목회가 쉬워졌다. 땅의 언어로 풀어지니까 신기하게 부흥이 되고 있다.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다시 사흘 만에 살려 주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실패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내가 죽어지면 그 후에는 이런 영광이 있는 것이다.

제가 그렇지 않은가? 집사가 목사가 되어서 인도하고 있는데 학력이 없고 파출부를 해도 초원 지기가 되고 설교를 하는 것이 영광스러워 보이나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나는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적용 #1)

-여러분 옆에는 성령의 증인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성령의 증언을 해 줄 것 같나?
-
여러분은 주로 하늘의 언어를 쓰나,? 땅의 언어를 쓰나?
-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서 쓰나?
-
여러분은 근본적으로 두려움이 많은가? 그것보다 조금 화평이 더 많은가?

 

2.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우리가 할 수 있다.



부활의 예수님은 택하신 자에게만 보이게 되어있다.

특별히 오늘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자인 우리에게 실제적인 부활을 보이셨다

이런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분명한 증거들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실제적이라고 하면서 병 고치고 옥문에서 끌어내 주셨다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실제적인 부활을 증거하면서 주님이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음식 먹어 주셨다는 이야기를 첫 번째로 전하시는 데 이것을 부활의 징표라고 실제적으로 전한 것이다.

 
우리가 가장 즐거워하는 병 고침의 얘기는 금세 지나가버린다.

그런데 그런 얘기보다는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주님 얘기를 하는 것이 가장 실제적이고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 자체가 상급이고 즐거움이기에 목장이나 모임에서 주님 얘기를 하려면 나같은 죄인에게 나타나 주셨다고 감격해하면서 증언을 하게 된다.

나같은 죄인이 목장에 한명이라도 있으면 그 목장은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높은 것이다.

그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수없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것인데 목장이 재미없는 이유는 그 한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 아이들 이야기 부부 이야기 식구들 이야기를 처절하게 하면 어떤 슬픈 일도 다 기쁜 일로 변하는데 이것이 신비인 것이다.

다들 죽임 당하고 살려 주셨기 때문에 권능의 증인들이 많아서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여러분이 가난할 때는 부자가 되는 목표가 있으니까 열심히 성실히 살면서 그것을 믿음으로 착각을 한다.

그런데 먹고 살만 하면 이제 노예가 되고 더높 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비교가 되고 기쁨이 없어진다.

살면서 기쁜 일이 없다는 것이 비극이고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뭐하나? 기쁨이 없고 내가 왜 사나?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하는 것이다.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기쁨이 있고 월급이 400만원 되면 가장 기쁨이고 넘어가면서부터 기쁨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많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적용 #2)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인가?

기쁨의 종류가 이세상 것이면 잠시 후에 바뀌어 질 것이다.

-목장이 기쁨인가? 억지로 하나? 귀찮은가?

이것도 성령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나눠 보시고 심각하게 진단을 해보시라.

3.   심판을 전해야 한다.


주님과 같이 음식을 먹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주님을 봤기 때문에 이제 실제적인 전도를 명하시는 것이다.

목장에서 실제적으로 음식을 먹고 이제 이렇게 기쁨을 누렸으면 전도를 명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산 자와 죽은 자에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언하라고 하신다.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고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에게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이 능력을 주신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단순히 구원의 날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며 그날의 심판이 믿는 자들과는 상관이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주님 앞에서 진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국이야기보다 지옥이야기를 훨씬 많이 하셨다.

복보다 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마태복음 7 21절 이하를 보면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여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리니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가라주님이 그러셨다.

권능은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판이라는 것 자체가 매사에 자기 확신이 차 있는 것에 대한 것이며 그것이 이미 심판인데 자존 감하고 다른 것이다.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같은 말이며 일원론이므로 심판과 구원이 다른 말이 아니다.

그래서 심판의 말도 기쁘게 받아야 한다

성경 말씀을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은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지 그렇게 심판의 말이 아닌 것이며 그때그때 마다 적용이 다를 뿐인 것이다.

(적용 #3)

-여러분은 심판의 말 같아 보이는 공동체에 처방이 쉽나? 어렵나? 화가 나나?

 

4.   죄 사함의 은혜를 전해야 한다. 



죄사함을 받는 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이 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결국 멸망에 처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곧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전도를 해도 희생 이기만 하다면 오래 못하는데 그것은 생색이 나고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심판의 말은 누구나 너무나 싫어하는데 어떻게 전할 수가 있겠나?

죄사함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아주 죽을 노릇 이라서 금 수저들이 교양과 매너로 치장해도 기쁘기가 어렵다.

깨어져야 보배가 보이겠는데 금 그릇이 인간의 힘으로 못 무너뜨린다.

금 그릇이 튼튼하니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이 보배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그래서 당연히 교만하게 되는 법이다.

C.S. Lewis는 교만을 지옥뿌리에서 올라오는 최고의 악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서 음란 정욕 탐욕 시기 등의 수많은 죄는 벼룩에 불과한 아주 작은 죄에 불과하다고 하며 그래서 유대인의 죄가 제일 크다고 했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죄라고 한 것을 죄라고 안 하니 어떤 죄보다 최고의 죄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법으로 정하려고 한다

이 작은 죄를 지은 사람들은 여기 와서 회개가 빨리빨리 되는데 정말 금 그릇들이 말씀이 안 들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교회 밖에 없다.

금 그릇이 깨어져야 보배인 예수그리스도가 보이고 깨어지지 않으면 죄사함을 받을 수가 없으며 죄사함을 받지 않고는 성령의 증언을 할 수가 없다.

죄사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진도가 안 나가는 법이다.

왜 우리들교회가 죄 얘기를 많이 하냐고 하는데 죄사함은 모든 것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없으면 목장의 사람도 못 살리고 처방도 안되는 것이다

이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인데 그 문제가 80%를 차지한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당연히 전도할 수도 없다.

세상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고 관계의 문제가 해결 되야 성령의 증언을 할 수가 있다.

한마디로 하면 자기 죄를 보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역으로 성령의 증언을 할 때 관계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해결이 돼서 화평이 있게 되는 것이다.

본인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본인의 죄를 모르는 것이다.

아무리 모든 것을 치장하고 있어도 죄 사함을 모르니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교만이고 사람을 못 살리는 것이다

죄 사함을 받게 되면 나 같은 것이 벼룩 만도 못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음란한 사람은 빨리 주님을 알게 되는데 진짜 힘든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르는 것이며 한계 상황적인 고난이 이제 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고난은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금 그릇이 깨어지기가 어렵기에 이렇게 내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증언을 하게 되면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배운 걸로 해도 안 되는데 일 만 마디 방언보다 한마디 깨달은 말을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아무리 여기저기 가서 방언을 배워보아도 내 죄를 모르는 사람은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해결이 되는 것이고 내가 화평한 것으로 이것이 해결이 되는 것이다

죄 사함의 은혜는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깔려서 이렇게 이제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거고 모든 일들이 차례차례 해결되는 것이다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심판을 전하는 것도 내가 내 죄를 알아야 되는 일인 것이다.

언젠가 여러분이 행한 일이 증언을 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금 행위로 사람에게 잘 보이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스트레스일 것이다.

예수님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순교한 것이고 성도들 또한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증인이 되지 않고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없지만 택자들을 이 길을 걸어가게 되어있다.

 

(적용 #4)

-본질적인 최고의 악이 교만이라고 생각하는가? 음란, 폭력, 사기, 외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나?

-여러분은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하나? 겸손하다고 생각하나?

 

<Epilogue> 

1)  화평은 전쟁 같은 환경에서 죽어지고 가불처럼 낮아지고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고쳐져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화평이라고 했다.

2)  그 복음을 전한 예수님이 전한 대로 살아야 예수님이 전한 복음이 진짜일 것이다

3)  그러면 옆에서 본 사람들이 언행의 일치가 되는군하면서 진짜라고 증언을 해 줘야 되는 것이다

4)  그러니 내가 아무리 저주 같아도 저주 같은 삶을 창조주 예수님이 먼저 살아 주신 것이며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이 땅에 이보다 더한 저주는 없다.

5)  그러나 나무에 달려 있어도 성경에는 화평과 평화라는 단어가 400번이나 나오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365번의 날마다 두려움에 직면해도 화평으로 그 두려움을 덮어 주시는 줄 믿는다

6)  두려움도 있지만 화평이 조금 더 많은 것이다

7)  팔복의 말씀을 성령으로 깨닫지 못하면 화평이 없다. 

8)  7번째 복이 화평이고 8번째 복이 박해라고 한다

9)  주 안에서 화평과 나무에 달리는 것은 같은 단어 같다.

10) 하루하루가 새로운 것처럼 화평이 임하는 데 이것이 주님의 신비다

11) 십자가 지고 내 환경에 순종하고 있으며 내 증언이 일파만파 퍼지게 된다

12)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처럼 시작하는데 내 인생을 통해 나무에 달린 것, 즉 수치와 죄악부터 증언하는 것이 증인의 태도다.

13) 주님의 증인이 되어 증언하려면 자기 환경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14) 하나님께서 환경을 주셨는데 그렇게 마음대로 짜깁기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15) 예수님의 증인으로 증인의 증언으로 써주시는 것이지 감추거나 과장하려고 하면 쓰실 수 없다.

16) 이렇게 주님처럼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는 것처럼 사흘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17) 성령의 증언은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 쓰도록 성령님이 도와 주시는 것이다

18) 그것을 나에게 적용하도록 해주는 것이 땅의 언어이고 성령의 언어다. 

19) 나무에 달려 잘 죽으면 하나님이 다시 사흘 만에 살려 주신다.

20)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실패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21)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나는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22) 부활의 예수님은 택하신 자에게만 보이게 되어있다.

23) 특별히 오늘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자인 우리에게 실제적인 부활을 보이셨다

24) 이런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분명한 증거들이다.

25) 그런데 베드로는 실제적이라고 하면서 병 고치고 옥문에서 끌어내 주셨다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실제적인 부활을 증거하면서 주님이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음식 먹어 주셨다는 이야기를 첫 번째로 전하시는 데 이것을 부활의 징표라고 실제적으로 전한 것이다.

26) 우리가 가장 즐거워하는 병 고침의 얘기는 금세 지나가버린다.

27) 그런데 그런 얘기보다는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주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실제적이고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28) 주님 자체가 상급이고 즐거움이기에 목장이나 모임에서 주님 얘기를 하려면 나같은 죄인에게 나타나 주셨다고 감격해하면서 증언을 하게 된다.

29) 나같은 죄인이 목장에 한명이라도 있으면 그 목장은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높은 것이다.

30) 공동체에서 아이들 이야기 부부 이야기 식구들 이야기를 처절하게 하면 어떤 슬픈 일도 다 기쁜 일로 변하는데 이것이 신비인 것이다.

31) 다들 죽임 당하고 살려 주셨기 때문에 권능의 증인들이 많아서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32) 여러분이 가난할 때는 부자가 되는 목표가 있으니까 열심히 성실히 살면서 그것을 믿음으로 착각을 한다.

33) 그런데 먹고 살만 하면 이제 노예가 되고 더높 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비교가 되고 기쁨이 없어진다.

34) 살면서 기쁜 일이 없다는 것이 비극이고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35)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뭐하나? 기쁨이 없고 내가 왜 사나?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하는 것이다.

36)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기쁨이 있고 월급이 400만원 되면 가장 기쁨이고 넘어가면서부터 기쁨이 없다고 한다.

37) 우리가 생각하기에 많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38) 기쁨의 종류가 이세상 것이면 잠시 후에 바뀌어 질 것이다.

39) 주님과 같이 음식을 먹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주님을 봤기 때문에 이제 실제적인 전도를 명하시는 것이다.

40) 목장에서 실제적으로 음식을 먹고 이제 이렇게 기쁨을 누렸으면 전도를 명하시는 것이다.

41) 특별히 산 자와 죽은 자에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언하라고 하신다.

42)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고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나에게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이 능력을 주신다.

43)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단순히 구원의 날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44) 물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며 그날의 심판이 믿는 자들과는 상관이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45) 문제는 과연 우리가 주님 앞에서 진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46) 하나님은 천국이야기보다 지옥이야기를 훨씬 많이 하셨다.

47) 권능은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48) 심판이라는 것 자체가 매사에 자기 확신이 차 있는 것에 대한 것이며 그것이 이미 심판인데 자존 감하고 다른 것이다.

49)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같은 말이며 일원론이므로 심판과 구원이 다른 말이 아니다.

50) 그래서 심판의 말도 기쁘게 받아야 한다

51) 성경 말씀을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은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지 그렇게 심판의 말이 아닌 것이며 그때그때 마다 적용이 다를 뿐인 것이다.

52) 죄사함을 받는 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이 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결국 멸망에 처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53)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곧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54) 그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55) 전도를 해도 희생 이기만 하다면 오래 못하는데 그것은 생색이 나고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56) 심판의 말은 누구나 너무나 싫어하는데 어떻게 전할 수가 있겠나?

57) 죄사함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아주 죽을 노릇 이라서 금 수저들이 교양과 매너로 치장해도 기쁘기가 어렵다.

58) 깨어져야 보배가 보이겠는데 금 그릇이 인간의 힘으로 못 무너뜨린다.

59) 금 그릇이 튼튼하니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이 보배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그래서 당연히 교만하게 되는 법이다.

60) C.S. Lewis는 교만을 지옥뿌리에서 올라오는 최고의 악이라고 한다.

61) 그에 비해서 음란 정욕 탐욕 시기 등의 수많은 죄는 벼룩에 불과한 아주 작은 죄에 불과하다고 하며 그래서 유대인의 죄가 제일 크다고 했다

62) 동성애는 하나님이 죄라고 한 것을 죄라고 안 하니 어떤 죄보다 최고의 죄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법으로 정하려고 한다

63) 금 그릇이 깨어져야 보배인 예수그리스도가 보이고 깨어지지 않으면 죄사함을 받을 수가 없으며 죄사함을 받지 않고는 성령의 증언을 할 수가 없다.

64) 죄사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진도가 안 나가는 법이다.

65) 왜 우리들교회가 죄 얘기를 많이 하냐고 하는데 죄사함은 모든 것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66) 이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인데 그 문제가 80%를 차지한다.

67)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68) 세상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고 관계의 문제가 해결 되야 성령의 증언을 할 수가 있다.

69) 한마디로 하면 자기 죄를 보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70) 역으로 성령의 증언을 할 때 관계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

71)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해결이 돼서 화평이 있게 되는 것이다.

72) 본인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본인의 죄를 모르는 것이다.

73) 아무리 모든 것을 치장하고 있어도 죄 사함을 모르니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교만이고 사람을 못 살리는 것이다.

74) 죄 사함을 받게 되면 나 같은 것이 벼룩 만도 못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75) 음란한 사람은 빨리 주님을 알게 되는데 진짜 힘든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76) 하나님이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르는 것이며 한계 상황적인 고난이 이제 오는 것이다.

77) 여러 가지 고난은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78) 금 그릇이 깨어지기가 어렵기에 이렇게 내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증언을 하게 되면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79) 내가 그렇게 배운 걸로 해도 안 되는데 일 만 마디 방언보다 한마디 깨달은 말을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80) 아무리 여기저기 가서 방언을 배워보아도 내 죄를 모르는 사람은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81) 상대방이 안 변해도 내가 해결이 되는 것이고 내가 화평한 것으로 이것이 해결이 되는 것이다

82) 죄 사함의 은혜는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깔려서 이렇게 이제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거고 모든 일들이 차례차례 해결되는 것이다

83)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심판을 전하는 것도 내가 내 죄를 알아야 되는 일인 것이다.

84) 언젠가 여러분이 행한 일이 증언을 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85) 지금 행위로 사람에게 잘 보이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스트레스일 것이다.

86) 예수님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순교한 것이고 성도들 또한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87) 성령의 증인이 되지 않고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없지만 택자들을 이 길을 걸어가게 되어있다.

88) 성령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한다.

89) 주님 모시고 음식 먹은 우리가 할 수 있다.

90) 심판을 전해야 한다

91) 좋은 말만 듣기 원하는 사람은 유치원생이다

92) 가장 중요한 죄사함의 은혜를 전해야 한다.

93) 자기확신에 차 있는 것에 심판이 임한다

94) 죄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95) 전도도 희생만 있으면 기쁨이 없다

96) 죄사함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죄다

97) 죄사함이 모든 것의 근본이다

98)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의 문제다(교만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99) 인생이 100%죄인인데 (1)이혼-(2)낙태-(3)동성애가 우리나라를 인구 절벽에 빠뜨리는 3총사다

100)            성령님의 권능을 입고 성령의 증인이 되어야 성령의 증언을 할 수 있고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서 전하는 것이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곳곳에서 일어나게 하는 비결이다


l 나를 넘어뜨리는 것은 시험이 아니라 자기 확신과 교만이다 

 

<후기>

내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집 마련에 대한 희망이 있어 기쁨이 있으며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월급이 400만원이 되면 가장 큰 기쁨이고 연봉수준이 점점 올라가게 되면 400만원선을 넘어가면서부터 기쁨이 없다고 합니다. 명예도, 직위도 올라갈수록 그 기쁨을 당연히 여기며 무감각해 지며 하나님 자리로 올라가려가는 습성이 교만이고 죄 성임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니 할렐루야입니다. 주일성수를 안 하면 세상 악으로 흘러 떠내려 가게 된다고 하십니다. “권똥자”(권위 의식과 똥 고집과 자존심)가 과거의 제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살아서 기쁨이 없다면 삶이 허무 해지고 허탈한 것이 진리임을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서는 기쁨의 종류가 자꾸 바뀐다고 하십니다. 인생이 100%죄인인데 심판을 전하고자 하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 주시고 죽이고 살리는 능력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나의 교만함을 모르는 것이 내 죄를 모르는 것이라는 말씀에 찔림이 걸어 들어 옵니다. 아내가 내 교만함을 지적하면 즉각적인 자기합리화로 내 교만함을 방어하고자 하는 또 다른 악이 내게 있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C.S. Lewis가 통찰 한 바대로 교만이 지옥뿌리로부터 올라온 최고의 악이란 말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라는 찬송가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 죄를 인정하고 통회자복함으로 죄사함 받은 은혜를 절절히 간증하며 성령의 증인으로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