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8. 7. 16:44

[우리들교회 202082일 주일말씀 요약(사도행정 11: 1~ 18/성령의 변명)]


 


<사도행전 11:1~18>


1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Prologue>

 

컬럼비아 대학 경제학박사인 초선여자의원이 상대 당이 자기에게 자기이야기를 듣지 않을 같다고 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변명하는 마음으로 팔까지 떨면서 국회 의정자유발언을 했다.

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고 상대당을 비난일색으로 도배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으로 설명하니 큐티하는 것처럼 성령의 변명이 되어 설득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변명에 대해 알아보겠다.

 

<말씀 요약>


오늘 성령의 변명은

1.
형제가 비난할 때 한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의 이방인의 회심이라는 사건은 교회 전체가 초미의 관심을 갖고 협력하여서 해결해야할 문제지만 그들의 회심 소식에 기뻐하기보다는 그들이 할례 받지 않았는데 왜 그들과 같이 음식을 먹었냐고 따지고 든다.

그래서 공회가 열렸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이방인들의 식탁에는 부정한 음식도 섞여 있을 것이라고 여겼고 자기들의 정결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 할례자의 식탁에 참여하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할례 받지 않고 개종하지 않은 이방인들을 교회로 데리고 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는 자기들끼리 끼리끼리 모여서 거룩하게 살아야 하니까 너무 음식도 철저하게 먹고 너무 율법적이고 그렇다.

이런 것을 적용해보면 동성애자들도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면 기뻐해야 하는데 아니 왜 교회로 데리고 오냐 하는 교회도 있을 수 있다.

"디아크리노는 고백하다 분리하다는 단어다." 

금지 부정어와 함께 의심치 말고 가라고 고넬료에게 그랬다.

그런데 똑같은 단어가 2절에서 미완료 단어로 사용되었다.

반대하다-다투다-논쟁하다는 뜻과 더불어 비난하다는 의미까지 나타내는 완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비난을 한다는 뜻이다

예수 믿는 사람인데. 그런데 베드로가 얼마나 외로웠겠나?

그래서 팔복의 마지막 복이 박해라고 했다 

차별 금지법이 겉으로는 차별하지 말자!’ 이지만 속으로는 동성애를 차별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처럼 똑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별 금지법을 80%가 찬성하지만 반면 동성애를 찬성해야 한다고 하면 80%가 반대한다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성령 받고 돌아와도 안 기뻐하듯이 동성애자들이 돌아왔다고 해도 안 기뻐하는데 무조건 비난이 목적인 것이다

성별과 장애로 하는 차별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하며 개별적인 법이 있다.

23가지 포괄적 법은 성적 지향, 내가 원하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그런 것들을 마음대로 하게 해주는 것으로 그것을 법 속 곳곳에 숨겼다

지난주에 헌법재판관 출신이신 초원지기님께서 초원 지기 나눔에서 법조인들에게 동성애 옹호자나 동성혼을 끝까지 주장한다면 당신의 자녀가 동성애를 지지한다고 할 때 어떻게 하냐고 물으셨다 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법이 동성애 합법화 인식은 다 알고 있다.

법이 제정되면 해석 문제가 남는다.

포괄적 법에 있는 사상과 자유 여러 문제가 생긴다.

저는 법조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길 기도한다

내가 예수 믿고 나서 항상 격려 만 받으면 좋겠나?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항상 격려만 받으면 좋겠지만 내가 올바른 얘기하고 너무 힘든 결정을 했는데 아무도 나서 주지를 않는 것이다.

칭찬은커녕 베드로가 유다-욥바-가이샤라까지 순회 전도를 하고 왔는데 이방인 구원 사역에 이 천년 역사의 획을 긋는 장면이다.

고넬료 전도 사건은 성경의 4대사건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상황인 여기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확인된 역사적인 장면과 장소인데 같은 편끼리 비난이 오는 것이다.

시기 질투로 인해 사도들이 여기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동료들의 위로가 절실한 시점인데 비난을 먼저 하는 것이다 

 성경의 주제, 인생의 주제인 편견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베드로가 왕따가 되었다.

왕따가 되었을 때 잘 대처하라고 미리미리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부활을 보게 하셨다.

여기서 변명을 해야 하는 베드로를 보며 그것이 성령의 변명이 되어 수긍하게 될지를 보겠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의 반대도 충분히 예견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적용 #1)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왕따인가, 은따인가, 별따(별안간 왕따)인가?
-
아니면 여러분은 왕따를 시키고 있나?

2.
차례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함으로 베드로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하면서 원망하지 않고 차례로 설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베드로도 고넬료 집에 가기가 너무 싫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비난을 이해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당해 본 것만 설명할 수 있다.

안 당해 본 사람의 위로는 와 닿지 않는 것이 있다.

성령세례가 임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성령세례가 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가 쉽다.

성령세례가 임한 베드로는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는 뜻이다.

무너진 만큼만 사람을 분별하고 상담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공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친절이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을 때 마음을 녹여내는 힘이 있는 것이다.

주 안에서의 친절한 마음씨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인간 역사상에 나라와 나라간에 감정, 시누이와 동서간에 감정, 부모자식간의 감정 이게 골이 너무 깊은 사람들이 많다.

베드로도 이렇게 힘들게 갔다 왔는데 너무 서운했을 일이지만 자초지종을 차례로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을 했다.

성경 한 구절이 너무 귀한데 10장도 48절까지 길었는데 11장도 또 반복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반복할까?’ THINK 해봐야 한다.

편견이 너무 뿌리깊다는 것이다.

오늘 베드로의 설명은 변명 같지만 솔직한 간증으로 베드로가 한다.

지난번에는 일어난 일이었지만 베드로가 자기 입으로 간증을 한다.

자신도 너희 그 할례 파와 하나도 다름이 없는 가치관을 내가 가졌다는 것이다.

내가 이제 성령 받고 유대에서 전도하고 사마리아를 전도하고 에냐의 중풍병을 낮게 하고 죽은 다비다를 살리고 백정인 무두장이 집에 유숙했지만 거기까지인 것이다
베드로가 변명하는 것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집에 가기 싫었다고 하는데 그 편견은 정말 징하다.

자기가 그랬으니까 사도들도 똑같이 징할 것으로 생각하고 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이렇게 설득하신 것처럼 베드로도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러니까 깨끗하고 더러운 것의 차이는 하나님이 만져 주셨냐 아니냐에 있는 것인데 베드로와 고넬료는 사람의 생각은 들어올 틈이 전혀 없었고 둘 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만나게 된 것이다.

고넬료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도 구원 얻을 말씀이 필요하다.

의인도 성경 박사도 구원 얻을 말씀이 필요하다.

베드로도 엄청난 편견이 있었으며 죽일 듯이 집요하게 비난을 하는 그들에게 당당하게 말했다기보다는 나도 그랬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고 하면서 너희들 하고 같은 입장이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을 전도할 때 내가 안 믿었을 때 힘들었기 때문에 전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간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이고 필연의 시간이다.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성령은 베드로가 받은 성령과 고넬료 가정에 임한 성령이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말씀을 전한 것이다.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다고 이렇게 말을 화평의 복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고넬료와 그 일행에게 성령이 내려오시고 부어 주시고 우리와 성령을 받을 때와 똑같이 그들에게도 내리셨다고 얘기를 했다.

10장부터 고넬료 만난 간증을 보고 느낀 것은 정말 베드로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제 공회에 가서 나는 앉은뱅이도 고쳤고 중풍병자도 고치고 죽은 자들도 살렸다고 하면서 너희가 어떻게 나를 비난할 수 있냐고 이야기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다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게 해주신 것이다.

그딴 이야기는 하나도 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베드로와 스테반 바울의 설교를 보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얘기를 한결같이 하고 언제나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다.

간증을 하면서도 안 그런 척하면서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아픔을 드러내고 은혜 받았다고 하다 보니 교묘하게 자신을 내세울 수가 있는 유혹이 있는 것이다

곤고한 형태로 거기서 내가 이야기를 하면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가감하면서 부풀림이 있을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말못하는 사람이 없다.

변명이 많고 유혹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니까 일단 지나고 봐야 하는 것이고 말씀을 앞뒤로 차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
적용 #2)

-차례로 설명하여서 성령의 변명인 설득으로 바꾼 적이 있나?
-
간증할 때 가감한 적이 있나?


3.
하나님을 능히 막을 자가 없어서 통했다.

특별히 베드로는 여기서 내가 누구이기에 성령의 역사를 막을 수 있겠냐 자기는 하나님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베드로가 이렇게 겸손하게 성령의 변명을 하니까 이게 통해서 그 사람들이 수긍을 했다.

겸손하게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며 나도 그랬으니 내 변명을 잘 듣고 깨닫기를 바란다고 간증했을 때 그들이 변했고 가고 오는 세대에 18절은 이방 선교의 효시가 이제 되었다.

예수님을 저주해서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주님이 가시다가 돌아보시면서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다.

유대인에게 막히고 막힌 이방인의 선교가 바로 베드로 한 사람의 적용으로 뚝이 터졌다.

나는 늘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도 예수님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을 살리신 것처럼 베드로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류가 복을 받았다.

여러분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막힌 여러분이 복을 받고 교회가 복을 받고 목장이 복을 받고 나라가 복을 받을 줄 믿는다.

 
(
적용 #3)

-변명이 통한 적이 있나?

그리고 아무리 교회를 나와도 해결이 안되는 지역감정과 진영 논리를 나눠보시라.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안하기 때문에 우리들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입으로 나눠봐야 하고 시인을 하셔야 한다.

 

<Epilogue>

1)  성도에게는 화가 나도 기본적인 친절이 있어야 한다

2)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야단을 치면 수준을 높게 보는 것이다

3)  더럽다깨끗하다의 차이는 하나님이 만져 주셨냐 의 여부에 달려 있다

4)  당한 것이 있는 사람은 지금 당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5)  고정관념은 편견에 준한다

6)  팔복의 마지막 복이 박해라고 한다

7)  성령세례가 임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성령세례가 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가 쉽다.

8)  무너진 만큼만 사람을 분별하고 상담해 줄 수 있는 것이다.

9)  우리의 친절이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을 때 마음을 녹여내는 힘이 있는 것이다.

10) 주 안에서의 친절한 마음씨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11)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간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이고 필연의 시간이다.

12) 성령의 말씀으로 성령이 함께 하시기 위해서는 듣는 것이 말씀의 적용이다.

13) 성령의 변명은 형제가 비난할 때 차례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14) 여러분들이 싸울 때 가르치지 말고 설명해 보시기 바란다.

15) 하나님을 능히 막을 자가 없어서 변명이 통했다고 여러분의 변명이 통했으면 좋겠다

16) 하나님이 변호해 주시는 것! 자기의 부족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17) 성경을 보고 기도하면 주님이 앞으로의 일을 알려주실 많다.

18) 같이 가고 홀로 가고 결정해야 한다. 함께 사람이 있고 보낼 사람이 있는 것이다

19) 모르면 기도하고 진심으로 가르쳐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0) 말씀보고 진심으로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면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환경으로 보여주신다

21) 의인도 구원 얻을 말씀이 필요하다

22) ‘Get it beauty 대신 Get it QT’하자

23) 가감하는 말에 유혹을 받는다

24) 말씀을 차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25) 말씀이 들리는 곳에서는 창의성이 학벌이 없는 데서 나온다

26) 감사 자랑대회’ “사울아, 사울아 우째 니가 나를 핍박하노?’  -사울아, 사울아 뭣 땀시 느가 나를 징하게 핍박하고 그련다냐 잉?’

27) 설교가 거듭되어도 지역감정이 계속된다

28) 겸손하게 변명하며 상대방에게 나아가니 하나님이 변호해 주신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