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6. 24. 16:01

[우리들교회 2020 621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0: 23~ 29/ 성령의 만남)]

 

 

<사도행전 10:23~29>

 

23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Prologue>

성령의 소개가 성령의 만남으로 이어져 만나게 되었다

오늘 큐티는 영적 예배라고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참 신기하다

코로나로 나라를 생각해야 되기에 가장 먼저 온 라인 예배를 드렸고 가장 마지막에 이제는 조심해서 현장 예배를 드리려고 했다.

모두 보고 싶어서 보고 싶은 사람 자유로 오라고 했는데 교육청에서 월요일에 공문이 왔다.

확진자 10명이하가 되기 전에는 학교를 개방하지 말고 운동장도 개방하지 말라는 공문이 왔다.

그런데 어제 오늘 확진자 수가 60명이 넘었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만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막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판교채플이라도 없었으면 기약도 없을 뻔 했다.

무형의 성전도 중요하지만 유형의 성전도 중요하다

할 수 없이 판교에서만 드리기로 했으나 확진자 수가 점점 늘어나 신청자도 극소수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도 결국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조치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만남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다

 

<말씀 요약>

1.   성령의 만남은 의외의 만남이다.

(23) 자기 주인인 고넬료(Cornelius)를 칭찬하는 성령의 소개를 하인들이 너무 잘하니 베드로가 감동받아서 가기로 하고 난 후 이튿날이다. 베드로의 결단과 실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고넬료 일을 보고할 때 베드로가 자신의 유대인 제자 여섯 형제를 데리고 갔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어떤 형제들이 여섯 형제로 보고 있다

그 여섯 명하고 하인 둘 부하 하나 그리고 베드로 하나 모두 10명이 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욥바(Joppa)에서 다비다(Tabitha: 아람어/도르가Dorcas:헬라어/믿음에 의한 선행을 한 여인)가 살아나는 것도 보고 베드로가 무두장이 집에서 유숙하는 것도 본 베드로의 유대인 제자 정도로 볼 수있다.

그들은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갔다가 후에 예루살렘 교회까지 가서 고넬료 일에 증인이 된 사람들이다.

베드로가 능력을 행한 것도 들었고 고넬료의 하인들이 고넬료를 칭찬하는 것도 다 들었다.

또 그렇게 하룻길을 걸어서 온 하인들을 배려해서 하루 무두장이 집에서 하루를 더 유숙하게 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고 어우러져 존경해서 따라갔다고 생각한다

(24) 어떤 형제와 베드로가 같이 갔는데 고넬료 집에 가보니 고넬료의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과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다.

그 만남이 어떤 만남이었는지 그들은 몰랐다

이름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적인 사건의 증인이 된다.

누구 옆에 있는지는 참 중요하다.

이방인 공동체를 전도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빌립이 광야에서 이방인인 이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하였다면 베드로는 이방인 공동체를 전도한 역사적인 일로써 이들은 2000년 넘게 성경에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들은 자격도 공로도 없으나 천국 공동체 동창생으로 명단에 올랐다

하나님은 생각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성령의 만남을 가지면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기에 열등감이 없어지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쓸데 없는 허세를 부리지 않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된다.

구속사적으로 같이 갈 사람은 의외의 사람이다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다

(적용#1)

-내가 만난 의외의 성령의 사람은 누구인가?

-목장에서 의외의 사람이 주님을 만난 경험이 있나?

 

2.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만난다

(24-25) 드디어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난다.

기다리더니는 보통 기다림이 아니라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긴 인내와 간절한 기다림을 말한다.

많은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함께 기다렸다. 고넬료가 환상을 보고 하인들을 보낸 후 9절 이튿날, 23절의 이튿날, 24절의 이튿날에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고넬료의 기다림은 마치 거지가 기대함 같이 간절함으로 기다린다

그의 간절함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대단하다

간절함과 사모함의 농도가 다른 것이다

무작정 복음을 듣게 하고자 이 모든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기다렸다.

우리가 예배를 드려도 목장을 해도 이런 기다림으로 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는 예배가 됐으면 좋겠다.

사람은 먹고 살 일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당장 간절해지지 않는다.

베드로의 말씀을 너무나 사모하는 것도 있지만 베드로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는 겸손한 마음으로 베드로를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이런 겸손한 모습으로 그 많은 사람을 먹여가며 재워가며 기다렸는데 베드로가 온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사모함이 참으로 축복인 것 같다

(적용 #2)

-여러분도 기다리나요? 목장에서 함께 모아서 기다리나요?

고넬료가 발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노예가 주인에게 엎드릴 때 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일어난 일이고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인데 또 그 말씀이 너무 좋아서 엎드렸다는 것이다.

야이로는 딸이 낫고자 엎드렸지만 세상적으로 대단하고 그 친구들도 대단한 고넬료는 바라는 것도 따로 없는데도 간절한 복음에 대한 사모함으로 엎드렸으니 귀한 것이다

베드로를 신적으로 여기는 종교적인 자세이며 말씀에 꿇는 것이다

겸손이란 바로 이런 것처럼 하나님의 잣대로 자신을 측정하여 한 없이 초라함을 아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함이 없는 겸손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라 위선으로 위장된 교만에 불과하다

죄를 모르는 사람과 지내는 것은 정말 힘들다.

진짜 경건한 사람은 자유함으로 주위를 재미있게 해준다

죄를 모르는 사람에게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이다

고난이 와도 내가 잘 살아내는 것 밖에는 없기에 내게 고난이 오는 것이 축복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고 겉으로만 겸손해 보이는 유대인들은 불만인 것이다.

콩깍지가 껴서 사모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기에 불신 결혼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고넬료는 세밀하게 치밀하게 배려하며 만남을 준비했다.

모든 예배와 사람과의 만남도 치밀하게 배려하며 준비하면 하나님이 와 주실 것 같다

고도원의 사람에 대한 예의 라는 이야기처럼 만남의 이유가 이별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좋음과 싫음이 같은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소한 것을 배려 못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은혜가 떠나 은혜의 콩깍지가 벗겨지면 사소한 것(목사님 코 푸는 것)도 더럽게 보인다

(적용#3)

-메시아를 기다리듯 사모하고 배려하며 기다리는 것은?

-예배가 사모 되지 않는다면 무엇때문인가?

 

3.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이 만난다.

925) 고넬료가 발 앞에 절을 하니본인도 사람이다. 신이 아니다.’ 라고 일으킨다.

베드로는 주 앞에서 베드로와 고넬료가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의 수장이고, 중풍병도 고쳤고 앉은 자도 일으켰고 죽은 자도 살려냈으니 교만할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부인할 수 도 있었지만 한계를 인정했다

베드로의 달라진 모습이 성화된 모습이다

성화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안 되는 사람을 보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나니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사람이 높아지면 마치 높은 곳은 산소가 희박하여 힘든 것처럼 그곳에서 살 수 없어 죽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높아지면 그곳이 죽음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한다.

높은 자리는 내려와야 할 자리이다

내가 독수리인 줄 알고 높이 떠 있으니 까마귀나 종달새처럼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두 손, 두발 들어도 내가 저 상대방을 설득 못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요. 이것이 성화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만남이 아니면 인간의 말로는 아무것도 안된다.

깨달아 지지만 한계를 아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로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높은 자리는 영원히 살 자리가 아니라 내려와야 할 자리인 것을 알아야 한다.

죄인은 죄인의 자리를 알아야 한다.

자기 주제를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열등감이 많으면 대접만 받으려고 한다

(적용 #4)

-남들이 환호해줄 때 그곳이 죽음의 자리고 독이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나?

 

 

4.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법 위의 상위 법이다

(27-2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실 때 그 땅의 문화인 우상숭배를 철저히 못하게 하셨다.

혼인이나 어떤 계약 관계도 맺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진멸하고 무시 받게 하셨다.

우상은 철저히 박멸, 진멸하라고 하셨다

애굽에서도 우상 문화에 물들까 봐 거리두기로써 무시당하는 고센 땅에 머물게 하시어 거룩을 유치하게 하셨다

모든 편견과 차별이 나의 거룩을 위한 하나님의 세팅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확대 해석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에 빠져서 이방인들을 업신여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생활 방역을 했다

엘리트 의식보다 더 심한 것이 선민의식으로 그것은 상식을 넘어선 특권 의식인 것이다

그런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을 들어간 것은 조롱과 수치를 자처하는 것이었다.

유대인과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 조차 베드로를 무시하면서 비난한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 들어가서 얘기하는데위법인 줄 알지만 하나님께서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고 하셨다.’ 환상을 보면서 문자적으로만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면 위험하다.

정확하게 자기 부인과 십자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십자가로 풀어 전해 주는 것이 말씀 사역이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싫은 것이 아니라 위법이기에 베드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율법적 가치관은 깨뜨리고 나가려고 하니까 베드로같은 선구자가 필요한 것으로 전세계적으로 복음이 나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

그런데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청을 반감없이 받아드려서 이곳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초청으로 보였기에 사양하지 않고 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 알고 왔지만 다시 한번 베드로가 무슨 일로 불렀느냐 물어본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계속 확인이 필요한 것인데 그것은 의심이 아니다

십자가가 선 곳에서 모든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사명으로 인도된 만남이다

이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기 쉬워졌다. 소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동성결혼이 합법화 된다면 입양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권리는 보호받지만 그 아이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 남자를 엄마로 부르고, 여자를 아빠라고 불러야 하는 그 아이들은? 그러다가 마음이 안 맞으면 이혼도 하고 재혼도 하는데 그럼 아이들은 누가 키우는 건가? 이건 윤리, 도덕과 양심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법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다.

하나님이 동성애가 죄라고 하면 죄인 것이다

인권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주님과의 만남으로 기쁘게 희생해야 생각지도 못한 전도의 열매가 맺는다

 

(적용#5)

-하나님의 법이 최고인가? 여러분의 법이 최고인가?

 

<Epilogue>

1)  이름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적인 사건의 증인이 된다.

2)  누구 옆에 있는지는 참 중요하다.

3)  하나님은 생각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4)  성령의 만남을 가지면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기에 열등감이 없어지게 된다

5)  이런 사람들은 쓸데 없는 허세를 부리지 않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된다.

6)  이들은 자격도 공로도 없으나 천국 공동체 동창생으로 명단에 올랐다

7)  구속사적으로 같이 갈 사람은 의외의 사람이다

8)  고넬료의 기다림은 마치 거지가 기대함 같이 간절함으로 기다린다

9)  그의 간절함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대단하다

10) 간절함과 사모함의 농도가 다른 것이다

11) 사람은 먹고 살 일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당장 간절해지지 않는다.

12) 베드로의 말씀을 너무나 사모하는 것도 있지만 베드로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는 겸손한 마음으로 베드로를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13) 야이로는 딸이 낫고자 엎드렸지만 세상적으로 대단하고 그 친구들도 대단한 고넬료는 바라는 것도 따로 없는데도 간절한 복음에 대한 사모함으로 엎드렸으니 귀한 것이다

14) 베드로를 신적으로 여기는 종교적인 자세이며 말씀에 꿇는 것이다

15) 겸손이란 바로 이런 것처럼 하나님의 잣대로 자신을 측정하여 한 없이 초라함을 아는 것이며

16)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17)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함이 없는 겸손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라 위선으로 위장된 교만에 불과하다

18) 죄를 모르는 사람과 지내는 것은 정말 힘들다.

19) 진짜 경건한 사람은 자유함으로 주위를 재미있게 해준다

20) 죄를 모르는 사람에게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이다

21) 고난이 와도 내가 잘 살아내는 것 밖에는 없기에 내게 고난이 오는 것이 축복이다.

22) 콩깍지가 껴서 사모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기에 불신 결혼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23) 모든 예배와 사람과의 만남도 치밀하게 배려하며 준비하면 하나님이 와 주실 것 같다

24) 고도원의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이야기처럼 만남의 이유가 이별의 이유가 될 수 있다

25) 좋음과 싫음이 같은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6) 사소한 것을 배려 못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27) 은혜가 떠나 은혜의 콩깍지가 벗겨지면 사소한 것(목사님 코 푸는 것)도 더럽게 보인다

28) 베드로는 교회의 수장이고, 중풍병도 고쳤고 앉은 자도 일으켰고 죽은 자도 살려냈으니 교만할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부인할 수 도 있었지만 한계를 인정했다

29) 베드로의 달라진 모습이 성화된 모습이다

30) 성화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31) 안 되는 사람을 보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나니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32) 내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33) 사람이 높아지면 마치 높은 곳은 산소가 희박하여 힘든 것처럼 그곳에서 살 수 없어 죽게 되는 것이다

34) 사람이 높아지면 그곳이 죽음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한다.

35) 높은 자리는 내려와야 할 자리이다

36) 내가 독수리인 줄 알고 높이 떠 있으니 까마귀나 종달새처럼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37) 두 손, 두발 들어도 내가 저 상대방을 설득 못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요. 이것이 성화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38) 성령의 만남이 아니면 인간의 말로는 아무것도 안된다.

39) 깨달아 지지만 한계를 아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로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40) 높은 자리는 영원히 살 자리가 아니라 내려와야 할 자리인 것을 알아야 한다.

41) 죄인은 죄인의 자리를 알아야 한다.

42) 자기 주제를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43) 열등감이 많으면 대접만 받으려고 한다

44) 우상은 철저히 박멸, 진멸하라고 하셨다

45) 애굽에서도 우상 문화에 물들까 봐 거리두기로써 무시당하는 고센 땅에 머물게 하시어 거룩을 유치하게 하셨다

46) 모든 편견과 차별이 나의 거룩을 위한 하나님의 세팅이다.

47) 유대인들은 이것을 확대 해석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에 빠져서 이방인들을 업신여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생활 방역을 했다

48) 엘리트 의식보다 더 심한 것이 선민의식으로 그것은 상식을 넘어선 특권 의식인 것이다

49) 베드로는 그 자리에 들어가서 얘기하는데위법인 줄 알지만 하나님께서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고 하셨다.’ 환상을 보면서 문자적으로만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면 위험하다.

50) 정확하게 자기 부인과 십자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51) 십자가로 풀어 전해 주는 것이 말씀 사역이다

52) 율법적 가치관은 깨뜨리고 나가려고 하니까 베드로같은 선구자가 필요한 것으로 전세계적으로 복음이 나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

53) 그런데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청을 반감없이 받아드려서 이곳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초청으로 보였기에 사양하지 않고 응했다는 것이다.

54) 자유의지를 가지고 계속 확인이 필요한 것인데 그것은 의심이 아니다

55) 십자가가 선 곳에서 모든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56) 사명으로 인도된 만남이다

57) 모든 법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다.

58) 하나님이 동성애가 죄라고 하면 죄인 것이다

59) 인권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60) 주님과의 만남으로 기쁘게 희생해야 생각지도 못한 전도의 열매가 맺는다

 

<후기>

남들이 환호하는 것이 죽음의 자리이며 독이란 말씀이 마음을 뒤 흔듭니다. 늘 높은음자리표만 사모하였는데 낮은음자리표라도 주님 만나는 곳으로 인도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 줄 알게 하시니 할렐루야입니다. 모든 만남이 성령이 만남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박수 받는 인생으로 인정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높은 곳에서 날게도 없이 추락사하는 길임을 알기를 소망합니다.세상 출세와 인정 중독의 콩깍지는 벗어지게 하시고 믿음의 콩깍지가 벗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