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3. 6. 12:55

[우리들교회 2020 31일 주일예배 말씀요약(사도행전 7: 5~ 60/성령의 순교)]

 

 

 

 

 

(사도행전 7:51~60)

 

51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Prologue>

 

오늘은 3.1절이다. ‘기미년 31일 정오 오~ 기리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

 

구한말 Underwood박사일행이 기독교인 말살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라틴어로 교신 후 고종황제에게 사전에 알려 이를 극적으로 저지시켰다.

 

 

이들은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까지 구사하면서 헌신하고 전도하러 조선에왔다.

 

한 문장의 라틴어 전보문이 기독교인의 생명을 구하였고 음모를 꾸민 이용익과 김영준은 처형되었다.

 

기독교는 자고이래로 핍박을 많이 받아왔다

 

순교를 사전에는 모든 압박과 방해를 물리치고 자기가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순교하려면 압박과 박해는 필수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말씀요약>

 

 

이 시대 성령의 순교는,

 

1.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 때문에 한다.

 

51. 스데반이 죽을 작정을 하고 한 말.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성령으로 죽어야 한다.

 

성령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잘 죽을 수도 없다.

 

인간은 태생이 지옥뿌리에서 올라온 교만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만 들어야 되는 얘기는 아니다. (나도 들어야 하는 얘기)

 

깨어지지 않는 마음 판에 세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52.

 

사람의 교만과 무지는 성령을 거역하게 되고 그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만든다.

 

성경을 끼고 살고 할례를 행했지만 동시에 우상을 섬겼기에 그 결론으로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할례와 율법과 성전을 자기 치장과 자기 영광을 드러내는 데 사용한다

 

(적용 #1)

 

-여러분이 죽을 작정을 하고 한마디 한다면 어떤 말을 하겠는가?

그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신뢰를 쌓아야 하는지 한 번 생각해보라.

 

-직장 상사에게 한 마디씩 하고 싶지 않은가?

 

54. 마음이 찔려 이를 갈거늘. (찔려서 말발굽으로 가슴 치듯이)

 

하나님이 성전에 안 계시다고 하니까 이를 가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속에 예수님 보배가 없다는 걸 자기들이 증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질그릇 속에 보배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질그릇 치장밖에 없다.

 

그래서 마지막에 돈이 있다.

 

예루살렘 성전을 치장해야 하니까, 우상. 율법주의, 예배/제사 안 드리면 큰일 나니까 돈이 필요한 것이다

 

우상화 할수록 백성들에게서 벌어들이는 액수가 대단한데 스데반이 너무 맞는 말을 하니까 아무도 재물 가지고 안 오게 생긴 상황으로 이는 이해타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들을 정죄할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이해가 돼야 한다.

 

말씀을 잘 전하면 사람들이 이를 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예방주사를 맞게 해 주신다

 

 

총명과 지혜 충만한 스데반이 구속사로 성경을 보는 것을 이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쁨이 있지마는 기쁨이 있는 만큼 고난이라는 것이다

 

나 때문에 한쪽은 살아나지만 한쪽은 이를 갈면 그건 진짜다.

 

아브라함, 모세가 얼마나 평범한 집안이었나를 피력하는 것인데 자랑하고 싶은데 자꾸 평범하다고 그러니까 분한 것이다

 

스데반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을 구원 때문에 끝까지 사랑해야하지만, 무조건 옳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 조상, 배우자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대다수는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좁은 길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한 단어다

 

(적용 # 2)

 

-여러분의 조상과 부모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내나 남편에게 입도 못벌리게 하는가?

 

 

2.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아야 할 수 있다.

 

55. 감추어진 하나님의 경륜.

 

스데반처럼 성자 예수님이 디자인하셔서 티끌로 오셔서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려니까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지 않으면 순교를 할 수가 없다.

 

삼위 하나님이 총출동하셔서 감춰진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는 것이지, 그냥 핍박 받아 죽는 게 아니다.

 

인류 최대의 구원의 사건이 되는 스데반을 삼위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이다.

 

힘내라, 스데반.

 

스데반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는데, 우편은 통치하는 자리다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지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예수가 인자로 바뀜)

 

하늘 우러러 주목하니까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말을 했다’.

 

이게 바로 말씀 사역이다.

 

말씀 사역을 하니 현장에서 사울이 들은 것이다.

 

 

어찌하여 내가 걸어 다니는 성전이었는지 그 까닭을 얘기하고 죽어야 하니까 이것이 순교다 (할 말하고 가는 것이 성령의 순교다)

 

 

하나님 때문에 순교도 하는 것인데 항상 그 이유를 말하고 죽임 당해야 후손들이 기억을 하지 않겠나.

 

스데반이 마지막으로 홈런을 날리면서 한 말은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는 말이다

 

인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육체로 오신 주님이라는 것이 얼마나 낮아지는 사건인지 모르는데 이것은 인간이 개미가 되는 사건이다

 

하나님 우편에는 자기를 협박하는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이 앉아있는 게 아니라 나사렛 출신 비참한 십자가 죽임을 당하신 그 예수님이 계신 것이다.

 

스데반이 너무 놀랐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는 모습을 보니까

 

주님을 보니까.. ‘그래, 내 집은 개미집이 아니야.

 

하나님의 영광된 집이 저기 있구나’를 보았다.

 

바로 거기에 자기의 모델이 돼주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이다.

 

나와 같이 힘든 것 다 겪으신 그 예수님이 인자로 거기서 자기를 맞아주시는 것이다.

 

이로써 모든 것은 게임 오버이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인자들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신 것이다.

 

홀로 외롭게 이 길을 가는 분이 많이 있을 텐데, 주님이 너무 기뻐서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 것, 이것이 진짜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설교했던 구속사가 진짜구나!.

 

교회나 사회는 모든 인자들의 희망, 소망이 되어야 하는 게 맞다.

 

누가 나에게 쳐들어와도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니까 걱정될 게 없다.

 

이것이 말씀의 위력인 것이다

 

(적용 # 3)

 

-여러분은 인자로 오신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계신 것을 보나? 보았나? 볼 건가?

 

 

3. 혈기를 감당한다.

 

50절까지

 

설교를 할 때는 말씀으로 할 때는 사람들이 숨도 안 쉬고 듣고 반격 못했다.

 

끝나고 나서 보니까 자기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바뀔 생각은 안하고 이해타산에 재산 지키기에 한 마음이 됐다.

 

지도층 인사들이 자존심에 상처가 나니까 혈기가 올라온다

 

이 때는 정치도 같이 했기 때문에 스데반 한 사람 몰아 죽이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게 된다.

 

민주주의가 옳은 게 아니다. 원칙이 중요하고, 법이 중요하다.

 

다수결이 이 나라를 이끌어 가면 망하는 거다(대통령 탄핵 청원 140/응원 110).

 

말씀으로 못 다스리니까 법은 멀고 주먹이 나와 폭력이 난무하는 것인데 바른 소리 듣기 싫어서이다

 

술집여자들이 바른말을 안 하니까 편해서 술집에 간다고 한다

 

58.

 

스데반의 죽음과 사울 앞에서의 죽음이 우연이겠는가?

 

사울은 죽을 때까지 이 장면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데반 설교를 하나도 못 알아들은 상황이라서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때가 되기 전까진 아무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정죄할 사람이 없다.

 

마지막까지 천사의 표정으로 주님을 보여주고 가면 되는 것 같다.

 

바울이 된 사울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전세계를 변화시킨 바울 복음의 주인공인 것이다

 

저는 저희 어머니 마지막 죽음의 증인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 주님이 영접해주셨기 때문에. 천사 같은 모습으로 가셨다는 것을 스데반을 보니 성경적인 것이 맞았다. 물론 목이 잘린 세례 요한 같은 사람도 있다.

 

돌로 침을 당해서 죽을 수도 있구나, 이런 믿음의 사람이 스데반이다

 

인자이신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계신 걸 보면 혈기를 하나도 안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스데반은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교는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는 것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에 끝까지 혈기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계신 것을 보았기 때문인데 그 영광은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너무 대단한 집을 보았기 때문에 빨리 가고 싶은 것으로 죽는 것이 자러 가는 것처럼 편안한 것이고 돌로 치는 그들이 너무 불쌍한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를 모르니까, 그들이 개미에 불과하니까, 진심으로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몰라서 그러는데, 왜 이렇게 용서를 못하는가? 예수님도 똑같은 기도를 하셨다.

 

모델이 예수님이니까 예수님 가신 그 길을 그대로 가고 있는 스데반이다

 

끝까지 그들의 혈기를 감당하는 것으로 내 앞에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이렇게 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말세의 순종은 혈기 안 부리는 것으로 순교다.

 

요즘은 교회가 핍박 받는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조짐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흩어지면 구속사의 믿음이 전파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우리가 순교할 곳은 집이다. 너무 안 통하니까, 집에서 순교를 해야 한다.

 

신천지가 왜 잘못 됐냐 면, 신천지 가지 말라고 하면 다 가출한다는 것으로 도덕과 윤리와 상식이 없는 것으로 그래서 이단이다.

 

육체영생교리가 헛것인데도 다 안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병이 병 같지가 않아서 열렬히 전도하러 다니고, 가정이 중요한데 다 가출하고 이혼하고 하는 것이다

 

신천지가면 목적이 무언가? 영생?

 

전문가를 동원해서 전문가로 유인하는 신천지, 상담으로 동원하고 대단한 사람이 날 만나준다는 것에 혹하는 것이다

 

성경도 구속사도 안 들리니까 인간관계에 신뢰를 갖게 하기 때문에 교리가 허접해도 공감을 해주기 때문에 다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분별을 못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복음이라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비참하게 죽으신 예수님을 제정신 가지고 믿을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초라한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니까 나도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간증’이 순교로 이어진다

 

오늘 혈기 한 번 참고, 죽는 연습을 하다 보면, 오늘 잠깐 참은 것이 깜깜한 고통을 참고 나갔을 때 몇 억년 몇 천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천년 우리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찬란히 서서 예수님이 영접해주신다는 것이믿어 지는가?  

 

스데반을 통해서 샘플을 주셨다.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약이고 처방이 ‘구속사’다.

 

성경 전체에 서서 영접해주시는 것은 스데반 밖에 없다.

 

이름도 없던 스데반인데 이름이 없을 수록 더 영접해주실 것을 믿는다.

 

영적 원리가 육 적 윈리로 이어짐을 스데반을 통해 보여 주신다

 

하나님 안 만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순교도 하나님 힘주셔서 하는 것이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기도하는 것을 온 우주가 몰라줘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니까 오늘 스데반을 일어서서 영접해주신다.

 

인자이신 주님이 너무 기뻐서 일어나 영접해주셨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죽음이라면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에 순종한다면 그 집안은 빛나는 것이다. 죽는 게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다.

 

예수 때문에 맞아 죽으면 역사하신다. 그래서 이혼은 안 된다.

 

살고 안 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가 중요하다

 

구원이 목적이 되면 무얼 못하겠는가?

 

스테반은 스테파노스(왕관)이라는 뜻이다

 

믿는 사람에게 다윗은 최고의 역할을 했지만 기독교를 세계최고의 종교로 알리기 위해서는 스데반은 빨리 흠 없이 가야 했던 것이다.

 

세상은 옳고 그름 밖에 모르니까 그렇다

 

예수님과 흡사하다.

 

혈기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순교다.

 

 

(적용 #3)

 

-구체적으로 아이들, 부모, 직장,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내 연민, 두려움에 죽어야 하나?

 

생각해보기 바란다.

 

-여러분은 마지막에 어떤 말을 할 것 같은가?

 

마지막 죽음의 현장에서도 인자의 영광이 안보이면 세상을 택한다.

 

잘 죽기 위해서는 기도밖에 없다.

 

 

<Epilogue>

 

이 시대 성령의 순교는,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 때문에 한다.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아야 할 수 있다.

 

혈기를 감당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성령으로 죽어야 한다.

 

성령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잘 죽을 수도 없다.

 

인간은 태생이 지옥뿌리에서 올라온 교만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만 들어야 되는 얘기는 아니다. (나도 들어야 하는 얘기)

 

깨어지지 않는 마음 판에 세긴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사람의 교만과 무지는 성령을 거역하게 되고 그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만든다.

 

성경을 끼고 살고 할례를 행했지만 동시에 우상을 섬겼기에 그 결론으로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할례와 율법과 성전을 자기 치장과 자기 영광을 드러내는 데 사용한다

 

질그릇 속에 보배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질그릇 치장밖에 없다.

 

총명과 지혜 충만한 스데반이 구속사로 성경을 보는 것을 이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쁨이 있지마는 기쁨이 있는 만큼 고난이라는 것이다

 

나라, 조상, 배우자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대다수는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좁은 길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한 단어다

 

스데반처럼 성자 예수님이 디자인하셔서 티끌로 오셔서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려니까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지 않으면 순교를 할 수가 없다.

 

삼위 하나님이 총출동하셔서 감춰진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는 것이지, 그냥 핍박 받아 죽는 게 아니다.

 

인류 최대의 구원의 사건이 되는 스데반을 삼위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이다.

 

어찌하여 내가 걸어 다니는 성전이었는지 그 까닭을 얘기하고 죽어야 하니까 이것이 순교다 (할 말하고 가는 것이 성령의 순교다)

 

인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육체로 오신 주님이라는 것이 얼마나 낮아지는 사건인지 모르는데 이것은 인간이 개미가 되는 사건이다

 

누가 나에게 쳐들어와도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니까 걱정될 게 없다.

 

지도층 인사들이 자존심에 상처가 나니까 혈기가 올라온다

 

때가 되기 전까진 아무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정죄할 사람이 없다.

 

마지막까지 천사의 표정으로 주님을 보여주고 가면 되는 것 같다.

 

돌로 침을 당해서 죽을 수도 있구나, 이런 믿음의 사람이 스데반이다

 

인자이신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계신 걸 보면 혈기를 하나도 안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스데반은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교는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는 것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에 끝까지 혈기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계신 것을 보았기 때문인데 그 영광은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너무 대단한 집을 보았기 때문에 빨리 가고 싶은 것으로 죽는 것이 자러 가는 것처럼 편안한 것이고 돌로 치는 그들이 너무 불쌍한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를 모르니까, 그들이 개미에 불과하니까, 진심으로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몰라서 그러는데, 왜 이렇게 용서를 못하는가? 예수님도 똑같은 기도를 하셨다.

 

말세의 순종은 혈기 안 부리는 것으로 순교다.

 

십자가의 죽음이 복음이라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초라한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니까 나도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약이고 처방이 ‘구속사’다.

 

성경 전체에 서서 영접해주시는 것은 스데반 밖에 없다.

 

영적 원리가 육 적 윈리로 이어짐을 스데반을 통해 보여 주신다

 

순교도 하나님 힘주셔서 하는 것이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기도하는 것을 온 우주가 몰라줘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니까 오늘 스데반을 일어서서 영접해주신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죽음이라면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에 순종한다면 그 집안은 빛나는 것이다. 죽는 게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다.

 

살고 안 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가 중요하다

 

구원이 목적이 되면 무얼 못하겠는가?

 

믿는 사람에게 다윗은 최고의 역할을 했지만 기독교를 세계최고의 종교로 알리기 위해서는 스데반은 빨리 흠 없이 가야 했던 것이다.

 

 

혈기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순교다.

 

마지막 죽음의 현장에서도 인자의 영광이 안보이면 세상을 택한다.

 

잘 죽기 위해서는 기도밖에 없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2. 29. 13:44

[우리들교회 2020 223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7: 44~ 50/ 성령의 성전)]

 

 

 

 

 

 

<사도행전 7 44 ~ 50>

 

 

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according to the pattern)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Heaven is my throne, and the earth is my footstool)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Prologue>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은 교회 개척 후 아니 평생에 처음 있는 일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수칙을 계속 열심히 보시고 준수해주시고

이 나라와 교회를 위해 특별히 의료진 감염이 많고 중국에서도 사망하고 이러는데

의료진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모든 성도 님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란다.

 

코로나바이러스 인해 성전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안타까움이 크실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휘문 고등학교를 위해서 비상사태로 보이기 때문에 온라인 예배를 결정했다.

 

어제저녁 8시 뉴스에 신천지 코로나 환자가 대구의 일반 교회에 등록하고 잠입해있는 신천지 추수 꾼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해당 대구 일반교회는 폐쇄 조치되었다고 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못 드릴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일로 꼭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날 제목이 마침 성령의 성전이다.

 

몸은 같이하지 못해도 우리 모두 성령의 성전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라고 이 제목을 주신 것 같다.

 

 

<말씀요약>

 

오늘은 성령의 성전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겠다.

 

거룩은 구별되었다란 뜻이다.

 

성령의 성전은,

 

1.   하나님의 양식대로 지어야 한다.

 

증거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언약의 돌비를 가리킨다.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은 이제 증거다.

 

궤속에 넣어서 궤를 증거라고 했고 성막의 지성소에 스데반은 성막을 증거의 장막(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 )이라고 불렀다.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의 말씀이고 성령의 선지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양식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은 말씀을 천천히 알려주셨다

 

십계명만 받은 것이 아닌 23장까지 풀어서 설명하셨으며 성막 짓는 양식 모양 패턴 한글에서는 식양 등 이런 말로 30장까지 자세히 알려주시는데 식양(the pattern)으로 언급하겠다

 

금송아지 섬겨서 심판 받고 35장부터 성막 짓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막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이제 미사일을 발사할 때 조금만 틀려도 다른 데로 가게 된다.

 

정확하게 조준해서 말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므로 대충 하면 안 된다

 

홍해 바다 건너는 이야기는 긴장감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성막을 지으라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다 덮어두고 평생 교회를 다녀도 안 읽는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나?

 

레위기에 들어가면 초막절 등 알 수 없는 방언을 하는 것 같고 제물들을 잡을 때 피 뿌리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제사장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다.

 

우리의 큐티가 성막 짓는 적용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데로 가야 하는데 내 방법이 너무 많은 것이다.

 

십계명만 주시면 좋은데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성막을 짓는 것이 구체적이 여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묵상을 하는데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모르겠다. 아직도 식양에 의해서 적용해야 할 것들이 즐비하다.

 

거룩의 길이 끝이 없다.

 

오늘 온라인 예배를 드리니 믿음이 없어 보이나? 어떻게 재양이 그쳐질까?

 

여러분들의 재앙이 그 동안 그쳤다면 감사하고 이 코로나 때문에 무슨 기도를 할까?

 

저는 저부터 아론과 같이 이랬다저랬다 하니까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기도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부족한 제가 고난이 오고 말씀이 이루어지니 식양대로 그만큼만 성전이 지어진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성막은 아름다운 것만 아닌 제물을 안수하고 제물의 아비규환과 통곡소리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이다.

그래서 성막 식양의 주제나 레위기의 주제가 피 흘림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비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반복 반복하신 것은 신앙생활에 대충이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한 단어인데 부활만 바라고 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진 만큼 부활이 있는 것이다

 

십자가 지는 것이 다 피 흘림이고 통곡이니까 날마다 식양이 필요하다

 

양식은 한마디로 십자가 잘 지라는 규례다.

 

그래도 힘들면 저절로 식양을 사모하고 기억하니 외우게 된다

 

힘들면 식양을 사모하니까 식양이 어렵지 않게 되고 주시는 말씀대로 살기가 쉬워진다

 

내 힘을 내려놓으니 바로 그때 성전이 지어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예수님이 임하지 않으니 큐티가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을 보아도 성령이 오지 않으면 당최 모르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데로 만들었고 식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성도의 인생은 이렇게 명령하신 데로 되니라가 주제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는 인생이 성공인생이다

 

그런데도 이미 이렇게 광야에서부터 좋은 성막 식양을 십계명과 함께 인도해 가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증거의 장막과 함께 있음에도 우상을 숭배했다

 

그런데 동시에 음란하게 바알 우상 등을 몰랙(Molech) 우상 등을 섬겼다고 한다.

 

하나님을 열심히 이상하게 기억해서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는 제사를 열심히 해서 증거의 장막을 부적화시켰다.

 

그들의 열심이 성전을 부적으로 전락시켰다

 

증거의 장막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유효했다

혼자 회개가 안되니 성전에 와서 회개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도 패역한 우리를 보이는 성전에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다.

 

 

(적용 #1)

 

-여러분은 큐티를 기뻐서 하나?

 

-아직도 이해가 안 되셔서 성경 읽기 묵상이 지루한가?

 

-교회가 기뻐서 오나? 부적처럼 다루려고 하나?

 

 

 

2.   하나님이 지어주셔야 한다.

 

 

여호수아는 예쉬아로 표기된 예수님을 예표한 것이다

 

광야 40년이 끝나고 가나안에 정착했으니 고정되어 있는 성전이 필요했다.

 

승승장구하던 시절 다윗이 하나님 성전을 짓겠다고 했다.

 

증거장막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몰랙(Molech) 우상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야곱 같다

 

야곱을 이야기했는데 구약시대가 다 끝난 스데반이 야곱의 집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은 돈, 여자, 거짓말, 사기꾼인 야곱과 같다.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짓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것은 스데반의 시각인 것 같다

 

하나님은 마음만 받으시고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피를 많이 흘린 다윗에게 성전 건축이 허락될 수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지은 조그만 집에 거하실 수 있겠나? 사람이 지은 돌집에 사실 수 있을까?

 

성전 건축은 사람 좋자고 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성전 건축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개미가 짓는 집을 생각해보면 이게 정말 받을 수가 없는 기도 제목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을 수 없는 기도 제목을 올려드린 것이다

 

마음만 먹어도 기쁘신 주님은 다윗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왕위를 이어가기 때문에

내가 지어주겠다고 하신다.

 

자기기도는 거절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다윗은 주님께 해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주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죄인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 쓰레기입니다라는 고백을 한다.

 

그러니까 개미의 주제를 안 것이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주제를 알고 기도해야 하는데 온 성도가 모여 합심하여 교제하는 처소가 너무 필요하다.

 

휘문성전에 플라스틱 의자를 매주일 세팅해도 얼마나 이것이 감사한지 모른다.

 

예배당은 정말 필요한 것이다.

 

휘문고등학교는 성령의 성전이었다. 정말 감사하다.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예고도 들어가고 그랬지만 하나님께서는 드러내기 어려운 입장에서 저를 훈련시키셨다.

 

저는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지 않냐고 했는데 사람에게 드러나기 힘든 자리에 저를 늘 놓고 가셨다

 

영적 성전 짓는 것을 원하셨다.

 

모든 것을 드러나지 못하게, 생색이 나지 못하게 하셨다.

 

돈이 있음에도 남편이 주는 돈 10만 원에 철저하게 순종하게 하신 것도, 돈이 있어도 서원했기에 돈도 못 쓰고 순종하게 하신 것이 영적 성전 짓는 것이었다

 

영적 성전을 짓는 설교는 참아내고 견뎌내는 것이 필요하다

 

비교도 안되게 하나님이 저를 지어가셨다.

 

있는 곳에서 인간관계 안되면 나가서 더 힘든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자신의 성전을 지으면 자신의 성전을 지으니 자기 열심이 앞질러 선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시 받은 것처럼 사람을 유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의 마음에 속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구걸하시지 않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진심과 정성에는 감동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생각했구나, 그 마음이 사랑스럽구나라고 하시는 것이니 진심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개미 같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눈물 흘리신다

 

인류최고의 선물인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은 냉철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분이 아니시다

 

저도 슬퍼서 기뻐서 눈물 많이 흘린다.

 

세상 것으로 응답하지 않는 최고의 기도 응답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응답을 다음 때로 유보를 하셨지만 보이는 성전건축도 허락하셨다.

 

시간이 걸렸지만 기꺼이 응답하셨다.

 

내가 선한 뜻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인내가 아니면 하나님을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잔 소리쟁이 엄마 같은데 이걸 알고 순종하고 적용하면 쟁쟁한 영적 후손들이 나와서 어마어마한 성전을 지어 가게 하신다.

 

스데반은 솔로몬 때에 비로소 성전을 건축했다고 증언한다.

 

그때가 언제인가? B.C.490년이었는데 이때서야 지었다. 그러니까 바로 이 예언을 솔로몬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는 이 땅에 성전은 불안한데 반하여 예수그리스도는 영원히 견고하기 때문인 것이다

 

영적 후손은 이것을 아는 것인데 화려한 성전에 주님이 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솔로몬도 다윗 같지는 않지만 자신이 개미인 것을 알아서 용서해달라고 미리 기도 하는 것인데 이때 성전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전은 속죄의 장소다.

 

짐승들의 통곡과 울부짖음과 피비린내 나는 피 흘림이 있다면 주님, 여기를 보소서!’ 하는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거룩을 위해 죄인과 만나실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러니까 아무리 잘못해도 피 흘림이 있으면 이곳을 보소서, 용서해주세요라는 것이다

 

누구는 오지 말라고 이러는 것이 아니다

 

 

(적용 #2)

 

-내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집을 지어주시나?

 

 

3.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모세 보고 출애굽기에서는 곧 우리를 인도해야 할 사람이라고 한다

 

모세가 안 보이니 금세 우리를 위한 신을, 우상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십계명의 1계명(하나님 외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데 문제가 생기면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모세다

 

그러니 제가 왜 시집살이가 유익했는가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이해가 되는 것이 있고 눈에 보이는 기점이 있을 때는 사모하면서 하나님 믿는 것 같지만 사실상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를 붙들었기 때문이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금송아지를 왜 섬기는가? 불안함의 끝에는 돈이 있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도 다 돈 때문에 성공 우상주의와 성공지향주의가 다 돈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증거의 장막은 바로 성도들의 몸이다.

 

성도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증거의 장막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에도 임재해 계신다.

 

그러한 교회도 성도들이 모여 이 어우러지는 것이니까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며건물 그 자체로서의 교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걸어 다니는 살아있는 성전이며 성전은 거룩한 것이다

 

걸어 다니는 성전이 왜 유혹하고 야동 보고 동성애에 빠지고 담배와 마약에 찌들게 되면 어떻게 하나님의 증거가 되나?

 

날마다 음란, , 담배를 행하는데 거룩한 성전인데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마음대로 욕을 하고 아무리 그래도 욕을 하는 것은 아닌 것인데 그것은 성전자체를 비하를 하는 것이니까 그렇다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누구를 비하하면 안 되는 것이다

 

진리를 담아내는 그릇이 완고하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지금 못된 것인데 그래도 여러분이 저를 욕하면 되겠나?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 왔다고 이 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아버지를 욕하면 되겠나? 그것은 다른 사람은 그럴지 몰라도 우리는 걸어 다니는 산 성전인데 욕을 입에 달고 그냥 본을 하나도 보일 것이 없으면 문제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들이 지어준 성전에 거할 자리가 없지만 회개하고 통회하는 힘든 사람들을,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회개하는 자들을 돌보고 돌아보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섬김 받는 분이 아니시고 오히려 연약한 우리를 돌보시고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전이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나도 하나님의 몸이고 성전이라면 복 받을 생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통회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오는 곳이 성전인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한 톨도 없다

 

스데반이 그 당시에 어떻게 그렇게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잘 꿰고 있냐라는 말이다.

 

베드로는 그렇게 설교를 못했는데 스데반은 어쩜 이렇게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를 하는지 스데반의 놀라운 설교를 들었다

 

구약을 정확한 핵심만 집어서 다윗조차도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지만 성전 지을 자격을 받지 못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했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이 돈으로 지어 놓은 그곳에 계시지 않은 것은 성전을 우상 삼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간증을 해줬다

 

나는 형편없었는데 하나님이 해주셨다 이 이야기인 것이다

 

스데반이 정확하게 해주었는데 왜 스데반의 설교가 명 설교라고 하는 것이 이해되었나?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과 나는 인격으로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는 한 몸이니까 갈등이 생기는 것인데 날마다 트러블이 생기는 거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서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날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주제가 뭔가 하면 교리로 진리로 가르쳐주면 알겠다고 하고 지식으로 가르쳐주면 쉽다고 한다

 

세상은 손으로 지은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므로 내가 아는 하나님을 정해놓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제 아니라고 하니까 자꾸 손으로 지은 그걸로 이야기하니 알겠다고 하기에 스데반은 손으로 지은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은 곳에 열광하고 교리를 알려주면 그것은 알아듣겠다고 하는데 영의 구조로 영이 임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초심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해주신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개미가 하나님께 지어드릴 수는 없지만 지어 드릴 마음을 가지다가 그러는 가운데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 교회는 성전이 없었다

 

성전이 짓는다는 것을 생각 못 하게 되었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눈물로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면 제가 복을 받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며 하나님도 붙들 수가 없는 것이다.

 

눈물로 죄 고백을 하고 회개를 하며 각자의 성전을 잘 짓고 있으니 주목해주셨고

하나님이 보이는 성전을 짓게 해주셨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윗의 언약을 지키고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초심을 잃지 않은 것 같아서 축복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주님을 위하여 살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의 일을 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오랫동안 붙들어주셨다.

 

남편이 간 다음에 더 뭔지 모르지만 에스겔처럼 살겠다고모르니까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게 주님의 집을 짓겠다고 한 것인데 그러니 모르고 기도했지만 우리의 성전을, 저의 성전을 지어주셨다.

 

고난도 왔지만 유형무형의 성전을 지어주셨다.

 

수많은 사람을 전도하게 하시고 무명 한자 같으나 유명하게 하셨고 정말 제가 부자 남편하고 살 때보다 건강이 좋아졌고 저 정말 몸이 약했고 인생이 골골했는데 남편 간 다음부터 건강해지기 시작해서 다들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셔서 다윗에게 준 언약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줄 믿는다.

 

성령의 성전을 설교를 하니 인터넷으로 각자 처소에서 예배를 드리시는데 우리는 정말 같이 모여서 하면 좋은데 어쩔 수 없는 날에는 흩어지질 수도 있고 결국 우리는 흩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중에 목장에서 피드백 해보시기를 바란다.

 

(적용 #3)

 

-여러분이 손으로 지은 것을 사모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식농사 다 헛것에요

 

-여러분의 몸이 성전인 것을 믿나?

-걸어 다니는 성전인 것을 믿나?

 

-그렇게 걸맞게 살고 있나?

 

 

<Epilogue>

 

우리다 똑같고 인생이 죄인이다

 

성령의 성전은 양식 대로, 식양대로, 말씀대로 지어야 한다.

 

보이는 성전도 안 보이는 성전도 모두 하나님이 지어주셔야 한다.

 

결론은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이다.

 

 

증거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언약의 돌비를 가리킨다.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은 이제 증거다.

 

궤속에 넣어서 궤를 증거라고 했고 성막의 지성소에 스데반은 성막을 증거의 장막(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 )이라고 불렀다.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의 말씀이고 성령의 선지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우리의 큐티가 성막 짓는 적용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한 단어인데 부활만 바라고 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진 만큼 부활이 있는 것이다

 

십자가 지는 것이 다 피 흘림이고 통곡이니까 날마다 식양이 필요하다

 

양식은 한마디로 십자가 잘 지라는 규례다.

 

그래도 힘들면 저절로 식양을 사모하고 기억하니 외우게 된다

 

힘들면 식양을 사모하니까 식양이 어렵지 않게 되고 주시는 말씀대로 살기가 쉬워진다

 

내 힘을 내려놓으니 바로 그때 성전이 지어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예수님이 임하지 않으니 큐티가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을 보아도 성령이 오지 않으면 당최 모르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데로 만들었고 식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성도의 인생은 이렇게 명령하신 데로 되니라가 주제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는 인생이 성공인생이다

 

그런데도 이미 이렇게 광야에서부터 좋은 성막 식양을 십계명과 함께 인도해 가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증거의 장막과 함께 있음에도 우상을 숭배했다

 

그런데 동시에 음란하게 바알 우상 등을 몰랙(Molech) 우상 등을 섬겼다고 한다.

 

하나님을 열심히 이상하게 기억해서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는 제사를 열심히 해서 증거의 장막을 부적화시켰다.

 

그들의 열심이 성전을 부적으로 전락시켰다.

 

세상은 돈, 여자, 거짓말, 사기꾼인 야곱과 같다.

 

성전 건축은 사람 좋자고 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성전 건축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진심과 정성에는 감동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생각했구나, 그 마음이 사랑스럽구나라고 하시는 것이니 진심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개미 같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눈물 흘리신다

 

인류최고의 선물인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다

 

내가 선한 뜻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는 이 땅에 성전은 불안한데 반하여 예수그리스도는 영원히 견고하기 때문인 것이다

 

금송아지를 왜 섬기는가? 불안함의 끝에는 돈이 있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도 다 돈 때문에 성공 우상주의와 성공지향주의가 다 돈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증거의 장막은 바로 성도들의 몸이다.

 

성도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증거의 장막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걸어 다니는 살아있는 성전이며 성전은 거룩한 것이다

 

걸어 다니는 성전이 왜 유혹하고 야동 보고 동성애에 빠지고 담배와 마약에 찌들게 되면 어떻게 하나님의 증거가 되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들이 지어준 성전에 거할 자리가 없지만 회개하고 통회하는 힘든 사람들을,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회개하는 자들을 돌보고 돌아보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섬김 받는 분이 아니시고 오히려 연약한 우리를 돌보시고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전이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나도 하나님의 몸이고 성전이라면 복 받을 생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통회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오는 곳이 성전인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한 톨도 없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했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이 돈으로 지어 놓은 그곳에 계시지 않은 것은 성전을 우상 삼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과 나는 인격으로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는 한 몸이니까 갈등이 생기는 것인데 날마다 트러블이 생기는 거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서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날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주제가 뭔가 하면 교리로 진리로 가르쳐주면 알겠다고 하고 지식으로 가르쳐주면 쉽다고 한다

 

세상은 손으로 지은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므로 내가 아는 하나님을 정해놓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지은 곳에 열광하고 교리를 알려주면 그것은 알아듣겠다고 하는데 영의 구조로 영이 임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초심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해주신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개미가 하나님께 지어드릴 수는 없지만 지어 드릴 마음을 가지다가 그러는 가운데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2. 24. 13:34

[우리들교회 2020 216일 주일예배말씀요약 및 어록(사도행전 7: 37~ 43/ 성령의 선지자)]

 

 

 

 

 

<사도행전 7:37~43>

 

37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Prologue>

 

성령의 소명을 받았는데 미디안 광야에서 힘든 훈련을 받게 하신 것은 그만큼 백성을 인도하는 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귀가 얇고 근본이 기복적이기 때문에 가나안으로 이끌고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하다. 심지어 모세를 돌로 치려 했다.

 

그래도 백성들이 아무리 싫어해도 백성들에게 옳은 소리를 해야 하는 것이 선지자다.

위기고 난세에는 제사장보다는 선지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너무 죄를 많이 져서 바벨론으로 가야 한다고 했을 때 거짓 선지자 아나니아는 아니다, 성전의 기명이 다 돌아올 것이다 외치니까 그 말을 너무 좋아했다.

 

사람들은 잘된다는 말을 너무도 듣고 싶다.

 

성령의 소명을 받은 성령의 선지자는 외로운 길을 가야 한다.

 

 

<말씀요약>

 

성령의 선지자는,

 

1.   하나님의 명령을 예수님을 통해 말하는 자다.

 

사도행전 7: 37/”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This is that Moses who told the Israelites, 'God will send you a prophet like me from your own people.')

 

이 말은 구약 신명기 18 15절에 똑같이 있다.

 

신명기 18: 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들을지니라”(The LORD your God will raise up for you a prophet like me from among your own brothers. You must listen to him.)

 

나와 같은 선지자는 후에 모세 이후에 세우심을 받을 선지자를 총칭하는 말이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바로 이 말을 너희가 그렇게도 대단하게 여기는 모세가 이 말을 했다는 것이다.

 

소명이 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소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고 세상으로 보냄 받는 것이 선명하게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이신 예수님이 오시면 그분이 말이 다 하나님의 말이니까 들으라고 예전에 신명기에서 예언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들리는 것이다.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였지만 오실 예수님은 실체라는 것이다.

 

신명기 18 16(현대인의 성경): “이것은 여러분이 시내 산에 모이던 날에 여러분이 직접 여호와께 구한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죽을까 봐 두려워서 다시는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고 그 무서운 불을 보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For this is what you asked of the LORD your God at Horeb on the day of the assembly when you said, "Let us not hear the voice of the LORD our God nor see this great fire anymore, or we will die.")

 

백성들도 똑같이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신명기 18 1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그들의 말이 옳도다”(The LORD said to me: "What they say is good.)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백성들이 두려운 것을 인정해 주신다.

 

너희들이 안 들리는 것도 옳다, 맞다고 하신다.

 

목장에서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맞아요, 이해가 안 되는 게 맞아요라고 해야 한다.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는 믿음이 좋은 사람만 봐도 광신 같아서 싫고 교회 다니면 재미 하나도 없을 것 같아서 싫고 그래서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 싫은 것이다.

 

스펙 좋고 돈 있는 사람이 믿음 좋은 여자라고 해서 결혼하는가, 남자라고 결혼하는가, 불신자가 돈이 많고 스펙이 좋으면 믿는 것을 싫어할 확률이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는 청년들이 안 믿는 배우자 감의 외모와 미모와 스펙을 따라서 내가 믿게 할 거야하면서 가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은 세상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는 것으로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을 자꾸 합리화 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이 거기까지니까 어떻게 하겠니?’ 하면서 우리를 양육해가신다.

 

당신은 왜 그래?’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마시고 하나님도 그들이 옳다 하신다.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중재자,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신명기 18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I will raise up for them a prophet like you from among their brothers; I will put my words in his mouth, and he will tell them everything I command him.)

 

모세가 받은 소명 중에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에게 주었는데 모세는 부분적으로 주었고 모세는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보내리니가 예수님인데,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만 믿으면 말씀을 통해서 다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말씀을 주셨기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모두가 성령의 선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임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무섭지 않고 기쁘게 들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남편이 죽는 것이 무섭고 떨어지는 것이 무섭고 암이 무서운 것이다.

 

예수님이 임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다 내게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야 되는 것이다.

 

다시 사도행전으로 돌아오면 사도행전 7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He was in the assembly in the desert, with the angel who spoke to him on Mount Sinai, and with our fathers; and he received living words to pass on to us)

 

사도행전 6장의 스데반은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려 말한 것으로 체포되었다.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신 살아있는 말씀으로 표현한다.

 

원어로 보면 3인칭 여격 대명사이기 때문에 시내산에서 그에게 말하던 그 천사이고 30절의 지난번의 불꽃 가운데서 말하던 천사와 같다는 것이다.

 

이 천사는 성육신 이전에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모세에게 말했고 예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구약의 최초 교회가 광야교회고 광야교회의 리더, 선지자가 모세고 모세는 예수님께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해주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일생 죄에 매여 종 노릇하다가 사망을 월급으로 받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죄에 매인 결박이 너무 강해서 가나안으로 가고자 할 때에 성령의 선지자인 예수님과 모세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구원의 길로 이끌려고 가나안 여정을 시작했는데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원망하고 돌로 친다.

 

그런데 성령의 선지자는 그들을 위해서 생명 내놓고 기도한다고 나온다.

 

그래서 리더인 모세를 원망하고 돌로 칠 때 이것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리더인 모세를 쓰시기 위해 미디안으로 보내 훈련시키셨다가 데려오신 것이다.

 

예수님도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히브리서 5 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Although he was a son, he learned obedience from what he suffered and, once made perfect, he became the source of eternal salvation for all who obey him )

 

모세도 미디안 광야의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만났다.

 

그러나 모세는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메시아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게 되니 얼마나 복인가?

내 인생에 예수님이 오시는 사건은 말씀이 들리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주신 자가 모세이기 때문에 모세가 말한 분이 그리스도라면 오늘 신명기에서 들으라고 했다.

 

선지자가 말하는 것을 들을찌니라, 들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 모세가 예언한 위대한 선지자가 스데반이 법정에 서기 불과 몇 년 전에 진짜 오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다.

 

모세에게는 일부분을 주셨는데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주셨기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은 말씀을 하시니까 내가 말씀을 깨닫고 안 깨닫고는 주님이 내 인생에 들어왔나 안 들어왔나, 예수님을 만났나 안 만났나?’이기에 학벌과 스펙이 하나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교회를 보면 증명이 된다.

 

(적용#1)

 

-여러분은 말씀을 들을 때 두렵나? 꿀송이인가?

 

-여러분 인생에 예수님이 오셨는가? 아직도 잘 모르겠는가?

 

말씀이 어렵다, 안 들린다하는 사람은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성령의 선지자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를 통해서 임했는데 그 다음에는 룰루랄라가 아니라,

 

 

2.   거절하는 자들에게 보냄을 받는다.

 

 

사도행전 7 39: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But our fathers refused to obey him. Instead, they rejected him and in their hearts turned back to Egypt.)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는데 들리지 않는 자는 그 마음이 하나님과 반대인 애굽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400년동안 노예 생활하던 사람들을 끌어내셨다.

 

그런데 이들은 툭하면 마음이 돌아가는 곳이 애굽이다.

 

정신이 돌아가면 마음이 돌아가고 마음이 돌아가면 몸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만나면 정신과 마음이 돌아간다

 

그래서 모든지 원천 봉쇄해야 한다.

 

몸을 꺼내왔는데 몸이 기억하는 그리움이 남아있다.

 

그들이 그리워했던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하찮은 마늘, 부추다.

 

이것 때문에 노예에서 해방된 것은 잊어버리고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다 원하는 것이 마늘, 부추다.

 

그래서 자신들을 구원해준 모세를 원망하며 후에 돌로 치기까지 했다.

 

노예로 사는 것을 구해줬는데 다시 노예로 돌아가고파 이것을 바로 노예근성이라고 한다.

 

출애굽기 25장부터 30장까지 보면 성막 지으라는 명령을 하시고 명령하셨으면 31장부터 지어야 하는데 안식일 이야기로 31장을 마무리하신다.

 

성전의 마무리는 안식이라는 것이다.

 

32장부터 지어야 하는데 32장부터 34장까지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갔는데 거기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내려오다가 돌 판을 깨뜨리고 그 벌로 3천명이 죽임을 당하고 모세는 생명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도 백성들을 살려달라는 기도를 한다.

 

3천명이 죽은 것도 모세 때문이고 살아난 것도 모세 때문이다.

 

백성들이 깽판을 치는데 성령의 선지자는 이래도 중보하고 저래도 중보한다.

 

다 죽고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이제 35장부터 성막을 짓기 시작한다.

 

가나안 행군을 시작했는데도 또 문제가 생기고 우리들의 노예 근성은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것이 끝없는 성도의 여정이다.

 

여기에 성령의 선지자가 있다.

 

신앙생활을 놓지 않도록 큐티가 끊어지지 않도록 결혼생활을 끝내지 않도록 끊임없이 성전을 지어가게 하는 목숨을 내놓은 너무 기가 막혀서 큰소리로 돌 판을 깨뜨리기도 하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해주는 이게 다 양쪽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성령의 선지자다.

 

그런데 조금만 힘들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애굽에 가면 쉼이 있을 것 같고 쉬려고 자꾸 애굽으로 몸이 돌아간다.

 

성도의 목적은 서는 것이지 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잘 서야 쉼이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것이 바로 안식이고 쉼이다.

 

그런데 예수 열심히 믿고 큐티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도 여행, 동창모임, 등산, 노래방 자체를 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전부 다 목장모임에서 나의 목적은 여행 가는 거야, 여행으로 나를 회복시켜야 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것 자체를 쉬는 것으로 생각하니까 결국 쉼이 없고 잘 서지 못한다.

 

예수 안에서 잘 놀아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아무리 대단한 곳을 가도 인생은 동반자가 좋아야 즐거운 것이다.

 

좋은 골프장, 유명한 사람이 초청해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있다면 즐겁겠는가?

 

양다리를 걸치려니까 여기서도 저기서도 즐거움이 없고 쉬지를 못하니 서지를 못한다.

 

무라타 치아키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읽는 기술이라는 책에서 자아를 초월하여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상냥함, 즐거움, 존경, 감사로 넘치며 자연스럽게 주위에 사람들이 모인다고 한다.

 

이타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먼 길 같지만 결국은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손해를 보는 사람을 도와주려 한다는 것이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가 넘치는 사람은 표정이 살아있다.

 

그래서 상냥함이 넘친다. 존경 받는다. 물어보라. 내가 얼굴이 상냥하게 보여? 그러면 상대방이 우거지로 보여, 뭐라고? 하면 그 사람은 상냥하지 못한 것이다.

 

우거지로 보여, 응 그렇구나 해야 진짜 상냥한 것이다.

 

믿기 전에 우리는 다 애굽의 노예로 살았다.

 

믿기 전에 모두 노예근성으로 사는 것이다

 

노예로 살다가 구원해주셨는데 그 연륜만큼 노예근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연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양육을 받아가면서 노예근성이 조금씩 없어지게 된다.

 

노예근성은 늘 주인이 올까 봐 무섭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야단 맞을까 봐 두렵고 그래서 늘 쉼이 없는 것이 노예다.

 

하지만 주인집 아들은 술 퍼먹고 드러누워 있어도 편하다. 내 집이니까. 그것이 내 아버지와 주인님의 차이다.

 

이 세상에 어떤 주인이 와서 일주일에 한번씩 쉬라고 하겠는가?

 

우리가 너무 유치원 수준에 있기 때문에 안식일에 쉼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이해타산 때문에 낄끼빠빠가 아니고 구원 때문에 낄끼빠빠면 복 주신다

 

이해타산 때문에 빠지기 일수 인 것이 우리다

 

예배 안 가면 다리 부러진다는 생각이 노예근성이다

 

(목사님 이야기)

 

우리는 어려서부터 잘 모른다. 그래도 몸이 기억하도록 어려서부터 주일을 지킴으로 안식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의미를 배워야지 모르고 나갔다 들어갔다만 하게 되면 사건이 왔을 때 다 넘어진다.

 

교회를 다녔는데 바람을 폈다고 넘어지고 부도가 났다고 넘어지고 대학교 떨어졌다고 넘어지고 안식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잘 서라고 안식하라는 것인데 맨날 쉬려고 여행 다니니까 서지를 못한다.

 

안식의 의미를 어려서부터 구속사적인 큐티를 들려놓으면 지금은 모르나 후에는 알리라, 사건이 오면 알리라.

 

 

3.   금송아지 우상을 물리쳐야 한다.

 

 

사도행전 7 40: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They told Aaron, 'Make us gods who will go before us. As for this fellow Moses who led us out of Egypt--we don't know what has happened to him!')

 

 

출애굽기 32 1절을 인용한 것이다.

 

모세보고 출애굽기에서는 이 모세, 곧 우리를 인도하여 낸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여러분이 제가 없는데에서 믿음이 약간 떨어지면 그 여자, 그 사람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여러분의 남편이 그러는가? 시어머니가 그러는가? 모세가 안보이니까 금새 우리들 인도한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어내라고 인본주의로 딱 바뀐다.

 

인본주의로 바뀌니까 신본주의인 모세를 딱 무시한다.

 

우상을 만들라고 십계명의 1, 2계명을 아무렇지 않게 어긴다.

 

모세는, 성령의 선지자 모세는 백성의 밥이다.

 

모세의 헌신적 기도와 봉사는 평범할 때는 그런 가보다 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원망을 집중적으로 받아내는 밥통이다. 그래서 외로운 길이다.

 

힘들면 모든 걸 여기다 탓을 하게 되어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이 있을 때는 모세여! 하면서 다 하나님 믿는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를 붙들었기 때문에 모세가 안보이니까 금새 버린다.

 

여러분이 목사인 저를 붙들면 떠나게 된다. 하나님 붙들어야 되는데 저를 붙들었기 때문에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다 떠난다. 그렇게 좋다고 했다가 다 떠난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지만 목사를 붙들라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다.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그런데 다 사람 자체가 우상이 되다 보니까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닌데 이민교회 목사님이 출타할 수 없다고 한다. 다 이유가 있지만 다녀오면 다 부목사가 교인들 데리고 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한 이주일, 한 달만 갔다 와도 다 나간다고 한다. 곳곳을 다녀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다.

 

출애굽기 32장에 금송아지 사건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광야 여정에 모세가 400년도 살았고 40년 광야 길에 지금 40일 십계명 받으러 올라갔는데 불안한 것이다.

 

모세가 안보이니까 불안하다.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하나님이라고 섬긴다.

 

그 불안함의 근원에는 바로 금송아지가 돈이다.

 

‘God is gold.’ 멀리서 보면 시력이 안 좋으면 똑같이 보인다. 그래가지고 돈이 있다. 그래서 예배도 다 불안함 때문에 드린다.

 

세상에 나가서도 교회에 와서도 다 돈 때문에 불안하게 살아간다.

 

내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다음절에 보면 내가 네 예배를 안 받았다고 하나님이 그러신다.

 

내가 늘 모든 것의 끝에 돈이 있다고 한다.

 

세상 박사님들은 이런 것들을 증명하다. 연세대 교수님의 칼럼,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나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다른 사람의 인품을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너무 중요한데 그러면 어떻게 파악하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그 사람이 말을 어떻게 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얼마나 속과 겉이 다른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말보다는 행동을 봐야 할 것 같지만 속이고자 들면 그것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들이 어떤 일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지, 그리고 어떤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지 보면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름아닌 돈이다.

 

결론적으로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알면 어떻게 돈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지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마음과 본심을 조금 지내다 보면 숨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항상 갈등과 다툼의 끝이 돈을 다루는 태도인 것을 보면 돈이 인품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돈에 인색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열등감으로 인해서 돈을 풀어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 다 문제다.

 

인색해도 문제고 낭비도 문제다.

 

우리 목사님들조차도 최고의 제사장 레위 직분, 간증들 들어보면 모두 가난해서 열등감으로 몸살을 앓다가 전부 다 큰 교회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간증을 많이 듣는다. 가난이 삶으로 쌓였기에 당연하게 여겨진다.

 

돈은 또 써보기도 해야 하는데 쓸 줄을 모르는 것도 문제다. 그렇게 되면 돈이 생길 때 또 위험하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돈의 잣대이다 보니까 그것으로 판단이 되니까 돈 때문에 불안하고 내가 말씀으로 이제 이렇게 인도를 받으면서 보이지 않는 데서 분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분별을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돈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생각하고 그래서 노름 해보면 그 사람 성격 금새 나타난다고 한다.

 

게임을 해보면 금새 나타난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분별하는 가장 큰 것이다.

 

배우자를 선택해도 그렇다.

 

 

(적용 #2)

 

-여러분의 돈 씀씀이는 인색한가? 낭비인가?

 

옆에 배우자 보고 물어보라, 너무 인색해도 안되고 너무 낭비해도 안 된다.

 

치우쳐 있는 사람은 다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7 41: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That was the time they made an idol in the form of a calf. They brought sacrifices to it and held a celebration in honor of what their hands had made.)

 

 

모세가 성막 지을 생각을 하고 금과 은과 놋의 사용처를 알아서 내려오고 있는데 그것을 못 기다리고 아론은 금 고리를 받아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40일을 못 기다리고 목장에서 처방을 하면 답답증이 나서 적용을 못한다.

 

기다리지 못한다. 기다려라, 돌아올 것이다, 이혼하지 말라 이런 이야기를 못 기다린다.

 

자신이 만든 방법이 지름길인 것 같아서 흥신소를 갖다 붙이고 내가 가서 말하고 끝내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맨날 가서 다된 밥에 코만 빠뜨리고 오는 역할을 여러분들이 한다.

 

목장 이야기를 좀 들어야 하는데 금과 은이 없어지는 방법을 쓴다.

 

성막 짓는데 다 써야 될 금과 은인데 쓸데없는 금송아지 만들어서 다 가루로 사라진다. 나중에 빻아야 되니까.

 

내 욕심이 들어가는 것은 다 쓸데없는 것이 된다.

 

돈 문제에 대해서 해결이 안되고 돈이 너무 좋은 것이다. 해결이 안된 것이다. 너무 아까운 것도 해결이 안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나중에 결산해보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손해 보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아까워서 돈은 가졌는데 아이들은 다 망했고 돈은 가졌는데 예수도 안 믿었고 병에 걸렸고 쓸 사람이 없다.

 

이렇게 돈은 벌었는데 마지막에 보면 결산할 때 손해를 보는 것이다.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분별하기 위해서 큐티하고 말씀을 듣고 응답 받는 구조 속에서 살아야 한다.

 

아론같은 잘못된 지도자 한 사람이 교회와 집안을 말아먹고 목장과 회사를 말아먹는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라는 것이 아니라 순종 잘 하라는 것이다

 

우리들교회도 큐티를 하니까 돌 판을 깨뜨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중보기도를 하니까 왔는데 사람들 말에 휘둘렸다면 얼마나 수많은 문제가 생겼겠는가?

 

그런데도 이런 아론과 아들들에게 후에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라고 했다.

 

하나님 명령대로 위임했더니 그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불 심판을 받고 금새 죽는다.

 

 

이스라엘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바벨론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포로로 가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전쟁이 안 나게 하도록 하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 가야 될 때는 가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전쟁이 안 나기 위해서 몸부림치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론을 세우라고 한다.

 

항상 하나님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얼마나 어려운가? 분별이 안 된다.

 

욕심이 없어야 분별이 된다.

 

직장을 잃고 어렵다가 기도해서 취직이 되었는데 금새 금고리 차고 이러면 되겠는가? 이렇게 애굽을 사모한다.

 

(적용 #3)

 

-하나님보다 여러분의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손으로 만든 것을 하나님보다 기뻐하는 것이 너무 많다.

 

 

4.   버려두는 것이 있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도 안 돌아오고 있다.

 

내가 버려두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때가 될 때까지 버려둘 수도 있어야 된다.

 

사도행전 7 42: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But God turned away and gave them over to the worship of the heavenly bodies. This agrees with wha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prophets: "Did you bring me sacrifices and offerings forty years in the desert, O house of Israel? )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다.

 

금송아지도 섬기게 하고 땅에서도 섬기고 하늘과 땅의 우상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40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고 놀라운 이야기를 하신다.

 

하나님이 외면하셨는데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40년동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고 하는가?

 

예배를 안 드리고 제물을 안 드렸다, 열심히 드렸다, 어떻게 안 드렸다고 그러겠는가?

 

유대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율법과 회향을 드렸지만 너희들이 근채의 십일조는 드렸지만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는 것이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신앙과 감사함이 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물에 대해서는 아예 드리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고 하신다.

 

그것은 이사야 1장에도 나오듯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너희가 금송아지 섬기면서 이렇게 하늘의 레판 신까지 섬기면서 나한테 희생을 드렸다고, 제물을 드렸다고 하나님이 거지예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본문이 출애굽기 32 6절도 이튿날에 섬기기 위해 만든 금송아지에 절한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이러는 것이다.

 

그렇게 금송아지 섬기면서도 일찍 일어나서 새벽 기도하고 회개하는 번제를 드리고 형제가 연합하는 화목제를 드리고 온몸을 불사르게 구제하고 예수 천당을 외치고 그러면서 먹고 마시며 뛰노는 성적 문란까지 행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다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모두 모두 서로 서로 교회를 다니면서 속는다.

 

아론하고 금송아지 섬기고 놀러 다니면서 나는 회개도 하고 너무 화목하게 지내고 번제와 화목제 드린다고 한다.

 

금송아지 섬기는 것은 잘 먹고 마시면서 자기 죄 수치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스데반 당시 유대 지도자들도 똑같은 양상이었다.

 

이 이야기를 스데반이 한 것이다.

 

가인의 뜻이 획득이고 아벨의 뜻은 허무라는 뜻이다.

 

이 땅에서 모든 획득의 결과는 허무일 뿐 이라는 것이다.

 

전혀 진짜 알지 못하는 다른 씨 셋이 와야 하는 것이다.

 

생각지 못한 다른 씨는 시아버지(유다)와 동침한 며느리(다말) 이런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해간다는 것이다.

 

행마다 절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허를 계속 찌르고 계신다.

 

사도행전 7 43: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You have lifted up the shrine of Molech and the star of your god Rephan, the idols you made to worship. Therefore I will send you into exile' beyond Babylon)

 

 

, 우리는 스타 너무 좋아한다.

 

그들은 암몬 족속의 민족신인 몰록과 앗수르인들의 우상인 레판을 비롯해서 여러 우상들을 숭배했다.

 

여기서 몰록 숭배는 유명한 자기 자녀를 태워 바치는 의식이 동반되었다.

 

자식 우상이라는 것이 결국 자식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우상이라는 것이 기복이니까 자기를 위해서 자식을 불태우는 것이다.

 

그것이 자식 사랑으로 둔갑이 되어서 이기적인 자식 사랑이 자기 사랑의 끝판왕이다.

 

자기를 위해서 자녀를 불태우면서 나는 자녀를 사랑한다고 착각한다.

 

자식이 죽어가는지도 모른 채 우상의 제물로 불태우는 것이다.

 

증거 장막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몰렉 우상도 같이 가지고 다녔다는 것이다.

 

하늘의 별판을 가지고 만들면서 내가 아이를 이렇게 출세시키고 돈을 많이 벌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섬기니까 너희들이 나에게 예배 드린 적이 40년 동안에 한번도 없다, 제물을 드린 적도 한번도 없다, 금송아지 섬기면서 헌금 했다고요했는데 하나님이 희생과 제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신다.

 

내가 복 받으려고 헌금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헌금 하나도 안 받으신다고 한다.

 

헌금은 복 받으려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으로 드려야 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70년동안 포로생활 하면서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

 

증거장막(십계명)하고 몰렉 우상을 같이 가지고 갔다.

 

그들이 증거 장막과 말씀과 몰록을 같이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자식 우상, 고향 우상 다 같이 가지고 다닌다.

 

자식우상, 고향우상을 함께 섬기는 행위는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하신다.

 

주님은, 40년동안 신앙생활 해 왔는데 내가 네 예배를 안받겠다고 하시는 것을 성령의 선지자가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다들 얼마나 듣기가 싫겠는가?

 

아론은 모세만큼 고난도 없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도 없었다.

 

남 보기에는 착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는 백성 옆에서는 백성 말을 따르고 모세 옆에서는 모세 말을 따르고 잘못하면 모세 옆에서 변명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심지가 굳지 못해서 유혹에 약하다.

 

모세는 미디안의 40년을 거쳤다.

 

인격적인 리더십은 성령과 말씀과 고난과 훈련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지 성품에 의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사님 이야기)

 

사람의 종 노릇하던 습관으로 말 못하는 것이 많다.

 

 

스데반을 심문하는 사도행전의 유대인들도 AD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쫓겨나서 각국으로 흩어지게 돼서 없어졌다.

 

그런데 그랬던 유대인들이 시온니즘(Zionism)으로 1948년에 모여서 유대 나라를 형성했으니까 이건 기적인 것이다.

 

별 인생이 없다.

 

하나님께서 죄 중에서 가장 미워하는 죄가 우상숭배다

 

언급했듯이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하나님보다 더 기쁘게 섬기는 것도 우상이다.

 

자녀도 있을 것이고 남편, 아내, 돈 다 있을 것이고 그렇게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니까 정욕대로 그 마음을 버려두는 것이다.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저주인 것이다.

 

정욕대로 살게 내어 버려둠을 당하는 것,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대로 살게 내어 버려둠을 당한 자, 상실한 마음대로 살게 내어 버려둠을 당한 자, 로마서 1장에 다 나와있다. 이것이 가장 큰 저주다.

 

그래서 모세가 살인자로 간 것이 신의 한 수’ (God’s Providence)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상을 숭배하면 그리스도도 진리도 교회도 대적하는 자가 되고 만다.

 

지금 내가 자식이 제일인데 뭐 하지 말라고 하면 교회를 대적할 것이다.

 

결혼도 막으면 대적할 것이다.

 

(적용 #4)

 

-여러분이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고, 정욕대로 살게 버려둔 자는 아닌가?

 

-무엇 때문에 버려둠을 당했는가? 자식인가? 식구들인가? 돈인가? 건강인가? 명예인가?

 

 

(공동체 고백)

 

 

<Epilogue>

 

성령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예수님을 통해서 말하는 자다.

 

그리고 우리는 거절하는 자들에게 보냄을 받는다.

 

다들 목자를 원망하고 돌로 치려고 한다.

 

처방을 해도 돌로 치려고 한다.

 

그래도 목숨을 걸고 중보하는게 성령의 선지자다.

 

성령의 선지자는 금송아지 우상을 물리쳐야 한다.

 

모든 것의 끝에 돈이 있다.

 

목장에서도 싸우는 이유도 다 돈이다.

 

안될 때는 버려둘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지혜롭게 생각하면서 모두가 성령의 선지자가 되어서 우리가 한국교회에서 우리들교회가 성령의 선지자가 되어서 각 곳을 살려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주일말씀 어록>

 

 

소명이 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소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고 세상으로 보냄 받는 것이 선명하게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들리는 것이다.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였지만 오실 예수님은 실체라는 것이다.

 

모세가 받은 소명 중에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받은 것이다.

 

구약의 최초 교회가 광야교회고 광야교회의 리더, 선지자가 모세고 모세는 예수님께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해주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일생 죄에 매여 종 노릇하다가 사망을 월급으로 받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내 인생에 예수님이 오시는 사건은 말씀이 들리는 사건이다.

 

성경은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말씀이 어렵다, 안 들린다하는 사람은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는데 들리지 않는 자는 그 마음이 하나님과 반대인 애굽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다.

 

정신이 돌아가면 마음이 돌아가고 마음이 돌아가면 몸이 돌아가는 것이다.

 

몸이 만나면 정신과 마음이 돌아간다

 

노예로 사는 것을 구해줬는데 다시 노예로 돌아가고파 이것을 바로 노예근성이라고 한다.

 

가나안 행군을 시작했는데도 또 문제가 생기고 우리들의 노예 근성은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것이 끝없는 성도의 여정이다.

 

잘 서야 쉼이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것이 바로 안식이고 쉼이다.

 

 

이타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먼 길 같지만 결국은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손해를 보는 사람을 도와주려 한다는 것이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가 넘치는 사람은 표정이 살아있다.

 

믿기 전에 모두 노예근성으로 사는 것이다

 

노예로 살다가 구원해주셨는데 그 연륜만큼 노예근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연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양육을 받아가면서 노예근성이 조금씩 없어지게 된다.

 

노예근성은 늘 주인이 올까 봐 무섭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야단 맞을까 봐 두렵고 그래서 늘 쉼이 없는 것이 노예다.

 

 

우리가 너무 유치원 수준에 있기 때문에 안식일에 쉼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이해타산 때문에 낄끼빠빠가 아니고 구원 때문에 낄끼빠빠면 복 주신다

 

이해타산 때문에 빠지기 일수 인 것이 우리다

 

예배 안 가면 다리 부러진다는 생각이 노예근성이다

 

안식의 의미를 어려서부터 구속사적인 큐티를 들려놓으면 지금은 모르나 후에는 알리라, 사건이 오면 알리라.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지만 목사를 붙들라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다.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그 불안함의 근원에는 바로 금송아지가 돈이다.

 

‘God is gold.’란 말은 멀리서 보면 시력이 안 좋으면 똑같이 보이기에 그렇다. 그래가지고 돈이 있다. 그래서 예배도 다 불안함 때문에 드린다.

 

세상에 나가서도 교회에 와서도 다 돈 때문에 불안하게 살아간다.

 

모든 것의 끝에 돈이 있다(---).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알면 어떻게 돈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지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마음과 본심을 조금 지내다 보면 숨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항상 갈등과 다툼의 끝이 돈을 다루는 태도인 것을 보면 돈이 인품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돈에 인색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열등감으로 인해서 돈을 풀어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 다 문제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돈의 잣대이다 보니까 그것으로 판단이 되니까 돈 때문에 불안하고 내가 말씀으로 이제 이렇게 인도를 받으면서 보이지 않는 데서 분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분별을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돈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생각하고 그래서 노름 해보면 그 사람 성격 금새 나타난다고 한다.

 

내 욕심이 들어가는 것은 다 쓸데없는 것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나중에 결산해보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손해 보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분별하기 위해서 큐티하고 말씀을 듣고 응답 받는 구조 속에서 살아야 한다.

 

아론같은 잘못된 지도자 한 사람이 교회와 집안을 말아먹고 목장과 회사를 말아먹는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라는 것이 아니라 순종 잘 하라는 것이다

 

항상 하나님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얼마나 어려운가? 분별이 안 된다.

 

욕심이 없어야 분별이 된다.

 

내가 손으로 만든 것을 하나님보다 기뻐하는 것이 너무 많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신앙과 감사함이 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물에 대해서는 아예 드리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고 하신다.

 

금송아지 섬기는 것은 잘 먹고 마시면서 자기 죄 수치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행마다 절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허를 계속 찌르고 계신다.

 

자식 우상이라는 것이 결국 자식을 죽이는 것이다.

 

우상이라는 것이 기복이니까 자기를 위해서 자식을 불태우는 것이다.

 

그것이 자식 사랑으로 둔갑이 되어서 이기적인 자식 사랑이 자기 사랑의 끝판왕이다.

 

자기를 위해서 자녀를 불태우면서 나는 자녀를 사랑한다고 착각한다.

 

자식이 죽어가는지도 모른 채 우상의 제물로 불태우는 것이다.

 

내가 복 받으려고 헌금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헌금 하나도 안 받으신다고 한다.

 

헌금은 복 받으려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으로 드려야 한다.

 

자식우상, 고향우상을 함께 섬기는 행위는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인격적인 리더십은 성령과 말씀과 고난과 훈련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지 성품에 의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종 노릇하던 습관으로 말 못하는 것이 많다.

 

별 인생이 없다.

 

하나님께서 죄 중에서 가장 미워하는 죄가 우상숭배다

 

언급했듯이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하나님보다 더 기쁘게 섬기는 것도 우상이다.

 

자녀도 있을 것이고 남편, 아내, 돈 다 있을 것이고 그렇게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니까 정욕대로 그 마음을 버려두는 것이다.

 

정욕대로 살게 내어 버려둠을 당하는 것,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대로 살게 내어 버려둠을 당한 자, 상실한 마음대로 살게 내어 버려둠을 당한 자, 로마서 1장에 다 나와있다. 이것이 가장 큰 저주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2. 22. 19:18

[우리들교회 2020 29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7: 29~ 37/성령의 소명)]

 

 

<사도행전 7:28~37>

29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Prologue>

 

번성과 학대를 당할 때 구원자를 주시고, 한 사람의 원통함을 볼 때 성령의 번성이 주어진다고 했다.

 

이런 성령의 번성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기에 성령의 소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은 성령의 소명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말씀요약>

 

1.    나그네 인생임을 인정해야 한다.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를 죽이려느냐’(28)는 같은 동족의 말에 모세는 두려운 마음으로 미디안 광야로 도주했다.

 

하지만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원수를 갚으려고 재기의 칼날을 갈지 않았다.

 

신자는 믿는 자와의 분쟁이 가장 가슴 아프다

 

양 할아버지인 바로와 자기의 히브리 태생을 저주하지도 않았다.

 

대신 모세는 살인자로, 나그네로 살았다.

 

이렇게 살인자로 살아가게 하신 것이 신의 한 수다.

 

불의한 것을 참지 못하는 다혈질의 성격인 모세가 온유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훈련이 필요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혼인하고 목동이 되어, 양 무리를 먹이고 이리를 쫓는 이런 밑바닥 인생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양치기를 하면서 나그네 되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다.

 

환경이 겸손해지니 왕자였던 것도 억울했던 것도 모두 잊어버리고 별 인생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세는 살인자이기에 죄인의 심령이 되었다.

 

그 어떤 인간의 위로도 위로가 안 되는 그때, 내 죄를 사해주실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인자 주제에 양치기라도 감사히 생각하며 아들을 둘이나 낳으며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다.

 

첫째 아들 게르솜내가 타국의 객이 되었다.’이고 둘째 아들 엘리에셀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는 뜻이다.

 

, 모세는 바로의 두려움에서 온전히 벗어나 양치기를 천직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이렇게 나그네 인생길임을 알 때 별 인생이 없고, 두려움의 원인이 바로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단 것을 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나그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자기가 왕자였음을 잊고 처절하게 자기를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모세는 미디안 족의 딸과 혼인했고 살인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보여줄 것이 없는 초라한 인생이 되었다.

 

그러나 이젠 그것이 모세에게 상관없게 됐다.

 

이것이 바로 나그네 인생임을 아는 성령의 소명이고 축복이다.

 

(적용 #1)

 

-불신자와 신자의 말 중에 어떤 말이 더 상처가 되나?

 

-나그네 인생임을 인정하고 광야 같은 오늘 인생을 영원히 살 것임을 믿고 잘 살고 있나?

 

2.    40년이 차는 거룩을 경험해야 합니다.

 

히브리 민족이 번성했다가 핍박을 받는 시간과 모세의 광야 생활 40년이 맞아떨어져간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계속 보고 계셨다.

 

이제 40년간 왕자 생활에 이어 두 번째 양치기 생활40년이 찼다.

 

모세가 동족을 돌아볼 생각이 났어도 40년간 왕자로 살았기 때문에 40년 동안 양치기로 훈련을 받았다.

 

애굽의 왕자가 미디안의 양치기를 천직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을 잘하는 자를 찾아가고 부르신다.

 

모세의 영적 나이가 40년이 된 때는 80세의 노인이었다.

 

그런데 영적 나이가 차니까 부르시는 것이다.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불꽃 가운데서 천사가 보였다고 한다(30).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항상 그 사람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환경, 사람으로 말씀하신다.

 

모세는 양을 치며 가시나무를 많이 봤다.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으면 금세 꺼져야 하는데 꺼지지가 않았다.

 

, 모두가 포기한 환란 가운데 불이 붙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심판의 하나님이시지만 은혜의 복음으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은 은혜와 복음으로 우리를 불붙은 떨기나무가 되게 하신다.

 

80살이 된 모세도 가시나무처럼 생명이 사라진 것 같지만 불이 붙었다는 뜻이다.

 

모세를 40년간이나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셨다가 이제 이렇게 찾아오셨다.

 

40년의 광야 훈련이 끝나고 모세가 달라진 점은 자신을 기적의 주인공으로 여기지 않고, 알아보기 위해 주님께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다가가는 적용을 하며 순종해야 깨닫게 하신다.

 

대단한 조상들과 모세를 비교하며 너에게도 같은 하나님이라고 하신다(32).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하셨던 약속은 가나안 땅을 영원한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은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약속의 성취는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그 가나안 땅으로 이끄는 소명을 주시려고 조상의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소명이 임하는 것이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내게 주시는 말씀이니 그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모세가 무서워서 바라보지 못하니까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신발을 벗으라고 하신다(33).

 

모세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니 바로 그곳이 거룩한 곳이다.

 

선택하신 종을 부르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방 미디안 땅에 임하셔서 그곳을 거룩한 곳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이고 성전이다.

 

말씀이 들리면 내 안에 주님, 주님 안에 내 자신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다

 

구원 받게 되면 한 사람의 궁핍함과 애통함이 체휼 되는 것인데 그것이 소명의 마음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도와주기까지 밑바닥을 가는 것이 훈련이다

 

노예로 살아보지 못해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야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거룩의 훈련이다

 

비 본질적인 것이 일상에 즐비한 인생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

 

이혼사유는 남자의 3대 특징인 (1)정욕 (2)탐식 (3)나태와 연결되어 (1) (2)성 그리고 (3)청소라고 한다

 

남편에게 잘하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잘하는 것이다

 

망함을 인정하고 청소하고 택시 운전하는 것이 거룩과 소명의 자리다

 

소명의 첫 걸음이 지금 있는 그 자리다

 

어떤 것이든 적용하면 거룩한 곳이 된다

 

스데반은 약속의 땅이나 예루살렘 성전만이 거룩한 곳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계속 이렇게 강조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항상 신발을 벗고서야 할 거룩한 성전임을 알아야 한다.

 

(적용 #2)

 

-가시나무 같은 곳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고 있나? 바라만 보고 있나?

 

 

3.   세상으로 보내신다.

 

애굽에서 말과 일에 능했던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 받은 이유는 다시 애굽으로 보내져야 했기 때문이다(34).

 

다시 쓰임 받는 인생이 되려면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전도를 안 하면 끼리끼리 뭉쳐 다니면서 흘러 떠내려 가는 고인 물’, ‘썩힌 물인생이 되는 것이다

 

모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가시나무 떨기 속광야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그를 지도자로 인정한다.

 

형제의 고난은 성령의 소명을 주시려고 베풀어주시는 신의 한 수다

 

금 그릇으로는 못 섬기니 깨어지고 또 깨어진 그릇으로 하나님이 세우신다

 

모세는 '속량하는'로 예수님을 예표한다.

 

우리 죗값을 대신 치르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자유를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속량'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에 빠진 인류를 건지시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것처럼, 모세는 애굽의 압제에서 탄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양치기를 하며 완전히 깨어진 그를 하나님이 세우셨다.

 

그리고 40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하셨다(36).

 

모세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옮기시고 인도하셨다고 스데반은 강조했다.

 

스데반은 지금 공회에 모여 자기 변론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인정하는 모세가 40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면서 그의 백성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말함으로, 공생애 3년 동안 모세를 능가하는 여러 가지 각종 기사와 표적을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보냄 받은 구속자였다는 사실을 계속 밝히고 있다.

 

모세의 인생 중 이스라엘의 출애굽 과정과 직접 관련된 이 마지막 40년은 나이도 학벌도 아닌 철저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간 기간이었다.

 

성경은 늘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힘이 다 빠지고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나는, 철저히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하신 주님만 계시는 기간이었다.

 

그래서 훈련은 참 중요하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주는 인도자, 중보자로 자기 민족을 자유로 인도한 소명자로서 마지막 40년을 살았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부르심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실 때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소명'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어떤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든지, 거기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자 하는 신의 한 수다.

 

오늘 내 환경은 신의 한 수다.'

(적용 #3)

-성령이 소명으로 어느 세상으로 보냄 받고 있나? 직장, 가정, 자리, 물질?

 

인정 받지 않는 그 환경으로 보내심이 신의 한 수다

부르심 받고 세상에 보냄 받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Epilogue>

 

환경이 겸손해지니 왕자였던 것도 억울했던 것도 모두 잊어버리고 별 인생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을 잘하는 자를 찾아가고 부르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항상 그 사람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환경, 사람으로 말씀하신다.

 

심판의 하나님이시지만 은혜의 복음으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은 은혜와 복음으로 우리를 불붙은 떨기나무가 되게 하신다.

 

40년의 광야 훈련이 끝나고 모세가 달라진 점은 자신을 기적의 주인공으로 여기지 않고, 알아보기 위해 주님께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다가가는 적용을 하며 순종해야 깨닫게 하신다.

 

약속의 성취는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소명이 임하는 것이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내게 주시는 말씀이니 그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이고 성전이다.

 

말씀이 들리면 내 안에 주님, 주님 안에 내 자신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다

 

구원 받게 되면 한 사람의 궁핍함과 애통함이 체휼 되는 것인데 그것이 소명의 마음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도와주기까지 밑바닥을 가는 것이 훈련이다

 

노예로 살아보지 못해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야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거룩의 훈련이다

 

비 본질적인 것이 일상에 즐비한 인생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

 

망함을 인정하고 청소하고 택시 운전하는 것이 거룩과 소명의 자리다

 

소명의 첫 걸음이 지금 있는 그 자리다

 

어떤 것이든 적용하면 거룩한 곳이 된다

 

다시 쓰임 받는 인생이 되려면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전도를 안 하면 끼리끼리 뭉쳐 다니면서 흘러 떠내려 가는 고인 물’, ‘썩힌 물인생이 되는 것이다

 

모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가시나무 떨기 속광야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그를 지도자로 인정한다.

 

형제의 고난은 성령의 소명을 주시려고 베풀어주시는 신의 한 수다

 

금 그릇으로는 못 섬기니 깨어지고 또 깨어진 그릇으로 하나님이 세우신다

 

모세는 '속량하는'로 예수님을 예표한다.

 

우리 죗값을 대신 치르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자유를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속량'이라고 한다.

 

모세의 인생 중 이스라엘의 출애굽 과정과 직접 관련된 이 마지막 40년은 나이도 학벌도 아닌 철저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간 기간이었다.

 

성경은 늘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힘이 다 빠지고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나는, 철저히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하신 주님만 계시는 기간이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부르심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실 때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소명'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어떤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든지, 거기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자 하는 신의 한 수다.

 

오늘 내 환경은 신의 한 수다.'

인정 받지 않는 그 환경으로 보내심이 신의 한 수다.

부르심 받고 세상에 보냄 받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2. 18. 10:39

[우리들교회 2020 22일 주일예배 말씀요약(사도행정 7: 17~ 29/성령의 번성)]

 

 

 

<사도행전 7:17~29>

17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9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21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27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29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Prologue>

Sanhedrin 공회원들은 율법과 성전에 대해서 옛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흘러 가고 있다고 계속 변증하는 내용이다

 

오늘은 그들이 추앙하는 역대 최고의 지도자 율법의 대표 모세의 이야기다

 

성령의 떠남은 아브라함 이야기이고, 성령의 통치는 요셉이야기다

 

성령의 통치를 잘 받고 이 세상에서 잘 떠나면 성령의 번성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성령의 번성을 말해 줄 모세에 대해 살펴 보겠다.

 

 

<말씀요약>

 

성령의 번성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인데 17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 20절에 모세가 그 때에 낳는데 23절에는 나이 80세가 되어 인데 다 같이 때를 말하고 있다.

 

 

1.   세상에서 번성과 학대의 때를 허락하신다.

 

 

약속하신 때가 6절과 7절이었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며 400년 동안 종 살이 하며 그 후에 가나안에 들어 가리라 하신 것이 창세기의 약속이었다

 

그 약속은 애굽에 보내셔서 핍박이 일어날 때 까지는 번성하게 하셨기에 그 당시에는 막막하고 먼 후일에 성취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때를 아는 것이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창세기에 개인구원은 50장에 걸쳐서 3족장의 구원이야기를 길게 다룬다

 

이제는 군대로 나오는 나라의 구원을 다루고 있다

 

즉 창세기가 끝나고 출애굽기다

 

때가 찬 경륜에 따라 히브리 민족이 애굽에 들어간 지 약 400년 뒤에 역사의 정면에서 그대로 약속이 성취되었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이삭-야곱은 너무 소수라서 너무 힘들게 하면 다시 갈데아 우르 옛 고향으로 돌아갈까 봐 주님이 조심조심 다루신다

 

300여년동안 골라낸 사람이 겨우 75명이다

 

애굽에 갔는데 이 75명의 가족이 애굽의 고센 땅에서 가족까지 200만명이 넘게 대 민족으로 번성을 시키신 것이다

 

300년에 75명인데 400년에 200만 명이었는데 정확한 숫자는 남자가 60 3550명이니까 남자 숫자로만 계산해도 만 배가 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번성을 주신 것은 옛날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빨리 응답하고 계신 것인데 400년 만에 200만이 믿게 되려면 얼마나 빨리 응답하신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지 않으니 믿지 않는 것이데 십자가는 지혜 지혜는 타이밍이다.

 

예수를 잘 믿으면 다 하나님의 때인 것이다

 

한 사람을 전도하느라 14년 걸렸는데 똑같은 횟수로 우리들 교회로 10,000명이니까 10,000배로 똑같지 않나?

 

저나 여러분이나 똑같다


번성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이 백성을 훈련시켜야 하기 때문에 아주 강퍅한 왕을 붙이신다

 

요셉 때문에 흉년을 지낸 것을 잊어버린 적대적인 애굽 원주민으로 구성된 왕조가 들어섰다

 

바로 왕이 무거운 짐을 지웠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왕조를 대적할까 봐 무거운 짐을 지워 아이들을 죽게까지 했다


애굽은 줄어드는데 노예 민족을 폭발적으로 늘어나니까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곤궁한 집단 출산율이 풍요한 집단 출생률을 앞서 간 것이다


우리나라도 가난할 때는 출산율이 높았는데 지금은 풍년이 되어 인구 절벽 시대를 살고 있다

 

애굽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최고의 민주주의 강대국이었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기다리고 참아주는 일은 하나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학대를 받는데 출애굽기를 다 읽으면 살아나니까 고난이 애굽의 세상 사람이 근심하는 것이다


학대하는데 왜 살아나는가 회개하지 않고 살아나는 것만큼 고역을 시키는 것이다

 

내가 학대 받을수록 창성해 지니까 고난이 축복인 것이다

 

내가 학대 받을수록 창성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오묘한 신비다

 

나에게 오는 하나님의 훈련에 순종만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무릎 꿇게 하는 쓴 약이 학대인 것이다

 

노예화 정책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약속의 땅으로 떠나게끔 한 약이 된 셈이다


성도가 악한 세상으로부터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최고의 발판인 것이다

악한 세상에서 고난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잊힌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해석이 안 되는 것은 죽은 아이들인데 하나님이 아시고 이 일은 만세 전부터 계획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죽은 아이들도 구속사를 이루는 한 역할을 한 것이다

 

모세도 구속사를 이루는 역할이다.

 

이 세상에서 백을 살아도 하나를 살아도 잠깐인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오래 살아야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여러분들이 천국이 몰라서 그것을 저주라고 이야기한다

스데반이 이것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인데 번성하는 일과 학대 받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민족까지 역사의식에 눈을 뜨라는 것인데 모든 것이 성경하고 맞아떨어져서 무릎을 치는 것이다

 

애굽은 부자지만 이스라엘은 학대 받고 있는데 정말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을 참 어려워하더라


이스라엘도 애굽의 고센 땅 가두어 놓았으며 이 세상이 요셉 같은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슬픈 것인데 그걸 못 참아서 내가 훈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존심 때문에 훈련 받도록 하시는 것인데 가장 좋은 환경이 치사함을 당하는 훈련이다

 

인간은 자존적인 교만이 있기 때문에 훈련 받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치사한 훈련을 받는 것인데 백 프로 준 은혜를 모르고 치사한 학대를 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은혜라고 볼 수 있다

 

치사한 학대가 번성의 지름길이다

 

(적용 #1)

 

-세상의 번성을 맛보고 있나?  학대를 당하고 있나?

 

2.   구원자를 주신다.

 

학대를 당하고 있을 떼 모세가 나왔다

 

고역으로 인해 부르짖게 되고 학대 때문에 부르짖게 하신다

 

그래서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인 것이다

 

예수를 믿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카이로스의 때, 즉 하나님의 때인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세계적인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리 응답하고 계신데도 지금 응답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때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믿음으로 아이를 죽이는 그 시대에 모세의 부모가 아름다움을 보았다


본질 자체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합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인데 선한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거면 구원인 것이다


이 땅에 구원보다 선한 것은 없다.

 

구원을 생각하며 아기 모세를 석 달을 길렀다

 

이것은 윗 권세에 이기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반역한 게 아닌 이타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구원을 위해 생각해보면 그 마음을 성령님이 주셨고 구원 때문에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모세 부모가 모세의 아름다움과 준수함을 본 것처럼 학대의 그 때에 모세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본질 자체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은 선한 것이 구원의 계획이기에 그렇다

 

이타적으로 목숨도 내 놓는 순종이고 윗 질서에 대한 순종이지만 세 달을 길렀더니 영적 자녀의 준수함이 보인다

 

세달 동안 양육하고 애굽에서는 40, 미디안에서 40년 세월이 흘렀지만 광야에서 40년은 때마다 다른 것인데 어떤 때는 4, 어떤 때는 40년인 것이다

 

절박한 마음으로 절박한 때에 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성령의 번성인 것이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모세의 부모는 살리기 위해 버렸던 것인데 버려진 후에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스데반이 모세가 최고의 지도자이지만 모세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스테반의 변증이다

 

부모는 죽이지 않고 너무 사랑하는데도 버렸지만 계속 주시했고 바로의 딸의 유모로 갔고 주시했다

 

우리도 내 부모가 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버려진 사람일수도 있다

 

자녀사랑은 본능인 것인데 내가 예수를 믿는다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도 나를 죽이지 않고 낳아서 예수 믿게 해 주신 부모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부모를 아직도 원망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번성할 수 가 없다

 

내가 믿은 것에 대한 감사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한 것이다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낳아준 것이 가장 큰 것인데 왜냐하면 내가 창조주를 믿었으니까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태양의 도움을 알게 되었는데 촛불의 도움이 없다고 난리를 친다면 태양을 부정하는 것이다

 

부모가 하는 것이 없어도 부모는 부모인 것인데 부모는 왜 부모냐? 하면 낳아 주었기 때문에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그러니까 물론 부모도 예수가 없으니 철들이 안 들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니겠나?

 

훌륭한 부모 밑에서 예수 믿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초대는 다 힘든 것이다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아도 택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키워주셨다

 

모세란 이름은 부모가 지은 것이 아니라 공주가 지은 것으로 물에서 건짐 받은 자라는 뜻이다.

 

바로의 권세의 의해서 버려졌는데 바로의 권세로 건짐 받아 바로가 보호자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신묘막측 함이다

 

폭군도 보호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번성이다.

 

폭군도 구원을 돕는 것인데 앞으로 애굽에 가서도 백성을 구해내야 하기 때문에 바로 왕을 상대해야 하니까 40년간 배우게 하셨다

 

모세도 애굽에서 40년간 배우게 하신 것은 바로(Pharaoh)하고 담판을 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인 것이다

 

모세와 마찬가지로 이승만 대통령도 해방 전 미국 명문대학 졸업하게 하시어 미국과 담판 짓도록 미국을 배우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능한 애굽에서의 40년 모세인생을 짧게 두줄 언급했다

 

말이 능한 데 혀가 둔한 모세는 후에 출애굽기를 보면 자기 혀가 궁하여서 나는 감당하지 못한다고 한다

 

세상 말과 성령의 말이 다른 것이다

 

세상에 능하면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적용 #2)

 

-내가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해서 성령의 번성을 경험하나? 혀가 둔하여 성령의 번성을 경험하나?

 

 

3.   지체를 돌볼 생각이 나는 것이다.

 

예수님도 순종함을 배웠다고 스데반은 계속 변증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가 처음부터 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40년은 모세의 한 텀(term)주기를 보는 것이다

 

애굽에서의 40년과 미디안에서 양치기로 분수령처럼 낮아지는 체험의 40년이다

 

성령은 때가 참 중요한 것인데 거기서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다시 또 광야의 때가 있는 것인데 이제 또 한 term이 끝난 것을 기억 하셨더라, 방문 하셨더라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때는 400년이고 200만이 모이는 큰 무리 라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의 노역을 보면서 자기가 왕자로 살고 싶지 않았겠나?

 

애굽과 너는 다른 족속이다 라는 것을 들었는데 곧 자신의 정체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믿음의 부모가 중요한 것이란 이런 환경에서 믿음의 교육을 한 것이 모세에게 들어 간다

 

결국 40세가 되니 형제자손을 돌 볼 생각이 들은 것인데 40세에 이 마음을 주셨다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애굽(미국)에서 애굽 고급교육(프린스턴대학교 박사)까지 하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볼 마음을 가진 것이다

 

모세가 죽인 동기가 나오는 데 히브리 민족 대표를 상징하는데 애굽인으로부터 핍박 받는 히브리 인 한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전도와 상담과 방문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잘못되었더라 하더라도 한 사람 때문에 역사가 되었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 살인을 하고 도망을 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너무 중요하다.

 

같은 민족인 히브리인이 고욕을 버거워하다가 심하게 얻어맞고 학대를 받은 사람이었기에 일과 말이 능한 모세의 자기 생각인 것으로 나를 통해 히브리인을 구원한다 는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을 하셔야 하는 것이었다

 

목장에서 사람을 다루지 못한 것은 각각 믿음의 분량이 있는 것이기 때문인데 그 사람을 처 죽이면(정답으로 마구 들이대면) 되겠나?

 

이렇게 쳐죽였는데 애굽사람을 쳐죽인 것으로 성령의 번성 목장에 번성이 오려면

예민하게 그 사람 입장에서 서있어야 하는 것인데 여기서 남들이 내 선행을 알아주리라 생각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다

 

생전에 열렬지지자가 쇄도했던 드다도 죽고 나니 아무도 추종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의협심의 모세가 아닌 자기능력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 80세의 모세를 사용하게 되신 것이다

 

겸손하고 연단된 80세의 모세를 통해 히브리인을 구원하게 하신다

 

모세도 말해도 안 되고 서로 말해도 안 되는 목자와 목원의 시대가 있는 것으로 서로에게 훈련인 것이다

 

그래서 이론적인 지식으로 누군가를 구원하기가 참 어렵다.

 

모세는 화해시키려고 자기 생각대로 서로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 추앙대신 면박을 받으니 황당함을 느낀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잘 사는 것을 시기한다

 

내 열심이 하나님의 열심을 앞 지른 것이다

 

모세의 살인도, 백성의 시기도 잘못 인 것으로 분별이 없으니 모세의 혈기가 작용한 것이다

 

양쪽에서 인정을 못 받으니 정체성이 헷갈리게 되는 것인데 동족도 애굽사람들 양쪽 모두에서 정체성이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애국심을 알리려고 하는 것도 분별이 안 되는 것이다

 

모세는 지도자이고 좋은 교육받아서 사회복지 여기에만 꽂혀있는데 대접을 못 받는다

 

모세는 영적 지도자인데 하는 일 마다 권위가 없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분별이 안 돼서 때 마다 권위가 없고 알아주지도 않는 것이다

 

애초부터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을 한 것이다

 

고난이 하나도 없는 애굽 사람(부유층)에게 고난이 축복이라고 하면 배척 당하는 것이다

 

동족도 돕겠다고 하면서 애굽사람까지도 무시한 것인데 애굽도 히브리도

무시하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공부 많이 했고 왕자라고 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벌과 왕족 신분으로는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생색이 나오는 것이고 대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세는 믿음이 모태신앙이지만 경험이 없어서 겪어야 하는 것이다

 

그 때 모세는 연륜이 부족하였다

 

자기가 스스로 내려 놓는 사람이 못 되니 억지로 쫓겨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인데 하루 만에 일어난 일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강권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바로와 백성이 알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떠났는데 의지할 것이 없어 광야로 떠난 것인데 이제 광야에서의 40년도 도망가서 다시 훈련 받게 하시는 것이다

 

늘 쫓겨날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으로 고난이 와서 떠난 것도 하나님도 믿음으로 떠났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교양으로 lip service만 잘하니 권위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다 성령으로 떠난 것인데 말씀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노예근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한 사람의 원통함을 들어주는 것이 성령의 번성함이 시작이다.

 

저 또한 한 사람의 원통함을 들어주는 것이 사역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적용 #3)

 

-여러분은 요즘 어떤 한 사람의 원통함을 들어 줄 마음이 들었나?

 

 

한 사람이 중요하다.

 

부모님이 날 낳아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촛불(부모)이 없다고 해도 태양(하나님)을 만났는데 원망이 웬 말이냐?

 

사람분별의 척도는 돈 쓰는 행태를 보는 것이다

 

촛불과 태양 중에 어떤 것이 번성인가?

 

 

<Epilogue>

 

 

성령의 번성은

 

세상에서 번성과 학대의 때를 허락하신다

구원자를 주신다.

지체를 돌볼 생각이 나는 것이다.

 

예수를 잘 믿으면 다 하나님의 때인 것이다


번성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이 백성을 훈련시켜야 하기 때문에 아주 강퍅한 왕을 붙이신다

 

인격적으로 기다리고 참아주는 일은 하나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학대를 받는데 출애굽기를 다 읽으면 살아나니까 고난이 애굽의 세상 사람이 근심하는 것이다


학대하는데 왜 살아나는가 회개하지 않고 살아나는 것만큼 고역을 시키는 것이다

 

내가 학대 받을수록 창성해 지니까 고난이 축복인 것이다

 

내가 학대 받을수록 창성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오묘한 신비다

 

나에게 오는 하나님의 훈련에 순종만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무릎 꿇게 하는 쓴 약이 학대인 것이다

 

노예화 정책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약속의 땅으로 떠나게끔 한 약이 된 셈이다


성도가 악한 세상으로부터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최고의 발판인 것이다

악한 세상에서 고난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잊힌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해석이 안 되는 것은 죽은 아이들인데 하나님이 아시고 이 일은 만세 전부터 계획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죽은 아이들도 구속사를 이루는 한 역할을 한 것이다

 

모세도 구속사를 이루는 역할이다.

 

이 세상에서 백을 살아도 하나를 살아도 잠깐인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오래 살아야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여러분들이 천국이 몰라서 그것을 저주라고 이야기한다

이스라엘도 애굽의 고센 땅 가두어 놓았으며 이 세상이 요셉 같은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슬픈 것인데 그걸 못 참아서 내가 훈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존심 때문에 훈련 받도록 하시는 것인데 가장 좋은 환경이 치사함을 당하는 훈련이다

 

인간은 자존적인 교만이 있기 때문에 훈련 받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치사한 훈련을 받는 것인데 백 프로 준 은혜를 모르고 치사한 학대를 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은혜라고 볼 수 있다

 

치사한 학대가 번성의 지름길이다

 

고역으로 인해 부르짖게 되고 학대 때문에 부르짖게 하신다

 

그래서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인 것이다

 

예수를 믿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카이로스의 때, 즉 하나님의 때인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세계적인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리 응답하고 계신데도 지금 응답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때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본질 자체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합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인데 선한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거면 구원인 것이다


이 땅에 구원보다 선한 것은 없다.

 

구원을 위해 생각해보면 그 마음을 성령님이 주셨고 구원 때문에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모세 부모가 모세의 아름다움과 준수함을 본 것처럼 학대의 그 때에 모세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절박한 마음으로 절박한 때에 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성령의 번성인 것이다

 

자녀사랑은 본능인 것인데 내가 예수를 믿는다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도 나를 죽이지 않고 낳아서 예수 믿게 해 주신 부모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부모를 아직도 원망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번성할 수 가 없다

 

내가 믿은 것에 대한 감사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한 것이다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낳아준 것이 가장 큰 것인데 왜냐하면 내가 창조주를 믿었으니까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태양의 도움을 알게 되었는데 촛불의 도움이 없다고 난리를 친다면 태양을 부정하는 것이다

 

바로의 권세의 의해서 버려졌는데 바로의 권세로 건짐 받아 바로가 보호자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신묘막측 함이다

 

폭군도 보호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번성이다.

 

세상 말과 성령의 말이 다른 것이다

 

세상에 능하면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같은 민족인 히브리인이 고욕을 버거워하다가 심하게 얻어맞고 학대를 받은 사람이었기에 일과 말이 능한 모세의 자기 생각인 것으로 나를 통해 히브리인을 구원한다 는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을 하셔야 하는 것이었다

 

목장에서 사람을 다루지 못한 것은 각각 믿음의 분량이 있는 것이기 때문인데 그 사람을 처 죽이면(정답으로 마구 들이대면) 되겠나?

 

이렇게 쳐죽였는데 애굽사람을 쳐죽인 것으로 성령의 번성 목장에 번성이 오려면

예민하게 그 사람 입장에서 서있어야 하는 것인데 여기서 남들이 내 선행을 알아주리라 생각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다

 

생전에 열렬지지자가 쇄도했던 드다도 죽고 나니 아무도 추종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의협심의 모세가 아닌 자기능력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 80세의 모세를 사용하게 되신 것이다

 

겸손하고 연단된 80세의 모셀ㄹ 통해 히브리인을 구원하게 하신다

 

모세도 말해도 안 되고 서로 말해도 안 되는 목자와 목원의 시대가 있는 것으로 서로에게 훈련인 것이다

 

그래서 이론적인 지식으로 누군가를 구원하기가 참 어렵다.

 

모세는 화해시키려고 자기 생각대로 서로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 추앙대신 면박을 받으니 황당함을 느낀다

 

양쪽에서 인정을 못 받으니 정체성이 헷갈리게 되는 것인데 동족도 애굽사람들 양쪽 모두에서 정체성이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모세는 영적 지도자인데 하는 일 마다 권위가 없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분별이 안 돼서 때 마다 권위가 없고 알아주지도 않는 것이다

 

고난이 하나도 없는 애굽 사람(부유층)에게 고난이 축복이라고 하면 배척 당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공부 많이 했고 왕자라고 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스스로 내려 놓는 사람이 못 되니 억지로 쫓겨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늘 쫓겨날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으로 고난이 와서 떠난 것도 하나님도 믿음으로 떠났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교양으로 lip service만 잘하니 권위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다 성령으로 떠난 것인데 말씀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노예근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한 사람의 원통함을 들어주는 것이 성령의 번성함이 시작이다.

 

한 사람의 원통함을 들어주는 것이 사역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날 낳아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촛불(부모)이 없다고 해도 태양(하나님)을 만났는데 원망이 웬 말이냐?

 

사람분별의 척도는 돈 쓰는 행태를 보는 것이다

 

촛불과 태양 중에 어떤 것이 번성인가?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1. 28. 15:13

[우리들교회 2020 126일 주일 예배 말씀요약(사도행전 7: 9~ 16/ 성령의 통치)]

 

 

<Prologue>

 

창세기에는 12 1절부터 3절까지 한나라의 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이 다 들어있다.

 

그러나 주권이 주권이 되려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를 먼저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꽃피우려 해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요셉을 통해 최고 강대국 애굽 바로(Pharaoh king of Egypt)의 총리(Governor/Ruler of Egypt)를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는 통치개념이 있다는 것을 요셉을 통해서 보여 주신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종 노릇을 해도 성령의 도움으로 때마다 세상을 잘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통치 성령의 통치를 하게 되어 있다

 

 

<말씀요약>

 

 

오늘을 성령의 통치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성령의 통치는 사법고시 패스하고 Law School졸업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1.   시기심을 겪어내야 한다.

 

 

 

우리가 믿음의 한 계단씩 세상을 떠날 때마다 사건도 감동도 주신다.

 

전도의 열매를 맺을 때, 가장 감동되기에 주님의 길을 갈 수 있다.

72절에서 8절까지가 아브라함의 구속사라면 2절부터 16절까지는 창세기의 구속사이고 7장 전체는 구약의 구속사다.

 

율법과 성전에 관한 것을 스테반이 변증하고 있는데 8절에 할례가 나왔었다

 

 

아브라함과 선민 언약을 맺으시고 할례를 표징으로 주셨는데 이 할례를 이스라엘은 마치 선민의 표식으로 여겨 구원의 근거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례의 주인이신 창조주예수님마저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8절까지가 아브라함의 구속사다

여기다 살을 붙인 것이 신 구약 성경 66권이다.

 

구속사는 성경 어디를 봐도 이런 식으로 쓰여졌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12지파를 이루어가기 위한 12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시지도 않고12아들을 주셨는데 힘든 가운데 영적 자녀가 주렁주렁 맺히니 그 다음에는 시기를 겪게 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씨가 이방 땅에서 나그네가 되고 종살이 할 것이라는 사실이 요셉이 애굽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됨으로 스테반은 아브라함 이야기에 이어 곧바로 요셉 이야기로 넘어간다

 

형들은 은 20을 받고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동생 요셉을 팔아 넘겼다


시기는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한 무서운 죄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들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애굽의 요셉과 함께하셨다고 표현을 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애굽에서 요셉과도 평생 함께하셨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만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고 형제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꿈이다

 

그런데 이것을 메시아의 꿈으로 알지 못한 형들의 시기로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갔다

 

스테반이 요셉을 예로 든 것은 요셉의 고난과 영광이 바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헤드린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특히 구약을 읽을 때 항상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며 400년이 지나야 내 후손들로 약속의 자손이 되게 하심의 그 약속이 이루어짐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었다

 

처음에 시기로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민족의 구원이 되었다

 

애굽이 먹을 것을 주어서 육적인 구원이 되었고 살다가 핍박을 해 주어서 영적인 구원까지 이르게 하신 것이다

 

떠나기 어려운 갈데아 우르를 떠났지만 우리는 머물고 싶은 본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비를 죽이시고 할 수 없이 떠났는데 또 이 시기를 겪게 하시고
이런 일들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구속사라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기에 세상의 성공사와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신앙의 여정 가운데 누가 시기하면 , 수준이 높아졌네. 창세기 37장에 왔네라고 해서 사건이 일어 날 때 언제나 그 순서, ‘내가 어디까지 왔나?’를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그래서 시기가 없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있다고 나쁜 것이 아니고 지나고 생각해보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형들의 시기는 반드시 있어야 했던 일이었다


 

시험을 받아도 3가지 종류가 있다:

 

(1) 사단

(2) 자기 자신: 남들을 괴롭히게 됨

(3) 남들

 

 

이왕이면 남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게 제일 좋은 시험인데 제일 무서운 것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남까지 괴롭히게 된다

남들이 괴롭히는 것은 나에게는 최고의 상급으로 승화될 수 있으며 남들이 나를 괴롭힐 때 성령의 통치를 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고난 받는 우리를 위해 고난 받고 본을 끼치셨다고 하는 것이다

 

칭찬이 없다는 것은 죗값을 치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괴로운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남들을 괴롭게 하게 되는데 내가 괴로워서 내가 괴로워하면 남들을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요셉은 메시아 꿈을 받았어도 시기를 유발했는데 그래서 이 시기를 겪어내야 하지만 유발하는 것도 문제다.

그때는 요셉도 형들도 해석을 할 수 없었다

 

우리들 교회도 날마다 힘든 가운데 시기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시기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으며 나에 대해 누군가가 시기를 하게 되면 불안 증과 두려움 그리고 피해 의식이 생겼던 것 같다

 

세상에 정계, 재계 등 시기가 없는 곳이 없다

 

 

(적용 #1)

 

-형제들에게 시기를 하나? 시기를 당하나? 시기를 유발하나?

 

시기심을 통해 성령의 통치를 받는다

 

 

2.   종 노릇을 잘해야 한다.

 

 

여기서 통치의 개념이 나오는 것이다


요셉을 환란에서 건져주신 것뿐만 아니라 높은 자리에 세워주셨다


요셉을 애굽 총리로 임명하였고 애굽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다는 것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게 된다.

 

예수를 믿으면 영적 통치권을 주시어 아랫자리에서도 안 믿는 사람들을 통치하게 된다

 

종 노릇 잘하는 사람은 (1)머리가 좋거나, (2) 믿음이 좋거나, (3) 바보 중 하나인데

그 중 바보는 열등감으로 끝나게 된다

 

여호수아가 종 노릇 잘 하니 통치자로 세워주셨다.

 

자의로 타의로 사단의 영적 방해가 있었겠고 사명이 아니면 감당 못할 일이었지만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에 은총과 지혜를 주셔서 종 노릇 당한 것이 유익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남편도 구원을 받고, 또 영의 직분이 주어져서 담임목사라는 직분을 받게 되었는데
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시기심을 겪어내고 종 노릇 잘해야 성령의 통치를 할 수 잇는 것이다.

 

환란에서 건짐 받는 것은 종 노릇 잘 하는 것과 동의어다.

 

 

(적용#2)

 

-종 노릇 잘해서 통치자가 되는 경우가 있나?

 

 

3.   험악한 인생을 살아봐야 합니다.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것을 듣고 사람을 보냈고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된다.

험악한 삶이 아니었다면 겸손한 요셉의 종 노릇도, 형들이 나중에 와서 요셉에게 절한 것도 다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게 하기 위하여 온 땅에서 흉년이 들게 하신다

 

하나님의 통치가 들어나게 하시 위하여 흉년으로 애굽으로 야곱 친족이 가게 하신다

 

겸손하게 하는 것은 오직 환경만이라서 환경이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이 흉년 때문에 요셉 친족 대표인 야곱이 바로(Pharaoh)에게 드러나게 하신다

바로에게 드러난 건 요셉이 아니라 야곱이다

 

더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온 야곱(Jacob)이 구속사의 주인공이라서 야곱이 바로에게 나가게 되었다


요셉이 흉년에 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야곱의 하나님 덕분인 것이다


구속사의 중심은 야곱이 중심인데 요셉은 야곱을 소개하기 위해 이 시련을 겪은 것이다


이때 야곱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인데 요셉을 통해서 야곱이 바로에게 가게 되었다


아내 4명을 두고 아들 12명을 낳은 콩가루 집안의 원조 격인 야곱이 이렇게 간음하고 딸이 강간을 당하면서 이 험악한 인생을 살아온 촌로 야곱이 세계최대 강대국 애굽왕 바로를 축복하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 개념인 것이다.

 

내가 어떤 형편없는 인생을 살았어도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도 축복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통치개념이다

 

요셉이 총리라고 해서 바로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험악한 인생일 살아온 야곱이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통치개념이다


주님과 동행해 산전수전 겪는다면 누구도 바로(Pharaoh)도 축복할 수 있다.

 

요셉도 야곱도 통치권을 가지게 되는 것인데 이야말로 성령의 통치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런 일은 있어도 없어도 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확실해 지며 성령의 통치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형들의 시기심으로 동생인 요셉이 팔려가고 흉년으로 양식이 떨어져 겪어야 하는 일도 반드시 있어야 할 일 인 것이다

 

이방에서 객이 되어 400년을 살고 애굽(시집, 직장, 남편, 아내, 자녀)에서 흉년과 시기심을 겪어내야 성령의 통치를 받을 수 있다

 

어떤 고난으로 온 일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이다


성경을 누리면서 보고 가면 고난이 있어도 있어야 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종 노릇하더라도 리더십과 축복을 주시고 통치의 개념이 들어가 저절로 우러나오는 권위가 있게 하신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축복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는 이렇게 통치의 개념이 있는 것이며 통치의 개념은 철저히 이타적인 개념이다.

세계적 건축물이 즐비한 UAE, Dubai의 지도자처럼 이타적인 독재자가 최고의 통치자라고 한다

 

 

(적용#3)

 

-험악한 인생이 부끄럽나?

-험악한 인생으로 축복해주시는 인생이 되었나?

 

 

 

4.   매장지 신앙이 확실해야 한다.

 

 

 

구원 받은 영혼인 75명만이 기근(famine)으로 인해 애굽으로 갔다

 

죽음의 위기에서 건짐 받았음을 강조한다

 

야곱이 애굽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특별하게 강조한다


야곱이 애굽에서 죽었지만 아들들에게 자기 장례를 애굽에서 치르지 말고 가나안에서 치러달라고 했다

애굽의 고관대작들이 야곱의 천국 가는 길인 죽음을 애도함으로 그 장례를 잘 보게 하신 것에는 요셉을 총리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이다

 

믿는 사람의 장례를 보게 하신 것인데 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가나안이나 애굽이나 메소포타미아에도 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스테반은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을 깨뜨린다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과 야곱의 세겜(Shechem )은 다른 무덤이다

 

막벨라 굴은 400냥 주고 산 매장지이고 세겜의 무덤은 야곱이 100냥 주고 산 매장지다

 

왜 여기 아브라함이 세겜의 자손에게서 밭을 샀다고 거기 왜 장사되었다고 했을까?

일단 아브라함이고 야곱이고 이렇게 가나안에 온건 사실이고 요셉이 야곱의 직계다

야곱이 산 세겜 땅에 들렀다고 보았지만 아브라함과 야곱을 섞어서 보는 것이다

 

야곱은 먼저 세겜에 묻혔다고 다시 막밸라 굴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영적 매장지 본향, 최종 영적 목적지인 막벨라굴을 의미한다는 그 뜻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묻힌 막벨라 굴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Sarah)의 매장지이기도 하다

 

스데반이 약속의 땅에 대해 깊게 묵상했다는 것이 보이는 대목이며 아브라함이 세겜의 밭을 샀다는 것은 스테반의 신앙고백이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공짜로 주겠다는 것을 기어코 돈을 주고 산 것은 400년 후 그 땅에 오려면 뭔가 표시해 놓아야 하기에 나중에 찾아 오라고 포시(등기)해 놓은 것이다

 

 

우리는 공짜 좋아하지 말고 값을 치뤄야 한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공짜 좋아하면 안 된다

 

땅 한평이 없으면 가나안에 오겠나?  

 

그 땅을 약속으로 바라본건 험악한 인생을 산 사라(Sarah).

 

별 볼일 없는, 눈만 껌벅거리는 아이 Issac을 낳은 사라는 헤브론 약속의 땅에서 죽었다

 

여종인 하갈은 건장하고 털도 많은 이스마엘을 낳았고 또 다른 여종인 그두라는 용감한 미디안을 포함하여 6명의 아이를 낳았다

 

 

구속사로 읽으면 정말 박복한 여인이었던 사라가 죽으면서 온몸으로 말하는 약속의 땅이 예수님이 오실 땅이다

 

사라는 약속의 땅을 상기시켜준 열국의 어미가 되었다

 

온몸으로 말하는 사라의 메시지를 아브라함이 깨달았던 것인데 공짜가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찬국을 바라보고 약속의 매장지는 중요하다는 것을 23장 한 장이나 걸쳐서 매장지 이야기로 도배를 했다

 

마음이 급해서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은 400냥을 주고 사고 나서 한일은 이삭에게는 자신의 소유를 주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어 동쪽 땅으로 가게하고 죽었다

 

 

브라함의 자식은 모두 8명이었는데 이삭 혼자만이 영적 자녀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자신들의 매장지 하늘나라 도성에 들어올 것은 이삭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죽은 것이다

 

아브라함도 죽기 전에 이것을 깨닫고 죽었는데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이세상의 땅이 아닌 천국을 말하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예수 잘 믿고 천국 오면 좋겠다는 믿음은 가나안 땅 매장지 1평뿐으로 매장지는 천국을 뜻한다

 

감옥 갔다 와도 하나님 믿으면 천국에 간다라는 메시지로써 매장지를 기억하게 하고 요셉의 뼈가 그 증거라는 것이다

 

400년이 지나서 끊어질듯해도 요셉의 죽은 뼈가 산사람 200만명을 인도해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환경에 장사가 없는 것인데 돌아올 때 요셉의 해골이 인도자 역할을 했는데 요셉하면 총리만 기억하게 되는 것이며 이름도 요셉이 많은데 우리는 총리가 좋은 것이다

 

400년이 지나도 기억을 다하도록 요셉의 역할은 결국은 애굽이 본향이 아닌 것을 밝혀준 것이다

 

에굽에서 돌아오려면 필요하기 때문에 요셉이 역할이 필요한 것이었다

 

자식들에게 남겨 줄 것은 돈보다 남에게 보여주는 믿음으로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죄인들의 구속사에 관한 책이다

 

천국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매장지 신앙이다

 

십자가를 길로 놓고 적용하면서 가는 것이 매장지를 산 사건이다

 

창세기를 알게 되면 구속사가 보인다

 

 

 

(적용#4)

 

-매장지를 찾아오라고 자녀들에게 내가 지금 값을 치러야 할 것은 무엇인가?

 

 

후회는 안 하지만 회개는 한다

 

 

 

<Epilogue>

 

성령의 통치는 시기심을 겪어내야 한다.

종 노릇을 잘해야 한다.

험악한 인생을 살아봐야 한다.

매장지 신앙이 확실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의 한 계단씩 세상을 떠날 때마다 사건도 감동도 주신다.

 

전도의 열매를 맺을 때, 가장 감동되기에 주님의 길을 갈 수 있다.

애굽이 먹을 것을 주어서 육적인 구원이 되었고 살다가 핍박을 해 주어서 영적인 구원까지 이르게 하신 것이다

 

떠나기 어려운 갈데아 우르를 떠났지만 우리는 머물고 싶은 본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비를 죽이시고 할 수 없이 떠났는데 또 이 시기를 겪게 하시고
이런 일들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구속사라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기에 세상의 성공 사와 아주 다른 것이다

신앙의 여정 가운데 누가 시기하면 , 수준이 높아졌네. 창세기 37장에 왔네라고 해서 사건이 일어 날 때 언제나 그 순서, ‘내가 어디까지 왔나?’를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이왕이면 남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게 제일 좋은 시험인데 제일 무서운 것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남까지 괴롭히게 된다

남들이 괴롭히는 것은 나에게는 최고의 상급으로 승화될 수 있으며 남들이 나를 괴롭힐 때 성령의 통치를 할 가능성이 많다.

 

세상에 정계, 제계 등 시기가 없는 곳이 없다

 

예수를 믿으면 영적 통치권을 주시어 아랫자리에서도 안 믿는 사람들을 통치하게 된다

 

종 노릇 잘하는 사람은 (1)머리가 좋거나, (2) 믿음이 좋거나, (3) 바보 중 하나인데

그 중 바보는 열등감으로 끝나게 된다

 

시기심을 겪어내고 종 노릇 잘해야 성령의 통치를 할 수 잇는 것이다.

 

환란에서 건짐 받는 것은 종 노릇 잘 하는 것과 동의어다.

 

겸손하게 하는 것은 오직 환경만이라서 환경이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구속사의 중심은 야곱이 중심인데 요셉은 야곱을 소개하기 위해 이 시련을 겪은 것이다


아내 4명을 두고 아들 12명을 낳은 콩가루 집안의 원조 격인 야곱이 이렇게 간음하고 딸이 강간을 당하면서 이 험악한 인생을 살아온 촌로 야곱이 세계최대 강대국 애굽왕 바로를 축복하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 개념인 것이다.

 

내가 어떤 형편없는 인생을 살았어도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도 축복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통치개념이다

 

요셉이 총리라고 해서 바로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험악한 인생일 살아온 야곱이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통치개념이다


주님과 동행해 산전수전 겪는다면 누구도 바로(Pharaoh)도 축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확실해 지며 성령의 통치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방에서 객이 되어 400년을 살고 애굽(시집, 직장, 남편, 아내, 자녀)에서 흉년과 시기심을 겪어내야 성령의 통치를 받을 수 있다

 

어떤 고난으로 온 일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이다


성경을 누리면서 보고 가면 고난이 있어도 있어야 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종 노릇하더라도 리더십과 축복을 주시고 통치의 개념이 들어가 저절로 우러나오는 권위가 있게 하신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축복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는 이렇게 통치의 개념이 있는 것이며 통치의 개념은 철저히 이타적인 개념이다.

세계적 건축물이 즐비한 UAE,  Dubai의 지도자처럼 이타적인 독재자가 최고의 통치자라고 한다

애굽의 고관대작들이 야곱의 천국 가는 길인 죽음을 애도함으로 그 장례를 잘 보게 하신 것에는 요셉을 총리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이다

 

믿는 사람의 장례를 보게 하신 것인데 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스데반이 약속의 땅에 대해 깊게 묵상했다는 것이 보이는 대목이며 아브라함이 세겜의 밭을 샀다는 것은 스테반의 신앙고백이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공짜로 주겠다는 것을 기어코 돈을 주고 산 것은 400년 후 그 땅에 오려면 뭔가 표시해 놓아야 하기에 나중에 찾아 오라고 포시(등기)해 놓은 것이다

 

사라는 약속의 땅을 상기시켜준 열국의 어미가 되었다

아브라함의 자식은 모두 8명이었는데 이삭 혼자만이 영적 자녀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자신들의 매장지 하늘나라 도성에 들어올 것은 이삭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죽은 것이다

 

아브라함도 죽기 전에 이것을 깨닫고 죽었는데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이세상의 땅이 아닌 천국을 말하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예수 잘 믿고 천국 오면 좋겠다는 믿음은 가나안 땅 매장지 1평뿐으로 매장지는 천국을 뜻한다

 

감옥 갔다 와도 하나님 믿으면 천국에 간다라는 메시지로써 매장지를 기억하게 하고 요셉의 뼈가 그 증거라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남겨 줄 것은 돈보다 남에게 보여주는 믿음으로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죄인들의 구속사에 관한 책이다

 

천국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매장지 신앙이다

 

십자가를 길로 놓고 적용하면서 가는 것이 매장지를 산 사건이다

 

창세기를 알게 되면 구속사가 보인다

 

후회는 안 하지만 회개는 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1. 21. 19:05

[우리들교회 2020 119일 주일말씀 요약(누가복음 5: 27~ 39/ 일어나 따르니라/신승윤목사)]

 

 

<누가복음 5:27~39>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Pharisees)과 그들의 서기관들(the teachers of the law)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tax collectors)와 죄인(sinners)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It is not the healthy who need a doctor, but the sick)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And no one pours new wine into old wineskins. If he does, the new wine will burst the skins, the wine will run out and the wineskins will be ruined.)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new wine must be poured into new wineskins.)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And no one after drinking old wine wants the new, for he says, 'The old is better.)

 

<Prologue>

 

 

휘문채플에서 청년2부를 섬기고 있는 신승윤 목사인데 죄패는 도박 음주 폭력이다.

 

전국청년 큐티 페스티벌 때문에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죄가 없고 깨끗하고 온전한척하며 살았다. 그렇게 심방을 가고 부서 사역을 가고 상담을 했다.

여전히 가지고 갖추고 누리고 싶었고 대우받고 싶은 마음을 부정할 수 없고 버려지지도 않았다.

예수 믿는 사람인데 변하지 않는 내가 힘들지 않나?

한 가지만 기억하지 않나?

그 마음을 방치하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되는데 말발굽으로 가슴을 치듯이 회개하면서 우리가 어찌할꼬? 가 되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가 된다.

 

가장 큰 죄는 변하지 않은 나를 놓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온전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닌 온전치 못한 나를 살리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는 땅끝 사역자가 되게 하신다

제자는 따르는 무리가 아니라 동고동락하는 사람인데 그들은 모르지만 성령을 받아 사도로 세워질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아무나 세우셨겠나?

제자는 예수님의 호 불호에 따라 부르셨다.

 

그가 예수님 스타일(예수님의 개취’<개인적 취향>)이기 때문에 부르셨고 함께하셨다.

 

 

<말씀요약>



어떠한 사람을 예수님이 부르시며 예수님 스타일은 누구인가?

 

1.나의 죄 때문에 고민한다.

 

오늘 부르심을 받는 자는 레위다

레위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한다

그가 하는 일은 세리(tax collector)였다

일반적으로 약탈과 착취를 일삼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로마는 식민지 친화정책을 사용하지만 세금을 10가지 정도로 엄청 때리는데 그게 그것인 것이다.

착취를 숨기기 위해 같은 민족을 세워 수금원으로 세우는데 그게 세리였다.

세리는 특혜가 있는데 일정 금액을 내면 혜택을 받는다.

성전세도 매겨 칼만 안든 착취자였다.

 

그래서 세리는 창기 등과 마찬가지로 회개하여도 천국에 못 간다는 부류로서 미움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누릴 것은 누리고 씹을 것은 씹으면서 사는 부류가 레위(세리)

 

하지만 세리 앞에서는 도리어 미워할 수 없었는데 드러내서 미워할 수 없었다.

세리는 로마의 권력을 등에 입은 사람이었고 조금 잘만 하면 세금을 깎아줄 수 있었다.

그런 레위의 마음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고 나의 죄 때문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레위가 착하고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시고
훗날 사도로 세우시기 위해 계획하시고 방문하신 것이다

 

지금 내가 죄를 알고 고민하며 적용하고 고민하는 것은 남들보다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 부르심의 시작이다.

남보다 몇 가지 더 잘한다고 상대를 정죄하고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위가 고민하는 것을 다 내려놓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레위는 이제 모든 것을 잃은 자이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이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자이다.

레위는 세리의 자리에 있었으면 절대로 쓰지도 못했을 것이고 마태복음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죄를 깨끗이 해라 하면서 죄가 없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교만이다

 

깨끗하게는 되고 싶어도 죄 뿌리는 없앨 수 없다

 

몇 가지 죄는 끊어 내다가 나중에 더욱 더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이며 죄 가운데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다

 

레위(세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여기에 집중하시는데 고민하는 세리를 보시고 제자로 삼으시고 훗날 사도로 삼으신다

 

레위의 적용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다.

 

 

각자의 적용은 다 다르다

나의 죄 때문에 아파할 사람을 예수님은 지나치지 않으시는데 그 사람이 우리 예수님 스타일이다.

 

내 죄 때문에 고민하며 작은 것이라도 적용하는 자가 예수님이 기억하시는 자이다


죄를 이길 수가 없으니 이런 나를 비관하면서 그러면서 죄 가운데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이 욕심 때문이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내 죄가 보이는 것이 말씀 들리는 것의 첫 걸음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지금 세리에 위의 기쁨/감격을 이해하지 못한다.

바리새인은 죄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면서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의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죄를 깨달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기뻐하지만 상대를 정죄하는 사람은 비방 말고는 할 것이 없다.

 

의로움에서 정죄와 미움과 비방이 나오는 것이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라는 마음에는 회개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천국잔치에도 함께 기뻐하며 동참하지 못한다

저희 가정은 아버지 어머니 매형 저 모두가 목회자다.

저는 스스로 죄악 된 삶에서 돌이켜 목사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주인공이었다.

기도와 회심의 대명사, 시대적 사명, 영혼의 등불, 축복의 통로, 결실의 피날레라고 생각하였으니 미친 것이었다

 

나는 죄 같은 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늘 기도했다. 제 아내의 가정은 이혼가정이다.

그래서 아내의 모습이 정죄가 되었으며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려고 할 때 처가의 이혼 사실을 아는 사람들 때문에 장애물이 되어 사역을 못했다. 그래서 아내와 처가를 향한 원망이 계속되었고 정죄가 되었다.

 

그 끝이 결국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내 길을 막으시는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든 것을 절제하고 포기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아내와의 사이는 멀어졌다. 그리고 술을 입에 몰래 먹고 아내 몰래 술집을 드나들었다. 저에게는 신학이고 목회였지만 여러분에게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회개가 잘되지 않아도 적용이 쉽지 않아도 괜찮다.

내 죄 때문에 속상해하며 고민하는 것은 변하시면 안 된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부르심을 받는 통로다

고민하는 사람은 움직인다

 

아파하는 사람은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것이다.

 

(적용#1)

 

-지금 앉아있는 곳에서 고민해야 할 나의 죄는 무엇인가?

 

 

2. 선택과 집중을 한다.

 

지켜야 할 율법을 가지고 바리세인은 예수님께 들이댄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다.

 

최대 12일까지 금식 해봤는데 저 같은 경우는 죽는 줄 알았다.
기도원에 골방 같은 곳에 갇혀서 물만 먹고 지내는데 바닥에 지렁이가 라면으로 보였다. 귀뚜라미랑 대화도 해보았다. 결국 하나님의 음성 못 들었다. 하지만 금식은 신앙인으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맞다.금식은 안 하면 안 된다라고 하는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예수님은 금식과 율법이 아닌 그들과 하나가 되고 어울림에 집중하셨다

청년부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청년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 말씀을 기준으로 섬기는 청년들이 많다. 그러나 순간순간 무너진다. 자신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문제를 책임지고 살아가는 청년도 있다. 음란과 중독의 문제에 넘어지기도 하고 직장의 관계가 꼬이기도 하고 질서를 어기고 분을 내기도 한다.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고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을 만난 후 얼마 지난 후 회개가 나왔다.

그때는 제가 몰라서 입을 함부로 놀렸다. 용서해주세요.
고민하는 청년들 방황하는 청년들 많지만 우리 청년들이 한 달 일주일 하루를 살아내는 그 방식을 가만히 보면 막 이렇게 불만과 상처를 쏟아내다가도 결국 자신이 한 큐티와 그 주에 들은 말씀으로 고민한다. 바로 깨닫거나 몇 주 있다가 깨닫기도 한다.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라고 하며 주시는 말씀을 기억하며 내 죄를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 청년은 말과 행실에 세상에 본 이 되어야 한다. 솔직히 많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이 공동체 안에서 많은 친구들이 고난이나 상처와 실수 앞에서도 말씀을 듣는 것을 선택하고 아플수록, 회피하는 것이 아닌 말씀에 집중을 한다.

 

드리고 싶은 말씀을 너무 많은데 우리 청년부 강점 하나 말씀 드리고 싶다. 고난이 끊이지 않고 욕심에 무너지고 상처와 사연으로 남을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말씀을 듣고 살아내는 공동체가 우리들교회 청년이다. 붙어만 가는 청년들도 있다. 정말 붙어만 간다. 말씀이 어렵다고 길다고 불편해하기도 한다. 계속 끌려가는 청년도 있다. 이들은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지만 더 깊은 죄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현재 수준에서 그들이 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안 나가고 붙어가는 것이 최선의 집중이다. 자신의 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부모님 보시기에 미숙한 점이 많다 하더라도 많은 청년이 말씀을 선택하고 집중하며 살고 있다.

 

기도 부탁 드린다. 10일 남았다. 큐티 페스티벌을 많은 청년들이 준비하고 있다.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어 섬기는 것이 아니다. 내 고난이 약재료가 되게 해주신 것이 감사해서 섬기고 있다. 섬기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고 섬기는 청년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기도 부탁 드린다.

 

잘 기다려 주기만 하면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뒤에는 들어 둔 말씀이 있어서 내 죄를 보면서 애쓴다.

 

경건하게 행동하면 외식’, 바리새인이라고 손가락을 하기도 한다

 

 

(적용#2)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며 집중하며 살아가나?

 

 

3. 머물러 있지 않는다.

 

(1) 새 옷과 낡은 옷의 비유

(2) 새 부대에 관한 비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옷으로 입고 새 부대가 된다는 것은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새 부대가 되는 것은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을 사랑하고 품을 수 없었던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고쳐야 할 점은 리스트로 만들어 마음먹고 고치는 것 해보셨겠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다.

사랑 없던 내가 누군가를 아끼며 살고 싶은데 마음만 먹고 끝날 때가 많다.


먼저, 그것이 나든, 상대이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낡은 포도주 부대를 새 부대로 옮기라고 하시는데 부대에서 병 같은 다른 종류로 옮겨 닮는 것이 아니다.

 

담아내야 하는 내 역할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낡은 나의 가치관이 새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담고 품어줘야 하는 역할 낡은 부대인 새 부대이든 그저 빈부 대다.

 

나의 역할감당과 나의 그 자리 지킴은 그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여전한 편견과 미움이 있다면 낡은 부대를 새 부대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남을 정죄하는 내 가치관이 변해야 한다

3. 말씀으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

지금 보이는 것이 없어도 상대가 변하지 않아도 내가 변하고 있다면 요동치지 않는다.

 

환경이 바뀌어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변해가는 것이 새로움이다

 

죄와 낙심이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우울증이다

 

싸우고 미워하면서 깊은 미움 그 모습으로 머물러서 익숙해 지는 것이다

 

저는 도박중독자였다.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도박 외의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의지와 희망을 포기하게 만들고 삶의 방향을 상실한 체 살아가게 된다. 최종 목적은 거기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비단 도박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헤어나지 못하는 중독이나 집착 분노가 있다. 죄와 낙심 가운데 머무는 것은 당연하게 속이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취직과 교제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네가 못났다고 한다. 한 사람을 깊이 미워해 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그냥 서로를 미워하는 채 점점 익숙해지지 않으셨나?

 

그냥 미워하고 다투면서 상대도 미워하면서 살라고 사탄이 속삭인다

중독과 미움의 결론은 하나인데  계속 거기에 머무르라.’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내고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힘든 사람을 담아내는 새 부대가 되라고 하신다.

 

맡겨주신 직장과 가정에서 미움 가운데라도 나의 역할을 포기하시면 안 된다.

 

힘들어도 미워도 말씀 붙잡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우울해도 큐티하고 싸우면서도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내가 변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적용#3)

-
내가 새 부대가 되기 위해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씀을 붙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Epilogue>

 

 

 

그 마음을 방치하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되는데 말발굽으로 가슴을 치듯이 회개하면서 우리가 어찌할꼬? 가 되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가 된다.

 

가장 큰 죄는 변하지 않은 나를 놓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온전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닌 온전치 못한 나를 살리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는 땅끝 사역자가 되게 하신다

 

지금 내가 죄를 알고 고민하며 적용하고 고민하는 것은 남들보다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 부르심의 시작이다.

죄를 깨끗이 해라 하면서 죄가 없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교만이다

 

깨끗하게는 되고 싶어도 죄 뿌리는 없앨 수 없다

 

몇 가지 죄는 끊어 내다가 나중에 더욱 더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이며 죄 가운데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다.

나의 죄 때문에 아파할 사람을 예수님은 지나치지 않으시는데 그 사람이 우리 예수님 스타일이다.

 

내 죄 때문에 고민하며 작은 것이라도 적용하는 자가 예수님이 기억하시는 자이다


죄를 이길 수가 없으니 이런 나를 비관하면서 그러면서 죄 가운데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이 욕심 때문이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내 죄가 보이는 것이 말씀 들리는 것의 첫 걸음이다

 

자기 죄를 깨달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기뻐하지만 상대를 정죄하는 사람은 비방 말고는 할 것이 없다.

 

의로움에서 정죄와 미움과 비방이 나오는 것이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라는 마음에는 회개가 설 자리가 없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부르심을 받는 통로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금식과 율법이 아닌 그들과 하나가 되고 어울림에 집중하셨다

 

새 옷으로 입고 새 부대가 된다는 것은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새 부대가 되는 것은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을 사랑하고 품을 수 없었던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담아내야 하는 내 역할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낡은 나의 가치관이 새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나의 역할감당과 나의 그 자리 지킴은 그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남을 정죄하는 내 가치관이 변해야 한다

 

환경이 바뀌어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변해가는 것이 새로움이다

 

죄와 낙심이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우울증이다

 

싸우고 미워하면서 깊은 미움 그 모습으로 머물러서 익숙해 지는 것이다

 

 

그냥 미워하고 다투면서 상대도 미워하면서 살라고 사탄이 속삭인다

중독과 미움의 결론은 하나인데  계속 거기에 머무르라.’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내고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힘든 사람을 담아내는 새 부대가 되라고 하신다.

 

맡겨주신 직장과 가정에서 미움 가운데라도 나의 역할을 포기하시면 안 된다.

 

힘들어도 미워도 말씀 붙잡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우울해도 큐티하고 싸우면서도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내가 변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주님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고백이 나와야 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1. 14. 10:53

[우리들교회 2020 112일 주일예배 말씀요약(사도행전 7:1~8/ 성령의 떠남)]

 

 

<Prologue>

 

2020년 우리들교회 표어인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가 마음에 안 든다는 어떤 목자의 나눔이 있었다.

세상적으로 바꾸어 이야기 하면 어떤 환란이 와도 성령충만이 오면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다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난이 예상되므로 이것을 잘 견디라는 말 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라는 나눔을 하였다

그 목자가 일단 설교 내용을 잘 이해하셨기에 수준이 높다고 보여진다.

인생이 100%죄인이기에 간난아이와 아이가 있고 청년과 아비에 때를 살려면 늘 이 세상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 있기에 그것이 고난이 맞다.

마음에 안 들어도 이것이 복음이고 진리니 어떻게 하겠나?

그래서 때 마다 성령의 얼굴로 떠나야 하는 이 성령의 떠남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말씀요약>

성령의 떠남 첫 번째는,

1.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

1절에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야?’에서 이것은 은혜와 지혜와 권능과 믿음이 충만한 스데반이 성경과 율법을 폐하려 하는 것이 사실이냐?’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또는 아니오라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라고 하면 듣기도 전에 잡아 갈 것이고 아니오라고 하면 거짓말했다고 몰아 붙일 것이니까 때에 따라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구원 때문에 머리가 팍팍 돌아가야 되는 것이다

지혜의 영이 임한 스데반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1절부터 50절까지 구속사적으로 구약을 꿰었다

그리고 51절에 목이 곧고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항상 성령을 거슬리는 도다라는 이 말씀, 이 경고를 하려고 50절까지 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성경으로 전했다

항상 내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모든 성경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성경을 알고 있어도 제대로 꿴 다음에 내가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한마디를 하면 된다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는 너무 위대한 설교다

전 세계에서 기독교를 가장 우월하게 높인 설교 가장 명 설교에 속한다

위대한 설교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길로 놓고 구속사적으로 요점정리를 잘한 설교다

1,300페이지가 넘는 기나긴 구약을 50절에 요약을 했는데 정말 구속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요약을 잘할 수 있는지 세상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설교다.

마태와는 다른 스데반의 구속사라고 할 수 있고 구속사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어떤 본문도 똑같은 예수님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해도 못 알아들으니 날마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맨날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다.

그런데 그 예수님 이야기가 안 들리니까 내 환경이 부해 지거나 힘들어지거나 로 변하면 다들 매너리즘에 짜지고 원망이 되니까 꼭 설교 탓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이 예수그리스도 이야기다.

큐티는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읽는 것이다

2절에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To this he replied: "Brothers and fathers, listen to me! The God of glory appeared to our father Abraham while he was still in Mesopotamia, before he lived in Haran.)

스데반은 형제 의식을 가지고 천사의 얼굴로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부형들이여(brothers and fathers)라고 높임말로 호칭을 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설명해야 되겠는데 들어달라고 했다.

누군가 교회와 담임목사를 비난을 하면 이런 식으로 겸손하게 칭하고 이런 태도로 하시나?

그 다음을 보면 어떤 하나님인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에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보이신 영광의 하나님이라고 힌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갈대아인의 우르(Ur of the Chaldeans)의 메소포타미아에서 하나님은 그것도 영광의 하나님으로 이미 보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있는 하나님이 아니고 또 이스라엘 그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그들의 선민주의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이 사람들이 아브라함도 민족주의 심볼로 존경하고 있겠지만 아브라함 자체도 하나님이 아브라함 되게 하신 것이지 아브라함이 위대하지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어디고 계실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고 믿음의 몇 대손이라는 혈통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영광의 하나님으로 보이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있는 친척을 위해서 기도할 수도 있고 지금 세상에 취해 있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학벌과 권력과 모든 것에 취해 있는 그 누구에게도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으로 보이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구원을 안 받던 받던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되고 전도해야 한다.

성령이 퍼져나가야 하니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적용#1)

 

-상상할 수 없는 곳에도 하나님이 게신 것을 믿나?

-그곳은 어딘가?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람도 아니야 하는 어떤 그곳, ‘거기는 내가 갈 수도 없어 그 대단한 스펙을 가졌는데 어떻게 전도해?’라는 그곳에도 영광의 하나님은 계실 수 있다

 

2.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한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맨 처음 주신 명령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려면 고향과 친척과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비의 집도 같이 떠나라고 하신다.

떠남이 없이는 약속의 땅으로 못 간다고 하신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믿으려면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갈대아 우르 문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대영박물관에서 그 많은 유적 중 우르를 보았는데 정말 대단해서 진짜로 이곳을 떠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를 다른 말로 적용하면 알코올 중독자 부모에게 못 떠나고 완전주의자 부모에게서 못 떠나는 것이 우리다.

돈이 많아도 의지하느라고 못 떠나고 없어도 무시하느라고 못 떠나고 그래서 미워하느라고 못 떠난다

부모가 들들 볶았으면 볶이고 살았기 때문에 자녀들을 볶지 않으면 내가 불안하다.

엄마가 들들 볶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착각을 한다

내가 사회적으로 뭔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결국 엄마가 옳은 것 아니었나 엄마를 미워하면서 그대로 닮는 것이다.

이렇게 떠나야 할 고향과 친척이 있는데 부모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부모가 중요하고 학교가 중요합니다.

부모를 끊는 것이 교육이 힘이라는 마지막 결론이 약간 유감이지만 학대하는 아버지를 떠나야 하는 집이 있다.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구원 때문에 떠나기도 하고 있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모를 떠나야 하는지 모른다.

부모가 천국에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온 집안에 불란을 일으키는 자녀도 있지만 언제나 가정에는 질서가 있고 위아래가 있는데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것이 효도다

둘째가 첫째보다 잘 산다고 돈 더 갖다 드리는 것이 효가 아니고 모든 가족이 다 잘사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다

부모와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잘 먹고 잘 살 때는 이런 이야기가 잘 안 들리는데 잘 먹고 잘 살 때 들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훈련되는 데 있어서 하나도 안 들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질서라는 것을 주셨다

질서를 주신 것은 그게 아니면 훈련이 안돼서 이다

그래서 내 질서에 순종 해야 하는 것이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다

여자가 질서에 순종해야 되는 것은, 예수님이 미물만도 못한 인간에게 처음에 공생애에서 시작하신 일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시고 마지막 질서인 십자가에 죽으셨다

질서로 밖에 우리가 훈련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여러분은 사람 같지 않아서 무시해라고 하는 형제부모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디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영육의 나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친구 짱구하는 것이 고향 친척 부모인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를 다녀도 주님을 만나지 못 하는 사람들은 지역감정이 아무도 천국 갈 때까지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향과 친척과 부모를 떠나라고 한다

그 것이 인생이 다 인 것이다

우리나라를 봐도 기독교가 들어 왔는데도 지역감정을 그 누가 떠나겠나?

그것이 좋아서 정치도 뭣도 다 지역감정으로 한다

 

(적용#2)

-떠나지 못 하는 고향 친척은 무엇인가?

-너무 좋아하는 식구, 너무 무시하는 식구 중에서 무엇인가? (무엇을 떠나지 못하나?)

 

3.   아비가 죽음에 떠난다.

 

맨 처음에는 아브라함이 부모를 못 떠나서 아버지와 같이 가나안 땅에 가자고 했고 처음에는 고맙게도 아버지가 같이 떠나줬다

아버지의 아들 중에 일찍 죽은 하란이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같은 이름 지명인 하란에 도착하자 좋아서 머물면서 거기서 떠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에게 목적지까지 가자고 말을 못 하는 것이다

망설, 망설하다가 지체하며 출발을 연기하는 것인데 데라의 뜻이 연기한다인데 아버지 데라는 월신을 섬기는 우상장사이며 우상숭배자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하란에서 죽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진로를 방해하고 연기한 사람이기에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아버지를 떠나고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 성경의 주제인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해야 하는데 방해를 하는 사람이 많다

맨 처음부터 떠났어야 했는데 같이 하려고 하니 늦어졌는데 하나님이 데라를 죽이지 않으면 아브라함은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맨 처음부터 믿음으로 떠난 것이 아니고 명령은 받았는데 연기 연기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떠나지 못한 아버지는 누구인가?
듣기만 해도 끔찍한 질문 아닌가?
오늘은 어떤 또 어떤 비난을 하시려나?
아브라함이 맨 처음부터 잘 떠난 건가?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믿음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주님 만난 것이 언제인가?
아브라함이 주님을 만난 것을 언제일까?  떠나면서 여러 번 만남을 경험했는데 그럴 때마다 떠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택한 사람의 특징은 뒤에서 맨날 잡아당기는 것이며 떠나야 하는데, 잘 믿어야 하는데 말씀을 들었기에 사건이 들어오면 들은 말씀으로 딱 깨닫는다

아브라함이 조카인 롯(Lot)을 데려 갔는데 롯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

큐티를 깨알같이 하면 깨달아지는 것인데 우리가 이렇게 떠나지를 못하니 일평생 떠남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25년 떠남이 계속되다가 가장 아까운 이삭(Issac)과의 떠남의 계속되는 것인데 아끼는 것은 다 놓으라는 것이다

마지막이 놓는 것이 자식이다

내가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옮기셨느니라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건을 주셔서 반짝 들어 옮기신 것이다

신 구약을 관주로 찾아보면서 왔다 갔다 보면 더 풍성해지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구속사는 내가 하는 것이 없으며 스데반이 말하는 아브라함의 구속사이며 나하고 똑같은 인생인데 환경과 사건이 와서 떠나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떠나간 것이 아니라 사건이 와서 떠난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을 때부터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품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갈까?

아브라함이 순종했다는 것이 그래서 순종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평범한 사람들이 적용할 수 있게 구속사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며느리 다말하고 동침한 유다나 유부녀 밧세바와 바람 핀 다윗 등 잘못이 그대로 나와있다는 것이다

성경처럼 위대한 책은 없다는 것이고 이게 구속사고 우리와 똑같은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성경의 구약은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하지 말라, 가지 말라말라가 나오는 말라기’(Malachi)로 끝난다

구약도 예수님 오신 구속사로 보라는 것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때도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놓고 믿음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 별 인생이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위대하니까 나는 못 간다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길로 놓고 도전하는 것이 우리와 똑같다 아브라함과 내가 똑같다 라는 것이 구속사다.

출애굽을 겪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과 헬라파 지도자들은 다 고생하고 온 사람들인데 똑같은 성경을 보면서 모세와 아브라함을 우상처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저는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한다.

무슨 이해타산 때문에 이런 설교를 하겠나?

 

(적용#3)

-아비가 죽음에 떠난 것과 옮겨진 것은 무엇이 있나?

-무엇 때문에 옮겨졌나?

 

4.   떠나도 보이는 것이 없다.

 

떠나라, 떠나라해서 떠났던 것이 아니라 옮겨졌다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자식이 없었고 그냥 약속만 믿고 걸어가는 것이다

예수 믿어도 자식도 안 주고 속았지 않나? ’라는 일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약속은 보이는 유혹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이 땅에서 종 노릇 해보고 자손들도 애굽에서 종살이에서 떠나야 약속의 자손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구속사와 세속사의 차이인데 약속은 유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후손도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내보내야 후손이 나온다고 한다.

후손도 내 마음대로 4백 년이 되기 전에 399년째 나오면 훈련이 안 된다고 하시니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향 친척 떠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네가 원하는 약속의 자손도 다시 애굽으로 떠나서 다시 또 옮겨져서 종살이로 괴롭게 한 후에 나와서 심판을 통해 약속의 땅에 오는 것이지 네 자손이라서 약속의 자손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성경에 정확히 기록이 다 있는 이야기다

아브라함이 아들, 아들달라고 부르짖고 가나안으로 갔지만 이스마엘은 육적 자식이지 영적 자식이 아니었으며 25년 만에 약속의 자손으로 영적 자식을 원하는 마음으로 떠남이 이루어지는데 25년이나 걸렸다

육적 자식(이스마엘)이 아닌 영적 자식(이삭)으로25년 만에 바뀌어야 한다

내가 자식 자식 타령하다가 영적 자식이 되어야 하고 자기의 약점으로 돈 돈 돈 하다가 돈 생기면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이도록 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 나쁜 아버지가 없다라는 것이 구속사다

육적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는 영적 성전이 지어지지 않는다

종 노릇 해봐야 알게 되기에 스테반은 창세기를 인용하여 설교를 하는데 대제사장도 구속사적이 아닌 것이다

고난을 약속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구속사를 알고 믿으니 약속을 받는 것이다

고난을 겪어야 세상이 감당을 못하는 믿음과 약속이 되는 것이다

자기 고난이 합쳐져야 구속사 가치관이 생기며 고난이 쯔나미처럼 밀려올 때 육신의 정욕을 떠나야 한다

말씀을 고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보이지 않는 후손도 고난을 당해야 믿음과 약속이 되는 것으로 현재의 고난은 잠시 잠깐이지만 나중에 찾아 올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스데반이 설교하고 죽었는데 하나님의 영적 영광을 보여주기 위한 그 어떤 사람이었다

(적용#4)

-세상이 여러분을 감당 못 하나? 아니면 여러분이 세상을 감당 못 하나?

 

5.   영적 자녀 낳는 것이 떠남의 결론이다.

하나님은 율법보다 믿음을 먼저 주셨다

한량 없는 은혜로 믿음을 주셨다

출애굽기에서 율법을 주시기 전에 할례의 율법을 주신 것은 계속 우리의 믿음을 주시고 율법을 주신 것으로 율법이 우상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을 부적처럼 여기는 것이 우리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겼는데도 하라라는 여자를 얻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이 없는데도 영적 자손을 허락하신다

우리의 행위로는 천국 갈 수 없는데 우리가 형편없어도 믿기만 하면 우리를 통해 영적 자녀를 낳게 해주신다는 것이 구속사다

25년 만에 별 볼일 없는 자식인 이삭 하나 주시더라

하나님자체가 상급인 것을 믿음 있는 성도들은 아는 것이다

이삭이 할례를 받고 후손이 기하급수적으로 자손이 느는데 야곱이 12명을 낳고 70명이 되고 60만이 되었다가 200만명으로 다시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약속을 믿고 떠나야 한다

한 사람을 낳았는데 수 만 명이 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지 못하면 두 사람도 못한다

영적인 일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힘이 드는 것 같은데도 힘이 들지 않는다

사명이 무서운 것이다

힘들다라고 말하는 것은 생명을 낳아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우아한 사탄의 얼굴로 앉아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

여기다 살을 붙인 것이 신 구약 66권인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예외가 없다

구속사의 인생을 잘 살아가도록 잘 떠나게 해주실 것을 믿는다.

 

(적용#5)

-여러분은 잘난 아들인 육적 이스마엘을 사모하나? 눈만 껌벅 거리는 부족한 이삭을 사모하나?

 

<Epilogue>

성령의 떠남은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다.

고양과 친척을 떠나라고 한다.

아비가 죽음에 떠난다.

떠나도 보이는 것이 없다.

영적 자녀를 낳는 것이 떠남의 결론이다

 

항상 내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모든 성경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성경을 알고 있어도 제대로 꿴 다음에 내가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한마디를 하면 된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어떤 본문도 똑같은 예수님 이야기를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어디고 계실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고 믿음의 몇 대손이라는 혈통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영광의 하나님으로 보이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있는 친척을 위해서 기도할 수도 있고 지금 세상에 취해 있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학벌과 권력과 모든 것에 취해 있는 그 누구에게도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으로 보이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구원을 안 받던 받던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되고 전도해야 한다.

온 집안에 불란을 일으키는 자녀도 있지만 언제나 가정에는 질서가 있고 위아래가 있는데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것이 효도다

훈련되는 데 있어서 하나도 안 들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질서라는 것을 주셨다

질서를 주신 것은 그게 아니면 훈련이 안돼서 이다

그래서 내 질서에 순종 해야 하는 것이다

질서로 밖에 우리가 훈련 받을 수 밖에 없다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영육의 나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하란에서 죽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진로를 방해하고 연기한 사람이기에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아버지를 떠나고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 성경의 주제인 것이다

택한 사람의 특징은 뒤에서 맨날 잡아당기는 것이며 떠나야 하는데, 잘 믿어야 하는데 말씀을 들었기에 사건이 들어오면 들은 말씀으로 딱 깨닫는다

큐티를 깨알같이 하면 깨달아지는 것인데 우리가 이렇게 떠나지를 못하니 일평생 떠남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25년 떠남이 계속되다가 가장 아까운 이삭(Issac)과의 떠남의 계속되는 것인데 아끼는 것은 다 놓으라는 것이다

마지막이 놓는 것이 자식이다

내가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옮기셨느니라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건을 주셔서 반짝 들어 옮기신 것이다

성경을 보면 구속사는 내가 하는 것이 없으며 스데반이 말하는 아브라함의 구속사이며 나하고 똑같은 인생인데 환경과 사건이 와서 떠나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 떠나간 것이 아니라 사건이 와서 떠난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평범한 사람들이 적용할 수 있게 구속사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며느리 다말하고 동침한 유다나 유부녀 밧세바와 바람 핀 다윗 등 잘못이 그대로 나와있다는 것이다

성경처럼 위대한 책은 없다는 것이고 이게 구속사고 우리와 똑같은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성경의 구약은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하지 말라, 가지 말라말라가 나오는 말라기’(Malachi)로 끝난다

아브라함은 위대하니까 나는 못 간다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길로 놓고 도전하는 것이 우리와 똑같다 아브라함과 내가 똑같다 라는 것이 구속사다.

이것이 구속사와 세속사의 차이인데 약속은 유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후손도 내 마음대로 4백 년이 되기 전에 399년째 나오면 훈련이 안 된다고 하시니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 나쁜 아버지가 없다라는 것이 구속사다

육적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는 영적 성전이 지어지지 않는다

고난을 약속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구속사를 알고 믿으니 약속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보다 믿음을 먼저 주셨다

한량 없는 은혜로 믿음을 주셨다

우리의 행위로는 천국 갈 수 없는데 우리가 형편없어도 믿기만 하면 우리를 통해 영적 자녀를 낳게 해주신다는 것이 구속사다

한 사람을 낳았는데 수 만 명이 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지 못하면 두 사람도 못한다

영적인 일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힘이 드는 것 같은데도 힘이 들지 않는다

사명이 무서운 것이다

힘들다라고 말하는 것은 생명을 낳아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1. 10. 10:19

[우리들교회 2020 15일 주일설교 말씀요약(사도행전6 8절로 72절 성령의 얼굴)]

 

 

<Prologue>


지난 송구영신 때 시편142 3절에서처럼 내 마음이 상하면 영이 상하고 얼굴이 상하면서 꼬인다.

스데반도 다윗처럼 광야 길을 갔다 

다윗의 엄청난 광야 길에 그때 다윗의 얼굴은 어땠을까?

성령의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링컨은 나이가 사십이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랬는데 내 얼굴은 성령의 얼굴인가 꼬인 얼굴인가?



<말씀 요약>


1.
증인의 얼굴로(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얼굴)이다.

(8)


성도는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다.

성령이 증인되게 하기 위해 성령이 성령의 얼굴을 주신다고 생각한다.

5
절에 믿음과 성령까지 충만한 사람을 뽑았는데 오늘 스데반은 8절에서 은혜와 권능까지 충만한 사람이라고 그랬다.

성령의 조직에서 일곱 일꾼 중에도 스데반은 가장 탁월한 사람인데 성령충만-지혜-칭찬-믿음-권능 충만 등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은혜가 믿음이 권능이 충만한 그냥 완전한 주님의 일꾼이었는데 이런 사람은 없더라.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니까 지혜 은혜 권능이 저절로 따라왔고 성령 충만하면 못 할 일이 없다

사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부터 큰 기사와 표적을 열 두 사도가 행했는데 이 집사들이 열 두 사도들에게 안수 받고 이런 능력들을 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들교회에서도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이 증거되기를 원한다

진정한 부활이 증거될 때 이렇게 큰 권능이 따르고 큰 증거를 하게 될 줄을 믿는다.

우리들교회에서 어떻게 날마다 일어날까?

크신 계획을 알 수 없는 것이 많지만 사업을 택해도 말씀을 택하면 어떤 상황에도 버티고 통과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기사이고 표적이다.

가장 큰 표적은 예수님이다

진로를 택하거나 배우자를 택할 때도 말씀과 은혜가 충만하면 만사형통이다

내 영이 상하고 마음이 꼬이면 얼굴이 꼬이게 되는데 꼬인 얼굴과 마음으로는
큰 기사를 펼칠 수가 없다.

르우벤 지파는 결정적일 때 편한 길인 요단 동편을 택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진다

어떤 사람은 교회 안 오다가 결정적일 때 와서 결혼도 잘 하는 것을 본다.

결정적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서 선택하는 것이 큰 기사와 표적이다.

진짜 알 수 없는 일이 찾아오는 것이다

(9)

복음이 전파되리라처럼 전통적인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전하다가 열 두 사도가 핍박 받았다

본토인 히브리인을 넘어서 교포유대인(diaspora)들로 인해 지경이 넓어졌다.

포로로 잡혀갔거나 노예가 된 유대인들 후손들(리버디노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아시아에서 온 사람들/ Jews of Cyrene and Alexandria as well as the provinces of Cilicia and Asia.) 이 돌아왔다

길리기아(Cilicia)의 다소 출신 바울도 이들 무리에 끼어 있었다

Diaspora
유대인들로 회당(Synagogue)이 각각 있는 것인데 오랫동안 흩어져 있다가 모여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소위 자기네 아지트(Synagogue of the Freedom)를 만드는 것이다

옛날 체제와 새로운 체제가 절대로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모두 다 화평, 평화 할 수 없다는 것인데 참으로 뛰어난 믿음이고 권능과 지혜가 충만한 통찰력이다

여기서 길리기아(Cilicia) 란 지명이 나오는데 그곳은 로마의 속주인데 바울도 이 논쟁자들 중에 끼여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죠?

바울 사도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걸로 사도행전 1 8절이 이어지고 있다.

열 두 사도의 시대는 끝나서 일곱 일꾼들을 세우고 사라지는데 베드로가 조금 나오다가 그 다음에 이제 바울 시대가 도래한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가 사도행전의 역사인데 오늘 암시가 되었다

스데반은 일곱 일꾼, 소위 집사니까 각각 그들의 회당을 찾아 다니면서 전했는데 이렇게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스데반을 그들이 딱 고소해서 재판정에 세운 것이다

각 회당마다 여러 차례 논쟁에 휩싸였다는 것인데 스데반에 대해서 비토(veto)한 것이다

예수의 메시아 직,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과 율법문제로 회당에서 고발로 계속 논쟁에 휩싸이니까 막 스데반에 대해서 깊은 적개심을 표출한다

그런데 논쟁을 하니까 이 사람들이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에게 지게 된다

(
적용)

-결혼생활이나 직장이나 가정에서 성령의 은혜와 권능으로 버티고 통과하고 있나?

-그것이 큰 기사이고 표적이 되고 있나?

-내 성품으로 하다가 죽을 일 쌓이고 있나?


2.
거짓 증인을 지혜와 성령으로 물리치는 얼굴이다.

(10)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고 빌립과 스데반을 행정, 재정담당 등으로 세웠는데 역할을 정해놓았다고 말씀을 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난 집사들을 스타로 탄생시켰다고 본다.

순종하기로 결정한 자를 하나님께서 쓰시기 때문이다.

스데반의 혀를 금하게도 하시고 열게도 하시는데 내 입을 열게도 하시고 닫게도 하신다.

누가복음 21 15절에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구변)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For I will give you words and wisdom that none of your adversaries will be able to resist or contradict.)

내가 읽은 성경만 가지고는 이길 수가 없는 것인데 이 성령이 증인되게 하시니까 성령이 책임지고 내 입에 구재를 주신다.

모세도 바울도 어눌한 사람이었다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당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다

(목사님 예증)


제가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어머니도 어머니도 너무 무섭게 하시는데 죽을 일이 쌓였어요. 지금보다 당연히 예뻤겠죠. 성령의 얼굴이 아니었어요. 그야말로 죽을 상이었어요. 성령의 얼굴은 예쁜 거랑 상관이 없어요.

가서 무슨 말을 하지? 그러다가도. , 이게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는 거를 온 몸으로 느끼는 거에요. 나의 무시를 당하는 것도 무시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어요.’

성령의 얼굴과 예쁜 것은 다른데 예쁘지만 일그러진 얼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거짓 증인의 특징한 세 가지:

1)
매수한 자들(11)

자기네들이 이제 당하지 못하니까 돈으로 음모를 꾸미는 것이다.

모세를 모독했다는 말은 율법을 모독했다는 말인데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성하러 왔다. 이렇게. 그렇게 말을 하게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고.

완전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자꾸 되풀이하면 믿게 되어 있다.

누가 내 욕을 한다고 하면 그 공산주의 선동이 그런 것인데 하나의 문구를 또 외우고 외우고 하면 믿게 되는 것으로 공산주의 선동처럼 같은 얘기를 계속 주입하고 주입하고 주입하는 것이다

100%
의 거짓 보다는 거짓과 진짜의 혼합이 훨씬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맛을 보면 놓지 못하니까 불행한 역사가 계속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더 이상 예루살렘 한 곳에서만 제한되어 드려지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몰았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과 하나님의 신성을 비방, 훼방, 모독하면 돌로 쳐 죽인다

레위기 24 16절에 보면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2)
충동시키는 자들 (12)

특별히 그 서기관인 이 바리새인들은 부활은 믿지만 분리된 자들로 외식이 전공인데 외식으로 가는 길을 통해 예수님과 스데반을 죽인다

그 사람들은 열심당이고 부활을 믿으며 여행을 가도 시장을 가도 기도시간만 되면 딱 기도를 하니까 사람들이 칭찬을 한다.

바리새인들은 배울 수록 이 외식이 늘어나게 되는데 외식주의자 가는 길이 예수님 죽이고 스데반 죽인 것이며 그들은 학자들이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고 엘리트들이다.

여기 똑같은 동일한 백성들이 나오는데 이 백성들은 기독교인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충동에 너무나 쉽게 동요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백성은 믿을 게 못 되는데 오늘은 이렇고 내일은 저렇다

스데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사주가 성공했기 때문에 그렇다.

죄목을 자기네들도 모르는데 이 신성모독, ‘하나님을 모독했대~’라는 그 말을 다 믿고 예수를 죽여라~! ’하던 사람들이 스데반을 죽여라~! ’라고 했던 것이다

3)거짓증인(13)


이런 사람들이 내 옆에 득실거리는데. 눈 앞에 포도청이라. 여러분 영혼이 지옥으로 끌려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들교회 너무나 탐이 나는 것이다. 우리들교회 성도들을 데려가면 승진한다는 것인데 너무나 말씀이 안 들리는 것이다

13
14.
굉장히 강대상이 불편해요. 정말 물 한 모금 먹으려면 힘들고 뚜껑이 딱 떨어지고. 이렇게 이렇게 돼야 되잖아요?

요한복음 2 19절에 보면.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서 이 얘기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겠다! 구속사의 영적 의미를 얘기하는 것이고!

요한복음 4 24절처럼.

오랫동안 내려온 동굴제사와 무형론을 얘기했겠죠. 근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릴 위해 희생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이제 희생제사가 필요 없다

그러니까 모세의 율법을 고치겠다는 것이고 일으키리라!’ 했는데 이것을 다 문자적으로 듣고 예수님이 성전을 파괴했다고 스데반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고발한다

우리는 이렇게 우기는 거짓증인을 못 이기잖아요? 우겨 우겨~ 그러니까 주님은 구속사에 대해서 중요한데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문자적으로만 알고 유대주의적으로 빠져 있기 때문에 그걸 그냥 듣는 것이다.

사람들은 뭐라고? 성전을 헐라? 아니, 예루살렘 성전이 얼마나 대단한데?

이 얘기는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진다!’라는 영적 구속사적 의미인 것이다.

율법을 폐하다니! 율법을 폐하다니! 이제 못 알아들으니까 예수님도 스데반도 조롱하다 죽였던 것이다

이렇게 거짓증인들이 올 때 지혜와 성령으로 당해내야 되는 것이다

성령의 얼굴은 거짓증인들을 이기는 얼굴이다

(
적용)

-매수한 자들, 충동시키는 자들, 거짓증인 중에 여러분들은 어떤 자인가?

-여러분들, 이것이 여러분들하고 상관 있나, 없나?

-여러분들 조금 잘못하면 . 입 다물어줘라고 누가 말하면 부글부글 끓어가지고,’걔가 널 욕했어라고 충동질 하지 않나?

-살짝살짝 거짓말 해주면서 내 성적 올리고, 그 중에 여러분들은 어떤 자인가?

-내가 당했을 때는 어떤 지혜와 성령으로 물리친 적이 있나?

나한테는 지혜가 없는데도 목장에서는 가겠다 안 가겠다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주시는 얼굴 즉 천사의 얼굴과 같다.

(15)

거짓증인들이 모두 공격하니까. 이제 돌 하나도 돌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성전을 헐라는 것은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선다라는 것이다

죽이려는 사람 앞에서 얼굴이 천사가 안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숨이 안 쉬어지는 상황에서 천사의 얼굴을 해 보이면 예수가 증거된다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 천사의 얼굴을 해 보이면 예수가 증거된다

무너지는 사건 속에서 천사의 얼굴을 해 보이면 예수가 증거된다

사랑으로 하는 표정이 천사의 얼굴표정이다

나를 대적하는 세력은 어떤 얼굴에도 화를 낸다

말세의 순교는 혈기를 내려 놓는 것이다

이기는 길은 천사의 얼굴로 대적하는 것이다

대 제사장도 짜고 치는 고스톱 식으로 몰아 부친다

성령의 조직은 형제의식이다

모두가 윽박지르면서 죽는데, 내 형제여! 라고 하면서 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 성경이야기로 시작한다

천사의 얼굴은 말씀의 인도를 받는 얼굴이다

가치관이 확실하지 않으면 이단에 넘어간다

스데반이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항상 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항상 성경 이야기로 시작을 해야 한다.

꼭 말씀 가지고 나누어야 한다.

그 일곱 가지 대지만 외워도 여러분은 너무 훌륭한 목자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것이며 천사의 얼굴은 말씀이 인도하는 얼굴인 것이다

내가 이 설교를 하면서 과연 얼마나 알아 들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라.

신천지는 맨날 요한계시록 얘기만 하면서 총공격을 하는 것 같다 

눈만 뜨면 스데반이 설교를 하다가 죽었는데, 나도 그럴래나?

11
개월 된 아이를 그 아버지가 고집이 세다고 때리고 유아용품도 더러운 곳에 두고 술까지 먹이고 있는 일이 대한민국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정말 불쌍한 사람이 많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은 11개월 된 아이가 취재진이 오라고 해도 그 악한 할아버지 품만 파고 들고 있지 않아요? 그 너무 슬픈 거 알아요? 몸이 기억을 해요. 그 할아버지가 내 아버진 것 같은 거에요. 때려도 술을 먹여도 그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는 것이다

상처가 대물림 되지 않고 끊어져야 하는데 상처가 왕 노릇 하는 가정이 그렇게 많은 것이라서 결혼은 신 결혼이 중요한 것이다

아이를 낳아야 하고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키워야 되는 것으로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인데 이 평범한 생각을 못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구속사가 가장 평범한 생각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악한 건지 좋은 건지 모르는 것이다. 아이들은 몸이 기억하는,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준 것이 최고인 것이다. 아무리 끝없이 이혼했어도 내 어머니 내 아버지를 찾아간다.

말씀으로 구제와 봉사와 섬김을 하는 것이 천사의 얼굴이다.

목장에서 하기 싫어요!’라고 해도 하고, ‘살기 싫어요!’라고 해도 살고, ‘가기 싫어요!’라고 해도 가는 것이 천사의 얼굴인 것이다

예쁜 것이 천사의 얼굴 아니고 목장과 예배에 가는 것이 천사의 얼굴이고 안 살아!’하면서도 사는 게 천사의 얼굴이다

반면 교양 있게 어머!’라고 하면서 안 살고, 안 가고 하는 이런 사람을 우아한 사단이라고 하는데 우아한 사단에 속지 말기를 바란다

아직 100%는 못 되어도 진심을 나타내면 성령의 얼굴이 될 것이다.

원망으로 이 자리에 왔어도 세상 욕심을 내려 놓고 성령이 임하도록, 천사의 얼굴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링컨: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나의 어머니가 준 성경 때문이었다. 겨울이 되어도 팔꿈치가 노출되는 헌 옷을 입었고 헌 구두를 신었다. 용기와 희망을 배우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헛되이 빈곤을 슬퍼하고 곤경을 슬퍼하지만 말고 성공을 쟁취해야만 한다.

성경을 주신 어머니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은 성령의 얼굴인 것이다

구원의 얼굴과 구원의 표정이 성령의 얼굴인 것이다

링컨의 어머니 그분은 배우지 못한 분으로 가난하고 그렇게 교양이 있었겠나?

성경 하나 주는 것이 천사의 얼굴이고 악을 써도 가고, 살고 하는 것이 천사의 얼굴이다.  

입이 교양 있으면 뭐하겠나?  삶에 교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엄마 얼굴 보고 교회 안 나가면 말도 안 된다면서 정말 그 주일부터 한 번도 안 빠지시고 교회 가시면서 장로가 되었다

우리 엄마는 변소 청소하면서 화장도 안 하고 다니면서 똥내나는 몸빼바지 입고 사셨다. 돌아가실 때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뇌출혈이 뇌일혈이 되어 가지고 가보니까 30대 여인이라고 써 있더라구요.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소반에 머리 잘린 세례 요한도 성령의 얼굴, 천사의 얼굴인 것이다.

성령의 얼굴, 천사의 얼굴은 구원을 향한 얼굴이며 신비한 표정인 것이다

이단은 성령이 얼굴은 건드리지 못한다

이단에 끌려가는 사람은 자기 욕심 때문이다

택함 받은 사람은 이단에 끌리지 않는다

성령의 얼굴, 불꽃 같은 얼굴로 이단을 원천봉쇄 해야 한다

내가 증인 역할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 주신다

하나님이 증인되어 주시는 Sign이 천사의 얼굴이며 표적과 기사다

(
적용)

-여러분은 화내는 우아한 사단의 얼굴인가? 천사의 얼굴인가?

-진짜 구원이 없는 사람들은 얼굴에 표정이 꼬여서 인사를 해도 잘 안 받는다. 여러분 어떠신가?



<Epilogue>


천사의 얼굴은 지혜와 성령으로 물리치는 얼굴이다

거짓증인을 지혜와 성령으로 물리치게 하신다

크신 계획을 알 수 없는 것이 많지만 사업을 택해도 말씀을 택하면 어떤 상황에도 버티고 통과하게 하신다.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다

진로를 택하거나 배우자를 택할 때도 말씀과 은혜가 충만하면 만사형통이다

내 영이 상하고 마음이 꼬이면 얼굴이 꼬이게 되는데 꼬인 얼굴과 마음으로는
큰 기사를 펼칠 수가 없다.

결정적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서 선택하는 것이 큰 기사와 표적이다.

완전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자꾸 되풀이하면 믿게 되어 있다.

100%
의 거짓 보다는 거짓과 진짜의 혼합이 훨씬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맛을 보면 놓지 못하니까 불행한 역사가 계속되는 것이다

성령의 얼굴은 거짓증인들을 이기는 얼굴이다

성전을 헐라는 것은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선다라는 것이다

죽이려는 사람 앞에서 얼굴이 천사가 안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숨이 안 쉬어지는 상황에서 천사의 얼굴을 해 보이면 예수가 증거된다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 천사의 얼굴을 해 보이면 예수가 증거된다

무너지는 사건 속에서 천사의 얼굴을 해 보이면 예수가 증거된다

사랑으로 하는 표정이 천사의 얼굴표정이다

나를 대적하는 세력은 어떤 얼굴에도 화를 낸다

말세의 순교는 혈기를 내려 놓는 것이다

이기는 길은 천사의 얼굴로 대적하는 것이다

천사의 얼굴은 말씀의 인도를 받는 얼굴이다

가치관이 확실하지 않으면 이단에 넘어간다
항상 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항상 성경 이야기로 시작을 해야 한다.

상처가 대물림 되지 않고 끊어져야 하는데 상처가 왕 노릇 하는 가정이 그렇게 많은 것이라서 결혼은 신 결혼이 중요한 것이다

구속사가 가장 평범한 생각이다

말씀으로 구제와 봉사와 섬김을 하는 것이 천사의 얼굴이다.

예쁜 것이 천사의 얼굴 아니고 목장과 예배에 가는 것이 천사의 얼굴이고 안 살아!’하면서도 사는 게 천사의 얼굴이다

아직 100%는 못 되어도 진심을 나타내면 성령의 얼굴이 될 것이다.

원망으로 이 자리에 왔어도 세상 욕심을 내려 놓고 성령이 임하도록, 천사의 얼굴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성경을 주신 어머니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은 성령의 얼굴인 것이다

구원의 얼굴과 구원의 표정이 성령의 얼굴인 것이다

성경 하나 주는 것이 천사의 얼굴이고 악을 써도 가고, 살고 하는 것이 천사의 얼굴이다.  

입이 교양 있으면 뭐하겠나?  삶에 교양이 있어야 한다

성령의 얼굴, 천사의 얼굴은 구원을 향한 얼굴이며 신비한 표정인 것이다

이단은 성령이 얼굴은 건드리지 못한다

이단에 끌려가는 사람은 자기 욕심 때문이다

택함 받은 사람은 이단에 끌리지 않는다

성령의 얼굴, 불꽃 같은 얼굴로 이단을 원천봉쇄 해야 한다

내가 증인 역할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 주신다

하나님이 증인되어 주시는 Sign이 천사의 얼굴이며 표적과 기사다

정말 내가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는데 버티고 견디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12. 31. 13:00

[우리들교회 2019 1229일 주일예배 말씀요약(사도행전 6:1~ 7/ 성령의 조직)]

 

 

<Prologue>

 

교회가 세워지고 시스템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16년동안 문제도 많았지만 늘 해결하게 해주셔서 여기까지 왔다.

대형교회가 이렇게 올 수 있는 것은 기적과 같다.

성령의 조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말씀요약>

 

성령의 조직은,

1. 원망의 문제가 생긴다.

 

(1)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In those days when the number of disciples was increasing, the Grecian Jews among them complained against the Hebraic Jews because their widows were being overlooked in the daily distribution of food..)

그 때가 어느 때 인가?

그 때에 교인이 많아진 것이 아니고 제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제자가 많아지니 또 사단이 궐기를 한다.

선한 일인 구제의 불균형을 이유로 교회의 조직을 공격했다.

헬라파(Grecian Jews)와 히브리파(Hebraic Jews)의 반목/갈등이 터졌다.

헬라어인 디아코니아는 구제이며 섬김과 봉사를 아우른다

가장 선한 일인 구제를 안 할 때는 문제도 없었는데..

과부를 구제하면서 원망이 생겼다.

일하면 원망이 이렇게 생긴다.

포로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헬라파(Grecian Jews/diaspora), 본토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개척공신이라 할 수 있는 히브리파(Hebraic Jews)라 한다.

그런데 헬라파 사람들이 말씀이 너무 좋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먹을 것을 먹고, 돌아가지 않으니 왜 안 돌아 가지?’ 하는 생각이 히브리파에 생기게 되었다.

돈 때문이다.

자기들끼리도 무시하는데 그 당시 이방인은 얼마나 무시했겠나?

그런데 왜 받아들여 주었냐 하면 다같이 못사니까 받아들여준 것이다.

예를 들면 6.25 사변 때는 모두 다 못사니까 북한에서 온 피난민들도 다 받아 들였는데 잘 살게 되니까 탈북자도 마찬가지 이유로 문제가 불거져 무시를 하게 된다.

일생 중 긴장 가운데 있는 것이 축복인 이유는 세상이 싸우고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다시 돌아 오는 가운데 그 전쟁터에서 배우고 성경 배우며 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 처음에는 자 야~’하면서 친하지만 오래 지내다 보면 단점이 보여 반목하게 된다

사람을 알려면 가깝게 지내야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문제 없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요즘도 죽어가는 가정을 살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문제가 생기는데 왜 남의 일에 간섭이냐고 하면서 큰 문제로 번질 수가 있다.

이 세상은 전쟁터다.

서로 구제 받을 입장에서 원망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하면서 이렇게 받아들여주면 좋을텐데..

초신자가 상처받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싸우고 배우고 하며 우리가 커 가는 것이다.

처음에 은혜가 충만할 때는 다 충만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목장을 하고 시간을 보내면, 다 드러난다.

특별히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 때 시간을 보내며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가깝게 지내지 않기 위해 저는 목장에 안가요. 다 드러나잖아요?’ 하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다.

해석을 해야 해결이 되지 않겠나?

(목사님 중간 말씀)

추수감사절에 드리는 구제 배분이 늦어졌는데요.. 우리가 정말 힘든 사람들을 2~3달을 도와주는 게 어떨까 생각을 하다가.. 누가 정말 힘든 사람인가를 구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늦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예전 방식으로 배분하기로 했습니다.”

(적용)

-지금의 목장이나 회사 조직에서 원망이나 차별이나 오해 중에 여러분은 무엇이 전공인가?

 

2. 말씀을 제쳐놓으면 안 된다.

 

(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대접)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So the Twelve gathered all the disciples together and said, "It would not be right for us to neglect the ministry of the word of God in order to wait on tables.)

성령의 조직은 해결하는 방법이 다르다.

일단 12사도가 제자 모두를 불렀다.

이것은 구제의 불공평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제쳐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구제를 했다고 회개를 했다.

베드로처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그 베드로가 내가 말씀을 제쳐 두었다라며 회개를 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이렇게 자기가 먼저 회개를 하는 것이다.

목장에서도 목자가 직분이 높은 사람이 내가 말씀을 제쳐놓았다고 이렇게 처방을 하는 것이다.

사람을 구제하려면 사람을 생각하고, 섬기며 그런 봉사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구제는 헬라표현(디아코니아)을 사용했는데 섬김과 봉사와 직무라는 뜻을 가졌다.

그렇게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하니까 자기가 높임을 받으려고 접대만 하는 것이다.

말씀을 제쳐두고 접대만 하게 되면, 아무리 애써도 서로 원망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애들에게도 접대만 일 삼으니까 원망이 생긴다

십자가의 말씀을 제쳐 놓은 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원망이 나오는 것이다

접대는 1:1로 마주쳐서 내가 도우면 그 사람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니 1:1은 그만해야 한다.

음식으로 섬기며 음식을 대접하며 은혜는 받지만 누가 하라고 하면 하기 싫을 수도 있다.

대접을 받으면서도 오해가 쌓일 수가 있다.

봉사하는 입장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오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대접 받는 입장에서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고 오해가 쌓일 수가 있다

음식은 중요하고 대단한 사역이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도 그만큼 대가가 오지 않으니 원망이 생기는 것이다.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 적용은 뺀채 내가 대접을 했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히브리파가 헬라파를 무시하니까 그냥 우리끼리 예배 드려. 내가 무시 받고는 못살지하며 교회가 갈라지는 분열이 된다.

그러니 우리는 내가 말씀을 제쳐두었다고 하는 12사도(the Twelve Apostles)가 되어야 하고, 먼저 자기에게 이유를 돌리며 회개해야 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가 으뜸이 되길 좋아하는 리더인 디오드레베가 아니라 데메드리오처럼 뭇사람에게도 증거를 받는 리더가 되라고 하신다.

집집마다 원망이 되는 상황이 오면 서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적용)

-말씀을 제쳐두고 접대만 일삼는 것은 무엇인가?

 

접대를 하면 남으로부터 인정이 나와 당장 좋으니까 접대만 일삼는데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만 일 삼으면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3. 형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Brothers, choose seven men from among you who are known to be full of the Spirit and wisdom. We will turn this responsibility over to them)

히브리파는 선민의식과 율법을 가지고 헬라파를 차별하니까 오해가 생긴다

서로가 비방을 하니까 우리는 갈라서야 해라고 하는데 형제 의식을 가지면 말씀이 들려 찔리게 되어 유무상통하며 다같이 모였지 않나?

사도들의 형제 마인드가 문제해결을 가능케 한다.

왜 이런 일이 왔을까?’ 에 대하여 생각을 해야 한다.

초대교회의 조직은 구제도 교회사역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아무나 뽑지 않았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과 칭찬 듣는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선택조건은 구제와 봉사의 사명이 주어질 일곱 일꾼의 자격(구제와 봉사와 사역)인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구 방언을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고 있는 자를 제자들이 뽑은 것이다.

성령이 충만 하려면 마리아의 경우처럼 수치와 조롱을 이겨내는 성령의 잉태가 있어야 한다

성령이 충만하면 하늘의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도 잘 풀어내는 지혜까지 주신다.

성령의 충만함이 없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디에서 자존심을 지키고 내려놔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한 것이다.

자존심을 어디서 내려 놓아야 하는 지를 알려면 성령의 지혜가 있어야 가능하다

섬김의 마음이 있어야 지혜가 나온다

지혜는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인데 그것을 못한다.

여러분이 앉으나 서나 칭찬을 들어야 하는데 사람의 칭찬이 다가 아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칭찬을 받아야 하지만 말씀을 제쳐두고 접대만 하면 대제사장들에게는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모든 대제사장이 아니라 지금 성경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같은 사람들에게서 이다.

저도 육신의 약함이 있으니까.. 그러나 성령의 사람들끼리는 올바른 칭찬과 격려를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많은 말을 해도 한마디를 해도 딱 알아 듣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못 알아 듣고 오히려 말꼬리를 잡는다.  

성령을 받은 자들이 말씀도 잘 듣고 섬기고 봉사도 잘한다.

돈이 없고 부도나고 망한 사람은 전혀 어렵지 않지만 진짜 힘든 사람이란 복음이 나팔소리 같이 들리는데도 진도가 안 나간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모이는 우리들교회에 왜 가나?’ 라고 하지만 그렇게 힘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진정한 교회다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각자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것을 우리는 모른다.

각자 목장에서 힘든 사람, 그 힘든 사람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온 목장 식구들이 각자 긴장을 하고 힘든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

그 한 사람을 살려놓으면 대대손손 축복을 받을 것이다.

못 알아 듣는 사람을 붙여주신 것이 축복이다

말 잘 듣는 사람 4~6명이 모여 웃고 떠들고 그럴 때도 있지만 그 힘든 사람을 섬겨야 하고 섬김이란 표현도 삼가 해야 한다

칭찬은 들을 사람에게서만 듣는 것이 축복이다

세상 칭찬을 들으려고 애쓰고 연연하지 말아야 성령충만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실 것이다.

믿지 않는 악하고 음란한 사람에게 칭찬받으려 하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힘든 것이다.

오늘 구절의 원문에 집사라는 말은 없다.

많은 성경 학자들은 일곱 사람을 집사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디아코노스에서 집사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들교회는 일꾼이 부족하다 보니 남자들을 세웠는데 물론 세워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부터 남자를 세우려 했지만 유교적인 여자의 무시는 아니다.

하나님은 부족하지만 남자를 세우라고 하시며 그것이 더욱 여자를 위해 세워가는 교회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우고 되어가는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조직하셨다.

 

(적용)

-여러분의 형제의식은 몇 점인가?

-성령충만, 칭찬, 지혜 중에 잘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4. 기도와 말씀에 힘써야 한다.

 

(4)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and will give our attention to prayer and the ministry of the word.")

 

구제와 섬김과 봉사와 전도의 의미를 지닌 디아코니아’ ‘디다스코나’ ‘케르고마를 썼는데 섬기는 자나 대접 받는 자나 각자의 은사 별로 구별하지 않고 똑같은 은혜가 임한다는 것이다.

섬김, 직무, 봉사로써 섬기면서도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일곱 명의 사명인 것이다

처음부터 말씀을 보고 구속사적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그래야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있다.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을 위하여 일주일 내내 말씀을 잘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말씀을 봐야 준비기도-각자 기도-돌아가며 하는 기도-마무리 기도 등을 할 수 있다

초대교회 모습이 우리들교회에 있어서 말씀이 되어 가는 것에 모두 놀라고 있다

여러분은 사역자들이 말씀과 기도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제가 심방을 못 가더라도 말씀을 전해야 하니 말씀을 안 볼 수가 없다.

골방기도와 말씀 봄은 힘들지만 나와의 싸움이다

말씀을 열심히 보고 전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우리들교회가 되어가는 것이 감사가 되며 이것이 은사가 되는 것이다.

 

5.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This proposal pleased the whole group. They chose Stephen, a man full of faith and of the Holy Spirit; also Philip, Procorus, Nicanor, Timon, Parmenas, and Nicolas from Antioch, a convert to Judaism)

교회 일꾼은 온 무리가 택했는데 사도들의 일 처리를 너무나 기뻐했다.

말씀을 제일 많이 보는 사람들인 사도들이 스스로 내가 말씀을 제쳐놓았다고 회개를 하니 제자들이 이것을 기뻐하였다.

헬라파의 불평에 사도들이 회개를 한 것이다

7명 중에 니골라 한 명만 빼고 다 헬라파 유대인을 뽑았다.

지역감정과 파벌의식을 조장한 것은 히브리파인데 모태신앙인 그들은 기득권만 찾아 먹으려고 못해 신앙이었던 것이다

헬라파 지도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히브리파보다 마음이 열린 헬라파 유대인들(diaspora)이 제대로 된 항의를 했다고 할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포로로 갔다가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히브리파가 과감하게 자기들의 기득권을 내려 놓고 인정을 했다.

그래서 모조리 지도자들을 헬라파를 세운 것이다.

이것을 THINK를 하면 히브리파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없었겠나?

그런데 이것은 내 자리를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성령의 조직을 통해 스데반에게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a man full of faith and of the Holy Spirit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금의 집사라기 보다는 새시대 사역자로 성령의 조직에 부르심을 받은 일꾼인 것이다.  

스데반(면류관이란 뜻이 있음)은 최고의 설교자로서 순교, 빌립은 전도 등 순교자 전도자 등 다 나왔다.

말씀만 보도록 일곱 일꾼을 세워 수 많은 사람을 살리게 하셨다

저는 우리들교회에 처음부터 이러한 사람들을 세워주셨다고 생각을 한다.

성령의 조직이 저절로 세워지게 하시고, 또 새로 세워지게 하신다.

서로의 기득권, 나이, 지위도 내려놓으니.. 성령의 조직이 되는 것 같다.

자원하는 조직은 어떤 세상의 조직도 따라올 수 없는 맨 파워를 가진 조직이라고 생각을 한다.

(적용)

-내려놓지 못하는 기득권은 무엇인가?

 

알량한 기득권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6. 질서를 지킨다.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They presented these men to the apostles, who prayed and laid their hands on them.)

 

일꾼인 스데반이 베드로보다 더 훌륭한 설교를 했어도 그 밑에 있으므로 사도들이 안수를 해야 한다.

질서와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부족해도 각자 역할을 잘 하는 리더가 되는 시간을 줄여 주신다

지금은 내가 목자를 봐 줄 수가 없어도 내가 부목자, 목원의 역할을 잘하면 리더로 세워지는 시간을 앞 당길 수가 있다.

모든 공동체는 적응하는 시간이 있는데 공동체를 거치는 동안 모든 것이 다 드러나며 양육 받으면서도 다 드러나게 되어 믿음으로 세워진다.

믿음을 믿음으로 봐주는 교회가 중요하다.

안수하는 사도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오늘 말씀에 안수기도가 아닌 기도하고 안수하는 역할에 순종 했다고 한다.

인정을 했다는 뜻이다.

성령의 조직이니까 순교자-설교자-전도자가 나왔다

섬김에는 말씀이 절대적이고 은사는 차별이 없는 것이다.

 

7. 제자가 많아진다.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So the word of God spread. The number of disciples in Jerusalem increased rapidly, and a large number of priests became obedient to the faith.)

 

이것이 결론이다.

 

하나님 말씀이 왕성해 지면서 성령의 조직은 제자로 시작해서 제자로 끝난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면 세상 빽도 없고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도 제자는 많아질 수 밖에 없음을 우리들교회를 통해 알 수가 있다.

말씀이 왕성하다는 것은 성경을 꿰뚫고 있음이 아니라 목장-선교-구제-사랑이 십자가 지고 모든 교회 공동체가 잘 돌아감을 뜻한다.

어떤 경우에도 다  내 탓인 것이다

제자의 수가 많아졌을 때. 그런데 허다한 제사장들이 복음에 복종을 했다고 한다.

사람을 몰고 다니던 드다유다였지만 그들이 죽으니 사람들이 다 흩어졌다고 했다.

사람이 많아지니 그 허다한 제사장들(사두개파)도 복음에 복종을 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들교회에 은혜가 떠나면 여러분들이 오겠나?

은혜가 없으면 교회에 안 온다

예루살렘 성전처럼 멋있게 지어진 교회라고 해도 사람들이 떠났다.

지상교회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우리들교회가 영원하라가 아니고, ‘말씀이 영원하라이다.

당시 제사장들이 12,000명 정도가 있었는데 절기 3번만 치르니 먹고 살기 힘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고 하는데..

저는 제사장들이 감히 내가 그런 허드렛일들을 할 수 있어라고 하다가 굶어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THINK를 해 본다.

제사장들 무리가 복종을 하는 것은 내가, 베드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 전하는 베드로의 설교에 관심을 가지고 도(the faith)에 복종한 것이다

육이 무너지는 것은 이래저래 축복이다

성령의 조직은 다른 사람을 섬길 때 모든 것이 사명과 연관된다

흔히 성령의 조직에서 인도한답시고 접대하다가 생색이 나서 사명으로 포장하길 좋아한다

말씀을 제쳐 놓고 행하는 구제(접대)는 마땅하지 않다

포로로 갔다가 싸우고 다시 돌아와 성경을 읽고 키워나가는 것이 성령의 조직을 이루는 것이다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Lip Service)만 하니까 안 변하는 것이다

성령조직의 특징은 목자를 내려 놓고도 목장에 붙어 가는 것이다

가말리엘의 끝까지 예수 믿었다는 말이 없다

드러나지 않는 일에 질서를 지키는 것이 성령의 조직이다

목사라고 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는데. 성령의 조직이 세워져서 맨파워로 자원하는 조직이 돌아가게 되니 목세에 목사님들이 오시는데 안되고 힘들고 이런 분들이 말씀이 뚫고 들어간다.

여러분의 목장보고서에서 나도 못하는 목자의 처방을 보면 감사하고 마음이 흐뭇하다.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순전한 그 마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지혜를 주신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조직은 직업이 아니고 사명이며 사명과 연관이 되면 오늘 보석상자 말씀처럼 제일 경건한 사람은 사명 있는 사람”, “가장 영적인 사람은 가장 편한 사람, 웃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하고, 사과도 잘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로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이것이 최고로 섬길 수 있는 은사인가? 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성령의 조직은 쓴맛이다.

우리가 성령의 조직의 쓴맛을 보여주겠다.”라고 하면서 쓴 맛을 보여주길 바란다.

무시를 당한 것 같은 헬라파 같은 사람을 어떻게 인도를 해야 하는지..

 

<Epilogue>

 

성령의 조직은 원망의 문제가 생긴다.

말씀을 제쳐놓으면 안 된다.

형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기도와 말씀에 힘써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질서를 지킨다.

제자가 많아진다.

일생 중 긴장 가운데 있는 것이 축복인 이유는 세상이 싸우고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다시 돌아 오는 가운데 그 전쟁터에서 배우고 성경 배우며 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하니까 자기가 높임을 받으려고 접대만 하는 것이다.

말씀을 제쳐두고 접대만 하게 되면, 아무리 애써도 서로 원망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도 그만큼 대가가 오지 않으니 원망이 생기는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과 칭찬 듣는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선택조건은 구제와 봉사의 사명이 주어질 일곱 일꾼의 자격(구제와 봉사와 사역)인 것이다

성령이 충만 하려면 마리아의 경우처럼 수치와 조롱을 이겨내는 성령의 잉태가 있어야 한다

성령이 충만하면 하늘의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도 잘 풀어내는 지혜까지 주신다.

성령의 충만함이 없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디에서 자존심을 지키고 내려놔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한 것이다.

자존심을 어디서 내려 놓아야 하는 지를 알려면 성령의 지혜가 있어야 가능하다

섬김의 마음이 있어야 지혜가 나온다

지혜는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인데 그것을 못한다.

성령을 받은 자들이 말씀도 잘 듣고 섬기고 봉사도 잘한다.

칭찬은 들을 사람에게서만 듣는 것이 축복이다

세상 칭찬을 들으려고 애쓰고 연연하지 말아야 성령충만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실 것이다.

믿지 않는 악하고 음란한 사람에게 칭찬받으려 하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힘든 것이다.

말씀을 봐야 준비기도-각자 기도-돌아가며 하는 기도-마무리 기도 등을 할 수 있다

지역감정과 파벌의식을 조장한 것은 히브리파인데 모태신앙인 그들은 기득권만 찾아 먹으려고 못해 신앙이었던 것이다

모든 공동체는 적응하는 시간이 있는데 공동체를 거치는 동안 모든 것이 다 드러나며 양육 받으면서도 다 드러나게 되어 믿음으로 세워진다.

오늘 말씀에 안수기도가 아닌 기도하고 안수하는 역할에 순종 했다고 한다.

성령의 조직이니까 순교자-설교자-전도자가 나왔다

섬김에는 말씀이 절대적이고 은사는 차별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왕성해 지면서 성령의 조직은 제자로 시작해서 제자로 끝난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면 세상 빽도 없고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도 제자는 많아질 수 밖에 없음을 우리들교회를 통해 알 수가 있다.

말씀이 왕성하다는 것은 성경을 꿰뚫고 있음이 아니라 목장-선교-구제-사랑이 십자가 지고 모든 교회 공동체가 잘 돌아감을 뜻한다.

어떤 경우에도 다  내 탓인 것이다

은혜가 없으면 교회에 안 온다

제사장들 무리가 복종을 하는 것은 내가, 베드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 전하는 베드로의 설교에 관심을 가지고 도(the faith)에 복종한 것이다

육이 무너지는 것은 이래저래 축복이다

성령의 조직은 다른 사람을 섬길 때 모든 것이 사명과 연관된다

흔히 성령의 조직에서 인도한답시고 접대하다가 생색이 나서 사명으로 포장하길 좋아한다

말씀을 제쳐 놓고 행하는 구제(접대)는 마땅하지 않다

포로로 갔다가 싸우고 다시 돌아와 성경을 읽고 키워나가는 것이 성령의 조직을 이루는 것이다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Lip Service)만 하니까 안 변하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일에 질서를 지키는 것이 성령의 조직이다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순전한 그 마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지혜를 주신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