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5. 10. 19:24

[우리들교회 2020 510일 주일예배말씀 요약 및 후기(사도행전 9: 32~ 35/ 성령의 정돈)]

 

 

<사도행전 9:32~35>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As Peter traveled about the country, he went to visit the saints in Lydda)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There he found a man named Aeneas, a paralytic who had been bedridden for eight years.)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Aeneas," Peter said to him, "Jesus Christ heals you. Get up and take care of your mat." Immediately Aeneas got up.)

 

35. 룻다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All those who lived in Lydda and Sharon saw him and turned to the Lord)

 

<Prologue>

 

정돈(整頓)이란 단어는 어지럽게 흩어진 것을 정리하여 바로잡고 규모 있게 가지런히 함이란 뜻이다.(영어로 sort-out/getting organized/ proper arrangement/alignment 등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내면세계의 정돈으로 성령의 정돈이 이루어지면 성령의 성장이 된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예수님이 운집한 사람들을 50명씩 때를 지어 않게 하라고 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한꺼번에 몰려 들어 압사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성령이 하지 않으면 정돈이 어렵다

 

성도는 내면세계의 정돈이 필요하다

 

Gordon McDonald가 책에서 언급한 내용에 따라 내면세계의 질서와 정돈 큐티 생활은 어떠한가?

 

내면세계를 정돈할 시간을 내는 것이 가능할까?

 

<말씀요약>

 

1.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때 내면의 정돈, 성령의 정돈이 잘 된다.(32)

 

외적인 정돈도 당연히 따라온다.

 

사명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잘 정돈되게 한다.

 

사명을 감당하려면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성령의 정돈을 잘 하려면 정신집중이 필요하다

 

(1) 사명감당과 정돈은 생산성이 최고로 높은 때를 비롯한 생활리듬을 알아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주초(early days of the week)가 효과적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중요한 목적이 확실하면 목적에 맞추어서 생활리듬이 생긴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유무에 따라 집중여부가 결정된다

 

인생은 사명 따라 왔다가 사명 때문에 살다가 사명 때문에 죽는다

 

그래서 인생은 사명에 따라 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춘다.

 

(적용) 여러분의 생활리듬은 어떠한가?

 

교회의 성도가 많다고 전도 안 하면 본질이 무너진 것이다.

 

복음전파를 세상의 사업쯤으로 생각하면 내면세계가 영적이지 못한 것이며 정돈이 안 된 것이다.

 

내면 세계가 정돈이 안 되면 자기 열심히 하늘을 찌르게 된다.

 

32절 그 때-사울이 회심하고 다소(Tarsus)에 간 때

 

베드로가 모든 지역을 관통하여서 한 지역도 빠짐없이 철저하게 방문을 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어야 할 때와 최선을 다해 두루 다녀야 할 때를 구분했다.

 

룻다(Lydda)에 이미 복음이 들어갔고 성도가 있었는데 그들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 받았을까?

 

8:40 지중해 연안을 따라서 북상하면서 룻다(Lydda), 욥바(Joppa)에 사는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빌립의 이름이 여전히 안 나오고 있지만 그와 헬라파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해서 성도가 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빌립과 스데반은 사도행전의 스타 중의 스타지만 엄청난 사명을 감당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은 그들은 주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확실해서 내면세계가 잘 정돈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감당하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만 있는 것이 성령의 정돈이 가장 잘 된 상태다.

 

사도를 비롯한 국내파 히브리파는 성령이 임하셨는데도 그들이 넘을 수 없는 벽은 유대교의 전통이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못했다.

 

빌립이 사마리아 전도를 했는데 복음이 유대의 경계를 넘어간 것이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할례자의 사도인 베드로노도와 같은 흐름으로

이방으로 복음이 흘러가도록 전도했다.

 

룻다는 예루살렘이 변방이자 부촌이고 욥바는 지중해 항구로 이방땅이다

사도바울과 교제를 하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사명 감당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베드로였다.

 

(목사님 간증) 부촌, 불신자 등에게 열심히 전했지만 내가 전했다고 할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 사건으로만 생각하면 설득이 안 된다. 설득이 안 되는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맹렬한 노를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물질과 시간과 감정이 열심히 전하고자 할 때 모든 것에 정돈이 되게 하셨다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았다. 속에서는 그랬지만 직면할 때마다 정돈되게 하셨다

 

(적용 # 1)

 

-여러분의 내면세계는 정돈이 잘 되어있는가?

-복음전파라는 사명이 확실한가? 기복으로 꽉 찼나?

 

2.   무기력하고 아픈 사람을 주님의 시선으로 볼 때 정돈이 된다.(33)

 

중풍병자는 사회에 대해 죽어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는 환자로서 육적, 영적 내적으로 상처받은 자’, ‘무기력한 자’ ‘남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을 끼치는 자

 

애니야(Aeneas)남에게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끼치는 중풍환자(paralytic) 8년 동안 병상에 있었지만 아무 기록이 없다.

 

바울에게는 병 고침의 역사가 없었지만 신약의 1/3이상을 썼다.

 

베드로는 배운 것이 없어서 겸손할 수 밖에 없어 주님을 마음으로 만나게 되었으며 성령의 정돈이 되어 치유의 역사, 이적을 베풀게 하셨고 그로 인해 말씀이 부족한 이방인에게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다.

 

성령으로 정돈되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게 되고 그 사람 병이 낫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무시해도 좋을 만큼 무가치한 사람은 없다.

 

그냥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정돈이 된 이타적인 상태가 되어야 영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주께서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불리셨다.

 

(2) 시간의 선택방법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Gordon

McDonald)

 

정말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적절한 포기와 거절이 참 중요한데 그 기준은 사명에 집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뜨면 포기하는 훈련이 시작된다.

 

아픈 사람을 고치기 위한 시간확보로 건강한 사람과의 만남을 거절해야 할 때가 있다.

 

 

최선의 것을 이타적으로 택하는가 여부는 내면세계가 정돈되어 이타적으로 적용할 때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신다.

 

큐티는 내면 정돈의 훈련이다

 

(적용 #2)

 

-여러분은 무기력하고 아픈 사람을 주님의 시선으로 보는가? 여전히 무관심한가?

 

늘 선택의 기로에서 늘 이타적인 선택을 하기 위하여 나의 좋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3.   내 아픈 자리를 정돈하는 것이다(34)

 

이 세상은 일어나서 걷는 것만 기적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너를 낫게 하시리라는 죄 사함이 선행되지 않으면 낫게 하실 수가 없다.

 

인생은 땅의 것만 보이기에 일어나 걷는 것이 죄사 함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죄 사함과 죄책의 해방은 인간의 힘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죄 사함만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

.

사람은 또 병에 걸려 죽는데 죄 사함의 문제가 더 크고 근본적이다.

 

애니야(Aeneas)는 이미 성도라서 죄 사함의 권세를 알기에 죄 사함의 중요성을 인지한다.

 

어떤 사람에게도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죄 사함의 해결)이 가장 큰 권세이다.

 

동시에 다 일어나는 일이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자리가 정돈되는 것이다.

 

무기력했던 자기 아픈 자리를 가지고 간증을 하라는 것이다.

 

아팠던 삶의 현장을 정돈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정돈이 되는 것이다

 

내가 간증을 하면서 남을 힘들게 하고 찢어진 관계가 정돈된 관계로 바뀌어 진다.

 

깨끗이 거룩하게 정돈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정돈이 되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할 수가 있다.

 

예수를 믿어도 정돈되지 못한 나의 삶은 악취가 나고 수많은 사람을 찌르고 힘들게 한다.

 

죄 사함을 모르면 남에게 가해자가 된다.

 

내가 정돈되어야 다른 사람을 정돈시킬 수 있다

 

은혜 받고도 다시 누우려고 침상정리정돈을 하지 않는 것은 아직 낫지 않은 것이다

아팠던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간증하시길 주님은 원하신다

 

이것을 어떻게 전도할 것인지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오늘 말씀으로 어떻게 정돈할까?

 

(3) 이 시간 예산을 충분히 앞서 세울 때 시간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 (Gordon McDonald)

 

하나님과의 시간약속을 미리 떼어 놓아야 하며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약속을 거절하거나 미룰 수 가 있다.

 

큐티, 큐티기도회, 목장나눔은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성령 정돈의 구체적인 방법이며 건강하고 손해 보지 않고 시간 낭비를 막아주는 비결이다

 

말씀과 기도와 교제로 무장하니 내면세계가 정돈되어 언어도 감정도 가지치기되어 (영적으로)똑똑해 진다

 

성령의 정돈이 영적 성장을 가져온다.

 

(적용# 3)

 

-정돈해서 보여야 할 아팠던 삶의 자리가 있나? 또 무엇인가?

 

 

4.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성령의 정돈이다.(35)

 

다 나를 보고 주께로 돌아온다.

 

그리스도의 참된 종임을 입증하는 병 고침을 했다.

 

베드로의 치유사역은 전도사역에 도움이 되었다.

 

고침 받은 이후 애니야(Aeneas)가 활동적이 되고 이방인 선교사역이 무르익게 되었다

 

애니아는 지역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게 됨으로 사명으로 복음 전하고 아팠던 삶의 현장을 간증을 했을 것이다.

 

죄 사함의 권세를 업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이다. (죄 사함을 모르면 모든 것이 일시적이다)

 

주께로 돌아왔다는 것은 확실히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령의 정돈은 복음전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갈릴리와 사마리아 출신의 평신도들이 큐티와 큐티기도회에  더 열심이다

 

홋카이도의 장애인들 집단벧엘(Bethel)의 집 공동체정신 지체 자들의 모임이다

 

되도록 자신의 병을 사랑하자. 안심하고 땡땡이 칠 수 있는 회사를 다니자.’라며

있는 그대로의 병의 깃발을 나부끼면서 미역 다시마를 딴다. 그들은 고민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노력과는 분리되어 편한, 괴로움의 정점에 회복이 아니라 밑으로 밑으로 가장 밑바닥에 회복이 있다라는 것이다

 

정신병원은 정신지체 자들의 실수할 권리를 빼앗아 왔다

 

바르게 살려는 사람은 정신병 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신병 적이지는 않지만 범죄적이다

 

안심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가볍게,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던져진 말의 무게를 감지해 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있는 모습, 아픈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서 그냥 아프니까 편한 것이다

 

말씀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 감추니까, 안 아픈 척 하려니까 힘든 것이다

 

아프다는 것을 정죄하지 않고 목장공동체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여 주는 것 자체가 치유다

 

치유공동체란 영적 중풍으로 인한 무기력을 인정해 주는 공동체다. 우리는 다 아프니까

 

말씀 듣고 자기 죄를 못 보면 어떤 치유도 일어나지 않고 병 고침의 역사도 없는 것이다.

 

죄 사함과 걷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어려울까? 인본적으로 보면 걷는 것이 더 어렵다

 

내면 질서의 세계가 정돈되어 있으며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죄인과 안 죄인만 있을 뿐이다

 

복음을 전파할 마음만 있다면 아프지도 않으며 성령의 정돈이 되어 전도가 되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 아픈 자리를 정돈하고 간증하는 것이 주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게 되게 하는 것이다

 

자기 죄를 보기 때문에 살아나는 것이다.

 

 

(적용#4)

-여러분을 보고 주께로 돌아온 사람이 있나? 돌아올 사람이 있나?

-성령의 정돈이 되고 있는가?

 

 

 

<Epilogue>

 

1)   사명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잘 정돈되게 한다.

 

2)   성령의 정돈을 잘 하려면 정신집중이 필요하다

 

3)   사명감당과 정돈은 생산성이 최고로 높은 때를 비롯한 생활리듬을 알아야 한다(Gordon McDonald)

 

4)   사람을 만나는 것은 주초(early days of the week)가 효과적이다.

 

5)   복음을 전하기 위한 중요한 목적이 확실하면 목적에 맞추어서 생활리듬이 생긴다.

 

6)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유무에 따라 집중여부가 결정된다

 

7)   인생은 사명 따라 왔다가 사명 때문에 살다가 사명 때문에 죽는다

 

8)   교회의 성도가 많다고 전도 안 하면 본질이 무너진 것이다.

 

9)   복음전파를 세상의 사업쯤으로 생각하면 내면세계가 영적이지 못한 것이며 정돈이 안 된 것이다.

 

10) 내면 세계가 정돈이 안 되면 자기 열심히 하늘을 찌르게 된다.

 

11) 빌립과 스데반은 사도행전의 스타 중의 스타지만 엄청난 사명을 감당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은 그들은 주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 확실해서 내면세계가 잘 정돈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들은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감당하였다.

 

13)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만 있는 것이 성령의 정돈이 가장 잘 된 상태다.

 

14)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할례자의 사도인 베드로노도와 같은 흐름으로

이방으로 복음이 흘러가도록 전도했다.

 

15) 중풍병자는사회에 대해 죽어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는 환자로서 육적, 영적 내적으로 상처받은 자’, ‘무기력한 자’ ‘남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을 끼치는 자

 

16) 바울에게는 병 고침의 역사가 없었지만 신약의 1/3이상을 썼다.

 

17) 베드로는 배운 것이 없어서 겸손할 수 밖에 없어 주님을 마음으로 만나게 되었으며 성령의 정돈이 되어 치유의 역사, 이적을 베풀게 하셨고 그로 인해 말씀이 부족한 이방인에게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다.

 

18) 성령으로 정돈되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게 되고 그 사람 병이 낫게 되는 것이다.

 

19) 이 세상에 무시해도 좋을 만큼 무가치한 사람은 없다.

 

20) 그냥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정돈이 된 이타적인 상태가 되어야 영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21) 주께서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불리셨다.

 

22) 시간의 선택방법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Gordon

McDonald)

 

23) 정말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24) 적절한 포기와 거절이 참 중요한데 그 기준은 사명에 집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5) 아침에 눈뜨면 포기하는 훈련이 시작된다.

 

26) 아픈 사람을 고치기 위한 시간확보로 건강한 사람과의 만남을 거절해야 할 때가 있다.

 

27) 최선의 것을 이타적으로 택하는가 여부는 내면세계가 정돈되어 이타적으로 적용할 때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신다.

 

28) 큐티는 내면 정돈의 훈련이다

 

29) 늘 선택의 기로에서 늘 이타적인 선택을 하기 위하여 나의 좋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30) 이 세상은 일어나서 걷는 것만 기적이라고 한다.

 

31) 예수께서 너를 낫게 하시리라는 죄 사함이 선행되지 않으면 낫게 하실 수가 없다.

 

32) 인생은 땅의 것만 보이기에 일어나 걷는 것이 죄사 함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33) 죄 사함과 죄책의 해방은 인간의 힘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34) 죄 사함만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

.

35) 사람은 또 병에 걸려 죽는데 죄 사함의 문제가 더 크고 근본적이다.

 

36) 어떤 사람에게도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죄 사함의 해결)이 가장 큰 권세이다.

 

37)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자리가 정돈되는 것이다.

 

38) 무기력했던 자기 아픈 자리를 가지고 간증을 하라는 것이다.

 

39) 아팠던 삶의 현장을 정돈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정돈이 되는 것이다

 

40) 내가 간증을 하면서 남을 힘들게 하고 찢어진 관계가 정돈된 관계로 바뀌어 진다.

 

41) 깨끗이 거룩하게 정돈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다.

 

42)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정돈이 되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할 수가 있다.

 

43) 예수를 믿어도 정돈되지 못한 나의 삶은 악취가 나고 수많은 사람을 찌르고 힘들게 한다.

 

44) 죄 사함을 모르면 남에게 가해자가 된다.

 

45) 내가 정돈되어야 다른 사람을 정돈시킬 수 있다

 

46) 은혜 받고도 다시 누우려고 침상정리정돈을 하지 않는 것은 아직 낫지 않은 것이다

47) 아팠던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간증하시길 주님은 원하신다

 

48) 이것을 어떻게 전도할 것인지 하나님께 여쭤야 한다.

 

49) 이 시간 예산을 충분히 앞서 세울 때 시간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 (Gordon McDonald)

 

50) 하나님과의 시간약속을 미리 떼어 놓아야 하며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51) 그래야 다른 약속을 거절하거나 미룰 수 가 있다.

 

52) 큐티, 큐티기도회, 목장나눔은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성령 정돈의 구체적인 방법이며 건강하고 손해 보지 않고 시간 낭비를 막아주는 비결이다

 

53) 말씀과 기도와 교제로 무장하니 내면세계가 정돈되어 언어도 감정도 가지치기되어 (영적으로)똑똑해 진다

 

54) 성령의 정돈이 영적 성장을 가져온다.

 

55) 애니아(Aeneas)는 지역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게 됨으로 사명으로 복음 전하고 아팠던 삶의 현장을 간증을 했을 것이다.

 

56) 죄 사함의 권세를 업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이다. (죄 사함을 모르면 모든 것이 일시적이다)

 

57) 주께로 돌아왔다는 것은 확실히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58) 성령의 정돈은 복음전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59) 갈릴리와 사마리아 출신의 평신도들이 큐티와 큐티기도회에 더 열심이다

 

60) 홋카이도의 장애인들 집단벧엘(Bethel)의 집 공동체정신 지체 자들의 모임이다

 

61) 되도록 자신의 병을 사랑하자. 안심하고 땡땡이 칠 수 있는 회사를 다니자.’라며 있는 그대로의 병의 깃발을 나부끼면서 미역 다시마를 딴다. 그들은고민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62) 노력과는 분리되어 편한, 괴로움의 정점에 회복이 아니라 밑으로 밑으로 가장 밑바닥에 회복이 있다라는 것이다

 

63) 정신병원은 정신지체 자들의 실수할 권리를 빼앗아 왔다

 

64) 바르게 살려는 사람은 정신병 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신병 적이지는 않지만 범죄적이다

 

65) 안심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가볍게,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66) 던져진 말의 무게를 감지해 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67) 있는 모습, 아픈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서 그냥 아프니까 편한 것이다

 

68) 말씀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69) 모두 감추니까, 안 아픈 척 하려니까 힘든 것이다

 

70) 아프다는 것을 정죄하지 않고 목장공동체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여 주는 것 자체가 치유다

 

71) 치유공동체란 영적 중풍으로 인한 무기력을 인정해 주는 공동체다. 우리는 다 아프니까

 

72) 말씀 듣고 자기 죄를 못 보면 어떤 치유도 일어나지 않고 병 고침의 역사도 없는 것이다.

 

73) 죄 사함과 걷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어려울까? 인본적으로 보면 걷는 것이 더 어렵다

 

74) 내면 질서의 세계가 정돈되어 있으며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75) 이 세상에는 죄인과 안 죄인만 있을 뿐이다

 

76) 복음을 전파할 마음만 있다면 아프지도 않으며 성령의 정돈이 되어 전도가 되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77) 내 아픈 자리를 정돈하고 간증하는 것이 주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게 되게 하는 것이다

 

78) 자기 죄를 보기 때문에 살아나는 것이다.

 

 

<후기>

 

오늘(510)주일말씀에서 예시로 말씀해 주신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정신지체 자들의 모임인 벧엘(Bethel)의 집공동체에서는 되도록 자신의 병을 사랑하자. 안심하고 땡땡이 칠 수 있는 회사를 다니자.’라며 있는 그대로의 병의 깃발을 나부끼면서 미역 다시마를 딴다’. 그들은고민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노력과는 분리되어 편한 것과 괴로움의 정점에 회복이 아니라 밑으로 밑으로 가장 밑바닥에 회복이 있다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정상(正常)만을 부르짖고 추구하는 오늘날 정신병원은 힘겨워하지만 제대로 호소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정신지체 자들의 실수할 권리를 빼앗아 왔다고 하는 역설적이지만 합리적인 주장에 공감합니다. 바르게 살려는 사람은 정신병 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신병 적이지는 않지만 범죄적이라는 표현이 새롭습니다. 사도행전 9 34절에서 내 아팠던 자리(병상)를 정돈하고 난 죄인이었지만 죄 사함 받아 모든 치유가 하나님이 하셨다고 간증하며 복음 전파하는 것이 주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게 하는 첩경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 삶은 늘 속거나 속이거나, 숨거나 숨기거나, 감추거나 의심하거나 의심 받거나 하는 상황으로 인해 우리 모두 고달프고 애달프고 서글프고 외롭고 괴롭고 애처롭고 힘들고 속이 상해 몸 병과 마음 병과 신경정신 질환 그리고 만병의 근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정신지체 자들의 모임인 벧엘(Bethel)의 집공동체 사람들처럼 있는 모습과 하는 행동이 못 마땅하다고 정죄하지 말고 그 모습, 그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밑바닥까지 인정해 주고 보듬어 주며 살펴가면서 스트레스 안 받는 것이 몸 건강과 마음 건강과 정신건강에 비결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다 아프니까요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5. 7. 11:27

[우리들교회 2020 53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 및 후기(사도행전 9: 31/ 성령의 성장)]

 

<사도행전 9:31>

-그리하여 온 유대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Then the church throughout Judea, Galilee and Samaria enjoyed a time of peace. It was strengthened; and encouraged by the Holy Spirit, it grew in numbers, living in the fear of the Lord.)

 

<Prologue>

온라인 11번째 예배다.

같은 본문으로 2번 설교했는데 아직도 못한 것이 있어서 특별히 31절에 수가 더 많아진다고 했는데 오늘이 어린이 주일이다.

우리는 날마다 어린이 주일이고 어버이 주일이기 때문에 특별히 가정설교를 할 필요가 없는데 이런 구절이 드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여러분에게 수가 더 많아지는 이런 성장하시라고 31절만 떼어서 다시 설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1절은 그냥 읽기만 해도 교회와 개인 모두의 성장에 비결이다

힘든 이 시기에 여러분 모두에게 문자적으로도 영육간의 성장이 있으면 좋겠다.

오늘 성령의 성장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1.루저(loser)의 경험을 해야 한다.

버림받은 것처럼 죽은 자처럼 잊혀진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로 시작한다. 앞에 얘기는 예수 믿는 사울을 집요하게 죽이고자 하니까 형제들이 다소(Tarsus)로 보냈다. 그러면 사울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죽이고자 하니까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박해가 와야 하는데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다는 내용이 뜬금없이 나왔다.

그러나가 문법적으로 맞아 보이는데그리하여라고 나왔다. 자고로 핍박 받아 믿음이 병들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리하여는 성령님의 문법인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므로 사울도 베드로도 빌립도 주인공이 아니다.

성령 받은 사도들도 옥에 갇혔다가 풀린 적이 있는데 그때도 6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제사장들도 복종했다고 한다.

그렇게 박해가 일어나면 하나님은 가장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7장에 스데반이 당당한 구속사의 설교 때문에 돌에 맞아 죽고 교회를 잔멸하니까 3-4천명이었던 교인들이 2천명정도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흩어졌던 사람들이 도리어 곳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 교회들이 세워졌고, 오늘 31절에는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든든하게 수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성령의 문법은그리하여가 맞다.

사울이 다소에 있어도 갈릴리와 사마리아교회는 성장했다는 것이다.

사울을 보면 회심한 후에 참으로 고단한 삶의 여정을 살고 있다.

사도 바울의 role model은 스테반인 것이다

사울은 너무 죄를 미리 많이 지었기 때문에 오직 주의 사명밖에 없었다.

회심하고 즉시 교제권이 바뀌었다. 회심이 확실하니까 유대인들과는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없었다.

믿고 나서도 세상친구와 친하면 성령의 성장을 할 수 없다.

교제권이 완전히 바뀔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성장하려면 친구를 정확하게 선택해야 한다.

믿는데도 세상친구가 너무 좋고 교회사람들은 부담이 된다면 회심이 되지 않은 것이다.

성령의 성장을 하려면 친구를 정확하게 선택해야 한다

자기가 죽이려던 예수가 도리어 그리스도라고 외치니 그가 너무 변했기 때문에 같은 유대인이었던 사울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다.

사울은 3년정도 피해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때 형제들이 보내준 곳이 30절의 다소이며 사울의 고향이다.

결정적일 때 살려주는 사람은 사울의 제자들이다.

주의 일을 할 때 결정적으로 살려주는 사람은 내가 낳은 사람이다.

주의 일에 외롭지 않으려면 나 때문에 변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낳은 영적 자녀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외롭기 짝이 없으며 사람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그 당시에 다소라고 하면 누구나 알아주는 정치 경제 문화의 도시였다.

다소 출신이라고 하면 다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있다.

사울을 어디로 보내도 다 죽이려고 하니까 가장 안전하다고 할 곳이 고향이고 그쪽은 미국시민권 자처럼 증이 있어야 했던 것 같다.

잠깐이 아니고 13년 동안인데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회심해서 복음을 전파할 때마다 계속 살해의 위험을 느끼는 가운데 드디어 아라비아 3년 다녀왔다가 예루살렘에 2주 있었다가 다시 다소로 보내진다.

너는 믿는 것 좀 드러내지 말고 잊혀진 자처럼, 죽어진 자처럼, 그렇게 루저로 살라는 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사울이 특별해도 너무 특별하다.

주님을 만났으니 설득력이 대단하다. 가만히 있어도 입만 열면 드러나는 것이다.

사울은 그렇게 잠시 사라진다. 잠시가 13년이다. 그 전에 아라비아까지 하면 16년이다.

그래도 똑똑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지만 다들 사울을 기피했다.

회심하자마자 박해뿐이고 13년간 알려지지 않은 채 하나님과 독대하는 외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곤고했을까?

갈라디아서1장에 보면 아라비아에서 와서 사도들을 만나서 사귀고자 했지만 베드로와 야곱만 만나줬다고 한다.

사울은 초대교회 수가 더 많아진 성장이나 부흥과 상관없이 버려진 사람으로 고향에서 하는 일 없이 잊혀진 채로 있었다.

가말리엘의 제자이며 똑똑한 사울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당시 교회의 수가 많아졌지만 바울의 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사울은 대제사장 신임을 한 몸에 받고 기독교인 다 잡아죽이는 공문을 받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회심을 했고 회심을 하고 보니 세상이 달라졌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회심을 하고 나니 구속하신 주만 있고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울이 여기저기서 박해를 받는 입장이 되었다.

유대인중에 유대인이고 다소 시 출신, 가말리엘의 제자가 회심을 했는데 13년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보내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서 쓰임 받을지 전혀 모른 채로 하나님과 독대를 하면서 외로운 시기를 사울로서는 앞으로의 성령의 성장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시간으로 보냈다고 한다.

16년동안 외로운 인생을 살았는데 사울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13년동안 실패자와 같은 인생이 필요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실패자의 인생이 필요했다.

그렇게 잘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인정을 안 하면 왜 인정하지 않을까를 묵상하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해야 하며 항상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내가 주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는데 누가 말리는 거야?’ 하면서 자기 열심이 앞서면 안 된다.

16년을 사울이 기다린 것이 아니라 사울을 끝까지 기다리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으로 사울을 기다려 주셨다

또 사울이 16년간 자기와의 싸움이 있었기 때문에 주옥과 같은 서신서가 격조 있게 써진 것이다. 사울이 다소로 간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적용#1)

-잊혀진 것처럼, 버려진 것처럼 루저로서 다소에서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나?

2.평안한 것이다.

평안과 성장은 분리될 수 없다.

고난 중에서 해석이 되어야 해결이 되어 평안을 경험하며 성장이 된다.

고난 자체가 부흥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며 분쟁이 있으면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다 쓰기 때문에 전도할 힘이 없다.

박해하던 사울이 회개하게 됨으로 사울의 입술은 위협과 살기가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변화가 평안을 이루는 씨가 된다.

십자가 없는 평안과 행복은 다 일시적인 것이다.

이 땅의 평안도 우리가정도 내 마음의 평화도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가능하다.

이때 갑자기 왜 육적인 평안이 찾아 왔냐 하면 로마에 칼리굴라 황제가 자기의 초상을 예루살렘 지성소에 넣고 자기를 우상숭배하라고 하니 유대인들이 번지수를 바꿨다.

지성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없어진다고 하니 갈릴리 교회, 사마리아 교회의 핍박이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예수님 믿으면 무조건 평안이 아니라 육적으로 힘들어 하니까 잠시 숨 고르기 식 평화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숨 고르기 하면서 안식하면 되는데 다들이 긴 병의 간병이 끝났구나. 여행이나 갔다 오지. 아이가 붙었으니 목자도 내려놔야지.’ 하는 것은 흘려 떠내려가는 성도들이 그러는 것이다.

나에게 오는 박해와 부흥, 성장은 모두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순종만 하면 된다.

예수 믿으면서도 평안이 없는 것은 헛것이다.

인간의 한계성을 느끼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수록 가까워 지는 것이다.

내가 힘들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그 평안이 없다.

힘들어도 십자가에 달려있으니까 평안이 오는 것이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느낄수록 평안을 누린다

평안의 유무자체는 스펙이나 돈으로 이루지지지 않는다

사울이 무섭기에 교회에 나오려는 그를 교회가 두려워했다.

이것은 이 땅의 두려움이다. 그때에 바나바가 사울을 소개시켜줬고 그런 바나바 때문에 교회가 평안해졌다. 든든히 서 갔다는 것이다.

(적용#2)

-그러니 평안이 있고 없고는 어떤 차이일까?

-돈이 많고 스펙이 좋고 아이들도 잘나가고 그러면 그 집이 평안할까?

-모든걸 갖추고 있으면 평안한가? 여러분의 집의 분위기는?

우리들 교회 집사님들은 그런 스펙이 없고 돈도 없고 중독도 다 안 끊어지고 해도 우리들 교회집사님들은 웃음이 넘친다.

우리 집사님들은 왜 그렇게 웃음이 넘칠까?

우리 집사님들의 답은 우리는 죄인이잖아요.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어요. 무슨 말을 해도 맞아요 제가 죄인이에요. 제가 잘못했네요.’인데 죄인들의 집단은 항상 다들 자기 죄라고 하니 지옥을 안 살고 평안하다.

목장에서 자기가 똑똑하고 자기가 다 옳으니까 잠도 못 자고 또 목장 분위기가 어둡게 된다

성난 사람들이 모여 잘잘못을 따지니까 분위기가 어둡다

죄가 없어서 기억을 잘해 이것 저것 꼬치꼬치 따지니까 분위기가 어둡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아내가 나 때문이라고 회개를 한다.

영육간의 자기 죄를 보니까 온 집안에 평안이 깨지지 않는다.

내가 영육으로 깨어있지 못하니까 남편이 수고한다.

영적으로 나를 깨우는 수고를 하니 감사하고 육적으로도 살림도 잘못하니 밖으로 돌게 했다면서 자기 죄를 보니까 온 집안의 평안이 깨지지 않는 것이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고 병원은 아픈 환자들이 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픈 사람들이 올수록 그 병원은 평판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환자들을 보고 의사가 당신 왜 이렇게 심하게 아프냐고 하면서 내가 당신같이 아픈 환자는 볼 수 없다. 당신 더럽다고 나가라고 하면 그 병원이 제정신인가?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그렇게 선한 사람을 찾으니이 교회는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사람이 모여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런 분들에게 평안이 있을까?

사울의 살기등등 체험이 그를 교만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아무 말 대잔치속에서도 자기 죄를 보면 평안한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의 평안함과 전혀 다른 것이다

잔멸의 주인공인 사울이 회개를 하니까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갔다

로마에 칼리굴라 황제가 자기의 초상을 예루살렘 지성소에 넣고 자기를 우상숭배하라고 하니 유대인들이 번지수를 바꿔 교회가 폭풍성장 하였다

하나님은 좌로나 우로나 절대로 치우치지 않으신다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보는 것이다

(적용 #3)

-여러분의 평안은 무엇 때문인가?

-십자가의 평안인가? 육체의 평안인가?

-가장 많이 추구하는 육체의 평안은? 야동, 주식, 여자, 미모?

3. 든든히 서가는 것이다.

평안해야 든든히 서간다.

든든히 서간다는 것은 집을 단단하게 짓는 것이다.

교회가 집을 잘 짓는 것은 반석 위에 그리고 말씀의 기초 위에 세우는 것이다.

나를 살리는 회개처럼 예수님을 이야기처럼, 말씀처럼 읽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말씀처럼 읽지 않으면 성경은 날 죽이는 율법이 될 수 있다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김양재 목사를 닮아서 여러분의 모든 결정의 기준이 말씀이 되어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말씀이 기준이 되길 바란다.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실수를 볼 때보면 목장에서 안 묻고 큐티도 자의적으로 하고 욕심대로 했을 때이다.

결혼할 때, 사업할 때, 학교 갈 때 그렇게 이상한 결정을 한다.

물어봤다는 것 그것에 하나님이 점수를 주시는 것이다.

말씀으로 서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에 더 말할 것도 없다.

기본기는 말씀보고 큐티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기가 되어있으면 무슨 일을 만나도 만사형통하리라.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하고 기도하니 든든히 서 갈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씀이 해석이 되어야 평안하게 서 갈 수 있는 것이다

말씀에 기초를 두면 기도와 교제, 전도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누군가가 십자가를 길로 놔야 한다.

목장공동체에서도 목자가 아니면 그냥 목원이라도 십자가의 길로 놓는 희생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항상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것이 십자가 평안이고 십자가 평안이 든든히 서가는 것이다.

회개 제목을 써가는 것이 든든히 서 가는 것이다

일이 터지면 말씀 안에서 내 죄보고 회개하는 것이 든든히 서 가는 것이다

(적용 #4)

-내가 든든히 서가는 이유는 말씀 때문인가? 돈 때문인가? 남편, 아내 때문인가?

-목장에서 말씀의 처방을 사모하며 묻나? 다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묻나?

-불신결혼이나 교제 등 묻고 싶지 않은 것이 있나? 주식은?

-공동체가 틀렸다고 생각하나?

4. 주를 경외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를 경외함이다.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너무 존경하면 덜덜 떨면서 쳐다도 못보고 이름도 못 부른다.

그만큼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두려운 것만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이 그 다음 이차적인 뜻이다.

무서운 아버지 두려워하는 것과는 다르다.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뿌려진 씨가 내적 외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주를 경외했기 때문이며 성령의 위로가 뒤 따라왔기 때문이다

성부하나님의 감추어진 경륜과 성자하나님의 나타나신 경륜과 성령하나님의 효과적인 힘이 삼위일체를 이루신다

집에서도 아버지가 무섭게 하면 어머니가 위로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이 죄인이라 어려서부터 무서운 사람이 없으면 망둥이로 자라게 된다.

인간은 백프로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은 자녀우상시대를 살다 보니 집집마다 자녀가 왕 노릇을 한다.

자식이 너무 예쁘고 귀해서 훈육을 할 수가 없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할 수가 없다. 우상이 되면 손을 못 댄다.

잠언에 자녀를 초달하라는, 때리라는 말이 있는데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고난도 어려서 받으면 금 주고도 못 산다

근데 이게 요즘 인권운동에서 인권 운운하면서 체벌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어려서 무서운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데 사람에게 잘하다가 배신을 당해서 지옥을 산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피차 복종하게 된다고 한다. (에베소서 521)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자기 환경의 그 자리가 자기의 사역지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피차 복종을 모른다.

본인이 하나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말씀에 대한 복종이 뭔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회가 두렵기만 한 것은 기복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며 그건 자기의 유익을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4 20)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주신다.

그런 평안이 없었다면 사울이 어떻게 13년간 다소에서 있었을까?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인데 그것은 이기적 두려움이 아니다.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게 된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이며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이 온다.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순종해야 할 일도 많아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면 성령의 위로라는 말은 성령의 격려가 말씀으로 오기 때문에 내가 힘들 때마다 중보자가 되어주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경외하는 것으로 창조주를 따르는 것인데 평안을 주신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미워하게 되고 형벌이 따른다

건강한 두려움, 권면, 격려, 후원이 끊임없이 나를 감싸면서 성장은 부수적으로 주시는 열매가 된다는 것이다.

(적용 #5)

-주를 경외해서 피차 복종해야 할 사람은?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상사?

성령 받지 않으면 모든 것은 시작도 되지 않는다.

앉으나 서나 성령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님이 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것이다.

교회가 성장하려고 해도 성령의 성장이 임재해 있어야 한다.

교회는 주님이 값 주고 사신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고독과 외로움을 경험해 보지 않으며 인생을 논할 수 없다

십자가를 통과하는 두려움 뒤에는 평안이 온다

기복으로 가면 고난이 와도 해석이 안된다

루저의 시절에 잊혀지고 버려진 것 같아도 말씀 보고 잘 기다리고 해석 잘하면 폭풍성장을 가져온다

십자가의 평안은 말씀으로 든든히 서 가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는 진리의 성령님이 인도를 하는 것이지 돈이 인도하고 스펙이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성장이 아니고 성령의 성장이 되어야 영원할 것이다.

 

<Epilogue>

1)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므로 사울도 베드로도 빌립도 주인공이 아니다.

2)   그렇게 박해가 일어나면 하나님은 가장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3)   사울을 보면 회심한 후에 참으로 고단한 삶의 여정을 살고 있다.

4)   사도 바울의 role model은 스테반인 것이다

5)   사울은 너무 죄를 미리 많이 지었기 때문에 오직 주의 사명밖에 없었다.

6)   믿고 나서도 세상친구와 친하면 성령의 성장을 할 수 없다.

7)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성장하려면 친구를 정확하게 선택해야 한다.

8)   믿는데도 세상친구가 너무 좋고 교회사람들은 부담이 된다면 회심이 되지 않은 것이다.

9)   성령의 성장을 하려면 친구를 정확하게 선택해야 한다

10) 주의 일을 할 때 결정적으로 살려주는 사람은 내가 낳은 사람이다.

11) 주의 일에 외롭지 않으려면 나 때문에 변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12) 내가 낳은 영적 자녀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외롭기 짝이 없으며 사람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13)  너는 믿는 것 좀 드러내지 말고 잊혀진 자처럼, 죽어진 자처럼, 그렇게 루저로 살라는 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14) 주님을 만났으니 설득력이 대단하다. 가만히 있어도 입만 열면 드러나는 것이다.

15) 그래도 똑똑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지만 다들 사울을 기피했다.

16) 회심하자마자 박해뿐이고 13년간 알려지지 않은 채 하나님과 독대하는 외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곤고했을까?

17) 사울은 초대교회 수가 더 많아진 성장이나 부흥과 상관없이 버려진 사람으로 고향에서 하는 일 없이 잊혀진 채로 있었다.

18) 회심을 하고 나니 구속하신 주만 있고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어졌다.

19) 어디서 쓰임 받을지 전혀 모른 채로 하나님과 독대를 하면서 외로운 시기를 사울로서는 앞으로의 성령의 성장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시간으로 보냈다고 한다.

20) 16년동안 외로운 인생을 살았는데 사울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13년동안 실패자와 같은 인생이 필요했다.

21) 그렇게 잘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아니다.

22) 아무도 인정을 안 하면 왜 인정하지 않을까를 묵상하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해야 하며 항상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23) 내가 주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는데 누가 말리는 거야?’ 하면서 자기 열심이 앞서면 안 된다.

24)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으로 사울을 기다려 주셨다

25) 평안과 성장은 분리될 수 없다.

26) 고난 중에서 해석이 되어야 해결이 되어 평안을 경험하며 성장이 된다.

27) 고난 자체가 부흥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며 분쟁이 있으면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다 쓰기 때문에 전도할 힘이 없다.

28) 박해하던 사울이 회개하게 됨으로 사울의 입술은 위협과 살기가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29) 한 사람의 변화가 평안을 이루는 씨가 된다.

30) 십자가 없는 평안과 행복은 다 일시적인 것이다.

31) 이 땅의 평안도 우리가정도 내 마음의 평화도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가능하다.

32) 예수님 믿으면 무조건 평안이 아니라 육적으로 힘들어 하니까 잠시 숨 고르기 식 평화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33) 나에게 오는 박해와 부흥, 성장은 모두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순종만 하면 된다.

34) 예수 믿으면서도 평안이 없는 것은 헛것이다.

35) 인간의 한계성을 느끼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수록 가까워 지는 것이다.

36) 내가 힘들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그 평안이 없다.

37) 힘들어도 십자가에 달려있으니까 평안이 오는 것이다

38) 주님의 인자하심을 느낄수록 평안을 누린다

39) 평안의 유무자체는 스펙이나 돈으로 이루지지지 않는다

40) 우리 집사님들의 답은 우리는 죄인이잖아요.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어요. 무슨 말을 해도 맞아요 제가 죄인이에요. 제가 잘못했네요.’인데 죄인들의 집단은 항상 다들 자기 죄라고 하니 지옥을 안 살고 평안하다.

41) 목장에서 자기가 똑똑하고 자기가 다 옳으니까 잠도 못 자고 또 목장 분위기가 어둡게 된다

42) 성난 사람들이 모여 잘잘못을 따지니까 분위기가 어둡다

43) 죄가 없어서 기억을 잘해 이것 저것 꼬치꼬치 따지니까 분위기가 어둡다

44) 영육간의 자기 죄를 보니까 온 집안에 평안이 깨지지 않는다.

45) 내가 영육으로 깨어있지 못하니까 남편이 수고한다.

46) 영적으로 나를 깨우는 수고를 하니 감사하고 육적으로도 살림도 잘못하니 밖으로 돌게 했다면서 자기 죄를 보니까 온 집안의 평안이 깨지지 않는 것이다.

47)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고 병원은 아픈 환자들이 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48)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그렇게 선한 사람을 찾으니이 교회는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사람이 모여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런 분들에게 평안이 있을까?

49) 사울의 살기등등 체험이 그를 교만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50) 시어머니의 아무 말 대잔치속에서도 자기 죄를 보면 평안한 것이다

51)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의 평안함과 전혀 다른 것이다

52) 잔멸의 주인공인 사울이 회개를 하니까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갔다

53) 로마에 칼리굴라 황제가 자기의 초상을 예루살렘 지성소에 넣고 자기를 우상숭배하라고 하니 유대인들이 번지수를 바꿔 교회가 폭풍성장 하였다

54) 하나님은 좌로나 우로나 절대로 치우치지 않으신다

55)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보는 것이다

56) 평안해야 든든히 서간다.

57) 든든히 서간다는 것은 집을 단단하게 짓는 것이다.

58) 교회가 집을 잘 짓는 것은 반석 위에 그리고 말씀의 기초 위에 세우는 것이다.

59) 나를 살리는 회개처럼 예수님을 이야기처럼, 말씀처럼 읽어야 하는 것이다

60) 예수님을 말씀처럼 읽지 않으면 성경은 날 죽이는 율법이 될 수 있다

61) 물어봤다는 것 그것에 하나님이 점수를 주시는 것이다.

62) 말씀으로 서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에 더 말할 것도 없다.

63) 기본기는 말씀보고 큐티하는 것이다.

64) 이런 기본기가 되어있으면 무슨 일을 만나도 만사형통하리라.

65)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하고 기도하니 든든히 서 갈수밖에 없는 것이다.

66) 말씀이 해석이 되어야 평안하게 서 갈 수 있는 것이다

67) 말씀에 기초를 두면 기도와 교제, 전도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68) 누군가가 십자가를 길로 놔야 한다.

69) 목장공동체에서도 목자가 아니면 그냥 목원이라도 십자가의 길로 놓는 희생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70) 항상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것이 십자가 평안이고 십자가 평안이 든든히 서가는 것이다.

71) 회개 제목을 써가는 것이 든든히 서 가는 것이다

72) 일이 터지면 말씀 안에서 내 죄보고 회개하는 것이 든든히 서 가는 것이다

73) 가장 중요한 것은 주를 경외함이다.

74)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75) 우리도 너무 존경하면 덜덜 떨면서 쳐다도 못보고 이름도 못 부른다.

76) 그만큼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77) 두려운 것만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이 그 다음 이차적인 뜻이다.

78) 무서운 아버지 두려워하는 것과는 다르다.

79)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뿌려진 씨가 내적 외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주를 경외했기 때문이며 성령의 위로가 뒤 따라왔기 때문이다

80) 성부하나님의 감추어진 경륜과 성자하나님의 나타나신 경륜과 성령하나님의 효과적인 힘이 삼위일체를 이루신다

81)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82) 고난도 어려서 받으면 금 주고도 못 산다

83) 어려서 무서운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84)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85)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데 사람에게 잘하다가 배신을 당해서 지옥을 산다.

86)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피차 복종하게 된다고 한다. (에베소서 521)

87)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자기 환경의 그 자리가 자기의 사역지임을 알게 된다.

88)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피차 복종을 모른다.

89) 본인이 하나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말씀에 대한 복종이 뭔지 모른다.

90) 우리는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91) 그런데 하나님과 교회가 두렵기만 한 것은 기복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며 그건 자기의 유익을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92)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주신다.

93)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인데 그것은 이기적 두려움이 아니다.

94)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게 된다

95)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이며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이 온다.

96)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순종해야 할 일도 많아진다.

97)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면 성령의 위로라는 말은 성령의 격려가 말씀으로 오기 때문에 내가 힘들 때마다 중보자가 되어주신다.

98)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경외하는 것으로 창조주를 따르는 것인데 평안을 주신다

99) 사람을 두려워하면 미워하게 되고 형벌이 따른다

100)             건강한 두려움, 권면, 격려, 후원이 끊임없이 나를 감싸면서 성장은 부수적으로 주시는 열매가 된다는 것이다.

101)             성령 받지 않으면 모든 것은 시작도 되지 않는다.

102)             앉으나 서나 성령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103)             성령님이 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것이다.

104)             교회가 성장하려고 해도 성령의 성장이 임재해 있어야 한다.

105)             교회는 주님이 값 주고 사신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106)             고독과 외로움을 경험해 보지 않으며 인생을 논할 수 없다

107)             십자가를 통과하는 두려움 뒤에는 평안이 온다

108)             기복으로 가면 고난이 와도 해석이 안 된다

109)             루저의 시절에 잊혀지고 버려진 것 같아도 말씀 보고 잘 기다리고 해석 잘하면 폭풍성장을 가져온다

110)             십자가의 평안은 말씀으로 든든히 서 가는 것이다.

111)             성령의 인도는 진리의 성령님이 인도를 하는 것이지 돈이 인도하고 스펙이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112)             나의 성장이 아니고 성령의 성장이 되어야 영원할 것이다.

 

<후기>

제 자신도 2007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내 국내외적 스포츠외교 스펙과 경험과 지식이 거의 사장될 정도로 살며 잊혀진 루저(loser)처럼 스포츠 단체와 각종 행사에서 배제되다시피한  바람에 양평 전원주택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모두가 나를 사울처럼 기피하였던 것이 말씀을 들으며 새삼 내 이야기처럼 들려왔습니다. 주일말씀처럼 너무 차이가 나면 기피하고 차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만이 가미된 고백은 아닙니다. 오직 환경만이 우리를 겸손케 합니다. 해당 스포츠단체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실력인정도 되지 않은 채 2011년 주님 영접과 이어진 양육을 통한 공동체 회개 이후 줄 곳 교회공동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독대하는 외로운 시기를 보내왔습니다. 또 사울이 16년간 자기와의 싸움이 있었기 때문에 주옥과 같은 서신서가 격조 있게 써진 것처럼 나도 개인 블로그(blog) 13년 간 국제스포츠 계 동향을 줄기차게 올리며 국제스포츠흐름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정리하여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껜 드릴 것 밖에 없고 사람에겐 줄 것 밖에 없는 인생임을 깨닫고 일희일비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1)감추어진 성부하나님의 경륜(Hidden Will of God) (2)성자하나님의 나타나신 경륜(Revealed Will of God) (3)성령하나님의 효과적인 힘(Effective Power of God)의 삼위일체가 구원을 이루는 것임을 알기를 원합니다

“(1)회개는 나의 밥, (2)감사는 나의 밥, (3)기도는 나의 밥, (4)평강은 나의 밥이 되기를 소망하며 평온지기, 평강지기, 평안지기, 평화지기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5. 2. 14:20

[우리들교회 2020 426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9:22~ 31/ 성령의 진행)]

 

<사도행전 9:22~31>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Yet Saul grew more and more powerful and baffled the Jews living in Damascus by proving that Jesus is the Christ.)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After many days had gone by, the Jews conspired to kill him,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but Saul learned of their plan. Day and night they kept close watch on the city gates in order to kill him.)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But his followers took him by night and lowered him in a basket through an opening in the wall.)

26.사울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When he came to Jerusalem, he tried to join the disciples, but they were all afraid of him, not believing that he really was a disciple.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But Barnabas took him and brought him to the apostles. He told them how Saul on his journey had seen the Lord and that the Lord had spoken to him, and how in Damascus he had preached fearlessly in the name of Jesus.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So Saul stayed with them and moved about freely in Jerusalem, speaking boldly in the name of the Lord.)

  1.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He talked and debated with the Grecian Jews, but they tried to kill him.)
  2.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When the brothers learned of this, they took him down to Caesarea and sent him off to Tarsus.)

 

 

31.그리하여 온 유대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Then the church throughout Judea, Galilee and Samaria enjoyed a time of peace. It was strengthened; and encouraged by the Holy Spirit, it grew in numbers, living in the fear of the Lord.)

 

<Prologue>

온라인 10주차다.

성령의 위로를 아무리 받아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진도를 빼야 한다.

이번 주에 창조적인 방법으로 전도를 해보시라고 했다.

저도 그래서 새 가족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설교를 생각하다가 지난 주와 똑같은 본문으로 다시 한번 설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처럼 다시 한번 설명해준다고 생각하시라.

이 설교가 각자 진도를 나가게 되는 성령의 진행이 되길 바란다.

<말씀요약>

1.여러 날이 지나야 한다.

22-23) 사울이 회심을 하고 예수는 그리스도다.’라고 증언을 하니 유대인들은 죽이려고 하고 기독교인들은 믿지 못했다.

유대인들의 사울 죽이는 공모가 시작되었다.

각자에게 적당한여러 날이 있다.

사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 있었는데 가족과 사도들 그 아무에게도 의논하지 않았다.

나의 회심과 사명이 의논의 문제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유대교인 사울의 부모에게는 불효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때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가야 할 때가 있다

사울이 사도들에게도 찾아가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 동안 자신이 그들을 너무 핍박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믿자마자 사도들이 무시가 되었다.

그러니 거기도 찾아가기 힘들고 혈육도 찾아가기 힘들었다.

정오의 빛이 강해서 믿긴 믿었는데 누구와도 의논이 되지 않아 홀로 여러 날을 경험하게 하셨다.

여러 날은 사울에게 훈련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각자에게 훈련을 위해 필요한 적당한 여러 날이 있다

택한 그릇으로 삼으실 때 양육이 필요하다

성령의 진행으로 여러 일이 이루어진다

전도하려면 그들의 심리상태를 알아야 한다

정오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누구와도 지내기 힘들다

나에게 주사는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자기는 예수님 만났기에 증언을 하지만 자기같이 살기등등한 유대인들이 사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는데 그게 알려진 것이다.

택자이기 때문에 뒤집어지게 회심을 하면 내 앞에 어느 고난이 와도 기쁘게 감당할 수 있다.

택자는 고난의 학교에 들어가 한 과목씩 패스할 때마다 계고가 생각난다

계교를 알게 해서 지혜가 생기니까 도마 위에 올라가서 모든 사람에게 지켜지는 인생이 된다.

꼼짝하지 못하며 지켜지는 인생이 된다

외출도 못하고 고독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과만 교제하게 하셨다.

나의 모든 열등감, 욕심, 교만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고 있다.

예수 믿으면서 혼자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게 되니 나가지 않고 외출을 못해도 내 입에서 해줄 말이 생겼다.

그렇게 말씀을 보면서 양육을 받아가야 하는데환경이 안 변해서 힘들어, 죽지 못해 살아이런 사람은 패스를 못한 사람이다.

택자는 영원토록 죽게 하지 않으신다

날마다 똑같은 사건이 오는 것 같아도 그때그때 패스가 되면 그것이 다른 사건이 되어서 훈장이 되는 것이다.

그날의 사건은 그날에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그날의 증인이 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평생 고난 받았다고 한다. 그 상처에서 별이 되어야 하는데 고난에서 패스가 안되었기 때문에 예수 믿어도 되는 것이 없고, 큐티를 해도 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날 그날이 나의 증거하는 날이며 날마다는 다른 날들이다. 오늘은 이 말씀 내일은 저 말씀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나가지 못하고 돈이 없는 때라면 여러분에게 죽어야 할 고난이 있기 때문이고, 돈이 없어야 집에서 성경을 본다.

돈이 있으면 쇼핑하러 다니고 할거 다하러 다닌다. 돈이 없는 것이 축복이다.

큐티는 자기 죄를 보는 것인데 사탄의 계교를 알려 주신다

코로나 재앙으로 큐티 기도회시간에 하루 저녁에 7000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연기한 고난주간을 여전한 방식으로 최고로 지나게 하셨다.

25) 바울을 죽이려 할 때 제자들이 살려주는 것처럼 나를 살려주는 사람들이 제자들이다.

내가 성경 가르쳐서 제자가 아니라 내가 주님 만난 것을 전하고 전도하는 사람들이 다 제자가 된다.

내가 입만 열면내가 시집을 잘 갔는데 가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학벌도 아니고 결혼도 아니고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다라고 간단하게 전도를 하는 것이다.

시장이든 어디는 예수 전하는 사람이 제자들인 것이다

나도 성벽에 달아 내려서 살려준 경험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무리 계교가 판을 쳐도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없고 아무리 사단이 나를 밤낮으로 지켜도 나를 광주리에 태워서 보내줄 제자들이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광주리 타고 도망가는 모습이 너무 우스워 보인다.

이 대단한 학벌에 대단한 사람이 예를 들어 총리라는 사람이 쓰레기광주리를 타고 도망가는 것은 이 사람 사전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겉모습이 초라해 보여도 예수님 만난 기쁨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며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다.

자신이 스데반을 죽였기 때문에 어떤 일이 와도 할말이 없다.

스데반 죽인 것이 신의 한 수이고 최고의 양육이다.

여기서 나 혼자 죽인 것이 아니라 다같이 했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사도바울은 회심을 한 후부터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린다.

공은 남한테, 책임은 나에게 돌리는 사람은 확실하게 주님을 만난 사람이다

항상 책임을 나에게로 돌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의 진행을 하려면 사람이 이렇게 초라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

사도바울에게는 있어야 하는 경험이다.

억만 금을 줘도 못하는 경험을 제자들이 가라고 하니 순종하고 갔다. (모세가 양치기를 한 것)

자존심 가지곤 아무것도 안 된다.

내가 걸레질을 하면서 문밖 출입을 못하고 집에서 교회도 못 가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걸레질 밖에 없었다. 10년이 넘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 교인 누구를 만나도 체휼이 되는 것이 있다.

허드렛일을 할수록 영적 지경이 넓어진다.

(적용 #1)

-여러 날이 성도의 인생을 효과적으로 돕는 성령의 진행기간이라는 것을 믿고 순종하나?

-돈이 없어서 설교 듣나? 큐티하나? 큐티기도회에 들어오나?

-아니면 돈이 많아서 이 모든 것을 하기 싫은가? 안하고 있나?

2.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26) 안 믿는 유대인들은 사울이 변절했다고 죽이려고 하고 믿는 사람들은 어제까지 죽이겠다고 한 사울을 믿을 수가 없었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고 3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았다.

히브리어 알레프베이트가 알파벳의 A,B인데 저주와 축복이라는 뜻이다.

창세기에서는 A보다 B가 먼저 나오는데 축복이 먼저 나온 것이다.

축복이라는 것이 사방이 열렸다는 것이고 저주는 사방이 막혔다는 것이다.

과거를 잊어야 사방이 열려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픈 사람들은 입만 열면 과거를 읊조리는 것이다.

과거를 읊조리니 사방이 막혀서 나갈 수가 없다.

근데 과거를 잊는 것은 정말 힘들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과거를 껴 안고 고통과 아픔을 잊지 못한다

지나간 고통을 껴 안고 사니까 늘 아프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내가 잊어야 남도 잊을 수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잊을 수가 없다.

지나가버리는 과거를, 고통을 껴안고 사니까 아프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과거를 무조건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수치를 감당해야 하며 분별을 잘 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세상은 다 거꾸로다

전문학교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숙였다는 것이 문제다

세상은 인권과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구속의 관점이 아니면 구별이 안 된다

누구한테 빠지면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거꾸로 하게 된다

영과 육을 혼동하면 안 된다

목장에서 사귀고자 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입만 열면 이 교회는 이상하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는 이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처방을 거부하는 것은 돈, 욕심, 정욕 때문이다.

(적용 # 2)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나?

-과거를 인정하고 어떤 수치도 감당해야 하나?

3. 반드시 형제 지체를 주신다.

27-30) 바울의 마음이 다 진실되니 그 진실된 것이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준다.

반드시 바울을 소개시켜주는 아나니야(Ananias)가 있고 바나바(Barnabas)가 있는 것이다.

불신은 가치관이 다른 것이며 평등의 가치관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사윗감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체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판단을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면 반드시 지체가 있다

영적 통찰력과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데 마음을 비워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안목이 있어서 하는 것인데 세상안목은 그래서 거기까지다.

학벌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이 문제다

인내를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앉고 뒤로 밑지는 것이다.

한 성령이라면 제자들과 함께 있어봐야 한다.

제자와 조금 지나면 서로 알아보게 되는 것이므로 공동체에서 검증이 되어야 한다.

바나바(Barnabas)가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지체를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교회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성령이 진행이 아니라 사람의 진행 때문이다

지체들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들고 교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겉으로 진행이 되는 것 같다가 다 부셔져서 대형사고가 나는 것이다.

제자들과 함께 있어서 예루살렘에 출입을 해도 죽음의 위협이 계속 있다.

주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니 헬라파 유대인들이 죽이려 한다.

헬라파 유대인도 장말 주님을 만났다면 죽음불사하고 전도 한다

골고루 복음은 차별 없이 전해져야 한다.

*신대원 시험문제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유신 논증(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징표)하라! 도덕적으로 하되(도덕론적, 경험론적) 자기간증과 경험으로 하라!”-à 내가 쉬운 사람이니 쉬운 이야기로 하겠다. 도덕적이라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은 데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다

논쟁해서 패하니까 죽이려고 한다

변론으로 이기면 원수가 되고 변론은 별로니까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주시는 분이 있다

잘난 바울에게 형제가 생겼다

사울이 회개가 되지 않았다면 형제도 생기지 않는 것인데 가장축복이 형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타적 사명을 감당할 때 형제를 주시어 보호해 주신다

바울을 죽이려고 하니 형제들이 다소로 보냈다.

(적용 #3)

-여러분은 지체, 형제가 있나?

4.수가 더 많아진다.

31) 나 한 사람 고난으로 가족들이 평안하게 살아가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교회가 크다고 이 문제가 잘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고난을 받고 있지만, 옆에 있는 교회는 안정되어 잘 나아가고 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말씀을 보고 가는 것이 성령의 진행이다.

흩어져도 하나님 나라의 신도수가 본질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성령의 진행이다.

모두 일원론인데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으로 인도받고 가는 하루하루가 성령의 진행이다.

우리는 자신이 당한 일이 너무 놀랄 일들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놀라지 않는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체휼이 되는 것이며 있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위기에서 담대하게 나아가고 신도수가 늘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한 사람이 고난을 받으니 다른 사람들이 평안하게 간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적용인 것이며 인내가 진실성의 결론이므로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붙회떨감의 마음으로 가는 것이 일원론이다

하나님이 진행을 앞당기시니 성령의 진행이다

확진자가 나오면 안되니 법을 지키며 온라인 예배 드리며 인내하는 것이다.

(적용 #4)

-내가 죽어져서 든든히 서가는 집안과 교회와 회사가 있나?

-그래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수가 많아졌던 경험이 있나?

여러 날이 지나야 하는 것이다.

바울의 고난가운데서 여러 날이 지나야 한다.

성령의 진행은 고난이 앞을 가린다

여러 날이 성령의 진행 기간임을 알고 나를 점검하여 수치를 감당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모든 사건의 끝에 돈이 있기에 형제지체가 없는 것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진행을 위해서 각자에게 여러 날이 있는 것이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를 인정하고 수치를 감당해야 한다.

반드시 때가 되면 지체를 주신다. 그러니 바나바가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적이 일어나는 공동체에서 신뢰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부흥만 좋아하겠지만 인내해야 할 일이 많다.

내가 뒤집어지는 회심을 하면 내 앞에 놓인 길이 고난의 길이다.

전부 인내해야 할 일이다.

너무 힘들지만 말씀 인도함 받고 가면 성령의 진행이 될 것이다.

결론은 예수가 그리스도다이며 말씀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pilogue>

-각자에게 훈련을 위해 필요한 적당한 여러 날이 있다

-택한 그릇으로 삼으실 때 양육이 필요하다

-성령의 진행으로 여러 일이 이루어진다

-전도하려면 그들의 심리상태를 알아야 한다

-정오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누구와도 지내기 힘들다

-나에게 주사는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택자이기 때문에 뒤집어지게 회심을 하면 내 앞에 어느 고난이 와도 기쁘게 감당할 수 있다.

-택자는고난의 학교에 들어가 한 과목씩 패스할 때마다 계고가 생각난다

-택자는 영원토록 죽게 하지 않으신다

-날마다 똑같은 사건이 오는 것 같아도 그때그때 패스가 되면 그것이 다른 사건이 되어서 훈장이 되는 것이다.

-그날의 사건은 그날에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그날의 증인이 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평생 고난 받았다고 한다. 그 상처에서 별이 되어야 하는데 고난에서 패스가 안되었기 때문에 예수 믿어도 되는 것이 없고, 큐티를 해도 되는 게 없다고 한다.

-그날 그날이 나의 증거하는 날이며 날마다는 다른 날들이다. 오늘은 이 말씀 내일은 저 말씀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나가지 못하고 돈이 없는 때라면 여러분에게 죽어야 할 고난이 있기 때문이고, 돈이 없어야 집에서 성경을 본다.

-큐티는 자기 죄를 보는 것인데 사탄의 계교를 알려 주신다.

-내가 입만 열면내가 시집을 잘 갔는데 가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학벌도 아니고 결혼도 아니고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다라고 간단하게 전도를 하는 것이다.

-시장이든 어디는 예수 전하는 사람이 제자들인 것이다.

-아무리 계교가 판을 쳐도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없고 아무리 사단이 나를 밤낮으로 지켜도 나를 광주리에 태워서 보내줄 제자들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겉모습이 초라해 보여도 예수님 만난 기쁨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며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다.

-공은 남한테, 책임은 나에게 돌리는 사람은 확실하게 주님을 만난 사람이다

-항상 책임을 나에게로 돌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의 진행을 하려면 사람이 이렇게 초라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

-자존심 가지곤 아무것도 안 된다.

-허드렛일을 할수록 영적 지경이 넓어진다.

-축복이라는 것이 사방이 열렸다는 것이고 저주는 사방이 막혔다는 것이다.

-과거를 잊어야 사방이 열려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픈 사람들은 입만 열면 과거를 읊조리는 것이다.

-과거를 읊조리니 사방이 막혀서 나갈 수가 없다.

-근데 과거를 잊는 것은 정말 힘들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과거를 껴 안고 고통과 아픔을 잊지 못한다

-지나간 고통을 껴 안고 사니까 늘 아프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내가 잊어야 남도 잊을 수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잊을 수가 없다.

-지나가버리는 과거를, 고통을 껴안고 사니까 아프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과거를 무조건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수치를 감당해야 하며 분별을 잘 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세상은 다 거꾸로다

-전문학교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숙였다는 것이 문제다

-세상은 인권과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구속의 관점이 아니면 구별이 안 된다

-누구한테 빠지면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거꾸로 하게 된다

-영과 육을 혼동하면 안 된다

-기적이 일어나는 이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처방을 거부하는 것은 돈, 욕심, 정욕 때문이다.

-불신은 가치관이 다른 것이며 평등의 가치관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사윗감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체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판단을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면 반드시 지체가 있다

-영적 통찰력과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데 마음을 비워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안목이 있어서 하는 것인데 세상안목은 그래서 거기까지다.

-학벌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이 문제다

-인내를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앉고 뒤로 밑지는 것이다.

-교회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성령이 진행이 아니라 사람의 진행 때문이다

-지체들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들고 교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겉으로 진행이 되는 것 같다가 다 부셔져서 대형사고가 나는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도 장말 주님을 만났다면 죽음불사하고 전도 한다

*신대원 시험문제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유신 논증(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징표)하라! 도덕적으로 하되(도덕론적, 경험론적) 자기간증과 경험으로 하라!”-à 내가 쉬운 사람이니 쉬운 이야기로 하겠다. 도덕적이라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은 데서 출발해야 한다

-변론으로 이기면 원수가 되고 변론은 별로니까 피해야 한다

-사울이 회개가 되지 않았다면 형제도 생기지 않는 것인데 가장축복이 형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타적 사명을 감당할 때 형제를 주시어 보호해 주신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말씀을 보고 가는 것이 성령의 진행이다.

-흩어져도 하나님 나라의 신도수가 본질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성령의 진행이다.

-모두 일원론인데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으로 인도받고 가는 하루하루가 성령의 진행이다.

-모든 것이 적용인 것이며 인내가 진실성의 결론이므로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붙회떨감’(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의 마음으로 가는 것이 일원론이다

-하나님이 진행을 앞당기시니 성령의 진행이다

-성령의 진행은 고난이 앞을 가린다

-여러 날이 성령의 진행 기간임을 알고 나를 점검하여 수치를 감당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모든 사건의 끝에 돈이 있기에 형제지체가 없는 것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진행을 위해서 각자에게 여러 날이 있는 것이다

-과거를 인정하고 수치를 감당해야 한다.

-내가 뒤집어지는 회심을 하면 내 앞에 놓인 길이 고난의 길이다.

-너무 힘들지만 말씀 인도함 받고 가면 성령의 진행이 될 것이다.

-결론은 예수가 그리스도다이며 말씀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4. 22. 09:37

[우리들교회 2020 419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9: 19~ 31/ 성령의 위로)]

 

 

 

<사도행전 9:19~31>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and after taking some food, he regained his strength. Saul spent several days with the disciples in Damascus).

20.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At once he began to preach in the synagogu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All those who heard him were astonished and asked, "Isn't he the man who raised havoc in Jerusalem among those who call on this name? And hasn't he come here to take them as prisoners to the chief priests?")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Yet Saul grew more and more powerful and baffled the Jews living in Damascus by proving that Jesus is the Christ.)

23.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After many days had gone by, the Jews conspired to kill him,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but Saul learned of their plan. Day and night they kept close watch on the city gates in order to kill him.)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But his followers took him by night and lowered him in a basket through an opening in the wall.)

  1. 사울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When he came to Jerusalem, he tried to join the disciples, but they were all afraid of him, not believing that he really was a disciple.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But Barnabas took him and brought him to the apostles. He told them how Saul on his journey had seen the Lord and that the Lord had spoken to him, and how in Damascus he had preached fearlessly in the name of Jesus.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So Saul stayed with them and moved about freely in Jerusalem, speaking boldly in the name of the Lord.)

  1.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He talked and debated with the Grecian Jews, but they tried to kill him.)
  2.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When the brothers learned of this, they took him down to Caesarea and sent him off to Tarsus.)

 

31.그리하여 온 유대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Then the church throughout Judea, Galilee and Samaria enjoyed a time of peace. It was strengthened; and encouraged by the Holy Spirit, it grew in numbers, living in the fear of the Lord.)

 

<Prologue>

 

온 라인 9주차 예배다

참 위로가 필요하다

선거가 끝났고 우리는 열심히 기도했다

특별히 17년 간 가장 많이 기도했다고 할 수 있는 주간들이었다.

새벽과 저녁에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면 100%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어야겠다

잘 되면 잘되는 대로 두려워 (회개)해야 하고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감사해야 한다

그래야 교만도 낙심도 하지 않는다

바울이 성령의 회심을 하고 그 좋은 복음을 전하는 데 성령의 위로로 진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위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1}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성령의 위로를 주신다.

 

19.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정오의 빛보다 밝은 빛이 강타를 하니까 성령의 회심이 되어서 원수 같던 제자들과 하나가 되었다.

이 정도나 돼야 지역감정을 타파할 수 있는 것 같다.

지난 주 적용질문으로 지역감정과 남녀차별에 대해 나누어 본 결과 남녀 차별이 압도적으로 심하게 많았고 지역감정도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성령의 회심은 안 되는 것이 맞다.

우리가 믿는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게 맞는가?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 나라가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게 아니다.

전쟁이 아니라 구원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악 때문에 바벨론 포로로 가야 하는 것이다

바벨론의 포로로 가야 한다는 것은 망하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예레미야).

말씀으로 인도 받고 해결이 되어야 한다

학교 잘 가고 전쟁 안 나고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라 구원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세상은 분별이 안 되니 소수가 가는 좁은 길로 가야 한다

넓은 길은 사망 행 길이다

회심을 하게 되면 적대시하던 제자들과 하나가 되고 자기 편이었던 유대인들과는 원수가 되니까 세상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수파로 온 바울, 소수라도 예수 씨(seed)를 택해야 한다.

세상은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 죽은 것 같아도 예수 씨를 호호 불어서 살려내야 하는 것은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가치관이 철저하게 이기적이란 것을 절대로 다들 인정 안 하는 것은 영적 소경이기 때문이다.

 

(적용 #1)

--여러분은 소수라도 택해야 하는 예수 씨 제자의 의미를 아나? 몇 프로나 아나?

 

2}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 성령의 위로를 주신다.

 

19-22. 불과 제자들과 며칠 함께 있던 그 실력 가지고 즉시로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바울이다

27-29. 담대히 전했던 바울인데 베드로가 고넬로를 전도한 이후 사도행전은 사도바울의 행전으로 계속된다.

무슨 복음을 담대히 전했을까?

본인이 기독교인을 잔멸하러 다녔기에 회당에 갔단 것은 죽기를 각오한 것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란 표현은 사도행전에서는 여기서 처음으로 사용됐는데 이게 왜 중요한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했던 이유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기 때문이며그들에게는 가당치 않은 이야기로써 그래서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믿지 않으니 신도들과 교회를 잔멸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절대로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했던 대제사장들은 나사렛 목수 출신이고 처녀가 아들을 낳은 것을 성령의 잉태라고 하면서 구세주라고 하니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제사장들의 주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 받았기에 절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이다.

메시아가 아니란 증거가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인인 사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기복의 끝판왕이며자신교 교주였던 것이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허수아비고 자기를 믿는 것이 자신교의 교주인 것인데 다 똑같다.

우리는 다 잘되기 위해서 믿는다.

우리 집안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정한수 떠놓고 믿는 것처럼 십일조하고 교회 가고 하는 것이다

언제나 좋은 이야기, 거룩한 얘기만 하면 거룩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가 일원론이 아니라 완전 분리되어 있다

남들에게 거룩해 보이면 거룩한 것인가?

거룩한 말을 한다고 거룩한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트롯트와 같은 세속적 음악(secular music)을 선 보이면 시비하고 비난한다

포도주를 마시고 세리와 친하고 사마리아인의 집에서 거주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경건해 보이지 않는다

당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이 너무 개혁적이고 새로워서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바울 서신에서 모두 165번 사용되는데, 이는 아담 안에서라는 말과 대조적인 표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하신 주만 있는 것이 일원론이다

구속하신 주만 있게 된다는 것을 사도바울이 강조했다.

 

(적용 #2)

-여러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여전히 목수의 아들인가?

-겉으로 경건한가? 속으로 경건한가?

-여러분의 허세와 후까시는 몇 프로인가?

 

3}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성령이 위로하신다.

눈살 찌푸리게 행동하면서 주여, 주여하는 사람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같지 않지만 세상은 똑같이 본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멸하려던 자가 바로 내 속에 있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바울)이었기 때문에 오해 받아도 슬퍼할 자격도 없었다.

자기 죄를 모르니 억울한 것이 많은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했다.

객관적인 논리로 입증하고자 해보다 밝은 빛을 통해 자기 간증을 함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다이지 성공이 그리스도가 아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보았고 만났고 동행하는 자가 되니 회심한 자가 되었다

유대인들을 당혹케 하고 굴복시켰다.

말씀 속에서 연단으로 분별이 되어야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전도 훈련을 안 받으면 지식만 쌓여서 전도가 안 된다

(적용 #3)

-여러분은 예수의 이름을 얼마나 부르는가?

-어느 때 부르는가?

-복음을 간증과 말씀으로 설득력 있게 전하는가, 감정적으로 전하는가?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No Cross, No Crown)

예수를 그리스도라 한 후에는 꽃 길이 아니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이걸 무섭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무서울 것이다.

 

4} 죽음의 고난에서 생명의 위로가 임한다.

 

23.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한다

복음은 전하는 사명과 고난을 당하는 사명이 있다.

No Cross, No Crown! 영광을 얻기 위해서 고난을 당할 것을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성령의 회심자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늘 고난을 생각했다.

사울은 스테반을 생각하면 자기의 죄가 얼마나 큰지 자각하기에 어디서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으니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은 것은 신의 한 수다

사울은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음성을 생각하면서 유대인에게 죽으면 죽으리라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다

2천년 성경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두 명은 PaulAugustin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얼마나 죄인이었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

아무리 정오의 빛을 만나도 그때부터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세상이 등지고 반드시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회심이 확실할수록 세상과 반대되는데 세상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원수다.

세상에서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회심은 가짜일 수 있다

양쪽에서 다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회심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24~ 우는 사자와 같이 사탄은 나를 집어 삼키려고 24시간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때 성벽에서 들창을 통해 광주리를 밧줄로 내려 도와주는 이들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고 3년 거주한 아라비아를 다녀온 후 오순절에 성령 받고 감화 받은 사람들한테 전도 받아 바울에게 생긴 제자들이다.

사울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에 늘 도와주는 자가 있는 것이다.

사울은 절대로 도망 안 가며 제자들이 성벽에 달아 내렸고 죽을 수 도 있었는데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냥 광주리가 아니고 그 시절에 다 아는 쓰레기를 담아 내리는 광주리로써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지 않을까?

자존심으로는 구원되지 않는 것이므로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구원 때문에 광주리 타고 도망 갈 수도 있다.

사명자는 사명을 다하기까지 절대로 죽지 않으며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이 대려 가신다

순교가 사명인 이들도 있었는데 사도 바울의 사명은 다른 것으로 각자 사명이 다르다.

 

(적용# 4)

-여러분은 죽음의 고난에서 성령의 위로를 받은 적 있나? 지금 받고 있나?

-그래서 위로 받고 누구를 위로했는가? 지금 누구에게 위로 받고 있나?

-성령의 위로를 받고 있나? 연민에 빠져 남편/부모/자녀의 위로만 받으며 슬퍼하고 있나?

-연민은 몇%인가?

 

5} 중재자를 보내주셔서 위로하신다.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치명타다

유대인공동체에서 사도바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유대인들만 힘들 게 하고 미워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사울을 믿지 않았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이렇게 인정받지 못하는 때도 있다.

힘든 사람에게 오는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다

27. 길을 내주셨다.

유대인들이 다 두려워해서 믿지 아니할 때 유대인들의 대부인 바나바(Barnabas)를 준비하셨다.

바나바는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들보다도 더 최고의 신뢰를 축적하였고 돈이 많고 착하고 믿음이 충만한 적임자이자 애정 깊은 중재자이자 권위자였다.

28. 바나바의 중재로 오해가 다 풀렸다.

그래서 자유롭게 교제를 했다.

29절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Grecian Jews)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쉴만하면 죽이려고 힘쓰는 패턴이다

사울은 복음 전하고 가버리는 길거리의 전도자가 아닌 시종일관 도시를 옮겨 다니며 거점 삼아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다.

몰래 하는 게 아니라 회당 들어가서 하니 그들의 격분을 샀던 것으로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구원을 목숨보다 원한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원수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전했는데도 죽이려고 한 것은 토론에 밀렸다는 뜻이다.

강철 왕 카네기는 친구를 잃으려면 친구와의 논쟁에서 승리하라고 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으면 입을 다물라.

(적용)

-토론에서 이기나? 지나?

죽음을 무릅쓰고 전도활동을 하는 걸 보고 형제들이 신뢰를 하게 되었고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됐다(30).

형제들은 사도바울이 위험한 것을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배에 태워 다소(Tarsus)까지 보낸 것인데 다소에서 연대기에 기록되지 않은 몇 년을 보낸 것이다

사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죽고자 하니 형제들이 옆에서 도왔다. 바울도 형제의 조언이 필요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31. 반전. 교회가 부흥되었다. 그리하여는 30절까지를 받는 게 아니고 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흩어짐 이후 생긴 모든 일을 받는 것으로 성도들에게 대 박해가 있어 흩어져가지고 예루살렘 교회 하나밖에 없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가 생긴 것이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으며 모든 것이 성령의 위로로 진행이 된 것이고 수가 더 많아져(grew in numbers) 비약적 부흥을 이루었다.

박해시대에 로마가 황제 우상화 정책추진으로 인하여 박해가 약해지게 하신다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만 하면 100%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이래도 저래도 100% 옳으시니 내가 내 잣대로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걸 원망하지 말고 자기한테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형제가 생기고 공동체가 생기고, 더욱 더 신뢰를 받아야 하고. 형제가 없으면 죽어야지 어떻게 하겠나?

형제가 없는 건 내 삶의 결론이다라고 생각하면 안타까울 일이 없다.

기도했으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적용 #5)

-여러분의 바나바는 누구인가?

-바나바가 되어준 적이 있나?

 

<Epilogue>

 

-수 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사울은 예수 씨로서 사명 감당하도록 하신다

-죽음의 고난에서도 사울은 성령의 위로를 받고 죽음의 고난을 사명으로 여긴다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며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아무 것도 몰라도 주님 이름 불고 기도하면 된다

-소수라도 예수 씨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복음을 간증으로 설득력 있게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전한 복음이 받아 드려져 예수 씨가 널리 퍼져서 구원의 결실을 맺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잘 되면 잘되는 대로 두려워 (회개)해야 하고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감사해야 한다

-그래야 교만도 낙심도 하지 않는다

-바울이 성령의 회심을 하고 그 좋은 복음을 전하는 데 성령의 위로로 진행했다고 한다

-인간의 힘으로 성령의 회심은 안 되는 것이 맞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 나라가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게 아니다.

-전쟁이 아니라 구원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악 때문에 바벨론 포로로 가야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인도 받고 해결이 되어야 한다

-학교 잘 가고 전쟁 안 나고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라 구원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세상은 분별이 안 되니 소수가 가는 좁은 길로 가야 한다

-넓은 길은 사망 행 길이다

-다 죽은 것 같아도 예수 씨를 호호 불어서 살려내야 하는 것은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가치관이 철저하게 이기적이란 것을 절대로 다들 인정 안 하는 것은 영적 소경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으니 신도들과 교회를 잔멸하는 것이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허수아비고 자기를 믿는 것은 자신교의 교주인 것인데 다 똑같다.

-언제나 좋은 이야기, 거룩한 얘기만 하면 거룩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가 일원론이 아니라 완전 분리되어 있다

-거룩한 말을 한다고 거룩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하신 주만 있는 것이 일원론이다

-눈살 찌푸리게 행동하면서 주여, 주여하는 사람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같지 않지만 세상은 똑같이 본다.

-자기 죄를 모르니 억울한 것이 많은 것이다

-객관적인 논리로 입증하고자 해보다 밝은 빛을 통해 자기 간증을 함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다이지 성공이 그리스도가 아니다.

-말씀 속에서 연단으로 분별이 되어야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전도 훈련을 안 받으면 지식만 쌓여서 전도가 안 된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No Cross, No Crown)

-예수를 그리스도라 한 후에는 꽃 길이 아니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복음은 전하는 사명과 고난을 당하는 사명이 있다.

-‘No Cross, No Crown!’영광을 얻기 위해서 고난을 당할 것을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

-아무리 정오의 빛을 만나도 그때부터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세상이 등지고 반드시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회심이 확실할수록 세상과 반대되는데 세상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원수다.

-세상에서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회심은 가짜일 수 있다

-양쪽에서 다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회심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사울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에 늘 도와주는 자가 있는 것이다.

-자존심으로는 구원되지 않는 것이므로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사명자는 사명을 다하기까지 절대로 죽지 않으며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이 대려 가신다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치명타다

-힘든 사람에게 오는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다

-강철 왕 카네기는 친구를 잃으려면 친구와의 논쟁에서 승리하라고 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으면 입을 다물라.

-박해시대에 로마가 황제 우상화 정책추진으로 인하여 박해가 약해지게 하신다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만 하면 100%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이래도 저래도 100% 옳으시니 내가 내 잣대로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걸 원망하지 말고 자기한테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 ‘형제가 없는 건 내 삶의 결론이다라고 생각하면 안타까울 일이 없다.

-기도했으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주님, 주님 씨가 홀씨처럼 땅끝 구석구석까지 흩어져 구원의 결실이 맺게 되어 주님께 영광 돌리는 기쁨누리기를 소망합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4. 13. 17:58

[우리들교회 2020 412일 주일설교말씀 요약(사도행전 9:10~ 19/ 성령의 형제)]

 

<사도행전 9:10~19>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Ananias)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Straight Street)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Immediately, something like scales fell from Saul's eyes, and he could see again. He got up and was baptized,)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Prologue>

온라인예배 8주차다

코로나로 느끼는 각자의 상태가 각자 믿음의 결론일 것으로 생각한다

정오의 빛을 통해 성령의 회심을 한 바울을 누가 환영해 주겠나?

유대인에게는 배신자요 기독교인에게는 박해자이기 때문에 회심은 했지만 이 세상에서 환영해 줄 자가 없고 그 어디서도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이럴 때 같은 마음으로 알아주는 예수 믿는 형제가 필요하다

그런 형제 한 사람만 있어도 천군만마와 같은 힘이 생긴다

그런데 신천지가 이런 일을 너무 잘한다고 하니 우리는 분별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내 마음이 편하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최고인 것이다

그런 것들을 통해 신천지가 끌고 간다는데 성령의 형제는 아닌 것 같다

오늘은 성령의 형제를 묵상해 본다

 

<말씀요약>

 

1. 삶의 자리가 사역지임을 알려준다.(삶의 현장의 중요성)

아나니아(Ananias)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으로 그는 연륜이 있는 그리스도인이었다.

하나님은 직접 행하시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신다.

사도 바울은 성경을 쓰고 기독교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지만 이렇게 성경에 한 번 언급된 아니니아에게 배우게 하신다.

교회 처음 와서 거쳐야 하는 것은 관계 훈련이다.

아랫자리에서 충성해 보지 않은 사람은 윗자리에 가서 직분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나니아를 통해서 사울의 눈을 뜨게 하셨다.

아나니아가 대단한 사람이라서 바울에게 안수를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자리가 힘들어 이혼한다고 하고, 회사 때려 치고 선교한다고들 한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자리가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사역지다.

묵묵히 자신의 삶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일 수 있다.

우리가 인도한 한 사람이 바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나니아(Ananias)든 바울(Paul)이든 누가 더 위대한 것이 아니다.

나는 말씀 전하는 한 가지 은사로 강단에서 쓰신 것이다.

간증 한번 듣고 내 이야기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택자다.

그렇게 택자는 현재 있는 삶의 자리를 사역지로 생각하는데 함부로 사역지를 떠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적용 #`1)

-삶의 자리가 사역지라고 기뻐하는지? (생각하고 잘 받아들이는지)

2. 서로 기도로 교통한다.(공동체 기도의 중요성)

기도하는 중”(is praying)이라는 표현은 일시적, 형식적 기도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식음전폐하며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 박해로 악명 높은 자인 바울과 아나니아에게 주님이 동시에 환상을 보게 하신 것이다.

바울의 기도 응답으로 적극적 순종의 믿음의 신앙인인 아나니아로 인해 교회의 형제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형제의 조건은 서로 기도로 교통하고 공동체에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다.

기도로 교통해야 성령의 형제다

우리는 형제들에게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형제 자매의 기도제목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도제목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가라는 생각해야 한다

미리미리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제목을 올릴 때에는 사건에서 무엇을 회개하는지 올리길 바란다.

(적용 # 2)

-누군가의 기도제목이 나를 향한 명령이라는 것이 느껴지는지?

3.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하신다.(양육의 중요성)

흑암에서 사흘 만에 사울은 해방된다

성령의 형제는 다시 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사람들은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다.

영안이 가리워져 모든 것을 보지 못하면서 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영의 눈이 떠지는 것은 성령이 임해야만 가능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데, 이와 비슷하게 영적인 자녀를 낳는 것도 많은 관심과 노력이 오랫동안 필요하다.

나중 된 자를 양육하려면 고통과 수고와 인내가 수반된다

성령의 형제를 돌봄이 필요한 것이며 설교만 듣고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다

새로 오신 분들은 자신의 자리가 여기라는 것과 무엇을 믿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도 전해야 한다.

인간은 전부 죄인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못하고 살면 답답하다.

성령의 형제 없이 성령의 눈으로 다시 보는 것이 어럽다

형제 공동체는 위력적이다

(적용#3)

-영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은 무엇인지? (가족, 회사, 인간관계 중에서_

4. 사명 찾기 위해서 편견이 없게 해준다. (편견 없음의 중요성)

성도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무리다

성도는 구별되고 거룩함이 있는 것이다

사울에게 가기를 꺼려하는 아나니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사울은 내가 쓸 종이니 가라고 하신다.

핍박자 사울에게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나니아는 자신의 의견으로 편견을 갖고 있었다.

아나니아는 핍박자인 사울에게 가라고 하는 것을 이해 못한다

어쩌면 사울보다 아나니아를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죄인보다 의인을 설득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죄인은 햇빛이 한 번 비치면 회개하고 나오는데, 아나니아는 죄가 없기 때문에 설득이 훨씬 더 어렵다.

주님이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와 대화하는 것이 사울과의 대화보다 더 길다

아나니아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편견을 내려 놓고 행한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편견을 가지고 물어본 것이 아니라, 사울에 대해 정확하게 팩트로 하나님께 여쭌다.

늘 물어보는 것이 형제공동체다

늘 이렇게 묻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항상 올바른 답변을 해주는가? 그렇지도 않다.

구원을 위한 공동체이기에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곱씹고 답변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택하신 것이다.

온 세상(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주님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하신 주님의 그릇(my chosen instrument to carry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their kings and before the people of Israel)인 것이다

조건을 보고 일꾼으로 삼으신다면 이 땅에서 일꾼으로 선택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제일 힘든 것이 동족이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다

말씀으로 고치지 못할 질병은 없다

인간적으로 보면 강퍅하고 부도덕하고 모자라 보여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택하고 세우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이런 모습은 가장 악한 모델인 사울을 세우심으로 보이셨다.

바울은 다시 보게 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을 만홀(漫忽)히 여기면 대가를 치른다

사울의 스펙, 지위, 살기등등 함까지도 하나님께 복음 전하는 도구로 쓰신다

서울은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일꾼이다

하나님은 성령의 회심을 했다면 사명을 주신다.

그 동안은 핍박하는 자였지만 이제는 핍박을 받는 자가 된 것이다.

정오의 빛을 경험한 사울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자발적으로 겪을 것이다(I will show him how much he must suffer for my name.)라고 알려주신다.

우리는 다 고난이 싫다.

그래도 말씀을 보며 순종하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큐티이다.

나는 싫지만, 말씀이 하라고 하니 하는 것이다.

말씀 가는데 까지 가고 멈추는 데에서 멈춘다(Calvin)

하나님이 함께 하지만, 나의 의지로 고난을 택하게 되는 것이 적용이다.

야동/쇼핑 등 좋아하는 것을 끊는 것이다.

금욕적으로 살라는 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 보다 위에 있으면 안 되니까 그렇다

자발적으로 고난을 자초한다

성령의 형제는 교제 속으로 초청함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축복이다

서로 안수하면서 성령이 유지된다

죄악의 비늘이 벗겨져 새로운 사명 감당을 위해 영안이 밝아 지는 것이다

바울은 후에 세례의 정의를 예수님이 죽으신 것처럼 십자가에 죽고 새로 사는 것이라고 한다.

세례의 정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연합됨이라고 한다

사명을 위해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성품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쓰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의 육체를 돌볼 줄도 알아야 한다.

성령의 형제는 서로 영육간의 강건을 위해서 돌보아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을 보는 것은 회심이 안되어서이다

내 시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예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마음이 성령으로 도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프게 하는 것은 회개하라는 뜻이다

성령의 형제와 공동체는 같이 밥을 먹어 주는 것이다

 

(적용#4)

-성령의 형제가 되지 못하는 편견은 무엇인지?

-남녀차별과 지역감정은 몇 %인가?

 

<Epilogue>

-아나니아는 순종으로 사울을 보았다

-온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름답다

-교회 처음 와서 거쳐야 하는 것은 관계 훈련이다.

-아랫자리에서 충성해 보지 않은 사람은 윗자리에 가서 직분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자리가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사역지다.

-묵묵히 자신의 삶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일 수 있다.

- “기도하는 중”(is praying)이라는 표현은 일시적, 형식적 기도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식음전폐하며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형제의 조건은 서로 기도로 교통하고 공동체에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다.

-기도로 교통해야 성령의 형제다

-기도제목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가라는 생각해야 한다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사람들은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다.

-영안이 가리워져 모든 것을 보지 못하면서 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영의 눈이 떠지는 것은 성령이 임해야만 가능하다.

-나중 된 자를 양육하려면 고통과 수고와 인내가 수반된다

-성령의 형제를 돌봄이 필요한 것이며 설교만 듣고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다

-인간은 전부 죄인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못하고 살면 답답하다.

-성령의 형제 없이 성령의 눈으로 다시 보는 것이 어럽다

-형제 공동체는 위력적이다

-성도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무리다

-성도는 구별되고 거룩함이 있는 것이다

-죄인보다 의인을 설득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죄인은 햇빛이 한 번 비치면 회개하고 나오는데, 아나니아는 죄가 없기 때문에 설득이 훨씬 더 어렵다.

-늘 물어보는 것이 형제공동체다

-온 세상(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주님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하신 주님의 그릇(my chosen instrument to carry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their kings and before the people of Israel)인 것이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다

-말씀으로 고치지 못할 질병은 없다

-인간적으로 보면 강퍅하고 부도덕하고 모자라 보여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택하고 세우실 수 있는 것이다.

-사울의 스펙, 지위, 살기등등 함까지도 하나님께 복음 전하는 도구로 쓰신다

-서울은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일꾼이다

-하나님은 성령의 회심을 했다면 사명을 주신다.

-정오의 빛을 경험한 사울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자발적으로 겪을 것이다(I will show him how much he must suffer for my name.)라고 알려주신다.

-그래도 말씀을 보며 순종하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큐티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만, 나의 의지로 고난을 택하게 되는 것이 적용이다.

-죄악의 비늘이 벗겨져 새로운 사명 감당을 위해 영안이 밝아 지는 것이다.

-세례의 정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연합됨이라고 한다

-사명을 위해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성품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쓰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의 육체를 돌볼 줄도 알아야 한다.

-성령의 형제는 서로 영육간의 강건을 위해서 돌보아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을 보는 것은 회심이 안되어서이다

-내 시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예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마음이 성령으로 도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프게 하는 것은 회개하라는 뜻이다

-성령의 형제와 공동체는 같이 밥을 먹어 주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4. 7. 16:39

[우리들교회 2020 45일 주일예배 말씀요약(사도행전 9: 1~ 9/성령의 회심)]

 

 

<사도행전 9:1~9>

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still breathing out murderous threats)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the Way)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suddenly a light from heaven flashed around him.)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voice)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Saul, Saul, why do you persecute me?"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sound)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For three days he was blind, and did not eat or drink anything)

 

<Prologue>

온라인 예배 7주차다

영적 진실성의 결론은인내’(patience, endurance, perseverance, tolerance)

인내로 우리가 얼마나 진실한가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스데반의 권세와 사도 바울의 권세가 누가 더 큰지는 모르겠으나 스데반은 너무 뛰어났기에 빨리 데려가신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삶은 잘 알려진 것이 없는데 스테반에게는 성령과 지혜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였고 칭찬받았던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칭찬이란 칭찬은 다 받은 것 같다

스테반은 흠 없고 착한 사람이라 보겠지만 결코 그렇지도 않다.

착하면 어른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대제사장과 산헤드린(Sanhedrin) 공회 앞에서 목이 곧고 할례 받지 못한 자이고 너는 살인자라고 돌에 맞아 순교했다.

순교 후 유대의 모든 당파 사람들이 교회를 계속 잔멸하니까 위축이 되었고 그럼으로 스테반의 뒤를 이어 사역을 계속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꾼을 스테반을 죽인 사람들 중에 골라서그 때부터 불러서 양육시켜서 불세출의 전도자로 쓰신다.

열두 사도가 있었으나 지나고 보면 이 바울이 없었다면 신약이 성립이 안 되는 것이어서 신약을 바울 복음이라고 한다

또 이방인 전도도 못했을 뻔한 지도자가 스데반 죽기까지 전혀 준비가 안돼있었다

그러니 늦었다 할 때가 없는 것이다

예수 믿는 나를 핍박하는 사람 중에 일꾼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박해를 많이 할수록 기대가 된다.

그런 사람일수록 크게 핍박을 했으니 크게 회개를 해야겠지 않을까?

주님과의 만남은 거듭남, 회개, 중생, 구원등 여러 표현이 있고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회심(回心 /a change of heart, conversion)’은 가다가 유턴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울에게는 거듭남과 회개가 동시에 일어나서 흔히 회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회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1)   (회심 전에는)무섭고 가치 없는 열심을 크게 낼 때가 많다.

살기로 숨을 내뿜고(still breathing out murderous threats) 있었다는 사울은 왜 이렇게 적대감이 대단할까?

자기는 흠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 스데반을 살기로 등등해서 잡아죽일 정도니까 스데반의 소리는 모두 개소리라고 여긴다

다메섹은 수리아의 매우 오래된 도시로 30개 정도의 회당이 있었던 곳으로 유대인 중 상당수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은 것인데 곧 이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겠구나 라고 여기며 무의식적으로 기독교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정치신념보다 무서운 게 종교신념(미국 911테러사태, 신천지 등)이다.

2절에 ( /the Way)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Way’ 대문자로 쓴 것은 보전될 그리스도의 십자가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길이여, 진리요, 생명이다.

3절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열심보다 앞서가게 되면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 있구나를 보게 된다. 마치 강이 범람하듯 무엇이든 범람하면 진멸하는 이치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다 망한다.(과유불급/過猶不及)

무지한 열심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훼방을 놀게 된다

무지한 열심은 어리석고 가치 없는 열심이다.

공로나 행위로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이다

분기탱천하여 살기등등(殺氣騰騰) 한 것이 율법주의의 열심이다.

정치를 하는데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으면 사람을 다 죽이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봐야 되는데, 우리나라가 예수 때문에 잘살게 되었는데도 아무도 인정을 안 한다.

구별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는데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어리석은, 가치 없는 열심이다.

기독교를 옳다고 하니까 못 듣고 못 참는 것이다.

예수 믿기에 결박 당한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 좋은 일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박해하고 결박할 때는 남녀차별이 하나도 없는데 주의 일을 할 때는 차별이 많다.

성령이 임해야 구별과 차별 그리고 지역감정이 없어진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회심을 해야지 분리(남녀차별 등)가 없다.

교회들이 지역감정에서 다 벗어나지를 못 하는데 우리들교회가 지역감정이 없다는 것을 전체에 보여주어야겠다

(적용 #1)

-나의 어리석은 열심, 무가치한 열심은 무엇인가?

-사람을 죽이는 열심인가?

-여러분은 죄인인가? 죄인을 잡는 의인인가?

 

2)    (회심할 때) 내가 예수를 박해한 것을 아는 것이다.

회심은 인격의 변화까지 온 것을 말하는데 그래서개종이라는 단어로도 쓰인다.

너무 확실히 바뀌었다는 의미이며 유대교를 너무 잘 믿어서 사람을 너무 잘 믿고 있으니까 사울은 개종을 했어야 했다.

사울에게는 불가항력적인 방법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사울의 회심의 과정을 살펴보면 3절의’. 사도행전 26:13 에서는정오의 빛’. 사막에서는 너무 강렬해서 살인적인 빛이다.

빛만 봐도 눈이 멀어버리는 빛으로 그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둘러 비춘 것이다

예수님의 영광의 큰 빛이 사울에게 비쳐진 것인데 광채를 넘어서 사람이 보면 죽는 빛이다.

주님은 생명의 빛으로 죽음에 속한 자는 이 빛을 보면 두렵다.

주님의 빛은 뜨겁고 거룩하고 무섭다.

그 빛을 보는 시각은 믿음의 분량대로 다르다.

22장에서는 큰 빛으로 빛을 보는 시각이 점점 달라졌다.

간증을 할 때마다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빛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은 주님 만난 의미가 달라지는 것으로 주님에 대한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다

빛이 인자의 영광인 것이다

빛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사울은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는 변화되지 않았다.

스데반이 죽을 때 생명의 빛이신 인자의 영광 예수님이 스데반을 비추면서 영접해주시는 것을 보고 들었다.

의미는 몰랐지만 기억했을 것으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Lord, do not hold this sin against them.)라고 하는 스데반의 기도를 들었을 것이다

햇빛보다 더 밝은 성령의 얼굴로 편안하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Lord Jesus, receive my spirit.") 의탁하는 스테반의 얼굴을 사울이 본 것이다.

성령의 빛이 스테반에게 비추니 성령의 얼굴, 용서의 얼굴, 평안한 얼굴, 의탁하는 얼굴을 사울이 본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뜻은 몰라도 그 자리에 있어서 보는 게 중요한 거다.

사울은 그 빛을 받아낼 수준이 못 되는 것으로 당연히 무섭고 죽을 것 같아 땅에 엎드러졌다.

엎드러져는 굴복하다라는 뜻으로 자의적으로 엎드린 것이다.

사울아, 사울아하시며 두 번에 걸쳐 부르신다. 아주 친근하게.

창세기부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사무엘아, 사무엘아!” 라고 주님은 사명을 주실 때 녹아지게, 다정하게 부르신다

교회를 잔멸하던 사울을 어떻게 이렇게 다정하게 부르실 수가 있는가?

회심을 하는데 사울이 한 일이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찾아 헤매지도 않았다.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기와 다르다고 죽이지 못해 안달인 악질이었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의 사건 아니겠는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으로 교회를 핍박했는데 예수님을 핍박했다고 하신 것이며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으로 생각하셨다.

사울은 작은 자에서 죄의 괴수로 느껴지도록 빛의 표현도 다른 것이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신다면 핍박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교회, 성도, 스테반에 대한 핍박은 예수인 나를 핍박하는 거다라고 얘기해주시는 것이다

사울이 교회를 박해할 것을 요한복음에서 미리 예언하셨다.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저주가 임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포교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고, 못하면 내가 저주받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신천지다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하면서 율법으로 흠 없음이라고 생각한다

율법으로 박해하는데 자신의 율법으로 상대방을 잔멸하는 것이다

율법으로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율법으로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박해하는 것이다

 내가 형편없으니 주님이 나를 인도해가시는 것이며 남편이 나를 박해해줘 가지고 내가 하나님을 섬겼구나라고 하나님 섬기라고 붙여주신 주의 대사다.

나한테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빛과 소리에 압도되어서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느낀 사울은 바로 그 자리에서 주여 누구십니까? 라고 되묻는다

예수가 그리스도다가 안 믿어지니까 정체성(처녀 잉태, 십자가 죽음, 부활 등)이 흔들리는 것이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언제든지 돌이킬 수 있어야 되는데 진영논리가 그렇지 않은가?

틀릴지라도 기다리는 것이 기독교다

신념과 신앙은 구별되어야 한다

햇빛, 부도, 암이 내게 오는 빛일 수 있다

어느 쪽도 설득이 불가한 것이다

예수님을 인정한 사울은 나는 죽고 구속하신 예수가 살았다가 되었다

사울의 실명의 아픔은 가장 큰 아픔으로 그 아픔 가운데서주여가 된 것이다

아내를 핍박한 것을 예수님 핍박한 것으로 알고 영접기도 받고 주여!’라고 회개하고 천국간 것이 회심이다.

이 잘난 사람인 사울이 누구를주여라고 불렀겠는가..

자기를사울아라고 불러주시니 마음이 녹았다.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우셔서 찾아오신 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고주여가 나왔다.

한 순간에 사울의 신학과 가치관이 다 무너졌다. 이럴 수도 있는 것이다.

 

(적용 #2)

-어떤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나? 박해 당하고 있나?

 

3)   영적 소경에 대한 자각이다

 

사도바울에게는 곧장 행 할 일을 알려주신다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Sound)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같이 둘러 섰는데도 들리는 사람이 있고 안 들리는 사람이 있는데 안 들리는 사람은 영적 자각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Voice)으로 사울에게만 말씀하시니 같이 동참하는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니 소리(Sound)라고 표현한다

똑같이 보고 들어도 또 주님을 영접해도 영적 자각이 없으니 감동이 없는 것이다

똑같이 보고 들어도 영접의 의미를 모르니 증인이 안 되는 것이다

영접하게 하러 갈 때 상대방의 살아온 인생을 알고 가야 한다.

 

주님을 만난 첫 째 징표는 장님이 되어서 자기가 초토화시키려던 (자기 나와바리) 다메섹에 끌려간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본 후에 소경이 된 것이며 눈을 떠도 보지 못하는 자인 영적 소경임을 깨달으라고 육적 소경으로 만드셨다.

사울도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것은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이 소경임을 깨달음으로 회심하게 하셨다.

에너지가 있어야 살기등등도 사랑도 미움도 가능한 것이다

땅에서 천국생활을 하게 되면 지옥이야기에 귀에 안 들어 오는 것이다

구차한 존재인 줄을 알아야 한다.

눈을 떴는데 보지 못하고가 두 번 나왔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 가야 아픈 사람을 체휼하게 되는 것으로 사울은 자신이고 남이고 아픔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스데반을 죽인 걸 평생 울면서 복음에 매진할 사건으로 써주신 사울 사건을 통해 우리의 예수님 만난 사건을 생각해봐야 한다.

은혜를 받으면 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남들은 알게 되지만 난 모른다.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박해했는지를 남들은 아는데 나는 모른다.

살기등등했던 눈매가 온유해지라고 육적 소경으로 눈을 멀게 하신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성경만 읽고도 아프리카 선교에 초석이 되었다.

사울이 3일 만에 순종을 하니 그 다음 진도를 나가게 하신다

육적 소경보다 영적 소경이 더 무서운 것이다

바울처럼 잔멸을 하는 사람에게는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눈이 멀고 다리가 부러지고 자동차가 뒤집혀야 된다.

미리 말씀 듣는 자들은 그럴 일이 없을지어다라고 축복하고 싶다.

여전한 방식으로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이다.

미리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맞는 일을 주실 것이다.

바울, 빌립, 베드로에게 각자 역할을 맡겨주시는 것인데 내가 정하려고 하니까 문제인 것이다

(적용 #3)

-눈을 떴으나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적 시력은 몇 점인가?

영적 시력이 없으면 사람을 못보고 자기확신에 차있다.

큰 권세로 땅끝까지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큰 권세에 합당한 큰 일꾼이 필요했다.

유대인들과 싸울 율법, 가문, 지식에 뛰어난 권세가 필요했다.

유대인들은 어부(베드로)와 상대를 안 하는데 열두 제자는 다 어부 출신들이다

각자 은사대로 쓰신다

완벽하게 회개하고 가는 것이 회심이다

핍박해 주는 사람이 일꾼일 수 있다

크게 박해해 주는 사람이 준비된 일꾼일 수 있다

스테반이 죽고 잔멸이 되니 일꾼이 없었다

살기로 숨쉬고 내뿜는 사울을 어떻게 사울아, 사울아하시면 부르실 수 있었겠나?

사울은 눈이 멀었다가 회복시키셨는데 암으로 돌아가신 사부님은 너무 흠이 없어서 데려가신 스데반 같다.

해석이 잘 돼야 해결이 잘 되는 것이며 박해가 클수록 큰 일꾼이 될 줄 믿는다.

회심은 내가 예수를 박해한 것을 아는 것이다.

영적 소경에 대한 자각을 할 수 있으면 사명이 따라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은혜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Epilogue>

-적용을 길로 놓는 것은 힘든 일이다.

-주님과의 만남은 거듭남, 회개, 중생, 구원등 여러 표현이 있고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회심(回心 /a change of heart, conversion)’은 가다가 유턴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울에게는 거듭남과 회개가 동시에 일어나서 흔히 회심이라고 한다.

-살기로 숨을 내뿜고(still breathing out murderous threats) 있었다는 사울은 왜 이렇게 적대감이 대단할까?

-자기는 흠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 스데반을 살기로 등등해서 잡아죽일 정도니까 스데반의 소리는 모두 개소리라고 여긴다

-정치신념보다 무서운 게 종교신념(미국 911테러사태, 신천지 등)이다.

-예수님은 길이여, 진리요, 생명이다.

-사울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열심보다 앞서가게 되면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 있구나를 보게 된다. 마치 강이 범람하듯 무엇이든 범람하면 진멸하는 이치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다 망한다.(과유불급/過猶不及)

-무지한 열심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훼방을 놀게 된다

-무지한 열심은 어리석고 가치 없는 열심이다.

-공로나 행위로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이다

-분기탱천하여 살기등등(殺氣騰騰) 한 것이 율법주의의 열심이다.

-구별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는데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어리석은, 가치 없는 열심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박해하고 결박할 때는 남녀차별이 하나도 없는데 주의 일을 할 때는 차별이 많다.

-성령이 임해야 구별과 차별 그리고 지역감정이 없어진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회심을 해야지 분리(남녀차별 등)가 없다.

-회심(conversion)은 인격의 변화까지 온 것을 말하는데 그래서개종이라는 단어로도 쓰인다.

-주님은 생명의 빛으로 죽음에 속한 자는 이 빛을 보면 두렵다.

-주님의 빛은 뜨겁고 거룩하고 무섭다.

-그 빛을 보는 시각은 믿음의 분량대로 다르다.

-빛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은 주님 만난 의미가 달라지는 것으로 주님에 대한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다

-빛이 인자의 영광인 것이다

-빛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의미는 몰랐지만 기억했을 것으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Lord, do not hold this sin against them.)라고 하는 스데반의 기도를 들었을 것이다

-햇빛보다 더 밝은 성령의 얼굴로 편안하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Lord Jesus, receive my spirit.") 의탁하는 스테반의 얼굴을 사울이 본 것이다.

-성령의 빛이 스테반에게 비추니 성령의 얼굴, 용서의 얼굴, 평안한 얼굴, 의탁하는 얼굴을 사울이 본 것이다

-창세기부터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사무엘아, 사무엘아!” 라고 주님은 사명을 주실 때 녹아지게, 다정하게 부르신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으로 교회를 핍박했는데 예수님을 핍박했다고 하신 것이며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으로 생각하셨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신다면 핍박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교회, 성도, 스테반에 대한 핍박은 예수인 나를 핍박하는 거다라고 얘기해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저주가 임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포교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고, 못하면 내가 저주받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신천지다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하면서 율법으로 흠 없음이라고 생각한다

-율법으로 박해하는데 자신의 율법으로 상대방을 잔멸하는 것이다

-율법으로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율법으로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박해하는 것이다

-‘내가 형편없으니 주님이 나를 인도해가시는 것이며 남편이 나를 박해해줘 가지고 내가 하나님을 섬겼구나라고 하나님 섬기라고 붙여주신 주의 대사다.

-‘예수가 그리스도다가 안 믿어지니까 정체성(처녀 잉태, 십자가 죽음, 부활 등)이 흔들리는 것이다

-틀릴지라도 기다리는 것이 기독교다

-신념과 신앙은 구별되어야 한다

-햇빛, 부도, 암이 내게 오는 빛일 수 있다

-예수님을 인정한 사울은나는 죽고 구속하신 예수가 살았다가 되었다

-사울의 실명의 아픔은 가장 큰 아픔으로 그 아픔 가운데서주여가 된 것이다

-아내를 핍박한 것을 예수님 핍박한 것으로 알고 영접기도 받고 주여!’라고 회개하고 천국간 것이 회심이다.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도우셔서 찾아오신 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고주여가 나왔다.

-한 순간에 사울의 신학과 가치관이 다 무너졌다. 이럴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이 둘러 섰는데도 들리는 사람이 있고 안 들리는 사람이 있는데 안 들리는 사람은 영적 자각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Voice)으로 사울에게만 말씀하시니 같이 동참하는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니 소리(Sound)라고 표현한다

-똑같이 보고 들어도 또 주님을 영접해도 영적 자각이 없으니 감동이 없는 것이다

-똑같이 보고 들어도 영접의 의미를 모르니 증인이 안 되는 것이다

-영접하게 하러 갈 때 상대방의 살아온 인생을 알고 가야 한다.

-주님을 만난 첫 째 징표는 장님이 되어서 자기가 초토화시키려던 (자기 나와바리) 다메섹에 끌려간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본 후에 소경이 된 것이며 눈을 떠도 보지 못하는 자인 영적 소경임을 깨달으라고 육적 소경으로 만드셨다.

-사울도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것은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이 소경임을 깨달음으로 회심하게 하셨다.

-에너지가 있어야 살기등등도 사랑도 미움도 가능한 것이다

-땅에서 천국생활을 하게 되면 지옥이야기에 귀에 안 들어 오는 것이다

- ‘눈을 떴는데 보지 못하고가 두 번 나왔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 가야 아픈 사람을 체휼하게 되는 것으로 사울은 자신이고 남이고 아픔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스데반을 죽인 걸 평생 울면서 복음에 매진할 사건으로 써주신 사울 사건을 통해 우리의 예수님 만난 사건을 생각해봐야 한다.

-은혜를 받으면 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남들은 알게 되지만 난 모른다.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박해했는지를 남들은 아는데 나는 모른다.

-살기등등했던 눈매가 온유해지라고 육적 소경으로 눈을 멀게 하신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성경만 읽고도 아프리카 선교에 초석이 되었다.

-사울이 3일 만에 순종을 하니 그 다음 진도를 나가게 하신다

-육적 소경보다 영적 소경이 더 무서운 것이다

-여전한 방식으로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이다.

-미리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맞는 일을 주실 것이다.

-바울, 빌립, 베드로에게 각자 역할을 맡겨주시는 것인데 내가 정하려고 하니까 문제인 것이다

-영적 시력이 없으면 사람을 못보고 자기확신에 차있다.

-큰 권세로 땅끝까지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큰 권세에 합당한 큰 일꾼이 필요했다.

-유대인들과 싸울 율법, 가문, 지식에 뛰어난 권세가 필요했다.

-유대인들은 어부(베드로)와 상대를 안 하는데 열두 제자는 다 어부 출신들이다

-각자 은사대로 쓰신다

-완벽하게 회개하고 가는 것이 회심이다

-핍박해 주는 사람이 일꾼일 수 있다

-크게 박해해 주는 사람이 준비된 일꾼일 수 있다

-스테반이 죽고 잔멸이 되니 일꾼이 없었다

-살기(殺氣)로 숨쉬고 내뿜는 사울을 어떻게 사울아, 사울아하시면 부르실 수 있었겠나?

-해석이 잘 돼야 해결이 잘 되는 것이며 박해가 클수록 큰 일꾼이 될 줄 믿는다.

-회심은 내가 예수를 박해한 것을 아는 것이다.

-영적 소경에 대한 자각을 할 수 있으면 사명이 따라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은혜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3. 30. 10:57

[우리들교회 2020 329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8: 25~ 40/ 성령의 큰 권세)]

 

 

<사도행전 8:25~40>

25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Prologue>

 

온 라인 예배 6주 째다.

안 보이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헤어지려면 물리적으로도 떨어져있으라고 한다

그래서 정을 붙이지 못한 성도들은 떠내려 갈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 설교가 좋아도 하나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공동체가 없으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확실히 알게 하신다

그래도 전시상황이지만 단톡방에서 나눔을 하는 구조가 되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사도행전 8장에는 ‘great’()이란 수식어가 많이 들어간다

큰 박해’, ‘큰 기쁨’. ‘큰 능력에 이어 오늘은 큰 권세가 나오는데 개역한글에 나온다.

성령의 역사가 다이내믹(dynamic)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큰 권세는 어떤 권세인지 보겠다.

 

<말씀요약>

 

1)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는 권세다.

두 사도가 돈으로 성직매매 하는 simony, simonism을 경계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교만한 것이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들 중의 하나다.

돈으로 성령을 사려는 사람들은 말씀대로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이는 것을 볼수가 있다.

시몬이 빌립을 전심으로 쫓아다니며 믿음의 흉내를 내었지만 이 simonism이 교회를 말아먹는 악인 것이다

교회가 빛이 바래고 생명력을 잃는 것은 바로 이 simonism의 영향이다

교회는 직분 가진 자가 필요하고 직분을 감당하려면 돈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십자가의 구속을 경험하지 못하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사가 없는 사람이 돈으로 직분을 맡게 되면 본인도 교회도 망하는 것으로 자기 세상 잣대로 교회를 정치 경제를 아우르게 되니까 그렇다.

사마리아처럼 교회가 부흥하게 될 때 simonism이 판을 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아야 시몬의 돈을 거절할 수 있겠고 복음을 지키는 것이다

사마리아까지도 도망 와서 다 전도하고 시몬을 물리치고 부흥하고 있는데 또 주의 사자가 와서 일어나서 가라명령하신다

지금도 내려왔는데 더 내려 가라고 하는데 그것도 광야길이다

그 당시 가사는 폐허의 가사 길이었다

내려가는 길까지 내려가라 하신다

어쩔 수 없이 박해로 흩어졌고 이제는 핍박도 없는데 또 힘든 곳으로 가게 하신다

즉시 일어나서 가라했으니까 이러나 간 것이 중요하다

가니까 보이는 것이 있어서 결국 만난 사람이 이디오피아의 내시(eunuch)를 만나게 되는 것으로 이는 순종의 결과인 것이다

전승에 의하며 스바 여왕과 솔로몬 왕 사이에서 생긴 아들이 세운 나라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인과는 또 다른 혼혈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왜냐하면 정식 첫 번째 개종자는 베드로가 전도한 고넬료라고 칭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 내시를 반쯤은 유대인이니까 유대인으로 치더라

이방인, 유대인 축에도 못 끼지만 본인은 유대교인이기 때문에 절기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난 것이다

간다게(Candace)는 바로(Pharaoh)와 같은 여왕의 칭호로 그 당시 왕은 세속정치로 속을 썩이면 안되어 신성한 역할만 하고 모든 정치는 어머니가 맡았다.

그래서 내시가 여왕의 대신인 재정장관으로 모든 국고를 맡았다.

큰 권세를 가졌던 것이지만 장관이라 하지 않고 내시라고 소개한 것은 여러 가지를 함축시키는 말이다.

말씀을 지키고자 한 것을 보면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던 것으로 이 내시도 경건한 유대인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황폐한 광야 길을 가는데 미완료 과거로 계속하여 큰 소리로 성경을 읽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갈급함이 있었으면 그랬을까? 이것이 준비된 심령이다

저녁 기도회의 기도에 훗날 30, 40년 후에 신실하게 응답하여주실 것을 믿는다.

내시는 유대인의 피가 흘러도 큰 권세를 가졌고 돈도 가졌지만 자기가 고자가 돼서 내시가 됐는데, 원하는 걸 이루었지만 권세를 잡고 나서 보니까 허무해서 예루살렘으로 예배 드리러 갔는데 아무도 자기를 사람취급을 안 한다.

이디오피아에서는 자기가 남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에서는 자기가 무시를 당하니 얼마나 고독했겠는가?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손볼 자가 정말 하나님밖에 없다. 아직도 안 돌아오고 있는 그들이다

주의 사자가 성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29).

좀 더 구체적으로,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는 것은 밀착하라는 의미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완전히 맞을 짓 아니겠나?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가정교사로 성령을 주시는데, 예민한 인도를 받으면 준비된 심령을 만나게 하신다.

예민하지 않으니까 전도해서 실패할 사람들만 만나고 와가지고 무시 받고 집에 와서 기분이 나쁘다.

준비된 심령을 알아보는 통찰력을 갖게 되는 것이 예민한 인도함의 결론이다.

그래야 전도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남쪽으로 또 내려가라고 하신다.

가라, 가까이 나아가라와 같이 사소한  말을 잘 들으면 큰 권세를 갖게 된다.

사소한 게 큰 것으로 사소한 것부터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다.

말씀의 인도함으로 받는 것이 큰 권세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지 못하면 고집의 인도함을 받고 떠나야 할 때와 있어야 할 때를 분별치 못한다.

(적용 #1)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고 일어나 가야 하는 불편한 광야는 어디인가?

-돈이 있다면, 또 높은 자리에서라면 드러날까 두려운 약점은 무엇인가?

 

드러날 약점이 없다면 돈이 없고 낮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지 믿음 좋은 것은 아니다.

 

2)   어디에서든지 예수를 전할 수 있는 권세다.

 

30. 달려가서. 가까이 나아가란 명령에 즉각적, 적극적으로 순종한 것이다

성경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기억하기 좋은 방법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때문에 읽는 거지 몇 번을 읽었단 게 중요한 건 아니다.

깨닫느냐?’는 중요한 질문으로 내시가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빌립이 가지고 물은 것이지 내시를 무시해서 묻는 게 아니다.

이혼을 한다는 사람에게 큐티책을 주고 며칠 읽어보라고 하고 깨달아지세요?라고 묻는 것은 안 깨달아져서 이혼하겠단 거 아닌가

31. 내시는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고 빌립을 청한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두 가지 선물 주셨는데, 첫째는 성경, 둘째는 성경을 해석해주시는 교사라고 한다

인생의 최고의 선물은 성경과 교사로 더 이상 필요한 게 뭐가 있는가? 우리는 선물을 다 받았다.

지도해주는 이 없으니 갈급함과 목마름이 커서 수치와 자존심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청한 것만으로도 성령이 임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내시가 일었던 성경 구절은 구약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메시아 예언으로 십자가 죽음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는 본문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예수시대 사람들은 예수님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수치와 모욕이 당연히 자기 죄로 인한 것이라 여겼다.

대속의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었기에 십자가의 죽음이 내 백성의 허물로 인함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는 자기 죄로 죽었어라고 생각하고 공정한 재판 받지 못한 것도 그 사람이 죄가 많아서 그래라고 생각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로 결론이 안 나니까 도덕과 윤리로 읽고 깨닫지 못한다.

어디를 봐도 예수님 이야기로 읽어야 하는데 구속사적으로 읽어도 고난이 없으면 예수님이 사지로 가는 양과 같고, 생명이 땅에서 빼앗기고...이런 말이 다 듣기 싫은 십자가 얘기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옆에서 겪어도 전혀 모른다.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어도 고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내시의 경우도 풍요 속에서도 곤고함이 있어 깨달음을 배우기 위한 갈급함이 있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된 것을 빌립이 배우고 경험했는데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져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말해주고 빌립에게 임한 성령이 내시에게도 전달되니까 깨닫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심을 너무 잘 알고 있던 초대교회에서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전했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의 모든 인생은 거기서부터 예수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 거기서부터 예수를 가르치며 주님을 전해야 한다.

사울도 그러했다. 자기가 잔멸하던 사람을 어떻게 그리스도라 전할 수 있었겠는가?

사울이 주님을 만난 후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한다

창세기, 계시록, 시편을 봐도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전해야 하고, 그게 우리가 하는 큐티다.

그날 본문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전하는 것이며 어떤 본문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남편, 학벌, 성공이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 같으니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됐다.

내 간증, 네 간증, 성경 어디를 보아도, 드라마, 뉴스, 코로나에서도 그 어디에서도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명이다.

천하에 구원받을 이름은 예수 외에 없다.

복음의 큰 권세는 어디서부터든 예수가 그리스도다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못 알아듣겠지만 우리는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전해야 한다.

 

(적용#2)

-어디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전하겠는가?

 

3)   사라지는 권세다.

사라지는 권세가 최고의 권세다

모든 것에 자유함을 갖게 되는 것 (36). 모든 것을 가지고도 고독했던 내시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됐다.

거기서부터 예수로 연결이 되면 해석이 되어서 해결이 되는 것이다.

빌립 집사에게 세례 받는 것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빌립이 집사인지 사도인지 상관이 없다. 본질적인 사람이니까.

복음이 북부 아프리카까지 전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37 (없음). 이것도 묵상해야 한다.

킹제임스(KJV) 버전에는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다구절이 있다. 세례문답 같다. (And Philip said, If thou believest with all thine heart, thou mayest. And he answered and said,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세례를 받는데 조건이 꼭 달린 것처럼 우려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으면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인데 이것이 형식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형식이 필요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성령이 내시 위에 내리셨으며 천사가 빌립을 이끌어 갔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 늘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있는 것처럼 세례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빌립을 훈련시키셔서 내시에게 주기 하시므로 리더로서 성령세례와 진정한 복음을 경험하게 하셨다.

경험을 통해 복음의 통일성을 갖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빌립이 세례를 베푼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평신도).

안 해야 되는 건 절대로 안 해야 한다. 사도부터 초대교회에서 시작된 연결된 통일성은 매우 중요하다.

빌립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사소한 게 없다. ‘일어나 가서 보라’, ‘수레에 올라타라를 사소하게 여기니까, 문자적으로 하라는 건 아니다.

내시(eunuch) 하나 구원하려고 성령님의 주의 사자로 주의 영으로 바쁘게 등장하셨다.

빌립이 하는 일이 아니다.

주도적이고 세밀한 간섭으로 긴박하게 성령이 일하시어 이끌어 갔다에 뜻이 여러 개 나오는데파괴의 위험에서 구함이란 뜻이 있다.

빌립이 영광 받을까 봐 파괴될 위험에서 구하셨구나성령님이 하신 일인데 빌립이 잘난 척 할까 봐그럴 확률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데려가셨다.

내시는 기쁘게 자기 길을 갔다. 내시는 빌립이 전해준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빌립이 없어지는 슬픔을 기쁨이 압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으면 나의 슬픔을 압도할 것으로 믿는다.

큰 권세는 복음의 권세인데,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의 모델이내시.

구스가 땅끝으로 선교의 지경을 넓히고자 성령님 열심히 일하셨다.

아소도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지역으로 빌립이 미리 밑밥을 깔아놓은 것이다

40. 사마리아를 복음화 시키고 베드로에게 영광을 다 돌리고 사라졌다.

이방인 개종자도 베드로에게 영광을 돌리고 고넬료로 자리매김한다

빌립이 너무 멋있지 않나?

빌립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 당시 예수님을 보았다는 12사도는 권세가 하늘을 찌르지 않겠나? 바울은 늘예수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은…’이라고 한다

빌립은 예수님을 본 베드로와 자기는 교회에서 청소하고 일하던 사람이라 하늘같이 쳐다봐지니까 자기의 의식 때문에 이런 진정한 큰 권세를 가진 것 같다.

자리가 겸손케 하는 것으로 주님만이 상급인 인생은 누군가는 보여야 하기 때문에 주님 권세 내 권세가 되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빌립이야말로 가장 큰 권세를 가지지 않았을까?

예수님의 권세가 사람에게 덧입혀지면 예수님 전파 공로자가 되는 것이다

스데반과 빌립은 사도행전의 스타다

진짜 스타가 되면 안되니까 정말 스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사라지게 하셨다.

(적용 #3)

-내가 한 일의 공로를 상사에게 넘길 수 있을까?

-내 자리가 낮아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을 큰 권세로 생각하는가?

-너무나 종이라고 생각하나?

-빌립이 사모되는가? 내시가 사모되는가?

 

<Epilogue>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교만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들 중의 하나다.

돈으로 성령을 사려는 사람들은 말씀대로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이는 것을 볼수가 있다.

시몬이 빌립을 전심으로 쫓아다니며 믿음의 흉내를 내었지만 이 simonism이 교회를 말아먹는 악인 것이다

교회가 빛이 바래고 생명력을 잃는 것은 바로 이 simonism의 영향이다

교회는 직분 가진 자가 필요하고 직분을 감당하려면 돈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십자가의 구속을 경험하지 못하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사가 없는 사람이 돈으로 직분을 맡게 되면 본인도 교회도 망하는 것으로 자기 세상 잣대로 교회를 정치 경제를 아우르게 되니까 그렇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아야 시몬의 돈을 거절할 수 있겠고 복음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가정교사로 성령을 주시는데, 예민한 인도를 받으면 준비된 심령을 만나게 하신다.

준비된 심령을 알아보는 통찰력을 갖게 되는 것이 예민한 인도함의 결론이다.

 가라, 가까이 나아가라와 같이 이사소한 말을 잘 들으면 큰 권세를 갖게 된다.

사소한 게 큰 것으로 사소한 것부터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지 못하면 고집의 인도함을 받고 떠나야 할 때와 있어야 할 때를 분별치 못한다.

드러날 약점이 없다면 돈이 없고 낮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지 믿음 좋은 것은 아니다.

인생의 최고의 선물은 성경과 교사로 더 이상 필요한 게 뭐가 있는가? 우리는 선물을 다 받았다.

지도해주는 이 없으니 갈급함과 목마름이 커서 수치와 자존심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로 결론이 안 나니까 도덕과 윤리로 읽고 깨닫지 못한다.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어도 고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내시의 경우도 풍요 속에서도 곤고함이 있어 깨달음을 배우기 위한 갈급함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의 모든 인생은 거기서부터 예수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날 본문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전하는 것이며 어떤 본문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남편, 학벌, 성공이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 같으니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됐다.

내 간증, 네 간증, 성경 어디를 보아도, 드라마, 뉴스, 코로나에서도 그 어디에서도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명이다.

천하에 구원받을 이름은 예수 외에 없다.

복음의 큰 권세는 어디서부터든 예수가 그리스도다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복음의 통일성을 갖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내시는 기쁘게 자기 길을 갔다. 내시는 빌립이 전해준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빌립이 없어지는 슬픔을 기쁨이 압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으면 그 기쁨이 나의 슬픔을 압도할 것으로 믿는다.

자리가 겸손케 하는 것으로 주님만이 상급인 인생은 누군가는 보여야 하기 때문에 주님 권세 내 권세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권세가 사람에게 덧입혀지면 예수님 전파 공로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는 것이 큰 권세다

말씀의 인도함으로 받는 것이 큰 권세다

사라지는 권세가 최고의 권세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3. 28. 10:41

[우리들교회 2020 322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8:9~ 24/ 성령의 큰 능력)]

 

 

<사도행전 8:9~24>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Prologue>

 

경제 대공황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모두 힘을 내십시다.  오늘로써 다섯 번 째 온라인 (주일)예배다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해서 이 위기를 지혜롭게 통과해 가십시다

공동체의 위력은 성령의 가장 큰 능력이다.

유대인의 교회를 잔멸하는 큰 박해는 큰 기쁨으로 이겨냈는데 사마리아에서는 사탄의 역사가 돈의 유혹으로 온다. 무엇이 더 힘들까?

박해가 클 때는 큰 기쁨을 주셨는데 이제는 유혹을 물리치라고 큰 능력을 주신다

큰 박해, 큰 기쁨에 이어서 성령의 큰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말씀요약>

 

1) 가짜 능력도 있다.

 

사마리아 성 같은 집단일수록 마술 하는(practicing sorcery) 사람이 판을 치게 돼있는데 마술사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당시 애굽의 철학과 마술을 배운 영지주의 우두머리로 최고의 엘리트, 큰 자로 여겨졌다. 마술은 의술이었다.

 

복음에 대한 반응과 마술에 대한 반응이 똑같다.

똑같이 주목해서 빠진다. 10, 11절에 같은 단어 따르다를 쓰는 의미는 놀랄 일이 계속 있었던 것으로 이 세상도 가짜 행복에 속아서 오랫동안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큰 자는 늘 권세를 가지게 된다.

시몬의 경우는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로 봐서 마술을 넘어선 종교적 경배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백신을 만들면 그를 구세주로 등극시키는 데에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유대인은 그런 구세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예수님은 구세주로는 실격이라는, 말할 수 없는 기복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안 믿으면 바로도 재앙이 올 때 기껏 부르는 게 마술사였다.

마술사들은 오직 바로가 안 망한다는 길한 예언만 해주는 점쟁이에 불과한데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면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하나님인지 마술사인지 분별하지 못하니 가짜에 집착하고 구걸한다.

우리의 당면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따르지 못하겠는가?

당면문제의 해결사를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는 그 가짜 능력을 보고 안 놀라야 되는데 내 목숨이 중요하니까 끊임없이 나타나는 가짜에 놀란다.

학벌, 재물, 권세에 놀란다. 그 많은 것들을 통칭해서너 이거 안 하면 못 가, 죽어라는 협박에도 늘 놀란다.

예수님의 진짜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짜를 따른다.

가짜는자기 목숨만 생각하는 능력이고, 진짜는남을 생각하는 능력인데 이것이성령의 큰 능력이다.

공동체 의견은 구원 때문에 물을 때가 많다.

급한 일, 중요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을 먼저 하면 반드시 구원의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는 것은 우리가 가난해야 간절하니까 구원을 부르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용#1)

-어떤 가짜를 오랫동안 목숨 걸고 따르는가?

-야동인가?

-야동을 지웠다 설치했다 반복 하나?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기도해도 10가지 재앙이 와도 언제나 어디서나 오직 기도응답인 것이다.

환경이 변하면 기도하는 것이 안 된다.

시몬은 너무 놀라서 따랐지만 그 사람을 신뢰하진 않았다.

그런데 빌립의 설교를 듣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의 능력은 삶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고, 마술과는 다르다는 것을 빌립이 알려주었다.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 빌립은 초라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큰 기쁨으로 전도를 하니 큰 능력이 나왔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전도했다.

이중에 생각도 못한 시몬이 빌립의 이 얘기를 듣고 믿었다는 것이다

믿는 우리에게는 기도 응답이다(코로나).

기도하고 말씀 받았기 때문에 안돼도 기도응답이다.

코로나를 통해서 우리는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땅에서 잘되고 안 되고가 상관이 없는 것은 하나님 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강을 보여야 하는 책임이 있다. 큰 기쁨의 얼굴을 보여야 한다

내 환경이 슬프고 창피한 게 아니라 내 환경이 예수의 이름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을 죄에서 꺼내줄 환경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큰 능력이니까, 그 이름은죄에서 구원할 자’, ‘I am who I am.’(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고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만 영원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다

항상 내 죄를 보아야 한다.

거울로 봐서는 안 보이는 게 현미경으로는 보이지만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봐도 안 보인다.

하나님의 렌즈로 보게 되면 주홍같이 붉은 죄의 집합소가 바로 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으로서도 훈련시키시는데 택자니까 고통은 지나간다.

그것을 보게 해주시는 주님만 영원하시다.

코로나는 우리를 위해서 훈련 도구로 쓰여지니까 오래갈 것 같아도 잠깐이다.

 

(적용 #2)

-예수그리스도 이름만이 성령의 큰 능력인데 지나가버린 고통을 다 껴안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느라 고통을 껴안고 있는가? 영원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껴안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껴안고 있나?

 

날마다 일어나면 내 죄보고 큐티하고 기도하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껴안고 있는 것으로 하루하루 이렇게 살면 고통은 지나간다.

 

3) 성령 세례를 질서대로 받는 것이다.

질서가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가장 큰 능력은 질서다.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마리아가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도 말씀을 받는 것이다.

말씀을 받지 않고는 개종을 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믿음, 순종, 회개라는 성령의 선물이 다 올라오면 총칭이말씀을 받는 것이다.

유대교는 무늬만 유대인이라 이미 성령이 떠난 것 같아 보이는데 그래서 말씀을 받아내지 못한다.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그들의 것 아닌가?

그런데 사마리아는 유대인이 거부한 스데반의 구속사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다.

성령은 세례 받을 때 동시에 오는 적도 많으며 그 전에 올 수도 있다.

세례 받고 믿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원론이 아니다.

성령을 유보했다고 볼 수 있는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모세 5경이 각각 따로 있다. 성경을 가지고 따로 쓰니까 완전히 이단인 것이다

골이 너무 깊으니 화해를 시킬 자가 없다.

하나님은 서로의 신앙을 인정하게 하고자 베드로가 와서 안수하여서 세례를 받게 하신 것이다.

사마리아사람들이 유대인을 저주하면서도 유대 사대주의가 있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도들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러 온 것으로 빌립도 질서를 지켰고, 사도들도 서로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 포석을 깔았다.

사마리아의 연약함을 알고 사도 베드로가 가야만! 예루살렘 교회에서 인정했구나라고 해야 들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살리고자 해야지 내가 대장이 되고자 하면 안 된다.

주님의 교회는 하나이니까 시작부터 질서가 없으면 안 된다.

곳곳에 가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면 한 성령이 안 된다.

남녀평등을 부르짖으려면 정말 자기 성(남성, 여성)에 충실해야 한다.

진짜 똑똑한 아내는 끝까지 남편을 섬기는 아내다.

드리어 나중에 보면 돈이고 가족이고 남는 장사를 하게 되니 구원이 된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엄마를 존경한다.

수준이 낮을수록 직함에 혹한다

능력위주로 가면 그곳이 지옥이다

질서대로 성령 세례를 받는 게 최고의 능력이다.

말씀을 받는 것이 잘사는 최고의 비결 중의 비결이다.

17절 이야기---

볼 사람, 안 볼 사람에 따라서 적용을 해야 하는 것이 때에 따라 하는 적용이다.

큐티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성경을 읽게끔 동기부여가 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고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나는(목사님) 말씀에 sign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한다. 13년의 큐티모임을 통해 인내를 한 것은 말씀 묵상인데 잘난 것도 없어서 확신이 안 들었던 것이다

적용을 하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검증해준 것처럼 신학을 하고 대표적인 목사님들이 큐티 선교회 이사님이 되어주신 것이 딱 이 말이다.

핀트를 잘 맞추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그럼 나는 뭘 해야 하나? 겸손한 입장에서 질서를 잘 지키고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때가 되면 나를 올려주면 올려주는 것이지, 언제나 끝까지 낮은 자리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성령의 가장 큰 능력을 갖게 되는 최고의 비결이다.

말씀을 잘 받고 자기자리에 충성 하게 되면 결국 성령의 열매가 큰 능력이 되어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희락-화평-인내(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인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하나씩 맺어지면서 큰 능력으로 나타나서 신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신뢰가 중요하다.

 

(적용 #3)

-그러므로 성령 세례를 질서대로 받기 위해서는 내 몸에 밴 유대 사대주의는 무엇인가? (학벌, 가문, 재산...).

다들 너무 대단하게 여기니까 멸시하고 경멸하는 것인데 입만 열면 욕하는 것도 다 사대주의다.

-그 사대주의는 미국인가 중국인가?

미국도 공과가 있다

사대주의적으로 좋아하면 안 된다.

복음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복음이 들어오면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4) 성직 매매에 쓰면 안 된다.

큐티를 하면서 잘 봐야 한다.

시몬이 무엇을 보았나? 빌립이 행하는 기적과 큰 능력을 보고,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은 걸로 문자적으로 보았다.

선악과 보고 하나님 되고자 했던 창세기 말씀처럼, 그 능력을 팔라고 돈을 바쳤는데 그것이 성직 매매로 ‘Simony’란 단어가 생겨났다.

성직매매는 돈 받고 신유, 방언을 팔라고 하는 것인데 직분은 돈을 주고 사고 팔 수 없는 것이다

영혼구원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모이나?’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성령은 경건의 재료다

경건이 이익의 재료가 아닌데 신유, 방언 능력을 돈 줄 테니까 팔라는 것으로 목욕탕 세미나는 방법론이 아니다.

이런 마음으로 오면 볼 것을 못 보고 그냥 프로그램, 이벤트만 보이는 것이다

빌립처럼 봐야 하는데 시몬처럼 보면 똑같이 와도 안 보인다.

영적인 임팩트가 없는 사람은 와도 안 보인다. 성령의 열매는 못 맺을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없는 신천지가 지금 절제를 못한다. 자가격리를 안하고 전도하는 것밖에 모르고 사람 채우는 것밖에 몰라서 화평도 깨고 이기적이고 전부 돌아다닌다. 말을 정말 안 듣는 부류가 신천지

하나님의 선물은 문자 그대로선물이며 값없이 주는 선물이다

돈 줄 테니 팔아라하는 것이 얼마나 성령을 비인격적으로 비하시키는 것인가?

우리가 얼마나 이런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지 모르는데 잘되는 것에만 관심 폭발한다

경건은 이익의 재료가 아닌데 시몬의 모습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야망을 책망 했을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인 저주도 했다.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처럼 경계를 한 것으로 시몬의 악을 본 것이다

돈다발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서 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악을 봐야 하는데 못 보기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돈다발을 가지고 와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누가 보겠는가?

시몬도 돈 내고 악독이 가득한 소리를 듣는다

시몬은 회개도 없고 형벌도 없다.

베드로에게서 책망 듣고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다.

베드로에게 그 저주의 일이 나한테 임하지 않게 해달라고 답하는 시몬이다

코로나 가운데 전 세계는 다 망해도 되니까 나만 안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달라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진짜 악한 것이다.

다른 사람 살리는 몽둥이 역할만 하고 가는 것이 시몬인데 진짜 불쌍한 사람인 것이다.

지금까지도 돈과 연결되는 악의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된다.

문제가 왔을 때 회개가 앞서야 하는데 피해가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시몬과 같은 것이다

시몬이 아 땅에서 형벌을 안받은 것이 저주이며 이 땅에서 형벌을 받는 것이 정말 축복이다.

나도 모르는 가운데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유혹과 이타적인 주님을 믿게 하기 위한 도구로서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은 사명을 빙자하기 때문에 죄의식도 없이 나도 남도 다 속이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최고가 되지 못하고 알아주지 않으니까 너무 슬픈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니까 맞는 것 같지 않은가?

복음전파를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내가 과시가 돼야 하지 않나?

 

(적용 #4)

-내 열심은 사명인가? 과시인가?

 

<Epilogue>

예수님의 진짜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짜를 따른다.

가짜는자기 목숨만 생각하는 능력이고, 진짜는남을 생각하는 능력인데 이것이성령의 큰 능력이다.

급한 일, 중요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을 먼저 하면 반드시 구원의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는 것은 우리가 가난해야 간절하니까 구원을 부르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잘되고 안 되고가 상관이 없는 것은 하나님 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강을 보여야 하는 책임이 있다. 큰 기쁨의 얼굴을 보여야 한다

내 환경이 슬프고 창피한 게 아니라 내 환경이 예수의 이름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을 죄에서 꺼내줄 환경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큰 능력이니까, 그 이름은죄에서 구원할 자’, ‘I am who I am.’(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고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만 영원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다

항상 내 죄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렌즈로 보게 되면 주홍같이 붉은 죄의 집합소가 바로 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으로서도 훈련시키시는데 택자니까 고통은 지나간다.

코로나는 우리를 위해서 훈련 도구로 쓰여지니까 오래갈 것 같아도 잠깐이다.

날마다 일어나면 내 죄보고 큐티하고 기도하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껴안고 있는 것으로 하루하루 이렇게 살면 고통은 지나간다.

질서가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가장 큰 능력은 질서다.

 믿음, 순종, 회개라는 성령의 선물이 다 올라오면 총칭이말씀을 받는 것이다.

주님의 교회는 하나이니까 시작부터 질서가 없으면 안 된다.

곳곳에 가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면 한 성령이 안 된다.

수준이 낮을수록 직함에 혹한다

능력위주로 가면 그곳이 지옥이다

질서대로 성령 세례를 받는 게 최고의 능력이다.

말씀을 받는 것이 잘사는 최고의 비결 중의 비결이다.

성경을 읽게끔 동기부여가 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고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때가 되면 나를 올려주면 올려주는 것이지, 언제나 끝까지 낮은 자리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성령의 가장 큰 능력을 갖게 되는 최고의 비결이다.

말씀을 잘 받고 자기자리에 충성 하게 되면 결국 성령의 열매가 큰 능력이 되어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희락-화평-인내(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인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하나씩 맺어지면서 큰 능력으로 나타나서 신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신뢰가 중요하다.

다들 너무 대단하게 여기니까 멸시하고 경멸하는 것인데 입만 열면 욕하는 것도 다 사대주의다.

성령은 경건의 재료다

하나님의 선물은 문자 그대로선물이며 값없이 주는 선물이다

경건은 이익의 재료가 아닌데 시몬의 모습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돈다발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서 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가운데 전 세계는 다 망해도 되니까 나만 안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달라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진짜 악한 것이다.

문제가 왔을 때 회개가 앞서야 하는데 피해가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시몬과 같은 것이다

시몬이 아 땅에서 형벌을 안받은 것이 저주이며 이 땅에서 형벌을 받는 것이 정말 축복이다.

나도 모르는 가운데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유혹과 이타적인 주님을 믿게 하기 위한 도구로서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은 사명을 빙자하기 때문에 죄의식도 없이 나도 남도 다 속이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최고가 되지 못하고 알아주지 않으니까 너무 슬픈 것이다

내 열심 후 왜 슬픈가? 하나님이 다 아실 텐데 말이다

가장 큰 능력은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받는 것이다

코로나 가운데서도 말씀을 받은 자와 안 받은 자는 다르다.

요동함이 없는 것으로 분별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성령의 큰 기쁨으로.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과 기도로 이 위기를 지혜롭게 통과하자.

고난 때문에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 두렵고 떨린다는 이야기를 목장에서 나누며 가라.

진짜 힘들어질 때 말할 수 없는 위력이 나타날 줄을 믿는다.

마음 속에 평강이 있어야 하는데 성령의 능력이 소통되도록 말씀을 받아야 한다

공동체의 위력은 성령의 큰 능력이다

돈을 성령의 큰 능력으로 이겨야 한다

성령의 큰 능력이 아니면 고통을 통과할 수 없다

예수 이름을 껴안는 것이 답이다

지나가는 고통을 껴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살고 누리자

 

“Now this is not the end. It is not even the beginning of the end. But it is, perhaps, the end of the beginning.” (Winston Churchill)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3. 17. 18:47

[우리들교회 2020 315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84절로 8절 성령의 큰 기쁨)]

 

 

<사도행전 8:4~8>

4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Prologue>

코로나 때문에 기뻐할 일이 없는 요즘이다.

사도행전도 스데반이 돌을 맞아 처참하게 죽었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오늘 말씀에 큰 기쁨을 주신다고 한다

우리가 온 라인예배를 들인지도 4주, 즉 한 달이 되어간다

여러분이 너무 보고 싶다. 여러분도 보고 싶으시죠?

6.25때도 신, 불신 이건 간에 주일에 갑자가 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 때부터 서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도적같이 오는 이런 때를 대비해서 성도들은 예비를 해야겠다

성령의 흩어짐이라면 오늘 말씀처럼 어디를 가든지 튼 기쁨이 있다고 하신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성령의 큰 기쁨을 꼭 가지기를 바라면서 오늘 성령의 큰 기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성령의 큰 기쁨은,

 

1)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숨은 게 아니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씨앗처럼 널리 퍼져서 흩어진 곳에서 왕성하게 전파하여 결실을 맺는다는 뜻이다(원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왕성하게 선포하고 다녔다는 것으로 큰 기쁨이 있었다.

사단은 교회가 망했고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인데 놀랍게도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왕성하게 전해서 큰 기쁨이 있었다.

이 기쁨은 불신자들이 알 수 없는 기쁨인데 이 보다 더 큰 기쁨은 이 땅에 없다.

이 땅의 기쁨은 복음 전하는 것으로 이 복음을 주시기 때문에 흩어져도 기쁠 수 있으니 성도들은 이 기쁨을 보여야 한다.

초대기독교인들도 문자적으로도 곳곳에 흩어졌던(바벨론에서부터/바벨론 유수) 디아스포라들(Diasporas)이 오순절에 와서 성령 받고 떠나지 않고 주님께 나오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다.

성령 받고 너무 기뻐하니까 유대인들이 시기했다.

스데반도 유대인인데, 그 때부터 표면적/이념적 유대인이 나뉘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경계가 아리송해졌다.

성령을 받는 것이 가장 안 되는 부류가 유대인인데 그들은 성령 받은 기독교인들을 이를 갈며 죽이려고 하니까...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그들도 성령만 받으면 되는데...(대제사장, 사두개파) 도저히 성령이 안 들어가는 유대인들은 영육간에 최고인 유대인들인지라 그들의 선민사상은 따라갈 자가 없다.

결국은 지금까지도 안 돌아오고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인재들이 Jewish. 2천년이 지나도 안 돌아온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고맙게도 박해를 해준 것이 얼마나 신의 한 수인지 모른다.

박해를 해줬기 때문에 억지로 떠날 수 있었던 것으로 말씀의 인도함으로 떠난 것이다.

큰 박해는 큰 기쁨을 허락하신다

우리들교회만 해도 휘문, 판교 성전 두 개나 있는데 휘문은 우리 공간이 아니니 떠나라고 하면 바로 떠날 수 있지만 판교는 스스로 떠날 수 없는 곳인데 코로나로 인해 잠시 떠나 있다.

쫓겨날 때까지는 있어야 될 때가 많다.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기 때문에 내 삶의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있으면 떠날 때를 알려 주신다.

말씀의 인도함 따라 떠나면 큰 기쁨을 주신다(8).

최고의 선물이다. 돈이 있으면 그 기쁨이 영원하겠는가?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택자의 고통은 지나고 보니 잠시간의 고통일 뿐이라는 것으로 지나가버린다. 어떻게 이렇게 큰 기쁨을 주셨을까?

고통(산고)을 통해 생명이 나온다

이 흩어짐은 만세 전부터 세팅된 하나님의 계획이고 절묘함이다.

큐티 간증이 미국이나 중국에서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박해로 인해 흩어지지 않았다면 이후의 큰 기근이 왔을 때 예루살렘 교회를 돕지 못했을 것이다.

택자는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찬양)’가 가장 잘 사는 비결이다.

그러면 지금 빌립이 개척하러 도우러 간 게 아니라 중요한 건 빌립이 도망자라는 것으로 그러니 근본부터 겸손할 수밖에 없다.

복음을 전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것인데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연약을 들어 쓰신다.

늘 교회에서 전하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초대교회가 워낙 성령의 조직으로 아름답게 양육이 잘돼있어서 자발적이지는 않았지만 흩어져보니 금세 양육한 결과가 나타났다.

가장 영적인 실력은 주님을 만난 것이다.  Born again.

초대교회 자체가 유대인들한테 시기를 당하고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유대교회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가문이 짱짱하고 그런데 저 기독교는 어부들이 판치고 있으니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제 정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곳이 초대교회다.

신앙고백이 확실한 성도들이 많았을 것이 확실하다.

신천지가 문자적으로 적용할까 봐 염려된다. 영적 실력이 있는 성도들이 우리들교회에도 많다고 믿는다.

환경이 인도했으니까 한걸음 한걸음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두 가지 길이 있다면 편한 걸 택하고 싶다.

어떤 직분이 주어지는 것에 자신 없음이 내 안에 깔려있었다. BUT, 사명이 있기에 하루 일상생활 치열하게 큐티하고 복음을 전하며 전도했다. 30년 가깝게 큐티 홍보 대사를 했다. 묵상을 위해서 전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아무도 안 알아주었어도 하나님께서 아셔서 우리들교회를 부흥시켜 주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기억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꼭 알 맞는 세팅이다. 무엇이든지 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었지만 하루의 일상생활은 말씀과 전도로 보냈다.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어떤 경우도 사이비 종교다 = 신천지는 이단.

흩어진 환경에 가면 양육 받은 게 다 생각이 날 것이다

평소에 항상 뭘 특별하게 하지 말고, 평소대로, 평소에 보고 배운 대로 해야 한다.

이벤트가 아니라 항상 평소 실력대로, 이혼하지 말라, 죽지 말고 살아라, 붙어 있어라 외치는 것들이 지나고 보니 최고의 복음이었다.

흩어진 그들에게 사마리아를 맡기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흩어진 환경에서 순종한 빌립은 보고 배운대로 전도한다

하나님이 하셨다가 주제로 힘든 사람들과 복음으로 친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종처럼 살아서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시어머니와 도우미 2, 무학자들). 사마리아와 같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날마다 새롭게 처음처럼 들었고 그렇게 들어야 한다.

환경으로 훈련 시키신 하나님. 못나가도 사명이 있어 나의 상황에서 기쁨을 복음을 전했다.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는데 빌립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 - 본문.

큐티인 한 권씩 주는 게 최고의 복음인데 단순히 큐티책이 아니라 예수 믿게 하는 책이다.

 

(적용질문 #1)

-여러분은 돈, 건강, 자녀, 배우자 등의 흩어짐의 사건이 있다 해도 그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는 큰 기쁨이 있나?

-청년은 하나 더사랑등의 흩어짐의 사건이 있다 해도 큰 기쁨이 있나?

 

2) 사마리아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기쁨이다.

 

유대인들은 항상 자기네가 주인공이다. 말이 안 들린다.

사마리아가 내려가는 곳이란 것은 그만큼 영적으로 힘든 곳임을 의미한다.

이방인보다도 더 비천하게 부르는 이름이 사마리아가 되었다.

사마리아인은 멸시와 천시의 대상으로 이스라엘공동체에서 소외되었다

이방인은 혈족이 단순한데 사마리아는 섞였다는 것으로 그들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인데 유대인들은 율법적으로(like 신천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으로 여기면서 접촉을 꺼려했다.

사마리아인들은 강도 당한 자를 도왔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저주했다.

똑같이 아브라함 후손인데...화해가 길이 없어 보였다.

지금도 하나님과 인류가 화평케 되는 수많은 방법을 논하지만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과 복음 외에는 길이 없다.

바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스데반과 빌립이 스타였으며 헬라파 유대인인 빌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으로 박해가 오니까 흩어져서 누구도 안 간 사마리아와 이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하게 된 것이다

핍박이 와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고 사는 것이 나의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비결인 것이다.

지금 칭찬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칭찬을 받을 수가 없다(이혼, 직장 등).

빌립은 어디서나 칭찬을 받는다. 예수님도 사마리아에 전하지 못했는데 엄청난 일을 한 빌립이다.

사마리아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원수였다. 집안끼리도 원수로 지내는 데가 많다. 복음도 못 전한다.

하나님은 평신도 집사인 빌립을 보내셨다.

사마리아 성은 예수님이 씨를 뿌리고 열매를 빌립이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빌립이 전한 내용은 그리스도인데 초대교회에서 전파하는 복음의 내용은 예수께서 핍박 받고 십자가 돌아가셔서 부활하신 구원자 메시아 되신 그리스도이심을 잘 보여준다.

십자가의 복음을 제대로 전한 것으로 사마리아 인들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며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아다란 것을 전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예수 그리스도로서 모든 필요를 주님께 아뢸 수가 있다.

예수가 구세주기 때문에 성냥불도 하나만 타면 꺼지지만 천 개 이천 개가 붙어서 타면 엄청나다.

주님께 기도합시다. 모든 걸 아뢰십시다.

아무도 차별 없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주님이시다

내가 예수를 믿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고백이다.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확실하면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고백하면 주님은 나의 형편에 맞게 응답하신다.

흩어졌을지라도 큰 기쁨을 주시며 환경 주심에 토를 달지 않게 되는 것이다

 

6...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말도 듣고 행함의 표적도 보았다.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성령 충만 지혜 칭찬은 여기서도 통했는데 빌립이 사도도 아니고 집사인 것도 사마리아가 알게 되었고 뭔가 낮고 천한 자 아픔이 있어서 사마리아인들과 한 마음이 되어 전도할 수 있었다.

무리가 빌립의 말을따르더라는 사라미아 사람들의 이목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믿음의 길로 인도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보기엔 빌립과 이만희가 똑같아 보이는데 이단엔 무서운 영이 있다.

이단에 속한 자는 한 두 번 훈계한 후 멀리해야 한다. 가보고 틀리면 나온다고 하는 건 교만한 것이다.

두 세 번 더 가면 다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한 번 빠지면 지옥을 간다 해도 못나오게 되는 게 이단이다. 지옥을 가도 다 같이 한다는 것이라서 절대 가면 안 된다. 이단을 전도하려고 해선 안 된다.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불신자 전도 안 한다. 예수 믿는 자들을 추수해가기에 추수 꾼이라고 부른다

(디도서/Titus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Warn a divisive person once, and then warn him a second time. After that, have nothing to do with him.)

(적용질문#2)

-우리가 복음 전하는 말씀이예수는 그리스도인가?

-예수는 죄에서 구원할 자, 구세주.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를 찾나?, 세상의 구세주만 찾나?

-신천지를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은 백분율로 볼 때 몇 % 되는가?

 

3)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기쁨이다.

 

사역은 귀신들이 계속 나가게 하는 역사다

예루살렘과 똑같이 사마리아도 부흥된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확실하면 믿음 충만한 것이다

예수는 사단이 아니라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셨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임했다는 것이며 성령이 임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은 모두에게 차별이 없으며 모든 시공간에 주님이 계시다.

말씀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인데 스데반은 말씀만 전하고 순교했는데도 병 고침의역사로 이적을 베푼 빌립보다 유명한 것이다

스데반의 설교의 기적이 최고인 것이다

주님이 빌립 속에서 역사하실 때만 빌립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빌립의 능력이 아니다.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성령의 흩어짐으로 다 떠났는데 그곳에 가자마자 큰 기쁨(하나님을 향해 쓰는 기쁨이란 단어가 Kara)이 있는 것이다

성도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발생하는 외적 현상이 기쁨으로 나타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기쁨은 동의어다. 구원을 빼놓고 기쁨을 논할 수가 없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Good News!

 

(적용 질문 #3)

-인생에 가장 기쁜 소식은 언제였는가?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가장 힘든 문제가 해결될 때 가장 기쁘지 않겠는가?

그럼 힘든 문제도 계속 달라질 것이다.

가장 힘든 문제는 아이, 자녀, 돈이 아니라자기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이건 약도 없다.

죄인은 나를 보는 눈도 남을 보는 눈도 없어 당연히 하나님도 못 본다.

무엇이 죄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죄는 과녁에서 벗어난 것을 지칭한다.

의로움이 하늘을 찔러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괴물인가를 보지를 못한다.

복음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교회를 잔멸하는 기쁨이 무슨 기쁨인가?

하나님과 친해야 신앙생활을 잘한다. 여기에서 직분은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친하면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기쁨이 온다

날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세주가 되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창조주와 나와의 관계성립이 Good News(복음)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남편 되어주시니까 모든 걱정이 날아가는 것이다

신앙은 관계를 떠나서는 안 된다. 인격적인 관계를 무시할 때 영육의 관계가 실패한다.

성령의 기쁨이 없으면 관계가 안 되고 관계가 무시된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면 은혜이자 선물 중의 선물이다.

죄를 모르면 알 수 없고 구세주의 존재를 모른다

빌립의 복음 전파가 이러한 큰 기쁨을 낳은 것이다.

Good News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되고 영생을 접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복음이 Bad News가 아니라 Good News가 되니까 자아의 흩어짐이 성령의 흩어짐으로 공감하게 된다

진정한 기쁨이 널리 미치도록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된다.

이렇게 흩어져서 가게 하셨다. 내 열심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밖에 없다.

내가 겸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마리아인들을 전도한 거니까 사마리아인들을 연구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인데 제사장도 없고 성전도 없고 버린 자식 취급 받는 사마리아인을 체휼해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큰 기쁨이라 차별이 없다는 것과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이며 때가 될 때까지는 이게 기쁨의 소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예수님도 사마리아를 사랑하신다.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예루살렘 가려고 했는데 사마리아인들이 못 알아보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예수께서 길을 닦아 놓아 빌립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당한 게 많으면 하나님께서 쓰시는데 목회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인이고 사마리아인이면서 유대인으로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무시를 당한 것이다.

아픔과 열등감, 귀신의 집착, 중풍, 귀신, 아픔 등 처절하게 낮아져보지 않으면 절대로 그 입장을 알 수 없다.

사마리아인이 체휼이 될 만큼 철저하게 낮추셨다. 되었나 하면 낮추시고 낮추셨다.

사단의 세력(귀신)은 내가 약할 때 열등감이 해결되지 않으므로 가장 많이 역사해서 들어온다.

 

(적용 질문 #4)

-여러분은 귀신의 집착, 앉은뱅이의 구걸, 중풍의 무기력 중 무엇에 귀신 들렸나?

-요즘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Epilogue>

성령의 큰 기쁨은,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다

흩어져 간 땅인 사마리아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기쁨이다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기쁨이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숨은 게 아니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씨앗처럼 널리 퍼져서 흩어진 곳에서 왕성하게 전파하여 결실을 맺는다는 뜻이다

가는 곳마다 복음을 왕성하게 선포하고 다녔다는 것으로 큰 기쁨이 있었다.

사단은 교회가 망했고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인데 놀랍게도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왕성하게 전해서 큰 기쁨이 있었다.

이 기쁨은 불신자들이 알 수 없는 기쁨인데 이 보다 더 큰 기쁨은 이 땅에 없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고맙게도 박해를 해준 것이 얼마나 신의 한 수인지 모른다.

박해를 해줬기 때문에 억지로 떠날 수 있었던 것으로 말씀의 인도함으로 떠난 것이다.

큰 박해는 큰 기쁨을 허락하신다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기 때문에 내 삶의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있으면 떠날 때를 알려 주신다.

최고의 선물이다. 돈이 있으면 그 기쁨이 영원하겠는가?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택자의 고통은 지나고 보니 잠시간의 고통일 뿐이라는 것으로 지나가버린다. 어떻게 이렇게 큰 기쁨을 주셨을까?

고통(산고)을 통해 생명이 나온다

이 흩어짐은 만세 전부터 세팅된 하나님의 계획이고 절묘함이다.

택자는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찬양)’가 가장 잘 사는 비결이다.

복음을 전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것인데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연약을 들어 쓰신다.

가장 영적인 실력은 주님을 만난 것이다.  Born again.

큐티인 한 권씩 주는 게 최고의 복음인데 단순히 큐티책이 아니라 예수 믿게 하는 책이다.

핍박이 와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고 사는 것이 나의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비결인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고백이다.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확실하면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고백하면 주님은 나의 형편에 맞게 응답하신다.

흩어졌을지라도 큰 기쁨을 주시며 환경 주심에 토를 달지 않게 되는 것이다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사역은 귀신들이 계속 나가게 하는 역사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확실하면 믿음 충만한 것이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임했다는 것이며 성령이 임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은 모두에게 차별이 없으며 모든 시공간에 주님이 계시다.

말씀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인데 스데반은 말씀만 전하고 순교했는데도 병 고침의역사로  이적을 베푼 빌립보다 유명한 것이다

스데반의 설교의 기적이 최고인 것이다

주님이 빌립 속에서 역사하실 때만 빌립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흩어짐으로 다 떠났는데 그곳에 가자마자 큰 기쁨(하나님을 향해 쓰는 기쁨이란 단어가 Kara)이 있는 것이다

성도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발생하는 외적 현상이 기쁨으로 나타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기쁨은 동의어다. 구원을 빼놓고 기쁨을 논할 수가 없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Good News!

가장 힘든 문제는 아이, 자녀, 돈이 아니라자기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이건 약도 없다.

죄인은 나를 보는 눈도 남을 보는 눈도 없어 당연히 하나님도 못 본다.

죄는 과녁에서 벗어난 것을 지칭한다.

의로움이 하늘을 찔러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괴물인가를 보지를 못한다.

복음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하나님과 친해야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직분은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친하면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기쁨이 온다

날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세주가 되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창조주와 나와의 관계성립이 Good News(복음)이다

신앙은 관계를 떠나서는 안 된다. 인격적인 관계를 무시할 때 영육의 관계가 실패한다.

성령의 기쁨이 없으면 관계가 안 되고 관계가 무시된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면 은혜이자 선물 중의 선물이다.

죄를 모르면 알 수 없고 구세주의 존재를 모른다

빌립의 복음 전파가 이러한 큰 기쁨을 낳은 것이다.

Good News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되고 영생을 접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복음이 Bad News가 아니라 Good News가 되니까 자아의 흩어짐이 성령의 흩어짐으로 공감하게 된다

그 가운데 큰 기쁨이라 차별이 없다는 것과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이며 때가 될 때까지는 이게 기쁨의 소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단의 세력(귀신)은 내가 약할 때 열등감이 해결되지 않으므로 가장 많이 역사해서 들어온다.

주님은 안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흩으신다

기도제목 올리는 것이 예수님 옷자락 붙잡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이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하는 기쁨이 큰 기쁨이다

너무 하늘의 언어로만 이야기하지 말라.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0. 3. 11. 10:49

[우리들교회 2020 38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8: 1~ 3/ 성령의 흩어짐)]

 

 

<사도행전 8:1~3>

1.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And Saul was there, giving approval to his death. On that day a great persecution broke out against the church at Jerusalem, and all except the apostles were scattered throughout Judea and Samaria.)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Godly men buried Stephen and mourned deeply for him.)

3.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But Saul began to destroy the church. Going from house to house, he dragged off men and women and put them in prison.

 

“You Tube On Line상으로 진행된 38일 주일예배에서 주일설교 전, 코로나바이러스로 교회로 예배 드리러 오지 못하는 우리들교회 모든 성도들을 위해 박경철목사님이 열창한 ‘Nessun dorma’ (None shall sleep/아무도 잠들지 말라)란 제목의 푸치니 작곡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가 심신에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며 데살로니가 전서 5 16~18절 말씀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 귓전에 함께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코로나바이러스로 성령의 흩어짐의 의미를 통해 굳게 서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Prologue>

 

초대교회가 불일 듯 일어날 때 사단의 공격으로 성령의 순교를 한 이후 어떤 일이 일어 났을까?

흩어짐으로 역사하셨다

인간이 끼리끼리 좋다가 이젠 흩어져야지하면 얼마나 쉽겠나?

자녀들 분가하는 것 하나도 평생에 숙제일 수 가 있다

우리 때에는 부모에게 효를 행해야 하기 때문에 분가한다는 것은 큰 불효인 것이었다

요양원에 모시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 자식이 너무 좋은데 분가는 왜 하겠나?

다들 돈 때문에 분쟁 생기거나 부도가 나거나 하면 그땐 간단하게 분가가 되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너무 말씀도 조용해서 천사인 줄 알았는데 시아버지도 시어머니의 외모에 속으셨을 것 같다

더구나 너무 깨끗한 집은 조심해야 한다

깨끗한 집에 깨끗한 어머니에 너무 완벽한 환경이 갖추어진 시집이 편할 것 같았는데 시집 온 첫날부터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창세기 11장에 세상의 흩어짐은 바벨탑을 쌓으려는 교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벌이었다.

하나님이 흩으셨기에 세상은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것인데 그것이 성령의 흩어짐으로 바뀌어지면 그때부터 말이 통하게 되어 축복인 것이다

세상은 말이 안 통하는 데 그것은 하나님의 벌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흩어짐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1) 큰 박해가 있을 때 흩어진다. (A great persecution makes the people scattered.)

 

1절에서 스데반이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영접해 주셔서 순교를 했음에도 사울이 스데반의 죽임을 마땅히 여겼다고 했다

 

그것은 근거가 있는 얘기다

 

한 마디로 사울은 스데반을 율법대로 죽였다는 뜻이고 그래서 마땅하다고 여긴 것이다

 

신명기 17 7절에 보면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즉 신성 모독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먼저 증인이 그에게 손을 댄 이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라고 했기 때문에 사도행전 758절에는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dragged him out of the city and began to stone him. Meanwhile, the witnesses laid their clothes at the feet of a young man named Saul.)

 

 

자기들은 말씀대로 증인까지 세우고 증인이 먼저 죄인에게 손을 대고 다른 사람들이 와서 돌로 쳤다 그리고 사울이 그 옷을 보관했다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다 맞지만 문제는 스데반이 신성모독을 한 것이 아닌 것인데 그 사람들은 신성모독을 했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걸어 다니는 성전 같은 것을 모른다

 

그들은 형식만 있고 본질이 없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일이 얼마나 많겠나?

 

형식만 있고 본질이 없으니 마른 뼈처럼 말씀, 말씀, 법,법만을 외치는 것이다

 

권세를 가지고 법을 이렇게 마음대로 이용하면 안 되는데, 우리는 스데반을 아니까 기가 막히지만 법을 안다는 절대적 다수는 스데반을 죽이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고 절대 선인데 그래서 슬픈 것이다

 

영적인 무지가 사람에게 신천지를 통해서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을 요즘 눈으로 실물교육을 하고 있다.

 

최고 석학 가말리엘의 제자였고 율법에도 열심인 유대교 신봉자 사울은 하나님의 뜻에는 무지했다.

 

요한복음 16 2절에 보면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They will put you out of the synagogue; in fact, a time is coming when anyone who kills you will think he is offering a service to God.)라고 예고하신 바 있다

 

그 말씀에 잣대로 유대인들은 스데반 설교를 듣고 기독교를 이단으로 정죄했고 큰 핍박을 가했으며 사울도 그들 중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신천지가 이 말을 자기말로 알아듣지 않기를 바란다

 

거꾸로 신천지는 한국교회가 자기들을 이단으로 몰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영국의 극작가인 Ben Johnson은 말하기를 무지는 큰 정신병이고 치명적인 악이다. 그래서 모르는 게 죄인가? 죄다

 

무지는 인생을 어둡게 하고 이성을 어지럽게 하고 진실을 혼란 시킨다고 했다

 

스펄전 목사는 무지는 몰염치의 어머니다라고 했다

 

바울은 훗날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Even though I was once a blasphemer and a persecutor and a violent man, I was shown mercy because I acted in ignorance and unbelief.) (디모데전서 1 13) 전에 자신이 교회를 핍박한 것은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고백을 했다

 

이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영적 무지인데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해악을 끼친다.

 

교리가 너무 허접하지만 교리 때문에 신천지 가는 사람은 없다.

 

짝궁들이 다 연기자로 다 공감을 해주니까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고 안 넘어갈 자 없다.

 

사랑에 빠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사랑에 빠지면 아무 것도 눈과 귀에 안 들어 온다.

 

이렇게 사랑에 빠졌을 때는 일단 분리가 필요하다.

 

도저히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다. 상담소에 가야 한다. 돌이킬 수 있도록 상담소에 가는 것 중요하다.

 

사도행전은 사울의 주치의인 누가(Luke)가 썼다.

 

사울이 누가에게 이 장면을 다 얘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것이고 사울은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이 나왔을 것이다.

 

(적용#1)

 

-여러분이 평생 잊지 못할 부끄러운 장면은 무엇인가?

 

같이 예수를 믿는다고 한 대제사장이 있는 유대교가 초대 기독교를 맹렬히 박해했다. 종교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흩어짐을 사단은 박해로 도구가 되어 주었고 주님은 주님의 계획을 가지고 이 흩어짐을 신실하게 이루어주셨다.

 

사단도 항상 하나님의 수하에서 움직인다.

 

예루살렘이 전도가 됐으니 이제는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아가야겠는데 초대교회는 자꾸 나갈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누가 유대를 가고, 누가 사마리아로 가야 하는가? ‘ 생각하니 다 힘들다.

 

흩어지라고 하면 반발이 일어나고 자발적인 흩어짐은 쉽지 않다.

 

예루살렘 교회는 처소가 없었으니 언제가 흩을 때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전대미문의 핍박이 오니까 흩어짐이 간단하게 처리됐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인 것이다

 

우리가 예배드릴 수 없는 날이 온다고 예견했다.

 

애국가를 부르며 나라가 있어야 예배를 드린다. 이렇게 아무도 못 올 날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흩어지니까 이방 지역까지 가게 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면 거기서 열매 맺게 돼있다.

 

말씀으로 준비된 사람은 안디옥 이방까지 가게 되고 어디 가든지 하나님이 이루신다

 

우리들교회를 어떻게 흩어야 되나 앉으나 서나 기도하지만 길이 안 보인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흩어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마는 교회와 말씀 묵상의 역사가 매우 짧아서 전세계 어디를 가도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묵상을 시작했다는 분들을 만난다.

 

그들은 다 리더가 돼있다. 흩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염병이 오니까 누구도 이해하는 흩어짐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런 자연스러운 흩어짐을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믿는다.

 

다만, 피난 갈 정도로 큰 박해가 와야 했던 것이예루살렘의 흩어짐이다

 

미리 흩어지면 좋겠지만 인간은 그럴 수가 없다.

 

박해가 없어도 주의 일을 위해서 흩어져야 해라고 하면 의가 높아진다.

 

억지로 흩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면 역사해 주신다

 

환경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없다

 

잘 살아보았자 쇼핑하고 여행가는 그 이상이 더 있겠는가?

 

주의 일을 하느라 너무나 재미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손해보지 않게 해주셨고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훨씬 더 잘살게 해주셨다. 땅끝까지 증인되게 하셨다. 형제들 모두 남편 고난, 시집 고난, 경제 고난이 있었는데 지금 보면 어머니의 기도로 인해서 박해를 무섭게 받아서 모두 지경이 넓어졌다.

 

앉으나 서나 힘든 사람 살리는 일에 올인 하는 인생을 살게 하셨다. 하나님의 계획이 대단하시다는 것밖에 할 말이 없다. 예수 믿는 데에 가장 합당한 환경으로 만들어주셨다. 내가 당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던 남편들이 있어도 흩어져서 훨씬 잘 살게 하셨다.

 

사도들(5지파는 히브리파, 7지파는 헬라 파)은 흩어지지 않는데 이 때부터 사도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6-7-8이 전부 스데반-빌립으로 도배하고 9장부터 사도바울의 시대다

 

스데반 때문에 대대적 박해가 와서 다 흩어지게 했다면 재산 손해도 났는데 모두가 말씀이 들린 것은 아니라 백성들이 스데반에 책임을 물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는 신의 한 수다

 

신천지는 믿음 빙자하는 이만희만 추앙하니 어떻게 돌아오게 하나?

 

어쩔 수 없이 흩어져야지 혈기, 자존심으로 흩어지면 안 되는 것은 지금은 좋아 보여도 지경이 넓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분가, 과부 되게 하시고 어쩔 수 없어 교회도 개척하게 하셨다.

어쩔 수 없이 흩어진 것에 대해 순종을 하니까 주님은 영적 지경이 넓어지게 하셨다.

 

가정, 직장 생활 다 영적 전쟁터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하면서 흩어지는 것에 순종해야 할 것이 있다.

 

(적용 #2)

 

-여러분이 큰 박해로 흩어질 수밖에 없어 가야 하는 유대와 사마리아는 어디인가?

 

-분가인가, 사직인가? 성령의 흩어짐이라 생각하는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대구사태로 흩어지는 것은 성령 때문인가? 누구 때문인가?

 

 

2) 크게 울어주는 사람도 있다. (There are also some people who mourn deeply.)

 

유대교인으로서 크게 울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한쪽에선 이를 갈면서 돌을 던지지만 한쪽에서는 슬퍼하며 시신을 수습해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닌 경건한 유대인들이 이렇게 장례를 치러주면 죄인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일인데 목숨 걸고 장례를 치러주었고 가슴을 치면서 애곡했다.

 

경건한 불신자가 교리로 스데반을 옳다고 했으면 초대교회에 합류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스데반의 삶을 존경한 것 같으며 불신자들에게 존경을 받으면 게임 끝이다

 

우리에게 있는 강박으로 신자 불신자에게 모두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이 있지만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지혜를 주신다.

 

남들이 칭찬한다고(욕한다고) 칭찬 받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초연하라는 얘기도 아니다.

 

우리는 항상 경건과 구속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그러면 지혜의 근본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일원론으로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므로 하나님이 해주신다.

 

경건과 구속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근거를 찾아 남 칭찬할 일 있으면 마음껏 하라.

 

근거가 없으면 그것은 아부다

 

근거가 있어서 칭찬하는 사람에게 상급이 더 가기에 마음이 기쁜 것이다

 

칭찬 받으면 상급이 없어지고 (자기 의가 높아져서) 받을 형벌이 크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하고 또 받아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불신자도 울어 주는 사람이 있다

 

스데반의 죽음에 공회에서는 말 못해도 가시적으로 유대인 중에도 슬퍼하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셨고 그 울음은 사랑이라고 표현되니 위로가 된다.

 

똑 같은 죽음에 울 수도, 울지 않을 수도 있다

 

크게 박해가 오니 크게 운다

 

(적용#3)

 

-내가 죽을 때 누군가가 크게 울어주겠나? 아니면 마땅히 여기겠는가?

 

 

3) 교회를 잔멸할 때다.(It’s time to destroy the church)

 

악랄해야 흩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하나님 장중(掌中)에서 일어나고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기독교/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열심은 공동체에 해가 된다.

 

내 열심을 돌아보라. 누구를 위한 열심인가?

 

신천지는 세상 사람들도 알고 기부금도 안 받는다.

 

나라 말은 안 듣고 총회장 말만 듣는 행태가 사이비 맞다.

 

목사는 잘못할 수도 있는데 교주를 절대적으로 놓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단 맞다.

 

교회를 잔멸하고 있는 것이다. 방역이 더 중요하다.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철저히 이타적인 종교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하늘나라다

 

사울은 스데반이 이것을 경험한 것을 목도한 것이다.

 

성경에서, ‘인자가 총 86번 쓰였다. 예수님을 인자로 칭한 것은스데반이었다.

 

인자가 구름 타고 오신 것을 보리라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다

 

인자란 말은 너무 친하니까 스데반에게만 쓰였다

 

사람이 얼마나 주님과 친하고 확신하면 주님을 사람의 아들로 쓸 수 있었을까?

 

스데반은 자기와 같은 신분이었던 인자의 영광을 확실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언어로 쉽게 푼다면,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 돌이 되었다는 것인데 버린 돌끼리 알아보고 너무 감격하는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같이 얘기하지 못하면 조롱 받을 때 상처 받는다

 

사단은 예수가 죽은 것은 인정해도 부활하신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잔멸까지 박해가 안 가면 흩어지지 않으니 박해에서 잔멸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인자의 영광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버린 돌이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시험에 들고 조롱을 당할 때 상처를 받고 뛰쳐나가고 이혼하고 사직하고 혈기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인자의 영광을 보면 스데반처럼 조용히 잠자듯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스데반은 안식을 누리며 잤다고 한다

 

길이 없는 게 축복이다.

 

갈 데가 있으면 나가버릴 텐데 갈 곳도 없고 돈도 없으니 머무는 것이다

 

돈 있으면 절대 사과 안 하듯이 돈이 일만 악의 뿌리다

 

스데반이 살아있었다면 예수님보다 더 큰 숭배의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재판까지 가셨지만 스데반은 그 자리에서 돌로 침을 받아 죽었다

 

예수 때문에 박해만 받아도 예수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쓰임을 받아야 하니까 잔멸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하셔서 회개하고 천국 간다

 

잔인하게 멸하는 사건 때문에 내 주 예수 게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고난의 높고 낮음은 없다. 우리의 고난은 사람을 살리는가 못 살리는가로 평가된다.

 

끊임없이 무시를 해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가는 것이 큰 특권이다.

 

깨어있게 해주신다. 마음이 부할 여지가 없다. 늘 가난한 마음을 허락해주신다.

 

잔멸을 당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보니까 순교는 신의 한 수다

 

하늘나라에는 일꾼과 증인이 끊어지는 법이 없다

 

우리 고난은 사람 살리는 여부가 핵심가치다

 

 

(적용 #4)

 

-잔멸당 할 때 미움, 설움, 두려움의 옥에 갇히지 않는 비결은 무엇인가?

 

 

 

<Epilogue>

 

 

큰 박해가 있을 때 흩어진다. (A great persecution makes the people scattered.)

 

크게 울어주는 사람도 있다. (There are also some people who mourn deeply.)

 

교회를 잔멸할 때다. (It’s time to destroy the church.)

 

창세기 11장에 세상의 흩어짐은 바벨탑을 쌓으려는 교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벌이었다.

하나님이 흩으셨기에 세상은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것인데 그것이 성령의 흩어짐으로 바뀌어지면 그때부터 말이 통하게 되어 축복인 것이다

형식만 있고 본질이 없으니 마른 뼈처럼 말씀, 말씀, 법, 법만을 외치는 것이다

 

무지는 인생을 어둡게 하고 이성을 어지럽게 하고 진실을 혼란 시킨다고 했다

 

이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영적 무지인데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해악을 끼친다.

 

흩어짐을 사단은 박해로 도구가 되어 주었고 주님은 주님의 계획을 가지고 이 흩어짐을 신실하게 이루어주셨다.

 

그런데 전대미문의 핍박이 오니까 흩어짐이 간단하게 처리됐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인 것이다

 

흩어지니까 이방 지역까지 가게 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면 거기서 열매 맺게 돼있다.

 

말씀으로 준비된 사람은 안디옥 이방까지 가게 되고 어디 가든지 하나님이 이루신다

 

박해가 없어도 주의 일을 위해서 흩어져야 해라고 하면 의가 높아진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면 역사해 주신다

 

환경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없다

 

스데반의 순교는 신의 한 수다

 

어쩔 수 없이 흩어져야지 혈기, 자존심으로 흩어지면 안 되는 것은 지금은 좋아 보여도 지경이 넓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 직장 생활 다 영적 전쟁터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하면서 흩어지는 것에 순종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항상 경건과 구속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그러면 지혜의 근본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일원론으로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므로 하나님이 해주신다.

 

경건과 구속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근거가 있어서 칭찬하는 사람에게 상급이 더 가기에 마음이 기쁜 것이다

 

칭찬 받으면 상급이 없어지고 (자기 의가 높아져서) 받을 형벌이 크게 된다

 

기독교/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열심은 공동체에 해가 된다.

 

이 땅의 언어로 쉽게 푼다면,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 돌이 되었다는 것인데 버린 돌끼리 알아보고 너무 감격하는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같이 얘기하지 못하면 조롱 받을 때 상처 받는다

 

사단은 예수가 죽은 것은 인정해도 부활하신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잔멸까지 박해가 안 가면 흩어지지 않으니 박해에서 잔멸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인자의 영광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버린 돌이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시험에 들고 조롱을 당할 때 상처를 받고 뛰쳐나가고 이혼하고 사직하고 혈기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인자의 영광을 보면 스데반처럼 조용히 잠자듯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돈 있으면 절대 사과 안 하듯이 돈이 일만 악의 뿌리다

 

예수 때문에 박해만 받아도 예수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쓰임을 받아야 하니까 잔멸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하셔서 회개하고 천국 간다

 

잔인하게 멸하는 사건 때문에 내 주 예수 게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는 것이다

 

고난의 높고 낮음은 없다. 우리의 고난은 사람을 살리는가 못 살리는가로 평가된다.

 

끊임없이 무시를 해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가는 것이 큰 특권이다.

 

깨어있게 해주시니 마음이 부할 여지가 없고 늘 가난한 마음을 허락해주신다.

 

잔멸을 당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보니까 순교는 신의 한 수다

 

하늘나라에는 일꾼과 증인이 끊어지는 법이 없다

 

우리 고난은 사람 살리는 여부가 핵심가치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