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0년 8월9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11:19~21/ 성령의 소수)]
<사도행전>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Now those who had been scattered by the persecution in connection with Stephen traveled as far as Phoenicia, Cyprus and Antioch, telling the message only to Jews.)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Some of them, however, men from Cyprus and Cyrene, went to Antioch and began to speak to Greeks also, telling them the good news about the Lord Jesus.)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The Lord's hand was with them, and a great number of people believed and turned to the Lord.)
<Prologue>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小數가 되어서 인생이 슬픕니다. 성령의
소수가 되어서 남들을 섬길 수 있는 소수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소수의 인권이 온 나라를 도배하고 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게 소수인 것밖에 없다.
팔복이 좁은 길의 복이다.
성령의 변명은 세상에서 보기에는 찌질해 보인다.
소수가 피해의식이 많으며 교만한 엘리트 소수도 있다
어떤 소수는 좋은 소수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성령의 소수가 될 때 가능하다.
성령의 소수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말씀 요약>
1. 소수의 여전한 편견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베니게(레바논)-구보로(사이프러스)-인디옥(수리아/앗수르의 수도: 당시 로마제국의 세계 3번 째 큰 도시)
자 그때에는 지난 주일에 연장선상으로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고 성령이 내려오셨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이상합니다. 안디옥에 있는 흩어진 자들은 성령의 변명하고 있을 그때에 복음을 전하고 있을 거라고 하잖아요 이방인과의 만남인데 사도가 아닌 평신도들이 믿음이 좋은 건가 부정한 짐승을 먹고 이방인 집에 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을까? 큐티할 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나오느라 진도가 안 나갔어요. 전 예전에 모르고 큐티했어요 가르치려고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주님의 뜻을 알아야 살든 죽든 하지 않겠어요? 그런 것들을 보고 게 섰던 것 같아요. 성경은 성령의 글을 이기 때문에 원어를 안다고 잘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니에요. 성령 받고 나면 도움 되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이게 너무 이상해서 원어를 보니까 정말 한글 번역이 잘못된 것이라고요. "시간이라 가보다는 ‘진실로, 확실히’라는 뜻과 그러므로 그렇다면 이는 뜻의 원어로 되어 이제 그러므로"라는 뜻이에요 18절까지 베드로의 변명이 통해서 이방인에게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소문이 나지 않았겠어요?
그때에는 이제 그러므로 이방인인에게 주저 없이 선교하기 시작했다 이 말이에요. 한글 번역도 잘못된 것이 많아요. 잘못된 것도 알아서 묵상을 많이 했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해가 확 되죠? 스데반의 선교로 밀려서 유대와 사마리아에 땅 끝인 이스라엘 이방지역 중에서 안디옥과 북쪽 지역으로 가서 전파했는데 안디옥은 시리아의 수도인데 로마 알렉산드리아의 근처 도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어요. 그 당시에 50만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도시 이겠어요? 학문이 발전했고 로마처럼 목욕탕처럼 향락 문화도 발전했고 다산을 기원하는 성행위를 대놓고 했고 동성애도 만연했죠. 이곳에는 2만~5만 정도의 유대인이 살고 있을 거라고 해요. 유대인들이 들어가서 어디 가나 유대인들은 있었어요. 앗수르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에 망해서 여기저기 있어요. 이곳까지 복음이 전해진 것이죠. 복음이 전해졌는데 보니까 곳곳에 유대인들에게만 열심히 전했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에게도 회개를 주셨다고 하면 이방 지역 유대인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한인들에게만 전도를 했다 이런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편견으로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길게 설명하고 변명했음에도 그럼에도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다고 하는 거예요. 유대인의 개념은 자기들 외의 민족은 다 ‘이방인이고 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동족에 대한 열심이 따라가지 못하는 거예요. 이 편견은 아무리 강조해도 그대로죠.
어떤 지파냐 하면서 뿌리가 깊어요. 그래서 모든 지파가 합세를 해서 베냐민 파의 씨를 말릴 뻔했어요. 유대인은 믿음을 빙자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하고 있는 거예요. "성령님은 편견을 다루고 계십니다." 지역감정 진영 논리를 나누어 보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정치 진영 논리는 금물 이잖아요. 정말 많이 좋아지셨어요. 왜 이렇게 정치 이야기를 하냐 하면 안 된다고 말이 나오더라고요. 일원론인 거예요. 결코 분리가 안 돼요.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 드려요. 나라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선지자 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앗수르를 섬겨 나라가 없어졌어요. 선지자가 왕에게 경고를 하는 거죠 하나님의 심판이니 바벨론에 가서 포로생활 70년 잘하라고 합니다. 애굽에게 사백 년 식민지 생활을 했으면서 애굽에게 도움을 구하면 된다고 선지자를 구덩이에 던지고 박해합니다. 말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그래도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전하라고 에스겔 선지자가 전하고 남아서 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고 끌려가서 돕는 다니엘이 있어 다행입니다. "지금이라도 예수님이 인생에 주인처럼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늦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복음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구체적으로 나누었어요. 여러분은 나라가 있으나 자유가 없는 북한을 보면 딴 나라 이야기처럼 보면 안 됩니다. 소수의 인권이라고 약자라고 여자라고 차별 받으니 남자가 되고 싶으면 성을 바꾸라고 그런 구조는 없는 겁니다. 우리들교회는 가정 중수와 말씀이 묵상이 핵심가치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은 가정과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법입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여성 목사로서 차별 받았지요. 그러나 성경의 역할이 있잖아요. 남자 목사들을 세우고자 하고 남편을 세우고자 하는 죽음의 복종을 하라고 해서 했어요. 우리들교회가 가부장적 사각지대입니까?
"수많은 가정이 살아나고 이혼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저는 이렇게 상상도 못 했잖아요. 이렇게 도리어 순종을 하니 이런 큰 교회에 리더가 되게 하셨어요. 흩어진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디 가든 소수였겠지요 그러나 전 세계를 뒤엎었어요. 그러나 그들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소수가 되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고향 백성들 이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주님을 안 믿어요. 그들이 소수라도 돈이 많고 엘리트이고 이러다 보니까 이 천년 동안 믿지 않아요. 우리 옆에도 피해 소수 엘리트 소수의 편견은 대단합니다. 우리나라가 부정부패로 가난했는데 자유가 들어와서 이렇게 발전을 했어요. 중동의 레바논이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해방이 되었다가 자유를 누릴 자유가 없어서 부정부패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자유를 주어도 누릴 실력이 없으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적용 #1)
-내 속의 여전한 피해의식과 엘리트 의식으로 인한 편견을 무엇인가?
그래도 안 바뀐다. 성령이 말 하라니 말하는 것이다.
2. 무명의 극소수가 편견을 철폐한다
그들이 유대인에게만 전파했는데 헬라인에게 전파 했잖아요. 사실은 소수였겠지만 그 중에서 극소수의 사람이 이방인에게 주 예수를 전파했어요.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이 생겼다는 거예요. 주 예수를 전한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고백입니다. 로마의 통치를 받는 그들은 목을 내놓은 거예요. 주 예수는 누구입니까 식민지 출신의 목수 아닙니까 목을 내놓고 전도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안디옥이 대단한 교회입니다. 교두보 역할을 합니다. 처음으로 이방인에게 넘어가서 된 교회가 안디옥교회입니다. 이 영광은 베드로가 얻어야 합니다. 안 간다고 하다가 성령의 역사를 두 눈으로 봤어요.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면 땅끝까지 전해져 증인이 되어야 하잖아요. 흩어졌을 때도 안 갔어요. 그래도 안 갔어요. 이번에는 고넬료 집에 가서도 하나님이 설득했는데도 안 갔어요.
그러니까 무명의 몇명의 극소수가 유대의 경계를 넘어서 전도를 하는데도 베드로는 진도가 꽉 막혔어요. 저는요. "말씀에 의해서 계속해서 편견을 다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우리의 편견이 무섭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편견도 무섭드라고요. 여기는 완전 이방인 헬라 사람에게 전한 거에요. 유대를 넘어섰어요. 경계를 넘었어요. 그러니 개척하는 영광을 베드로가 놓쳤어요. 왜 거기가 땅끝이라는 적용을 못 하는 걸까요? 저는 그냥 베드로에 대해 묵상을 해보고 몇 사람을 묵상해보았어요. 원수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딴 데를 못 가는 거에요. 그것도 이해 갑니다. 안되는 일이었어요. 유대인들은 덮어놓고 될 것을 해야할 때가 있어요. 이제 몸에 익힌 것이 있죠. 히브리 파는 한번도 해외로 나아가지 않은 고향을 지키는 지파 에요. 베타성 선민의식이 쩔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굉장한 그거가 있었을 것 같아요. 베드로가 무식 하잖아요. 베드로가 하도 해도 안되니 바울 시대가 시작되죠. 우리는 늘 훌륭하다고 하면 적용이 안되잖아요 베드로 때문에 위로를 많이 받아요 저도 영어를 못하니 외국 가도 저와 상관이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들교회 목사는 해외를 넘나드는 목사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못해서 해외에서 못한 것도 많지만 한 것도 많아요. 한인교회에서만 가서 말씀 전하니까 영어를 잘하면 훨씬 더 지경이 넓어졌을 것 같아요. 제가 발음은 본토 발음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 땅끝의 선교 인제 알코올중독 남편 중독 가정 중수인 것이 맞아요. 이 당시에 로마시대 이잖아요. 얼마나 상태가 안 좋았던 상태에서 전 했을까요? 이 사람들이 완전히 받아들인 사람이 아니었어요. 전도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였어요. 정말 엘리트 에다가 쾌락이 하늘을 찔렀어요. 유대인들조차 베드로의 말을 안 듣잖아요. 헬라인들은 지적인 자부심이 하늘을 찔러요. 십자가를 수치스럽게 여겼어요 그러니 어떻게 받아들이겠어요. 우리끼리만 놀자 지역감정도 우리끼리 놀잖아요.
쾌락의 끝에 동성애가 있는 거예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이잖아요. 그런데 여자 목사가 감히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는 게 웃기지 않는 리플을 보았어요. 그런데 어떤 글을 읽었냐 하면 로마서의 구절을 그의 곁에 성 소수자가 있었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라는 글도 보았습니다. 로마를 향하여서 이런 글을 쓸 수 있겠어요. 해석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바울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바울이 성 소수자 친구가 있었으면 로마서가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성경을 부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바울을 넘어야 합니다. 좁은 길이에요. 이렇게 편견이 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거예요. 반복하지만 이 일을 우리들교회에서 해야 합니다." 확실히 목자 모임이 솔직하고 양육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처음보다 많이 달라지셨어요. 말씀과 공동체에 밖에 없어요. 무명의 몇 사람이 한 편견을 철폐하고 안디옥의 교회를 세웠어요. 이방인을 무시했지만 그들과 헬라인과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처럼 복음부터 전한 것이 아닙니다. 말부터 해서 먼저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부터 했다는 거예요. 그들과는 이질감이 덜 느껴졌어요. 그들의 고향 언어를 십분 이해해서 말부터 텄어요. 그럴 때는 같은 고향이 좋아요. 정말 최고입니다. 이런 것들이 무서운 편견의 철폐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자기 확신은 문제지만 주님에 대한 확신은 확실한 무기입니다." 안디옥교회 개척자에 무명의 이름들을 올린 거예요.
(적용 #2)
-아무도 안 알아줘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신앙고백으로 살고 있나?
3. 주의 손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몇명의 극소수는 태생이 겸손해서 이름이 올라가면 안된다고 했을 겁니다. 일년이나 있었잖아요 .누가 사도가 기록 했잖아요. 이 사람들이 거절했다고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인정받는게 이 세상의 목적인데 이 사람들은 베드로 사도를 제치고 개척했다는 것은 송구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에요. 이름을 거론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 같아요, 이들은 믿음이 왜 이렇게 좋을까요? 환난 당하고 원통한 자가 주인공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무명의 평신도들이 있네요. 자기를 낮춘 자에게 준 상은 무엇입니까? 세상은 안 알아줘도 주의 손이 함께 하셨잖아요. "가장 큰 상은 하나님 자체 이잖아요. 무엇으로 나타났죠 수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 왔잖아요. 진영 논리의 끝은 ‘잘 살자’가 아니라 ‘모두가 주께 돌아오자’입니다."어떤 분은 그렇게 나누었어요. 지역감정은 인간의 편견으로 생겼다고 했는데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편견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방 선교는 무명의 극소수에 의해 시작되었어요. 고넬료가 와서 무릎을 꿇고 하늘같이 추앙하는 그때에 안디옥 개척을 무명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돌렸어요. 고넬료도 이미 경외하는 자였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20절의 헬라인은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큰 변화에요. 사도바울도 활동하기 전이에요.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대단한 추앙을 받잖아요. 무명의 성도 몇 사람이 안디옥교회를 개척했다는 거예요. "자기 자리 잘 지키는 사람이 여전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들교회가 소수였고 시작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지금도 소수이고 있으면 있는 데로 수많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변명을 하시면서 오니까요 항상 몇 명의 소수가 차별 철폐했다고 합니다. 우리들교회 소수의 증인이 곳곳에서 증언을 했고 세례를 받았어요.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지만 큐티 간증을 통해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방인에게 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무명의 성도들처럼 흩어진 성도 몇 사람이 주인공 이에요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성령의 소수처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줄 믿습니다. 가정과 회사가 살아날 줄 믿습니다."
"말씀에 기반해서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됩니다. 성령의 설득과 변명으로 많은 사람을 주께 인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으로 내가 차별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직 절대선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적용# 3)
-주의 손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나? 아니면 이 땅에서 이기고 이기려는 사람이 되려고 하나?
<Epilogue>
1) 성령의 소수는 소수의 여전한 편견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 여전한 피해의식과 그로 인한 소수가 엘리트가 되게 되면 그거를 당할 자가 없는 것이다
3)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하지 않고 무명의 극소수가 이름도 성도 없는 몇 명이 차별을 철폐한다.
4) 나는 힘이 없으나 주의 손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이다
5) 성령의 소수가 되어서 정말 모두를 변화시키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6) 성경은 성령의 글을 이기 때문에 원어를 안다고 잘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니다
7) 성령님은 편견을 다루고 계신다
8) 자기 확신은 문제지만 주님에 대한 확신은 확실한 무기다
9) 진영 논리의 끝은 ‘잘 살자’가 아니라 믿고 ‘모두가 주께 돌아오자’이다
10) 진영 논리는 상대를 이기려는 목적에 근거한 편견이다
11) 진영 논리에 갇히면 서로 죽이려고 한다
12) 말씀에 기반해서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된다.
13) 성령의 설득과 변명으로 많은 사람을 주께 인도 할 수 있다.
14) 말씀으로 내가 차별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5) 오직 절대선은 하나님 밖에 없다
16) 팔복이 좁은 길의 복이다
17) 가정에서도 인격이 아니라 역할로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다 (역할론)
18) 어디에서나 순종이 죽음에 이르는 순종이다
19) 흩어진 초대교회성도는 어디 가나 소수였다
20) 베드로에게 땅끝 선교지는 안디옥이었다
21) 해외파 히브리인은 헬라어도 잘한다
22) 베드로는 배타적인 선민의식이 있었다
23) 쾌락의 끝에 동성애가 있는 것이다
24) 자기 확신은 교만이지만 주님에 대한 확신이 가장 큰 무기다
25) 섬김의 본을 가치관으로 끝까지 붙어 가면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신다
26)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루하루 살아가니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27) 성경은 내 이야기이고 우리들교회 이야기이다
28) 주의 손이 함께 한 사람은 생색이 올라오지 않는다
29)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면 누구에게 인정 받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30) 성령님의 설득과 변명이 많은 사람을 주의 손으로 주께 인도하는 것이다
31) 내가 차별당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차별하는 것을 알아야 길이 보인다
32) 차별은 외모와 스펙으로 남을 판단하는 악행이다
33) 정치인은 말하는 것은 달라도 원하는 것은 모두 권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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