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문화2024. 5. 18. 13:28

[Paris2024 올림픽과 올림픽 레거시의 전망]

- IOC 올림픽 레거시와 헤리티지 위원회(IOC Olympic Legacy and Heritage Committee)의 역할과 방향성

 

지난 42년을 올림픽 운동과 함께 하면서 2008년 올림픽 IOC 평가위원회(IOC Evaluation Commission for 2008 Olympics)위원으로 당시 최종 결선 진출 5개 후보 도시들(베이징, 오사카, 토론토, 이스탄불, 파리) 중 파리의 스포츠와 문화 및 유산 전반에 걸친 내면을 심층적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 그림 1 프랑스 대통령궁에서 당시 자크 시락 대통령과의 만남

) 그림 2 파리 스포츠 경기장 실사 중인 IOC 평가위원회 위원들

 

 

당시 프랑스 파리의 경우 휘황찬란한 인류 문화 및 스포츠 유산이 살아 숨쉬는 보고(寶庫), 그 자체였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파리는 이미 수상 개폐회식, 에펠 타워 스타디움이라는 올림픽과 미학의 랑데부를 선보이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림 3 Paris 2024 올림픽 에펠 타워 스타디움, 출처: IOC website)

 

파리 올림픽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고조된 2024, 우연 같은 필연으로 강원 2024 동계 청소년 올림픽 참석차 방한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으로부터 IOC 문화 및 올림픽 해리티지위원회 위원 임명장을 수여 받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럽지만, 또 국가적으로 봉사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에, 금번 2024 파리 올림픽의 레거시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더불어 미래 올림픽의 레거시에 대한 조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몇 자 적어본다.

 

<IOC문화 및 올림픽헤리티지위원회의 활동 목적과 책무 범위>

 

IOC 위원회 규정에 의거한 IOC 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회(IOC Culture and Olympic Heritage Commission)는 올림픽의 이상을 특히 전 세계 청년에 증진시킬 목적으로 구성되었다. 올림픽 예술, 역사, 가치 기반 주안점, 학술적 연구, 전승 수집품 관련 등 최대한 광의적 의미에서의 문화와 연관된 올림픽 운동의 활동에 대하여 IOC 총회와 IOC 집행위원회 및 IOC 위원장에게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IOC 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회의 역할 범위는 IOC의 문화 활동 계획의 최적화된 실행을 달성하는데 일조하는 것으로 올림픽 아젠다 2020+5에 부합하는 제반 활동들 역시 포함한다. 이러한 역할은 올림픽 운동 내의 다양한 문화적 플랫폼과 공동체 및 조직들 간의 시너지 발휘를 위한 촉매 역할로써 NOC들과 올림픽조직위원회 문화 담당 부서, 연구센터와 대학교 등과 함께 협업하여 미래 올림픽 운동의 문화적 활동 프로젝트 방법 등을 고안하는 등의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IOC 문화 및 헤리티지 위원회는 IOC 사무처 중 문화 및 헤리티지 부서의 주관하에 운영한다.

 

 

 ) 그림 4 IOC 문화 및 헤리티지 국장 Ms. Marie Sallois와 함께

) 그림 5 IOC 문화 및 헤리티지 위원회 임명 소식

 

 

최근 위원회의 회의 내용을 보면, 202310월 자로 향후 개최되는 모든 동 하계 올림픽조직위원회(현재까지, 2024 파리, 2026 밀라노-코르티나, 2028 LA, 2032 브리즈번)의 문화 및 올림픽 교육 관련 자문이 모두 동 위원회의 업무에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IOC의 올림픽 레거시의 방향성 설정에 대한 위원회의 책임이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상컨대, 향후 개최될 올림픽 대회 조직위원회의 해당 팀과 함께 각각의 전략을 개발함으로써 대회 전후 및 대회 기간,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에 관여하는 등 소통의 창구 역할로 향후 올림픽 개최국에 긍정적인 영향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업무에 가시성을 부여할 것이다. 또한 올림픽 공식필름(영화) 및 올림픽 공식 예술 포스터 제작 지원 업무도 지속하며 이러한 새롭게 진행되는 교류를 통하여 구체적인 프로젝트 협업과 새로운 기회 창출을 도모하게 되었다.

 

<IOC 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회의 활동 계획>

 

IOC 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회의 중요성이 커져 가는 시점에서, 본인의 올림픽 운동 경험에 기반을 둔 위원회의 활동 방향에 대한 정리를 나누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지속 가능한 인류애적 문화(Sustainable Legacy through Humanity Culture)의 개념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기존 조직 및 기구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먼저 위원회의 역할이 기존의 예술, 역사, 가치 기반 주안점, 학술적 연구 및 전승 수집품 이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반드시 그것에만 제한하지 않고, 스포츠 폭력, 성폭력, 선수 훈련 과정에서의 구타 행위, 왕따, 갑질 등의 기본 인권적 문화 조성을 위해 세계폭력방지기구<WAVA>와 협업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건강 및 신체 활동을 권장하는 문화 조성을 위하여 각국 올림픽 위원회, 국제 연맹 및 유관 기관들이 유네스코 Fit for Life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지금의 유네스코가 추진하고 있는 인종차별의 방지, 여성과 소녀의 스포츠 참여 차별 철폐 등이 포함된다. 더불어 우리나라까지 도달한 청소년 대상 약물남용의 문제 해결을 위해, 도핑 방지 캠페인 문화 조성을 위하여 WADA와 협업을 제안할 수 있다. 넷째로 광범위한 힙합 문화의 일환으로 4가지 핵심 유행 요소들로 규정되는 서브컬처(엠씨잉/래핑(MCing/rapping), 디제잉/턴테이블 스크래칭(DJing/scratching with turntables), 브레이크댄싱(breakdancing) 및 그래피티/낙서 예술(graffti art)를 포함하는 청년층의 도시기반 스포츠 문화 조성 등, 미래 세대가 지속적으로 올림픽 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매개고리를 설정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IOC 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장 겸 태국 IOC 위원인 Mme. Khunying Patama Leeswadtrakul을 통해 IOC 위원장, IOC 집행위원회 그리고 IOC총회에서 공식 제안될 예정이다.

 

둘째로 IOC 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회의 활동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인 헤리티지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올림픽 헤리티지는 크게 유형과 무형을 구분하며, 유형에는 인프라, 경기장, 기념품 및 기념비 등을 포함한다. 무형 헤리티지로는 인류 유산/헤리티지, 올림픽 대회 개최국 국민들에게 인식된 올림픽 가치 및 올림픽 정신, 지식 및 경험 전수, 독특한 기량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체육계 원로들의 이러한 무형 자산을 축적하기 위한 취지에서 구술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IOC 올림픽 운동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뿐만 아니라 현 IOC 위원들의 지식과 경험을 기록하는 휴먼 아카이브의 구축과 전 세계 소규모 올림픽, 스포츠 박물관 건립 권장 및 촉진을 통한 촘촘한 올림픽 가치 확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논의되는 장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글로벌 스포츠 및 올림픽 헤리티지 포럼의 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 역시, 이미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올림픽 레거시 포럼을 주창하여 IOC의 올림픽 운동에 선도적으로 이바지한 바 있다. 이제 IOC 문화 및 헤리티지 위원회는 우리나라와 같은 각국의 우수한 올림픽 레거시 문화를 도입하여 확산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해를 거듭하다보면, 당해 년도 올림픽 헤리티지 대상을 선정하여 시상함으로써, 우수 올림픽 레거시 창달을 독려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2024 파리 올림픽 레거시 조망>

 

세계적인 도시 파리는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나라인 만큼, 올림픽 레거시에 대한 준비를 충실히 진행해왔다. Sport Tomorrow라는 슬로건 하에, 씽크탱크 SKEMA와 함께 진행한 연구의 최신 요약본(SKEMA, 2023)을 보면, 파리 올림픽을 통해 미래의 청년(Youth)에 어떤 유산을 물려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언이 촘촘히 도출되어 있다. 파리는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기에, 최근 유네스코가 CIGEPS(스포츠와 신체활동 국가 간 위원회), MINEPS(스포츠와 신체활동 고위급 회의)등의 논의에도 올림픽 레거시 의제가 충분히 녹아들어갈 것으로 생각된다. SKEMA 연구의 첫 번째 파트는 18세에서 24세의 수 천명의 다국적 청년들이 참여한 설문의 분석이며, 두 번째는 파트는 스포츠와 관련하여 청년과 관계된 규정과 조직 등에 대해 분석하고 이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다. 첫 번째 파트의 결과로 교육, 건강, 직업, 오락, 레저와 사회적 관점의 다양한, 그러나 공통의 관심사가 도출되었고, 스포츠는 이들의 개인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즐거움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례로 새로운 스포츠의 출현과 올림픽 종목화에 대한 것으로는 5:5 축구, 7인제 럭비, 패들보트, 클라이밍 등과 함께 스포츠의 디지털화 역시 논의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청소년들이 스포츠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 개인적인 보상이라는 점이다. 결국 사회의 역동성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미래세대에의 투자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이러한 연구 결과에 기반하여, Move More 라는 국내용 청소년 신체활동 증진 프로그램을 글로벌화 하는 방안 역시 모색하고 있다.

 

2024 파리 올림픽이 기대하는 또, 준비하는 올림픽 레거시는 시설과 같은 유형의 산물에 머무르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올림픽을 기점으로 제대로 Sport Tomorrow의 사회를 그리고 레거시로서 개인의 삶에 지속적으로 색채를 입혀 나가고자 하는 파리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2024 파리 올림픽 성공개최 기원 5행시>

 

최근 국제적으로 실시된 즉석 인지도 조사(Spontaneous Awareness Survey)결과 올림픽이 월드컵축구2배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윔블던 테니스대회(Wimbledon Tennis Championships)보다 3, 포뮬러 원(Formula One Motor Racing Grand Prix)자동차 경주대회보다 4,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사이클 대회, 수퍼볼 미식축구대회(American Super Bowl), 월드시리즈 야구대회(World Series of Baseball) 보다 6, 그리고 미국 컵(America's Cup) 데이비스 컵 테니스대회(Davis Cup)보다는 무려 10배나 더 높은 인지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988년 서울올림픽은 前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역대 최고의 올림픽으로 극찬한 바 있다. 사실 우리나라 스포츠가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데에는 스포츠외교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 6 1988 서울 올림픽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패럴림픽 앰블럼과 마스코트

 

 

726일 개막하는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스타디움이 아닌 세느강에서 열릴 계획이다. 이는 올림픽 개회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실험적이고 획기적인 시도임과 동시에 예술과 평화를 사랑하는 파리지엥 올림픽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이러한 2024 파리 올림픽의 성공개최를 기원하면서 다음과 같은 Paris의 각 철자를 5개에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이 5행시를 2024 파리 올림픽에 헌정한다.

 

P: Peace-loving

A: Arts-loving

R: Rejuvenating

I: Invigorating and Inspiring

S: Smiles to the World

 

필자는 올림픽과 올림픽 정신, 올림픽 가치, 올림피즘, 올림픽 이상 그리고 올림픽 표어인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 모두 함께를 존중한다. 그러나 더불어 미래 지향적인 올림픽 문화와 레거시 확산을 위해, 우리 모두 각자의 올림픽 표어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 그림 7 세느강 올림픽 개회식 예상도

) 그림 8 2024 파리 올림픽 메달 디자인/ 출처 : website 2024 파리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정보2024. 5. 17. 12:38

[중국수영선수들 도핑스캔들해명 위하여 WADA회의(517) 소집하다]

 

 

1.  중국수영선수들 도핑스캔들에 대하여 미국도핑방지위원회(USADA), WADA의 반쪽자리진실(half-truths) 해명 고발하다(52일자)

 

 

세계도핑방지기구(WADA)는 최근 중국수영선수들의 도핑스캔들로부터 비롯된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도핑방지기구(USADA)는 현 사태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강조하는 16페이지짜리 문서를 새롭게 만들어 WADA에게 계속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지난 4New York Times지와 독일 ARD방송이 공개한 케이스에 대한 반발이 전임 스위스 검사인 Eric Cottier가 주도하는 독자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발표와 함께 WADA측의 위기관리 차원에서의 홍보노력에도 불구하고 식지 않고 계속 수면에 떠오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도핑방지기구의 이러한 조사에 대하여 자료제공결정소식과 함께 이 움직임은 중국 스캔들이 터지기 전부터 WADA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USADA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는 외신보도가 있었습니다.

 

WADA USADA관련 당사자들간의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USADAWADA2021년에23개 양성반응검사결과가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기에 중국 선수들이 Tokyo2020/2021올림픽에 출전이 허용됨으로 중국에 많은 수영 메달을 획득하게 한 빌미를 주었는데 뒤늦게 이에 대한 상세한 조사결과를 사후에 적시한 문건 공개에 대한 반응으로(in response to WADA’s publishing of a document intended to detail the handling of the 23 positive tests that were not originally made public in 2021, therefore allowing for the athletes to compete in the Tokyo Olympics and rein in plenty of medals for China) 공격을 하면서 사실들과 정보보고결과가 조율된 고의성 도핑에 대한 진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WADA는 이러한 도핑양성반응에 대한 조사에 진작 착수 하였어야 함”(The facts and intelligence also support a finding of coordinated intentional doping such that WADA should have initiated an investigation into the source of these positive tests) “하지만 WADA는 조사에 착수하지 않음으로 모든 깨끗한 선수들이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함”(But it did not, failing all clean athletes)이라고 진술하였다고 합니다.

 

약물반응검사결과가 이루지 지지 못한 것과 경기력향상약물(performance-enhancing drug)trimetazidine (TMZ)에 대한 등록된 흔적 찾기를 못한 이유가 그룹오염케이스 때문이라는 것(due to a case of group contamination)WADA이러한 파일을 검토할 때 모든 과정과 질문 하나하나에 대하여 적용하였다는”(followed every process and line of inquiry when reviewing this file) 것을 확실히 해주는 자주 묻는 질문(FAQ)지에 발행한 후에 조차 또 다른 쟁점으로(the other point of contention)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USADA를 비롯한 많은 다른 이들도 이에 대하여 공감하고 있지않으며 Paris2024올림픽에 앞서 WADA가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하여 시급한 개혁이 필요하는 지적을 계속해서 제기하면서 반쪽짜리 진실을 두배로 부풀리는 것과 WADA자체의 규정대로 실시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자기합리화를 한다는 것은 심히 우려를 느끼게 하는 일임”(The doubling down on half-truths and self-serving rationalizations for failing to enforce its own rules is deeply concerning)이라고 USADA측은 성명서를 통하여 비판하면서 페어플레이를 존중하는 사람들은 23개 양성검사결과를 꽁꽁 숨겨 놓았던 것과 관련하여 WADA가 제공한 답변들에 대하여 전적으로 수긍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Those who value fair play remain completely unsatisfied by the answers being provided by WADA regarding its sweeping of 23 positive tests under the carpet)이라고 불만을 표하였다고 합니다.

 

WADA는 일련의 발생한 것들은 불가피하였다(the events that followed were unavoidable)고 주장하면서 외부의 법적 자문은 물론 과학과 입증 가능한 사실에 근거하여 WADA는 불가피하게 스포츠중재자판소에 제소하는 것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음”(Based on the science and the verifiable facts, as well as external legal counsel, (WADA) decided not to take what inevitably would have been a doomed appeal to the 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이라고 성명서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4월말 독일 ARD방송기자들 중 한 명인 Hajo Seppelt기자는 대부분의 중국수영선수들이 대회참가를 위해 투숙한 호텔에서 섭취한 오염된 음식이 이슈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내놓은 WADA의 의혹과 관련하여 34개 질의 사항에 대하여 기사를 게재하였는데 그는 여러분이 이러한 미국도핑방지기구 웹사이트에 실린 질의응답내용을 읽으면 왜 WADA리더십의 신뢰도가 중국 사태로 인해 추락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임. 그들은 가장 쉽고 명백한 질문에도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If you read this Q and A by @usantidoping you understand better why the credibility of the WADA leadership is tumbling down because of the China affair. They are not able to respond to the easiest obvious questions)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Witold Banka 가 회장을 맡고 있는WADA는 전세계 스포츠와 해당국제연맹들을 감시하게 위하여 매년 예산으로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미국정부의 기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WADAUSADA가 반복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쟁점으로 대립하고 있는데 미국의 금전지원삭감을 무기로 활용한다면 WADA에대한 압박 메커니즘으로 작용될 소지도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2.  최근 양상 (514일자 외신 보도 기사 내용)

 

Travis Tygart USADA회장과 Witold Banka WADA회장 두 사람은 누구도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Travis Tygart USADA회장은 중국수영선수들 상황을 잠재적인 은폐”(potential cover-up)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미국대표팀선수위원회(Team USA Athletes’ Commission)와 세계선수협회(World Players Association)도 참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WADA는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오늘날까지 우리의 입장을 바꿀 어떠한 근거도 생산되고 있지 않음. 근거 한 조각 없이 WADA에 대하여 매우 심각하고 명예훼손적인 주장이 제기되고 있음. WADA는 그러한 혐의 주장이 근거 없는 낭설로 거부하는 바임”(To this day, no evidence has been produced that would change our position. Very serious and defamatory allegations continue to be made about WADA without so much as a shred of supporting evidence. WADA continues to reject those allegations as entirely baseless)

.

Seppelt가자는 자신의 SNSKamila Valieva러시아 피겨스케이팅선수가 그럴듯한 오염 논리를 주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despite also alleging a possible contamination theory) Beijing2022동계올림픽에서 같은 약물(TMZ)검사 양성반응조사결과 후 1월에서야 자격정지 받은 바 있음을 지적하였다고 합니다.

 

 

 

 

513() WADA는 금주 하반기에 자신들의 시스템내에서 심장 약품처방흔적이 있는 것으로 발견된 23명의 중국수영선수들이 연루된 상황에 대한 설명회(an extraordinary session later this week to address the situation involving 23 Chinese swimmers who were found to have traces of a prescription heart medication in their system)를 가질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WADA425일 개최된 집행위원회가 이미 동 건에 대하여 회의를 가진 바 있는데 동 설명회가 517() 현지시간 12시에 화상으로 이루어 진다고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4월 중 WADA는 중국수영선수들이 2021Tokyo올림픽개최전 trimetazidine약물 양성반응조사결과(tested positive for trimetazidine)를 받은 바 있다는 발표에 따른 비판에 직면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수영선수들은 자격정지조치 라던가 징계조치를 받은 바 없는데(neither suspended nor penalized) WADA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양성반응결과가 수영선수들이 투숙했던 호텔에서 섭취한 음식이 오염된 것에 기인한다는 설명을 인정했기(WADA acknowledged the explanation provided by Chinese authorities attributing the positive results to food contamination at a hotel where they had lodged) 때문이라고 합니다.

 

“WADA 집행위원회의 목적은 집행위원들에게 상황에 따른 WADA의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WADA전문가들이 더 많은 설명을 제공해줌으로 혹 석연치 않은 질의에 대하여 질문을 할 수 있는 자리였음”(The objective of the Board meeting is to provide members with the opportunity to be further informed on this important matter by WADA experts and to be able to ask any questions that they may have)이라고 WADA는 성명서를 통해 밝혔다고 합니다

 

Travis Tygart USADA회장은 현 상황에 대하여 양성반응결과가 당시 공개되지 않은 점을 주목하면서(noting that the positive tests were not disclosed publicly when they occurred) 가능한 은폐”(a possible cover up)이라고 특정 지었다(characterised the situation as a "possible cover up)고 합니다

 

 

WADA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전 스위스 검찰청 검사(a former Swiss public prosecutor)Eric Cottier의 법률서비스를 받기로 하고 동 사건을 처리하는데 법률적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Thomas Bach IOC위원장은 사안에 대한 WADA측의 접근방식에 대하여 지지의사를 발표하였는데(expressed support for WADA's approach to the matter), 그는 만일 중국선수들이 혐의에서 벗어날 경우 잠재적으로 Paris 2024올림픽에 출전할 있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He revealed that if the Chinese swimmers are cleared, they could potentially participate in the upcoming Paris Olympics later this year )고 합니다.

 

 

*References:

-insidethegames

-New York Times

-ARD독일 방송

-WADA website

-IOC website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5. 16. 09:50

[김운용 전 IOC부위원장이 만난 장웅 북한 IOC위원은 남북스포츠교류의 징검다리 역할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

 

 

북한 최고의 스포츠외교관인 장웅 북한 IOC위원과 필자는 국제스포츠계 공식석상에서 김운용 전 IOC부위원장의 국내사법문제로 국제스포츠계에서 활동이 정지된 2004년부터 필자는 김운용 IOC부위원장의 뒤를 이어 북한의 장웅 IOC위원 겸 국제태권도연맹(ITF)총재)와 가장 긴밀하고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Athens2004올림픽 당시 IOC본부호텔인 아테네 힐튼호텔 및 2007년 과테말라 IOC총회 당시 장웅 IOC위원과 함께)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유치활동에서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보이지 않는 자문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남북 스포츠 교류징검다리역할]

 

지난 10년 동안에 남북관계는 많은 일이 있었다. 3년간의 민족상잔을 겪고 50년 만에 남북화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올림픽 선수단이 시드니올림픽에서 ‘KOREA’라는 팻말을 들고 같은 유니폼을 입고 동시입장을 하며 세계의 갈채를 받은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에 북한은 핵개발을 해서 6자회담이 시작되더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태까지 벌어졌다. 남북한 선수단이 50년간의 적대행위를 끝내고 미·중의 핑퐁외교를 연상시키며 국제스포츠 사회에서 국제 룰에 따라 경쟁과 협력의 길을 가던 일도 역사가 되어버렸다. 그 과정에 중간에 서서 북한의 체육을 국제화하고, 남북의 다리 역할을 한 사람이 장웅 IOC 위원이다.

북한에는 권력을 가지고 있든가, 정치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장 위원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낯익은 사람이다. 많은 한국 체육인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북한 스포츠의 얼굴인 것이다.

장웅은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체육교육대학을 나왔다. 한국동란이 끝난 1956년부터 10년간 군복무를 마쳤고 1970년에서 1974년까지는 체육전문학교에서 농구 강의도 했다. 큰 키가 말해주듯이 원래 농구 선수다. 그의 북한 스포츠계 등장은 1980년에 북한체육위원회 부서기장, 1985년에 북한체육위원회 서기장이 되면서부터다. 가장 뚜렷하게 외부 세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0~1991년 사이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에서 있었던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에서였다. 남북단일팀은 지바 탁구대회에서 한반도기를 내걸고 세계를 제패했다. 그가 한 말 중에북경아시안게임 등 여러 목적을 위해 남북체육 대표들끼리 회담에서 합의 본 것이 20번도 더 되는데 그때마다 상부에서 정치적 이유로 부결되었다. 체육인들끼리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1994
9월 필자가 파리 IOC총회에서 태권도를 올림픽정식종목으로 넣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때 현장에는 태권도를 방해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 가라테 연맹 관계자(Delcoart 회장 등), ITF(국제태권도연맹) 관계자 등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있었다. 그때 장웅 북한 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이 나타나자 우리측 인사가 항의를 했다 한다. 그랬더니 장웅은그런 게 아니다라며 부드럽게 말하고, 딴말을 안 했다 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2000
년 들어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태양정책(햇볕정책)과 더불어 남북화해 무드가 한창 일어날 때 리우데자네이루에서 IOC 집행위원회가 열렸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건 선수선발 등 복잡한 문제 때문에 할 수 없었다. 반면 동시입장은 독일의 예도 있고 경기는 따로따로 하니 선수권익에도 별문제 없는 듯 생각되어 필자가 사마란치한테 제의했다. 사마란치는 원래 정치적 센스가 있는 사람이고 IOC가 평화공존을 외치는 단체라 대찬성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곧 집행위원의 동의를 얻어 남북한 국가원수에게 제안서를 보냈다.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안 사실을 꺼내도 반응이 없었고 장웅도 아무 말 못했다. 각계 대표회의에서도 거론했지만 아무 말 없었다. 후일 장웅은 나에게남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말했으면 김 선생(필자)이 고생을 덜 했을 터인데 괜히 고생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계속 IOC와 남북간에 교신이 있었지만 늘 그렇듯이 북에서는 회신이 없었다. 그런데 시드니에서 장웅을 대표로 하는 북한대표단과 IOC 위원장, 필자가 교섭을 시작하게 됐다. 공항에 내리면서 장웅 위원이 가능성을 비추기도 해서 사실 좀 안심하기도 했다. 하루면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국호 문제는 코리아(KOREA)로 귀결되었고, 국기는 한반도기로 합의를 보았다. 한반도기는 이미 지바 세계탁구대회 단일팀 구성 때 써 본 일이 있었다. 유니폼은 우리가 제공하고, IOC 4만 달러의 비용을 책임졌다. 문제는 양쪽 선수의 수였다. 체면 상 반반이 제일 좋은데 우리는 참가선수가 300여 명인 반면 북한은 실제 65명밖에 안 되었다. 외형 상 우리가 150명씩 주장하다 안 되었고 결국 100명씩도 안되어 장웅이 평양에 전화연락을 해 IOC 20명을 IOC비용과 비자(VISA) 조치 등을 해서 중국을 경유해 추가로 북한에서 초청하여 90명씩으로 하기로 하고 급진전, 합의를 보았다. 물론 경기는 자기 국기를 쓰고 별도로 참가, 서로 응원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상호응원, 상호방문 등을 하였다. 개회식에서는 전 세계가 격려하고 경기장 10만 관중과 귀빈들이 기립박수를 하는 가운데 남북이 동시입장을 하였다. IOC제의에 따라 상징적으로 장웅 위원과 필자도 함께 행진했다. IOC 위원이 선두에서 함께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행진만 하고 빠져 나왔다.

 

< 필자와 장웅 IOC 위원이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중 WTF ITF 협력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시드니에서 필자가 주최하는 리셉션에도 처음으로 북한 임원진이 참석했고 서울에서도 안상영, 유종근, 최재승, 이건희 등 많은 손님들이 참석했다.

개회식 동시입장이 끝난 수일 후에 북한선수단이 체육협력을 위해 100만 달러를 지원 요청 해왔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돈 안주고 협력이 된 최초의 케이스로 3억 달러 가치는 있다고 할 정도였다. 갑자기 자원이 없어 격려금, 판공비, IOC지원금 등을 끌어 모아 시드니올림픽 폐회식 전에 50만 달러를 지원해 주었고 나머지 50만 달러는 후에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다. 장웅의 요청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육위원회 지원금이라고 써주었다. 서울에 와서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한국선수단을 위해 뜰에서 환영회를 베풀어 주었다. “이번에는 남북이 동시입장을 이룩했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시간도 있고 하니 한발 나아가서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남북이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남북의 경기력이 워낙 차이가 나서 북한 경기력을 비슷하게 끌어 올려야 하는데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더니 김대중 대통령이체육회장이 도와주시오라고 했다. 통일부에 이야기를 했더니스폰서 잡으세요라고 했다. 그때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서 지원한 것이 나중에 모두 국가의 허가 없이 했다 하여 횡령으로 몰렸다.

그 후 한국의 태권도 시범단을 북한으로 보냈고 북한시범단을 서울로 오게 했다. 모두 장웅 위원의 협조 덕분이었다. 필자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WTF를 떠난 후에는 아무리 WTF가 요청해도 남북교류는 성사가 안 되었다 한다. 1981년에 있은 IOC 지시대로 WTF ITF의 통합문제가 늘 현안이었다. 장웅은 ITF 창설자 최홍희 총재가 2002년 사망하자 뒤를 이어 비엔나(Vienna)에 있는 ITF 태권도의 총재가 됐다.

 

(20021024일 북측 태권도시범단 서울공연 당시 워커힐호텔에서 환영 리셉션 후)

 


그러나 세력도 세력이지만 WTF는 올림픽종목에 들어가 있고 ITF는 그렇지 못한 상태라 동등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IOC는 모든 사람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 양측이 만나서 조금씩 기술문제부터 해결해 나가기로 잠정 합의를 하였다. 그 일환으로 내가 회장으로 있는 국제경기연맹(GAISF)에도 무도위원회를 만들어 ITF가 매년 참석하게 했다. 장웅 위원을 GAISF 무도위원장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물러난 후 네덜란드의 장사꾼인 베르브루겐 GAISF 회장 대리(사이클연맹 회장)가 장 위원을 빼버렸다.

WTF
ITF의 통합문제는 아직도 현안이다. 한 종목에 국제연맹이 두 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두 개 있던 것이 하나로 통합한 것은 야구와 배드민턴이 있다. 그 두 종목은 통합 후에 올림픽에 들어갔고 태권도는 내가 IOC 부위원장이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통합 전에 먼저 올림픽에 넣은 것이다. 장웅 위원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에도 참석했고 마지막으로 온 것은 강원도 초청으로 2007년에 춘천, 서울을 방문했을 때였다. 연락이 와서 신라호텔에서 식사를 같이했다.

2004
년 필자가 말도 안 되는 평창동계올림픽 방해 모함으로 정치적 테러를 당했을 때 장웅 위원이 영수증이라고 서신을 보내왔다. ‘자기들은 영수증 쓰지도 않고 액수도 안 쓰고 도장도 안 갖고 다니지만 민족적 차원에서 도움을 받았고,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자기 편지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시작할 때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가 장웅 위원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여 주선해 주기도 했다. 초창기에 백지상태였던 강원도에 무척 많은 IOC 위원을 소개해 준 생각이 난다. 인천아시안게임 유치를 위해서 많은 협조를 해주었고, 광주유니버시아드 유치 때는 광주(시장 박광태)가 한반도 평화통일에 이바지한다는 슬로건에 맞춰 북한 대학생의 참가를 희망한다고 그 뜻을 전했더니 흔쾌히 동의해 주기도 했다.

시드니올림픽 개·폐회식 동시입장을 시작으로 상호 지원, 교류, 상호 응원 공동 훈련 등 남북 체육 교류는 세계의 관심 속에 발전했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 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민족화합에 있어 스포츠가 앞설 수는 없고, 스포츠는 정치의 영향 하에 있는 것일까?

2001년 이금홍, 윤강로, 최재승과 평양에 갔을 때는 모란봉 초대소에 유숙했고 필자는 덩샤오핑이 묵었다는 방에 들었다. 남북체육교류, 태권도 통합문제 등 기탄 없이 토의했고 덕분에 태권도 도장, 체육선수촌도 둘러보았다.

 

 

 

(평양모란봉초대소 뒤편 을밀대에서 좌로부터: 이금홍 WtF사무총장,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WTF총재, 최재승 국회문광위원장 및 필자/하단 우편 사진은 장웅 북한 IOC위원 등 북한체육계대표와 김운용-최재승-필자와의 체육관련 협력 회동 장면)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도 동시입장을 하기로 로게 IOC 위원장 및 장웅과 필자가 합의를 보았는데 북한선수가 1명밖에 출전 자격을 못 따는 바람에 무산됐다.

모스크바 IOC총회 때 있었던 위원장 선거 때도 장웅 위원은 필자를 열심히 지원해 주었고 이번에는 아시아인이 되어야 하고, 또 되는 줄 알았는데 사마란치의 철저한 방해 공작으로 지지표가 급속히 날아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고 했다. 장웅은 소신대로 국제스포츠를 통해 더 좋은, 더 평화로운, 더 우호적인 세계를 꿈꾸며 달리고 있는 북한 체육의 살아있는 거인이다.

IOC 수석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5. 15. 11:36

[OCA총회(Bangkok on 11 May 2024), 쿠웨이트에 OCA본부지속유지 결정과 OCA헌장 70% 개정하기로 결정(OCA회장 재 선출 논의 이슈는 실종)]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Olympic Council of Asia)총회가 511()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당초 예상하기로는 20235월 역시 방콕에서 열렸던 OCA총회에서의 OCA회장 선거에서의 불미스러운 결과로 새로운 OCA회장 선거와 관련된 주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엉뚱하게도 지난 42년간 이나 OCA본부가 소재하였던 쿠웨이트로 재연장하면서 OCA 본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총회로 전락하였습니다.

 

OCA는 지난 42년간 쿠웨이트 소재 OCA본부가 안정감과 일보 전진을 위한 발사대(a launching pad for further progress)역할을 제공하여 주는데 기여하였다고 하면서 총회 주안점에 대한 초점이 다소 빗나간 느낌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쿠웨이트 정부가 우아하게 OCA본부건물 임대만료시기인 20249월이후에도 계속 사용하도록 임대기간을 연장해 준다는 것(graciously extended the lease of the OCA headquarters site, which was originally due to expire in September 2024)을 제43OCA총회에서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OCA198212월 뉴델리 아시안게임 개최에 즈음하여 기존의 AGF(Asian Games Federation)를 해체하고 본부는 당시 오일달러로 아시아스포츠계의 패권을 장악한 쿠웨이트 IOC위원 겸 NOC위원장인 故 Sheikh Fahad를 맹주로 아시아스포츠계가 재편된 시점입니다.

 

아시안게임은 2023 9~10월 중국 Hangzhou에서 개최된 제19회아시안게임의 괄목할 만한 성공에서 보여 주듯이 세계수준의 종합스포츠제전으로 성장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Raja Randhir Singh OCA회장대행)

 



쿠웨이트에 설치한 OCA본부를 통해 42년 간 OCA는 아시아대륙을 5개 지역으로 분류하고 아시아올림픽운동의 발전을 위한 진보를 거듭해 왔다(has progressed, flourished and developed in all five zones)고 自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OCA는 총회에서 쿠웨이트에 OCA본부를 유지하도록 배려해 준 쿠웨이트 국왕(His Highness the Amir of Kuwait Sheikh Meshal Al-Ahmad Al-Jaber Al-Sabah for maintaining the headquarters in Kuwait)에게 감사의 뜻을 표명하였다고 합니다.

 

45개국 NOCs대표들이 참석한 방콕 개최 금번 제43OCA총회에서는 다양한 안건들이 토의되었는데 OCA총회는 OCA헌장의 거의 70%에 달하는 규정을 개정하기로 합의하였다(voted to amend almost 70 per cent of its constitution) 고 합니다.

 

Raja Randhir Singh OCA회장대행은 우리모두는 각각 다른 아이디어와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맡은 바 임무와 결정사항에 대하여 존중과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임. 이것이 아시아가 올림픽운동에서 우리의 힘과 다양함 속에서의 단결이라는 독특 함의 평가를 받게 해 주는 것임.”
(We all have different ideas and different opinions - but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at we show respect and understanding in our work and in our decisions. This is what makes Asia unique in the Olympic Movement - our strength and unity in our diversity.)

 

 

 (Bach IOC위원장은 영상메시지로 OCA가 아시아선수들을 지원해 주는 것에 대해 치하하였음)

 

 

Raja Randhir Singh OCA회장대행은 금번 총회에 대해 우리가 OCA헌장에 주요한 변화를 가져오도록 할 것이기 때문에 OCA역사상 가장 중요한 총회들 중 하나”(one of the most important General Assemblies in the history of the OCA because we will be making major changes to our Constitution)라고 묘사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지원과 지도편달을 해준 OCA헌장개혁위원회와 OCA집행위원회 그리고 IOC와 특히 Thomas Bach IOC위원장의 리더십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이러한 헌장 개정 노력은 OCAIOC의 올림픽헌장에 준하여 향후 전진하도록 해 줄 것이지만 우리의 자율성과 독립성 및 아시아의 특성을 유지하게 될 것이며 개혁 과정이 거의 마무리 단계로써 여러분의 성원과 협조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함께 전진하기를 바람”(This will enable the OCA to move forward, following the Olympic Charter of the IOC, but also maintaining our autonomy, independence and Asian characteristics. The reform process is nearing completion - and we need your support and cooperation today to see it through and move forward together.) “우리는 OCA 의 성공스토리로 이어가는 다음 장으로 이동하면서 긍정적이고 자부심을 느끼는데 많은 이유가 있음”(We have many reasons to be positive and proud as we move into the next chapter of the OCA's success story.)이라고 덧붙이며 최근 들어 스포츠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각국 NOCs들이 IOC의 지침을 존중하도록 촉구하였다(also expressed his concern about the politicisation of sport in recent months and urged National Olympic Committees to respect the IOC's directives)고 합니다.

 

Maris Sangiampongsa 태국외교부장관은 202411월 제6회 아시아실내무도대회를 다시 개최함으로 OCA에 대한 봉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ready to serve the OCA again by hosting the 6th Asian Indoor and Martial Arts Games in November this year)고 전제하면서 준비상황은 시기 적절하며 특히 예산배려조건에 있어서 더욱 그러함”(The preparations are timely, especially in terms of budgetary considerations)이라고 자신감을 언급하였다고 합니다.

 

OCA공로상은 우즈벡 NOC사무총장인 Mr Oybek Kasimov에게 수여되었는데 제3회 아시아청소년게임이 2025910~25일 우즈벡 수도인 Tashkent에서 열릴 예정인데 27개 종목, 29개 세부 종목에 244개 이벤트가 선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Hanngzhou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HAGOC)은 제43OCA총회에서 OCA 스포츠 및 환경 상 수상 단체로 선정되었는데 HAGOC은 탄소방출제로를 이룩한 사상 첫 아시안게임을 조직함으로 역사적인 대회를 만들었다(HAGOC made history by hosting the first-ever Green Asian Games with zero carbon emissions)고 합니다.

 

43 OCA총회는 3개 신규 종목에 대한 잠정 인증을 해 주었는데(OCA grants provisional recognition to three sports) 1)아시아 서핑 연맹(Asian Surfing Federation)2) 아시아 태평양 Tchoukball 연맹(Asia Pacific Tchoukball Federation) 그리고 3) 아시아 잔디볼링연맹(Asian Lawn Bowls Federation) 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Song Luzeng이 위원장으로 있는 OCA스포츠위원회는 상기 3개 연맹이 지난 311OCA스포츠위원회 온라인 회의를 통하여 상세한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한 바 있다고 설명하였으며 OCA집행위원회는 430일 이를 승인하였고 511OCA 총회가 최종 승인한 것(the final seal of approval)이라고 합니다.


 

*References:

-insidethegames

-OCA website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5. 13. 22:27

[한국 체육 및 정치계의 거물로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한 故 김택수 제4대 한국 IOC위원에 대한 故 김운용 前 IOC부위원장의 회고담]

 

 

필자가 1982년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KOC)특채 5급으로 한국 체육계에 입문 한 이후 첫 국제업무가 故 김택수 IOC위원에 대하여 당시 Samaranch IOC위원장이 방한하여 올림픽훈장추서식 행사에 따른 정주영KOC위원장 통역과 IOC훈장추서식 불어 사회 및 통역이었습니다.  

 

(좌로부터: 김집 대한체육회 부회장, 김세원 KOC부위워장, 조상호 SLOOC 사무총장<이후 체육부 장관 역임> 정주영 회장<가려져 있음>통역 중인 필자, Samaranch IOC위원장,, 노태우 SLOOC위원장, 이영호 체육부 장관 /고 김택수 IOC위원 훈장추서식에서 추서 경위를 불어로 낭독하는 필자)

 

 

[김택수 전 대한체육회장 2010. 10.12 <통 큰 지원으로 올림픽 첫 금수확>]

 

이 번 주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전할 게 있다. 지난 9 26일자(지령 958)에 김동길 교수를 이 코너에 소개했다. 그런데 얼마 전 김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글을 잘 써줘 고맙다” “역사와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글을 남기는 게 큰 의미가 있다는 등 감사인사와 격려를 전해왔다. 그리고 한 가지. 필자도 언급했고, 또 많은 자료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는 부문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 아무 관계 없다고 설명했다. 가능하다면 <일요신문> 등 언론이나 역사학자들이 이 부분을 올바르게 재조명했으면 한다.

금주의 인물은 김택수 회장이다. 김 회장은 한일합섬의 김한수 회장의 계씨(남동생)로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경남 김해 출신의 체육행정가이며 정치가이다. 처음 만난 것은 5·16 군사정부 시절 내각수반실에서 근무할 때였다. 김택수라는 젊은 청년실업가가 김현철 내각수반을 만나러 한두 번 들르곤 했다. 무슨 일로 방문했는지는 몰랐고 후에 생각하니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공화당에 다리를 놓기 위해 찾아다닌 것 같다. 이때 군정이 민정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내각수반으로서 김현철 수반은 군 출신이 아니지만 발언권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때 내각수반실의 현역장교는 필자 한 명이었다. 이후 필자는 주미대사관으로 전임이 되어 못 만났는데 그는 제3공화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회의원이 되어 중용되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그 후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미주리 주 웨스트민스터대학(처칠 영국 수상이철의 장막연설을 한 곳)에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러 왔을 때 김택수 의원이 동행해 만났다. 그 자리에는 밴플리트(Van Fleet) 장군, 데마르코(Demarco) 한미재단 이사장, 머피(Murphy) 하원상공위원장 등도 뉴욕에서 내려왔다.

김택수는 6, 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7대 때는 공화당 원내총무를 지냈다. 이때 소위 국회별관에서 야당을 빼놓고 장소를 기습적으로 옮겨 3선 개헌을 통과시킨 것으로 유명해졌다. 3선 개헌은 김종필 계열도 반대한 것을 박정희 대통령이 김종필을 직접 설득하고, 이후락이 김형욱과 함께 활약하며 관철시켰다.

이미 통과시킨 상태에서 야당이 아무리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는 노릇이었다. 김택수 총무는 일시에 거물이 되었다. 그 직후 청운동의 삼청각에서 모임이 있다고 박종규 실장이 가자고 해서 갔는데 장경순 부의장, 김현옥 시장, 최치환 의원 그리고 김택수 원내총무가 참석했다. 김택수 총무를 위한 한숨을 돌리는 자리였다. 김택수가 한참 있다가 가고 난 직후에 박종규가 최치환을 때릴 것처럼 공격했다. 그 이유는 최치환이 이후락 실장에게 박종규가 부패했다고 일러바쳤다는 것이었다. 겨우 장경순 부의장과 필자가 박종규를 뜯어 말리고 최치환을 피신시켰다.

그 후 김택수는 8대 국회에는 안 들어가고 대한복싱연맹 회장으로 재임했다. 신당동 집을 너무 크게 지었다고 박정희 대통령 눈 밖에 나서 공천을 못 받았다 했다. 그때는 혹 박 대통령이 헬리콥터로 서울을 비행하다가 청기와를 얹은 큰 집을 발견하거나, 에스컬레이터를 집안에 설치했다는 보고가 있다든가, 재벌이라도 어마어마한 묘지를 조성한 사람은 있으면 모조리 빛을 보지 못했다.

김택수는 고등학교 시절의 축구선수 생활이 인연이 되어 1961 35세에 경남체육회 회장을 맡아 체육행정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66년부터 73년까지 대한복싱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66년에는 아시아 아마복싱연맹회장 겸 국제아마복싱연맹 부회장(각 대륙별로 2명씩)에 선출되었고 1971 11월에 김용우 회장(전 국방장관)의 뒤를 이어 대한체육회 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에 선출되어 79 2월까지 역임했다.

필자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1971 2월에 필자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 되었을 때였다. 당시 김택수는 복싱연맹 회장이었다. 이때 대한체육회는 1년 예산이 국고보조 1억 원으로 운영될 때로 경기단체 회장들이 파워가 있어 모금을 하든지, 아니면 자기 돈을 내놓든지 해서 경기단체를 운영하곤 했다.

1972
12 9일 대한태권도협회 중앙도장(지금의 국기원) 준공식에는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이 김종필 총리와 함께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고, 본격적인 관계는 1974년에 필자가 체육회 부회장 겸 KOC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에 부임하면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국제관계는 필자에게 맡긴 셈이다.

김택수 회장은 정치권력을 휘두르던 정치 거물이라 그런지 체육회장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것 같다. 민관식 문교부 장관과는 견원지간이어서 수시로 서로를 무시했다. 민관식 장관은 자신에게서 촌지라도 받은 사람은 자기 수하처럼 생각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 자라고 험담하기도 했다.

김택수 체육회장은 1976년 여름 몬트리올 올림픽에 갔을 때도 김영주 주 캐나다 대사와 충돌했다. 김영주 대사는 필자가 외무장관 비서관 때 기획실장이었다. 이때 몬트리올 지역에는 교포도 별로 없어 응원단도 없었다. 여자배구경기 때는 필자가 태권도 사범을 10명씩 데리고 가서 응원했다. 기죽지 말라는 배려였다.

김택수 회장은 국제적으로는 한국이 특별히 국제대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1년 예산 1억 원 가지고 선수촌까지 움직여야 하니 한계가 있었다. 골격만 서 있는 선수촌은 지금과는 달랐고 대한체육회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것이 급선무였다. 할 수 없이 금메달 따면 사재 1억 원을 주겠다고 공약을 했는데 효력을 보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1948 KOC의 런던올림픽 참가 이후 28년 만에 첫 금메달을 딴 것이다. 이때 일본선수단은 200명 한국선수단 60, 북한선수단 40명이었는데 북한도 사격에서 금을 땄고적을 조준하듯이라는 말이 문제가 됐다.

이때 스포츠외교는 엄두도 못 내고 양정모에 이어 여자배구팀(조혜정, 유경화, 유정혜, 변경자, 백명선, 윤영내)이 구기사상 최초의 메달()을 따냈고 유도 무제한급에서도 조재기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양정모에게 준 1억 원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무척 큰돈이었다.

1974
년 박종규 사격회장이 근신 중이라 박 회장의 간청으로 대신 체육회 부회장인 필자(WTF 총재)가 가서 멕시코의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Mario Vazquez Rana)와 대결하여 표결에서 6240으로 이겨 42회 세계사격선수권 대회를 유치해왔다. 이때 같이 유치해 온 세계역도선수권대회는 박종규가 청와대에 로비를 해서 두 개를 할 수 없다고 취소시켰고 사격대회에 그때 돈 10억을 보조받아 성공시켰는데 김택수 회장은 필자한테 부회장이 사격대회를 유치해 온 것이 잘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1977
년 이원경과 둘이서 아이보리코스트(Ivory Coast)의 아비장(Abidjan)에서 열린 NOC총회에 갔다오니 장기영 IOC 위원이 사망했다. 북아현동 댁으로 조문을 갔는데 곧 후임 IOC 위원 추천을 해야 했다. 그때는 우리나라 스포츠가 국제활동이 없었다. IOC 위원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때였다. 한번은 김종필 의장이 말하기를 김택수가 와서자기가 IOC 위원이 됐는데 1년에 한 번 회의에 간다고 하는데 역할이 무엇이냐 물어본 일도 있었다. 청와대에서 문교부를 통해 지시가 와서 필자가 선임부회장이므로 KOC 위원총회를 소집하여 결의를 하고 IOC에 추천했다. 그렇게 김택수는 1977 6 16일 장기영의 뒤를 이어 IOC 위원이 되었다. 그 나름대로 선수육성과 스포츠외교에도 관심을 가져 1973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는 직접 선수단을 이끌고 참가하여 공산권과 간접적으로나마 교류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1979년에는 다시 국회에 진출했고 박 대통령 서거를 맞이했다. 곧이어 공화당 총재에 김종필이 선출되고 김종필을 최고의 정치가로 따르던 김택수는 국회헌법개정심의 특별위원장을 지내면서 3김에 의한 대통령 직선을 겨냥해 당내 화합과 결속을 다지면서 김해의 지역발전에 노력했다. 그러나 12·12 신군부의 등장으로 칩거생활에 들어갔고 88서울올림픽 유치가 시작되자 다시 IOC 위원으로서 표면에 나왔으나 국제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남덕우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민체육심의 회의에서 박종규가 강력한 추진을 주장할 때 필자 외에는 모두가 경제적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다. “(하다가) 안 되면 모두 그만두자고 박종규가 제안하자 당시 김택수 IOC 위원은당신이나 그만둬, 나는 안 그만둬라며 지금 상황으로는 자기 한 표밖에 안 나올 것이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1981
년 바덴바덴(Baden Baden)에서 김택수는 IOC 위원의 자격으로 필자와 함께 국제회의 대표로 참가하여 나름대로 활약했다. 서울올림픽 유치가 성공한 후 조직위원회가 구성되고 준비가 시작되자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으로서 IOC 연락을 맡고 서울방문 IOC 위원들을 접대했는데 꼭 종로에 있는 장원으로 부부를 초대했다. 정통 한식은 장원이 가장 좋다는 것이었다. 김택수는 비록 어학이 안 돼 통역을 대동했지만 나름대로 국제관계를 유지할 줄 아는 멋쟁이였다. 스타일이 있었다.

김택수 IOC 위원은 LA 올림픽을 앞두고 1983 7 17일 암으로 별세했다. 박 대통령의 3선 개헌을 성사시킨 거물 정치인인 그는 한국체육이 걸음마를 할 때 체육행정을 맡아 국제무대에 발을 내딛고, 공산권과의 스포츠외교도 첫 단추를 끼우고, 또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단체종목 올림픽메달도 따게 만든 체육인이었다.

IOC 수석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5. 13. 09:34

[한국 역대 IOC위원 중 제3대 백상 장기영 IOC위원 겸 한국일보창간사장에 대한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의 회고담]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은 한국이 낳은 최고의 스포츠외교관 이었습니다.

그분의 스포츠외교활동을 30여년 간 지켜보고 중요 계기 마다 그분을 돕기도 하면서 그분의 내공을 이어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KOC명예총무-KOC위원장-대한체육회장-대한태권도협회장-국기원장-세계태권도연맹 창설 총재-IOC위원-IOC부위원장-ARISF회장-GAISF회장-World Games창설회장-IOC TV분과위원장-1999강원 동계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2002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등 국내스포츠기구(대한체육회-KOC-대한태권도협회-국기원)수장-국제연맹(WTF창설총재) 겸 국제스포츠연맹총연합회(ARISF-GAISF)회장 등 거의 모든 직책을 섭렵한 한국의 스포츠외교위상을 드높인 불세출의 스포츠 외교관이었습니다.

 

[ IOC 수석부위원장(2010.10.26) <언론-체육-정치 1 3역의 뜀박질>/장기영 제3대 한국 IOC위원 편]

 

장기영은 벌써 33년 전인 1977년에 사망한 까닭에 최근에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 여러 분야에서 선각자로 이름 석 자를 또렷이 남긴 거물이다. 그는 IOC 위원으로서도 필자의 직접 선배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많았다.

장기영은 1916년 서울 출신으로 1934년 선린상업을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들어갔다. 선린상업은 사립이지만 일본인-한국인이 섞여서 공부하는 학교였고, 또 야구명문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광복 후 1950년 한국은행 부총재로 승진하였으나 1952년에 사임하고 언론계에 투신, 조선일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뛰어난 수완으로 조선일보를 재건한 뒤 1954년 태양신문을 인수,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즈를 창간하여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래서 그가 거쳐 간 많은 의미 있는 자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일보 사장으로 기억되곤 한다.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은 참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예컨대 1957년 광교 근방에 TV방송국을 열기도 했다. 아쉽게도 화재로 없어졌는데 KBS 5·16 군사혁명정부가 들어선 후에 남산에 개국했으니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영의 식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장기영은 한국일보에 이어 1960년에 서울경제신문과 소년한국일보를, 그리고 1969년에는 일간스포츠를 창간했다. 모두 최초로 한국신문사에 한 획을 그은 일들이었다.

특히 일간스포츠 창간 때는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필자가 청와대에 있었던 까닭에 필자에게 도움 요청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음으로 양으로 많이 지원했다. 이때 계창호가 수고를 많이 한 기억이 난다. 1973 5월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때는 일간스포츠의 이태영 기자(그 후 중앙일보 부국장)가 담당하여 일간스포츠 1~2면을 독점, 선수 사진까지 모두 실은 일이 있었다. 이때는 축구의 장덕진 회장이 막 달릴 때라 태권도는 왜 못하느냐는 식으로 의욕적으로 해내곤 했다. 당시 이태영 기자는 밤을 새우며 기사를 썼다.

유난히 한국일보에는 필자의 중학교, 대학교 동문들이 많이 있었다. 이태영 기자도 여권 발급에 부친(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유명한 이길용 기자)문제로 하자가 있다고 해 필자가 보증을 서서 해결해 준 바 있다.

제일 처음 떠오르는 일은 5·16 군사혁명 기간 중 독일 뮌헨의 서커스단을 서울로 초청하는 것이었다. 이때는 무엇이든 잘 안 될 때인데 공보부가 도와주어 서울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고, 한국일보는 곧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만들어 한국의 여성미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나섰다.

미스코리아는 얼굴만 예뻐서도 안 되고, 체격, 국제성, 장기, 어학 등 종합적인 미()를 갖추어야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 당시 어려운 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스코리아들은 미스 유니버스,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월드 등의 국제대회에 나가 5위 이내에 입상하는 사람도 나왔다. 미스코리아들의 국제 활동과 인연이 생긴 필자도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운영위원장이란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축사도 하고 한국일보 계획대로 지원해주는 일이다. 필자가 맡은 것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문제가 생겨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전격적으로 위촉된 것이었다.

장기영은 1961년 대한축구협회장과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되었으며 1966년 대한올림픽위원장을 맡았다. 1967년에는 IOC 위원이 되었는데 이때 사마란치도 같이 IOC 위원이 되었다. 즉 둘은 IOC 동기였던 셈이다.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즈는 서울올림픽과 선수촌의 공식 신문을 발행했고 사마란치는 올림픽이 끝난 후 장강재 회장을 한국일보로 예방하고 사의를 표했다. 그리고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코리아타임즈에서 부장급 1명씩(선재훈, 김영환, 김재설) IOC비용으로 로잔(Lausanne) IOC로 초대하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올림픽운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더 좋은 보도를 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1990년에는 다시 장강재 회장, 정태연(코리아타임즈) 사장, 선재훈, 김영환(당시 파리 특파원) IOC로 초청했다.

 

(20245월 현재 역대 한국 IOC위원 12/3대 한국 IOC위원이 백상 장기영 회장)

 


장기영 IOC 위원이 늘 KOC 행사에 와서 축사를 한 까닭에 김택수 위원장과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인 필자는 자주 만났다. IOC 위원은 원래 KOC(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IOC를 대표하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 IOC 위원에게 자기나라 권익 대변이 우선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심지어 한국은 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면 희생양으로 삼기도 하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사마란치는 장기영 사망 후에도 동기생인 장기영 일가와는 인연을 올림픽을 통해 유지했다. 사마란치는 장기영 묘소에도 찾아갔는데 몇 년 후에 장강재 회장이 사망하자 다시 이 묘소를 찾기도 했다. 그리고 장재구, 장재국, 장재근 형제들과 장강재 회장 부인(문희)은 신라호텔에서 대접했고,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장재국 사장을 귀빈으로 초청하기로 했다. 88올림픽이 인연이 돼 코리아타임즈의 정태연 사장을 IOC의 신문분과위원으로 위촉한 바도 있다. 늘 사마란치는 장강재같이 인품이 좋은 사람이 IOC 위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장강재 회장은 사양했다. 툭하면 IOC 위원이 되겠다고 자가발전들을 하는 요즘과는 참 달랐다.

지금 로잔의 IOC박물관에는 어려운 가운데에도 100만 달러를 기부한 코리아타임즈, 한국일보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현관벽에 부착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장기영 IOC 위원의 흉상이 전시돼 있다. 100만 달러를 낸다고 해서 모두 흉상이 있는 것은 아닌데 장강재 회장의 효심을 사마란치가 받아들인 것이다. 사마란치가 로잔에 IOC박물관을 지을 때 필자에게 장강재 회장에게 기부를 부탁해 보라고 해서 롯데호텔에서 만나 상의를 했더니 쾌히 승낙했던 것이다. 장기영 위원의 흉상제작과 운반 등 실무는 정태연 사장이 처리했다.

장기영의 호는 백상이다. 체육을 중시했던 고인의 뜻을 따라 한국일보는 백상체육대상을 매년 수여하는데 필자도 축사하러 매년 갔고 이승엽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스타플레이어 대부분이 백상체육대상 수상자 출신이다. 또 백상예술대상도 있어 연예인들에게 영광을 주고 있다. 지금 백상예술대상은 어마어마한 갈라쇼(Gala Show)가 되었는데 백상체육대상은 그렇게 국가의 이름을 빛낸 선수들에게 큰 영광을 주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술대상이 부럽기도 하고 체육대상의 미흡함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백상체육대상이 계속 이어져 고맙기만 하다. 필자도 88서울올림픽 후에 아호 윤곡(允谷)을 따서윤곡여성체육대상을 매년 수여하고 있다.

1976
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필자는 KOC책임자로 뮌헨 공항에 도착하게 됐다. 그런데 알래스카의 강설로 비행기가 다섯 시간이나 지연돼 파리서 갈아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뮌헨 도착은 밤 8시쯤이 됐다. 그런데 우리 태권도 사범들과 함께 장기영 IOC위원이 서서 기다리고 있어 놀랐다.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장기영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인간적이다. 이때 함께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에 갔다. 호텔은 인스부르크와 티롤이 있었는데 하나는 IOC, 하나는 NOC호텔이었다. 필자를 호텔 조찬에 초대하기도 한 장기영은 매일 오징어를 입에 물고 다니기도 했다. 한식을 달라고 했는데 마침 주위에 한식당도 없었다. 그래서 태권도 사범인 이경명이 매일 아침은 한식을 준비해 드렸다.

곧이어 76년 여름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21회 하계올림픽이 있어 김택수 KOC 위원장과 필자는 한국선수단 60명을 끌고 몬트리올로 갔다. 한번은 IOC A, NOC B 카드가 귀빈석에 앉게 돼 있는데 장기영 위원과 김택수, 필자가 지정석에 앉고 박종규, 이낙선 등 경기단체 회장은 신분증 없이 대사관이 특석표를 사서 안내하는 바람에 자리가 좀 떨어졌다. 이에 박종규 회장이 화가 난 모양인지 IOC, KOC 놈들 운운하는 욕설이 들렸다. 그래서 필자가가서 이리 오도록 할까요라고 하니 장 위원이우리도 통제 받는데 놓아 두시오하고 경기가 끝난 후 거기까지 올라가서 말없이 악수만 하고 떠났다. 그 당시 박종규는 안하무인이었다. 김택수 회장은 자기 아들한테나 앉아서 악수하지 아무한테나 그럴 수 있느냐고 나중에 화를 내기도 했다.

1977 4월 이원경 KOC 부위원장과 함께 아이보리코스트에 있는 아비장에서 ANOC 총회가 킬라닌 IOC 위원장 주재로 있었다. 거기에 갔다 오니 장기영 위원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와 북아현동 사택으로 조문을 갔다.

장기영은 정치인, 언론인, 체육인, 문화인, 경제인으로 한국이 어려울 때 여러가지 역할을 했다. 장기영은 갔지만 그가 시작해 놓은 일은 여전히 역사로 굳건히 남아있다. 장기영은 1964년 정일권 내각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임명되어 3년 반 동안 산업의 근대화와 경제자립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힘을 썼다.

금리 현실화와 유리창 행정, 연탄의 흑백논쟁 등 숱한 일화를 남기면서 한국경제의 고도 성장에 기틀을 잡았다. 1966년 필자가 UN 대표부에 근무할 때 며칠 뉴욕을 방문해 경제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도 외환 환율 걱정을 하며 수시로 서울에 연락하는 등 아주 바빴다.

그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과 1965년 방미, 그리고 66년 태국 등 아시아 제국 방문에도 수행, 경제외교에도 힘썼다. ·일국교정상화를 위하여 막후에서 일하여 왔으며 한·일간 현안문제 타결을 위해 1969년 필자가 아직 청와대 있을 때 대통령 특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같은 해 한·일 협력위원회를 창설, 창립총회 부의장도 되었다.

1971
년 공화당 종로 지구당 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1973 9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기도 했다. 또 한국일보를 통한 나무심기운동으로 새빨간 산이 오늘의 푸른 산이 되는 기틀 만들기에 이바지했다. 언젠가 언급한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타고 귀경하다가 동그랗게 빨간 산 위에 서 있는 국기원을 보고 나무가 없다하자 한국일보는 5000그루를 심어주기도 했다. 지금 푸르른 국기원에는 장기영의 도움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10만 어린이 부모찾기 운동을 벌이는 등 민족분단의 서러움과 이산가족문제에도 비상한 관심을 쏟아왔는데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서울 측 공동위원장 대리로 취임, 남북 대화와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 데도 앞장섰다.

장기영의 시절에는 한 사람이 한 두 가지 일만 하면 안 될 때였다. 장기영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경제인, 정치가, 문화인, 체육인 그리고 언론인 어느 쪽으로 봐도 그는 한국 근대화를 이끈 대표적인 거인이었다.

IOC 수석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5. 11. 12:12

IOC Culture and Olympic Heritage Newsletter May 2024 (OST: Olympic Story Telling by Prof. Rocky Kang-Ro YOON)

 

최근 IOC공식요청으로 기고한 글이 IOC공식 Newsletter 5월 특집호에 실렸습니다. 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IOC공식 Newsletter에 기고한 글인 셈입니다.

 

Paris 2024올림픽특집으로 올림픽 문화와 헤리티지 내용(ParisLausanne)을 상당히 짜임새 있고 비중 있고 정교하게 디자인한 그림과 설명으로 구성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균형 잡힌 기사와 내용으로 풍부한 읽을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필자는 Reminiscences of Paris and Tribute to the Former French President Jacques Chirac who loved most the Olympic Games in Paris”란 제목의 Paris와 관련된 추억과 에피소드를 진솔하게 기술하였는데 2008년 올림픽유치심사를 위한 IOC평가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으로 특히 Paris에서 현장실사 및 회의에서 경험했던 여러 가지 정담과 당시 Jacques Chirac프랑스 대통령 궁(Palais d”Elysee)예방 시 대통령이 칭찬하였던 제 불어 어휘에 대한 일화도 소개하였습니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정보2024. 5. 11. 10:33

[20245월부터 12월까지 주요국제스포츠기구 회의 일정 및 2025년부터 2032년까지 국제종합대회스케줄 일람표]

 

20245~12월까지 IOC-ANOC-OCA-EOC-WADA-USOPC등 주요국제스포츠기구 집행위원회 및 총회 일정을 공유합니다.

 

 

1)  59: WADA집행위원회(Canada/Montreal)

2)  511: OCA총회(Thailand/Bangkok)

3)  65~7: EOC 총회(Rumania/Bucharest)

4)  611~14: IOC집행위원회(Switzerland/Lausanne)

5)  721~24일 제142IOC총회(France/Paris)

<726~811: 33Paris 올림픽>

6)  88: IOC집행위원회(Lausanne)

7)  922: WADA집행위원회(China/Shanghai)

8)  926~28: EOC Seminar(Montenegro/Budva)

<928~30: WDSF Break Dancing세계선수권대회(China/Wuxi>

9)  1021~23: SportAccord IF Forum(Lausanne)

10) 1028~111: ANOC총회(Portugal/Cascais)

11) 1113~16: 미국 올림픽 및 패럴림픽 위원회(USOPC) 총회(Colorado Springs)

12) 1116: WADA집행위원회(Canada/Montreal)

13) 1117: WADA Foundation Board회의(Canada/Montreal)

14) 125: WADA Executive Committee-Foundation Board연석회의(KSA/Riyadh)

 

<2025~2032년 국제종합대회(International Multi Sport Games)스케줄(202451일부)/출처: The Sports Examiner>

 

아래 표처럼 2025~2032년까지 대한민국에서 개최되는 국제종합대회는 2027년 충청권 FISU세계하계대학경기대회 단1개 뿐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개최 요망 국제종합대회로는 2033World Games2036년 올림픽대회인데 아직 구체적 움직임이 없는 상태입니다.

 

 

 

 

*References;

-The Sports Examiner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5. 10. 00:25

[IOC ANOC전임회장 Sheikh Ahmad에게 윤리강령위반죄로 15년 활동 및 자격정지처분을 내린 내막은?]

 

 

20245월 들어 지난 30년이상 국제스포츠계 거물로서 OCA(30년간)와 추후 ANOC(10년간) 아시아와 전세계에 스포츠정치력을 과시해온 쿠웨이트의 Sheikh Ahmad의 몰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Sheikh Ahmad Al-Fahad Al-Sabah)

 

 

Sheikh Ahmad Al-Fahad Al-Sabah가 윤리규정위반으로 인해(for ethical violations)향후 15년 간 IOC내 그 어쩐 직함도 갖지 못하도록 금지조치가 실행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Christophe De Kepper IOC사무총장이 전체 IOC위원들에게 보낸 서한은 IOC집행위원회가 Sheikh Ahmad에 대하여 스위스 법정 건과 관련하여 내린 자격정지 및 금지 결정사항을 담고 있다고 Reuters가 보도하였다고 합니다.

 

53일 자 Christophe de Kepper IOC사무총장이 발송한 서한의 주요 골자는 “IOC집행위원회는 Sheikh Ahmad Al-Sabah가 자신의 IOC위원 선서에 대한 배임과 IOC의 권익을 위험에 처하게 하면서 IOC평판에 대한 피해를 포함하여 윤리원칙위반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하였다는 결정을 내렸음("The IOC Executive Board has decided to confirm the seriousness of Sheikh Ahmad Al-Sabah's breaches of ethical principles, including a betrayal of his IOC member oath, as well as the seriousness of the damage to the IOC's reputation, which has jeopardised its interests) “그리고 결과적으로 Sheikh AhmadIOC위원으로서 받는 모든 권리와 특권과 역할기능일체를 정지시키는 제재조치가 지난 2023727IOC집행위원회가 내린 첫 자격정지결정일로부터 시작하여 15년간 기간이 적용되어 발동 되었음(And consequently, to sanction Sheikh Ahmad Al-Sabah by suspending all the rights, privileges and functions deriving from his IOC membership for a period of 15 years starting from the date of the previous sanction decision by the IOC Executive Board on 27 July 2023.)

 

석유수출국기구(OPEC)사무총장을 역임한 Sheikh Ahmad2021년 스위스법정에서 문서 위조와 엉터리 중재 죄가 유죄로 입증된 바 있으며 제네바항소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바(found guilty of forgery and sham arbitration in Switzerland in 2021. The decision was upheld by the Geneva Court of Appeal) 있는 바 궁극적으로 IOC윤리위원회는 Sheikh Ahmad가 자신의 이익만을 획책하고자 벌인 구체적인 행위가 IOC위원으로서의 상당히 비 윤리적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의견 임”(Consequently, the IOC Ethics Commission is of the opinion that the specific conduct of Sheikh Ahmad Al-Sabah in orchestrating a sham arbitration solely for his own benefit constitutes highly unethical behaviour by an IOC member)이라고 IOC윤리위원회는 결정문에서 밝혔으며(the IOC Ethics Commission said in its decision) 2023IOC집행위원회의 3년 활동금지결정에 대하여 어필함으로 IOC위원 선서 역시 어겼다고 적시하였다(also violated his oath as a member by appealing last year's IOC Executive Board decision to ban him for three years)고 합니다.

 

 

Paris 2024올림픽이 폐막되는 811일 다음날인 2024812일면 61세가 되는 Sheikh AhmadIOC 징계가 종료되는 시점에 74세가 되는데(will be 74 when the latest penalty expires) 올림픽헌장규정에 따르면 연례 개최 IOC총회는 IOC위원 선서를 위반한 위원을 제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The Olympic Charter also allows the annual meeting of IOC members to expel a colleague for betraying their oath) 있다고 합니다.

 

그는2018년 제네바 법정에서 기소된 후 IOC위원직을 스스로 자격 정지한 바 있으며(self-suspended" as an IOC member after being indicted in Geneva in 2018) 2019ANOC회장직도 내려 논 바 있다고 합니다.

 

그는 20235OCA회장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IOC가 윤리 패널로부터의 권고안을 승인한 후 3년 활동정지처분을 받은 바(banned for three years in 2023 for his alleged involvement in the Olympic Council of Asia (OCA) elections, after the IOC approved recommendations from its ethics panel) 있다고 합니다.

 

2021년 스위스 형사법정에서 위조죄로 기소된 후 IOC위원직을 이미 스스로 자격 정지시킨 바 (already been self-suspended as a member of the IOC after being convicted of forgery by a Swiss criminal court in 2021, following which)있다고 합니다

 

20241, Sheikh Ahmad와 그의 영국인 변호사와 쿠웨이트인 조력자 및 제네바 소재 변호사 등은 그들이 10년 전 확정된 엉터리 중재 건을 획책함으로 20219월 유죄판결이 확정된 바 있었다(In January, Sheikh Ahmad, his former English lawyer, a Kuwaiti aide and a Geneva-based lawyer had their September 2021 convictions for orchestrating a sham arbitration case a decade ago upheld)고 합니다.

 

제네바 상고 판사는 Sheikh Ahmad의 징역형을 2년 집행유예 판결로 감형 시켜 주었다(Appeals judges in Geneva commuted the sheikh's prison sentence to two years' probation)고 합니다.

 

Sheikh Ahmad는 한 때 스포츠정치판의 가장 영향력 있는 큰 손 중 한 명으로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IOC의 요직(IOC 올림픽 솔리다리티 위원장으로 선수들과 각국 올림픽 위원회에게 재정 기금 지원 책임을 맡기도 하였음/ also in charge of the IOC's Olympic Solidarity Fund, which provides financial support to athletes and national Olympic committees)을 거쳤으며(onc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figures in sports politics, holding key positions in the IOC) 2023년에는 쿠웨이트 국방장관으로 임명되기까지 하였다9 being appointed Kuwait's defence minister last year)고 합니다

 

그는 2015~2017FIFA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아시아축구관계 임원에게 뇌물공여모의에 연루된 것으로 Brooklyn미국 연방 검사에게 추궁 당하자 FIFA집행위원 재선 후보자리를 철회하기도(also a senior official at world football's governing body FIFA from 2015-17, until he withdrew his candidacy for re-election when he was implicated by federal prosecutors in Brooklyn in a scheme to funnel bribes to football officials in Asia) 하였다고 합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잘못을 부인하였으며 기소되지는 않았다(He denied wrongdoing and was not charged, according to AP)고 합니다.

 

 

*References:

-insidethegames

-IOC website

-AP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정보2024. 5. 9. 04:50

[도핑검사에서 자유로운 Enhanced Games 202550명에서 100명 가량의 Paris2024올림피언 참가 전망]

 

 

The Enhanced Games 창설자 겸 흥행사(founder and promoter of The Enhanced Games)인 호주 변호사 Aron D’SouzaThe Enhanced Games은 도핑검사로부터 자유로운 대회가 될 것이라고 AFP(기사 제목: Enhanced Games chief says '50 to 100' Paris Olympians ready to sign up)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합니다.

 

 

호주의 News Corp와의 인터뷰에서 Aron D'Souza동 대회 등록 속도가 매우 앞서 나가고 있다”(Registrations for 2025 are "very advanced)고 언급하였다고 합니다.

 

 

(Aron D’Souza/출처: insidethegames)

 

 

 

그는2025년 대회에 Paris2024올림픽에 출전한 몇 십 명의 올림피언들의 참가가 예상된다(he expects dozens of Paris 2024 Olympians to compete in his event in 2025)고 밝히면서 우리는 Paris2024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현재 참가 등록 대열에 많이 줄 서있음”(We have a great many who are in the sign-up process at the moment, who are competing at Paris.) “나는 첫 대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Paris2024올림픽 선수동기들의 수가 50~100명정도로 희망하고 있음. 여러분은 Paris올림픽에서 The Enhanced Games의 개념에 대하여 열린 마음으로 대하려는 선수들을 볼 수 있을 것임. 우리는 Paris올림픽에서 펼칠 계획이 엄청날 것임”(I would hope 50-100 is [the number] of Paris Olympic alumni who would be competing at the first Games. You will see at the Paris Olympics some athletes are going to be very open about the Enhanced Games concept. We have quite a plan for the Paris Olympics.)이라고 포부를 밝혔다고 합니다.

 

 

그가 상설한 Enhanced Games는 도핑이 허용된 상태에서의 세계기록시도 이벤트를 지향하고 있는데 육상, 수영, 체조, 역도 및 격투기 종목이 펼쳐질 것(designed as doping-allowed world-record-attempt events, with a focus on track & field, swimming, gymnastics, weightlifting and combat sports)이라고 합니다.

 

그는 세부 내역에 대하여서는 정보는 주지 않은 채참가신청서에 1,500명의 선수가 신청을 하였다(1,500 athletes had applied in some form to take part, without providing more details)고 하면서 정식 엔트리는 2024년 후반부에 공개될 것임(formal entries are to be opened in late 2024)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는 대회에서 기록을 경신하는 선수들에게 주요한 보너스로 책정된 금액을 지불할 계획인 바 (plans to pay participants a specified amount, with major bonuses for beating established records) 창설자인 D’Souza는 역도와 수영종목선수들의 관심도가 높은 편이지만 육상종목에서는 덜하다(interest among swimmers and lifters had been good, but less so in track & field)고 하면서 우리가 바라는 완벽한 후보는 올림픽에 처녀 출전하는 19세 선수가 아님”(Our perfect candidate is not the 19-year-old who is going to their Olympics for the first time) “해당 후보는 28세로써 2회 올림픽출전에, 은메달획득자와 같은 선수들 임. 나는 개인 트레이너가 되고 싶지는 않음”(It’s the 28-year-old who has gone to the Olympics twice and won a silver medal and they’re like, ‘I don’t want to become a personal trainer’) “그들은 현역은퇴전에 자신들의 기량보다 좀더 발휘하고 픈 마음이 있으며 엘리트스포츠에서 30세의 나이에 새롭게 발산하고 픈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음”(They feel like they have got a little bit more in them before their ‘retirement’ and put out to pasture at age 30 in elite sports.)이라고 설명하였다고 합니다.

 

세계도핑방지기구(WADA)는 이러한 이벤트에 대하여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규탄하여 왔으며(condemned as dangerous by the World Anti-Doping Agency) 복수의 국제연맹들은 이러한 대회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참가선수들에게 중징계 규제를 천명(multiple International Federations have come out against it, some promising significant bans for those who participate)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References:

-The Sports Examiner

-insidethegames

- Australia's News Corp Australia's News Corp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