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 국제스포츠인재양성 직무집중과정개강을 계기로 짚어본 그간 동향과 향후 해야할 일]
국민체육진흥공단(KSPO: 이사장/조현재)이 주관하고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책임 맡아 운영하고 있는 2021년도 국제스포츠인재양성 직무집중과정 개강식이 2021년 7월5일 18:30분부터 강남 ‘호텔 프리마’에서 있었고 필자는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ISDI)원장 겸 첫 강좌 강연자 자격으로 축사에 임하였다.
엄선된 26명의 교육참가자들은 스포츠외교를 통한 국제사회 진출과 한국스포츠외교력 강화에 꿈을 품고 있는 젊은이들이다.
지난 2007년 시작된 바 있는 국제스포츠인재양성 과정은 올해로 햇수는 14년 차에 해당하지만 그 동안 부침을 계속해 왔다.
제1차 과정은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KOC)차원에서 시작되어 몇 년 간 이루어지다가 보다 집중적이고 전문적인 관리와 운영을 위한 취지로 문체부 당시 차관의 공익적 의지로 당시 김정길 KOC위원장의 협조 하에 스포츠인재육성재단이 설립되어 운영되어 왔었다.
당시 인재육성재단은 사소한 시비로 후임 문체부차관은 인재육성재단을 해체하고 이 기능을 국민체육진흥공단(KSPO)가 맡도록 하는 조치를 내렸다고 전해 지는데 다행히도 KSPO는 지금까지 효율적으로 운영 및 관리하여 오고 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시작된 국제스포츠인재양성 과정 수료자들의 이후 거취(whereabouts)는 오리무중으로 수강생들의 재능 활용이 사장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하지만 1기 수료생들 중 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현 사무총장과 2021년도 과정을 책임지고 총 연출하고 있는 최경근 상명대 특임교수가 건재하게 활동하고 있어 그 나마 다행이다.
코로나 시대지만 KSPO가 공개경쟁을 통해 지정한 상명대 산학협력단이 2021년 직무집중과정을 통해 향후 입지를 다지고 지속적이고 알찬 프로젝트 수행을 훌륭히 해 나가리라 믿고 응원을 보낸다.
필자가 2004년 설립하여 외부지원 없이 지속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는 ‘법인으로 보는 비영리 단체’인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ISDI)역시 가능한 외부의 재정적 지원과 후원이 이루어 진다면 이러한 기능과 더불어 현장 친화적 미래스포츠외교관양성과 한국 스포츠지도자 최고경영자(CEO)과정 개설과 더불어 국제기구와의 네트워킹 프로젝트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전개하고자 구상 중이다.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30편(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26년 간 정다운 임직원들과의 포토 갤러리)]
1982년 대한체육회에 5급 특채로 입사할 당시 대한체육회 조용준 사무총장은 서울시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한 행정관료 출신이었다.
입사 후 첫 출장지는 프랑스 파리였는데 그곳에서는 유럽지역 한인 체육대회가 열렸으며 주용준 총장을 수행하며 유럽지역 한인체육대회를 다녀온 여러가지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한체육회에 통합되어 특별위원회로 존속하며 대한체육회 사무처에서 업무와 기능을 담당했던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위원장(대한체육회장 자동 겸직)과 부위원장 및 명예총무(비상근 사무총장)와 함께 필자는 각종 국제스포츠회의(IOC-ANOC-OCA 총회)에 20여 년간 단골 KOC회의 대표 직함으로 잦은 지구촌 수십 바퀴를 돌며 해외출장을 다녔다.
당시 필자를 발탁하여 특채 되도록 기여하였으며 재임 당시 해외출장에 늘 함께 했던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는 필자의 대한민국 스포츠외교관 영역에 첫발을 내딛도록 KOC의 문을 열어주고 국제스포츠회의에서 공식 발언을 하는데 있어서 지원해 주고 지도편달을 해준 고마운 분이다.
(상단 좌로부터: 문동욱 평창2014유치위 국제팀장<현 계명대학교 교수>, 문부춘 평창2014유치위 기획실장, 김상우 KOC총무, 평창2014유치위 국제총장이었던 필자, 김정길 KOC위원장, 최만립 IANOS-APOS회장, 외교부 Rio De Janeiro 현지공관 외교관 2명/하단<Barcelona개최 ANOC총회에서: 가운데 우로부터 Francois Carrad IOC사무총장, 필자, 최만립 당시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박용성 당시 KOC부위원장<이후 IJF회장 및 IOC위원 및 KOC위원장 역임>)
최만립 KOC명예총무 후임으로 이강평 현 기독대학교총장(한양대 체육과 교수출신), 그 후임인 김영환 명예총무(연세대 체육대학장 교수출신)와 국제스포츠외교무대에서 동고동락한 바 있다.
김정길 KOC위원장(대한체육회장)의 삼고초려의 KOC총무발탁요청을 사양하고 평창2014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총장으로 자리를 정하자 KOC총무로는 영국 옥스포드대학 정치학 박사로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상우박사가 후임으로 내정되어 국제무대에서 함께 활동하였었다.
(필자의 26년 동안 KOC국제과장-국제부장-국제사무차장-KOC위원 재직시절 동고동락한 KOC명예총무<사무총장 5인>/첫째 줄 좌로부터: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이강평 KOC사무총장, 장주호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현 TAFISA회장>/둘째 줄 좌로부터: 김영환 KOC명예총무, 김상우 KOC총무)
주용준 총장 후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대한체육회 기획실장으로 주총장에 이어 김광호 사무총장이 맡았다.
그 이후 김용모 사무총장, 이호종 사무총장(이후 초대 민선 전북 고창군수 역임 후 2014년 10월 영면), 이종택 사무총장, 김광수 사무총장(대한수영연맹 임원 역임), 배순학 사무총장(대한체육회 간부 출신), 김봉섭 사무총장(선수촌장 역임), 이윤재 사무총장 등과 함께 근무한 바 있다.
당시 대한체육회(KASA-KSC)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이는 각각 여러 명의 부회장들과 부위원장들이 있었는데 실력과 사회적 명성은 물론 스포츠에 열정을 가지고 한국스포츠발전에 헌신한 기라성 같은 분들이 즐비 하였다.
특히 주용준 총장 후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대한체육회 기획실장으로 주총장에 이어 김광호사무총장이 맡았었다. 그 이후 김용모 사무총장, 이호종 사무총장(이후 초대 민선 전북 고창군수 역임 후 2014년 10월 영면), 김광수 사무총장(대한수영연맹 임원 역임), 배순학 사무총장(대한체육회 간부 출신), 김봉섭 사무총장(선수촌장 역임), 이윤재 사무총장 등과 함께 근무한 바 있다.
대한체육회 임직원들과의 26년간 동고동락하며 한국 스포츠중흥을 위해 발 벗고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함께 뛰었던 추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상단 좌로부터: 김세원 KOC부위원장,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에총무-필자와 신박제 KOC부위원장-조경자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필자와 윤덕주 대한체육회 부회장/하단 좌로부터: 필자-윤덕주 대한체육회부최장-김기훈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첫 금메달리스트-조정순대한체욱회부회장 겸 대한정구협회회장 겸 국제정구연맹회장-한양순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 이덕분 세종대학체육대학장, 이수영 대한빙상연맹회장 겸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과 필자)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29편(대한체육회직원 및 임원에서 서울시 2032년올림픽유치특보 임명과 책 출판기념회 그리고 회장출마선언과 출사표 그리고 실제상황)]
대한체육회 봉직 기간은 직원 22년+임원 4년(KOC위원 및 위원장 특보) 도합 26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평창의 동계올림픽 3수도전 10년 및 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근무 4년 합쳐서 40년이 흘러 어느덧 2020년이 되었고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와 더불어 다시 2021년이 도래했다.
2020년 4월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공동유치를 위한 서울시 유치특보로 임명 받아 2021년 초까지 1년 간 Thomas Bach IOC위원장 서울평화상 시상식 방한 시 당시 서울시장 직무대행과의 면담도 연결해 주었지만 유럽 내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 방한이 취소되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70일 전인 4월 29일 6층 서울시장실에서 2032년 올림픽 서울시 유치특보 임명장을 받고 있는 필자와 박시장<사진우측>)
서울시가 IOC미래유치위원회와의 화상회의 PPT자료작성 및 감수에도 관여해 주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필자가 제안한 비상 전략이 관철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결국 2021년 2월 24일 호주 Brisbane2032가 사실상 개최지로 낙점 되는 바람에 2032년 올림픽유치 역시 무산된 셈이다.
서울시 유치특보 직은 그러는 와중에 2021년 초 사임하였지만 업무적으로, 기술적으로 외교적으로 5월12일 IOC총회에서 Brisbane2032확정 시까지 對 IOC 각종 서류 및 자료작성과정에서 무상으로 자문해 주었다.
대한체육회 직원-임원으로 26년이 스포츠외교인생 1막, 평창3수 유치 및 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 운영에 12년이 스포츠외교인생 2막, 그리고 제 3막은 2020년 1년 간 대한체육회장선거 출마 출사표와 선거운동으로 시작한 셈이다.
2020년에는 여러 지인들과 선수 및 체육지도자들의 강력한 권고로 ‘대한체육회의세계화-국제화’란 기치를 내걸고 대한체육회장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며 대한체육회직원 출신으로는 사상최초로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대한체육회장후보 출마선언을 한 뒤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에 돌입하기도 하였다.
그 일환으로 2020년 11월12일 필자의 7번 째 스포츠외교관련 저서 “스포츠외교론(과 한국스포츠외교실록)’ 출판기념회를 프레스센터에서 갖기도 하였다.
사실 KOC가 별도로 분리되어 있었다면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선거운동에 임하는 계기가 되었겠지만 상황상 여의치 않아 先 대한체육회장 출마 後 KOC분리를 고려하기도 하였다.
4년 간 기존 대한체육회장의 프리미엄을 활용하여 사실상 대한체육회장 선거운동을 해 왔던 이기흥 회장을 이기기 위해선 출마후보들의 단일화가 절실하였다.
회장후보등록마감일 바로 전날밤까지 후보단일화를 위해 나른 애썼지만 무위에 그쳐 이에리사 후보와 필자는 후보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대한체육회장선거운동을 통하여 지방체육회장 등 체육인들과 현장이야기를 듣고 체육회장 당선을 향한 길이 제도적 시스템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세계 각국 스포츠 통할 조직은 한결 같이 NOC가 모태가 되어 유사 스포츠단체를 통합한 것인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스포츠 통할 단체인 대한체육회가 NOC(KOC)를 흡수 통합한 희귀한 케이스다.
전세계에 우리나라처럼 전국단위 스포츠조직과 구성원들이 모두 총망라되어 추첨으로 당첨된 무작위 선거인단이 정부조직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감독하에 올림픽 헌장 규정 산 정치와 확실하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 대한체육회(KSOC)회장을 선출하는 사례는 찾아 보기 어려운 기이한 구조다.
스포츠발전이나 비전이나 능력과 경력 및 실력 그리고 국제적 인맥 등은 차치(且置)하고 누구든 전국적으로 다니며 정치인들의 행태와 유사한 사전선거운동에 능한 후보만이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되기 좋은 환경과 구조는 바람직하지 못한 적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까운 시일내, 체육인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풀어야 하는 절대절명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향후 대한체육회장선거가 “기회는 평등(Equal Opportunity) 과정은 공정(Fair Process) 결과는 정의(Righteous Result)”로운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립됨으로 체육도 단순히 이러한 정치적 색채의 구호로 그칠 것이 아니라 명실공히 선진화-세계화-국제화에 기반을 둔 알차고 지속 가능한 스포츠외교가 살아 숨쉬도록 일취월장(日就月將)하기를 기대해 본다.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28편(내가 몸 담았던 대한체육회<22년+4년> 그 시절 그리고 이후)]
대한체육회(KASA-KSC)/대한올림픽위원회(KOC)특채 5급직원(1982년)으로 2년 반 만에 4급 과장으로 진급하고 곧바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집행위원장 겸 체육부장관인 이영호장관 조직위원회 국제 특보(비서관)로 발령 받아 근무하였다.
(첫째 줄 좌로부터: IOC방문 후 인근 Mon Blanc정상에서 이영호장관과 함께, East Berlin Brandenburg 근처에서-동 베를린 유적지에서, Mon Bland 정상에서 이영호장관 부부와 함께/둘째 줄: IOC본부에서, 그리스에서, East Berlin IOC총회에서 SLOOC대표단일행, Paris에서/셋째 줄: 노태우 당시 SLOOC위원장-Samaranch IOC위원장-박종규 IOC위원, Paris 소재 Louvre박물관에서<좌로부터 필자를 KOC에 특채 되도록 천거해준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이영호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필자)
이후 SLOOC파견근무에서 복귀하여 국제과장-회장비서실장-국제부장-기획조정실장-국제담당사무차장(1급)을 역임하다가 다시 평창2010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대외공동사무총장으로 파견 근무하였다.
평창2010 체코 프라하 IOC총회에서 캐나다의 Vancouver2010에게 석패(51:53)한 후, 대한체육회 복귀 과정에서 모종의 음모로 추정되는 희한한 논리에 자의반타의반으로 눈물을 머금고 한국스포츠외교간판 급 선수로 스포츠외교실력을 쌓았던 정들었던 대한체육회 근무 22년 만에 명예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김운용회장은 필자를 국제스포츠외교무대에서 일취월장(日就月將) 및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세계스포츠지도자들과의 인맥 교류와 소통 그리고 국제회의에서 한국대표로서 마음껏 발언하고 내공을 펼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고 발탁해 준 한국최고의 스포츠외교관이 그분의 후계자로서 내공을 키워준 스승 같은 고마운 분이었다. 그분 영전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올린다
(김운용회장과의 추억의 Photo Gallery)
2004년 초 명예 퇴직과 동시에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ISDI)를 창설하고 김진선 강원도지사의 지원으로 서초동에 사무실을 두고 ISDI운영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평창2014동계올림픽유치 재도전 작업도 병행하였다.
이후 2004년~2011년은 평창2014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및 평창2018유치위원회 국제자문역으로 3수 유치 성공에 기여한 뒤, 2011년~2018년에는 평창2018 조직위원회 상임위원과 위원장 자문역으로 대회 성공적 개최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2005년 2월 차기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정길회장은 강남 소재 리츠 칼튼 호텔에서 3번 만나며 삼고초려(三顧草廬)하며 필자를 KOC총무(사무총장)으로 영입하려 하였지만 2번 만나고 인터벌을 둔 사이 이미 평창2014유치위원회 국제총장으로 중앙일보에 지상 발령이 난 상태여서 3번 재 만남에서 감사한 마음만 받고 KOC사무총장 직 제의는 없던 일로 고사하였다.
뒤돌아 보면 아쉬운 대목이긴 하였지만 당시 김진선강원도지사와의 평창2014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직 선약을 존중한 행동으로 후회는 없다.
(김진선 3선 강원도지사 겸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집행위원장 겸 평창2018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초대 위원장과 함께)
(김정길 KOC위원장은 정주영회장, 김종하 회장 및 김운용회장과 함께 필자를 가장 아껴주고 성원해준 대한체육회장들 중 한 분이다)
이후 김정길 KOC위원장은 필자를 4년 간 KOC위원 겸 위원장 특보로 임명하는 배려로 대한체육회 직원 출신으로는 최초로 KOC위원 직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필자의 대한체육회 봉직 기간은 국제과장-국제부장-기획조정실장-국제담당 사무차장 등 직원 22년+임원(KOC위원 겸 위원장 특보) 4년 도합 26년이란 세월이 되었다.
이후 12년 간의 세월은 평창동계올림픽유치3수 도전 작업과 평창2018유치성공에 이은 평창2018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에서 근무하며 스포츠외교인생 2막을 지나 2019년부터는 스포츠외교인생 3막을 시작한 셈이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IOC에 정식 가입하여 NOC(국가올림픽위원회)로서 태동한 시기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1년 전인 1947년 6월 20일 제41차 스톡홀름 IOC총회에서 승인 받은 때이다.
당초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를 염두에 두고 결성 및 승인된 KOC는 정부수립 7개월 전인 1948년 1월 30일~2월 5일 스위스 생 모리츠(St. Moritz)에서 개최된 제5회 동계올림픽에 사상 최초로 한국선수단 5명(감독 1명, 선수 3명, 매니저 1명)을 파견하였다.
이어 정부수립 직전인 1948년 7월 29일~8월 14일 개최된 제14회 런던올림픽에는 69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동메달 2개(한수안/복싱, 김성집/역도)를 획득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전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렸다.
런던1948올림픽 폐회식 다음날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조선올림픽위원회’ 였던 KOC는 한글 명칭이 ‘대한올림픽위원회’로 바뀌었다.
그 후 “1964년 9월 8일 KOC는 문교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사단법인체로 정식 출범함으로써 대한체육회에서 완전 분리된 독립기구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KOC 50년사 53 페이지)
초대 KOC위원장은 이상백 IOC위원이었다.
(London1948 올림픽 한국선수단 출정식/이상백 단장이 이승만대통령에게 출정 결단식 현장)
2년 후인 1966년 4월 14일 이상백 초대위원장이 별세하자 부위원장이었던 장기영 씨가 제2대 KOC위원장 이 되면서, 상임위원 15명과 비상임위원 23명을 선출하여 체제를 재정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KOC(선수단 파견 주최)는 1966년 방콕 제5회 아시안게임에서 대한체육회(우수선수 강화 훈련 전담)와 선수단 구성과정부터 심한 갈등양상을 빚어 결국에는 방콕 현지에서 주도권 다툼으로 인한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한국 내에서는 당시 대한체육회, KOC 그리고 대한학교체육회로 3분화되어 있던 체육관할조직을 1968년 3월 1일 정부 주도에 의해 ‘대한체육회’로 통폐합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KOC 자체는 새로 통합된 대한체육회의 특별기구로 개편되어 별도법인 격이 상실됨으로써 ‘KOC정관’대신 ‘KOC규정’을 가지고 대한체육회 내의 특별위원회 성격으로서 명목상의 업무를 보게 되었다.
따라서 4년 간(1964~1968) 사단법인이었던 KOC는 법인자격이 상실되어 그 이후부터 2008년까지 40년간 인사권과 재정권 등은 대한체육회에 귀속되었으며, KOC 사무국의 업무와 기능도 대한체육회 사무처에서 관장하여 왔다. KOC위원장은 KOC위원총회에서 별도로 ‘자체 경쟁선출’하지 아니하고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된 인사를 ‘추천 및 선임’하는 추대방식으로 선출하였다.
따라서 과거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됨과 동시에 KOC회장(위원장)이 되도록 정관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2009년에는 ‘대한체육회(KOC)’라는 명칭으로 재구성됨으로써 한글로 ‘대한올림픽위원회’라는 우리말 명칭은 사라지고, 동시에 대한체육회의 영문명칭인 ‘Korea Sports Council’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KOC는 1955년 이기붕 위원장을 초대 IOC위원으로 배출하였고, 이상백, 장기영, 김택수, 박종규, 김운용, 이건희(1996~2017), 박용성, 문대성(2008~2016: 8 년 임기의 선수자격 IOC위원) 위원, 유승민(2016~2024: 8년 임기 선수자격 IOC위원), 이기흥(2019~) 등 11명이 그 뒤를 이어 활동하였거나 활동 중에 있다.
196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체육회장은 곧 KOC위원장이기도 하였다.
대한체육회(KASA-KSC)와 KOC(대한올림픽위원회)의 분리독립문제는 최근까지도 첨예의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다가 2009년 2월에 선출되어 취임한 박용성 제37대 대한체육회장은 이러한 논란을 잠재울 묘안을 제안하여 관철시켰다.
즉, 조직 자체를 한글로는 기존의 ‘대한체육회’로 유지하되 영어로만 ‘KOC(Korean Olympic Committee)’로 단일명칭 화 시킨 것이다.
그 여파로 대한체육회의 기존 영문 명칭이었던 KASA(Korea Amateur Sports Association)과 제31대~33대 김운용 대한체육회장이 영문 명칭을 변경하여 사용하여 오던 KSC(Korea Sports Council)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 오던 대한체육회의 방패 문양이 새겨진 로고(Logo/Emblem)역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한편 KOC(Korean Olympic Committee)의 한글 명칭이었던 ‘대한올림픽위원회’란 우리말 이름 또한 증발되어 사라진 형국이 되었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KOC의 기존 로고의 핵심 문양이었던 태극이 변형되어 새로운 형태의 로고가 탄생하여 IOC의 로고 변경승인을 득한 후 사용해 오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 명칭 및 로고 변천사)
그 시점부터 IOC가 대한민국의 NOC로 인정해 왔던 KOC가 한글로는 ‘대한체육회’라 쓰고 영어로는 ‘Korean Olympic Committee’로 2016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와 통합된 이후도 한글로는 ‘대한체육회’라 쓰고 영어로는 ‘Korean Sports & Olympic Committee’로 써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혹 퀴즈나 상식 문제에 출제될 경우 제대로 염두에 두어야 정답을 말할 수 있다.
<대한체육회 연혁>
1920. 7.13
조선체육회 창립
1938. 7. 4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
1945.11.26
조선체육회 부활
1947. 6.20
대한올림픽위원회(KOC)설립 및 IOC 가입
1948. 9. 3
대한체육회로 개칭
1954. 3.16
사단법인 대한체육회 인가
1966. 6.30
태릉선수촌 건립
1968. 3. 1
대한체육회에 대한올림픽위원회 및 대한학교체육회 통합
1982.12.31
국민체육진흥법에 대한체육회를 특수법인으로 지정
1986. 9.20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개최
1988. 9.17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개최
1996. 4.21
제6차 IOC 세계생활체육총회 개최
1997. 1.24
1997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1997. 5.10
제2회 부산 동아시아경기대회 개최
1999. 1.30
제4회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 개최
1999. 6.17
제109차 IOC총회 개최
2002. 9.27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개최
2003. 8.21
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2006. 3.31
2006 국가올림픽총연합회(ANOC)총회 개최
2007. 3.27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2007. 4.17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유치
2009.5.24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
2009. 6.29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완전 통합
2016. 4.8 대한체육회(KOC회장: 김정행) 및 국민생활체육회(회장: 강영중) 대 통합 출범(김정행/강영중 공동 회장 체재)
2021.대한체육회(KSOC)세계 각국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 총회<2020년에서 1년 연기>개최예정(서울 KOEX)
(대한체육회 와 국민생활체육회 단체 통합 합의문/2014.11.6)
지금부터는 1970년대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임하였던 대한체육회장/KOC위원장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제25대 박종규회장(1979~1980회장 역임)은 필자가 1978년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태릉 국제사격장 개최)당시 외대 통역단장으로 국제스포츠 계에 사전 입문 무대에서 처음 만났으며 이후 김택수 IOC위원 뒤를 이어 IOC위원으로 활동 시 동 베를린 IOC총회등지에서 함께 모시고 활동한 바 있다. 박종규회장은 필자가 국제스포츠외교무대의 첫 발을 들여 놓도록 교량역할을 해준 고마운 분이었다.
필자의 스포츠외교활동무대가 열리게 된 것은 제29대 김종하회장(1985~1989회장 역임)시절부터 인데 서울1988올림픽개최국 NOC인 KOC위원장으로 전세계를 각지를 함께 수행하였으며 세계 각국 스포츠지도자들의 방한 러시 그리고 서울1988올림픽을 전후로 세계스포츠지도자들과 안면을 익히고 친목을 다졌고 그럼으로 스포츠외교의 기초를 쌓는 기회가 주어졌다. 김종하회장은 필자의 스포츠외교견문을 확실하게 넓혀준 고마운 분이었다.
필자가 스포츠외교무대에서 본격적으로 국제스포츠무대에서 맹활약하고 IOC위원장-IOC위원들-국제연맹회장단-각국 NOC수뇌부-ANOC 및 OCA 총회-동 하계 올림픽 한국선수단 단장 대행 자격으로 현장에서 한국대표로 국제회의에서 공식 발언과 효과적인 이미지 구축을 하는데 전폭 지지하고 발탁해준 분은 제31대~33대 김운용회장(1993~2002) 시절이었다.
필자를 IOC집행위원회에서 한국 최초로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으로 직접 천거하여 주었다. IOC 평가위원활동에서 축적한 내공을 통하여 평창동계올림픽 3수 기간 동안 IOC조직 및 IOC위원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유치활동을 하는데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김운용회장은 필자의 국제스포츠외교내공을 완성하게 지원해준 고마운 스승이었다.
제35대 김정길회장(2005~2008)은 필자가 한국 최초로 세계각국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ANOC)회장인 Mario Vazquez Rana이 사전 약속한 ANOC스포츠외교공로훈장을 수여 받도록 KOC에서 공식추천하여 줌으로 필자는 한국 스포츠외교사상 아직까지 전무후무한 ANOC공로훈장 수상자가 되도록 진심으로 지원해 주고 축하해 주었다.
특히 필자를 높이 평가하여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마다하지 않고 KOC총무(사무총장)으로 발탁하고자 애써주었다. 평창2014유치치위원회 국제총장 발령이 지상으로 먼저 나는 바람에 감사 드리며 고사하였음에도 KOC위원 및 KOC위원장 특보로 임명해 줌으로 대한체육회 직원에서 임원 직까지 섭렵하게 해 준 고마운 분이다.
(첫째 줄 좌로부터: 제25 대한체육회장/KOC위원장: 박종규 회장<좌측>1979.2~ 1980.6대통령경호실장, IOC위원 역임/제26대: 故 조상호 회장<가운데>1980.7-1982.7 제6대 체육부장관/SLOOC사무총장 및 부위원장 /청와대 의전수석 등 역임, 좌로부터 김운용 WTF총재, 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 조상호 장관,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에총무, SLOOC집행위원장 국제비서관이었던 필자/제27대: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맨 우측>1982.7-1984.10 좌측은 Mme. Monique Berlioux IOC사무총장, 가운데는 필자/둘째 줄 좌로부터: 제28대: 노태우 제13대 대통령<좌측>1984.10-1985.4, SLOOC2대 위원장, 초대 체육부장관 역임/제29대: 김종하 전 고합회장<좌측>1985.4-1989.2, OCA부회장, 대한핸드볼협회 회장 역임/제30대: 김종렬회장<우측>1989.2-1993.2, 대한럭비연맹회장 역임/제31대-33대: 김운용회장<우측>1993.2-2002.3/IOC부위원장, WTF총재, 국기원장, GAISF회장, IOCTV분과위원장, 1999년 강원동계아시안게임 및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등 역임, 필자/좌측/셋째 줄 좌로부터: 김운용 WTF총재 시절 동베를린에서 1985년 6월/제34대: 이연택회장<좌측>2002.5-2005.2/총무처장관, 노동부장관, 청와대 행정수석,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역임/35대: 김정길 회장<우측>2005.3-2008.4/행자부장관,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 등 역임)
(첫째 줄 좌로부터: 제36대: 이연택회장: <제35대 김정길회장 잔여임기/2008.5- 2009.2 9개월간 재임>/제37대: 박용성회자(2009.2-2012.2)<우측>/IJF회장, IOC위원, 대한 유도회 회장, 상공회의소장, 두산중공업회장, 중앙대학교이사장 역임/제38대 김정행 회장(2013~2016), 대한유도회장 및 용인대 총장 역임)/제39대 공동대한체육회장 김정행회장과 강영중 공동회장(2016~2017)/ 제40대~41대 이기흥 회장<2017~2024>/Athens2004올림픽 당시 국제카누연맹<ICF>회장<우-2>사무총장 Jose Perunera 현 IOC위원 겸 IWGA회장<좌-1> 이기흥 당시 대한카누협회장 겸 현 제40대~41대 대한체육회장 겸 IOC위원)
[Thomas Bach IOC위원장 7월8일 일본도착확인, 한국 IOC위원들 독도이슈논의 차 7월12일 경 訪日하면 어떨까?]
Thomas Bach IOC위원장이 7월17일~18일 IOC집행위원회 및 7월20일 IOC총회 그리고 7월23일 Tokyo2020올림픽 개회식을 앞두고 9일 먼저 일본에 도착한다고 7월1일 IOC가 확인하였다.
최근 독도 이슈 논의 차 한국 IOC위원 2명이 Lausanne IOC본부(Olympic House)방문하여 Bach IOC 위원장 면담을 추진하였지만, 시간 상 면담이 어렵고 일본에서 만나자는 회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마침 Bach IOC위원장이 7월8일 일본에 입국하여 Tokyo2020올림픽 관련 이해당사자들(Games stakeholders)과 소통하면서 Tokyo2020올림픽 최종운영관련 총괄 지휘 감독할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7월12일~7월16일(5일 간)이 독도 이슈(Dokdo Issue)와 욱일기 이슈(Rising Sun flag Issue) 논의를 위한 마지막 타임라인으로 사료된다.
(Bach IOC위원장과 이기흥-유승민 한국 IOC위원들 간의 도쿄회동으로 독도 및 욱일기이슈 해결의 회동이 성사되길 바란다)
COVID-19백신접종을 완료한 Bach IOC위원장은 이제 Tokyo에서 올림픽 용 playbooks에 따른 지침에 충실할 것으로 알려졌다.
7월8일부터 3일간 격리(three days in isolation)중에는 원격으로 업무에 임할 것이라고 한다
IOC위원장은 3일 격리가 끝난 다음날인 7월12일부터 일본에 도착하는 IOC대표단들과 대면 및 비대면 회의 관련 공식 프로그램을(official programme of in-person and remote meetings with arriving delegations) 시작할 것으로 IOC는 언급하였다.
Bach IOC위원장은 7월16일에는 Hiroshima를, 지난 6월에 일본에 도착한 John Coates IOC부위원장은 같은 날 Nagasaki를 각각 방문할 스케줄이 잡혔다고 한다
Hiroshima-Nagasaki 두 도시는 2차대전 끝 무렵 핵폭탄이 투하된 도시들이다
IOC가 평화증진을 도모하고자(with the IOC looking to promote peace) 하는 상황에서 두 도시 방문 계획은 올림픽 휴전(Olympic Truce)의 일환이다.
고대올림픽개최의 취지에서, IOC는1992년 올림픽휴전을 부활시켰으며, 현재 모든 올림픽대회 때마다 도입되고 있다.
6월, 일본 야당 당수인 Yukio Edano는 Bach IOC위원장을 비롯하여 세계 지도자 등 VIPs들이 COVID-19 전파 유려로 인해 올림픽참가를 금지시키도록 촉구한(called for Bach and other VIPs, such as world leaders, to be banned from attending the Olympics due to COVID-19 concerns) 바 있다.
IOC와 Tokyo2020조직위원회관계자들은 코로나 관련 지침서 격인 playbooks에 명시된 규칙 준수가 안전-안심 대회가 되도록 하는 지름길(rules in the playbooks will help to keep the Games safe and secure)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 규칙에는 AD카드 발급 대상자 수 삭감 및 관광지역 방문 금지 조치(a reduction in the number of accredited officials and banning visits to tourist areas)도 포함되어 있다.
[Tokyo2020올림픽 관련 독도(Dokdo)-욱일기-후쿠시마 식품 등 3가지 이슈 외신 반응 종합]
6월26일 한 인터넷 외신기사 제목은 ‘한국 Tokyo2020지도논쟁 관련 IOC답변에 깊은 유감’ 표명하다(South Korea expresses "deep regret" over IOC's response to Tokyo 2020 map dispute)였다.
1.독도 이슈(Dokto Issue)
문화체육관광부는 일본측이 Tokyo2020올림픽 지도에 분쟁 대상인 Liancourt Rocks(독도의 서양식 표기)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 항의하는 서한을 IOC측에 발송하였는데 그 서한에 대한 답신 내용(IOC’s response)에 대하여 ‘깊은 유감’(deep regret)을 표명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지난 주 초 IOC는 관련 답신에서 독도 섬(islets) 올림픽성화봉송지도 상 표기 문제와 관련 Tokkyo2020조직위원회와 상의하였지만, 독도표기는 “순수하게 지형학적 지역 표출’(purely topographical expression)으로 ‘정치적 동기는 결코 아님’(no political motivation whatsoever)이라는 대답을 들었노라고 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향후 독도문제가 계속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IOC와 지속적으로 교신할 것(it would send further correspondence to the IOC as the row continues to rumble on)이라고 언급하였다.
(독도/Dokto: 외로운 섬 Only Lonely Island)
문체부는 “IOC의 답신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며 우리의 입장을 담은 또 하나의 서한을 보낼 계획”(We express deep regret over the IOC's response and [we] plan to send another letter on our position)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도쿄올림픽이 전세계가 코로나로 고통 받는 때에 열리므로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도를 그 지도에서 삭제하기를 거부하고 있다”("Even though the Tokyo Olympics should be an Olympics of peace and harmony as it is being held at a time when the entire world is suffering from COVID-19, Japan is rejecting requests to delete Dokdo [from the map])라고 하면서 “일본의 태도에 매우 실망스럽다”(very disappointed by Japan's attitude)고 덧붙었다고 한다
한국은 해당 섬을 ‘독도’(Dokto)라 부르고 일본은 ‘Takeshima’(죽도)라고 부르며 각각 각자의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문체부는,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2명의 IOC위원들을 IOC본부가 있는 스위스로 보내고 일본 IOC위원들과의 미팅을 포함한 다른 방법으로 항의하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독도는 1849년 프랑스 포경선(French whalers)이 “Liancourt Rocks”로 명명되어 중립적인 명칭인 바, 일본과 한국 (북한 포함) 양측은 모두 그 섬들(the islets)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도는 한국이 실 지배하고 있다(South Korea controls the islands)
독도는 안보와 어업권으로 인해(due to security and fishing rights)모든 국가들에게 중요한 것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The islands are regarded as important to all nations laying claim to them due to security and fishing rights)
UN의 배타적 경제수역 규정(United Nations' exclusive economic zone rule)에 비추어 보면, 국가들은 각국 해안선(coastline)의 200마일 해리(20 0nautical miles)내에서 어업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독도로부터 천연가스 또한 추출이 가능할 가능성도 예측되고 있다(Natural gas may also be extracted from the islands)
7월23일 개막하는 Tokyo2020올림픽을 앞두고 한일 간에 지속적인 외교분쟁(diplomatic row)가 상존해 오고 있다.
<평창2018동계올림픽 당시 한반도 기에 독도 표기 삭제 양보 조치>
평창2018동계올림픽에 앞서, 일본 외무장관 Fumio Kishida는 평창2018조직위원회 웹사이트에 표시된 독도표시자료에 대하여 평창2018조직위원회를 비판한(criticised Pyeongchang 2018 for a reference to the islands on the Organising Committee's website) 바 있다.
“독도 및 울릉도, 한국의 동쪽 끝 영토” (Dokdo & Ulleung-do, Korea’s Easternmost reached territory)라는 타이틀로 평창2018조직위원회 웹사이트 영어 버전에 표기된 페이지의 한 단락(a paragraph on a page entitled “Dokdo & Ulleungdo~)이 동계올림픽 개최도시 및 문화 섹션에 소개되면서 독도에 관한 자료를 명백히 표기(made clear reference to the islands)한 바 있다
한국은 일본측의 불평이 있은 후(after Japan complained)남북한선수단의 평창2018동계올림픽 개회식공동입장 및 여자아이스하키 종목 단일팀 출전 시 사용된 한반도 기에 독도를 특정화 하여 표기하지 않았다(did not feature Dokdo on its unified Korea flag)
(평창2018 동계올림픽 남북한 선수단선수단 개회식 공동입장 및 단일팀에 사용된 독도 표기가 삭제된 한반도 기와 북한 응원단)
2.욱일기 이슈(Rising Sun flag Issue)
한국인들은 일본이 Tokyo2020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국의 식민지 과거 역사를 연상시키고(associated with the Olympic and Paralympic host country's colonial past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군대가 사용했던(used by the Japanese Imperial Army during the Second World War)욱일기 사용에 대하여 비판해(criticised Japan's use of the Rising Sun flag)왔다.
지난 2019년 9월13일 외신보도에 따르면, 새로 임명된 Tokyo2020올림픽 조직위원장인 Seiko Hashimoto는 이러한 한국측의 Tokyo2020대회에서 욱일기(Rising Sun Flag)사용 금지 요청에 대해 일축한 바 있다
그녀는 Bloomberg와의 인터뷰에서 “욱일기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여부에 대한 이슈에 대하여 나는 전혀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On the issue of whether the rising sun flag conveys a political message, I don’t see it that way at all)라고 답변하기도 하였다.
(Seiko Hashimoto Tokyo2020조직위원장)
문체부는 2019년 9월 일본의 욱일기 사용 금지 요청에 대한 거부에 대하여 “심한 실망과 우려”(deep disappointment and concerns)를 표명한 서한을 IOC측에 보내면서 분쟁이 심화된(the dispute escalated)바 있다.
문체부는 욱일기가 나치독일이 사용하던 나치 문양(the swastika symbol)에 비유 되어야 한다고 IOC에 언급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문체부는 욱일기는 일본에서 ‘극우파 조직’(extreme right-wing organizations)에 의해 “외국인 혐오 표출 시위”(xenophobic demonstrations)에 사용되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Tokyo 2020조직위원회측은 욱일기를 정치적 표출로 간주하고 있지 않으므로 일본 국기는 아니지만 일본 사회에서 아직 사용되고 있는 욱일기를 대회에서 금지할 계획이 없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IOC의 올림픽헌장 상 “어떠한 종류의 시위 또는 정치적 또는 종교적 또는 인종적 선전행위도 올림픽대회 경기장과 관련 장소 또는 기타 지역에서 허용되지 않는다”(no kind of demonstration or political, religious or racial propaganda is permitted in any Olympic sites, venues or other areas)라고 명기되어 있다.
Tokyo2020조직위원회 대변인은 욱일기가 일본 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widely used in Japan), “그것이 정치적 표현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고 따라서 금지 항목으로 보지 않는다”(It is not considered to be a political statement, so it is not viewed as a prohibited item)라고 덧붙인 바 있다.
FIFA는 옥일기를 해외일각에서 보는 바와 같이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 침략의 상징으로 보고 욱일기사용을 금지한 국제 연맹들 중(among the organisations to have banned the flag, viewed by some overseas as a sy)mbol of Japan's aggression leading up to, and during, the Second World War) 하나다
일본은 1945년 항복 이전에(before their surrender in 1945)한반도 전체를 포함하여 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을 점령한(conquered large parts of Asia) 바 있다고 외신은 보도하고 있다.
독도문제와 더불어 욱일기 관련 분쟁은 Tokyo2020올림픽을 앞두고 한일간 외교 긴장 수위를 높아지게 하는 최근의 사례이다.
양국 간 무역전쟁이 진행되어 왔으며(A trade war has developed between the countries) 양국은 일련의 보복조치로 상호간의 물품 교역 제한조치를 취해(with both restricting the other's products in a series of retaliatory measures) 오고 있다
3.방사능 오염지역 후쿠시마 産 식품 이슈(Fukushima Food Issue)
한국인들은 Tokyo2020올림픽 기간 동안 일본 후쿠시마 지역으로부터 조달되는 음식에 대하여서도 우려를 표명해 왔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유발한 강력함 지진과 쓰나미 발생 時(when a devastating earthquake and tsunami caused an accident at a nuclear power plant), Fukushima는 2011년 일본을 강타한 사상 최악의 자연 재앙 중 하나에 피해를 입은(struck by one of the worst natural disasters ever to hit Japan, in 201) 바 있다.
(2011년 Fukushima 발생 쓰나미 홍수 재앙)
한국인들은 2019년 당시 해당지역으로부터의 명백한 ‘방사능’ 공포로 인해 Tokyo2020올림픽 대비 사전 전지훈련 캠프 계획 실시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also threatened to review their pre-Tokyo 2020 training camp plans due to apparent fears over "radioactivity" from the region)고 외신은 보도한 바 있다.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26편(내가 대부분 만난 체육부-체육청소년부-문화체육부-문화관광부-문화체육부차관-차관보 및 국장들과의 추억 포토 갤러리)]
그러는 와중에 체육부~문화체육관광부 차관-차관보-국장 등과도 교류와 소통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 해외출장이 잦다 보니 한국에 있는 동안 저녁 시간 등에 오붓하게 돈독한 한국 정서에 걸 맞는 인간적이고 끈끈한 인맥은 많이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한국에서는 실력보다는 끈끈한 인맥 형성과 소통이 다면 평가측면에서 우월한 것이 사실이다.
필자의 경우 체육부 창설 이전에 KOC국제과장을 역임한 오지철차관(한국관광공사사장-한국 케이블 TV협회 회장-TV조선 사장-법무법인 율촌 고문 역임-현 단국대 예술대학원장 및 국제교류협회회장)과는 오랜 세월 동안 동고동락하며 친밀하고 지내 왔다.
소신과 명확한 업무처리로 정평이 나 있는 신현택차관(예술의 전당 이사장 역임)과는 스위스 Lausanne IOC 출장 시 함께 하였으며, 외대 동문인 곽영진 차관과는 평창2018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재직시절이래로 동고동락하였으며 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조현재 차관 및 오영우 제1차관과도 교감을 가지고 교류하고 있다.
Beijing1990아시안게임 시절부터 업무적으로 소통해 왔던 배종신 차관을 비롯하여 통계청장 출신으로 차관 재임 중에 청와대 수석으로 발탁된 바 있던 김대기차관 등과도 교류와 소통을 가져왔었다.
김종차관과는 차관되기전에 업무적으로 인간적으로 교류을 많이 한 편이었지만 차관이 된 이후는 뜸하였다.
현 스위스대사로 발탁된 노태강 전차관과는 국제체육과장과 국장 재임 시절 업무적으로 교류한 바 있다.
2002 FIFA월드컵조직위원회 초대 사무총장과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한 최창신 차관보와 이홍석 차관보와의 인연도 각별 하였다.
(좌로부터 최창신 차관보, 김종하 대한체육회장, 필자)
또한 현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으로 있는 김기홍 실장(1급)과는 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함께 동고동락하였다.
외대 선배인 박종문 국장, 초지일관 불도저로 밀어 붙이는 일 중심의 열성파 우상일 국제체육국장, 평창2018조직위원회에서 바로 옆 방에서 근무하며 친하게 지냈던 김현기 국민소통실장, 조직위 근무 기간 동안 임시숙소인 강릉으로 출퇴근 버스 짝꿍이었던 홍보국장으로 대회 홍보의 중심축을 담당한 김대균국장(현 아리랑 TV전무이사),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전체를 기획하고 총괄했던 김대현국장, 문화 업무를 전담했던 황준석국장 등 기라성 같은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및 이선영 성화봉송 총괄부장 등 정부 각 부처 파견 공무원들의 헌신적이고 유기적인 업무 협조로 평창2018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된 바 있다.
Tokyo2020올림픽 및 서울-평양2032공동올림픽유치관계로 몇 번 만나 식사도 같이 했던 박용철 현 국제협력관(국장) 등과도 함께 교류하였다.
(특히 오지철차관이 해외협력담당관-국제체육국장-평창2014대통령유치특보 시절 필자와 국제업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함께 올림픽대회 및 국제회의 참석 차 해외출장을 비교적 많이 한 바 있다)
(첫째 줄 좌로부터: 오지철 차관-신현택 차관/둘째 줄: 배종신차관-최윤희차관-오영우 차관/셋째 중: 이보경 차관보-한기복 체육부 기확관리실장<부산2002AG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역임/넷째 줄: 1987년 체코 동계유니버시아드 좌로부터 장병조 국제체육국장<청와대 체육비서관 역임)-필자-정성태 체육과학연구원장-김종하 대한체육회장-관게부처국장-이승원 대한스키협회장 겸 FIS집행위원-이세기체육부장관-Renata체코 연락관-오지철 차관<당시 해외협력관>
(이영호 체육부장관 시절 비서관이었고 체육부 국제체육국장을 역임한 박종문국장은 외대 선배이며 스페인어 전공자답게 스페인어에 능통하였고 특히 스페인어 노래인 La Golondrina<제비>를 구성지게 잘 불렀던 기억이 삼삼하다)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25편(내가 대부분 만난 체육부장관-체육청소년부장관-문화체육부장관-문화관광부장관-문화체육부장관들과의 추억 포토 갤러리)]
1981년 9월30일 서독 바덴바덴(Baden-Baden) 스포츠외교대첩은 박종규 대한사격연맹회장 겸 KOC위원장의 야망으로 시작되어 노태우장관이 총괄지휘하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을 비롯한 유치 단 멤버들의 불철주야 주도면밀하고도 역사적인 ‘천둥번개작전’(Thunderbolt Operation)에 의해 화룡점정 된 것이다.
박종규회장의 꿈, 박정희대통령의 결심, 전두환대통령의 유치신청결단, 노태우 정무2장관의 확신 찬 진두지휘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정부의 지도층은 서울올림픽의 꿈의 불씨를 살려 찬란히 지피도록 견인차 역할을 다하였다.
‘바덴바덴 대첩’의 기적은 그 후 개최되기까지 7년 간 숱한 우여곡절과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1988년 9월17일 동서양이 한반도에 모두 모여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벽을 넘어서 올림픽을 통한 세계 대 단합과 인류화합의 합창을 부르게 된 것이다.
1981년 9월30일 서울1988올림픽유치성공 직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개최를 위하여 정부차원의 조직위원회 지원과 올림픽개최국인 한국의 대회우수성적 거양 및 스포츠발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 위한 대책으로 1982년 초 창설된 것이 체육부이다.
초대 체육부장관으로는 노태우 내부무장관이 임명되었다. 노태우 장관이 1달 남짓 재임 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초대 조직위원회위원장으로 발령이 나자 2대체육부장관에 KOC명예총무와 합동통신사장을 역임한 이원경장관이, 이후 3대 체육부장관으로는 예일대학박사로 이대교수 출신이었던 이영호 체육부차관이 3대 체육장관으로 발탁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81년 9월 30일 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대한민국 서울이, 1988년 제24회 올림픽대회 개최도시로 선정된 직후인 1982년 초 서울올림픽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하고 체육 및 스포츠 발전의 근간과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일환으로 「체육부」를 탄생시켰으며, 올림픽대회 성공개최의 2개축인 원활한 대회조직 및 운영과 개최국 선수단의 우수성적 거양을 위한 체계적이고 범정부적인 탄탄한 종합계획실행과 지원 육성방안을 수립, 실행하여 서울올림픽대회의 성공적 조직은 물론 한국 선수단의 종합성적 세계 제4위라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이루어 내는데 견인차 역할을 다하였다.
당시 체육부가 입안하여 실행했던 「꿈나무 프로젝트」는 그후 대한민국이 세계스포츠계에서 스포츠강국으로 그 위용을 떨치게 했던 대한민국 정부의 스포츠발전에 기여한 위대한 업적이며 각 올림픽대회 개최국의 모범사례로서 Bench Marking 되어온 셈이다.
그 후, 체육부는 「체육청소년부」, 「문화체육부」를 거쳐 4개과를 둔 체육국만을 존속시켜 명맥만 유지한 채 체육이란 명칭은 자취를 감춘 「문화관광부」내에 셋방살이 격 신세로 초라하게 남아있었다.
체육계에서는 「체육청」신설요구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던 가운데 기존 「문화관광부」를 「문화체육관광부」로 개칭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각국마다 스포츠를 관장하고 있는 정부조직 형태는 다양하다.
독립된 부처로서 체육부를 두고 있는 대표적인 선진 국가는 영국과 프랑스이다.
200조원 이상의 경제·사회 유발효과를 가져올 스포츠 한류의 지속발전 가능한 미래 청사진을 책임지고 전담할 「체육부」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1. 체육부시절: 1982.3.20-1991.2.1
<전두환 정부 시절/5공>
제1대 체육부장관(초대): 노태우(1982.3.20-1982.4.28)/제13대 대통령/SLOOC위원장/대한체육회장 등 역임
제2대: 이원경(1982.4.28-1983.10.15)/외무부 장관, KOC명예총무 등 역임
제3대: 이영호(1983.10.15-1986.1.8)/SLOOC집행위원장, 초대 체육부차관, 이화여대 교수 등 역임
제4대: 박세직(1986.1.8-1986.8.27)/총무처장관, SLOOC위원장, 안기부장, 서울시장 등 역임
제5대: 이세기(1986.8.27-1987.7.14)/국회의원 등 역임
제6대: 조상호(1987.7.14-1988.12.4)/대한체육회장, SLOOC사무총장 및 부위원장, 청와대 의전수석 등 역임
<노태우 정부 시절/6공: 1988.2. ~1993.2>
제7대: 김집(1988.12.5-1990.3.18)/대한체육회부회장, 태릉훈련원장 등 역임
제8대: 정동성(1990.3.19-1990.12.26)/국회의원 등 역임
2. 체육청소년부 시절: 1991.2.1-1993.3.5
제9대체육청소년부장관(초대): 박철언(1990.12-1991.12)/정무장관 등 역임
제10대: 이진삼(1991.12-1993-2)/국회의원, 4성장군 등 역임
3. 문화체육부 시절: 1993.3.6-1998.2.1>/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가 통합
<김영삼 정부 시절>
제11대 문화체육부장관(초대): 이민섭(1993.2.26-1994.12.23)/국회의원 등 역임
제12대: 주돈식(1994.12.24-1995.12.20)/신문사 주필, 청와대 수석 등 역임
제13대: 김영수(1995.12.21-1997.3.5)/청와대수석, 프로농구연맹총재 등 역임
제14대: 송태호(1997.3.6-1998.3.2)
4. 문화관광부 시절: 1998.3.3-2008.2.28
<김대중 정부시절>
제15대 문화관광부장관(초대): 신낙균(1998.3.3-1999.5.23)
제16대: 박지원(1999.5.23-2000.9.19)
제17대: 김한길(2000.9.20-2001.9.18)
제18대: 남궁진(2001.9.19-2002.7.10)
제19대: 김성재(2002.7.11-2003.2.26)
<노무현 정부시절>
제20대: 이창동(2003.2.27-2004.6.30)
제21대: 정동채(2004.7.1-2006.3.6)
제22대: 김명곤(2006.3.27-2007.5.7)
제23대: 김종민(2007.5.8-2008.2.28)
(Athens2004올림픽 당시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겸 IOC집행위원<좌측>와 공동 면담 중인 정동채 장관<우측 가운데>과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우-1> 및 설명 중인 필자<우-1>)
5. 문화체육관광부 시절 2008.2.29-2017년 4월
<이명박 정부 시절>
제24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초대): 유인촌(2008.2.29-2011.1)
제25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제2대): 정병국(2011.1-8)
제26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제3대): 최광식(2011.9~2013.3)
(Beijing2008올림픽 당시 한국야구팀이 우승으로 금메달을 확정 한 후 좌로부터 유경선 대한 트라이애슬론연맹<KTU> 및 아시아트라이애슬론<ASTU> 연맹회장-유인촌장관-필자/명장 김경문 감독이 이끈 한국 야구팀은 Beijing2008 올림픽에서 9전 전승이라는 전인미답의 전승 우승으로 금메달 신화를 이루어냈다. 세계 최강 쿠바와 미국, 그리고 영원한 맞수 일본 등을 모두 물리친 것으로 우리나라 스포츠 사상 남자 구기 종목 첫 금메달이었다. 준결승에서 이승엽의 역전 홈런으로 일본을 꺾었으며, 세계 아마 야구 최강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는 류현진이 역투하고, 이승엽이 결정적인 2점 홈런을 날려 3대 2 한 점 차 승리를 거두었다<출처: 올림픽백과>)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24편(내가 만난 한국 대통령-총리-부처장관-도지사-시장-주한미국대사-미군사령관 등 VIPs들과의 추억 포토 갤러리)]
노태우대통령-김영삼대통령-김대중대통령-노무현대통령-이명박대통령-고건 국무총리-한승수 국무총리-김진선강원도지사-이원경 외무부장관 겸 체육부장관-이영호체육부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박세직 SLOOC위원장 겸 총무처장관 겸 안기부장 겸 서울시장 겸 체육부장관-공로명외무부장관-김정길 행자부장관-이연택 총무처장관 겸 노동부장관 겸 청와대 행정수석 -최재승 국회문광위원장-이희범 산자부장관-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위컴대장-소준열 1군사령관-박원순서울시장-안상영부산시장-안상수 인천시장-최명희 강릉시장 등 많은 분들과 교류하고 소통하였다.
(상단 좌로부터: 노태우대통령-김영삼 대통령-노태우SLOOC위원장시절-김옥숙 영부인/중단 좌로부터: 김대중대통령-이명박대통령-노무현대통령/하단 좌로부터: 김대종대통령 감사서한-표창장-ANOC훈장 및 각종 훈장 등)
(상단 좌로부터: 고건 총리<2003년 Prague IOC총회 평창2010유치 프레젠테이션>-필자<국제총장>평창2010 프레젠테이션-김진선 강원도 지사 겸 평창2018 초대조직위원장-공로명 평창2010유치위원장<외무부장관 역임>/둘째 줄 좌로부터: 한승수 평창2014유치위원장<상공부장관,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역임>, 이원경 체육부장관<외무부장관 역임>, 이영호 체육부장관<SLOOC집행위원장 역임>/셋째 줄 좌로부터: 박세직 SLOOC위원장<총무처장관-체육부장관-안기부장-서울시장 역임>, 김정길 KOC위원장<행자부장관 역임>,Glysteen 주한미국대사, 소준열 1군 사령관, 박원순서울시장/넷째 줄 좌로부터: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총무처장관, 노동부장관 청와대 행정수석 역임>, 이희범 산자부장관<평창2018조직위원장 역임>, 위컴 미8군 사령관, 안상영 부산시장, 최명희 강릉시장)
(국회문광위원장 최재승의원과 함께<좌측사진>/우측사진: 좌로부터 평창 을밀대에서 이금홍 WTF사무총장-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WTF 창설총재 겸 KOC위원장-필자)
특히, Thomas Bach IOC위원장 강릉 명예시민 위촉 시 방명록에 강릉=Olympic City로 쓰도록 Bach IOC위원장에게 권하여 강릉은 IOC위원장이 올림픽市로 명명하여 올림픽역사에 기리 남게 된 사실이 마음 뿌듯하다
(강릉시 명예시민증 수여차 강릉시청 방문시 필자에게 방명록에 쓸 문구를 묻자 필자가 "강릉시=Olympic City"라고 쓸 것을 권하였고 Bach IOC위원장의 필체로 강릉을 올림픽도시로 명명하여 주었다)
역대 필자가 만난 체육부장관-체육청소년장관-문체부장관-문광부장관-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