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0년 4월19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9: 19~ 31/ 성령의 위로)]
<사도행전 9:19~31>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and after taking some food, he regained his strength. Saul spent several days with the disciples in Damascus). 20.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At once he began to preach in the synagogu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All those who heard him were astonished and asked, "Isn't he the man who raised havoc in Jerusalem among those who call on this name? And hasn't he come here to take them as prisoners to the chief priests?")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Yet Saul grew more and more powerful and baffled the Jews living in Damascus by proving that Jesus is the Christ.) 23.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After many days had gone by, the Jews conspired to kill him,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but Saul learned of their plan. Day and night they kept close watch on the city gates in order to kill him.)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But his followers took him by night and lowered him in a basket through an opening in the wall.) |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But Barnabas took him and brought him to the apostles. He told them how Saul on his journey had seen the Lord and that the Lord had spoken to him, and how in Damascus he had preached fearlessly in the name of Jesus.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So Saul stayed with them and moved about freely in Jerusalem, speaking boldly in the name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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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Then the church throughout Judea, Galilee and Samaria enjoyed a time of peace. It was strengthened; and encouraged by the Holy Spirit, it grew in numbers, living in the fear of the Lord.) |
<Prologue>
온 라인 9주차 예배다
참 위로가 필요하다
선거가 끝났고 우리는 열심히 기도했다
특별히 17년 간 가장 많이 기도했다고 할 수 있는 주간들이었다.
새벽과 저녁에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면 100%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어야겠다
잘 되면 잘되는 대로 두려워 (회개)해야 하고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감사해야 한다
그래야 교만도 낙심도 하지 않는다
바울이 성령의 회심을 하고 그 좋은 복음을 전하는 데 성령의 위로로 진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위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1}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성령의 위로를 주신다.
19절.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정오의 빛보다 밝은 빛이 강타를 하니까 성령의 회심이 되어서 원수 같던 제자들과 하나가 되었다.
이 정도나 돼야 지역감정을 타파할 수 있는 것 같다.
지난 주 적용질문으로 지역감정과 남녀차별에 대해 나누어 본 결과 남녀 차별이 압도적으로 심하게 많았고 지역감정도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성령의 회심은 안 되는 것이 맞다.
우리가 믿는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게 맞는가?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 나라가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게 아니다.
전쟁이 아니라 구원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악 때문에 바벨론 포로로 가야 하는 것이다
바벨론의 포로로 가야 한다는 것은 망하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예레미야).
말씀으로 인도 받고 해결이 되어야 한다
학교 잘 가고 전쟁 안 나고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라 구원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세상은 분별이 안 되니 소수가 가는 좁은 길로 가야 한다
넓은 길은 사망 행 길이다
회심을 하게 되면 적대시하던 제자들과 하나가 되고 자기 편이었던 유대인들과는 원수가 되니까 세상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수파로 온 바울, 소수라도 예수 씨(seed)를 택해야 한다.
세상은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 죽은 것 같아도 예수 씨를 호호 불어서 살려내야 하는 것은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가치관이 철저하게 이기적이란 것을 절대로 다들 인정 안 하는 것은 영적 소경이기 때문이다.
(적용 #1)
--여러분은 소수라도 택해야 하는 예수 씨 제자의 의미를 아나? 몇 프로나 아나?
2}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 성령의 위로를 주신다.
19-22절. 불과 제자들과 며칠 함께 있던 그 실력 가지고 즉시로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바울이다
27-29절. 담대히 전했던 바울인데 베드로가 고넬로를 전도한 이후 사도행전은 사도바울의 행전으로 계속된다.
무슨 복음을 담대히 전했을까?
본인이 기독교인을 잔멸하러 다녔기에 회당에 갔단 것은 죽기를 각오한 것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란 표현은 사도행전에서는 여기서 처음으로 사용됐는데 이게 왜 중요한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했던 이유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기 때문이며그들에게는 가당치 않은 이야기로써 그래서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믿지 않으니 신도들과 교회를 잔멸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절대로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했던 대제사장들은 나사렛 목수 출신이고 처녀가 아들을 낳은 것을 성령의 잉태라고 하면서 구세주라고 하니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제사장들의 주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주 받았기에 절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이다.
메시아가 아니란 증거가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인인 사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기복의 끝판왕’이며’자신교 교주’였던 것이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허수아비고 자기를 믿는 것이 자신교의 교주인 것인데 다 똑같다.
우리는 다 잘되기 위해서 믿는다.
우리 집안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정한수 떠놓고 믿는 것처럼 십일조하고 교회 가고 하는 것이다
언제나 좋은 이야기, 거룩한 얘기만 하면 거룩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가 일원론이 아니라 완전 분리되어 있다
남들에게 거룩해 보이면 거룩한 것인가?
거룩한 말을 한다고 거룩한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트롯트와 같은 세속적 음악(secular music)을 선 보이면 시비하고 비난한다
포도주를 마시고 세리와 친하고 사마리아인의 집에서 거주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경건해 보이지 않는다
당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이 너무 개혁적이고 새로워서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은 바울 서신에서 모두 165번 사용되는데, 이는 ‘아담 안에서’ 라는 말과 대조적인 표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하신 주만 있는 것이 일원론이다
구속하신 주만 있게 된다는 것을 사도바울이 강조했다.
(적용 #2)
-여러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여전히 목수의 아들인가?
-겉으로 경건한가? 속으로 경건한가?
-여러분의 허세와 ‘후까시’는 몇 프로인가?
3}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성령이 위로하신다.
눈살 찌푸리게 행동하면서 ‘주여, 주여’ 하는 사람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같지 않지만 세상은 똑같이 본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멸하려던 자가 바로 내 속에 있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바울)이었기 때문에 오해 받아도 슬퍼할 자격도 없었다.
자기 죄를 모르니 억울한 것이 많은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했다.
객관적인 논리로 입증하고자 해보다 밝은 빛을 통해 자기 간증을 함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다’이지 ‘성공이 그리스도’가 아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보았고 만났고 동행하는 자가 되니 회심한 자가 되었다
유대인들을 당혹케 하고 굴복시켰다.
말씀 속에서 연단으로 분별이 되어야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전도 훈련을 안 받으면 지식만 쌓여서 전도가 안 된다
(적용 #3)
-여러분은 예수의 이름을 얼마나 부르는가?
-어느 때 부르는가?
-복음을 간증과 말씀으로 설득력 있게 전하는가, 감정적으로 전하는가?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No Cross, No Crown)
예수를 그리스도라 한 후에는 꽃 길이 아니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이걸 무섭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무서울 것이다.
4} 죽음의 고난에서 생명의 위로가 임한다.
23절.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한다
복음은 전하는 사명과 고난을 당하는 사명이 있다.
No Cross, No Crown! 영광을 얻기 위해서 고난을 당할 것을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성령의 회심자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늘 고난을 생각했다.
사울은 스테반을 생각하면 자기의 죄가 얼마나 큰지 자각하기에 어디서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으니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은 것은 신의 한 수다
사울은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음성을 생각하면서 유대인에게 ‘죽으면 죽으리라’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다
2천년 성경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두 명은 Paul과 Augustin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얼마나 죄인이었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
아무리 정오의 빛을 만나도 그때부터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세상이 등지고 반드시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회심이 확실할수록 세상과 반대되는데 세상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원수다.
세상에서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회심은 가짜일 수 있다
양쪽에서 다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회심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24절~ 우는 사자와 같이 사탄은 나를 집어 삼키려고 24시간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때 성벽에서 들창을 통해 광주리를 밧줄로 내려 도와주는 이들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고 3년 거주한 아라비아를 다녀온 후 오순절에 성령 받고 감화 받은 사람들한테 전도 받아 바울에게 생긴 제자들이다.
사울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에 늘 도와주는 자가 있는 것이다.
사울은 절대로 도망 안 가며 제자들이 성벽에 달아 내렸고 죽을 수 도 있었는데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냥 광주리가 아니고 그 시절에 다 아는 쓰레기를 담아 내리는 광주리로써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지 않을까?
자존심으로는 구원되지 않는 것이므로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구원 때문에 광주리 타고 도망 갈 수도 있다.
사명자는 사명을 다하기까지 절대로 죽지 않으며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이 대려 가신다
순교가 사명인 이들도 있었는데 사도 바울의 사명은 다른 것으로 각자 사명이 다르다.
(적용# 4)
-여러분은 죽음의 고난에서 성령의 위로를 받은 적 있나? 지금 받고 있나?
-그래서 위로 받고 누구를 위로했는가? 지금 누구에게 위로 받고 있나?
-성령의 위로를 받고 있나? 연민에 빠져 남편/부모/자녀의 위로만 받으며 슬퍼하고 있나?
-연민은 몇%인가?
5} 중재자를 보내주셔서 위로하신다.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치명타다
유대인공동체에서 사도바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유대인들만 힘들 게 하고 미워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사울을 믿지 않았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이렇게 인정받지 못하는 때도 있다.
힘든 사람에게 오는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다
27절. 길을 내주셨다.
유대인들이 다 두려워해서 믿지 아니할 때 유대인들의 대부인 바나바(Barnabas)를 준비하셨다.
바나바는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들보다도 더 최고의 신뢰를 축적하였고 돈이 많고 착하고 믿음이 충만한 적임자이자 애정 깊은 중재자이자 권위자였다.
28절. 바나바의 중재로 오해가 다 풀렸다.
그래서 자유롭게 교제를 했다.
29절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Grecian Jews)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쉴만하면 죽이려고 힘쓰는 패턴이다
사울은 복음 전하고 가버리는 길거리의 전도자가 아닌 시종일관 도시를 옮겨 다니며 거점 삼아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다.
몰래 하는 게 아니라 회당 들어가서 하니 그들의 격분을 샀던 것으로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구원을 목숨보다 원한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원수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전했는데도 죽이려고 한 것은 토론에 밀렸다는 뜻이다.
강철 왕 카네기는 친구를 잃으려면 친구와의 논쟁에서 승리하라고 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으면 입을 다물라.
(적용)
-토론에서 이기나? 지나?
죽음을 무릅쓰고 전도활동을 하는 걸 보고 형제들이 신뢰를 하게 되었고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됐다(30절).
형제들은 사도바울이 위험한 것을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배에 태워 다소(Tarsus)까지 보낸 것인데 다소에서 연대기에 기록되지 않은 몇 년을 보낸 것이다
사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죽고자 하니 형제들이 옆에서 도왔다. 바울도 형제의 조언이 필요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31절. 반전. 교회가 부흥되었다. 그리하여는 30절까지를 받는 게 아니고 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흩어짐 이후 생긴 모든 일을 받는 것으로 성도들에게 대 박해가 있어 흩어져가지고 예루살렘 교회 하나밖에 없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가 생긴 것이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으며 모든 것이 성령의 위로로 진행이 된 것이고 수가 더 많아져(grew in numbers) 비약적 부흥을 이루었다.
박해시대에 로마가 황제 우상화 정책추진으로 인하여 박해가 약해지게 하신다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만 하면 100%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이래도 저래도 100% 옳으시니 내가 내 잣대로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걸 원망하지 말고 자기한테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형제가 생기고 공동체가 생기고, 더욱 더 신뢰를 받아야 하고. 형제가 없으면 죽어야지 어떻게 하겠나?
‘형제가 없는 건 내 삶의 결론이다’라고 생각하면 안타까울 일이 없다.
기도했으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적용 #5)
-여러분의 바나바는 누구인가?
-바나바가 되어준 적이 있나?
<Epilogue>
-수 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사울은 예수 씨로서 사명 감당하도록 하신다
-죽음의 고난에서도 사울은 성령의 위로를 받고 죽음의 고난을 사명으로 여긴다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며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아무 것도 몰라도 주님 이름 불고 기도하면 된다
-소수라도 예수 씨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복음을 간증으로 설득력 있게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전한 복음이 받아 드려져 예수 씨가 널리 퍼져서 구원의 결실을 맺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잘 되면 잘되는 대로 두려워 (회개)해야 하고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감사해야 한다
-그래야 교만도 낙심도 하지 않는다
-바울이 성령의 회심을 하고 그 좋은 복음을 전하는 데 성령의 위로로 진행했다고 한다
-인간의 힘으로 성령의 회심은 안 되는 것이 맞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 나라가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게 아니다.
-전쟁이 아니라 구원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악 때문에 바벨론 포로로 가야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인도 받고 해결이 되어야 한다
-학교 잘 가고 전쟁 안 나고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라 구원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세상은 분별이 안 되니 소수가 가는 좁은 길로 가야 한다
-넓은 길은 사망 행 길이다
-다 죽은 것 같아도 예수 씨를 호호 불어서 살려내야 하는 것은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가치관이 철저하게 이기적이란 것을 절대로 다들 인정 안 하는 것은 영적 소경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으니 신도들과 교회를 잔멸하는 것이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허수아비고 자기를 믿는 것은 자신교의 교주인 것인데 다 똑같다.
-언제나 좋은 이야기, 거룩한 얘기만 하면 거룩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가 일원론이 아니라 완전 분리되어 있다
-거룩한 말을 한다고 거룩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하신 주만 있는 것이 일원론이다
-눈살 찌푸리게 행동하면서 ‘주여, 주여’ 하는 사람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같지 않지만 세상은 똑같이 본다.
-자기 죄를 모르니 억울한 것이 많은 것이다
-객관적인 논리로 입증하고자 해보다 밝은 빛을 통해 자기 간증을 함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다’이지 ‘성공이 그리스도’가 아니다.
-말씀 속에서 연단으로 분별이 되어야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전도 훈련을 안 받으면 지식만 쌓여서 전도가 안 된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No Cross, No Crown)
-예수를 그리스도라 한 후에는 꽃 길이 아니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복음은 전하는 사명과 고난을 당하는 사명이 있다.
-‘No Cross, No Crown!’영광을 얻기 위해서 고난을 당할 것을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
-아무리 정오의 빛을 만나도 그때부터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세상이 등지고 반드시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회심이 확실할수록 세상과 반대되는데 세상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원수다.
-세상에서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회심은 가짜일 수 있다
-양쪽에서 다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회심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사울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에 늘 도와주는 자가 있는 것이다.
-자존심으로는 구원되지 않는 것이므로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사명자는 사명을 다하기까지 절대로 죽지 않으며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이 대려 가신다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치명타다
-힘든 사람에게 오는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다
-강철 왕 카네기는 친구를 잃으려면 친구와의 논쟁에서 승리하라고 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으면 입을 다물라.
-박해시대에 로마가 황제 우상화 정책추진으로 인하여 박해가 약해지게 하신다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만 하면 100%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이래도 저래도 100% 옳으시니 내가 내 잣대로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걸 원망하지 말고 자기한테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 ‘형제가 없는 건 내 삶의 결론이다’라고 생각하면 안타까울 일이 없다.
-기도했으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주님, 주님 씨가 홀씨처럼 땅끝 구석구석까지 흩어져 구원의 결실이 맺게 되어 주님께 영광 돌리는 기쁨누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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