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3. 30. 10:57

[우리들교회 2020 329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8: 25~ 40/ 성령의 큰 권세)]

 

 

<사도행전 8:25~40>

25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Prologue>

 

온 라인 예배 6주 째다.

안 보이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헤어지려면 물리적으로도 떨어져있으라고 한다

그래서 정을 붙이지 못한 성도들은 떠내려 갈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 설교가 좋아도 하나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공동체가 없으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확실히 알게 하신다

그래도 전시상황이지만 단톡방에서 나눔을 하는 구조가 되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사도행전 8장에는 ‘great’()이란 수식어가 많이 들어간다

큰 박해’, ‘큰 기쁨’. ‘큰 능력에 이어 오늘은 큰 권세가 나오는데 개역한글에 나온다.

성령의 역사가 다이내믹(dynamic)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큰 권세는 어떤 권세인지 보겠다.

 

<말씀요약>

 

1)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는 권세다.

두 사도가 돈으로 성직매매 하는 simony, simonism을 경계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교만한 것이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들 중의 하나다.

돈으로 성령을 사려는 사람들은 말씀대로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이는 것을 볼수가 있다.

시몬이 빌립을 전심으로 쫓아다니며 믿음의 흉내를 내었지만 이 simonism이 교회를 말아먹는 악인 것이다

교회가 빛이 바래고 생명력을 잃는 것은 바로 이 simonism의 영향이다

교회는 직분 가진 자가 필요하고 직분을 감당하려면 돈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십자가의 구속을 경험하지 못하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사가 없는 사람이 돈으로 직분을 맡게 되면 본인도 교회도 망하는 것으로 자기 세상 잣대로 교회를 정치 경제를 아우르게 되니까 그렇다.

사마리아처럼 교회가 부흥하게 될 때 simonism이 판을 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아야 시몬의 돈을 거절할 수 있겠고 복음을 지키는 것이다

사마리아까지도 도망 와서 다 전도하고 시몬을 물리치고 부흥하고 있는데 또 주의 사자가 와서 일어나서 가라명령하신다

지금도 내려왔는데 더 내려 가라고 하는데 그것도 광야길이다

그 당시 가사는 폐허의 가사 길이었다

내려가는 길까지 내려가라 하신다

어쩔 수 없이 박해로 흩어졌고 이제는 핍박도 없는데 또 힘든 곳으로 가게 하신다

즉시 일어나서 가라했으니까 이러나 간 것이 중요하다

가니까 보이는 것이 있어서 결국 만난 사람이 이디오피아의 내시(eunuch)를 만나게 되는 것으로 이는 순종의 결과인 것이다

전승에 의하며 스바 여왕과 솔로몬 왕 사이에서 생긴 아들이 세운 나라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마리아인과는 또 다른 혼혈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왜냐하면 정식 첫 번째 개종자는 베드로가 전도한 고넬료라고 칭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 내시를 반쯤은 유대인이니까 유대인으로 치더라

이방인, 유대인 축에도 못 끼지만 본인은 유대교인이기 때문에 절기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난 것이다

간다게(Candace)는 바로(Pharaoh)와 같은 여왕의 칭호로 그 당시 왕은 세속정치로 속을 썩이면 안되어 신성한 역할만 하고 모든 정치는 어머니가 맡았다.

그래서 내시가 여왕의 대신인 재정장관으로 모든 국고를 맡았다.

큰 권세를 가졌던 것이지만 장관이라 하지 않고 내시라고 소개한 것은 여러 가지를 함축시키는 말이다.

말씀을 지키고자 한 것을 보면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던 것으로 이 내시도 경건한 유대인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황폐한 광야 길을 가는데 미완료 과거로 계속하여 큰 소리로 성경을 읽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갈급함이 있었으면 그랬을까? 이것이 준비된 심령이다

저녁 기도회의 기도에 훗날 30, 40년 후에 신실하게 응답하여주실 것을 믿는다.

내시는 유대인의 피가 흘러도 큰 권세를 가졌고 돈도 가졌지만 자기가 고자가 돼서 내시가 됐는데, 원하는 걸 이루었지만 권세를 잡고 나서 보니까 허무해서 예루살렘으로 예배 드리러 갔는데 아무도 자기를 사람취급을 안 한다.

이디오피아에서는 자기가 남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에서는 자기가 무시를 당하니 얼마나 고독했겠는가?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손볼 자가 정말 하나님밖에 없다. 아직도 안 돌아오고 있는 그들이다

주의 사자가 성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29).

좀 더 구체적으로,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는 것은 밀착하라는 의미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완전히 맞을 짓 아니겠나?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가정교사로 성령을 주시는데, 예민한 인도를 받으면 준비된 심령을 만나게 하신다.

예민하지 않으니까 전도해서 실패할 사람들만 만나고 와가지고 무시 받고 집에 와서 기분이 나쁘다.

준비된 심령을 알아보는 통찰력을 갖게 되는 것이 예민한 인도함의 결론이다.

그래야 전도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남쪽으로 또 내려가라고 하신다.

가라, 가까이 나아가라와 같이 사소한  말을 잘 들으면 큰 권세를 갖게 된다.

사소한 게 큰 것으로 사소한 것부터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다.

말씀의 인도함으로 받는 것이 큰 권세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지 못하면 고집의 인도함을 받고 떠나야 할 때와 있어야 할 때를 분별치 못한다.

(적용 #1)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고 일어나 가야 하는 불편한 광야는 어디인가?

-돈이 있다면, 또 높은 자리에서라면 드러날까 두려운 약점은 무엇인가?

 

드러날 약점이 없다면 돈이 없고 낮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지 믿음 좋은 것은 아니다.

 

2)   어디에서든지 예수를 전할 수 있는 권세다.

 

30. 달려가서. 가까이 나아가란 명령에 즉각적, 적극적으로 순종한 것이다

성경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기억하기 좋은 방법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때문에 읽는 거지 몇 번을 읽었단 게 중요한 건 아니다.

깨닫느냐?’는 중요한 질문으로 내시가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빌립이 가지고 물은 것이지 내시를 무시해서 묻는 게 아니다.

이혼을 한다는 사람에게 큐티책을 주고 며칠 읽어보라고 하고 깨달아지세요?라고 묻는 것은 안 깨달아져서 이혼하겠단 거 아닌가

31. 내시는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고 빌립을 청한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두 가지 선물 주셨는데, 첫째는 성경, 둘째는 성경을 해석해주시는 교사라고 한다

인생의 최고의 선물은 성경과 교사로 더 이상 필요한 게 뭐가 있는가? 우리는 선물을 다 받았다.

지도해주는 이 없으니 갈급함과 목마름이 커서 수치와 자존심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청한 것만으로도 성령이 임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내시가 일었던 성경 구절은 구약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메시아 예언으로 십자가 죽음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는 본문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예수시대 사람들은 예수님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수치와 모욕이 당연히 자기 죄로 인한 것이라 여겼다.

대속의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었기에 십자가의 죽음이 내 백성의 허물로 인함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는 자기 죄로 죽었어라고 생각하고 공정한 재판 받지 못한 것도 그 사람이 죄가 많아서 그래라고 생각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로 결론이 안 나니까 도덕과 윤리로 읽고 깨닫지 못한다.

어디를 봐도 예수님 이야기로 읽어야 하는데 구속사적으로 읽어도 고난이 없으면 예수님이 사지로 가는 양과 같고, 생명이 땅에서 빼앗기고...이런 말이 다 듣기 싫은 십자가 얘기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옆에서 겪어도 전혀 모른다.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어도 고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내시의 경우도 풍요 속에서도 곤고함이 있어 깨달음을 배우기 위한 갈급함이 있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된 것을 빌립이 배우고 경험했는데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져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말해주고 빌립에게 임한 성령이 내시에게도 전달되니까 깨닫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심을 너무 잘 알고 있던 초대교회에서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전했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의 모든 인생은 거기서부터 예수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 거기서부터 예수를 가르치며 주님을 전해야 한다.

사울도 그러했다. 자기가 잔멸하던 사람을 어떻게 그리스도라 전할 수 있었겠는가?

사울이 주님을 만난 후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한다

창세기, 계시록, 시편을 봐도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전해야 하고, 그게 우리가 하는 큐티다.

그날 본문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전하는 것이며 어떤 본문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남편, 학벌, 성공이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 같으니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됐다.

내 간증, 네 간증, 성경 어디를 보아도, 드라마, 뉴스, 코로나에서도 그 어디에서도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명이다.

천하에 구원받을 이름은 예수 외에 없다.

복음의 큰 권세는 어디서부터든 예수가 그리스도다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못 알아듣겠지만 우리는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전해야 한다.

 

(적용#2)

-어디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전하겠는가?

 

3)   사라지는 권세다.

사라지는 권세가 최고의 권세다

모든 것에 자유함을 갖게 되는 것 (36). 모든 것을 가지고도 고독했던 내시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됐다.

거기서부터 예수로 연결이 되면 해석이 되어서 해결이 되는 것이다.

빌립 집사에게 세례 받는 것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빌립이 집사인지 사도인지 상관이 없다. 본질적인 사람이니까.

복음이 북부 아프리카까지 전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37 (없음). 이것도 묵상해야 한다.

킹제임스(KJV) 버전에는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다구절이 있다. 세례문답 같다. (And Philip said, If thou believest with all thine heart, thou mayest. And he answered and said,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세례를 받는데 조건이 꼭 달린 것처럼 우려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으면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인데 이것이 형식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형식이 필요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성령이 내시 위에 내리셨으며 천사가 빌립을 이끌어 갔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 늘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있는 것처럼 세례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빌립을 훈련시키셔서 내시에게 주기 하시므로 리더로서 성령세례와 진정한 복음을 경험하게 하셨다.

경험을 통해 복음의 통일성을 갖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빌립이 세례를 베푼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평신도).

안 해야 되는 건 절대로 안 해야 한다. 사도부터 초대교회에서 시작된 연결된 통일성은 매우 중요하다.

빌립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사소한 게 없다. ‘일어나 가서 보라’, ‘수레에 올라타라를 사소하게 여기니까, 문자적으로 하라는 건 아니다.

내시(eunuch) 하나 구원하려고 성령님의 주의 사자로 주의 영으로 바쁘게 등장하셨다.

빌립이 하는 일이 아니다.

주도적이고 세밀한 간섭으로 긴박하게 성령이 일하시어 이끌어 갔다에 뜻이 여러 개 나오는데파괴의 위험에서 구함이란 뜻이 있다.

빌립이 영광 받을까 봐 파괴될 위험에서 구하셨구나성령님이 하신 일인데 빌립이 잘난 척 할까 봐그럴 확률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데려가셨다.

내시는 기쁘게 자기 길을 갔다. 내시는 빌립이 전해준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빌립이 없어지는 슬픔을 기쁨이 압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으면 나의 슬픔을 압도할 것으로 믿는다.

큰 권세는 복음의 권세인데,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의 모델이내시.

구스가 땅끝으로 선교의 지경을 넓히고자 성령님 열심히 일하셨다.

아소도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지역으로 빌립이 미리 밑밥을 깔아놓은 것이다

40. 사마리아를 복음화 시키고 베드로에게 영광을 다 돌리고 사라졌다.

이방인 개종자도 베드로에게 영광을 돌리고 고넬료로 자리매김한다

빌립이 너무 멋있지 않나?

빌립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 당시 예수님을 보았다는 12사도는 권세가 하늘을 찌르지 않겠나? 바울은 늘예수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은…’이라고 한다

빌립은 예수님을 본 베드로와 자기는 교회에서 청소하고 일하던 사람이라 하늘같이 쳐다봐지니까 자기의 의식 때문에 이런 진정한 큰 권세를 가진 것 같다.

자리가 겸손케 하는 것으로 주님만이 상급인 인생은 누군가는 보여야 하기 때문에 주님 권세 내 권세가 되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빌립이야말로 가장 큰 권세를 가지지 않았을까?

예수님의 권세가 사람에게 덧입혀지면 예수님 전파 공로자가 되는 것이다

스데반과 빌립은 사도행전의 스타다

진짜 스타가 되면 안되니까 정말 스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사라지게 하셨다.

(적용 #3)

-내가 한 일의 공로를 상사에게 넘길 수 있을까?

-내 자리가 낮아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을 큰 권세로 생각하는가?

-너무나 종이라고 생각하나?

-빌립이 사모되는가? 내시가 사모되는가?

 

<Epilogue>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교만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들 중의 하나다.

돈으로 성령을 사려는 사람들은 말씀대로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이는 것을 볼수가 있다.

시몬이 빌립을 전심으로 쫓아다니며 믿음의 흉내를 내었지만 이 simonism이 교회를 말아먹는 악인 것이다

교회가 빛이 바래고 생명력을 잃는 것은 바로 이 simonism의 영향이다

교회는 직분 가진 자가 필요하고 직분을 감당하려면 돈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십자가의 구속을 경험하지 못하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사가 없는 사람이 돈으로 직분을 맡게 되면 본인도 교회도 망하는 것으로 자기 세상 잣대로 교회를 정치 경제를 아우르게 되니까 그렇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아야 시몬의 돈을 거절할 수 있겠고 복음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가정교사로 성령을 주시는데, 예민한 인도를 받으면 준비된 심령을 만나게 하신다.

준비된 심령을 알아보는 통찰력을 갖게 되는 것이 예민한 인도함의 결론이다.

 가라, 가까이 나아가라와 같이 이사소한 말을 잘 들으면 큰 권세를 갖게 된다.

사소한 게 큰 것으로 사소한 것부터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지 못하면 고집의 인도함을 받고 떠나야 할 때와 있어야 할 때를 분별치 못한다.

드러날 약점이 없다면 돈이 없고 낮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지 믿음 좋은 것은 아니다.

인생의 최고의 선물은 성경과 교사로 더 이상 필요한 게 뭐가 있는가? 우리는 선물을 다 받았다.

지도해주는 이 없으니 갈급함과 목마름이 커서 수치와 자존심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로 결론이 안 나니까 도덕과 윤리로 읽고 깨닫지 못한다.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어도 고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내시의 경우도 풍요 속에서도 곤고함이 있어 깨달음을 배우기 위한 갈급함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문제가 있어도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의 모든 인생은 거기서부터 예수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날 본문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전하는 것이며 어떤 본문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남편, 학벌, 성공이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 같으니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됐다.

내 간증, 네 간증, 성경 어디를 보아도, 드라마, 뉴스, 코로나에서도 그 어디에서도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명이다.

천하에 구원받을 이름은 예수 외에 없다.

복음의 큰 권세는 어디서부터든 예수가 그리스도다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복음의 통일성을 갖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내시는 기쁘게 자기 길을 갔다. 내시는 빌립이 전해준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빌립이 없어지는 슬픔을 기쁨이 압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으면 그 기쁨이 나의 슬픔을 압도할 것으로 믿는다.

자리가 겸손케 하는 것으로 주님만이 상급인 인생은 누군가는 보여야 하기 때문에 주님 권세 내 권세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권세가 사람에게 덧입혀지면 예수님 전파 공로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는 것이 큰 권세다

말씀의 인도함으로 받는 것이 큰 권세다

사라지는 권세가 최고의 권세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