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0년 3월22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8:9~ 24/ 성령의 큰 능력)]
<사도행전 8:9~24>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Prologue>
경제 대공황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모두 힘을 내십시다. 오늘로써 다섯 번 째 온라인 (주일)예배다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해서 이 위기를 지혜롭게 통과해 가십시다
공동체의 위력은 성령의 가장 큰 능력이다.
유대인의 교회를 잔멸하는 큰 박해는 큰 기쁨으로 이겨냈는데 사마리아에서는 사탄의 역사가 돈의 유혹으로 온다. 무엇이 더 힘들까?
박해가 클 때는 큰 기쁨을 주셨는데 이제는 유혹을 물리치라고 큰 능력을 주신다
큰 박해, 큰 기쁨에 이어서 성령의 큰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말씀요약>
1) 가짜 능력도 있다.
사마리아 성 같은 집단일수록 마술 하는(practicing sorcery) 사람이 판을 치게 돼있는데 마술사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당시 애굽의 철학과 마술을 배운 영지주의 우두머리로 최고의 엘리트, 큰 자로 여겨졌다. 마술은 의술이었다.
복음에 대한 반응과 마술에 대한 반응이 똑같다.
똑같이 주목해서 빠진다. 10절, 11절에 같은 단어 ‘따르다’를 쓰는 의미는 놀랄 일이 계속 있었던 것으로 이 세상도 가짜 행복에 속아서 오랫동안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큰 자는 늘 권세를 가지게 된다.
시몬의 경우는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로 봐서 마술을 넘어선 종교적 경배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백신을 만들면 그를 구세주로 등극시키는 데에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유대인은 그런 구세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예수님은 구세주로는 실격이라는, 말할 수 없는 기복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안 믿으면 바로도 재앙이 올 때 기껏 부르는 게 마술사였다.
마술사들은 오직 바로가 안 망한다는 길한 예언만 해주는 점쟁이에 불과한데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면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하나님인지 마술사인지 분별하지 못하니 가짜에 집착하고 구걸한다.
우리의 당면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따르지 못하겠는가?
당면문제의 해결사를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는 그 가짜 능력을 보고 안 놀라야 되는데 내 목숨이 중요하니까 끊임없이 나타나는 가짜에 놀란다.
학벌, 재물, 권세에 놀란다. 그 많은 것들을 통칭해서 ‘너 이거 안 하면 못 가, 죽어’라는 협박에도 늘 놀란다.
예수님의 진짜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짜를 따른다.
가짜는 ‘자기 목숨만 생각하는 능력’이고, 진짜는 ‘남을 생각하는 능력’인데 이것이성령의 큰 능력이다.
공동체 의견은 구원 때문에 물을 때가 많다.
급한 일, 중요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을 먼저 하면 반드시 구원의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는 것은 우리가 가난해야 간절하니까 구원을 부르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용#1)
-어떤 가짜를 오랫동안 목숨 걸고 따르는가?
-야동인가?
-야동을 지웠다 설치했다 반복 하나?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기도해도 10가지 재앙이 와도 언제나 어디서나 오직 기도응답인 것이다.
환경이 변하면 기도하는 것이 안 된다.
시몬은 너무 놀라서 따랐지만 그 사람을 신뢰하진 않았다.
그런데 빌립의 설교를 듣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의 능력은 삶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고, 마술과는 다르다는 것을 빌립이 알려주었다.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 빌립은 초라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큰 기쁨으로 전도를 하니 큰 능력이 나왔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전도했다.
이중에 생각도 못한 시몬이 빌립의 이 얘기를 듣고 믿었다는 것이다
믿는 우리에게는 기도 응답이다(코로나).
기도하고 말씀 받았기 때문에 안돼도 기도응답이다.
코로나를 통해서 우리는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땅에서 잘되고 안 되고가 상관이 없는 것은 하나님 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강을 보여야 하는 책임이 있다. 큰 기쁨의 얼굴을 보여야 한다
내 환경이 슬프고 창피한 게 아니라 내 환경이 예수의 이름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을 죄에서 꺼내줄 환경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큰 능력이니까, 그 이름은 ‘죄에서 구원할 자’, ‘I am who I am.’(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고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만 영원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다
항상 내 죄를 보아야 한다.
거울로 봐서는 안 보이는 게 현미경으로는 보이지만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봐도 안 보인다.
하나님의 렌즈로 보게 되면 주홍같이 붉은 죄의 집합소가 바로 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으로서도 훈련시키시는데 택자니까 고통은 지나간다.
그것을 보게 해주시는 주님만 영원하시다.
코로나는 우리를 위해서 훈련 도구로 쓰여지니까 오래갈 것 같아도 잠깐이다.
(적용 #2)
-예수그리스도 이름만이 성령의 큰 능력인데 지나가버린 고통을 다 껴안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느라 고통을 껴안고 있는가? 영원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껴안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껴안고 있나?
날마다 일어나면 내 죄보고 큐티하고 기도하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껴안고 있는 것으로 하루하루 이렇게 살면 고통은 지나간다.
3) 성령 세례를 질서대로 받는 것이다.
질서가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가장 큰 능력은 질서다.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마리아가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도 말씀을 받는 것이다.
말씀을 받지 않고는 개종을 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믿음, 순종, 회개’라는 성령의 선물이 다 올라오면 총칭이 ‘말씀을 받는 것’이다.
유대교는 무늬만 유대인이라 이미 성령이 떠난 것 같아 보이는데 그래서 말씀을 받아내지 못한다.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그들의 것 아닌가?
그런데 사마리아는 유대인이 거부한 스데반의 구속사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다.
성령은 세례 받을 때 동시에 오는 적도 많으며 그 전에 올 수도 있다.
세례 받고 믿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원론이 아니다.
성령을 유보했다고 볼 수 있는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모세 5경이 각각 따로 있다. 성경을 가지고 따로 쓰니까 완전히 이단인 것이다
골이 너무 깊으니 화해를 시킬 자가 없다.
하나님은 서로의 신앙을 인정하게 하고자 베드로가 와서 안수하여서 세례를 받게 하신 것이다.
사마리아사람들이 유대인을 저주하면서도 유대 사대주의가 있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도들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러 온 것으로 빌립도 질서를 지켰고, 사도들도 서로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 포석을 깔았다.
사마리아의 연약함을 알고 사도 베드로가 가야만 ‘아! 예루살렘 교회에서 인정했구나’라고 해야 들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살리고자 해야지 내가 대장이 되고자 하면 안 된다.
주님의 교회는 하나이니까 시작부터 질서가 없으면 안 된다.
곳곳에 가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면 한 성령이 안 된다.
남녀평등을 부르짖으려면 정말 자기 성(남성, 여성)에 충실해야 한다.
진짜 똑똑한 아내는 끝까지 남편을 섬기는 아내다.
드리어 나중에 보면 돈이고 가족이고 남는 장사를 하게 되니 구원이 된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엄마를 존경한다.
수준이 낮을수록 직함에 혹한다
능력위주로 가면 그곳이 지옥이다
질서대로 성령 세례를 받는 게 최고의 능력이다.
말씀을 받는 것이 잘사는 최고의 비결 중의 비결이다.
17절 이야기---
볼 사람, 안 볼 사람에 따라서 적용을 해야 하는 것이 때에 따라 하는 적용이다.
큐티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성경을 읽게끔 동기부여가 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고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나는(목사님) 말씀에 sign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한다. 13년의 큐티모임을 통해 인내를 한 것은 말씀 묵상인데 잘난 것도 없어서 확신이 안 들었던 것이다
적용을 하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검증해준 것처럼 신학을 하고 대표적인 목사님들이 큐티 선교회 이사님이 되어주신 것이 딱 이 말이다.
핀트를 잘 맞추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그럼 나는 뭘 해야 하나? 겸손한 입장에서 질서를 잘 지키고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때가 되면 나를 올려주면 올려주는 것이지, 언제나 끝까지 낮은 자리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성령의 가장 큰 능력을 갖게 되는 최고의 비결이다.
말씀을 잘 받고 자기자리에 충성 하게 되면 결국 성령의 열매가 큰 능력이 되어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희락-화평-인내(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인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하나씩 맺어지면서 큰 능력으로 나타나서 신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신뢰가 중요하다.
(적용 #3)
-그러므로 성령 세례를 질서대로 받기 위해서는 내 몸에 밴 유대 사대주의는 무엇인가? (학벌, 가문, 재산...).
다들 너무 대단하게 여기니까 멸시하고 경멸하는 것인데 입만 열면 욕하는 것도 다 사대주의다.
-그 사대주의는 미국인가 중국인가?
미국도 공과가 있다
사대주의적으로 좋아하면 안 된다.
복음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복음이 들어오면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4) 성직 매매에 쓰면 안 된다.
큐티를 하면서 잘 봐야 한다.
시몬이 무엇을 보았나? 빌립이 행하는 기적과 큰 능력을 보고,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은 걸로 문자적으로 보았다.
선악과 보고 하나님 되고자 했던 창세기 말씀처럼, 그 능력을 팔라고 돈을 바쳤는데 그것이 성직 매매로 ‘Simony’란 단어가 생겨났다.
성직매매는 돈 받고 신유, 방언을 팔라고 하는 것인데 직분은 돈을 주고 사고 팔 수 없는 것이다
영혼구원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모이나?’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성령은 경건의 재료다
경건이 이익의 재료가 아닌데 신유, 방언 능력을 돈 줄 테니까 팔라는 것으로 목욕탕 세미나는 방법론이 아니다.
이런 마음으로 오면 볼 것을 못 보고 그냥 프로그램, 이벤트만 보이는 것이다
빌립처럼 봐야 하는데 시몬처럼 보면 똑같이 와도 안 보인다.
영적인 임팩트가 없는 사람은 와도 안 보인다. 성령의 열매는 못 맺을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없는 신천지가 지금 절제를 못한다. 자가격리를 안하고 전도하는 것밖에 모르고 사람 채우는 것밖에 몰라서 화평도 깨고 이기적이고 전부 돌아다닌다. 말을 정말 안 듣는 부류가 ‘신천지’다
하나님의 선물은 문자 그대로 ‘선물’이며 값없이 주는 선물이다
‘돈 줄 테니 팔아라’ 하는 것이 얼마나 성령을 비인격적으로 비하시키는 것인가?
우리가 얼마나 이런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지 모르는데 잘되는 것에만 관심 폭발한다
경건은 이익의 재료가 아닌데 시몬의 모습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야망을 책망 했을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인 저주도 했다.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처럼 경계를 한 것으로 시몬의 악을 본 것이다
돈다발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서 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악을 봐야 하는데 못 보기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돈다발을 가지고 와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누가 보겠는가?
시몬도 돈 내고 악독이 가득한 소리를 듣는다
시몬은 회개도 없고 형벌도 없다.
베드로에게서 책망 듣고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다.
베드로에게 그 저주의 일이 나한테 임하지 않게 해달라고 답하는 시몬이다
코로나 가운데 전 세계는 다 망해도 되니까 나만 안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달라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진짜 악한 것이다.
다른 사람 살리는 몽둥이 역할만 하고 가는 것이 시몬인데 진짜 불쌍한 사람인 것이다.
지금까지도 돈과 연결되는 악의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된다.
문제가 왔을 때 회개가 앞서야 하는데 피해가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시몬과 같은 것이다
시몬이 아 땅에서 형벌을 안받은 것이 저주이며 이 땅에서 형벌을 받는 것이 정말 축복이다.
나도 모르는 가운데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유혹과 이타적인 주님을 믿게 하기 위한 도구로서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은 사명을 빙자하기 때문에 죄의식도 없이 나도 남도 다 속이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최고가 되지 못하고 알아주지 않으니까 너무 슬픈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니까 맞는 것 같지 않은가?
복음전파를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내가 과시가 돼야 하지 않나?
(적용 #4)
-내 열심은 사명인가? 과시인가?
<Epilogue>
예수님의 진짜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짜를 따른다.
가짜는 ‘자기 목숨만 생각하는 능력’이고, 진짜는 ‘남을 생각하는 능력’인데 이것이성령의 큰 능력이다.
급한 일, 중요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을 먼저 하면 반드시 구원의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는 것은 우리가 가난해야 간절하니까 구원을 부르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잘되고 안 되고가 상관이 없는 것은 하나님 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강을 보여야 하는 책임이 있다. 큰 기쁨의 얼굴을 보여야 한다
내 환경이 슬프고 창피한 게 아니라 내 환경이 예수의 이름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을 죄에서 꺼내줄 환경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큰 능력이니까, 그 이름은 ‘죄에서 구원할 자’, ‘I am who I am.’(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고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만 영원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다
항상 내 죄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렌즈로 보게 되면 주홍같이 붉은 죄의 집합소가 바로 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으로서도 훈련시키시는데 택자니까 고통은 지나간다.
코로나는 우리를 위해서 훈련 도구로 쓰여지니까 오래갈 것 같아도 잠깐이다.
날마다 일어나면 내 죄보고 큐티하고 기도하는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껴안고 있는 것으로 하루하루 이렇게 살면 고통은 지나간다.
질서가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가장 큰 능력은 질서다.
‘믿음, 순종, 회개’라는 성령의 선물이 다 올라오면 총칭이 ‘말씀을 받는 것’이다.
주님의 교회는 하나이니까 시작부터 질서가 없으면 안 된다.
곳곳에 가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면 한 성령이 안 된다.
수준이 낮을수록 직함에 혹한다
능력위주로 가면 그곳이 지옥이다
질서대로 성령 세례를 받는 게 최고의 능력이다.
말씀을 받는 것이 잘사는 최고의 비결 중의 비결이다.
성경을 읽게끔 동기부여가 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고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때가 되면 나를 올려주면 올려주는 것이지, 언제나 끝까지 낮은 자리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성령의 가장 큰 능력을 갖게 되는 최고의 비결이다.
말씀을 잘 받고 자기자리에 충성 하게 되면 결국 성령의 열매가 큰 능력이 되어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희락-화평-인내(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인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하나씩 맺어지면서 큰 능력으로 나타나서 신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신뢰가 중요하다.
다들 너무 대단하게 여기니까 멸시하고 경멸하는 것인데 입만 열면 욕하는 것도 다 사대주의다.
성령은 경건의 재료다
하나님의 선물은 문자 그대로 ‘선물’이며 값없이 주는 선물이다
경건은 이익의 재료가 아닌데 시몬의 모습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돈다발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서 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가운데 전 세계는 다 망해도 되니까 나만 안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달라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진짜 악한 것이다.
문제가 왔을 때 회개가 앞서야 하는데 피해가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시몬과 같은 것이다
시몬이 아 땅에서 형벌을 안받은 것이 저주이며 이 땅에서 형벌을 받는 것이 정말 축복이다.
나도 모르는 가운데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유혹과 이타적인 주님을 믿게 하기 위한 도구로서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은 사명을 빙자하기 때문에 죄의식도 없이 나도 남도 다 속이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 최고가 되지 못하고 알아주지 않으니까 너무 슬픈 것이다
내 열심 후 왜 슬픈가? 하나님이 다 아실 텐데 말이다
가장 큰 능력은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받는 것이다
코로나 가운데서도 말씀을 받은 자와 안 받은 자는 다르다.
요동함이 없는 것으로 분별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성령의 큰 기쁨으로.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과 기도로 이 위기를 지혜롭게 통과하자.
고난 때문에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 두렵고 떨린다는 이야기를 목장에서 나누며 가라.
진짜 힘들어질 때 말할 수 없는 위력이 나타날 줄을 믿는다.
마음 속에 평강이 있어야 하는데 성령의 능력이 소통되도록 말씀을 받아야 한다
공동체의 위력은 성령의 큰 능력이다
돈을 성령의 큰 능력으로 이겨야 한다
성령의 큰 능력이 아니면 고통을 통과할 수 없다
예수 이름을 껴안는 것이 답이다
지나가는 고통을 껴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살고 누리자
“Now this is not the end. It is not even the beginning of the end. But it is, perhaps, the end of the beginning.” (Winston Churc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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