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0년 4월26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9:22~ 31/ 성령의 진행)]
<사도행전 9:22~31>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Yet Saul grew more and more powerful and baffled the Jews living in Damascus by proving that Jesus is the Christ.)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After many days had gone by, the Jews conspired to kill him,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but Saul learned of their plan. Day and night they kept close watch on the city gates in order to kill him.)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But his followers took him by night and lowered him in a basket through an opening in the wall.) |
26.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When he came to Jerusalem, he tried to join the disciples, but they were all afraid of him, not believing that he really was a disciple.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But Barnabas took him and brought him to the apostles. He told them how Saul on his journey had seen the Lord and that the Lord had spoken to him, and how in Damascus he had preached fearlessly in the name of Jesus.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So Saul stayed with them and moved about freely in Jerusalem, speaking boldly in the name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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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Then the church throughout Judea, Galilee and Samaria enjoyed a time of peace. It was strengthened; and encouraged by the Holy Spirit, it grew in numbers, living in the fear of the Lord.) |
<Prologue>
온라인 10주차다.
성령의 위로를 아무리 받아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진도를 빼야 한다.
이번 주에 창조적인 방법으로 전도를 해보시라고 했다.
저도 그래서 새 가족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설교를 생각하다가 지난 주와 똑같은 본문으로 다시 한번 설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처럼 다시 한번 설명해준다고 생각하시라.
이 설교가 각자 진도를 나가게 되는 성령의 진행이 되길 바란다.
<말씀요약>
1.여러 날이 지나야 한다.
22-23절) 사울이 회심을 하고 ‘예수는 그리스도다.’라고 증언을 하니 유대인들은 죽이려고 하고 기독교인들은 믿지 못했다.
유대인들의 사울 죽이는 공모가 시작되었다.
각자에게 적당한 ‘여러 날’ 이 있다.
사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 있었는데 가족과 사도들 그 아무에게도 의논하지 않았다.
나의 회심과 사명이 의논의 문제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유대교인 사울의 부모에게는 불효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때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가야 할 때가 있다
사울이 사도들에게도 찾아가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 동안 자신이 그들을 너무 핍박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믿자마자 사도들이 무시가 되었다.
그러니 거기도 찾아가기 힘들고 혈육도 찾아가기 힘들었다.
정오의 빛이 강해서 믿긴 믿었는데 누구와도 의논이 되지 않아 홀로 여러 날을 경험하게 하셨다.
여러 날은 사울에게 훈련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각자에게 훈련을 위해 필요한 적당한 여러 날이 있다
택한 그릇으로 삼으실 때 양육이 필요하다
성령의 진행으로 여러 일이 이루어진다
전도하려면 그들의 심리상태를 알아야 한다
정오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누구와도 지내기 힘들다
나에게 주사는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자기는 예수님 만났기에 증언을 하지만 자기같이 살기등등한 유대인들이 사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24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는데 그게 알려진 것이다.
택자이기 때문에 뒤집어지게 회심을 하면 내 앞에 어느 고난이 와도 기쁘게 감당할 수 있다.
택자는 ‘고난의 학교’에 들어가 한 과목씩 패스할 때마다 계고가 생각난다
계교를 알게 해서 지혜가 생기니까 도마 위에 올라가서 모든 사람에게 지켜지는 인생이 된다.
꼼짝하지 못하며 지켜지는 인생이 된다
외출도 못하고 고독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과만 교제하게 하셨다.
나의 모든 열등감, 욕심, 교만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고 있다.
예수 믿으면서 혼자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게 되니 나가지 않고 외출을 못해도 내 입에서 해줄 말이 생겼다.
그렇게 말씀을 보면서 양육을 받아가야 하는데 ‘환경이 안 변해서 힘들어, 죽지 못해 살아’ 이런 사람은 패스를 못한 사람이다.
택자는 영원토록 죽게 하지 않으신다
날마다 똑같은 사건이 오는 것 같아도 그때그때 패스가 되면 그것이 다른 사건이 되어서 훈장이 되는 것이다.
그날의 사건은 그날에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그날의 증인이 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평생 고난 받았다고 한다. 그 상처에서 별이 되어야 하는데 고난에서 패스가 안되었기 때문에 예수 믿어도 되는 것이 없고, 큐티를 해도 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날 그날이 나의 증거하는 날이며 날마다는 다른 날들이다. 오늘은 이 말씀 내일은 저 말씀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나가지 못하고 돈이 없는 때라면 여러분에게 죽어야 할 고난이 있기 때문이고, 돈이 없어야 집에서 성경을 본다.
돈이 있으면 쇼핑하러 다니고 할거 다하러 다닌다. 돈이 없는 것이 축복이다.
큐티는 자기 죄를 보는 것인데 사탄의 계교를 알려 주신다
코로나 재앙으로 큐티 기도회시간에 하루 저녁에 7000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연기한 고난주간을 여전한 방식으로 최고로 지나게 하셨다.
25절) 바울을 죽이려 할 때 제자들이 살려주는 것처럼 나를 살려주는 사람들이 제자들이다.
내가 성경 가르쳐서 제자가 아니라 내가 주님 만난 것을 전하고 전도하는 사람들이 다 제자가 된다.
내가 입만 열면 “내가 시집을 잘 갔는데 가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학벌도 아니고 결혼도 아니고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다” 라고 간단하게 전도를 하는 것이다.
시장이든 어디는 예수 전하는 사람이 제자들인 것이다
나도 성벽에 달아 내려서 살려준 경험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무리 계교가 판을 쳐도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없고 아무리 사단이 나를 밤낮으로 지켜도 나를 광주리에 태워서 보내줄 제자들이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광주리 타고 도망가는 모습이 너무 우스워 보인다.
이 대단한 학벌에 대단한 사람이 예를 들어 총리라는 사람이 쓰레기광주리를 타고 도망가는 것은 이 사람 사전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겉모습이 초라해 보여도 예수님 만난 기쁨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며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다.
자신이 스데반을 죽였기 때문에 어떤 일이 와도 할말이 없다.
스데반 죽인 것이 신의 한 수이고 최고의 양육이다.
여기서 나 혼자 죽인 것이 아니라 다같이 했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사도바울은 회심을 한 후부터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린다.
공은 남한테, 책임은 나에게 돌리는 사람은 확실하게 주님을 만난 사람이다
항상 책임을 나에게로 돌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의 진행을 하려면 사람이 이렇게 초라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
사도바울에게는 있어야 하는 경험이다.
억만 금을 줘도 못하는 경험을 제자들이 가라고 하니 순종하고 갔다. (모세가 양치기를 한 것)
자존심 가지곤 아무것도 안 된다.
내가 걸레질을 하면서 문밖 출입을 못하고 집에서 교회도 못 가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걸레질 밖에 없었다. 10년이 넘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 교인 누구를 만나도 체휼이 되는 것이 있다.
허드렛일을 할수록 영적 지경이 넓어진다.
(적용 #1)
-여러 날이 성도의 인생을 효과적으로 돕는 성령의 진행기간이라는 것을 믿고 순종하나?
-돈이 없어서 설교 듣나? 큐티하나? 큐티기도회에 들어오나?
-아니면 돈이 많아서 이 모든 것을 하기 싫은가? 안하고 있나?
2.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26절) 안 믿는 유대인들은 사울이 변절했다고 죽이려고 하고 믿는 사람들은 어제까지 죽이겠다고 한 사울을 믿을 수가 없었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고 3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았다.
히브리어 알레프베이트가 알파벳의 A,B인데 저주와 축복이라는 뜻이다.
창세기에서는 A보다 B가 먼저 나오는데 축복이 먼저 나온 것이다.
축복이라는 것이 사방이 열렸다는 것이고 저주는 사방이 막혔다는 것이다.
과거를 잊어야 사방이 열려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픈 사람들은 입만 열면 과거를 읊조리는 것이다.
과거를 읊조리니 사방이 막혀서 나갈 수가 없다.
근데 과거를 잊는 것은 정말 힘들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과거를 껴 안고 고통과 아픔을 잊지 못한다
지나간 고통을 껴 안고 사니까 늘 아프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내가 잊어야 남도 잊을 수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잊을 수가 없다.
지나가버리는 과거를, 고통을 껴안고 사니까 아프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과거를 무조건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수치를 감당해야 하며 분별을 잘 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세상은 다 거꾸로다
전문학교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숙였다는 것이 문제다
세상은 인권과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구속의 관점이 아니면 구별이 안 된다
누구한테 빠지면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거꾸로 하게 된다
영과 육을 혼동하면 안 된다
목장에서 사귀고자 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입만 열면 이 교회는 이상하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는 이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처방을 거부하는 것은 돈, 욕심, 정욕 때문이다.
(적용 # 2)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나?
-과거를 인정하고 어떤 수치도 감당해야 하나?
3. 반드시 형제 지체를 주신다.
27-30절) 바울의 마음이 다 진실되니 그 진실된 것이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준다.
반드시 바울을 소개시켜주는 아나니야(Ananias)가 있고 바나바(Barnabas)가 있는 것이다.
불신은 가치관이 다른 것이며 평등의 가치관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사윗감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체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판단을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면 반드시 지체가 있다
영적 통찰력과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데 마음을 비워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안목이 있어서 하는 것인데 세상안목은 그래서 거기까지다.
학벌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이 문제다
인내를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앉고 뒤로 밑지는 것이다.
한 성령이라면 제자들과 함께 있어봐야 한다.
제자와 조금 지나면 서로 알아보게 되는 것이므로 공동체에서 검증이 되어야 한다.
바나바(Barnabas)가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지체를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교회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성령이 진행이 아니라 사람의 진행 때문이다
지체들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들고 교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겉으로 진행이 되는 것 같다가 다 부셔져서 대형사고가 나는 것이다.
제자들과 함께 있어서 예루살렘에 출입을 해도 죽음의 위협이 계속 있다.
주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니 헬라파 유대인들이 죽이려 한다.
헬라파 유대인도 장말 주님을 만났다면 죽음불사하고 전도 한다
골고루 복음은 차별 없이 전해져야 한다.
*신대원 시험문제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유신 논증(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징표)하라! 도덕적으로 하되(도덕론적, 경험론적) 자기간증과 경험으로 하라!”-à 내가 쉬운 사람이니 쉬운 이야기로 하겠다. 도덕적이라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은 데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다
논쟁해서 패하니까 죽이려고 한다
변론으로 이기면 원수가 되고 변론은 별로니까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주시는 분이 있다
잘난 바울에게 형제가 생겼다
사울이 회개가 되지 않았다면 형제도 생기지 않는 것인데 가장축복이 형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타적 사명을 감당할 때 형제를 주시어 보호해 주신다
바울을 죽이려고 하니 형제들이 다소로 보냈다.
(적용 #3)
-여러분은 지체, 형제가 있나?
4.수가 더 많아진다.
31절) 나 한 사람 고난으로 가족들이 평안하게 살아가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교회가 크다고 이 문제가 잘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고난을 받고 있지만, 옆에 있는 교회는 안정되어 잘 나아가고 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말씀을 보고 가는 것이 성령의 진행이다.
흩어져도 하나님 나라의 신도수가 본질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성령의 진행이다.
모두 일원론인데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으로 인도받고 가는 하루하루가 성령의 진행이다.
우리는 자신이 당한 일이 너무 놀랄 일들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놀라지 않는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체휼이 되는 것이며 있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위기에서 담대하게 나아가고 신도수가 늘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한 사람이 고난을 받으니 다른 사람들이 평안하게 간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적용인 것이며 인내가 진실성의 결론이므로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붙회떨감’의 마음으로 가는 것이 일원론이다
하나님이 진행을 앞당기시니 성령의 진행이다
확진자가 나오면 안되니 법을 지키며 온라인 예배 드리며 인내하는 것이다.
(적용 #4)
-내가 죽어져서 든든히 서가는 집안과 교회와 회사가 있나?
-그래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수가 많아졌던 경험이 있나?
여러 날이 지나야 하는 것이다.
바울의 고난가운데서 여러 날이 지나야 한다.
성령의 진행은 고난이 앞을 가린다
여러 날이 성령의 진행 기간임을 알고 나를 점검하여 수치를 감당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모든 사건의 끝에 돈이 있기에 형제지체가 없는 것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진행을 위해서 각자에게 여러 날이 있는 것이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를 인정하고 수치를 감당해야 한다.
반드시 때가 되면 지체를 주신다. 그러니 바나바가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적이 일어나는 공동체에서 신뢰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부흥만 좋아하겠지만 인내해야 할 일이 많다.
내가 뒤집어지는 회심을 하면 내 앞에 놓인 길이 고난의 길이다.
전부 인내해야 할 일이다.
너무 힘들지만 말씀 인도함 받고 가면 성령의 진행이 될 것이다.
결론은 ‘예수가 그리스도다’이며 말씀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pilogue>
-각자에게 훈련을 위해 필요한 적당한 여러 날이 있다
-택한 그릇으로 삼으실 때 양육이 필요하다
-성령의 진행으로 여러 일이 이루어진다
-전도하려면 그들의 심리상태를 알아야 한다
-정오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누구와도 지내기 힘들다
-나에게 주사는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택자이기 때문에 뒤집어지게 회심을 하면 내 앞에 어느 고난이 와도 기쁘게 감당할 수 있다.
-택자는 ‘고난의 학교’에 들어가 한 과목씩 패스할 때마다 계고가 생각난다
-택자는 영원토록 죽게 하지 않으신다
-날마다 똑같은 사건이 오는 것 같아도 그때그때 패스가 되면 그것이 다른 사건이 되어서 훈장이 되는 것이다.
-그날의 사건은 그날에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그날의 증인이 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평생 고난 받았다고 한다. 그 상처에서 별이 되어야 하는데 고난에서 패스가 안되었기 때문에 예수 믿어도 되는 것이 없고, 큐티를 해도 되는 게 없다고 한다.
-그날 그날이 나의 증거하는 날이며 날마다는 다른 날들이다. 오늘은 이 말씀 내일은 저 말씀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나가지 못하고 돈이 없는 때라면 여러분에게 죽어야 할 고난이 있기 때문이고, 돈이 없어야 집에서 성경을 본다.
-큐티는 자기 죄를 보는 것인데 사탄의 계교를 알려 주신다.
-내가 입만 열면 “내가 시집을 잘 갔는데 가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학벌도 아니고 결혼도 아니고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다” 라고 간단하게 전도를 하는 것이다.
-시장이든 어디는 예수 전하는 사람이 제자들인 것이다.
-아무리 계교가 판을 쳐도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없고 아무리 사단이 나를 밤낮으로 지켜도 나를 광주리에 태워서 보내줄 제자들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겉모습이 초라해 보여도 예수님 만난 기쁨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며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다.
-공은 남한테, 책임은 나에게 돌리는 사람은 확실하게 주님을 만난 사람이다
-항상 책임을 나에게로 돌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의 진행을 하려면 사람이 이렇게 초라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
-자존심 가지곤 아무것도 안 된다.
-허드렛일을 할수록 영적 지경이 넓어진다.
-축복이라는 것이 사방이 열렸다는 것이고 저주는 사방이 막혔다는 것이다.
-과거를 잊어야 사방이 열려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픈 사람들은 입만 열면 과거를 읊조리는 것이다.
-과거를 읊조리니 사방이 막혀서 나갈 수가 없다.
-근데 과거를 잊는 것은 정말 힘들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과거를 껴 안고 고통과 아픔을 잊지 못한다
-지나간 고통을 껴 안고 사니까 늘 아프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내가 잊어야 남도 잊을 수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잊을 수가 없다.
-지나가버리는 과거를, 고통을 껴안고 사니까 아프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과거를 무조건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수치를 감당해야 하며 분별을 잘 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세상은 다 거꾸로다
-전문학교 나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숙였다는 것이 문제다
-세상은 인권과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구속의 관점이 아니면 구별이 안 된다
-누구한테 빠지면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거꾸로 하게 된다
-영과 육을 혼동하면 안 된다
-기적이 일어나는 이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처방을 거부하는 것은 돈, 욕심, 정욕 때문이다.
-불신은 가치관이 다른 것이며 평등의 가치관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사윗감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체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판단을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면 반드시 지체가 있다
-영적 통찰력과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데 마음을 비워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안목이 있어서 하는 것인데 세상안목은 그래서 거기까지다.
-학벌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이 문제다
-인내를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앉고 뒤로 밑지는 것이다.
-교회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성령이 진행이 아니라 사람의 진행 때문이다
-지체들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들고 교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겉으로 진행이 되는 것 같다가 다 부셔져서 대형사고가 나는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도 장말 주님을 만났다면 죽음불사하고 전도 한다
*신대원 시험문제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유신 논증(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징표)하라! 도덕적으로 하되(도덕론적, 경험론적) 자기간증과 경험으로 하라!”-à 내가 쉬운 사람이니 쉬운 이야기로 하겠다. 도덕적이라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은 데서 출발해야 한다
-변론으로 이기면 원수가 되고 변론은 별로니까 피해야 한다
-사울이 회개가 되지 않았다면 형제도 생기지 않는 것인데 가장축복이 형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타적 사명을 감당할 때 형제를 주시어 보호해 주신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말씀을 보고 가는 것이 성령의 진행이다.
-흩어져도 하나님 나라의 신도수가 본질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성령의 진행이다.
-모두 일원론인데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으로 인도받고 가는 하루하루가 성령의 진행이다.
-모든 것이 적용인 것이며 인내가 진실성의 결론이므로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붙회떨감’(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의 마음으로 가는 것이 일원론이다
-하나님이 진행을 앞당기시니 성령의 진행이다
-성령의 진행은 고난이 앞을 가린다
-여러 날이 성령의 진행 기간임을 알고 나를 점검하여 수치를 감당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모든 사건의 끝에 돈이 있기에 형제지체가 없는 것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진행을 위해서 각자에게 여러 날이 있는 것이다
-과거를 인정하고 수치를 감당해야 한다.
-내가 뒤집어지는 회심을 하면 내 앞에 놓인 길이 고난의 길이다.
-너무 힘들지만 말씀 인도함 받고 가면 성령의 진행이 될 것이다.
-결론은 ‘예수가 그리스도다’이며 말씀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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