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0년 3월15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8장4절로 8절 성령의 큰 기쁨)]
<사도행전 8:4~8>
4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Prologue>
코로나 때문에 기뻐할 일이 없는 요즘이다.
사도행전도 스데반이 돌을 맞아 처참하게 죽었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오늘 말씀에 큰 기쁨을 주신다고 한다
우리가 온 라인예배를 들인지도 4주, 즉 한 달이 되어간다
여러분이 너무 보고 싶다. 여러분도 보고 싶으시죠?
6.25때도 신, 불신 이건 간에 주일에 갑자가 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 때부터 서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도적같이 오는 이런 때를 대비해서 성도들은 예비를 해야겠다
성령의 흩어짐이라면 오늘 말씀처럼 어디를 가든지 튼 기쁨이 있다고 하신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성령의 큰 기쁨을 꼭 가지기를 바라면서 오늘 성령의 큰 기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성령의 큰 기쁨은,
1)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숨은 게 아니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씨앗처럼 널리 퍼져서 흩어진 곳에서 왕성하게 전파하여 결실을 맺는다는 뜻이다(원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왕성하게 선포하고 다녔다는 것으로 큰 기쁨이 있었다.
사단은 교회가 망했고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인데 놀랍게도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왕성하게 전해서 큰 기쁨이 있었다.
이 기쁨은 불신자들이 알 수 없는 기쁨인데 이 보다 더 큰 기쁨은 이 땅에 없다.
이 땅의 기쁨은 복음 전하는 것으로 이 복음을 주시기 때문에 흩어져도 기쁠 수 있으니 성도들은 이 기쁨을 보여야 한다.
초대기독교인들도 문자적으로도 곳곳에 흩어졌던(바벨론에서부터/바벨론 유수) 디아스포라들(Diasporas)이 오순절에 와서 성령 받고 떠나지 않고 주님께 나오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다.
성령 받고 너무 기뻐하니까 유대인들이 시기했다.
스데반도 유대인인데, 그 때부터 표면적/이념적 유대인이 나뉘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경계가 아리송해졌다.
성령을 받는 것이 가장 안 되는 부류가 유대인인데 그들은 성령 받은 기독교인들을 이를 갈며 죽이려고 하니까...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그들도 성령만 받으면 되는데...(대제사장, 사두개파) 도저히 성령이 안 들어가는 유대인들은 영육간에 최고인 유대인들인지라 그들의 선민사상은 따라갈 자가 없다.
결국은 지금까지도 안 돌아오고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인재들이 Jewish. 2천년이 지나도 안 돌아온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고맙게도 박해를 해준 것이 얼마나 신의 한 수인지 모른다.
박해를 해줬기 때문에 억지로 떠날 수 있었던 것으로 말씀의 인도함으로 떠난 것이다.
큰 박해는 큰 기쁨을 허락하신다
우리들교회만 해도 휘문, 판교 성전 두 개나 있는데 휘문은 우리 공간이 아니니 떠나라고 하면 바로 떠날 수 있지만 판교는 스스로 떠날 수 없는 곳인데 코로나로 인해 잠시 떠나 있다.
쫓겨날 때까지는 있어야 될 때가 많다.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기 때문에 내 삶의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있으면 떠날 때를 알려 주신다.
말씀의 인도함 따라 떠나면 큰 기쁨을 주신다(8절).
최고의 선물이다. 돈이 있으면 그 기쁨이 영원하겠는가?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택자의 고통은 지나고 보니 잠시간의 고통일 뿐이라는 것으로 지나가버린다. 어떻게 이렇게 큰 기쁨을 주셨을까?
고통(산고)을 통해 생명이 나온다
이 흩어짐은 만세 전부터 세팅된 하나님의 계획이고 절묘함이다.
큐티 간증이 미국이나 중국에서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박해로 인해 흩어지지 않았다면 이후의 큰 기근이 왔을 때 예루살렘 교회를 돕지 못했을 것이다.
택자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찬양)’가 가장 잘 사는 비결이다.
그러면 지금 빌립이 개척하러 도우러 간 게 아니라 중요한 건 빌립이 도망자라는 것으로 그러니 근본부터 겸손할 수밖에 없다.
복음을 전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것인데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연약을 들어 쓰신다.
늘 교회에서 전하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초대교회가 워낙 성령의 조직으로 아름답게 양육이 잘돼있어서 자발적이지는 않았지만 흩어져보니 금세 양육한 결과가 나타났다.
가장 영적인 실력은 주님을 만난 것이다. Born again.
초대교회 자체가 유대인들한테 시기를 당하고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유대교회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가문이 짱짱하고 그런데 저 기독교는 어부들이 판치고 있으니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제 정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곳이 초대교회다.
신앙고백이 확실한 성도들이 많았을 것이 확실하다.
신천지가 문자적으로 적용할까 봐 염려된다. 영적 실력이 있는 성도들이 우리들교회에도 많다고 믿는다.
환경이 인도했으니까 한걸음 한걸음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두 가지 길이 있다면 편한 걸 택하고 싶다.
어떤 직분이 주어지는 것에 자신 없음이 내 안에 깔려있었다. BUT, 사명이 있기에 하루 일상생활 치열하게 큐티하고 복음을 전하며 전도했다. 30년 가깝게 큐티 홍보 대사를 했다. 묵상을 위해서 전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아무도 안 알아주었어도 하나님께서 아셔서 우리들교회를 부흥시켜 주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기억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꼭 알 맞는 세팅이다. 무엇이든지 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었지만 하루의 일상생활은 말씀과 전도로 보냈다.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어떤 경우도 사이비 종교다 = 신천지는 이단.
흩어진 환경에 가면 양육 받은 게 다 생각이 날 것이다
평소에 항상 뭘 특별하게 하지 말고, 평소대로, 평소에 보고 배운 대로 해야 한다.
이벤트가 아니라 항상 평소 실력대로, 이혼하지 말라, 죽지 말고 살아라, 붙어 있어라 외치는 것들이 지나고 보니 최고의 복음이었다.
흩어진 그들에게 사마리아를 맡기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흩어진 환경에서 순종한 빌립은 보고 배운대로 전도한다
‘하나님이 하셨다’가 주제로 힘든 사람들과 복음으로 친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종처럼 살아서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시어머니와 도우미 2분, 무학자들). 사마리아와 같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날마다 새롭게 처음처럼 들었고 그렇게 들어야 한다.
환경으로 훈련 시키신 하나님. 못나가도 사명이 있어 나의 상황에서 기쁨을 복음을 전했다.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는데 빌립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 - 본문.
큐티인 한 권씩 주는 게 최고의 복음인데 단순히 큐티책이 아니라 예수 믿게 하는 책이다.
(적용질문 #1)
-여러분은 돈, 건강, 자녀, 배우자 등의 흩어짐의 사건이 있다 해도 그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는 큰 기쁨이 있나?
-청년은 하나 더 ‘사랑’ 등의 흩어짐의 사건이 있다 해도 큰 기쁨이 있나?
2) 사마리아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기쁨이다.
유대인들은 항상 자기네가 주인공이다. 말이 안 들린다.
사마리아가 내려가는 곳이란 것은 그만큼 영적으로 힘든 곳임을 의미한다.
이방인보다도 더 비천하게 부르는 이름이 사마리아가 되었다.
사마리아인은 멸시와 천시의 대상으로 이스라엘공동체에서 소외되었다
이방인은 혈족이 단순한데 사마리아는 섞였다는 것으로 그들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인데 유대인들은 율법적으로(like 신천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으로 여기면서 접촉을 꺼려했다.
사마리아인들은 강도 당한 자를 도왔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저주했다.
똑같이 아브라함 후손인데...화해가 길이 없어 보였다.
지금도 하나님과 인류가 화평케 되는 수많은 방법을 논하지만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과 복음 외에는 길이 없다.
바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스데반과 빌립이 스타였으며 헬라파 유대인인 빌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으로 박해가 오니까 흩어져서 누구도 안 간 사마리아와 이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하게 된 것이다
핍박이 와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고 사는 것이 나의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비결인 것이다.
지금 칭찬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칭찬을 받을 수가 없다(이혼, 직장 등).
빌립은 어디서나 칭찬을 받는다. 예수님도 사마리아에 전하지 못했는데 엄청난 일을 한 빌립이다.
사마리아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원수였다. 집안끼리도 원수로 지내는 데가 많다. 복음도 못 전한다.
하나님은 평신도 집사인 빌립을 보내셨다.
‘사마리아 성’은 예수님이 씨를 뿌리고 열매를 빌립이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빌립이 전한 내용은 ‘그리스도’인데 초대교회에서 전파하는 복음의 내용은 예수께서 핍박 받고 십자가 돌아가셔서 부활하신 구원자 메시아 되신 그리스도이심을 잘 보여준다.
십자가의 복음을 제대로 전한 것으로 사마리아 인들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며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아다’란 것을 전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예수 그리스도로서 모든 필요를 주님께 아뢸 수가 있다.
예수가 구세주기 때문에 성냥불도 하나만 타면 꺼지지만 천 개 이천 개가 붙어서 타면 엄청나다.
주님께 기도합시다. 모든 걸 아뢰십시다.
아무도 차별 없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주님이시다
내가 예수를 믿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고백이다.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확실하면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고백하면 주님은 나의 형편에 맞게 응답하신다.
흩어졌을지라도 큰 기쁨을 주시며 환경 주심에 토를 달지 않게 되는 것이다
6절...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말도 듣고 행함의 표적도 보았다.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성령 충만 지혜 칭찬은 여기서도 통했는데 빌립이 사도도 아니고 집사인 것도 사마리아가 알게 되었고 뭔가 낮고 천한 자 아픔이 있어서 사마리아인들과 한 마음이 되어 전도할 수 있었다.
무리가 빌립의 말을 ‘따르더라’는 사라미아 사람들의 이목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믿음의 길로 인도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보기엔 빌립과 이만희가 똑같아 보이는데 이단엔 무서운 영이 있다.
이단에 속한 자는 한 두 번 훈계한 후 멀리해야 한다. 가보고 틀리면 나온다고 하는 건 교만한 것이다.
두 세 번 더 가면 다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한 번 빠지면 지옥을 간다 해도 못나오게 되는 게 이단이다. 지옥을 가도 다 같이 한다는 것이라서 절대 가면 안 된다. 이단을 전도하려고 해선 안 된다.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불신자 전도 안 한다. 예수 믿는 자들을 추수해가기에 추수 꾼이라고 부른다
(디도서/Titus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Warn a divisive person once, and then warn him a second time. After that, have nothing to do with him.)
(적용질문#2)
-우리가 복음 전하는 말씀이 ‘예수는 그리스도’인가?
-예수는 죄에서 구원할 자, 구세주.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를 찾나?, 세상의 구세주만 찾나?
-신천지를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은 백분율로 볼 때 몇 % 되는가?
3)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기쁨이다.
사역은 귀신들이 계속 나가게 하는 역사다
예루살렘과 똑같이 사마리아도 부흥된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확실하면 믿음 충만한 것이다
예수는 사단이 아니라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셨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임했다는 것이며 성령이 임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은 모두에게 차별이 없으며 모든 시공간에 주님이 계시다.
말씀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인데 스데반은 말씀만 전하고 순교했는데도 병 고침의역사로 이적을 베푼 빌립보다 유명한 것이다
스데반의 설교의 기적이 최고인 것이다
주님이 빌립 속에서 역사하실 때만 빌립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빌립의 능력이 아니다.
8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성령의 흩어짐으로 다 떠났는데 그곳에 가자마자 큰 기쁨(하나님을 향해 쓰는 기쁨이란 단어가 Kara)이 있는 것이다
성도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발생하는 외적 현상이 기쁨으로 나타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기쁨은 동의어다. 구원을 빼놓고 기쁨을 논할 수가 없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Good News!
(적용 질문 #3)
-인생에 가장 기쁜 소식은 언제였는가?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가장 힘든 문제가 해결될 때 가장 기쁘지 않겠는가?
그럼 힘든 문제도 계속 달라질 것이다.
가장 힘든 문제는 아이, 자녀, 돈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이건 약도 없다.
죄인은 나를 보는 눈도 남을 보는 눈도 없어 당연히 하나님도 못 본다.
무엇이 죄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죄는 과녁에서 벗어난 것을 지칭한다.
의로움이 하늘을 찔러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괴물인가를 보지를 못한다.
복음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교회를 잔멸하는 기쁨이 무슨 기쁨인가?
하나님과 친해야 신앙생활을 잘한다. 여기에서 직분은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친하면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기쁨이 온다
날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세주가 되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창조주와 나와의 관계성립이 Good News(복음)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남편 되어주시니까 모든 걱정이 날아가는 것이다
신앙은 관계를 떠나서는 안 된다. 인격적인 관계를 무시할 때 영육의 관계가 실패한다.
성령의 기쁨이 없으면 관계가 안 되고 관계가 무시된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면 은혜이자 선물 중의 선물이다.
죄를 모르면 알 수 없고 구세주의 존재를 모른다
빌립의 복음 전파가 이러한 큰 기쁨을 낳은 것이다.
Good News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되고 영생을 접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복음이 Bad News가 아니라 Good News가 되니까 자아의 흩어짐이 성령의 흩어짐으로 공감하게 된다
진정한 기쁨이 널리 미치도록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된다.
이렇게 흩어져서 가게 하셨다. 내 열심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밖에 없다.
내가 겸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마리아인들을 전도한 거니까 사마리아인들을 연구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인데 제사장도 없고 성전도 없고 버린 자식 취급 받는 사마리아인을 체휼해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큰 기쁨이라 차별이 없다는 것과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이며 때가 될 때까지는 이게 기쁨의 소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예수님도 사마리아를 사랑하신다.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예루살렘 가려고 했는데 사마리아인들이 못 알아보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예수께서 길을 닦아 놓아 빌립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당한 게 많으면 하나님께서 쓰시는데 목회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인이고 사마리아인이면서 유대인으로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무시를 당한 것이다.
아픔과 열등감, 귀신의 집착, 중풍, 귀신, 아픔 등 처절하게 낮아져보지 않으면 절대로 그 입장을 알 수 없다.
사마리아인이 체휼이 될 만큼 철저하게 낮추셨다. 되었나 하면 낮추시고 낮추셨다.
사단의 세력(귀신)은 내가 약할 때 열등감이 해결되지 않으므로 가장 많이 역사해서 들어온다.
(적용 질문 #4)
-여러분은 귀신의 집착, 앉은뱅이의 구걸, 중풍의 무기력 중 무엇에 귀신 들렸나?
-요즘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Epilogue>
성령의 큰 기쁨은,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다
흩어져 간 땅인 사마리아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기쁨이다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기쁨이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숨은 게 아니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씨앗처럼 널리 퍼져서 흩어진 곳에서 왕성하게 전파하여 결실을 맺는다는 뜻이다
가는 곳마다 복음을 왕성하게 선포하고 다녔다는 것으로 큰 기쁨이 있었다.
사단은 교회가 망했고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인데 놀랍게도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왕성하게 전해서 큰 기쁨이 있었다.
이 기쁨은 불신자들이 알 수 없는 기쁨인데 이 보다 더 큰 기쁨은 이 땅에 없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고맙게도 박해를 해준 것이 얼마나 신의 한 수인지 모른다.
박해를 해줬기 때문에 억지로 떠날 수 있었던 것으로 말씀의 인도함으로 떠난 것이다.
큰 박해는 큰 기쁨을 허락하신다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기 때문에 내 삶의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있으면 떠날 때를 알려 주신다.
최고의 선물이다. 돈이 있으면 그 기쁨이 영원하겠는가?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택자의 고통은 지나고 보니 잠시간의 고통일 뿐이라는 것으로 지나가버린다. 어떻게 이렇게 큰 기쁨을 주셨을까?
고통(산고)을 통해 생명이 나온다
이 흩어짐은 만세 전부터 세팅된 하나님의 계획이고 절묘함이다.
택자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찬양)’가 가장 잘 사는 비결이다.
복음을 전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것인데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연약을 들어 쓰신다.
가장 영적인 실력은 주님을 만난 것이다. Born again.
큐티인 한 권씩 주는 게 최고의 복음인데 단순히 큐티책이 아니라 예수 믿게 하는 책이다.
핍박이 와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고 사는 것이 나의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비결인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고백이다.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확실하면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고백하면 주님은 나의 형편에 맞게 응답하신다.
흩어졌을지라도 큰 기쁨을 주시며 환경 주심에 토를 달지 않게 되는 것이다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사역은 귀신들이 계속 나가게 하는 역사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확실하면 믿음 충만한 것이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임했다는 것이며 성령이 임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은 모두에게 차별이 없으며 모든 시공간에 주님이 계시다.
말씀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인데 스데반은 말씀만 전하고 순교했는데도 병 고침의역사로 이적을 베푼 빌립보다 유명한 것이다
스데반의 설교의 기적이 최고인 것이다
주님이 빌립 속에서 역사하실 때만 빌립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흩어짐으로 다 떠났는데 그곳에 가자마자 큰 기쁨(하나님을 향해 쓰는 기쁨이란 단어가 Kara)이 있는 것이다
성도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발생하는 외적 현상이 기쁨으로 나타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기쁨은 동의어다. 구원을 빼놓고 기쁨을 논할 수가 없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Good News!
가장 힘든 문제는 아이, 자녀, 돈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이건 약도 없다.
죄인은 나를 보는 눈도 남을 보는 눈도 없어 당연히 하나님도 못 본다.
죄는 과녁에서 벗어난 것을 지칭한다.
의로움이 하늘을 찔러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괴물인가를 보지를 못한다.
복음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하나님과 친해야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직분은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친하면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기쁨이 온다
날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세주가 되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창조주와 나와의 관계성립이 Good News(복음)이다
신앙은 관계를 떠나서는 안 된다. 인격적인 관계를 무시할 때 영육의 관계가 실패한다.
성령의 기쁨이 없으면 관계가 안 되고 관계가 무시된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면 은혜이자 선물 중의 선물이다.
죄를 모르면 알 수 없고 구세주의 존재를 모른다
빌립의 복음 전파가 이러한 큰 기쁨을 낳은 것이다.
Good News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되고 영생을 접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복음이 Bad News가 아니라 Good News가 되니까 자아의 흩어짐이 성령의 흩어짐으로 공감하게 된다
그 가운데 큰 기쁨이라 차별이 없다는 것과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이며 때가 될 때까지는 이게 기쁨의 소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단의 세력(귀신)은 내가 약할 때 열등감이 해결되지 않으므로 가장 많이 역사해서 들어온다.
주님은 안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흩으신다
기도제목 올리는 것이 예수님 옷자락 붙잡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이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하는 기쁨이 큰 기쁨이다
너무 하늘의 언어로만 이야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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