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0년 5월17일 주일예배말씀 요약 및 후기(사도행전 9: 36~ 43/ 성령의 선행과 구제)]
<사도행전 9:36~43>
36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In Joppa there was a disciple named Tabitha (which, when translated, is Dorcas), who was always doing good and helping the poor.)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About that time she became sick and died, and her body was washed and placed in an upstairs room.)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Lydda was near Joppa; so when the disciples heard that Peter was in Lydda, they sent two men to him and urged him, "Please come at once!"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Peter went with them, and when he arrived he was taken upstairs to the room. All the widows stood around him, crying and showing him the robes and other clothing that Dorcas had made while she was still with them.)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Peter sent them all out of the room; then he got down on his knees and prayed. Turning toward the dead woman, he said, "Tabitha, get up." She opened her eyes, and seeing Peter she sat up.)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He took her by the hand and helped her to her feet. Then he called the believers and the widows and presented her to them alive.)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This became known all over Joppa, and many people believed in the Lord.)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Peter stayed in Joppa for some time with a tanner named Simon.
<Prologue>
코로나로 휘문고교 때문에 2월에 자발적으로 처음으로 제일 먼저 온라인 예배를 시작해서 오늘이 벌써 13주째이다
위기가운데 있지만 흩어져도 성전의 의미를 알라고 첫 주에 ‘성령의 성전’ 설교를 하게 하셨다(성령의 성전)
우리가 걸어 다니는 성전이기에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보이기 위해서는 죽어짐의 ‘성령의 순교’를 해야 하고 흩어져도 큰 기쁨, 큰 능력, 큰 권세가 있다고 하셨다 (성령의 순교)
가장 중요한 권세는 회심일진대 그래야 형제가 되고 서로 위로의 진행을 하니 흩어져도 수가 더 많아지는 성장이 된다고 하셨다 (성령의 회심-성령의 성정)
성장은 내적인 정돈, 영육간의 정돈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시고 내적인 정돈은 오늘은 ‘성령의 선행과 구제’로 이어진다고 말씀으로 인도 받고 와서 기억이 나는 것이다 (성령의 선행과 구제)
오늘은 성령의 선행과 구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말씀요약>
1. 제자여야 한다(36절)
욥바(Joppa)의 다비다(Tabitha: 번역하면 도르가/Dorcas)는 헬라파 여성유대인으로 암사슴, 영양을 뜻하는데 빨리 달리고 품위, 은혜로움, 아름다움의 상징이 된다
누구보다 선행과 구제에 헌신적이었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성이다
우리교회는 코로나 발발에 대구지역에 성금전달-온라인예배가 어려운 교회에 후원-극동방송을 통해 취약계층을 도움- 큐티인 수천 권을 후원-각 초원에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든 200명 성도후원-공감소비운동 생필품 보건소에 후원-경기 서울 소외계층 및 서울경기지역 기관을 31개 지원-해외동포 후원 들릴 때마다 후원-큐팡맨(미취학아동, 취학아동 주일학교부서) 등 구제활동을 하였다
우리 교회도 열심히 선행과 구제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헌금설교를 안 했는데 돕게 하셨다.
다비다 여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다
제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생명인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난 죽고 예수 그리스도만 남는 것이다
다비다/도르가는 ‘나는 죽고 구속하신 주 그리스도가 사는 것’의 표상이다
남녀차별이 있고 과부라는 말은 없지만 과부인 그녀에게 제자라는 칭호는 대단한 것이다.
‘그런 제자라는 칭호가 주어진 다는 것은 정말 믿음이 있다면 차별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길이 가시밭길인데 그 길로 가는 자는 차별 받지 않는다.
제자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자이다
아직 제자가 되지 못한 것은 툭 치면 간증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다비다는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여서 성도를 넘어서는 제자가 되었다.
간증이 많더라도 정돈이 안 되면 탁탁 나오지 못한다.
제자여야 제대로 된 구제와 선행을 할 수 있다
(적용 #1)
-여러분은 제자인가? 관람객인가?
2. 자기 죄에 절망하는 사람이어야 선행과 구제를 한다(36절)
착한 만큼 자기 죄에 절망하기가 어렵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죄인의 입장이 되어야 선행과 구제가 순조롭다
도르가는 구제와 선행이 심히 많은 그 때에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베드로가 오니 모든 과부가 도르가의 선행을 기리면서 속옷과 겉옷을 보이면서 울었다고 한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게 할 만큼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죽음이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평가이며 시금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적용 #2)
-내가 죽으면 남이 애통할까? 잘 죽었다고 기뻐할까?
행위구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성경을 읽으면서 경계해야 하고 사람이 영광 받는 것을 늘 긴장하며 조심해야 한다.
애니야(Aeneas)도 아무 공로 없이 값없이 구원받았다.
다비다가 어떻게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는지 그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다비다에게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다고 표현한 것은 정도 이상으로 흘러 넘쳤다는 것이다.
애를 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흘러 넘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흘러 넘칠수 있을까? 내 힘으로는 안 된다.
마태18장에 한 관원이 1만 달란트 탕감 받음에도 불구하고 은혜 받자마자 1백 데나리온 빚진 불쌍한 자의 목을 조르고 동료를 옥에 가두기까지 하였는데 임금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자 탕감 받은 은혜를 도로 다 빼앗기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영겁의 옥에 갇히는 지옥 행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8장 32-33절) 이 악한 종도 기도하고 빌었다고 한다.
얼마든지 악을 쓰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찌나 그 기도가 간절한지 하나님도 응답해주는 기도였다.
하나님이 잠시 응답해주는 것처럼 일만달란트의 학교가 붙고 직장도 붙을 수 있다.
죄 사함을 모르고 빚을 탕감해주시는 만 달란트의 기도응답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돈 없는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한없이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잘되면 얼마나 건방을 떠는지 모른다. 내가 교만하게 될 환경이라면 돈도 집도 직장도 주지 말라고 기도해야 한다.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하게 되면 육적, 정신적, 영적 고통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갖지 말아야 할 명예와 돈과 가정을 가져서 끝도 없이 고난을 받는 집이 많다.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용서 하지 않는 것은 정말 큰 죄이기 때문이다.
그 죄가 우리 속에 있으면 죽음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용서하지 못하는 내 죄가 내게 있을 때 상대를 시기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내 인생을 흔든다.
자기가 탕감 받은 생각은 안하고 백 데나리온에만 집착을 한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 일만 달란트 탕감 받는 감사함이 없기 때문이다.
불쌍히 여김이 마땅한데 용서가 안 되는 집안 식구가 있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성도는 기본적으로 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들이다.
만 달란트(1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는 노동자가 거의 20만년동안 갚아야 할 빚으로 영원토록 영벌에 처해지는 지옥 행으로 쓸데없는 것을 기도해서 받아내시면 안 된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큰 죄이고 그것은 죄의 결과인 죽음으로 끌고 간다.
불쌍히 여김이 마땅한 것이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불순종이다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 불쌍히 여기지 못하는 것이 지옥이다
일만 달란트 빚 탕감을 받고도 감사가 없으니 불쌍함이 없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 나라가 보증이 된 사람인데 잠시 후에 거기 갈 사람인데 이 땅에서 없어져버리는 걸 용서하지 못하고 분해 하는 사람의 부류인 것이다.
회개를 하지 못하도록 돈이 자꾸 벌리고 직장이 자꾸 승진이 되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내가 교만하게 될 환경이라면 어떤 것도 주시지 말라고 기도해야 한다.
(적용 #3)
-회개하지 못하도록 돈이 벌리고 승진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다비다는 일만 달란트 빚진 것처럼 자기 죄가 닭 털같이 많다는 것을 안다.
다비다가 환경이 겸손한 과부이다. 할 말이 없다. 자기 죄에 대해 절망하는 사람이라 그만큼 선행을 할 수 있었다. 고난도 없이 높은 자리에 승승장구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은 그 때에 병들어 죽었다. 성도는 실컷 구제하다가 상으로 병과 죽음을 주실 수 있다. 암이 다비다의 축복이다. 다비다는 죽기 전에 아무에게도 칭송이나 환호를 받지 않았다. 친정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한 것이 생각난다.
이런 죄가 사해졌기 때문에 갚아도 갚아도 갚을 길이 없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 죄가 일만 달란트처럼 많다면 절망해야 할 일인데 그걸 탕감해주셨다는 것이다.
다비다는 바로 이 일만 달란트 빚진 마음으로 선행과 구제를 하니 흘러 넘침으로 심히 많다고 하는 것이다.
빚진 마음으로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내 죄 때문에 눈물이 나고 선행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선행이 되고 생색이 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선한 것이 없다.
다비다가 이미 과부인데 늘 과부와 고아를 가장 불쌍히 여기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환경이 겸손한 것이 겸손한 사람이다.
조금도 생색낼 수 없는 것이 그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죄에 대해 절망하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쉽다.
정신병이라는 것은, 감사한 것이 많은 데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다.
고난도 없이 높은 자리에서 승승장구하면 죄인들은 불쌍히 여기고 눈물 흘리며 기도해줘야 한다.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는데 그 다음 구절 37절에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일만 달란트 빚 탕감 받고 우리는 살다가 어느 때라도 주님이 오시면 따라가야 한다.
실컷 구제하다가 상으로 병과 죽음을 주실수도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선행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갈수도 있다.
암이 다비다의 축복이다. 다비다는 죽기 전에 아무에게도 칭송이나 환호를 받지 않았다. 친정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한 것이 생각난다.
39절 도르가를 위해 모든 과부가 눈물로 보였다. 그 당시에 속옷과 겉옷은(망또, 햇빛 가리개 등) 소유의 개념이었다.
자녀를 일으켜 주신다는 것은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보다 나는 때가 꼈다. 믿음 생활 하는 엄마가 나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좋은 학교 가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교육의 성공은 자녀가 천국 가는 것으로 구원의 확신이 최고의 성공이다.
우리 자매들은 안 돌보았어도 구원의 확신이 있다. 오늘 떠날 것 같은 태도로 엄마가 살았다.
지금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 살리는 일이며 이것이 자녀교육에 가장 유익한 것이다.
집이 망하고 돈이 없어도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보며 걱정 근심 없이 목장에 붙어가면 자녀들을 일으켜 세워주신다(성공개념이 아님)
마태18장에 보면 선행은 용서를 최고로 친다. 70번씩 7번. 용서는 최고의 복수이다.
“사랑할 줄 모르는 이에게 베푸는 사람이 용서이다.”- 헨리 나우웬
(나눔 中) 88년 자기를 버린 엄마를 이산가족 찾기에서 만남-엄마의 자리가 필요할 때 아들이 망했다고 또 도망을 갔다-그 아픔이 정돈되지 않고 미움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신 마음으로 그 엄마를 용서하기 바란다고 했다.
아낌없이 남김없이 섬기다가 도르가가 죽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절박한 심정으로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로 절박한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자기 죄에 대해서 절망적으로 보는 사람은 못할 것이 없다.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고도 한다.
용서는 사랑할 줄 모르는 이에게 베푸는 사랑이라고 한다.
일만 달란트 빚 탕감 받은 사람은 못할 용서가 없고 못할 선행이 없고 못할 구제가 없다.
빚은 꼭 갚아야 한다. 복음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갚아야 한다.
빚 탕감 받고 절박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다름이 없으며 옥에 갇힌다
일만 달란트 빚 탕감 받은 사람은 결초보은해야 한다.
우리는 빚 탕감해 주신 하나님의 종인데 종 노릇을 제대로 안 하면 감시자가 있다.
절제를 못하니 우리에게 감시와 구속은 기쁜 구속이다.
그래서 대가족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랑 같이 사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구속하는 제어장치가 있어야 한다.
남들이 감시해주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른다.(목장, 복자, 부 목자, 목원들)
인간은 노예근성이 있기 때문에 홀로 신앙생활 잘할 것 같아도 못한다.
(적용#4)
-자기 죄에 대해서 절망하는 만큼 행한 그런 선행과 구제는 무엇인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참고 인내하면서 기쁘게 가는 일이다.
큰 빚을 졌으니 생색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행은 구원의 일이다.
선행은 일만 달란트 빚 탕감 받은 자처럼 기쁘게 참고 인내하며 가는 길이다.
(간증사례) 73세 딸 96세 치매 어머니를 돌본다. 6년간 남편 병수발을 했다. 거동도 못하는 남편을 돌보면서 치매 어머니라도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도 어렵게 살아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세탁기고 없어서 손빨래를 한다. 목소리나 말투도 완전 천사이다. 이 세상의 구제와 선행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느 목자님의 큐티 나눔) 원망,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고 부모님께 상처를 드려서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어머니가 응급실에 입원해 계셨다. 무심하게 아빠를 대함. 3개원 반 만에 돌아가셨다. 내 스스로 받은 상처 완악하고 교만한 나. 돌이켜 반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약속과 명령 찾고 순종하고 패스하기를 기도한다.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아도 예수를 전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고 효이다.
나의 약함과 죄를 보면 상대방이 돌아서서라도 생각을 한다.
자랑 질이 아니라 수치를 자랑해야 한다
3.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37~41절)
37-39절) 우상숭배자였던 아합과 이세벨이 죽었을 때 백성들은 장례도 치르지 않았고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이 땅에서 잠시 누리고 잘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 후에 영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봇의 포도원 개들이 와서 시체를 유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죽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40-42절) 다비다가 병들고 과부여도 천국을 누리면서 갔다는 것과 이미 영생에 속한자라는 것을 이 땅의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다비다가 병들어 죽었어도 천국 백성이란 것이다.
그래서 선행과 구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쁨으로 감사하게 이 땅을 떠났지만 이 땅 사람들이 천국이 있다는 것(천국시민권)을 보여주기 위해서 죽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다비다를 바로 씻겨서 장례를 하지 않고 다락방에 눕혔다.
다락방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다.
예수님도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딸을 ‘달리다굼’(예야 일어나거라!의 아람어)하시며 다락방에서 살리셨다
지체하지 말고 베드로를 오라고 했다.
그녀가 믿음의 여인이라는 것을 아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에 다락방에 베드로도 데리고 올라갔다.
베드로가 침상에 올려놓은 다비다의 밑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니 다비다가 일어나 앉았다.
이걸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일은 베드로가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셨다는 것을 누가(Luke)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사도행전 3:12)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을 보고 우리는 주목할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베드로는 성도들과 과부들을 분리했다.
심히 많은 구제와 선행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과부들은 제자나 성도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다비다를 살렸다.
선행과 구제라는 것은 일만 달란트 빚진 마음으로 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전하는 통로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제와 선행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중풍병자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렸지만 베드로가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주님의 공생의 사역을 보는 듯 하다.
주님은 자기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 주님과 같은 능력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그대로 지키셨다.
(적용#5)
-병들어도 아파도 힘들어도 망해도 여러분에게는 영생의 확신이 있나?
-그런데 왜 그렇게 분하고 섭섭하고 원망하는가?
성령의 선행과 구제는 제자여야 하는 것이며 자기 죄에 절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선행과 구제에 생색이 따르면 기복에 불과하다
일만 달란트 빚진 나를 탕감해주셨다는 마음이 있어야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그러니 우리가 늘 사람 살리는 기도와 찬양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과 양육이다.
돈과 자녀가 상급이니까 예수 믿어도 자기 연민으로 슬픈 것이다
생색을 내며 알아 주지 않으니 슬픈 것이다
<Epilogue>
1) 제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2) 생명인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난 죽고 예수 그리스도만 남는 것이다
3) 다비다/도르가는 ‘나는 죽고 구속하신 주 그리스도가 사는 것’의 표상이다
4) ‘그런 제자라는 칭호가 주어진 다는 것은 정말 믿음이 있다면 차별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5) 예수님의 길이 가시밭길인데 그 길로 가는 자는 차별 받지 않는다.
6) 제자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자이다
7) 아직 제자가 되지 못한 것은 툭 치면 간증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8) 간증이 많더라도 정돈이 안 되면 탁탁 나오지 못한다.
9) 제자여야 제대로 된 구제와 선행을 할 수 있다
10) 착한 만큼 자기 죄에 절망하기가 어렵다.
11)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죄인의 입장이 되어야 선행과 구제가 순조롭다
12) 죽음이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평가이며 시금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13) 행위구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성경을 읽으면서 경계해야 하고 사람이 영광 받는 것을 늘 긴장하며 조심해야 한다.
14) 우리가 조금만 잘되면 얼마나 건방을 떠는지 모른다. 내가 교만하게 될 환경이라면 돈도 집도 직장도 주지 말라고 기도해야 한다.
15)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하게 되면 육적, 정신적, 영적 고통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16) 내가 갖지 말아야 할 명예와 돈과 가정을 가져서 끝도 없이 고난을 받는 집이 많다.
17)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용서 하지 않는 것은 정말 큰 죄이기 때문이다.
18) 그 죄가 우리 속에 있으면 죽음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19) 용서하지 못하는 내 죄가 내게 있을 때 상대를 시기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내 인생을 흔든다.
20)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 일만 달란트 탕감 받는 감사함이 없기 때문이다.
21) 불쌍히 여김이 마땅한데 용서가 안 되는 집안 식구가 있고 사람이 있을 것이다.
22) 성도는 기본적으로 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들이다.
23) 만 달란트(1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는 노동자가 거의 20만년동안 갚아야 할 빚으로 영원토록 영벌에 처해지는 지옥 행으로 쓸데없는 것을 기도해서 받아내시면 안 된다.
24) 용서하지 않는 것은 큰 죄이고 그것은 죄의 결과인 죽음으로 끌고 간다.
25) 불쌍히 여김이 마땅한 것이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불순종이다
26)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 불쌍히 여기지 못하는 것이 지옥이다
27) 일만 달란트 빚 탕감을 받고도 감사가 없으니 불쌍함이 없는 것이다
28) 나는 하나님 나라가 보증이 된 사람인데 잠시 후에 거기 갈 사람인데 이 땅에서 없어져버리는 걸 용서하지 못하고 분해 하는 사람의 부류인 것이다.
29) 회개를 하지 못하도록 돈이 자꾸 벌리고 직장이 자꾸 승진이 되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30) 내가 교만하게 될 환경이라면 어떤 것도 주시지 말라고 기도해야 한다.
31) 이런 죄가 사해졌기 때문에 갚아도 갚아도 갚을 길이 없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32) 다비다는 바로 이 일만 달란트 빚진 마음으로 선행과 구제를 하니 흘러 넘침으로 심히 많다고 하는 것이다.
33) 빚진 마음으로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내 죄 때문에 눈물이 나고 선행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선행이 되고 생색이 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선한 것이 없다.
34) 환경이 겸손한 것이 겸손한 사람이다.
35) 정신병이라는 것은, 감사한 것이 많은 데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다.
36) 고난도 없이 높은 자리에서 승승장구하면 죄인들은 불쌍히 여기고 눈물 흘리며 기도해줘야 한다.
37) 일만 달란트 빚 탕감 받고 우리는 살다가 어느 때라도 주님이 오시면 따라가야 한다.
38) 자녀교육의 성공은 자녀가 천국 가는 것으로 구원의 확신이 최고의 성공이다.
39) 지금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 살리는 일이며 이것이 자녀교육에 가장 유익한 것이다.
40) 집이 망하고 돈이 없어도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보며 걱정 근심 없이 목장에 붙어가면 자녀들을 일으켜 세워주신다(성공개념이 아님)
41)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절박한 심정으로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로 절박한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42) 자기 죄에 대해서 절망적으로 보는 사람은 못할 것이 없다.
43)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고도 한다.
44) 용서는 사랑할 줄 모르는 이에게 베푸는 사랑이라고 한다.
45) 일만 달란트 빚 탕감 받은 사람은 못할 용서가 없고 못할 선행이 없고 못할 구제가 없다.
46) 빚은 꼭 갚아야 한다. 복음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갚아야 한다.
47) 빚 탕감 받고 절박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다름이 없으며 옥(불안-초조-근심-걱정-원망-불평-불만-불면-미움-정죄 등)에 갇힌다
48) 일만 달란트 빚 탕감 받은 사람은 결초보은해야 한다.
49) 우리는 빚 탕감해 주신 하나님의 종인데 종 노릇을 제대로 안 하면 감시자가 있다.
50) 절제를 못하니 우리에게 감시와 구속은 기쁜 구속이다.
51) 남들이 감시해주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른다.(목장, 복자, 부 목자, 목원들)
52) 인간은 노예근성이 있기 때문에 홀로 신앙생활 잘할 것 같아도 못한다.
53)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참고 인내하면서 기쁘게 가는 일이다.
54) 큰 빚을 졌으니 생색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55) 한마디로 선행은 구원의 일이다.
56) 선행은 일만 달란트 빚 탕감 받은 자처럼 기쁘게 참고 인내하며 가는 길이다.
57)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아도 예수를 전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고 효이다. .
58) 자랑 질이 아니라 수치를 자랑해야 한다
59) 다락방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다.
60) 선행과 구제라는 것은 일만 달란트 빚진 마음으로 해야 한다.
61)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전하는 통로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62) 주님께서는 자기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 주님과 같은 능력을 행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그대로 지키셨다.
63) 성령의 선행과 구제는 제자여야 하는 것이며 자기 죄에 절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64) 선행과 구제에 생색이 따르면 기복에 불과하다
65) 일만 달란트 빚진 나를 탕감해주셨다는 마음이 있어야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66) 그러니 우리가 늘 사람 살리는 기도와 찬양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과 양육이다.
67) 돈과 자녀가 상급이니까 예수 믿어도 자기 연민으로 슬픈 것이다
68) 생색을 내는데도 알아 주지 않으니 슬픈 것이다
<후기>
‘문제 자녀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우리들교회 어록은 대한민국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명심보감 중 백미입니다. 자녀출세를 위해 백방 뛰어 다니며 좋은 학원 보내고 좋은 학교 보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 살리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자녀 교육의 백미이며 다른 사람도 내 자녀라고 생각하고 돌 보는 것이 곧 수지 맞는 자녀교육이라는 말씀이 실감납니다. 70번씩 7번이나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일만 달란트 어치 이상이나 지은 내 빚을 공로도 없이 깨끗이 탕감해 주셨는데 불과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윽박지르며 목 조르고 소리 지르며 고소하여 감옥에 보내겠다고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 으름장까지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용서가 최고의 복수이며 용서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이라는 어록이 은혜롭습니다. 나의 아픔이 제대로 정돈되지 않으면 상대방이 밉고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게 되지만 내 아픔이 정돈되면 용서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하십니다. 일만 달란트 빚 탕감의 혜택을 받은 내가 구제와 선행과 용서를 아무리 해도 끝이 없음을 일깨워 주시니 할렐루야입니다. 사람이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는 칭호를 받은 세례 요한은 소반에 목이 잘려 죽었지만 구제하였다는 언급이 없다고 합니다저 또한 복음에 빚진 자이니 절박한 마음으로 복음전하고 구제와 선행에 앞장서야 남은 인생에서 빚 갚아주신 주인의 종으로 마땅하다는 마음입니다. 일만 달란트 씩이나 빚 탕감 받은 자로서의 길은 늘 기쁜고 찬고 인애하는 길이므로 생색이 날 수가 없는 것인데 조금 도와주고 생색이 하늘을 찌르고 고맙다는 반음이 없으면 금방 섭섭해 지는 내 마음을 회개합니다. 겉옷과 속옷 지어준 다비다를 위해 과부들이 눈물 짓고 한숨 짓는데 우리는 오히려 죄를 짓고 삽니다. 오늘 말씀처럼 ‘다비다가 답입니다’ ‘다비다’는 우리말로 ‘다 비우다’와 일맥상통하는 단어로 해석됩니다. 또한 다비다의 번역이름인 ‘도르가’는 ‘도로 천국 가’처럼 들립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구속자시며 시작과 끝임을 알고 잠시 잠깐인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에 집착하지 않고 자기 죄를 날마다 보고 회개하는 것이 예수님 전하는 것이며 그것이 최고의 사랑이고 선행과 구제임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다비다처럼 천국의 영생에 속한 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이 땅에서 아낌 없이 베풀고 선행하며 구제에 전심전력하는 천국시민자의 표상임이 체휼됩니다. 선행과 구제가 내 생색과 자랑의 훈장과 광고판이 되지 않으려면 내면의 정돈이 되어야 하고 최고의 선행은 70번씩 7번 용서하라시는 말씀이 내 마음 판에 새겨 혈기와 짜증과 생색이 날마다 죽어나가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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