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1. 6. 30. 20:32

[우리들교회 2021627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8: 5~ 11/ 성령의 백성)]

 

 

<사도행전 18:5~11>

 

5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When Silas and Timothy came from Macedonia, Paul devoted himself exclusively to preaching, testifying to the Jews that Jesus was the Christ)



6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But when the Jews opposed Paul and became abusive, he shook out his clothes in protest and said to them, "Your blood be on your own heads! I am clear of my responsibility. From now on I will go to the Gentiles)



7절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Then Paul left the synagogue and went next door to the house of Titius Justus, a worshiper of God)



8절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Crispus, the synagogue ruler, and his entire household believed in the Lord; and many of the Corinthians who heard him believed and were baptized)



9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One night the Lord spoke to Paul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keep on speaking, do not be silent)



10절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For I am with you, and no one is going to attack and harm you, because I have many people in this city)



11절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So Paul stayed for a year and a half, teaching them the word of God)

 

 

<Prologue>

 

백성은 문자 그대로 수많은 백 가지 성입니다. 나라에서 근본을 이루는 말이 백성인데 백성은 일본에서 촌놈이나 욕설로 비하해서 사용합니다. 성령의 백성은 수많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믿는 사람으로서 최고의 존칭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근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안 믿는 쪽에서는 비하합니다. 권면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백성이 됩니다. 성령의 백성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입성한 택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높고 낮음이 없이 천국 백성이 되면 무조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 백성 이야기를 오늘 가장 타락한 고린도에서 하십니다. 이곳에서 2차 전도 여행의 절반에 해당하는 16개월을 체류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백성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말씀 요약>

 

성령의 백성은,

 

 

1.   주 안에서 보고 싶은 지체입니다. 

 

5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쫓겨 나듯 아덴(Athens)에서 떠난 것 같다. 떠나다는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과 아픔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떠나 외로움과 실패 속에 자신과 같이 쫓겨 나듯 떠났던 같은 고난을 겪은 아굴라(Aquila)와 브리스 길라(Priscilla)부부를 만났고 성령의 권면을 할 수 있었다. 아굴라 부부는 후에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어놓았다고 표현을 한다. 최고의 충성된 지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이 아덴에서부터 기다리던 실라(Silas)와 디모데(Timothy)가 드디어 고린도(Corinth)에 도착한다. 바울에게 아주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실라와 디모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바울이 아덴에서 실패하고 안 좋은 소문이 자자했을 만큼 바울이 너무 실패한 것은 맞는데 얼마나 돈이 없으면 동역자도 없이 홀로 고린도로 와서 그냥 아굴라에게로 들어갔다고 했다. 아굴라가 온 게 아니고 바울이 생업(직장) 구하러 그들에게 갔다. 먹고 살아야 되니 사명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보고 싶은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했다. 실라는 같이 매 맞고 감옥에 갇혔던 옥중동창생이다. 옥 터가 열려서 나왔다. 디모데서에 보면 디모데는 너무나 청결한 양심을 가졌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바울이) 쉬지 않고 너를 생각했다고, 죽기 전에도 보고 싶어 한 디모데이다. 데전 3장에 보면 그렇게 보고 싶은 실라와 디모데가 이미 아덴에 왔는데 바울은 늘 자신의 상황보다 늘 떠나왔던 교회 지체들을 생각했다. 그래서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혹시 복음에서 멀어졌을까?
3
주 밖에 없었는데.. 하면서 너무 염려했다. 그런데 데전 3:4에 “우리가 너희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란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데살로니가(Thesalonica) 3주 동안 있을 때 장차 받을 환란을 얘기했더니 과연 환란이 왔다. 그러니까 너무 참다못하여 보고 싶은 디모데가 왔는데 지금 고린도가 문제가 아니라 고린도에 오기 전에 아덴에 보낸 것이다. 같이 가자고 하지 않고 빨리 보냈다. 왜냐하면 시험 들어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봐. 그래서 실라는 빌립보로 보내고 데살로니가에는 디모데를 다시 파송해서 소식을 알고자 했다. 그런데 그 소식을 가지고 고린도로 온 것이다. 가지고 온 소식은 6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왔으니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함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바울이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겠는가?
7
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란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먹을 것이 없어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굳건히 섰다고 하니까 너무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8
절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성도들의 기쁨은 이런 것이다(온 천하에서 믿음이 자라는 것)
이들을 만나 전도하고 온 교회소식을 듣자마자 그 소식이 너무 반가우니까 만나자마자 바울이 힘을 내어서 5절 후반부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라 밝히 말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실라와 디모데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의 선교후원금을 가지고 왔다. 이전에는 텐트 메이커로 주말에만 사역을 하다가 후원금으로 사역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디모데에게 들은 소식-데살로니가 전서 4~5장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서 약간의 혼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맨 처음 교회에는 살기가 힘드니 이단들이 판을 친다. 그래서 고린도에서 1 6개월 머무는 동안에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멀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편지를 써서 그들의 믿음을 양육하는 일을 병행했다. 바울과 실라, 디모데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데살로니가 성도들, 빌립보 성도들 등등 모두 성령의 백성인데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구원이다. 함께 구원을 바라볼 공동체가 있으면 성령의 백성이고 보고 싶은 지체가 되는 줄 믿는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다녀도 “다 꼴 보기 싫어, 다 이상해” 하면 여러분들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절대로 믿음이 좋은 사람은 누구를 욕할 수 없다.



(적용#1)

 

-보고싶은 지체가 있나요? 구원 때문 인가요? 이제는 살리라 내가 들었던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요? 



2.   말씀을 붙잡히게 해줍니다(5).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실라와 디모데의 격려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할 수 있었다. 아덴에서는 눈치를 봤다. 이 “붙잡혀”는 슈네코라는 단어의 미완료 과거 수동태이다. 둘러싸임을 당하고 거대한 상황에 사로잡힌다는 뜻도 있지만 어떤 사람의 병이 그 사람을 통제하거나 억누르는 것을 묘사할 때나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상황을 묘사할 때도 쓰이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말씀에 붙잡히는 것은 억누름을 당하고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말이 맞다. 몇몇 사본에는 하나님의 말씀 자리에 성령이란 의미의 프뉴마티가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원래는 이게 맞지만 그만큼 바울이 성령에 붙잡혀 있었다는 뜻도 된다. 성령에 붙잡히고 말씀에 붙잡힌 것은 내가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중했다, 헌신했다는 표현대신 왜 붙잡혔다는 말을 썼을까요? 그것은 우리 힘으로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붙잡히는 것만 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듣고 적용하는 일에 헌신하고 집중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부부관계에서 남편과 아내로서 최선을 다해서 섬겨야 된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섬겨도 우리 힘으로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셔야만 우리는 상대방에게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절대로 안 된다. 그러니까 아덴에서와는 달리 바울은 말씀에 붙잡힌 능력으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증거하지 않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을 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나사렛 예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이 증거가 가장 사람의 운명을 뒤바꾸는 증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말로만 “예수는 그리스도다.” 라고 십자가를 전하고 삶이 없으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그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얘기를 말로만 전하면 하나님이 속지 않으시니까 두려운 일인 것이다.
처음에 은혜 받아서 모임을 인도했는데 사람들이 저에게 몰려오고 했을 때 ‘내가 지금 대접받아서 이 길을 가나? 사명 때문에 이 길을 가나?’ 끊임없이 저를 의심하게 되더라. 사람이 칭찬에 장사가 없다. 내가 말씀을 전했는데 그게 내가 칭찬받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말씀에 붙잡혔기 때문에 이런 생각도 끊임없이 한 것이다. 내가 말씀을 붙잡은 것 같지만 전적으로 붙잡힌 것이다. 말씀이 나를 붙잡았다. 내가 붙잡혔으니까 날마다 나를 의심하면서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인정할 때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에 붙잡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내가 뭘 좀 한다고 생각했으면 금새 흘러 떠내려갔을 것이다. 계속적으로 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바울을 붙잡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힐 수 있나-말씀의 구조 안에 있어야.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이 공동체 안에 거해야 한다. 목장에 참석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체들을 말씀으로 붙잡고 계신 지를 보고 들으며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듣고 순종해야 하는지 지체들을 통해 주시는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씀의 구조 안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들어가서 그 구조 속에 있어서 계속 붙잡혀서 남들이 나를 붙잡아 주어야 한다. 내가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적용#2)

 

-지체의 격려로 말씀에 붙잡힌 경우가 있습니까? 그 말씀이 십자가지라는 예수는 그리스도 입니까? ‘잘 될꺼야 라는 위로였습니까?

 

 

3.   대적과 비방도 받아내야 합니다. 

 

 

6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러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싫어하는 사람이 대적 사단이라고 했다. 곧 그 말을 비방하기 시작한다. 비방은 명예를 훼손하고 욕을 하는 것이다. 인신공격을 한다. 살인자가 복음을 전한다고 뭐라고 한다. 체계적으로 저항하는 의미까지 있다.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 어느 지역보다 치밀하고 강하게 핍박하고 협박했음을 보여준다악의적인 루머를 조직적을 유포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낸다. 그래서 정권을 가지려고 발악을 한다. 최고의 인본적인 그거 아니겠나? 고린도의 이 말을 듣는 이가 하나님께 돌아오겠다고 위협을 느꼈기에 발악을 하고 대적을 하는 것이다. 한 집사님이 양육을 받기 위해 지하철을 탔고 핸드폰을 보면서 탔는데 부딪혀서 액정이 깨졌다고 한다. 양육 안 받는다고 한다. 폰과 양육이 무슨 상관이 있나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비방과 대적이 비일비재 하다. 왜 이렇게 말씀이신 예수님을 반대할까? 그들은 말씀에 붙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수동태가 안되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붙잡는다고 한다.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오기를 거부한다.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완악 함이고 목장에 안 들어오는 것이다. 부자이고 잘난 사람이 구조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성령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한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유대인들을 향해 옷을 털면서 말한다. 그들의 불순종은 그들 책임이라고 안디옥(Antioch)에서는 복음을 유대인들을 향해 신발의 먼지를 털었ek. 옷을 터 는 것은 강력한 표현이다. 말씀에 붙잡히니까 심판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나 네 네 네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옷을 털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예수 믿는 사람은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백성은 이렇게 비방과 대적을 받을 때 대항하지 않고 그 상황을 피해야 한다. 반박을 할 때 또 다른 올무에 빠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반박을 할 때 또 다른 올무에 빠지고 나를 향한 훈련이 있는데 옷에 먼지를 턴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강박함으로 이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진다는 의미다. 성경을 흑과 백으로 읽으시면 안 된다이거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강박함으로 나 같이 복음을 받지 못하는 나에게 복음이 이르렀구나. 인정할 때 우리는 유대인에게 돌아가야 합니다실제로 7절에 복음이 지금은 아니래도 옆집으로 갑니다.



7절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회당 옆으로 이사 갔다. 디도 유스도(Titius Justus)의 집으로 옮긴다. 로마 명문가 사람이다. 물리적으로는 회당 바로 옆 건물이다. 유대인의 회당은 복음을 대적하고 디도(Titius)는 복음을 받는다. 보기 싫어도 봐야 했다남편이 괴롭혀도 복음이 왔는데 남편과 아내를 봐야 하는 것이다. 말씀에 붙잡혀 있어야 하니까 세상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성령의 백성의 징표다. 성령의 백성으로 서있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나? 이방인에게 왔던 복음이 유대인에게 갑니다.



8절 또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이 말씀을 거부하는 유대인의 최고 대장 회당의 중심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와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회당장은 회당에서 교회로 이사합니다몸만 아니라 복음과 은혜로 이사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성령의 백성으로 들어가 보니 온 가족이 믿고 더 나아가서 고린도 사람이 믿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나? 대적하고 비방하는 남편 부모 자녀 때문에 복음을 믿었다면 다시 내 옆집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가야 한다. 왜냐하면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없고 예수 믿게 하는 부모가 최고이고 저 유대인 때문에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이제 순서를 잘 보면 너무나 그 사람들이 대적하고 비방하니까 갔는데 다시 유대인에게로 전체 구속사의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비방하는 회당의 유대인 때문에 이방인 디도에게 갔는데 믿었다면 그리스보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비방을 하는데 믿는 것이 얼마나 격려가 되었겠나? 인생이 해석된 유스도(Justus)의 집에서 고린도교회가 시작 되었다. 이렇게 쓰임 받는 것이다. 이 세상 삶을 끝내고자 세상으로 이사해야 하지 않나?.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모두가 영생의 이사를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로 이사해야 한다.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이 성령의 백성이 되셔서 이사 하시기를 바란다. 적용하기 전에 말을 그쳐서는 안된다. 큰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사단이 훼방한다. 역사가 크게 일어나는 목장일수록 목자님이 크게 훼방을 받고 있다. 그 목장이 은혜가 충만한 것이다. 늘 진짜 역사가 일어나려고 사단이 발악 하는 것이다. 남편 아내 자녀를 통해 오는 것이다. 인간이 너무 악하고 음란해서 깨어있을 수 없다. 그래서 유스도(Justus)와 그리스보(Crispus)는 바울이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로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에 기록되었고 바울에게 세례 받았던 인물로 기록이 된다.

 

 

(적용#3)

 

-대적하고 비방 받아서 멈추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그 대적이 변화된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디로 이사 가고 싶으세요?

 

 

4.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9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절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절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이제 디모데(Timothy)와 실라(Silas)를 만나고 유스도(Justus)와 그리스보(Crispus)를 만나 고린도 사람들(Corinthians)이 세례를 받았다. 대단한 것인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바울을 휘감고 있다. 바울이 말 한마디를 하면 핍박과 고난과 대적이 지속되어서 그런 것 이다. 얼마나 떨리겠나?. 여러분 믿는 자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너무 소수다. 그래서 동성애가 맞는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다 맞는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자기 신념으로 군대 안 가는 것도 맞는다고 판결이 났다. 말하는 게 얼마나 두렵겠나? 사회나 직장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두렵다. 동성애가 죄라고 하면 소수의 사람은 아니라고 우리들교회에서 말한다. 저는 소수라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우리들교회 같은 곳도 소수다. 마음이 아프다. 그러니까 굳이 말 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려고 한다. 왜 바울이 두려워했는지 이해되나?

 

바울을 위로해 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너에게 해를 가할 자가 없다고 한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말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한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음란한 도시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데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이 말도 안 들어갈 것 같은 고린도 같은 내 남편 아내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이 성중에 내 아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제가 우연히 남편과 결혼한 것이 아니라 이 성중에 하나님의 백성이 우리들교회에 이렇게 많았다는 것이다나의 죄악과 수치를 자녀의 우상, 물질 우상을 도피한 그들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이걸 말하려고 하니 얼마나 떨리겠나? 자기의 죄를 말해야 하니 얼마나 무섭겠나?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이곳에서 바울은 어느 도시와도 다르게 1년 넘게 있었다.



이제 아시아로 가고 싶은데 갈 길을 모를 때 벼랑 끝에서 성령의 환상 설교로 이렇게 위로해 주시는 것이다. 이러면 끝난 것이다. 아무도 너를 대적하지 않고



훼방할 자가 없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두려워서 못한다. 말씀에 붙잡힌 자는 정말 영육 간에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음란한 이 사람들을 깨우면 그 문제 많은 고린도에 고린도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적용#4)

 

-나는 성령의 백성으로 그 고린도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습니까?

-나의 연약함을 말합니까 두려워서 침묵하고 있는 말은 무엇입니까?



고린도교회가 우리들교회다. 우리는 성경 나오는 본문이 나올 때마다 계시록 하면 계시록 교회가 우리들교회다.

 

 

 

<Epilogue>

 

1)  성령의 백성은 주안에서 보고 싶은 지체다.

2)  성령의 백성은 말씀을 붙잡히게 해준다

3)  성령의 백성은 대적과 비방도 받아내야 한다

4)  성령의 백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5)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듣고 적용하는 일에 집중해야 되지만 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6)  목적을 이루면 허탈감이 오게 되어 있다

7)  하나님이 붙잡아 주지 않으시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8)  말씀 듣는 구조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완악 함과 고집이다

9)  대적과 비방에 반박을 할 때 또 다른 올무에 빠지게 되므로 옷을 털어야 한다

10)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징표다

11) 대적하고 비장하는 가족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12) 대적과 비방을 받아도 성령이 말씀을 그쳐서는 안된다

13) 말씀에 붙잡힌 자는 영육간에 두려움이 남는데 그것이 말씀을 전하게 하는 비결이다

14)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에 붙잡혀 있으면 죄 짓는 것과 멀어지게 된다

15) 말씀에 붙잡힐 수 잇는 구조가 공동체다

16) 공동체에 안 오는 것이 죄로 향하는 징표다

17)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미완료 과거 수동태다

18) 죄가 많을수록 은혜가 많다

19) 아덴 같은 사람이 완악하고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20) 고린도처럼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

21) 함께 구원을 바라볼 공동체가 있으면 성령의 백성이고 보고 싶은 지체가 되는 것이다

22) 여러분들이 교회를 다녀도 “다 꼴 보기 싫어, 다 이상해” 하면 여러분들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23) 절대로 믿음이 좋은 사람은 누구를 욕할 수 없다.

24) 말씀에 붙잡히는 것은 억누름을 당하고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다.

25)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말이 맞다.

26)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듣고 적용하는 일에 헌신하고 집중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27) 아무리 열심히 섬겨도 우리 힘으로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28) 하나님이 붙잡아 주셔야만 우리는 상대방에게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29)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절대로 안 된다.

30) 십자가에서 죽으신 나사렛 예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이 증거가 가장 사람의 운명을 뒤바꾸는 증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1) 사람이 칭찬에 장사가 없다.

32) 내가 말씀을 붙잡은 것 같지만 전적으로 붙잡힌 것이다.

33) 말씀이 나를 붙잡았다. 내가 붙잡혔으니까 날마다 나를 의심하면서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인정할 때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에 잡혀가는 것이다

34)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 되는 것이다.

35) 이것이 말씀에 붙잡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내가 뭘 좀 한다고 생각했으면 금새 흘러 떠내려갔을 것이다.

36)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려면 말씀의 구조 안에 있어야 가능하다

37)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이 공동체 안에 거해야 한다.

38) 목장에 참석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체들을 말씀으로 붙잡고 계신 지를 보고 들으며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듣고 순종해야 하는지 지체들을 통해 주시는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씀의 구조 안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39)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들어가서 그 구조 속에 있어서 계속 붙잡혀서 남들이 나를 붙잡아 주어야 한다. 내가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40) 악의적인 루머를 조직적을 유포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낸다.

41)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비방과 대적이 비일비재 하다.

42) 말씀이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은 말씀에 붙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수동태가 안되기 때문이다.

43)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완악 함이고 목장에 안 들어오는 것이다.

44) 성령의 백성은 이렇게 비방과 대적을 받을 때 대항하지 않고 그 상황을 피해야 한다.

45) 말씀에 붙잡혀 있어야 하니까 세상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것인데 이것이 성령의 백성의 징표다.

46) 모두가 영생의 이사를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로 이사해야 한다.

47)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적용하기 전에 말을 그쳐서는 안된다.

48) 큰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사단이 훼방한다.

49) 역사가 크게 일어나는 목장일수록 목자님이 크게 훼방을 받고 있는 것인데 그 목장이 은혜가 충만한 것이다.

50) 늘 진짜 역사가 일어나려고 사단이 발악 하는 것이다.

51) 인간이 너무 악하고 음란 해서 깨어있을 수 없다.

52) 말씀을 듣지 않으면 두려워서 못한다.

53) 말씀에 붙잡힌 자는 정말 영육 간에 두려움이 있다.

54) 두려움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55) 죄를 나누면 죄가 힘을 잃는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1. 6. 30. 14:47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26(내가 대부분 만난 체육부-체육청소년부-문화체육부-문화관광부-문화체육부차관-차관보 및 국장들과의 추억 포토 갤러리)]

 

그러는 와중에 체육부~문화체육관광부 차관-차관보-국장 등과도 교류와 소통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 해외출장이 잦다 보니 한국에 있는 동안 저녁 시간 등에 오붓하게 돈독한 한국 정서에 걸 맞는 인간적이고 끈끈한 인맥은 많이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한국에서는 실력보다는 끈끈한 인맥 형성과 소통이 다면 평가측면에서 우월한 것이 사실이다.

 

필자의 경우 체육부 창설 이전에 KOC국제과장을 역임한 오지철차관(한국관광공사사장-한국 케이블 TV협회 회장-TV조선 사장-법무법인 율촌 고문 역임-현 단국대 예술대학원장 및 국제교류협회회장)과는 오랜 세월 동안 동고동락하며 친밀하고 지내 왔다.

 

소신과 명확한 업무처리로 정평이 나 있는 신현택차관(예술의 전당 이사장 역임)과는 스위스 Lausanne IOC 출장 시 함께 하였으며, 외대 동문인 곽영진 차관과는 평창2018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재직시절이래로 동고동락하였으며 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조현재 차관 및 오영우 제1차관과도 교감을 가지고 교류하고 있다.

 

Beijing1990아시안게임 시절부터 업무적으로 소통해 왔던 배종신 차관을 비롯하여 통계청장 출신으로 차관 재임 중에 청와대 수석으로 발탁된 바 있던 김대기차관 등과도 교류와 소통을 가져왔었다.

 

김종차관과는 차관되기전에 업무적으로 인간적으로 교류을 많이 한 편이었지만 차관이 된 이후는 뜸하였다.

 

현 스위스대사로 발탁된 노태강 전차관과는 국제체육과장과 국장 재임 시절 업무적으로 교류한 바 있다.

 

2002 FIFA월드컵조직위원회 초대 사무총장과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한 최창신 차관보와 이홍석 차관보와의 인연도 각별 하였다.

 

(좌로부터 최창신 차관보, 김종하 대한체육회장, 필자)

 

 

또한 현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으로 있는 김기홍 실장(1)과는 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함께 동고동락하였다.

 

외대 선배인 박종문 국장, 초지일관 불도저로 밀어 붙이는 일 중심의 열성파 우상일 국제체육국장, 평창2018조직위원회에서 바로 옆 방에서 근무하며 친하게 지냈던 김현기 국민소통실장, 조직위 근무 기간 동안 임시숙소인 강릉으로 출퇴근 버스 짝꿍이었던 홍보국장으로 대회 홍보의 중심축을 담당한 김대균국장(현 아리랑 TV전무이사),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전체를 기획하고 총괄했던 김대현국장, 문화 업무를 전담했던 황준석국장 등 기라성 같은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및 이선영 성화봉송 총괄부장 등 정부 각 부처 파견 공무원들의 헌신적이고 유기적인 업무 협조로 평창2018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된 바 있다.

 

Tokyo2020올림픽 및 서울-평양2032공동올림픽유치관계로 몇 번 만나 식사도 같이 했던 박용철 현 국제협력관(국장) 등과도 함께 교류하였다.

 

(특히 오지철차관이 해외협력담당관-국제체육국장-평창2014대통령유치특보 시절 필자와 국제업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함께 올림픽대회 및 국제회의 참석 차 해외출장을 비교적 많이 한 바 있다)

 

 

(첫째 줄 좌로부터: 오지철 차관-신현택 차관/둘째 줄: 배종신차관-최윤희차관-오영우 차관/셋째 중: 이보경 차관보-한기복 체육부 기확관리실장<부산2002AG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역임/넷째 줄: 1987년 체코 동계유니버시아드 좌로부터 장병조 국제체육국장<청와대 체육비서관 역임)-필자-정성태 체육과학연구원장-김종하 대한체육회장-관게부처국장-이승원 대한스키협회장 겸 FIS집행위원-이세기체육부장관-Renata체코 연락관-오지철 차관<당시 해외협력관>

 

 

(이영호 체육부장관 시절 비서관이었고 체육부 국제체육국장을 역임한 박종문국장은 외대 선배이며 스페인어 전공자답게 스페인어에 능통하였고 특히 스페인어 노래인 La Golondrina<제비>를 구성지게 잘 불렀던 기억이 삼삼하다)

 

 

To be Cont’d…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