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1년 7월4일 주일말씀요약(사도행전 2:14~2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정정환목사)]
<사도행전 2:14~21>
14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절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절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절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절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Prologue>
할렐루야로 인사하고 싶지만 인사가 잘 안 나옵니다. 이번 주에 그 주 중에 주일 설교 하라는 말씀을 듣고 칠월달 큐티 책을 딱 펼쳤는데. 아! 사도행전인 겁니다. 목사님께서 매주마다 하시는 이 사도행전을 도대체 어떻게 설교해야 되나 근심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주일 본문을 딱 펼쳤는데 아뿔싸! 4년 전에 목사님께서 항암을 시작하시기 전에 하신 이 성경 충만의 본문인 겁니다. 오늘 성도님들이 눈물로 기도하시면서 했던 말씀인데 이 말씀을 도대체 어떻게 내가 설교를 해야 되나. 말씀에 붙잡힌 게 아니라 근심과 염려에 붙잡힌 한 주였습니다. 그러던 제 얼굴을 보는 아내가 이러는 겁니다. 여보 사도행전 감당할 수 있겠어 안쓰럽다 이러면서 설교 원고는 줄 수 있지. ‘나 목장 인도해야 돼’ 이러는데. 정말 아무런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금식하면서 기도해 주겠다는 그 말에 좀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아침에 나오기 전에 물어보니까 '한 끼 금식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것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다 보니. 수요 예배 기도한 시간에 눈물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하나님, 우리 공동체는 힘든 고난 당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이게 지금 고난인데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렇게 기도로 보낸 한 주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저의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여러분도 저를 좀 불쌍히 여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 보면 이런 시구가 나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여러분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의 마음을 그에게 준다는 그런 뜻이겠죠. 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전해주는 겁니다. 우리가 1 1 4에 전화를 걸었을 때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사랑합니다 고객님’ 이 말에 사랑을 느끼시는 분 계신가요? 아마 계신다면 요즘 정말 힘드신 분일 겁니다. 하지만 별로 내가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누구 누구야!’ 이렇게 불러주었을 땐 또 어땠습니까? 그 사람에 대한 친근함과 애정을 느낍니다 저도 과거에 제가 이 몸 담았던 공동체에서 아내가 저에게 처음으로 형제님 이런 말 대신에 ‘정환아!’ 이렇게 불러줬을 땐,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 이 누나가 나를 정말 친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이제 결혼하고 나서 한 10년 정도 넘게 살다 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제 이름을 부르면 내가 혹시 뭘 잘못했나? 아내가 나 때문에 열 받았나? 싶어서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그런데 또 사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그렇죠. 제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정환아 내게 축복 또한 하노라’ 제 고향 선배가 쓴 가사인데요 이 가사에 내 이름을 딱 넣어서 부르면 마치 지금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신 것 같아서 더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되죠. 마찬가지로. 나 또한 어떻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을 향한 신뢰와 사랑의 표현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공동체와 소리를 높여 부릅니다.
14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본문은 베드로가 첫 번째 설교의 도입 부분입니다. 열한 사도와 서서 소리를 높입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소리를 높입니다. 50여 일 전까지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더 이상 그런 베드로가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열한 사도와 함께 소리를 높입니다. 나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합니다. 지체들이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방언하기보다는 서로 붙잡아줍니다. 담대함으로 소리를 내고 자신의 삶의 간증합니다. 목장을 할 때 전도 봉사를 할 때도 함께 서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합니다. 담임목사님께 설교 때마다 공동체 고백을 통해서 삶과 간증을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심방과 결혼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곳곳을 다녔습니다. 여러 집사님들이 함께 소리를 높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해 주시고 자신의 수치와 죄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함께 서서 연약한 지체들 Care하고 격려해 주시다 보니 든든하고 감사했습니다. 말씀에 붙잡힌 게 이런 거구나 어느 곳에 가든지 거기에는 성령의 백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서있는 것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외 딴 섬처럼 있으려고 했던 나 혼자 신앙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한번 여름 Outreach를 간 적 있었는데 며칠 동안 아들과 딸이 저를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각하죠. 그 말을 듣고 나니 저의 실상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꼈습니다. 제 행동의 이면에는 안일함의 우상이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혼자서 뭐 하려고 하지 말고 어울리면서 사역 하라고 합니다. 이런 제가 잘 바뀌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사역을 하다 보니까 공동체와 함께 서서 말하는 것이 어떤 건지 깨닫게 되었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지체들과 함께 서서 소리 내서 말하는 것이구나 함께하는 기쁨 이런 거구나’라는 것이 깨달아 졌고 목사님의 말이 이해되었습니다. 목장도 목원들과 함께 서서 말하는 곳입니다. 설명해 주고 붙들어주고 같이 서있게 됩니다. 성냥개비 하나는 금방 타지만 여러 개가 모여 있으면 활활 탑니다. 이럴 때 옆에서 조롱하고 비웃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옆에 있던 유대인들이 술에 취했다고 조롱합니다.
15절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이라
아침 9시에 불과한데 어찌 이 사람들이 술에 취할 수 있느냐 말합니다. 오전 10시까지 금식했기 때문에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부드럽고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이전 같으면 어땠을까요 앞에 예수님이 계셔도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사정 없이 내려쳤습니다. 성질 급한 아이콘이죠 오늘 베드로가 달라졌습니다. 우리 베드로 형님이, 오빠가, 달라졌습니다. 나의 내면과 언어가 바뀝니다. 미움과 분노의 말이라 아니라 사랑의 말로 하게 되고 내가 넘어가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에 대해 말하게 됩니다. 조롱을 당하더라도 혈기로 맞서기보다 객관적으로 말해줍니다. 말씀 충만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 옆의 사람이 조롱했을 때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혈기로 반응하십니까? 아니면 드러내지 않지만 저 인간하고 상종하지 말아야지 정죄와 판단하고 살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제 오후에 양육 교사를 인도하는데 부모 형제에 대한 고난을 겪고 있는 나눔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쓰레기통을 비우는 데 쓰레기를 제대로 모으라고 남편이 아내에게 잔소리했답니다.
아내 집사님이 아들에게 계란 찜 해주다가 급해서 그렇게 됐다고 하니까 남편 분이 그래도 그게 뭐냐고 잔소리했다고 합니다. 치명적인 펀치 한 방을 날렸습니다. 당신이나 어머니나 다 똑같다고 그래서 소리 지르고 난타전을 치르다가 아내 집사님이 쓰레기통을 부쉈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의 적용은 순종의 언어로 하겠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은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 받아내는 것이 순교이고 죽어질 때 화평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내 옆의 식구와 함께 먹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어서 신앙을 전하는 것에 많이 불편했습니다. 늘 입을 다물곤 했습니다.
특히나 가까워 보이는 친척들과 관계에서는 크리스천을 조롱하는 어르신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목회자를 비판 하시다 보니까 이분 앞에서 도저히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술을 받으면서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남 부러울 것이 살고 화기애애하다 보니 예수가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제 형편은 너무 안 좋아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외할머니의 병실에 방문했습니다. 구원에 대해 주시는 부담감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모든 친척분들이 모여 있었는데 결국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나왔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제 스스로 걷어찼습니다. 그게 할머니와의 이 땅에서 마지막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후회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입이 열리지 않고 소심한 저였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조롱 당하는 게 싫어서 신앙을 감추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공동체에 속해있지 않았고 예배만 드리고 저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 중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틈틈이 선교 구호단체를 섬겼는데 열심히 사는데 공동체가 중요하나? 라고 무시하면서 지냈습니다.
그 공동체를 무시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것을 나눌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 부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목회자에 대해 비난하는 객기만 있었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사역자로 불러주신 것을 생각하면 어떤 말도 없습니다. 목사가 될 자격이 1도 없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적용#1)
-나는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서 있습니까?
-혼자 서 있습니까? 누구와 함께 서서 소리 높여 말합니까?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씀으로 삶을 해석합니다.
16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성령의 강림은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었습니다. 이건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내 앞에 일어난 일은 말씀이 일어난 사건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인간적인 일로만 여깁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신 사건을 세속사의 사건으로 치부합니다. 몇몇 유대인은 술에 취해서 이런다고 조롱합니다. 말씀이 임한 사건이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그건 재수가 좋아서 그런 거야 그건 운이 좋아서 그런 거야’라고 비웃습니다. 그 일은 말씀이 임한 사건입니다. 말씀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내가 원하고 바랬던 대로 되었던지, 반대로 되었던지, 그 일을 보면서 아 말씀대로 된 사건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의 옷깃을 여며야 합니다. 성경으로 해석해야 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누군가 조롱하고 비아냥거릴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설교를 듣고 큐티를 하지만 부정적인 말과 조롱에 요동할까요? 말씀이 응한 사건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분법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면 교만 하거나 우쭐해 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겸비해야 합니다. 내가 원한 것과 거꾸로 나왔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인 것이죠 베드로가 인용한 것을 보면 일어나기 전부터 그는 구약의 말씀을 묵상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들 공동체가 강에서 바다로 나가서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고 간증하다 보니까 사명의 지경이 넓어지게 된 것입니다. 좀 전에 제가 언급했던 친척들 가운데 이종사촌 형도 있었습니다. 사촌 형의 아내가 소천했는데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양육도 받고 사역하면서 가치관이 달라지다 보니까 친척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전도할 생각만 하면 눌렸는데 복음을 전하고 이모가 구원을 받게 된 간증을 했습니다. 이모는 독실한 불교신자 였습니다. 질병으로 중환자실에 가서 전도했을 때 예수님을 만나고 천국에 간 사건을 친척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이모의 구원을 위한 응답이었고 말씀 이루어진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간증하고 있는데 상주로 앉아있던 그분이 이러는 겁니다. 그거는 중환자들이 경험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의학적인 지식을 늘어놓으면서 설득하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아내도 의사였는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난 때문에라도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왔는데 교양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형은 아무리 여기서 하려고 해도 안 될 거라고 외삼촌이 대학 교수님이라고 얼마나 박식하고 깊이가 있는데 목사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복음을 거부하면서 신비적으로 조롱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말들에 대한 불편함 서운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전해야 할 복음만은 끝까지 전해야 한다고 자리를 떴습니다. 목사님의 책과 큐티 간증을 집집마다 전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우연과 나만 열심히 높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는 말씀의 성취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높이고 찬양합니다.
(적용#2)
-지금 나에게 일어난 사건 가운데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의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세에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절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하나님이 말씀에 ‘그분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신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말세가 언제입니까? 종말의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그 기간이죠. 그럼 나에게 그 말세는 언제일까요 담임 목사님께서는 이 본문을 설교하실 때 나의 한계를 인식할 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린 저마다 자신이 경험하는 절대치의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을 겪을 때 나의 한계를 보게 되죠. 그런데 자기의 이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말세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이 말세 때에 자아가 죽어지고 예수로 살게 됩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우리의 육체에 부어 주십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죠.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 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하십니다. 세상 경험이 없고 철이 없는 자녀들이 말씀으로 자기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공동체 아이들은 영아 때부터 엄마랑 함께 큐티하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양육을 받습니다 사실 이 저희 집의 아이들도 그 수혜자의 반열에 들어갑니다. 제 아들 딸이 둘이 같이 과거에 어린이 집을 다닐 때 였거든요 5살 된 동생이 7살 된 누나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린이 집에 이렇게 친한 여자 친구가 있다고. 그랬더니 누나가 이렇게 대꾸를 했습니다. ‘야, 걔 교회 다녀?’ 그랬더니 동생이 안 다닌다고 하니까 누나가 이러더라고요 ‘야, 예수님 안 믿으면 불신 교제야 그거’ ‘불신 교제, 안 돼 헤어져’ 또 동생은 그 말을 듣고 끄덕거리더라고요 저는 제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에게 뭐 ‘신 교재 불신교제’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교회에서 그 말을 듣고 배운 겁니다 사실 저도 과거엔 ‘신 교제, 불신교제’라는 말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 공동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또 큐티를 하다 보니까 이런 예언을 하는 것이죠
한 번은 이 희귀질환으로 투병하던 이 한 아이가 천국을 가게 되어서 장례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 때 이 아이의 언니인 중학생 초등학생 자매들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자기 동생을 보면서 내가 죄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나님께서 이 동생을 우리 가정에 선물로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런 나눔을 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면서 함께 예배를 드리던 성도님들 모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자녀들이 예언하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말씀을 듣다 보니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예언을 하는 것이죠.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고 하십니다 다른 말로 비전을 보게 되는 것이죠 청년 시절의 특징이 뭡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우상으로 삼고 자기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죠. 그런데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 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 비전을 보게 됩니다.
2주 전쯤 제가 교회에서 결혼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신랑 신부였던 이 두 청년이 모두 초신자였습니다. 파혼과 이 낙태 사건을 겪으면서 자매가 먼저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상대방 형제는 이 우리들 교회 이 홈페이지 상담 게시판에 너무 힘들고 괴롭다면서 글을 남겼습니다. 그로 인해서 제가 또 그것에 대해서 답을 해주고 저랑 연락을 주고받다가 공동체에 오게 됐습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어서 허무함의 수를 의지하고 죽으려고 했던 형제 세상 문화와 쾌락에 빠져 살던 자매가 목장에 정착하게 되었고 기초 양육과 일대 일도 받게 됐습니다. 이 코로나 때예요. 초신자인데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큐티 기도회에 들어와서 자기 연약함과 기도 제목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지난 날의 죄악을 회개하고. 다시금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한 주를 앞두고 이 서로의 신뢰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또 파혼의 위기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제 부부 목장과 여자 목장이 공동체 식구들의 기도와 권면을 통해서 다시 마음을 돌이키고 화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2주 전에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이 신랑 신부가 초신자였거든요. 근데 그날 하객의 대부분들이 불신자였습니다 근데 이 두 사람 덕분에 이 불신자분들이 교회에 오셔서 결혼 예배에 참석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이 두 분 모두 함께 세례까지 받게 됐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렇게 젊은 이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욕망과 세상적인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으로 바뀌어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라고 말씀합니다 과거만을 자꾸 회상하고 서운하고 아쉬운 것이 더해지는 그때 ‘꿈을 꾼다’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이삭을 낳았죠 모세는 80세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광야를 다녔습니다 갈랩은 85세에 아낙 자손과 싸우겠다면서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우리들 공동체에도 실버와 골드 목장엔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고 이 사명을 감당하시는 집사님들이 참 많으시죠 나의 인간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그 꿈에 사로잡혀서 공동체와 이 공동체 안에서 믿음의 본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그분의 영을 모든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십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계층과 세대를 뛰어넘어서 모든 종들이 예언하게 하십니다 날마다 한 말씀으로 모든 세대에게 역사하심으로 자기 삶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시죠. 그래서 성령은 말씀의 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게 뭡니까.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고. 말씀을 좆아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과 내 마음의 장벽을 깨뜨립니다 나의 부족함과 나의 열등감과 결핍마저도 넘어서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면 이 땅에 자녀 문제와 젊은이 문제와 노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 문제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면 해석이 되고 해결로 나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공동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 가득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적용#3)
-나는 어떤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고 있습니까? 나의 인간적인 예언과 환상과 꿈 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예언과 환상과 꿈 입니까? 내 안에 깨어져야 할 편견과 고정관념, 마음의 장벽은 무엇입니까?
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흑암 속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19절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절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 서는 기사를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어 주십니다.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는 이 말은 심판으로 인해서 흑암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우상으로 삼고 그렇게 의지하던 해달 별이 떨어지는 이 사건이 찾아오면 칠흑같이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되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그 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이런 심판의 때는 택자에게는 구원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가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처럼 내 삶에도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고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조차 없을 그 나의 절대치의 권한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택자에겐 어떤 환난과 고통의 사건도 구원의 사건이 되는 것이죠 도무지 내 눈앞에.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나에게. 해달별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곧 주의 크고 영예로운 날이 이르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의탁을 뜻합니다. 나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렇게 내가 예배와 목장에 붙어가면서 이 말씀 듣는 이 구조 속에 거할 때. 그 말씀이 나를 붙잡아 주실 겁니다. 흑암 중에 있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죠 내가 그 사람하고 있는 바로 이 성 중에도 성령의 백성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허락한 이 구원이 나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 에게도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들도 구원에 이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바로 이게 복음의 능력이죠.
제가 첫 번째 대지에서 외할머니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날 임종 전에 계신 외할머니를 제가 만나고 결국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제가 이 버스에서 내리려던 순간에, 그때 제 옆에 있던 동생이 119 대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소천하셔서. 영안실에 계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와 어머니 동생이 외할머니가 계신 이 병원에 다 같이 있을 때. 그때 아버지께서 집 아파트에서 투신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동생과 제가 아버지랑 같이 점심 식사도 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장례식 첫날 빈소에서 나와서 밤 하늘을 바라보는데 깜깜한 하늘처럼 정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수년간 질병으로 인해서 건강을 회복하고자 안간힘을 쓰셨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던 우리 가정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수년간 질병으로 인해서 건강을 회복하고자 안간힘을 쓰셨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던 우리 가정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왜? 라는 이 한 단어의 질문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안고 몇 년을 지냈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그 어떤 지식으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은 이 말씀으로 내 삶의 이 현실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외할머니와의 이 땅에서의 이 마지막 만남이 이런 식으로 하루 만에 끝났다는 게 너무 허무했습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러서 저는 우리들 공동체로 오게 됐습니다. 공동체에서 처음으로 이 아버지의 사건을 오픈하고 나누었는데 그냥 이 사건 자체만을 이야기할 뿐 해석이 안되니까. 더 이상 나눔이 이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요 예배 때 담임 목사님께서 열왕기로 유다 왕들의 계보를 말씀해 주셨던 날이었습니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 할 것 없이 예수 믿게 해 주신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이 말씀이 나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순간 제 머리 속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아버지가 나를 예수님 믿게 해주었지. 아버지 때문에 내가 예수님 이름을 부르게 됐지. 맞아. 아버지가 나의 구원의 공로자였어. 내가 아버지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되었어 우리 가정이 아버지로 인해서 주님을 찾게 됐고. 구원을 받게 된 거구나.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가 나왔습니다. 수 년간 꼬여 있던 제 마음의 실타래를 하나님은 그날 그렇게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외롭고 항변하던 저에게 주님은 그렇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아버지 그 사건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기사를 베풀어 주셨고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심으로 구원을 주시는 사건이란 걸 알게 해 주신 거죠. 말씀이 없었다면. 정말 말씀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피와 불과 연기 속에서 원망하고 불평만 하면서 아마 주저앉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죄를 말씀으로 붙잡아 주시고. 그분의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언제나 내 이름 석자를 부르면서 그 이름이 불리어지기만을 바랐던 저의 교만과 저의 죄악 된 실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내 이름이 사람들에게 돋보이고 내 이름의 영광을 얻기 만을 바랬습니다.
정정환이라는 이 이름의 우상을 새기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좋은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서 좋은 사람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가면을 쓰고 위선과 외식을 하면서 지내왔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게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으로 충만하다 보니 가장 가까이 있던 할머니에게 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내 욕심과 자기 의로 충만하다 보니 아버지의 아픔도 공감하지 못한 채 집에서는 늘 나의 안위만을 추구했습니다 내 열심과 자기 의로 충만하다 보니 세상 성공을 부르짖고 스펙을 부르짖고. 힘과 권세와 명예만을 부르짖고. 그저 인생의 목적이 잘 먹고 잘 사는 행복에만 꽂혀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님은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사건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기사와 징조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은 말씀이 있는 공동체를 만나게 하신 겁니다. 매주마다 목사님께서 전해 주시는 이 구속사의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내 삶이 해석되게 하신 겁니다. 내 현재의 이유를 아는 것이 진정한 권능이라고 하셨죠 주님은 그 권능을 깨닫고 그 권능을 누리는 인생으로 견인해 가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예배 시간 때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들으면서 웃고 또 울면서 회개하게 됐습니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 이 죄성 때문에 절망하는 날도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죄를 사하시고 내 상처를 치유하시며 싸매어 주시는 성령님의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회개의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크고 영화로운 주님의 날을 내 삶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제가 깨닫게 되다 보니 아버지의 그 자살 사건은 더 이상 재앙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나와 우리 가족이 구원받게 되는 사건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하는 식구의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과 이해하기 힘든 죽음 앞에서 장례를 치르는 유가족들과 함께 저의 이 약재료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서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이 자리에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 가운데 고난과 환난 중에 거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내가 피와 불과 연기 속에 있을지라도. 바로 이 날이 나에게 구원에 임하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될 거라고 약속하십니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사건이 찾아왔을지라도. 오직 내가 할 일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 어떤 것도 그 무엇도 나를 죄와 사망과 중독과 고통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부를 때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시는 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며 생명의 이름이고 소망의 이름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알려진 명품인 굳지 프라다 루이비똥, 샤넬 같은 메이커는 그 이름 하나만을 가지고 장사를 하죠 그런 이름에 세상 사람들은 열광을 합니다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그걸 구입하고자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이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지금 내 안에 계십니다. 우리 가정 안에 계십니다 그럼에도 혹시 요즘 나는 어떤 이름에 열광하고 있습니까. 어떤 이름을 사모하고 부르고 계십니까? 우리가 평생에 사모하고 불러야 할 그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이 본문을 설교하실 때 암이 발견되었다는 나눔을 하셨습니다 ‘암이라는 질병으로 인생의 한계와 말세를 겪게 하시지만 오히려 아픈 성도님들을 치유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광된 하나님의 신비를 알게 하시고자 이 일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성도님들이 함께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시간 또한 우리 각자가 내가 지금 어떤 상황과 형편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회개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킴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나와 우리 가정 가운데 일어나길 바랍니다. 나뿐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식구와 지체들에게도 그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다 같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함께 경험하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바라기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임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적용#4)
-나에게 찾아온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 사건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이름을 사모하고 열광합니까?
-나는 지금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Epilogue>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공동체와 소리를 높여 부른다.
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씀으로 삶을 해석한다.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세에 성령을 부어 주신다.
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흑암 속에서 구원을 받는다.
5)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내면이 바뀌고 언어가 달라진다
6)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반대의 영으로 인내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7) 정죄와 판단을 넘어서 마음으로 살인하고 있진 않는지 돌아 보아야 한다
8) 성령 충만은 일상의 생활에서 거슬리는 한 마디도 받아 주고 혈기를 내려 놓는 것이다
9) 내의 죄와 연약함을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10) 혈기의 아이콘 베드로는 주님을 수시로 부르면서 변했다
11) 지금 내게 일어난 사건은 말씀의 성취다
12) 잘될 때 회개의 사건으로 보고 겸비해야 한다
13) 힘든 고난의 사건은 예수의 사건으로 보고 감사해야 한다
14) 신비적은 현상을 환시, 환상, 환청이라고 의학적으로 폄하하는 사람은 아덴 사람이다
15) 성령이 임한 사람은 그 어떤 일도 말씀의 성취라고 여기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16) 삶의 한계를 인정 할 때가 말세의 때이다
17) 택자에게는 심판의 때가 구원의 때다
18) 환난과 고난의 때에 믿음과 의탁과 신뢰로써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의 날이 임한다
19) 피와 불과 연기 속에 있어도 생명과 소망의 이름은 주님이다
20) 성령 충만 하면 나의 내면과 언어가 바뀌고 미움과 분노의 말이라 아니라 사랑의 말로 하게 되고 내가 넘어가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에 대해 말하게 되고 조롱을 당하더라도 혈기로 맞서기보다 객관적으로 말해준다.
21) 성령 충만은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 받아내는 것이 순교이고 죽어질 때 화평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22) 성령의 강림은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었으며 지금 내 앞에 일어난 일은 말씀이 일어난 사건인데 믿음이 없으면 인간적인 일로만 여긴다
23)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이 찾아오신 사건을 세속사의 사건으로 치부하고 말씀이 임한 사건을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그건 재수가 좋아서 그런 거야 그건 운이 좋아서 그런 거야’라고 비웃는다.
24) 그 일은 말씀이 임한 사건이고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다.
25) 말씀의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면 교만 하거나 우쭐해 할 수가 없다.
26) 회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겸비해야 하며 내가 원한 것과 거꾸로 나왔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27) 그래서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인 것이다
28)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고 간증하다 보니까 사명의 지경이 넓어지게 된 것이다.
29) 믿음이 없는 사람은 우연과 나만 열심히 높인다.
30)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는 말씀의 성취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높이고 찬양한다.
31) 말세는 종말의 때인데 예수님께서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그 기간인 것이다
32) 나에게 그 말세는 나의 한계를 인식할 때다
33) 우린 저마다 자신이 경험하는 절대치의 고난이 있으며 이 고난을 겪을 때 나의 한계를 보게 되는데 자기의 이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말세를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34) 우리는 내 인생의 이 말세의 때에 자아가 죽어지고 예수로 살게 되는 것이며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우리의 육체에 부어 주신다.
35) 그러면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데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 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하신다.
36) 세상 경험이 없고 철이 없는 자녀들이 말씀으로 자기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37)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말씀을 듣다 보니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예언을 하는 것이다
38)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고 하시는데 다른 말로 비전을 보게 되는 것이다
39) 청년 시절의 특징은 눈에 보이는 것을 우상으로 삼고 자기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 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 비전을 보게 된다.
40)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 이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욕망과 세상적인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으로 바뀌어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다
41)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라고 말씀하는데 과거만을 자꾸 회상하고 서운하고 아쉬운 것이 더해지는 그때 ‘꿈을 꾼다’라고 말씀하신다.
42) 아브라함은 100세 이삭을 낳았고 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광야를 다녔으며 갈렙은 85세에 아낙 자손과 싸우겠다면서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말했다
43) 이 우리들 공동체에도 실버와 골드 목장엔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고 이 사명을 감당하시는 집사님들이 참 많은데 나의 인간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그 꿈에 사로잡혀서 공동체와 이 공동체 안에서 믿음의 본이 되어 주신다.
44) 날마다 한 말씀으로 모든 세대에게 역사하심으로 자기 삶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시는데 그래서 성령은 말씀의 영이다
45)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고 말씀을 좆아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 가는 것이다.
46) 그 말씀은 우리의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과 내 마음의 장벽을 깨뜨린다
47) 나의 부족함과 나의 열등감과 결핍마저도 넘어서신다.
48)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면 이 땅에 자녀 문제와 젊은이 문제와 노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49) 우리 가정 문제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면 해석이 되고 해결로 나아가게 될 줄로 믿는다
50) 우리의 공동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 가득하게 될 줄로 믿는다.
51)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는 기사를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어 주신다.
52)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는 이 말은 심판으로 인해서 흑암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뜻이다
53) 내가 우상으로 삼고 그렇게 의지하던 해달 별이 떨어지는 이 사건이 찾아오면 칠흑같이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되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그 밤이 찾아오지만 이런 심판의 때는 택자에게는 구원의 시간이기도 하다.
54) 바로 그때가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이라고 말씀하신다.
55)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십자가를 지셨는데 이처럼 내 삶에도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때가 있는데 바로 그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56)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고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조차 없을 그 나의 절대치의 권한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님을 만나게 된다
57) 그래서 택자에겐 어떤 환난과 고통의 사건도 구원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58) 도무지 내 눈앞에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게 하시기 때문이다
59) 지금 나에게 ‘해달별’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60) 이제 곧 주의 크고 영예로운 날이 이르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61) 여러분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의탁을 뜻하며 나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62) 내가 예배와 목장에 붙어가면서 이 말씀 듣는 이 구조 속에 거할 때 그 말씀이 나를 붙잡아 주실 것이며 흑암 중에 있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63) 좋은 부모 나쁜 부모 할 것 없이 예수 믿게 해 주신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이 말씀이 나팔 소리처럼 들렸다
64) 내 열심과 자기 의로 충만하다 보니 세상 성공을 부르짖고 스펙을 부르짖고 힘과 권세와 명예만을 부르짖고 그저 인생의 목적이 잘 먹고 잘 사는 행복에만 꽂혀 있었는데 그런 저에게 주님은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사건으로 찾아오셨다.
65) 그 어둠 속에서 기사와 징조를 베풀어 주셨고 바로 그것은 말씀이 있는 공동체를 만나게 하신 것이다.
66) 매주마다 목사님께서 전해 주시는 이 구속사의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내 삶이 해석되게 하신 것이다.
67) 내 현재의 이유를 아는 것이 진정한 권능이라고 하셨는데 주님은 그 권능을 깨닫고 그 권능을 누리는 인생으로 견인해 가셨다.
68) 오늘 내가 피와 불과 연기 속에 있을지라도 바로 이 날이 나에게 구원에 임하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될 거라고 약속하신다
69)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사건이 찾아왔을 지라도 오직 내가 할 일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신다
70) 그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게 되는데 그 어떤 것도 그 무엇도 나를 죄와 사망과 중독과 고통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71)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부를 때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72)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시는 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 임을 믿는다
73)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며 생명의 이름이고 소망의 이름인 것이다.
74) 우리가 평생에 사모하고 불러야 할 그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다.
75) 우리 각자가 내가 지금 어떤 상황과 형편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회개로 나가기를 바란다
76) 하나님께로 돌이킴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나와 우리 가정 가운데 일어나길 바란다.
77) 나뿐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식구와 지체들에게도 그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다 같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함께 경험하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길 간절히 소원한다.
78) 바라기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임하길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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