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9. 5. 28. 15:37

[우리들교회 2019 526일 주일말씀 요약 및 말씀 어록33 (열왕기상 18 16절로 29절 갈멜산의 대결/ Showdown on Mount Carmel)]

 

 

가.말씀요약

<Prologue>

소명 받고 가는 이 땅에서 아무도 네 말을 안 들을 것이라고 지난 주 이사야 6장에서 말씀해주셨다

아합 시대도 마찬가지라서 엘리야가 가장 힘든 전쟁을 선포한다.

바로 오늘 갈멜산 대결이다.

결국 이 땅에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갈멜산 대결은 바알(Baal)선지자와 엘리야의 정면 대결이다.

이 사역을 위해 지금까지 엘리야를 훈련시키셨다.

오늘은 엘리야와 바알의 갈멜산 대결을 알아보겠다.

 

1)   대결을 하려면괴롭게 하는 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16-18)

항상 기독교 신앙은 이 세상 원수 마귀와의 전투를 비유하는 것인데,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나?

바알숭배가 국교화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여호와 신앙이 거의 사라질 위기 되었기에 전쟁도 치열해야 하는 시대였다. 엘리야는 이런 시대에 전국에 지명 수배되어 있는 상태라 목숨 걸고 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이미 목숨 걸고 아합에 간 것처럼 3 6개월 동안 가뭄을 같이 겪고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낸 사역을 한 것처럼 우리도 가뭄을 겪으면서 현장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사명을 감당할 때, 더욱 큰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갈멜산(Carmel) 대결이며 큰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16~17

오바댜(Obadiah)어찌하여 엘리야가 있는 곳을 말하여서 내가 죽임을 당하게 하시렵니까?’ 했다.

엘리야(Elijah) '이에 내가 아합(Ahab)에게 보이겠다, 걱정 말라'는 한 마디를 듣고 아합에게 말하러 간 것은 오바댜의 놀라운 변화였다.

그런데 오바댜의 신앙이라기보다는 그 동안의 헌신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순종하게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오바댜가 걱정하는 것처럼 엘리야가 아합에게 나타났을 때, 아합은 대뜸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라며 엘리야를 지칭한다.

아합은 3년 반 동안의 기근을 엘리야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아합의 수준에서는 엘리야 때문에 당한 고난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고난이 축복이다.’ 라는 것은 성경 말씀인데, 마치 김양재 표 말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고난이 생기면 제 이름을 떠올리는데 축복이 오건, 고난이 오건 떠올리는데 그 마음은 각자 다른 것 같다.

어쨌든 미워해도 제 이름을 떠올리는 건 소망이 있는 것 같다.

아합과 기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함이 없다면, 축복이 와도 하나님의 긍휼을 맛볼 수가 없다.

고난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도 해석할 수가 없다.

아합에게 깨닫고 회개하라고 주신 3년 반의 가뭄은 그 동안 마음을 완고하게 한 그에게는 고통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회개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예화 1)

오늘 갈멜의 대결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 이게 핵전쟁이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갈멜산의 대결(showdown on the Mount of Carmel)이다. 그래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남편은 아들 고통이 10년이나 계속되는데도 회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아들 문제만 아니면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예목도 받고 부 목자까지도 했는데도 마음이 힘든 상태라 교회와 목장에 대하여 냉담한 상태라고 나눔을 하셨다. 이분에게 아들고통 외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없어지기만 바라는 고통 그 외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18

엘리야(Elijah)를 지칭하며 괴롭게 하는 자(Is that you, you troubler of Israel?)라고 하니 엘리야는 이에 반박해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는 내가 아니라 아합(Ahab)과 아합 아버지의 집이며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여기고 바알(Baal)을 쫓았기 때문이라고 정확히 밝힌다.

아합에게 있어서 기근의 문제는 지도자로서 대를 이어 세상과 돈과 번영을 쫓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라고 정확하게 해석해주었다.

내 문제는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합 삶의 결론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네 삶의 결론이라고 이야기 해주면 기분이 참 나쁘다.

이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다.

불신결혼을 막고자 해도 자녀 둔 엄마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냐'고 하고 이혼을 막고자 해도다 형편이 있는 거라고, 왜 다들 나를 괴롭게 하냐고 한다.

불신결혼이나 이혼 후에 힘들어지면, ‘당신이 결혼을 축복하지 않아서 이렇게 됐다며 원수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미운 마음이 들면 답이 없는 것이다.

아합이 엘리야를 이렇게 미워하는 것을 보면서 올바른 복음을 전하면 원수가 되는 일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인간적으로는 못한다. 무릅쓰고 해야 하는 것이다

함석헌의 책 <너 자신을 혁명하라> 中에서나는, 하나님! 제발 미운 마음으로 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기도한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사랑보다 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미워해도 가책을 느끼지 않고 미워해도 정당화되는 감정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마음의 적인 것이다.

아합처럼 나를 왜 괴롭히냐고 우상숭배해서 기근이 올 것이다. ? 그 말을 전해준 엘리야보고 왜 나를 괴롭히냐고 적반하장 격으로 힐난한다.

얼마나 아합이 주관적인 생각으로 엘리야를 미워하는지 모른다.

잘난 남편도 아들이 속을 썩히니깐, ‘아들도 밉고, 아내도 밉고, 김양재 목사님도 밉다고 나눔을 했다고 한다. “아들이 속을 썩히는데 왜 제가 미워요?” 우리가 그러는 것이다.

말씀이 안 들어가면 다 미운 것이다.

[적용]

-여러분은 장차 받을 환란인 복음을 전함으로 기근이 왔을 때 전한 자를 괴롭히는 자인가? 엘리야처럼 전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인가?

내 속에 속은 욕심을 인정하기 싫어서 탓하고 있는 그 사람이 나를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기근이 올 때 아합처럼 남 탓 하나?

-괴롭힘을 주는 사람인가? 당하는 사람인가?

2)   850 1의 대결입니다. (19)


바알(Baal)도 여성을 무시하는지 아세라(Asherah)는 한 번만 언급되고 언급이 안 된다.

바알 속에 아세라가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바알이 남성이라면 아세라는 여성인데 동성애도 남자가 월등 많더니 요즘 여자도 만만치 않다.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는 대결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가정에서 분연히 이야기 할 때가 있다.

무조건 순종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화 2)

제가 장로 집에 시집갔는데교회 못 나가게 하면 나도 이혼이다.’ 남편에게 거듭나서 선포를 했더니 이 남편이 처음으로 세게 나가니까 성경책에다가교회를 나가겠음. 10월 며칠. (싸인)’을 했다. 5년 동안 맹종만 하다가 거듭나고 보니깐 구원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목적을 분명히 해야겠다고 단호하게 나가니 도리어 주춤해서 교회를 나가게 해주었다. 물론 영육간의 전쟁은 계속 되었지만 가끔 순종자체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될 때가 있기 때문에 목적을 분명히 할 때가 있다. 유교에서는 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참다가 화병이 나고 바람나고 그런 것이다.

인간에게는 선한 것이 하나 없다.

중요할 때마다 내 전쟁의 목표가 하나님인 것을 선포하고 치고 빠지고 해야 한다.

선포하고 딱 죽어지고를 해야 한다.

엘리야(Elijah)는 아합을 만나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 상(Jezebel’s table)에서 빌붙어먹는 바알의 선지자 450,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에 모으기(Summon the people from all over Israel to meet me on Mount Carmel. And bring the four hundred and fifty prophets of Baal and the four hundred prophets of Asherah)를 요청했다.

그런데 백성들만 힘들지 아합과 이세벨의 후원을 받는 선지자 850명은 고난을 모르고 물질적 풍요함을 누렸을 것이다.

온 백성이 고난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코에 걸어놓고 역시 돈이 좋아, 명예가 좋아하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시 뒤에 이들이 망한다. 그러니까 망하기 전에 여호와만 참 하나님이시고 우상은 가짜라고 이것을 엘리야에게 증거하기를 원하셨다.

우리의 인생의 소명이 여호와만 진짜고 세상은 가짜라고 그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망하지도 않은 세상에서 망한다고 하니 욕 먹을 일이다.

부부 간에도 망하지 않았는데 망한 것이라며 이 땅은 영원히 망할 것이니 잠시 뒤의 일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가 괜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말을 안 듣기 때문인데 갈멜산의 그 싸움은 850 1의 매우 외로운 싸움이다.

세상에 우상이 850가지나 되는 것이다.

우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인생이 죄인이고 모두 아비 마귀에서 난자라는 말이 맞다.

믿음의 분량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데 있다.

이 세상은 거짓의 세상이니 살려면 다 거짓으로 상황을 피해간다.

거짓을 얼마나 거짓 같지 않게 하는가가 성공의 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짓을 거짓 같지 않게를 염두에 두고 우리 모든 지식은 다 이것을 향해 나가는 것 같다.

믿고 나서도 믿음을 위해서 선의의 거짓이라며 여전히 거짓을 행한다.

분별이 참 안 되는 것이다.

선의의 거짓보다는 하나님 앞에 섰는가가 중요한데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만큼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성령이라서 택자들의 거짓말은 연약함으로 느껴지는 게 있다.

우리는 택자라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늘 잘 못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건강한 교회라면 말씀이 공동체에 점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진리가 자리 잡는 만큼만 거짓이 없어진다.

그러면 날마다 안 변하는 것 같아도 날마다 거짓의 사람과 공동체를 보면 딱 알게 되어 있다. 알게 되니깐 우리가 괴로운 것이다.

불신결혼이 왜 힘든가 하면 처음에는 믿음의 분량만큼 힘들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다.

결혼하고 지나고 보면 시작점이 다르니깐 점점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공존하지 못하니깐 힘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 벨리알(히브리어: בְּלִיַּ֫עַל, 라틴어: Belial)유대교 외경에 나오는 단어로 부도덕이나 가치 없음과 같은 악에 성격을 부여하여 사용하는 말이다.

단어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히브리어로 ‘가치 없는 자’, ‘건달’, ‘야비한 자’, ‘사악한 자’라는 뜻이 있다. 벨리알 이라는 이 말은 보통명사였지만 이윽고 악마 그 자체로 여겨지게 되었다. 사도 바울로사탄과 같은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희년서에는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을 “벨리알의 아들”이라고 기술하였다.

고에티아에서는 벨리알이 매우 정중한 악마라고 말하고 있다. 벨리알은 또한 거짓말과 범죄의 악마이다. 지옥의 제후 가운데 하나로서 그는 악마 군단 80개를 통솔하고 있으며 그의 통치는 지옥의 북쪽 지역까지 뻗쳐 있다. 그는 지구의 원소를 통제하며 지상에 거주하는 악마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지옥의 다른 제후들로는 올리아스, 아스모데오, 바싸고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이단들이 하는 일은 온통 거짓말이다.

신자를 빼가야 하니깐 끊임없이 속이고 속여서 빼간다.

한 교회 10년쯤 잠복하여 거짓을 행하고 있는데 다들 그 거짓말에 넘어가는 것이다.

사단이 666이라 비슷해 보이는 거짓말을 연구하는 것이 그들이다.

교회는 진리의 성령이신 말씀을 봐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교회는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를 따라갈 정도가 아니라 넘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는 기본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도덕과 윤리도 잘 안 되고 있다.

우리는 말씀 봐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내야 되고 그래야 이단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간다. 할렐루야.

 

[적용]

-여러분의 우상은 몇 명인가?

-850명의 우상이 달려드는데 이 대결을 선포할 마음이 있나?

 

3)   갈멜산 대결에는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20~24)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언제까지 (하나님과 바알)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갈팡질팡)하려느냐? (How long will you waver between two opinions?)

원어는 두 바이트, 두 나뭇가지 사이에서 절뚝거리고 있느냐고 한다.

절뚝거리다는 뒤에 26절에도 나오는데 바알 선지자들이 단 위에서 춤추며 뛰놀다’ (they danced around the altar they had made)로 번역되어 있다.

머뭇거리다뛰놀다와 같은 의미로 썼고 원어는절뚝거리다이다.

두 나뭇가지 사이에서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가만히 머뭇거리는 것 같아 보아도 우리는 머뭇거리던지, 뛰놀던지 모두 쩔뚝거린다는 뜻으로 다 위태하다는 것이다.

,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 선지자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으며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이 전국적인 기근의 고난을 당하면서도 지금 구원자가 바로 앞에 서있는데 구원자 엘리야를 따라야 할 때지 대결할 때인가?

말씀을 보면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사업이 망하고 아이가 병들어 난리가 났는데 참된 주의 선지자와 대결할 때인가? 라는 말이다.

이 기근의 때에 아합은 850명의 바알 선지자를 먹이고 있다.

백성들은 다 죽어가고 있는데 할 일을 모르는 것이다.

아무리 임금이라고 할지라도 진리의 성령님이 임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야 될지 모르는 것이다.

반대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신음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이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거짓된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라 하는데 최고 층인 아합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 것이다.

어디나 리더가 중요한데, 백성들은 둘 사이에서 바알 편 850명이 모이고 엘리야는 한 명밖에 없으니 머뭇머뭇 거릴 수밖에 더 있겠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진짜 같고 한 사람만 모이면 가짜 같은 것이다.

큰 교회는 가짜일 수도 있고 진짜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많이 모이면 진짜 같은 것이다.

우리들 교회도 많이 모이니까 오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머뭇머뭇거리면서 판단이 안되어 머뭇머뭇하며 등록하지 않으신 분들이 많다.

분별이 끝나지 않아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고 계시는데 계속해서 분별하시길 바란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따르라 하니깐 백성들이 한마디 대답하지 않았다(But the people said nothing).

 

(예화 3)

선생님 한 분이 신우회에서 큐티를 전하려고 하시는데 너무 거룩해 보이는 목사님 사모님이 방해를 한다고 한다. 전하는 선생님은 다른 분들에게 큐티 책도 사다 드리고 나눔도 뽑아다 드리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멸시하면서나도 큐티 다 해봤다. 그런데 그게 쓸 데가 없어서 큐티한 것 다 버렸다. 큐티 한다고 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개 선생님은 큐티 한다고 하면서 무엇을 그렇게 울고 다니냐?’ 이러면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으니 우리는 기쁜 것 밖에 없지 않냐? 우리가 잘 못 믿으니깐 자꾸 우는 거다.’ 라고 했단다. 그러니 다른 선생님들이 그 사이에서 헷갈리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큐티를 전한다고 하면서 울고 가정에 문제 많고, 다른 편에는 목사님 사모라면서 말도 그럴 듯하게 하고 하니까 어느 쪽인지 정말 머뭇머뭇하는 것이다. 분별이 되겠나?

예수 믿으면서 우리는 왜 눈물을 흘려야 하나?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4절에 보면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이며, 요한계시록 7 17절 말씀에도네 눈에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For the Lamb at the center of the throne will be their shepherd; he will lead them to springs of living water. And God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고 했다.

흘릴 눈물이 있어야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씻겨주시지 않을까?

우리는 성경을 토씨 하나 안 빠지고 봤기 때문에 해석이 되는데 사모님처럼 훼방하는 분이 있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흥분할 것도 아니고목사님 사모인데 어떻게 저러나하는 생각부터가 미성숙한 생각이다.

먼저 내가 말씀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면 그런 갈등이 있어도 지혜롭게 대처하고 해결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아직 안되니 그 선생님도 사모님을 통해 훈련 받아야 할 것 있는 것이다.

이 십자가 지신 예수님처럼 복음이 쉽게 전해지면 얼마나 좋겠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나 아무도 영접하지 아니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850 1의 대결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힘들 때 진리의 성령님이 오셔서 효과적으로 도와주시는 것(Effective Power of God)이 바로 진리의 성령님이니까 말씀 큐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훼방을 놔도 큐티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시작은 아주 미세했지만 다른 곳에 가게 된다.

미사일이 다른 곳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22
엘리야도 힘이 든다.

엘리야가 '홀로 남았으나'라고 말하는 것은 19 18절을 보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이 아직 남아있으니, 한 명도 없다는 뜻은 아니고 현재 싸우는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Yet I reserve seven thousand in Israel--all whose knees have not bowed down to Baal and all whose mouths have not kissed him.")

더 나아가서 갈멜 산에 모인 북 이스라엘 백성마저도 엘리야의 편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과 바알 중에 택하라고 하니까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엘리야 편이 없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얼마나 배반감을 느꼈겠나?

백성들은 무엇이 진리인줄 알면서도 자기 삶이 걸린 고백이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하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다고 하면서도 자식이나 남편, 유익이 걸린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대답을 하나도 못 하는 것처럼 이렇게 말씀을 외면할 수 있다.

23
~24

이 얘기를 해석하면,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 두 송아지 가운데 좋은 것을 네가 선택하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차후에 공평치 않은 제물이었다는 결과가 나와 뒤집을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좋은 송아지를 고르라고 한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 불로 응답하신 그가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백성들이 다옳도다.’ (What you say is good)고 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옳다고는 했지만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떼거리로 몰려 서 있는 선지자들로 인해) 바알로 마음이 다 기울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엘리야하고 겨루자는 것이었다.

반대쪽에서 그 얘기를 듣는 것이 옳도다가 아니고 지금 바알 편에 이미 선 것이다.

말은 그 말이 옳도다라고 했다.

잘 생각해 보면, 두 송아지가 좋고 나쁘고는 백성들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예를 들어서 말씀 전하는 두 사람을 놓고, 김양재 목사가 옳으냐, 아무개 목사가 옳으냐고 물으면 우리들 교회 성도라면 쉽게 (‘김양재 목사님’) 외칠 것이다.

당연히 은혜 받는 것은 김양재 목사가 옳아라고 하지만 그런데 개인을 붙잡고 김양재냐 자식이냐’, ‘말씀이냐 자식이냐를 물으면...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불신결혼, 이혼 등 개인의 문제로 도전하면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라고 했더니 한마디도 안하고 있다가 불로 응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했더니 다 옳도다고 응답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얘기인 것이다

여러분에게도 묻겠다. ‘말씀인가, 자식인가?

(목사님 고백/ 예화 4)

저에게도 이것을 적용해보면, 저도 머뭇거리기를 잘한다. 신중한 것도 있지만, 제 욕심인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살아남아야 되니까. 늘 공부를 잘해야 했다. 그것이 목회까지 이어져 맨날 설교도 잘해야 되고, 이런 부분들이 저에게는 물론 가지 쳐야 될 것이 있는 것 같다. 심히 머뭇거리기를 잘한다. 물건 살 때, 무언가를 정할 때도 머뭇거리기를 잘한다. 제가 목회를 하는 것은 기적이다. 하나님께서 저의 한 부분을 쓰시는 것이다.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

 

[적용]

-자녀의 입시를 놔두고 어느 학원 어느 선생님께 공부를 시키면 붙는다는 말과 먼저 말씀으로 양육시키며 큐티시키고 기도하라는 말 사이에서 여러분은 머뭇거리나?

아닌가? 당연히 말씀보고 큐티 하는 게 먼저다!

-여러분은 머뭇거리고 있지 않나?

-아니면 주일날 어느 입시학원 가면 딱 들어 간다고하면 머뭇거리지 않나?

-‘말씀이냐, 자식이냐?’에서 여러분은 머뭇거리나?  말씀인가? 자식인가?

-나와 아이들의 목장 참석과 양육의 부르심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4)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바알과의 대결이다. (25~29)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 지쳐 부를 그 이름, 바알! 바알 바알 떨더라)

이기는 싸움이다.

엘리야의 이 제안은 그들이 보기에는 절대적으로 좋은 송아지를 골라서 이길 것 같지만 바알 선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이었다.

바알은 참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데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리야가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안을 했고 너희가 먼저 택하라고 자신 있게 제안을 하니까 수적으로도 월등하여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리고뛰놀다머뭇거리다와 같은 절뚝거리다라는 단어라고 하였는데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바알이 응답이 없자 이 선지자들이 뛰놀았다.

광란의 춤(frantic dancing)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선지자들이 지도자니까 따라가는 것이다.

백성들도 바알선지자가 하는 대로 광란의 춤을 춰가면서 같이 절뚝거리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화 5)

북한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위대한 동지자 이름을 부르면서 신혼여행도 김성일 업적이 서린 금수산으로 망경대로 간다. 우상을 인격적으로 사랑해서 간구하는 것이 아니고 불을 달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눈물로 애원해도 세상을 향해 간구하는 것은 응답 받을 수 없다. 위대하신 수령이 영원히 함께 있다 해도 그렇게 위대하신 동지자 이름을 부르는데 정말 열렬히 박수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못 먹고 못 살 수 있을까? 평양에 가장 중심이라고 보여지는 고려호텔에서 본 야경은 암흑 그 자체였다. 식사할 때도 넉넉히 시키고 남기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식사도 남길 정도로 주문을 했다. 그렇게 바알을 부르면 잘 살게 해줘야 하는데...

 

[적용]

-아침부터 낮까지 어떤 이름을 부르고 있나?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이 여러분의 주제가다.

-기복적인 언어를 주문처럼 입에 담으며 돈, , 돈 하면 돈이 응답한다고 하면서 돈을 부르짖고. 합격, 합격, 합격하면 합격이 온다면서 고대하고 눈물 흘리며 소리 지르며 뛰놀면서 결국 절뚝거리는 길을 가고 있지는 않나?

27.

신인 즉’(Surely he is god!)은 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엘리야가 이 바알을 조롱하고 있다.

왜 응답을 안하고 계시나 묵상하고 계신가?(Perhaps he is deep in thought.) 잠깐 나가셨나? 용변 보러? (busy?)

지금 길거리를 행하고(travelling) 계시는가? 늦잠 주무시면 깨워야 하나? (Maybe he is sleeping and must be awakened) 하면서 굉장히 조롱을 한다.

이 성경을 구원받지 않은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도 엘리야가 무식해 보인다.

어떻게 저렇게 푸쉬(push)를 하면서 전도를 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사단은 조롱의 대상이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를 사단으로 보면서 부모, 형제, 배우자를 조롱하라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니 남편보고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는 것이다.

절대로 믿지 않으면 결혼도 안 시킨다

사단은 조롱의 대상이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죄를 조롱하라는 것이지 죄인을 조롱하라는 것이 아니다.

죄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을 잘 모르니까 사랑한다고 그 말 다 들어주고 하다가 결국 망하는 것이다.

큐티를 하니까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보게 된다.

말일에 우뚝 선 십자가, 예수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적용을 길러 놓았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가 계속 사건이 와도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못 살아도 (믿음의) 가능성을 보고 결혼해야 나중에 실망할 것이 없어서 굉장히 칭찬 받는 결혼이 되는 것이다.

지금 다 되어있는 사람과 하면 망할 일 밖에 없는 퍼센티지(percentage)가 많다.

그래서 믿음을 보고 결혼하라는 것이다.

형편없는 여러 조건 가운데서도 우리들교회 청년들이 믿음을 보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또 워낙 없고 병 걸렸고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애초 기대 없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혼을 아무도 안 하는 것으로 이것이 잠시 뒤의 것을 내다보는 것이다.

28(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So they shouted louder and slashed themselves with swords and spears, as was their custom, until their blood flowed)

구약 성경에상하게 하더라 11번 사용되었는데, 자해 행위가 바알 예배의 정규 의식으로 차지했다는 것이다.

신명기 14 1절에는 너희는 자기 몸을 배지 말며’(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You are the children of the LORD your God. Do not cut yourselves or shave the front of your heads for the dead,)라고 한다

따라서 피가 흐르기 까지 자기 열심으로 무섭게 굶어 가며 기도 응답을 외치지 말라는 얘기다.

 

29(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Midday passed, and they continued their frantic prophesying until the time for the evening sacrifice. But there was no response, no one answered, no one paid attention.)

돈과 권세와 성공을 위해 빌고 피 흘리고 외치는 것이 우상 섬기는 자의 특징이다.

돈과 명예, 권세의 우상을 섬기면 큰 소리로 부르고 빌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피 흘리고 절망하고 낙망하게 된다.

자식이 우상이기 때문에 자식을 어떻게든 내 뜻대로 해보려고 자식과도 피 터지게 싸운다.

응답 하지도 할 수도 없는 것이 자해이며 이 시대우상이다

어떤 아이가 자해를 해서 온 몸에 핏자국이 있다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로 살렸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피다.

자살기도를 했던 아이가 중학교 아이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가서 흔적들을 보이며 나도 그랬다고 하니 제압이 한 번에 딱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다 쓰임을 받고 있다.

 

(예화 6)

아까 말했던 가족의 아내집사님은 아들이 그렇게 돈 사고를 쳐도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구하면 아들을 용서해야 된다며 엄마가 끝까지 믿어주면 아들은 돌아온다는 믿음으로 꽉 차 있어서 10년 동안 어떤 말도 안 들었다는 것이다. 목장, 초원, 평원지기의 그 어떤 말도.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당신들의 아들이면 범죄에 노출되도록 하겠냐, 용돈을 넉넉히 주면 사체는 안 쓸 거라면서 아들이 중독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믿지 않고 아들이다신 안 그럴 거야.’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 믿고 싶었다는 것이다. 남편과 공동체에 나를 속였다는 것이다. 오직 아들의 회복에만 주님께 울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님의 권면을 애써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불순종의 죄를 지었는데 이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돈이 있는 부모들은 예외 없이 다 자식이 중독에 걸려 도박을 하고 경마를 하고 다 갚아 주더라. 없어질 때까지 갚아주고 다 같이 망하더라. 응답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이 시대의 우상이다. 얼마나 열심히 새벽기도에 철야기도에 잠도 안자고 금식까지 하면서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자식의 입시와 성공을 위해서 빌고 울고 부르짖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아들 돈 갚아주느라고 그렇게 갚아주면 안 되는데, 갚아주지 말라고 그렇게 처방을 하는데도, 돈 갚아주느라 남편이 돈을 잘 버는데도 알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살려달라, 구원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맨날 기도하면서 내 돈 내놓으라고 기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살려달라, 구원해달라, 내 돈 달라.”

복은 믿음의 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수단일 뿐이지 절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바알 선지자처럼 복 자체가 목적이 되기 때문에 피 흘리기까지 몸을 상하게 하면서 자신을 망치고 자식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는 것이다.

당연히 참 신이 아니니까 내가 돈 신, 자녀 신을 섬기고 울부짖었는데 어떻게 응답할 수 있겠나?

신이 아닌 것에, 우상에게 절하는데 자녀 우상, 돈 우상, 이 세상에 모든 모이는 우상을 섬기는 것인 것이다

[적용]

-내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다 바쳐서라도 반드시 얻기를 원하는 복은 무엇인가?

-물질의 복인가? 자녀의 복인가?

-그 복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내 인생 최대의 목적인가? 수단인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예배 나오는 것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인가? 수단인가?

-하나님께 빌어서 자녀 잘 되고 돈 벌고, 이게 여러분들의 목적인가?

그러면 하나님이 수단이 되는 것이다

(예화 7)

오늘 등장한 이 부부는 오신지 10년이나 됐다. 좋은 대학에 제일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집사님 부부다. 이 부부는 남북전쟁까지 갈 게 뭐가 있겠나? 내 집에서 일어난 전쟁이 제일 무서운 갈멜산 대결 아니겠나? 10년을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부는 대학 때 운동권에 있었다고 한다. 한 의로움으로 날마다 비판을 했는데 아들이 정반대의 길을 가니까 아이러니다. 아들이 돈 사고를 쳐서 학교만 졸업시키자고, 그럴 때마다 갚아주자고 해서 남편이 결국 갚아줄 수밖에 없었고. 아들한테 매번 돈 주면서 예배 나오라고 했는데 목장에서 그게 비인격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집사님이 전혀 듣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축구 동호회에게 대관료를 받고 그 돈으로 도박을 해서 모두 잃었다. 그 사람들이 경찰에 고소했다. 그런 사건이 오면 너무 놀라는 것이다. 드디어 교회를 비판하고 목사를 욕하고 들어갔다 나갔다 하다가 올해 초부터 부부목장, 주일예배를 나오고 있다.

내 집안 전쟁이 제일 무서운 갈멜산 대결이다

(예화 8/목장보고서 내용)

목장보고서를 보니까너무 허무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 라인 댄스를 해보려고 알아보고 있는데 아내가 목장에 나가면 댄스배우는 것을 허락해준다고 해서 빅딜을 하고 목장에 나왔다.’고 나눔을 했다. 아내가 남편이 목사님을 싫어하는 큰 이유는 제가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그래요. 2 15일 부부목장 보고서는 아내가제가 기본적으로 잘난 것, , 멋진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우리 아들을 그렇게 키우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남편도난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예쁜 가정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안 됐어요.’ 2 22일 목장보고서는담임 목사님의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요. 저는 그냥 제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3 12일 목장 보고서는아들에게 큰 욕심 없이 키웠는데 지금 크게 바닥을 치게 만들어서 속상하다.’이렇게 힘들어도 날마다 목장에 나와서 말씀을 나눈 것입니다. 아내가남편이 저의 신앙이 기복적인 것을 알기 때문에 너무 저를 무시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도 다들 무당이 전해지는 말은 좋아해도 무당을 싫어하는 거 다 아시죠? 아내가 무당 같아서 싫은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없어도 얼마나 한 사람이 중심을 잘 잡아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남편은목사님 말씀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씀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천국 간다 인데 우리 아내는 돈을 너무 많이 써요.’ 아내가 요새 회개를 하니맞다.’고 이런 얘기들을 계속 하면서 아내가아들이 이렇게 속을 썩이니깐 내가 얼마나 공동체에서 함부로 말을 했나. 내가 얼마나 말실수를 했나. 내가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몰랐는데 이제 아들의 사건이 오면서 교회를 통해서 너무 많이 가지치기를 하고. 내 세상 욕심 가치관을 다루시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제는 돈을 안 갚아주겠다고 하는 것이 이 분에게 인생 최대의 고난이다. 갚아주고 싶어 죽겠다고 한다. 그런데 목자가안 갚아줘서 빨간 줄 가도 되겠냐?’고 했더니너무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원망할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지금 아들을 살리는 것 같지 않다고 처음 적용을 했다. 육이 무너짐으로 영이 세워지는 은혜를 믿지 못함을 회개하고 우리 아들을 죽이지 말고 살려주도록 기도해달라고. 그렇게 적용을 했는데 지난 주 기도제목이 경찰이 아들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보험사기를 쳤다는 것이다. 돈 안주는 적용을 하기가 너무 힘든 아내 집사인데 이 집이 정말 갈멜산 전투를 하고 있는데. 부모와 아들이 지금 다 뛰놀며 절뚝거리고 있는 것이다. 머뭇거리고 뛰놀면서. 남편도 10년 동안 구원에 관심 없고 아내는 자기 열심히 뛰노니깐 이것이 있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믿음이 없는 남편이지만 10년이 됐으니깐 오늘 설교함으로 이 가정이 회복되라고 설교하는 것이다. 남편이 듣고 상처 받으면 아니 되옵니다. 아내 회개가 시작되기 시작하였는데 유지되기 바라고. 그 동안 아들에게 준 돈 주님께 드렸으면 아들도 남편도 다 구원되었을 거 같은데 그 돈 갚아주느라 알바 뛰면서 자기는 입지도 못하고.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우리들 교회는 이렇게 힘든 청소년과 교사들을 위해서 8월 큐티 페스티발을 공개하는데 힘든 친구들이 많은데 우리들 교회 친구들이 같이 조를 짜서 섬기게 하려고 한다. 교회 청소년들이 큐티를 하는데 우리 목세도 공동체를 보고 너무 은혜를 받았잖아요? 청소년들도 이 공동체를 보고 은혜를 받는데 우리들 힘든 자녀들이 조를 짜면 그 동안 믿음이 없었는데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서 내가 왕년에 이랬거든 하면서 리더쉽이 생길 것 같다. 잘 하는 것으로 섬겼으면 좋겠다. 모두가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힘든 아이들이 왔는데 목장에 들어가면 살아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것이 갈멜산 전투에서 이렇게 승리하는 비결이 될 줄 믿는다.

 

나.말씀 어록33

(1) 아합과 기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함이 없다면, 축복이 와도 하나님의 긍휼을 맛볼 수가 없다.

(2) 고난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도 해석할 수가 없다.

(3) 내 문제는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사랑보다 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5) 미워해도 가책을 느끼지 않고 미워해도 정당화되는 감정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마음의 적인 것이다.

(6) 말씀이 안 들어가면 다 미운 것이다.

(7) 믿음의 분량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데 있다.

(8) 이 세상은 거짓의 세상이니 살려면 다 거짓으로 상황을 피해간다.

(9) 거짓을 얼마나 거짓 같지 않게 하는가가 성공의 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             거짓을 거짓 같지 않게를 염두에 두고 우리 모든 지식은 다 이것을 향해 나가는 것 같다.

(11)             선의의 거짓보다는 하나님 앞에 섰는가가 중요한데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만큼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12)             교회는 진리의 성령이신 말씀을 봐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13)             교회는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것이다.

(14)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15)             흘릴 눈물이 있어야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씻겨주시지 않을까?

(16)             믿음 있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데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기 때문이다.

(17)             사단은 조롱의 대상이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18)             죄를 조롱하라는 것이지 죄인을 조롱하라는 것이 아니다.

(19)             죄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20)             말일에 우뚝 선 십자가, 예수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적용을 길러 놓았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가 계속 사건이 와도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21)             지금은 못 살아도 (믿음의) 가능성을 보고 결혼해야 나중에 실망할 것이 없어서 굉장히 칭찬 받는 결혼이 되는 것이다.

(22)             지금 다 되어있는 사람과 하면 망할 일 밖에 없는 퍼센티지(percentage)가 많다.

(23)             그래서 믿음을 보고 결혼하라는 것이다.

(24)             피가 흐르기 까지 자기 열심으로 무섭게 굶어 가며 기도 응답을 외치지 말라는 얘기다.

(25)             돈과 권세와 성공을 위해 빌고 피 흘리고 외치는 것이 우상 섬기는 자의 특징이다.

(26)             돈과 명예, 권세의 우상을 섬기면 큰 소리로 부르고 빌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피 흘리고 절망하고 낙망하게 된다.

(27)             자식이 우상이기 때문에 자식을 어떻게든 내 뜻대로 해보려고 자식과도 피 터지게 싸운다.

(28)             응답 하지도 할 수도 없는 것이 자해이며 이 시대우상이다

(29)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로 살렸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피다.

(30)             살려달라, 구원해달라고 맨날 기도하면서 내 돈 내놓으라고 기도하는 것이 세상우상과 기복기도의 특징이다.

(31)             복은 믿음의 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수단일 뿐이지 절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32)             바알 선지자처럼 복 자체가 목적이 되기 때문에 피 흘리기까지 몸을 상하게 하면서 자신을 망치고 자식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는 것이다.

(33)             내 집안 전쟁이 제일 무서운 갈멜산 대결이다

 

다.느낀 점

1)   아합과 기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함이 없다면, 축복이 와도 하나님의 긍휼을 맛볼 수가 없는 것이며 고난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도 해석할 수가 없고 내 문제는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하시니 내 믿음의 현주소가 숨은 부끄러움으로 다가옵니다.

 

2)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사랑보다 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며 미워해도 가책을 느끼지 않고 미워해도 정당화되는 감정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마음의 적인 것이고 말씀이 안 들어가면 다 미운 것이라고 미움론에 대해 정의해 주십니다

 

3)   믿음의 분량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데 있는 것인데 이 세상은 거짓의 세상이니 살려면 다 거짓으로 상황을 피해가는 것이 실상인데 거짓을 얼마나 거짓 같지 않게 하는가가 성공의 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거짓을 거짓 같지 않게를 염두에 두고 우리 모든 지식은 다 이것을 향해 나가는 것 같다고 하시는데 선의의 거짓보다는 하나님 앞에 섰는가가 중요한데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만큼 거짓을 말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에 대한 실체를 분석해 주시니 은혜롭습니다

 

4)   교회는 진리의 성령이신 말씀을 봐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며 교회는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며 흘릴 눈물이 있어야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씻겨주시지 않을까라는 말씀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는데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니 믿음이 최고의 보약인 것 같습니다.

 

5)   사단은 조롱의 대상이지 타협의 대상이 아니며 죄를 조롱하라는 것이지 죄인을 조롱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에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죄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님을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6)   말일에 우뚝 선 십자가, 예수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적용을 길러 놓았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가 계속 사건이 와도 살아남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 우리들교회 정체성으로 느껴집니다. 지금은 못 살아도 (믿음의) 가능성을 보고 결혼해야 나중에 실망할 것이 없어서 굉장히 칭찬 받는 결혼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 불신결혼이 왜 안 되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지금 다 되어있는 사람과 하면 망할 일 밖에 없는 퍼센티지(percentage)가 많으니 믿음을 보고 결혼하라는 것이 금주 주일 말씀에 다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7)   피가 흐르기 까지 자기 열심으로 무섭게 굶어 가며 기도 응답을 외치지 말라고 하시는데 돈과 권세와 성공을 위해 빌고 피 흘리고 외치는 것이 우상 섬기는 자의 특징이며 돈과 명예, 권세의 우상을 섬기면 큰 소리로 부르고 빌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피 흘리고 절망하고 낙망하게 된다는 해석에 실감이 나고 감동적입니다.

 

8)   자식이 우상이기 때문에 자식을 어떻게든 내 뜻대로 해보려고 자식과도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인데 응답 하지도 할 수도 없는 것이 자해이며 이 시대우상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로 살렸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피라고 하시니 십자가 보혈의 파워가 실감납니다

 

9)   살려달라, 구원해달라고 맨날 기도하면서 내 돈 내놓으라고 기도하는 것이 세상우상과 기복기도의 특징이며 복은 믿음의 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수단일 뿐이지 절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바알 선지자처럼 복 자체가 목적이 되기 때문에 피 흘리기까지 몸을 상하게 하면서 자신을 망치고 자식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는 것으로 내 집안 전쟁이 제일 무서운 갈멜산 대결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해 주시니 할렐루야입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 지쳐 부를 그 이름, 바알!” 결국 바알~ 바알~ 떨게 되는 것이 이 세상 기복신앙과 우상신앙의 결론 인 것 같습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26. 15:40

[우리들교회 김양재목사님 저서 "100프로 응답 받는 기도" 핵심요지 및 느낀 점]

 

 

가.핵심요지:

 

내 죄가 보이고 내가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이 기도응답이다

기도란 무조건 나의 원함을 채워 달라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답하는 것이 기도인데 제대로 된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다

내 간구대로 상황이 나아지거나 무언가 이루어 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곧 기도응답이다

영혼구원과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위한 기도의 일꾼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침묵이라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날마다 때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인생, 100%기도 응답 받는 인생이 축복 받는 인생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핵심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께 기도하라…”라고 합니다

우리모두는 용서에 빚진 자이며 죽는 날까지 남을 용서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용서에 빚진 자인데 내가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나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필수적 의무로써 하나님께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았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7번씨 70 , 무한대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100%죄인이므로 죄 가운데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체험하고도 우리는 평생 죄의 굴레 속에 있으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죄지을 일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29)고 하십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기도 응답을 받으면 반드시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한나처럼 기도응답으로 얻은 아들 사무엘 때문에 감사하고 찬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를 찬양했는데 찬양을 하면서도 한나는 아들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41)고 하십니다

우리인생은 무순 일을 하든지 시작도 마지막도 하나니께 무릅 꿇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나야 한다(47)고 하십니다

다윗처럼 자신이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하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내 주제를 아는 것이 모든 큰일을 알게 되는 비결인데 그 겸손함으로 나아가면 내 인생에는 그저 감사하고 찬양할 일밖에 없다(52)고 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는 먼저 기뻐하고 그 다음에 기도하면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것(57)이라고 하십니다

못 생긴 외모든, 지질한 삶이든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를 붙잡고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붙어도 감사, 떨어져도 감사하고 키우면 버릴 것이 없는 자녀, 쓰임 받는 인생이 될 것(60)이라고 하십니다

뭐가 응답을 받아서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 없고 의지할 때 없어도 오히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사와 찬양의 기(61)라고 하십니다

누구든 죄를 짓는데 죄를 범한 후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한 인생을 살수 없으며 용서받지 못한 죄로 인한 죄책감과 정죄감이 늘 내 발목을 잡기 때문이며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면 그 죄악을 ㅎ=사하시는 자비로운 분이기 때문이며( 32:5) 그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회개하면 재앙에 빠지지 않고 죄를 고백하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6:16)고 하십니다(68)

나의 행함을 보고 다른 사람들까지 변화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의 결과이며 진정한 회개는 나를 변화시키고 내 옆의 사람들까지 변화시킨다. 나를 살리고 모든 사람을 살린다고 하십니다(75)

고난을 당해도 해석을 잘하고, 내 죄를 보고 회개기도에 매달리면 나를 살리고, 집안을 살리고, 이웃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라고 하십니다(78)

기도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게 되고, 내가 아무리 미워하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수준과 형편을 헤아리게 된다. 힘든 사람들에게 다가갈 좋은 길은 그 사람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것처럼.(159)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을 심히 창대하리라”( 8:7)와 같이 듣기 좋은 말만 믿고, 눈에 보이는 복을 구하느라 발도 굶고 결사항전으로 기도하는 것은 결국 기복에 불과하다. 자기 자신을 직시하지 않고 무조건 매달리기만 한다고 응답 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내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에 속지 않으신다. 그것은 벌받은 행실이고 행위라고 하십니다(199)

내 정욕으로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린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분노가 뒤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중에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207)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나라는 서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계속 떠들 수 박에 없는데 하나님 말씀이 안 들리면 자기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기도만 해 댄다.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을 주시는데 귀가 막힌 백성은 그 말씀이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듣기도 싫어하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때 하나님은 떄로 입을 닫으시고 침묵하신다고 하십니다(208)

공평하신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고 하여금 기다리게 하기 위함이다. “너희들이 더 이상 떠들지 말고 조용히 침묵하고 때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의 표현이며 최후의 통첩인 셈이라고 하십니다(210)

우리가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신다. 자기 말만 하며 떠들어 대기에 침묵하신다. 우리가 조용히 할 때까지 침묵하신다. 마치 나를 버린 것처럼 침묵하신다. 그러나 그 침묵은 우리를 돌이키기 위함이다. 제대로 기도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를 고통 가운데 던져 놓고 침묵하실 때야말로 내가 하나님 앞으로 제대로 나아갈 수 이는 최고의 기회이며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라고 하십니다(212)

내가 밤낮으로 간구하는 기도제목에서 내 믿음의 수준이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자랄 때까지, 제대로 기도할 때까지 재앙을 허락하신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를 원하신다. 그러니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내 죄를 보고, 내 부패와 가증함을 보면서 회개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만이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213)

나의 간절함을 보시려고 침묵과 냉대의 훈련을 겪게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유창한 기도가 아니라 진실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큰 믿음이다. 자기의 비천함을 보고, 자기를 낮추는 것이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이라고 하십니다(227)

때로는 육적인 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속인 자를 위해서라면 필요에 따라 육적인 것을 구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구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100%응답하신다고하십니다(234)

기도 응답을 받겠다고 새벽기도, 철야 기도, 산기도 열심히 다녀보고 소나무 몇 뿌리 흔들어 봐도 해와 달이 멈추는 게 아니다.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에게 축복을 베풀어 달라고 드리는 기도가 100% 응답 받는 기도다. 나를 속인 사람을 도우려니 너무 힘들지만, 나를 살려 주신 말씀의 길갈을 기억하고 드리는 기도다 100% 응답 받는 기도이며 평생 짐이 되는 기브온을 보며 나의 악을 깨닫고, 원수의 실체를 알고 드리는 기도가 100% 응답 받는 기도라고 하십니다(237~238)

복은 믿음의 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수단일 뿐이지 잘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복 자체가 목적이 되어 기도하면 결국 바알 선지자들처럼 자신을 망치고, 자녀를 망치고, 가정을 망치게 된다고 하십니다(240)

응답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내가 주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 말씀이 점차 내 인격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다. 명령을 따라, 말씀을 따라 그대로 행해야 헛된 야망을 품지 않게 되고, 그럴 때 기도하면 응답 받게 된다. 믿음이 있으면, 말씀이 들리면 기도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기도 내용만 봐도 각자 믿음의 분량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말씀이 임하면 너무 찔림을 받아서 아프기도 하지만, 곪아 있던 고름이 터져서 치유되는 시원함도 있다. 말씀이 임하므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말씀도 없고 회개도 없는 기도는 그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에 불과하다. 허공을 향한 부르짖음에 불과하다. 말씀 없이, 회개 없이 기도하면 되돌아 오는 것은 메아리뿐이라고 하십니다(242~243)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고난이 온다.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 내가 메야 할 멍에가 반드시 있다. 멸망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회복이 되고, 또 멸망하고 포로가 되었다가 다시 회복되는 과정들을 통해 영이 세워지고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믿음이 자라면 멍에를 메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 고난이 축복임을 깨닫게 된다고 하십니다(244)

진정함 기도응답은 상황이니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 곧 응답이다. ‘!’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응답이 아니라, 사건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응답이다. 그로 인해 내 믿음이 진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기도응답이다(249)

구속사를 알면 그 구속사 속에, 성경 속에 내가 보인다.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야고의 인생에서 나를 보게 된다. 그래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어처구니 없고, 터무니 없는 일을 겪게 되더라도 그것이 곧 내 삶의 결론임을 깨닫게 된다고 하십니다(253)

그러므로 구속사의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모르고는 구속사의 기도를 할 수도 없고 응답을 받을 수도 없다. 구속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리는 기도다. 쉽게 말하자면 성경을 읽고 깨닫고 묵상하는 기도인 것이다.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듯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내가 기도해야 할 것들이 저절로 채워진다. 정함이 없이 달라, 달라고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어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된다. 영적인 것을 깨달으면 육적인 것은 내가 필요한 만큼 정확이 채워진다. 그러므로 구속사의 기도야말로 진정한 기도라고 하십니다(254)

내 인생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인 순종과 사랑을 알아도 결론은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기도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의 목적도 거룩이라고 하십니다(254~255)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하는 것이 기도의 기본이며 최고의 기도라서 그 기도만 반복해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기도하는 시간을 법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뜰 때나 잠자리에 들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산책을 할 때나 차 타고 갈 때나 늘 기도하면 된다. 침묵이든 통성이든 주변 상황에 따라 기도하면 된다. 남의 집을 방문해도, 병문안을 가도 먼저 기도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도 괜찮다. ‘내가 기도하면 얼마다 이루어질까하는 생각은 하지 말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구하면 된다(256)

기도를 자꾸 하다 보면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긴다. 남을 배려하게 되고 그러다 남을 위해 중보기도까지 하게 되면 내 기도 제목이 하나씩 이루어지는 걸 알게 된다. 기도에 열중하다 보면 세상이 점점 멀어지고, 정욕을 점점 내려놓게 되고, 죄를 지을 시감이 현저히 줄어드는 은혜를 맛보게 된다고 하십니다(257)

응답 받는 기도를 하려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날마다 교제해야 한다. 교제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내 말만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말씀을 일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귀 기울이는 것이 기도다. 주님 안에서 내 죄를 보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실 것(258~259)이라고 결론 지으십니다.

 

나.느낀 점

 

떼 부리는 기도는 내 정욕으로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린 것이데 반드시 하나님의 분노가 뒤따르는 법이며 나중에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기도라고 생각됩니다

내 죄가 보이고 내가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이 기도응답이라고 하시니 새롭습니다

기도란 무조건 나의 원함을 채워 달라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답하는 것이 기도인데 제대로 된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다고 알려 주시니 체계적인 기도에 대한 정리가 됩니다

내 간구대로 상황이 나아지거나 무언가 이루어 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곧 기도응답임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영혼구원과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위한 기도의 일꾼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침묵이라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날마다 때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인생, 100%기도 응답 받는 인생이 축복 받는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핵심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께 기도하라…”라고 하시니 적용해야 되겠습니다

한 마디로 응답 받는 기도는 이타적이고 믿음이 살아 운동하는 그런 배려의 기도임을 알겠습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24. 17:31

[우리들교회 김양재목사님 2019 5 22일 수요예배말씀요지 요약 및 재 정리(골로새서 1:1~14/기도)]

 

금주 수요예배말씀은 여전한 방식으로 꾸밈 없고 허례허식 없이 진솔하게 말씀을 풀어 가시는 김양재목사님의 목회사역의 진수(Essence)가 물 흐르듯이 투명하게 담겨 있어 성경의 핵심요체가 투영된 말씀내용으로 느껴집니다

 

큐티의 간증이 실려 있고 너무 좋은 메뉴얼이 나와 있어 말씀 본문을 같이 보는 공동체가 없으면 금세 와해되는 것임을 설파하십니다

사건이 올 때마다 반드시 말씀을 같이 보는 것이 핵심요체이며 결국 이 모든 것은 기도에 달여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이 실감납니다

기도하는 것은 무슨 특별한 내용이 아니라 그날그날 주신 말씀에 응답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먼저 말씀을 해주시니까 거기에 우리가 응답을 하는 것이라고 기도의 요체를 한 줄로 요약해 주십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하루 종일 묵상했는데 구약은 신약으로 찾고 신약은 구약으로 찾고 관주를 보면서 어떤 참고서도 없이 그냥 하루 종일 여섯 시간 일곱 시간 볼 수 있는 게 성경이라고 성경론에 대해 정의 하십니다

우리가 힘들 때 방법론으로 풀지 말고 진실되게 나눌 공동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공동체가 없어서 다 죽는 것이라는 말씀이 우리들교회 정체성(identity)임이 체휼됩니다


성경묵상에도 그리고 기도에도 다른 무슨 방법이 없는 것이며 온맘 다해 사랑하는 주님, 그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보다 보면 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을 보니까 그냥 상담과 구제와 선교와 그냥 전도가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이 시대 선교와 전도론을 간결하게 풀어 주십니다

말씀을 보니까 내 사랑하는 주님이 저절로 되더라야말로 목사님의 살아 있는 큐티 철학인 것 같습니다

골로새서를 보면 하나님이 뜻이 있다고 하시는데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한 개인에 대한 의도와 기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Hidden Will of God’의 감춰진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을 우리는 처음부터 알지 못하는 것이며 성자 하나님이 ‘Revealed Will of God’(성자 하나님의 나타나신 경륜)으로 디자인 하시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진리의 성령님이 도와주시기(Effective Power of God) 때문인 것이라고 삼위일체(the Trinity)론을 쉽게 정리해 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경륜이 드러나는 것은 우리 가정, 교회, 각 기관들을 향해서 뜻이 있으시기 때문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해도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닌 것이므로 우리 식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두리로다해석해 주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부유한 교회인 반면 골로새 교회는 AD 60 년경에 가공할 만한 지진이 골로새(Colossian) 지방을 덮쳐 졸지에 엄청난 타격이 왔던 교회인데 이렇게 환경이 힘들면 이단이 판치는 것이며 현실에 직면하기를 싫어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고 하십니다

씀씀이를 줄이고 외도하는 것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고 하는 데가 이단이며 한 번 죄 사함을 받았는데 그 다음에는 괜찮다라고 신흥이단이, 또 계속되는 이단이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이며 성경은 성경대로 가르치고, 나는 나대로 살라고 하는 말이 매력이 있어 보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이 회복될 걸 바라면서, 정말 이단에 빠지는 이유는 결국은 욕심 때문에 가는 것인데 택자는 갈 수가 없는 것이라고 이단에 대해 정의해 주십니다

우리들교회는 신천지가 와서 노략을 해도, 목장에 들어와서 아무리 공략을 해도, 우리가 구속사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2 6개조로 들어왔다는 걸 들었지만 걸러지는 것은 우리가 큐티를 했기 때문이며 아무리 이단이 판을 쳐도, 택한 곳에 골로새 교회가 있고, 부르짖을 수 밖에 없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이기 때문이라고 이단 퇴치론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생명을 내놓고 말씀을 봐야 하는데 우리는 암이라는 사건이 오면 빨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는데 이럴 시간이 없는 것이며 3개월 남았다 하는 이때 빨리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인데 이때가 엄청나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라고 암 사건이 닥쳤을 때 故 이관희 집사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만천하에 전파할 수 있는 것은 택자이고 그곳이 사명 지에 이기 때문에 결코 딴 길로 빠지지 않는 것이라고 암 사건과 하나님영광 나타내는 타이밍과의 상관관계를 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물질회복과 건강회복을 바라지만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명으로 돌에 맞아 순교한 사도 빌립이 묻힌 그 시대의 히에라볼리(Hierapolis/거룩한 성)을 상기해야 하는데 골로새 교회는 지진으로 갑자기 삼류 도시가 되어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고 장차 이루어질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이 말씀은 진리 중의 진리라고 믿음론을 이야기 해주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으로 소명을 받았으면 당연히 디모데가 생기고 골로새가 생기게 되어 있으며 누군가를 전도하고 양육하기 위해서는 은혜와 평강을 끼쳐야 하는 것인데 은혜는 카리스라는 헬라 어로, 평강은 샬롬이라는 히브리 식 인사이고 이 서신이 쓰여질 당시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Pax Romana’ 영적으로 최고로 교만한 사람과 육적으로 최고로 교만한 사람이 붙었을 때 그 시대에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니까, 항상 은혜와 평강으로. 헬라식 인사와 히브리식 인사를 겸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양육, 전도를 할 때에는 이렇게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 주어야 하며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함을 골로새서에서 보여준다고 하십니다

죄 얘기를 할 때는, 나의 죄로 적용을 해야 되는데, 다들 기도할 때는 맨날 내 죄가 아니고 '”우리의' 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함을 지적하시면서 자세하게 쳐다봐야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골로새 교회는 두 번의 지진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파탄이 나 있었던 상태에서 이런 골로새 교인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듣고 이렇게 감사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지체란 나에게 대해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며 내가 정말 무엇 때문에 감사한지, 성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감사한지, 내 자식 내 식구 때문에 감사한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하십니다

정말 다른 이들의 기쁨과 아픔엔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며 마음이 없으면 말씀이 들려지지가 않는 것이고 성도의 소식과 세상의 소식에도 귀를 기울여서 모든 다른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궁금해지고 귀를 기울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하시니 찔림이 걸어 들어 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인데 세상의 소리는 안 듣기로 하고, 예수님의 소리만 들어야 하는데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소망이 생기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도 소망이라는 확실한 기초 위에 생기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상담도 같은 본문을 보면서 큐티를 하면 훨씬 더 쉽다고 하시며 의인들은 공동체가 있지만 죄인들은 공동체가 없다고 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세상적으로 부유하게 되니까 할 말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잘나가고 부유한 것이 믿음에는 걸림돌이 됨을 암시하십니다


큐티나눔은 같은 본문을 보면 공감대가 깊게 형성되기 때문에 나눔이 활발한데, 큐티인으로 묵상하시는 분들이 늘어나서 한 본문으로 다양하게 묵상하시는 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인데 교회 가서 나누고 그 교회 자신들의 목장에서 나누면 한 본문 가지고도 수 많은 만 개의 깨달음들과 적용이 나오는 법으로 열 배, 백 배, 천 배, 만 배 하늘에 쌓아두는 소망이 되는 것이므로 복음은 기쁜 소식이고, 승전 보 이니까 기쁜 게 당연하다고 하십니다

기뻐서 사람을 살리는지를 보고 우리 집사님들이 세상에서 다 망하고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 오면, 너무 사람을 살리느라 자기 시간을 내고 물질을 내고 하는 것이라고 우리들교회 성도들의 바람직한 믿음생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살 소망의 반대는 죽은 소망이 아니고 헛된 소망인데 우리는 헛된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에서 말씀 주신다고 하십니다

암에 걸려도 영생의 소망을 인하여 기쁠 수가 있으며 암에 걸려도 복음으로 정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관희 집사를 통해서 보았다고 예증하십니다

누구에게나 명예와 권세에 대한 헛된 소망이 끊임없이 있는 법인데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전혀 같은 말씀이 들리지 않는 부부도 있고 목장식구들, 성도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헛된 소망을 내려놓고, 하늘 나라, 산 소망을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6절에 이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렀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내가 복음을 찾아간 게 아니라 복음이 주어가 돼서 나에게 왔으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로다인데 복음이 이르러서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가 은혜를 얻고 깨달은 날부터이므로 우리가 은혜를 먼저 깨달아야 양육이 되는 법이며 양육을 받게 되고 또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기에 풀려난다는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이지만 그는 내 문제가 언제 해결되는가만 바라지 않고 온 천하에 복음이 언제 전해지는지,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에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옥에 갇혀 있는데 다른 교회 잘 되는 것에 감사할 수 있겠는지 자문해 보니 정말 어렵습니다.

자기가 전도하지도 않은 골로새 교회가 열매를 맺고 있다고 그러니까 막 너무 감사해서 골로새 교회가 온 천하에 열매를 맺고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는 바울의 마음이 진정한 사도의 열린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바벨론을 너무 좋아하고 최고를 좋아하니까 더 최고를 붙여주셔서 저를 짓 밟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교회 부흥이 아니라 우선 부부의 회복과 부부의 힐링이 먼저 일어나야지 그 교회가 소망이 있는 것은 말씀이 안 들리니까 그런 것이며 내가 내가 말씀이 들린다면 정말 아내가 말씀이 안 들리고 남편이 말씀이 안 들리고 남편이 말씀이 안 들리면 아내가 그렇게 믿음이 좋아지는 것이며 아내가 남편이 말씀이 잘 들리면 아내가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는데 그 조차도 다 하나님의 뜻으로 한 사람이 중심잡고 있으면 다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야망이 많으면 말씀이 안 들리는 법이며 말씀이 그래서 들리는 날부터 다른 사람이 들리는 것에 감사하게 해주시고 이제 우리 가족의 삶에 하나님의 열매가 맺히게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온 천하에 열매가 맺히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9절서부터 12절까지는 성경 속, 기도의 모범, 중보기도의 모범으로 나오는 기도인데 이로써~ 가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우리와 바울 사도의 차이점은 곤고할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형통할 때도 더욱 기도하는 것이며 형통할 때는 기도가 잘 안 되게 되어 있으며 중보기도 대상이 내 자녀라면, 시험에 떨어지면 기도가 저절로 나오지만, 붙고 나서 정말 우리 아이가 붙었다고, 큰일 났다고, 삼일 금식 기도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 이게 우리들의 현 주소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시면서 큰일 났다고, 말씀도 제대로 안 봤는데 학교를 붙었다고 앞으로 갈 길이 쫙 보인다고 바벨론의 길이 쫙 보인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리 마음 속의 욕심을 꿰뚫어 주십니다

이로써 기도하는 것이고 듣던 날부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사람은 들리는 순서대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메일이 온 순서대로 전화 받은 순서대로 하는 것으로 우리들교회 소그룹인 목장에서 목자들에게서 목원들에게서 수시로 기도제목을 받고 수시로 읽어보면서 한번씩 속으로도 하는 것이 바로 중보기도이며 전세계적인 기도이므로 신문을 보다가도 기도하기 바란다고 하십니다

말씀이 선행되어야 기도할 수 있는 인생이 되는 것이며 기도를 해도 듣던 날부터 교훈 받은 것을 듣던 날부터 기도하는 것인데 입으로 기도하며 그것이 날마다 하나님을 깨우게 되는 것이라고 기도론에 대해 쉽게 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게 중요한 것인데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구약에도 보면 야다’(경험해서 알다) 라는 단어를 써서 같이 살을 맞대고 살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성적인 단어를 썼다고 하시면서 안 살아봐도 하나님을 알면 사람을 알 수가 있다고 하십니다

야단도 치고 화도 나고 하나님께서도 하도 말을 안 들으니까 칼을 물고 서로의 속내를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관계가 친밀한 관계인 것인데 좋은 말만 하는 관계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 지식적인 관계일 뿐이이라고 관계론에 대해 말씀해 주시며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내 뜻과 내 지식으로 불신결혼을 하는 것이라고 불신결혼의 근본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다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충만하게 하려면 또, 하나님의 뜻을 채우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모할 환경이 와야 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Hidden Will of God’ , 감춰진 성령님이 오시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모할 성령님이 와야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일이 뭐가 있겠으며 그렇게 다 잘 먹고 잘 살고 공부 잘 하고 직장 잘 가고 좋은 집에 사는데 통곡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말씀이 들리는 자리에는 무조건 가야 되며 온 몸을 비비 꼬면서도, 안 들리는 데도 앉아 있는 것은 어느 날 사건이 들려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기도를 하게 되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요. 장차 이루어질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가 실감이 나게 되며 환난은 우리를 양육시켜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완전히 책임지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되는데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마음을 맞춰드리지 못할 때가 많고 외적인 열심대로 알면서도 그럴 때 자꾸 외적인 열심이 나오게 되니까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인데 우리가 모두 자기 일에 열매를 맺기 바란다고 하십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씨가 점점 점점 커지는 것인데 지금 보이는 것이 없어도 자기 열매를 맺기 보다 선한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하고 씨가 보이는 사람은 아무 것도 없어도 말씀이 보이면 씨가 맺는 것으로 아무리 여러분이 직분이 많아도 전도의 열매가 없고 목사님의 가장 큰 특징은 큐티를 하면서도 전도의 열매가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많은 교회는 말씀의 검으로 남들을 치니까 큐티를 하는 고정관념이 안 좋았을 수도 있지만 목사님은 이 큐티를 해서 전도를 많이 했으며 전도대회 하나도 안 해왔지만 우리 교인들이 전도를 그렇게 하고 있으며 자기 일에 전도도 못하고 성품의 열매도 없고 내적인 외적인 열매가 하나도 없다면 나의 믿음을 다시 점검을 해봐야 된다고 중간 점검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내적 열매가 우선 되어야 외적 열매가 나오는데 목사님의 큐티의 특징은 어디서나 생활전선에서 생활 속에서 전도, 상담, 양육, 봉사를 자유자재로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보면서 자기 죄를 보게 되는데 인격이라는 갑옷을 두르고 있으니까 질그릇이 깨져야 보이는데 금 그릇인데 어떻게 보배가 보이겠냐고 하시면서 자존심이 없으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법인데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리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11절에 선한 열매를 맺게 되면 그 영광의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는데 우린 필요할 때마다 그 영광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굉장한 힘으로 오늘 이 영광으로 기쁨으로 모든 오래 참음과 기쁨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영적 진실성의 결론은 인내인 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맨날 능치 못함이 없을 것이라고 나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구속사인데 이 기도제목의 절정이며 인내하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인내하기 위해서 기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래 참음이라고 했기에 그 고난의 길이가 얼마이든지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것인데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들교회에는 흉년으로 시작해서 풍년으로 끝난 사람이 너무나 많은데 하나님을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이며 기도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기쁨과 오래 참음으로 견디게 하는 것이 기도인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 무슨 천국이 있을 거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산 너머 산, 강 너머 강,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천국인 것이라고 천국론에 대해 풀어 해석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서 이 땅을 산다고한 얘기처럼 그런 사명이 목사님에게 주어졌는데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에서 약속하셨으니 서로가 기도해주기 바라며 말씀묵상이 읽고 그치는 것이 되지 말게 하시길 바란다 고 당부하십니다

12절에 내 감사의 기도제목 중에 성도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구절에서 세상의 기업은 얻지 못한다 해도 구별된 성도가 됐다는 것보다 더 감사하고 기쁜 일은 없는 거 같다고 하십니다

예수 믿고 말씀을 붙잡고 걸어간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전부 다 이 얘기를 다 듣고 나서도 우리 애 (대학시험에) 붙어야 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분의 믿음은 거기까지인 것이며 안 들리는 사람은 목장 가서 해석을 받으시기를 바라고 이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찬양한다고 하십니다

13
14

우리가 지금까지 말씀으로 기도를 하면 우리를 하나님아들의 나라로 옮기시는 주님이시라고 하시면서 그분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지셨다고 하셨으며 이 흑암도 권세가 있는데 우리는 쉽게 이 권세와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갈등도 없이 살아가니까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깜깜한 어둠의 나라에서는 누가 더 잘 걸어가냐 하면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맹인이 잘 걸아 가게 되어 있고 온전한 사람이라면 어둠 속에서 날마다 넘어져야 정상인 것처럼 넘어질 때마다 모든 사건이 가고 오는 사건이 나를 다 세워주시는 사건이 되는 것이므로 날마다 이것을 비교하시면서 걸어가야 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일류 대학, 일류 직장, 그 권세가 좋다 보니까 이 영생의 나라, 아들의 나라는 관심이 없는 것이며 우리 엄마,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다 잘 되면 우리들교회 아무도 안 나오는 현상은 잘 사니까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얘기, 지옥 얘기를 훨씬 더 많이 하셨는데 말 안 듣고 지옥에 가면, 전하지 못한 자에게 피 값을 묻는다고 하셨으며 다들 세상 잘 나가는 그런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으니 흑암의 권세는 그야말로 어둠의 것이지만 세상의 것도 필요하다면 그 권세도 허락해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눈이 멀어 어둠인 줄도 모르고. 흑암인 줄도 모르고 잘도 걸어갔던 우리인데 목사님이 매일 우리가 십자가를 길로 놓고 매일 걸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달라고 한 절 한 절씩 날마다 중보기도를 말씀으로 말씀이 임하지 않으면 하나도 은혜가 없으니 목사님들부터 자기 죄를 보시기 바란다고 하십니다

 

늘 서로를 위해 소명을, 하나님을 뜻으로 말미암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뜻이면 싫어도 좋아도 하게 해달라고, 디모데 같은 삼류도시 차별 없이 찾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헬라와 히브리 문화를 이해하되, 다른 이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끼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내가 감사할 사람은 누구고 나에게 감사할 사람은 누군지 또한 내가 무슨 소식이 들리는 자리에 가고 싶은지, 내가 가까운 사람의 소식 뿐 아니라 세상의 소식도 알게 달라고 기도하고, 우리에게 명예와 재산과 부와 이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이 헛된 소망인데 산 소망으로 지금의 사건에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고 하시면서 말씀을 맺으시니 목사님 말씀이 은혜로워 수요예배 말씀을 재 정리해 보면서 은혜 받으니 할렐루야입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22. 16:27

[이 시대 욥(Job)의 부활 교회오빠영화에 대하여]

 

 

영화 ‘교회 오빠’는 자신의 대장암 4기 진단,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아내 혈액 암 4기 진단으로 연이어 감당할 수 없는 故 이관희 집사와 오은주 집사의 투병 기를 다룬 영화라고 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듣고 어제 우리들교회 목장식구들과 교회오빠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영화 내내 주인공 이관희 집사님의 투병과정과 간증과 믿음의 내면에서 주님이 이집사님의 투병 여정을 통해 주시는 말씀 말씀이 모두 마음에 와 닿아 회개가 되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주위시선을 의식하여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려고 애쓰다 보니 목이 메이고 울음소리는 참아냈지만 참으려 해도 눈물이 저절로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이관희 집사님은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주님 품 안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이 시대 믿음의 표본이며 이 시대 (Job)’의 부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사건보다 더 지독한 고난의 시대로 돌입을 하니까 난국의 시대에 적극적인 소명을 받게 되는 이때가 웃시야(Uzziah) 왕이 죽던 때인 것 같습니다.


2018
916일 새벽 이관희 집사는 주님 품으로 갔습니다. 시애틀 형제교회에서 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목사님이 전화로 이관희 집사에게 마지막 기도를 하는 중 의식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아멘을 3번했고, 다음날 목사님의 타코마 교회 집회 때 그의 소천 소식을 들으며, 그곳에서 이관희 집사의 투병 기 간증영상을 틀었다고 합니다. 절묘한 타이밍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소명을 감당하고 떠났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오빠영화 첫 번 째 behind story는 제작진 모두가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사실라고 합니다.

종교 유무를 떠나 교회 나가라고 하지 않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소개했으며 종교에 대한 강요는 없다라는 시사평가입니다.

(이관희 집사님 우리들교회 목장예배 모임 나눔)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고쳐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짠하고 회복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 때 했지만 예레미야(Jeremiah) 묵상하며 한 순간에 무엇이 되기 보다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길고도 멀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고쳐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말씀 안에서 영육이 회복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들교회 오면서 자꾸 내 죄를 보라 하는데, 내가 스스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회개는 할 수 있었지만 이번 3개월 동안 통증을 동반한 피를 쏟을 때 내 죄 때문에 찢어지도록 가슴이 아파왔다

개인적으론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깊은 잠을 자다가 가슴이 터질 것 같이 힘들었는데 지난 날의 회환이기도 하지만 참호의 기도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이 힘든 시간이 필요했기에 허락하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3개월 너무 힘들었지만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재산이나 다른 것으로 치실 수도 있었는데 어찌 할 수 없는 생명으로 치시니 하나님 앞에 급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어서 하나님께서 저의 교만을 다루시는 것으로 깨닫게 되었다.”

*목장보고서 맨 끝 소식:  이관희집사님의 통증이 다시 시작되고 지금까지 항암이 큰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모두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라는 기도 제목이 올라와 있었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항암을 12, 28번 그렇게 하면서도 이렇게 일대일 양육을 다 받고 목장에 오는 것이 이 세상의 기쁨으로 알고 그 때문에 투병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는 나눔이 정말 이 시대 욥(Job)의 표상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도 모르핀을 안 맞은 것은 맑은 정신으로 성경을 보기 위함이고 설교를 듣기 위함이라고 했다고 하니 일반 인으로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상상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마지막까지 자기의 모든 것들을 나눠주고 가고 일대일 양육도 받고 평범하지만 정말 불꽃같이 살다가 주님 품으로 갔다고 믿습니다

기독교 영화는 두 주 이상 상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두가 영화 ‘교회 오빠’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며 반드시 삶의 모든 문제영역에서 해석이 될 것이라고 김양재 목사님은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말씀하십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좋은 평을 한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아니어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상한 기분이 생기는 영화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이상한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하게 해주는 영화인데 벤허를 능가하는 영화라고 종교와 상관 없이 큰 울림을 주는 영화라고 하는 평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사야(Isaiah/6:1~8)말씀에서 주시는 소명에 대하여 각자의 환경에서 소명을 찾고 암이면 암에서, 직장이면 직장에서 부부관계에서 그냥 하루하루 여전히 잘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큰 소명인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마지막까지 이관희 집사도 양육훈련 받았고 오늘 하루가 주어진다면 거룩을 이루기 위해 좀더 온전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났지만 어마어마하게 소명의 삶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하십니다

소명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나의 모든 환경이 소명의 장소이고 부르심의 장소라고 하십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살면 그곳이 부르심의 장소라고 하십니다.

소명 받기 위해서는

(1)웃시야(Uzziah)가 죽어야 하고

(2)높이 들린 주님의 보좌를 봐야 하며

(3)입술에 핀 숯이 대야하며

(4)죄 사함의 은총을 경험하고

(5)주의 목소리가 들려 소명을 받는 것인데 나는 어느 순서에 있는지 묵상해 봅니다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성경대로 인내하며 주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
소명 요약 7가지:

(1)위기의 때가 기회이다

(2)드러낸 것 보다 가리운 것이 많아야 한다.

(3)삼위일체의 거룩이 있어야 한다

(4)서로 화답하는 공동체를 경험해 보아야 한다.

(5)자기가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핀 숯으로 (입술을 대어) 죄 사함의 은총을 경험해야 한다.

(6)주의 목소리를 듣고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으로 반응해야 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22. 15:44

[우리들교회 2019 519일 주일말씀 요약(이사야 61절로 8절 소명)]

 



 

. 말씀요약

 



<Prologue>

 

영화 ‘교회 오빠’는 자신의 대장암 4기 진단,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아내 혈액 암 4기 진단으로 연이어 감당할 수 없는 이관희 집사와 오은주 집사의 투병 기를 다룬 영화이다.

2018
916일 새벽 이관희 집사는 주님 품으로 갔다. 시애틀 형제교회에서 전화로 이관희 집사에게 마지막 기도를 하는 중 의식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아멘을 3번했고, 다음날 타코마 교회 집회 때 그의 소천 소식을 들으며, 그곳에서 이관희 집사의 투병 기 간증영상을 틀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마지막까지 소명을 감당하고 떠났다.

이사야는 39장까지가 구약이고 40장부터는 신약을 예표한다

지금 안 망했는데 150년 후에 망할 것을 말해야 하는 기가 막힌 사명을 지닌 이런 부르심의 선지자가 이사야다.

40장부터는 망하지도 회복하지도 않았는데 회복한다고 말하라는 소명을 받는다

이것이 장차 받을 환란을 예표 해야 하는 선지자적인 사명이다

어려울 때 어려운 사명을 가진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장면이 6장이다.

calling, vocation의 부르심은 소명을 번역한 말이고 직업, 천직이란 의미도 있다

더 나아가 먼저 구원을 받은 우리가 거듭난 우리가 소명 받는 것은 이 세상에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명을 받을까?

지금 악한 아하스왕에게 예언하기 전에 하나님을 보여 주시고 더욱 자신의 죄성을 보게 하고 자원해서 이사야가 자기를 보내 달라고 한 후에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은 소명, 즉 부르심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소명을 주시는 시대상황과 방법과 조건과 응답과 목적이 다 있는 것이다

잘 알고 있는 이사야 본문을 다시 다뤄 보겠다

 



1. (
소명은) 위기의 때가 기회다

(1)

웃시야(Uzziah) 왕이 죽었다.

죽던 해에 이사야가 본 즉 그런다. 웃시야 왕이 죽어야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항상 큐티를 할 때 ?’라는 질문을 넣어 보아야 한다

웃시야 왕는 누구인가? 시대상황을 생각해 보면 앞뒤 전후 좌우 문맥을 생각해 보는 것이 적용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웃이야왕- 15살에 왕이 되어 52년간 유다를 통치하며 유례 없는 번영을 주도한 강력한 왕이었고 신앙적으로도 훌륭한 왕이다.

육적으로 부강해지니 영적 교만이 생긴다

교만해 져서 제사장의 사역을 탐하면서 자신이 예배를 주관하다가 문둥병 걸려 별궁에 갇혀서 죽은 왕이다.

인생에 예외가 없으며 그래도 늘 믿고 싶은 것인데 그래서 또 슬픈 것이다

이사야는 유다의 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왕을 섬긴 선지자다

그는 히스기야처럼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왕과도, 듣지 않는 아하스 왕과도 자신을 톱으로 잘려서 순교까지 시킨 므낫세왕과도 평생 사역을 하다가 순교했다

 

우린 좋은 왕 밑에서 사역을 하면 좋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복음을 전해야 한다.

말년에는 교만해서 갇혀 있었지만 웃이야 때 나라가 부강하고 번영하면 다 좋아야 할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암흑기였다.

 

5장까지 예루살렘의 죄에 대하여 줄 창 말하고 있다

요즘 열왕기 상을 생각하면 줄 창 죄들을 짓고 있는 것이니 아무도 안 듣는다

그런데 웃시야 보다 더 악한 아하스 왕 시대로 돌입을 하니까 아 난국의 시대에 이사야가 적극적인 소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때가 웃시야 왕이 죽던 때이다.

제 남편은 어려서 유복하고 의사로 성공했지만 예배를 방해하다가, 마지막에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갇혀 죽은 웃시야처럼 주일 성수를 하지 않고 병원에 갇혀 인생의 즐거움이 오직 술 인 것처럼 살았다.

남편은 너무 성실하고 효자에 저에게는 열부에 아이들에게는 자부였는데 낙태 수술을 하며 죄의식에 사로잡혀 예배를 방해하며 스스로 별궁에 갇혔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미약하게나마 사명을 이미 받은 상태였지만 웃시야 같은 남편 옆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웃시야 같은 남편 옆에서 아무리 사명을 받았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
적용]

-(
웃시야 입장에서)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갇혀 있나?

-
돈과 권세가 있어서 홀로 살 수 있다고 예배를 방해하며 무엇을 하고 있나?
-
술을 마시나? 여자를 만나나? 게임을 하나?

이사야는 웃시야가 죽은 후에 주께서 높인 들린 보좌에 앉아계심을 봤다.

웃시야왕의 보좌가 너무나 높지만 그 보다 북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멸망시킨 앗수르 왕의 보좌는 더 높은데 그 보좌보다 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를 본 것이다.

이사야는 1장에서 이미 소명을 받았었지만 머리로 소명을 받았었다.

그래서 이 계시를 알면서 계속 죄악을 통렬하게 지적을 했지만 여기서 웃시야가 죽고 하나님의 높이 들린 보좌를 보니까 하나님의 옷자락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영공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연기가 충만한 것을 6장에 와서야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웃시야 왕이 죽었기 때문이다

국가적이나 개인적이나 위기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엎드려 있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본 것이다.

성전이 너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과 씨름하고 오래 인내하며 기도하고 회개하는 이런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를 본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는 소명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5
장까지 보면 유다가 얼마나 죄악에 찌들어있는지를 보여주며 그때까지 이사야도 훈련시키시고 때가 되니 드디어 웃시야를 데려가시는 것이다

문둥병 걸린 웃시야는 빨리 데려가시지 왜 살려두시는 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의 때가 절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안락사가 성경적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목자님이 아픈 조강지처 아내와 사별할 때, 그때는 빨리 죽기를 바랬고, 죽어서도 슬프지도 않았는데, 그 아픈 아내가 없어서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데 재혼도 했지만 그 이후부터 하는 일마다 교회도 분열되고 사업도 망하고 재혼도 실패했다.

돌이켜보니 아내가 죽은 것이 그 인생에 가장 중요한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이 된 것이라 해석을 했다.

제일 사랑하고 좋아서 웃시야가 아니고 우리에게는 역할과 질서를 주셨다.

훈련이 되기에 지나고 보니 아픈 아내였지만 조강지처가 진실한 동역자라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보기에는 위기이나 여기에서 소명을 받으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1
절을 제게 적용을 해 보면 제가 아무리 구원을 외쳐도 남편은 죽을 때까지 겉으로는 나를 근사하게 포장해줄 사람이기에 웃시야가 아무리 교만하고 제가 그 앞에서 아무리 비굴하게 살아도 내가 죽어야지 남편이 죽는 것은 제 각본에 없던 일이었다. 아무렴 과부가 되어 주의 일을 하고 싶었겠는가?

그런 기도를 제가 어떻게 하였겠는가?

그래서 저를 그냥 데려가라고 그랬다

참 차원이 다른 아픔이다

아이들도 남편이 힘들게 할 때는 같이 한 편이 되는 것이 있다

하지만 남편이 없으면 말로 표현 못할 반쪽의 아픔이 있다.

자녀를 과부가 되어 키우는 것보다는 아무리 힘들고 못난 남편이고 아버지라 해도 그것이 온 가족이 깨어있게 해 줄 비결이 된다.

육영수 여사는 아들에게 호랑이 장모 감을 만나는 것이 결혼 조건이라고 했다고 한다

인간이 노예 근성이 있어서 과부 엄마가 아무리 잔소리해도 무서운 아버지가 한마디 하면 천마디 잔소리하면 비교할 수 없는 권세가 있다.

그래서 학대를 통해 깨어있게 되므로 훌륭한 아버지라 할 수 있기에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아무리 교양 있고 아름다워도 떠난 엄마가 아들에게 무슨 상관인가. 술 중독에 분노가 많아도 그 아들을 아버지가 고아원에 버리지 않았다.

이제는 아버지 약재료까지 쓰게 되었다.

웃시야가 살아 있어서 김목사를 깨어 있게 한 것이다

고난의 세월이 참 많은 날이 지난 것 같아도 얼마나 잠시인가? 그래서 최고의 아버지 인 것이다

김목사가 인생이 힘드니 살아남으려고 방어기재로 유머가 발달한 것 같다.

우리들교회 목사까지 되었으니 이것보다 인생에서 성공은 없다고 생각한다.


돈 많고 잘해주는 아버지였다면 지금의 김성우 목사는 없다. 돈이 없어도 여자 세 명을 만났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제가 편 하라고 힘든 남편을 데려가신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 소명 받으라고 데려가셨다.

남편이 죽던 해에 저도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를 봤는데 왜 주께서 높이 드린 보좌인가 하면 제 남편을 데려가신 날, 대선지자 에스겔도 아내도 데려가셨기에 이것이 영광 중에 영광이었다

내가 따라갈 수 도 없는 대선지자, 에스겔도 아내를 데려갔기 때문에, 나와 똑 같은 당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주님의 영광이 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느꼈다. 저에게는 그 말씀이 영광이었다.

때마침 에스겔 말씀으로 큐티를 했는데 문자적으로도 너무도 정확하게 그날의 일과 그 후에 되어지게 될 일들을 보여 주시니 날마다 큐티를 통해 더욱 높이 들린 주님을 안 볼래야 안볼 수 없게 하셨다. 큐티를 하다 보면 높이 들린 보좌를 볼 수 있다.

이것이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이다

웃시야가 죽고 사명 받았듯이 에스겔 아내가 죽고 에스겔이 전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이때까지 웃시야가 살아 있어야 한다

문둥병이 걸리건 별궁에 갇혀 있건 웃시야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락사는 전혀 성경적이 아닌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내 이야기로 들리니 최고의 고난이었지만 영광 중에 말씀으로 부르심, 즉 소명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때도 이 때도 말씀으로 저는 말씀으로 높이 들린 보좌를 보게 되는 것이다

큐티로 목회를 했기 때문에 제가 오늘을 그 동안 큐티 했던 노트를 사진 찍어 목사님들에게 보여 드린다고 해서 가져왔다

제가 하루도 안 빠지고 큐티를 했기에 이미 소명을 받았다. 그 결정적인 역할은 남편이 갔을 때 그 동안의 큐티를 에스겔로 너무 정확한 소명을 주신 것이다.

이사야도 이미 말씀을 받았는데 미약하게 하고 있다가 갈 사람 가게 되니까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를 보여주신 것이다. 말씀이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를 보여주시는 여러분의 보좌가 되기를 바란다.

[
적용]

-
여러분이 무서워하면서도 의지하고 기대는 웃시야는 누구인가?

-
제사장을 무시하는 웃시야는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인데 우리는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그를 여전히 추앙하고 있지는 않나?

-겉으로는 그가 믿음 없어 하면서도 속으로는 돈이 좋아서 구원은 뒷전인 남편, 아내, 부모, 형제, 자매는 누구인가?

돈이 있으니까 가서 말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웃시야 시절에 이사야가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부강하고 너무 교만하고 왜냐하면 거기서 빌붙어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인데 그게 꼭 저 아닌가 생각한다

전 소명 받았는데 남편에게 말을 못하겠다는 것은 제가 남편 밑에서 빌어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 믿었다고 빨리 가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다 때가 있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때인 것이다


저는 큐티를 하면서 혼자서 기도하며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누가 전화를 하면 말씀으로 상담을 하면서도 그날 큐티를 펴놓고 했다.


2. (
소명 받으려면) 드러나기보다 가리우는 것이 많아야 한다.

(2
)

스랍들은 하나님 곁에 머물며 섬기는 천사들도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존재들이다.

6
날개 중 2날개로 얼굴을 가리운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가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로는 발을 가리운 것은 발이란 문자 그대로 발도 되지만 사울이 자기 발을 기리러 굴에 들어 갔다가 다윗에게 죽을 뻔한 일이 그 때 발과 같은 의미로 인간의 구조로 말하면 성기가 있는 부분을 가렸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얼굴로 발로 나의 수고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리우며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생색을 가리우기 바란다

우리도 모였다 하면 외모자랑, 자기자랑, 헌신자랑, 수고 자랑을 알아 주기를 원한다.

주님의 소명을 받으려면 이 모든 것을 가리워야 할 것이다.

말씀을 통해 그런 나의 내 그 자랑들이 부끄러움인줄 알고 이를 가리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큐티이다.

네 날개를 가리워도 두 날개로 얼마든지 날 수 가 있는 것이다

저도 과부가 되어 누구 때문에 살았겠냐 하며 아이들에게 생색낼 수가 있었겠다. 햇수로 30년이 넘게 조용히 여섯 날개가 다 있어도, 제가 과부이기에 얼굴 가리우고 발 가리우고 내 주제를 알고 조용히 날개 짓을 했던 갓 같다

과부로 그 환경이 겸손 할 수 밖에 없으니 큐티를 하면서 저절로 가리울 수밖에 없게 하셨는데 내 주제를 알게 해주셔서 가리우게 해주셨다.

17
세기 영성의 대가 쟌느 기용부인은 절세미인이라 16살에 시집갔어도 지금으로 말하면 혼자 큐티를 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허영을 뽐냈다고 한다

그리곤 주님을 만나 집에 와서는 괴로워서 울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자기 뽐내지 않게 될까, 시어머니가 너무 괴롭히고 하녀들 괴롭히고 남편 괴롭히고 해서 점점 하나님과 연합되어 가니까 그 괴롭힘이 촉진제가 되어 화장도 안하고 머리도 안 가꾸고 거울도 안보기 시작했는데, 일부러는 아니지만 나중에 천연두에 걸렸는데 시어머니가 치료도 못 받게 해서 얼굴이 얼거졌다. 얼굴이 상하니 감사했다고 한다. 끝없는 고난 가운데서 17세기에 영성의 대가가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예수님보다 고난이 더 심한 분이 아닌가 라고 생각될 지경이다


[
적용]

-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드러내기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리우기 중에 여러분은 무엇이 편한가?

-
또 가리워도 그 가리운 것이 또 드러나기를 원하지는 않나?

 

난 인정 받기를 원하지 않아란 말이 인정 받기를 원하게 되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
여러분의 교재 속에 은근슬쩍 자기자랑, 자기헌신은 몇 프로나 되나?

-만나면 옷과 외모 이야기를 얼마나 하나?

-
사람들을 만나면 쾌감을 느끼나? 열등감을 느끼나?

다 똑 같은 것이다

3.
삼위일체의 거룩이 있어야 한다

(3
)

거룩하다를 세 번 반복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이다.

3
은 하나님의 수이고 완전 수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완전하다는 것이다

사명 받으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구별된 거룩의 가치관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오직 너에게 필요한 것은 거룩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말마다 인생이 목적이 거룩이라고 하는 말이 바로 이 말인 것이다

거룩하려면 죄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왜 죄 이야기만 하냐고 하는데 우리가 깨끗해야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설명을 하면,

성부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Hidden Will of God)의 뜻이 성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그 경륜이 마리아의 뱃속에 점 하나로 너무 겸손하게 오셨다.

가장 낮아진 바닥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 성령하나님께서 효과적인 파워(Effective Power)로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시작, , 목적이 모두 거룩인 것이다.

거룩하면 온 땅에 영광이 충만하다

거룩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갈 자가 누가 있겠는가?

거룩하면 멋있다.

부족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성호는 하나님이 전쟁에 능숙하심을 강조하는 것으로써 어떤 전쟁에서도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저도 감춰진 하나님의 영광을 걸레질로 낮아져서 알아가는데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결혼을 지킬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내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 지는 것을 경험했다

성령 하나님이 도와주셨기에 죽지도 않고 이혼하지도 않게 하셨기에 지금 이렇게 대단한 하나님의 경륜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걸레질 할 때 죽고 싶은 것이다.

남편한테 매 맞으면 죽고 싶은 것이다

너무 치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경륜을 성령 하나님이 조금씩 Effective Power,로 도와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지도 말고 이혼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며 진정한 거룩인 것이다

거룩만 부르짖는다고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 사역을 알고 내가 낮아져야 되는 것이다

여인의 뱃속에 점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처럼 죽어지고 낮아져야 되는 것이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같이 써야 참 거룩이다.

언젠가 한 빛 은행 부행장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칼럼내용:

예부터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너무 예의 바른 사람을 집에 초대하지 말거라. 굳이 일부러 피곤함을 만들 필요는 없단다

이건 예수 이야기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너무도 경건하고 거룩한 언어만 쓰면 옆에 사람이 피곤할 수가 있다

거룩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거룩하게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용서는 최고의 복수라는 현수막은 걸을 때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다.

이 말은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같이 쓴 표어다

어떻게 복수하기 위해 용서를 하는가?’ 하는 반문을 하면서 거슬린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설명을 하면,

우리 인생은 그렇게 거룩하지 않다.

우리는 100프로 죄인이다.

모두 복수를 꿈꾸며 전쟁을 한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백의 민족 같아서 착해 보이지만 아주 전투적이라고 기독청장 포럼에서 들었다고 한다

부부간에도 이기고 이겨야 하니 이혼율, 회사에서도 이겨야 되니까 자살률이 1,2위를 다툰다

외도한 남편 아내 속인 동업자 등등 때문에 복수는 나의 힘이라고 외친다

그 복수를 멈추고 사건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경륜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낮아짐으로 낮아지면 성령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셔서 드디어 용서를 하게하시니 우리들교회 청년 장년들이 이혼도 자살도 안 하게 된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 없이 용서하는 것은 얼마 못 간다.

거룩하다고 거룩만 외치면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다

악하고 음란한 이 세상에서 애통 절통해하며 십자가를 길로 놓아야 거룩해진다.

용서는 최고의 사랑이다.

복수라는 감정을 겪어보지 않으면 십자가에 달려 본 일이 없어서 십자가가 이해가 안 되고 용서가 사랑으로 금세 갈 수 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전도연이 용서한다고 했지만 십자가의 용서가 아니었다

용서를 한 살인자가 하나님을 믿었다고 한 그 사람은 하늘의 언어만 써서 딸의 언어를 쓰지 못하니까 전도연을 설득시키지 못한 것이다

둘 다 다 하늘과 땅의 언어를 쓸 줄 모르는 것이다

또 완전한 용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려면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입장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불신자들에게는 복수라는 단어가 Impact가 있어서 좋다고 하고 용서했다는 간증들을 듣게 된다

한 회장님이 횡령을 한 사장을 고소하려다가 이 현수막을 복 저거야!’하고 확 닿아서 고소 안 하기로 했다고도 한다

도리어 복수가 거룩하지 못 한 단어라고 신자들이 이 표어를 보고 불편하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떻게 교회가 복수라는 말을 쓸 수가 있냐고.

우리는 교회를 전혀 모르는 불신자들이 경부고속도로에서 이 현수막을 보고 복수를 접고 곳곳의 교회로 우리가 보냄 받은 자로서 곳곳의 교회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오빠영화 첫 번 째 behind story는 제작진 모두가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종교 유무를 떠나 교회 나가라고 하지 않는 영화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종교에 대한 강요는 없다.

지금 신자들 보라고 현수막 달아놓은 것이 아니다.


[
적용]

-
여러분의 언어는 주로 하늘의 언어인지 땅의 언어인지?

-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이 이해가 되십니까?  몇 프로나 되나?


4.
서로 화답하는 공동체를 경험해 봐야 한다.

(4
)

목장에서 나누는 오픈과 적용이 스랍들의 찬송소리와 같고 예배 때 마다 느껴지는 우리들교회 생기가 문지방이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해서 우리들교회 문턱이 낮아서 들어오기 쉬운 교회인 것도 맞지만 상처 많은 사람들이 오니까 요동하며 부부간의 싸움도 요란할 때가 있다

그로나 알코올 중독자인 김성우목사 아버지가 우리들교회 목장에 와도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한 바 있다

성령충만의 연기가 가득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만나면 와글와글하다

우리는 밤새 안녕이기 때문에 어떻게 되었어? 집에 왔어? 안 들어 왔어? 그 여자는 가 봤고?’하면서 애는 집에 들어 왔어?’하는 둥 우리는 일주일 전 것 말고 어제 것이 궁금한 것이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 됐어?”그래서 만나면 좋은 친구, 와글와글한 교회다

그래서 저는 거룩하지 못하다, 왜 교회에서 떠드냐?’ 고 하는 말을 안 한다.

너무 우리는 인생이 막 당일치기도 아니고 당초치기를 하고 사니까. 너무 그것이 공감이 되니까

(
이관희 성도 나눔) – 한 주 목장에서 나눔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된다. 나에게 이 목장예배가 몇 번밖에 없다고 하면 이 목장이 너무 소중한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은 일대일이 3개월 검진 받기 일주일 전에 끝나더라는 것이다. 이번 주는 과제하면서 생각해보니 3개월간 건강한 상태에서 양육을 온전히 마치는 것이 큰 미션이 되었다.

이 분이 항암을 12번하고 28번 하면서 일대일 THINK양육을 받았다. 그러니까 양육하신 분이 이집사가 너무 성실하고 모범생이어서 양육숙제를 너무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이 우선이니 숙제를 쉬엄쉬엄 하는 것이 적용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이관희집사는 양육 받고 목자도 되고 싶고 사명도 찾고 싶다고 했다.


[
적용]

-
여러분은 어떠신가? 목장을 경험하고 싶지 않나? 그렇게 꼭 마지막에 가야 되겠나? 지금 멀쩡할 때 가면 안 되겠나?

5. (
소명 받으려면) 자기가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

1절에서 4절까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과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성령이 온 땅에 충만 한 그 때 여호와의 임재와 영광을 본 후 첫 고백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 이유가 나는 입술이 부정하다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이 해야 할 말들인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을 보면 살수가 없다 그러니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나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한다

아마도 이사야는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 기존 가치관이 산산조각 나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사야는 자신도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이 있다고 한다

죽어지는 경험을 하고 하나님 영광 앞에 선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그런데 왜 유독 입술이 부정하다고 하는 걸까?

선지자는 말씀으로 사역해야 하는데, 입은 말씀을 전하는데 가장 필요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가장 쉽게 죄를 지을 수 있는 기관이다

내가 던져지고 오픈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부름 받은 인생을 증거해야 하는데, 말로 하다 보니까 이 소명을 말로 전하다 보니까 말을 잘하면 다들 이단, 삼단에도 넘어간다.

그러나 진실하지 않은 말은 화로다가 된다.

항상 나의 죄성을 보면서 가지 않으면 말씀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깨닫게 하셔서 전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열광하면 웃시야처럼 하나님자리에서 자기 입술이 부정한 것을 모른다.

정말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고 고백하는 것이 입술의 실수 때문인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딱히 욕을 해서 부정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 세상적이라 그 사람을 위해 믿음으로 애통한다고 하면 욕하는 것으로 듣고 그 사람이 어때서?  너만 믿음 좋냐?’ 하는 것도 입술이 부정한 것이다.

큐티도 잘하고 네 죄를 잘 본다고 칭찬을 하면 큐티만 하면 뭐하냐? 살림을 잘해야지라고 하는 것도 부정한 것이다

핀트 안 맞는 꾸중과 칭찬도 모두 부정한 입술이다.

소명을 받으려면 입술이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장에서 부목사님들도 목원으로 시작을 하는데 이 목원인 부목사님 보고 아내를 사랑하냐?’고 물으니 대답을 금세 못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아내가 예쁘냐?’고 하니까 대답을 못 하고 마음씨가 예쁘다라고 한다. 또 솔직하답시고 10년동안 당신이 입은 옷이 단 한번도 맘에 든 적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러니까 아내가 상처를 받는 것이 당연한데 아내가 목장에서 이런 나눔을 이렇게 받아내니까 자유롭게 우리들교회 목장에서 하는 것이다. 이런 예기를 안 하니까 다 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목장보고서를 읽고어떻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그런 나눔을 목장에서 하느냐?’고 물으니 내가 아내 팔아서 설교해서 성공 좀 하려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부정한 입술이여!’라고 했더니 하나님은 목사님 다리에 핀 숯을 대어서 다리를 분 지르셨다


[
적용]

-‘
화로다. 망하게 되었다하고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있나?

-
날마다 생각하기 싫어서 칭찬만 한고 조금 알면 비판만 한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나?

제가 설교를 안 하고 이런 식으로 큐티를 하고 소 그룹 모임을 교회 개척하기 전 20년 동안 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가 체휼이 되어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설교를 한 것이 아니고 잘 들어 준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설교 들으러 온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거해서 그때는 제목을 정하지 않고 한절 한절 매절 순서대로 이야기 했다

한절 한절 말씀을 통해서 제 이야기를 하면 상대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설교한 것도 아닌데 말씀이 좋아서 깨닫고 나누고 기도하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목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사야의 고백이 이런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입술이 부정하다

그렇게 말을 하면 이 시대를 품고 가야 한다

6.
핀 숯으로 죄사함의 은총을 경험해야 한다.

(6-7
)

이사야가 자신이 망하게 되었다고 입술이 부정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 고백을 들으시고 재단에서 집은 바 핀 숯불로써 입술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해주셨다.

먼저 죄를 고백해야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

그러나 핀 숯을 갖다 댔다니 얼마나 아프겠는가

입술이 가장 예민하고 얇은 부분인데 그냥 숯도 아니고 핀 숯을 갖다 대야지만, 정말 그 정도나 되어야 말조심이 되는 것이다

소명은 자나깨나 말조심, 꺼진 말도 다시 보자.

그 정도로 말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소명의 절대적인 적용은 말조심인 것이다

이것이 죄를 용서 받은 경험을 갖지 않고는 말조심하기가 어렵다.

내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날마다 내가 입술이 부정하다고 고백할 때 굉장히 아픈 것인데 고름을 터트려 수술을 해야 하니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 수술이 되어서 새 살이 돋는 것이다

제단에서 나온 핀 숯이니까 말씀의 불로 처방하고 받는 것이 너무 아프다.

네 죄가 사해졌다는 말씀에 처방을 잘 받으니까 하나님이 처방으로 핀 숯을 갖다 댔으니까 너무 아픈데 맞습니다라고 한다

드디어 이사야에게 생기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죄 선언을 들어야 한다.

정죄의 마음이 아니라 회개가 인간 최고의 감정이라고 했으며 미움도 슬픔도 아름다움도 아닌 것이다

회개가 인간 최고의 감정이기 때문에 제가 눈물을 흘리지만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는지 모른다


[
적용]

-
말조심하라고 입술에 댄 핀 숯이 있나?

-쉽게 적용하면 즉, 목장에서 처방 받으면 감사한가? 기분이 나쁜가?

믿음의 분량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너무 기분 나쁜 것이다

인간은 지옥 불에서 올라온 자존적인 교만이 있기 때문에 나보고 틀렸다고 하면 너무 기분이 나쁜 것이다

제단에서 나온 핀 숯이니 얼마나 아프겠나? 이해가 되는 것이다

목자가 그 사람 분량으로 내려 가서 땅의 언어를 쓰지 못했기에 그런 것이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정말 위해서 이야기 해 주었지만 설명을 못 해 준 것일 뿐이다

살인자가 전도연에서 설명을 잘 못해 주는 것이다

나 혼자 용서 받았다고 하면서 그 사람 염장을 지른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그 사람 분량에 맞게 잘 써야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분 나빠하지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목자들이 이해타산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7.
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8
)

이사야가 죄를 고백하고 사죄 받은 다음에야 소명을 주신다. 순서가 바뀌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마치 혼잣말로 탄식하듯이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시자마자 화로다망하게 되었다고 하던 이사야는 주의 목소리를 예민하게 들어냈다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딱 알아차리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는데 이사야의 반응이 달라진 것이다

다른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부르심 받고 처음엔 안 가겠다고 주저하고 거절한 것에 비해 그는 이미 사역을 시작했지만 회개의 은총을 경험함으로 선지자 사역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 때 하나님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해야지 처음부터 난 아닙니다내가 가겠습니다. 잘 될 줄 믿습니다라고 하는 사람 중 누가 믿음이 좋아 보이나?

금새 열심인 사람이 믿음이 좋아 보이겠지만 주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이 주님이 쓰시는 사명자가 되는 길이다.


[
적용]

-
소명 받기 위해 (1)웃시야가 죽어야 하고 (2)높이 들린 주님의 보좌를 봐야 하며 (3)입술에 핀 숯이 대야하며 (4)죄 사함의 은총을 경험하고 (5)주의 목소리가 들려 소명을 받는 것인데 나는 어느 순서에 있나?


우리 모두 성경대로 인내하며 주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
적용]

-
여러분은 부르심인가? 자원함인가? 아니면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인가?


이사야는 이미 소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이사야는 진짜 주의 목소리를 듣고 누가 갈꼬?’하는 소리를 듣고 반응을 한 것이다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이 제일 좋은 것이다


<
공동체 고백>

(
이관희 집사님 목장 나눔) –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고쳐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짠하고 회복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 때 했지만 예레미아 묵상하며 한 순간에 무엇이 되기 보다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길고도 멀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고쳐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말씀 안에서 영육이 회복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들교회 오면서 자꾸 내 죄를 보라 하는데, 내가 스스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회개는 할 수 있었지만 이번 3개월 동안 통증을 동반한 피를 쏟을 때 내 죄 때문에 찢어지도록 가슴이 아파왔다

개인적으론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깊은 잠을 자다가 가슴이 터질 것 같이 힘들었는데 지난 날의 회환이기도 하지만 참호의 기도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이 힘든 시간이 필요했기에 허락하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3개월 너무 힘들었지만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재산이나 다른 것으로 치실 수도 있었는데 어찌 할 수 없는 생명으로 치시니 하나님 앞에 급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어서 하나님께서 저의 교만을 다루시는 것으로 깨닫게 되었다.

맨 끝에는 소식:  이관희집사님의 통증이 다시 시작되고 지금까지 항암이 큰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모두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라는 기도 제목이 올라와 있었다

마지막까지 항암을 12, 28번 그렇게 하면서도 이렇게 일대일 양육을 다 받고 목장에 오는 것이 이 세상의 기쁨으로 알고 그 때문에 투병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모르핀을 안 맞은 것은 맑은 정신으로 성경을 보기 위함이고 설교를 듣기 위함이라고 했다

(추가 적용)

-여러분 너무 건강한데 설교를 들으시나?

-너무 건강해서 설교 안 듣고 있진 않나?

 

마지막까지 자기의 모든 것들을 나눠주고 가고 일대일 양육도 받고 평범하지만 정말 불꽃같이 살다가 주님 품으로 갔다

기독교 영화는 두 주 이상 상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두가 영화 ‘교회 오빠’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 반드시 삶의 모든 문제영역에서 해석이 될 것이다.

안 믿는 사람들도 좋은 평을 한다

기독교가 아니어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상한 기분이 생기는 영화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이상한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하게 해주는 영화인데 벤허를 능가하는 영화라고 종교와 상관 없이 큰 울림을 주는 영화라고 한다


각자의 환경에서 소명을 찾고 암이면 암에서, 직장이면 직장에서 부부관계에서 그냥 하루하루 여전히 잘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큰 소명인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이관희 집사도 양육훈련 받았고 오늘 하루가 주어진다면 거룩을 이루기 위해 좀더 온전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났지만 어마어마하게 소명의 삶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소명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나의 모든 환경이 소명의 장소이고 부르심의 장소이다.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살면 그곳이 부르심의 장소이다.




. 느낀 점

 

주일예배 말씀 듣고 목장식구들과 교회오빠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영화 내내 이관희 집사님의 투병과정과 간증과 믿음의 내면에서 주님이 이집사님의 투병 여정을 통해 주시는 말씀 말씀이 모두 마음에 와 닿아 회개가 되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관희 집사님은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주님 품 안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이 시대 믿음의 표본이며 이 시대 (Job)’의 부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사건보다 더 지독한 고난의 시대로 돌입을 하니까 난국의 시대에 적극적인 소명을 받게 되는 이때가 웃시야 왕이 죽던 때인 것 같습니다.

 


*소명 요약 7가지:

 

(1)위기의 때가 기회이다

(2)드러낸 것 보다 가리운 것이 많아야 한다.

(3)삼위일체의 거룩이 있어야 한다

(4)서로 화답하는 공동체를 경험해 보아야 한다.

(5)자기가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6)핀 숯으로 (입술을 대어) 죄 사함의 은총을 경험해야 한다.

(7)주의 목소리를 듣고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으로 반응해야 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20. 12:25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의 저서 "결혼을 지켜야 하는 11가지 이유" 부분 요지 정리 및 느낀 점]

 

 

*느낀 점

 

이 책에서는 성경에 담겨 있는 결혼관과 이혼을 안 함으로써 어떤 복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다 녹아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히브리서 4;12~13/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 Nothing in all creation is hidden from God's sight. Everything is uncovered and laid bare before the eyes of him to whom we must give account.)하시는 그 말씀에 근거하여 지체들의 경험이 진솔하게 녹아 있는 간증을 통해 해석해 주시고 해부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70번씩7번이나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으며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가시면서 70번씩 7번 용서하는 사랑을 몸소 보여 주셨다(15)고 하십니다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는 바리새인들이 던지는 질문은 꼬투리 잡으려는 함정수사 식 질문인데 남녀는 본래 동등한 관계이며 여자는 종도 아니고 마음대로 버려도 되는 대상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남자도 무능하고 힘든 남편이라고 미워하고 떠날 수 없다(18)고 하십니다.

 

“1+1=2”가 아니라 “1”이 되려면 각각의 “1”“1/2”이 되어야 하는 등식이 필요한데 둘이 하나되기 위해서 나의 반을 버리고 대신 배우자의 반을 채우는 것이 둘이 한 몸 되는(1+1=1) 공식(20)이라고 하십니다. 

 

나의 절반을 버리고 상대방의 절반으로 채우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은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21)고 하시니 영적으로 명쾌하고 확실한 해석이므로 할렐루야 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불신결혼을 합리화 해도 하나님 없는 사랑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불신결혼의 이면에는 결국 욕심이 자리잡고 있다(24)고 하십니다

 

음행이란 정혼 기간 중 일어난 성관계, 근친혼, 무분별하고 회개할 두 모르는 성생활 등을 의미하며 한 번의 외도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진 외도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따라서 본처와 본남편을 버리고 시집, 장가가는 것도 역시 음행(28)이라고 하십니다.

 

결혼의 본래 목적은 끊임 없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킴으로써 조금씩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며 행복이 아닌 거룩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서 본래 품으신 결혼의 목적이라고 하십니다. 내 힘으로는 거룩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힘든 배우자를 붙여서 거룩해지게 하시는 것이니 지금 내 배우자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나를 거룩하게 하는 축복의 통로임을 인정(31)하라고 하십니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뽑아내고 싶은 가라지(毒 보리)가 있다면 먼저 내 속의 가라지를 처리해야 하는데 독초처럼 나와 가족을 갉아먹는 욕심과 미움의 가라지를 뽑아내고 하나님의 곳간을 채울 알곡이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씨를 가진 한 사람이 되어서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전파할 것(68)을 권면하십니다

 

힘든 전쟁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길갈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나의 죄와 수치를 사해 주신 곳, 나를 죽음 가운데서 구원하신 곳, 나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길갈의 간증을 기억해야 하며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은혜와 약속을 기억할 때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용서와 사랑을 해낼 수 있다(122)고 하시니 할렐루야입니다

 

이혼의 조건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라고 권하려면 먼저 변화된 나의 삶을 증거로 보여 줘야 하며 상대를 탓하지 않고 내 죄를 회개하는 모습, 내 죄를 인정하기에 상대방의 어떤 것도 용서하는 모습이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151)고 하십니다.

 

내가 참았다고, 내가 기도했다고, 내가 전도했다고 생색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신령한 것으로 뿌렸어도 육신의 것으로 거두지 않는 것이 복음의 열매이며 육신의 것을 받지 않았기에 2,000년 동안 바울의 열매가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눈에 잠깐 나타나는 육신의 것은 그것으로 끝이지만 영적으로 수고한 것은 영적인 것으로 거두는 것이 진정한 보답(174)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권리를 쓰고 있는 것인데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누릴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한 것을 인정하고 복음에 빚진 자로서 복음으로 인하여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이 우리가 받을 상급이며 내 마음대로 살 권리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할 권리가 세상에는 없는 우리만의 상급(176)이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얻은 권리는 복음을 위해 나의 권리를 쓰지 않을 권리인데 나에게 어떤 자유와 어떤 능력이 있어도 복음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것이 내가 받을 상급이며 썩지 아니할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십자가를 지는 것이 우리가 누릴 자랑스러운 권리이고 영광스러운 상급(179)이라고 하시니 믿음의 상급에 대한 나의 가치관과 권리를 재 정립하도록 묵상하기를 소망합니다.

 

일단 불신결혼이라도 결혼을 했다면 어떤 이유로도 이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이혼은 당신의 영원한 올무가 될 수 있고 끝 없는 가족의 상처가 될 수가 있음(217)을 증거해 주십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17. 17:40

["중독과 은혜" 내가 본 핵심요지와 독후감(제랄드 메이 지음_이지명 옮김/229)]

 

 

가.핵심요지: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욕구를 품고 있다

신앙과 관계 없이 이 욕구는 우리의 가장 깊은 갈망이며 가장 값진 보물이다

사랑에 대한 욕구는 사랑하고자 하는, 사랑 받고자 하는, 사랑의 근원되신 분께 좀도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이다

사랑에 대한 욕구는 안간 영혼의 본질, 즉 우리의 가장 강렬한 희망과 가장 고결한 꿈의 기원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 안에 이 욕구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다

하나님은 삶을 통해 사랑에 대한 욕구를 자라나게 하시며, 가장 큰 두 계명, 내 마음을 다하여 주 녀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완수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신학적으로 죄는 우리를 사랑으로부터, 즉 우리자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의 두 가지 원인은 억압과 중독이다

우리 모두는 억압과 중독으로 인해 고통 받는데 이 중 억압은 그 정도가 한결 가벼운 것이다

강렬한 사랑의 욕구를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열정(passion)이란 단어는 고통 받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파수스’(passus)에서 파생되었다

사랑이 기쁨과 괴로움도 동시에 안겨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종종 이 괴로움을 초소화학 위헤 사랑에 대한 욕구를 억압한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한 후, 우리는 이 욕구를 억눌러 버린다

우리 안의 열망들이 우리에게 아픔을 줄 때, 우리는 그런 열망들을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열망들을 똑 같은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방식으로 다가오시지는 않으며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욕구를 억누른다

억압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문제지만 우리를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또 다름 힘인 중독을 훨씬 더 해롭다

억압은 욕구를 억누르는 반면, 중독은 욕구에 집착하며 욕구의 에너지를 특정한 행위나 사물 혹은 사람들에게로 속박시켜 노예로 만든다

그리하여 이 집착의 대상들은 우리 마음을 빼앗고 강박 관념이 되어 삶을 지배하게 된다

중독의 심리학적, 신경학적, 영적 역동이 모든 인간의 내부에서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관념과 일, 관계, 권력, 기분, 환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 다른 일들에 중독되는 과정은 알코올과 마약중독에 이르는 과정과 동일하다

우리는 말 그대로 모두 중독되어 있다

중독은 우리 자신의 최악의 적이다

중독으로 인해 스스로 만든 사슬에 자신을 속박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은 이 사슬을 통제할 수 없다

중독은 우리를 모두 우상숭배자로 만든다

집착대상을 숭배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나님과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중독은 우리 안에 고집을 낳지만 또다시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존엄성을 침해한다

중독은 우리 본성의 고유한 일부 인 동시에 본성의 대적자다

인간 자유의 절대적인 적이며, 사랑에 대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역설적인 것은 중독이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깊이 깨닫도록 이끈다는 것으로 중독은 우리를 무릎 꿇게 할 수 있다

중독은 적절한 치료법을 적용한다고 해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독의 특성상 중독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중독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중독에 대한 이해는 은혜를 깨닫도록 도와줄 것이다

은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은혜는 억압과 중독 그리고 모든 인간 내면의 자유를 억압하는 내적 혹은 외적 힘들을 능가할 수 있다

은혜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11~15)

 

하나님은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시기 때문에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중독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우리와 더 함께하시며, 더 친밀하시며, 더 변함없으시다

하나님은 항존하시는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속자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적으로 열정적이고 신실하게 사랑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규범이 되시지 않는다

종교의 구조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종교의 구조가 대리 신이 될 수 없다

믿음의 교리, 생활규칙, 행위의 표준, 성경에 의지하는 것은 모두 진정한 영적 생활에서 필수적이다

하나님은 성만찬을 통해 놀라운 능력을 행사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의 매개체들이다

그러나 그것들 자체에 중독되면 우리 마음의 자유에 장애물이 된다 (125)

 

믿음의 척도는 얼마나 진정으로 은혜의 진리에 모험을 걸려고 하는지에 달려 있다

과거의 경험은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신뢰는 삶 전체를 편안하게 해주고 위안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은 결코 오랫동안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

신뢰가 자라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 자신의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모험을 하라는 도전을 받게 된다

믿음의 꽃이 한 송이 피어나 신뢰의 열매가 맺기까지 자라는 동안, 또 다른 믿음의 싹이 생겨나 또 다른 도전을 향해 피어난다

이런 이유로 믿음은 결코 집착이 될 수 없다(165)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나 관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만큼 은혜의 능력이 빛나고 신비스러운 곳은 없다

그 힘은 사람들로부터,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사랑만이 아니라, 마치 한 사람과 그 옆 사람 사이의 바로 그 공간을 통과하는 듯한, 사람들 가운데서 쏟아져 나가는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바로 그런 환경 안에 있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능력에 젖는 것이다 (219)

 

근본적인 단순함은 중독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표시며 진정한 영적 성장의 표시이기도 하다

14세기 체코슬로바키아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Jan Hus)가 이단으로 정죄되어 화형에 처해졌을 때 그의 마지막 말, “오 단순함에 축복 있으라

알코올 중독을 극복한 사람의 지갑에서 꺼낸 카드에 쓰여진 문자 “K.I.S.S.” 는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얻은 것이라고 하는데 단순하게 살라고, 바보야)”(Keep It Simple, Stupid)라고 생각된다 (225)

 

하나님이 진실로 우리를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 창조하신다면, 우리는 끝없는 고통이 아닌, 기쁨과 자유의 삶을 마땅히 누려야 하지만 하나님이 또한 우리를 하나님을 향한 타고난 열망을 지닌 존재로 창조하신다면, 인간의 삶은 역시 열망과 미완성의 성취의 결핍을 감수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사랑과 소망과 성장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만, 또한 열망과,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완전한 사랑을 향한 동경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집착이 드러나고 우상들이 파괴될 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마음은 더 크고, 더 순수하고, 더 많은 동경을 느끼게 될 것이며 이 특별한 고통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227)

 

우리가 중독에 대항해 싸워 나가는 특정한 싸움들은, 축복받은 고통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 가지 집착대상을 빼앗기는 것은 우리 영혼의 깊고 거룩한 궁핍함을 맛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우상을 초월하기 위한 싸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굶주림에 접촉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금욕이라고 불러 온 것은 더 이상 집착을 다루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가 내릴 것을 확신하기에, 그리고 우리가 지금의 기적과 앞으로 올 에덴동산의 상속자인 동시에 공동 창조자라는 분명한 사실로 인해 우리 본성의 관야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길 원하며 그 광야의 빈 공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결론 맺습니다 (229)

 

나.느낀 점

 

우리는 모두 중독자인데 종류와 장르가 다르고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시점과 관점이 상이한 상태로 중독과 접속이 되어 있어 스스로 중독을 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중독의 특성상 중독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중독을 강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독에 대한 이해는 은혜를 깨닫도록 도와줄 것인데 은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며 은혜는 억압과 중독 그리고 모든 인간 내면의 자유를 억압하는 내적 혹은 외적 힘들을 능가할 수 있으므로 중독을 끊어 줄 수 있는 은혜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나 관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신앙공동체 안에서만큼 은혜의 능력이 빛나고 신비스러운 곳은 없다고 합니다. 그 힘은 사람들로부터,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사랑만이 아니라, 마치 한 사람과 그 옆 사람 사이의 바로 그 공간을 통과하는 듯한, 사람들 가운데서 쏟아져 나가는 사랑을 포함하고 있는데 바로 그런 환경 안에 있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능력에 젖는 것이라는 처방이 우리들교회 목장공동체의 힘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척도는 얼마나 진정으로 은혜의 진리에 모험을 걸려고 하는지에 달려 있으며 신뢰는 삶 전체를 편안하게 해주고 위안을 줄 수 있지만 믿음은 결코 오랫동안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는 논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신뢰가 자라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 자신의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모험을 하라는 도전을 받게 되며 믿음의 꽃이 한 송이 피어나 신뢰의 열매가 맺기까지 자라는 동안, 또 다른 믿음의 싹이 생겨나 또 다른 도전을 향해 피어나는 것이고 이런 이유로 믿음은 결코 집착이 될 수 없다는 것에 공감이 됩니다.

 

근본적인 단순함은 중독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표시며 진정한 영적 성장의 표시라고 정의하는데 알코올 중독을 극복한 사람의 지갑에서 꺼낸 카드에 쓰여진 문자 “K.I.S.S.”(Keep It Simple, Stupid/ 단순하게 살라고, 바보야)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명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또 하나의 K.I.S.S. “Keep It Short & Simple”(간결하고 단순하게 유지하라)입니다.

 

의견 발표나 질문, 목장 나눔 그리고 공동체 대화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Short, Sharp, and To the Point(S.S.T.P)”<간결하고 예리하고, 핵심을 찌르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Shalom ~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13. 17:26

[우리들교회 2019 5 12일 주일예배말씀요약 (김성우 목사님/ 이사야 6:1~13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가.말씀요약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입술이 부정한 입살롬 김성우 목사이다.

5
년전 이맘때쯤 분별없는 말로 말 금지로 치리 받고 입살롬으로 놀림을 받았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입살롬이 하나님의 샬롬을 전하는 입샬롬이 되어가고 있다.
새벽설교 이후 수많은 나눔과 화답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담임목사님 간증과 에스겔 말씀 다른 성도 님들의 간증이 많이 생각났다.

제가 동시에 3명의 여자를 만났을 때 현재 권찰이 당신은 안돼. 당신은 또 그럴 거야!’ 했다. 제가 악하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했기에 얼굴에 비비 크림 바르고 음란하고 돈을 좋아하고 입술이 부정한 모든 것이 망한 자였는데 공동체의 수많은 수고로 제 속에서 조금씩 구원의 싹이 자라듯이 모든 것이 황폐해진 곳에 하나님께서 그루터기가 남아있다고 하신다.

아무 소망이 없는 저 사람에게 오늘 주님은 아직 씨앗이, 그루터기가 남아 있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고 탄식하신다.

1.
나의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을 허락하신다.

1


우리는 살아가면서 간혹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내 삶에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때 극한의 경험을 할 때, 내 거짓말이 다 드러날 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원망의 대상을 찾기도 하며 환경 넘어 누군가를 원망하던 그때가 바로 웃시야 왕이 죽던 때이다.

중학교 때 경매로 집이 넘어가고 허름한 곳에 들어갈 때, 술 취한 아버지의 욕설과 폭력으로 힘들 때, 죽고 싶어 신학대로 갈 때, 사업하다 망해 빚더미에 앉았을 때, 공황장애로 경부고속도로에서 멈춰 움직이지 못할 때, 세 명의 여자에게 거짓말이 드러나 삼자대면을 할 때...죽음과 죽음 너머의 삶과 이 땅의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가 웃시야 왕이 죽던 때이다.

2
주전 경찰이 전화 와서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병원을 안 간다고 난동을 피우고 있다고 한다.

급하게 대전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사고현장 근처 외과에 입원하고 있었다. 옷은 다 찢어져 있었고 노숙자와 같은 모습에 발 골절이 되어 있었다. 서울 병원으로 옮기자 했는데 절대 안 간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으셨다.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와 다음날 사설 구급차를 불러 다시 내려갔다.

그 주 말씀에 세 여자가 무덤을 향했다고 했는데, 그 여인들의 마음이 제 마음이었다.

병실에 들어가니 침대 위에 아버지가 안 계셨다. 혹시 아버지가 괜찮아 지셨나 했다. 아버지는 늘 술을 마시러 가는 장소에 계셨다. 두 팔로 기어서 그곳으로 갔다. 너무 화가 났는데 그곳에 가니 이미 아버지의 옷과 신발은 누더기가 되어있었고, 너무 화가나 아버지를 버려두고 오고 싶었지만, 시편 119편 말씀이 생각나 아버지를 제 차에 옮겨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평범하게 흐르던 제 시간이 또 다르게 흐르게 되었다. 아버지를 차에 내리고 검사를 받게 하고 하는데 휠체어에 타신 아버지가 오줌을 싸셨다. 멘붕이었다. 병상에서도 오줌을 싸셔서 악취는 기본에 병원에서 욕설은 덤이었다.

아버지는 늘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리고 명령조나 단 답 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신다. 결국 처음 간 병원에서 쫓겨났다. 두 번째 병원에서도 쫓겨나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도 받기 전에 쫓겨났다. 수많은 검사를 받고 또 쫓겨나고. 결국 5번째 병원 서울 의료원에서 가까스로 받아주셔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정말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그때 자녀들 때문에 학교 찾아가 선생님들에게 빌고 또 빈 우리들교회 성도 님들이 생각났다. 하나뿐인 누나에게 전화했는데 누나는 남이 섬에 23일로 놀러 가고 저 밖에 없었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그때가 바로 나의 웃시야 왕이 죽던 때였다.


[
적용질문]

-
나의 웃시야 왕이 죽었습니까?

-이때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2.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과 내 죄를 보여주신다.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가 나의 구원의 시간이 흐르는 시간이다. 어디를 보는지가 중요하다. 이사야는 지극히 높은 하늘의 보좌를 바라보았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내 시선이 향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시선을 향한다는 것이다.

죄 고백과 말씀이 있는 예배와 목장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며 그곳에 내 시선을 고정시킨다는 것이다.

저도 큐티, 말씀이 없었으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목장의 수많은 스랍들이 고백하고 간증하며 모든 영광을 자기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 예배와 목장에 이 곳에 주님의 거룩한 영이 임재하신다.

이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 시간에 나의 시선과 발걸음을 이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신분이 높은 사람, 처소 없이 떠돌아 다니는 사람...모두 자신의 얼굴을 가리우고 함께 모여 거룩을 외치며 화답하는 사람의 기도소리가 있는 바로 이곳으로 들어가야 수많은 간증들로 하나님의 거룩함이 울려 퍼지는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거룩하다 하는 수많은 응답을 들을 때 이 순간을 통과하고 사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환경, 문지방을 넘어 예배로 목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가 우리들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문지방이 낮아 아버지가 여기에 앉아있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아 좋다.


[
적용질문]

-
말도 되지 않은 기가 막힌 사건 앞에서 내 시선과 발걸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
문지방을 넘어 예배, 목장으로 가고 있습니까?

-
이 기가 막힌 사건에서 내 죄가 보이십니까?

5


그때 - 내가 문지방을 넘어 나아갔을 때, 주의 영광으로 향 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그곳에서 내가 죄인임이 고백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고 모든 것이 파괴된 그 상태...망하게 되었도다.


저도 예배와 말씀이 없었다면 아버지 탓, 환경 탓,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침상에 누이는 것을 보고 제 아버지를 섬길 수 없는 죄인임이 깨달아졌다.

오바댜가 자기 죄 이야기를 하는데, 공동체와 말씀 앞에서만 우리는 내 죄를 볼 수가 있다.

나로 인해 내 가정이 내 자녀가 가장 사랑하는 저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었구나. 큰 죄인임이 깨달아지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 수 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가 없었다면 나는 내 할 일을 잘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제가 도와드린다며 하루에 2만원씩 드리며 제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돈으로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시고...

노숙자와 다름 없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사시는데 저는 좋은 집에 호의호식하며 관심이 없었다. 돈으로 컨트롤하며 교회만 나오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냄새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오고 싶지 않은 남도 속고 나도 속는 악한 자이다. 손과 발이 가는 섬김을 너무 싫어하는 저의 고백을 하나님은 받아내셨다.

이번 사고를 통해 아버지의 모든 숨은 질병을 고치는데 값을 치르게 되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아버지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죽을 때까지 돈만 보냈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포기한 저의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누가 힘든 내 백성에게 누가 나를 위해 갈꼬?’ 하신다.


3.
탄식하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려주신다.

8


우리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내 죄로 인해 탄식하고 무너진 삶 속에서 내 죄를 용서 받은 자 만이 이 목소리에 반응할 수 있다.

저는 세계 선교를 한다며 떠들어대면서도 아버지만큼은 근처로 모셔올 수 없다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피해왔다.

지옥에 가도 마땅한 저에게 제단에 핀 숯으로 내 죄를 사하여 주셨음에도 주님의 일과 부르심에는 무관한 저였다.

힘든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마지막까지 수고하는 기회를 주셨는데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하신다.

[
적용질문]

-
저 힘든 가족, 사람에게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말씀하시는 주님의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
이 목소리에 순종하여 나는 오늘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
나는 외면한 체 주님의 목소리를 회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그루터기가 남아 있다.


서울 의료원에서도 퇴원 경고를 몇 번 받고 예상보다 빨리 퇴원하게 되었다. 지난 목요일 퇴원하는 날인데 아버지가 무릎이 너무 아파 걷지를 못하시며 비명을 지르셨다.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시고...새 옷을 입혔는데 또 새 옷에 오줌을 싸셨다. 본인이 당황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평안하시고 제가 당황하고.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병원에서는 빨리 나가라고 하고 서류를 이것저것 떼야 하는데 공황장애가 있는 저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육중한 아버지를 옮기고 짐을 싸고 새로운 병원에 가서 좁은 입원실에 들어간 첫날 밤, 또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고 간호사들에게 고함을 질러서 첫날에 또 강제퇴원 경고를 받았다.

아버지는 지금 5일째 식사를 하지 못하신다. 먹기 싫다고 죽고 싶다고 하신다. 한쪽 눈이 실명한 상태이고 대소변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심전도가 심장마비와 너무 유사해 당장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한다. 아버지가 휠체어 타고 1층에 내려가 집에 내려가겠다고 소동을 피워 당장 병원에 갔더니 오늘이라도 당장 퇴원하라고 하시기에 빌고 또 빌었다. 주일 설교 준비를 해야 하는데 너무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갔더니 움직이지도 못하겠다고 하신 아버지가 혼자 짐을 다 싸고 아버지는 집에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제가 집이 없다고 대전 집도 이젠 없다고, 도대체 집이 어디냐고 하는데 아버지는 계속 집에 가겠다고 하신다. 반겨주는 자녀도 반겨주는 아내도 아무도 없는 갈 곳도 머물 곳도 없는 아버지는 계속 집에 가겠다고 하신다. 아버지에게 집이 없다고 화내면 저를 보고 그냥 웃으신다.

주여 어느 때까지이니까?’ 하고 탄식이 나오는 하루하루 이다.

모든 것이 무너질 때까지라고 주님은 대답하신다.

아버지는 이미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한 상태이다.

제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크게 사고가 나서 뇌 수술을 크게 하셨었다.

이번 사고 영상을 보니 1톤 트럭에 치여 날아가셨다.

뇌 사진을 찍어보니 전두엽이 다 망가졌다고 했다. 예전 뇌 수술 때부터 그 뇌가 망가진 것 같다고 하셨다. 전두엽이 폭력과 폭언을 조절하는 것을 담당한다고 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이 이해가 되고 도망가신 어머니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을 것이라 말씀해주신다.

아버지 사고 당하기 전날이 부활 주일이었다. 아버지게 교회 가라고 전하고 끝나고 교회 다녀오셨냐고 물었다.

무슨 말씀을 들었냐고 했을 때 추상적인 대답을 하시면 안 다녀오신 것이다.

부활 주일에는 다녀오셨다고 했다.

도마는 보고 믿었고 바울은 안보고 믿었는데, 안보고 믿은 바울이 더 복되도다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안보고 믿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병원을 전전긍긍할 때 차 안에서 한번 더 물었다. 아버지는 천국에 갈 수 있냐고 물으니 아버지는 갈 수 있다고 하셨다. 믿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부활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답하셨다. 모든 것이 황폐해지고 무너졌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루터기를 남겨주셨다. 입원해서 꼼짝할 수 없기에 머리맡에는 하루 종일 극동방송이 울려 퍼지고 술 담배도 못하시니 아버지는 점점 잘생겨지고 있다.

성도 님들의 기도 덕분에 어제 처음으로 5일만에 밥 한 그릇을 다 드셨다.

십자가를 강제를 질 수 없기에 주님께서는 오늘도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탄식하신다.

탄식하시는 그 목소리가 죄 용서함을 받은 우리 귓가에 들려야 한다.

우리가 결심한 그 순간부터 주님은 신실한 동역자를 보내신다.

하나님은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으로 저에게 구원의 시간을 주셨다.

요즘 어느 때보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룩한 자손들이 그루터기가 되어 그곳에 다시 싹이 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으로 저의 손과 발이 가는 수고를 하게 하시고 아버지에게는 구원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다.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너무 힘든 사람에게 보내시기에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하고 탄식하신다. 그 목소리, 탄식에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그 힘든 가족에게 그 사람에게 거룩한 씨, 남은 그루터기가 있다고 하신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 같지만 아직 그루터기가 남아있다고 하신다. 그것을 위해 오늘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을 허락하신다. 원수 같은 저들에게 모든 것이 무너져 황폐해진 당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고 나아가라고 하신다.

나.느낀 점

 

극한 상황에 직접 처해 봐야 내 죄가 보임이 체휼됩니다. 지체들의 간증을 들으며 안타깝고 위로의 표현이 나올 수 있지만 내 자신이 직접 그 사건 사고의 당사자가 될 경우 상황이 달라짐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들어 둔 말씀이 있어서, 말씀의 그루터기가 있어서,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을 허락하신다는 말씀에 가슴 찡 함이 느껴집니다.

 

[이사야 6:1~13]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7. 18:28

[우리들교회 2019 55일 주일말씀 요약 및 어록36選(왕상 18 1절로 15절 진실한 동역자)]

 

*순서:

 

. 말씀요약

. 말씀 어록 36

. 느낀 점

 

*내용:

 

가 말씀요약

<Porlogue>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랑하려면 진실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 진실한 자를 찾기는어렵다.

성품이 좋아 보여도 진실치 못한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 그래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배신을 당하며 살아 간다.

우리와 같은 성정의 엘리야도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해서 진실의 시험에 합격했다.

왜 진실의 시험에 합격해야 할 이유는 큰 엘리야에게 사명을 맡기기 위함이다.

여러분의 진실이 판명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쓰실 것이다.

사람에게도 쓰임 받을 것이다.

러나 쓰임 받는 것 같아도 진실치 못하면 결국 쓰임 받을 수가 없다.

아직 길이 안 열린다면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훈련 중에 있거나 아직 시험을 패스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엘리야의 큰 사명을 위해 진실함이 필요했다면 그 다음은 진실한 동역자가 필요하다.

 

진실한 동역자에 대해 살펴보자:


1.
많은 날이 지난 후에 나타난다(1~2)

엘리야의 고난과 훈련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났지만 많은 날이 지나야만 했다.

과부와 아들 두 명을 데리고 목회해야 했던 죽었던 사람이 살아 났으니 부활이었는데 엘리야는 숨어 기다려야 하는 많은 날이 필요했다.

아이가 살아나는 능력이 증명된 상황에서 기다리는 것은 더 힘들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아들을 살려냈으니 (몸과 마음) 무엇이든 줄 수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많은 날이 지나가게 한 것이 힘든 훈련이었을 것이다.

사르밧 과부와 통하지 않았겠나? 우리의 소원은 통합이 아닐까?

우리는 말이 안 통해 죽을 지경이니까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진실의 영적 지수는 달력의 기간이 지날수록 올라가게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패스한 엘리야에게 되었다며 아합에게 가라 하신다. 있을 만 하면 가라 하시고 갈만하면 있으라 하신다.

우상숭배의 원흉인 아합왕과 이세벨이 살고 있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가뭄과 기근이 가장 혹독할 이 때에 아합에게 가는 것은 사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10절에 보면 아합은 엘리야의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였다고 한다

나도 결혼 생활 13년간 숨어있었고 남편이 가고 저의 간증으로 여러 사람이 살아나도 여전히 주님을 저를 감추었다

신학을 하라는 명령도 없었고 많은 사람이 살아나도 여전히 13년간 집사로 있게 하셨다. 그사이 많은 날이 지난 것이다  

그러다 아합에게 보여야 할 시간이 되자 북한도 다녀오고 환경과 말씀 따라 큐티 선교회를 하게 하시고 늦은 날 신학을 하게 하시고 가정기근이 심한 이 시대에 저 를 보낸 것 아닌가 싶다

장유유서와 일제에 찌든 우리나라는 아이들 학대가 심하다 보니까 1923 3월에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중심으로 어린이 라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고 5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여서 어린이들의 민족정신을 함양하기 위하여 노력을 한 것이다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치렀는데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니까 일제는 민족정신함양이란 취지가 거슬려 모든 행사를 금지 시켰다

그런데 일제가 중단하였고 해방 후 첫 기념식은 1946 5 5일 오전 11시부터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어린이날 전국준비위원회와 어린이날 서울시 준비위원회가 공동주최로 행사가 거행되었다

많은 나라들이 어린이 날을 별도로 지정하여 기념하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는 따로 어린이날이 없다.

거기는 일년 내내 어린이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이기 때문이다.

우리들교회도 매주 가정이야기가 계속되니 늘 어린이를 생각하고 불신결혼, 이혼, 낙태도 막기 때문에 별도 기념설교를 하지 않는다.

불신결혼을 막는 이유는 이혼을 막자는 것으로 우리들교회 청년들이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불신결혼을 죽자고 막는 것이며 이것이 어린이를 최고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교회 다음세대는 청년부까지 전체 성도의 절반에 육박한다.

무엇이든 특별한 것보다 여전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 같다

오늘도 여전한 방식으로 열왕기 상 지난주 본문 그 다음을 읽는 것이다.

지난 주에는 영육간에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렸다고 했는데 그것도 어린이 주일에 맞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렇게 어디를 가나 가정에 대한 사명을 주시고 그것을 위해 성경을 읽고 듣고 나누고 설교하게 하신다.

큐티 선교회 처음 열왕기 상 2장 묵상을 하면서 네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히 행하면 왕위에서 끊어 지지 아니하리라하셨는데 남북이 다 같은 자손인데 북한 어린이 돕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모두 자라지 못하고 우리가 나중에 통일 이 된 후 고칠 수 없는 것이 아이들 건강이고 장애이다

따라서 이것은 너무 심각한 일이기 때문에 북한을 위해 그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로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였다

우리들교회 첫 예배 후에도 바로 그 때 추수감사절에 있어서 북한 어린이 돕기 헌금으로 분유 헌금으로 다 보낸 바 있다

우리들의 가족 구원은 일원론이 되어서 사회구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에 다녀온 며칠 후 서해 교전이 벌어졌는데 모두가 미리 다녀오길 잘했다고 하면서 지금 갔으면 모두 억류될 뻔 했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이 안 들고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보려고 테러도 불사하는 북한동포가 너무 불쌍하고 어려서부터 줄 창 세뇌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명령이 떨어지면 자살테러도 불사하는 그들을 보면서 당이 명령하면 하는 그들인 것이다

하나님을 3 6개월이 지났지만 아합이 회개하지도 않고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비를 주신다고 하면서 아합을 만나라고 하신다

이것은 이해도 안 되고 두려운 명령이다

하나님은 기근이 심했을 때 아합을 회개시키실 수 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스라엘이 형벌의 기간이기에 경고를 선포해도 아합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겪어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날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북한의 동포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기근을 겪고 있는데도 아직도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이 회개하고 있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그저께 큐티 본문인 이사야2장을 보면 남북 모두 말일, 즉 마지막이 되지 않아서 여호와의 날이 임하지 않아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남한이라고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을까?

지금 동성애에 낙태에 외도에 음란에 북한보다 훨씬 더 음란하고 패역하지 않을 까?

그런데 북한은 한 사람의 패역(悖逆) 때문에 백성이 신음해서 아파서 신음하는 사람은 죄를 지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남 유다인데 큰 선지자 엘리야 엘리사에게 우상의 나라 북 이스라엘을 허락하신다

이것을 보면서 지금도 북한에 훨씬 더 큰 선지자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 우리보다 순수하고 죄악의 양도 훨씬 적다

우리는 성경을 보며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요즘 열왕기 상을 하니까 우리와 비슷한 남북 이야기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북한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와 있듯이 남북이스라엘이 화해되는 것은 다같이 망할 때만 화해가 된다고 한다.

둘이 다 망할 때만 화해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북한이 수고를 하고 있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은 칼과 창을 들고 싸우지만 망해야 칼(swords)이 보습(쟁기날/plowshares)이 되고 창(spears)이 낫(pruning hooks)이 될 것이다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는 때가 오지 않는 것은 들 다 다 망할 때만 그렇다고 한다

그들의 결론이 바로 우리의 결론이다

축복 받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게 때문에 북한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귀가 둔해서 손이 짧아서 구원치 못하심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합을 죽일 수 없어서 그냥 두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육적으로 생각하면 같은 민족인데 너무 못 먹고 못사는 그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측에서는 최고로 좋은 것만 보여준다고 해서 보여주었지만 거기에서 가난과 슬픔을 보았다

아리랑 축전을 보신 어떤 목사님은 북한주민들의 1/10이 참여한 10만명의 아이들이 현란한 매스게임을 하는데 인생최고의 슬픔을 보았다고 하셨다

우리 믿음의 눈으로 사람을 그렇게 보아야 하는 것이다

요즘 모두가 막혀있다

우리들교회는 너무나 조용히 북한을 돕고 있다

이번 54일에도 나선지구에 러시아를 통해서 밀가루를 보냈다

싱글인 여집사님이 특히 후원을 해서 이들 물자는 탁아소와 유치원 또 소학교 어린이에게 영양 빵과 콩 두유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원료로써 매일 만 명의 어린이에게 3개월 간 영양 빵 한 개와 콩 우유 한 잔씩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하나님은 북한 같은 북 이스라엘의 슬픔을 보시고 엘리야를 그곳에 허락하신 것이다

진실한 동역자는 이런 많은 날들의 훈련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시기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동역자인가 하는 생각도 가졌지만 13년동안 무형의 교회에 있으니 한계도 있었다

그때도 하나님이 일 하셨지만 형태로 자리를 잡은 것은 역시 교회 개척 후 인 것 같다

교회를 통해서 하는 일은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힘이 있고 영광이 있고 중하다

그 동안 또 다른 진실한 동역자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생각한다

저도 50에 신학을 안 하면 큐티 모임을 못 할 수 도 있다고 해서 신학을 하긴 했지만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냥 하루하루 큐티하고 내 옆의 사람 살리는 것을 남편 가고 13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기에 많은 날을 기다린 것 아닐까?

 

(적용1)

-여러분은 많은 날이 지나서 진실한 동역자가 나타났나?  아니면 진실한 동역자가 되었나?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족의 슬픔을 보시고 여러분을 여러분 가족에게 파송하셨다는 생각이 드나?


2.
진실한 동역자인 오바댜(Obadiah)를 주셨다

오늘은 진실한 동역자로 부르신 오바댜의 7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오바댜서의 오바다는 다른 동명이인이다

1)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였다(3)

엘리야보다 세상적으로 더 준비되고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나타났다.

말을 못한 모세를 돕는 아론이 세상에서는 더 훌륭한 것처럼 세상에서도 오너체질은 한가지만 하고 비서체질은 한꺼번에 열 가지를 하는 자이다

이럼으로 비교대상이 아닌 것이다

창업주들은 못 배웠으나 그 회사들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은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면 각자 은사대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나는 비서체질은 아니다. 꼼꼼한 듯해도 지금도 잘 잊어 비리지만 어려서부터 뭔 가를 잘 잊어 버려서 흔적의 여주인공이다

그래서 시집살이도 더 심하게 한 것 같다

한가지 일만 하고 지금도 설교원고 타이핑을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를 한다.

성경을 보는데 왜 이런 걸 못하는지 모르겠다


맨 처음부터 잘 못 배워서 떠듬떠듬 친다.

지금까지 까마귀와 과부들 같이 엘리야가 가난한 자들과 같이 공궤를 받았는데 이제는 또 다른 일을 할 동역자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부정한 까마귀나 시돈 땅의 이방여인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믿음의 사람이었다.

17장부터 사르밧 과부 엘리야의 사환 등 여러 중요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역기서 이름이 언급된 사람이 딱 한 사람 오바댜가 유일하다

오바댜는 여호와의 종, 여호와를 섬기다라는 뜻의 신앙적 이름이다.

그는 이름대로 여호와를 섬긴 사람이었고 궁내대신이라는 고위직분자였다.

집권당 국가의 가장 주요한 요직에 있었다

엘리야의 천한 출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관대작인 것이다.

바알 숭배가 국가종교였던 상황에서 어떻게 여호와를 지극히 섬기는 자가 어떻게 높은 지위에 있을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못 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이 한 사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항상 한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정부에도 오바댜같이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한 사람이 있길 기도한다

(
적용2) 여러분은 엘리야와 오바댜 중 어느 것을 하고 싶은가?



2) 목숨 걸고 돕는 용기 있는 자이다(4)


오바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 선지자 100명을 숨겨주었다.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는 이런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오바댜가 고위직에 있었다고는 하나 100명이나 되는 선지자를 조직적으로 구하는 것은 불가능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100명이나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왕하2 3절을 보면 선지학교 제자들, 생도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숨겼다라는 뜻은 즉, 이세벨의 마수가 뻗쳐오는 긴박한 순간에 오바댜가 신속한 대처로 선지자들을 움켜쥐듯이 취하여 피신시키는 숨막히는 장면이라는 뜻이다


목숨 걸고 구한 것이다. 극한 가뭄에 3년넘게 양식을 준 것이 목숨을 건 후원이었다.

오바댜의 신앙적 행동배후에는 하나님의 개입이 있으셨던 뜻도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시어 당신의 선지자들을 피신시키시고 먹이신 것이다.

사르밧 과부처럼 오바댜도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셔서 당신의 선지자들을 피신시키고 먹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때가 되어 쓰임 받은 것이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 인정 받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오바댜도 하락하신 것이다

이같이 순서가 다 있는 것이다

오바땨가 타협적인 인물같이도 보이지만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그가 아합의 우상숭배나 쾌락이나 선지자 핍박하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한 가지인들 기뻤겠는가?

그러나 그도 벧엘의 늙은 선지자처럼 벧엘세서 자괴감이 들어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세상에 소망이 없어도 국내대신으로 점점 더 승진을 한 것이다

인생은 살아야만 하니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역할을 주시기도 한다

소망 없는 성전, 나도 소망 없는 결혼생활 중 집에서 먼산 바라보며 지내며 언제 이 방을 나갈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살았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지금 쓰시는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3년반이나 지속되었던 가뭄에서 비를 내리시겠다고 한 것은 아합이 그 난리를 치니까 오바댜가 100명을 선지자 돕는데 한계가 이르자 직접적인 방법으로 비를 내림으로 가뭄의 재앙을 푸신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아합이 회개를 해야 하는데 아합이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우리는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명령엔 순종이 필요하다.

인간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불순종이다.

왜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가뭄을 주었다 풀었다하시는가 라고 말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는 것이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든 것만이 진실한 것이다

(
적용 3) 여러분이 목숨 걸고 도운 주의 일이 무엇인가?

3)
세상에서도 신뢰 받는 자이다(5)



이런 오바댜를 아합이 신뢰하였다

자기는 열렬히 바알을 숭배하면서도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는 오바댜를 가장 신뢰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사람은 스스로 진실하지 못하니 인격적인 사람을 신뢰하고 진실한 사람을 신뢰하고자 하는 것이 본능이다

아합이 오바댜의 능력을 신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같이 성도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면서도 능히 세상에서도 신뢰를 받고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물론 불신생활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신뢰하니 아합이 엘리야를 죽이려 하고 오바댜는 곁에 두고 신뢰하는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불신 세계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사자 굴과 풀무 불에 던져지기까지 하는 죽음의 위기를 거치지만 끝내는 승리해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총리라는 승리의 모델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신 덕분이지만 하나님이 지키고 보호하시지만 이렇게 힘들어 보이는 모델도 있는 것이다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것은 오바댜에 비해 수준이 아주 높은 모델이고 엘리야는850명의 바랑 선지자와 싸우는 것은 엘리야의 몫인 것이다


이 세상은 짧기에 어떤 사명을 주셔도 "아멘~"으로 화답하길 바란다.

그러나 세상에서 출세를 목적으로 성도임을 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목자의 적용)


리베이트를 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안주기로 적용하며 수주가 다 끊어지는 사건이 생겼다. 덕분에 망하게 되었다. 리베이트를 주었어야
하는가?

요즘은 나중에 드러나면 액수만큼 감옥도 간다.

그 일로 식구들이 낮아져 힘든 일을 하는데 목자를 하게 되었다.

이제 조금 수주가 들어오고 약간의 손 구름이 보인다. 적용하면 잘 되겠지가 아니라 팔 복을 주신다.

자녀들이 교회는 나와도 목장에는 안 나온다고 한다.

리베이트 받지 말라는 목장은 진실한 동역자인 것 같다.

불신결혼도 이혼도 하지 말라는 목장도 진실한 동역자인 것 같다.

목자가 믿음이 있어서 진실한 동역자가 아니고 그 목장 전체에서 한 사람이라도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목장전체의 의견을 구하는 그 마음을 보고 하나님은 진실한 동역자를 붙여 주시는 것을 믿는다

나도 목숨 걸고 불신결혼과 이혼 막으라는 이 사명 감당하다 가라는 사명을 주셨는데 왜 목숨을 걸어야 할까?

불신결혼 막는 것이 얼마 욕 먹는 일이고 결혼 한 번 반대하면 죽을 때까지 원수가 되기도 한다

이혼을 막기 위해 불신결혼을 막는 것이다

죽자 사자 불신결혼을 막았더니 우리들교회 청년들이 이혼을 안 하는 것이다

열매가 있는 것이다

이혼을 막아도 불신결혼을 막아도 욕을 바가지로 먹는데 왜 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명 주시지 않았으면 왜 맨날 욕먹는 일을 하겠는가?

지니고 보면 신뢰 받고 신뢰하는 자를 시기마다 붙여주셨는데 다 무시하고 조롱만 하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는가?


(
적용 4)

-여러분은 가정과 일터 그리고 교회 중 어디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가?

-
여러분은 엘리야가 사모되는가? 오바댜가 사모되는가?



4). 주의 길을 홀로 갈 수 있는 자이다 (5~6)

아합은 문제의 핵심을 아직도 모르고 물 근원을 찾아가자고 한다.

왕으로 백성의 걱정 보다는 목적이 자기 자동차인 말과 노새가 먹을 물을 찾으러 가지고 한다

말과 노새는 자기의 군사력과 상업력에 해당되니까 그런 것이다

인간의 죄성과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뭄은 하나님이 진노하신 사건인데 가뭄의 원인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는 사람 같다

죄에서 떠나는 길 밖에 없는데 당최 모르는 것이다

혹시 죄로 인한 결과를 자기 힘으로 돌이켜 보려고 쓸데 없는 시냇물 찾아 삼 만리를 하고 있지는 않나 싶다

제발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첫걸음이다.

아합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간다

결국 선택해서 갈 수 밖에 없는 나의 길은 같은 땅에 살아도 성도의 길과 불신자의 길은 분명히 다르다.

아합은 지극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동역자가 옆에 있지만 진가를 모르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같이 안 간다

그래서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간다

큐티하는 이 길은 혼자 가야 하는 외로운 길이었고 가야 할 길이었다

불신 결혼과 이혼 막는 것은 내가 천국에 갈 때까지 계속할 것이지만 하루를 여일하게 왔다

이 얘기를 뺀 적이 없다

결혼 반대하면 끝까지 원수가 된다.

이혼을 막아도 원수가 된다.

믿음이 안 들어간 사람들은 원수가 되어 욕을 많이 먹는다.

이혼을 막는데 참 원성을 많이 들었다.

오가는 세월 속에 욕먹고 가는 외로운 길이다. 사명을 주셨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적용 5) 여러분이 외로워도 홀로 저 길로 가야 할 저 길은 어떤 길인가?



5) 말씀의 종을 존경하는 자이다(7)

홀로 저 길을 가는 오바댜에게 가장 큰 상을 주시는데 말씀의 엘리야를 만나게 해 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나주신 것 같은 큰 상인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당연히 말씀의 종을 마땅히 존경해야 되는 것이다

저도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서 너무 신기했고 남편도 울타리도 없던 저는 그것을 알아 주는 말씀의 종이 있으면 내 주 엘리야여하면서 엎드리고 싶었던 적이 많이 있었다.

1990
년도 담임목사님이시던 홍정길 목사님께서 제가 미국연주여행에서 간증한 것을 들으시고 추천하셔서 코스타(국제복음주의 학생연합회) 유학생 집회 강사로 권유해 주셨다

그 때 기라성 같은 목사님들(옥한흠목사님 등)이 강사로 오셨다

나는 선택 식 강의 하나를 부탁 받고 간 것인데 그것만 해도 영광인 것이다

그 때 저는 30대 서리집사였다

하루가 지나고 첫 날 아침 야고보서 1장 큐티를 하는데 늘 제 애기는 큐티 얘기로 들으시면 된다

그때 말씀본문 25절에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 바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이다.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1 25)

저 같이 힘든 과부들도 돌보는 것이 경건이지만 저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면 말씀으로 제 경건을 지키는 것이구나 하면서 문자적으로 오늘 과부 예기도 나오고 내가 무엇을 하면 내 경건을 지킬까 하면서 남편이 죽었는데 에스겔 말씀 들여다 보다가 살아났으니까 말씀을 들려다 보는 자는 기쁨으로 행하는 자라는 것이 맞지 않을까?

말씀을 들여다 보니까 내가 매일 힘들다고 하면 그것은 행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적용의 결론이 기쁨이다

말씀을 들여다 보는 말씀 묵상을 전해야 하는데 선택 식 특강에 들어가면 몇 명만 들어 오는데 이 서리집사 강의에 누가 들어 오겠나?

놀러 간 것이면 모를까 사명이 앞서니까 큐티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그때 마침 이동원 목사님 앞에 앉게 되었는데 저는 적용으로 전체 앞에서 큐티 간증을 해도 되냐고 여쭈었다

너무 간절한 마음으로 갔기 때문에 나는 타임당 레슨비 받는 학생들 일을 내려놓고 항공료도 내고 갔기에 너무 값을 치르고 갔으므로 말씀을 행하는 자가 들여다 보는 자라고 하셔서 행하는 말씀 적용으로 용기를 내어 제안하였다.

저는 그때 저희 교회에서도 전체 간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라고 하셨지만 쓸데없이 열광이나 비난을 당할 것 같고 때문이고 큐티 사역을 방해 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성경을 통해서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저는 고향교회에서는 사양을 한 것이다

쿠티 모임은 했지만 전체간증은 끝까지 안 하고 개척을 하게 되었다

목사님이 얼마나 시간을 주면 좋겠냐고 하여 10분 주면 되겠냐고 하는데 2시간달라하니 불가하다고 했다.

그런데 첫날 주 강사 분이 1시간을 양보하셔서 집회 오전 첫 시간에 원고도 없이 운동복 차림으로 에스겔 간증을 1시간 했다.

끝나고 이동원 목사님이 올라 오셔서 콜링을 해 주셨는데 모든 학생이  다 일어났다.

무명의 저를 워싱턴 지구촌 교회에서도 세미나를 허락해 주시고 그때는 시간을 맘대로 하라고 하셔서 5시간을 하고 왔다

옥한흠 목사님은 목회자 제자 훈련인 칼 세미나에서 저에게 에스겔 간증을 시키셨는데 옥한흠목사님은 1시간 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해 보았는데 1시간 가지고 안되니 2시간으로 했더니 끊으셨다

다음 다음 날 전화하셔서 2시간 하라고 하셔서 거기서 에스겔 간증을 하였다

사랑의 교회 순장수련회에도 오전 오후 하루 종일 큐티 간증을 했다

후에 사랑의 교회 본당에서 큐티선교회 창립예배를 드리게 해 주셨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저와 전혀 면식이 없으셨지만 인정을 해주신 큰 교회 목사님들이 왜 큰 교회 사역을 하시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대단하신 목사님들을 만나고 그분들이 인정해 주셨기 때문에 이 길을 시작을 하게 된 것 같다

말씀의 종을 만난 것 같아서 내 주 엘리야라 꿇어 엎드리게 되었다

이것이 돈으로 되는 일이겠는가? 외로웠던 나의 길에 말씀의 종을 만나 상을 주시고 힘들어도 가야 할 길이라는 도장을 찍는 만남이었다.

이후 큐티선교회 이사가 되어주신 분들의 만남도 그런 것이다.

이 이야기가 가고 오는 시대에 전해질 말이다.

나는 지금 코스타 국제이사가 되었다.

6)
권세에 당당한 자이다 (8)

성도는 세상 권력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엘리야가 여기있다 하라며 지시했다.

권세가 하나님께 났기에 당당할 수 있었다.

7) (
자기) 죄를 아는 자 (9)

엘리야는 아합을 만나고 바알 선지자를 죽여야 하는 엄청난 일을 해야 하는데 오바댜가 죄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키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사람은 한계상황에서야 비로소 자기 죄를 보게 된다.

죄는 성경의 핵심 주제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예수님 공생에 첫 설교도 회개였다.

이단이 말씀을 통해 자기 죄를 보지 않고 율법적으로 협박 성 죄 고백을 하니 문제가 있다.

죄 고백을 해도 잘 분별해야 한다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자기 죄 보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 보기가 힘들다

9~15
절을 보면 당황해 하고 불안해 하는 자는 엘리야가 아니라 오바댜였는데 그는 엘리야에게 계속 따진다

그가 자기 죄를 봐야 진실한 동역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합이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엘리야를 죽이려 했다.

육적으론 아합의 신하요 영적으론 엘리야를 신뢰하니 누구를 주로 섬겨야 할지 고민했다.

오바댜에게 육적 주는 아합이요 영적 주는 엘리야인 셈이다

오바댜는 주님을 알지만 당신의 하나님이라 하며 갈등하였다.

오바댜는 엘리야를 죽이려는 아합에게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고민한다.

13
절에서그는 생색을 낸다

그는 내가 이렇게 선지자들을 섬겼습니다 하며 자기가 한 일을 말 하였다.

엘리야는 3년반 동안 숨었다 나타났는데 괜히 아합에게 이야기 하였다가 엘리야가 사라지면 죽는 것이 오바댜 자신이라는 것이다.

오바댜가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한계 상황이 오면 말이 많아지고 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두렵고 죄가 많으니 변명이 많은 것이다

이렇게 사르밧 과부같이 내 죄를 생각나게 하시냐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동역자를 보여주신다

구원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니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두기를 원하는 것이다

3.
진실한 동역자는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 (15)

엘리야는 오바댜 입장에서 생각하였다.

아합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바댜가 편한 자리에서 안일함에 유혹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바댜를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고 언급을 하였다.

경외를 해도 이렇게 연약할 때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알았다고 하신다

에스겔도 인분 불에 떡 구워 먹을 수 없다 하니 하나님께서 알았다하시며 쇠똥으로 감해 주신 것 같이 감해 주시는 은총이 있다.

하나님도 알았다라고 하실 때가 있더라

언제나 야단만 치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르밧 과부 죄 이야기 듣고도 엘리야가 정죄하지 아니하고 기도했던 것이다

아합왕을 숨어서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와도 지낼 수도 있지만 왕궁에서 사사건건 왕에게 순종하는 것 중에서 뭐가 더 어려울까?

사르밧 과부와는 말도 통하는 관계니 그것이 어렵겠나 아합왕 밑에서 사사건건 간섭 당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렵겠나?

악한 주인 섬기는 것은 時마다 때마다 어려운 일이다



(적용6) 여러분은 오바댜가 좋은가? 엘리야가 좋은가?



믿음의 종류와 불안의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

진실한 동역자는 많은 날이 지나야 나타난다.

진실한 동역자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세상에서 신뢰받고 주의 길로 홀로 갈 수 있고 말씀의 종을 존경하고 세상권세에 당당하고 죄를 아는 자이다.

사르밧의 역할과 오바댜의 역할과 엘리야의 역할은 상호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 존중하고 존경하여야 하는 것으로 모두 진실한 동역자이다

이런 진실한 동역자는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사람도 알아주며 엄청난 일을 하게 해 주실 것이다.

사명 때문에 와서 사명 감당하다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임을 알아야 한다.

진실한 동역자를 위해 많은 날을 견디게 하시길 기도하자.

진실한 동역자의 특징을 우리에게 주시고 사명 잘 감당하게 해 주시고 북한의 동포를 위해 기도하자.

 

. 말씀 어록 36選

 

(1)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진실의 영적 지수는 달력의 기간이 지날수록 올라가게 하신다

(2) 무엇이든 특별한 것보다 여전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 같다

(3) 성경에 나와 있듯이 남북이스라엘이 화해되는 것은 다같이 망할 때만 화해가 된다고 한다.

(4) 둘이 다 망할 때만 화해가 된다고 한다

(5)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는 때가 오지 않는 것은 들 다 다 망할 때만 그렇다고 한다

(6) 축복 받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게 때문에 북한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7) 하나님의 귀가 둔해서 손이 짧아서 구원치 못하심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인 것이다

(8) 진실한 동역자는 이런 많은 날들의 훈련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9) 여호와를 경외한다면 각자 은사대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10)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든 것만이 진실한 것이다

(11) 사람은 스스로 진실하지 못하니 인격적인 사람을 신뢰하고 진실한 사람을 신뢰하고자 하는 것이 본능이다

(12)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첫걸음이다.

(13)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당연히 말씀의 종을 마땅히 존경해야 되는 것이다

(14) 말씀을 들여다 보니까 내가 매일 힘들다고 하면 그것은 행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15) 적용의 결론이 기쁨이다

(16) 성도는 세상 권력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

(17) 사람은 한계상황에서야 비로소 자기 죄를 보게 된다.

(18) 죄는 성경의 핵심 주제이다.

(19)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20) 예수님 공생에 첫 설교도 회개였다.
(21)
이단은 말씀을 통해 자기 죄를 보지 않고 율법적으로 협박 성 죄 고백을 하니 문제가 있는 것이다.

(22) 죄 고백을 해도 잘 분별해야 한다

(23)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자기 죄 보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다

(24) 회개하지 않으면 죄 보기가 힘들다
(25)
한계 상황이 오면 말이 많아지고 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26) 두렵고 죄가 많으니 변명이 많은 것이다
(27)
구원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니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두기를 원하는 것이다

(28)
악한 주인 섬기는 것은 時마다 때마다 어려운 일이다

(29)
진실한 동역자는 많은 날이 지나야 나타난다.

(30) 진실한 동역자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 (31) 진실한 동역자는 세상에서 신뢰받고 주의 길로 홀로 갈 수 있는 것이다

(32) 진실한 동역자는 말씀의 종을 존경하고 세상권세에 당당하고 죄를 아는 자이다.

(33) 사명 때문에 와서 사명 감당하다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임을 알아야 한다.

(34) 아파서 신음하는 사람은 죄를 지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35) 인간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불순종이다.

(36)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든 것만이 진실한 것이다

 

 

. 느낀 점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자기 죄 보는 것이 더 어려우며 회개하지 않으면 죄 보기가 어렵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느껴집니다.

누가 더 사명감당 잘하나? 혹은 누가 더 인정 받기에 적절한가? 또는 어떻게 더 높은 직분을 맡아야 천국에 칭찬 받으며 입성할까? 등의 비교심령이 갈등을 빚어내는 심리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바댜의 생색 일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통된 생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원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 사명 성취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되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성경말씀을 통해 오바댜를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고 언급하여 주시니 위로가 됩니다. 늘 두렵고 숨은 부끄러움의 죄가 많으니 변명이 많은 것이라고 하시니 찔림이 걸어 들어옵니다

하루를 살아도 거룩할 수 있다면 나도 오바댜의 저 길을 택하고 싶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대하기를 소망합니다.

짧은 세상에서 어떤 사명을 주셔도 아멘!’으로 화답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출세와 인정관련 가뭄과 기근으로 허무함이 간헐적으로 찾아오지만 사명 때문에 왔다가 사명 따라 살다가 사명 마치고 천국 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합과 엘리야 사이에 오바댜가 없었다면 엘리야의 사명 감당에 지장을 초래하였을 것입니다.

이같이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고 말씀에 충실 할 때 할렐루야!’ 저절로 나올 것을 믿고 누리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열왕기상 18]


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3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6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7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그를 만난지라 그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8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9
이르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10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11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12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영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말하였다가 그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13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14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그가 나를 죽이리이다
15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3. 11:08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의 생생한 성경 큐티말씀해석과 보석어록의 보고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독후감]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는데 헬라어 원어로 돌로스(duolos)’라고 쓰인 그 은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생사여탈권이 전적으로 주인에게 잘린 존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지칭할 때,

‘Paulos-Duolos-Apostolos’(바울/작은 자--사도)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목사님이 집필하신 책들 중 백미 중의 하나인데 김양재 목사님의 큐티노트로써 '백전백승 여호수아'란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를 기반으로 하여 전쟁이야기인 동시에 살아남의 이야기를 풀어 우리 삶에 접목하도록 성경예문과 해당 적용질문과 상세한 설명으로 은혜가 살아 숨쉬게 해 줍니다. 동시에 큐티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 보석어록이 차고도 넘칩니다.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에서 가장 감동 받고 양육의 길라잡이가 된 최고의 지침서이자 은혜말씀의 보고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크고 작은 전쟁의 연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해 주십니다. 그 전쟁 가운데 고난이 축복임을 알게 해 주시고 축복을 맛보게 하십니다. 오직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한 것이 없다는 것인데 진솔한 낮아짐의 정의로 생각됩니다.

 

모세도 혈기 때문에 역시 가나안 입성에서 제외되었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죽음에 순종한 것처럼 하나님이 막으시는 그것에 순종할 때 나의 죽음도 모세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고 하십니다(11)

 

리더십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앞에 놓인 길을 열심히 걸어갈 때 내 뒤의 사람들이 저절로 끌려 오는 것이라고 리더십에 대한 정의가 명쾌합니다(12)

 

또한 여호수아의 삶을 볼 때 결국 지도자의 자질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섬기는 것인데 종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지도지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라고 하십니다. 후계자의 조건은 충성과 헌신인데 충성된 종에게는 반드시 좋은 기회가 예비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는데 헬라어 원어로 돌로스(duolos)’라고 쓰인 그 은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생사여탈권이 전적으로 주인에게 잘린 존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지칭할 때 ‘Paulos-Duolos-Apostolos’(바울/작은 자--사도)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13)

 

유대인 사회에서 맨발은 종의 표시였는데 첫째도 둘째도 겸손한 자를 후대하시는 하나님은 하이힐도, 군화도 아닌 발바닥으로 밟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15)

 

발바닥 인생=지휘하는 대로 열심히 따라가는 인생=애 계획이 업는 인생이라고 하십니다. 발바닥 섬김은 자존심을 해치지 아니하며 입으로만 하는 섬김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확실한 보증수표"라고 하십니다.

 

날마다 크고 작으나 건너야 할 요단강, 즉 사건이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으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13)고 하십니다(23)

 

우리가 삼 일만 큐티하고 삼 일만 기도하고 삼 일 동안 금식을 해 보되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시작만 해도 하나님은 안식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27)

 

하나님이 내게 기적을 베푸시는 이유는 그것을 전하라는 것이라고 하십니다(80)

 

우리 인생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학교에 붙고 취직이 되고 출세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위해서 이지 내가 삶의 주인공이 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163)

 

죄는 사람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인데 사단을 끊임 없이 우리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세뇌를 시키므로 착한 사람보다 부지런하고 악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승리한다고 하십니다. 말 많고 불평 많고 지도자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337)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왔을 때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평강을 보일 수 있다며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든 세력이 우리 집안에서 물러가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기쁘게 받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354)

 

진정한 일류로 사는 비결은 내가 처한 삶의 터전에서 서로를 돌보아 주며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십니다(358) 또한 우리가 많은 것을 받든지, 적는 것을 받든지 주심 것에 감사하고 사는 성도가 일류가 된다고 일류 론에 대해 피력하시니(361) 일류 되는 비결이 느껴집니다.

 

절대로, 반드시, 언제나, 매일 결코, 항상, 이란 단어를 자주 쓰는 사람은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완벽주의가 가지는 특징을 스스로 너무 높은 기준을 정해놓고 한 번 어긋나면 그것으로 자책하면서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을 다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인색한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도 인색하고 날마다 비판이 많은데 스스로에게 엄격한 까닭에 쓸모 없는 일에 과잉 헌신하고, 스케줄에 집착하다가 본질을 놓치는 것이며 이럴 때 우리가 부지중 오살을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390)

 

우리에게 안식이 찾아 오려면 다음 5가지 경우에 해당된다고 하시는 '안식론'의 일부말씀입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를 삶의 중심에 둘 때 안식이 옵니다

2)   예배가 회복되어야 안식이 있습니다

3)   헌금=예배+신앙고백임을 알 때 안식이 있습니다

4)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곧 예배임을 알 때 안식이 있습니다

5)   말씀을 알고 실행하며 기도하고 가는 인생에 안식이 있습니다

 

망한다고해도 요동이 없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며 점점 두려움이 없어지기 때문에 사방에 안식이 있다고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가장 먼저 주심 것이 평강이고 사방에 안식을 주시는 것이 평강'이라고 하시니 할렐루야입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2인자였지만 갈렙이야말로 시기와 질투가 없는 안식의 사람이라고 하십니다(415)

 

오직 성령의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22~23/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고난이 왔을 때 내 죄를 깨닫는 것이 큰 축복이며 믿음이란 아름다운 땅'이라고 하십니다

 

100%죄인인 인생은 세상과 연합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본성으로 인해 너무 쉽게 포기하고, 쉽게 타락하고, 쉽게 세상을 기웃거리는 것이며 나의 이방신인 자식과 명예와 돈을 부르고 거기에 사로 잡혀서 헤어 나지 못하는 것이 말씀이 없는 삶이라고 정의해 주시니 말씀 듣는 구조 속에 속해 있는 것이 축복임이 느껴집니다.(459)

 

고난이 올수록 강퍅해져서 망하는 것이 바로인 반면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이 올수록 점점 겸손해지고, 믿음과 인내와 절제와 온유와 형제사람이것을 배워가는 것이라고 하십니다(464)

 

따라서 "내 옆의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은 내게 아직 훈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니 위로가 됩니다

 

모성애는 자식에게 종 노릇 한다는 말이며 하나님이 없는 난폭함과 하나님이 없는 모성애는 죄의 결과일 뿐이라고 하십니다(478)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시니 찔림이 걸어 들어옴이 느껴집니다.(483)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사단의 종이라고 하십니다(488)

 

무섭도록 말씀을 적용하는 것도 내 힘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함으로 할 수 있다고 하시니 말씀이 왕 노릇 하는 날마다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