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9. 7. 18. 10:43

[우리들교회 2019714일 주일말씀 요약 및 말씀 어록65가지(열왕기상 20: 22~ 43/그대로 당해야 하리라)]

 

 

. Prologue

인생의 목적을 모르면 뛰쳐나온다.

가치관이 바뀌면 어떤 남편, 어떤 아내와도 살 수 있다.

우리네 인생이 힘들어 보여도 성경은 그것이 삶의 결론이라고 해석해 준다.

아합이 40절에 남의 일을 판단 요청 받으면서 어떻게 할까?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해야 한다.

어떤 유명 앵커가 미투(me, too) 여성인권의 소리를 드높이던 분이었는데 지하철에서 여성 다리를 몰카로 찍다가 현행범으로 잡혔다.

본인이 남을 심판하다가 몰카를 스스로 결정해서 찍었기에 그대로 당하게 된 것이다.

우리 또한 다 마찬가지다.

내로남불 무조건 사단을 사로잡지 않으면 사로잡히게 되어있다.

 

. 말씀 요약

내가 말한 대로, 행한 대로 당해야 할 일이 많다. 왜 그대로 당할 일이 많을까?

 

1.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이다(22)

 

벤하닷과의 1차 전쟁에서 지난주에 대승을 거둔 것은 진짜 실력이 있어서 이긴 싸움이 아니다.

그러기에 선지자는 왕에게 자기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명령형 동사로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으라, 살피라고 강력하게 전했다.

성도는 사단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하든지 막아낼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한다.

주님은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성도를 때에 따라서 보호하시고 도우신다. 그러나 항상 그런 방법으로 성도를 도우시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망치려면 돈과 시간을 많이 주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게 좋아 보이니 여기가 좋사오니라고만 하면서 이제 갈 곳도 모르고 힘도 기르지 않고 깨닫지도 못하면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하는 일 족족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당백의 훈련을 쌓기 위해서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할 내 자리인 학교, 가정, 회사, 군대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알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 기초체력부터 다져야하고, 그럴 때 힘드니까 어디가 부족한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호시탐탐 치고 들어오는 대적을 살피는 훈련이 된다.

그런데 일생의 전쟁은 끝없이 반복된다.

내가 입시전쟁 한 번 이겨서 스카이대학 갔다고 방심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그런데 전쟁의 방법을 묻기만 하면 주님이 일일이 알려주신다.

1차 전쟁 때도 아합의 실 날만한 그 믿음을 보시고 구체적으로 청년들을 먼저 보내고 선봉은 아합왕이 서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합은 선봉에 서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셔서 대승을 하게 하셨다.

저도 제가 전하는 예수님 때문에 제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아껴보아 멸하지 않으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스라엘 나라 때문에 아합을 멸하지 않은 것들이 정말 많다.

그러니 여러분도 그 하나님 나라 때문에 그 예수의 이름을 전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는 사명이다.

이 모든 것에 은혜가 아니면 정말 저도 설 수가 없다.

결국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의 총지휘관은 아합이 아닌 하나님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성경은 그것을 계속 알려주신다.

그러니 참된 예배드리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영육간의 실력을 쌓고 지켜주시는 비결인지 모른다.

주님을 모르면 왜 이렇게 고리타분하게 살아? 아니 큐티는 뭐야? 수요예배는 뭐야?” 한 번 사는 인생 먹고 마시고 마음껏 즐기고 가야지라고 생각하지만 후에 죄의 싹이 너무나 크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먹고 마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참으로 인생이 죄인이라서 겉으로 보기에 모범생이고 열심히 살았어도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셨는데 죄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이 가장 큰 죄이기에 죄의 기록부는 다 거기서 거기 똑같다.

다만 죄에 대한 체감온도가 좀 다르다.

그것을 믿음의 분량이라고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비록 험하고 주변의 대적의 공격이 극심해도 우리 인생의 총지휘관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치열하게 훈련을 해야 몸이 기억을 한다.

그래서 그 당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두셨다고 하셨는데 엘리야 외에 이렇게 선지자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치열하게 훈련하신 무명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목사님, 선교사님, 사장님, 회사원 등 지금도 진짜 천국의 실력자들은 숨어있을 수 있다.

(적용)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아라, 살피라 중에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가?

-그러기 위한 여러분의 예배는 치열하게 훈련이 돼서 몸이 막 기억을 합니까?

-수요일 날 저절로 막 버스를 타러 나옵니까? 직장에서도 막 기억을 해서 몇 번 버스를 막 타고 그러게 오십니까?

 

<지난 주 나눔>

 

공장 옆 부지를 다른 사람이 샀는데 그 땅을 조금 침범한 것으로 측량결과가 나왔다. 처음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그냥 계속 써오던 것이니까 앞으로도 그냥 쓰라고 했던 사람이 갑자기 내용증명으로 경계 침범에 대한 터무니없는 배상을 요구해왔다.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액수의 3배를 주겠다고 해도 원하는 액수가 아니면 무조건 철거하라고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목자님처방: 아합한테 느닷없이 벤하닷이 나타나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가겠다고 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요구가 들어왔는지 자기 자신을 한 번 보세요. 내 안에 항상 100% 옳지 않은 내가 있는데 화친했던 사람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서 나한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일수도 있으니까 공동체에서 하나님이 나한테 왜 이런 일을 주셨을까 하는 자꾸 묻고 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 모두 지난 주 말씀처럼 장로가 되서 듣지도 허락하지도 말아야 할 것을 같이 묵상하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말씀을 나누는 것이 평범해 보이지만 치열하게 몸이 기억을 하는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 사건에서 오늘 설교 말씀을 사건에 대입하라.

2.사단은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기 때문에(23~27)

 

벤하닷 진영에서는 패인을 분석하는데 아람왕과 그 신복들을 전쟁의 패인을 분석하고 2차 침략의 전략을 짠다.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 단정.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었고 산당에서 제사 드렸고 특히 850명의 바알선지자를 죽였으므로 안 믿는 그들은 미신적이고 기복적이라 산의 신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인구가 12천인데 신이 더 많다. 고양이 신도 있단다. 모든 것에 신의 이름을 붙인다.

32명의 왕들의 지휘권을 빼앗아 실제적으로 전쟁에 익숙한 군대장관들에게 넘겨주고 잃어버린 군대와 병기들을 보충하고 병거와 말에서 절대 우위를 보이고 있는 아람군의 특성상 산의 신을 피해서 평야에서 싸우면 이긴다고 보고를 했다.

이 모든 분석들은 참으로 인간적 판단에 근거할 때 대단한 전략이다.

벤하닷은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2차 침공을 수행한다.

여기에 비해 이스라엘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 같았다고 묘사한다.

아람이 이 모든 전략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는 것은 믿는 우리도 해야 할 일이고 배워야 할 일이다.

그러나 마지막 결론이 중요한 것이다.

그들에게 한 가지 없는 것은 하나님이다.

하나님 없는 자의 말, 하나님을 제한하는 이 말의 전략을 가지고 임한다.

그러니 내가 이기고자하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은 첫 단추부터 헛된 노력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의 확신은 산들의 신이 아닌 무소부지하시며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28절 아람이 이겼다고 생각할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큰 군대롤 네 손에 다 붙이리니 하고 약속을 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계획과 말과 숨소리까지 다 들으신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또 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심으로 북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능력을 보이시는 것은 항상 내가 회개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능력을 보이면 다 세상으로 간다. 하나님을 떠난다.

회개하라고 은혜를 베푸시는데 회개는 은혜 말고는 답이 없다.

옳고 그름으로 해석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합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아합을 지켜주신다.

297일을 기다리는데 숨 막히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끝까지 기다리고 참게 하시고 하루 만에 승리하게 하시는 여리고의 전쟁과 비슷하다.

아벡 성벽이 무너진다.

아람군대는 최선을 다해서 완벽한 전략대로 신중하게 행동을 했지만 이스라엘군이 승리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 때문이라는 것을 또 보여주신다.

성경은 이 하나님만이 하셨다는 (기록의) 연속이다.

30절 벤하닷이 성벽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또 살아남았다.

무조건 사로잡아야 할 사단의 괴수가 얼마나 끈질긴가를 보여준다.

전투할 때 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벤하닷은 아합의 상대가 안 되는 괴수이다.

 

(적용)

-지금 당하는 사건에서 여러분의 전략은 하나님의 지혜인가? 인간적인 책략인가?

3.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1~32절 재를 뒤 집어 쓰고 사무엘 앞에 위장하여 나타난 기브온이 생각난다.

동정을 유발하면서 살려달라고 갔는데 아합이 살려주었다.

인자는 히브리어 헤세드”(자비, 언약에 대한 신실함)인데 속이는 게 분명한 것이 과거 북이스라엘과의 동맹을 파기한 아람이 그런 말을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목숨을 구걸하면서 아합을 인자한 왕이라고 하며 속이니 아합은 이 말에 속아 넘어가서 언약적인 자비를 베풀었다.

그러나 아합의 이런 자비는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자비의 헤세드를 짓밟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하심의 헤세드를 인정한다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서 벤하닷, 사단을 완전히, 마땅히 죽여야 했다.

인간적이니 어떻게 죽여?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욕심 많은 아합은 치밀한 사단에게 틈만 나면 넘어간다.

헤세드 한마디에 언약을 아는 것 같아서 넘어갔다.

이렇게 한 마디에 속아 넘어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전적으로 하나님 때문에 이기고,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고 하나님이 벤하닷을 아합의 손에 붙였는데 욕심으로 이 기회를 놓쳐 버렸다.

하나님을 모르니 인간을 몰라서 사람 분별이 안 된다.

아합은 죄인 됨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볼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이 이렇게 죄인인데 인정이 많으시다고 하니 우쭐해서 나의 형제여!”라고 한다. 벤하닷의 신하들이 그 말을 철회하지 못하도록 얼른 받아서 바로 확증하려고 벤하닷이 왕의 형제라고 한다.

급히 이것을 확증했다는 뜻이 있다.

사탄은 이것을 틈으로 본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사단은 파고든다.

문제는 항상 내가 틈을 보였기 때문이다.

잘못된 긍휼로 불신 세상을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아합의 가치관이 아직 거기 밖에 안 된다.

긍휼과 자비는 성도의 도리이고 미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르는 잘못된 긍휼은 나쁜 긍휼이고 범죄요 긍휼이 아니다.

그러니까 정말 세상 사람에게, 또 외인에게, 또 믿는 사람들에게도 회개를 촉구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죄인을 향한 긍휼이고 자비임을 알아야 한다.

동성애는 죄라고 말해주는 것이 동성애자들을 향한 최고의 사랑인 것을 알겠는가?

누가 비난을 무릅쓰고 동성애가 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얼마나 수많은 죄 때문에 망했는가?

그런 죄인 집단이 있겠지만 오직 동성애자들만 합세해서 난동을 부린다. 그들이 똑똑하다.

드러난 것만 60만 명이고 육체관계를 하지 않는 동성애자는 그 수에 들지도 않기 때문에 훨씬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있다.

그런데 동성애로 비롯되는 에이즈 환자의 약값은 1달에 600만원, 간병인은 20만원.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다친 사람에게는 그런 혜택이 하나도 없는데 다는 아니더라도 문란한 성생활로 인한 에이즈의 치료비용은 모두가 나라가 무상으로 지급해서 세금으로 8조가 들어간다.

그런데 그 약도 좋아져서 요즘은 에이즈가 걸려도 30년도 더 사는 사람이 있어 점점 세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보건소에서 검사를 해도 인권유린이라고 얼굴을 보면서는 안 알려주고 전화로만 결과를 알려준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도 그 사람이 에이즈 걸렸다는 것을 몰라서 계속 전염을 시킨다.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인보우 리턴즈’(Rainbow returns)를 구독하고 강의를 들어보라.

똑똑한 그들이 귀족집단이라는 것이 맞다.

날로 퀴어 축제(Queer Festival)가 사람을 많이 참여시키고 자꾸 보다보니까 혐오감이 점점 없어지고 무뎌진다.

그러면서 세력화되고 있다.

그러나 유황불로 심판받은 소돔과 고모라에 구체적인 죄인 집단은 동성애자 그룹 하나뿐인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지옥을 경험하면 가지 말라고 외칠 텐데 경험하지 못했으니 지옥이 대수냐고 한다.

죽으면 끝이라고 한다.

우리 교회는 동성애자들이 와서 주님을 만나고 고백을 하고 분리해서 목자를 하면서 승리하신 분도 여럿이 있고 청년부에서 동성애를 오픈한 자매와 결혼한 현직사역자도 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아직 매듭이 지어지지 않아서 안타까워하는 지체도 여럿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이 죄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가 수많은 죄를 오픈하지만 동성애가 가장 끊기 힘들다는 것도 경험을 한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다.

지금같이 죄 인줄 알면서 안타까워하면서 가는 것이 정상인데 세력화되는 것이 창세기의 소돔에서 이익집단이 되어 행패를 부리는 것처럼 정말 상상 못할 일이 일어나서 이 동성애를 수면위로 드러내서 마음대로 하도록 합법화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멸망이 온다고 할 때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는데 우리도 아무리 망한다는 얘기를 들어도 지금 농담으로 여기고 있다.

요즘 이 문제가 너무 큰 문제이기 때문에 또 부르짖는다.

통과가 코 앞에 다가왔기에 저라도 아합과 벤하닷의 싸움같이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해도 외쳐야겠다.

 

34절 이전에 벤하닷 1세가 사마리아에 자기를 위하여 거리를 만든 것처럼 벤하닷도 아람의 다메섹 거리에 아합 거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무역에 대한 협정을 말하고 있다.

32개국 연합의 총 두목이 이렇게 말하니 어리석은 아합이 속기 쉽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인데 겸손해야 자기 자신을 안다.

그릇된 긍휼은 하나님께 묻지 않을 때 나온다.

조금이라도 전쟁에서 지는 것 같으면 묻다가 이기기만 하면 아합은 자기 생각이 나온다.

잘 사는 게 꼭 축복이 아니다.

힘들 때는 공동체에 나오다가 조금 되면 안 나온다.

이긴 것 같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서 교만하게 조약을 맺고 놓아주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사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선지자를 보내사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시고 말씀 그대로 승리하게 하셨다.

그런데 바로 아합은 하나님 나라의 전쟁규칙에 따라 마땅히 죽여야 할 사단의 왕 벤하닷과 오히려 언약을 맺고 그를 살려 보내줌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정면으로 깨뜨렸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막대한 경제적인 이권과 관련되어 주의 언약을 세상 재물과 바꾸었다.

13, 22, 28절에 선지자가 아합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주신 것은 모두가 다 아는 것인데 아합이 벤하닷과 약조한 것은 결국 어리석은 아합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묻지 않고 행했기 때문에 이것은 선한 마음이 아니라 그냥 허영에서 나온 자기 욕심으로 벤하닷을 놓아준 악함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이해하도록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이해못한다고 지키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아합 역시 벤하닷에 대한 자신의 계산과 외교적 이해득실과 관계없이 아람의 군대를 자신의 손에 붙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를 마땅히 죽였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세상에서 보면 아합의 모습은 실날 같지만 하나님께 묻기도 하고 융통성을 발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패배한 적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관대한 왕으로 보이지만 구속사로 안 깨달아지면 아합같은 지도자가 얼마나 우리를 힘 빠지게 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아합이 벤하닷에게 속아서 그는 내 형제라고 하면서 언약의 헤세드를 남발하면서 조약을 맺은 것은 마치 차별금지법에 싸인을 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120개의 유대도를 다스렸다)에게 당신이 정치를 잘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유대인 학살 법에만 싸인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처럼 지금 저도 오직 차별금지법, 낙태법이 통과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정부에 청한다.

이것이 유대인(기독교인) 학살법이다.

에스더처럼 아하수에로를 감동시킬 수만 있다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는데 누가 이 정부를 감동 시킬 한 사람일까요?

우리 교회는 동성애에 대한 열매가 있고 차별이 없다.

동성애 지체들을 사랑한다. 다 같이 천국가자.

 

(적용)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구별하는가?

 

자기 죄가 안 보이는 사람은 이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4. 그대로 당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들으니 행위예언으로 아합을 촉구한다.

 

35~37절 세상적으로 말하면 누가 더 좋은 친구인가?

인본적이면 이해가 안 된다.

말씀은 반드시 인간이 이해하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조건 가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해가 안 되도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 때문에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이 말씀의 명령이다.

그런데 우리가 못 듣는 이유는 세상과 죄악과의 타협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인본적으로 세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장 힘 있는 통로는 선지자가 자신을 치라고 한다. 자신을 치라는 자신의 고난이다.

고난이 가장 말씀을 잘 전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선지자는 아합이 사단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릇된 긍휼로 자발적으로 놓아주었기 때문에 네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이상한 예언까지 해가면서 대신 목숨 내놓고 상처를 입었다.

저도 작금의 이런 현실 때문에 입어야할 상처는 무엇인지 생각을 해본다.

나를 치라면서 벤하닷을 치지 않고 죽여야 될 벤하닷을 살려주었으니까 이제 네가 대신 죽으라고 행위예언으로 보여주신다.

 

39~40절 묻는 말에 대한 아합의 말이 맞고 공정한 것이다.

사단의 주된 업무는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잘못된 내 행동을 하나라도 오래도록 회개 하여야 하나 영혼을 돌보지 않은 행동 하나는 영벌이기에 그 사람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리저리 일을 봤으므로 네가 파멸되는 것이고,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고 한다.

문제는 이 판결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스스로 정죄하고 형벌을 자기에게 선고한 셈이 되었다.

하나님은 나와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나의 재능이나 재물을 쓰도록 알맞은 기회를 주시는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회를 다 버리고 구원과 상관없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딤후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19가지 죄악이 나온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에 당하는 고통이기 때문에 자기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이 오는데 자기를 사랑하면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 온다.

그 다음에 돈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이제 자랑이나 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고통이고 그러면서 모든 스펙을 쌓아놓았는데 자랑이 고통이라고 한다.

교만도 고통이다. 그래서 비방한다.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않고 거룩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이게 다 고통으로 이어져 가는 거라는 것이다.

결국은 이리저리 일 볼 동안에 내가 지켜야 될 사람이 없어졌다고 했는데 인생이 짧기에 구원 때문에 세월을 아껴야 된다.

41절 벤하닷의 처리를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아합에 대한 심판도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 아합도 죽어야 되는 것이다.

42절 아합은 이 같은 행위를 통해 잠깐은 이익을 봤을지 모르지만 벤하닷 대신에 자기가 심판의 자리로 가게 됨. 결국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다.

43절 근심하고 답답한 이 지경이 왔는데도 아합이 회개가 안 된다.

근심하고는 기분이 나쁘고, 노하고 답답하여는 화난, 격분한, 분노조절장애가 있다.

내 삶의 결론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하는데 선지자의 무서운 형벌의 경고를 듣고도 이렇게 근심하고 답답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 사마리아 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나를 위해 도와줄 이세벨을 찾아서 떠난다.

문제해결을 위해 가면 안 될 곳을 우리도 가는 곳은 없을까?

예를 들어 남편과 싸웠다면 시댁으로 피난 가는 게 옳은 것이고 아내와 싸웠다면 장모님 댁으로 가는 게 옳은 것이다.

이럴 때 자기가 좋아하는 친정으로 가면 이세벨에게 가는 것이다.

항상 이세벨은 해결사였기 때문에 이 일도 다 해결해 줄 거야 하면서 그의 왕궁으로 간 것 같다.

과연 21장부터 이세벨은 해결사다.

나봇의 포도원을 다 해결해주고 있다.

육적 해결사가 내 옆에 있으면 하나님께로 가기가 어렵다.

해결사 부모 자녀, 형제, 부하가 있으면 영적 해결을 딱 막는다.

모두가 해결해주는데 내가 think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홀로서기 해야 되는데 가진 부모들은 그것이 어렵다.

오늘 간증한 우리 고 집사님은 부자 아버지가 안 돌봐주었기 때문에 주님을 만난 것이다.

아합은 마지만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도

똑같이 슬퍼도 거룩한 회개는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적용)

-지금 당하는 것이 스스로 결정한 나의 결론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는가? 아니면 아직도 근심하고 답답한가? 그래서 누구를 찾아가고자 하는가?

 

<공동체 나눔> 

치열한 나눔을 들려드리겠다.

목세(목욕탕 목회 세미나)에 오신 목사님 중에 한 쪽 눈은 실명을 하시고 암 투병까지 하면서 오신 분이 계시다.

이제 큐티 목회를 접목하면서 죄보기 큐티를 하면서 병들이 낫고 형편이 나아진 게 아니라 이제 공황장애까지 왔다. 그런데 적용을 너무 잘하신다. 6년 전에 바지를 백화점에서 샀는데 두벌이 왔다. 생각이 나서 한 벌 값을 가지고 가서 돌려드리려고 하는데 점원이 이전 교회의 청년이었다고 한다. 너무 망설여졌지만 가서 얘기하고 값을 놓고 왔는데 이런 적용을 교회에서 하니까 성도가 죄보라는 얘기 그만하라고 하면서 교회를 떠났다고 했다. 그런데 큐티 목회를 하시는 이유를 물으니 자기가 적용해서 하는 설교는 준비가 훨씬 힘들지만 이전에 설교했던 내용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자기가 큐티 설교 한 내용은 다 기억이 나더라는 것이다. 말씀이 기억이 나는 거 이것이 치열한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사모도 첫날 목세 와서 듣다가 가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큐티가 다른 게 아니라 복음 그 자체이고 십자가의 도라는 것이 깨달아져서 남편과 같이 서로 설득하면서 왔다는 것이다. 저는 이런 교회가 전국에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세 오신 또 다른 목사님은 자기 딸이 결혼하고 나서 힘들었는데 그냥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의 설교를 딸에게 들려주었다. 목사님들도 이렇게 사시는데 네가 힘든 건 당연하다. 이러면서 사돈에게 무릎 꿇고 1시간을 빌고 들어드리고 사위에게 회개를 하셨다는 것이다. 다들 치열한 훈련을 하시며 몸에 익히시는 것 같다. 이런 분들은 그대로 당하라고 해도 아멘 할 것 같다. 내 삶의 결론이니까. 이렇게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사건이 오면 그대로 당하고 근심하고 답답해하는 것이다.

 

 

. 말씀 어록

1) 인생의 목적을 모르면 뛰쳐나온다.

2) 가치관이 바뀌면 어떤 배우자와도 살 수 있다.

3) 우리네 인생이 힘들어 보여도 성경은 그것이 삶의 결론이라고 해석해 준다.

4) 남의 일을 판단 요청 받으면서 어떻게 할까?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해야 한다.

5) 내로남불 무조건 사단을 사로잡지 않으면 사로잡히게 되어있다.

6)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명령형 동사로 너는 가라, 힘을 기르라, 깨달으라, 살피라고 강력하게 전한다

7) 성도는 사단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하든지 막아낼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한다.

8) 주님은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성도를 때에 따라서 보호하시고 도우신다.

9) 자식을 망치려면 돈과 시간을 많이 주라고 한다.

10) 처음에는 그게 좋아 보이니 여기가 좋사오니라고만 하면서 이제 갈 곳도 모르고 힘도 기르지 않고 깨닫지도 못하면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하는 일 족족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 일당백의 훈련을 쌓기 위해서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할 내 자리인 학교, 가정, 회사, 군대 등이 있다.

12) 이 세상을 알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 기초체력부터 다져야하고, 그럴 때 힘드니까 어디가 부족한지 깨닫게 되고, 그것이 호시탐탐 치고 들어오는 대적을 살피는 훈련이 된다.

13) 일생의 전쟁은 끝없이 반복되는 것 인데 전쟁의 방법을 묻기만 하면 주님이 일일이 알려주신다.

14)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실 날만한 그 믿음을 보시고 구체적으로 이기도록 처방을 해 주신다

15) 그 하나님 나라 때문에 그 예수의 이름을 전해야 한다.

16) 이 모든 것에 은혜가 아니면 정말 아무도 제대로 설 수가 없다.

17) 우리 인생의 모든 전쟁에서 우리의 총지휘관은 언제나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계속 알려준다.

18) 따라서 참된 예배드리는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영육간의 실력을 쌓고 지켜주시는 비결인지 모른다.

14) 주님을 모르면 왜 이렇게 고리타분하게 살아? 아니 큐티는 뭐야? 수요예배는 뭐야?” 한 번 사는 인생 먹고 마시고 마음껏 즐기고 가야지라고 생각하지만 후에 죄의 싹이 너무나 크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5) 먹고 마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16) 참으로 인생이 죄인이라서 겉으로 보기에 모범생이고 열심히 살았어도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셨는데 죄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이 가장 큰 죄이기에 죄의 기록부는 다 거기서 거기 똑같다.

17) 다만 죄에 대한 체감온도가 좀 다른 것인데 그것을 믿음의 분량이라고 한다.

18)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비록 험하고 주변의 대적의 공격이 극심해도 우리 인생의 총지휘관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치열하게 훈련을 해야 몸이 기억을 한다.

19) 내가 이기고자하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은 첫 단추부터 헛된 노력의 연속일 뿐이다.

20)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계획과 말과 숨소리까지 다 들으신다.

21)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또 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심으로 북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22) 하나님 능력을 보이시는 것은 항상 내가 회개하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3) 그런데 사람들은 능력을 보이면 다 세상으로 가며 하나님을 떠난다.

24) 회개하라고 은혜를 베푸시는데 회개는 은혜 말고는 답이 없다.

25) 옳고 그름으로 해석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26) 성경은 하나님만이 하셨다는 (기록의) 연속이다

27)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사단은 파고든다.

28) 문제는 항상 내가 틈을 보였기 때문이다.

29) 잘못된 긍휼로 불신 세상을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30) 긍휼과 자비는 성도의 도리이고 미덕이다.

31) 반면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르는 잘못된 긍휼은 나쁜 긍휼이고 범죄요 긍휼이 아니다.

32) 정말 세상 사람에게, 또 외인에게, 또 믿는 사람들에게도 회개를 촉구하고 공의로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죄인을 향한 긍휼이고 자비임을 알아야 한다.

33) 동성애는 죄라고 말해주는 것이 동성애자들을 향한 최고의 사랑인 것을 알겠는가?

34) 누가 비난을 무릅쓰고 동성애가 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35)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얼마나 수많은 죄 때문에 망했는가?

36) 내가 지옥을 경험하면 가지 말라고 외칠 텐데 경험하지 못했으니 지옥이 대수냐고 하면서 죽으면 끝이라고 한다.

37) 지금같이 죄 인줄 알면서 안타까워하면서 가는 것이 정상인데 세력화되는 것이 창세기의 소돔에서 이익집단이 되어 행패를 부리는 것처럼 정말 상상 못할 일이 일어나서 이 동성애를 수면위로 드러내서 마음대로 하도록 합법화하려고 한다.

38)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멸망이 온다고 할 때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는데 우리도 아무리 망한다는 얘기를 들어도 지금 농담으로 여기고 있다.

39)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인데 겸손해야 자기 자신을 안다.

40) 그릇된 긍휼은 하나님께 묻지 않을 때 나온다.

41) 조금이라도 전쟁에서 지는 것 같으면 하나님께 묻다가 이기기만 하면 자기 생각이 나온다.

42) 잘 사는 게 꼭 축복이 아니다.

43) 힘들 때는 공동체에 나오다가 조금 되면 안 나온다.

44) 자기 죄가 안 보이는 사람은 공의와 그릇된 긍휼을 구별하지 못한다.

45) 말씀은 반드시 인간이 이해하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무조건 가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46) 나는 이해가 안 되도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 때문에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이 말씀의 명령이다.

47) 우리가 못 듣는 이유는 세상과 죄악과의 타협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48) 내가 인본적으로 세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

49) 고난이 가장 말씀을 잘 전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50) 사단의 주된 업무는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51) 잘못된 내 행동을 하나라도 오래도록 회개 하여야 하나 영혼을 돌보지 않은 행동 하나는 영벌이기에 그 사람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리저리 일을 봤으므로 네가 파멸되는 것이고,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고 한다.

52) 하나님은 나와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나의 재능이나 재물을 쓰도록 알맞은 기회를 주시는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회를 다 버리고 구원과 상관없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3)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19가지 죄악이 나온다.(딤후 3:1)

54) 결국 이 모든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에 당하는 고통이기 때문에 자기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는 것이다.

55)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이 오는데 자기를 사랑하면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 온다.

56) 그 다음에 돈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이제 자랑이나 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고통이고 그러면서 모든 스펙을 쌓아놓았는데 자랑이 고통이라고 한다.

57) 교만도 고통이라서 비방한다.

58)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않고 거룩치 아니하며 무정하며 이게 다 고통으로 이어져 가는 거라는 것이다.

59) (결국은 이리저리 일 볼 동안에 내가 지켜야 될 사람이 없어졌다고 했는데) 인생이 짧기에 구원 때문에 세월을 아껴야 된다.

60) 근심하고는 기분이 나쁘고, 노하고 답답하여 화나고 격분하는 것이 분노조절장애이다.

61) 육적 해결사가 내 옆에 있으면 하나님께로 가기가 어렵다.

62) 해결사 부모 자녀, 형제, 부하가 있으면 영적 해결을 딱 막는다.

63) 모두가 해결해주는데 내가 think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64) 홀로서기 해야 되는데 가진 부모들은 그것이 어렵다.

65) 똑같이 슬퍼도 거룩한 회개는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Epilogue

 

(1) 현재의 상황이 바로 내 삶의 결론이니까 이렇게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건이 오면 그대로 당하고 근심하고 답답해하는 것이다.

(2) 공의로운 심판의 선포는 죄인을 향한 긍휼이고 자비임을 알아야 한다.

(3) 따라서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 긍휼이고 자비인 것이다

(4) 공의 와 그릇된 긍휼을 구별 못하기 때문에 혐오감이 들다가 무뎌지게 되는 것이다

(5) 내가 지옥을 경험하면 가지 말라고 하지만 지옥을 경험하지 못하면 지옥이 대수냐고 한다.

(6) 겸손해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인데 그릇된 긍휼은 하나님께 묻지 않을 때 나온다.

(7) 교만하면 묻지 않게 되고 자신의 판단으로 조약을 맺고 사단을 놓아주게 된다.

(8) 아합은 하나님나라 전쟁규칙에 따라 사단세력을 진멸해야 하는데 살려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며 세상이권과 바꾸어 물 건너 생명줄을 던지는 것이다.

(9)구속사적으로 보면 아합같은 지도자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만홀히 여김으로 우리를 힘 빠지게 하는 것인데 마치 차별금지법에 서명한 것과 같은 것으로 유대인 학살법이나 기독교 말살법에 서명하는 것과 흡사하다

(10) 이웃 구원을 위한 알맞은 기회를 주시는데 스스로 판단하니 망하는 것이다

(11) 이세벨 같은 육적 해결사가 있으면 홀로서기가 힘들다.

(12) 지금 당하는 사건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분별해야 한다.

(13) 내 속의 아합이 회개를 안 하니 내 옆의 아합도 회개를 안 하는 것이다.

   

. 최종결론

 

-말씀이 기억나는 것이 치열한 훈련의 결과이며 치열한 훈련이 몸에 익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건이 오면 그대로 당하고 근심하고 답답해하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7. 8. 12:39

[우리들교회 2019 77일 주일말씀 요약 및 68가지 말씀어록(왕상 20:1~21/ 무조건 사로잡으라)]

 

 

<Prologue>

 

한 은행부지점장이 회식 후 여직원과 홀로 남아 모텔에 갔다가 성추행으로 여직원가족의 10억 협박에 사로잡혀 자살.

홀로 남는 것, 모텔에 가는 것, 협박에도, 자살도 사로잡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주님이 우리에게 여호와가 되시기 위하여 참 수고가 많으시다

이 세상은 원수의 땅이라 원수 사탄을 섬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단의 길을 완전히 차단해놓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규칙이 사단에게 공정치 못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탄이 우리 삶을 파괴하는 데는 불과 10, 혹은 1, 1초면 충분하다

그렇게 내 삶을 파괴하기 원하는 자가 엎드려 노리고 있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7000배의 응답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단을 사로잡아야 한다

Ben Hadad이 화친을 청해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와도 사로잡아야 한다

벤 하닷은 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로잡지 않으면 사로잡힌다.

날마다 눈을 뜨나 감으나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무조건 이 사탄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 요약]

 

사탄을 사로잡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1.   작은 유혹에도 경계해야 한다(1)

벤하닷은 휘하에 제휴한 32명의 왕을 거느린 막강한 실력자다

아합의 우상숭배 가운데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려고 벤 하닷 군대가 대단한 최신의 무기를 가지고 쳐들어오게 하신다

벤하닷, 아합도 심판의 대상이다

둘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니 어찌 이 땅에 평화가 있겠는가?

벤하닷은 아합을 봉신(封臣)정도로 하찮게 생각하고 무시한다

32명의 지도자들과 동맹군을 결성하고 사마리아를 침공하면서 은 금은 내 것이다. 경제력도 내 것이다. 자녀들의 아름다운 것, 뛰어난 인력도 내 것이다 하며 왕권을 빼앗겠다는 심산이다

아합에게 있어야 할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니 더 강한 세상 세력을 일으켜 붙이신다

문맥을 따라 성경을 읽어야 한다

 

(적용)

-요즘 나와 우리 가정을 사탄에게 예속시키려는 죄와 원수는 무엇이고 누구인가?

-우연은 없는 것인데 왜 이런 요구를 받나?

 

자기 자신부터 살펴야 한다

4절 벤하닷의 명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대조.

극악무도한 아합왕이 목을 곧게 하며 말씀을 듣지 않지만 세상 실력자인 아람왕의 명령에는 굴복하는데 벤하닷에게는 가식적으로내 왕이시여하며 임기응변 식으로 면피하는데 강한 자에게 약하고 엘리야 같은 세상적 약자에게 강한 아합의 가증스러운 면모를 드러내 보여 주신다

5~6절 요구사항 1개만 허용하며 슬쩍 넘어가려고 했으나 신하들의 집에까지 확대하여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당장 내 놓으라고 으름장으로 협박한다

벤 하닷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뺏으려는 의도인데 아합왕이 지레 겁을 먹으니 맘 놓고 북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빼앗고, 북 이스라엘 전체를 요리하려는 본심을 드러낸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아합은 이세벨과 죽이 맞아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아름다운 아내인 이세벨이나 자녀를 포함하여 눈에 아름다운 것들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된다

불법을 좋다고 같이 행하는 불법부부 행위의 말로가 이렇다.

진짜 사랑이 아니라서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사랑은 의지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불신결혼, 우상숭배를 자행한 부부에게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하는 벤 하닷에게 자기 생명만을 생각하여 아합은  그러슈라고 한다

금세 잡아갈 것처럼 선전포고를 당한다

아름다운 것이 내 것이고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다 잡아가겠다고 하는 것이 사단의 소리다

이 땅이 우선하니 하나님보다 더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 아내, 자녀를 잡아가겠다고 한다

우상은 숭배이고 사랑이 아니다.

자기를 죽인다고 협박하니 그 좋아하던 것을 다 잡아가라고 내 준다.

사자의 밥이 되는 것이 일분 일초면 족하다.

작은 것을 양보하면 야금야금 큰 것까지도 몽땅 요구하는 것이 사탄의 속성이다

아브라함도 바로왕에게 자기생명을 유지하려고 아내 사라까지 바치려고 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이럴 진데 모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지 사실 다 죄인인 것이다

아합도 벤 하닷도 다 죄인이다.

대개 사단의 유혹은 단번에 큰 것으로 다가오지 않고 이 정도까지만을 파고들어 강력한 공격 앞에는 무기력하게 패하는 것이다

사탄의 유혹은 마치 바닷가의 물결이 해안선에 차츰차츰 밀물처럼 조금씩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서두의 자살사건을 보면 술 마시고 여직원과 부지점장만 남지 말았어야 했다.

, 성추행, 10억 협박자살로 이어지고, 여직원도 수치로 다가와 직장도 그만두는 사태로 결론 짓는다

자살한 부지점장에게 경조사비조로 10억이 나갔는데 경조사비1%의 유혹이 자살을 방조한 격인 것으로 사탄의 계략은 너무나 교묘하다

작은 유혹 때문에 사탄의 밥이 된다.

조금이라도 꺼림직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도 사단은 이 방법으로 여전히 성도들을 유혹에 빠뜨려 패배시키고 있다.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조그만 유혹의 속삭임으로 인해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 결국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목사님도 말씀 앞에서 날마다 묻지 않았다면 예전에 이미 사탄에게 사로잡혔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합이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이 심판 받는 사건으로 다가 온 것이다

너무나 큰 차이로 다가오는데 도덕적으로 조심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적용)

-‘이쯤이야 라고 생각하여 다가온 유혹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나? 긍정하나?  결국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이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시점은 이미 사탄의 적업이 시작된 시점임을 뜻한다

 

2.   사단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7~9)

벤하닷의 악한 행동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범죄행위를 지칭할 때와 표현이 같다.

우상숭배 범죄에 대한 응보의 차원으로 나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아합은 아람왕에게 처음에는 굽실거리다가 나중에 감당이 안 되니 책임회피의 수단으로 ‘내가 거절하지 못했다고 뻔뻔하게 말하며 대책을 신하와 백성들에게 물으며 자기 잘못을 떠넘기는 등 한 나라 지도자로서 무능력무책임을 보인다.

듣지도 말고 허락하지도 마소서라고 정확히 방향을 제시한다. 여기서 듣지도라는 말은 순종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모든 장로와 백성이 강력히 방안을 강구하자고 하면서 조금도 타협하지 말고 결사항전하자고 건의한다

민족적 반감이 끓어올랐다고 할 수 있다.

말을 번복한 것은 다시 무슨 요구가 더 나올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제사장 나라의인 이스라엘을 보호하려는 것인데 그것을 백성의로서의 의무를 준수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고 하시며 북 이스라엘은 결코 타협의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합이 깨닫지 못한 것이다

아합은 상황이 열세이다 보니 요구가 합당한지는 나중 문제로 생각하고 그대로 허락한다

이는 신앙적 범죄이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다.

각종 종교로부터 기독교가 평등과 평화를 깬다고 이야기를 듣는다.

문자적으로만 보기에 그렇다

하나님은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데 이게 천지 차로 못 믿으니 공중권세 잡은 사탄과의 싸움이 끊이질 않고 휘둘리는 것이다

4:12

이승만 대통령에게 공과 과가 다 있다.

기독교를 가지고 자유민주주의를 세운 공은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이 안 들리면 옳고 그름을 따진다.

종교다원주의가 아니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아니다.

사탄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대상이며 존재이다.

우리가 타협하면 우리를 지배하여 우리는 사단의 종 노릇을 하게 된다

주님의 이름만 걸고 또 다른 악을 행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인데 구원을 위한 것이 인내와 오래 참음의 결론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십자가는 지혜이고 타이밍이다.

틀렸다고 투서하고 고발한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자 자살한 것은 가장 잘못된 결정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한 지도자를 가장 총명한 지도자라고 추앙하며 따라가는 등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고대 중동지방에서 말과 병거를 사고 파는 중개무역이 성행하였는데

(왕상10:29) 왕은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금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중개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솔로몬 왕이 어기니, 그 말들을 가지고 아람이 쳐들어온 것이다.

얄팍한 이익을 위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하나님이 금한 것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

말씀 적용은 한결 같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적용을 권하지 않는다.

항상 동기를 생각하고 왜 일이 일어났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백성을 지키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이세벨과 자녀를 보내는1차 요구는 받고 2차요구는 받지 않으면서 자기 목숨을 건지려고 오직 벤하닷의 반감을 사지 않으려는 지도자의 비굴하고 치졸한 모습을 보이는 아합인데 마치 전쟁을 피하려는 애국자의 코스프레로 위장하고 가려 한다

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을 모르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큐티를 하다 보니 개인구원이 사회구원이 된다. 내일(78) 낙태 반대하러 국회로 간다.

(11) 중재를 했지만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자 갑옷 속담까지 들먹이며 방심하지 말고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며 아합이 처음으로 큰 소리를 지른다

죽음이 코 앞에 왔어도 육체의 장막을 벗기까지 모르는 것이며 타협은 금물이다

 

(적용)

-그러므로 지금 듣지도 허락하지도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3.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13) 도와주려고 하면 말씀이 꼭 등장한다.

큰 소리를 냈더니 금세 선지자가 나와 도와주도록 하신다

용병술, 호신술이 바로 목장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 세워져야 하기에 도와주신다.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라하시는 하나님이 슬픔이 느껴진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전능하심을 보이신다

아합과 북 이스라엘의 전쟁을 보는 하나님의 시각이 나타난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데 하나님이 여호와인줄을 체험적으로 알게 하신다

어떤 전쟁도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신실하며 하나님이 여호와 되심을 알아야 한다.

알게 하시려고 전쟁이 오고 간다.

현실적 이익과 손해를 결정짓는 것이 전쟁의 결론이다.

여호와 되심을 알아야 전쟁에서 승리한다

세상에서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전쟁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한국을 제외하고 여러 나라가 서로 이권을 탐하는 것이 현실이다

선지자가 나타나는 것이 전쟁의 시각이 달라지고 무명 선지자 한 사람을 통해 여호와를 알게 하시는 여러 가지 시각이 나타난다.

세상은 이런 시각을 전혀 모른다

무명의 한 선지자가 각각 되시기를 바란다.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바벨론을 쓰신다

사용 후 메대 바사를 일으켜 바벨론을 징계하시고 무너뜨렸다.

악인의 형통은 궁극적으로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악한 아합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어렵다.

시편 73

악인들은 편안하고 재물은 불어나고...

잠언16:4 악인도 쓸모가 있어서 쓰신다.

악인도 쓸 데가 있어 지음은 받지만 쓰임이 끝나면 용도 폐기하신다

예레미야 애가 1:5

내 옆의 원수가 형통한 이유는 우리의 죄가 많기 때문이다.

로또 당첨되면 배우자, , 집 순으로 바꾸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악인은 의식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섭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세벨은 자신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돕게 되는데 나중에 개밥이 되었고 이것이 이세벨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그 덕분에 전 세계가 복을 받았다.

아합을 멸절시키기 위해 엘리야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했다.

좋은 역할, 나쁜 역할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여호와를 알아야 악인의 형통이 해석이 된다.

 

(적용) 내 옆의 악인의 형통이 내 죄 때문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는가? 부러운가? 불쌍한가?

 

이진호 집사: 회개하고 있다.

 

4.   사탄은 화친하러 나오든, 싸우러 나오든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선지자가 아합을 도와서 전쟁을 이긴다

급하니 선지자에게 묻는 것이 아합의 모습이다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가보니 벤하닷과 32명이 술 먹고 취해서 노래를 부른다.

적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패배의 제1조건이며 말씀을 들고 나가는 것이 최고의 전술이며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TOOL이다.

목장에 물어보는 태도에 기름을 부으신다.

강한 아람에게 틈이 있었다.

다 이기 싸움으로 속단하고 승리의 자축연으로 취했고 술에 취하니 힘을 쓸 수가 없다

아무리 술이 취해도 사단의 괴수이니 화친하자는 계교를 쓰지만 무조건 사로 잡아서 쳐죽여야 한다.

끝까지 따라가서 쳐죽였다.

이래저래 사단의 밥이 된다.

7232명으러 구성된 하나님의 동맹으로 승리한 것인데 명령대로 싸운 것이니 아합이 잘나서 이긴 것이 아니다.

자신은 선두에 서지도 않았다.

시작부터 비겁하고 계속 불순종해서 마지막까지 주의 깊게 지켜보다가 전장으로 나가서 전쟁을 지휘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배려이자 지극한 사랑이시다.

아합은 무조건 사단을 사로잡지 못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은 사단을 사로잡지 못한다.

불순종으로 이긴 싸움은 하나님 때문에 싸우지 않아 기쁜 것이 없다.

벤하닷이나 아합은 똑같이 심판의 대상인 죄인인데 사단과의 전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안 듣거나 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원죄구별해 가야 되어서 죄인이지만 제사장 나라에 속해 공로 없이 하나님 나라 때문에 아합을 살려주시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길 때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 임한다.

사탄을 사로잡을 수 있는 최대의 비결은 말씀이다.

전쟁에 임하여 성경말씀을 멸시라거나 무시하지 않으니 분별이 되고 처방이 되어 이기는 싸움을 하게 하신다.

우리들회 성도들을 수 많은 사단을 사로잡는 군사가 되게 하신다

아함과 벤 하닷을 구별하는 분별력은 주신다

 

[큐티인 간증]

고통이 오니 내 죄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어두운 인생의 때를 살고 있지만 우울하고 슬픈 마음이 가장 큰 대적임을 알게 되었다. 물리칠 수 없는 대적이 우울 감이다. 무엇을 해도 기쁨이 없다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직면했다. 또 다른 전쟁이 있지만 사단을 사로잡을 것이다.

 

(적용)

-무조건 사로잡아야 하는 여러분의 사단, 벤하닷은 무엇인가?

 

내 속에 가장 무서운 사단이 있다.

 

<말씀 어록>

<Prologue>

1)   이 세상은 원수의 땅이라서 원수 사탄을 섬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2)   사탄이 우리 삶을 파괴하는 데는 불과 10, 혹은 1, 1초면 충분하다

3)   내 삶을 파괴하기 원하는 자가 엎드려 노리고 있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4)   날마다 눈을 뜨나 감으나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무조건 이 사탄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더 강한 세상 세력을 일으켜 붙이신다

6)   진짜 사랑이 아니면 위기에 처해 아내도 자녀도 버리려고 한다.

7)   사랑은 의지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8)   우상은 숭배이고 사랑이 아니다.

9)   자기를 죽인다고 협박하니 그 좋아하던 것을 다 잡아가라고 내 준다.

10) 사자의 밥이 되는 것이 일분 일초면 족하다.

11) 작은 것을 양보하면 야금야금 큰 것까지도 몽땅 요구하는 것이 사탄의 속성이다

12)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바로왕에게 자기생명을 유지하려고 아내 사라까지 바치려고 한 것처럼 모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지 사실 다 죄인인 것이다

13) 대개 사단의 유혹은 단번에 큰 것으로 다가오지 않고 이 정도까지만을 파고들어 강력한 공격 앞에는 무기력하게 패하는 것이다

14) 사탄의 유혹은 마치 바닷가의 물결이 해안선에 차츰차츰 밀물처럼 조금씩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15) 유혹이 자살을 방조한 격인 것으로 사탄의 계략은 너무나 교묘하다

16) 작은 유혹 때문에 사탄의 밥이 된다.

17) 조금이라도 꺼림직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18) 오늘날도 사단은 이 방법으로 여전히 성도들을 유혹에 빠뜨려 패배시키고 있다.

19)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20) 조그만 유혹의 속삭임으로 인해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 결국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21) 아합이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이 심판 받는 사건으로 다가 온 것이다

22) 이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시점은 사탄의 작업이 이미 시작된 시점임을 뜻한다

23) 심판의 사건은 우상숭배 범죄에 대한 응보의 차원으로 나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24) 하나님은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데 이것을 천지 차로 못 믿으니 공중권세 잡은 사탄과의 싸움이 끊이질 않고 휘둘리는 것이다

25) 말씀이 안 들리면 옳고 그름을 따진다.

26) 사탄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대상이며 존재이다.

27) 우리가 타협하면 우리를 지배하여 우리는 사단의 종 노릇을 하게 된다

28) 주님의 이름만 걸고 또 다른 악을 행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인데 구원을 위한 것이 인내와 오래 참음의 결론이다

29) 사랑은 오래 참고 십자가는 지혜이고 타이밍이다.

30)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자 자살한 것은 가장 잘못된 결정이다.

31)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한 지도자를 가장 총명한 지도자라고 추앙하며 따라가는 등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32) 얄팍한 이익을 위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33) 하나님이 금한 것을 어기지 말아야 하며 말씀 적용은 한결 같아야 한다

34) 항상 동기를 생각하고 왜 일이 일어났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35) 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을 모르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36) 큐티를 하다 보니 개인구원이 사회구원이 된다

37) 죽음이 코 앞에 왔어도 육체의 장막을 벗기까지 모르는 것이니 타협은 금물이다

38) 용병술, 호신술이 바로 목장 가는 것이다.

39)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데 하나님이 여호와인줄을 체험적으로 알게 하신다

40) 어떤 전쟁도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신실하며 하나님이 여호와 되심을 알아야 한다.

41) 하나님이 여호와 되심을 알게 하시려고 전쟁이 오고 간다.

42) 현실적 이익과 손해를 결정짓는 것이 전쟁의 결론이다.

43) 여호와 되심을 알아야 전쟁에서 승리한다

44) 세상은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전쟁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며 한국을 제외하고 여러 나라가 서로 이권을 탐하는 것이 현실이다

45) 악인의 형통은 궁극적으로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46) 악인도 쓸 데가 있어 지음은 받지만 쓰임이 끝나면 용도 폐기하신다

47) 내 옆의 원수가 형통한 이유는 우리의 죄가 많기 때문이다.

48) 로또 당첨되면 배우자, , 집 순으로 바꾸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49) 악인은 의식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섭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50) 좋은 역할, 나쁜 역할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51) 여호와를 알아야 악인의 형통이 해석이 된다.

52) 적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패배의 제1조건이며 말씀을 들고 나가는 것이 최고의 전술이며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TOOL이다.

53) 목장에 물어보는 태도에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다.

54) 아무리 술이 취해도 사단의 괴수이니 화친하자는 계교를 쓰지만 무조건 사로 잡아서 쳐죽여야 한다.

55)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은 사단을 사로잡지 못한다.

56) 불순종으로 이긴 싸움은 하나님 때문에 싸우지 않아 기쁜 것이 없다.

57) 사탄을 사로잡을 수 있는 최대의 비결은 말씀이다.

58) 전쟁에 임하여 성경말씀을 멸시라거나 무시하지 않으니 분별이 되고 처방이 되어 이기는 싸움을 하게 하신다.

59) 고통이 오니 내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 법인데 가장 어두운 인생의 때를 살고 있지만 물리칠 수 없는 대적이 우울 감이다.

60) 내 속에 가장 무서운 사단이 있다.

61) 가장 무서운 사단인 벤 하닷은 자기자신이다

62) 사단은 전투의 대상인데도 그저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63) 내 죄 때문에 내 옆의 악인이 형통하는 것이다

64) 사탄은 내가 사로잡지 않으면 내가 사로잡히는 것이며 중간지대는 없다

65) 끈질긴 내 Ben Hadad의 실체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예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게 된다

66) 이쯤이야하는 작은 유혹을 말씀으로 사로잡아야 한다

67) 현재의 고난은 잠시 잠깐이지만 장차 올 영광은 족히 비교할 바 없다

68) 내 안의 사단인 밴 하닷을 사로잡는 길은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세밀하게 잘 듣는 것이다

 

<Epilogue>

 

가장 무서운 사단인 벤 하닷은 자기자신이다

사단은 전투의 대상인데도 그저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 죄 때문에 내 옆의 악인이 형통하는 것이다

내가 사로잡지 않으면 내가 사로잡히는 것이며 중간지대는 없다

끈질긴 내 벤 하닷의 실체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예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게 된다

이쯤이야하는 작은 유혹을 말씀으로 사로잡아야 한다

현재의 고난은 잠시 잠깐이지만 장차 올 영광은 족히 비교할 바 없다

 

[최종결론]

 

-내 안의 사단인 밴 하닷을 사로잡는 길은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세밀하게 잘 듣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7. 3. 13:10

[우리들교회 2019년 6월30일 주일말씀 요약(열왕기상 19:

9~21/ 7000배의 응답)]

 

 

완전수인 7의 천 배인 7,000배의 응답을 받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1. 자기 자리를 찾아야 7000배의 응답을 받는다.

 

엘리야가 자기자리를 모르고 부적처럼 모세의 굴에 칩거하여 경건해 보이지만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정곡을 찌르는 말씀으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What are you doing hee?)고 질문하신다. 누가 시키지 않았고 모두 자기가 선택한 길이다.

 

엘리야가 대답하기를 내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해 매우 질투하기까지 열심으로 했습니다.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 앞두고 싯딤에서 음행과 우상숭배로 4천 명 죽은 후,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한 남자 시므리와 미디안 여자 고스비를 죽임으로써 염병이 그쳤다.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나의 노를 돌이켰다고 칭찬하셨다. 엘리야도 나도 만군의 여호와를 위해 대단히 질투하기 까지 열심으로 했다고 하며 영적 간음에 빠진 북 이스라엘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였는데 왜 나는 비느하스처럼 축복받지 못합니까, 왜 도망자 신세가 되어야 하나요하는 것이다. 이세벨과 아합은 줄기차게 엘리야 죽이려 한다. 그들은 은혜를 모르면서도 하나님 자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열심을 따라갈 자가 없다. 이세벨도 자기 자리 못 찾고 지옥 갈 사람이다. 자기 자리 잘 찾는 것은 기적이다. 사람은 죄인의 자리 찾아야 자기 자리 찾는 것이다. 이것이 열심으로 찾아지는 자리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투적, 호전적 천자의 민족이다. 그나마 기독교 들어와서 자기 죄 보라고 할 때는 죄인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 있었는데 요즘 들어 인권이 하나님 자리에 가 있으니까 이혼과 자살이 더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자리가 죄인의 자리이다.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큐티하며 제자리 찾아야 한다. 제자리 찾는 것이 가장 응답 받는 비결이다. 죄인의 자리인 제자리를 잘 찾는 것이다.

 

아합과 이세벨 부부가 줄기차게 엘리야를 죽이려 했다. 모든 것을 갖추어 부족한 것이 없으니 이세벨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영적으로 이세벨이 자기자리를 못 찾으니 지옥 길로 향하는 것이다. 자기자리 찾는 것이 본분인데 엘리야는 자기자리를 못 찾고 있었다. 사람은 죄인의 자리를 찾아야 자기자리를 찾는 것이다. 왕도 백성을 사랑하는 자리를 찾아야 한다. 남편, 아내, 부모의 자리 찾으려면 죄인의 자리를 먼저 찾아야 하는데 이것이 열심으로 찾아지지 않는다.

 

이혼(-송부부)과 자살(전미선)을 막고자 하지만, 그들이 최고인 만큼 죄인의 자리를 찾지 못하니 열심으로 세운 만큼 상심이 커서 본연의 자리자리를 놓치고 그것이 우상이 되어, 지고는 못 사는 것이다. 가정지킴이 TV에서 보여준 연기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죄인의 자리는 은혜가 아니면 해결될 길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자리다. 죄인의 자리는 은혜 아니면 찾을 수 없다. 죄가 없다고 생각하니 엄마자리, 아내자리를 못 찾는 것이다. 인간은 사랑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다. 땅끝까지 내려가 패잔병 같은 처지가 되어야 비로서 보인다. 그런 환경이 없어서 그렇지 목사님도 자신이 차별하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회개하셨다. 죄인이 자리는 잘 찾아야 한다. 5달란트의 자리는 고난과 십자가 자리이니 잘 알고 가야 하는 것이다.

 

(적용)

-여러분에게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시는 남의 자리는 어디인가?

-여러분의 자기자리는 죄인을 자처하는 십자가의 자리인가, 의인을 자처하는 십자가에서 내려온 자리인가?

-이혼과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2. 기적이 아니라 세미한 말씀을 들을 때 7000배의 응답이 임한다.

 

기적을 크게 경험하면 여호와의 처방이 안 들린다. 3 6개월 기간이었던 곳에 비가 내렸는데 변하지 않았. 일시적인 기도가 이뤄지면  우리도 교회와 목장에 나올거야라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도리어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아무리 큰 사단이 물러가도 깨어있지 않으면 사단의 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이세벨이 협박을 해 주는 수고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환경에서 성도 삶의 최고의 은혜는 여호와 자체가 상급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가 반복되며 집중적으로 양육되니 은혜다. 말씀이 안 들리니까 협박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의 최고의 응답은 여호와 자체가 상급이 되는 삶이다. 이제 여호와의 양육이 집중적으로 시작된다. 말씀 들린다. 택자라서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바람과 불, 지진이 난무하는 가운데 미세한 음성이라니 조용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내가 큐티를 해 놓으면 바람과 지진과 같은 뇌성병력 가운데서도 미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안전해 보이는 생각의 굴에서 나와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Go out and stand on the mountain in the presence of the LORD)고 명령하신다. 여호와가 등장하니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니며 감당할 책임을 주신다.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한 예비과정으로 바람과 불과 지진 가운데 주시는 세미한 목소리를 못 듣는 것은 정함이 없고 욕심대로 구하며 잘 못 살아온 것은 말씀이 없어서다. 말씀 가운데 감사할 것을 찾아야 한다. 행위로 죄를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 있다. 은혜의 기적도 경험했지만 바람, , 지진에서 내게 주신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니 여전히 힘들고 믿음의 기복이 심한 것이다. 훈련이 끝나도 내 죄 보기 큐티가 안되어서 힘 든 것이며 세미한 음성을 듣는 구조 속에서 미리 세미한 큐티를 하면 칠 천 배의 응답이 기다린다

 

(적용)

-여러분은 기적이 좋나, 세미한 음성의 말씀이 좋나?

 

3. 삶의 목표가 영혼구원이어야 7000배의 응답이 임한다.

 

죄 문제가 얼마나 뿌리깊고 생명력이 강한지 알아야 한다. 한번의 전쟁, 승리로 뿌리 뽑히지 않는다. 죄 문제는 사람의 열심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두 번이나 질문하고 답한다. 두 번 같은 질문하셨는데 음식물로 위로하시는 로뎀나무의 때가 있고, 호렙산의 굴에서 모세의 영광을 부적처럼 생각하며 굴에 처박혀 있는 때가 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바알선지자들을 다 죽였지만 이제 백성들을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모세를 빙자하면서 남의 일을 잘 보면서도 내 일은 머리를 싸매도 모르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로뎀나무 그늘 아래서 기적을 맛보고 호렙까지 왔는데 여전히 집에서 힘들다. 계속 걸레질 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목사님의 경험담을 말씀 하신다

 

소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다시 물으셨다. '걸레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잖니? 이혼을 안 당하기 위해 걸레질을 하면 안되잖니.? 내가 이전에는 이혼 안 당하기 위해 걸레질을 했단 말이다. 구원이 목적이 되었기에 순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겠는지 생각했다. 로뎀나무 시절에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어루만지시며 질문하셨다면, 이제는 소명을 위해 삶의 향방을 물으셨다. 내가 점점 없어지고 주님이 살아나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주님의 전적인 세팅이다. 나의 재능을 모두 주님께 드린다고 내려 놓으니 총신대 교수 자리를 주셨다. 주님께서 아시면 은사대로 쓰신다. 지진과 불을 경험하고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삶의 목표가 구원이 되었다

 

(적용)

-여러분은 지금 로뎀나무 음식이 고픈 그곳에 있나, 멋진 산의 호렙굴에 쳐 박혀 있나?

-날마다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큐티의 결론은 영혼구원이라는 것에 동의하나?

 

4. 소명의 자리에 있어야 7000배의 응답을 받는다.

 

엘리야의 처방으로 구체적인 일거리를 주신다. 상처받은 영혼에게 해야 할 가장 필요한 처방은 합당한 일을 주는 것이다. 한 목적으로 도저히 연합할 수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은 한 목적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 기도를 하면 생각지도 못하던 것을 하나님께서 컨셉으로 도우신다. 전 세계는 예수 믿는 나를 이해 돌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다. ‘아무도 없다고 푸념하는 엘리야에게 바알을 믿지 않는7,000명을 언급하신다. 아합을 치려면 전부 연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를 위해 전세계를 동원하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임을 믿어야 한다.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 의외의 사람을 남겨 주신다. 은혜로 살게 하신다는 것이 큐티다. 노력해서 하나님 자리에 올라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일까? 내가 사명으로 살려고 하니 구체적인 일거리가 계속 생긴다. 이혼하려는 자, 자살하려는 자가 찾아왔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꼐서 역사하시고 오늘도 내일도 날마다 전도할 일이 생기고, 그런 사람이 왕이고 권세자고 상관없이 내가 기름 부을 수 있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이혼, 낙태, 동성애가 죄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너무 외롭다. 맨날 혼자 떠드는 것 같아서다. 7천배의 응답은 기도하고 소원해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칠 천 배의 응답은 기도한 사람만 받는 것이다. 안타까우니깐 관심이 있다. 관심이 있으니 소식이 들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동성애는 평등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적용)

-여러분의 소명의 구체적인 자리는 어디인가?

-차별금지법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는 어떨까?

 

5. 일상의 삶을 잘 살아야 7000배의 응답을 받는다.

엘리사는 쟁기 앞에서 부름 받았다. 성실하고 준비된 사람이었다. 생애가 알려짐도 없이 등장했지만 농사짓고 있던 가정적인 사람인데 엘리야의 사명을 이어 받는다. 소명을 잘 받아들이게 하는 가정이 최고의 가정이다.

 

(적용)

-내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자꾸 돌아보게 하는 옛 습관은 무엇인가?

-사명을 깨닫고 영혼구원 때문에 살아가고 있나? 일상적인 삶을 잘 하고 있나?

일상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가장 큰 능력이다.

 

<열왕기 상 19:9~21>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There he went into a cave and spent the night. An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He replied,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God Almighty. The Israelites have rejected your covenant, broken down your altars, and put your prophets to death with the sword. I am the only one left, and now they are trying to kill me too.")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The LORD said, "Go out and stand on the mountain in the presence of the LORD, for the LORD is about to pass by." Then a great and powerful wind tore the mountains apart and shattered the rocks before the LORD, but the LORD was not in the wind. After the wind there was an earthquak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earthquake.)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After the earthquake came a fir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fire. And after the fire came a gentle whisper.)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When Elijah heard it, he pulled his cloak over his face and went out and stood at the mouth of the cave. Then a voice said to him,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He replied,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God Almighty. The Israelites have rejected your covenant, broken down your altars, and put your prophets to death with the sword. I am the only one left, and now they are trying to kill me too." )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The LORD said to him, "Go back the way you came, and go to the Desert of Damascus. When you get there, anoint Hazael king over Aram.)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Also, anoint Jehu son of Nimshi king over Israel, and anoint Elisha son of Shaphat from Abel Meholah to succeed you as prophet.)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Jehu will put to death any who escape the sword of Hazael, and Elisha will put to death any who escape the sword of Jehu. )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Yet I reserve seven thousand in Israel--all whose knees have not bowed down to Baal and all whose mouths have not kissed him." )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So Elijah went from there and found Elisha son of Shaphat. He was plowing with twelve yoke of oxen, and he himself was driving the twelfth pair. Elijah went up to him and threw his cloak around him.)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Elisha then left his oxen and ran after Elijah. "Let me kiss my father and mother good-by," he said, "and then I will come with you." "Go back," Elijah replied. "What have I done to you?" )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So Elisha left him and went back. He took his yoke of oxen and slaughtered them. He burned the plowing equipment to cook the meat and gave it to the people, and they ate. Then he set out to follow Elijah and became his attendant. )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7. 3. 12:43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 저서 "가정아 기뻐하라" 독후감/느낀점 공유]

 

*느낀 점

 

이 책에서는 느헤미야 서에서 주신 말씀 중 하나님의 본성에 거하였더니주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구성된 Part I ‘세상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를 통하여 날마다 우리가 부닥치는 사건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말씀으로 해석 받아 세상에서도 천국을 믿고 살고 누리도록 인도하십니다. 인생의 포로기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에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기 힘든 것(17)이라고 하십니다. 배신 당하고 끝난 것 같은 내 인생에도 하나님의 그루터기가 남겨져 있음으로 우리는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희망이 충만한 것이라고 하시니 은혜롭습니다.

 

나님의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사람을 붙여주시는 데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란 고백이 나올 때 의외의 사람이 도와주도록 예비하심을 굳게 믿습니다. 복음 전파란 각자의 상황에 처한 백성에게 말씀을 풀어주며 말씀이 삶에 적용되도록 돕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면 건강한 감정이 뒤따르고, 정죄 때문에 애통하는 것이 아닌 죄에 대한 애통을 하게 된다고 하시며 하나님 앞에 회개와 감사로 우는 사람은 무거운 짐을 다 벗을 것처럼 기쁜 삶을 살수 있다고 하시니 할렐루야입니다. 특히 아무리 자기 열심으로 봉사하고 흥분하여 부르짖고 눈물 흘리고 기도해도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시니(51) 찔림이 다가 옵니다

 

이스라엘의 3대절기로서 유월절(구원을 기념)과 오순절(성화를 기다림) 및 초막절(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재림의 절기)이 있는데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며 시들어 가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오늘이 내일 인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71)는 뜻이라고 하십니다. 자복하는 기도의 본질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죄인이고 하나님은 100% 옳으심을 선포하는 것(106)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자복할 수 있는데 나를 지으신 주님이 나를 보존하시는 줄 믿고 인정할 때 내가 티끌보다 못한 존재임을 자복하며 주님을 경배할 수 있다(114)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과 육의 양식을 주시는데 영의 양식으로 예배가 회복되면 육적인 것도 회복되는 것이며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예배의 회복에 있음을 강조하시면서 내가 말씀의 양식을 먹고 예배가 회복될 때 가정도 직장도 다 회복된다(137)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인 십일조는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려야 하는데 십일조는 나의 소유가 하나님께 있다는 표현이며 하나님 경외하기를 훈련하고 배우기 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날마다 하나님이야 돈이냐를 택하는 훈련이 십일조라고 하십니다. 돈이 없어도 시간과 애정의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므로 우리가 손을 대서는 안 될 것이 십일조라고 하시면서 재물의 주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헛된 일에 쓰일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십니다. 신명기 말씀에는 십일조를 하고 심의 이조와 삼조는 과부와 나그네를 구제하는데 쓰라고 하신다(224)는 가르치심에 앞으로 십의 삼조까지 기쁘게 적용하는 마음을 주심에 은혜가 느껴집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심히 즐거워 할 수 있는 비결은 나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봉헌하는 것으로 우리의 구원의 여정이 심히 즐겁게 된다고 하십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께 봉헌함으로 심히 즐거운 삶을 살게 되면 육적으로 즐거워하던 세상적 쾌락과 각종 중독을 끊게 되고 나와 내 가정을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해서 회개의 영이 임하신다(305)고 하시니 할렐루야입니다

 

즐거워야 십일조를 하게 되는 것인데 느헤미아12장 전체를 보면 노래하다는 표현이 9, ‘감사하다 6, ‘찬송하다6, ‘즐거워하다 5번 나오는데 감사하고 즐거워 찬송하고 노래하니까 십일조가 저절로 드려지는 것이며 예배를 통해 기쁨이 회복되면 각자의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쌓게 되는 것(319)이라고 십일조에 대한 명쾌한 개념과 행동강령지침을 주시니 십일조에 대한 기쁨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죄라고 꾸짖는 사람이 느헤미야 지도자인데 출애굽기 20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아이들을 잘 지켜내는 것은 세상적 성공비결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안식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337)이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안식이 있을 수 없다(340)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갚으실 길 없도록 후히 대접해 주시는데 행위가 온전치 못해도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한 것을 기억하시고 주님께서 나를 아끼신다고 하십니다. 내 힘으로는 안 믿는 가족을 구원할 수도 없고 안식일 지키라고 강요할 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헌신과 섬김을 기억하사 반드시 구원 받게 하실 것을 믿으신다(346)고 하십니다

 

불신결혼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데 십일조, 안식일, 불시결혼은 각각 사안을 달라도 영적으로는 모두 책망 받아야 할 죄이기에 책망 받는 것(363)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불신결혼을 막을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최고의 상급으로 여기지 않으면 불신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돈과 외모에 취해서 불신결혼 했다가 구원의 계보에서 끊어질 수 있으므로 불신결혼을 방치한다면 그것 역시 죄악(369)이라고 하십니다

 

훼파된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시킨 능력의 지도자 느헤미아가 십일조와 안식일, 불신결혼 설교로 마무리한다고 하시면서 100%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불신결혼은 축복의 통로를 막고 자손 대대로 저주를 받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불신결혼을 막기 위해 부모가 본보기로 살아야 하고 배우자를 위해 지금부터 헌신하고 결단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돈, 미모, 권세 앞에서 무너지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십일조 생활 잘하고 구별된 가치관으로 안식을 누리라(372)고 권면하십니다. 할렐루야~

 

(1)십일조, (2) 안식일, (3) 불신결혼에 대한 올바른 신앙 관은 믿음이 열매를 맺어 기쁨 충만해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가정이 살아나 기쁨이 차고도 넘치도록 인도하는 3가지 핵심개념으로 예배회복의 진정한 3대 가치라고 생각됩니다.  샬롬~^^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6. 18. 18:42

[우리들교회 2019 616일 주일말씀 요약과 말씀어록 91選 및 느낀 점(왕상 19 9절로 10절 아버지 품으로)]

 

 

 

<Prologue>

가정 중수는 우리들교회 정체성(Identity)이라고 할 수 있다.

니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What are you doing her, Elijah?)라고 굴로 피해 숨어 들어간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계속 나만 혼자 남았다’ (I am the only one left.)라고 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오셔서 회개의 역사를 주신다.

때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나의 열심이 특심해서”(10: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God Almighty.) 모두 나만 죽으라 하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한 두려움은 교회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었지만, 늘 두려움이 있었다. 하나님은 용광로 속에서 나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시고 도우셨다

별 인생이 없다라는 것을 아는 것이 대장부이다.

우리의 종착역은 천국이어야 한다.

 

[열왕기 상 19:9~10]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가.             말씀요약

우리들교회 창립 16주년 감사예배다.

창립예배 때마다 김양재 목사님간증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들교회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이 얘기하라고 교회 목회를 하게 하셨기 때문에, 가정중수를 위해서 한 사람을 위해서 다 아는 얘기지만 또 한다.

일어날 힘없는 한 분 일어나 성령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도우셔서(Effective Power of God)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엘리야가 바알을 물리치고 이세벨의 공개지명수배 협박으로 도망가 굴에 숨었다.

굴에 들어간 엘리야는 계속 나만 남았다’ (I am the only one left)고 한다. 목사님도 일생이 두려움의 인생이고, 늘 승리했나 싶으면 참담한 일이 있다고 고백하신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어찌하여 여기 있냐’(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고 물으신다.

하나님에 대한 특심이 있지만 오직 나만 남았다’(I am the only one left)라고, 모두 나를 죽으라고 하는 것 같다(now they are trying to kill me, too)고 한다.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셔서 굴에 숨어 있었지만 말씀이 임했다.

나를 위한 두려움에서 교회를 위한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목사님이 정신 줄을 놓고 싶을 때 많았지만 죽지 않았고 이혼도 안 했다.

4대째 모태신앙이었지만 감추어진 성부하나님의 경륜(Hidden Will of God) 깨닫게 하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이 낮아지게 하셔서 목사님을 용광로 속에서 연단시킬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 보니 성령 하나님께서 어찌나 효과적으로 도우셨는지(Effective Power of God)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안식하면서, 여러분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해서 간증을 나눈다.

목사님이 얼마나 시기마다 열심이 특심이었는지, 그때마다 주님은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라고 물어보신 바로 이 주제이다.

목사님의 간증

 

1. 어릴 때

인생에 가장 먼저 찾아 온 고난은 아들을 못 낳는 어머니의 고난이었다. 작은어머니는 예수 안 믿는데도 아들 제조기였다.

믿는 사람인데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았다.

하나님이 골리시려고 하는 것 같았다.

피난 온 아버지는 토건업으로 돈 벌어 아들 낳으려고 기복적으로 섬겼다.

교인들과 목사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겨서 점지해서 받아낸 이름이 김양재이다.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들어가서 낳으려고 들어갔는데, 파란 비단이불로써 아들 것으로 준비했는데 내가 나왔다.

그 당시 신앙이 다 기복신앙이었다. 다 잘 되려고 예수 믿었다. 돈이 많아서 돈으로 교회 섬기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딸만 낳은 어머니는 인생이 해석이 안 되고 충격 받았다.

몇 십 년 후에 쓰임 받을 딸을 믿음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해석이 안 되었다. 그렇게 헤매시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장충동이 가장 부자 동네였는데, 어머니 이상하게 사셨다. 새벽부터 변소 청소하시고 남의 집 빨래 해주러 다녔다. 자녀들 하나도 안 돌보시고, 딸의 공부에는 하나도 관심 없었다. 입시지옥 시절인데 유치원에도 안 보냈다. 학교도 일 년 일찍 보내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렇게도 안 했다.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늙어서 초등학교 들어가서 출석번호도 1번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성적표에 아름다울 , 어질 이 즐비했다. 어머니는 준비물 챙겨준 적도 없고 변소 청소에 꽂혔다. 나는 아무도 안 돌봐준다는 굳센 믿음이 생겨서 9살에 정신연령 30살이 되었다. 어머니는 당시 가장 일류학교 나온 재원인데다가 테니스 선수였다. 재래식 화장실인데 아침마다 몸빼 바지 입고 청소하시고 새벽마다 기도하고 오셨다. 모든 걸 접으셨다. 공부 잘해서 시집 잘 가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헌금도 무명으로 하고 이름도 빛도 없이 다니다 보니 교회에서도 어머니를 무시했다. 교회에서 얼마나 외모로 사람 무시하는지 봤다.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까지 잘 살았다. 엄마가 창피했다. 이런 가정에서 정신연령 30살을 느끼며 시험 봐서 이화여중 들어갔다. 엄마는 공부 잘하면 뭐하겠네, 사도 바울처럼 고난만 많아 야하셨다. 입학식에도 안 오셨다. 아버지는 성품으로, 어머니는 믿음으로 보여주셨다. 학교가 다 쓸데없다는 얘기를 하셨다. 내가 막내딸이었다. 아들에 대해 완전히 포기하셨다.

(적용)

-여러분의 어릴 때는 어땠나?

-여러분의 자녀교육은 어떤가?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성품인가, 믿음인가?

 

2. 학생의 때

그 이후 집이 쫄딱 망했다. 당시 유배지나 다름없는 우이동으로 이사 갔다. 언니들은 다 대학 나와서 대학에 가려 했다. 셋째 언니 마지막 이화여대 등록금을 전화 팔아서 내는 걸 봤다. 집에 돈 되는 게 없었다. 대학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학 서울대학교 가서 장학금 받는 길밖에 없었다. 피아노 시험뿐만 아니라 화성 학, 전 과목 교과 시험 봤다. 모두 족집게 과외 하는 판국에 고등학교 때 장학금과 용돈 벌어야 해서 꼬마 피아노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엄마가 나를 안 돌봐서 학교 옆에 독서실 얻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가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정말 대단히 열심이 특심이었다. 재수도 안 하고 서울대학교 피아노학과에 붙었다.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집이 또 쫄딱 망했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집에 생활비까지 내놔야 했다. 당시 피아노 과에 집에 전화 없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싼 대학 등록금이래도 땅 파봐야 돈이 안 나왔다. 할 수 없이 장학금을 받아야 됐다.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공부 잘해서 장학금도 받아야 하니까 24시간을 48시간으로 살아야 했다.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에서 살았다.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생활비 내라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믿음이 좋은 엄마는 있음 먹고 없음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야이게 엄마한테 나온 소리다. 뭘 하란 소리를 하나도 안 했다. 그러면 하고 싶은 마음 생긴다. 그래서 4년 장학금 받고 학교 다녔다. 이런 딸이 사실 어디 있겠는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에 들어갔다. 얼마나 학교에 남고 싶었겠는가? 알바 하면서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피아노 칠 시간이 없었다. 학교에서 휴강, 공강 시간만 되면 빈 연습실 들어가서 실기 연습했다. 그러니 데이트를 했겠는가? 못 했겠는가? 시간이 없어서 데이트를 못했다. 하나님께서 다 막으셨다. 기계처럼 살았다. 대학 졸업할 때 서울예고에서 전임으로 오라고 했다. 유학도 안 갔다 왔는데 말이다. 피아노한 사람으로서는 영광이었다. 바쁜데도 교회를 나갔다. 난 어쩔 수 없는 집탕이다. 사람들은 다 믿음이 좋은 줄 알지만 반주해서 돈 벌려고, 어렸을 때부터 나갔으니까 교회 갔다. 그렇게 시간도 없는데 오후에는 CCC도 나갔다. 영적 리더가 그때 CCC였다. 은혜는 하나도 못 받으면서 갔다. 순모임은 안 가고 목사님 설교만 들었다. 왜 갔는지 모르겠다.

(적용)

-여러분의 더 밑의 학창시절은 어땠는가?

-자녀들은 어떻게 키우겠는가? 일류를 키우기 원하는가, 은사대로 키우기 원하는가?

 

3. 결혼의 때

어렸을 때도 굴에 갇혀 있었다. ‘입시의 굴, ‘돈 버는 굴 등등. 뭣 땜에 사는지 몰랐다. 그래도 미팅은 한두 번 한 적 있지만, 졸업 무렵 정식으로 부모님과 첫 선 보았다. 결혼이 없었으면 당연히 예고 전임 가서 유학 갔다 와서 교수가 됐을 것이다. 그게 좋았을까? 지금 목사가 좋을까? 역시 난 결혼을 잘했다. 결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라. 너무 유명한 기업인 장로님, 권사님 댁 의사 아들이었기에 굉장히 저울질 하다가 결혼으로 택했다. 모두 교회 반주 10년 하더니 축복받고 시집 잘 간다 했다. 지금까지 가난했어도 다들 흠모하는 학교도 가고 그랬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남편 잘 만나서 무학자가 회장님 사모님 되셨다. 살림밖에 몰랐다. 이 분은 새벽마다 4시 반부터 청소하셨다. 청소하려고 이 땅에 태어난 분이다. 플라스틱으로 하면 안 떨어진다고 헝겊 총채에 무거운 헝겊으로 떨었다. 내가 힘이 없다고 뭐라고 하셨다. (1)아씨걸레, (2)젖은 걸레, (3)마른 걸레, (4)기름 걸레, (5)윤내는 걸레 등등.. 걸레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게 또 방바닥 걸레창문 걸레가 따로 분류되어 있었다. 지붕 청소, 댓돌 청소, 철 대문 청소로 온 집안을 반짝반짝 윤을 냈다. 그렇게 8시까지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고 2시에 오후 청소에 들어갔다. 이 모든 청소를 하는데도 눈만 뜨면 야단을 치셨다. 걸레를 꽉 짜지 못한다고, 힘을 못 준다고 얼마나 야단을 치든지.. 피아노 치면서 얼마나 돈 내고 팔에 힘 뺀 건데, 아무리 가난해도 집에서는 팔에 힘 들어가는 걸레질 안 시켰는데, 날마다 따라다니며 잔소리하셨다. 여자는 책을 봐도 안 되고, 음악을 들어도 안 되고, 신문을 봐도 안 되고, 피아노를 쳐도 안 되고, 전화질을 해도 안 되고, TV를 봐도 안 되고, 일 년에 외출은 친정아버지 생신 딱 하루만 허락됐다. 여자와 명태는 사흘에 한 번씩 밟아야 된다는 유교 사고방식 가지셨다. 아무 때나 내 방문을 열어 재끼실 때 누워 있어도 안 되고 잠을 자도 안 되고 책을 봐도 안 되었다. 여자가 어디서 잠을 자? 여자가 어디서 책을 봐?태어날 때부터 여자로 태어나 엄마의 슬픔이 되었는데, 시집가서 눈만 뜨면 여자 소리를 들었다. 무학자 시어머니가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했는데, 엄마가 잔소리 안 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그때 비로서 알았다. 시댁에서 선풍기 켜면 가난한 집 딸이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선풍기 켠다고 하면서 입만 열면 가난한 집 딸이..하며 인격 모독했다. 그때 시댁에 냉장고, 에어컨, 좍 다 해놓고 아무것도 안 썼다. 걸레질도 깨끗하게 빨아야 하지만, 비누질은 비누 아껴서 이틀에 한 번 했다. 방망이로 빨았다. 아끼는 게 몸에 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끼는 훈련 했다. 부잣집에 시집갔는데.. 아버지가 사업 망해서 그렇지 14대 부자로 내려온 집인데, 그냥 그렇게 입만 열면 가난한 집 딸이 입에 붙었다. 돈을 볼 수가 없었다. ‘비단치마 속 넝마같이 살았다. 썩어질 몸뚱이 아끼지 말라고 고무장갑도 못 끼게 했다. 99가지 잘해도 소용이 없었다. 시집오는 첫날부터 눈만 뜨면 야단맞았다. 나름대로 노력했다. 분무기로 걸레에 물 뿌려서 시어머니가 원하는 습도로 맞췄다. 방을 열면서 노크라는 것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들어오면 그냥 걸레질만 하고 있으면 너무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새벽기도 갔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엄마 돌아가셨는데 걸레 못 닦는다고 배운 게 없다며 너희 엄마 데려오라고 하셨다. 돌아가셨는데.. 세 명의 무학자와 한 명의 고학력자가 한다는 대화가 멸치 똥을 땄냐? 안 땄냐?, 걸레질을 했냐? 안 했냐? 였다. 뭐 안 했으면 다 새댁이 안 한 거였다. 빨래를 다시 하라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렸을 땐 큰언니가 무서웠는데 시집가면 시어머니가 무섭고 남편이 무서웠다. 다들 날 죽이려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이지이런 생각이 안 들겠는가? 걸레질에 순종하기에는 너무나 화려한 학창시절 보냈다. 서울대에서 여학생회장도 했고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날 데려가려고 남편이 얼마나 꼬셨겠는가? 이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이 깨달아졌겠는가? 월남치마 입고 매일 빨래하고 손에 주부습진까지 생겼는데.. 문제는 자유가 없었다. 새댁은 문밖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걸레질밖에는 할 게 없었다. 육체노동만 해야 했기에 뜨개질을 했다. 킹사이즈 침대보를 두 개나 떴다. 시집살이를 너무 대단하게 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팔자 없는 걸레질, 뜨개질만 하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시아버지는 유명교회 수석장로 겸 재정장로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한테 한복을 입으라고 했다. 앞서가는 피아노 과 사람인데, 한복입고 나가니까 겉모습은 화려했다. 근데 교회에 지체가 없었다.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너무 축복받은 것 같았지만, 4대째 모태신앙이고 여학교 가서 성경 100점 맞고 교회 반주하고 춘계추계 부흥회 있고 주일예배, 어른예배 있고, -교회-학교밖에 없었다. 근데 교회 가서 앉기만 하면 졸기만 했다. 누구 보이기 위해 교회 가니까 가는 게 고역이었다. 갈 때마다 흰 고무신 닦아야 하고 한복을 꽉 조여 입으니까 산소가 부족해서 졸았다. 이렇게 삶이 계속되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는데 회개할 거리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효녀지, 착한 딸이지, 공부 잘하고 믿음 좋고 상냥하고 이런 것밖에 생각 안 났다. 난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다들 날 죽이려 하냐고.. 그 당시 여자로서 미모도 있었다. 드러내지 않지만 교만한 마음이 있었다. 내가 이런데 걸레질을 하고 어찌하여 내가 여기 있는가’ 라는 이 생각이 안 들었겠는가? 적금 들어서 내가 다 혼수도 준비했다. 인간승리였다. 열심이 특심이어서 모든 것에 특심이었다. 누구한테 신세지는 것 절대 안 했다. 근데 가서 걸레질, 뜨개질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원치 않는 나의 감정에 직면했다. 착한 것이 악한 것이라는 것을 직면했다. 내가 너무 착해서 약이 듣지 않았다. 뭔 약이냐, 구약과 신약도 약효가 없었고 회개가 안 되었다. 가난한 것과 시집가서 부잣집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가난과 비교도 안 되었다. 가난할 때는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걸레질하면서 시댁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몰랐다. 말은 안 하지만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원치 않는 것에 네 네 네하니까 악어비늘 속에 기생하는 물고기 같았다. 물어보는 것마다 모르니까 그분들의 총평은 새댁은 정말 대학 나왔어?”라는 것이었. 10년쯤 지나고 보니까 내가 정말 대학을 나왔나싶었다. 맨날 바보 멍충이라고 하니까 나도 거기서 생각이 멈췄다. 나와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 없었다. 멸치 똥 따면서 멸치랑 대화했다. 난 우이동에서 왔는데 넌 어디서 왔니?제일 중요한 남편이 말이 안 통했다. 교양이 9단이어서 생존으로 몸에 배었다. 시아버님은 매일 출근하시면서 아주머니들과 일렬로 세워놓고 너희 오마니 때문에 우리 집안이 일어났다. 오늘도 오마니가 하얀 걸 까맣다 해도 예 하라우이러고 출근하셨다. 친정아버지는 한술 더 떠서 친정의 경조사에 못 가서 힘들다고 하면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지, 네래 밥만 먹여줘도 고마운 줄 알라우, 네래 서울대학교 나와서 교만해서 그런기야” 하시며 전화를 탁 끊었다. 이렇게 힘들 때 엄마도 돌아가시고 교회 지체도 없고 전화 걸 단 한 사람의 지체가 없었다. 평생 교회를 다니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반주를 했어도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진보와 보수가 말이 안 통한다. 대부분 말을 못해서 죽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교회를 무시했었다. 교회 지체들은 공부를 못해’라며 무시했다. 눈만 뜨면 이혼을 생각 했다. 지금 보면 엄마 기도 덕분에 이혼 못했다. 교양 있게 연기처럼 사라지자 생각했다. 자살이었다. 연기같이 사라지는 것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성경을 평생 읽었는데 어쩜 그렇게 말이 안 들렸다.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는데 내 안에 쌓아지고 있는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지 못했다. 죽지도 못하고 살아 있었다.

 

(적용)

-여러분의 결혼의 때는 어떤가?

-다시 돌아가도 지금 배우자랑 하고 싶은가?

-여러분은 이렇게 얘기해도 불신결혼, 이혼 하고 싶은가?

 

4. 회개의 때

우리 집에 일하는 사람이 둘씩이나 있는데 왜 나는 피아노를 못치고 걸레질을 해야 하는 거지?싶었다. 인간의 가치관은 쉽게 안 바뀐다. 걸레질에 대한 순종이 쉬운 것 같은데 안 되었다. ‘네가 어찌하여 걸레질만 하고 있느냐?’ 인생이 슬픈 것이다. 바보 같아서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구원의 시각으로 봐야 이혼을 안 하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관은 바뀌기가 힘들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시며 (시집)굴 속에 들어가 있는 나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여전히 집에서 못 나가고 있었다. 날 때부터 소경 된 자가 뭘 기도해야 하는지 몰랐다. 소경을 보아주신 예수님처럼 주님이 날 보아주셨다. 엘리야에게 너무 미안해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호되게 다루시다가 가끔 아주 미안해하신다. 나가지 말라니까 나가지 않고, 걸레질 하라니까 걸레질했다.

친정엄마 생각이 처음 났다. 엄마한테 도움 받은 게 하나도 없고 생각을 안 했었다. 추억이 아무것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 피아노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난 양재엄마를 본 적이 없다”라고 하시는 증인이시다. 완전히 고아 같았다. 교회 변소청소나 하면서 내 입학식 졸업식에는 안 오셨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엄마였다. 그런 엄마는 어느 날 새벽기도 다녀오다가 교통사고 당해서 돌아가셨다. 뺑소니 사고였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추억할 것도 없어서 잊어버렸다. 엄마 하면 생각나는 게 없었는데 힘들어지니까 생각났다. 그 똑똑한 엄마가 목사님 설교를 다 기록해놓은 노트가 있었다. 주일설교, 수요설교, 금요철야설교, 부흥회.. 대학노트로 수 십 권이 있었는데 망해서 좁은 집으로 이사 갔을 때 아무 가책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딸들이 착해 보였는데 아무 가책 없이 버렸다. 목사가 되고 나서 가장 중요한 유산을 꼽으라고 하면 엄마의 설교노트인데, 50-60년대 목사님들의 그 중요한 설교들을 다 기록해놨는데.. 얼굴이 착해 보여도 믿음 없는 사람들은 중요한 걸 분별 못하고 버린다. 창세기 8:21 보면 사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했다. 학교 갈 때 똥 내 나는 몸빼 바지 입은 엄마를 마주치면 딱 모른 척 했다. 그 초라한 외모의 엄마를 차별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다. 우린 예수 믿으면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고 말한다. 근데 교회에서도 얼마나 차별하는지 모른다. 예수님도 엄청 차별을 받았다. 교회에서도 차별했지만 나도 엄마를 차별했다. 그러니 시댁에서 내가 차별 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들었다.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셨는데 유대인들에게 차별 당했다. 믿음 없으면 사생아, 목수의 아들이라고밖에 안 본다. 우리는 외모로 너무 차별한다. 엄마의 죽음 통해서도 착한 딸들의 열심이 특심인데 아무도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했다. 근데 시집살이 차별 당하고 땅 끝까지 내려가면서 드디어 엄마의 모습을 직면했다. 예수 믿으면 엄마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적으로 화려한 사람들을 학교에서 보고, 교회 가면 공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 보니까 학교 가도 왕따이고 교회에서는 왕따시켰다. 엄마는 혼자 이타적으로 살면서 바빴고 무시당했다. 바닥으로 내려가니까 내가 믿음이 없다는 것과 시댁에서 무시 받는 것은 내 삶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선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복음 16장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근데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지라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다. 자신을 높이고 스스로를 옳다 여기고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 내가 딱 바리새인이었다. 모범생이니까. 사명 때문에 피아노치고 공부하고 결혼한 게 아니라, 야망 때문에 피아노치고 공부하고 결혼했다. 돈 좋아서 모든 것을 했다. 맨날 나는 착하고 공부 잘하고..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게 내 우상이었다. 얼마나 인정받는 게 우상이었으면 사람들에게 그렇게 착하게 했겠는가. 시댁에서 하나도 안 통한 게 축복이었다. 시어머니가 억지였고 춘향인 나를 이겼다. 남편이 기사 데리고 선보러 나오니까 혹했다. 내가 정말 세상적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들렸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절대로 못 미치는 것이다. 거듭나고 나서 보니까 엄마처럼 살아야겠다 싶었다. 엄마가 왜 울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다시 태어나도 엄마처럼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사건이 올 때마다 내가 가증해 보이는 게 있다. 인생 전체를 걸고 가정중수와 말씀 묵상 때문에 툭 치면 나오는 간증으로 이 얘기를 하는 것이다. 가정 지키기 위해 한 노력은 서울대 들어가기 위해 한 노력보다 천 배, 만 배 더 노력했다. 결혼해서 죽고 싶었지만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 가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날 쓰셨다. 불신결혼을 시키지 않으려면 자녀들에게 큐티 가르쳐야 한다. 삶을 진솔하게 나눠야 자녀들을 사단에게 뺏기지 않는다. 불신결혼 하지 마라, 믿음이 최고다, 서울대학교 가봤다 소용없더라, 부잣집 가봤자 소용없다이 얘기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서울대 보내시고 시집 보내신 것이다. 도저히 내 힘으로 갈 수 없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간 것이다. 회개를 하니까 시공간을 초월하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켜주셨다. 참담한 일이 반복되니까 회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일어나 먹으라고 하시는 그걸 많이 경험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교회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니까 얼마나 눌리는 자리인줄 모른다. 두려운 일이 많다. 성경 잘 깨달으라고 사건이 계속 온다. 나는 모르지만 아버지 품으로 오게 하라고 끊임없이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신다. 말씀이 임하여 말씀으로 회개케 하는 역사 일어나려면 그저 오늘 하루하루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다. 청년의 때에 불신결혼, 이혼 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은 나 잘되라고 하는 것 아니다. 나는 두렵고 너무 연약한데 하나님이 나를 쓰신다. 내 성품도 아니고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길도 아니다. 시어머니 무서워서 걸레질이나 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쓰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쓰신다.

가장 큰 준비는 회개의 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홀로서기 잘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적용)

-여러분은 말씀이 들리는 회개의 때를 살고 있나?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 것에 동의하는가?

-어느 때를 살고 있나? 무시당하는가, 무시하는가? 어찌하여 거기 있는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 회개케 해달라고.. 회개하면 7천 배의 응답이 온다. ‘나 혼자 남았다라고 그만 푸념하고 회개하길 바란다.

 

나.              말씀어록 91選

 

1)   가정 중수는 우리들교회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2)   니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What are you doing her, Elijah?)라고 굴에 들어간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3)   계속 나만 혼자 남았다’ (I am the only one left.)라고 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오셔서 회개의 역사를 주신다.

4)   때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나의 열심이 특심해서”(10: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God Almighty.) 모두 나만 죽으라 하는 것 같았다.

5)   나를 위한 두려움은 교회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었지만, 늘 두려움이 있었으며 하나님은 용광로 속에서 나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시고 도우셨다

6)   별 인생이 없다라는 것을 아는 것이 대장부이다.

7)   우리의 종착역은 천국이어야 한다.

8)   성령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도우셔야(Effective Power of God)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다

9)   일생이 두려움의 연속이고, 늘 승리했나 싶으면 참담한 일이 있다

10) 하나님에 대한 특심이 있지만 엘리야가 굴속에서 오직 나만 남았다’(I am the only one left), ‘모두 나를 죽으라고 하는 것 같다’(now they are trying to kill me, too)고 하는 것이다

11) 감추어진 성부하나님의 경륜(Hidden Will of God) 깨닫게 하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이 낮아지게 하셔서 택자를 용광로 속에서 연단시키신다

12) 지나고 보면 성령 하나님께서 어찌나 효과적으로 도우셨는지(Effective Power of God)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안식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13) 초등학교 저학년 성적표에 아름다울 , 어질 이 즐비했다. 

14) 엄마는 공부 잘하면 뭐하네, 사도 바울처럼 고난만 많아 야하셨다

15) 아버지는 성품으로, 어머니는 믿음으로 보여주셨다.

16) 믿음이 좋은 엄마는 있음 먹고 없음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야이게 목사님 엄마한테 나온 소리다

17) 뭘 하란 소리를 하나도 안 하면 하고 싶은 마음 생긴다

18) 어렸을 때도  입시의 굴, ‘돈 버는 굴 등에 갇혀 살았다

19) (1)아씨걸레, (2)젖은 걸레, (3)마른 걸레, (4)기름 걸레, (5)윤내는 걸레 등등.. 또 방바닥 걸레창문 걸레가 따로 분류되어 있었다

20) 시집가서 눈만 뜨면 여자 소리를 들었는데 무학자 시어머니가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했는데, 엄마가 잔소리 안 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그때 비로서 알게 되었다

21) 입만 열면 가난한 집 딸이 입에 붙었으며 부잣집에서 돈을 볼 수가 없었는데 비단치마 속 넝마가 따로 없었다

22) 뭘 하든지 열심이 특심이어서 모든 것에 특심이었다.

23) 세월이 흐를수록 원치 않는 나의 감정에 직면했고 착한 것이 악한 것이라는 것을 직면했다.

24) 내가 너무 착해서 약이 듣지 않았다. 뭔 약이냐, 구약과 신약도 약효가 없었고 회개가 안 되었다.

25) 가난한 것과 시집가서 부잣집에서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가난과 비교도 안 되었다.

26) 가난할 때는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27) 걸레질하면서 시댁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몰랐는데 말은 안 하지만 내 자신이 너무 싫었고 원치 않는 것에 네 네 네하니까 악어비늘 속에 기생하는 물고기 같았다.

28) 맨날 바보 멍충이라고 하니까 나도 거기서 생각이 멈췄고 나와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멸치 똥 따면서 난 우이동에서 왔는데 넌 어디서 왔니?멸치랑 대화했다.

29) 제일 중요한 남편이 말이 안 통했는데 교양이 9단이어서 생존으로 몸에 배었다.

30) 시아버님은 매일 출근하시면서 너희 오마니 때문에 우리 집안이 일어났다. 오늘도 오마니가 하얀 걸 까맣다 해도 예 하라우이러고 출근하셨다.

31) 친정아버지는 한술 더 떠서 친정의 경조사에 못 가서 힘들다고 하면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지, 네래 밥만 먹여줘도 고마운 줄 알라우, 네래 서울대학교 나와서 교만해서 그런기야” 하시며 전화를 탁 끊었다.

32) 이렇게 힘들 때 엄마도 돌아가시고 교회 지체도 없고 전화 걸 단 한 사람의 지체가 없었다.

33) 평생 교회를 다니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반주를 했어도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34) 진보와 보수가 말이 안 통한다.

35) 대부분 말을 못해서 죽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36) 내가 교회를 무시했었고  교회 지체들은 공부를 못해’라며 무시했으며 눈만 뜨면 이혼을 생각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기도 덕분에 이혼 못했으며 교양 있게 연기처럼 사라지자 생각했던 것이 자살이었고 연기같이 사라지는 것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37) 성경을 평생 읽었는데 그렇게 말이 안 들렸다.

38)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는데 내 안에 쌓아지고 있는 그 크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지 못했으니 죽지도 못하고 살아 있었다

39) 우리 집에 일하는 사람이 둘씩이나 있는데 왜 나는 피아노를 못치고 걸레질을 해야 하는 거지?싶었는데 그렇게 인간의 가치관은 쉽게 안 바뀐다.

40) 걸레질에 대한 순종이 쉬운 것 같은데 안 되었으며 네가 어찌하여 걸레질만 하고 있느냐?’라고 생각하니 인생이 슬픈 것이고 바보 같아서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41) 구원의 시각으로 봐야 이혼을 안 하는 것인데 인간의 가치관은 바뀌기가 힘들다.

42) 결론적으로 말하면,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시며 (시집)굴 속에 들어가 있는 나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43) 여전히 집에서 못 나가고 있었는데 날 때부터 소경 된 자가 뭘 기도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소경을 보아주신 예수님처럼 주님이 날 보아주셨는데 엘리야에게 너무 미안해하셨던 것처럼 호되게 다루시다가 가끔 아주 미안해하신다

44) 나가지 말라니까 나가지 않고, 걸레질 하라니까 걸레질했던 것이 시집 질서에 순종한 것이다

45) 엄마 하면 생각나는 게 없었는데 힘들어지니까 생각났다

46) 얼굴이 착해 보여도 믿음 없는 사람들은 중요한 걸 분별 못하고 버린다.

47) 창세기 8:21보면 사람의 마음에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every inclination of his heart is evil from childhood.)고 했다.

48)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하다.

49) 우린 예수 믿으면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교회에서도 얼마나 차별하는지 모르는 것인데 예수님도 엄청 차별을 받았다.

50) 교회에서도 차별했지만 나도 엄마를 차별했으니 시댁에서 내가 차별 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들었다.

51)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셨는데 유대인들에게 차별 당했다.

52) 믿음 없으면 사생아, 목수의 아들이라고밖에 안 본다.

53) 우리는 외모로 너무 차별하는데 엄마의 죽음을 통해서도 착한 딸들의 열심이 특심인데 아무도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했다.

54) 근데 시집살이 차별 당하고 땅 끝까지 내려가면서 드디어 엄마의 모습을 직면했다.

55) 예수 믿으면 엄마처럼 살아야 하는데 세상적으로 화려한 사람들을 학교에서 보고, 교회 가면 공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 보니까 학교 가도 왕따이고 교회에서는 왕따시켰다.

56) 엄마는 혼자 이타적으로 살면서 바빴고 무시당했다.

57) 바닥으로 내려가니까 내가 믿음이 없다는 것과 시댁에서 무시 받는 것은 내 삶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8) 내 안에 선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59) 누가복음 16장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지라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다.

60) 자신을 높이고 스스로를 옳다 여기고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데 내가 딱 바리새인(모범생)이었다.

61) 모범생이니까. 사명 때문에 피아노치고 공부하고 결혼한 게 아니라, 야망 때문에 피아노치고 공부하고 결혼했고 결국 돈 좋아서 모든 것을 했다.

62) 맨날 나는 착하고 공부 잘하고..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게 내 우상이었다.

63) 얼마나 인정받는 게 우상이었으면 사람들에게 그렇게 착하게 했겠는가.

64) 시댁에서 하나도 안 통한 게 축복이었다.

65) 시어머니가 억지였고 춘향인 나를 이겼다.

66) 남편이 기사 데리고 선보러 나오니까 혹했던 것인데 내가 정말 세상적이었다.

67) 이어지는 고난 속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들렸다.

68)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69)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절대로 못 미치는 것이다.

70) 거듭나고 나서 보니까 엄마처럼 살아야겠다 싶었다.

71) 엄마가 왜 울었는지 알 것 같았으며 내가 다시 태어나도 엄마처럼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사건이 올 때마다 내가 가증해 보이는 게 있다.

72) 인생 전체를 걸고 가정중수와 말씀 묵상 때문에 툭 치면 나오는 간증으로 이 얘기를 하는 것이다.

73) 가정 지키기 위해 한 노력은 서울대 들어가기 위해 한 노력보다 천 배, 만 배 더 노력했다.

74) 결혼해서 죽고 싶었지만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75) 가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날 쓰셨다.

76) 불신결혼을 시키지 않으려면 자녀들에게 큐티 가르쳐야 한다.

77) 삶을 진솔하게 나눠야 자녀들을 사단에게 뺏기지 않는다.

78) 불신결혼 하지 마라, 믿음이 최고다, 서울대학교 가봤다 소용없더라, 부잣집 가봤자 소용없다이 얘기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서울대 보내시고 시집 보내신 것이다.

79) 도저히 내 힘으로 갈 수 없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간 것이다.

80) 회개를 하니까 시공간을 초월하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켜주셨다.

81) 참담한 일이 반복되니까 회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

82) 하나님이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일어나 먹으라고 하시는 그걸 많이 경험했다.

83) 말 한마디 잘못하면 교회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니까 얼마나 눌리는 자리인줄 모르는 것이며 두려운 일이 많다.

84) 성경 잘 깨달으라고 사건이 계속 오는 것이며 나는 모르지만 아버지 품으로 오게 하라고 끊임없이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신다.

85) 말씀이 임하여 말씀으로 회개케 하는 역사 일어나려면 그저 오늘 하루하루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다.

86) 청년의 때에 불신결혼, 이혼 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은 나 잘되라고 하는 것 아니다.

87) 나는 두렵고 너무 연약한데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 것은 내 성품도 아니고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길도 아니다.

88) 시어머니가 무서워서 걸레질이나 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쓰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다.

89) 가장 큰 준비는 회개의 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90)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 회개케 해달라고 기도하고 회개하면 7천 배의 응답이 온다.

91)  나 혼자 남았다라고 그만 푸념하고 회개하길 바란다.

 

 

다.             느낀 점

 

난 주(616) 우리들교회 창립 16주년 아버지 품으로전도축제일 주일말씀(열왕기 상 19:9~10/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을 통해 김양재 목사님은 본인의 일생에 대하여 간증하시며 내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찾아와 주신 것이며 가장중수와 말씀묵상 때문에 툭 치면 간증이 나오며 가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목사님을 쓰시는 것이라고 결론 지으십니다.

(1)어릴 때, (2) 학생의 때, (3)결혼의 때, (4)회개의 때

 

열심이 특심이었는데 평생 큐티 묵상 신앙생활을 통하여 성령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도우셔서(Effective Power of God)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생애 최고의 은혜인데 성부하나님의 숨겨진 경륜(Hidden Will of God)이 성자하나님의 구속사의 은혜로 이루신 것(Revealed Will of God) 이라고 하시니 말씀이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억지가 춘향을 이기는" 경우로 인해 고난의 연속이지만 오래 참고 견디면 고난이 나중에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예방주사가 되니 축복이 아닐까요?

 

고난과 가난과 환난 중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응원하십니다.

 

"배우면 뭐하네? 사도 바울처럼 고난 밖에 없어 야~"라고 하시는 월남하신 목사님 친정 어머니말씀처럼 목사님은 이 시대 사도 바울의 고난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창세기 8:21/ every inclination of his heart is evil from childhood.)는 말씀처럼 열심이 특심이지만 누구도 거듭남이 없는 것인데 사람에게 높임을 받고 싶은 것이 모두의 우상임을 인정합니다.

 

사명 때문이 아니라 야망 때문에 공부해 야망으로 결혼하는 것의 결론은 모두 돈 때문인 것이 우리 삶의 결론이니 우리는 모두 악하고 100%죄인인 인간본심론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목사님은 친정어머니 잠언대로 이 시대 바울같은 사도가 되셨음이 느껴집니다. 너무 착해서 구약도 신약도 약효가 없고 구원(기복적으론 10원에서 1원 모자라는 9원이지만...)이 시대 최고의 만병통치약임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Paulos<지극히 작은 자>, Doulos<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종과 같이 비천한 자>, Apostolos<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명자>" 같이 '야망 8, 교만 8은 내려 놓고 이제 '겸손 8, 평강 8'의 경지에 이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6. 17. 15:18

[너는 복이 될지라(김양재 저/두란노 366쪽)독후감/느낀 점 및 회개]

 

지난 주 (616) 우리들교회 창립 16주년 아버지 품으로전도축제일 주일말씀(열왕기 상  19:9~10/아버지 품으로)을 통해 김양재 목사님은 자신의 일생에 대하여 간증하시면서 내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찾아와 주신 것이며 '가정중수와 말씀묵상' 때문에 툭치면 간증이 나오는 것이고 가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목사님을 쓰시는 것이라고 결론 지으십니다.

(1)어릴 때, (2) 학생의 때, (3)결혼의 때, (4)회개의 때

열심이 특심이었는데 평생 큐티 묵상 신앙생활을 통하여 성령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도우셔서(Effective Power of God)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생애 최고의 은혜인데 성부하나님의 숨겨진 경륜(Hidden Will of God)이 성자하나님의 십자가 구속사의 은혜로 이루신 것(Revealed Will of God) 이라고 하시니 말씀이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억지가 춘향을 이기는" 경우로 인해 고난의 연속이지만 오래 참고 견디면 고난이 나중에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예방주사가 되니 축복이 아닐까요?

고난과 가난과 환난 중에도 주님은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응원하십니다.

"배우면 뭐하네? 사도 바울처럼 고난 밖에 없어 야~"라고 하시는 월남하신 목사님 친정 어머니 말씀처럼 목사님은 이 시대 사도 바울의 고난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사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말씀처럼 열심이 특심이지만 누구도 거듭남이 없는 것인데 사람에게 높임을 받고 싶은 것이 모두의 우상임을 인정합니다.

 

목사님은 친정어머니 잠언대로 이 시대 바울같은 사도가 되셨음이 느껴집니다. 너무 착해서 구약도 신약도 약효가 없고 구원(기복적으론 10원에서 1원 모자라는 9원이지만...)이 시대 최고의 만병통치약임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Paulos<지극히 작은 자>, Doulos<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종과 같이 비천한 자>, Apostolos<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명자>" 같이 '야망 8단, 교만7은 내려 놓고 이제 '겸손 8단, 평강 8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명때문이 아니라 야망때문에 공부해 야망으로 결혼하는 것의 결론은 모두 돈때문인 것이 우리 삶의 결론이니 우리는 모두 악하고 100%죄인인 인간본질론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느낀 점:

이 책에서는 의 개념을 세상사람들이 원하는 기복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여 하나님께 죽기까지 낮아져 겸손한 자세로 섬기며 경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바라크의 복이 최고의 복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마태복음 (5:3~11)에서주시는 팔복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 임이요(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 임이요(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 임이요(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filled.)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 임이요(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라(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Blessed are you when people insult you, persecute you and falsely say all kinds of evil against you because of me)

 

성경에는 늘 부르심이 자원함보다 먼저’(16)라는 것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행한 주님 앞에서의 절대순종을 풀어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듯, 인생의 목적도 거룩임은 썩어 질 정욕과 아침 안개와도 같은 세상적 출세와 명예와 재물과 인정중독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거룩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 아닐까 느껴집니다.

우리는 일을 하도록 부르심 받기 전에 먼저 존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Doing(행동)이 아니라 being(존재자체)이 먼저인 것’(22)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고 있던 우리의 처지와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존재라고 하시니 자존감이 생깁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나 아니면 안돼. 내가 최고야. 내가 있어야 문제 해결이 되지라는 생각에서 탈피하여야 함이 깨달아집니다.

복이 되는 것은 남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는 삶(28)이라고 하십니다.

가장 좋은 부모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고 하나님 믿게 하는 부모라고 하십니다.

반면 이기적이고 악하며 용납할 수 없는 식구들이 바로 약속의 땅인 것을 알 때 내 인생이 해석된다(57)고 하십니다..

십일조 생활을 잘 하는 것이 신앙고백이라고 하시는 것(58)에 대하여 실제로 실 생활에서 돈은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으며 생활의 방편과 수단이므로 우상처럼 아끼고 받드는 돈을 주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는 마음이 서서 결단하고 적용하여 실천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어야 믿음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이 됩니다.

"내가 전쟁을 치른 경험이 많을수록, 내 고난이 많을수록 남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많은 법이라서 나누어 줄 것이 많은 사람이 진정한 리더"(205)라고 하십니다.

 

"Doing well by doing good"이란 말이 떠오는 아침 나절입니다.

 

*'줄 것 밖에 없는 인생' 적용 사례:

저는 30여 년간 십 수 번의 올림픽대회와 국제행사 등을 통해 수집해 온 각종 올림픽기념품 등을 모아 경기도 양평에 스포츠박물관을 건립하여 전시해 왔었습니다.

이후 평창2018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박물관을 건립하려는 강릉 시에 2015년 프레스센터에서 기증 식을 갖고 당시 최명희 강릉시장에게 전격 무상 기증한 바 있습니다.

 

만일 내가 말씀 듣는 구조 안에 없었다면 언감생심 소중한 세월의 수집품을 선뜻 기증하지 못했을 겁니다.

 

리들교회 어록 중 하나인 하나님께는 드릴 것 밖에 없고 사람에겐 줄 것 밖에 없는 인생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일상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속에서 본의 아니게 전쟁을 치르며 살고 있습니다.

주일설교 말씀에서도 이 모든 전투에 대하여 하나님의 전쟁이라고 선포하고 순종하면 더 이상 내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손수 치러주시어 항상 승리하는 전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나는 일평생 전쟁이 없었더라의 인생이 되는 것이라는 분별의 지혜를 주시니 할렐루야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남의 잘못, 남의 약점을 파고 드는 야비함을 내려 놓고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볼 수 있어야 하며 이기는 전쟁을 하려면 이타적이 되어서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214)고 하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아브람에게 미리 오신 예수님으로 칭함 받는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다고 하십니다.

부모의 족보 없이도 대제사장이 될 수 있으며 누구든지 '평강의 왕'이 될 수 있고 축복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227)고 하십니다.

우물가의 여인으로 유명한 사마리아 여인처럼 하나님이 임해서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은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것(231)이라고 하십니다.

십일조는 고맙고 감사해서 눈물로 드리는 것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신앙고백이(233)라고 하십니다.

 

*십일조이행위반에 따른 기근사례와 회개:

 

나는 2018 4월 부로 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업무가 모두 끝나 다음달인 20185월부터 월급이 일단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특별 프로젝트를 할당하여 주시는 은혜를 내려 주시어 2018 12월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후부터는 국민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그 액수가 미미하다 보니 주일헌금, 선교헌금, 목장헌금 등으로 십일조를 대신하여 왔었습니다.

얼마 안 되는 국민연금인 바람에 그 적은 액수에서 십일조를 거르다 보니 쏠쏠했던 강연사례비가 주어지는 특별 강연 요청도 5개월 간 자취를 감추는 기근이 찾아 왔었습니다.

또한 분명히 노란색 신호등에서 직진하였는데도 빨간 신호등에서 건너 것으로 표시되어 교통신호 위반 딱지 벌금청구서도 날아 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매월 지급되던 연금이 국민연급공단에서 2년 전 소득금액 정산 소급집행으로 3월과 4월에는 그 알량한 월 정액 연금도 차감되어 지급 정지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기근사태는 지금 생각해 보니 엄연한 십일조이행위반 딱지인 셈입니다.

회개합니다.

마음의 중심자리를 보시는 하나님께서 1차 경고장을 보내 주시니 감사합니다.

차 후 십일조 신앙고백을 철저히 이행하고자 결단하고 지키고자 하니 6월부터 다시 특강 요청이 간간히 이어지고 있나 봅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6. 13. 11:10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의 책 "프러포즈" 독후감 -말씀에

근거한 결혼관에 대한 직관적 통찰 (Intuition)/ 두란노 203]

 

불신결혼의 긍극적 결말이 멸망이라는 예화가 성경말씀 속에 여러 군데 속속 등장합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일 때가 있는 것인데 Fact로 볼 때 이세벨은 시돈왕 엣바알(Ethbaal)의 딸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도 왕이고 시아버지도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이고, 남편도 아합 왕이고, 아들도 아하시야 왕이고, 딸인 아달리야도 유다로 시집가서 다 죽여 버리고 왕이 되었다.고 하니 이세벨은 그 당시 이 땅에서 왕 제조기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냥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세벨은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일 수 밖에 없는데 믿음으로가 아니라 바알 신봉자이고 세상신봉자이지만 대를 이어가면서 세상에서 계속 잘되는 것처럼 보여지니 우리가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갈멜산 대결 때처럼 굳건히 서서 이세벨에게 기별을 보내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놀라운 모습으로 선포를 하면 심판이 이세벨에게 임해서 백성들이 다 놀라 넘어졌을 것이고 그 원하는 힘 있는 개혁이 전국을 휩쓸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엘리야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순간적으로 무너져 낙담하고 있는 모습에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사실 엘리야가 절망하게 된 원인은 이세벨이 너무 갖춘 막강세력자라서 하나님에게서 찾을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여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 절망한 것으로 이 세대 막강 권력자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 오버랩 됩니다.

 

2019년 6월9일 우리들교회 김양재목사님의 주일설교말씀(열왕기상 19:1~8절/ 어루만지는주님) 중 북이스라엘의 불신결혼의 끝판왕인 아합과 이세벨은 무신론자(atheist)도 불가지론자(agnostic)도 아니며, 줏대 없는 아합이 이세벨의 치마 속에서 하나님의 감추어진 경륜을 보여 주며 정신차리라고 증거한 대선지자인 엘리야를  지명수배 체포령을 내릴 것을 조치하라는 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아합-이세벨부부는 부부금슬주의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말씀 없이 아합왕-이세벨 위정자 부부가 금슬만 너무 좋은 것이 민중을 도탄(塗炭)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같이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호와를 열렬히 배격하는 믿음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둘만 좋으면 되기에, 둘만 행복하면 되기에, 우리 집만 잘되면 되기에 이 아합-이세벨 부부의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가치관으로 인해 결국은 모두가 망하고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율법교육을 받은 아합왕이 율법을 전혀 모르는 이방출신 이세벨의 코치를 날마다 받는 격인데 둘이 너무 서로 좋아하니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코치대로 아합왕은 막무가내로 엘리야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개성을 중시하는 것이 하나님 자리에 있게 되면서 인권으로 연결되기에 동성애부터 이혼, 불신결혼까지 마음대로 하고 반대하면 차별이 되는 것임을 성경 말씀 속에서 증거하고 계십니다.

 

유명 출판사 SNS계정에 한 장의 그림이 제시되었는데 그 그림에는 “바벨탑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 "교만일까? 아니다. (중략) 바로 인권이다"라는 구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면서 모든 인간의 인권이 신격화되는 것이 바벨탑 사건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인권이 아니며 “주 다스리네”이다라고 게시물에 명기하였다고 합니다. 

 

이 게시물을 본 누리꾼들은 그 곳이 기독교 사이트(site)임에도 기독교 대표사이트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채 인권의 가치를 폄하한다고 악플을 많이 달았다고 합니다.

 

이 비판이 계속되니 기독교 사이트임에도 출판사는 하루 만에 그 해당 글을 삭제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언론의 자유가 유독 기독인들에게만 억압당하는 것 같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아이가 적성검사 성별 표시란에 (1), (2), (3)기타가 있었다고 하니 이렇게 인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라고 하십니다.

 

맥글라스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사람들은 신앙이 진짜 작동하는가를 묻는다며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야기(간증)를 해줌으로써 신앙이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믿음체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면서 성경의 진리를 현대적 상황에 맞게 번역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발굴해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얘기는 전도가 교회를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신앙이 작동하는 믿음 체계를 보여줌으로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들 교회의 죄를 보는 간증을 하는 것, 이게 스토리이며 그래서 그것이 신앙의 작동이고 이것을 전도라고 한다는 것으로 잘 살고 학력이 높을수록 인권이 왕 노릇 하는 것을 종종 본다고 하십니다/

 

이 땅 자체가 우상이기에 도저히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는 것이며 이세벨은 그 대표적인 모델로서 육이 너무 가득 차 있어서 영이 보이질 않는다고 하십니다.

 

디도서 3 5절 말씀처럼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는 말씀처럼 오직 성령의 사역만이 강퍅한 마음을 부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해 줍니다. 

 

칼로 총과 군대의 힘으로 절대로 누구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인 것 같습니다

 

엘리야의 믿음으로 행한 일의 결과는 긴급공게 체포령이 내려져 생명까지 위협 받을 지경으로 참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몸 속에 점 하나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의 낮아짐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숨겨진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셨다(Hidden Will of God, Revealed Will of God, Effective Power of God)고 하십니다.

 

 

구원의 열매가 많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참담할 때가 참 많았던 경우가 생기는데 결국 참담함을 느끼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숨은 죄 때문이며 결국은 참담함이 올 때마다 하나씩 그런 죄를 깨닫게 하셨다는 말씀이 은혜롭습니다.

 

 

*독후감/느낀 점과 소망:

 

이 책은 김양재 담임목사님의 결혼에 대한 목회철학과 가정중수 중요성의 가치관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려 동성애와 불신결혼과 이혼이 다 반사인 이 시대 결혼이 단순히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싫어지면 불쑥 헤어지는 즉흥적 삶의 일부가 아님을 가슴에 와 닿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해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배우자를 사람이 스스로 갈라서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 해 줍니다.

수긍이 갈 수 밖에 없는 결혼생활의 실체적 진실과 결혼의 거룩한 사명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생명의 진리말씀을 가슴에 와 닿도록 풍성하게 실제 사례를 곁들여 쉽게 풀어 가르쳐 인식시켜 주고 있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천하보다 귀한 두 영혼의 결합인데 서로의 반만을 각각 취해 하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의 연합이니 당연히 고통이 따르는 것이며 생살을 잘라내는 아픔과 새로운 것이 빈 곳으로 이식되는 또 다른 아픔이 함께 동반된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결혼의 참 원리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결혼이야말로 인간이 태어나서 겪는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과 희생을 해도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 가는 성숙의 훈련소 생활이 결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 온 맘 다해, 온 정성으로 서로 보듬어 주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지경이 넓어지는 계기가 됨을 가르쳐 주는 참 지혜의 보고입니다.

결혼생활에서 내 힘을 빼고 상대방을 서로 배려하며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해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기도를 통해 일용할 말씀과 함께 나눌 사랑의 양식을 공급 받는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일평생임을 믿고 살고 누리는 가정 공동체가 하나님의 가장 복된 은혜 공동체임을 깨닫고 말씀 안에서 이루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결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지만 강제사항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로 판단하고 따를 수 있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내 기대와 욕심을 가지치기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한 분명한 결혼관으로 정해 주신 배필을 찾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날마다 우리를 유혹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5~17/the cravings of sinful man, the lust of his eyes and the boasting of what he has and does) 으로 하는 결혼은 경계의 대상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세상의 죄는 행위뿐만 아니라 내 생각과 사고와 목표와 감정까지 송두리째 다 오염시키는 근원으로 결국 하나님이 없는 생각과 비전과 목표 세움은 죄의 부산물이 될 뿐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신()결혼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또 영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학벌과 용모와 재산과 가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묵상하고 간구하여 주시는 뜻을 물어 가슴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아스가 룻과의 결혼절차를 진행하면서 기업 무를 자 1순위가 아니었기에 양보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자유함이 생겼겠지만 룻과의 결혼에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익이 없어도 믿음으로 책임을 지는 보아스의 믿음은 빈 마음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결혼을 목적으로 고엘, 기업 무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무르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순서가 옳다는 것입니다.

결혼 자체를 목적으로 믿음을 보고 헌신하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기업이신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계보를 이어가는 것이 목적이 될 때 주님께서 정하신 만남으로 돕는 배필인 히브리어 에제르와의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44)이라는 말씀이 할렐루야입니다.

인격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성품이라고 하십니다.

영적 진실성의 결과는 인내이니 결혼생활에서 언제까지나 참아내는가가 인격이고 영성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죄인이므로 날마다 회개하며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는 것이니까요.

불신결혼은 부모의 책임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너희가 좋으면 알아서 결혼하라는 생각은 영적 책임회피이며 어려서부터 쥐새끼 때부터 말씀 안에서 신()결혼의 중요성을 자녀가 스스로 깨우치고 믿음 안의 결혼을 추구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4:18)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범사에 복을 받는 인생이고 자녀의 결혼을 위해 평생 준비하는 부모의 자세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 시대 결혼관의 복음입니다.

()결혼에는 타협이란 없는 것인데 결혼도 인생도 인간적인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택자의 결혼 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신결혼이 가장 큰 악인 이유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직접적으로 막기 때문(70)이라는 불신결혼의 폐해가 심각함을 알기를 소망합니다. 

결혼은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모든 것을 떠나는 것이며 부모를 떠나고 집을 떠나고 나의 이기심과 안일함, 고집과 쾌락 그 모든 것을 떠나야 한다’(128)주님이 우리와 결혼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먼저 주거 주셨듯이, 결혼도 우리가 죽어짐 없이는 부활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참된 결혼은 한 마디로 죽어짐이다’(132)남편이 아내의 복종의 언어에서 사랑을 느끼려면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남편을 인정한다는 말을 해 주어야 하며 내 몸을 내가 주관하지 않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복종해야 한다’(165)아내는 한마다로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면 되는 것이고 또 남편은 그런 것보다는 인정 받는 것으로 좋아한다는 것에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사랑과 복종의 언어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다’(166)지나간 사연과 상처에 집착하고 지나간 것을 고쳐 보려고 하는 것이 사탄의 먹이이니 과거 치유에 매달리지 말고 아예 끊어내며 내 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짐을 내가 지고자 할 때 복종의 언어, 사랑의 언어가 나오고 부부간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173)라는 말씀. 말씀은 모든 결혼 주례사에 포함되어야 할 이 시대 최고의 주례사 중 백미라고 생각됩니다.

아프리카 선교보다 어렵다는 재혼을 하기 전에 이혼, 재혼, 삼혼을 해도 별 인생이 없음을 깨닫고 신()결혼으로 하나님 보기기에 좋았더라의 삶을 믿고 살고 누리는 인생이 여정에서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선포하는 주님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어 복된 결혼관을 지구촌 가족 모두가 공유하기를 소망합니다.

()결혼으로 다 함께 할렐루야~”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6. 11. 18:24

[우리들교회 2019 69일 주일말씀요약과 어록 54選 및 느낀 점(열왕기상 191절로 8절 어루만지시는 주님)]

 

 

가.             말씀 요약

 

<Prologue>

평생 청년기관 사역자로 30년 헌신한 목사님의 아내가2016년 아직도 캄캄한 새벽에 혼자 자고 있는 방에 스르르 들어와서 아내는 내가 죽기 전에 당신 얼굴 한 번보러 왔어라고 짧은 말을 남기고 다시 안방으로 돌아가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죽고자 하였다.

이렇게 내 생명 가져가라고 죽고 싶은 사람은 없나?

 

택자는 비록 죽고 싶을 때에도 주님은 어루만지시면서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신다.

 

엘리야와 같은 택자를 언제 어루만져 주시는 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1.   믿음으로 행한 일의 결과가 참담할 때도(1~2)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엘리야의 행한 일(놀라운 사역)-갈멜산 대결에서

(1)여호와가 하나님 되시고,

(2)불로 제단을 사르시고,

(3)바알 선지자 850명을 하나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백성과 함께 죽였으며 (4)큰 비를 주시고

(5)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해서 허리를 동이고 아합의 마차 앞에서 달려갔다.

 

믿음의 관점에 따라서 보고의 내용이 다르다.

엘리야의 많은 행한 일 중에 편파적으로 칼로 죽였다는 것만 구체적인 행함으로 이세벨에게 일러바친다.

엘리야는 이제야 개혁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북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이 아니었다. 이세벨은 바알 종교를 들여온 장본인으로 엘리야가 보여준 바알 선지자들의 뗴 죽음과 같은 강한 능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눈이 뒤집혀 엘리야 체포 공개 지명수배령을 내린다

.

바로 가서 죽이면 되는데 사신을 보내서 예고한 이유는

  바알선지자처럼 너도 공개처형 하기 위하여

  850명을 죽인 엘리야가 무서워서 협박을 해서 도망가게 하려고

한국의 성도가 많다고 해도, 세계 10대 교회는 모두 한국에 있다고 해도, 또 유명한 크리스챤이 많다고 해도, 크리스챤 대통령이 나왔다고 해도, 크리스챤 재벌의 재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그들이 믿는 예수를 믿게 하는 것에 우리가 잠시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렇지만 불신자들의 강퍅한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이세벨이 다양한 우상들을 염두에 두고 너를 죽이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 내림이 마땅하다고 했는데 엘리야는 18 15절에서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를 두고 맹세했다고 했다.

신들에 신 vs 만군의 여호와

850개의 신이 끝없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성도를 교란시킨다.

진짜 바알 선지자의 괴수/맹주는 이세벨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갖추고 가졌기 때문이다.

모세의 시대에 바로가 그렇다.

바로도 9가지 재앙에도 굴복하지 않다고 10번째로 아들을 죽이니 비로서 출애굽을 허락한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일 중에 의로운 일을 가장 많이 행한 사람들이 고통도 가장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엘리야도 그렇지만 죄 없는 예수님도 인간 가족 중에 어떤 자녀보다도 더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고난과는 상관없는 하나님 자리에 있는 바알 우상은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1)개성, (2)자율성, (3)다양성을 중시하고 (4)절대이념을 거부하고 (5)탈 이념이라는 정치이론을 낳았는데 이 정치이론이 인권(Human Rights)으로 집약되고 있다.

알리스트 맥글러스 영국 옥스퍼드대 석좌교수가 지난 주간에 신문 인터뷰에 전투적 무신론자로 불리던 리차드 도킨스와의 논쟁도 소개를 했다.

도킨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이 안 계신다라는 것도 증명해야 된다.

자신은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면서 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만 증명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믿음의 증명논쟁)

맥글라스 교수는 도킨스가 2012년 당시 캔터베리 대 주교였던 로안 윌리엄스와의 믿음의 증명논쟁 이후에 스스로 무신론자에서 잘 모르겠다불가지론자(an agnostic)로 남겠다고 선언했다고 소개를 했다.

전투적인 성향의 리차드 도킨스도 믿음의 방향을 살짝 바꾸었다.

아합과 이세벨은 무신론자도 불가지론자도 아니고 아합이 이세벨의 치마 속에서 그저 그렇게 조치하라고 하니 그들은 부부주의인가?  

부부가 금슬이 너무 좋은 것이 민중을 도탄(塗炭)에 빠뜨릴 수도 있다

같이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호와를 열렬히 배격하는 믿음이 있을 수도 있다. 둘만 좋으면 되기에, 둘만 행복하면 되기에, 우리 집만 잘되면 되기에 이 부부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관으로 인해 결국은 모두가 망하고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다. 율법교육을 받은 아합이 율법을 전혀 모르는 이세벨의 코치를 날마다 받는다.

둘이 너무 좋아하니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코치대로 막무가내로 엘리야를 위협한다.

개성을 중시하는 것이 하나님 자리에 있게 되면서 인권으로 연결되기에 동성애부터 이혼, 불신결혼까지 마음대로 하고 반대하면 차별이 되는 것이다.

유명 출판사 SNS(Social Networking Service)계정에 한 장의 그림이 제시되었는데 그 그림에는 “바벨탑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 교만일까? 아니다. (중략) 바로 인권이다.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면서 모든 인간의 인권이 신격화되는 것이 바벨탑 사건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인권이 아니다.

“주 다스리네”이다.

이 게시물을 본 누리꾼들은 그 곳이 기독교 사이트(site)임에도 기독교 대표사이트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채 인권의 가치를 폄하한다고 악플을 많이 달았다.

이 비판이 계속되니 기독교 사이트임에도 출판사는 하루 만에 그 해당 글을 삭제했다.

언론의 자유가 유독 기독인들에게만 억압당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아이가 적성검사 성별 표시란에 (1), (2), (3)기타가 있었다.

인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맥글라스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사람들은 신앙이 진짜 작동하는가를 묻는다며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야기(간증)를 해줌으로써 신앙이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믿음체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면서 성경의 진리를 현대적 상황에 맞게 번역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발굴해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했다.

 

이 얘기는 전도가 교회를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신앙이 작동하는 믿음 체계를 보여줌으로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들 교회의 죄를 보는 간증을 하는 것, 이게 스토리다.

그래서 그것이 신앙의 작동이고 이것을 전도라고 한다는 것이다.

잘 살고 학력이 높을수록 인권이 왕 노릇 하는 것을 본다.

이 땅 자체가 우상이기에 도저히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 이세벨은 그 대표적인 모델이다.

육이 너무 가득 차 있어서 영이 보이질 않는다.

디도서 3 5절 말씀처럼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는 말씀처럼 오직 성령의 사역만이 강퍅한 마음을 부수고 변화시킬 수 있다.

칼로 총과 군대의 힘으로 절대로 누구를 변화시킬 수 없다.

엘리야의 믿음으로 행한 일의 결과는 참담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몸 속에 점 하나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의 낮아짐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숨겨진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셨다. (Hidden Will of God, Revealed Will of God, Effective Power of God)

저 또한 구원의 열매가 많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참담할 때가 참 많았다.

그런데 결국 참담함(비참하고 막막함)을 느끼는 것은 저도 모르는 저의 숨은 죄 때문인데 결국은 참담함이 올 때마다 하나씩 그런 죄를 깨닫게 하셨다고 본다.

 

(적용)

 

-여러분은 믿음으로 행한 일에 참담한 결과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인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믿음과 인권은 이원론인가? 일원론인가?

 

2.   이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일 때도(3)

 

3절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엘리야가 이 형편을 보고 도망했다고 한다.

850명을 물리치게 하신 주님이 이세벨을 물리쳐 주실 텐데 갑자기 이세벨이 온몸으로 무서워졌다.

우리는 순간순간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일 때가 있다.

Fact로 볼 때 이세벨은 시돈왕 엣바알(Ethbaal)의 딸이다.

아버지도 왕이고 시아버지도 오므리 왕이고, 남편도 아합 왕이고, 아들도 아하시야 왕이고, 딸인 아달리야도 유다로 시집가서 다 죽여 버리고 왕이 되었다.

이 땅에서 왕 제조기이다.

그냥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세벨은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믿음으로가 아니라 바알 신봉자이고 세상신봉자이지만 대를 이어가면서 세상에서 계속 잘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엘리야가 갈멜산 대결 때처럼 굳건히 서서 이세벨에게 기별을 보내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놀라운 모습으로 선포를 하면 심판이 이세벨에게 임해서 백성들이 다 놀라 넘어졌을 텐데

그리고 그 원하는 힘 있는 개혁이 전국을 휩쓸었을 것이다.

사실 엘리야가 절망하게 된 원인은 이세벨이 너무 갖춘 막강세력자라서 하나님에게서 찾을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여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 절망한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시지 않았다고 선포하면 놀라운 개혁의 힘을 받아 전국을 휩쓸었을 텐데

개혁의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일 텐데 엘리야의 믿음 약함을 보시고 주님이 안 주신건가?

이세벨이 엘리야를 대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엘리야의 절망은 하나님께서 이세벨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1절부터 엘리야가 도망가는 4절까지 여호와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큐티를 하면서 날마다 이 일이 왜 왔나 생각해야 된다.

그런데 그것을 순식간에 놓쳤다.

원수의 밥이 되어 계책에 넘어갔다.

절대 신앙이 무너지면 주위의 형편부터 보인다.

하나님에게만 고정이 되었던 눈길을 떼어서 형편을 살펴보니 자기에게 이롭게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 결과 인간적인 계책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택한 길이 이세벨로부터 도망가는 선택으로 인간의 길을 보게 되니 소명 받은 자리인 북 이스라엘을 떠나버렸다.

하나님이 그 곳에 있으라고 했는데 물어도 안 보고 떠났다.

말씀이 안 들리면 도망가고 떠나는 것이다

힘들어도 그곳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리인데 말씀이 안 들리면 내 마음대로 생각을 한다.

가서 바알이냐? 하나님이냐? 선포를 해야 하는데, 선포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텐데

우리 교회가 늘 말씀 적용을 간증과 묵상 나눔으로 선포하기 때문에 그것은 바알과의 대결을 선포하는 것이다.

간증도 나눔도 하기 싫다고 도망가면 결국 엘리야처럼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갈 일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850명의 바알들을 성실하게 물리쳐주셨다.

 

[부목자 나눔]

 

부부가 장로, 권사님이신데 교회에서 불평 불만하면서 70세가 되면 종교에 대해서 자유인이 되겠다고 했다.

70이 되면서 그 교회를 은퇴를 하고 떠났다.

 

간증에 불꽃같이 책임을 져주셔서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 후에는 회개를 주시는 놀라운 일들이 있다.

엘리야는 잘나가다가 말씀이 없어서 순식간에 이세벨의 협박에 쪼그라들었다. 엘리야가 도망간 브엘세바는 남쪽 유다 땅 중에서도 가장 남쪽 구석탱이에 치우쳐 있는 곳이다.

갈멜산으로 부터 250km 거리이다.

선지자의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위대한 사람도 다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범죄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연약함을 감출 수는 없다.

자기사역을 과대평가하면 우리는 말 한마디도 못 견딘다.

다른 사람의 약함은 잘 도와주고 상담하면서 막상 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할 때 북한에서 설교한 것은 다 어디로 가고 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주님은 제가 꼭 올라갔다 싶으면 네가 한 일이 아니라고 도장을 콱 찍으신다. 목욕탕 세미나로 강에서 바다로 나가려고 할 때 암이 딱 걸렸고 열매가 있을 때마다 겸손케 될 수밖에 없는 사건을 주신다.

 

(적용)

 

-하나님보다 내 형편이 더 커 보여서 도망간 브엘세바 구석탱이는 어디인가?

 

 

3.   홀로서기가 아니고 혼자라고 생각할 때도(3~4)

 

3절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절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엘리야는 낙담할 대로 낙담했다.

그리고 드디어 스스로 죽기를 원했다.

마침내 죽기로 한 것은 자기는 이제 소명을 버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소명의식이 없으면 사건이 오면 절망밖에 없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은사와 재주가 많아도 소명이 없으면 쉽게 절망한다.

절대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은 좋은데 어떻게 전해야 할지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다.

로뎀 나무는 1~2m정도의 크기로 자라는데 거기는 “유일한, 하나의” 라는 말이 수식되어 있다.

그래서 광야에 유일하게 한 그루만 있는 로뎀 나무 아래 힘없이 앉아 있는 엘리야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 나무는 잔가지가 많아서 바람과 햇볕을 잘 막아주는 나무라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 광야에서 도움의 로뎀 나무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절대 신앙이 없으니까 이게 다 죽기를 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제 죽는 것이다.

엘리야는 피할래야 피할 길도 없고 내가 믿음의 조상보다 내 놓을 게 하나도 없다. ‘어찌하여 이 길을 가게 하십니까?’라고 한다.

극심하게 낙담한 이유는 자기 옆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충성스런 사환도 믿을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오직 자신 혼자만이 스스로 광야로 들어갔음을 강조한다.

세상에 나는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죽기를 구하고 있다.

그 이유가 있다.

당시 유다 왕은 성군에 속한 개혁의 여호사밧 왕이었다.

그런데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아합과 결혼동맹을 맺었다는 것이다.

배신감과 함께 천지에 홀로인 엘리야의 심정이 체휼된다

이 지독한 엘리야의 외로움을 알겠는가?

결국 유다 땅도 피난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죽고자 하는 이유를 (원수는) 너무 합리화시켜주면서 우리를 정조준 한다. 자기편이 한 명도 없다.

거기에 또 불신 결혼이 있다.

개인구원이 사회구원이다.

엘리야는 광야를 혼자 가면서 홀로서기가 안 되어있기 때문에 죽고 싶은 것이다.

 

(적용)

 

-여러분은 혼자인가? 홀로서기인가?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하신다.(5~8)

 

5절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절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내 모습 이대로 주님이 용납하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어루만지시면서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 (하나님 사랑하심의 표현)가 한 절마다 4절에 걸쳐서 반복해서 나온다.

대단한 주님의 돌보심이다.

엘리야의 역할을 그 누가 할 수 있겠나?

기가 막히는데 그것을 주님은 다 보고 계셨다

주님이 엘리야에게 너~무 미안해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엘리야가 한 일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하신 일인 것을 나타내야 되겠는데 역할 모델이 너무 힘들다.

여러분들이 죽고 싶어서 왔어도 택자 라면 믿음이 연약해도, 또 지금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을 아시고 너무나 주님이 안타까워하시는 그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어루만지시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다시 누웠는데 또 어루만지시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이게 너무 너무 위로가 되는 것이다.

그냥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하나님은 도피 중에 엘리야의 일용할 양식을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를 통해 공급하셨는데 이어 초자연적인 존재인 천사를 보내셔서 공급하신다.

여호와의 천사 말대로 먹고 마셨는데도 다시 누웠다.

얼마나 영육 간에 지쳐있는지 그냥 다시 누웠다.

순종하려고 해도 힘이 없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계속적인 돌아보심이다.

엘리야가 다시 돌아 누우니까 하나님께서도 다시 천사를 보내신다

영적으로 힘들어도 육이 힘들고 육이 지쳐도 영이 힘들다.

먹고 마시고 다시 누울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계속해서 정말 힘들어 누워 지쳐있는 사람을 계속 어루만지면서 먹고 마시라고 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도를 하셔야 될 것이다.

영적인 것이 얼마나 육적인 것을 보여주는지 모른다.

1절에서 4절까지 여호와의 말씀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18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로 시작되는데 19장에는 그 말이 없다.

엘리야의 갈멜산 전투까지 강조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가라사대, 말씀과 같이 하여, 17:2, 5,8,10,14,16, 18:1, 2 이렇게 말씀의 인도를 받다가 갑자기 말씀 인도 없이 기도도 안하고 스스로 생명을 위하여 일어나 도망가고, 도주 장소까지 자기가 결정하고 그리고 남쪽 끝까지 도망을 갔는데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건강도, 질병도, 부도도 아니고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고 인도받지 못할 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생은 누구도 죄인이고 앞날을 알 수 없기에 말씀의 나침반을 한시도 보지 못하면 골 1:13 처럼 흑암의 세계에서 사랑의 나라로 가려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씀의 인도를 가질 때와 아닐 때는 큰 차이가 나는데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를 간과하기 때문에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부분 상태가 안 좋은 사람에게 “오늘 큐티 했냐?” 고 물어보면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만 딱 안 했는데 걸렸다고 한다.

우리가 감동도 없는 말씀의 인도함을 늘 받는 것은 힘들 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감동이 없어도 날마다 말씀의 인도함 받는 것은 큰 사건에서 우리를 살려주시기 때문이다.

열매가 많을 때마다 참담함을 느낄 때 주님이 어루만져 주신다

그런데 엘리야는 너무나 대단한 주의 일을 하고 나서 그냥 감히 말씀을 놔 버렸다. 협박을 받는데 자기가 말씀을 볼 능력도 없으니 여호와의 천사가 주님을 대신해서 인도한다.

너무 힘들 때는 말씀을 볼 능력도 없다. 그만큼 지쳐있다.

그 동안 엘리야는 까마귀와 과부의 공궤를 받고 나는 먹는 것은 졸업을 했다, 선지자 정도라면 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아? 하면서 의로움이 많이 생겼을 것 같다.

10주 결려 갈 길을 40주 동안 먹고 마시면서 천천히 가게 하시는 것이다

자기처럼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합이나 오바댜를 봐도 정죄했을 것 같다.

그러니 굶기를 밥 먹듯 했을 엘리야에게 아이러니하게 음식물을 잘 먹고 마시라고 어루만져 주셨다.

육신도 자고 나면 회복이 되는데 영적으로도 쉼이 있어야 회복이 된다.

그런데 영육간에 어떤 것도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천사가 엘리야에게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며 네 사명이 안 끝났다고 했다.

지금 엘리야의 체력으로는 호렙산으로 가는 그 길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가 날마다 생명을 내놓고 30년 동안 왔다.

사명에 불타서 밥을 초계처럼 여기고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내 생명을 취하소서의 이 아픔으로 암이 걸린 것이 로뎀 나무까지 간 것이라면 암 걸려서 쉬면서 제 때 밥을 먹으니까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호렙에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명이 남아있는지 도리어 예전보다 지금 더 건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우둔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오히려 살아남도록 보호해주셨다.

죽기를 간구하는 엘리야는 오히려 죽음을 보지 못하고 승천했다.

 

(적용)

 

-지금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어루만져야 할 지체는 누구인가?

-여러분의 식생활은 영적인가? 육적인가?

-,고기, 탄산음료, 냉커피를 밥 먹듯이 먹고 마시는가?

 

 

식물을 의지하여 호렙산에 가려면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먹읍시다.

오늘 엘리야에게 처방한 것은 오직 먹고 마시라 밖에 없다.

먹으라, 음식물을 의지해라. 그러니까 처방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예화)

 

119 대학병원 각종검사 죽음의 위기를 겪었는데 목사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선교단의 전임강사가 되어 30년이 넘도록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에게 전도하고 양육하는 외길 인생을 무명의 전도자로 살아왔는데 저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의 사건이었다. 저의 인생의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황폐하게 되어 마치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행하시는 것처럼 느꼈다. 이사야 24:5 주민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던 것처럼 저도 캠퍼스의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사명자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바둑 게임 중독에 빠져 사역은 적당히 하면서 아내와는 소통하지도 않으면서 아내가 점점 병들어가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졌다. 제가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로잡고 있었던 인터넷 바둑게임 중독이 13년 만에 끊어지게 하시고 아내와 소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한 달 후인 2017.1.8에 하나님께서는 저를 부부목장에 목자로, 아내를 권찰로 부르셔서 남은 자가 되는 은혜를 주셨다. 우리의 연약함이 있지만 나의 믿음부분을 보시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어루만져주시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회복을 시켜주셨다는 생각을 한다.

 

 

나.             말씀어록 54選

 

1)   믿음의 관점에 따라서 보고의 내용이 다르다.

2)   불신자들의 강퍅한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3)   부부가 금슬이 너무 좋은 것이 민중을 도탄(塗炭)에 빠뜨릴 수도 있다

4)   같이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호와를 열렬히 배격하는 믿음이 있을 수도 있다.

5)   둘만 좋으면 되기에, 둘만 행복하면 되기에, 우리 집만 잘되면 되기에 이 부부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관으로 인해 결국은 모두가 망하고 나라까지 망하게 된다

6)   개성을 중시하는 것이 하나님 자리에 있게 되면서 인권으로 연결되기에 동성애부터 이혼, 불신결혼까지 마음대로 하고 반대하면 차별이 되는 것이다.

7)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면서 모든 인간의 인권이 신격화되는 것이 바벨탑 사건이 가장 큰 문제다.

8)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인권이 아니라 “주 다스리네”이다.

9)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야기(간증)를 해줌으로써 신앙이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믿음체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한다

10)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면서 성경의 진리를 현대적 상황에 맞게 번역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11) 복음을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발굴해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한다

12) 전도가 교회를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신앙이 작동하는 믿음 체계를 보여줌으로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는 것이다.

13) 한마디로 우리들 교회의 죄를 보는 간증을 하는 것, 이게 스토리다.

14) 그래서 그것이 신앙의 작동이고 이것을 전도라고 한다는 것이다.

15) 잘 살고 학력이 높을수록 인권이 왕 노릇 하는 것을 본다.

16) 이 땅 자체가 우상이기에 도저히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으며 이세벨은 그 대표적인 모델이다.

17) 육이 너무 가득 차 있어서 영이 보이질 않는다.

18) 오직 성령의 사역만이 강퍅한 마음을 부수고 변화시킬 수 있다.

19) 칼로 총과 군대의 힘으로 절대로 누구를 변화시킬 수 없다.

20) 우리는 순간순간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일 때가 있다.

21) 우리는 큐티를 하면서 날마다 이 일이 왜 왔나 생각해야 된다.

22) 절대 신앙이 무너지면 주위의 형편부터 보인다.

23) 하나님에게만 고정이 되었던 눈길을 떼어서 형편을 살펴보니 자기에게 이롭게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 결과 인간적인 계책을 생각하게 된다.

24) 말씀이 안 들리면 도망가고 떠나는 것이다

25) 힘들어도 그곳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리인데 말씀이 안 들리면 내 마음대로 생각을 한다.

26) 우리 교회가 늘 말씀 적용을 간증과 묵상 나눔으로 선포하기 때문에 그것은 바알과의 대결을 선포하는 것이다.

27) 간증도 나눔도 하기 싫다고 도망가면 결국 엘리야처럼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갈 일이 생기는 것이다.

28) 간증에 불꽃같이 책임을 져주셔서 기적이 일어난다.

29) 기적 후에는 회개를 주시는 놀라운 일들이 있다.

30)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범죄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연약함을 감출 수는 없다.

31) 자기사역을 과대평가하면 우리는 말 한마디에도 못 견딘다.

32) 다른 사람의 약함은 잘 도와주고 상담하면서 막상 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할 때가 있다

33) 마침내 죽기로 한 것은 자기는 이제 소명을 버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34) 소명의식이 없으면 사건이 오면 절망밖에 없다.

35)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36) 아무리 은사와 재주가 많아도 소명이 없으면 쉽게 절망하는 것은 절대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37) 말씀은 좋은데 어떻게 전해야 할지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다.

38) 절대 신앙이 없으니까 이게 다 죽기를 구하는 것이다.

39) 극심하게 낙담한 이유는 자기 옆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0) 세상에 나는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죽기를 구하고 있다.

41) 죽고자 하는 이유를 (원수는) 너무 합리화시켜주면서 우리를 정조준 한다.

42) 영적으로 힘들어도 육이 힘들고, 육이 지쳐도 영이 힘들다.

43) 먹고 마시고 다시 누울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계속해서 정말 힘들어 누워 지쳐있는 사람을 계속 어루만지면서 먹고 마시라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44)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건강도, 질병도, 부도도 아니고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고 인도받지 못할 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45) 인생은 누구도 죄인이고 앞날을 알 수 없기에 말씀의 나침반을 한시도 보지 못하면 ( 1:13)말씀처럼 흑암의 세계에서 사랑의 나라로 가려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46) 말씀의 인도를 가질 때와 아닐 때는 큰 차이가 나는데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를 간과하기 때문에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47) 우리가 감동도 없는 말씀의 인도함을 늘 받는 것은 힘들 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48) 감동이 없어도 날마다 말씀의 인도함 받는 것은 큰 사건에서 우리를 살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49) 열매가 많을 때마다 참담함을 느낄 때 주님이 어루만져 주신다

50) 육신도 자고 나면 회복이 되는데 영적으로도 쉼이 있어야 회복이 된다.

51) 그런데 영육간에 어떤 것도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52) 식물을 의지하여 호렙산에 가려면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먹어야 한다

53) 처방은 무엇을 먹고 마시라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54) 심지가 견고해야 평강이다

 

다.             느낀 점

 

우리가 육적으로 영적으로 지칠 때 매너리즘에 빠지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지만 택자라면 하나님이 천군천사를 보내시어 우리가 먹고 마시고 누워 다시 기력을 회복하여 사명의 자리로 가게 하신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목사님의 설교 마지막 기도말씀 중 심지가 견고해야 평강이라고 하시는데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6. 5. 12:26

[우리들교회 2019 62일 주일말씀 요약 및 어록 153(열왕기상 18 30절로 46절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가.             말씀 요약

<Prologue>

 

김영철 교수의 책에 나오는 내용으로 40세에 천 억 원을 번 사람의 비결로

(1) 약속 철저히 지킴으로

(2) 신용 /신뢰구축하고

(3) 거래하는 파트너가 부자 되도록 하는 방법만 생각한다

 

여러분이라면 파트너를 선택할 때 저 사람하고 거래했을 때 부자 안 된 사람 없더라 라고 한다면 누구와 거래하겠는가?

부자가 되려면 파트너가 부자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부부간에도 회사에도 그렇고 영육이 일원론이라 큐티하면서 다른 사람이 살아나면 내게 뭘 갖다 주는 것도 아닌데, 다른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섬기니까 열매가 있고 교회를 부흥시킨다고 생각한다.

영육은 일원론이라서 상대방이 잘 되도록 기도하고 이타적으로 살라는 것이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장 쉬운 정의 아닌가 생각한다.

 

 

갈멜산 대결에서 내기를 했는데 바알이 응답하지 않고 졌다.

이 세기의 대결에서 응답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오셨는가?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란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란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I am who I am.)이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스스로 계신 자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셔서 영과 육으로 최고의 응답을 받으시길 바란다.

 

그러려면

 

1. 무너진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바알이 응답하지 않는 것을 봤지만 엘리야는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내게로 오라고 했다

때가 되기까지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소용이 없다.

사람, 돈 쫓아 다니고 뭔가 안 됐을 때에야 주님께 가까이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 백성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가까이 온 이들을 정죄하지 않았다.

일장 연설하지도 침묵하지도 않았다.

무너진 성전을 수축하도록 도왔다.

능력의 종이라기 보다는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여주었다.

무너진 제단을 고쳐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북 이스라엘왕국 사람들은 예루살렘까지 못 가니 산 위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

여호와 신앙이 멸시되고 망각되어 있었기에 바알과 여호와 사이에서 택하라고 했을 때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복수를 하지 않으려면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복수를 안 하려면 무너진 제단을 고쳐서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교회와 성도는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명을 감당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 오도록 촉구하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예배를 회복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가 중요하다.

 

[적용]

 

1)   우상에 빠져 가족(자녀)이나 이웃이 망했는가?

2)   그들에게 정죄하는가, 일장 연설하는가, 침묵하는가?

3)   이때가 예배가 회복되는 것임을 알고 초청하는 게 어떤가?

 

2. 더 힘든 길을 택하는 적용을 해야한다.

 

이미 바알의 선지자들은 바알 신을 불러내는데 실패하자 그들의 마음과 눈은 엘리야에게 향해 있을 것이다.

뜻밖의 명령이 엘리야에 의해서 내려졌다.

엘리야는 자기이름이 아니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무너진 재단을 수축하고 도랑까지 만들었다.

무의미해 보이지만 성경에는 기적을 위해서 기도했다기 보다는 단을 쌓았다고 반복하고 있는데 그것이 기도 응답의 준비다.

늘 단을 쌓는 묵상과 십자가 적용은 지루해 보이지만 가장 기적을 만날 준비라고 할 수 있다.

목장은 기적을 준비하는 모임이다

날마다 큐티하고 예배 드리고 목장 가는 것이 기적을 창출하는 최고의 비결이다.

번제들을 태울 나무를 준비하는 것도 레위기 규례를 따른 것이다.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의 숨막히는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랑을 만든 후에 세 차례에 걸쳐 불이 내려와 태울 제단 위에 열두 항아리 제단 전체가 완전히 젖고, 하늘에서 번개가 쳐도 불이 붙을 수가 없게 되었다.

12항아리는 12지파 온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도랑의 물이 찼다는 것은 재물뿐만 아니라 재물전체가 물에 젖게 되고 벼락이 쳐도 불이 붙을 가능성이 없게 된 것이다.

엘리야는 일부러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도랑에 물 채우는 엘리야의 의도적인 행동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듦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려는 취지다  

백성들의 눈과 마음에 확실히 각인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을 예수 믿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인 우리는 더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해야 한다.

기근이 있음에도 줄기차게 더 비 안 오게 기도하는 것은 왜 그랬을까?

구원 때문이었다.

 

구원 때문에 좋은 소리만 들을 생각하면 엘리야와 같은 적용과 기도를 할 수가 없다.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동침하리라,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나단의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들은 것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주가 아니고 예수님의 직계 조상인 다윗이 이 얘기를 들은 것이다.

어떤 저주 같은 이야기도 내가 내 죄를 보고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만하면 못들을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자리가 올라갈수록 자기 자리에서 죄를 보고 자기 죄를 인정하기가 어럽다.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을 징계하기 위해서 파멸하고 망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이다.

3 6개월 동안 하늘과 땅이 닫히도록 기도했다.

복음이 꽃피기 위해서 떨어지고 파멸하고 넘어지길 기도하는 것, 복음이 얼마나 대단하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을까?

딸이 재수를 하는데 ‘36개월도 걸릴 수 있다고 하시네라고 말했었다.

다들 이런 기도를 절대로 못한다.

미워서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대로 때가 되면 비가 오도록 기도할 때가 온다.

큐티를 하면서도 다들 이런 이야기를 죽어도 못하는 것이다.

성경대로 때가 되면 비가 오도록 기도할 때가 온다.

말씀대로 그날그날 약속의 말씀을 증거하면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좋고 나쁨이 없다.

구체적인 기도는 바로 이런 기도이다.

날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구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못하고

성경대로 살지도 못한다.

구원에 관심이 없으면 성경이 들리지 않는다.

남편의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았었다.

구원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보이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았다.

성령 충만하고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참지 못할 일이 없었다.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구원 전쟁을 해 가는데 자존심 따위를 국 끓여 먹어야지

아직도 자존심 타령을 하고 있으면 구원이 상관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힘든 길을 적용하지 않아본 사람은 3 6개월의 기근을 참아내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더 힘든 적용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진 것이 흘러 떠 내려 갈뿐이다

구원이 천하보다 하다는 것을 생명을 내어 놓고 증거하는 것이다

 

전도도 인내도 다 남의 이야기다

생명을 내놓는 기도를 한 후에는 말만하면 전도가 되고 구원이 되었다.

생명을 내놓아보니까 말만하면 전도 구원이 되고 여러분들에게 흘러내려가서

영혼구원을 많이 하는 교회가 되지 않았는가

말씀이 어떻게 전도와 연관이 없겠나?

말씀, 말씀해서 마른 뿌리처럼 말씀만 그러다가는 남을 정죄하고 찌르는 것만 하게 된다

생명을 내어 놓았는데 못 할 없는 것이다

신유 은사를 받고 대단한 치유사역을 하던 목사님이 충격 받고 치유사역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가 그분의 집회 중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았는데 그 다리로 춤바람이 나서 오히려 지옥에 가게 된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앉은뱅이로써 나음을 받았는데 그 다음에 더 힘든 사명의 적용을 하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이다.

병만이 목적이면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이다

남편이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날 힘들게 했다.

나가지도 못하게 돈도 안주고 나 편하게 살라고 힘든 남편 데려갔다는 생각은 말씀을 보니까 추호도 들지 않더라.

그것이 진짜인지 보기 위하여 혼자 살게 하시는 것이다

입 있고 눈 있는 사람은 다 제가 시집가게 생겼다고 한다

시집 안 가는 것만이 다 정답은 아니고 갈 사람은 가야 되는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보다 훨씬 힘든 길을 택하고 왔다고 볼 수 있다.

예배가 회복된 사람은 항상 더 힘든 적용을 길로 놓아야 한다.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이 지나고 보면 최고의 응답임을 믿는다

왜냐하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십자가를 길로 놓아도 짧은 것이다.

 

 [적용]

 

1)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내가 택해야 할 더 힘든 길은 무엇일까?

2) 내려놓아야 할 자존심, 편리함, 안일함, 혈기, 체면, 자동차 중에 무엇인가?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자동차는 못 내려 놓더라

여러분은 체면이 밥 먹여 주는 것 같더라

3. 말씀으로 회개케 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엘리야의 기도는 처음 가뭄재앙을 선포하면서 3 6개월 시종일관 알리고자 한 건

1) 여호와는 이스라엘 하나님이고

2) 엘리야는 그 주의 종이고

3) 주의 말씀대로 모든걸 행했다는 것이다.

 

이 기도에는 자신을 축복해 달라는 내용은 없다.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다.

이것이 응답 받는 기도의 태도이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회개이다.

 

이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여호와이신 약속의 아브라함 야곱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내게 응답하소서 반복되는 기도는 바알 선지자들이 보여준 광란의 기도에 비교해 간단명료하지만 아뢸 것을 아뢰는 전심을 다하는 간절한 기도였다.

되돌이키심은 방향이나 마음을 돌이킨다는 의미인데, 바알 신앙에서 마음의 방향을 U턴해서 살아계신 참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베풀어 주시는 기적은 회개 때문에 주시는 것이다

말씀대로 회개하는 것이 기도다

불이 내려오는 강권적 역사가 없다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시는 신앙고백이 불가능했다.

이 말은 내가 불을 내리는 기적을 베풀지만 그 기적은 회개를 위한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기적 자체에 목적을 두니 앉은뱅이가 낳아도 춤바람이 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사건이 왔을 때 말씀이 내게 임해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회개이다.

큐티를 해도 회개 없이 하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자기 죄를 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또 마음대로 안 된다.

 

말씀이 내게 임해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역사는 회개이다.

회개의 역사가 응답 받는 역사다

문제 해결만 기도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B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면서 허울뿐인 A를 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실로 마음속에는 소원에 대해 가득하면서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속에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하나님께 내놓는 것이다

 

목장을 우습게 봐도 목장에서 진단을 해준다.

목장에 가면 진단을 해준다.

 

우리가 기도를 꺼리는 이유는 상당부분 우리의 죄 때문이고 세상일에 불필요하게 몰두하고 있고 정신건강이 혼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말 목소리를 듣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희미하게 기도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느 작가는 하나님이 진짜 기도를 들으시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희미한 목소리로(murmuring) 기도한다고 했다.

확신이 있으면 성경을 하나 읽어도 확신 있게 읽어야 하는데 아플 때가 죄의 문제를 다루기가 가장 쉬운 때이다.

그러므로 아플 때 찾아 가야 한다.

회개와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위로하고 체면상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을 이뤄내기 위해 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알과 엘리야 사이에서 대답 안 한 백성들에게 뭐라 하지 않으시고 불을 내려주시고 연약한 마음을 회개하라고 자비로 역사하셨다

 

하나님은 늘 우리가 고치기를 바라시는 것이지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적용]

 

1)긴박한 영적 싸움에서 내 기도의 핵심은 무엇인가?

2)해결인가? 회개인가? 해석인가?

 

우리는 해석을 통해 회개를 함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4. 불로 하나님 되심을 보이신다.

 

이제 여호와의 불은 누가 보아도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언약의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자(I am who I am)로서 엘로아(엘로힘) 전능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시다

눈으로 목격한 백성들의 두려움이 컸는데 그때 모든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로다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 알다가 사건이 와서 하나님 자체를 알게 되면 여호와 신앙이라고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육의 응답도 원하지만 오늘을 특별히 영과 육의 기도의 응답이 있기를 바란다고 하신다.

제목 하나에도 모든 메시지가 담겨있다.

최고의 응답이 있어지길 원한다.

 

자기 주장을 증명하려면 상대방이 틀렸다고 하면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틀림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나의 옳음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다.

 

바알의 허구가 드러났지만 불을 내려 태움으로 하나님을 증거했다.

드디어 하나님이 하나님 되셨다.

 

죄를 깨달았으면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바알 선지자를 잡으라, 850명을 죽이라했더니 피로 물들었을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잔인하시다 한다.

이것은 죄 중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가 가장 무섭기 때문에 가난 질병 홍수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죄 중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가장 무섭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라고 한다.

고라 자손을 괜히 삼킨 것이 아니다.

레위 지파로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죄악을 알았으면 아끼지 말고 죽이라는 것이다.

죄악인지 알면서도 죽이지 못하는 것 때문에 더 큰 죄가 온다.

어마어마한 영적 싸움에서 850명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엘리야는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의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살았다.

그렇기에 영적 싸움에서 850명의 선지자를 죽이는 권위를 갖게 된 것이다.

불로 응답하시는 여호와를 경험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accept, agree)이다.

지난주에 엘리야냐 바알이냐 택하라고 했을 때 백성은 한마디도 대답 못했다.

그런데 또 그 다음 질문엔 다 대답했다.

다시 여호와를 고백하는 과정을 보여주신다.

사람들에게 명백하게 증명을 하려면 모두 동의하도록 해야 한다.

 

[적용]

 

1) 나의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명백하게 증명한 여호와 하나님이 있나?

2) 회개인가, 오픈인가? 철저한 낮아짐인가? 말씀의 준비인가? 중 어디에 속하나?



5. 드디어 큰 비로 응답하신다.

 

바알의 거짓됨이 만천하에 들어나고 백성도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고 850명의

바알 선지자도 몰살시켰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가 아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위하는 자이다.

아합에게 이제 비가 내릴 테니 먹고 마시라고 한다.

북한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믿는다.

 

올라간다가 두 번 나온다.

아합은 먹으려 올라가고 엘리야는 기도하러 올라가는 것이 대조된다

비가 있다고 해놓고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올라갔다.

아합의 삶의 방향과 신앙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엘리야는 불을 내리고 기도하고 비가와도 이제 모든 기적을 보이고 있어도

아합은 기근을 해석하지 못하고 끝났다.

비가와도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해석이 안 되는 축복은 저주이다.

3 6개월 기근에서 주님을 못 만나서 해석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을 못 만나는 것이다

고난은 주님 만나라고 주신 축복인데 모르고 지나치면 망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아픔이 왔을 때 기근을 해석해야 되는데 기근이 나아버리면 축복도 해석이 안 된다.

자녀 때문에 아프고 질병 때문에, 회사 때문에 아픔이 왔을 때 빨리 해석해야 하는데 해석이 안된 채로 병이 낫고 돈이 벌리면 축복도 해석이 안 된다.

내가 아픔이 왔을 때 빨리 주님을 만나야지 의미가 있다.

예수 만나는 것으로 의미를 못 찾으면 그 다음 오는 축복은 아무 의미도 없다.

먹고 마시다가 아합처럼 지옥 가는 것이다.

 

엘리야의 명령에 끝까지 순종하는 자는 사환이다.

이런 사환의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대하실 것 같다.

사환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와 환경에 연연해하지 않기 때문에 여섯 번이나 실패했는데도 계속 간다.

비 오는데 가라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내린 명령에 말도 안되지만 끝까지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장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태도이다.

이런 사환이 있기 때문에 아합이 잡아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되어간다.

 

바다 쪽에서부터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고 순식간에 하늘이 컴컴해지고 비가 내렸다.

엘리야 믿음의 기도가 성취되는 순간이다.

조금 후에라는 표현은 북 이스라엘이 범죄해 3 6개월동안 기근 인내를 잘한 사람은 응답으로 본다.

아합에게는 3 6개월의 고통의 의미가 없다.

말씀의 기도를 했기 때문에 남편이 구원받을 때 식구들이 다 있었는데 나만 응답이라고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못하더라 순식간에의 응답은 기도한 사람이 받는 것이다.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보고 단을 쌓은 사람은 순식간에 찾아오는 응답을 알아본다.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남편의 죽음을 해석했기에 큰 비가 온 곳으로 모든 사건은 주님께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된 것이다

큰비가 왔어도 불이 왔어도 형통해도 고난이 와도 오늘 말씀으로 살면 그것이 똑같다.

 

기적을 보았으니 자신에게 임한 능력으로 이세벨의 고향인 이스르엘로 달려갔다.

매일 임하는 능력이 없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다.

아합과의 대결을 위해 허리를 동여매고 영적으로 무장했다.

형통해도 고난이 와도 나는 오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말씀이 해석되지 않아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도 춤바람으로 귀결된다

(기적)이 와도 엘리야는 허리끈 질끈 동여매고 한결 같이 기도하며 약속의 말씀에 의거하였기에 엘리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능력을 조금씩 드러내는 것이다

엘리야가 항상 눈에 보이는 형상보다 앞지르는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하늘에 비가 없었는데 큰 비의 소리를 듣고 솜만한 구름을 보고도 폭우가 올 것을 알았다. 

절정은 아합의 마차를 앞지르는 달음질에서 나타난다.

마차를 앞지르는 엘리야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묵상은 반복해서 읽고 적용하며 구구 소리 내며 기도하는 것이다

나도 말씀대로 말하면 그 일이 다 이루어졌다.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화창한데 비 올 거라고 하고, 손바닥 구름에서 폭우를 알고 진리의 성령님이 가르쳐주신다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말씀을 전한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다.

평소에 말씀을 묵상했기 때문이다.

꾸준한 말씀 묵상을 통해 850과의 싸움에서도 넉넉히 이기는 체험을 하길 바란다.

 

엘리야는 이세벨과 아합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아합은 엘리야가 싫은 정도가 아니라 죽이고 싶다.

어쩌면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죽이려고 할까?

이때 교훈 받아야 할 것은 내가 진짜라면 죽이려는 사람이 있겠구나, 진짜가 아니니까 죽이려는 사람이 없구나라는 적용을 해야 한다.

한번도 괴롭게 하는 자라는 소리를 못 들어본 사람이 많더라

이것은 전도라는 것을 안 해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 천년 동안 엘리야의 생각과 행동과 삶이 수많은 사람을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다.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고 내 대에서 아무도 안 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앞으로 변화되길 믿는다.

여러분도 같이 공동체에 속해서 행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쓰임 받기 되기를 믿는다.

 

[적용]

 

1)여러분은 850 1에서 큰 비의 소리를 듣나?

 

850 1의 반 동성애 대결을 하고 있는 염안섭 원장님은 세브란스 출신이고 신학 하신 목사님으로 영국에서 석 박사를 거쳐 하버드의대 과정 수료하고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더 힘든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를 혐오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나왔다고 했다.

동성애는 절대 유전이나 선천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인한 문화적 영향이 크다고 했으며 40~50대 동성애자가 별로 없는 이유는 땅을 치면서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에이즈로 목숨 걸고 나섰는데 서울대에서 강사로 초청을 받았다.

성 소수자의 동아리가 서울대 총장 앞으로 염안섭 원장 초청을 취소하라고 했다고 한다.

 

<서울대 총학생회에 드리는 염안섭 원장의 답변서요지>



(1)
저는 우리나라 최초로 에이즈 환자에게 입원치료를 제공하는 요양병원을 운영한 의사다

(2)
제가 에이즈 환자를 무상으로 돌보는 것을 알고 질병관리본부에서 찾아와 위탁사업이 시작되어 60여명 가까운 에이즈 환자를 돌보던 중, 내원한 에이즈환자의 대부분이 동성애로 인한 감염임을 알게 되었다

(3)
에이즈 요양병원은 말기 환자들이 내원하여 임종을 맞게 되는데, 한번도 에이즈환자를 찾아와 위로한 적도 없는 에이즈단체와 동성애단체는 악의적인 언론 플레이로 저와 병원의 명예를 훼손하여 언론중재위에 중재신청을 한 바 있고, 언론사의 정정보도 결정이 있었다.

(4)
에이즈/동성애단체의 악성민원으로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요양
병원 지정을 취소하고 환자들을 이송토록 하여 에이즈 요양환자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5)
저는 대한요양병원협회에서 2015 12월부터 발효된 보건복지부령 제375호에 대해 에이즈 요양환자들을 일반 요양병원에서 입원을 받도록 강제할 것이 아니라 의료시설이 잘 갖추어진 23개 국공립병원에 에이즈전문병실을 만들어 안전하게 요양토록 할 것을 요구하는 TF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6)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동성애자라고 밝히셨는데, 저나 저희 병원의 의료진처럼 동성애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에이즈 환우 들을 돌본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7)
흡연자를 위한 최선의 배려는 담배를 피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연으로 폐암에 걸리면 사회가 돌보아 주어야 하나 흡연을 보편적 권리라고 주장만 할 수 없는 것은 생명권은 흡연을 통한 행복추구권보다 더 큰 인권이기 때문이다.

(8)
한국의 지성이라는 서울대학교의 동정은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고 타인의 표현의 자유조차 억압하고자 한다면 서울대학교에 대한 사회적 존중은 추락하게 될 것이다.


(9)
서울대총학생회가 토론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응하겠으니 무리한 언론플레이는 지양해 주시기를 바란다.

 

에이즈의 감염경로가 대부분 동성애임을 잘 알고 있는 분이다.

동성애라고 하면 에이즈 걸릴 확률이 높으니 하면 안 된다고 말하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사명감으로 오늘까지 왔다는 염원장님은 850 1의 이 시대 갈멜산의 대결에서 응답하시는 여호와하나님의 큰 빗소리가 들리기를 기도한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             주요 말씀 어록 153

 

1)   40세에 천 억 원을 번 사람의 비결은 (1) 약속철저 준수함으로 (2) 신용/신뢰 얻고 (3) 거래하는 파트너 부자 되는 생각만 한다

2)   부자가 되려면 파트너가 부자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3)   영육은 일원론이라서 상대방이 잘 되도록, 다른 사람이 살아 나도록 기도하고 이타적으로 살라는 것이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정의다

4)   사람, 돈 쫓아 다니고 뭔가 안 됐을 때에야 주님께 가까이 온다는 것이다.

5)   복수를 하지 않으려면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으므로 복수를 안 하려면 무너진 제단을 고쳐서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6)   교회와 성도는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명을 감당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7)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 오도록 촉구하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8)   예배를 회복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가 중요하다.

9)   무의미해 보이지만 성경에는 기적을 위해서 기도했다기 보다는 단을 쌓았다고 반복하고 있는데 그것이 기도 응답의 준비자세다.

10) 늘 단을 쌓는 묵상과 십자가 적용은 지루해 보이지만 가장 기적을 만날 준비라고 할 수 있다.

11) 목장공동체는 기적을 준비하는 모임이다

12) 날마다 큐티하고 예배 드리고 목장 가는 것이 기적을 창출하는 최고의 비결이다

13) 우리들을 예수 믿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엘리야의 의도적인 행동처럼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듦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14)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인 우리는 더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해야 한다(백척간두에서 살아 남으려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15) 구원 때문에 좋은 소리만 들을 생각하면 엘리야와 같은 적용과 기도를 할 수가 없다.

16) 어떤 저주 같은 이야기도 내가 내 죄를 보고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만하면 못들을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17) 사람이 자리가 올라갈수록 자기 자리에서 죄를 보고 인정하기가 어렵다.

18) 구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말씀도 안 들리고 성경대로 기도도 못하고 성경대로 상담도 못하고 구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성경이 들리지 않는다.

19) 아직도 자존심 타령을 하고 있으면 구원이 상관 없는 사람이다

20) 힘든 적용을 길러 놓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 3 6개월의 기근을 참아내기가 너무나 어려운 남의 얘기다

21) 사건이 왔을 때 말씀이 내게 임해서 가장먼저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회개다.

22) 큐티를 해도 회개 없이 하면 문제 해결만 기대하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23) 우리가 기도를 꺼리는 이유는 상당부분 우리 죄 때문이고 세상 일에 불필요하게 몰두하고 있고 정신 건강이 혼란하기 때문이다

24) 하나님이 정말 기도를 들으시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희미한 목소리로 기도한다는 것이다.

25) 아플 때가 죄의 문제를 다루기 가장 쉬울 때다

26) 아플 때가 회개와 구원의 때이기 때문에 찾아가야 되는 것이다.

27)  아플 때 위로하라고 체면상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을 이루기 위해 가한다

28) 하나님은 늘 우리가 고치길 바라는 것이지 심판자가 목적이 아니다

29)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30) 옳음을 명백하게 증명하는 방법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다

31) 죄를 깨달았으면 가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32) 죄 중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가 가장 무섭기 때문에 가난, 질병, 홍수 보다 무서운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을 죽이라고 하신 것이다.

33) 죄악을 알았으면 아껴보지 말고 죽이라는 것이다.

34) 죽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죽이지 못하면 더 큰 형벌이 온다.

35) 불로 응답하시는 여호와를 경험하고 여호와를 유일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6)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은 인간들에게 불을 내리셔서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런 응답은 정말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 같다

37) 해석이 안 되는 축복은 저주다.

38) 자녀 아픔, 질병, 회사로 인한 아픔의 때에 빨리 기근을 해석해야 되겠는데 해석이 되어버리지 못한 채 나아버리고 직장은 취직이 되고 돈은 벌리고 이러면 축복도 해석이 안 된다.

39) 내가 아픔이 왔을 때 빨리 주님을 만나야 고통에 의미가 있는데 예수 만나는 것으로 의미를 못 찾으면 그 다음에 오는 축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40) 그저 아합처럼 먹고 마시는 것 밖에 모르는 것으로 먹고 마시다가 지옥 가는 것이다

41) 고난은 정말 해석하라고 주신 것이다

42)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에게 가장 우선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여 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태도인 것이다.

43) 여전한 방식으로 단을 쌓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오는 응답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44) 큰 비가 왔어도 불이 내려도 형통해도 고난 와도 나는 오늘 그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45) 묵상은 반복해서 읽고 적용한다는 것으로 오직 능력이다

46) 교훈으로 내가 진짜라면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진짜가 아니라서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없겠다고 적용을 해야 한다

47)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을 징계하기 위해서 파멸하고 망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이다.

48) 복음이 꽃피기 위해서 떨어지고 파멸하고 넘어지길 기도하는 것으로 복음이 얼마나 대단하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을까?

49) 성경대로 때가 되면 비가 오도록 기도할 때가 온다

50) 말씀대로 그날그날 약속의 말씀을 증거하면 된다.

51) 예수 믿는 사람은 좋고 나쁨이 없다.

52) 날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53) 구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못하고 성경대로 살지도 못한다.

54) 아직도 자존심 타령을 하고 있으면 구원이 상관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55) 이런 힘든 길을 적용하지 않아본 사람은 3 6개월의 기근을 참아내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56) 더 힘든 적용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진 것이 흘러 떠 내려 갈뿐이다

57) 구원이 천하보다 하다는 것을 생명을 내어 놓고 증거하는 것이다

58) 생명을 내놓는 기도를 한 후에는 말만하면 전도가 되고 구원이 되는 것이다

59) 말씀, 말씀해서 마른 뿌리처럼 말씀만 그러다가는 남을 정죄하고 찌르는 것만 하게 된다

60) 생명을 내어 놓았는데 못 할 없는 것이다

61) 신유 은사를 받고 대단한 치유사역을 하던 목사님이 충격 받고 치유사역을 중단한 이유가 그분의 집회 중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았는데 그 다리로 춤바람이 나서 오히려 지옥에 가게 된 일 때문이다

62) 앉은뱅이로써 나음을 받았는데 그 다음에 더 힘든 사명의 적용을 하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이다.

63) 병만이 목적이면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이다

64) 예배가 회복된 사람은 항상 더 힘든 적용을 길로 놓아야 한다.

65)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이 지나고 보면 최고의 응답임을 믿는다

66) 왜냐하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십자가를 길로 놓아도 짧은 것이다.

67)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해달라고 기도 드리는 것이 응답 받는 기도의 태도이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회개이다.

68) 이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여호와이신 약속의 아브라함 야곱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69) 되돌이키심은 방향이나 마음을 돌이킨다는 의미인데, 바알 신앙에서 마음의 방향을 U턴해서 살아계신 참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70) 할 수 없이 베풀어 주시는 기적은 회개 때문에 주시는 것이다

71) 말씀대로 회개하는 것이 기도다

72) 불이 내려오는 강권적 역사가 없다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이 불가능한 것이다

73) 이 말은 내가 불을 내리는 기적을 베풀지만 그 기적은 회개를 위한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다.

74) 기적 자체에 목적을 두니 앉은뱅이가 낳아도 춤바람이 나는 것이다.

75)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76) 사건이 왔을 때 말씀이 내게 임해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회개이다.

77) 큐티를 해도 회개 없이 하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78) 자기 죄를 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또 마음대로 안 된다.

79) 말씀이 내게 임해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역사는 회개이다.

80) 회개의 역사가 응답 받는 역사다

81) 문제 해결만 기도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82) 마음속에는 B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면서 허울뿐인 A를 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83) 실로 마음속에는 소원에 대해 가득하면서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84) 현재 우리 속에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85) 그 사실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하나님께 내놓는 것이다

86) 목장을 우습게 봐도 목장에서 진단을 해준다.

87) 우리가 기도를 꺼리는 이유는 상당부분 우리의 죄 때문이고 세상일에 불필요하게 몰두하고 있고 정신건강이 혼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말 목소리를 듣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희미하게 기도한다고 하는 것이다.

88) 어느 작가는 하나님이 진짜 기도를 들으시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희미한 목소리로(murmuring) 기도한다고 했다.

89) 확신이 있으면 성경을 하나 읽어도 확신 있게 읽어야 하는데 아플 때가 죄의 문제를 다루기가 가장 쉬운 때이다.

90) 그러므로 아플 때 찾아 가야 한다.

91) 회개와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위로하고 체면상 가는것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을 이뤄내기 위해 가야 하는 것이다.

92) 하나님은 바알과 엘리야 사이에서 대답 안 한 백성들에게 뭐라 하지 않으시고 불을 내려주시고 연약한 마음을 회개하라고 자비로 역사하신다

93) 하나님은 늘 우리가 고치기를 바라시는 것이지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94) 우리는 해석을 통해 회개를 함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95) 언약의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자(I am who I am)로서 엘로아(엘로힘) 전능의 하나님이시다

96)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시다

97) 전능하신 하나님만 알다가 사건이 와서 하나님 자체를 알게 되면 여호와 신앙이라고 한다.

98) 전능하신 하나님께 육의 응답도 원하지만 오늘을 특별히 영과 육의 기도의 응답이 있기를 바란다고 하신다.

99) 자기 주장을 증명하려면 상대방이 틀렸다고 하면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100)             상대방의 틀림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나의 옳음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다.

101)             죄를 깨달았으면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102)             바알 선지자를 잡으라, 850명을 죽이라했더니 피로 물들었을 것인데 세상사람들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잔인하시다 한다.

103)             이것은 죄 중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가 가장 무섭기 때문에 가난 질병 홍수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104)             죄 중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가장 무섭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라고 한다.

105)             죄악을 알았으면 아끼지 말고 죽이라는 것이다.

106)             죄악인지 알면서도 죽이지 못하는 것 때문에 더 큰 죄가 온다.

107)             어마어마한 영적 싸움에서 850명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엘리야는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의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살았다.

108)             그렇기에 영적 싸움에서 850명의 선지자를 죽이는 권위를 갖게 된 것이다.

109)             불로 응답하시는 여호와를 경험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accept, agree)이다.

110)             사람들에게 명백하게 증명을 하려면 모두 동의(accept, agree)하도록 해야 한다..

111)             해석이 안 되는 축복은 저주이다.

112)             3 6개월 기근에서 주님을 못 만나서 해석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을 못 만나는 것이다

113)             고난은 주님 만나라고 주신 축복인데 모르고 지나치면 망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114)              

115)             아픔이 왔을 때 기근을 해석해야 되는데 기근이 나아버리면 축복도 해석이 안 된다.

116)             자녀 때문에 아프고 질병 때문에, 회사 때문에 아픔이 왔을 때 빨리 해석해야 하는데 해석이 안된 채로 병이 낫고 돈이 벌리면 축복도 해석이 안 된다.

117)             내가 아픔이 왔을 때 빨리 주님을 만나야지 의미가 있다.

118)             예수 만나는 것으로 의미를 못 찾으면 그 다음 오는 축복은 아무 의미도 없다.

119)             먹고 마시다가 아합처럼 지옥 가는 것이다.

120)             엘리야의 명령에 끝까지 순종하는 자는 사환이다.

121)             이런 사환의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대하실 것 같다.

122)             사환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와 환경에 연연해하지 않기 때문에 여섯 번이나 실패했는데도 계속 간다.

123)             비 오는데 가라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내린 명령에 말도 안되지만 끝까지 순종한 것이다.

124)             하나님은 그에게 가장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태도이다.

125)             이런 사환이 있기 때문에 아합이 잡아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되어간다.

126)             바다 쪽에서부터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고 순식간에 하늘이 컴컴해지고 비가 내렸다.

127)             엘리야 믿음의 기도가 성취되는 순간이다.

128)             조금 후에라는 표현은 북 이스라엘이 범죄해 3 6개월동안 기근 인내를 잘한 사람은 응답으로 본다.

129)             아합에게는 3 6개월의 고통의 의미가 없다.

130)             말씀의 기도를 했기 때문에 남편이 구원받을 때 식구들이 다 있었는데 나만 응답이라고 좋아했다.

131)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못하더라 순식간에의 응답은 기도한 사람이 받는 것이다.

132)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보고 단을 쌓은 사람은 순식간에 찾아오는 응답을 알아본다.

133)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남편의 죽음을 해석했기에 큰 비가 온 곳으로 모든 사건은 주님께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된 것이다

134)             큰비가 왔어도 불이 왔어도 형통해도 고난이 와도 오늘 말씀으로 살면 그것이 똑같다.

135)             기적을 보았으니 자신에게 임한 능력으로 이세벨의 고향인 이스르엘로 달려갔다.

136)             매일 임하는 능력이 없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다.

137)             아합과의 대결을 위해 허리를 동여매고 영적으로 무장했다.

138)             형통해도 고난이 와도 나는 오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139)             말씀이 해석되지 않아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도 춤바람으로 귀결된다

140)             (기적)이 와도 엘리야는 허리끈 질끈 동여매고 한결 같이 기도하며 약속의 말씀에 의거하였기에 엘리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능력을 조금씩 드러내는 것이다

141)             엘리야가 항상 눈에 보이는 형상보다 앞지르는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142)             하늘에 비가 없었는데 큰 비의 소리를 듣고 솜만한 구름을 보고도 폭우가 올 것을 알았다. 

143)             절정은 아합의 마차를 앞지르는 달음질에서 나타난다.

144)             마차를 앞지르는 엘리야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145)             묵상은 반복해서 읽고 적용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146)             교훈 받아야 할 것은 내가 진짜라면 죽이려는 사람이 있겠구나, 진짜가 아니니까 죽이려는 사람이 없구나라는 적용을 해야 한다.

147)             한번도 괴롭게 하는 자라는 소리를 못 들어본 사람은 전도라는 것을 안 해봤기 때문이다

148)             그러나 수 천년 동안 엘리야의 생각과 행동과 삶이 수많은 사람을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다.

149)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고 내 대에서 아무도 안 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앞으로 변화되길 믿는다.

150)             구원에 관심이 없으면 성경이 들리지 않는다.

151)             구원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보이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에 생명까지 내 놓는 것이다

152)             성령 충만하고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참지 못할 일과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다

153)             구원 전쟁을 해 가는데 자존심 따위는 국 끓여 먹어야 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5. 31. 16:23

[우리들교회 529일 수요예배말씀 요약 및 느낀 점 (이사야 19:16-25/ 사무엘하 24:1-17 18-25)]

 

 

 

가. 말씀요약(유원선 목사님)

 

작년 8 21일에 급성 뇌 경색이 와서 쓰러졌다.

그때 몇 달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퇴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왔다.

기도해주신 성도님들 감사 드립니다.

 

(이사야 19:16-18)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날이 오면 강했던 애굽은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 하신다.

다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심판 중에 진노를 깊이 경험하면 말씀이 들리고 자신의 죄가 보인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죄가 보이고 믿음의 언어를 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10년전 안양에서 교회를 개척을 하여 6개월 안되어 교인이 몇 십 명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자랑스러운 교회로 칭찬을 받았다.

한번은 교단에서 지원금 1000만원이 나왔는데 저희는 괜찮다고 하며 다른 두 교회에 500만원씩 나누어 헌금을 했다.

스카이 대학에 출강과 많은 복음을 전하고 이단 강의를 하는 일이 참 좋았다. 하나님의 일을 부르심에 자원함으로 해야 하는데 자원함에 자원함으로 했다. 인정과 명예를 받고 싶어 내가 제일 잘나가게 해주세요 하는 것이 주제가가 된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저에게 재앙의 사건을 통해 말씀이 들리게 해주셨고, 새 방언을 하게 해주셨다.

제가 투병하던 당일은 8 21일이어서 그날 본문과 오늘본문의 맥락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사무엘하 24장 말씀 통해 같이 설교와 간증 그리고 이단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드리도록 하겠다.

 

사무엘하 24:1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겼다.

창세기에 선악과를 따먹은 것과 같아서 죽음 밖에 없는 것이다.

에덴에서 쫓겨나고 망할 인생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죽을 운명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시면서 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모습이 본문에 나와있다.

결국에는 재앙이 그치게 되었고 이 본문을 통해 저도 살려주셨다.

저는 피해의식이 많았고 어려서 부모님이 한국에 안 계셔서 인정중독, 성공 우상에 빠졌다.

 

8월에 쓰러지는 재앙을 통해, 그리고 오늘의 이 말씀을 주시고 해석함으로 제 인생이 완전히 변화된 것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2 남자의 3대 죄악이 정욕, 탐식, 나태이다.

 

다윗이 왕권이 안정되니 권력에 대한 정욕이 격동되었다.

왕으로서 인구 조사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는데, 그 행위가 죄가 되는 이유는 그의 동기가 잘못되었고,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자 하니 백성과 병사의수를 실력으로 여겼기에 악이 나온 것이다.

자기 죄를 보는 게 능력인데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재앙을 내리시는 결정을 하신 것이다.

대표적인 이단들이 동기가 많이 안 좋다.

계속 성장하고 있는 이단이 통일교이다.

그들의 동기는 매우 불순하다.

현재 신도가 2만명이 넘는다.

 

신천지는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현재 205천명 2년전 186,700명인데 신천지 안에 우리들교회 규모의 교회가 2배가 더 생긴 것이다

그 인원 80~90% 기성교회 성도들이었다.

실제로 교회중직들로 많이 들어가 있다.

설문지, 성격유형으로 길거리 포교도 많이 당한다.

분당 서현역 6번 출구에 신천지들이 깔려있다.

깔끔한 남자 여자 청년들이 그 앞에서 포교활동을 한다.

그리고 신천지는 교회를 추수 밭이라 하고 교회에 추수 꾼을 심는다.

우리들교회에 추수 꾼이 있다. 지난 주일에 판교 새 가족 반에서 추수 꾼 활동에 대한 예방강의를 했다.

추수 꾼이 제일 먼저 들어오는 진입로가 새 가족 반이다.

 

추수 꾼이 들어와서 열심히 활동하는 이유는 추수를 많이 해서 신천지에서 권위를 가지고 왕 같은 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신천지는 전도 비를 110만원씩 낸다.

신천지 자산이 4,000억 정도 된다. 성도들에게 모두 갈취하는 것이다.

교회에 들어오는 추수 꾼은 간첩과 같다.

신천지가 참 악한 것은, 교회에서 의심을 심어 서로 의심하게 만든다.

 

목장에 추수 꾼 의심자가 있을 때 추수 꾼의 특징은 먼저 섭외할 자를 찾는다.

딱 찍어서 목장 끝나고 따로 불러서 표정이 어두운데 목자님에게 얘기 못할 그런 게 있나 봐 하면서 접근한다.

모든 꼬투리를 잡아서 좋은 처방을 다 오염시켜버린다.

신실한 사역자를 왜곡되게 만든다.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을 골라 추수한다.

 

그런 경우를 보면 그 분께 권고하고 바로 목자님과 상담해야 한다.

교회를 비판하면서 내가 아는 선교사님이 있는데 안식년이시다 하면서 해외 선교사님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런 이야기로 계속 접근한다.

신천지 내부 매뉴얼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교회에 제보가 된다.

아파서 그러는지 신천지여서 그러는지 구분을 해야 한다.

교회에 보고하면 사역자들이 공유하고 이 분이 어떤 분인가 함께 나누고 도와드리게 된다.

추수 꾼을 예의주시하고 이단 성이 있는지 보고 이단으로 규정하고 출교시킨다.

당부 드리는 것은 과도한 의심은 하지 않으셔야 한다.

과도한 의심을 하면 성도들간의 사랑에 금이 갈 수 있다.

목장에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신천지가 들어와 있을 것 같아서 오픈도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도 있다.

리더십에게 얘기하셔야 한다.

 

[적용]

-여러분의 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러분이 지금 계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악한 동기를 가지고 배우자, 자녀에게 말한 것이 다툼이 되지는 않나?

 

3-4절에서 다윗의 계수하는 모습을 본 요압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인구조사를 하냐고 한다.

그러나 다윗은 요압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재촉하여 인구조사를 하게 한다.

자기 의로 충만하게 되면 남의 말이 안 들린다.

 

5-9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약 십 개월 인구조사 하고 보고를 받게 된다. 갈수록 다윗의 악을 쌓아갔다.

제가 그런 사람이었다.

남의 말을 진짜 안 들었다.

 

발병하던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천근만근이었고, 사모가 말을 해도 이해가 안되었고 그 후 상담을 했는데 어질어질해서 집에 가서 잤다.

너무 더워서 더위를 먹은 줄 알았다.

집에 온 아들이 저를 보고 왜 그러냐고 해서 더위 먹은 것 같다고 했더니 아들이 아빠 병원가요, 제 소원이에요 하는데도 더위 먹은 것 같다고 하고 그냥 또 잤다.

 

아내 말도 안 듣고 아들 말도 안 듣고...말을 안 들어서 악이 쌓였다.

병이 깊어졌다.

저는 정말 말을 안 듣는 사람이다.

어제도 오늘도 안 듣는다.

저는 우리들교회에 와서도 한참 동안 밤에 큐티를 했다.

정말 어이가 없다.

김양재목사님은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이고 나는 날마다 밤에 큐티하는 남자인 셈이었더

아침에는 목사님들 큐티를 듣고. 반성적 큐티를 한 것이다.

아내가 아침에 큐티 좀 하라고 하면 저는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잖아 그런다. 지금은 아침에 큐티를 한다.

 

[적용]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나?

-내 말이 옳다고 하면서 듣지 않고 악을 쌓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듣고 오늘 고쳐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10-13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한 것을 깨달았다.

인구조사가 악한 것을 알게 되었다.

심히 미련한 자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은 갓을 통해 세가지 재앙 중에 하나 택하라고 한다.

이스라엘에 7년 기근, 3년을 원수에게 쫓기는 것,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도는 것 중에 하나 택하라고 하셨다.

세가지 중에 전염병을 택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사울을 피해 도망을 다녔다.

엄청 고생했다.

거지 생활, 미친 사람 행세를 했다.

자비가 없는 사람에게 심판 받는 것 보다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징계를 받겠다고 선택을 한 것이다.

전염병으로 전국에서 7만명이 죽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임한 재앙을 통해 완전히 끝내신 것이 아니다

완전 끝내야 하기 위해,

 

18-25절은하나님께서 다윗의 제사를 받으시는 본문이다.

‘재앙이 그쳤더라’ 가 제가 발병했던 날 본문이다.

 

18-19절에서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윗이 듣고 즉시 산으로 올라간다.

 

20-21절에서 다윗이 오는 것을 아라우나가 알게 되어 달려나가 엎드려 왕에게 절을 한다.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사서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겠다고 한다.

 

22-25절에서 아라우나는 다윗에게 소와 땔감을 무상으로 기쁘게 받아달라 했는데 다윗이 간절히 말하는 아라우나의 말을 거절하고50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값을 주고 사겠다고 한다.

 

제물 조차 값을 주고 사야 흠 없는 제물이라 생각했다.

번제는 제물을 불사르는 것이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린다.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내린 재앙을 그쳤더라.

재앙이 완전히 그쳤다.

제물을 사서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니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재앙을 종식시키셨다.

제 몸이 심각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느낀 시간은 5~6시가 넘었다. 병원장이신 초원님께 말씀 드리니 빨리 가까운 병원으로 가라고 하셔서 갔다.

별거 아닌 줄 알고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갔다.

주차를 하고 딱 들어가서 접수를 하는데 글씨가 안 써졌다.

안 써져요하고 얘기했다. 도와주세요.

너무 놀랐다.

그런데 본인이 써야 한다고 해서 정말 2분동안 가까스로 제 이름을 썼다.

쓰고 접수하고 휠체어에 앉았다.

응급실에 들어가 베드에 누워서 약하나 먹고 CT를 찍었다.

아픈지 12시간이 넘어서, 의료진이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 괜찮아 질 것이라고 했는데 CT결과가 나왔는데 팔 다리에 힘이 없었다.

오므렸다 폈다가 안 된다고 하니 의료진이 깜짝 놀라 MRI, MRA를 다 찍었다. 골든 타임이 3시간이라고 하는데 16시간이 넘었다.

하나님은 의료진의 눈을 가리셨다.

그때 제가 치료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폐쇄병동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재앙이 완전히 시작이 되었다.

그때 너무 놀라 기도했다.

다윗은 재앙의 선택권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없었다는 것이다.

누워 있는데 오른 손, 오른 발에 힘이 쭉 빠졌다.

기도했다.

하나님, 이렇게 마비되기 싫다, ‘그냥 저 순교하게 해주세요.’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

저 순교하게 해주세요, 병으로 죽기 싫습니다.’

아내와 아들은 어떻게 하냐고, 실업자 된다고...제가 돈이 우상이어서...

 

850 1 그 싸움 앞에서 머뭇거리고 절뚝거렸다.

기도할 때 제 합리화, 순간적으로 낫게 해주시면 어마어마한 약재료 가지고 사역하겠습니다 했다.

하나님은 그날 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다 힘을 빼셨다.

저는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했다.

소변도 대변도 알아서 못했다.

저를 침대에 고정시켰다.

온몸에 거미줄 같은 전선들이 쭉 매달려있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다중인격이 올라오더라.

옆 병상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시는데 저와는 클래스가 다르셨다.

할아버지는 정말 중환자셨다. 선망, 환각증세를 겪고 계셨다.

주사 바늘 막 빼고 그러셨다.

할머니는 구토를 그렇게 하시고.

그 분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으셨다.

인지 능력에 손상이 가셔서.

그런데 저는 인지가 멀쩡해서 그것을 다 느끼고 보았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런 게 지옥이구나 했다.

내가 예수 안 믿고 죽으면 이것보다 더 한 것 하겠구나하는 심정을 느꼈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이런 지옥을 먼저 가셨구나.

예수님이 채찍 맞은 것, 조롱 당한 것, 가시관 쓰신 것, 어둠에 계시고 무덤 안에 계신 것이 100% 들어왔다.

부활절, 고난 주에 그런 것을 들을 때는 그냥 아는 것이었는데, 병원에서 묶이고 했을 때, 간호사들이 로마 병정으로 보이며 모든 것이 종합되면서 예수님의 구속사가 저에게 확 들어와버렸다.

고난만 겪으면 안되니 예수님이 그때 들어오셨다.

그렇게 아수라장 같은 곳에 있는데, 아내가 면회를 왔다.

하루에 한번만 면회가 되었다.

큐티를 같이 나누었다.

아내가 굉장히 바른 소리 잘하고 굉장히 똑똑해서 흠 결 없는 제물 같아서 저에게 얼마나 피를 뿌리는지...’여보, 당신 우리 가정에 끊어져야 할 재앙이 있어? 없어?’ 그랬다.

얼마나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 없어?’라는 것이었다.

 

많다고 했더니 또 질문 했다.

그 재앙을 그치기 위해서 드려져야 할 번제 물이 누구야?’라고 묻더라.

그래서 ‘나야’ 그랬다. 아내가 “우리 가정에 재앙이 너무 많잖아, 그런데 하나님이 그 재앙 그치시려고 당신을 제물로 받으셨데” 하고 울면서 얘기했다.

 

제가 정말 힘 많이 주고 살던 사람이었다.

평소에 너무 힘주고 사니 하나님이 오른쪽 힘을 쫙 빼버린 것이야.

첫날 큐티에 주님의 손으로 우리를 치셨고, 재앙이 그쳤더라, 지존자가 우리를 세우셨다고, 폐쇄병동에 있지만 당신이 여호와의 통치를 받고 있으니 감사하자고 아내가 저에게 해주었다.

사실 이것은 제가 묵상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밤에 큐티하는 남자라 들어둔 말씀도 없는데 이런 큐티가 어떻게 나오겠나?

아내가 다 해석해주었다.

재앙이 그쳤어, 세속사로 보면 재앙이 시작이지만 구속사로 보면 우린 구원 받은 거야 그랬다.

그래서 당신이 제물이 된 것이라 해주었다.

나 때문에 당신이 제물이 되게 해서 미안하다고 아내가 말을 했다.

2차 보고는 담임 목사님께 왼손 하나 가지고 컴퓨터로 3시간동안 쳐서 편지를 보냈다.

주일설교 제목이 내가 속히 오리니였다.

저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속히 오신 사건이었다고 목사님께서 해석해주셨다. 구원 받았다는 것이 인정되고 팔다리 마비가 되었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다.

 

발병 6일째 목사님께서 공동체 고백 읽어주시고 중보기도를 해주셨는데 제가 그 시간 1시 전까지 전혀 걷지도 못했다.

2시에 재활의학 선생님이 오셨다.

유원선씨 일어나 보세요하셨다.

어떻게 일어나죠?’ 제가 나사로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기는 했는데 걸어보세요했다.

그런데 제가 걷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한 발짝도 걷지 못했다.

의료진이 정말 회복시간이 빠르다고 하더라.

투병 3일 지나고 바로 회복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제 걷는 연습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기도를 들으신다.

애통하는 자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다.

그 은혜를 믿고 경험하고 누리게 되었다.

사실 저에게 많은 재앙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재앙은 아버지 재앙이었다.

저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용납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약 30년 전에 러시아로 선교를 떠나셨다.

출판 사업도 하셨는데 완전히 망하셔서 부르심 받고 러시아로 갔다.

지금 보면 자원함이었던 것 같다.

가족을 두고 선교를 가신 것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한국에 일년에 한번씩 오시는데 그다지 화목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들어오시면 어머니와 싸우고, 왜 들어오시나.

제가 쓰러지고 난 후에 고난이 해석이 되었다.

재앙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와의 관계 재앙이 그쳤다.

아버지를 그렇게 원망했는데, 왜 아버지가 나를 버려두고 가셨어 하면서 늘 그런 것이 위축이 되었었다.

아버지 때문에 내가 힘들어하는 원망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딱 쓰러지니 그 재앙이 그쳤다.

말씀이 해석되니 내 재앙이 뭘까, 아버지와의 문제이다 하니 딱 그쳤다.

아버지가 한국에 오셨을 때,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 부르심이 있어서 갔는데 제가 원망만 했다.

지금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져서 카카오톡 영상 통화를 한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스타일은 안 변하셨고 똑같다.

여전한 방식으로 무뚝뚝하셨다.

아버지는 늘 감사하라, 믿고 기도하라하셨다.

소통이 전혀 안되었다.

저도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닮았다.

제가 용서할 것이 없더라.

아버지가 저이고 제가 아버지였다.

제 안에 악한 본성이 나와서 아버지를 미워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인정이 되었다.

 

지난 주 목세를 하며 아버지가 담임 목사님께 직통 양육을 받으셨으면 했다.

제가 여전히 안 변하는 것이 있지만 근본적인 본질, 내 죄를 보게 되니 본질이 새로워져 감사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제가 폐쇄병동에 있던 시간은 제물이 되었던 시간이다.

태워지던 시간에 하나님은 제게 말씀을 주셨다.

발병하고 불안장애, 폐쇄공포증, 우울증이 왔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여전히 그것이 충격이 컸다고 한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한다.

얼마 전 팔다리 검사했는데 100점 만점에 96점이 나왔다.

세속사로 살았을 때는 남은 4점 채우려고 인구조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계수가 필요 없다.

4점의 그루터기로 내 죄를 보게 하셨다. 일상에 아무 불편함이 없다.

 

* 맺는 말씀: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재앙을 내리셨다.

오늘 큐티에서 애굽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날에는 애굽과 앗수르의 재앙이 회복되고 원수관계가 회복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육이 무너져야 영이 산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해석해야 우리가 살 수가 있다.

재앙이 여러분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재앙이 그치기 위해서는 댓가가 지불되고 제물이 필요하다.

이스라엘 재앙이 그치기 위해 번제물이 드려진 것처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

나와 우리 가정의 재앙이 그쳐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내가 제물이 되어야 한다.

내가 제물이 되어 잘 죽어지고 잘 타 없어지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그치는 것을 약속하신다.

 

*기도제목:

 

-이제는 내가 제물이 되고 죽어지게 하시고 내게 임한 재앙이 끊어지게 해달라고. -가정의 제단 위에 내가 먼저 제물로 드려지고 재앙이 그치도록. 구원 받아야 할 가족이 있는데 그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나를 번제물로 받으시고 잘 죽어지도록. -내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내가 먼저 죽어지는 제물이 되게 해달라고 재앙이 그치고 나에게 구원의 역사가 임하게 해달라고.

 

 

. 느낀 점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날이 오면 여지 없이 강했던 애굽 뿐만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두려워하게 될 것이며 심판 중에 진노를 깊이 경험하면 말씀이 들리고 자신의 죄가 보인다고 하시니 환난 중에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됨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내 죄가 보이고 믿음의 언어를 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시니 할렐루야입니다.

 

부끄러운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말씀 전하신 유원선목사님에게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재앙의 사건을 통해 말씀이 들리게 해주셨고, 새 방언을 하게 해주셨다는 간증이 은혜롭습니다.

 

사무엘하 24:1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겼는데 이는 창세기에 선악과를 따먹은 것과 같아서 죽음 밖에 없는 것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망할 인생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임을 깨달아 세상우상을 멀리하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사랑이 깊으신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시면서 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모습이 본문에 나와있으며 결국에는 재앙이 그치게 되었고 이 본문을 통해 목사님도 살려주셨다고 증거하십니다.

 

1-2절에서 남자의 3대 죄악이 정욕, 탐식, 나태인데 다윗도 왕권이 안정되니 권력에 대한 정욕이 격동되었으며 그 결과 왕으로서 인구조사를 시행하였던 동기가 불순하여 다윗왕은 자신이 하나님자리에 올라 인구계수로 자신의 통치 하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백성 수를 가늠하며 교만한 마음이 들게 되어 악한 죄를 범하게 된 것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다윗왕에게 재앙을 준비하셨다고 하십니다

 

대표적인 이단들도 동기가 불순함에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누리며 그 중 통일교와 신천지가 대표 격으로 신천지 이단신도는 20만 명이 넘고 2년 사이에 신도수가 우리들교회 규모의 2배이상 신장하였다고 하십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신천지 신도들 중 80~90%가 기성교회 성도들 출신이라고 하니 신천지는 이단 기생충 바이러스의 표본으로 느껴집니다.

 

신천지가 모든 교회를 추수 밭이라 하고 교회에 추수 꾼을 심는데 우리들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새 가족 반이 유입통로라고 하십니다

 

신천지 추수 꾼의 목표는 신천지이단교회 멤버로 많이 영입하여 왕 같은 제사장이 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신천지는 전도 비를 110만원씩의 전도 비까지 지불하면서 신천지의 자산이 4,000억원에 이르는데 모두 성도들로부터 갈취하는 것이라고 하며 간첩과도 같은 신천지의 악함은 일반교회 추수 밭에 의심이란 가라지를 심어 믿음의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하시니 말씀으로 이들을 분별해 내는 지혜가 필요할 것으로 경종을 울립니다.

 

3-4절에서 인구 계수하는 다윗에게 요압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불필요하게 왜 인구조사를 하냐고 충고하지만 다윗은 자뻑에 빠져 요압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재촉하여 인구조사를 하게 되는 현상은 우리가 자기 의로 충만하게 되면 남의 말이 전혀 귀에 안 들리는 마이동풍 격이 되는 것 같습니다

 

5-9절을 보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이스라엘 전국에 걸쳐 약 십 개월 인구조사 하고 보고를 받게 되는 과정에서 다윗의 악을 쌓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신앙생활 하는 동안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서 돈 계수’, ‘인정계수’, 실적계수’, ‘봉사계수’, ‘기도계수’, ‘십일조계수생색계수에 대한 조사와 계산을 자행함과 지체들과 식구들과 동료들의 말을 안 들음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쌓아가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회개하고 제자리로 돌아 오라고 재앙을 내리시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원수관계도 회복되고 서러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이치는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진다의 원칙에 근거함을 알기를 소망합니다

 

(1)“재앙이 그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가가 지불되고 제물(나의 희생, 나의 헌신, 나의 죽어짐의 제물과 번제물 등)이 필요한 것이고

(2)“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며

(3)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기도를 들으시며 애통하는 자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다라는 3가지 말씀이 가장 가슴에 와닿습니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