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9. 5. 17. 17:40

["중독과 은혜" 내가 본 핵심요지와 독후감(제랄드 메이 지음_이지명 옮김/229)]

 

 

가.핵심요지: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욕구를 품고 있다

신앙과 관계 없이 이 욕구는 우리의 가장 깊은 갈망이며 가장 값진 보물이다

사랑에 대한 욕구는 사랑하고자 하는, 사랑 받고자 하는, 사랑의 근원되신 분께 좀도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이다

사랑에 대한 욕구는 안간 영혼의 본질, 즉 우리의 가장 강렬한 희망과 가장 고결한 꿈의 기원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 안에 이 욕구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다

하나님은 삶을 통해 사랑에 대한 욕구를 자라나게 하시며, 가장 큰 두 계명, 내 마음을 다하여 주 녀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완수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신학적으로 죄는 우리를 사랑으로부터, 즉 우리자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의 두 가지 원인은 억압과 중독이다

우리 모두는 억압과 중독으로 인해 고통 받는데 이 중 억압은 그 정도가 한결 가벼운 것이다

강렬한 사랑의 욕구를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열정(passion)이란 단어는 고통 받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파수스’(passus)에서 파생되었다

사랑이 기쁨과 괴로움도 동시에 안겨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종종 이 괴로움을 초소화학 위헤 사랑에 대한 욕구를 억압한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한 후, 우리는 이 욕구를 억눌러 버린다

우리 안의 열망들이 우리에게 아픔을 줄 때, 우리는 그런 열망들을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열망들을 똑 같은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방식으로 다가오시지는 않으며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욕구를 억누른다

억압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문제지만 우리를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또 다름 힘인 중독을 훨씬 더 해롭다

억압은 욕구를 억누르는 반면, 중독은 욕구에 집착하며 욕구의 에너지를 특정한 행위나 사물 혹은 사람들에게로 속박시켜 노예로 만든다

그리하여 이 집착의 대상들은 우리 마음을 빼앗고 강박 관념이 되어 삶을 지배하게 된다

중독의 심리학적, 신경학적, 영적 역동이 모든 인간의 내부에서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관념과 일, 관계, 권력, 기분, 환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 다른 일들에 중독되는 과정은 알코올과 마약중독에 이르는 과정과 동일하다

우리는 말 그대로 모두 중독되어 있다

중독은 우리 자신의 최악의 적이다

중독으로 인해 스스로 만든 사슬에 자신을 속박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은 이 사슬을 통제할 수 없다

중독은 우리를 모두 우상숭배자로 만든다

집착대상을 숭배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나님과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중독은 우리 안에 고집을 낳지만 또다시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존엄성을 침해한다

중독은 우리 본성의 고유한 일부 인 동시에 본성의 대적자다

인간 자유의 절대적인 적이며, 사랑에 대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역설적인 것은 중독이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깊이 깨닫도록 이끈다는 것으로 중독은 우리를 무릎 꿇게 할 수 있다

중독은 적절한 치료법을 적용한다고 해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독의 특성상 중독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중독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중독에 대한 이해는 은혜를 깨닫도록 도와줄 것이다

은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은혜는 억압과 중독 그리고 모든 인간 내면의 자유를 억압하는 내적 혹은 외적 힘들을 능가할 수 있다

은혜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11~15)

 

하나님은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시기 때문에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중독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우리와 더 함께하시며, 더 친밀하시며, 더 변함없으시다

하나님은 항존하시는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속자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적으로 열정적이고 신실하게 사랑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규범이 되시지 않는다

종교의 구조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종교의 구조가 대리 신이 될 수 없다

믿음의 교리, 생활규칙, 행위의 표준, 성경에 의지하는 것은 모두 진정한 영적 생활에서 필수적이다

하나님은 성만찬을 통해 놀라운 능력을 행사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의 매개체들이다

그러나 그것들 자체에 중독되면 우리 마음의 자유에 장애물이 된다 (125)

 

믿음의 척도는 얼마나 진정으로 은혜의 진리에 모험을 걸려고 하는지에 달려 있다

과거의 경험은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신뢰는 삶 전체를 편안하게 해주고 위안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은 결코 오랫동안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

신뢰가 자라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 자신의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모험을 하라는 도전을 받게 된다

믿음의 꽃이 한 송이 피어나 신뢰의 열매가 맺기까지 자라는 동안, 또 다른 믿음의 싹이 생겨나 또 다른 도전을 향해 피어난다

이런 이유로 믿음은 결코 집착이 될 수 없다(165)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나 관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만큼 은혜의 능력이 빛나고 신비스러운 곳은 없다

그 힘은 사람들로부터,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사랑만이 아니라, 마치 한 사람과 그 옆 사람 사이의 바로 그 공간을 통과하는 듯한, 사람들 가운데서 쏟아져 나가는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바로 그런 환경 안에 있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능력에 젖는 것이다 (219)

 

근본적인 단순함은 중독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표시며 진정한 영적 성장의 표시이기도 하다

14세기 체코슬로바키아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Jan Hus)가 이단으로 정죄되어 화형에 처해졌을 때 그의 마지막 말, “오 단순함에 축복 있으라

알코올 중독을 극복한 사람의 지갑에서 꺼낸 카드에 쓰여진 문자 “K.I.S.S.” 는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얻은 것이라고 하는데 단순하게 살라고, 바보야)”(Keep It Simple, Stupid)라고 생각된다 (225)

 

하나님이 진실로 우리를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 창조하신다면, 우리는 끝없는 고통이 아닌, 기쁨과 자유의 삶을 마땅히 누려야 하지만 하나님이 또한 우리를 하나님을 향한 타고난 열망을 지닌 존재로 창조하신다면, 인간의 삶은 역시 열망과 미완성의 성취의 결핍을 감수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사랑과 소망과 성장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만, 또한 열망과,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완전한 사랑을 향한 동경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집착이 드러나고 우상들이 파괴될 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마음은 더 크고, 더 순수하고, 더 많은 동경을 느끼게 될 것이며 이 특별한 고통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227)

 

우리가 중독에 대항해 싸워 나가는 특정한 싸움들은, 축복받은 고통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 가지 집착대상을 빼앗기는 것은 우리 영혼의 깊고 거룩한 궁핍함을 맛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우상을 초월하기 위한 싸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굶주림에 접촉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금욕이라고 불러 온 것은 더 이상 집착을 다루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가 내릴 것을 확신하기에, 그리고 우리가 지금의 기적과 앞으로 올 에덴동산의 상속자인 동시에 공동 창조자라는 분명한 사실로 인해 우리 본성의 관야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길 원하며 그 광야의 빈 공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결론 맺습니다 (229)

 

나.느낀 점

 

우리는 모두 중독자인데 종류와 장르가 다르고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시점과 관점이 상이한 상태로 중독과 접속이 되어 있어 스스로 중독을 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중독의 특성상 중독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중독을 강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독에 대한 이해는 은혜를 깨닫도록 도와줄 것인데 은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며 은혜는 억압과 중독 그리고 모든 인간 내면의 자유를 억압하는 내적 혹은 외적 힘들을 능가할 수 있으므로 중독을 끊어 줄 수 있는 은혜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나 관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신앙공동체 안에서만큼 은혜의 능력이 빛나고 신비스러운 곳은 없다고 합니다. 그 힘은 사람들로부터,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사랑만이 아니라, 마치 한 사람과 그 옆 사람 사이의 바로 그 공간을 통과하는 듯한, 사람들 가운데서 쏟아져 나가는 사랑을 포함하고 있는데 바로 그런 환경 안에 있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능력에 젖는 것이라는 처방이 우리들교회 목장공동체의 힘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척도는 얼마나 진정으로 은혜의 진리에 모험을 걸려고 하는지에 달려 있으며 신뢰는 삶 전체를 편안하게 해주고 위안을 줄 수 있지만 믿음은 결코 오랫동안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는 논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신뢰가 자라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 자신의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모험을 하라는 도전을 받게 되며 믿음의 꽃이 한 송이 피어나 신뢰의 열매가 맺기까지 자라는 동안, 또 다른 믿음의 싹이 생겨나 또 다른 도전을 향해 피어나는 것이고 이런 이유로 믿음은 결코 집착이 될 수 없다는 것에 공감이 됩니다.

 

근본적인 단순함은 중독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표시며 진정한 영적 성장의 표시라고 정의하는데 알코올 중독을 극복한 사람의 지갑에서 꺼낸 카드에 쓰여진 문자 “K.I.S.S.”(Keep It Simple, Stupid/ 단순하게 살라고, 바보야)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명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또 하나의 K.I.S.S. “Keep It Short & Simple”(간결하고 단순하게 유지하라)입니다.

 

의견 발표나 질문, 목장 나눔 그리고 공동체 대화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Short, Sharp, and To the Point(S.S.T.P)”<간결하고 예리하고, 핵심을 찌르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Shalom ~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