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2. 6. 28. 22:32

4. 평창 더반 대첩 승리, Detail한 배경과 역사

 

 

평창이 2번의 실패 끝에 2018 동계올림픽을 유치하였다. 평창은 비밀투표로 이루어진 1라운드에서 뮌헨과 안시에 승리한 것이다.

 

 

 

 

 

 

승리를 위해선 투표참가 IOC 위원 95명의 과반수인 48표가 필요했으나, 평창은 63(66.3%)로 단순과반수 (50%+1)를 훨씬 상회하고 8.7% 모자라는 절대과반수(3/4, 75%)에 육박하였다.

 

 

동계스포츠 세계최강국 중 하나인 독일의 뮌헨은 25표로 26.3%, 안시는 7표로 7.3%밖에 안 되는 득표율로 참패를 기록하였다.

 

역대 올림픽 유치투표 전 중 1995 년 부다페스트 IOC총회에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가 투표참가 IOC위원 89명 의 표 중 54표로 승리한 이래 평창의 63표는 가장 엄청난 표차이의 승리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미 국제스포츠이벤트 그랜드슬램(4관왕)을 이룩한 세계스포츠 초 강국이다.

 

그랜드슬램국가란 동계 및 하계올림픽, FIFA월드컵,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등 4대 국제대회를 모두 유치하여 개최한 나라들을 일컫는다.

 

 

평창은 이제 3관왕(Triple Crown) 국가를 뛰어 넘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에 이어 6번째 그랜드슬램(Grand Slam) 국가클럽의 정회원이 되었다.

 

세계최강국들인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중국 등도 아직 그랜드슬램 국가대열에 끼지 못하고 있다.

 

평창은 아시아 통산 세 번째지만 일본에서 개최된 삿포로(1972), 나가노(1998)를 제외하고 20년 만에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게 된 것이다.

 

Jacques Rogge IOC위원장이 평창을 호명할 때 한국대표단은 환호하였다.

 

 

 

 

1995 Salt Lake City 1라운드에서 다른 후보도시를 제치고 2002 동계올림픽 유치를 확정한 이후에 처음으로 1라운드에서 투표가 결정 난 것이다.

 

평창 의 슬로건 New Horizons’(새로운 지평)은 세 번의 도전 만에 성공할만한 가치 있는 주제였고, 이는 아시아의 새로운 시장과 그 지역 동계스포츠 허브의 의미를 담고 있다.

 

 

2010년 유치 당시 첫 번째로 평창은 고배를 마셔야 했고, 두 번째 실패인 2014 년 재수도전에서는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세 번째 도전에서의 승리 는 한국의 가장 행복한 날로 기쁨을 만끽하였다.

 

 

조양호 유치위원장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밝히며, 대한민국과 국민, 동계스포츠를 꿈꾸는 젊은 세대들에게 제일 기쁜 날이라고 덧붙였다.

 

 

(조양호 평창2018 유치위원장 겸 한진그룹/대한항공회장이 더반 IOC총회 평창승리발표직 후 한국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이경 올림픽 쇼트트랙 챔피언(동계올림픽 4관왕)지난 유치프레젠테이션 때 참여했고, 우리가 졌을 때 너무 슬퍼서 울었다.

 

그러나 지금은 울지 않았고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고 소감을 말하기도 하였다.

 

 

                                        (올림픽박물관에서 전이경 선수와 함께)

 

 

2014년 유치경쟁승자였던 소치조직위원회는 한국에 첫 번째로 축하를 보내 기도 하였다.

 

Dmitry Chernyshenko 소치2014위원장은 소치2014처럼 한국은 올림픽 운동(Olympic Movement)를 위한 New Horizons을 잘 전달했다.고 평가하였다.

 

 

Dmitry Chernyshenko with volunteers at last month's Winter Youth Olympic Games in Innsbruck. (Sochi 2014)/2014 소치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사진 가운데>)

 

 

 

그리고 올림픽의 힘을 새로운 지역으로 함께 전파하고 싶고, 평창은 훌륭한 개최도시 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olin Moynihan 영국올림픽위원장은 평창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의 첫 동계올림픽개최도시로서 평창은 새로운 관중에게 동계올림픽의 즐거움을 전달할 것이며, 훌륭하게 조직될 것이 확실한 평창대회를 학수고대하고 있으며 평창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올림픽운동구성원 모 두를 자랑스럽게 해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한국은 이미 수년간 수억 달러를 평창에 투자했으며, 정부는 국가 우선사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열심히 노력해왔고,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김연아 선수는 밝혔다.

 

박용성 KOC위원장은 다음 계획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파티 아주 큰 파티라고 답하였다. 김진선 특임대사는 우리는 축하했고 소리쳤고 울었다. 내 마음도 이와 같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용성 KOC위원장) 

 

 

험난한 역경을 딛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 김진선 특임대사는 앞선 두 번 의 평창유치를 강원도지사로서 이끌었다.

 

 

 

                   (김진선 평창2018 특임대사, 3선 강원도 지사 겸 현 2018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평창은 Drive the Dream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김연아 선수는 올림픽유치 의 첫 번째 살아 있는 유산(the first living legacy)이 되었다.

 

 

                                               (김연아 평창2018 유치 홍보대사)

 

2018유치과정에서 조 양호 위원장이 유치를 지휘하였지만, 김진선 특임대사는 유치의 핵심적인 일부로써 두 번의 유치과정에서 구축한 관계를 잘 활용하였다.

 

 

선두를 달리던 평창은 마지막까지 뮌헨의 도전에 시달렸지만 결국 승리하였다. 2018 2월 세계는 조그만 산골도시인 평창을 주목할 것이다.

 

그곳은 세계 수준의 시설물들과 평창 특유의 문화환경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고속철도는 서울과 인천국제공항을 2시간 이내로 연결시켜줄 것이다. 그것은 평창 지역을 영원히 탈바꿈시켜줄 그 무엇이 될 것이다.

 

 

한편 한심한 패배로 낙심한 뮌헨은 2018 유치도시결정투표에서 평창의 압도 적인 승리는 동정표 덕분이라고 밝혔다.

 

Thomas Bach IOC부위원장 겸 뮌헨유치총괄회장은 스포츠에서 이기는 것만이 모든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며, 이번의 패배가 마지막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Thomas Bach IOC부위원장 겸 뮌헨2018 유치총괄회장)

 

 

그러나 우리는 매우 실망했으며, 한국의 동정전략은 잘 먹혔다.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뮌헨은 평창과 선두를 달리는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38표의 차이는 세 번째 도전인 평창이 선택된 것을 의미한다.

 

이 레이스에서는 은메달이 없기 때문에 패배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최하위로 패배의 쓴 잔을 든 안시는 실패하여 실망스럽지만, 평창의 선전에 경의를 표하였다. 안시는 시종 순위 밖으로 간주되었고, 7표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Charles Beigbeder우리는 우리가 해온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올림픽 운동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며, 이번의 실패로 절대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평창의 선전에 축하의 뜻을 전하며, 우리에게 유치(bid)의 기회를 준 IOC에게 감사를 표한다.라고 덧붙였다.

 

 

올림픽 알파인 스키 2관왕이며 전 스웨덴 선수출신으로 IOC위원을 역임한 Pernilla Wiberg이것은 경기였고, 항상 승자가 있으면, 2위도 있는 법이다.

선수로써 나는 이 자리를 통해 어떻게 지고 어떻게 승리할 지를 배웠다.라고 말하면서 평창에 축하하며, 우리에게는 좋은 경험이었고 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라 고 마무리하였다.

 

 

 

 <윤강로저서 "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 중에서 발췌>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28. 22:27

3. 대한민국 스포츠외교의 승리 Golden 11

 

대한민국 스포츠역사에 빛나는 우리나라 스포츠외교 Golden 11 이벤트를 정리해 본다.

 

 

 

 

                                  (서울올림픽공원에 위치한 올림픽 평화의 문의 위용) 

 

 

 

쿠베르탱 남작이 부활시킨 근대올림픽은 1894년 파리 소르본(Sorbonne) 대학에서 IOC가 창설되고, 2년 후인 1986년 고대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대회의 서막이 올랐다.

 

 

 

 

                      (소르본 대학에서 IOC창설을 결의한 발기인대표들, 쿠베르탱남작은 좌-2)

 

 

 

현 대한체육회의 모태가 되는 조선체육회는 근대올림픽이 부활된 이래 24년이 지난 1920년 7월 13 창립되었다.

 

 

대한(당시는 조선올림픽위원회(KOC) IOC에 정식 가입한 것은 1947 6 2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제41 IOC총회의 승인에 의해서이다.

 

 

                

                      (1947년 제41차 스톡홀름 IOC총회에 등록되어 2008년까지 지속되었던 KOC로고) 

 

 

그 당시 조선체육회가 올림픽대책위원회를 설치한 것은 1946년 7월 15이었다. 이는 물론 2년 후인 1948년 제5회 생모리츠 동계올림픽과 제14회 런던올림픽에 공식선수단 파견을 위한 선행조치였다.

 

KOC 1964년 9월 8 문교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사단법인체로 정식 출범함으로써 대한체육회에서 완전 분리된 독립기구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KOC 50년사에서 발췌)

 

 

 

 

이렇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정부발행 여권도 없이 어렵사리 국제공인기구인 IOC KOC가 정식가입승인 받은 것은 우리나라 1호 스포츠외교 의 승리(천신만고와 감개무량)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호 스포츠외교의 승리(기사회생과 승전축배)는 대한민국의 서울이 1981년 9월 30 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극적인 역전드라마를 펼쳐 일본의 나고야를 52:27로 물리치고 1988년 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정됨으로써 전세계에 코리아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했던 바덴바덴 대첩이다.

 

 

 

 

 

 

(1981년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서울이 1988년 올림픽개최도시로 선정된 진 후 IOC와 KOC 그리고 서울시 간에 체결하는 개최도시협약서/Host City Contract 서명회 장면/앞 중 좌로부터 Comte De Beaumont 프랑스 IOC위원, 사마란치  IOC위원장 및 조상호 KOC위원장/ 바로뒷줄에 이원경 유치위원회고문 겸 추후 제2대 체육부장관 견 외무부장관, 이원홍 KBS사장, 최만립 KOC명예총무, 외무부 대사출신 전상진 KOC부위원장)

 

 

 

 

 

(바덴바덴대첩 유치주역들과 필자: 좌로부터 전상진 대사, 필자, 정주영 유치위원장, 이원웅 KOC전문위원)

 

 

 

3호 스포츠외교의 승리(우여곡절 끝에 승승장구)1986년 서울 ANOC총회의 성공적 개최이다. 당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적으로 서울올림픽개최지 변경을 획책하려는 움직임이 준동하는 가운데 미수교국 이 즐비한 상황에서 ANOC총회를 계기로 전세계회원국 NOC들을 서울로 불러들여 서울올림픽 준비상황과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이러 한 인식을 불식시켜 개최지 변경시도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4호 스포츠외교의 금자탑(일취월장과 위풍당당)1988년 서울올림픽 의 성공적 개최이다. 서울올림픽은 좌불안석의 불안정하고 보이콧이 난무하던 근대올림픽운동사에 단합의 이정표를 공고히 달아준 역대 올림픽사상 가 장 모범적이고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보편적 인 최고의 대회였다.

 

 

 

 

 

 

 

5호 스포츠외교의 금메달(고진감래와 금의환향) 1994년 프랑스 파리에 서 IOC 창립 100주년 기념 올림픽 콩그레스와 함께 개최된 제103 IOC총회에서 5,000년 역사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의 올림픽정식종목채택이다.

 

 

 

 

 

 

6호 스포츠외교의 범 세계화 추진동력가속화(경천동지와 환골탈태) 2002 FIFA월드컵의 성공적 유치와 개최 그리고 우리나라 축구가 전대미문 의 세계 4강 신화달성이다.

 

 

 

 

 

 

 

 

7호 스포츠외교의 저력과시(유비무환과 금상첨화) 1999년 제109차 서울 IOC총회의 성공적 개최이다. 올림픽 TOP 스폰서 적극활용 등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글로벌 홍보 및 스포츠외교 기대효과를 거양한 IOC총 회사상 최상의 IOC총회로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1999년 6월 제109차 IOC서울총회에 참석한 100 여명의 IOC위원들의 총회 후 단체사진)

 

 

 

 

8호 스포츠외교의 금메달(호형호제와 거국 일치)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회에서 사상최초의 남북한 선수단 개회식 공동행진이다. 지구촌 가족 모두에게 스포츠를 통한 평화구현의 진한 감동의 메시지를 실천해 보여준 논픽션올림픽 드라마였다.

 

 

 

 

 

 

 

9호 스포츠외교의 승리(주마가편과 화룡점정 일보 직전)는 대구 광역시의 2011 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적 유치이다. 대한민국의 세계스포츠그랜드슬램(동·하계 올림픽, FIFA월드컵축구대회 및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4대 스포츠 행사 석권) 달성에 근접시켜준 중요한 계기마련과 한국 육상중흥의 도약의 발판을 제공해준 쾌거였다.

 

 

Daegu 2011

 

 

 

 

이제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세계 스포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TOP 6 국가 대열에 진입하였다.

 

 

 

 

10호 스포츠외교의 승리(전대미문과 군계일학)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회기간 중 최다득표획득으로 IOC와 전세계올림픽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준 문대성 선수의 IOC위원 선출이다.

대한민국 역대 IOC위원들 중 최연소 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의 선수출신 IOC위원으로서 제2, 3의 선수출신 IOC위원 배출 가능성의 문을 확실히 열 어준 견인차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가대표선수출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출신 문대성 IOC위원이 최근 박사학위논문 표절시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1호 스포츠외교의 승리(경천동지와 화룡점정) 1981년 9월 30 바덴바덴 대첩 이후 정확히 30년만의 일이다.

 나가노 동계올림픽개최(1998) 후 정확히 20년 만에 아시아대륙에 동계올림픽개최권이 넘어온 것이다.

 평창은 2011년 7월 6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개최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투표에서 투표참가 IOC위원 95명 중 63표를 얻어 뮌헨 (25)과 안시(7)를 제치고 3수만에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하였다.

 

 

 

                                           (김연아 평창2018 홍보대사의 더반 IOC총회 프레젠테이션)

(2010,2014,2018 삼 세번만에 평창의 동계올림픽유치성공신화에 감동이 밀려오는 표정의 김진선 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겸 3선 강원도지사)

 

(2010, 2014, 2018 삼 세번 평창유치의 견인차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건희 IOC위원 겸 삼섣 전자 회장의 감격, 그 뒤에 이회장 사위 겸 대한빙상연맹회장인 김재열 사장)

 

                                         (이명박대통령이 자크 로게 IOC위원장의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 겸 한진그룹/대한항공 회장이 평창유치성공 후 한국 TV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박용성 KOC위원장의 평창2018 더반 대첩 성공후 한국 TV와 인터뷰 모습)

                             

                            (평창2018 홍보대사로서 소임을 다하고 만족해 하는 대견한 모습의 김연아 선수)

 

<윤강로저서 "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 중에서 발췌>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28. 22:22

2. 스포츠외교의 역할과 중요성

 

스포츠외교의 목적은 국위선양 및 상대국()과의 친선, 우의, 협력 등에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스포츠 계의 추이는 스포츠외교의 본질적 의미에 다소 변 질적인 요소들이 가미되고 있다.

 

 

최근 스포츠외교의 의미는 국위선양친선, 우의, 협력이라는 본질적·자생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한 나라의 외교정책 내지 외교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외교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많다.

 

 

 

 

(Joao Havelange 전 FIFA회장 겸 전 IOC종신위원, Josept Blatter 현 FIFA회장, 사마란치 IOC위원장)

 

 

 

물론 스포츠가 한 나라의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발상은 어쩌 면 오해를 야기시킬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스포츠의 외교적 수단의 순기능적 측면역기능적 측면 중 후자에 대한 인식이 강조될 때 오해를 야기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외교적 기능을 분류할 때 스포츠 본래의 목적에 의한 자생적 기능 이 있는 반면, 본래 목적의 범주에서 벗어난 단순한 수단(예를 들면, 일방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선전)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향에 대하여서는 IOC는 올림픽헌장을 통하여 금지하고 있으며, 모든 국가들도 공식적으로는 반대하고 있으나, 국제정치의 속성상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를 부분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ndrew Strank는 국제정치와 연관된 스포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외교적 승인

정치적 시위

정치선전

국위선양

국제적 협력

국제적 분쟁

 

 

이상의 분류를 스포츠외교적 순기능과 역기능의 관점에서 재 분류하면 순기 능에 속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외교적 승인: 올림픽이나 국제경기에서 참가선수단에 대한 해당국가의 국기게양 및 국가연주

 

국위선양: 올림픽대회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면 해당국가에 대한 평 , 국가인지도, 신인도 등 홍보효과

 

국제적 협력: 올림픽 등을 통한 세계평화, 국가 간의 친선, 우의, 협조)

 

 

한편 역기능에 속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정치적 시위·과거 올림픽에서 인종차별, 국제분쟁 등과 같은 사건에 관련된 올림픽보이콧

 

정치선전·정치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한 강력한 국가지원 및 이와 연관된 올림픽 개최/1936 베를린올림픽: 히틀러의 나치정권/게르만족의 우수성과시 목적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스포츠가 가지는 외교적 역할은 점차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한 나라의 외교정책과 연계한 스포츠의 외교적 기능은 민간외교 의 한 분야로서 각종 국제스포츠경기와 행사를 통해 상대국()과의 친선 및 교류를 도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의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스포츠외교의 또 다른 측면은 스포츠를 통해 다각적 외교를 전개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스포츠를 통한 국가 간의 교류는 그 자체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의 영역에 서 교류의 선도적 역할도 담당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국가신인도, 인지도, 이미지 그리고 한국스포츠 외교의 위상은 경천동지, 일취월장, 그리고 상전벽해를 연상시켜 주는 세기적·세계적 연구사례가 될 정도였다.

 

 

1972년 뮌헨올림픽(검은 9월 단 테러사건)부터 올림픽운동사에 밀려오기 시작한 먹구름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아프리카국가들의 집단보이콧 사건),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의 정치적 보이콧사건) 1984 LA올림픽(구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국가들 보이콧사건)까지 지속되어 오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동서양진영이 분단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모두 함께 모여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하나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시작과 끝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와 동일한 뜻을 지닌 태극 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서울올림픽은 올림픽주제가의 가사내용이 세 세계정치체제변동을 예견해준 예언 시처럼 동서독을 가로막던 베를린장벽(브란덴부르크 문)이 무너지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으로 인한 15개 소련연방해체 등과 같은 대변혁의 전주곡을 전 세계에 선사하였다.

 

 

1981년 대한민국의 바덴바덴 대첩 당시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나라 수는 고작 60여 개국에 불과하였으나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에 는 160여 개국으로 불어났다. 한국은 군사독재체재에서 올림픽개최 1년 전인 1987년 6월 29 소위 6.29 민주화 선언으로 본격적 민주화를 이룩하는 기폭 제 역할을 하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공동행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서울올림픽개최와 더불어 1953년 이래 단절되었던 공산권과의 무역거래 및 교관계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한국의 국민총생산은 12%의 고속성장을 기록하였으며, 1981년 당시 컬러 TV도 없었던 한국이 1988년에세계최대의 TV 수출국이 되었다.

 

서울올림픽 참가국에 대한 각종 지원혜택에 쓰인 비용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으로 벌어들인 수익총액이 미화 5억 달러( 5,000억 원)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올림픽은 서울을 계기로 황금 알 낳는 거위로 완전히 환골탈태한 것이다.

 

한국은 올림픽 이후 쿠바, 알바니아, 북한, 시리아를 제외한 모든 공산권   사회주의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서울올림픽은 외교적·경제적·정 치적·문화적·스포츠적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한국을 세계의 일등모범 국가로 탈바꿈시켜준 것이다.

 

The World to Seoul, Seoul to the World./The World to Korea, Korea to the World

 

 

2008년 올림픽개최국인 중국이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개최할 당시 한국은 차량만 해도 450대를 제공하였다.

 

전 영국총리 Palmerstone의 저 유명한 말인 우리에게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다만 국가이익이 있을 뿐이다.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외교에서 제일가는 덕목은 국익이다.

 

그리고 그 국익은 결코 영원불멸의 것이 아니다.

 

 

 <윤강로저서 "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 중에서 발췌>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28. 22:18

1. 스포츠외교의 정의

 

국제관계에서 스포츠외교는 기능과 효과 면에서 국가 간의 외교부를 통한 국가정책적 외교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고 가시적이고 지속적이고 발전적이다. 또한 스포츠외교는 국제스포츠행사와 국제협력관계 그 자체만으로 끝나는 것 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인 측면에서 선도적 교류와 소통역할을 담당하는 21세기의 국가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분야로, 그 지위와 위상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자크 로게 IOC위원장과 함께)

 

 

 

경험적 측면에서 본 스포츠외교는 주고받기, 나눔과 보살핌, 섬김과 희생이란 철학이며, 눈에서 눈으로,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 서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반복된 만남과 정겨운 우정과 진심 어린 상호배려를 통해 각자의 이해관계를 정당하게 정립시키는 사람관계가 기본으로 작용하는 국제적 스포츠경기의 장외거래와 그 기법이라고 정의해 본다.

 

 

위에서 언급한 눈에서 눈으로란 상호간 또는 다자간 만남에서 서로 상대 방을 주시하면서 인사를 교환하면서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이고, 손에서 손으로란 상호간 악수를 교환하면서 형성되는 스킨십(영어표현에는 없지만, 본토 영어로 역수입될만한 훌륭한 한국식 영어)이며, 입에서 입으로란 해당외국 어로 개성이 담긴 음색과 외국어 실력, 인간미 넘치는 재치와 유머 등으로 상 대방에게 본인고유의 인식코드를 각인시켜 친밀함의 DNA를 표출하는 것이라 고 할 수 있고, 마음에서 마음으로이심전심이랄 수도 있고 스포츠외교 달인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 상태에 이른 이해관계를 초월한 진정한 인간 내면소통의 최고단계라고 할 수 있다.

 

 

장웅 북한 IOC위원 겸 국제태권도 연맹(ITF) 총재는 스포츠외교관양성 과정을 일본식 초밥 만들기 과정에 비유 한 바 있다.

 

 

 

                                              

                                                   (장웅 북한 IOC위원과 함께)

 

 

 

초밥의 밥을 옹골지게 뭉쳐 초밥 몸 체로서 제대로 만들어내는 데 최소 10 년이 걸리고, 다시 그 위에 올리는 생선회를 떠서 디자인하여 꼭 맞게 모양 새를 갖추어 스시(생선초밥)를 완성하는 데 최소 5년 내지 10년이 걸리므로, 진정으로 국제무대에서 활용가능하고 제대로 된 스포츠외교관을 배출하려면 최소 15년에서 20년 가량 걸려야 가능하다. 라는 그의 말속에는 유능한 스포츠외교관이 되는 길과 과정에는 끊임없는 정 성과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라는 속뜻이 내포되어 있다.

 

 

한편 이론적 측면에서 스포츠외교를 살펴보면 Nicolson은 외교에 대한 정 의를 두 가지로 내리고 있다. 첫째로, 외교란 공식외교관들의 활동을 통한 국 가 간의 교류 및 소통과정이라는 협의의 정의이며 둘째로, 좀더 광의의 개념으로 외교란 국제사회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외교정책수행에 사용되는 각종 기법들이다.

 

 

 

웹스터 사전에는 외교란 모든 협의과정에 관련된 솜씨나 기량/기법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외교의 의미를 광의로 한 국가와 상대국()과 상호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교류라고 정의하면 스포츠도 국가 간 교류라는 맥락에서 외교의 한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기능적 측면에서 볼 때 스포츠에 대하여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자칫 스포츠의 본래의 목적과 연관하여 비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의 것이다.라는 사회통념상의 반 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교와 정치는 절친한 사촌 간(The diplomacy is a kissing cousin of the politics.)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스포츠외교 는 순수한 스포츠 본질적 성격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경기장 내에서 의 스포츠인 정신과 경기장 외에서의 스포츠외교는 구별될 수밖에 없다 

 

<윤강로저서 "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 중에서 발췌>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23. 23:33

1. 우슈에 대한 특별배려로 보이는 사례:

 

2005년 10월 난징에서 열린 제10회 중국전국체전개회식에서 Jacques Rogge IOC위원장은 우슈가 올림픽에서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후 3년 뒤 2008년에 이르자 43개국 128명의 우슈선수들이 '2008년 베이징 우슈 토너먼트란 묘한 타이틀아래 베이징 올림픽 참석차 베이징으로 날아왔다.

그 토너먼트는 IWUF와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이 '문화올림피아드' 프로그램의 일부로 공동주최한 경기라는 것이 IOC대변인의 설명이었다.



 

IOC president Jacques Rogge awards wushu medals on the third-to-last day of the Olympics. (IWUF)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올림픽 폐막 3일 전 우슈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기간 중 우슈종목 15개 세부종목이 바로 하루 전에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경기가 열렸던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8.21-23 3 일 간에 걸쳐 진행되었었다.

우슈경기는 오륜만 없는 베이징올림픽로고사용도 허용된 셈이었다.

우슈 토너먼트 각국 참가선수단은 올림픽선수촌에 체류토록 특별 배려된 셈이었다.

또한 우슈토너먼트 경기 결과도 미디어 지역에 설치된 Info 2008 단말기에 게시되었었다.

로게 IOC위원장, Liu Qi BOCOG위원장 및 Liu Peng 중국올림픽위원장 3인은 IWUF초청에 따라 경기장에 나타나 베이징올림픽 폐획 D-3일째인 8월22일 우슈 메달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서 우슈 토너먼트는 28개 올림픽 정식종목들과 같은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동시에 거행된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Gizelle Davies 당시 IOC대변인은 개최국 당사자들과 몇 년에 걸쳐 협의된 사항으로써 우슈 토너먼트로 함꼐 개최토록 합의된 사안이며 올림픽선수촌에 체류한 선수들에 대한 이슈는 없었노라고 답변한 바 있다.



 

The first question of the joint IOC/BOCOG press briefing on Aug. 20, 2008 was about wushu. (Beijing 2008)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IOC/BOCOG합동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우슈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자, 이제 우슈는 2011년 7월 IOC집행위원회가 2020년 올림픽정식종목 신규 후보종목 8개 중 하나로 선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IOC는 우슈가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서 스포츠 프로그램 또는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정리하고 있지만 난징 관계자들은 우슈를 문화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 위한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IWUF사무국에서는 로게 IOC위원장으로부터 우슈를 베이징올림픽과 유사한 조치를 지원하며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로써 '청소년 우슈 토너먼트'란 타이틀로 허용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한다라는 내용의 위원장 명의의 서한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IOC대변인은 난징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은 아직 결론난 것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우슈종목을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 포함될 것이라고 운을 띄는 것은 로게 IOC위원장만이 아니란다.
Zaiqing Yu 중국 IOC부위원장 겸 IWUF회장은 벌써 148개 IWUF회원국들에게 우슈의 승승장구 소식을 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Yu회장이 이미 금년 3월 말 경 주요회원국 연맹회장들에게 우슈가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
포함될 것이라고 통보해 주었다고 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2. 2년 사이에 중국여자선수 2명에게 IOC위원 직권 연속추천:

 

로게 IOC위원장은 2013년 IOC위원장 임기만료를 앞두고 유독 중국에게만 특혜성 조치로 해석될 만한 호의를 베풀고 있다.

중국에만 IOC위원장 직권으로 추천할 수 있는 'Active Athlete'이란 타이틀로 동료선수들이 선출하지 않는 선수 범주에 해당하는 IOC위원으로 중국선수출신 남녀 각각 1명씩 총 2명을 IOC위원으로 추천하는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

금년 초 스위스 로잔 IOC본부에서 개최된 IOC집행위원회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열리는 제124차 IOC총회에서 선출될 신임 IOC위원 지명자 (Nominee)후보 5명 명단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이들 5명은 IOC총회에서 찬성 50%+1표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무조건 신임 IOC위원으로 선출된다.

1) Pierre-Olivier Beckers, 벨기에 올림픽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the Belgian Olympic Committee)/NOC자격
2) Frank Fredericks, 현 IOC선수위원장(나미비아)로 금년에 선수자격 IOC위원 임기만료이지만 재 선출예정
3) Aicha Garad Ali, 지부티 NOC위원장(president of the Djibouti National Olympic and Sport Committee)/NOC자격
4) Lingwei Li(李玲蔚, born January 4, 1964), 중국 여자 배드민턴 세계 챔피언/Active Athlete자격으로 추정
5) Tsunekazu Takeda, 일본JOC위원장(president of the Japanese Olympic Committee)/개인자격으로 추정


이들 중 Lingwei Li는 중국출신 여자 배드민턴 세계 챔피언인데 3번 씩이나 세계선수권을 석권하였다고 하며 배드민튼 역사 상 최고의 셔틀러(shuttler) 중 한 명으로 인정 받아 선임 예정이라 한다.

불과 2년 전인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개최된 제122차 IOC총회에서도 중국 여자숏트트랙 세계챔피온이었던 양양(Yang Yang)선수들 IOC위원장 직권 '활발한 선수'(Active Athlete)란 명칭의 IOC위원으로 선출한 바 있다.
이는 2009년 80세로 정년 퇴임한 Zhenliang HE에 대한 배려로 이해 되었다.
원래 선수자격 IOC위원은 당해년도 올림픽대회 기간 중 각각 참가선수들이 투표로써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2011년에는 뉴질랜드의 요트선수 출신인 Barbara Kendall이 역시 중국의 양양선수 케이스로 IOC위원으로 영입 및 선출되었다.



Barbara KENDALL, MBE
Barabara Keddall(뉴질랜드) IOC위원


Yang YANG
Yang Yang(중국) IOC위원

이제 2012년에는 2010년 양양(Yang Yang/동계종목)에 이어또 다시 중국 배드민튼선수인 Lingwei LI(하계종목) 가 IOC위원 지명후보자로 결정되었다.
중국은 현재 NOC자격 IOC위원인 Zaiqing YU IOC부위원장(2008-2012)과 홍콩의 Timothy FOK IOC위원까지 포함하면 총 4명의 IOC위원 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만출신의 C.K. Wu IOC위원(ASOIF자격 IOC집행위원 예약 중)겸 AIBA회장까지 포함하면 중국 계 IOC위원 수는 5명에 이르러 스위스, 이탈리아에 이어 중국이 글로벌 스포츠외교 초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Zaiqing YU
Zaiqing YU(중국)IOC부위원장

Timothy Tsun Ting FOK
Timothy FOK(중국, 홍콩) IOC위원

Ching-Kuo WU 

Ching-Kuo  Wu(대만) IOC위원 겸 AIBA회장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23. 19:03

 

(국제우슈연맹로고)

 

<베이징의 속내/뒷이야기>

 

우슈가 2014년 제2회 난징 청소년올림픽(YOG)에 선보이기 위한 치밀한 공작이 집요하게 IOC수뇌부를 파고 들고 있다.

베이징이 2001년 제112차 모스크바  IOC총회에서 쟁쟁한 경쟁 후보도시들(파리, 토론토, 이스탄불, 오사카)을 제치고 2008년 올림픽개최도시로 선출되면서 그 야망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전통 무술인 우슈는 당시 자국에서 개최되는 2008년 올림픽에 스포츠로써 올림픽 종목으로 추가되는 것이 이상적인 아이디어라고 국제우슈연맹(IWUF) 수뇌부 임원들은 판단하였었다.

2001년 7월13일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이 2008년 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출되자 IWUF는 IOC 인정종목 관장 국제기구로 신청하여 2002년 제113차 솔트레이크시티 IOC총회에서 드디어 그 뜻을 이룸으로써 올림픽 운동의 정식일원이 되었다.

올림픽헌장 규정에 따르면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려면 7년 전에 신규정식종목으로 숭인되어야 했는데 시간 상 우슈는 베이징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IWUF임원들은 정식종목이 물 건너 간 것을 꺠닫고 그 대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IOC가 더 이상 시범종목 제도를 지속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최국의 프리미엄을 앞세워 우슈를 시범종목으로 포함되도록 로비를 하였다.

2005년 10월 난징에서 열린 제10회 중국전국체전개회식에서 Jacques Rogge IOC위원장은 우슈가 올림픽에서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후 3년 뒤 2008년에 이르자 43개국 128명의 우슈선수들이 '2008년 베이징 우슈 토너먼트란 묘한 타이틀아래 위해 베이징으로 날아왔다.

그 토너먼트는 IWUF와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이 '문화올림피아드 프로그램의 일부로 공동주최한 경기라는 것이 IOC대변인의 설명이었다.



 

IOC president Jacques Rogge awards wushu medals on the third-to-last day of the Olympics. (IWUF)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올림픽 폐막 3일 전 우슈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우슈종목 중 15개 세부종목이 하루 전에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경기가 열렸던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8.21-23  3 일 간에 걸쳐 진행되었었다.

우슈경기는 오륜만 없는 베이징올림픽로고사용도 허용된 셈이었다.

우슈 토너먼트 각국 참가선수단은 올림픽선수촌에 체류토록 특별 배려된 셈이었다.

또한 우슈토너먼트 경기 결과도 미디어 지역에 설치된 Info 2008 단말기에 게시되었었다.

로게 IOC위원장, Liu Qi BOCOG위원장 및 Liu Peng 중국올림픽위원장 3인은 IWUF초청에 따라 경기장에 나타나 베이징올림픽 폐획 D-3일째인 8월22일 우슈 메달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서 우슈 토너먼트는 28개 올림픽 정식종목들과 같은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동시에 거행된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Gizelle Davies 당시 IOC대변인은  개최국 당사자들과 몇 년에 걸쳐 협의된 사항으로써 우슈 토너먼트로 함꼐 개최토록 합의된 사안이며 올림픽선수촌에 체류한 선수들에 대한 이슈는 없었노라고 답변한 바 있다.



 

The first question of the joint IOC/BOCOG press briefing on Aug. 20, 2008 was about wushu. (Beijing 2008)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IOC/BOCOG합동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우슈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2014년 난징 YOG를 향하여>


자, 이제 우슈는 2011년 7월  IOC집행위원회가 2020년 올림픽정식종목 신규 후보종목 8개 중 하나로 선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IOC는 우슈가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서 스포츠 프로그램 또는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되자 않는다고 입장을 정리하고 있지만 난징 관계자들은 우슈를 문화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 위한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IWUF사무국에서는 로게 IOC위원장으로부터 우슈를 베이징올림픽과 유사한 조치를 지원하며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로써 '청소년 우슈 토너먼트'란 타이틀로 허용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한다라는 내용의 위원장 명의의 서한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IOC대변인은 난징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은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성층권 분위기>

 

우슈종목을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 포함될 것이라고 운을 띄는 것은 로게 IOC위원장만이 아니란다. 
Zaiqing Yu 중국 IOC부위원장 겸 IWUF회장은 벌써 148개 IWUF회원국들에게 우슈의 승승장구 소식을 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Yu회장이 이미 금년 3월 말 경 주요회원국 연맹회장들에게 우슈가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
포함될 것이라고 통보해 주었다고 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IOC위원장의 중국사랑>

 

로게 IOC위원장은 2013년 IOC위원장 임기만료를 앞두고 유독 중국에게만 특혜성 조치로 해석될 만한 호의를 베풀고 있다.

중국에만 IOC위원장 직권으로 추천할 수 있는 'Active Athlete'이란 타이틀로 동료선수들이 선출하지 않는 선수 범주에 해당하는 IOC위원으로 중국선수출신  남녀 각각 1명씩 총 2명을 IOC위원으로 추천하는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

 금년 초 스위스 로잔 IOC본부에서 개최된 IOC집행위원회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열리는 제124차 IOC총회에서 선출될 신임 IOC위원 지명자 (Nominee)후보 5명 명단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이들 5명은 IOC총회에서 찬성 50%+1표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무조건 신임 IOC위원으로 선출된다.

1) Pierre-Olivier Beckers, 벨기에 올림픽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the Belgian Olympic Committee)/NOC자격
2) Frank Fredericks, 현 IOC선수위원장(나미비아)로 금년에 선수자격 IOC위원 임기만료이지만 재 선출예정
3) Aicha Garad Ali, 지부티 NOC위원장(president of the Djibouti National Olympic and Sport Committee)/NOC자격
4) Lingwei Li(李玲蔚, born January 4, 1964), 중국 여자배드민튼 세계 챔피언/Active Athlete자격으로 추정
5) Tsunekazu Takeda, 일본JOC위원장(president of the Japanese Olympic Committee)/개인자격으로 추정


이들 중 Lingwei Li(李玲蔚, born January 4, 1964)는 중국출신 여자 배드민터 세계 챔피언인데 3번 씩이나 세계선수권을 석권하였다고 하며 배드민튼 역사 상 최고의 셔틀러(shuttler) 중 한 명으로 인정 받아 선임 예정이라 한다.

불과 2년 전인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개최된 제122차 IOC총회에서도 중국 여자숏트트랙 세계챔피온이었던 양양(Yang Yang)선수들 IOC위원장 직권 '활발한 선수'(Active Athlete)란 명칭의 IOC위원으로 선출한 바 있다.


이는 2009년 80세로 정년 퇴임한 Zhenliang HE에 대한 배려로 이해 되었다.
원래 선수자격 IOC위원은 당해년도 올림픽대회 기간 중 각각 참가선수들이 투표로써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2011년에는 뉴질랜드의 요트선수 출신인 Barbara Kendall이 역시 중국의 양양선수 케이스로 IOC위원으로 영입 및 선출되었다.



Barbara KENDALL, MBE
Barabara Keddall(뉴질랜드) IOC위원


Yang YANG
Yang Yang(중국) IOC위원



이제 2012년에는 2010년 양양(Yang Yang/동계종목))에 이어또 다시 중국 배드민튼선수인 Lingwei LI(하계종목) 가 IOC위원 지명후보자로 결정되었다.
중국은 현재 NOC자격 IOC위원인 Zaiqing YU IOC부위원장(2008-2012)과 홍콩의 Timothy FOK IOC위원까지 포함하면 총 4명의 IOC위원 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Zaiqing YU
Zaiqing YU(중국)IOC부위원장

Timothy Tsun Ting FOK
Timothy FOK(중국, 홍콩) IOC위원




 

우슈의 경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야심찬 홍보와 로비가 태동되었었다.
오래 전에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SportAccord)회원단체로의 진입에 성공하여 국제적 인지도를 차근차근 높혀왔다.
유슈는 이미 IOC인정종목(IOC Recognized Sport)이며 1990년 창설한 국제우슈연맹(IWUF: International Wushu Federation)에 139개국 회원국을 두고 있다.
IWUF회장은 Zaiqing Yu 중국 IOC부위원장이 맡으면서 IOC위원들 득표로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상태다.


 

 

                                           (Zaiqing Yu 중국 IOC부위원장과 함께)


중국은 우슈를 2020년 리오 올림픽정식종목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2010년
우슈는 올림픽정식종목 후보대열에 들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이 수반되었다.
GAISF-SportAccord가 주괌하는 제1회 세계 격투기/무술 대회(World Combat Games)가 지난 2010년 8월27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되었다.
13개 격투기 국제연맹과 SportAccord가 주관하는 지난 제1회 대회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격투기 올림픽"(Combat Sports Olympics)인 셈이었다.
제1회 대회는 2010년 9월4일까지 8일간 계속되었다.
베이징은 2008년 올림픽이후 가장 큰 규모의 국제 스포츠행사를 개최한 셈이다.
13개 무술 및 격투기종목(13 marticla arts and combat sports)에 66개국에서 1,0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중국정부와 중국 스포츠 계가 우슈를 올림픽정식종목화하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행보다.

최근 더반 개최 IOC집행위원회에서 2020년 올림픽 신규추가 정식종목 후보종목으로 결정될 만큼 상당한 로비가 진행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슈/武术 (体育运动)

[자료출처: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우슈는 중국의 전통 무술로, 우슈란 무술의 중국 발음이다.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선사고대 인도의 무술을 응용하여 소림사에서 9년 동안이나 참선 후 승려들의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발전시킨 쿵후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경기이다. 오늘날 공식 경기에서는 태권도처럼 두 선수가 맞붙어 기량을 겨루는 종목이 아니라 혼자서 무술이 지닌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종목이며, 최근에는 실전성을 위해 산타라는 대련 경기도 일부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광복 후 전국 각처에서 우슈 수련장이 문을 열었으며, 1980년대에는 각종 경기단체가 생겨났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 경기 대회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태극권(太極拳), 남권(南拳), 장권(長拳)으로 나뉘어 남녀 도합 6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루었다.

<경기 종류 및 방법>

남자는 도(刀)·곤(棍)·술(術)을 포함한 장권(長拳)과 남권·태극권, 여자는 검(劒)·창(槍)술을 포함한 장권과 남권·태극권 등이 있다.

<장권>

남자는 도와 곤으로, 여자는 검과 창을 사용하여 기본 동작을 실시한다.

<남권>

양쪽 다리에 힘을 모아 양팔을 힘차게 쓰며 기합을 지르는 게 특징이다. 크고 절도 있는 동작이 필요하다.

<태극권>

신축성있게 기(氣)의 흐름을 조절하는 동작으로, 24가지 기본 동작으로 구성된다. 흔히 건강체조라고 한다.

<전 세계 무예/무술의 종류: 자료출처/위키 백과)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13. 17:47

지난 5월 하순 캐나다 퀘벡에서 개최되었던 SportAccord 칸벤션과 함께 열렸던 IOC집행위원회에서는 2020년 올림릭 개최도시선정을 위한 첫 단추로써 신청도시단계(Applicant City Phase)에서 후보도시단계(Candidate City Phase)로 변모하는 최종결선 진출도시리스트(Short List)를 발표한 바 있다.

퀘벡 개최 IOC집행위원에서는 2020년 올림픽 유치 결선진출 후보도시 세 곳을 확정하였다.

1) 도쿄: 1964년 올림픽을 치른 후 56년 만에 두 번 째 올림픽을 노리고 있다. 지난 2016년 올림픽유치경쟁과정에서는 후보도시들 중 가장 좋은 유치서류평가를 받고도 투표과정에서 리오에게 자리를 내 준 바 있어 2020년 올림픽 유치가 두 번쨰하는 재수 도전이다.

쯔나미 자연재앙(natural disaster)과 이로 인해 야기된 원전사고 등도 투표시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Homare Sawa, 2011 FIFA Women's World Player of the Year with her teammates and Tokyo 2020's Daichi Suzuki (Tokyo 2020)

 

2) 이스탄불(후보도시로써 오륜기를 장착한 IOC의 승인 받은 새로운 로고 미확정 중임)

이스탄불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접경지대에 위치하면서 유럽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따라서 터키 NOC도 EOC회원국이다.

필자가 2008년 올림픽 유치도시 IOC평가위원시절 이스탄불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Istanbul where the East and the West meet"(동서가 함께 만나는 곳,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경우 8년 전 올림픽유치경쟁 이후에 완공된 새로운 경기장들을 내 세워 3번 째로 리스트에 등재될 전망이다.

 

                  (필자가 2008년 올림픽유치 IOC평가위원시절 이스탄불 방문에 따른 현지언론보도)



이스탄불은 202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UEFA Championship)개최국으로 거의 확정단계인 까닭에 올림픽유치에 대하여 애매모호함이 대두되고 있다.

IOC나 유럽축구연맹(UEFA)모두 이구동성으로 두가지 다 가질 수는 없으니 양자택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터키 대통령은 UEFA측에 대고 거부의사를 표명함으로써 확실치도 않은 상태의 올림픽유치를 감행함으로써 축구에 열광하는 터키국민들의 분노를 유발할 정도로 여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은 매력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3) 마드리드:

스페인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개최후 2012년과 2016년 연거푸 올림픽유치에 실패하였고 절치부심 세번 째 삼수도전에 나서서 객관적으로는 유리한 입정일 수도 있겎으나 스페인 스포츠외교의 아버지 격인 사마란치 명예 IOC위원장이 2010년 4월21일 현지시각 오후 1시25분(한국시간 수요일 오후 8시25분) 노환 및 지병인 심장질환(관상동맥기능부전:coronary insufficiency)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퀴론(Quiron)병원에서 타계한 이후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의 스포츠외교 추진 동력은 구심점을 상실한 상태로 급격히 하향세지만 두 명의 IOC위원(IFs회장 자격)이 추가로 선출되어 보완이 되어 가고 있다.

최근 스페인의 경제상황 악화로세게적 신용등급 평가기관 중 하나인 피치(Fitch: Credit Rating Agency)는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당초  'A'에서 3단계 내린 'BBB'로 조정한 바 있다.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1998년 서울올림픽1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올림픽공원에서 미소짓고 있다.) 

 

도하(카타르)와 바쿠(아제르바이잔)는 그만 탈락하였다.

2004년 로잔개최 SportAccord 당시 개최된 IOC집행위원회에서는 2012년 올림픽 유치 결선진출 후보도시 리스트(Shortlist)를, 2008년 아테네개최 SportAccord에서는 2016년 올림픽 유치 결선진출 후보도시 리스트를 결정진 바 있다.
 

2020년 올림픽개최도시는 오는 2013년 9월7일 제125차 브에노스아이레스 IOC총회 첫 날 결정된다.

한편,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Oslo)는 2022년 동계올림픽유치결정을 하여 1952년 동계올림픽개최이래 두 번째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오슬로시의회 동계올림픽유치여부 결정 찬반투표에서 총59표 중 단 7표만 반대하여 절대과반수의 찬성을 받았고  노르웨이 국내경기연맹은 90%가 오슬로의 동계올림픽유치를 지지하였다고 Gerhard Heiberg 노르웨이 IOC위원 겸 IOC마케팅위원장(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역임)이 밝혔다.

 

                                   (오슬로에서 Gerhard Heiberg노르웨이 IOC위원과 함께)


 

노르웨이는 2016년 제2회 동계청소년올림픽(YOG)개최도시이기도 하다.

이외에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 후보 예상 미국도시들로는 Denver, Reno-Lake Tahoe 및 Bozeman, Montana가 거론되고 있다.

2024년 하계올림픽 유치희망 미국도시들로는 Dallas와 LA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캐나다의 토론토 역시 2024년 올림픽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토론토(Toronto)는 최근 1996년 및 2008년 올림픽 등 두 차례 도전한 바 있다.

토론토는 이미 2015년 범미주대회(Pan American Games)개최 도시로 결정되어 있어서 2024년 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경기장 건설 준비에 유리하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7. 09:30

<올림픽유치와 정치 파워 그리고 스포츠외교>

스포츠에 대한 정치개입사례는 최근 올림픽유치경쟁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림픽유치를 위해 유치후보도시들은 해당국 대통령들을 유치 단 대표일원으로 포진하여 정치적 공세를 전개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정치개입’을 이용한 올림픽대회 자국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외교는 정치와는 별개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치와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스포츠에도 정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외교 또한 상존한다.

우리는 이를 스포츠외교라고 한다

 

 

 

 

*Diplomacy vs. Politics (외교 대 정치)

 

1) Diplomacy is a kissing cousin of the Politics.(외교는 정치와 불가분의 친척이다.)

2) Politics of sport is sometimes more political than the politics of the politics.

(스포츠정치는 정치보다 더 정치적일 때가 왕왕 있다.)

3) Things you cannot obtain by war, you can attain by diplomacy.

(전쟁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외교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

4) The History is the Past Politics, and the Politics is the Present History.

  (역사란 과거의 정치사례기록이며, 정치는 현재 진행 중인 역사라고 보면된다.)

5) Politics is the Art of the Possible.

(정치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예술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개회식에서 역사적인 남북한선수단 공동행진 시 사용되었던 한반도 깃발 원본사진)

 

 

따라서 스포츠외교는 각국이 세계스포츠 계에서 실질적 위상강화와 비교우위를 점하고 스포츠외교를 통한 국익극대화를 도모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고도의 전술·전략이자 가장 효과적인 추진동력이기도 하다.

 

 

 (그리스 올림픽아는 고대올림픽의 발상지로써 이를 계승한 근대올림픽을 빛내주는 올림픽성화가 채화되는 곳이다)

 

추진동력이 제 기능을 다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서는 추진체 핵심부분이 중추적 위치에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추진동력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스포츠외교력과 위상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대최고 점수와 최고의 기량으로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로써  전 세계에 스포츠 한류를 크게 부각시킨 김연아선수의 자랑스런 모습)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7. 09:23

<역대올림픽의 정치개입 사례>

1916년 올림픽 : 베를린이 개최지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취소
1932 LA올림픽 : 만주 국의 참가신청을 IOC가 거부
1936년 베를린올림픽 : 나치독일의 유태인 선수 및 관중의 경기장 출입금지조치/아일랜드 올림픽 참가 보이콧
1940년 및 1944년 올림픽 : 2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중단
1948년 런던올림픽 : 아랍권의 보이콧위협으로 이스라엘을 올림픽에서 추방
1952년 헬싱키올림픽 : 중국(중공) 초청에 항의하여 대만의 대회참가보이콧, 소련 40년 만에 올림픽에 다시 참가
1956년 멜버른 올림픽 : 소련의 헝가리침공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 등의 대회불참/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운하점령으로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등의 대회 보이콧/중화민국(대만) 국기(청천백일기)게양에 항의하여 중공(중국)퇴장/동서독 단일팀 참가
1960년 로마올림픽 : 대만의 IOC축출을 주장하며 중공(중국) IOC 탈퇴
1964년 도쿄올림픽 : IOC가 남아공의 대회참가를 거부함/북한 및 인도네시아 개회식에서 선수단 철수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 남아공 IOC에서 축출
1972년 뮌헨올림픽 : 팔레스타인의 ‘검은 9월 단’이 올림픽선수촌을 습격하여 이스라엘 선수 11명 피살, 대회 30여 시간 잠정 중단/IOC에서 로디지아 축출(1980년 로디지아는 짐바브웨로 개칭하여 IOC복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 뉴질랜드 럭비 팀의 남아공 원정에 항의하여 아프리카 26개 국 대회 보이콧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격분하여 미국 등 서방진영 67개 국과 일부 공산국가 대회 보이콧

 

 


1984 LA올림픽 :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복수혈전으로 소련 등 동구권 14개 국 보이콧

 

 

 

 

● 1988년 서울올림픽은 올림픽 보이콧 종결 자: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은 정치적 보이콧이 배제된 온전한 올림픽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서진영이 분단국 수도인 대한민국 서울에서 평화와 화합의 지구촌 인류축제를 통해 올림픽에서 정치개입의 고리를 끊는 분수령과 동시에 올림픽의 앞날에 서광을 비추어준 기념비적인 대회로 기록되게 되었다.
북한은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무산으로 보이콧했으며, 에티오피아와 쿠바가 이에 동조한 바 있으나 상대적으로 미미한 숫자의 불참으로 역대 최고올림픽’(The Best Games to date)을 확고히 하는 올림픽사의 의미심장한 전환점이 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이후 올림픽대회에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보이콧이라는 망령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래서 서울올림픽은 위대하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7. 09:07

<서울올림픽의 해피엔딩(Happy Ending)>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미국지역 TV중계권료가 $39백만 불에 ABC TV에 낙찰되었고 1984 LA올림픽 이후 미국광고시장이 활황세를 타게 되자 그 규모가 동계올림픽보다 2배 이상규모의 하계올림픽인 1988년 서울올림픽은 미국지역 올림픽 중계권료가 $10억 불에 이를 것이며 최소 $6~7억 불은 호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것은 SLOOC(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Seoul Olympic Organizing Committee)측이 컨설턴트로 고용한 IMG(International Marketing Group)의 배리 프랭크(Barry Frank)가 미국과 한국의 시차로 인해 소위 미국의 황금 기간 대(Prime Time)에 주요 올림픽 종목경기 생중계방송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간과해 버린 상태에서 책정된 금액이어서 곧 문제가 되었고 또한 미국광고시장의 요구에도 부합하지 못해 올림픽 중계권료 협상 사상 최초로 같은 해에 개최되는 동계올림픽보다 액수가 적은 $3억 불로 NBC TV에 낙찰되고 말았다.

겨우 체면 유지용으로 SLOOC측이 설정한 추가발생 광고수입금 배분(Revenue-Sharing)제안만 NBC 측에 받아들여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올림픽대회는 $55,600만 불( 6,67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실속만점의 대회로 평가 받았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기금 수지계획 상 수입액을 당초 총 7,477억 원을 책정하였으나 이를 훨씬 상회하여 이중 일부인 3,360억 원을 국민체육진흥을 위하여 설립된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현 국민체육진흥공단: KSPO/Korea Sports Promotion Foundation)에 증여하였다. 

 

서울올림픽은 20년 만에 동서양 양대 진영이 이념과 체제를 뛰어 넘어 함께 축복 속에서 참가한 평화와 화합과 전진의 올림픽이며 IOC의 마케팅 분야에서도 올림픽 한류(Olympic Korean Wave)의 힘으로 새 지평을 열어준 마케팅 TOP프로그램의 발원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애초 우려했던 테러 등 안전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안전 올림픽으로서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이렇게 평가하였다.

The Most Universal and The Best Games Ever!(가장 보편화한 역대 최고의 올림픽!)

 

이렇게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치러진 대회는 서울올림픽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서울올림픽은 동양의 태극(시작과 끝), 그리고 서양의 알파와 오메가(Alpha and Omega/시작과 끝)가 공존하는 극동의 타오르는 등불을 올림픽 성화에 점화하여 근대올림픽의 진정한 부활을 가져다 준 축복과 영광(Blessings and Glory)의 대회로서 인류역사에 길이 보존되고 칭송 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은 서울올림픽개최 30년 만인 2018년에는 평창에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 주최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