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스포츠외교의 역할과 중요성
스포츠외교의 목적은 국위선양 및 상대국(들)과의 친선, 우의, 협력 등에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스포츠 계의 추이는 스포츠외교의 본질적 의미에 다소 변 질적인 요소들이 가미되고 있다.
최근 스포츠외교의 의미는 ‘국위선양’과 ‘친선, 우의, 협력’이라는 본질적·자생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한 나라의 외교정책 내지 외교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외교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많다.
(Joao Havelange 전 FIFA회장 겸 전 IOC종신위원, Josept Blatter 현 FIFA회장, 사마란치 IOC위원장)
물론 “스포츠가 한 나라의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발상은 어쩌 면 오해를 야기시킬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스포츠의 외교적 수단의 ‘순기능적 측면’과 ‘역기능적 측면’ 중 후자에 대한 인식이 강조될 때 오해를 야기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외교적 기능을 분류할 때 스포츠 본래의 목적에 의한 자생적 기능 이 있는 반면, 본래 목적의 범주에서 벗어난 단순한 수단(예를 들면, 일방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선전)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향에 대하여서는 IOC는 올림픽헌장을 통하여 금지하고 있으며, 모든 국가들도 공식적으로는 반대하고 있으나, 국제정치의 속성상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를 부분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ndrew Strank는 국제정치와 연관된 스포츠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 외교적 승인
● 정치적 시위
● 정치선전
● 국위선양
● 국제적 협력
● 국제적 분쟁
이상의 분류를 스포츠외교적 순기능과 역기능의 관점에서 재 분류하면 순기 능에 속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외교적 승인: 올림픽이나 국제경기에서 참가선수단에 대한 해당국가의 국기게양 및 국가연주
● 국위선양: 올림픽대회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면 해당국가에 대한 평 가, 국가인지도, 신인도 등 홍보효과
● 국제적 협력: 올림픽 등을 통한 세계평화, 국가 간의 친선, 우의, 협조)
한편 역기능에 속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정치적 시위·과거 올림픽에서 인종차별, 국제분쟁 등과 같은 사건에 관련된 올림픽보이콧
● 정치선전·정치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한 강력한 국가지원 및 이와 연관된 올림픽 개최/1936 베를린올림픽: 히틀러의 나치정권/게르만족의 우수성과시 목적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스포츠가 가지는 외교적 역할은 점차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한 나라의 외교정책과 연계한 스포츠의 외교적 기능은 민간외교 의 한 분야로서 각종 국제스포츠경기와 행사를 통해 상대국(들)과의 친선 및 교류를 도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의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스포츠외교의 또 다른 측면은 스포츠를 통해 다각적 외교를 전개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스포츠를 통한 국가 간의 교류는 그 자체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의 영역에 서 교류의 선도적 역할도 담당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국가신인도, 인지도, 이미지 그리고 한국스포츠 외교의 위상은 ‘경천동지’, ‘일취월장’, 그리고 ‘상전벽해’를 연상시켜 주는 세기적·세계적 연구사례가 될 정도였다.
1972년 뮌헨올림픽(검은 9월 단 테러사건)부터 올림픽운동사에 밀려오기 시작한 먹구름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아프리카국가들의 집단보이콧 사건),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의 정치적 보이콧사건) 과 1984년 LA올림픽(구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국가들 보이콧사건)까지 지속되어 오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동서양진영이 분단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모두 함께 모여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하나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시작과 끝’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와 동일한 뜻을 지닌 ‘태극’ 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서울올림픽은 올림픽주제가의 가사내용이 세 세계정치체제변동을 예견해준 예언 시처럼 동서독을 가로막던 베를린장벽(브란덴부르크 문)이 무너지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으로 인한 15개 소련연방해체 등과 같은 대변혁의 전주곡을 전 세계에 선사하였다.
1981년 대한민국의 ‘바덴바덴 대첩’ 당시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나라 수는 고작 60여 개국에 불과하였으나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에 는 160여 개국으로 불어났다. 한국은 군사독재체재에서 올림픽개최 1년 전인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공동행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서울올림픽개최와 더불어 1953년 이래 단절되었던 공산권과의 무역거래 및 외교관계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한국의 국민총생산은 12%의 고속성장을 기록하였으며, 1981년 당시 컬러 TV도 없었던 한국이 1988년에는 세계최대의 TV 수출국이 되었다.
서울올림픽 참가국에 대한 각종 지원혜택에 쓰인 비용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으로 벌어들인 수익총액이 미화 5억 달러(약 5,000억 원)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올림픽은 서울을 계기로 ‘황금 알 낳는 거위’로 완전히 환골탈태한 것이다.
한국은 올림픽 이후 쿠바, 알바니아, 북한, 시리아를 제외한 모든 공산권 사회주의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서울올림픽은 외교적·경제적·정 치적·문화적·스포츠적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한국을 세계의 일등모범 국가로 탈바꿈시켜준 것이다.
“The World to
2008년 올림픽개최국인 중국이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개최할 당시 한국은 차량만 해도 450대를 제공하였다.
전 영국총리 Palmerstone의 저 유명한 말인 “우리에게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다만 국가이익이 있을 뿐이다.”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외교에서 제일가는 덕목은 국익이다.
그리고 그 국익은 결코 영원불멸의 것이 아니다.
<윤강로저서 "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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