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1. 8. 5. 12:43

[우리들교회 2021 81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8: 23~ 28/ 성령의 제자 양육)]

 

<사도행전 18: 23 ~ 28> 

 

23절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After spending some time in Antioch, Paul set out from there and traveled from place to place throughout the region of Galatia and Phrygia, strengthening all the disciples)



24절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Meanwhile a Jew named Apollos, a native of Alexandria, came to Ephesus. He was a learned man, with a thorough knowledge of the Scriptures)



25절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He had been instructed in the way of the Lord, and he spoke with great fervor and taught about Jesus accurately, though he knew only the baptism of John)



26절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He began to speak boldly in the synagogue. When Priscilla and Aquila heard him, they invited him to their home and explained to him the way of God more adequately)



27절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When Apollos wanted to go to Achaia, the brothers encouraged him and wrote to the disciples there to welcome him. On arriving, he was a great help to those who by grace had believed)

 

28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For he vigorously refuted the Jews in public debate, proving from the Scriptures that Jesus was the Christ)

 

<Prologue> 

 

주님 우리는 대단한 사람의 제자가 되기를 원해서 공부하고 각종 노력을 하지만 주님의 제자가 돼야겠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어떻게 되는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아까 우리 찬양한 은실이 이야기를 못했는데 미취학 영상에 나오는 새싹 언니가 찬양했습니다. 잘했죠 결혼 못 했어요. 결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목장 나눔을 보니까 낚시하러 가고 싶다 해외여행 가고 싶다고 이렇다고 합니다. 한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유치부 교사를 못하고 있는데 그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꼭 바울처럼 유치부 제자들을 위해서 자발적인 서원을 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목자님들도 분발하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가 끝나 지체들 교육부 학생 선생님 만나서 양육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엊그제부터 어제까지 이어진 청소년 쿠페도 은혜스러웠습니다. 지난주 성령의 작별이 제자를 굳건하게 위함인데 제자를 위한 것입니다. 내 안의 악과 작별할수록 성령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믿음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함으로 자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성장의 의미보다 양육이 맞는 표현입니다.



 

<말씀 요약>

 

 

성령의 제자양육은 

 

 

1.   영적 양육자가 중요합니다. 

 

 

23절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바울이 선교여행을 위해 안디옥(Antioch)을 떠납니다. 3번째 출발입니다. 같은 경로를 따라 출발합니다. 갈라디아(Galatia)와 부르기아(Phrygia)에 세운 교회들을 심방하기 위함인데 교회들을 세우고 2차 때 돌보았던 교회를 다시 찾아갑니다. 누가(Luke)는 제자라고 부릅니다학생은 배우는 반면 제자는 선생님의 삶이 닮고 싶어 따르는 사람입니다. 제자가 많기란 어렵습니다. 저도 피아노 학생은 많은데 제자는 희귀합니다. 사도행전이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도행전이라고 명명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제자행전입니다. 제자의 길이 쉽지 않습니다.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제자를 양육하고 키워내야 그 제자가 또 양육하고 키워내기 때문에 제자 한 사람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은 자기가 전도 해놓고 내가 너희를 복음으로 낳았다고 합니다. 특별히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사형당할 뻔해서 낳은 자녀들입니다. 자녀들도 같은 영이 아니면 보고 싶지 않아요 요즘은 욕하고 때리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욕하는 자녀 나눔을 들려드리니 동병상련을 나누었습니다. 부모는 본능적인 내리사랑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랑을 감당하기 위해 영적 자녀를 낳아야 합니다. 바울도 본토 친척 가족을 떠나서 영적 자녀를 낳았기에 외로움 중에도 사랑하는 자로 있게 하셔서 목숨까지도 주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성품이 안 좋은 사람, 귀찮게 하는 사람, 배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변해서 새사람이 되면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할 수 없었는데 사랑하게 되니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에 해당하는 시제가 현재 분사입니다. 붙들어 세워준다는 것이죠 힘썼다는 의미입니다. 네 번 쓰였는데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바울에 1~2~3차에서 한 번씩 쓰였습니다. 전도여행에서 얼마나 제자들을 굳건하게 견고하게 하고자 했는지 아시겠죠? 한번 굳건하게 했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숨쉬기가 되는 일상이 됩니다. 반복해서 찾아가고 굳건하게 했어요



ZOOM으로 목장을 하니 방학을 안 해도 되잖아요 주일 날 예배 보니까 그런데 이제 바울의 계속된 1 2차 박해 경험은 성도들을 찾아가서 만나서 양육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예요



나도 이렇게 당했다바울이 있을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지만 바울이 없으면 금새 오는 핍박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에 구원을 받은 듯 하지만 모세가 십계명 받으러 시내 산에 가니 백성들이 아론과 우상을 만들어서 섬겼어요 (God)과 금(gold)은 멀리서 보면 비슷합니다. 지도자가 없으면 똑같습니다.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봅니다. 믿음을 빙자까지 하고 팔복의 믿음은 간 데 없이 맘몬(Mammon)을 섬깁니다.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굳게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양육자입니다. 목회자에게 의심이 들면 검은 구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자의 삶을 살아야 성도들이 제자의 삶을 삽니다목자가 제자의 살아야 목원들이 제자의 삶을 삽니다. 모세와 다윗을 대적한 초대 왕 사울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모였지만 그들이 이끄는 양육은 실패했습니다. 양육에는 아론(Aaron)이 아니고 사울(Saul)이 아니고 모세(Moses)와 다윗(David)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제자 양육자 지도자는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초대 기독교 선교사는 그의 생활은 그 자체가 설교였다고 합니다. 그의 곁에 있으면 구세주를 알게 된다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쉼 없이 전도하다가 숨지셨는데 그로 인해 지금 우리가 이렇게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되었으니 양육이 필요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목장은 끊임없는 최고로 양육의 반복의 장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지겹죠 여전한 방식의 복덕방입니다. 지난번에 노래방 도우미 사건의 담당자의 일대일 양육에 대한 피드백입니다. 부목 자도 처음으로 일대일 양육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우울증에 부부문제 자녀 문제 직장문제 힘든 동반자를 양육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진행하였습니다. 성급함을 참으면서 집중했다고 합니다. 자기 치부를 드러내고 아내와 지금까지 사과를 못했는데 사과를 하겠다고 결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육자가 자기도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동반자 아내에게 전화해서 변했다고 알려주고 했답니다. 동시에 또 굉장하잖아요.



평원님에게 전화해서 물었더니 더 기다려야 하고 해당 목장을 통해서 권면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다고 합니다. 7주 이후에 사건이 달려 들으면서 급기야 식칼을 들고 경찰이 왔다고 합니다. 바울이 떠났으면 되었다 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복해서 양육이 필요합니다. 아내도 양육을 받고 있었기에 정말 가정의 질서에 순종하지 못한 것을 남편에게 사과했어요 동반자가 감동받아서 잘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자신의 받은 은혜를 성령의 문제로 보지 못한 것에 큰 죄를 지을 뻔 했단 것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대안인 목장에서 받은 훈련이 있어서 일제히 공격하는 사단의 역사를 막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양육자의 고백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자기를 세워 주셔서 감사하고 목장에 물어보고 이쪽저쪽 공동체에 물어봐서 감사했다고 합니다지도자인 양육자가 중요하고 언제 칭찬 침묵을 해야 하는지 중요합니다. 반복하는 성령의 양육입니다. 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참으로 지겹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고 양육이기 때문에 양육 나눔도 길지만 읽어드렸습니다. 이렇게 길고 지겹지만 중요합니다.

 

(적용#1)

 

-예수님의 제자인가요, 학생인가요? 양육을 어디까지 받으셨나?

-서로 주고받는 양육이 숨쉬기 인가? 지겨운 일인가?

 

 

2.   주의 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24절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성령의 작별로 에베소(Ephesus)를 떠나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난 아볼로(Apollos)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에굽(Egypt)의 대표적인 학문 도시이지 유대인의 도시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규모의 도서관으로 도서관장을 모시고 수학-기하학-천문학 등 이슬람과 유대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전 세계 학자들을 초빙하는 등 아테네를 능가하는 도시가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최초의 헬라의 번역도 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은 대단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구약에 능통했습니다. 입을 열면 청산유수이고 능통했지만 성경이 지니고 있는 감동을 청중에게 잘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은 바울의 다소(Tarsus) 시 출신 하고는 비교 안되는 지금으로 말하는 하버드 출신이고 다소는 비교했을 때 떨어지는 것입니다. 대단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25절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러면 이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아볼로는 주의 도를 어떻게 배웠나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성령의 회심을 하고 제자가 된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가 전도했을 것이 보아 성령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도를 배우는 데까지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고 연습하고 나아갔습니다. 주의 도를 따르는 적용으로의 에베소까지 와서 전도했습니다.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스데반(Stephen)이 있을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사람 양육이 되었어야 했잖아요. 한번 듣고 주의 도를 알았기 때문에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무엇을 가르칩니까 열심히 믿으려고 하고 가르치는 데에 아볼로(Apollos)가 말하는 설교의 내용이 다릅니다. 어떻게 2% 부족한데 100% 다른 내용입니다. 마지막이 이상합니다.



주의 道는 아는데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Apollos)에게도 하버드 박사에게도 성령의 중요한 양육자가 필요했어요 요한의 세례 기억나시죠?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어렵다고 요한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땅끝까지 교회로 불러 모으시기 위해서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온다고 합니다. 아볼라가 아직 몰랐던 것이 복음의 확장이었습니다그런데 이제 요한을 생각해 보면 출신도 좋고 청렴결백하고 눈빛이 살고 있고 회개하라 너무 멋있습니다. 존경스러웁니다. 그러면서 메시지가 뭔가 하면 부가된 것 외에는 세금 걷지 말고 받는 급료에 만족해라라고 합니다. 인간적이고 멋있습니다. 아볼로도 딱 여기까지입니다. 아볼로는 어디든지 가면 인기가 있습니다. 바울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너무 의롭고 학벌도 좋으니까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는 것, 예수님의 생애에 귀신 쫓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압도적으로 말씀으로 제압하고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을 먹였다는 것을 알지 십자가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빼버리고 행적만 살아서 행하신 행적만 전하는 것이 주요 포인트입니다. 세례요한의 설교에 열광하고 십자가의 가르침은 싫어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열광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를 향한 외침입니다. 내가 아니라 너희를 향한 외침입니다.



26절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8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이 가르침을 바울에게 받은 두 사람이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la)입니다. 에베소(Ephesus)에 두 부부를 남겨두었습니다 수많은 언변 지식으로 회개하라 이 독사의 자식들아!’ 요한의 세례처럼 아볼로를 보고 딱 분별했지요 아볼로를 초청했어요 하나님의 道를 더 정확하게 가르쳤어요. 학문적 배경이 없었습니다. 로마에서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가 유대인을 추방령을 내려 쫓겨났지요 온 힘을 다해 살아내는 텐트 메이커(천막 장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날마다들은 말씀이 있잖아요 그렇게 전했어요. 어떻게요? 바울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니 이런 내가 예수님을 핍박하고 못 박은 죄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설명하고 나의 수치와 죄패를 스데반이 했던 구속사의 설교를 기억하면서 거짓말과 여자 좋아하는 야곱 며느리 다말과 동침한 유다 기생 라합, 이방 여인과 룻 등 구약을 꿰어서 구속사를 가르쳤겠죠. 1 6개월동안 텐트를 만들면서 반복해서 양육을 받았던 하나님의 도를 아볼로에게 전했습니다성령의 작별을 한 것 같은데 남아서 그 입을 통해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성령의 제자양육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제자로 세워지는 사람은 명맥을 이어서 1,000 10,000명이 되는 것입니다

 

 

(적용#2)

 

-나는 세례 요한이 좋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좋나?

-나의 수치와 연약함을 고백하나? 아직도 목장과 공동체에 고백하지 못한 수치와 죄패는 무엇인가?

  

 

3.   사명의 길을 똑바로 가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27절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아볼로(Apollos)가 처음 한 적용이 아가야(Achaia)로 건너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27절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성령의 양육을 받은 아볼로가 한 적용은 아가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많이 사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살다가 역시 유대인이 살고 있는 에베소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자기의 한계, 즉 세례요한의 고정관념을 깨달았어요. 땅끝까지 이방 땅으로 가야겠다고 결단했어요. 에게해(Aegean Sea)를 건너 아시아에서 아가야(Achaia)로 건너갔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형제들의 격려합니다. 격려 중에서도 앞을 향해 전진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우리 목장과 같습니다. 실제적인 격려로 에베소 성도들은 추천서를 써줍니다우리가 이제 잘 이렇게 목장에서 진실되게 살았다면 감옥을 가도 탄원서를 써줍니다. 고린도(Corinth)에 도착한 아볼로가 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이었습니다. 은혜가 왜 강조 되었을까요? 유대인 아볼로가 가질 수 없었던 은혜 때문입니다.



목수가 구세주라는 증언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 입니다



아볼로가 아무리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라도 그 양육을 받게 되잖아요브리스길라(Priscilla)에게 양육 받기 전에는 할 수 없는 증언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많은 교회의 유익이 된 일이었습니까? 살인자 바울이 아닌 모든 것을 갖춘 아볼로가 그렇게 바울을 괴롭히던 유대인들의 신뢰를 받았네요 생각해 보니까. 그냥 아볼로가 이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라는 게 딱 유대인들을 제압했나 봐요. 세례 요한도 제압하고 그러니까 세례요한 시대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잖아요. 유대인들이 그런데 이 아볼로 때에도 바울은 그렇게 다 때려 죽이려고 그러더니. 아볼로가 가니까. 그러니까 이제 바울은 서울대학 출신이고 아볼로는 하버드 출신인가? 뭐 이렇게. 그럼 약간 이해가 쉽죠. 그죠



서울대. 근데 그러면 서울대학이 또 기분이 나쁘겠나? 우리는 우리나라의 하버드는 서울대학 하여튼 그렇게 알렉산드리아 출신이 그때 대단했어요. 그래서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학벌도 필요하기는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사도행전 3차 여행까지 오는데 유대인들이 하도 바울을 괴롭히니까 유대인들의 말을 힘 있게 이겼다고 하니까 막 통쾌한 거 있죠. 와 드디어 이겼네. 아볼로가 그러면 어떻게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을까요? 나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그러면 잘 들었을까요 우리가. 그건 생각해보는 거지. 오늘 예수는 그리스도라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요한처럼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들아가 아니라. ‘예수는 그리스도. 뭔가 하면 회개합니다. 제가 독사의 자식입니다이렇게 메시지가 바뀐 것이죠.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들아가 아니고 뭐라고요. ‘회개합니다 제가 독사의 자식입니다너를 향해 외치던 외침이 나를 향해 외치는 회개합니다로 변화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예수님이 나무 위에서 못 박혀서 죽을 수가 있어?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워. 쏙 빼놓았던 십자가를 이제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예수에 관한 것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 자체를 전합니다 이제 나의 부끄러움과 수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됐어요. 유다가 며느리 다말과 동침한 것, 스데반의 설교, 마태복음에 이런 모든 구속사의 계보가 완전히 수치의 족보가 다 써 있잖아요. 그렇죠. 이것이 성령의 제자의 제자 양육을 받은 성령의 사람인 거예요. 아볼로가, 이 대단한 사람이 내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회개하라 그러더니 이 굉장히 중요한 얘기야 남편에게 자녀에게 내 가족에게 내 옆에 사람에게 날마다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칩니까? 볼 때마다. 내가 회개합니다. 내 어디를 가든 반복해서 양육을 했던 바울이 자신이 고린도에서 양육한 브리스킬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남겨둔 것이 다 이유가 있었어요. 하나님의 세팅이었어요 브리스킬라와 아굴라는 자신들이 양육 받은 대로 아볼로의 말을 경청하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의도를 더 자세히 해석해 주었어요. 최고의 양육이었습니다 이 양육으로 사명을 받은 아볼로가 그 길을 전진할 수 있도록 에베소 교회가 함께 격려해 주었어요.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그러니까 이게 성령의 공동체 성령의 양육이에요. 우리들교회도 이런 놀라운 양육의 열매로 사명을 찾은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정말 묵상할 때마다 너무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렇게 모두 우리 이야기인지 이것이 성령의 양육의 결론입니다. 말씀으로 양육을 잘 받은 한 사람이 100명 천 명 만 명 전 세계를 복음으로 제압하는 것입니다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매주 행해지는 이런 간증들이 18년 동안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회개합니다. 제가 독사의 자식이었어요 고백하는 회계의 간증이 이어지고 있어요

 

 

(적용#3)

 

-고정관념을 넘어 건너가야 할 사명의 자리는 어디인가?

-거기로 똑바로 가도록 격려해주는 목장 지체의 응원이 무시가 되나? 감사가 되나

-가족과 지체들은 여러분에게 어떤 추천서를 줄 것 같은가?

 

 

예를 들어서 이 탄원서를 써달라고 하는데 목장에서 안 써주면 여러분들 삶의 결론이에요 그거는 목장에서 아주 잘하는 거예요 날마다 인간적으로 써주고 돈 꿔주고 이게 잘하는 게 아니에요. 똑바로 가도록 격려를 해 줘야죠. ‘똑바로가 중요하죠. ‘절대로 이혼을 하지 말라, 이혼하세요이게 좋은 게 아닌 거지. 그러니까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하고 그러니까 항상 남들에게 보이는 행적이 아니고 구원이잖아요 구원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가야지. ‘똑바로 걷고 싶어요가 되는 거죠. 이걸 위해서 우리 목장이 존재를 합니다

 

 

근데 정말 양육도 종류가 정말 여러가지 인데요 이번 주에는 어떤 나눔을 제가 봤냐 하면요 한 부목자님의 딸이 이제 그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휴학을 한 후에 집에 있으면서 분노를 표출하던 중에 붓 글씨로 문제아는 없고 좃나 문제 투성이 인데도 자기가 문제라고 생각조차 못하는 부모만 있다그걸 써붙였대요 저 xx. 아버지를 말해요. 평생 노총각으로 살았어야 했는데 거기다가 이제 뭐 좀 약간 욕을 썼겠죠. 그리고 이제 집 안 벽에 딱 붙였대요. 그리고 자기가 요구하는 7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하면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그대로 복사해서 목자님께 처방 받은 후 답장할 것 이라고 톡을 보내왔대요. 그 일곱 가지 조건. 다 얘기는 못하겠는데. 예 그러니까 이제 엄마 아빠 다 약물과 상담 치료 받을 것. 왜냐하면 엄마 아빠 둘 다 개 아파’ ‘진짜 개 아파이거 청년들이 말 알아들을 소리죠. 청년부 아이니까 진짜 아프다는 아빠는 일단 논외로 하고 말할게. 엄마는 다른 사람 말 못 듣고 감정 못 느끼고 표현 제대로 못 하는 걸로는 원탑이야. 혹시, 나는 아빠랑 다르다 이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그 생각 그 생각 당장 갖다 버려. 엄마도 아빠랑 개 똑같아. 목장에서 내가 화내고 난리 쳤던 내용 나눌 때 앞뒤 다 잘라내고 얘가 나한테 반항했다 이딴 식으로만 나누지 말 것엄마가 이렇게만 나눔으로써 내 눈물과 아픔이 꾹꾹 담긴 표현들이 단순한 지랄로 치부되고 나만 이상한 애가 돼버리기 때문에 목장에서 나의 행동 자체를 정죄하지 말고 제발.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생각하는 연습을 좀 해. 제발 참고로 아주 오랜 시간 쌓아온 게 이제 터지는 거여서. 엄마가 스스로 봐야 할 게 많을 것임. 그리고 나는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게 아닌 나도, 나 아픈 거 알고 있음 그치만 난 엄마 아빠랑 달리 나 아픈 거 인정하고 치료를 받고 있음괄호 닫고 청년부 수련회 기간 동안 마음 편히 참여하도록 밤새서 조별 나눔도 해야 하니 숙박시설 알아볼 건데 비용 다 지불할 것. 그리고 지금 나한테 내 죄 불라는 있단 말 절대 하지 말 것. 엄마 아빠는 문제 부모 맞고. 내 잘못이 아니니까 내가 엄마 아빠한테 받은 상처들을 직면하고 지랄 발광을 해서라도 토해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으니까. 내가 상담 요청했던 목사님들과 목자 언니들의 결론은 말씀 보고 내 죄 보는 걸로 나야겠지만 아직 소화가 안 되는데 이 결론을 성급하게 낼 필요 없다. 하심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앞으로도 엄마 아빠에게 고난이 될 것임 그게. 내 적용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거 읽고 나한테 바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그대로. 복부(복사+붙임)에서 목자님께 처방 받은 후 답장할 것. 답장 후 처방은 엑스(x) 처방 후 답장은 오(o)’ 알아들었어요. 예 이 기막힌 딸의 제안에 처음에는 납득이 안 가고 힘들어하신 부 목자님은 이걸 목장에다 나눴어요 그러니까 목자님들과 목원들이 너무 위로를 해주고 격려를 해줬어요. 그리고 처방에 순종해서 그 요구사항을 천천히 검토하고 들어주는 방법들을 모색하기로 했답니다. 엄마의 답장 그러게 엄마가 다른 사람 말을 못 듣지.



사람들의 말이 상처받을 필요 없어서 귀담아 듣지 않는 습관이 어려서부터 있었던 것 같아 상처 안 받아서 좋긴 하지만 가까운 사람과 정작 소통이 안 되는 일이 생겨버렸고이제 조금씩 듣는 연습을 하도록 할게. 잘 듣지 못하고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리고 숙박시설은 안전하고 쾌적하고 알맞은 가격으로 알아봐. 가격과 위치 얘기해 주고. 청년부에 엘더님(Elder)이 있는지 몰랐는데. 그 이제 심방을 받으라고 그랬어요 그 청년부 목사님 엘더님 뭐 이제 다 이렇게 심방 받아달라고 그래서 8월 첫 주 중 하루 시간 내 볼게 다행이네 이 답변을 받은 후에 그 이 딸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합니다. 서로 서로의 기가 막힌 양육 아닙니까? 근데 이 얘기를 누가 누구한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목장, 정말 세계적인 대안 맞죠 엄마도 딸도, 우리가 이걸 듣는 모든 전 세계에 사람들이 기도를 해 줄 것이고 이렇게 얘기를 한 번 하게 되면 죄가 힘을 잃게 되고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늘 읽어드린 나눔들 또 간증하신 분들 정말 하나님이 다 기억하시고 축복을 하셨다고 생각이 들어요 진짜 축복을 하셨습니다 사생활 같이 나왔던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생활이라 그럴 거 아니에요. 예수님 보고 처녀가 낳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얘기들을 이렇게 솔직하게 다 하니까. 이렇게 어마어마한 축복이 우리들교회에 쏟아지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다 이렇게 달라지셨어요. 저는 기가 막힌 양육이라고 생각을 하고 또 우리 딸도 예 엄마도 이걸 다 허락하셔서. 오늘 제가 이렇게 읽어드렸습니다.

 

 

<Epilogue> 

 

1)  성령의 제자양육은 영적 양육자가 너무 중요하다

2)  성령의 제자양육은 죽을 때가 반복하면서 양육해야 한다.

3)  성령의 제자양육은 인내하면서 반복해서 양육해야 한다

4)  성령의 제자양육은 주의 도를 배우는 것이다.

5)  성령의 제자양육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것, 사명의 길을 똑바로 가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6)  내 안의 악과 작별할수록 성령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7)  우리의 믿음은 자라는 것인데 어린아이 믿음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함으로 자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8)  성장의 의미보다 양육이 맞는 표현이다. 

9)  학생은 배우는 반면 제자는 선생님의 삶이 닮고 싶어 따르는 사람이다.

10) 제자가 많기는 어려운 것인데 학생은 많지만 제자는 희귀한 것이다.

11) 사도행전은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도행전이라고 명명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제자행전이다.

12) 제자의 길이 쉽지 않으며 예수님 말씀대로 좁은 길이다.

13) 그러나 제자를 양육하고 키워내야 그 제자가 또 양육하고 키워내기 때문에 제자 한 사람은 아주 중요하다.

14) 바울은 자기가 전도 해놓고 내가 너희를 복음으로 낳았다고 한다.

15) 이런 사랑을 감당하기 위해 영적 자녀를 낳아야 한다.

16) 바울도 본토 친척 가족을 떠나서 영적 자녀를 낳았기에 외로움 중에도 사랑하는 자로 있게 하셔서 목숨까지도 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17) 믿는다고 성숙한 것이 아니다.

18) 성품이 안 좋은 사람, 귀찮게 하는 사람, 배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이 변해서 새사람이 되면 그 기쁨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19) 사랑할 수 없었는데 사랑하게 되니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20) 나도 이렇게 당했다는 생생한 증언을 하는 바울이 있을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지만 그런 바울이 없으면 금새 오는 핍박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21) 출애굽 당시에 구원을 받은 듯 하지만 모세가 십계명 받으러 시내 산에 가니 백성들이 아론과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는 것이다

22) (God)과 금(gold)은 멀리서 보면 비슷한 것인데 지도자가 없으면 똑같게 되어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보게 된다.

23) 믿음을 빙자까지 하고 팔복의 믿음은 간 데 없이 맘몬(Mammon)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24)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굳게 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양육자다.

25) 목회자에게 의심이 들면 검은 구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26) 목회자가 제자의 삶을 살아야 성도들이 제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27) 목자가 제자의 살아야 목원들이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28) 모세와 다윗을 대적한 초대 왕 사울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29) 사울에게도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들이 이끄는 양육은 실패했다.

30) 양육에는 아론(Aaron)이 아니고 사울(Saul)이 아니고 모세(Moses)와 다윗(David)이 중요하다.

31) 한 사람의 제자 양육자와 지도자는 중요하다.

32) 우리나라 초대 기독교 선교사는 그의 생활 그 자체가 설교였다고 한다.

33) 그의 곁에 있으면 구세주를 알게 된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34) 쉼 없이 전도하다가 숨지셨는데 그로 인해 지금 우리가 이렇게 믿음이 있는 것이다.

35) 사역자가 되었으니 양육이 필요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36)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양육을 받아야 한다

37) 목장은 끊임없는 최고의 양육을 위한 반복의 장이다.

38) 목장공동체는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지겹게 느껴지겠지만 여전한 방식의 복덕방이다. 

39) 자신이 받은 은혜를 성령의 문제로 보지 못한 것에 큰 죄를 지을 뻔했다는 것을 회개했다고 한다.

40) 세계적인 대안인 우리들교회 목장공동체에서 받은 훈련이 있어서 일제히 공격하는 사단의 역사를 막았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41) 양육자의 고백으로 부족하고 연약한 자기를 세워 주셔서 감사하고 목장에 물어보고 이쪽저쪽 공동체에 물어봐서 감사했다고 한다

42) 지도자인 양육자가 중요하고 언제 칭찬 침묵을 해야 하는지 중요한 것인데 이것이 반복하는 성령의 양육이다.

43)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들아가 아니고  회개합니다 제가 독사의 자식입니다너를 향해 외치던 외침이 나를 향해 외치는 회개합니다’’로 변화가 된 것이 제자 양육의 결실이다

44) 예수에 관한 것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 자체를 전하니까 이제 나의 부끄러움과 수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45)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렇게 모두 우리 이야기인지 이것이 성령의 양육의 결론이다.

46) 말씀으로 양육을 잘 받은 한 사람이 100명 천 명 만 명 전 세계를 복음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47) 항상 남들에게 보이는 행적이 아니고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가야 똑바로 걷고 싶어요가 되는 것으로 이걸 위해서 우리 목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48) 목수(예수님)가 구세주라는 증언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7. 26. 20:59

[우리들교회 2021 725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8: 18~ 23/ 성령의 작별)]

 

<사도행전 18:18~23>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Paul stayed on in Corinth for some time. Then he left the brothers and sailed for Syria, accompanied by Priscilla and Aquila. Before he sailed, he had his hair cut off at Cenchrea because of a vow he had taken)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They arrived at Ephesus, where Paul left Priscilla and Aquila. He himself went into the synagogue and reasoned with the Jews)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When they asked him to spend more time with them, he declined)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But as he left, he promised, "I will come back if it is God's will." Then he set sail from Ephesus)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When he landed at Caesarea, he went up and greeted the church and then went down to Antioch)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After spending some time in Antioch, Paul set out from there and traveled from place to place throughout the region of Galatia and Phrygia, strengthening all the disciples)

 

<Prologue>

 

우리가 살면서 노력하지 않아도 느는 것이 있는데 나이, 뱃살, 주름, 흰머리 등이다. 또 작별도 점점 많이 하게 된다. 언젠가는 우리와 만난 모두와 작별을 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기억에 가장 깊게 남은 작별의 순간은 언제인가? 바울도 교회를 세우며 여러 도시를 다닐 때마다 작별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작별했다는 표현은 오늘 본문에만 두 번 나오는데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별이라는 뜻일 것이다. 인간적인 작별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성령의 작별을 했다는 것일 텐데 오늘은 성령의 작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말씀 요약>

 

1.   더 인내하며 머문 후에 하는 것입니다.(18a)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성령의 문제로 주신 법정 사건을 통과한 바울은 고린도(Corinth)에서 이 일 후에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했다고 한다.

 

“머물다”로 번역한 헬라어는 쉽지 않은 상황에 의지를 가지고 버티며 자기 역할을 감당한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갖추고 음란하기까지 한 고린도에서 전도하는 일이 바울에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했다.

유대인들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는데 한 가지 할 수 없는 것이 사형언도를 못하는 것이었다.

로마 총독만 사형언도를 내릴 수 있고 집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한 것은 그를 죽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제 무죄가 되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바울은 이고니온(Iconion)과 루스드라(Lustra), 빌립보(Philippi), 데살로니가(Thessalonica)에서도, 아덴(Athens)에서도 늘 쫓겨났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모두를 모아놓은 듯 한 가장 악하고 가장 음란한 마게도냐(Macedonia)와 아가야(Achaia)지역에서, 가장 영적으로 어둡던 이 곳에서 법정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바로 고린도를 떠나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여러 날, 충분한 기간을 머물렀다는 뜻이다. 무엇을 위해 충분한 시간인가? 갓 태어난 고린도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충분한 시간이 찰 때까지, 최소한 법정 앞에서 모두에게 얻어맞는 수모를 당한 회당장 소스데네(Sosthenes the synagogue ruler)가 교회로 들어와 구원받고 바울의 동역자로 양육될 수 있는 만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바울이 소스데네(Sosthenes)를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하고 가르치고 양육하는 사명의 자리에 딱 붙어서 디아트리보’(비비고, 닦고 문지르고) 해야 한다. 화내고 싶을 때 참고, 화내기 싫을 때도 참고, 말하고 싶을 때도 참고, 말하기 싫을 때도 참고, 날마다 인내하며 전도하고 양육했다.

따라서 여러 날 머무는 일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정말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는 그 사람 옆에 오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성령의 작별을 하게 하실 때가 많다.

그래서 성령의 작별의 결론은 영혼 구원이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I die every day--I mean that, brothers--just as surely as I glory over you in Christ Jesus our Lord)

 

바울이 고린도에서 머물 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죽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나중에 편지를 통해서도 자랑을 하고 단언할 수 있었다. 바울이 날마다 인내해야만 했다. 자기를 죽여야만 했다. 충분한 시간을 머문 후에야 바울은 고린도의 형제들과 작별하고 수리아(Syria)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 믿음의 자녀를, 복음으로 낳은 아들, 딸 같은 성도들이 1 6개월 동안 많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떠난다. 떠나면 만남이 있다. 바나바(Barnabas)와 작별하고 혼자였던 바울 옆에 누가(Luke)와 실라(Silas), 디모데Timothy)를 만나게 하셨다. 빌립보(Philippi)에서는 루디아(Lydia), 데살로니가(Thessalonica)에서는 야손을, 고린도(Corinth)에서는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a)를 만나게 하셨다. 떠나면 만나는 곳곳의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한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 그 힘든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다. 고린도에서 1 6개월을 함께 한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서 터전을 잡았는데 내려놓고 같이 떠나겠다고 한다.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되면 신부로서 같이 동행하는 것처럼 아굴라(Aquila) 부부가 그렇게 신부가 되어 동행을 해주었다. 대부분 이렇게 떠날 때 아내가 반대해서 못 떠나는데 여기는 아내가 믿음이 더 좋아졌다. 그래서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a)로 칭호가 바뀌어졌다. 이 부부 때문에 참 많은 위로와 힘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힘든 남편, 아내, 자녀와 부모가 감당이 안 되는가? 십자가를 잘 지고 인내하면 영적 진실성이 드러난다. 이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되었을 때 성령의 작별을 하게 해주신다.

 

(적용#1)

 

-지금 당장이라도 작별하고 싶은 고린도 같은 사람은 누구이고 여러 날 머물러야 할 인내의 상황은 무엇인가?

 

성령의 작별의 원동력은,

 

2.   (조건부 서원이 아닌 감사로 드리는) 자발적인 서원입니다.(18b)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Cenchrea) 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이 겐그레아(Cenchrea)에서 머리를 깎는다. 고린도(Corinth)항 밑에 겐그레아(Cenchrea) 항이 있다. 겐그레아(Cenchrea)는 아시아와 로마를 잇는 고린도의 두 항구 중 하나였기에 무역과 상업이 엄청나게 발달한 곳이었다.

서원을 미완료로 계속해서 종료되는 시점까지 (서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서원 때문에 머리를 깎았는데 바울의 바램, 바울의 원함 이 서원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6:18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Then at the entrance to the Tent of Meeting, the Nazirite must shave off the hair that he dedicated. He is to take the hair and put it in the fire that is under the sacrifice of the fellowship offering.)

머리를 깎은 바울은 나실인(Nazirite)의 서원을 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나실인들은 자신을 구별되게 하나님 앞에 바치고 서원이 종료될 때에 머리를 민다. 그리고 화목제물(the sacrifice of the fellowship offering) 밑에 두게 된다. 이 서원이 종료되기 전까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시체를 만지지 않고 머리를 깎지 않는다. 시체는 죽음이고 또 죄의 결과이자 하나님과의 단절을 뜻하기 때문에 서원이 끝날 때 머리를 깎고 그것을 불태운다는 것이다.

서원은 성별하다. 구별하다의 뜻이 있다. 더 자세히 레위기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제사의 종류가 (1)번제(burnt offering), (2)소제(grain offering), (3)속죄제(sin offering), (4)속건제(ordination offering), (5)화목제(fellowship offering) 5개이다.

예수 1)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번제, 2)부활의 소제, 3)대속의 속죄제, 4)속량의 속건제, 5)승천의 화목제를 상징한다.

(레위기7:11~18) 마지막 승천에 해당하는 화목제는 죄인들의 속죄가 완료되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화목이 성취되는 천국잔치에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다.

 

레위기 7:15~16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화목제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마음속에서 자원하여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오는 예물이다. 그러니까 이 화목제 안에 감사제, 자원제, 서원제가 있는 것이다. 화목제의 하나인 서원이라는 것은 죽어야할 나를 위해 흠 없는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우리에게 완성된 구원을 허락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다. 야곱처럼 무사히 돌아오게만 하시면 십일조를 하겠다. 입다 사사처럼 이기게만 해주시면 처음 영접하러 나온 자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해서 딸을 제물로 드렸는데 이런 조건부 서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완성된 사건(구원)이 감사해서 자원해서 나를 드리는 것이 성경의 서원이다. 어떤 사람을 찬송한다는 것은 내가 그 앞에서 부인 되어지는 것이다. 나는 없다. 그래서 나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일이 바울에게도 그대로 일어났다. 고린도 사역을 잘하게 해주시면 이런 조건부라기보다는 그 사역을 잘하기 위해서 자신이 구별되고 성별되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구원을 위한 서원을 드린 것이다. 바울이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감사로, 자발적으로 서원을 드린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며 바울을 응원하셨다.(18:10)

또 고린도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했기 때문에 바울은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알았어요, 주님, 그 말씀을 이루기까지 제가 포도주를 가까이 하지 않고 더럽고 음란한 것들을 만지지도 않고 머리를 깎지 않겠습니다. 거룩하게 살겠어요.”라고 은혜에 감사해서 자신을 드리니까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법정의 문제를 성령의 문제로 바꾸어 주셨다. 그런데 바울이 구원에 뜻을 두지 않고 문제해결만 바랐다면 유대인들의 고소가 기각되는 순간 고린도를 즉시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다 열심히 하는 것 같아도 그냥 문제만 해결되면 더는 못해먹겠다 하면서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바울이 서원했다. 구별, 감사, 찬송, 구원을 생각했다. 서원은 감사의 예물로 나를 드린 것이고 구별된 인생이다. 여러분들은 전부다 조건부 서원을 생각한다. 그것은 안 믿는 사람의 비나이다 비나이다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생각해보니 제가 입시나 건강, 이런 것 때문에 서원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저는 남편 가기 전에도 주의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금식을 했는데 그것이 서원이라면 서원인데 남편이 가고 저의 사역이 너무 커지니까 너무 두려워서 이 사명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금식이 저절로 되었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내가 그 앞에서 부인되어지는 것이다. 자원해서 내 자신을 부인하게 해달라고, 십자가 잘 지게 해달라고 그렇게 서원을 했던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늘 서원을 하니까 작별을 해야 될 것을 때에 맞춰서 잘 할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와 명칭과 법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성령의 법이 되지 않으면 기뻐서 서원도 안 되고 슬퍼서 작별도 힘들다. 우리 엄마도 아들 낳으면 주님께 드린다고 했기 때문에 기복적인 서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머니의 서원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 가장 무서운 작별을 많이 경험하게 하셨다.  젊은 나이에 네 분의 부모님과 남편과 작별을 했다. 이것이 어머니 서원 때문에 누구와도 갑자기 작별할 수 있다는 연습을 미리 하게 하셨다는 생각을 한다.

늘 자신을 부인하게 해달라고. 자발적인 영적 서원을 하며 가기 때문에 그런 무슨 일을 당해도 내가 예수를 잘 믿기 때문에 나만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하신 것 같다. 남들 당하는 일, 나도 겪었다고 생각을 하게 하신 것이 서원의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의 은혜이지만 때마다 원칙을 생각하게 한 것은 말씀 적용 때문이었는데 그럼에도 수없이 타협하고 싶었다. 그래도 큐티를 하는 것이 연습과 습관이 되어서 사소한 원칙 하나를 지키려고 너무 고민을 한다. 말씀으로 “THINK”을 열심히 한 것만 가지고도 주님은 훗날에 너무나 엄청나게 다 크게 갚아서 돌려주신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거룩하게 살겠다고 서원을 하니까 받은 선물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원칙은 바로 구별이고 거룩이다. 팔복의 원리이다. 구원 때문에 오늘 손해 보아야 할 말씀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사소한 큐티 적용 하나 때문에 하나님은 쌓을 곳이 없는 축복을 주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기뻐서 자원해서 나를 드리겠다고 하는 것이 서원이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서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적용#2)

 

-입시나 입사를 앞두고 여러분은 조건부 서원을 하나? 그럴 때일수록 주의 크신 은혜에 감사해서 나를 써달라고, 그래서 인내하기 위해서 서원을 하나?

 

 

3.   사람의 청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작별하는 것입니다(19~21)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겐그레아(Cenchrea)에서 배를 타고 떠난 바울 일행은 아시아의 관문이자 주도인 에베소(Ephesus)에 도착한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원래 목적지가 에베소였는데 성령이 막으셨다. 마게도냐(Macedonia) 땅의 수도 데살로니가(Thessalonica), 아가야(Achaia) 지방의 수도 고린도(Corinth)보다 더 '넘사벽'(Unsurmountable Four Dimensional Wall)이 에베소(Ephesus)이다. 에베소는 성령께서 어린 디모데(TimothY를 배려해서 막을 정도로 힘든 곳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이 섬기는 아데미 여신과 그 신전이 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인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그토록 우상의 세력이 강한 도시가 에베소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갈 길과 절기도 지켜야 되어서 시간이 바쁜데 굳이 안 들러도 되는 에베소에 도착한 후 쉬지 않고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한다. 여기서 변론하다는 말은 강론과 같은 의미인데 성경을 펴서 구속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바울은 욕을 먹고 매를 맞고 (사람들이) 사형언도를 할 만큼 그렇게 지겨워 하는데도 유대인의 회당에 꼭 들른다. 이것이 자발적인 서원이 아니면 되겠는가? 그래서 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숨쉬기 이다. 말씀 전하는 것이 일인가? 숨 쉬는 것인가?

 

고린도에서 불법이 아니라고 바울이 비난 받지 않게 되었는데 도리어 서원하고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바울은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듯이 그 당시의 유대와 이방을 다 생각하면서 자기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구원 때문에 못할 것이 없다. 나실인(Nazirite))의 서원을 하고 머리를 깎고 왔기 때문에 당장 에베소의 회당에서 변론을 할 때 거부감이 없었을 것 같다. 즉 머리를 깎은 것이 내 헌신의 끝이라고 종결하면서 내 서원이 끝이 아니라 에베소와 와서 강론하면서도 에베소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라고 하고는 본인은 예루살렘으로 떠나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인물인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la)를 남겨놓는다.

그런데 강론하며 구속사(history of redemption)로 전하니까 이전과 달리 여러 사람들이 더 오래 있기를 간청했다. (아마도) 화려하고 음란한 에베소와 비슷한 고린도에서 1 6개월 동안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에베소 사람들의 마음을 설득한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이 오래 있으라고 하는데 거절한다. 전에는 성령께서 허락치 않으셨는데 이 때는 바울이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 뜻이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 때 시제가 능동태 미래형이다. 막연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각오와 의지가 담겨진, 앞으로 이루어질 것에 대한 각오와 의지가 담겨진 아주 강력한 표현이다.

옛날 같으면 성령께서 계속 막았지만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성령이 막아도, 또 막아도 계속 아시아로 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성령의 서원을 한 바울의 태도는 어떻게 변화 되었나? 그동안 자신의 실패와 두려움 속에 연약함과 두려움의 한계 가운데에서도 빌립보(Philippi), 데살로니가(Thessalonica), 고린도(Corinth) 교회가 세워 짐을 보니 자신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의지가 조금씩 앞에 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앞에, 각오와 서원과 의지 앞에 하나님 뜻이 있는 것이다.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a)를 남겨놓을 만큼 에베소에서 복음 전하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바람과 소원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빨리 작별하고 싶었던 고린도에서는 더 여러 날 머물렀지만 처음부터 오고 싶었던 에베소에서는 더 오래 있기를 청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바로 작별을 한다. 인본적인 사람의 특징이 때를 모른다는 것인데 갈 때와 올 때, 있을 때와 떠날 때를 알려면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이다. 그래서 타이밍을 모른다는 것을 결국 십자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하니까 경고할 때는 칭찬을 하고 칭찬할 때는 경고를 한다. 그러니까 굉장히 스마트해 보여도 대형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구원보다 이익이 목적이면 분별이 안 된다.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잘못 판단할 때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그러나 나의 유익이 목적이면 절대로 분별이 안 된다.

힘든 배우자는 작별해야 될 사람인가요? 더 오래 머물러야 할 사람인가요? 말씀의 원칙대로 구원을 위해서 정한다.

반면 중독은 당장이라도 작별을 해야 될 대상이다. 한 시간이라도 더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역시 구원을 위해서이다. 이혼이든 중독이든 구원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내 이익이나 쾌락이 기준이 되면 힘든 배우자는 당장 작별해야 될 사람이고 중독은 조금 더 머물러도 좋은 대상이다. 중독도 물질 중독, 행위 중독이 있다(아치볼드 D.하트) 물질 중독은 약물, 알코올 중독인데 그 물질 중독보다 더 무서운 것이 행위 중독인데 게임, 성행위, 쇼핑 같이 숨겨져 있고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지만 훨씬 무섭다는 것이다. 쇼핑할 때 황홀한 그 쾌락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이생의 자랑인 학벌, 외모, 집안 등 이 자랑의 열병을 끊어낼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행위 중독이라고 한다.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죄인의 영역에 나를 포함시키는 것이 구속사인데 예를 들어서 중독인 집안 식구들이 중독자는 저 사람이고 나는 드러난 잘못이 없는데 나는 왜 죄인이야 라고 따지면 정말 구원의 답이 나올 수가 없다. 내가 죄인이 아니니까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그 방법은 말씀 묵상하고 적용하여 알게 된다. 따로 혼자 묵상하라고 성경 주시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지체들과 함께 묵상하라고 공동체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라고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공동체를 함께 세워가는 것이다. 중독을 내 힘으로 못 끊는다. 작별 못한다. 그런데 중독자 센터에서도 나는 중독자라고 인정하고 공포하라고 한다. 공동체에서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중독 작별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결국 중독은 공동체가 없으면 끊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장에 오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 중독을 끊어내려면 본인도 가족도 서로가 인내를 해야 되는데 무슨 힘으로 인내를 하겠는가? 말씀을 통해서 죄를 보는 공동체에서 서로가 자기는 중독자라고 고백할 때 끊을 수 있다.

 

(적용#3)

 

-내 뜻과 하나님이 뜻이 반대로 작용한 때는 언제인가?

-이기적인 자기 사랑이 성령의 작별이 되어 지켜야할 가정이나 끊어 내야할 중독은 무엇인가? 게임, 성행위, 쇼핑인가?

-이 좋은 일은 하나님도 좋아하실 거야 하며 사람들이 요청한다고 행하는 것은 무엇이 있나?

 

자기 생각대로 구제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말씀을 모르면 우선순위를 모른다.

 

4.   제자를 굳건하게 하기 위함입니다(22~23)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이제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떠난 바울은 지중해를 가로질러 가이사랴(Caesarea)에 도착한다.

에베소(Ephesus) -> 가이사랴(Caesarea) -> 예루살렘(Jerusalem) -> 안디옥(Antioch) (2차 전도여행)

갈라디아(Galatia), 브루기아(Phrygia) (3차 전도여행)

예루살렘 교회에 갈 때 늘 올라갔다고 한다. 우리가 늘 서울은 올라갔다고 한다. 그것처럼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다는 뜻이다.

예루살렘 공회가 사도행전 15장에서 성령의 의논으로 결정한 내용을 지역 교회에 알리고자 했고 4500Km 3년이상 걸린 긴 여행이고 여정이었다. 안디옥(Antioch)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또 떠났다고 한다.

갈라디아(Galatia)와 브루기아(Phrygia)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한다. 교회들을 심방하여 제자들을 굳건(견고)하게 하기 위해

날마다 숨쉬기처럼 전도여행을 한다.

여전한 방식의 복음 전함이 되어야 한다.

제자들을 향한 형제 의식, 흔들림을 멈추게 하는 것은 말씀이므로 또 다시 작별을 하고 양육의 3차 여행을 떠나는데 양육하고 떠난다.

믿음이 흔들리는 지체를 굳건하게 하고자 하는 성령의 작별이다. 새로운 사명의 시작과 처음이다. 다른 지체들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이기적 관심의 한계에서 떠나는 것이다. 자기 사랑에 사로잡힌 이 세대를 떠나는 것이다. 이기심만 가득한 인간의 작별과는 다르다. 인간의 작별을 멈추고 성령의 작별을 해야한다.

교회 공동체에 들어와야 인권이 아닌 신권의 왕 노릇을 한다. 주님의 몸인 교회와 작은 교회인 목장이 정말 대안이고 내가 어디가 잘못되고

 

(적용#4)

 

-나를 굳건하게 세워준 지체들이 있나?

-지체들을 굳건하게 하기 위한 수고를 기뻐하나? 멈추지 말고 시작해야할 구원의 사명은 무엇인가?

 

(김양재 목사님 기도)

 

복음의 전함이 숨쉬기가 되어야 하는데 성령의 서원은 자발적으로 나를 드리고 써달라고 하는 것이 되지 못해서 성령의 떠남이 되지 못한다. 결혼, 식구들 모든 인간의 작별을 원하는 힘든 가정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머물러 있으라고 하신다. 예수님 밖에는 답이 없는데 내가 중독자라고 알코올 중독자, , 쇼핑, 날마다 목장에서 나누면서 서로가 가족들과 본인이 인내를 해야 한다. 주님이 상급이 되지 않으면 서원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시간에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도록

 

<Epilogue>

 

1)  성령의 작별의 결론은 영혼 구원이다.

2)  십자가를 잘 지고 인내하면 영적 진실성이 드러난다.

3)  이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되었을 때 성령의 작별을 하게 해주신다.

4)  시체는 죽음이고 또 죄의 결과이자 하나님과의 단절을 뜻하기 때문에 서원이 끝날 때 머리를 깎고 그것을 불태운다는 것이다.

5)  서원은 성별하다. 구별하다의 뜻이 있다.

6)  더 자세히 레위기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제사의 종류가 (1)번제(burnt offering), (2)소제(grain offering), (3)속죄제(sin offering), (4)속건제(ordination offering), (5)화목제(fellowship offering) 5개이다.

7)  예수 (1)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번제, (2)부활의 소제, (3)대속의 속죄제, (4)속량의 속건제, (5)승천의 화목제를 상징한다.

8)   마지막 승천에 해당하는 화목제는 죄인들의 속죄가 완료되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화목이 성취되는 천국잔치에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다.

9)   화목제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마음속에서 자원하여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오는 예물이다.

10) 그러니까 이 화목제 안에 (1)감사제, (2)자원제, (3)서원제가 있는 것이다

11)  화목제의 하나인 서원이라는 것은 죽어야 할 나를 위해 흠 없는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우리에게 완성된 구원을 허락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다.

12)  어떤 완성된 사건(구원)이 감사해서 자원해서 나를 드리는 것이 성경의 서원이다.

13)  어떤 사람을 찬송한다는 것은 내가 그 앞에서 부인 되어지는 것이다.

14)  나는 없다. 그래서 나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15) 고린도 사역을 잘하게 해주시면 이런 조건부라기보다는 그 사역을 잘하기 위해서 자신이 구별되고 성별 되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구원을 위한 서원을 드린 것이다.

16) 바울이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감사로, 자발적으로 서원을 드린 것이다.

17) 그래서 주님께서도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며 바울을 응원하셨다.(18:10)

18) 은혜에 감사해서 자신을 드리니까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법정의 문제를 성령의 문제로 바꾸어 주셨다.

19) 그런데 바울이 구원에 뜻을 두지 않고 문제 해결만 바랐다면 유대인들의 고소가 기각되는 순간 고린도를 즉시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0)  서원은 감사의 예물로 나를 드린 것이고 구별된 인생이다.

21)  우리는 전부다 조건부 서원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안 믿는 사람의 비나이다, 비나이다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22)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내가 그 앞에서 부인되어지는 것이다.

23)  우리는 각자의 언어와 명칭과 법이 있는데 그것이 성령의 법이 되지 않으면 기뻐서 서원도 안 되고 슬퍼서 작별도 힘들다.

24)  늘 자신을 부인하게 해달라고 자발적인 영적 서원을 하며 가기 때문에 그런 무슨 일을 당해도 내가 예수를 잘 믿기 때문에 나만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하신 것 같다.

25)  남들 당하는 일, 나도 겪었다고 생각을 하게 하신 것이 서원의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26)  주님은 훗날에 너무나 엄청나게 다 크게 갚아서 돌려주신다고 생각을 한다.

27)  그래서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거룩하게 살겠다고 서원을 하니까 받은 선물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28)  원칙은 바로 구별이고 거룩이며 팔복의 원리이다.

29)  구원 때문에 오늘 손해 보아야 할 말씀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30)  사소한 큐티 적용 하나 때문에 하나님은 쌓을 곳이 없는 축복을 주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31)  기뻐서 자원해서 나를 드리겠다고 하는 것이 서원이다.

32)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서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33)  변론하다는 말은 강론과 같은 의미인데 성경을 펴서 구속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34)  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숨쉬기 이다.

35)  자신의 바람과 소원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36)  인본적인 사람의 특징이 때를 모른다는 것인데 갈 때와 올 때, 있을 때와 떠날 때를 알려면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이다.

37)  그래서 타이밍을 모른다는 것을 결국 십자가를 모른다는 것이다.

38)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하니까 경고할 때는 칭찬을 하고 칭찬할 때는 경고를 한다.

39)  그러니까 굉장히 스마트해 보여도 대형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40)  구원보다 이익이 목적이면 분별이 안 된다.

41)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잘못 판단할 때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42)  나의 유익이 목적이면 절대로 분별이 안 된다.

43)  중독은 당장이라도 작별을 해야 될 대상이다.

44)  한 시간이라도 더 머물러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구원을 위해서이다.

45)  이혼이든 중독이든 구원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46)  그런데 내 이익이나 쾌락이 기준이 되면 힘든 배우자는 당장 작별해야 될 사람이고 중독은 조금 더 머물러도 좋은 대상이다.

47)  중독도 물질 중독, 행위 중독이 있다(아치볼드 D.하트)

48)  물질 중독은 약물, 알코올 중독인데 그 물질 중독보다 더 무서운 것이 행위 중독인데 게임, 성행위, 쇼핑 같이 숨겨져 있고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지만 훨씬 무섭다는 것이다.

49)  쇼핑할 때 황홀한 그 쾌락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50)  또 이생의 자랑인 학벌, 외모, 집안 등 이 자랑의 열병을 끊어낼 자가 없다는 것이다.

51)  이런 것들을 행위 중독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52)  죄인의 영역에 나를 포함시키는 것이 구속사인데 예를 들어서 중독인 집안 식구들이 중독자는 저 사람이고 나는 드러난 잘못이 없는데 나는 왜 죄인이야?’라고 따지면 정말 구원의 답이 나올 수가 없다.

53)  내가 죄인이 아니니까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54)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55)  그 방법은 말씀 묵상하고 적용하여 알게 된다.

56)  따로 혼자 묵상하라고 성경 주시지 않으셨다.

57)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지체들과 함께 묵상하라고 공동체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라고 말씀을 주셨다.

58)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공동체를 함께 세워가는 것이다.

59)  중독을 내 힘으로 못 끊는다. 작별 못한다. 그런데 중독자 센터에서도 나는 중독자라고 인정하고 공포하라고 한다.

60)  공동체에서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중독 작별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61)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결국 중독은 공동체가 없으면 끊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62)  그러니까 목장에 오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 중독을 끊어내려면 본인도 가족도 서로가 인내를 해야 되는데 무슨 힘으로 인내를 하겠는가?

63)  말씀을 통해서 죄를 보는 공동체에서 서로가 자기는 중독자라고 고백할 때 끊을 수 있다.

64)  다른 지체들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이기적 관심의 한계에서 떠나는 것이다.

65)  자기 사랑에 사로잡힌 이 세대를 떠나는 것이다.

66)  이기심만 가득한 인간의 작별과는 다르다.

67)  인간의 작별을 멈추고 성령의 작별을 해야한다.

68)  복음의 전함이 숨쉬기가 되어야 하는데 성령의 서원은 자발적으로 나를 드리고 써달라고 하는 것이 되지 못해서 성령의 떠남이 되지 못한다.

69)  예수님 밖에는 답이 없는데 내가 중독자라고 알코올 중독자, , 쇼핑, 날마다 목장에서 나누면서 서로가 가족들과 본인이 인내를 해야 한다.

70)  주님이 상급이 되지 않으면 서원을 할 수가 없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7. 19. 20:45

[우리들교회 2021718일 주일설교 말씀 요약(사도행전 18: 12~ 17/ 성령의 문제)]

 

 

 

<사도행전18: 12~17>

 

12절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While Gallio was proconsul of Achaia, the Jews made a united attack on Paul and brought him into court)



13절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This man," they charged, "is persuading the people to worship God in ways contrary to the law”)



14절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Just as Paul was about to speak, Gallio said to the Jews, "If you Jews were making a complaint about some misdemeanor or serious crime, it would be reasonable for me to listen to you)



15절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But since it involves questions about words and names and your own law--settle the matter yourselves. I will not be a judge of such things)



16절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So he had them ejected from the court)



17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Then they all turned on Sosthenes the synagogue ruler and beat him in front of the court. But Gallio showed no concern whatever)

 

 

<Prologue>

 

성령의 권면으로 성령의 백성이 되었지만 문제는 끝없이 일어난다.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하버드 교수인 마이켈 샌델이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새로 썼다.

책의 내용을 쉽게 요약하자면 학력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똑똑한데 재수 없는 놈이 되지 말고 돈과 상관없이 서로의 직업에 대해 너는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인정해주는 태도를 가지자는 것이다.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이러한 태도의 문제는 이미 정치권력을 바꿀 정도로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공정이 요즘은 화두이지만 그는 공동체 주의적 공화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이론을 표방하는 정치 철학자인데 중요한 이런 공정의 문제를 우리는 성령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 생각한다.

 

<말씀 요약>

 

성령의 문제가 되는 문제는 어떤 문제인가?

 

1.   일제히 일어나는 문제입니다(12)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공정에는 지도자가 참 중요한 것 같다. 갈리오(Gallio)는 로마 정부에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의 부친도 유명한 연설가였고 동생은 네로의 개인교사로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였다. 로마의 여러 속국 중에서는 아가야(Achaia)는 총독들이 가고 싶어 했던 지역으로 손꼽혔는데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아주 발달되고 안정적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적으로 갈리오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의 정치가와 장군들은 어떤 직책을 맡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서 다음 지위를 위한 준비기간으로 여겼다. 계속 높아져야 한다는 세속적 가치관을 가졌다. 우리 모두 그렇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벌 부부가 얼마 전 이혼을 했는데 그 이혼 사유는 그들의 결혼에서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니까 결혼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자신이 더 높아지고 나아지고 좋아지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한 갈리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1년의 임기 동안 아가야를 아무 문제없이 잘 관리하여 그 다음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A.D. 49년에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는데 그 때 아굴라(Aquila)와 브리스길라(Priscilla)도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유대인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돈을 잘 번다. 똑똑하다. 그래서 로마 정가에서는 늘 경계심이 있었는데 유대인들이 늘 자기들끼리 싸워서 문제를 일으키니까 총독의 성공 가도에 골치가 아팠다. 그런데 이번에도 유대인들이 로마 총독의 힘을 입어서 또 일제히 들고 일어나 동족인 바울을 고소하면서 싸우자고 법정으로 데려왔다.

갈리오가 유대 총독 되었을 때에”-총독이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 유대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다리신 것이다.

바울은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도다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격려 받고 사역을 했지만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 성령의 문제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비방하고 대적했던 유대인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일제히 한 일이 사도행전에 단 2번 나온다.

(1)예루살렘에서 스데반 죽일 때이고 (2)고린도에서 바울을 대적해서 법정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스데반(Stephen)과 바울(Paul)은 하나님 나라가 당장 이루어질 것 같은 최고의 제자와 사도이니까 사단이 일제히 달려든 것이다. 은혜가 있는 곳에 사단의 역사가 강한 것이 맞다.

“일제히”로 번역된 헬라어 뜻은 하나가 될 수 없는 장소와 시간과 마음과 뜻과 모든 요소들이 하나가 되어서 동일한 열정과 분노로 바울을 대적했다는 뜻이다.

고린도에 거주하던 유대인 무리들도 결코 하나가 될 수가 없는데 그런 그들이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과 재능과 로마의 법까지 이용해서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서 바울을 대적한다. 이 세상은 모두가 한 쪽은 총독이고 한 쪽은 유대인 부류에 속했다. 약육강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또 유대인끼리도 엘리트와 저학력자로 나뉘어서 서로를 비난하면서 정말 징하게 싸운다(능력주의) 여기에는 공정은 존재할 수 없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어디나 능력이 왕 노릇하면 집이나 가정에서도 이혼을 하고 다 망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안 믿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뭘 기대하겠는가? 성도의 길은 정말 좁은 길이다.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예수님을 죽이고자 할 때 하나 될 수 없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일제히 하나가 된 것과 같이 지금 바울에게도 일제히 달려드는 것이다. 너무 신기하지 않나? 이것은 바울이 답이라는 얘기다. 넘사벽. 인간이 악하고 음란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 음란을 못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바로미터가 예수님이고 바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못하게 하는 예수님을 세상 사람도 안 죽였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님도 죽였고 스테반도 죽였고 바울도 죽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 성경의 이런 일들이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적용되어서 나타날까?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한다. 엘리트들에게 (네가 성공한 것은) 네 능력 때문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들이 그런 말에 너무 극심한 반발을 한다. 또 저학력자나 중산층들에게 네가 성공 못한 것은 네가 능력이 없어서야라고 하면 그들도 역시 극심한 반발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능력주의 세상에서 패배한 사람은 실패를 오로지 내가 못난 탓으로 돌리는 모욕까지 떠안는다는 것인데 이러한 좌절과 분노가 승자의 오만과 충돌하면 민주주의 근간인 사회적 연대가 깨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 감정은 엘리트들에 대한 포퓰리스트적 반항의 주된 핵심이 된다. 한마디로 부러워하고 무시하고가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가난은 선이고 부자는 악인 것이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밖에 없다. 공정이라는 것은 없다.

그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환호하는 능력주의에서 말하는 기회의 평등, 균등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임금과 부를 가져야 된다는 사회주의가 맹신하는 결과의 평등도 아닌 조건의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부자와 빈자, 여러 계층이 만날 수 있는 공론의 장소를 확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공론의 장을 확보하고 시민들이 거기서 토론하고 타협하는 것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것이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고 계층과 상관없이 부딪힐 수 있는 그런 공간인 대중교통, 광장, 공립학교 같은 곳이 많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사립학교나 전용 VIP룸같이 부자들만 갈 수 있는 공간에서 살다 보면 빈자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 주의적 공화주의를 부르짖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악하고 음란한 죄인들이 차별 없이 모여서 토론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안하는 것보다 낫지만 그런 토론을 대중교통, 광장, 공립학교, 직업훈련소, 노조에서 잘할 수 있다고 하면서 세계적인 정치 철학을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마이클 샌델은 아덴 사람이 맞는 것 같고 이 분은 유대인이다. 성경을 잘 알 텐데 이분은 종교 란에 무 종교라고 썼다. 이 분은 666처럼 희대의 근사한 연구 때문에 너무 놀라지만 자기 죄를 모르면 차별 없는 나눔이 안 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본다. 능력주의의 차별과 폭정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원한 것은 모두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분배적 정의가 아니라 스스로가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존중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쓰임 받고 있다는 자존감이 있나? 샌델은 정의와 공정의 화두로 세계적인 정치 철학자가 되었지만 저는 그가 공동체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너무 반갑다. 자전거를 이론으로 많이 공부했지만 자전거를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이 안다. 이론으로 공부해도 (안 타보면) 딱 넘어진다. (샌델이) 이론으로 말했다면 저는 이 문제를 성령의 문제로 가지고 와서 나누는 우리 교회의 목장이 진짜 실행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자, 부자, 배운 자, 못 배운 자에게 끝없는 문제가 일어난다. 그렇지만 같이 모여서 서로를 체휼하는 것은 죄인의 입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죄인의 입장이니까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런 공동체가 정말 이 땅에 얼마나 있을까? 저는 우리 교회에서 이런 것을 나누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이 된다. 예를 들어 매를 맞고 쫓겨나도, 사랑받고 사랑하며, 그냥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얼마나 당신이 기여하는 줄 아느냐고 그 곳에 당신이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 줄을 아느냐고 끊임없이 주지시켜주는 공동체야 말로 샌델의 공동체 주의적 공화주의가 아니라 공동체 주의적 복음주의라고 명명하고 싶다. 더 나아가서 모든 진영 논리와 지역감정에 반하는 주 안에서 차별 없이 자기 죄를 보는 공동체가 대안이다.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다. 즉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문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지금 일제히 일어나 나를 대적한다. 그냥 정신적, 육적 문제로 육해공군 모두가 산전수전 다 일어나서 일제히 나를 대적하는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 성령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설픈 문제로서는 내 자신의 죄성을 결코 알 수 없기에 모든 문제가 일제히 일어나야만 완악한 내 죄가 깨달아지고 내가 예수께 항복하여 예수의 말씀이 어떻게 내 삶에 적용되어져 생명을 낳게 하는지가 경험되어지기에 이것을 성령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라의 문제가 심각하고 진영문제, 지역감정도 심각해도 이것은 날마다 일어나는 부부문제, 자식문제에서 내 죄부터 보는 것을 시작하지 않으면 결단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뼈 속까지 죄인인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풍요로워질수록, 망할수록, 또 자유가 클수록, 잘 살수록, 못 살수록 다 문제가 많아지는 것이다. 문제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똑같은 심판이라도 회개하면 구원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의 사건이 되듯이 똑같은 문제 속에 말씀이 들리면 그 문제는 성령의 문제가 된다. 결코 못 살고 잘 살고의 환경이 아니다. 그런데 진영, 지역, 나라 모두 환경을 가지고 난리를 친다. 돈이 있다, 없다. 우리한테 잘했다, 못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이다. 이것을 그 누가 계속 가르쳐주겠는가?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말씀으로 죄를 보는 공동체밖에 없다. (죄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문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느냐 안 만났느냐가 중요하다)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유대인들이 고발한 내용이 굉장히 허술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들이 고발한 내용이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권한다고 했다. 사람을 죽이듯 일제히 덤비는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게 허술한 것들이 많다. 이처럼 나를 죽이려고 일제히 덤벼드는 수많은 문제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도 별 거 아닌 문제들이다.

Ex)

(1) 2억을 빚을 져서 나는 죽고 싶은데 목장에 가보니 20, 70억 빚진 사람들이 웃으면서 목자를 하고 있다.

(2) 남편의 이상한 문자 하나를 보고 죽고 싶은데 목장을 가보니 23번 바람 피운 목자님이 또 웃으면서 목자를 하고 있다.

 

이 얘기는 죄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예수를 만났느냐, 안 만났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다면 이것은 성령의 문제가 되고 문제 자체를 들여다보면 유대인들의 고발이 얼마나 유치하고 허술하고 아이러니한지, 그리고 그게 무슨 공정인가? 고발한 내용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다. 예수가 없으면 죄를 모르고 그러면 매일 불공정 사회에서 우리는 사는 것이다. 정치 사회에서도 날마다 고발, 고소가 난무하는데 정말 도덕의 유치원시대에 다 살고 있는 것을 본다. 얼마나 허술하고 아이러니한 지를 날마다 가슴을 통탄하면서 보고 있다.

 

(적용# 1)

-온 세상이 일제히 달려들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문제가 있었나?

-나는 거기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자기 죄를 보는 목장이 세계적인 대안이며 기가 막힌 답이라는 것을 얼마나 인정하나?

 

내 문제를 다 성령의 문제로 가지고 가면

 

2.   의외의 도움으로 풀리게 하십니다(14)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기습적으로 잡혀온 바울이 법정에 섰다. 이 때 바울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전도한 사람들, 고린도에서 이제 막 믿게 된 사람들, 그리고 아가야와 마게도냐의에 세웠던 교회들을 위해서 입을 열 때인가 보다 하면서 입을 열려고 했는데 갈리오가 바울을 대신해서 대답을 한다. 이처럼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입을 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내 가족, 내 자녀가 아니라 정말 구원을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대신 말할 사람을 준비해주시기도 한다. 오늘 갈리오가 도와준다. 아가야 지방의 총독이다. 아가야는 고린도를 품고 있는 더 큰 행정구역이다. 이 갈리오는 친아버지도 로마의 원로원이 되어 있고 자기가 실제적으로 성장한 양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석학이고 철학자이고 수사학자이다. 그 형제인 세네카는 로마 황제의 철학 스승이다. 갈리오가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갈리오가 총독이 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이 고발을 한 것이다. 갈리오 총독이 재판권을 접수했는데 가만히 들어가 보니까 자기 로마 정부에서 시행하는 종교법에 위배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두 가지를 지적한다.

 

(1)바울이라는 사람이 사회를 어지럽혔나?

(2)그가 전한 내용이 비윤리적이냐? 하면서 재판을 기각 시켜버렸다.

  바울과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무죄를 선언했다.  판례가 남게 된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매 맞게 하시고 옥에 갇히게 하시고 이번에는 무죄로 판결이 나게 하셨다.

그러면 매 맞는 것은 나쁘고 저주인 것이고 무죄는 축복인가?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세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순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형편에 처해도 하나님의 순서에 토 달지 않고 순종할 사람으로 바울을 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100% 옳으시기 때문에 나에게 주시는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세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순서에 있는데 좋은 것은 축복이고 나쁜 것은 저주라고 생각하니 성령의 문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재판관들이 어떤 시비를 놓고 판결을 할 때 법전다음으로 판례집을 본다.

심지어 외국의 경우에는 어떻게 판례를 했는지 참조한다. 그만큼 갈리오의 기각 사건과 무죄 선언은 사도 바울에 대한 내용과 인물 자체에 대해서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갈리오라는 사람의 이 땅에서의 역할은 원로원이고 총독이고 다 떠나서 바울의 재판을 기각한 것이었다. 모든 법원과 사람들, 모든 일들 중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판결한 그거 하나 천국에 가서 남을 것이다. 갈리오의 판결이 그 이후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가야에서의 무죄 판결로 말씀을 전할 때 로마가 중립을 지키기가 너무 쉬워졌고 그게 약효가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바울이 전할 때는 그래도 위력적이었고 이후에 이 판례 때문에 로마 황제에게 까지 갈 수 있는 기초가 된 것이다. 의외의 도움이 너무 큰 역할을 했다. 우리 교회도 악하고 음란한 이 시대에 정말 말씀 묵상, 가정 중수 그 사명을 감당하고자 18년째 달려오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건이 있었겠는가? 모함 받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생각 못한 의외의 손길들을 허락하셔서 말씀 묵상을 도우시고 가정들을 도와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 억울해서 말하고 싶은데 그 때마다 내 입을 닫는 것은 내 생각이 죽어질 때 가능하고 내 생각이 죽어지는 것은 이 시대의 순교이고 내 자아가 죽어지려면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이 때 나의 모든 문제가 성령의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오늘 이 문제가 변하지 않는 내 남편, 완악한 내 아내, 내 자녀에게 그리고 가장 결코 변하지 않는 나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그리고 고린도보다 몇 배 더 힘든 로마에 복음이 전해지는 성령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내 입을 닫을 때 하나님께서는 의외의 도움을 다 예비해 놓으신다.

 

(적용# 2)

-나는 무조건 입을 열어 내 생각을 쏟아내야 시원한가?

-입을 열고자 할 때 구원을 위해 닫은 적이 있나? 닫았을 때 의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나?

 

3. 너희 언어와 명칭과 법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15~17)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여기서 갈리오가 판결문에 적은 언어(words)와 명칭(names)과 법(law)에 관한 문제는 법적 용어는 아니다. 헬라어 원문에 언어는 로고스(Logos)이고 명칭은 오노마(Orma)이고 법은 노모스(Nomos)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 단어들이 함축하는 개념은 일개 행정관이 재판 석상에서 표현하거나 말하는 단어가 아니다. 어느 재판자리에서도 어느 재판관도, 어느 행정관도 이 단어나 이 개념을 말할 수가 없는 이런 내용과 개념을 말한 것이다. Why? 갈리오가 그렇게 철학과 수사학에 능했기 때문이다.

 

오늘 나에게 닥친 문제가 너희 언어와 명칭과 법에 대한 문제라면 너희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바울을 죽이고자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의 언어와 명칭과 법에 대한 문제라면 성령께서 처리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으로 성령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가 결정된다. 그런데 우리는 언어와 명칭과 법에 집착한다. 단어 하나에 이혼하고 명칭 하나에 분을 품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법 하나에 분노한다. 하지만 반대로 단어 하나에 결합하고 명칭 하나에 분이 풀리고 법 하나에 분노를 삼키게 되는 것이다. 이 언어와 명칭과 법이 너희 생각인지 아니면 말씀인지가 성령의 문제임을 판가름한다. 성령의 문제라면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해결해주신다. 이것이 너희의 문제라면 갈리오처럼 손을 씻게 되는 것이다.

 

(예화)

 

똑같은 죄인임을 보게 하시는 조건의 평등이 우리를 성령 충만으로 가져가게 한다. 그래서 관계를 풀어 주셨다. 아내 집사님이 너희의 언어가 아닌 말씀에서 듣고 배운 언어, 구원의 언어를 쓰니(아내의 머리인 남편의 질서와 가정의 질서에 순종하지 못하고 내가 잔소리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너희의 언어와 명칭과 법, 너희의 문제에서 성령의 언어와 명칭과 법으로 말하니 성령의 문제로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책을 단숨에 읽고 양육숙제를 하고 예배를 녹취하고 이것이 성령의 문제가 된 것이다.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죄를 못 보는 사람은 나를 절대로 끝까지 도울 수가 없다. 부모님이나 부부나 남편이나 자기 죄를 못 보는 사람은 그냥 기도할 대상이지 나를 도울 대상이 못된다. 갈리오는 바울을 도우려는 착한 사람이 아니고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소스데네(Sosthenes)를 때려도 상관하지 않는 냉혹하고 아주 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 문제가 너희의 문제인지 우리의 문제인지를 분별할 줄을 아는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이 문제가 자기의 로마의 문제였다면 온 힘을 다해 도왔을 것이다. 요즘엔 지도자들 중에서도 상식도 안 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사람은 일본 문제를 돕고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를 돕는다. 그런데 일본이 왜 우리나라를 돕고 미국이 왜 우리나라를 돕겠는가? 그런 상식을 생각하라. 우리는 그냥 구원 때문에 기도를 해야 한다. 세상은 다 이기적이다. 여기서 소스데네는 바울의 아픔에 함께 동참했다기보다 그리스보 이후에 회당장이 되어 헬라 유대인 동족들과 바울을 고소했다가 바울이 무죄가 되니까 동족 유대인들에게 법정에서 두들겨 맞았다. 그래서 구원이 되었다. 그러니까 두들겨 맞아서 성령의 문제가 되게 하셨다. 맞았다고 나쁜 게 아니다. 맞아서 고전 1:1에 보면 바울의 최고 동역자가 되며 고린도 교회의 4번째 감독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매 맞았다고, 무죄가 되었다고 좋고 나쁜 것을 여러분들이 결정하면 안 된다. 하루하루 말씀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면 그게 하나님의 세팅의 구원의 순서에 들어있는 한 역할인 것뿐이다. 갈리오처럼 세상 법과 문제를 분별하며 이 문제가 로마의 문제인지 유대인들의 문제인지 분별하는데 우리는 어느 나라의 문제인지 모르고 맨날 욕만 하면 되냐구요..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면서 사랑하고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구원의 문제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고 성령의 문제가 되는 비결이다. 우리의 언어가 성령의 언어가 되어 이 문제가 성령의 문제가 될 때 성령께서 온 힘을 다해 우리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도우실 것이다.

 

(적용 3)

 

-나는 집에서나 어디서나 어떤 언어와 명칭과 법에 뒤집어지나?

-혹은 교회에서 이해가 안 되는 언어와 명칭과 법은 무엇인가? 그것이 구속사인가? 아니면 성령의 언어를 써서 문제가 해결된 한마디는 무엇인가?

 

 

<Epilogue>

 

도덕의 유치원시대에 이세상은 절대로 공정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내가 죄인임을 깨달으면 그 사건이 성령의 문제가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인데 성령의 문제가 되면 하나님은 의외의 도움으로 그 어떤 문제도 풀리게 하신다는 계시를 주시니 할렐루야 입니다.

 

1)  은혜가 있는 곳에 사단의 역사가 있다

2)  문제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이다

3)  내가 문제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4)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내가 죄인임을 깨달으면 그 사건의 문제가 성령의 문제가 된다

5)  도덕의 유치원 시대에 이 세상은 절대로 공정하지 않다

6)  내 생각이 죽어지는 것이 이 시대 순교다

7)  이세상은 절대로 공정하지 않으므로 성령의 문제가 될 때 하나님은 의외의 도움으로 문제가 풀리게 하신다

8)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누구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9)  공정의 문제를 우리는 성령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

10) 은혜가 있는 곳에 사단의 역사가 강한 것이 맞다.

11) 좌절과 분노가 승자의 오만과 충돌하면 민주주의 근간인 사회적 연대가 깨진다는 것이다.

12) 이러한 도덕 감정은 엘리트들에 대한 포퓰리스트적 반항의 주된 핵심이 된다.

13) 한마디로 부러워하고 무시하고가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14) 가난은 선이고 부자는 악인 것이라는 논리에는 옳고 그름 밖에 없고 공정이라는 것은 없다.

15) 능력주의의 차별과 폭정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원한 것은 모두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분배적 정의가 아니라 스스로가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존중이 필요한 것이다.

16) 죄인의 입장이니까 차별이 없는 것이다.

17) 어설픈 문제로서는 내 자신의 죄성을 결코 알 수 없기에 모든 문제가 일제히 일어나야만 완악한 내 죄가 깨달아 지고 내가 예수께 항복하여 예수의 말씀이 어떻게 내 삶에 적용 되어져서 생명을 낳게 하는지가 경험되어지기에 이것을 성령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18) 뼈 속까지 죄인인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풍요로워질수록, 망할수록, 또 자유가 클수록, 잘 살수록, 못 살수록 다 문제가 많아지는 것이다.

19) 문제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20)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똑같은 심판이라도 회개하면 구원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의 사건이 되듯이 똑같은 문제 속에 말씀이 들리면 그 문제는 성령의 문제가 된다.

21)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이다.

22) 죄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예수를 만났느냐, 안 만났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23) 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다면 이것은 성령의 문제가 되고 문제 자체를 들여다보면 유대인들의 고발이 얼마나 유치하고 허술하고 아이러니한지, 그리고 그게 무슨 공정인가? 고발한 내용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다.

24) 예수가 없으면 죄를 모르고 그러면 매일 불공정 사회에서 우리는 사는 것이다.

25) 정치 사회에서도 날마다 고발, 고소가 난무하는데 정말 도덕의 유치원시대에 다 살고 있는 것을 본다.

26)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입을 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내 가족, 내 자녀가 아니라 정말 구원을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대신 말할 사람을 준비해주시기도 한다.

27)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세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순서에 있는 것이다.

28) 하나님은 100% 옳으시기 때문에 나에게 주시는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세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순서에 있는데 좋은 것은 축복이고 나쁜 것은 저주라고 생각하니 성령의 문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29) 너무 억울해서 말하고 싶은데 그 때마다 내 입을 닫는 것은 내 생각이 죽어질 때 가능하고 내 생각이 죽어지는 것은 이 시대의 순교이고 내 자아가 죽어지려면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는 것인데 이 때 나의 모든 문제가 성령의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30) 오늘 나에게 닥친 문제가 너희 언어와 명칭과 법에 대한 문제라면 너희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31) 구원의 언어와 명칭과 법에 대한 문제라면 성령께서 처리해 주신다는 것이다.

32) 이것을 아는 것으로 성령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가 결정되는데 우리는 언어와 명칭과 법에 집착한다.

33) 단어 하나에 이혼하고 명칭 하나에 분을 품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법 하나에 분노하지만 반대로 단어 하나에 결합하고 명칭 하나에 분이 풀리고 법 하나에 분노를 삼키게 되는 것이다.

34) 이 언어와 명칭과 법이 너희 생각인지 아니면 말씀 인지가 성령의 문제임을 판가름한다.

35) 성령의 문제라면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해결해주시는 것이며 이것이 너희의 문제라면 갈리오처럼 손을 씻게 되는 것이다.

36) 자기 죄를 못 보는 사람은 나를 절대로 끝까지 도울 수가 없다.

37) 우리는 그냥 구원 때문에 기도를 해야 한다.

38) 세상은 다 이기적이다.

39) 무죄가 되었다고 좋고 나쁜 것을 여러분들이 결정하면 안 된다.

40) 하루하루 말씀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면 그게 하나님의 세팅의 구원의 순서에 들어있는 한 역할인 것뿐이다.

41)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구원의 문제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고 성령의 문제가 되는 비결이다.

42) 우리의 언어가 성령의 언어가 되어 이 문제가 성령의 문제가 될 때 성령께서 온 힘을 다해 우리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도우실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7. 12. 22:51

[우리들교회 2021711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4: 23~ 31/응답 받는 기도/정정환목사)]

 

 

<사도행전 4: 23 ~ 31> 

 

23절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On their release, Peter and John went back to their own people and reported all that the chief priests and elders had said to them)

 

24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When they heard this, they raised their voices together in prayer to God. "Sovereign Lord," they said, "you made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the sea, and everything in them)

 

25절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You spoke by the Holy Spirit through the mouth of your servant, our father David: " 'Why do the nations rage and the peoples plot in vain?)

 

26절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The kings of the earth take their stand and the rulers gather together against the Lord and against his Anointed One)

 

27절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Indeed Herod and Pontius Pilate met together with the Gentiles and the people of Israel in this city to conspire against your holy servant Jesus, whom you anointed)

 

28절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They did what your power and will had decided beforehand should happen)

 

29절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Now, Lord, consider their threats and enable your servants to speak your word with great boldness)

 

30절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Stretch out your hand to heal and perform miraculous signs and wonders through the name of your holy servant Jesus”)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After they prayed, the place where they were meeting was shaken. And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spoke the word of God boldly)

 

 

<Prologue> 

 

원래 기독교 교회라고 치면 사월이 고난 주간이죠. 예 그런데 저는 이 여름철이 고난 주간입니다. 이번 주일이 사순절 마지막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루나 아내가 제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점점 썩어져 가고 있구나틀린 말이 아니죠. 다음 주일에는 제 개인적으로 부활절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보실 이 본문은 담임 목사님께서 2년 전에 성령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해 주신 내용입니다. 그때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성령의 기도를 하기보다는 내 생각으로 떼 부리는 기도를 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깨닫고 회개를 했었습니다 이번에 이 동일한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여전히 잘 변화되지 않고 성령의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몇 년 전에 인터넷에 이런 기사가 뜬 적이 있었습니다. ‘비닐봉지 메시(Messi)에게 찾아온 기적아마 이 기사를 보신 분이 계실 텐데요 당시 SNS 상에는 몇 장의 사진이 돌았습니다. 다름 아닌 한 아이가 비닐봉지로 만든 유니폼을 입고 축구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스타인 메시의 유니폼을 비닐봉지로 만들어서 입고 있었던 것이죠. 아마. 지금 사진이 나오고 있나요? 비닐봉지로 이렇게 만들어진 저 옷이 지금 비닐봉지 거든요. 그 아이의 형이 비닐봉지로 저 메시의 옷을 동생에게 만들어줬다고 합니다. 얼마나 메시를 좋아하면 이런 옷을 입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좀 좋아해야 되는데 말이죠 이 어린 축구팬의 모습에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열광을 했습니다. 이 아이가 어디 사는 아이인지 꼭 찾으면 좋겠다. 이런 바램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이 아이를 찾았습니다 다름 아니라아프가니스탄에 사는 다섯 살 된 아흐마디라는 소년이었습니다 축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형편이 이렇게 따라주지 않다 보니까 이 아이 형이 직접 이 비닐봉지로 만들어준 거죠. 나라가 내전으로 불안한 상황에서도 꿈을 간직한 이 어린 소년의 사연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물론 메시(Messi) 또한 이 사연을 들어서 알게 됐죠 그리고 이 아이를 직접 메시가 만나줬습니다 이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이 아이가 이제 메시가 축구 하는 경기장으로 가게 됐죠. 메시가 자기의 유니폼을 친히 선물해 주고 축구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서도 이 아이를 만나서 함께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사진 한 번 보여주시죠. 네 지금 아르헨티나에서 옷을 선물해 주고. 직접 경기장에서 저 아이가 메시를 만나서 축구 경기를 관람을 했습니다. 아마 저 꼬마아이에게는 잊을 수 없는 평생 뭐 간직할 추억이 됐겠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이 말처럼 이 아이의 사모함이 메시에게 전해졌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선물을 받게 된 겁니다. 아마 어쩌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간절함과 절박한 심정으로 드렸던 기도에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때로는 내가 전혀 예상치 않았던 때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응답해 주시기도 하시죠.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이 하나님 때문에 내가 감격하면서. 이 다섯 살 꼬마처럼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간직합니다. 그럼 이 시간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1.   응답 받는 기도는 동료와 한마음으로 소리 높여 이릅니다. 



 

23절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사도행전 4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예루살렘에 서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풀려난 뒤에 동료들에게 달려갑니다. 사도와 성도들이 동료입니다. 동료라는 단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죠 그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만나고 싶었던 얼굴이 그들이었죠 성도에게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찾아가는 것은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버립니다. 예수님이 안 계신 상황에 이 문제가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두려움의 포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도할 공동체와 동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공동체를 향했습니다. 나는 어떠합니까? 내 발걸음과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공동체와 동료를 찾기보다는 해결해 주는 사람만 찾지 않습니까?

 

내 옆에 사람이 없다 보니 인터넷에 들어가 썰과 이야기를 듣느라 소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해 주고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눈에 보이는 힘 있는 유력자를, 권세자를 찾고 의지합니다 그 대상이 나에게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그 대상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상의 큰 특징은 언젠가는 반드시 나를 배신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찾고 의지하는 것은 반드시 나를 배신합니다. 사람도 명예도 그렇습니다. 작년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웹 서핑을 하다 보니까 시간이 금방 갑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정보가 쌓이다 보니 쓸데없는 걱정만 됩니다. 그냥 모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가 난 날 저에게 주신 말씀 북 이스라엘 왕 예후의 떠나지 않는 죄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세운 여로보함의 죄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게 저였습니다. 사건이 생기면 공동체로 달려가 삶을 나누기보다는 유튜브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찾아갈 동료와 기도 제목을 나누기보다 혼자 고민하고 있지 않습니까? 찾아갈 동료가 없다면 내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공동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위로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예수의 피를 나눈 믿음의 공동체에서만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떠난 신앙은 절대 자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 하기에 넘어지는 존재입니다. 나를 일으켜줄 지체가 있어야 합니다. 목장에는 안 가고 주일예배 만 드리는 분이 있지 않습니까? 목장에는 나오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나오길 바랍니다.

 

타 교회를 출석하고 계신데 홈페이지를 통해서 담임 목사님의 설교와 또 새벽 설교를 7년 동안 들어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최근에 이 아들의 자살 징후가 너무 높아서, 도대체 이걸 누구와 상의해야 될지 모르겠다면서 제가 청년부를 담당하는 줄 아시고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제가 사연을 다 들어보니까 이 아들은 우울증이 참 심하고 또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서 계속 죽고 싶다고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하고 또 하루 전날 밤에도 이 집사님이 주무시고 있는 방으로 찾아 들어와서 죽겠다고 그렇게 소동을 벌였답니다. 이 집사님은 날마다 새벽 기도도 하시고 또 출석하는 이 교회가 가족 같은 분위기라서 정말 이 문제를 나눌 사람이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 불안하고 어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에 이 가족 같은 분위기의 교회라는 이 말을 듣고 나니 제 맘이 벙벙해지더라고요. 아니 가족 같은 교회인데 왜 이런 고난조차 나눌 수가 없을까? 그런데 집사님이 이러시는 겁니다 가족같이 지내다 보니까 이런 자녀 문제가 오히려 수치가 되고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날까 봐 얘기를 못하겠다고요. 그렇게 저와 상담을 한 뒤에 여자 목장을 연결해 드렸습니다 다행히도 비슷한 고난을 겪고 계신 또 이 목자님과 동료들이 계신 목장으로 이렇게 연결이 되셔서 그날 온라인으로 목장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사님으로부터 다시 저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목장에서 예배 잘 드렸습니다 목장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구원의 사건임을 몸소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인내하면서 가겠습니다그 문자를 보면서 제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 이 집사님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 고난을 처음으로 동료에게 말씀하게 되었구나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눌 수가 있고 들을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이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 때로는 우리가 공동체에서 상처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공동체 안 가겠다는 바로 그것이 자기 중심적인 합리화입니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오해하고 상처받고 내가 회복되는 시간을 통해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죠. 바로 그게 내가 거룩해져가는 성화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이 초대 교회 동료들은 이제 무엇을 할까요? 큰일 났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제 정말 우리 망했다 이렇게 걱정하고 염려했겠습니까? 아니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까? 어떻게 이 시간을 극복해 나가지? 그러면서 대책 회의를 했을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들이 걱정했다는 내용도 무슨 회의를 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이들은 두 사도의 이야기를 듣고 곧장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24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대주재여(Sovereign Lord),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삶의 결론인 것 같다. 이렇게 판단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무슨 나눔이 저렇게 이상하지? 뭐 저렇게 장황하고 두서가 없냐 병원에 가서 상담 받고 약이나 먹으라고 할까? 이렇게 공감도 애정도 없는 그런 반응으로 듣고 계시진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초대 교회 동료들은 이 두 사도의 나눔을 듣자마자 한 마음으로 소리를 높여 기도합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 공동체에 있는 동료들의 나눔은 무엇입니까? 내가 한마음으로. 함께 소리 높여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입니다 그가 지금 겪고 있는 큰 문제는 내가 함께 소리 높여서 중보해야 할 기도 제목이죠. 사실 저도 목장을 탐방하거나 이렇게 모임들을 인도하다 보면 자동 반사적으로 나눔 하시는 분들의 나눔을 이렇게 제가 해석하게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판단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또 정죄도 하고 처방질를 할 때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것은 바로 그 지체의 기도 제목입니다. 자 그럼 이제 사도와 성도들은 누구에게 기도를 할까요?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그렇게 기도합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대주재(Sovereign Lord)이신 주님께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 대상은 바로 절대 통치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 나의 모든 사정을 아뢰고 기도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합니까? 엄마에게 배가 고프다고 말을 하죠. 밥 좀 달라고 합니다. 아프면 나 어디 아프다고 말도 합니다. 그러면 엄마가 밥도 차려주고 또 병원도 데리고 가시죠. 그런데 정작 애가 배가 고픈데 말을 안 합니다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아프다고 말을 안 합니다.

 

그럼 이게 정상적인 관계입니까? 문제가 있는 것이죠. 우리 집의 아들이 내가 아들이 자기가 배가 고픈데 얘가 나를 외면하면서 옆집 엄마한테 가서 아줌마 저 좀 밥 좀 주세요.

그러면 얘가 정상입니까? 아주 이상한 거죠.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처럼 내가 하나님을 외면한 채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사람만 찾아다니고 의지하고 다른 것만 바라본다면, 이게 옆집 아줌마한테 가서 밥 달라고 하는 애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적용#1)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찾고 어디를 향합니까

-누구와 그 문제를 이야기합니까

-나는 기도를 부탁하고 한마음으로 소리 높여 기도할 동료가 있습니까? 



2.   응답 받는 기도는 말씀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25절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plot in vain)

26절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사도와 성도들은 이제 시편(Psalms) 2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기도합니다 시편 2편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 시입니다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하신 말씀이죠. 여기서의 열방은 이방 나라들이고 족속은 유대민족입니다. 세상의 군왕들은 로마 통치자들이고 관리는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이들 모두가 한 편이 되어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는 일에 관여를 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세상의 권력자들이죠 그러다 보니 분노로 떠들어내고 허사를 경영(rage and plot in vain)합니다. 사도와 성도들은 이렇게 말씀으로 기도하다 보니 지금 자신들에게 당면한 이 문제를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이 사건이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말씀이 없는 기도는 언제나 기복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분의 뜻을 말씀으로 다 계시해 주셨는데 기복적인 기도는 내가 말씀을 듣고도 계속 내가 뭘 다 하려고만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에 대한 반응이죠. 그런데 이 말씀과는 상관없이 나의 생각만 주구장창 부르짖는다면 이건 소통이 아니라 불통인 겁니다. 정욕으로 구하는 떼 부리는 기도에 불과합니다 제가 우리들 교회 부임하고 얼마 안 돼서 한 모임에서 기도회를 인도하던 때였습니다 나름대로 제가 이 기도회를 뜨겁게 잘 인도했다고 생각하고 마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역자님이 저에게 오시더니 목사님 수고하셨어요 이렇게 말씀하시길래 나름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자님이 이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수고하셨는데. 목사님 앞으로는 말씀을 좀 넣어서 기도해 주세요.

 

담임 목사님의 저서에도 보면 매 챕터가 끝나기 전엔 말씀으로 기도하기그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우리가 듣게 된 말씀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가죠 그래서 진정한 기도 응답은 상황과 환경이 바뀌기보다 이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의도를 말씀으로 깨닫게 되는 겁니다 내가 영적인 것을 깨닫게 되면 육적인 것도 내가 필요한 만큼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이렇게 사도와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인용한 이 시편 2편의 말씀은 이제 본문 27절에서 그대로 실현됩니다 27절입니다.

27절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해롯(Herod)과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s)는 이방인(Gentiles)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헤롯 안디바는 로마 황제에 의해 임명되어서 갈릴리를 다스렸던 분봉 왕이었습니다본디오 빌라도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린 로마 총독입니다 이들은 이방인과 유대인과 합세하여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르고 대적했습니다 사실 이들은 유대 지역을 다스리면서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개와 원숭이 같은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는 딱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한패가 되어서 공모한 것이죠.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서도 함께 동역하지만 이렇게 악한 일을 위해서도 함께 동역을 합니다. 심지어 평소 사이가 이게 나빴던 원수끼리도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의기 투합을 하죠. 저도 한 10여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는데요 제 상사로 인해서 참 많이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단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부하 직원들도 그래 했습니다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직원들이 유일하게 한 패가 되고 하나가 되는 때가 있으니 언제일까요? 바로 그 상사를 뒷담화 할 때죠. 함께 모여서 글을 도마 위에 올려놓아 놓고 난도질을 합니다

 

그를 깎아내리고 험담하면서 심지어는 내가 어떻게 골탕 먹일까? 소극적인 반응이라도 하자면서 막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냅니다. 정말 이런 일을 도모하는 데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머리가 팽팽 돌아가죠. 이렇게 우리는 작은 일에도 분노하면서 허사를 경영합니다 허사를 경영한다는 말은 헛된 일을 꾸민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뭐 비단 직장생활 뿐이겠습니까? 우리가 공동체에서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난 더 이상 이 목장 안 나갈 거라고 그렇게 분노하면서 비난을 하십니까? 그 시간에 나는 집에서 TV나 보고 그냥 잠이나 자겠다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바로 이게 허사를 경영하는 겁니다 배우자가 나를 자꾸 뒤집어 놓는다고 분노하다가 공동체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 더 이상 너랑은 못 살겠다면서 이혼을 생각하십니까? 허사를 경영하는 겁니다 집에 애들이 공동체도 잘 나가고 있는데도 얘들이 학교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분노하다가 더 이상 이번 수련에는 내가 보내지 않겠다면서 그 시간에 학원으로 돌리십니까? 허사를 경영하는 것이죠. 또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나는 매일마다 큐티를 하고 공동체도 이렇게 열심히 섬겼는데. 신 결혼은 커녕 신 교제에 손바닥만한 구름도 안 보인다고 그렇게 분노하다가 불신 교제를 감행합니다. 허사를 경영하는 것이죠. 그런데 바로 이런 것들이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꾸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죠 심판자의 자리에서 통치자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리들처럼 그 자리에 앉아서 내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죠삶의 주권자 대주재이신 이 통치자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옳고. 그릇만 따지면서 작은 일에도 그렇게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합니다 사실 이렇게 말한 저야말로 옳고 그름의 화신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참 인간적입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간혹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죠. 우리들 교회에서 듣는 인간적이라는 말은 절대 칭찬이 아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 반대라는 걸 아시죠. 그러다 보니 저는 이렇게 구원 때문에 해야 될 말을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간혹 합니다 이게 내 속의 인본주의더라고요 이 인본주의는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심판자 노릇을 내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가치관으로 분노하고 끊임없이 헛된 일을 꾸미고 허사를 경영하죠 제가 그동안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거스르고 대적해 왔더라고요



(적용#2)

 

-나는 말씀으로 기도합니까? 내 생각과 정욕으로 기도합니까

-내가 분노하면서 경영하고 있는 허사와 꾸미고 있는 헛된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기름 부으신 자를 대적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에 누구와 한패가 됩니까?

 

 

3.   응답 받는 기도는 하나님의 권능과 뜻이 이루어집니다. 

 

 

28절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 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 로마의 정치 지도자들과 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악을 자행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자유 의지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난 내 몫의 이 십자가도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예정하신 거죠. 내가 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보면 내 현재의 이유를 깨닫는 권능을 얻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죠 나를 구원하시려고 이 고난을 사용하시는구나 나를 거룩하게 빚어 가시기 위해서 이 일을 쓰고 계시는구나 그렇게 깨닫습니다 어제도 제가 양육 교사를 인도하는데 감옥에 갇힌 이 바울(Paul)과 실라(Silas)처럼 옥에 갇힌 이 환경에도 찬송하고 기도하신 분들이 나눔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고백을 계속 듣고 있는데 정말 제 마음도 숙연해지더라고요. 비록 지금 내가 옥에 갇혀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권능과 뜻을 나의 삶 가운데 이루어 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통해 나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빚으실 것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내 곁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해롯 같은 배우자나 식구가 있습니까? 빌라도 같은 직장 상사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 대상이 나를 지금 아프게 하는 질병일 수도 있을 겁니다. 직장이나 사업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이 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합세해서 한패가 되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권능과 뜻대로 예정하신 것을 나에게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것을요. 택자에게는 어떤 것도 지나고 보면 구속사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게 깨달아 지면 더 이상 내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가 나오겠죠.

 

여러분, ‘내가 감사 해야지하면서 내가 감사 감사를 외친다고 감사가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죠. 나의 지금의 고난이 성경에 써 있고 내 현재의 이유를 아는 권능을 베풀어 주시기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예정하신 대로 나와 우리 가정의 구원을 반드시 이루어 가심을 믿기 때문에 이것을 소망하기 때문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걸 모르니까 사건만 일어나면 나는 시험 들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 믿음 없는 거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왜 나에게 자꾸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이런 종류의 말들을 쏟아 놓죠. 바로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권능과 뜻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지금 당장에 나의 만족만을 구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얼굴이 늘 어둡고 차갑고 춥습니다 이 말을 제가 들으니 참 저도 찔리는데 저도 공동체에서 얼굴이 추워 보인다는 말을 몇 번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 얼굴이 구원의 소망이 있는 얼굴인가? 기쁨이 있는 얼굴인가? 그러면서 혼자 입 꼬리를 들어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썩은 미소만 지어지더라고요 사실 그게 그런다고 될 일이겠습니까? 내 얼굴에 기쁨이 없는 까닭은 내 생각이 자꾸만 이 현재의 고난과 이 십자가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까지도 예정하심을 그걸 믿고 확신한다면 그 얼굴에 주름이 펴지게 되겠죠 현재 이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좋게 비교할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주님의 죽으심과 이 부활에 참여함으로 내가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고 천국을 소유한 이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기쁜 것이죠. 목사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처럼. 영생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지내게 됩니다. 아 그러면 내 얼굴에 광채가 나지 않겠습니까?

 

(적용#3)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예정하신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지금 내 얼굴은 어떻습니까어둡고 춥습니까

밝고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까?

  

4.   응답 받는 기도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29절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그들이 받고 있는 이 위협을 굽어 살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들은 위협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위협을 주목하사 자신들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 집 애들이 게 아주 어릴 때 제가 놀이터에 데리고 와서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막 놀다가 간간히 저 곁에 있는 저를 한 번씩 쳐다보더라고요 애들이 왜 자꾸 저를 쳐다볼까요? ‘아빠가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구나’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구나’ ‘나를 보호해줄 거야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보는 거죠. 그리고 이 아이들이 그 마음처럼 저 또한 이 아이들을 계속 주목했습니다 혹시나 넘어지지 않을까? 얘들이 어디 부딪혀서 다치지나 않을까? 그 마음으로 이 아이들을 주목하는 것이죠 바로 그것이 굽어 보시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굽어보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응시하고 주목하심으로 지켜보시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해야 되는 것이죠 강퍅한 종교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더 이상 너희들은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사도와 성도들은 오히려 담대하게 전하게 해 달라고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도가 입에서 나오게 됐을까요이들은 자신이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게 되었음을 믿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자신들 앞에 당면한 이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신뢰했습니다.

 

그 믿음이 있으니까 이 기도가 나온 것이죠. 여러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고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어떤 해를 받는 게 싫겠습니까? 내가 예수로 죽고 내가 예수로 살게 되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받게 되는 어떤 해도 나에게는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지금 당면한 이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현재 이 고난에서도 나를 지켜달라고 지금 이 십자가를 잘 지고 가게 해주시기를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목에 매인 이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나와 우리 가정의 구원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죽어짐과 내가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자기 부인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 가정에도 부활의 빛을 비춰 주실 것을 소망하기 때문이죠그러다 보니 이 초대 교인들의 기도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들의 변화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회피하는 기도가 아니라 직면하는 기도였죠. 이들은 현실 회피 문제 회피 상황.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문제를 직면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상황을 돌파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던 것이죠 하나님 저들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주님, 우리를 담대하게 하심으로 이 생명의 복음을 누리고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십시오그렇게 기도했던 겁니다 여러분 요즘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시련 가운데 있다면 주님께서 나를 굽어 살펴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고난 한복판에서도 주님 나를 보사, 이 문제를 통과하게 해달라고 기도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내 삶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담대하게 말씀을 적용하고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사도들과 성도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30절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miraculous signs and wonders)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담임 목사님께서는 이 본문을 설교하실 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곤고한 환경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표적이 되고 그 사건이 해석되는 것이 기사라고요 내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가지면 나의 모든 환경은 남을 죄에서 꺼내줄 환경으로 쓰인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내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든 죄와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을 시인하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기도할 때. 성령님은 나로 하여금 십자가로 남길 진리의 길을 선택하게 하십니다.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그래서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응답 받는 기도입니다사도와 성도들이 그렇게 기도했을 때 이제 기도 응답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하던 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헤롯이나 빌라도 종교 지도자들이 변화된 게 아니었습니다. 위협의 환경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도했던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 삶의 지축이 흔들리고 진동하는 사건에서 받게 되는 기도 응답은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두려움 충만, 욕심 충만, 자기애 충만, 의심 충만, 불신 충만, 불안 충만에서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말씀으로 충만해집니다 기도했더니 내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꼴보기 싫은 저 인간이 변화되는 게 아니라 그를 미워하던 내가 먼저 변화되는 것이죠. 기도하던 내가 성령 충만하게 되는 것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 그게 최고의 기도 응답입니다. 여러분 성경 충만이 무엇입니까? 내가 말씀을 적용하고자 듣기 힘든 바를 드러내는 것이죠 내가 그렇게 변하면 성령의 열매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습니다.

 

내가 말씀으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가장 먼저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식구들이 귀히 여기기 시작합니다. . 우리 엄마가 왜 저렇게 변했지? 우리 아빠가 뭐 때문에 저렇게 달라졌지? 바로 우리 가정의 구원 역사는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성령 충만은 단 하루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매일 이어지고 연습 되고 반복되어 져야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되죠. 우리가 보통 어떤 계기로 이렇게 은혜를 이렇게 받게 되면 하루 이틀 정도 이렇게 적용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버리죠 그러니 우리 자녀들도 그걸 다 압니다.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카톡이라도 보내면, 아빠 요즘 일대일 양육 숙제 적용하는 거 아니야? 엄마 혹시 목장 처방 때문에 억지로 그러는 거죠? 애들도 내가 진짜 성경 충만한지, 아닌지를 다 압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내가 들은 말씀이 있어서 적용한다면 그게 성경 충만하다는 증거겠죠 만일. 나는 하나도 변화된 게 없는데 내 기도 응답으로 남편과 자녀가 변화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오히려 이 변화된 남편과 자녀 입장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는 이 엄마를 보면서 얼마나 이상하고 억울하겠습니까? 기도하는 나는 하나도 안 바뀌고 상대방이 바뀌기 만을 바란다면 그 기도는 바로 욕심 충만의 기도입니다.

 

(적용#4)


-나는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까?

고난에서 지켜달라고 기도합니까? 나는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 기도합니까?

내 곁에 사람과 환경이 변하기 만을 기도합니까?

 

사실 저는 돌아보면 이런 응답 받는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제 신앙은 이 기복의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를 못했습니다. 그저 이 고난을 피하게 해 주시기를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게 해 주시기 만을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 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저희 식구들에게 많은 위로를 해 주셨던 분이 이모와 이모 부셨습니다. 지난주에 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나눔을 했었는데요. 그런데 이모부는 언제나 교회와 크리스찬들을 늘 비판하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이모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보살이었습니다 그 이모부가 저와 함께 식사를 하던 자리였습니다.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어요. 너네 집이 예수 믿어서 잘 된 게 뭐가 있냐? 그렇게 얘기하시면서 저에게 소주잔을 딱 내밀었습니다. 제가 그 잔을 어떻게 했을까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잔을 받아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네 맞습니다. 그렇게 말해버렸습니다. 아버지 사건이 해석되지 않다 보니 예수를 믿어도 나와 우리 집은 잘 된 게 없다고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불신자 앞에서 제 신앙을 완전히 부정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 뒤에 그 이모부의 아내인 이모가 쓰러지셨습니다. 지병이 심해져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고 아주 위독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 소식을 듣게 된 때가 주일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과거에 있었던 그 이모부와의 대화가 제 머릿속에 이렇게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내가 도대체 불신자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에. 이 마지막 때의 이모가 구원받고 천국에 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침이었습니다. 이종 사촌형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런데 이 전화의 내용이 이랬습니다 이모가 잠시 의식이 돌아왔는데 말을 전혀 못 하시는데 종이 한 장을 달라고 하셨답니다. 그리고 그 받은 종이에다가 말씀은 못하고 은혜, 성경이라는 이 두 단어를 쓰셨다는 겁니다. 이 불교 신자인 그 집 안의 식구들이 이게 뭔지 해석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에게 전화를 하신 거죠. 이모는 교회 문턱을 넘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입원하기 전에는 절에도 다녀 오셨거든요 중환자실에서는 가족 이외에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모의 이런 행동에 가족들도 귀히 여기고 저도 놀라게 됐습니다 그날 곧바로 성경책을 사서 병원으로 붙여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병원을 가려고. 제 이종 사촌 형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모가 지금 깨어나지 않고 있으니까 지금 너가 와도 대화를 할 수 없어서 소용이 없다.

 

나중에 오라고 만류를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 때가 하나님께서 이모의 구원을 위해 주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무작정 지방에 있는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중환자실 복도에는 5년 전 너네 집이 예수 믿어서 잘 된 게 뭐가 있냐? 그렇게 얘기하셨던 이모부가 초조한 모습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 처음으로 이모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됐습니다 일흔이 넘도록 말문을 굳게 닫고 계셨던 이모부는 이모가 만일 회복되어서 교회에 나간다면 나도 나가야지 뭐 이렇게 얘기하시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데 정말 제 귀를 의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면회 시간이 되어서 병실에 들어갔는데 순간 이모의 의식이 돌아와서 눈을 뜨고 계시는 겁니다. 저는 이모에게 하나님은 이모를 사랑하신다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계신 이 이모의 손을 꼭 잡고 그렇게 기도하는데 이모도 눈물을 흘리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시더라고요. 마치 제가 오기를 기다리신 것처럼. 그리고 그 말을 해주길 바라던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위독 하셨던 이모가 몇 달 뒤에 병에서 회복되어서. 병원에서 퇴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이모를 뒤에서 밀면서 함께 교회에 오신 분은 다름 아닌 이모부 이셨습니다이모는 그렇게 예수님을 믿으시고 그 이듬해 천국에 가셨습니다

 

장례식 날 찬송이 울려 퍼지는 빈소에서 이모부는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이 말을 하셨습니다 정화나 고맙구나. 네가 그때 보내준 성경책이 이모 영정 사진 앞에 펼쳐져 있다정말 고맙구나. 그렇게 이모부가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모가 소천 하신 뒤에도 이모부는 혼자서 교회를 출석하시면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5년 전에 이모부의 조롱 앞에서 예수님을 거스르고 대적했던 저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자리로 저를 몰아가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과거에는 입조차 열지 못했던 저였는데 이제는 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기 위한 사역자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저는 최근에 몇 차례 영접을 위한 심방을 다녀오게 됐습니다공교롭게도 제가 만나 뵈었던 모든 분들이 제 이모와 비슷한 연세 어르신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한 집사님으로부터 아버지 영접에 대한 요청을 받게 됐습니다 집사님이 아버지께서 췌장암 사기에 장기까지 전이된 상황이었습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던 어르신과 교회에 냉담하다던 이 아내 분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날 큐티 말씀은. 골로새서 4장에 전도할 문이 열렸으니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길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그날 수요 예배까지도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것이며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말씀을 의지하며 집사님의 부모님을 뵈었습니다 제가 또 두 분을 뵙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하신 동생 목자님과 따님 집사님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사건. 자신이 낙태했던 사건을 눈물로 그 자리에서 간증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아버님은 입술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병상 세례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냉담 하셨던 어머님도 그 옆에 있던 조카 청년도 예수님을 영접하겠냐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영접 기도를 따라 하셨습니다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참 오래 기다리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눈물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 함께 계셨던 분들이 믿음의 동료가 되어서 한 마음으로 들리는 그 기도에 하나님은 구원으로 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응답 받는 기도라는 걸 알게 해 주셨습니다. 교회로 돌아오는데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형형할 수 없는 감격이 올라왔습니다 한 영혼이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은 기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주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명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하셨습니다정말 그 구원의 기쁨이 그분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가장 크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위한 기도는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께서 100 프로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Epilogue>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공동체와 소리를 높여 부른다.

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씀으로 삶을 해석한다.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세에 성령을 부어 주신다.

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흑암 속에서 구원을 받는다.

5)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내면이 바뀌고 언어가 달라진다  

6)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반대의 영으로 인내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7)  우상의 특징은 언젠가는 반드시 나를 배신한다는 것이다

8)  찾아 갈 공동체나 동료가 없는 것은 평소에 공동체가 없기에 내가 교만하기 때문이다

9)  찾아 갈 공동체나 동료가 없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합리화를 하기 때문이다

10) 말씀이 없는 기도는 기복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11) 말씀이 없는 기도를 하면 내가 하나님 이라서 하나님 자리에 앉아 내 뜻대로 하려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분노하면서 허사를 경영한다

12) 나를 거룩하게 빚으시려고 고난을 사용하신다

13) 물질의 십자가, 권리의 십자가, 질병의 십자가, 고통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이루어 가신다

14) 예수님으로 죽고 예수님을 살게 됨을 알고 영생을 받음을 신뢰하니 그러한 기도가 나온다

15) 예수님 때문에 받는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게 되는 것이다

16) 내 몫의 십자가를 통하여 가정의 부활을 비춰 주신다

17) 회피의 기도가 아니라 직면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18) 내 안에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19) 내가 변하는 것이 구원의 역사의 시작이다

20) 응답 받는 기도는 성령충만의 기도로 이어진다

21) 내가 간절함과 절박한 심정으로 드렸던 기도에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게 응답하신다

22) 때로는 내가 전혀 예상치 않았던 때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응답해 주시기도 하신다

23)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이 하나님 때문에 내가 감격하게 된다

24) 내가 찾고 의지하는 것은 반드시 나를 배신합니다. 사람도 명예도 그렇다.

25) 평소에 공동체가 없기 때문에 인간적인 위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26) 예수의 피를 나눈 믿음의 공동체에서만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7) 공동체를 떠난 신앙은 절대 자립할 수 없다.

28) 우리가 연약 하기에 넘어지는 존재이기에 나를 일으켜줄 지체가 있어야 한다.

29) 때로는 우리가 공동체에서 상처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공동체 안 가겠다는 바로 그것이 자기 중심적인 합리화다

30) 공동체 안에서 오해하고 상처받고 내가 회복되는 시간을 통해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 바로 내가 거룩해져가는 성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31) 지금 겪고 있는 큰 문제는 내가 함께 소리 높여서 중보해야 할 기도 제목이다

32)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것은 바로 그 지체의 기도 제목이다.

33) 우리의 기도 대상은 바로 절대 통치자 하나님이시고 그분께 나의 모든 사정을 아뢰고 기도하는 것이다.

34) 말씀이 없는 기도는 언제나 기복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35) 하나님은 이미 그분의 뜻을 말씀으로 다 계시해 주셨는데 기복적인 기도는 내가 말씀을 듣고도 계속 내가 뭘 다 하려고만 부르짖는 것이다 

36)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에 대한 반응인데 이 말씀과는 상관없이 나의 생각만 주구장창 부르짖는다면 이건 소통이 아니라 불통인 것이다.

37) 정욕으로 구하는 떼 부리는 기도에 불과하다

38) 우리가 듣게 된 말씀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가게 된다

39) 진정한 기도 응답은 상황과 환경이 바뀌기보다 이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의도를 말씀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40) 내가 영적인 것을 깨닫게 되면 육적인 것도 내가 필요한 만큼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41) 이처럼 우리가 자꾸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하려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42) 우리가 자꾸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하려는 이유는 심판자의 자리에서 통치자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고 세상의 군왕들과 관리들처럼 그 자리에 앉아서 내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43) 우리가 자꾸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하려는 이유는 삶의 주권자 대주재(Sovereign Lord0이신 이 통치자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때문이다

44) 그러다 보니까 옳고 그릇만 따지면서 작은 일에도 그렇게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하게 되는 것이다

45) 인본주의는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심판자 노릇을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다.

46) 옳고 그름의 가치관으로 분노하고 끊임없이 헛된 일을 꾸미고 허사를 경영하게 되는 것이다

47)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 이다

48)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며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

49) 지금 겪고 있는 이 고난과 내 몫의 십자가도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예정하신 것이다.

50) 내가 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보면 내 현재의 이유를 깨닫는 권능을 얻게 된다.

51)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게 되며 나를 구원하시려고 이 고난을 사용하시는 것이고 나를 거룩하게 빚어가시기 위해서 이 일을 쓰고 계시는 뜻을 깨닫는 것이다

52) 비록 지금 내가 옥에 갇혀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권능과 뜻을 나의 삶 가운데 이루어 가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53)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통해 나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빚으실 것도 믿어야 한다

54) 그런 고통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권능과 뜻대로 예정하신 것을 나에게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5) 택자에게는 어떤 것도 지나고 보면 구속사의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게 깨달아 지면 더 이상 내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56) 나의 지금의 고난이 성경에 써 있고 내 현재의 이유를 아는 권능을 베풀어 주시기에 감사하게 된다.

57) 하나님께서 그분의 예정하신 대로 나와 우리 가정의 구원을 반드시 이루어 가심을 믿기 때문에, 이것을 소망하기 때문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58) 이걸 모르면 사건만 일어나면 나는 시험 들었다고 말한다.

59) 하나님, 나 믿음 없는 거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왜 나에게 자꾸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이런 종류의 말들을 쏟아 놓는 바로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권능과 뜻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지금 당장에 나의 만족만을 구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그러다 보니까 얼굴이 늘 어둡고 차갑고 추운 것이다.

60) 내 얼굴에 기쁨이 없는 까닭은 내 생각이 자꾸만 이 현재의 고난과 이 십자가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61)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까지도 예정하심을 그걸 믿고 확신한다면 그 얼굴에 주름이 펴지게 되는 것이다

62) 현재 이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좋게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63) 내가 주님의 죽으심과 이 부활에 참여함으로 내가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고 천국을 소유한 이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기쁜 것이다.

64) 목사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처럼 영생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지내게 되는 거이고 그러면 내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이다

65) 하나님께서 우리를 굽어보시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응시하고 주목하심으로 지켜보시는 것으로 우리가 그렇게 기도해야 되는 것이다

66)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거라고 믿어야 하며 자신들 앞에 당면한 이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신뢰해야 하는 것이다.

67) 그 믿음이 있으니까 이 기도가 나온 것이다.

68)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고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무엇이 두렵겠나? 어떤 해를 받는 게 싫겠나?

69) 내가 예수로 죽고 내가 예수로 살게 되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받게 되는 어떤 해도 나에게는 유익이 되는 것이다.

70)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당면한 이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현재 이 고난에서도 나를 지켜달라고, 지금 이 십자가를 잘 지고 가게 해주시기를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71) 왜냐하면 내 목에 매인 이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나와 우리 가정의 구원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72) 나의 죽어짐과 내가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자기 부인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 가정에도 부활의 빛을 비춰 주실 것을 소망하기 때문인 것이다

73) 그러다 보니 이 초대 교인들의 기도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들의 변화를 위한 기도였던 것이다.

74) 회피하는 기도가 아니라 직면하는 기도였는데 이들은 현실 회피 문제, 회피 상황에서 회피하지 않았다.

75) 담대하게 문제를 직면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76) 상황을 돌파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77) 하나님 저들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주님, 우리를 담대하게 하심으로 이 생명의 복음을 누리고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십시오그렇게 기도했던 것이다

78) 지금 내가 시련 가운데 있다면 주님께서 나를 굽어 살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79) 지금 이 고난 한복판에서도 주님 나를 보사, 이 문제를 통과하게 해달라고 기도 하시길 바란다.

80) 오늘 내 삶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담대하게 말씀을 적용하고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하시길 바란다.

81) 곤고한 환경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표적(miraculous sign)이 되고 그 사건이 해석되는 것이 기사(wonders)인 것이다

82) 내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가지면 나의 모든 환경은 남을 죄에서 꺼내줄 환경으로 쓰인다고 하셨다.

83)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내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다

84)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든 죄와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을 시인하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85)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기도할 때 성령님은 나로 하여금 십자가로 남길 진리의 길을 선택하게 하신다.

86)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기도할 때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시므로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응답 받는 기도다

87) 내 삶의 지축이 흔들리고 진동하는 사건에서 받게 되는 기도 응답은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88) 두려움 충만, 욕심 충만, 자기의 충만, 의심 충만, 불신 충만, 불안 충만에서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말씀으로 충만해진다

89) 기도했더니 내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90) 꼴 보기 싫은 저 인간이 변화되는 게 아니라 그를 미워하던 내가 먼저 변화되는 것이다

91) 기도하던 내가 성령 충만하게 되는 것,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 그게 최고의 기도 응답이다.

92) 성경 충만은 내가 말씀을 적용하고자 듣기 힘든 바를 드러내는 것이다

93) 내가 그렇게 변하면 성령의 열매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게 된다.

94) 내가 말씀으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가장 먼저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식구들이 귀히 여기기 시작한다.

95) 그런데 이 성령 충만은 단 하루만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매일 이어지고 연습 되고 반복되어져야 한다

96)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되는 것이다

97) 내가 들은 말씀이 있어서 적용한다면 그게 성경 충만하다는 증거다

98) 기도하는 나는 하나도 안 바뀌고 상대방이 바뀌기 만을 바란다면 그 기도는 바로 욕심 충만의 기도다.

99) 구원을 위한 기도는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께서 100 프로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7. 7. 19:55

[우리들교회 202174일 주일말씀요약(사도행전 2:14~2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정정환목사)]

 

<사도행전 2:14~21>

 

14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절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절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절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절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Prologue>

 

할렐루야로 인사하고 싶지만 인사가 잘 안 나옵니다. 이번 주에 그 주 중에 주일 설교 하라는 말씀을 듣고 칠월달 큐티 책을 딱 펼쳤는데. ! 사도행전인 겁니다. 목사님께서 매주마다 하시는 이 사도행전을 도대체 어떻게 설교해야 되나 근심이 되더라고요그런데 오늘 주일 본문을 딱 펼쳤는데 아뿔싸! 4년 전에 목사님께서 항암을 시작하시기 전에 하신 이 성경 충만의 본문인 겁니다. 오늘 성도님들이 눈물로 기도하시면서 했던 말씀인데 이 말씀을 도대체 어떻게 내가 설교를 해야 되나. 말씀에 붙잡힌 게 아니라 근심과 염려에 붙잡힌 한 주였습니다. 그러던 제 얼굴을 보는 아내가 이러는 겁니다. 여보 사도행전 감당할 수 있겠어 안쓰럽다 이러면서 설교 원고는 줄 수 있지. ‘나 목장 인도해야 돼이러는데. 정말 아무런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금식하면서 기도해 주겠다는 그 말에 좀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아침에 나오기 전에 물어보니까 '한 끼 금식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것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다 보니. 수요 예배 기도한 시간에 눈물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하나님, 우리 공동체는 힘든 고난 당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이게 지금 고난인데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렇게 기도로 보낸 한 주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저의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여러분도 저를 좀 불쌍히 여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춘수의 이라는 시에 보면 이런 시구가 나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여러분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의 마음을 그에게 준다는 그런 뜻이겠죠. 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전해주는 겁니다. 우리가 1 1 4에 전화를 걸었을 때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말에 사랑을 느끼시는 분 계신가요? 아마 계신다면 요즘 정말 힘드신 분일 겁니다. 하지만 별로 내가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누구 누구야!’ 이렇게 불러주었을 땐 또 어땠습니까? 그 사람에 대한 친근함과 애정을 느낍니다 저도 과거에 제가 이 몸 담았던 공동체에서 아내가 저에게 처음으로 형제님 이런 말 대신에 정환아!’ 이렇게 불러줬을 땐, 가슴이 뛰었습니다. ! 이 누나가 나를 정말 친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이제 결혼하고 나서 한 10년 정도 넘게 살다 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제 이름을 부르면 내가 혹시 뭘 잘못했나? 아내가 나 때문에 열 받았나? 싶어서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그런데 또 사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그렇죠. 제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정환아 내게 축복 또한 하노라제 고향 선배가 쓴 가사인데요 이 가사에 내 이름을 딱 넣어서 부르면 마치 지금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신 것 같아서 더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되죠. 마찬가지로. 나 또한 어떻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을 향한 신뢰와 사랑의 표현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공동체와 소리를 높여 부릅니다. 



 

14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본문은 베드로가 첫 번째 설교의 도입 부분입니다. 열한 사도와 서서 소리를 높입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소리를 높입니다. 50여 일 전까지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더 이상 그런 베드로가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열한 사도와 함께 소리를 높입니다. 나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합니다. 지체들이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방언하기보다는 서로 붙잡아줍니다. 담대함으로 소리를 내고 자신의 삶의 간증합니다. 목장을 할 때 전도 봉사를 할 때도 함께 서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합니다. 담임목사님께 설교 때마다 공동체 고백을 통해서 삶과 간증을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심방과 결혼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곳곳을 다녔습니다. 여러 집사님들이 함께 소리를 높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해 주시고 자신의 수치와 죄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함께 서서 연약한 지체들 Care하고 격려해 주시다 보니 든든하고 감사했습니다. 말씀에 붙잡힌 게 이런 거구나 어느 곳에 가든지 거기에는 성령의 백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서있는 것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외 딴 섬처럼 있으려고 했던 나 혼자 신앙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한번 여름 Outreach를 간 적 있었는데 며칠 동안 아들과 딸이 저를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각하죠. 그 말을 듣고 나니 저의 실상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꼈습니다. 제 행동의 이면에는 안일함의 우상이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혼자서 뭐 하려고 하지 말고 어울리면서 사역 하라고 합니다. 이런 제가 잘 바뀌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사역을 하다 보니까 공동체와 함께 서서 말하는 것이 어떤 건지 깨닫게 되었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지체들과 함께 서서 소리 내서 말하는 것이구나 함께하는 기쁨 이런 거구나라는 것이 깨달아 졌고 목사님의 말이 이해되었습니다목장도 목원들과 함께 서서 말하는 곳입니다. 설명해 주고 붙들어주고 같이 서있게 됩니다. 성냥개비 하나는 금방 타지만 여러 개가 모여 있으면 활활 탑니다. 이럴 때 옆에서 조롱하고 비웃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옆에 있던 유대인들이 술에 취했다고 조롱합니다.



 

15절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이라 



아침 9시에 불과한데 어찌 이 사람들이 술에 취할 수 있느냐 말합니다. 오전 10시까지 금식했기 때문에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부드럽고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이전 같으면 어땠을까요 앞에 예수님이 계셔도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사정 없이 내려쳤습니다. 성질 급한 아이콘이죠 오늘 베드로가 달라졌습니다. 우리 베드로 형님이, 오빠가, 달라졌습니다. 나의 내면과 언어가 바뀝니다. 미움과 분노의 말이라 아니라 사랑의 말로 하게 되고 내가 넘어가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에 대해 말하게 됩니다. 조롱을 당하더라도 혈기로 맞서기보다 객관적으로 말해줍니다말씀 충만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 옆의 사람이 조롱했을 때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혈기로 반응하십니까? 아니면 드러내지 않지만 저 인간하고 상종하지 말아야지 정죄와 판단하고 살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제 오후에 양육 교사를 인도하는데 부모 형제에 대한 고난을 겪고 있는 나눔을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쓰레기통을 비우는 데 쓰레기를 제대로 모으라고 남편이 아내에게 잔소리했답니다.



아내 집사님이 아들에게 계란 찜 해주다가 급해서 그렇게 됐다고 하니까 남편 분이 그래도 그게 뭐냐고 잔소리했다고 합니다. 치명적인 펀치 한 방을 날렸습니다. 당신이나 어머니나 다 똑같다고 그래서 소리 지르고 난타전을 치르다가 아내 집사님이 쓰레기통을 부쉈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의 적용은 순종의 언어로 하겠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은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 받아내는 것이 순교이고 죽어질 때 화평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내 옆의 식구와 함께 먹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어서 신앙을 전하는 것에 많이 불편했습니다. 늘 입을 다물곤 했습니다.



특히나 가까워 보이는 친척들과 관계에서는 크리스천을 조롱하는 어르신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목회자를 비판 하시다 보니까 이분 앞에서 도저히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술을 받으면서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남 부러울 것이 살고 화기애애하다 보니 예수가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제 형편은 너무 안 좋아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외할머니의 병실에 방문했습니다. 구원에 대해 주시는 부담감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모든 친척분들이 모여 있었는데 결국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나왔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제 스스로 걷어찼습니다. 그게 할머니와의 이 땅에서 마지막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후회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입이 열리지 않고 소심한 저였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조롱 당하는 게 싫어서 신앙을 감추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공동체에 속해있지 않았고 예배만 드리고 저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 중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틈틈이 선교 구호단체를 섬겼는데 열심히 사는데 공동체가 중요하나? 라고 무시하면서 지냈습니다.



그 공동체를 무시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것을 나눌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 부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목회자에 대해 비난하는 객기만 있었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사역자로 불러주신 것을 생각하면 어떤 말도 없습니다. 목사가 될 자격이 1도 없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적용#1)

 

-나는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서 있습니까?

-혼자 서 있습니까? 누구와 함께 서서 소리 높여 말합니까?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씀으로 삶을 해석합니다.

 

 

16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성령의 강림은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었습니다. 이건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내 앞에 일어난 일은 말씀이 일어난 사건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인간적인 일로만 여깁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신 사건을 세속사의 사건으로 치부합니다. 몇몇 유대인은 술에 취해서 이런다고 조롱합니다. 말씀이 임한 사건이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그건 재수가 좋아서 그런 거야 그건 운이 좋아서 그런 거야라고 비웃습니다. 그 일은 말씀이 임한 사건입니다. 말씀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내가 원하고 바랬던 대로 되었던지, 반대로 되었던지, 그 일을 보면서 아 말씀대로 된 사건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의 옷깃을 여며야 합니다. 성경으로 해석해야 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누군가 조롱하고 비아냥거릴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여러분 우리가 설교를 듣고 큐티를 하지만 부정적인 말과 조롱에 요동할까요? 말씀이 응한 사건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분법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면 교만 하거나 우쭐해 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겸비해야 합니다. 내가 원한 것과 거꾸로 나왔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인 것이죠 베드로가 인용한 것을 보면 일어나기 전부터 그는 구약의 말씀을 묵상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들 공동체가 강에서 바다로 나가서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고 간증하다 보니까 사명의 지경이 넓어지게 된 것입니다. 좀 전에 제가 언급했던 친척들 가운데 이종사촌 형도 있었습니다. 사촌 형의 아내가 소천했는데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양육도 받고 사역하면서 가치관이 달라지다 보니까 친척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전도할 생각만 하면 눌렸는데 복음을 전하고 이모가 구원을 받게 된 간증을 했습니다. 이모는 독실한 불교신자 였습니다. 질병으로 중환자실에 가서 전도했을 때 예수님을 만나고 천국에 간 사건을 친척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이모의 구원을 위한 응답이었고 말씀 이루어진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간증하고 있는데 상주로 앉아있던 그분이 이러는 겁니다. 그거는 중환자들이 경험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의학적인 지식을 늘어놓으면서 설득하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아내도 의사였는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난 때문에라도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왔는데 교양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형은 아무리 여기서 하려고 해도 안 될 거라고 외삼촌이 대학 교수님이라고 얼마나 박식하고 깊이가 있는데 목사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복음을 거부하면서 신비적으로 조롱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말들에 대한 불편함 서운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전해야 할 복음만은 끝까지 전해야 한다고 자리를 떴습니다. 목사님의 책과 큐티 간증을 집집마다 전했습니다믿음이 없는 사람은 우연과 나만 열심히 높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는 말씀의 성취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높이고 찬양합니다.

 

 

(적용#2)



-지금 나에게 일어난 사건 가운데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의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세에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절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하나님이 말씀에 그분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신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말세가 언제입니까? 종말의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그 기간이죠. 그럼 나에게 그 말세는 언제일까요 담임 목사님께서는 이 본문을 설교하실 때 나의 한계를 인식할 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린 저마다 자신이 경험하는 절대치의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을 겪을 때 나의 한계를 보게 되죠. 그런데 자기의 이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말세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이 말세 때에 자아가 죽어지고 예수로 살게 됩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우리의 육체에 부어 주십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죠.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 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하십니다. 세상 경험이 없고 철이 없는 자녀들이 말씀으로 자기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공동체 아이들은 영아 때부터 엄마랑 함께 큐티하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양육을 받습니다 사실 이 저희 집의 아이들도 그 수혜자의 반열에 들어갑니다. 제 아들 딸이 둘이 같이 과거에 어린이 집을 다닐 때 였거든요 5살 된 동생이 7살 된 누나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어린이 집에 이렇게 친한 여자 친구가 있다고. 그랬더니 누나가 이렇게 대꾸를 했습니다. ‘, 걔 교회 다녀?’ 그랬더니 동생이 안 다닌다고 하니까 누나가 이러더라고요 , 예수님 안 믿으면 불신 교제야 그거’ ‘불신 교제, 안 돼 헤어져또 동생은 그 말을 듣고 끄덕거리더라고요 저는 제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에게 뭐 신 교재 불신교제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교회에서 그 말을 듣고 배운 겁니다 사실 저도 과거엔 신 교제, 불신교제라는 말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 공동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또 큐티를 하다 보니까 이런 예언을 하는 것이죠



한 번은 이 희귀질환으로 투병하던 이 한 아이가 천국을 가게 되어서 장례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 때 이 아이의 언니인 중학생 초등학생 자매들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자기 동생을 보면서 내가 죄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나님께서 이 동생을 우리 가정에 선물로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런 나눔을 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면서 함께 예배를 드리던 성도님들 모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자녀들이 예언하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말씀을 듣다 보니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예언을 하는 것이죠.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고 하십니다 다른 말로 비전을 보게 되는 것이죠 청년 시절의 특징이 뭡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우상으로 삼고 자기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죠. 그런데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 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 비전을 보게 됩니다.



2주 전쯤 제가 교회에서 결혼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신랑 신부였던 이 두 청년이 모두 초신자였습니다. 파혼과 이 낙태 사건을 겪으면서 자매가 먼저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상대방 형제는 이 우리들 교회 이 홈페이지 상담 게시판에 너무 힘들고 괴롭다면서 글을 남겼습니다. 그로 인해서 제가 또 그것에 대해서 답을 해주고 저랑 연락을 주고받다가 공동체에 오게 됐습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어서 허무함의 수를 의지하고 죽으려고 했던 형제 세상 문화와 쾌락에 빠져 살던 자매가 목장에 정착하게 되었고 기초 양육과 일대 일도 받게 됐습니다. 이 코로나 때예요. 초신자인데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큐티 기도회에 들어와서 자기 연약함과 기도 제목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지난 날의 죄악을 회개하고. 다시금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한 주를 앞두고 이 서로의 신뢰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또 파혼의 위기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제 부부 목장과 여자 목장이 공동체 식구들의 기도와 권면을 통해서 다시 마음을 돌이키고 화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2주 전에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이 신랑 신부가 초신자였거든요. 근데 그날 하객의 대부분들이 불신자였습니다 근데 이 두 사람 덕분에 이 불신자분들이 교회에 오셔서 결혼 예배에 참석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이 두 분 모두 함께 세례까지 받게 됐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렇게 젊은 이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욕망과 세상적인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으로 바뀌어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라고 말씀합니다 과거만을 자꾸 회상하고 서운하고 아쉬운 것이 더해지는 그때 꿈을 꾼다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이삭을 낳았죠 모세는 80세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광야를 다녔습니다 갈랩은 85세에 아낙 자손과 싸우겠다면서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우리들 공동체에도 실버와 골드 목장엔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고 이 사명을 감당하시는 집사님들이 참 많으시죠 나의 인간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그 꿈에 사로잡혀서 공동체와 이 공동체 안에서 믿음의 본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그분의 영을 모든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십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계층과 세대를 뛰어넘어서 모든 종들이 예언하게 하십니다 날마다 한 말씀으로 모든 세대에게 역사하심으로 자기 삶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시죠. 그래서 성령은 말씀의 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게 뭡니까.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고. 말씀을 좆아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과 내 마음의 장벽을 깨뜨립니다 나의 부족함과 나의 열등감과 결핍마저도 넘어서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면 이 땅에 자녀 문제와 젊은이 문제와 노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 문제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면 해석이 되고 해결로 나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공동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 가득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적용#3)

 

-나는 어떤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고 있습니까? 나의 인간적인 예언과 환상과 꿈 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예언과 환상과 꿈 입니까? 내 안에 깨어져야 할 편견과 고정관념, 마음의 장벽은 무엇입니까?

  

 

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흑암 속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19절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절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 서는 기사를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어 주십니다.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는 이 말은 심판으로 인해서 흑암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우상으로 삼고 그렇게 의지하던 해달 별이 떨어지는 이 사건이 찾아오면 칠흑같이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되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그 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이런 심판의 때는 택자에게는 구원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가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처럼 내 삶에도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고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조차 없을 그 나의 절대치의 권한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택자에겐 어떤 환난과 고통의 사건도 구원의 사건이 되는 것이죠 도무지 내 눈앞에.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나에게. 해달별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곧 주의 크고 영예로운 날이 이르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죠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의탁을 뜻합니다. 나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렇게 내가 예배와 목장에 붙어가면서 이 말씀 듣는 이 구조 속에 거할 때. 그 말씀이 나를 붙잡아 주실 겁니다. 흑암 중에 있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죠 내가 그 사람하고 있는 바로 이 성 중에도 성령의 백성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허락한 이 구원이 나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 에게도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들도 구원에 이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바로 이게 복음의 능력이죠



제가 첫 번째 대지에서 외할머니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날 임종 전에 계신 외할머니를 제가 만나고 결국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제가 이 버스에서 내리려던 순간에, 그때 제 옆에 있던 동생이 119 대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소천하셔서. 영안실에 계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와 어머니 동생이 외할머니가 계신 이 병원에 다 같이 있을 때. 그때 아버지께서 집 아파트에서 투신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동생과 제가 아버지랑 같이 점심 식사도 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장례식 첫날 빈소에서 나와서 밤 하늘을 바라보는데 깜깜한 하늘처럼 정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수년간 질병으로 인해서 건강을 회복하고자 안간힘을 쓰셨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던 우리 가정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수년간 질병으로 인해서 건강을 회복하고자 안간힘을 쓰셨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던 우리 가정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왜? 라는 이 한 단어의 질문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안고 몇 년을 지냈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그 어떤 지식으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은 이 말씀으로 내 삶의 이 현실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외할머니와의 이 땅에서의 이 마지막 만남이 이런 식으로 하루 만에 끝났다는 게 너무 허무했습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러서 저는 우리들 공동체로 오게 됐습니다. 공동체에서 처음으로 이 아버지의 사건을 오픈하고 나누었는데 그냥 이 사건 자체만을 이야기할 뿐 해석이 안되니까. 더 이상 나눔이 이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요 예배 때 담임 목사님께서 열왕기로 유다 왕들의 계보를 말씀해 주셨던 날이었습니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 할 것 없이 예수 믿게 해 주신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이 말씀이 나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순간 제 머리 속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아버지가 나를 예수님 믿게 해주었지. 아버지 때문에 내가 예수님 이름을 부르게 됐지. 맞아. 아버지가 나의 구원의 공로자였어. 내가 아버지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되었어 우리 가정이 아버지로 인해서 주님을 찾게 됐고. 구원을 받게 된 거구나.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가 나왔습니다. 수 년간 꼬여 있던 제 마음의 실타래를 하나님은 그날 그렇게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외롭고 항변하던 저에게 주님은 그렇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아버지 그 사건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기사를 베풀어 주셨고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심으로 구원을 주시는 사건이란 걸 알게 해 주신 거죠. 말씀이 없었다면. 정말 말씀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피와 불과 연기 속에서 원망하고 불평만 하면서 아마 주저앉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죄를 말씀으로 붙잡아 주시고. 그분의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언제나 내 이름 석자를 부르면서 그 이름이 불리어지기만을 바랐던 저의 교만과 저의 죄악 된 실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내 이름이 사람들에게 돋보이고 내 이름의 영광을 얻기 만을 바랬습니다.



정정환이라는 이 이름의 우상을 새기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좋은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서 좋은 사람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가면을 쓰고 위선과 외식을 하면서 지내왔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게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으로 충만하다 보니 가장 가까이 있던 할머니에게 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내 욕심과 자기 의로 충만하다 보니 아버지의 아픔도 공감하지 못한 채 집에서는 늘 나의 안위만을 추구했습니다 내 열심과 자기 의로 충만하다 보니 세상 성공을 부르짖고 스펙을 부르짖고. 힘과 권세와 명예만을 부르짖고. 그저 인생의 목적이 잘 먹고 잘 사는 행복에만 꽂혀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님은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사건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기사와 징조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은 말씀이 있는 공동체를 만나게 하신 겁니다. 매주마다 목사님께서 전해 주시는 이 구속사의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내 삶이 해석되게 하신 겁니다. 내 현재의 이유를 아는 것이 진정한 권능이라고 하셨죠 주님은 그 권능을 깨닫고 그 권능을 누리는 인생으로 견인해 가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예배 시간 때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들으면서 웃고 또 울면서 회개하게 됐습니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 이 죄성 때문에 절망하는 날도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죄를 사하시고 내 상처를 치유하시며 싸매어 주시는 성령님의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회개의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크고 영화로운 주님의 날을 내 삶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제가 깨닫게 되다 보니 아버지의 그 자살 사건은 더 이상 재앙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나와 우리 가족이 구원받게 되는 사건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하는 식구의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과 이해하기 힘든 죽음 앞에서 장례를 치르는 유가족들과 함께 저의 이 약재료를 나누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그들과 함께 서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이 자리에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 가운데 고난과 환난 중에 거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내가 피와 불과 연기 속에 있을지라도. 바로 이 날이 나에게 구원에 임하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될 거라고 약속하십니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사건이 찾아왔을지라도. 오직 내가 할 일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 어떤 것도 그 무엇도 나를 죄와 사망과 중독과 고통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부를 때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시는 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며 생명의 이름이고 소망의 이름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알려진 명품인 굳지 프라다 루이비똥, 샤넬 같은 메이커는 그 이름 하나만을 가지고 장사를 하죠 그런 이름에 세상 사람들은 열광을 합니다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그걸 구입하고자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이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지금 내 안에 계십니다. 우리 가정 안에 계십니다 그럼에도 혹시 요즘 나는 어떤 이름에 열광하고 있습니까. 어떤 이름을 사모하고 부르고 계십니까? 우리가 평생에 사모하고 불러야 할 그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담임 목사님께서 이 본문을 설교하실 때 암이 발견되었다는 나눔을 하셨습니다 암이라는 질병으로 인생의 한계와 말세를 겪게 하시지만 오히려 아픈 성도님들을 치유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광된 하나님의 신비를 알게 하시고자 이 일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성도님들이 함께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시간 또한 우리 각자가 내가 지금 어떤 상황과 형편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회개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킴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나와 우리 가정 가운데 일어나길 바랍니다나뿐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식구와 지체들에게도 그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다 같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함께 경험하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바라기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임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적용#4)

-나에게 찾아온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 사건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이름을 사모하고 열광합니까?

-나는 지금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Epilogue>

 

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공동체와 소리를 높여 부른다.

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씀으로 삶을 해석한다.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세에 성령을 부어 주신다.

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흑암 속에서 구원을 받는다. 

5)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내면이 바뀌고 언어가 달라진다

6)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반대의 영으로 인내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7)  정죄와 판단을 넘어서 마음으로 살인하고 있진 않는지 돌아 보아야 한다

8)  성령 충만은 일상의 생활에서 거슬리는 한 마디도 받아 주고 혈기를 내려 놓는 것이다

9)  내의 죄와 연약함을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10) 혈기의 아이콘 베드로는 주님을 수시로 부르면서 변했다

11) 지금 내게 일어난 사건은 말씀의 성취다

12) 잘될 때 회개의 사건으로 보고 겸비해야 한다

13) 힘든 고난의 사건은 예수의 사건으로 보고 감사해야 한다

14) 신비적은 현상을 환시, 환상, 환청이라고 의학적으로 폄하하는 사람은 아덴 사람이다

15) 성령이 임한 사람은 그 어떤 일도 말씀의 성취라고 여기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16) 삶의 한계를 인정 할 때가 말세의 때이다

17) 택자에게는 심판의 때가 구원의 때다

18) 환난과 고난의 때에 믿음과 의탁과 신뢰로써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의 날이 임한다

19) 피와 불과 연기 속에 있어도 생명과 소망의 이름은 주님이다

20) 성령 충만 하면 나의 내면과 언어가 바뀌고 미움과 분노의 말이라 아니라 사랑의 말로 하게 되고 내가 넘어가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에 대해 말하게 되고 조롱을 당하더라도 혈기로 맞서기보다 객관적으로 말해준다

21) 성령 충만은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 받아내는 것이 순교이고 죽어질 때 화평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22) 성령의 강림은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었으며 지금 내 앞에 일어난 일은 말씀이 일어난 사건인데 믿음이 없으면 인간적인 일로만 여긴다

23)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이 찾아오신 사건을 세속사의 사건으로 치부하고 말씀이 임한 사건을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그건 재수가 좋아서 그런 거야 그건 운이 좋아서 그런 거야라고 비웃는다.

24) 그 일은 말씀이 임한 사건이고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다.

25) 말씀의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면 교만 하거나 우쭐해 할 수가 없다.

26) 회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겸비해야 하며 내가 원한 것과 거꾸로 나왔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27) 그래서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인 것이다

28)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고 간증하다 보니까 사명의 지경이 넓어지게 된 것이다.

29) 믿음이 없는 사람은 우연과 나만 열심히 높인다.

30)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는 말씀의 성취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높이고 찬양한다.

31) 말세는 종말의 때인데 예수님께서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그 기간인 것이다

32) 나에게 그 말세는 나의 한계를 인식할 때다

33) 우린 저마다 자신이 경험하는 절대치의 고난이 있으며 이 고난을 겪을 때 나의 한계를 보게 되는데 자기의 이 인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말세를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34) 우리는 내 인생의 이 말세의 때에 자아가 죽어지고 예수로 살게 되는 것이며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우리의 육체에 부어 주신다.

35) 그러면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데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 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하신다.

36) 세상 경험이 없고 철이 없는 자녀들이 말씀으로 자기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37)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말씀을 듣다 보니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예언을 하는 것이다

38)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고 하시는데 다른 말로 비전을 보게 되는 것이다

39) 청년 시절의 특징은 눈에 보이는 것을 우상으로 삼고 자기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 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 비전을 보게 된다.

40)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 이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욕망과 세상적인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으로 바뀌어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다

41)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라고 말씀하는데 과거만을 자꾸 회상하고 서운하고 아쉬운 것이 더해지는 그때 꿈을 꾼다라고 말씀하신다.

42) 아브라함은 100세 이삭을 낳았고 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광야를 다녔으며 갈렙은 85세에 아낙 자손과 싸우겠다면서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말했다

43) 이 우리들 공동체에도 실버와 골드 목장엔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고 이 사명을 감당하시는 집사님들이 참 많은데 나의 인간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그 꿈에 사로잡혀서 공동체와 이 공동체 안에서 믿음의 본이 되어 주신다.

44) 날마다 한 말씀으로 모든 세대에게 역사하심으로 자기 삶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시는데 그래서 성령은 말씀의 영이다

45)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고 말씀을 좆아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 가는 것이다.

46) 그 말씀은 우리의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과 내 마음의 장벽을 깨뜨린다

47) 나의 부족함과 나의 열등감과 결핍마저도 넘어서신다.

48)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면 이 땅에 자녀 문제와 젊은이 문제와 노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49) 우리 가정 문제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면 해석이 되고 해결로 나아가게 될 줄로 믿는다

50) 우리의 공동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 가득하게 될 줄로 믿는다.

51)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는 기사를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어 주신다.

52)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는 이 말은 심판으로 인해서 흑암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뜻이다

53) 내가 우상으로 삼고 그렇게 의지하던 해달 별이 떨어지는 이 사건이 찾아오면 칠흑같이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되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그 밤이 찾아오지만 이런 심판의 때는 택자에게는 구원의 시간이기도 하다.

54) 바로 그때가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이라고 말씀하신다.

55)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십자가를 지셨는데 이처럼 내 삶에도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때가 있는데 바로 그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56)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고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조차 없을 그 나의 절대치의 권한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님을 만나게 된다

57) 그래서 택자에겐 어떤 환난과 고통의 사건도 구원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58) 도무지 내 눈앞에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게 하시기 때문이다

59) 지금 나에게 해달별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60) 이제 곧 주의 크고 영예로운 날이 이르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61) 여러분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의탁을 뜻하며 나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62) 내가 예배와 목장에 붙어가면서 이 말씀 듣는 이 구조 속에 거할 때 그 말씀이 나를 붙잡아 주실 것이며 흑암 중에 있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63) 좋은 부모 나쁜 부모 할 것 없이 예수 믿게 해 주신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이 말씀이 나팔 소리처럼 들렸다

64) 내 열심과 자기 의로 충만하다 보니 세상 성공을 부르짖고 스펙을 부르짖고 힘과 권세와 명예만을 부르짖고 그저 인생의 목적이 잘 먹고 잘 사는 행복에만 꽂혀 있었는데 그런 저에게 주님은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사건으로 찾아오셨다.

65) 그 어둠 속에서 기사와 징조를 베풀어 주셨고 바로 그것은 말씀이 있는 공동체를 만나게 하신 것이다.

66) 매주마다 목사님께서 전해 주시는 이 구속사의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내 삶이 해석되게 하신 것이다.

67) 내 현재의 이유를 아는 것이 진정한 권능이라고 하셨는데 주님은 그 권능을 깨닫고 그 권능을 누리는 인생으로 견인해 가셨다.

68) 오늘 내가 피와 불과 연기 속에 있을지라도 바로 이 날이 나에게 구원에 임하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될 거라고 약속하신다 

69)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사건이 찾아왔을 지라도 오직 내가 할 일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신다

70) 그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게 되는데 그 어떤 것도 그 무엇도 나를 죄와 사망과 중독과 고통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71)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부를 때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72)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시는 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 임을 믿는다

73)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며 생명의 이름이고 소망의 이름인 것이다.

74) 우리가 평생에 사모하고 불러야 할 그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다.

75) 우리 각자가 내가 지금 어떤 상황과 형편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회개로 나가기를 바란다

76) 하나님께로 돌이킴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나와 우리 가정 가운데 일어나길 바란다

77) 나뿐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식구와 지체들에게도 그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다 같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함께 경험하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길 간절히 소원한다

78) 바라기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임하길 간절히 소원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6. 30. 20:32

[우리들교회 2021627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8: 5~ 11/ 성령의 백성)]

 

 

<사도행전 18:5~11>

 

5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When Silas and Timothy came from Macedonia, Paul devoted himself exclusively to preaching, testifying to the Jews that Jesus was the Christ)



6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But when the Jews opposed Paul and became abusive, he shook out his clothes in protest and said to them, "Your blood be on your own heads! I am clear of my responsibility. From now on I will go to the Gentiles)



7절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Then Paul left the synagogue and went next door to the house of Titius Justus, a worshiper of God)



8절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Crispus, the synagogue ruler, and his entire household believed in the Lord; and many of the Corinthians who heard him believed and were baptized)



9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One night the Lord spoke to Paul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keep on speaking, do not be silent)



10절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For I am with you, and no one is going to attack and harm you, because I have many people in this city)



11절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So Paul stayed for a year and a half, teaching them the word of God)

 

 

<Prologue>

 

백성은 문자 그대로 수많은 백 가지 성입니다. 나라에서 근본을 이루는 말이 백성인데 백성은 일본에서 촌놈이나 욕설로 비하해서 사용합니다. 성령의 백성은 수많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믿는 사람으로서 최고의 존칭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근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안 믿는 쪽에서는 비하합니다. 권면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백성이 됩니다. 성령의 백성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입성한 택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높고 낮음이 없이 천국 백성이 되면 무조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 백성 이야기를 오늘 가장 타락한 고린도에서 하십니다. 이곳에서 2차 전도 여행의 절반에 해당하는 16개월을 체류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백성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말씀 요약>

 

성령의 백성은,

 

 

1.   주 안에서 보고 싶은 지체입니다. 

 

5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쫓겨 나듯 아덴(Athens)에서 떠난 것 같다. 떠나다는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과 아픔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떠나 외로움과 실패 속에 자신과 같이 쫓겨 나듯 떠났던 같은 고난을 겪은 아굴라(Aquila)와 브리스 길라(Priscilla)부부를 만났고 성령의 권면을 할 수 있었다. 아굴라 부부는 후에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어놓았다고 표현을 한다. 최고의 충성된 지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이 아덴에서부터 기다리던 실라(Silas)와 디모데(Timothy)가 드디어 고린도(Corinth)에 도착한다. 바울에게 아주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실라와 디모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바울이 아덴에서 실패하고 안 좋은 소문이 자자했을 만큼 바울이 너무 실패한 것은 맞는데 얼마나 돈이 없으면 동역자도 없이 홀로 고린도로 와서 그냥 아굴라에게로 들어갔다고 했다. 아굴라가 온 게 아니고 바울이 생업(직장) 구하러 그들에게 갔다. 먹고 살아야 되니 사명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보고 싶은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했다. 실라는 같이 매 맞고 감옥에 갇혔던 옥중동창생이다. 옥 터가 열려서 나왔다. 디모데서에 보면 디모데는 너무나 청결한 양심을 가졌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바울이) 쉬지 않고 너를 생각했다고, 죽기 전에도 보고 싶어 한 디모데이다. 데전 3장에 보면 그렇게 보고 싶은 실라와 디모데가 이미 아덴에 왔는데 바울은 늘 자신의 상황보다 늘 떠나왔던 교회 지체들을 생각했다. 그래서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혹시 복음에서 멀어졌을까?
3
주 밖에 없었는데.. 하면서 너무 염려했다. 그런데 데전 3:4에 “우리가 너희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란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데살로니가(Thesalonica) 3주 동안 있을 때 장차 받을 환란을 얘기했더니 과연 환란이 왔다. 그러니까 너무 참다못하여 보고 싶은 디모데가 왔는데 지금 고린도가 문제가 아니라 고린도에 오기 전에 아덴에 보낸 것이다. 같이 가자고 하지 않고 빨리 보냈다. 왜냐하면 시험 들어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봐. 그래서 실라는 빌립보로 보내고 데살로니가에는 디모데를 다시 파송해서 소식을 알고자 했다. 그런데 그 소식을 가지고 고린도로 온 것이다. 가지고 온 소식은 6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왔으니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함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바울이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겠는가?
7
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란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먹을 것이 없어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굳건히 섰다고 하니까 너무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8
절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성도들의 기쁨은 이런 것이다(온 천하에서 믿음이 자라는 것)
이들을 만나 전도하고 온 교회소식을 듣자마자 그 소식이 너무 반가우니까 만나자마자 바울이 힘을 내어서 5절 후반부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라 밝히 말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실라와 디모데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의 선교후원금을 가지고 왔다. 이전에는 텐트 메이커로 주말에만 사역을 하다가 후원금으로 사역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디모데에게 들은 소식-데살로니가 전서 4~5장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서 약간의 혼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맨 처음 교회에는 살기가 힘드니 이단들이 판을 친다. 그래서 고린도에서 1 6개월 머무는 동안에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멀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편지를 써서 그들의 믿음을 양육하는 일을 병행했다. 바울과 실라, 디모데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데살로니가 성도들, 빌립보 성도들 등등 모두 성령의 백성인데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구원이다. 함께 구원을 바라볼 공동체가 있으면 성령의 백성이고 보고 싶은 지체가 되는 줄 믿는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다녀도 “다 꼴 보기 싫어, 다 이상해” 하면 여러분들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절대로 믿음이 좋은 사람은 누구를 욕할 수 없다.



(적용#1)

 

-보고싶은 지체가 있나요? 구원 때문 인가요? 이제는 살리라 내가 들었던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요? 



2.   말씀을 붙잡히게 해줍니다(5).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실라와 디모데의 격려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할 수 있었다. 아덴에서는 눈치를 봤다. 이 “붙잡혀”는 슈네코라는 단어의 미완료 과거 수동태이다. 둘러싸임을 당하고 거대한 상황에 사로잡힌다는 뜻도 있지만 어떤 사람의 병이 그 사람을 통제하거나 억누르는 것을 묘사할 때나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상황을 묘사할 때도 쓰이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말씀에 붙잡히는 것은 억누름을 당하고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말이 맞다. 몇몇 사본에는 하나님의 말씀 자리에 성령이란 의미의 프뉴마티가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원래는 이게 맞지만 그만큼 바울이 성령에 붙잡혀 있었다는 뜻도 된다. 성령에 붙잡히고 말씀에 붙잡힌 것은 내가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중했다, 헌신했다는 표현대신 왜 붙잡혔다는 말을 썼을까요? 그것은 우리 힘으로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붙잡히는 것만 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듣고 적용하는 일에 헌신하고 집중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부부관계에서 남편과 아내로서 최선을 다해서 섬겨야 된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섬겨도 우리 힘으로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셔야만 우리는 상대방에게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절대로 안 된다. 그러니까 아덴에서와는 달리 바울은 말씀에 붙잡힌 능력으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증거하지 않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을 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나사렛 예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이 증거가 가장 사람의 운명을 뒤바꾸는 증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말로만 “예수는 그리스도다.” 라고 십자가를 전하고 삶이 없으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그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얘기를 말로만 전하면 하나님이 속지 않으시니까 두려운 일인 것이다.
처음에 은혜 받아서 모임을 인도했는데 사람들이 저에게 몰려오고 했을 때 ‘내가 지금 대접받아서 이 길을 가나? 사명 때문에 이 길을 가나?’ 끊임없이 저를 의심하게 되더라. 사람이 칭찬에 장사가 없다. 내가 말씀을 전했는데 그게 내가 칭찬받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말씀에 붙잡혔기 때문에 이런 생각도 끊임없이 한 것이다. 내가 말씀을 붙잡은 것 같지만 전적으로 붙잡힌 것이다. 말씀이 나를 붙잡았다. 내가 붙잡혔으니까 날마다 나를 의심하면서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인정할 때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에 붙잡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내가 뭘 좀 한다고 생각했으면 금새 흘러 떠내려갔을 것이다. 계속적으로 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바울을 붙잡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힐 수 있나-말씀의 구조 안에 있어야.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이 공동체 안에 거해야 한다. 목장에 참석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체들을 말씀으로 붙잡고 계신 지를 보고 들으며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듣고 순종해야 하는지 지체들을 통해 주시는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씀의 구조 안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들어가서 그 구조 속에 있어서 계속 붙잡혀서 남들이 나를 붙잡아 주어야 한다. 내가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적용#2)

 

-지체의 격려로 말씀에 붙잡힌 경우가 있습니까? 그 말씀이 십자가지라는 예수는 그리스도 입니까? ‘잘 될꺼야 라는 위로였습니까?

 

 

3.   대적과 비방도 받아내야 합니다. 

 

 

6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러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싫어하는 사람이 대적 사단이라고 했다. 곧 그 말을 비방하기 시작한다. 비방은 명예를 훼손하고 욕을 하는 것이다. 인신공격을 한다. 살인자가 복음을 전한다고 뭐라고 한다. 체계적으로 저항하는 의미까지 있다.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 어느 지역보다 치밀하고 강하게 핍박하고 협박했음을 보여준다악의적인 루머를 조직적을 유포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낸다. 그래서 정권을 가지려고 발악을 한다. 최고의 인본적인 그거 아니겠나? 고린도의 이 말을 듣는 이가 하나님께 돌아오겠다고 위협을 느꼈기에 발악을 하고 대적을 하는 것이다. 한 집사님이 양육을 받기 위해 지하철을 탔고 핸드폰을 보면서 탔는데 부딪혀서 액정이 깨졌다고 한다. 양육 안 받는다고 한다. 폰과 양육이 무슨 상관이 있나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비방과 대적이 비일비재 하다. 왜 이렇게 말씀이신 예수님을 반대할까? 그들은 말씀에 붙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수동태가 안되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붙잡는다고 한다.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오기를 거부한다.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완악 함이고 목장에 안 들어오는 것이다. 부자이고 잘난 사람이 구조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성령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한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유대인들을 향해 옷을 털면서 말한다. 그들의 불순종은 그들 책임이라고 안디옥(Antioch)에서는 복음을 유대인들을 향해 신발의 먼지를 털었ek. 옷을 터 는 것은 강력한 표현이다. 말씀에 붙잡히니까 심판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나 네 네 네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옷을 털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예수 믿는 사람은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백성은 이렇게 비방과 대적을 받을 때 대항하지 않고 그 상황을 피해야 한다. 반박을 할 때 또 다른 올무에 빠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반박을 할 때 또 다른 올무에 빠지고 나를 향한 훈련이 있는데 옷에 먼지를 턴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강박함으로 이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진다는 의미다. 성경을 흑과 백으로 읽으시면 안 된다이거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강박함으로 나 같이 복음을 받지 못하는 나에게 복음이 이르렀구나. 인정할 때 우리는 유대인에게 돌아가야 합니다실제로 7절에 복음이 지금은 아니래도 옆집으로 갑니다.



7절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회당 옆으로 이사 갔다. 디도 유스도(Titius Justus)의 집으로 옮긴다. 로마 명문가 사람이다. 물리적으로는 회당 바로 옆 건물이다. 유대인의 회당은 복음을 대적하고 디도(Titius)는 복음을 받는다. 보기 싫어도 봐야 했다남편이 괴롭혀도 복음이 왔는데 남편과 아내를 봐야 하는 것이다. 말씀에 붙잡혀 있어야 하니까 세상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성령의 백성의 징표다. 성령의 백성으로 서있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나? 이방인에게 왔던 복음이 유대인에게 갑니다.



8절 또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이 말씀을 거부하는 유대인의 최고 대장 회당의 중심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와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회당장은 회당에서 교회로 이사합니다몸만 아니라 복음과 은혜로 이사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성령의 백성으로 들어가 보니 온 가족이 믿고 더 나아가서 고린도 사람이 믿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나? 대적하고 비방하는 남편 부모 자녀 때문에 복음을 믿었다면 다시 내 옆집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가야 한다. 왜냐하면 좋은 부모 나쁜 부모가 없고 예수 믿게 하는 부모가 최고이고 저 유대인 때문에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이제 순서를 잘 보면 너무나 그 사람들이 대적하고 비방하니까 갔는데 다시 유대인에게로 전체 구속사의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비방하는 회당의 유대인 때문에 이방인 디도에게 갔는데 믿었다면 그리스보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비방을 하는데 믿는 것이 얼마나 격려가 되었겠나? 인생이 해석된 유스도(Justus)의 집에서 고린도교회가 시작 되었다. 이렇게 쓰임 받는 것이다. 이 세상 삶을 끝내고자 세상으로 이사해야 하지 않나?.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모두가 영생의 이사를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로 이사해야 한다.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이 성령의 백성이 되셔서 이사 하시기를 바란다. 적용하기 전에 말을 그쳐서는 안된다. 큰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사단이 훼방한다. 역사가 크게 일어나는 목장일수록 목자님이 크게 훼방을 받고 있다. 그 목장이 은혜가 충만한 것이다. 늘 진짜 역사가 일어나려고 사단이 발악 하는 것이다. 남편 아내 자녀를 통해 오는 것이다. 인간이 너무 악하고 음란해서 깨어있을 수 없다. 그래서 유스도(Justus)와 그리스보(Crispus)는 바울이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로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에 기록되었고 바울에게 세례 받았던 인물로 기록이 된다.

 

 

(적용#3)

 

-대적하고 비방 받아서 멈추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그 대적이 변화된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디로 이사 가고 싶으세요?

 

 

4.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9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절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절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이제 디모데(Timothy)와 실라(Silas)를 만나고 유스도(Justus)와 그리스보(Crispus)를 만나 고린도 사람들(Corinthians)이 세례를 받았다. 대단한 것인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바울을 휘감고 있다. 바울이 말 한마디를 하면 핍박과 고난과 대적이 지속되어서 그런 것 이다. 얼마나 떨리겠나?. 여러분 믿는 자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너무 소수다. 그래서 동성애가 맞는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다 맞는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자기 신념으로 군대 안 가는 것도 맞는다고 판결이 났다. 말하는 게 얼마나 두렵겠나? 사회나 직장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두렵다. 동성애가 죄라고 하면 소수의 사람은 아니라고 우리들교회에서 말한다. 저는 소수라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우리들교회 같은 곳도 소수다. 마음이 아프다. 그러니까 굳이 말 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려고 한다. 왜 바울이 두려워했는지 이해되나?

 

바울을 위로해 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너에게 해를 가할 자가 없다고 한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말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한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음란한 도시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데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이 말도 안 들어갈 것 같은 고린도 같은 내 남편 아내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이 성중에 내 아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제가 우연히 남편과 결혼한 것이 아니라 이 성중에 하나님의 백성이 우리들교회에 이렇게 많았다는 것이다나의 죄악과 수치를 자녀의 우상, 물질 우상을 도피한 그들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이걸 말하려고 하니 얼마나 떨리겠나? 자기의 죄를 말해야 하니 얼마나 무섭겠나?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이곳에서 바울은 어느 도시와도 다르게 1년 넘게 있었다.



이제 아시아로 가고 싶은데 갈 길을 모를 때 벼랑 끝에서 성령의 환상 설교로 이렇게 위로해 주시는 것이다. 이러면 끝난 것이다. 아무도 너를 대적하지 않고



훼방할 자가 없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두려워서 못한다. 말씀에 붙잡힌 자는 정말 영육 간에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음란한 이 사람들을 깨우면 그 문제 많은 고린도에 고린도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적용#4)

 

-나는 성령의 백성으로 그 고린도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습니까?

-나의 연약함을 말합니까 두려워서 침묵하고 있는 말은 무엇입니까?



고린도교회가 우리들교회다. 우리는 성경 나오는 본문이 나올 때마다 계시록 하면 계시록 교회가 우리들교회다.

 

 

 

<Epilogue>

 

1)  성령의 백성은 주안에서 보고 싶은 지체다.

2)  성령의 백성은 말씀을 붙잡히게 해준다

3)  성령의 백성은 대적과 비방도 받아내야 한다

4)  성령의 백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5)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듣고 적용하는 일에 집중해야 되지만 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6)  목적을 이루면 허탈감이 오게 되어 있다

7)  하나님이 붙잡아 주지 않으시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8)  말씀 듣는 구조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완악 함과 고집이다

9)  대적과 비방에 반박을 할 때 또 다른 올무에 빠지게 되므로 옷을 털어야 한다

10)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징표다

11) 대적하고 비장하는 가족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12) 대적과 비방을 받아도 성령이 말씀을 그쳐서는 안된다

13) 말씀에 붙잡힌 자는 영육간에 두려움이 남는데 그것이 말씀을 전하게 하는 비결이다

14)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에 붙잡혀 있으면 죄 짓는 것과 멀어지게 된다

15) 말씀에 붙잡힐 수 잇는 구조가 공동체다

16) 공동체에 안 오는 것이 죄로 향하는 징표다

17)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미완료 과거 수동태다

18) 죄가 많을수록 은혜가 많다

19) 아덴 같은 사람이 완악하고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20) 고린도처럼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

21) 함께 구원을 바라볼 공동체가 있으면 성령의 백성이고 보고 싶은 지체가 되는 것이다

22) 여러분들이 교회를 다녀도 “다 꼴 보기 싫어, 다 이상해” 하면 여러분들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23) 절대로 믿음이 좋은 사람은 누구를 욕할 수 없다.

24) 말씀에 붙잡히는 것은 억누름을 당하고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다.

25)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말이 맞다.

26)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듣고 적용하는 일에 헌신하고 집중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27) 아무리 열심히 섬겨도 우리 힘으로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28) 하나님이 붙잡아 주셔야만 우리는 상대방에게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29)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절대로 안 된다.

30) 십자가에서 죽으신 나사렛 예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이 증거가 가장 사람의 운명을 뒤바꾸는 증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1) 사람이 칭찬에 장사가 없다.

32) 내가 말씀을 붙잡은 것 같지만 전적으로 붙잡힌 것이다.

33) 말씀이 나를 붙잡았다. 내가 붙잡혔으니까 날마다 나를 의심하면서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인정할 때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에 잡혀가는 것이다

34)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 되는 것이다.

35) 이것이 말씀에 붙잡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내가 뭘 좀 한다고 생각했으면 금새 흘러 떠내려갔을 것이다.

36)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려면 말씀의 구조 안에 있어야 가능하다

37)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이 공동체 안에 거해야 한다.

38) 목장에 참석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체들을 말씀으로 붙잡고 계신 지를 보고 들으며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듣고 순종해야 하는지 지체들을 통해 주시는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씀의 구조 안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39)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들어가서 그 구조 속에 있어서 계속 붙잡혀서 남들이 나를 붙잡아 주어야 한다. 내가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40) 악의적인 루머를 조직적을 유포하면 없는 죄도 만들어낸다.

41)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비방과 대적이 비일비재 하다.

42) 말씀이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은 말씀에 붙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수동태가 안되기 때문이다.

43)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완악 함이고 목장에 안 들어오는 것이다.

44) 성령의 백성은 이렇게 비방과 대적을 받을 때 대항하지 않고 그 상황을 피해야 한다.

45) 말씀에 붙잡혀 있어야 하니까 세상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것인데 이것이 성령의 백성의 징표다.

46) 모두가 영생의 이사를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로 이사해야 한다.

47) 말씀이 들리는 구조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적용하기 전에 말을 그쳐서는 안된다.

48) 큰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사단이 훼방한다.

49) 역사가 크게 일어나는 목장일수록 목자님이 크게 훼방을 받고 있는 것인데 그 목장이 은혜가 충만한 것이다.

50) 늘 진짜 역사가 일어나려고 사단이 발악 하는 것이다.

51) 인간이 너무 악하고 음란 해서 깨어있을 수 없다.

52) 말씀을 듣지 않으면 두려워서 못한다.

53) 말씀에 붙잡힌 자는 정말 영육 간에 두려움이 있다.

54) 두려움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55) 죄를 나누면 죄가 힘을 잃는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6. 23. 20:17

[우리들교회 2021620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 18: 1~ 4/성령의 권면)]

 

<사도행전 18:1~4>

 

1절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After this, Paul left Athens and went to Corinth)

 

2절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There he met a Jew named Aquila, a native of Pontus, who had recently come from Italy with his wife Priscilla, because Claudius had ordered all the Jews to leave Rome. Paul went to see them)

 

3절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and because he was a tentmaker as they were, he stayed and worked with them)

 

4절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Every Sabbath he reasoned in the synagogue, trying to persuade Jews and Greeks)

 

 

 

<Prologue>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누군가의 권면을 듣기가 어렵습니다우리들에게는 자존적인 교만이 있어서 어려운데 주님 성령의 권면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듣기를 원하오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기도 합니다 아멘.

 

지난주 집으로 오신 분들은 인생을 해석하는 성령의 권면을 들으셔서 해석이 되셔야 합니다누군가의 권면이 들리려면 배가 부르면 안 들립니다언제 성령의 권면이 들릴까요?

 

 

<말씀 요약>

 

성령의 권면은, 

 

 

1.   실패와 외로움에 있을 때 권면이 들립니다.

 

1절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덴(Athens)을 떠났다고 합니다실패로 돌아간 후를 말합니다지 지난주 복습을 하면서 생각해 봅시다아덴은 아테네 지성의 요람이었죠 오직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에 시간을 쏟았죠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자들이 즐비한 도시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라는 명언이 존재하는 도시였죠지금까지도 세상 사람들은 바울은 몰라요 바울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요 그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것이 궁금했지요 17장에 아테네에 맞게 지혜로운 전략으로 그들의 언어로 삼위 하나님을 자연 계시로 인한 지식으로 호소했어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복음으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을 정하신 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심판과 공의와 회개, 죽은 자의 부활 등을 전했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어요그래서 그들 중에 교회가 설립될 만큼 성도가 생기지 않았습니다그곳에서는 생각해도 위축감이 들었을 것 같아요 삼 부자 농구선수 인터뷰를 보면서 영어 수학을 잘 시키고 말도 잘하는 아이들 때문에 그 아버지(허재)는 재벌이 부럽지 않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혹시 믿는가 했더니 그 가족은 개신교에서 불교로 개종했다고 합니다이런 가족을 보면 위축감이 들어요뭐든지 잘하고 돈도 잘 벌고 하니까 끝없이 보이는 행복이 우상이 있습니다그래서 이제 말쟁이(babbler)라고 했던 바울은 아덴에서 처절하게 실패를 합니다우리 가운데 세상에서 보기에 최고의 고품격의 아덴 같은 식구들이 교양 있게 믿는 집이 있습니다보십시다아덴에서 사도바울은 유대인의 지겨운 박해를 당하지 않았어요 매도 맞지 않았고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실라(Silas)와 디모데(Timothy)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바울은 혼자서 아덴을 떠났는데 아픔과 고통의 떠남을 말합니다. 아덴의 우상숭배로 인해 성령의 격분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열매가 없으니 전도가 완전히 벽에 부딪혔다는 것인데 이곳에서 자괴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아무 말도 안 하는데 느껴지는 거부의 느낌이 있잖아요위축될 정도의 잘난 사람만 있으니 전했지만 열매가 없습니다저도 제가 잘하면 남편이 구원받을 줄 알았어요. 아덴의 쓰라린 경험이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하지만 말씀대로 복종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때가 차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저와 남편은 믿는 집 자녀였으나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은 처음에는 둘이 비슷했죠 저는 주님을 만났으니 우리들의 만남은 육과 영의 만남으로 변해갔어요영과 육이 잘 맞았더라면 비극이 되었을 것이다. 지옥행이니까. 남편은 나를 사랑한다면서 인간적으로 소유하고 집착하고 의심하고 저를 두려워 떨게 했어요 어떤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도 통하지 않았어요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도무지 해석하지 못해요나 보고 어쩌라는 것인지를 외쳐 봤자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그래서 외로웠죠 그래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고 큐티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죠 외롭지 않았으면 성경을 깊게 읽었겠습니까그런데 말이죠 남편이 괴롭히니까 정말 안 보이던 저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 거죠 이에 너무 중요한 거죠먹보다 검은 내 자신의 속 모습이 보이는 거에요.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상대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실체가 보이는 거죠

 

나는 착하고 공부 잘한다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저의 속 모습을 말이죠 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죄가 보이니까 평강이 있기 시작했어요. 죄가 보여야 큐티가 되고 가정을 지킬 수 있습니다예수 믿으면 자기 죄가 보이는 것입니다상대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죄가 보이면 천국이 보입니다제가 제 죄가 보이니까 입이 다물어졌습니다손가락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이게 중요한데 이 세상 지혜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 쇠귀에 경 읽기 같은 설교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의 방법인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말씀의 리트머스 시험지에 보이니까 하나님의 방법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저보고 정말 미련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미련한 것을 너무 연습했기에 지금 미련한 전도를 해서 구원을 이루게 하십니다연습하지 않았으면 오늘의 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되는 부부생활 회사 생활에서 전도의 미련함을 연습 하셔야 해요.

 

미련하게 살 수 없는 거예요 이 세상 지혜로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연습 하셔야 합니다저한테는 오리지널 13년을 주셨지만 어떤 분은 더 갈 수 있고 구원받지 않으면 이 말이 이해가 안 됩니다. 13년 살고 무슨 고생이라고 평생 써 먹냐 고 이런 분도 있습니다제가 13년 시집살이를 한 것을하나님이 거기까지 하고 저를 쓰시겠다 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지금은 남편 고난과 비교가 안됩니다제가 어떻게 천국을 소망합니까천 번 만 번 더 힘들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다그만큼 저는 아덴이 처절하게 외롭고 실패한 장소였다는 것입니다절벽을 느끼는 것이 아덴 같은 사람입니다바울도 아덴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저도 아덴 같은 시댁으로 인해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죄가 미약하게 보였지만 서서히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그래도 죄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세상 사람들은 선함 행위로 판단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때는 같이 사는 육적 신부였지만 이렇게 영적 과부였고 지금은 육적 과부이지만 영적 신부인 줄 믿습니다.



(적용#1)

 

-여러분의 외로운 아덴은 어디입니까?

 

-육적 과부라 외롭습니까영적 과부라 외롭습니까?

 

 

그런데 정말 기도 제목이 많이 올라 왔잖아요 친정 부모님은 언젠가 교회 가겠지만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합니다부부간의 모임에 나가서 주일성수해야 한다고 했다가 어떤 분이 저 여자하고 인연을 끊으라고 하니 정말 생색이 난다고 합니다아덴 같은 사람들이 천지로 쌓였습니다우리 이승은 자매도 안 왔잖아요의사라고 하잖아요 아덴이잖아요.



2.   음란해도 권면이 들립니다.



1절 다시 봅니다. 

 

1절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나 고린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아가야 지방의 수도입니다동서로 바다가 열려있고 남북으로 도로가 있어서 아시아와 로마를 연결하는 통로이고 길목 역할이었기에 오래된 도시였습니다지도 보여주세요.

 

 

 

로마로 가는 길목에 있는 완전히 항구로서 교통의 요지이고 아가야 지방이라고 하고 수도가 고린도입니다아셨죠유명한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가 44년에 로마 식민지를 건설합니다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고린도를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승격시켰습니다바울 당시 고린도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비롯한 다른 도시들 중 최대 도시였고 키케로는 '그리스도의 빛'이라고 했고 로마의 잠재적인 라이벌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고린도는 모든 도시들의 모습을 합한 복합적인 도시였어요문화적으로는 아덴과 닮았습니다그리고 셋을 합친 고린도는 아주 세 도시를 압도했습니다그런데 그 중에서도 수많은 배와 무역품 정사품 경제 돈이 모이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돈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현찰 박치기하는 곳이었습니다.

 

돈이 모이면 한결같이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문화도 발전했지만 타락한 문화가 발전해서 그리스 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성적으로 부 도덕 했다고 표현했습니다고린도 남자라고 하면 기둥서방이고 여자라고 하면 몸 파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최고로 음란하고 크고 강력한 도시에 바울은 실패자로 입성했고 혼자 갔습니다이럴 때 바울도 남자잖아요 이럴 때 부딪히는 것이 여창과 남창인데 웬만한 사람이라면 실패를 합리화하면서 음란에 빠지지 않았을까요? 최대의 위기인데 아내도 없잖아요.

 

독수 공방한 지 오래 되었잖아요2 3절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할 때 심히 떨었다고 합니다음란의 유혹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사도행전의 여정이 우리의 악과 본능의 여정과 같아서 직면해야 할 것입니다인간이 악하고 음란하다 이것을 못 깨달아요.

 

미 문화원 점거했던 서울대 문리 전공 출신의 운동권 사람이 평생의 실패를 해서 지금은 횟집 사장이 된 분이 이야기를 하기를 의도가 선하면 항상 선한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데 사람의 욕망을 이기는 제도는 없다고 합니다이렇게 살아보니까 깨닫는 거죠데모도 하고 그랬는데 살아보니까 사람의 욕망을 이기는 제도가 없다고 합니다이해타산으로 인해 다 변합니다별 인생 없어서 악하고 음란합니다이것을 언제나 외우고 살아야 합니다선한 사람이 없습니다착각하면 안 됩니다.

 

교묘하게 착하고 성품 좋아서 결혼했다 이래서 속는 겁니다로마서 1 18절입니다현재 진행형입니다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서도 누구도 바른 시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올바른 관계를 모르니 불 경건이라서 진노가 자기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다 나타나고 있어요올바른 관계를 위해서 물불 안 가려도 된다고 하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그래도 열심히 교회 나가면서도 바람 한 번 폈다고 잘못했다고 하면 이혼해야 한다고 합니다.

 

부모형제가 신자인데도 이혼을 권유하고 이런 말을 합니다이혼해서 잘 된 케이스가 많다고 하는데 잘 된 케이스가 무엇입니까하나님이 거룩한 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하는데 그 적용하기를 싫어합니다하나님이 옳지 않다고 여기시기 때문에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겁니다이혼 사기로 진리를 막고 자기의 법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신자의 자기 열심에 진노가, 불신자는 예수가 없어서 진노입니다더 심각한 것은 내어버리는 진노입니다그러니까 하나님이 정말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랑도 미움도 아니고 내어버리는 잊힌 자 고린도 사람들 같은 것입니다잘 먹고 잘 사는데 아프지도 않으니까 고린도로 가는 길인 거죠 음란이 고린도의 대표적인 단어인 거죠.

 

이런 사람을 이렇게 잊힌 자라고 하죠하나님의 레이더망에서 멀어졌다고 하는 거죠. 25절부터 27절까지 부끄러운 욕심에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숭배한다고 합니다예로 동성애를 언급했습니다동성애의 사랑이 조물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는 예로 보여주는데 그러니까 동성애자들이 어떤 이야기도 안 듣고 돌아서지 않습니다중국의 부잣집 아들이 인플루언서(influencer)에게 구애했지만 무시당하자 그렇게 괴롭혔다고 합니다그러자 인플루언서는 동성애라고 밝혔습니다아덴의 끝에 가있는 것이 동성애라고 합니다그러나 저는 아덴보다는 고린도가 권면의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고린도같이 음란한 분들이 수없이 돌아왔습니다그러나 아덴 같은 분들은 안 돌아왔습니다주님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은 정말 악한데 그래도 고린도에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할렐루야사도행전을 보면서 나에게 주시는 이야기로 들어야 합니다.

 

 

 

(적용#2)

 

-나는 사람과 하나님에게 각각 사랑받는 자 입니까미움 받는 자 입니까잊혀진 자입니까?


-여러분이 음란으로 회피하고 있는 합리화는 무엇입니까?

 

 

3.   같은 실패를 겪은 한 사람의 권면이 들립니다. 



 

2절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홀로 된 바울에게 아굴라(Aquila) 라는 지체를 보내시는데 독수리라는 뜻입니다독수리는 비바람이 불 때 하늘로 올라가서 피한다고 합니다독수리는 또 다른 실패로 떠난 곳이 본도(Pontus)였습니다아시아에서 본도가 북쪽 끝입니다이 사람들은 본토 유대인이 아니라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어서 무언가 고향을 떠나서 통하는 면이 있었겠죠출신이 비슷해서 하는 것 아니라 고난이 비슷해서 통합니다우리들교회에 지역감정이 없는 이유는 고난이 비슷해서 입니다로마에서 정통 유대인과 예수를 믿는 유대인이 갈등이 심해지고 로마 황제를 신으로 모시지 않고 예수를 믿으니까 유대인들이 골치거리 였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밖은 이후에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가 로마 시민권 없는 유대인은 떠나라고 합니다잘 살아보려고 유대인들이 로마로 갔는데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쫓겨났어요. 25천명이 추방 당했는데 흉년까지 들었습니다여기 떠나다가 지금 로마에서 떠나라고하는 이 떠나다 1절에 아덴을 떠나라는 단어하고 같은 의미입니다같은 단어가 두 번 쓰였습니다아굴라(Aquila)와 브리스길라(Priscilla)가 아쉽게 전도를 해야하는데 믿음이 있는데 떠날 수 밖에 없던 고난을 겪은 점에서 깊이 통했습니다.

 

바울은 아굴라(Aquila)와 브리스길라(Priscilla)집에서 지냅니다함께 지내니 힘을 얻었습니다같은 고난을 겪은 지체들과 함께라면 주께로 인도하는 성령의 인도가 됩니다우리들교회 목장은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그래서 이때 바울이 아굴라를 만나고 멀리서 들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울로부터 아굴라에게 성령의 세례를 받게 합니다이제 너무 통하는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거죠 바울도 깨닫는 거죠 아굴라 한 사람 만나게 하려고 권면하시기 위해 나를 보내셨구나 옆에 실라(Silas)와 디모데(Timothy)가 있었다면, 아덴에서 열매가 있었다면, 강론만 했었을 것 같습니다설교도 실패했고 학문도 실패했고 그런데 아굴라를 만나게 하기 위함인 거죠 아굴라가 떠날 때 홀로 온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같냐 하면 아내 브리스길라와 갔는데 작은 노예라는 뜻입니다브리스길라가 가문의 귀족이라는 뜻입니다.

 

추방당하면 그때 귀족 가문의 여성은 대단한데 이혼당하는데 같이 떠난 거죠도저히 떠날 수 없는 것을 같이 온 겁니다팍스로마나(Pax Romana) 시대에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는 시대에 말이죠브리스길라와의 동행 결정의 마음이 아굴라를 성령의 권면을 받게 하는 자리까지 인도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죠이후 성경에서 유명해지는데 왜아시죠아볼로(Apollo)라는 신학자, 아볼로는 물을 주고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아볼로가 떠나고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일어났어요얼마나 잘 가르쳤으면 분쟁이 일어났을까요우리들교회에 파가 생길까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그렇지만 진짜 잘 가르쳐야 하는데 바울이 말이 시원치 않다고 하잖아요아폴로를 누가 가르쳤냐 브리스길라가 가르쳤다고 합니다예수의 복음으로 깨닫게 해서 그렇지만 아주 성경에 능통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칭호가 아내부터 먼저 나오게 됩니다남편을 세워주기 위해 떠났던 아내가 하나님 안에서 이렇게 귀하게 인정받는 것을 봅니다남편에게 복종의 언어를 쓴다고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게 써 주십니다아내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습니다그 역할을 지킨 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아픈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힘들지만 따라왔기 때문에 중심이 잡혀 있는 것입니다역할에 순종하는 것이 성령의 권면의 비결입니다브리스길라의 헌신으로 주님은 빛나게 해주셨어요성경이 모두 내 이야기입니다이혼 안 하고 남편에게 복종한 것이 그것 밖에 제가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가정을 지키는 것은 아무리 날마다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교회들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날마다 이야기를 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여러분의 가정의 파괴 되어서 왔기 때문에 날마다 들어도 지루해하지 않는 것이 가정 중수 말씀묵상 입니다지루하면 아덴 사람입니다.

 

 

(적용#3)

 

-나의 아픔이 약재료가 되어 다른 사람을 권면하고 있나요내 자랑으로 권면하고 있나요

-흉년의 때에떠남의 때에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순종하며 함께하고 있나요?

 

 

힘들 때일수록 역할에 순종해야 합니다.



 

4.   생업을 같이하므로 사명의 권면이 들립니다.

 

 

3절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바울과 아굴라 부부가 생업이 같았다고 합니다천막을 만드는 일인데 이 일이 당시에는 천이든 가죽이든 다양한 천막이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바울은 학자입니다. 당대 최고 석학인 가말리엘(Gamaliel)의 제자 입니다천막 만들기는 언제 배웠을까요유대인은 공부를 하는 사람도 몸으로 하는 기술을 배우게 한다는 것 입니다유사 시에는 그 기술로 먹고 살라고 합니다그래서 유대인들이 돈을 많이 법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 라고 합니다그래서 물고기 잡는 것을 배우는 것이죠바울이 생업을 익혔는데 고향이 다소(Dasau)잖아요다소는 아주 천막을 만드는 원재료가 발달한 도시입니다다소 사람들은 그냥 천막 잘 만들겠구나 기술자들인 거죠그런데 세상에 고린도에 왔는데 전도가 어려우니 브리스길라와 아길라가 천막기술자라고 합니다잘 통하는 것 입니다.

 

같이 일을 하는데 바울에게 생생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고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생업을 하면서 깨닫게 하고 권면 하세요 내 삶의 터전을 뛰쳐나가면 합니다남자는 땀 흘려 일하고 여자는 아내 엄마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제가 루저(loser)가 돼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 있었어요제가 과부라서 패배의식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사명이 왔지만 항상 때에 순종했습니다바울이 생업을 하면서 언제든지 돈 벌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그거는 안됩니다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때를 지키니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면으로 믿게 해주셨습니다그러면 오늘 4절처럼

 

 

4절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Jews)과 헬라인(Greeks)을 권면하니라(trying to persuade)



그때야 비로소 안식일에 회당에서 강론케 하신 거예요. ‘그런데라는 접속사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렇게 생업이 같아서 둘이 너무 좋아하고 있는데 그런데 안식일에 회당에서 강론케 하셨어요바울은 안주하지 않았어요주님께서 통하는 지체를 만나게 하시는데 만남을 통해 힘을 공급해 주시는 것이 성령의 권면인데 만남이 목적이 되는 거예요교회 와서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통하는 사람 더불어 선교를 하고, 주의 일을 하고, 이혼을 하는 것은 악의 본능입니다. 원칙을 떠난 것은 어떤 것이든 합리화가 되지 않습니다우리는 떠나고 싶어요 물고기 집으로 가고 싶고 통하는 지체를 만났다고 자녀와 집을 버리면 안 됩니다 성령께서 사람을 통해 권면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세우시기 위함 때문입니다.

 

통하는 사람 만나 좋았지만 만남으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했다는 것입니다우리의 만남으로 자리를 잘 지키게 하는 것이 성령의 권면입니다. 구속사를 제시할 수 있고 힘들었죠힘든 것을 나누며 가는 것입니다힘들지만 이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내가 가정을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힘들지만 가정을 지키기 때문에 목회도 하고 사업도 하고 잘 되는 것입니다힘들어서 버리면 앞으로는 남았지만 뒤로 갈수록 다 사라집니다바울은 텐트를 만들며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a)에게 구속사로 증거를 제시해서 간증했습니다. 구속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고 간증하기 위해 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적용#4)

 

-좋은 만남으로 내 자리를 잘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내 자리를 떠나고 싶습니까?

 

다들 이래서 이혼한데요그 따위 이야기를 목장에서 깨부수기 바랍니다.

 

 

<Epilogue>

 

1)  성령의 권면은 실패와 외로움 속에서 권면이 들리지만 음란 해도 들리니 음란한 분들 절망하지 마시라

2)  고린도교회가 크게 세워졌는데 같은 실패를 겪은 한 사람의 권면이 들리고 생업을 같이하므로 사명의 권면이 들린다

3)  자기 죄가 보이는 것이 얼마나 천국인지 모른다

4)  리트머스 시험지에 내 죄가 보이니 날마다 전도가 되는 것이다

5)  절벽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아덴 같은 사람이다

6)  죄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7)  세상 사람들은 행위로 판단하여 그리스도인을 정죄한다

8)  사람의 욕망을 이기는 제도는 없다

9)  불 경건과 불의는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다

10)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예수 없는 것에 진노가 임하고 믿는 자에게는 자기 열심으로 진노가 임한다

11) 하나님께 입혀진 자가 가장 비참한 자이다

12) 음란의 끝이 동성애다

13)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상위에 놓는 것이 동성애다

14) 출신과 지역보다 더 잘박한 공통점이 고난이다

15) 고난으로 하나가 된다

16) 같은 고난을 겪는 지체들이 많은 공동체가 하나님께로 향한다

17) 아덴 사람은 말씀 안 들리는 사람과 동의어다

18) 말씀이 통하는 지체를 통해 사명의 자리로 세우는 것이 성령의 권면이다

19) 성령의 구속사가 나의 구속사가 되는 것이 성령이 권면이다

20) 내 안에 아덴의 속성과 고린도의 속성이 있다

21) 내 죄가 보인 만큼 눈물이 보이고 그 만큼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22)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도무지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다

23) 옆에서 괴롭히니까 정말 안 보이던 자신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24) 먹보다 검은 내 자신의 속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25)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상대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실체가 보이는 것이다

26) 죄가 보이니까 평강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27) 죄가 보여야 큐티가 되고 가정을 지킬 수 있다

28) 예수 믿으면 자기 죄가 보이는 것이다

29) 상대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죄가 보이면 천국이 보이는 것이다

30) 내 죄가 보이면 입이 다물어지고 손가락질할 수 없게 되는데 이 세상 지혜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31)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게 되면 말씀의 리트머스 시험지에 보이니까 하나님의 방법을 실천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32) 이 세상 지혜로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33) 세상 사람들은 선함 행위로 판단하는 것이다

34) 사람은 이해타산으로 인해 다 변하게 되고 별 인생 없어서 악하고 음란하다는 것을 언제나 외우고 살아야 한다

35)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이 없기에 착각하면 안 된다.

36)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서도 누구도 바른 시각을 가질 수 없다

37) 올바른 관계를 모르니 불 경건 하기에 자기는 의식하지 못해도 진노가 나타나는 것이다 

38) 하나님이 옳지 않다고 여기시기 때문에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이다

39) 이혼 사기로 진리를 막고 자기의 법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신자의 자기 열심에 진노가, 불신자에게는 예수가 없어서 진노가 온다

40) 더 심각한 것은 내어버리는 진노인데 하나님이 정말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랑도 미움도 아니고 내어버리는 잊힌 자로서 고린도 사람들 같은 것이다

41) 잘 먹고 잘 사는데 아프지도 않으니까 고린도로 가는 길인 것이다

42) 음란이 고린도의 대표적인 단어인 것이다.

43) 출신이 비슷해서 하는 것 아니라 고난이 비슷해서 통하는 것이다.

44) 같은 고난을 겪은 지체들과 함께라면 주께로 인도하는 성령의 인도가 된다

45) 아픈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힘들지만 따라왔기 때문에 중심이 잡혀 있는 것이다

46) 역할에 순종하는 것이 성령의 권면의 비결이다

47) 여러분의 가정의 파괴 되어서 왔기 때문에 날마다 들어도 지루해하지 않는 것이 가정 중수 말씀묵상인 것이다

48) 말씀 듣는 것이 지루하면 아덴(Athens) 사람인 것이다.

49) 힘들 때일수록 역할에 순종해야 한다.

50) 원칙을 떠난 것은 어떤 것이든 합리화가 되지 않는다

51) 성령께서 사람을 통해 권면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세우시기 위함 때문이다

52) 우리의 만남으로 자리를 잘 지키게 하는 것이 성령의 권면이다

53) 내가 가정을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의 기초다

54) 힘들지만 가정을 지키기 때문에 목회도 하고 사업도 하고 잘 되는 것이다

55) 힘들어서 버리면 앞으로는 남았지만 뒤로 갈수록 다 사라진다

56) 구속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고 간증하기 위해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6. 18. 10:21

[화초<花草(Flowering Plant)>의 꿈(Small Garden Home Garden)]

 

하나님이 은혜로 서울 아파트가격 폭등 시작 직전에 막차 타고 양평전원주택살이를 접으면서 북한산 자락으로 이사 온지 1년 6개월이 되어 갑니다.

 

덕분에 매일 아침 집 근처 북한산(삼각산)둘레길 산책과 더불어 야생화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감사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북한산 자락 진관사에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서)

 

(북한산자락에서 자생하는 야생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시구절이 새삼 마음에 와 닿네요~

 

아파트 거실이 삭막 하게 느껴져 화분 2개를 들여 놓았고 작년 10월 책 출판기념회에 지인들이 보내 온 화분도 집으로 옮겨와 동거하고 있습니다.

 

(외대영어대학 동창회장을 역임한 다우키움그룹 김익래회장(영어과 선배)가 보내온 이름 모르지만 특이한 화분이 이채롭다)

 

고무나무과로 보이는 화분이 1년 6개월만에 3~4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초의 꿈’을 ‘작은 집 작은 정원’(Small Garden Home Garden)에서 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 거실에 마련한 작은 정원/Small Garden Home Garden)

 

            (1년 반 만에 3~4배 훌쩍 커버린 고무과 화분에서 새싹 3쌍이 한꺼번에 피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천하 만물 중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럭무럭 자라나는 화초를 보면서 천지창조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 가는 비내리는 아침 나절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Thessalonians/ 5:16~18)

 

16 Be joyful always; 항상 기뻐하라

17 pray continually;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6. 14. 12:54

[우리들교회 2021613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우리들교회 창립 18주년/룻기 1:1~22/ 집으로)]

 

 

<룻기/Ruth 1:1~22>

 

1절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절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절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절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6절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절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절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절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절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절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절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절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절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절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절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절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절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절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Prologue>

 

오늘 우리들교회 18주년이 되는 날 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의 집으로 초대하기를 원하십니다. 육적으로도 집을 떠난 분들은 돌아오게 하시고 이 시간 될 수 있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우리들 교회 18년 전 2003 6 15일 휘문고등학교에서 창립을 했습니다. 지금도 모두 휘문고등학교로 알지 우리들교회를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몰라도 18년 동안 숱한 사람들이 집으로 왔습니다. ‘집으로는 구원을 의미하지만 가정으로 돌아온 분들이 많습니다. 한 사람이 가정으로 돌아오기 위해 룻기 간증을 합니다. 선교들 중에서는 30년 들은 사람도 있고 18년을 들었던 아는 이야기이지만 오늘 처음 오시는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들어 주십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우신 영혼이 귀한 줄 모릅니다. 모든 분들이 기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기도가 응답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 요약>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1.   1차 흉년이 있습니다 (1~2) 

 

 

흉년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육적, 정신적, 영적 흉년이 종류별로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난한 육적 흉년, 결혼생활의 인간관계 흉년, 목사가 되어서 여성 목회는 남자는 무시하고 속으로 무시하는 영적인 흉년입니다. 항암으로 질병의 흉년까지 맞보게 하셨습니다. 보통 성도는 암 투병만 하게 되는데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끝없는 흉년의 성도들이 살려달라 하기 때문에 영적 흉년이 끊임이 없습니다. 힘드시죠? 정말 평생을 이제 듣고 삽니다. 이 모든 흉년이 섞여서 골고루 오며 가며 내 아버지 집으로 가게 하십니다.



흉년이 오면 그 땅에 누구의 치리를 받는가가 중요합니다. 말씀만 전하는 게 아니라 잘 보셔야 합니다사사(Judges)는 심판관 재판관 의미인데 목사님을 의미합니다. 말씀 그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하는 것처럼 자기가 법이었습니다. 큐티하며 적용할 때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적용해야 하며 통치 받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자녀-물질-남편-명예가 하나님 자리에 있습니다. 항상 자기가 법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합니다. 성경의 가치관과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법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왕이 되시지 못하면 악한 시대를 살게 되기 때문에 기억해야 합니다. 배가 불러서 말씀이 안 들려지고 없으면 말씀이 안 들려집니다.



1절 후반에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Moab) 지방에 가서 거주하였는데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이고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후에 예수님이 오실 땅입니다. 모압사람들(Moabites)은 여기에 들어오지 못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묻지도 않고 돈이 많다고 예수와 상관없는 것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이민 갔다고 합니다통치를 받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가족 우상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가족이 있는 거죠. 영적 멘토 역할을 해야 할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데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가장의 믿음은 가정의 운명을 좌우하고 대통령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정신 못 차리고 가족을 위한다고 하고 모압(Moab) 지방으로 떠납니다.

 

나오미(Naomi)라는 이름은 희락과 즐거움이란 뜻인데 경건한 가정에 흉년이 오니까 실체가 드러납니다. 선남선녀인 그의 두 아들이 이름을 보니까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Moab)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두 아들이 병약하고 쇠약하니까 키우기 어려웠겠죠 자식 문제 앞에서는 장사 없습니다. 그래서 이 두 아들을 데리고 그렇게 모압으로 이민 갔지만 모압에서 죽었습니다. 잘못된 결정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고 죽을 수 있습니다. 병약하고 쇠약해도 유다 베들레헴의 풍성하다는 에브라 사람이라고 붙어있습니다 풍성한 찬송의 떡집에 고해야 할 자녀들이었다는 것입니다큐티를 하면서 반복되는 단어가 나오면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적용#1)


-여러분의 흉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자녀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은 유다 베들레헴 입니까? 가지 말아야 할 모압입니까?




2.   2차 흉년이 옵니다.(3~4) 

 

이 가정에 매를 때리 싶니다.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요 생떼같은 남편이 죽었어요 고대 중동에서는 천 프로입니다.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라는 것은 주인이 없기 때문인데 과부 중에서 먹을 것이 있는 과부가 더 불쌍하고 먹을 것이 있으며 예쁜 과부입니다. 정말 고대에서 가장 불쌍한 과부입니다. 나갈 수도 죽을 수도 없고 혼자 갈 수 있어요? 딱 속기 좋아서 돈 버려, 몸 버려 하는 겁니다. 불쌍한 환경입니다. 그래도 정말 흉년에서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프로이트(Freud)가 한 말 중에서 남편 죽은 거 집착하다가 우울증 대장암이 걸려 그런 엄마를 보며 자식들이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흉년이 해석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돼서 망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3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Elimelech) 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나오미 두 아들이 남았으며 죽었는데 남은 게 있다고 하잖아요. 나에게 영적 계보를 이어갈 나와 두 아들이 남았구나 이거를 봐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찬송의 떡집으로 돌이키는 것이 중요한데 제가 그렇게 이제 저도 이제30대 과부가 되었는데 여러 가지 흉년이 많아서 1~2~3 차로 부족한데 남편의 죽음에서 저를 봤어요 말씀이 들리니 해석이 되어서 그때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60대 권사님 과부라고 하니 권사님의 슬픔이 멈추었습니다. 성경의 인물 나오미는 남겨진 것을 보지 못했어요 말씀이 안 들리니 어떤 짓거리를 하는지 4절을 보면

 

4절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Orpah)요 하나의 이름은 룻(Ruth)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나오미(Naomi)는 내가 회복되어서 짠하고 보여주겠다고 하더니 불신 결혼까지 시킵니다. 교회를 떠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었어요 모압 사람들과 거주하며 그들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집사님이 얼마나 도움을 받았습니까 말씀도 없고 권고도 위로도 없기 때문에 자녀들은 공부를 잘하고 회사 잘 다니고 하니까 신앙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남편이 죽고 1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성공해서 돌아갈 거야 이혼하면, 바람 피우면 교회 떠나고 성공해서 돌아올 거야 절대로 안 돌아오는 겁니다. 둘을 며느리를 얻은 걸 보니까 하버드를 졸업했지만 영적 회복은 멀어져 갔습니다. 3차 흉년의 매를 드셨습니다

 

 

(적용#2)


-흘러 떠내려가며 하나님의 매를 벌고 있는 영적 매너리즘은 무엇입니까?

 

 

3.   3차 흉년이 왔습니다.(5~6)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잘 살 수 있어. 그렇게 해서 이제 둘 다 아들까지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집이면 세상에서 잘 먹게 내버려 두셨을 건데 아들들도 죽었어요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절 한 절 천천히 설명해야 하지만 할렐루야입니다입이 다물어지는 고통 속에서 나를 봐야 합니다. 남편이 아들이 죽었는데 나오미는 살아있지 않습니까? 내가 예수 믿으면 이제 남은 것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은 다 죽었는데 뭐가 남았어요 거지 나사로’(Lazarus)는 의인이라는 칭호가 붙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탕자 부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고 앞으로의 영광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거꾸로 비교하면 안 됩니다. 비교하는데 생각하고 비교를 거꾸로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별 인생이 없고 짧기 때문에 남겨진 것을 봐야 합니다.



6절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나오미는 일어남 힘이 없어요 6절 만에 처음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왔는데 방문했다는 뜻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시는 여호와께서 나오미를 방문하셨어요 일어날 힘이 없는 나오미를 위하여 방문하셨어요. 택자니까 예수님이 오셔야 할 가정이니까 오늘 누군가가 때문에 오신 사람이 있다면 여호와께서 방문해 주실 줄 믿습니다. 찬송의 떡집에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지만 말씀이 들리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예요 6절 후반에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말씀이 들리는 것은 모압에서 돌아오는 겁니다. 유턴하는 겁니다. 회개하는 것은 유턴하고 세상 가치관에서 모든 집착과 중독에서 유턴하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불쌍한 이방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말씀이 안 들리더니 며느리 둘과 함께 세 과부가 되니까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에게는 한계적인 고난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인내가 9단이기 때문에 교양으로 치장하고 있어 3차 흉년이 와도 해석이 안되고 매를 벌고 있어요 사랑하기 때문에 자꾸 치시는 거예요 3차 흉년에서 남은 것이 보이고 말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적용#3)


-여러분에게 말씀이 들리게 한 3차 흉년은 무엇입니까? 이해되십니까

 

 

제 이야기를 합니다. 말씀처럼 선남선녀로 장로님 가정에서 가정으로 결혼했습니다. 정말 나오미죠. 오롯이 장충동에 둥지를 틀면서 피난 갔다가 올라왔습니다. 우리 엄마는 아들을 못났고 저를 낳아서 최대의 슬픔이라서 정말 출생이 흉년이었습니다. 모압에서 유턴해서 서울로 와서는 엄마는 교회 변소 청소만 했어요 그때는 재래식이기 때문에 똥 내가 나죠 화장실 청소가 나고 새벽 기도 가시고 해서 정말 그 옛날에는 전설적으로 섬겼다고 하는데 제가 본 엄마는 새벽 기도 가서 날마다 청소하고 눈물로 기도하시고 교회에 미치셨어요 교양 있는 봉사 안 하시고 남의 집 청소 등 일주일 내내 교회에 예배만 드렸어요 중학교 때부터 입시 지옥이 치열했는데 우리 엄마는 유치원도 안 보내고 시골에 산 것도 아닌데 언니들이 쓰던 거다 딸딸 딸 이러니까 가방도 허름하고 이런 것을 쓰다가 이런 것을 사용했습니다

 

저희 엄마는 시집 잘 가라 한 적은 없고 잘해도 관심 없고 입학식 졸업식도 온 적 없어요 장충동에 살았는데 중고등학교 시절에 망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태생부터 흉년이고 부도도 겪고 공부도 힘들었고 골짜기로 이사 갔습니다제가 그때 대학교를 가야 하는데 사립대학교는 못 가고 그래서 이제 제가 가려면 그야말로 등록금 싸고 거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대학교밖에 없는데 그런데 인간승리를 해서 붙었어요. 엄마가 돈 벌어라 공부해라 안 하는데 열심히 살고 바치고 했어요. 정말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피아노과에 전화가 없는 아이는 저 하나였습니다. 등록금을 벌어야 하고 장학금 받아야 하니까 노동을 했어요 성적이 좋으니 백 돈이 없으니 전임 제의가 돌아오고 후에는 강사가 되었어요 가난한 집 딸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사업가 집안 장로님집에서 남자에게 선이 들어 왔는데 포드 자동차에다가 기사로 대동하고 오니 뻑이 가서 갑자기 예고 강사도 뭐고 집어치우고 시집을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이것이 모압으로 피난 간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진짜 치열해서 아플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고 그런데 그거는 비교도 안되는 아마겟돈 시집살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무학력자라서 아주 회장님 사모님이 된 정말 겉으로는 교양이 더 있어 보이시는 겁니다.

 

외출도 안 되고 책 봐도 안되고 신문도 안되고 텔레비전 전화도 없었고 책도 신문도 못 보게 하고 말끝마다 깨졌습니다. 저는 매도 맞고 저의 전공 고난이 걸레질인데 지금도 습진 피부가 약한데 맨손으로 맨날 걸레를 빨고 이불을 빨고 그래서 지금 제가 물 일을 안 하는데도 습진이 재발이 되곤 합니다. 내가 고급 손을 가지고 어떻게 걸레를 빨았나? 두려웠나/ 나는 바보 아니야~ 끔찍한 거 있죠 아무리 가난해도 저를 빨래 걸래 못 빨게 했는데 하루 종일 걸래 빨라고 했는데 맨손으로 빨고 맨발로 이불 밟고 날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친정에 전화를 하면, 아버지는 내가 너무 힘들다고 하면 대학교 나와서 교만해서 그렇다고 끊었습니다. 이 세상에 말할 사람이 없었고 내 편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외로워서 죽는 겁니다. 드디어 눈만 뜨면 이혼을 생각했고 교양이 있어서 못하니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비굴하더라고요 엄마는 그가 기막힌 새벽 기도를 다니던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지금까지 범인 못 잡았습니다. 



도와줄 엄마도 없고 친정아버지와는 말이 안 통하고 한 가지는 있죠. 우리 아버지는 한 번도 남편 시댁 욕한 적이 없고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훈련이 포함이 되어있는데 그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자기 딸인데 왜 딸이 귀한 지 모르는 거예요. 태어나서도 딸이라고 하나도 인정을 못 받았는데 딸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데 제가 죽지도 않고 이혼도 하지 못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고 5년이 되었습니다. 장로석에 앉아있는 저를 보게 되는데 속으로는 힘들었습니다.

이런 저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살았잖아요. 왜 이런 시댁에 와서 해석이 안 되는 1 2 3차 흉년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러나 제가 죽지도 않고 이혼도 안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방문해 주셨습니다. 제가 묶였잖아요 노예처럼 저를 못 나가게 하시잖아요 그거를 안 가게 한 것을 순종이라고 한 것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뭔가 난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



엄마 사랑을 받지 못해 그러니까 저의 문제는 죄가 없는 거예요 죄가 없다고 생각한 제가 땅 끝까지 낮아지니 죄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어요. 생각하기 싫었어요. 힘드니 엄마가 생각나고 설교 노트한 것을 보니까 수십 권이 쌓였잖아요. 그것을 버렸어요. 우리는 겉으로는 착하고 봉사도 열심히 했는데 양심의 가책이 없어요 지난번에 장로님도 오셨지만 6.25이후에 그 당시에 유명한 목사님들만 오는 교회에 우리 엄마가 직접 가서 적어놓은 것이 유품이었겠습니까. 이제 사람의 마음이 계획한 것이 악하다고 하잖아요. 처음으로 엄마가 생각난 거예요. 등굣길에 어렸을 적에 엄마 새벽 기도 갔다가 학교 가잖아요 친구들하고 같이 가면 창피해서 엄마만 보면 도망가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믿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구나. 엄마의 진면목을 모르고 나한테 안 잘해준다고 남들한테 잘하는 거 필요 없고 그래서 그런데 제가 땅끝까지 무시당하니 엄마 생각이 났고 우리 시댁에서 무시당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깨달아 졌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이 청지기 비유를 하면서 재물과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비웃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자 한 것이 하나님께서는 미워하시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제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엄마를 생각해 보니 저는 이제 사명 때문에 공부하고 결혼했다고 나도 모르게 나도 속고 남도 속였습니다. 야망 때문에 공부하고 피아노 치고 결혼한 것이 인정되었습니다. 돈이 좋아서 모든 것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난 착하고 믿음 좋다고 하면서 이것이 제 스스로 옳게 여기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여기는 것이 우상이었습니다. 얼마나 인정받았으면 백도 하나도 없는 저를 서울예고 강사로 뽑을 수 있었겠습니까?



시집을 가니 진면목이 드러나고 내 모든 것 가진 것을 동원해도 안 통했어요. 결혼생활의 흉년이 저한테는 필요한 결혼을 안 했으면 제 죄를 깨달을 수 없는 그것이 깨닫게 되니 엄마가 기가 막혀서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모압으로 피난 간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엄마가 보여준 가치관 때문입니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무슨 수로 서울 대학을 갈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결혼도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잘한 거고 이렇게 쓰임을 받는 겁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서 하나님이 방문해 주시니 앉으나 서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회개하게 되어 남편과 어머니는 후에 구원이 되었습니다. 저의 고난이 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혼할 만하지 않습니까? 어떤 것 같아요 저는 이혼할 만하지 않나요저는 그때 경력도 있고 돈도 벌 수 있고 미모도 있고 시집도 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산 게 아닙니다. 그렇게 정말 비굴하게 새장에 문을 열어도 두려워서 못 나가는 겁니다. 그런 거 자체도 하나님의 세팅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아오면서 자랑하고 싶은 것은 서울대가 아니라 가정을 지킨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들 교회에서 가정 중수를 하는 겁니다



가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고 자녀들에 게 줄 최고의 유산은 깨끗한 호적입니다. 회개의 역사가 임하니 모든 것이 해석이 되고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남겨진 것을 보게 되니 유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한결같이 걸어오게 하시고 34~35년을 살아도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흉년을 거치게 하면 4번째는

 

 

4.   상처가 별이 됩니다.(19~22)

 

 

19절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두 사람이 베들레헴 떡집에 왔는데 모두가 반겼겠습니까? 흉년 때 떠났더니 이제야 왔네 하면서 비아냥거렸습니다. 제가 이 가정 중수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아냥거렸습니다.

 

 

20절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절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Naomi)라고 부르지 말라고 마라(Mara)라고 부르라고 내가 21절에도 풍족하게 나갔다 돌아왔다 징벌하셨다(afflicted) 이 이야기는 사명 가지고 갈 때 남편이 죽고 10년이 성공하면서 기다리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다. 내 삶의 결론으로 아들과 남편이 죽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생색내고 투덜대면 안 됩니다.

 

22절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모압 지방에서 모압 며느리와 돌아왔는데 유대 사람들이 무시했던 게 이방인과 여자입니다. (Ruth)을 전도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분수령적인 되는 구속사의 중요한 룻이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는 겁니다. 롯은 16절에 보면

 

16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절을 보면

 

17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그런데 우리는 어머니는 좋은데 어머니의 지체들은 싫다 목사님은 좋은데 교인들은 싫다 이거는 아닌 거죠. 자기는 재혼도 안 하고 자식 낳는 것도 포기하고 여성으로서 삶을 포기하겠다는 것 교양 있게 헤어졌지만 교양은 구원으로 이르지 못합니다. 선택한 순간이지만 결과는 영원합니다.



18절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우선적으로는 하나님 때문에 굳게 결심할 수 있었지만 나오미(Naomi)와 룻(Ruth) 사이에 신뢰가 없다면 함께 갈 수 없는 거잖아요 아무리 예수 믿으면서 조롱 당해도 침체 당해도 기쁨이 되는 만남이 있다면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동반자 사이에는 어느 일반적인 관계가 없어요 인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제가 초청할 수 있는 이유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주께 돌아오는 것은 중요합니다. 목장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들교회를 18년 동안 힐링 공동체가 되게 해주셨어요 생각해 보면 룻(Ruth)이 곳곳에 있었다는 거예요. 정말 제가 뭐 아무것도 안 해봤는데 어떻게 합니까? 피아노 반주도 하고 그렇게 잘하는지 정말 점심을 준비하고 거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가구를 여기저기 옮기고 버리고 피아노가 3대가 있는데 피아노 버리고 살림살이 버리고 아이들 방에까지 설치하고 나눔 하고 교회하려니 사생활이 하나도 없는 거죠. 사명이 없으면 이렇게 못합니다. 저는 생각해 보니 여러분 큐티 모임을 13개 모임을 했다고 했는데 우리 집에서 교회까지 하게 되니 처녀 총각이 되도록 들락날락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제가 나쁜 엄마가 맞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겠죠.



22절보면 



22절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마지막 절에서 풍년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미워서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간증하기 시작하면서 흉년이 풍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집으로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14절에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Orpah)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Ruth)은 그를 붙좇았더라



오르바는 갔잖아요. 구원열차를 이제 올라타서 승선해서 흉년이 풍년으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Epilogue>

 

1)  집으로 가기 위해서 3차의 흉년을 허락하신다고 했다.

2)  거기서 여러분 남겨진 것을 봐야한다.

3)  가고 싶은 모압을 내려놓고 찬송의 떡 집에 머물러야 한다.

4)  말씀이 들리는 축복이 임하고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상처가 별이 되기 위해 한 사람을 찾으신다고 한다.

5)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6)  큐티하며 적용할 때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적용해야 하며 통치 받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7)  자녀-물질-남편-명예가 하나님 자리에 있고 항상 자기가 법이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한다.

8)  성경의 가치관과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법인 시대를 살고 있다.

9)  항상 하나님이 왕이 되시지 못하면 악한 시대를 살게 되기 때문에 기억해야 한다.

10)   배가 불러서 말씀이 안 들리고, 없으면 배가 고파서 말씀이 안 들린다.

11)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고 앞으로의 영광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거꾸로 비교하면 안 된다.

12)   회개하는 것은 유턴하는 것으로 세상 가치관에서, 모든 집착과 중독에서 유턴하는 것이다

13)   땅 끝까지 낮아지니 죄가 보이기 시작한다.

14)   너무나 난 착하고 믿음 좋다고 하면서 이것이 제 스스로 옳게 여기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여기는 것이 우상이다.

15)   해석이 되어서 하나님이 방문해 주시니 앉으나 서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16)   자녀들에 게 줄 최고의 유산은 깨끗한 호적이다.

17)   회개의 역사가 임하니 모든 것이 해석이 되고 해결이 되는 것이다.

18)   남겨진 것을 보게 되니 유턴하게 되는 것이다.

19)   교양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20)   선택한 순간이지만 결과는 영원하다.

21)   아무리 예수 믿으면서 조롱 당해도 침체 당해도 기쁨이 되는 만남이 있다면 큰 힘이 되는 것이다.

22)   간증하기 시작하면서 흉년(year of famine/year of poor harvest)이 풍년(bumper year/year of good bumper/harvest/crops)이 되었다.

23)   여러분은 집으로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24)   구원 열차에 이제 올라타서, 승선해서 흉년이 풍년으로 바뀌게 될 줄 믿는다.

25)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다

26)   회개는 U턴이다

27)   육적-정신적(인간관계)-영적-질병의 흉년이 골고루 섞여서 아버지 집으로 오게 하신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6. 9. 12:19

[우리들교회 202166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임종덕 장로님 前 미국 백악관 안보 비서관 및 수석고문 닉슨 레이건대통령)]

 

*1부 예배: 어머니의 기도(잠언 31 30-31)

*2부 예배: 사람을 사랑하자(마태복음 22 36-40)

*3부 예배: 인내와 용기 (이사야 43 1-6)

 

 

 

 

1부 예배 <잠언 Proverbs/ 31 30-31>

 

30절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Charm is deceptive, and beauty is fleeting; but a woman who fears the LORD is to be praised)



31절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Give her the reward she has earned, and let her works bring her praise at the city gate)

 

 

2부 예배 <마태복음 Matthew/ 22 36-40>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Jesus repli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3<이사야 Isaiah/ 43 1-6>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But now, this is what the LORD says-- he who created you, O Jacob, he who formed you, O Israel: "Fear not, for I have redeemed you; I have summoned you by name; you are mine)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and when you pass through the rivers, they will not sweep over you. When you walk through the fire, you will not be burned; the flames will not set you ablaze)

3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For I am the LORD, your God, the Holy One of Israel, your Savior; I give Egypt for your ransom, Cush and Seba in your stead)

4절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Since you are precious and honored in my sight, and because I love you, I will give men in exchange for you, and people in exchange for your life)

5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Do not be afraid, for I am with you; I will bring your children from the east and gather you from the west)

6절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I will say to the north, 'Give them up!' and to the south, 'Do not hold them back.' Bring my sons from afar and my daughters from the ends of the earth)

 

 

 

<Prologue/김양재 담임목사님>

 

 

모시기 어려운 강사를 모셨는데 이분은 미군 예비역 장성님이고 미국 안보수석고문으로 계세요. 그리고 하버드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으신 동양 선교 교회의 장로님이시고 그래서 그리고 지금 나이가 84 되십니다. 저보다 젊으셔서 누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이분의 간증을 이렇게 음성으로 들었는데 듣고 놀라서 정말 제가 수소문을 많이 했어요 어디도 없어요. 아무 데도 없는 거예요 



아주 그냥 곳곳에 수소문을 해서 모시려고 했는데 이분이 미국대통령 세분이나 모셨고 오늘 현충일이잖아요 시의 적절하게 우리가 연락한 걸 아시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들교회이기 때문에 오셨어요 장로님은 Pfizer백신을 맞으셔서 마스크를 안 쓰십니다. 할렐루야~

 

 

<말씀요약/임종덕 장로님>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저는 여러분들 앞에 사과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여러분하고 약속을 하고 못 지켰습니다. 죄송합니다. 핑계라는 것도 있잖아요 제가 사실 여러분한테 말씀하려고 했는데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도록 나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제가 오늘 참 잘 왔습니다 제가 오늘 오고 나니 이렇게 좋은 날도 있네요 장례식 겸 생일도 했어요 예수 믿는 분들이 세례 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던 옛사람에 대하여서는 장례식인 동시에 새로 태어났어요 생일잔치에 태어났어요 감사합니다. 이것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마스크를 안 써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데 백신을 두 번 맞았습니다. 평택의 미군 기지에서 맞았았고 미국 돌아가니 주사 놔준다고 하니까. 저는 얼른 가서 두 번 맞고 나니까 기록을 해줘요

 

그래서 제가 마스크를 안 써요 여러분 대단하세요. 난 우리나라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사실 참 많이 불편합니다. ? 어제 제가 어느 병원을 갔습니다. 오늘 무슨 날인 줄 아세요? 현충일입니다. 이 조국 강산을 위해서 용사들 중에 등촌동 병원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소천했지만 아직도 많습니다. 돈이 중요한가요? 어제 제가 오후에 잠시 뵀는데 수박 몇 개 참외 몇 개 들고 가서 울었습니다

 

제가 한 시간 반 있는 동안에 어떤 사람도 방문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그분들 자녀는 봤습니다. 나라를 지키고 젊은 청춘을 조국에 바친 분들이 누워있는데 등촌동 일대로 했는데 교회가 얼마가 많습니까? 어느 교회도 병원에 우유 한 잔 들고 온 것을 못 봤습니다. 물어봤습니다. 오전에 온 사람도 없고 제가 세시 반에 나올 때도 없었습니다. 대단히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새벽에 동작동 현충원에 갔다 왔습니다. 거기에는 내 조상님들의 이름도 있고 이승만 대통령 각하 박정희 대통령 각하 채명신 장군님도 있습니다. 그분은 끝까지 사병들과 함께 가겠다고 사병 묘지에 계십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분들 때문에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제 등촌동 가면서 전철을 타고 갔어요 전철 칸에도 균이 없더라고요 여러분은 왜 떨어져 앉아 계세요? 한심해요.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여러분은 하여간 대단한 분들입니다 고맙습니다. 시키는 데로 하잖아요 이게 바로 성도에요좋은 법이든 나쁜 법이든 지키는 거니까 성도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형을 받았습니다. 그거를 보고 돌아서서 보고 고민하고 창안한 것이 플라톤의 실존주의가 악법도 지켜야 합니다.  고국에 와서 참 성도님들을 뵌 것 같습니다. 답답하시더라도 참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은 백신을 맞으면 마스크 안 써도 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것도 하나님이 내린 재앙입니다. 이런 재앙이 인류가 힘들었던 것은 중세 로마에서 있었던 흑사병이었습니다 1500년경에 있던 일입니다. 두 번째는 스페인 독감 세 번째는 홍콩 사스가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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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것이 하나님이 내린 재앙이라고 생각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한국전쟁 월남전쟁 중남미 전쟁 많은 전쟁을 지내면서 하나님이 평안하라고 함께 살라고 경제도 발전하게 하시고 과학도 발전하라고 했는데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과학을 발전시켰다고 컴퓨터를 만들었다고 창조는 하나님의 권리입니다. 줄기세포 만들고 강아지와 소도 복사하고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입니다. 이 재앙을 넘기는 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강조합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류가 무릎 꿇고 회개하면 재앙을 거두어 주십니다.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제가 사실 강단에는 잘 안 서요. 여기에는 목사님 모시고 성스러운 자리이기 때문에 제가 여기서 수 없습니다. 여러분교회는 목사님이 대단한 민주주의 원칙 모두가 평등하다 여기에 올라오신다고 해서 저도 여기에 섰습니다. 간증은 보고 느낀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다 다 간증이 있습니다. 저보다 더 좋은 간증 있습니다. 여기에 제가 여기에 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일을 하시는가 제가 간증하는 것인데 저는 설교를 잘 안 합니다. ? 제가 설교하고 나서 말씀드리고 가면 하나님은 안 계시고 저만 있습니다. 저를 보고 훌륭하십니다. 이러는데오척 단신 제가 얼마나 제가 대단하고 훌륭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도 들어서 어떻게 사용하셨고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이용해서 영광이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고 사랑이 나타났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저런 사람도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제가 도둑놈이 되고 맙니다. 제가 17살 때까지 4년을 도둑질했는데 더 도둑질합니까 그래서 안 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제가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저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무한한 힘과 능력과 사랑을 가지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저는 안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드린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합니다. 저 위의 하나님 예수님을 바라봐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님의 기도라고 했는데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두 분의 어머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육하고 기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저는 저 멀리 북만주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참 못 살았고 가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못 살아 잘 살아 못 살고 잘 사는 것은 물질에 비교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다. 재벌이라고 해서 잘 삽니까? 한국의 재벌은 돈은 많은데 돈 싸움하는데 잘 사는 겁니까? 옆에 있는 집은 밥 세 끼나 먹고 자가용도 없는데 그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나오고 노래가 나오면 잘 사는 겁니다. 부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인데, 저희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어머님이 조그마한 민족학교 만들어서 방 6칸짜리에 동네 아이들 모아다가 교육하고 그곳이 조선학교였어요 그곳은 유적지라고 지어 놨습니다그곳에서 자라났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6살때인데 텃밭에 나가시면서 여기에 감자와 옥수수를 삶아 놓았으니까 누나하고 형이랑 나누어 먹고 학생들하고 조금씩 나눠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만 제가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불룩하니까 일어나기 힘들더라고요 잠이 들었어요 일어나니까 어머니가 깨웠습니다. 종아리를 걷고 매를 맞았습니다. 아프다고 그만 때려 달라고 했어요.  껴안고 어머님이 종아리를 만지면서 우십니다. ‘주님, 이 년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가 이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습니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죄인 이시기 때문에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도 내가 잠자기전에도 눈물 방울이 떨어집니다. 유독 저한테는 눈물로 기도하십니다. 눈 감고 자는 척합니다. 그런데 눈물이 떨어지기 때문에 귀찮습니다. 이 아들이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자 되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를 매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7살이 될 때 배가 고프니까 많이 얻어 먹었는데 그때 중국 여자애가 중국에서 먹는 빵을 갖고 와서 자랑합니다. ‘조금만 줘라고 했습니다. 고맙다고 하면서 얻어먹었습니다. 그 중국 아이는 내가 자기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면 더 주겠다고 하고 있는데 그때 어머니가 그것을 보더니 데리고 갑니다. 붙들고 기도 합니다. 우시면서 이 아이가 배고픈 것도 저의 죕니다’. 기도 다 하시고 나서 내가 너한테 한 가지 말할 게 너 이제 국어는 다할 줄 알잖아?

 

그러시면서 시를 읊어 주시는데 정몽주의 시를 어머니가 읊어 주시는데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세울 때였는데 33 ~ 34살때 아들에게 나쁜데 가지 말라고 읊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를 간직하고 이성계 아들 이방원에게 갔는데 아들에게 무슨 시를 읊어 주었느냐? ‘이런들 어떠하리 한 세상 서로 얽혀 웃으며 살아보세하면서 정몽주 충신을 회유하는 겁니다. 정몽주는 어머니 생각을 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라 변할 줄 있으랴단심가입니다. 돌아섭니다. 그때에 이방원이가 자기의 부하를 시켜서 선죽교에서 철퇴로 죽입니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평안북도에서 외할아버지가 장로님이어서 유학을 보냈다고 하고 백로와 까마귀 싸우는데 가지 말라고 합니다. ‘네가 중국 애들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려고 하느냐?’ ‘앞으로는 절대 그런 짓 하지 마. 너는 백로라고 합니다. ‘나는 백로야하면서 날아간다고 하는데 애들이 놀립니다. ‘네가 백로냐?’고 그런데 제 마음속에는 백로입니다. 7살 때부터 지금까지도 백로입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심어주는 그것을 가지고 해방을 하고 긴 이야기를 할 수 없고 하여튼 49년도에 한국을 왔습니다. 저는 북간도에 살았는데 6.25전쟁이 났습니다. 동작군 국군묘지에서 울려 펴지는 국군 노래(, , 잊으랴 어찌 그리 그날을 두 주먹 붉은 피로…)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학교를 갔는데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학교 마당에 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고 의용군을 뽑았습니다. 장총을 들고 와서 키를 잽니다. 형이 날 보고 일어나라고 합니다. 형은 의용군으로 뽑혀 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뽑혔었는데 여러분 중에는 겪은 분들도 있을 거고 안 겪은 분들도 있습니다. 선배 한 분이 갔는데 라이터를 주면서 저 본관 2층에 가서 화학실에 불을 지르라! 그래야 우리가 도망간다고 했습니다. 서울 중학교 본관에 왔는데 알코올을 바닥에 부었습니다. 그런데 불이 잘 붙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일찍이 방화범이었습니다. 제가 여하튼 집에 도망 왔습니다. 나무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북한군이 추운데 아현동 목사님을 묶어서 내려왔습니다. 아현동 인민위원장은 우리 집에 와서 밥 얻어먹던 사람이었습니다. 여하튼 그래서 우리 집 마당에서 인민재판을 했는데 뭔지 압니까? 북한 괴뢰군이 와서 애들이 있고 중학생이 있고 어른이 있습니다. 다 끌어다 놓고 누구누구 아무개 반동분자 인민의 피를 빨아먹어서 재판한다 사형하고 총을 쏩니다. 괴뢰군이 손뼉 치니 같이 손뼉 칩니다. 이런 만행을 저지릅니다. 거기서 제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13살 소년은 세상에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피난하고 하는 데다 이야기하면 하나님 말씀 못 전해요 그래서 피난을 가서 충청도 음성 금왕면 내천리라는 곳까지 같습니다. 미군들이 와서 미군들 앞에서 선교사들한테 배웠던 영어를 사용해서 밥을 얻어먹었고 그 부대가 떠나는 거예요 거기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영어를 모르니 Hey! 저리Go, 이리Go, 저리 가니 이리 가니? 저리 Go! 라고 합니다. 북쪽이 서울 쪽이었습니다 쫓아갔습니다. 쫓아갔는데 미군들이 가면 가고 쓸 때까지 가서 얻어먹고 장원까지 가니 장교가 오더니 들어 올려서 지프차를 탔습니다. 신나더라고요 여주를 지나서 양평으로 해서 이북으로 올라가습니다. 거기서 헬로 모자도 씌우고 미군 옷을 줬는데 저한테는 너무 컸습니다.

 

미군을 따라서 제가 13살 때 38선 돌파한 사람입니다. 말만 들었던 삼팔선 돌파해서 중공군이 내려오니까 나를 데리고 왔던 부대가 포위되어서 산산조각 나서 선임하사가 나를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얼마 뒤에 같이 뛰었는데 공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나대로 뛰어들어가고 다 죽었습니다. 중공군 때문에 중국에서 말 배운 것 때문에 중공군하고 서울까지 같이 왔습니다. 12 8일 중순에 그때부터 1 4 20일까지 서울지구 중공군 사령부에서 얻어먹고 있었습니다. 나응칠이라는 조선동포 중공군이 있었는데 그 형이 21살이었습니다. 흑룡강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 형이 우리 도망간다 우리랑 가다가는 죽는다. 여기 왔으니 빨리 도망가라고 해서 아침에 그 형 말을 듣고 부대 잠자는 곳에서 나와 안국동 빈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대궐 같은 집이라서 혼자 그 집에서 대감놀이했습니다. 3일 지나고 나니 탱크 소리가 났더니 미국 탱크가 왔습니다. 나가서 헬로!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곳에 혼자라서 혼자 서울 시장 노릇했습니다. 혼자서 환영했으니까요. 그 미군을 따라서 탱크부대가 나를 데리고 연천으로 진격할 때 같이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해 여름에 다른 대위가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미군 부대 쇼리입니다. 나를 데리고 간 대위님이 어느 날 전사를 했어요. 항아리 같은 헬리콥터 옆에 눕혔습니다. 서울 갔더니 미국으로 가는 겁니다. 상사가 일선 지구가 위험하니 내 친구가 후방에 있다고 하면서 하사관하고 운전수하고 나를 데리고 가더니 세 명이 함께 조그마한 차를 타고 내려오는 겁니다. 그런데 공격을 받았습니다. 공격을 받아서 떨어져서 운전수는 죽었는데 피가 흘렀습니다. 중공군이 내려오는 겁니다. 중공군이 오더니 무기만 가지고 가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나를 확인 사살했으면 죽었을 겁니다. 그 다음에 제가 엎어진 차에 서 나와서 냇가를 걸었습니다. 한참 가더니 동네였는데 서울을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서울 도착한 데 15일 걸렸습니다. 서울에 와서 갈 때가 없었습니다. 방송을 하더라고요 천사들 불쌍한 고아들은 차를 타라고 그래서 고아원에 갔습니다. 오늘의 통계를 보면 미망인 20만명 고아가 25만명 끌려간 지식인 8만 천명 120만명의 전사자 민족상잔의 피비린내를 일으킨 것은 김일성이고 그 후손이 김정은 입니다. 제가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압니까? 해방 후에 사인랭기지(sign language)를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인 랭귀지는 형용을 해서 의사 표현을 하는 겁니다. 70년대에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 왔는데 언어를 못해서 몸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미국은 한국식으로 갈비를 자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자르냐 이것이 LA갈비의 시작입니다. 시합을 시키는 데 동숭동 교회 나가는 서울대 학생이 딱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애꾸눈이 이러는 겁니다. 결국은 학생이 졌습니다. 제가 하나님은 한 분인데 예수님이 있다고 했습니다. 난 두 눈 가진 사람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는 성삼위 일체입니다.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없어요. 나를 키워주시고 나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 나와 함께해 주시고 이끌어주신 하나님 용서해 주신 주님입니다. 우리가 머릿속에 생각으로 지은 죄 때문에 가시관을 쓰셨어요. 걸어 다니는 죄 때문에 손발에 못을 박으셨어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어요.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어요그런데 이제 다시 돌아가면 서울에 와서 고아원에 갔는데 거기서 얼마나 나무도 해오고 어느 날 우리 원장님이 내가 귀여워하는 애인데 나보다 많은 누나들이 원장한테 성폭행당하는 것을 봤습니다. 어느 날 나무를 해갔고 왔는데 어린애가 많이 아파했습니다. 토해서 업고 병원에 갔다 왔는데 그분이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걔가 6살이었는데 축 늘어지는 겁니다. 죽었습니다. 죽으면 얼마나 무거운 줄 몰랐습니다. 고아원에 와서 원장 아버지에게 걔가 죽었습니다라고 했더니 산에다 묻어라고 했는데 그전에 파출소에 신고했습니다. 순경이 왔다가 그냥 가는 겁니다. 나를 오라고 하더니 팼습니다. 피해 가지고 내려와서 내가 나무할 때 쓰는 도끼를 들고 다 죽이겠다고 소리치니까 다 도망가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여기서 안 산다 나가야겠다 그래서 도망 온 겁니다. 쉬고 있는데 오빠 형 그리고 쫓아오는 겁니다. 계속 오는 겁니다. 오빠야 형아 우리 안가 형이랑 같이 간다 제가 우두머리 노릇을 한 것 같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누나들도 오빠라고 합니다. 네가 대장 되고 우리가 같이 가자 따라와 배짱도 좋았어요 

 

그래서 연천고 다리까지 왔습니다. 거기서 얻어먹으러 다니다가 거지 왕 김춘삼 씨를 만나고 그분의 은혜로 후암동 얻어먹던 지역을 배당 받아서 어디서 자요 남산에 가면 방공호 많아서 86명이 다 쫓아 나왔는데 제가 요즘 말로는 양아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생활을 했는데 제가 거기까지 오면서도 마음속에는 나는 백로인데 나는 백로인데 왜 방공호에서 자야 하지 그러면서 애들을 데리고 별별 이야기다 있지만 그때마다 힘들 때마다 어른 거지 깡패 들한테 맞을 때마다 언젠가 백로가 돼서 날아가겠다고 그리고 기도 그것이 시시 때때로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53년 초에 홍역이 들어서 하루 저녁에 24명의 아이들이 죽어갈 때 억장이 무너졌습니다이제부터는 빌어먹어서는 안되겠다 거지는 삼대 원칙이 있는데 훔쳐먹어서도 주워 먹어서도 안되고 같은 곳에 두 번 가면 안 되고 먼저 가고 도와주고 얻어먹으라고 그것이 원칙입니다. 돈이 있으면 약도 사주는데 거지는 도둑놈으로 변하자 그래서 제가 일 년 반을 돈 좀 벌었습니다. 제가 미 공군 사령관의 가방을 훔쳤습니다. 돈이 없는 겁니다. 카메라와 종이만 있었는데 그래서 공산당 다시 내려와서 같다 놓고 자수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우리의 후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미군의 조수가 되어서 빨래하고 밥했습니다. 제가 사는 게 걱정은 안됐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복이 되어서 미국을 갔는데 그때 어머님이 미국에서 오셨어요 나를 데리러 오신 분이 프란체스카 여사인데 도망가려고 했었는데 결국 미국으로 갔습니다. 공부해서 대학을 마치고 한국 땅에 보내준다고 그때 희망은 국군 용사가 되어서 김일성 죽이는 것이 목표였어요 미국 가서 2년 만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시험을 봤는데 어떻게 SAT 만점을 맞았습니다. 여러 대학에서 장학금 준다고 했는데 이 대학에서 장학금 준다고 해서 보스턴 대학을 갔습니다 어머니가 그 대학에서는 여학생을 안 뽑았습니다. 어머님이 워싱턴 구경시켜 주시고 대학을 마치고 한국 갈 거냐고 했습니다. 가서 진짜 김일성이 죽일 거라고 했습니다네가 김일성 죽이려면 군대를 가야 한다. 너는 크렘린 궁전을 부셔야 한다 이것은 너무 목표가 작다. 너는 크렘린을 목표로 해라 그래서 그럴듯하더라고요 그래서 참 바보죠 그런 것을 꿈만 꾸고 됩니까 

 

되더라고요. 손을 잡고 기도 하시는 거예요.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학을 가는데 열심히 꿈 그 있는 꿈이 이루어 달라고 이루게 해달라고 인도하세요. 그러면서 계속 30분기도 하는 거예요 껴안고 ‘Steve, You can do!’ 넌 할 수 있어. 그래서 사실 어머니의 기도에 말씀을 듣고 제가 사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열심히 공부했고 1년 만에 공산주의를 파악했고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론을 썼습니다. 공산주의는 120프로를 요구합니다. 사람은 그렇게 못하는데 혁명이다 생산 혁명이다 그럴듯합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120프로 125프로의 목표를 요구합니다. 1년 동안 크렘린궁전에서 상무위원들이 얼마나 잘 사나 조사했는데 매일 파티 하는 겁니다.

 

변방에 있는 사람들은 잘 사냐? 제가 자료를 보니까 못 사는 겁니다. 중앙만 잘 사는 겁니다. 혁명 혁명자아비판하다가 망하고 이것은 인간에 적용이 안되는 겁니다. 나는 앞으로 크렘린을 부술 거야. 1959년에 꿈꾼 것인 1990년말에 끝났습니다. 제가 일할 때 항상 어머님의 기도가 힘이 되었습니다. 중국 문제를 다룰 때인데 참 힘들어요 어떻게 문을 여나 어머니한테 나는 전쟁만 했기 때문에 64년 때부터 70년대까지 전쟁만 했는데 힘들었습니다. 건강 회복하고 월남에 가서 포로수용소만 320회를 가서 구출하고 싸움쟁이에게 대통령이 중국의 문을 열라고 했는데 막막한 겁니다. 대통령은 총사령관입니다. 집에 가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전선에서 와서 백악관에 가서 좋아했는데 책상에 숙이고 있는데 명령을 받았다고 하니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Why negative? Be positive! (왜 부정적 이야? 긍정적으로 해!’ 엄마랑 이야기 할까? 가르쳐 주시면서 중국에 대해서 알아라그러면서 방법을 가르쳐주고 기도했습니다.

 

72년도 1 11일에 미-중 수교는 닉슨 대통령과 모택동의 작품이고 나는 심부름꾼입니다. 1년 반 동안 한 번도 쉬 지 않고 아들의 목표가 달성할 때까지 기도해 주셨습니다. 어머님의 기도는 이루어집니다여기에 어머님들 계시는데 젊은 어머님들 여러분 자녀들이 돈 버는 기계를 만들지 마시고 사람을 만드세요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녀를 키우세요 어떻게??

 

기도하세요 성경 말씀 들려주세요. 학원 백 번 다녀봐도 초등학교 아이가 고등학교 문제 푼다고 좋아하지 마세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세요. 1971년 이북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서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 여러 가지 일도 하고 돌아갔는데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에 어머님은 매일 기도 편지가 옵니다제가 오히려 게을러졌어요 하나님은 예기치 않은 영광도 주시고 필요한 사람도 주시고 71 3월에 우리가 나가사키에서 세계 핑퐁 대회가 있었는데 영감을 주셨습니다. 문화혁명중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운동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그런 걸 장려하였어요. 여하튼 핑퐁 외교를 일본에서 시작했는데 힌트 준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네가 대회를 할 때 개인전에서 만 일 등하고 단체전은 중국이 일 등 하게 하고 축하파티를 열어줘 거기서 친선 게임 하라고 영감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제가 나가사키에서 축하파티를 열었습니다. 중국이 오케이 하고 연락해서 바로 하자고 했습니다. 허가 받고 다시 왔습니다. 핑퐁 팀을 데리고 광주(Guangzhou)-상해(Shanghai)-북경(Beijing)에서 게임하고 키신저 박사의 편지를 저우언라이(주은래)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어머님의 기도의 응답입니다세상의 중심은 어머니입니다어머니의 사랑은 아버지 사랑하고 다릅니다. 어느 법정에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섰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죄를 떠넘겼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죄라고 합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10달 동안 품었기 때문입니다어머니의 사랑은 사람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제가 증인입니다. 부탁합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라는 자녀의 손을 잡고 천사의 맑은 눈으로 바라봐 주세요. 아침저녁으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나라 오늘의 코로나 핑계 대고 이것저것 하는 것 말고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국민이 우리들교회에서 많이 나오기를 간구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좋습니까? 김양재 목사님 옛날의 누나 같아 얼마나 푸근하고 좋습니까? 좋으신 목자 젊은 목사님들 잘 생겼습니다. 미국의 목사님 저리 가라로 참 잘생기셨어요 잘생기고 걸출한 종들이 여러분들을 이끌어줍니다.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시간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진실한 기도를 많이 하세요. 중보의 기도 축복의 기도 소망의 기도 저는 여한이 없어요. 여태껏 산 것도 감사한 것 입니다. 인생의 목표인 냉전이 종식되었습니다. 매일 저녁 마지막 기도가 하나님 여태껏 잘 살았습니다. 하나님 뜻 이라면 오늘 저녁 제 목숨 거두어주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새벽 4시면 깨지더라고요 하나님이 써먹으시라고 순종하는 거죠! 감사합니다.

 

역사는 삶의 거울입니다. 역사는 거울입니다. 한국사람들보면 골빈 친구들 많습니다역사는 기록 그 자체 입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시대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지금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태가 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똑바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제일 특수한 책 입니다. 성경 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예수님 말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저는 장로 아닙니다. 저는 아직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 부르실 때에 주님 앞에 두루마리 펼쳐 보고 주님의 그 인자한 눈으로 사랑스러운 눈으로 저를 펼쳐 보고 잘 왔어 고생했지? 잘 살아 왔어 나와 같이 낙원으로 가자고 하실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26살 때부터입니다. 그 이전엔 어머님의 기도 속에 자라고 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영어로 Lucky guy는 행운 아라는 것이죠 김 목사님 보세요! 미국에서 우리들교회를 보곤 하는데 김 목사님 편안한 얼굴이 될 수 없어요 교단에서 안 불러주고 설교도 못하게 하거든요 그래도 그 사람이 한국에 교단 무슨 뭐 총회장 무슨 회장 웃기지 말라고 해요 언제 예수님이 여자는 설교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웃집 큰누나 같아요 막내 이모 같아요 저렇게 푸근하고 온화한 분이 조곤조곤 하는 말을 잘 들으시고 따라가세요예수님 믿는 것은 다른 거 아닙니다. 나의 구주 여기게 믿고 기도하는 겁니다.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걸 따라가는 겁니다. 지금도 26살 때부터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인내와 용기(이사야 43:1-6)

 

한 사람이 일생을 살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저 같은 경우에는 7살 때부터 오늘까지 80까지 오는 날까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나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내가 믿는 하나님앞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간증은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전하고 전한 것을 행복하고 여러분들의 믿음 생활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않을까 해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어렵고 옛날 힘든 얘기를 한다면 다 할 수 없습니다저는 전쟁 중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저는 미국에서까지 가고 115개국도 가보고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낳아주신 어머니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나님이 들어 쓰신 것뿐입니다제가 유명한 것이 아닌 전재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인지 나를 들어 쓰시는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위대하심을 기억해주시고 똑같은 은혜를 받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미국 가서 공부했습니다저는 유명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전부 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공부를 다 마치고 미국 군대에 갔습니다훈련을 다 받자고 생각해 장교 초급과정을 받고 공수 훈련을 받았습니다. 1965년 초에 비상 명령이 갑자기 내렸습니다새벽녘에 비행기에서 내려서 다리를 확보하고 15일간 전쟁을 하는데 사람을 한 명도 죽이지도 않고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그래서 공부를 해서 북한에 있는 김일성 무리를 무찌를 생각도 했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타락의 길만 갔습니다일반 여자랑 놀러 다녔지만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어느 날 일본 여학생을 만났는데 나를 깨우쳤습니다내 몸을 탐할 수 있지만정신은 뺏어갈 수 없다며 충고를 들었습니다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거울 앞에 서니 너무 부끄러웠습니다깊이 반성하고 돌아와서 그 여학생을 보내고 숙소를 들어가서 거울 앞에 서서 내 죄가 얼마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생각해 6살 때부터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적었습니다. 1주일을 적었는데 대학노트로 21권이었습니다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월남에 갔습니다. 6.25 전쟁 때 우리나라를 구원해 주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전쟁하는 데 편하게 있을 수 없어 아버지한테 설득하여 월남으로 갔습니다비행기에서 기도했습니다제가 미국 특공대 팀에 팀장이 되었습니다그렇게 전투했습니다제가 포로가 되어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서 대나무로 묶여 있었습니다제가 월남에 가면서 찬송가와 성경이 있는 것을 가져갔습니다그거를 뺏기지 않았습니다이사야 43장을 읽고 성경책을 빼앗겼습니다그 성경 구절은 너는 내 것이다두려워 말라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무릎 꿇어 기도했습니다어느 날 제가 끌려 나갔습니다혼비백산했습니다하나님에 나 좀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살려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날부터 30일간 기회를 주셨습니다매일 저녁만 되면 끌려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다시 말해서 나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용기 있게 나가서 윈스턴 처칠 한테서 받은 교육이 있었습니다. Never Give Up, Be Brave, Be Ambitious! 하나님은 한 달 동안 연습할 기회를 주셨습니다그리고 나서 어느 날 끌려나가는 것입니다내 영혼이 떠나지 않고 육신이 떠나지 않게 해주시고 저를 살려 주시면 일평생 주님만 바라보고 살겠다고 했습니다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시고 악어도물소도 냄새를 못 맡게 했습니다어떻게 해서든지 서남쪽으로 가면 미군이 있을 것 같아서 서남으로 계속 갔습니다탈출해서 헬기를 타고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양어머니 목소리를 들었습니다가서 백악관에 가서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3명을 살린 이유로 훈장을 받았습니다전쟁에 적진에서 생활하는 동안 탈출은 어떤 방식이고 야전에서 무엇을 먹는 책을 냈고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그후 월남에서 포로생활 중 제가 겪었던Russian Roulette게임을 소재로 “Dear Hunter’란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마세요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가세요대한민국이 여러 가지로 어렵습니다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1950 10%도 남지 않은 땅을 살리셔서 으뜸가는 나라인 대한민국이 된 것입니다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두려워하지 마세요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여러분들과 함께 계십니다하나님 앞에 묻고 기도하면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풍요한 이 나라를 하나님이 주셨는데 우리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아무쪼록 건강하시고 기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뵀으면 좋겠고 부탁 하건대 저를 기억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지나간 시간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Epilogue>

 

1)  세례식은 장례식 겸 생일이다.

2)  예수 믿는 분들이 세례 받는 것은 축복이다 여러분이 믿지 않던 옛사람에 대하여서는 장례식인 동시에 새로 태어난 것이고 생일잔치에 태어났으니 복이다

3)  창조는 하나님의 권리인데 줄기세포 만들고 강아지와 소도 복사하고 하나님의 권리를 행사하는 바벨탑을 쌓으니 코로나는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인 것이다

4)  이 재앙을 넘기는 방법은 없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모든 인류가 무릎 꿇고 회개하면 재앙을 거두어 주신다.

5)  회개하고 기도해야 한다.

6)  간증은 보고 느낀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7)  여러분 마다 각자 다 간증이 있는 것인데 여기에 제가 여기에 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일을 하시는가 제가 간증하는 것이다

8)  전능하신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도 들어서 어떻게 사용하셨고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이용해서 영광이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고 사랑이 나타났다는 것을 보이시는 것이다

9)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저를 사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무한한 힘과 능력과 사랑을 가지고 사용하시는 것을 뜻한다

10) 제가 드린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한다.

11) 저 위의 하나님 예수님을 바라봐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님의 기도라고 했는데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두 분의 어머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육하고 기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12) 예수 믿는 우리는 성삼위 일체이며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없다

13) 나를 키워주시고 나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며 나와 함께해 주시고 이끌어주신 하나님과 나를 용서해 주신 분이 주님이다.

14) 우리가 머릿속에 생각으로 지은 죄 때문에 가시관을 쓰셨으며 걸어 다니는 죄 때문에 손발에 못을 박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다

15) 어머님의 기도는 이루어진다 

16) 여기에 어머님들 계시는데 젊은 어머님들 여러분 자녀들이 돈 버는 기계를 만들지 마시고 사람을 만드시길 바란다

17)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녀를 키우길 바란다

18) 어떻게? 기도하고 성경 말씀 들려주시라

19) 학원 백 번 다녀봐도 초등학교 아이가 고등학교 문제 푼다고 좋아하지 마시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시라 

20) 하나님은 예기치 않은 영광도 주시고 필요한 사람도 주시는데 그것이 어머님의 기도의 응답이다

21) 세상의 중심은 어머니이다 

22) 어머니의 사랑은 아버지 사랑하고 다른 것으로 어느 법정에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섰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죄를 떠넘겼지만 어머니는 저의 죄라고 하는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인 것인데 왜냐하면 10달 동안 품었기 때문이다

23) 어머니의 사랑은 사람을 다시 만든다는 것으로 제가 그 증인이다.

24)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라는 자녀의 손을 잡고 천사의 맑은 눈으로 바라봐 주시고 아침저녁으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25)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이다

26)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시라

27) 진실한 기도를 많이 하시라.

28) 중보의 기도, 축복의 기도, 소망의 기도를 하게 되면 여한이 없다

29) 여태껏 산 것도 감사한 것이다

30) 역사는 삶의 거울이며 역사는 거울이다. 

31) 한국사람들보면 골 빈 친구들 많은데 역사는 기록 그 자체이다.

32) 역사라고 하는 것은 시대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지금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33) 이런 상태가 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똑바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34) 성경은 제일 특수한 책으로 성경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예수님 말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35) 예수님 믿는 것은 다른 거 아니고 나의 구주 믿고 기도하는 것이며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걸 따라가는 것이다.

36) 제가 유명한 것이 아닌 전재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나를 들어 쓰시는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위대하심을 기억해주시고 똑같은 은혜를 받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37)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1950 10%도 남지 않은 땅을 살리셔서 으뜸가는 나라인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38)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두려워하지 마시고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다

39)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여러분들과 함께 계신다

40) 하나님 앞에 묻고 기도하면 버리지 않으신다.

41) 저를 기억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지나간 시간을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