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2. 7. 31. 11:17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5(“믿음의 성장성령의 기초 양육 제3과 정리)]

 

 

 

1.   믿음의 성장(신앙기초양육 제3)

 

갓 태어난 갓난아기가 성장하지 않으면 부모의 근심이 됩니다

 

1) 당신은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 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믿음이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여 풍성한 삶을 경험하기를 원하시고 성장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공급하십니다

3) 적극적으로 그 자원들을 활용해 성장 하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들여다 보니,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의 고백이 저절로 나왔다.

 

*시편의 저자는 내 안은 죄악 덩어리다라고 고백한다

 

1)  세 종류의 사람

 

(1) 육에 속한 자 (고린도 전서 2:14):

 

-구원받지 못한 자, 자연인, 주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는 사람

 

 

(2) 육신에 속한 자(고린도 전서 3:1):

 

-어린 그리스도인, 주인을 모셨으나 자신이 삶의 주인인 사람[구원은 받음]

 

(3)신령한 자(고린도 전서 3:1):

 

-성숙한 그리스도인(일평생 걸린 자), 주인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

 

 

1)  구원의 세 가지 의미(. 구분/. 구원의 과거/. 구원의 현재/. 구원의 미래)

 

(1)말씀:

 

-예베소서 2:8~9 “얻었다” (구원의 과거)

-빌립보서 2:12 “이루라” (구원의 현재)

-로마서 13:11”가까워” (구원의 미래)

 

(2)죄와 관계:

 

-‘죄의 형벌로부터 건져 냄’(로마서 8:1~2)

-‘죄의 권세로부터 거룩함을 지킴’(로마서 8:37~39)

-‘죄의 존재로부터 해방됨’(요한계시록 21:4)/천국에 가면 죄의 존재가 없는 곳

 

(3)용어:

 

-‘칭의(Justification)/예수님을 내 안에

-‘성화(Santification)/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영화(Glorification)/예수님과 조건부로 닮아가는 수준/예수님 인도하심

 

(4)의미:

 

-‘의롭다 하심을 얻음 

-‘거룩해짐 

-순식간에 새로이 변화(인격이 바뀜)’<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함>

 

(5)시기:

 

-‘예수님 영접 

-‘예수님과 동행 

-’예수님 재림

 

(6)예수님과 관계:

 

-‘예수님 안에 있음’(고린도 후서 5:17) 

-‘예수님을 닮아감’(로마서 8:29)

-‘예수님과 같이 변화됨’(요한일서 3:2~3)

 

(7)나의 책임:

 

-‘예수님 영접, 결단(요한복음 1:12)

-‘성령 충만한 삶’(디모데전서 4:5)

-‘재림을 사모, 소망’(베드로후서 3:12)

 

 

(1) 영적 성장의 중요성(Position의 변화: 구원/Condition의 변화: 구원에서 발전)

 

(1) 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2) 에베소서 4: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3)히브리서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2) 영적 성장 방법

 

(1) 충분한 영양 공급(말씀-예배)

 

-베드로전서 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라 함이라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2) 정상적인 호흡(기도)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호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3)적당한 휴식(교제-공동체/또래 공동체)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은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히브리서 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그러하자

 

 

*영적인 보호(목자-목사)

 

(4)적당한 운동(증거)-주위에 알림/노폐물이 빠져나가고 영적 근육이 생김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로마서 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이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5)영적인 부모(인도자 보호)

 

-고린도전서 4:15 그리스도 안에서 밀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데살로니가전서 2:7,11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가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3) 영적 성장 저해 요소

 

(1)확신 있는 믿음을 갖지 못하고 회의에 빠짐(고린도후서 13:5)

(2)죄 속에 거하여서 영적으로 병듦(요한일서 2:15, 16)

(3)성장에 대한 목표의식 없는 무계획한 신앙생활(고린도전서 9:26)

(4)세상일에 바빠서 영의 일을 생각하지 못함(야고보서 4:8/1:8)

(5)신앙생활에 치우쳐서 균형을 상실함(베드로후서 3:18)

 

 

*구권의 확신: 로마서 8: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7. 17. 12:38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4(“구원과 확신성령의 기초 양육 제2과 정리)]

 

 

금주 주일설교말씀의 요점으로 복음전파를 위하여 우리는 어디든지,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감당하는 것이 육체의 것이 아닌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은혜로웠습니다.

 

 

(우리들교회 교인 등록 후 기초 양육 8주를 포함하여 42주 질풍노도와 같은 각종 양육을 받고  부 목자로 세워지고 간증을 거쳐 부목자섬김  4년 후, 2016년 드디어 목자로 세워졌습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타락 상태인 인간은 스스로 구원 할 수 없으며 스스로 복원이나 회복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구원과 확신을 주제로 한 우리들교회 기초 양육 제2과 내용 요약 본입니다:

 

 

1) 하나님 천지창조 時에는 하나님과 교제토록 되어 있었으나 불순종으로 인한 죄인 원죄로 인해 본성이 부패되고 타락된 존재이다

2) 아담과 하와의 죄가 전이되어 모든 인류가 원죄로 오염되어 타락된 상태여서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가 단절된 상태이다

3) 끊어진 갑주를 메워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셔서 관계 복원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4) 죄의 대가는 사망이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셨다

5) 그분이 죄를 스스로 해결하심으로 복원하여 주신다

6) 우리는 그냥 예수를 믿으면 복음이 들어가 구원이 되는 것이다

7) 믿음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마음으로 믿고 인정하면 된다

8) 구원은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9) 구원 받았다는 것은 구원 받은 자로서 삶을 살아야 진정한 구원이며 아니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으로 내 안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구원이다

10)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다

11) 구원이란 삶의 악의 문제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다

12) 구원이란 전쟁과 기아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다

13) 구원이란 우리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오는 악을 부정하는 것이다

14) 구원 받았지만 죄성이 있으므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 달라고 하면 된다

15) 내 빽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16) 구원은 큰 은혜인데 천국과 영생을 얻는 것이다

17) 시편 90%가 탄식 詩로써 여호와여 구원하소서가 주를 이룬다

18)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19)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셨을 때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셨다

20)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받으신다-하나님께서 나의 머리털까지 세신다

21) 하나님께서 내 안의 삶을 아신다-그러므로 뭔들 못 주시겠는가?

22)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죄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23) 그 죄에서 자유 해져라(The truth will set you free/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4) 회개는 온 길을 죄로부터 되 돌아서 돌이키는 것이다

25)예수님께서 나의 주가 되어 주십시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7. 11. 10:42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3(성경은 하나님 말씀 성령의 기초 양육 제1과 정리)]

 

금주 주일설교말씀에서 율법에 대한 정의가 새롭습니다. 갈라디아서 323절에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게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Before this faith came, we were held prisoners by the law, locked up until faith should be revealed)에서 율법은 우리를 죄 아래 가두는 역할을 한다고 하십니다.

 

율법으로 날마다 사건 가운데 옳고 그름으로 남을 정죄함으로 불화를 일으키므로 자기 죄만 보면 하나님이 은혜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정죄 대신 구원의 관점으로 예수께 인도함으로 주님의 구속사에 동참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담임목사님 과 함께)

 

조선시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던 민초들의 삶에 활력과 희망을 불어 넣어 주신 주님의 말씀이 면면히 내려와 우리나라를 복음으로 적셔 주시어 세상 땅끝까지 높여 주셨습니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의 큰 형인 정약현의 사위였던 황사영의 종인 육손이가 역시 종의 신분이었지만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제 어미한테서 얻어온 기도문이 적힌 창호지 조각에 언문(한글)으로 쓰여진 문구가 은혜로워 가슴이 뭉클 하기까지 합니다: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대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음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김훈의 장편 소설 黑山)

 

주님께서는 내가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베드로의 어부 시절 빈 배의 모습일 때 나를 찾아 오신다고 하십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첫 째, 근본적인 죄,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둘 째, 하나님을 떠나 그분을 거역하며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성령의 기초 양육 제1과 과정 정리)>

 

우리들교회 기초양육과정은 초신자가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를 받기 전 8주간에 걸쳐 받는 특별 성경 기초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독교와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기본적인 교회양육강의로서 내용이 충실하고 꿀송이 같은 은혜가 임했던 것으로 기억되어 당시 적어 둔 내용 정리하여 함께 공유하고자 글 올립니다.

 

1)  성경= 구약 39+신약 27=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이 나를 향한 말씀입니다

3)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성경을 주셨습니다

4)  모세가 창세기를 썼다고 합니다

5)  요한-요한 계시록=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이루신 일에 대한 계시 내용이 일관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6)  누가는 의사 신분이고, 마태는 세리 신분이었습니다

7)  성경은 주로 히브리어이며 헬라어와 아람어의 번역본입니다

8)  성경=Best Seller in the World 이 세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입니다

9)  매일 큐티=읽고 묵상하면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10) 믿음은 들으면서 납니다

11) 성경책을 읽고 들으면서 믿음이 생깁니다

12) 성경책이 지닌 초자연적인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성경을 잘 모르는 데서 생기는 소치입니다

13) 성경을 많이 비판하는 사람일수록 성경을 잘 읽지 않습니다

14) 성경을 모르는 만큼 성경은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15) 성경=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참되고 유일한 진리입니다

16) 하나님께서 그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1,600여 년 동안 40여명의 사람을 통해 기록하셨습니다(인간 저자들에게 계시를 주심)

17) 지금까지 이러한 기록을 기적적으로 보존해 주셨습니다

18) 수 많은 황제들과 폭군들이 성경을 영원히 매장 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합니다

19) 영구차의 조종(弔鐘)소리가 수없이 울렸지만 성경은 무덤을 다시 열고 살아났습니다

20) 이처럼 성경은 얼마나 놀라운 책입니까?

21) 모든 보화, 진리, 지혜는 성경책 안에 들어 있습니다

22) 중세의 묵상이란?

(1) lectio: 읽고

(2) meditatio: 묵상하고

(3) anratio: 기도하고

(4) contemplation: 적용으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23) 성경적 가치관(희락과 화평과 사랑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vs. 세상적 가치관(인간적 관점, 세상적 시각, 극단의 교만 또는 극단의 타락, 혼란, 고통, 답답함, 공허, 허무)을 비교해 봅니다  

 

24)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1) 사람들이 서로를 알게 되는 과정은 대화를 통해서입니다

(2)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를 알 수 있나요?

-그것은 그분이 자신을 알려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3) 성경과 관련하여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친히 창조하신 세상인생에 대한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4)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은 성경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25) 성경은 어떤 책인가요?

 

(1) 성경이 처음부터 문서의 형태로 전달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셨고(계시) 이것은 점차적으로 기록의 형태로 보존되어 왔습니다(히브리서 1:1-2 말씀 참조)

 

(2) 성경의 구성:

-율법, 역사, , 잠언, 편지, 예언 등의 다양한 장르가 있으며 구약 39권 과 신약 27( 66)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 구약 성경을 구분하는 시대적 기준은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구약: 오실 예수님/신약: 오신 예수님)

 

(3) 성경의 기자와 기록 연대:

 

-12개의 서로 다른 나라에서 20가지의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4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약 1,600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3개의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모세 오경) B.C. 1500년경 모세라는 사람 에 의해 기록되었고 신약의 제일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A.D. 100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4) 성경의 특징:

 

-지혜와 지식이 담겨있는 삶의 철학

-삶의 처세, 비즈니스 마인드, 운영 원리 운영 철학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임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바라보면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이 가능함

 

(5) 성경봉독:

 

-하나님이 내게 하신 말씀을 듣는 것임

-한적한 곳(골방)에서

 

) 찬양,

) 기도,

) 하나님과 성령님께 이해할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소망,

) 이 시간 하나님을 말씀을 읽습니다,

) 소리 내어 읽고,

) 마음으로

) 눈으로 3번 이상 읽고

) 어떤 단어와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내게 주신 글로 기록함

) 내게 주신 글이 깨달음과 교훈이므로 적용하여야 함

) 끝으로 이것을 가지고 기도(적용하기를 원합니다)

 

26)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는 무엇인가요?

 

(1) 성경은 믿을 만한 책인가요?

-역사의 진실성: 고고학의 발전과 더불어 성경의 역사적 뿌리가 증명됨(고대 문서검증과정)

(2) 예언과 성취: 성경에는 2천 가지가 넘는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 님의 재림과 종말에 관련된 부분만 남겨놓고 그 모든 예언이 역사 가운데 이루어졌음(다니엘서의 예언)

(3) 주제의 통일성(예수 그리스도의 중심 성)

(누가복음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 하시느니라)

(누가복음 24:44/ 또 이르시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라 하시고)

(요한복음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 성경의 자체의 증언: 1500군데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디모데후서 1:21/ 예언<성경>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니라)

-성경은 신적 권위로 쓰여졌음

-감동하심이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셨다란 의미임

-성경은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음

-성경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하고 알아 가는 것임

-역사적으로 진실하고 오유가 없음

 

27)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1) 하나님과 에수 그리스도를 알고 영생에 들어가는 구원을 위해서 임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 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여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 성장을 위한 신앙생활의 지침으로 삼게 하기 위해서 임

(베드로전서 2: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요한계시록 1:30/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 이라)

 

28) 미신과 기독교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점은?

 

(1) 미신 신봉자란?

 

-미신 신봉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내가 처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미지의 신이 가진 신통력 임.

-그러한 능력만 있다면 어떤 종류의 신이든 상관이 없으며 꼭 하나일 필요 도 없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음

 

(2)그리스도인이란?

 

-만일 지금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해 주실 하나님의 능력에만 관심이 있다 면 미신 믿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음.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 그 말씀에 관심을 가진 사람 들임

 

-말씀에 비추어 부단히 나의 생각과 삶을 고치고 바꾸려는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임

-문제는 그대로 있고 환경은 변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 추어 나아감으로써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임

-코앞에 닥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기보다는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 시고자 하는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제는 우리 마음대로 우리 방법대로 살지 않고 우리 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작정한 것을 의미함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게시는 분은 아니지만 궁극 적으로 그의 말씀과 그의 뜻을 좇아 사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복된 삶 임(시편 1)

 

*시편은 힘들 때 하는 기도의 책으로 3/4이 탄식 詩이며 다윗이 저자임

*힘들 때 하나님께서 회복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심

*기도란 듣고 암송한 것을 가지고 쌓인 말씀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요?

 

샬롬~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7. 4. 17:11

[내 마음 판을 두드리는 우리들교회 큐티 잠언실록어록집 167가지(73일 주일예배 말씀과 함께)]

 

 

7월 첫 주일(73) 설교 말씀(손윤상목사님/우리들의 예배)은 시편 81~9절 말씀이었는데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손수 창조하신 이 세상 만물과 하늘과 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묘사한 대목이 정말 은혜로웠습니다.

 

시편은 모두 150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만가만 묵상해 보면 모든 만물의 존재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며 우리가 느끼는 불행은 하나님 대신 자신에게 몰두할 때 생기는 감정으로 불안과 불만족의 삶의 시작인 것인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겸손함을 회복하는 예배란 우리가 겸손한 어린아이와 젖먹이가 되는 것이며 자신의 곤고함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자랑이라는 말씀이 보석이었습니다.

 

매주일 교회예배설교말씀을 현장에서 듣고 적으면서 목사님 말씀에 성령님이 실려 있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4:12~13/ For the word of God is quick, and powerful,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even to the dividing asunder of soul and spirit, and of the joints and marrow,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 Neither is there any creature that is not manifest in his sight: but all things are naked and opened unto the eyes of him with whom we have to do)가 실감나곤 합니다.

 

QT는 묵상(默想)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의 정규적인 개인적 크리스찬 영적 활동시간(a regular individual session of Christian spiritual activities)을 의미하여 기도(prayer), 개인적인 중재(private mediation), 묵상(contemplation), 주님예배찬양(worship of God) 또는 성경공부(study of the Bible)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QT(Quiet Time)이심전심의 시간"(heart-to-heart time) 또는 창조주하나님과의 일대일 기도시간(one-on-one time with the creator)이라고도 한다고 정의 되어 있기도 합니다.

 

김양재 담임목사님 인도 하에 우리들교회가 시작하여 성령님의 불을 붙이신 한국교회 부흥운동(Renaissance Movement)의 단어가 THINK(Telling/죄 고백과 간증-Holifying/거룩한 삶-Interpreting/큐티 말씀 묵상과 해석-Nursing/공동체 돌봄과 섬김-Keeping/가정중수)인 점에 착안하여 QT를 재 조명한다는 취지에서"Quiet Time"에 추가하여 "Quiet Thinking"이라고도 함께 사용하였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솔로몬 왕이 3,000가지 잠언과 1,005편의 노래를 짓고 통치력이 확장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였지만 이는 그의 공로나 자격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선왕인 다윗 왕의 눈물로 솔로몬이 왕이 되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구가하였음을 알려주십니다.

 

자녀를 위한 눈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를 믿고자 내가 영적 전쟁을 치르며 눈물로 씨를 뿌리면 우리의 영적 후사들은 기쁨의 단을 거두며 지경이 넓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솔로몬 왕은 나라를 지파의 지역별로 적절히 나누어 지방 행정구역을 구획하였습니다.

(1)에브라임 (2)납달리 (3)아셀 (4)잇사갈 (5)베냐민 지파 구역과 요단 동편의 마하나임, 길르앗 라못, 그리고 이방인의 영토였던 블레셋과 두로와 길르앗 땅도 행정구역에 편성하지만 유다 지파는 왕실직속으로 특권을 부여했다고 합니다.

 

특권과 예외 없이 십자가의 공의와 은혜로 걸어가는 것이 나라와 신하를 하나되게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목자가 되었다고, 믿음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저는 명예라는 이생의 자랑거리를 드러내어 은연중 제 자신을 높이고 주님 대신 내가 주목 받고 싶은 욕심이 있음을 자복하고 회개하기를 소망합니다.

 

외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듯하면서도 보암직스럽고 편한 환경만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저의 미천한 믿음 수준에 나도 남도 속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묻고 분별하여 선택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말씀의 빛으로 나의 어두움을 비추고 공동체에서 그것을 나누며 너 자신을 보호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삶이라고 하시니 할렐루야입니다

 

날마다 주야로 묵상하는 큐티를 통해 이 시대 하나님의 선물인 우리들교회 큐티 잠언실록으로 명명해 보며 2018~2019년 동안 다음과 같이 은혜 받은 대목에서 발췌한 167가지 어록집을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1)  복음은 기쁜 소식이며 우리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다

2)  내가 아프고 연약 해도 예수께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되시면 내 인생에 복음이 시작된다

3)  내 죄를 보고 자복하는 것이 복음의 시작이다

4)  내 인생에 복음이 시작되면 영원히 기쁘게 살 수 있다

5)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나라를 누리는 것이다

6)  가정과 직장에서 평범한 삶을 성실히 사는 자가 복음전파를 위해 준비된 자이다

7)  복음으로 사람을 낚고자 내가 소중히 여기면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갈 때 복음이 전파된다

8)  예수님을 향해 닫혔던 귀와 혀가 풀리는 것이 진정한 복음이며 은혜다

9)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마지막 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10) 삶으로 복음을 가르치는 것만이 진정한 권위다

11) 나보다 능력 많으신 예수를 바라보며 비교 의식 없이 겸손하고 충실히 사는 것이 성령으로 세례 받은 자의 특징이다

12) 예수님의 교훈은 내가 죄인임을 알고 십자가를 지게 하는 교훈이다

13)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알게 된 것, 그 말씀에 순종한 것이 권이 있는 교훈이 된다

14) 지식만 있고 순종이 없는 믿음, 예수와 상관 없는 삶이 귀신의 특징이다

15)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겸손과 절제의 영적 성숙이다

16) 사랑과 감사, 용서와 섬김의 십일조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증하는 것이 믿음이다

17) 죄 앞에서 무기력한 사람이 영적 중풍병자다

18) 내 죄를 보고 주께 죄 사함을 받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고 권세다

19) 구원과 관계 없이 내 의를 쌓고 내 복만 구하는 구제와 봉사는 안식일에 악을 행하는 것이다

20) 말씀과 성령에 결박되어 삶의 소유권을 온전히 주께 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다

21) 말씀으로 늘 내 죄를 보고 사죄의 은총을 받는 자가 성령으로 충만한 자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다

22)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큰 죄다

23) 나를 드러내는 말씀을 듣고도 말씀을 외면하고 스스로 삼가지 않으면 말씀이 아니라 사건으로 헤아림을 받게 된다

24) 광풍과 같은 사건과 환경도 힘들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내 안의 광풍이다

25) 미움과 시기의 광풍, 의심과 불신의 광풍은 돈으로도 힘으로도 잠잠케 할 수 없다

26) 내 마음에 모신 예수님이 말씀으로 내 안의 광풍을 꾸짖어주실 때 광풍은 잠잠해 진다

27) 광풍보다 주님을 더 두려워하는 믿음을 갖고 말씀으로 양육을 바을수록 세상이 놀라는 평안을 보이게 된다

28) 믿음은 내가 가진 것으로 능력을 나타내실 주님을 기대하고 신뢰하는 마음이자 실천이다

29) 예수님은 낮아짐과 겸손으로 내 옆의 힘든 사람을 섬기는 것이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낮겸섬)

30) 좋은 부모, 나쁜 부모 할 것 없이 최고의 부모는 예수께로 자기자녀를 데려오는 부모이며 예수 믿게 해준 부모다

31)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고난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 십자가가 나를 천국으로 이끈다

32) 주님은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쓰신다

33) 기도의 대상인 예수님을 잘 알고 간절함으로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구하는 나의 기도에 주님을 귀를 기울이신다

34)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다

35) 이웃을 향한 사랑 없이 드리는 예배는 형식적인 신앙에 불과하며 사랑 없는 행위는 죽은 것이다

36)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다

37) 십자기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이다

38) 내게 주어진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고 매 순간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삶이다

39) 내 안의 악은 가롯 유다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신하게 한다

40) 가롯 유다처럼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도 연제든지 예수님을 배신할 수 있는 자임을 알고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41) 구속사라는 이름의 구원전문 성경박사가 우리를 회개와 회복으로 이끈다

42) 가장 큰 지혜는 언어의 지혜, 말의 지혜이며 침묵할 때와 말할 때를 분별하는 것이 참 지혜다

43) 말씀이 내 삶을 관통하면 나의 수치가 주님의 수치로 바뀌어 약재료가 된다

44) 죄책감에 머물지 말고 말씀을 듣고 회개함이 우리를 향한 부활하신 주님의 뜻이다

45)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나와 함께 일하시기에 오늘도 우리는 능히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46) 영원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교만한 자들이나 악인들이 빼앗을 수 없고 삶의 역경과 풍파에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내 소유가 된다

47) 말씀을 듣고 믿은 성도는 고난 당한 것이 나에게 유익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고난을 통과하며 주의 율례를 배우기 때문이다

48) 큐티의 꽃은 적용이며 큐티의 열매는 영혼구원이다

49) 말씀을 듣는 성도는 속은 일고 속인 일만큼이나 자기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50) 욕심을 버려야 거짓된 입술과 혀를 끊을 수 있다

51)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용서받을 수 있다는 회개와 겸손으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다

52) 나의 허물과 찌꺼기를 내 스스로 없앨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건을 통해 드러내시는 것이다

53) 내 인생에도 예수님이 오시면 최고의 삶을 누릴 수 있다

54) 말씀이 삶의 기반이 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t는 것이 곧 천국을 누리는 삶이다

55)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평화를 경험하는 비결이다

56) 나의 육적 수치를 드러내는 것이 나의 영적 수치를 가리는 길이다

57) 말씀을 듣고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만이 진노의 심판에서 건짐을 받는다

58) 마헬살랄하스바스신속히 약탈하고 빠르게 탈취하라는 뜻이다

59) 세상이 부럽다고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리면 내 인생의 결론은 패망뿐이다

60)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상급이며 자랑이다

61) 우리는 거짓을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이사야 28: 15/ we have made a lie our refuge and falsehood our hiding place)

62) 의인은 행위나 긍정의 힘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자다

63) 율법은 일시적이지만 언약은 영원하다

64)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내가 바뀌면 그 어떤 고난도 축복이 된다

65) 하나님만 의지하면 내 인생에도 딱 맞는 때에 예수님이 오신다

66) 믿음은 자신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행위다

67) 믿음은 주님의 손을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잡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다

68) 스스로 된 줄로 생각하는 자는 스스로 속이는 것이며 이미 병든 자이기에 다른 사람의 짐을 져줄 수 없다

69) 열등감이 없고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 남의 짐을 져줄 수 있다

70) 성령이 내 안에 거하며 말씀대로 믿고 살면 평강을 누리게 된다

71) 평강이 있으며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으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축복 중의 축복이다

72) 평강과 긍휼이 있으면 더 이상 괴롭고 힘들고 두려울 일이 없다

73) 나의 천하고 멸시 받고 없는 것들을 내어놓는 것이 주께 쓰임 받는 비결이다

74) 내가 자랑할 것은 오직 나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신 예수뿐이다

75) 나에게 있는 은사와 지혜는 내 것이 아니라 주께 받은 것이다

76) 내게는 선한 것이 전혀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것임을 깨달을 때 자랑은 사라지고 겸손이 들어 서는데 이것이 진정 주 안에서 왕이 되는 것이다

77) 손과 발이 가는 수고로 가족을 섬기며 땀과 눈물로 지체를 섬기는 것이 내 몸에 주의 권능을 덧입는 것이다

78) 평범한 삶을 여전한 방식대로 살면서 주님처럼 구원을 위해 값을 치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79) 나에게 허락된 고난은 나를 부인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광야학교

80) 욕심이 두려움을 낳아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81)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여 내 욕심을 가치치기 해나가면 감정의 요동함이 없어지는 평탄함을 허락해 주신다

82) 어떤 일이 와도 말씀의 사건으로 해석하고 평범한 삶을 잘 사는 것이 형통을 누리는 비결이다

83) 말씀의 인도를 받아 나부터 회개하여 잘못했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증오와 상처의 물이 끊어진다

84) 이 최소한의 순종에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주셔서 생명이 길을 여신다

85)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면 육적인 것도 회복된다

86) 나에게 맡겨진 어떤 일이든 땀 흘려 감당함으로 풍성한 소산물을 얻게 되는 육적 영적 회복을 주신다

87)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도 온전한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불평과 낙담을 잠재워 준다

88) 내게 필요한 급한 일보다 주님과 동행하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지혜다

89) 나에게 베푸신 구원은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일이며 주님의 선하심의 증거이기 때문에 죄에서 속량하시고 구원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성도는 받은 은혜를 간증하며 전하고 감사해야 한다

90) 내가 누리는 모든 풍요는 여호와께서 내게 복을 주신 결과이므로 우리는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고 날마다 나의 죄악을 회개하며 내게 허락해주신 소출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91)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다

92) 내 인생을 하나님의 일로 기억하며 나의 수치는 더 이상 상처로 남지 않는다

93) 정직한 자들의 모임(공동체)에서 나의 수치를 드러낼 때 나의 남은 날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으로 변화된다

94) 내 속에 숨겨진 죄악 된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우상이다

95) 따라서 무능한 우상에 내 욕심을 투영하여 숭배하지 말고 인자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구해야 한다

96) 우리가 끝까지 믿고 붙들어야 할 것은 나에게 지금의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다

97) 기도는 나의 모든 형편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아뢰는 것이다

98) 누구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과의 비밀스러운 대화는 내가 의지하던 세상세력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붙들도록 내 믿음을 격려한다

99) 십자가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기이함으로 드러난 사건이며 우리가 영원히 찬양할 이유다

100)            믿음은 경고의 말씀을 듣고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101)            믿음으로 작은 것 하나에 순종할 때 주의 안식에 능히 들어가게 된다

10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의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참 안싱을 누리게 된다

103)            택함 받은 자는 말씀의 빛과 은혜의 단비를 사모하면서 끝까지 주의 공동체에 붙어있는 자다

104)            믿음은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105)            예수님일 믿는 내가 가장 아름다운 직분을 얻은 자다

106)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만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기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는 삶이다

107)            가족과 지체의 구원을 위해 내가 피 흘리는 것이 구원의 도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108)            내 죄를 보고 애통해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바라는 것이다

109)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굳게 잡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며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세우신 새 언약을 믿는 증거다

110)            자기 욕심에 미혹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어리석은 묵시만을 좇는 자는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심판에 이르게 된다

111)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비참한 결과를 불러온다

112)            죄의 결과로 오는 징계와 심판은 파멸과 멸망임을 기억해야 한다

113)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힘든 문제 가운데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면 그 문제는 더 이상 나의 문제가 아닌 주님이 해결해주실 문제가 된다

114)            지금 당장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의 조롱을 잘 당하면 하나님이 공의로 보응해 주신다

115)            내 힘을 내려놓고 주님을 간절히 구할 때 내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116)            징계받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자기 죄와 허물을 정직히 고백하는 사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치료와 회복을 경험하며 은혜를 누리게 된다

117)            성도는 한 말씀을 들으며 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된다

118)            영혼구원을 위해 주님이 나를 첫 번째로 보내신 사역지가 바로 가정이다

119)            나의 전적인 무능함과 죄악을 인정하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진실한 삶만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

120)            복음에 합당한 삶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미쁜 말씀이다

121)            거짓과 죄악은 내 열심으로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회개로 멀리할 대상이다

122)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한 적용은 내 가족과 이웃이 거룩한 삶을 배울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이 된다

123)            파멸의 위기는 나를 회개로 이끌어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워주시려는 주님의 부르심이다

124)            하나님을 경외할 때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125)            하나님을 경이하며 십자가를 내 살의 길로 놓고 가면 사건마다 하나님의 긍휼을 맛보아 알게 된다

126)            여호와께서 내 연약한 체질을 아시기에 구분만 경외하며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 지는 순종을 하면 주님이 내 인생을 책임져주신다

127)            주의 말씀을 들으며 풀이나 꽃처럼 잠깐 있다가 지나가는 인생임을 깨닫고 천국을 더욱 사모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송축하며 영생을 누리는 삶이다

128)            내가 오는 만나는 사람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행하는 일이 하나님을 향한 애 영혼의 송축이다

129)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인 안경이다

130)            성경이라는 안경을 써야만 자연이 심히 위대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증거임을 알게 된다

131)            천국의 즐거움은 내 노력으로 성취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내 죄를 깨달아 회개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132)            즐겁게 노래하며 소유하는 삶은 말씀을 따를 때 얻게 되는 영적 소산이다

133)            말씀을 가까이 하여 내 죄를 보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식하는 자는 길을 삼가며 겸비한 마음으로 주 앞에서 행하게 되므로 형통하게 된다

134)            죄인인 자기본질을 알고 자신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낌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분별의 지혜를 주신다

135)            온전한 예배의 회복이 지혜로운 통치의 시작이 된다

136)            한 영혼을 살리고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지헤다

137)            구원과 관계 없는 정의와 공평만 외치면서 사람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다

138)            구원을 위해 이타적인 사랑으로 내 것을 내려놓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자다

139)            하나님과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거하는 것이 성도의 기쁨이자 복이다

140)            성도의 안식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에서 온다

141)            결국 성도의 전쟁은 외부의 대적이 아닌 바로 내 속에 있는 죄와의 전쟁이며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있다

142)            구원을 위해 애통하여 부르짖는 소리에 주님은 구원으로 응답하신다

143)            구원의 사명을 위해 하나님이 시키시는 양육과 연단은 대단한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환경에서 말씀을 들으며 죄악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최고의 훈련이다

144)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에 잘 매여 내 안에 있는 우상을 허물고 말씀의 반석 위에 거룩한 성전을 세우는 치열한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딤전 6:12)

145)            골짜기든 이방이든 궁전이든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가는 것이 사명의 길이다

146)            하나님의 은혜는 내 열심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조용히 나아가 모든 주권을 오직 주께 맡길 때 주님이 그 기쁘신 뜻대로 주시는 것이다

147)            문제가 해결되고 일이 잘 풀릴 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넘어지지 않는 길이다

148)            주님의 은혜를 그렇게 받고도 자기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149)            자기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애통하심을 알아야 남의 고난을 돌보는 사명자가 된다

150)            회개하지 않으니 죄 위에 죄만 더욱 쌓는 것이며 회개할 때 원망을 그치고 기쁨을 얻게 된다

151)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기에 멸망을 재촉하는 위로만 하는 것이다

152)            세상의 부귀와 권세를 다 가져도 하나님을 떠난 삶은 결국 죄 가운데 헤매다가 죽음을 향해 가게 된다

153)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내 욕심을 가지치기하지 않으면 이세벨처럼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악의 굴레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154)            사소한 생각이라도 믿음의 지체들과 더불어 말씀의 거울에 비춰 점검하고 멈출 것은 멈추고 제할 것은 제하는 묵상과 적용만이 나의 악의 굴레를 끊어 준다

155)            날마다 말씀의 빛으로 나의 어두움을 비추고 공동체에서 그것을 나누며 너 자신을 보호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삶이다

156)            지혜는 내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157)            환난이 찾아올 깨 말씀묵상으로 주게 지혜를 구하면, 영적인 교훈을 깨닫고 믿음의 성숙이 이루어진다

158)            내가 가난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오면 높은 자가 되고 부한 자라 해도 그 부함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높여주심을 사모하며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한다

159)            내 죄에 대한 애통함으로 울며 회개할 때,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얻게 된다

160)            나의 죄인 됨을 자각하게 되면 비참한 심정이 되어 주님 앞에 저절로 낮아진다

161)            하나님은 이런 자를 높이시고 은혜를 주신다

162)            죄를 회개하는 자가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163)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구원을 상급으로 받는 것이 축복이다

164)            내가 하나님을 거역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는 그 순간부터 내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다

165)            세상을 이기는 힘은 세상에서 얻은 재물과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다

166)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구원받은 백성의 삶이다

167)            이 땅의 거주지와 일터에서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것이 내 삶의 매너리즘을 물리치며 통과하는 가장 복된 비결이다

168) 순종이 하나님 백성의 품격이다

169) 혼돈과 무질서 속에 있던 나를 구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허락하신 환경에 감사하는 삶이 거룩한 삶이다

170) 진정 크고 두려운 적은 보이지 않는 내 내면의 죄악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6. 26. 11:01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2(6월26일 성령의 好意와 골로새서 말씀)]

 

 

6월 마지막 주일인 오늘 설교말씀제목은 聖靈의 好意”(사도행전 24:27~25:11)이었습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서 받는 호의는 나를 죽이는 호의이며 하나님이 없으면 세상의 그 어떤 호의도 나를 죽이는 호의가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 은혜롭습니다. 세상적 호의를 거절해서 결국 나를 살린 경험을 상기하면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호의를 보여야 하나님의 호의가 은혜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께 내 죄를 고하고 호의를 구해야 하고 어떠한 고난이고 호의이고 해석을 잘해야 해결이 됨을 일깨워 주시니 할렐루야입니다.

 

사도바울처럼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는 것이 아폴로 게오마이인데 나를 현재 환경에 묶어 놓아 잘 묶여 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의 호의이며 용서인데 나를 묶어 놓는 것이 가이샤 황제 보다 더 크신 주님께로 인도되는 길임을 설파해 주심에 은혜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5가지 이름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1)  하나님은 영(Spirit)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으로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은 사랑(Love)이십니다. 그래서 이웃을,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고 복 빌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은 공동체(Communities)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체로 함께 모여 예배 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4)  하나님은 창조(Innovation: 혁신)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옛사람, 옛 습관, 구태의연함을 벗고 새 사람, 새 마음으로 거듭 나아 혁신하도록 창조하기를 원하십니다

5)  하나님은 자유함(Spiritual Freedom)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탐심, 시샘, 비방, 정욕 등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를 원하시고 기다려 주고 계십니다

 

코로나19 한참 전에 적어 두었던 몇 주 간 우리들교회 주보에 소개 된 골로새서(Colossians) 말씀에서 발췌했던 김양재 담임목사님 미니 어록을 은혜 리바이벌로써 함께 묵상하며 공유해 봅니다:

 

1.   골로새서(Collosians) 어록

 

1)  형통할 때 더욱 기도를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너무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2)  옳은 말, 옳은 일이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옳은 말보다는 살리는 말,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3)  신령한 지혜와 총명은 구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그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5)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려면 열심보다는 침묵이 우선입니다

6)  영적 진실성의 결과는 인내이고 영적 성장의 결과도 인내입니다

7)  중보기도의 최고봉은 끝까지 인내하며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 입니다

8)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이콘인 것처럼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아이콘이 되어서 예수님을 보여야 합니다

9)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삶이란 흠 없고 완전한 거룩한 삶이 아니라 말씀을 보며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0) 우리의 장자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덧입으면 우리도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 수가 있습니다

11) 자기 죄를 늘 보고 먼저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도 붙들 수 있습니다

12) 인생은 옷과 같이 변하지만 낡아지고 변하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옷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13) 예수 믿는 사람에게 최고의 칭찬은 천사 같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 믿고 달라졌구나입니다

14)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되신다는 것은 각 지체인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연합되고 거룩하게 유지된다는 의미입니다

15) 좋은 지체 나쁜 지체가 없습니다. 한 지체가 아픈데 서로 돕지 않으면 다 죽는 것입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6. 19. 12:13

[우리들교회 어록(Analects and Quotations) 시리즈 제1(인생 9개분야 대표어록정리요약)]

 

주님을 내 인생의 구주로 영접하고 우리들교회에 성도로 등록(2011)하여 크리스찬이 된지 어언 11년 째입니다.

 

 

 

 

어제(618) 코로나19로 비대면 목장공동체예배만 지켜보아 오다가 오랜만에 대면예배 소식을 받고 반가운 마음으로 6개월 만에 목장예배모임에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주일설교말씀의 시작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For it is with your heart that you believe and are justified, and it is with your mouth that you confess and are saved.)였습니다. 인생의 3가지 금 중 지금이 황금과 소금보다 더 중요한 것인데 나중에, 차차 하자는 것이 바로 마귀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차차 마귀의 속성이며 우리를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원흉이라는 목사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42주 연속 교회 양육을 받고 부목자를 거쳐 5년 만인 2016년에는 목자(소그룹 리더/구역장) 직분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하여 교회 직분자 누구나 역할 감당하고 섬기라고 직분을 맡겼더니 벼슬로 알고 행세하려는 습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게으르고 코로나 핑계로 목장예배모임도 회피해온 제 안의 악독을 먼저 보게 하십니다.

 

2011년 새 신자로 등록하고 양육과 함께 말씀이 꿀송이처럼 들려 매주 주일말씀과 수요예배말씀을 적고 요약하여 우리들교회 자유나눔에 올려 말씀을 정리하면서 말씀 중 은혜가 되는 부분을 어록 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정리하여 보관하여 오던 우리들교회 어록을 부분적으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리들교회 김양재목사님은 말씀해석뿐만 아니라 보석어록제조기처럼 느껴집니다. 

 

말씀 해석의 내공이 어록 화 되어 설교를 하시면서 애통해 하시는 가운데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은 물론 은혜가 충만한 것이 무엇인지 실감나게 해주고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는 빈들 광야 사이의 꿀송이덩어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 한 마디 한마디가 이어질 때마다 목사님 설교말씀을 놓칠 수 없고 끊임 없이 말씀이 사모 되어 믿음이 성장되어 가는 주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자칫 고리타분할 것 같은 성경 말씀도 수 십 년의 큐티 내공으로 쉽고 마음에 와 닿도록 실타래를 풀어 내듯이 유효적절하고 시기적절하고 마음이 열리고 뭉클하도록 주시는 말씀은 마치 언젠가 큐티 본문에서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時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누가 복음 3:21~22/When all the people were being baptized, Jesus was baptized too. And he was praying, heaven was opened, and the Holy Spirit descended on him in bodily form like a dove. And a voice came from the heaven: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의 말씀처럼 말씀이 예수님이고 복음이고 축복이고 사랑이고 소망이고 은혜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교회는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라고 생각됩니다.

 

 

기존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개조 되어야 말씀이 깨달아 지고 말씀을 듣는 구조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언<Proverbs> 16:18/ Pride goes before destruction, a haughty spirit before a fall)란 말씀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성경구절 이었습니다.

 

내 지금 모습이 내 삶의 결론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부인할 수 있는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핑계를 대 보지만 결국 현실은 내가 자초한 것이니 불평불만이 불필요하다라는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순교(martyrdom)를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고 이 시대의 순교는 혈기를 내다 버리는 것이란 말씀 해석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명언 어록입니다.

 

우리들교회 대표 어록을 다음의 9가지 인생분야로 분류하여 어록을 정리해 놓은 보석 어록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1.   인생에 관하여

2.   교만에 대하여

3.   결혼에 관하여

4.   가정에 관하여

5.   인간관계에 대하여

6.   생활예배와 분별에 관하여

7.   큐티와 말씀에 대하여

8.   고난에 대하여

9.   공동체에 관하여

 

[9개 인생 분야에 관한 우리들교회 대표어록정리요약]

 

1)  인생에 관하여:

 

(1)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2)하나님께 드릴 것밖에 없고 사람에게 줄 것밖에 없는 인생을 살자

(3)별 인생이 없다. 별을 나눠주는 인생을 살자

(4)지금의 내 모습은 내 삶의 결론이다

(5)말씀이 들리는 나는 수지맞은 인생이다

(6)인간은 100% 죄인, 하나님은 100% 옳으신 분이다

(7)예수님은 자살살자로 바꿔주신다

(8)내려놓지 못함, 결코 내려놓지 못함, 억지로 내려놓음

(9)인생에서 내가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살리라고 주신 것이다

(10)인생에서 세속적으로 화려한 사회적 물질적 권세 적 학벌 적 우상을 섬기는 우리는,

(10-1)아침 구름 같으며,

(10-2)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10-3)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10-4)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은 것이다 

(11)우리의 인생도 영적인 성전을 건축해 가는 기간이다

(12)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어 섬기는 인생이 최고 인생이다.

(13)인간은 악하고 음란하며 100%죄인이다

 

2)  교만에 대하여:

 

(1)교만의 열매는 자기를 위한 우상숭배다

(2)교만은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3)배 부르고 교만한 마음이 우상숭배의 근원이다

(4)주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5)교만은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여 스스로를 높이고 헛된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

(6)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멸망의 앞잡이다

 

3)  결혼에 관하여:

 

(1)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2)불신결혼은 성경의 총체적인 악이다

(3)불신결혼의 배후에는 악과 음란이 있다

(4)이혼은 절대 안 된다

(5)거룩한 너와 내가 만나야 행복한 우리가 된다

(6)예수의 씨를 가진 사람을 만나 믿음의 계보를 이어야 한다

(7)음행의 연고가 혼인(결혼)이니 환상을 깨라

(8)결혼과 독신은 각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다

(9)천국에서는 시집 장가도 안 간다

(10)결혼은 음행의 연고이며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낫다.

(11)결혼생활에서 성적인 의무가 제일이다

(12)결혼생활에서 분방의 이유는 오직 기도를 위한 것뿐이다

(13)결혼과 독신도 무엇이든지 주와 복음을 위해서다

(14)결혼생활에서 부부는 서로 갈리지 말며 버리지도 말고 헤어지지도 말아야 한다

(15)결혼은 재창조다

(16)인간은 자존적 교만이 있어 한번 분방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부부는 절대로 같이 자야 하고 그것도 한 이불 같이 덮고 숨 못 쉴 정도로 쪼여야 한다

(17)모든 부부문제는 분방으로부터 시작되나니 힘들어도, 징그러워도, 코골아도, 땀 흘려도 함께 자야 한다

(18)성경 속에 가정생활의 원칙이 있다

(19)일단 결혼하면 권이 없는 것이고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니 결혼은 잘해야 하며 그래서 부부생활은 진짜 고난이다

 

4)  가정에 관하여:

 

(1)가족으로 묶어 주신 것은 구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2)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

(3)아무리 이상해도 나를 이 땅에 태어나 예수 믿게 해 주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4)자식은 배신당하려고 키운다

(5)가정은 중수 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다

(6)주님이 주신 역할과 때(여자의 때, 아내의 때, 어머니의 때)에 잘 순종하자

(7)우리가 거룩하지 못 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지혜로운 부인과 용기 있는 남편을 허락 하시며 세상과 친밀함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원리를 잘 알고 적용해야 한다

(8)행복하게 살아도 자식 고난이 계속 이어지니 거룩하게 거룩 거룩 보며 내 죄를 보게 해 주시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9)예수를 믿으면 천국을 누려야 하는 것이고 온 집안이 하나님 부르짖는 것이 축복이다

(10)하나님께서 결혼생활의 원칙을 통하여서도 복음의 위력을 보여 주시니 하나님 때문에 사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5)  인간관계에 대하여:

 

(1)큐티하면 사람을 분별하는 눈과 통찰력이 생긴다

(2)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3)사랑의 빚 이외에는 빚지지 말아야 한다

(4)이 시대의 순교는 혈기 부리지 않는 것이다

(5)믿음은 죽을 때까지 자존심을 내려 놓는 것이다

(6)예수 없이 우리는 사랑은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는 존재이다

(7)인격에 순종하지 말고 역할에 순종하라!

(8)최고의 복수는 용서하고 잊어 버리는 것이다

 

 

6)  생활 예배와 분별에 관하여:

 

(1)여전한 방식으로 생활 예배 잘 드리자

(2)평범한 삶을 잘 사는 것이 가장 비범한 삶이다

(3)현재(지금)가 선물이다(The present is the present.)

(4)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자!

(5)착한 게 악한 것, 자기 죄가 보이지 않고, 착하고 의로움에 대한 생색이 있기 때문이다

(6)뭘 적용해야 할지 모를 땐, 너무 하고 싶은 곳은 하지 말고 너무 하기 싫은 것은 하는 것이 적용이다

(7)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한다

(8)내 죄 때문에 울면 내 환경 때문에 슬퍼하지 않게 된다

(9)대학에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하자!

(10)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다

 

 

7)  큐티와 말씀에 대하여:

 

(1)환란이 주제, 성경이 교과서, 성령이 스승이다

(2)큐티는 성경을 지도로, 십자가를 길로 놓고 가는 순종이다

(3)매일 말씀으로 내 욕심과 죄를 쳐내는 것이 큐티다

(4)매일 말씀 통해 약속 찾고 명령 찾고 가야 한다

(5)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감사이다

(6)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나와 우리 가정을 구속사적으로 보게 된다

 

<Update 추가 10개 어록>

 

(7) 매일 말씀으로 내 욕심과 죄를 처내는 것이 큐티(묵상)이다

(8)큐티하면 사람을 분별하는 눈과 통찰력이 생긴다

(9)큐티를 하면 인도하심을 주시는데 내 죄와 연약함을 볼 때 알게 된다

(10) 얼음 판에서 안 넘어지게 하는 것이 큐티로써 말씀의 예방주사이다

(11)하나님 말씀의 꽃인 적용이 큐티이다

(12)큐티의 결론은 영혼 구원하는 마음이다

(13)살기 위해 처절하게 말씀 붙드는 것이 큐티이다

(14)살기 위해 큐티하니 영성이 깊어진다

(15)구체적, 실체적, 역사적으로 큐티를 해야 한다

(16)그날 큐티로 해석한다

(17)큐티도 어려서부터 하는 것이 중요한데 하나님 중심으로 양육 받는 것이 최고의 소명이다

 

8)  고난에 대하여:

 

(1)고난은 축복이다

(2)내 고난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약재료로 쓰여야 한다

(3)주가 쓰시겠다고 하면 어떤 사건도 주가 쓰시는 사건이 된다

(4)수준이 높기 때문에 고난도 세다

(5)고난의 때가 차야 돌아 오게 된다

(6)나의 해, , 별이 떨어지는 사건이 인자(the Son of Man)가 오는 사건이다

(7)예수 믿는 우리에게 우연은 없다. 모든 게 있어야 될 일이다

 

9)  공동체에 관하여:

 

(1)함께하는 우리가 중요하다

(2)서로가 서로의 죄를 오픈 하면 죄가 힘을 잃는다

(3)믿음이 없으면 믿음의 공동체에 붙어만 있어라. 저절로 가지는 게 있다

(4)혼자선 절대 할 수 없지만 공동체가 항오를 이루며 띠 두르고 함께 갈 땐 할 수 있다

(5)말씀 보는 구조 속으로 들어가라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2. 1. 26. 15:54

[우리들교회 2022123일 주일설교말씀요약(사도행전 21:37~ 22: 1/ 성령의 허락)]

 

 

 

<사도행전(21:37~22:1)>

 

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Prologue>

 

성령의 실상은 아스팔트와 같아서 내 실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이 성령의 실상이 되면 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하면 오래 참고 온유하게 된다. 매사에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이제 겸손히 허락을 구하게 된다. 우리가 목장에서 물어보는 것이 허락을 구하는 태도이고 목장은 정말 여러 가지고 시금석 같고 너무도 유익한 공동체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실상을 알 수 있고 그리고 내가 너무 목장을 싫어하면서 싫은 사람 만나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생활에 아주 지대한 공을 세우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냥 똑똑한 사람의 처방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겸손하게 물어보는 것 때문에 하나님은 지나고 보니 곳곳에 엄청나게 성령의 허락을 하셨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허락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다.

 

1.   딱 맞는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37~38)

 

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바울입장에서 이때가 얼마나 긴박한 순간인가? 결례를 행하다가 갑자기 일어난 소동으로 온 무리가 달려들어 때리고 없이하라 죽이라 하며 쇠사슬로 결박하여 끌려가는 데도 유대인들이 달려들어 폭행을 당하고 군사들에게 들려가면서 죽을 수도 있는 순간, 안토니아 요새로 들어가려는 바로 그 때이다. 

 

치외법권 지대가 되었으니까 소리를 지르고 억울하다고 결백을 주장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때 죽어가던 바울의 첫마디는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하고 허락을 구한다. 자기는 지금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군중은 허락 없이도 자기 맘대로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이 말, 저 말 자기 말만 한다. 어떤 사람은 분노, 불안해서 떠들어댄다. 군중심리는 너무 무서운 것이다. 우리 교회는 자기 죄를 보는 하나님의 군대이다. 군중이란 수가 많고 적어서가 아니다. 바울은 혼자라도 하나님의 군대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이 곳곳에서 안아 주시고 허락하시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공동체를 무시하는 혼자가 아니고 어쩔 수없이 복음 때문에 박해당해서 혼자인 것이다. 혼자라도 군대인 사람이 있고 군중 속에도 혼자인 사람이 있다. 이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 바울은 왜냐하면 성령의 경영에 따라 사명의 길을 말씀으로 인도함 받으면서 성령의 작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순종하며 나갔다.

무엇을 경영했냐 하면 표면적으로는 이방 교회가 헌금한 부조를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서 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근본적인 목적은 이방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서 왔는데 더 중요한 것은 내 동족 예루살렘에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그 뿌리를 잊지 않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한 번이라도 얻기 위해 그 엄청난 헌금을 들고 와서 생색을 내지 않고 헌금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이 들어가는 과정을 이 상황을 어떻게 만드셨나? 많은 장로들의 박수를 받으며 설교 강단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오해 받고 누명 당하며 심지어 결박 당한 상황에서 죽음에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드시고 그것도 부족해서 마지막까지 허락을 구하는 자리까지 이끄셨다. 이처럼 성령의 경영으로 구원을 향한 목적의 애통함을 가졌기 때문에 바울은 입을 다물어야 할 때와 열 때를 너무 알아볼 수 있었고 딱 맞는 때가 언제인지 분별할 수 있었다. (목적의 애통함이 있을 때 입을 열어야 할 때와 닫아야 할 때를 구별하는 성숙이 생긴다.) 성난 군중에게 공격을 받을 때는 십자가의 길을 앞서 가신 예수님과 스테반을 따라서 묵묵히 입을 다물고 고난을 받아냈다. 가만히 있으면 위협이 멈추게 될 이 때, 오히려 바울은 입을 열고 말한다. 항상 하고 싶은 것을 거꾸로 하면 그것이 적용이고 내가 잘 모를 때 너무 하고 싶은 것을 거꾸로 적용하면 맞다. 그러면서 정중한 요청을 강조한 단어로 바울이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고 천부장에게 물었다. 정통헬라어를 구사하는 모습에 놀라서 감탄형으로 말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너무나 정중한 겸양의 말이며 배려를 요청하며 허락을 구하는 단어들이다. 발음과 억양이 수려한 헬라어였고 아테네 식에 가까웠던 것 같다. 변방인 예루살렘에서 도시의 소요를 일으킨 주범이 정통헬라어를 구사하는 것에 대해서 천부장이 너무 놀라서 감탄문으로 썼다. 천부장은 로마의 공을 세우기 위해 바울을 잡으러 갔다. 바울은 이 질문을 받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이 때로 바로 딱 맞는 그 때인 것이다. 그래서 기다려야 된다. 큐티하고 목장 나가고 물어보면 그것이 기다리는 것이다.

 

(적용#1) 혼자라도 군대인가? 군중 속에 혼자 인가? 가족의 구원을 위해 딱 맞는 그 때를 경험한 적이 있나?

 

구원을 위해서 지금 말해야 한다. 내일은 없다. 구원을 위해 지금이 딱 알맞은 때이다. 지금 안 되면 안 됨을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어디든지 가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2.   (오해 때문이 아니라) 구원 때문에 공손함과 단호함의 말로 부탁해야 합니다. (39)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바울은 유대인의 배신자 이자 성전을 더럽힌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고 반군의 우두머리로 오해 받았다. 억울한 오해를 받으면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일단 부인하기 바쁘다. 그리고 바쁘게 부인하다 보면 화가 쌓이고 억울하고 화를 낸다. 부인하고 분노하는 것이 오해에 대해 내기 쉬운 대응이다. 부인(denial)과 분노(anger)로 대응을 하면 오해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바울은 반군 지도자라는 오해에 억울하다고도, 하소연도 화도 내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나는 유대인 이라고만 한다. 길리기아의 다소 시 시민이라고 한다. 당시 세계지도에 대한 기록을 남긴 스트라보에 따르면 다소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하는 교육도시였다.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스승이자 조언자였던 아테네 도로스가 다소 출신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에게 공개적으로 직언할 권한까지 주었을 만큼 대단한 현자였다. 그 조언 중에 사람이 화내기 전에 알파벳을 외우라고 했다. 바울이 소읍이 아닌 다소 시민이다. 유대인, 길리기아 다소시민이라는 단어 몇 개로 바울은 천부장의 오해를 싹 풀었다. 이어서 바울은 다시 공손히 부탁을 한다. 매우 정중한 말로, 반복적 의미를 갖는 현재형으로 거듭해서 부탁을 한다는 뜻이 있다. 그러면서도 허락해 달라는 부정과거의 시제를 쓰면서 딱 한 번만 허락해 달라는 단호한 의지로 분명하게 피력했다. 바울은 천부장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지만 백성을 위해서 공손과 단호함이 공존하는 부탁을 했다. 공부한 것이 이렇게 적재적소에 빛이 발휘되어 천부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선교나 목회를 하려면 언어가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야말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지만 생각해보면 베드로와 열두 사도도 다 헬라어를 잘 못했다. 헬라어를 못해서 복음을 못 전한 것은 아니다. 은사가 다르다고 생각을 해야겠지만 언어를 잘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바울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성경을 원어로 다 읽고 알아도 구속사를 읽지 못하면 무엇이 중요한지 숨결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무조건 성령을 받아야 한다. 빌립보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바울이 억울한 상황에서도 로마시민이란 특권을 쓰지 않았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를 막기 때문이었다. 천부장이 알아들었다. 말을 많이 해야 알아듣는 것이 아니다. 자랑질을 할 때도 안 할 때도 있다. 구원 때문에 때를 안다. 바울이 오직 예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는데 유대인에게 복음 전할 기회를 놓칠까 봐 특권을 쓰지 않고 참았다.

 

십자가는 지혜이고 타이밍이다. 십자가로 주시는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지혜가 생기고 가장 좋은 타이밍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들 내 감정, 내 자존심이 제일 중요하니까 오해를 받으면 화부터 내고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도 못하고 오해만 커진다. 말씀에 의거해서 성령의 실상을 깨닫고 그 실상을 증언하고자 하면 딱 맞는 말을 할 수가 있고 오해가 저절로 풀린다. 말을 할 때와 안 할 때를 분별해야 지혜롭고 세련되어진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다 상처를 준다. 성령의 허락은 오해가 풀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기회를 통한 구원이 목적이다. 성령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 공손히 그러나 단호히 부탁해야 될 때가 있다.

 

40. 천부장이 허락 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폭동과 반란의 위험이 큰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많은 유대인이 몰려드는 이 명절에

천부장의 모든 관심은 예루살렘 도시의 안전인데 지금 소요가 일어났다. 사태를 빨리 진정시키는 것이 천부장의 할 일이고 소요의 주인공이 바울이므로 바울과 군중을 분리시키는 것이 천부장으로서는 가장 시급한 행정관리로서 할 일이다. 그런데 바울이 군중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 천부장에게는 작은 일이 아니었다.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했던 일이다. 그런데 천부장이 들어줄 책임이나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천부장이 바울의 부탁을 허락했다. 정말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령의 허락을 주신 것이다.

바울이 구원을 최고의 목적으로 놓고 백성을 애통한 마음으로 대하고 천부장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로 존중하며 공손히 대하니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성령의 허락을 내리신 것이다.

권세가 아닌 말씀을 전할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듣도록 히브리어로 말한다. 유대의 종교와 전통과 문화를 부정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어서 정통 히브리 아람어와 고대 방언이 아닌 현재 쓰는 히브리어로 알아듣도록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말했다.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부형들아”는 스테반(사도행전 7 2)이 처음 사용했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의 모든 사람들을 최고로 존경하면서 아버지와 형제,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을 미워하지 않고 제발 돌이키려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부형들아 하고 불렀다. 스테반과 주님을 기억하는 유대인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바울의 노력이었다. 보통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 아니다.

 

(적용#2) 오해를 방을 때 외면하나? 부인하나? 화를 내나? 구원을 위해 공손함과 단호함이 균형을 이루고 있나? 성령의 허락을 위해 지혜, 타이밍, 눈높이를 맞추는 것 중에 무엇이 안 되나?

 

3.   억지로 총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37~38)

 

37B.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당시 유대지방에서는 독립운동을 한다고 단검을 가지고 활동한 자객들이 많이 있었다. 이 자객들 중에 애굽 출신의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A.D. 54년에 폭동을 일으켜 자신을 자칭 선지자(메시야)로 부르면서 자신의 추종자들을 감람산으로 데리고 가서 자신이 명령 한 번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래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유대를 구해낼 것이라고 하니까 많은 유대인들이 미혹되었다. 그래서 오순절 같은 이런 명절 때 로마의 교인들을 암살하고 로마편을 드는 유대인, 고위관리도 암살을 했다. 요세프스의 기록에 보면 그 인구도 많지 않은 그 때 3만 명까지 그 수가 커졌고 결국은 로마의 벨릭스 총독이 이끌고 온 로마군에 의해 제압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처형당하고 투옥이 되었다. 그러자 이 애굽인은 4천명이나 데리고 광야로 잠적을 해버렸다. 이 애굽인에게 속은 많은 유대인들은 부모 형제가 죽으니 그 때부터 그 사람을 미워했다.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바울이 유대인에게 몰매를 맞는 것을 보고 천부장이 그 애굽인으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해방을 원했던 유대 민족은 로마 압제에서 구원해 주겠다고 하는 애굽인의 말 한마디에 그를 추종했다. 그리고 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갈 때도 예레미야가 포로로 가라고 말하는데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어 버리리라 하면서 예레미야 앞에서 큰 소리를 치니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러나 하나냐는 7개월 후에 그냥 죽었다. 잠시 뒤를 모르고 해방시켜 주겠다고 하니 열광을 하고 쫓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무조건 고난은 싫다. 얼마나 좋으면 3만 명이나 따랐겠는가! 그러나 해방은 그렇게 총칼로, 돈으로, 권세로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도 죽어짐의 십자가를 길로 놓고 가셔서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지만 우리는 잠잠하지를 못한다. 무언가 날마다 실력행사를 해야 하고 다 죽여야 한다. 회개는 싫고 짠! 하고 총칼로 나의 고난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만을 바란다. 사람이 이렇다. 지금도 삶에서 예배만 드리면 회개 하나도 안 해도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하면 그냥 믿고 싶은 것 같다. 그냥 잘된다는 말 그 자체가 너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로마를 죽이고 로마 편드는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 암살단이 횡횡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그 애굽인 지도자에게 당했지만 아이러니하게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들을 위해 애굽인 지도자들을 제거해주었다. 가장 복음을 반대하는 자가 지금 동족이다. 그런데 이 때 도와주는 자가 로마이다.  그렇지만 후에는 로마가 또 전대미문의 박해를 하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결국 로마에 의해서 순교를 당한다. 그런데 로마에 A.D.313년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나서 중세의 암흑시대로 기독교에 정치가 들어가니 꺼 교황이 정치를 하고 왕들을 파문하고 성직을 매매하면서 가장 박해를 받을 때보다 더 악한 시대를 1000년이 넘도록 살게 하셨다. 이렇게 구속사를 모르니 역사도 모르고 10년 뒤를 몰라서 오늘 내 앞의 유익함과 잘된다고 하는 것 밖에 모르고 따진다.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복음을 한 번이라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 못하는 동족을 향해서 십자가를 길로 놓고 구원을 위해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악한 남편도 상사도 순종을 해야 되고 악법도 법이니까 따르는 것이 가장 애국자이고 가장 현처이고 현부인 것을 믿는가? 때가 되어 구원이 되면 그것이 최고의 애국 애족이고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그 열매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현실적으로 눈앞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변명은 아폴로게오마이’(πολογέομααι)아포+로고스의 합성어이다. ‘아포 ~으로부터, ‘로고스는 말씀이다. 바울과 스테반이 간증을 하는데 자신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스테반으로부터 들었던 구속사의 말씀으로부터 자신을 해명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사건은 말씀으로 증거를 하는 것이다. 사실 바울은 스테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화를 내면서 죽이는데 앞장섰던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면서 제발 말씀으로 변명하고 간증하는, 말씀 듣고 돌이키는 한 사람 나오게 해달라고 성령의 허락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구원이 성령의 허락을 주시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령의 가장 큰 허락의 목적은 말씀을 들어달라고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말씀을 들어달라고, 예배 한 번 오라고, 목장 한 번 오라고, 큐티인 한 번 들어달라고, 말씀 한 번 들어달라고 바울이 이렇게 옥에 갇히고 갖은 애걸복걸을 다하면서 말씀 한 번 들어달라고 허락을 구하는 줄 믿습니다.

 

(적용#3) 틀렸다고 총칼로, 권세로 억지로 허락을 받아내고자 함이 있나?

 

<Epilogue>

 

1)  매사에 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이제 겸손히 허락을 구하게 된다.

2)  우리가 목장에서 물어보는 것이 허락을 구하는 태도이고 목장은 정말 여러 가지고 시금석 같고 너무도 유익한 공동체이다.

3)  목적의 애통함이 있을 때 입을 열어야 할 때와 닫아야 할 때를 구별하는 성숙이 생긴다

4)  구원을 위해서 지금 말해야 한다. 내일은 없다. 구원을 위해 지금이 딱 알맞은 때이다.

5)  억울한 오해를 받으면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일단 부인하기 바쁘다.

6)  부인(denial)과 분노(anger)로 대응을 하면 오해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7)  성경을 원어로 다 읽고 알아도 구속사를 읽지 못하면 무엇이 중요한지 숨결을 느끼기는 어렵다.

8)  십자가로 주시는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지혜가 생기고 가장 좋은 타이밍을 분별할 수 있다.

9)  내 감정, 내 자존심이 제일 중요하니까 오해를 받으면 화부터 내고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도 못하고 오해만 커진다.

10) 말씀에 의거해서 성령의 실상을 깨닫고 그 실상을 증언하고자 하면 딱 맞는 말을 할 수가 있고 오해가 저절로 풀린다.

11) 말을 할 때와 안 할 때를 분별해야 지혜롭고 세련되어진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다 상처를 준다.

12) 성령의 허락은 오해가 풀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기회를 통한 구원이 목적이다.

13) 성령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 공손히 그러나 단호히 부탁해야 될 때가 있다.

14) 구속사를 모르니 역사도 모르고 10년 뒤를 몰라서 오늘 내 앞의 유익함과 잘된다고 하는 것 밖에 모르고 따진다.

15) 때가 되어 구원이 되면 그것이 최고의 애국 애족이고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다.

16) 성령의 가장 큰 허락의 목적은 말씀을 들어달라고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11. 3. 11:38

우리들교회 20211031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20: 1~ 12/ 성령의 안아 주심)

 

 

<사도행전 20:1~12>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When the uproar had ended, Paul sent for the disciples and, after encouraging them, said good-by and set out for Macedonia_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He traveled through that area, speaking many words of encouragement to the people, and finally arrived in Greece,)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where he stayed three months. Because the Jews made a plot against him just as he was about to sail for Syria, he decided to go back through Macedonia)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He was accompanied by Sopater son of Pyrrhus from Berea, Aristarchus and Secundus from Thessalonica, Gaius from Derbe, Timothy also, and Tychicus and Trophimus from the province of Asia)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These men went on ahead and waited for us at Troas)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But we sailed from Philippi after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and five days later joined the others at Troas, where we stayed seven days)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On the first day of the week we came together to break bread. Paul spoke to the people and, because he intended to leave the next day, kept on talking until midnight)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There were many lamps in the upstairs room where we were meeting)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Seated in a window was a young man named Eutychus, who was sinking into a deep sleep as Paul talked on and on. When he was sound asleep, he fell to the ground from the third story and was picked up dead)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Paul went down, threw himself on the young man and put his arms around him. "Don't be alarmed," he said. "He's alive!")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Then he went upstairs again and broke bread and ate. After talking until daylight, he left)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The people took the young man home alive and were greatly comforted)

 

<Prologue>

 

사람이 안아주는 것도? 참 좋은데? 하나님이 안아주시는 거는 얼마나 더 흥분이 되겠습니까?

말씀 묵상을 해도 소동(uproar)과 요란함(noise and loudness)이 있기에 성숙해가는 과정 가운데 해석하는 만큼 안아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 요약>


1.
권면의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1-2)

에베소 연극장 소동을 겪으며 온 도시가 교회의 적이 되어서 군중이 이 세상에서 젤 무섭더라구요. 하나님께서 서기장을 주셔서 진정이 되었지만 심리적으로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 같아요. 언제든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군중이 있고요. 여러분들 가운데서는 진영 논리가 해석이 안 되는 거에요. 바울이 에베소 제자들을 불러 권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헬라어로파라칼레오인데 옆에 외치다 곁에 불러놓고 외치고 부르짖다라는 뜻이다. 부모의 심정으로 끊임없이 내 이름 한 번 불러주고 내 현실을 한 번 들어주고 손 한 번 잡아주는 건데 보혜사 성령님은 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그 안아 주심으로 바울도 제자들을 그렇게 안아 주었지만 바울도 자신도 파라클레토스를 권하러 그랬습니다. 바울은 우리와 다릅니다. 권하고 떠납니다. 바울의 관심은 소동에 있지도 않고 거대한 에베소에 있지도 않고 또 거대한 무리에 있지도 않아요. 제자의 뜻이 자발적으로 묶여 있는 사람을 뜻해요. 바울도 예수님도 보니까 참 죄인들의 무리인 군중에 뭘 집중하겠어요? 항상 소수에 집중을 합니다. 항상 한 사람에게 집중을 했잖아요. 자기가 전도했던 그 데살로니가 교회를 찾아가요. 매맞고 옥에 갇히고 칭찬과 인정이 아니라 모함과 외로움이었어요. 복음 때문에 사회로부터 무시와 경계와 비난의 대상이 된 그곳에 한 마디라도 더 전해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여러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에요. 정말 여러 말로. 전하고 또 전해왔고. 전하여 갈 것이에요. 코갓탤. 최성봉 형제는 참 우리에게 희망의 아이콘이었어요. 1억뷰를 했다고 하잖아요? 잠잠해지니까? 뭔가 콘텐츠가 없어지니까? 불안한 거에요. 그래서 말기 암이라고 거짓에 병원에 누워있고 그에게는 어마어마한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이에요. 누구도 그 형제 옆에서 파라칼레오옆에서 같이 손 잡고 외쳐줄 사람이 없었겠죠. 성도의 삶은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성도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세요. 말씀으로 잘 해석해주면.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잘 해석해주고 말씀에 순종하면 성령의 안아 주심이에요. 부도를 해석해서 통과하는 거에요. 자꾸 뭔가를 극복해 내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에요.

(적용#1)

-지금 예수를 믿는데도 위로 받아야 할 트라우마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힘든 사람 옆에서 파라클레토스를 막 외쳐 주나요? 아니면 보기도 힘든가요?

2.
함께 가는 '우리' 공동체 그 자체입니다. (3-4,5-6, 16:24)

3 4절이에요 설교 다 기억이 나죠? 2차 마게도냐에서 전도했던 그 곳들이죠? 마게도냐 심방을 마치고 2절 끝에 아가야 지역으로 간 바울은 거기서 석 달 동안을 머물렀어요. 고린도 중심으로 머물렀거든요 근데 신약에 한 번만 헬라라고 표현을 했는데 유대인들의 선민의식도 또 대단하잖아요? 헬라라고 일부러 선민의식을 인정해주려고 기막힌 구원의 디테일에 늘 놀랍니다. 헬라의 대단한 가운데서 바울의 피땀 어린 애통으로 세워진 고린도교회인데 그들은 헬라 같으면 안 되잖아요? 고린도교회는 그냥 음란의 아이콘이에요. 남자는 기둥서방, 여자는 창녀라고 관용어가 됐어요. 각종 음란과 근친상간과 소송과 이것 때문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다고 했어요. 자신을 배신한 고린도교회를 보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진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데 19 21절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성령의 경영으로 자신이 꼭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최대의 걸작, 로마서를 이제 쓰게 됩니다. 바울의 그 적용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하나님은 바울도 키워 가시고 메시지도 키워 가지고가 맞습니다. 벧엘교회 첫 주제가 ‘I am frontier’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저를 미국 땅에 던져 놓으셨어요. 미국이란 땅까지 이끄셨는데 말씀대로 최대의 걸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진짜 예루살렘으로 갈려고 해요. 큰 흉년이 있어서 마게도냐에서 모은 배 타고 수리아로 안디옥까지 파송해 준 수리아 안디옥, 예루살렘 절기 지키려 갈려고 했는데 마침 많은 유대인들이 배 타고 가려는 시기인 거에요. 이때에 바울을 배에서 죽이고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는 공모가 있었는데 맞서 싸우지 않아요. 바울의 적은 유대인이 아니에요. 혈과 육이 아니에요. 싸울 필요가 없어요. 바울은 수로를 버리고 육로로 먼 길을 돌아 갑니다. ‘성령이 그에게가 삽입되어 있어요. ‘성령께서 알려주셔서 피하게 해주셨다는 거에요. 이거야말로. 성령께서 파라칼레오한 거에요. 성령께서 또 바울을 파라칼레오해주셔서, 인도해 주셔서 위협을 피하게 해주시는 것이죠. 파라칼레오파라클레토스는 같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효과적인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면 밟혀 죽을 거에요. 나는 죽을 것 같애! 그러면? 옆에서 성령이 도와주셔야 돼요. 성령이 임하셔야 돼요.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대표인 두기고(Tychicus), 드로비모(Trophimus) 등 일곱 명이 왜 지금 바울과 같이 가고 있을까요? 모은 헌금을 바울과 함께 전달하러 가기 위함인데요 이들이 바울과 함께 가는 중요한 이유는 바울의 동행이 되는 거 자체가 이 기록을 읽는 독자인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거에요. 어떤 성공이 기다리는 게 아니고 바울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바울에게는 대적하는 원수가 있어요 바울이 한 번 가서 복음을 전하면 정작 바울 자신의 삶은 천국 가는 그날까지 영육 간의 치열한 전쟁의 연속이에요. 집에서도 박대 받고 배우자도 없고 막 살해의 위협을 겪어야만 하는 거에요. 성령께서 등을 두들겨 주는데 늘 살기 등등하고 혼자인 사람은 이 사명이 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사실 오랜 기간 홀로 지냈어요. 바울이 워낙 사람이 잘났잖아요? 이런 시간이 필요했어요. 때가 돼서 바나바의 권유로 사명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한 사람씩 사명의 지체를 주십니다. 지금까지 섬긴 모든 지역에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지체들을 보내주셨어요. 같은 길을 가게 하셨어요. 바울아, 네가 지금 외롭고 힘든 거 다 안다. 그 증거로 너와 함께 가는 지체들을 보낸다. ‘지체들과 같이 끝까지 길을 가거라는 성령이 주신 징표에요. 여러 사람이 강도의 위협과 육로로 긴 여행을 가는 건 무리였어요. 신뢰가 형성된 지체들을 허락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근데 돈 하나에 돈 때문에 사명에서 멀어지는 것이 비일비재한데 바울은 전 마게도냐에서 모은 큰 돈을 전혀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평생 함께 해 온 부부도 부모 자식도 다 돈 때문에 헤어지는데 어느 누구도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돈이 하나가 되는 게 부부에요. 한 형제 된 지체들끼리 얼마나 큰 신뢰관계와 믿음이 생겼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난 저 사람이 너무 좋아. 저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거든과 같은 것들은 성령의 안아 주심이 되지 못해요. 내 사명이 무엇이고 내 사명의 무거움과 내가 받은 구원의 값을 아는 사람만 돈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서로 믿게 되는 관계, 나를 믿어주고 내가 믿어주는 성령의 안아 주심은 이해타산을 넘는 것인데 본인이 그런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지체가 없는 거에요.
5
6절에 16 24절부터 그들이라는 3인칭 복수로 표현을 하는데요 이 구절에서 다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등장을 합니다. 공모를 받고 다시 마게도냐, 빌립보로 돌아와서 일주일을 보냈죠. 유월절을 빌립보에서 보내고 드로아로 넘어 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 가는 거를 막았어요. 마게도냐 전도가 시작됐잖아요? 첫 성이 빌립보였어요. 이틀 만에 가서 사모드라게, 네압볼리 순풍이 불어서 하나님이 얼마나 급했는지 반대로 닷새가 걸린 거에요. 풍랑이 얼마나 심했는지 몰라요. 바울은 나이로 말하면 팔순 구순 될 만큼 나이도 많고. 일주일을 머물면서 회복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그냥 지나쳐 간 드로아에서 아파서 일주일을 복음을 전하게 하세요. 누가는 바울의 예루살렘 여행을 끝까지 동행한 우리가 되었습니다.
어떤 소동이 와도 말씀으로 하나된 우리 공동체가 있으면 진정할 수 있어요. 왜죠? 나와 같이 죄와 싸우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에 평안이라는 매는 줄로 하나가 되게 하신 우리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목장에서 내 말을 할 수 있고 나와 같은 지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공동체에 붙어만 있는 것은 결국 성령님의 강하고 따뜻한 팔에 꼭 안기는 것입니다.

(적용#2)

-내가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지체가 있나요?

-믿는다면 그 사람이 사명이 있어서 믿습니까? 내 감정으로 좋아서 믿습니까?

-내 감정으로 믿기 때문에 다 당하는 거죠 믿음의 공동체가 있어서 그 자체로 위로가 됨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3.
떨어지는 약함까지도 안아주시는 회복입니다. (7-8,9,10-11,12, 16:6)

육로로 마게도냐(Macedonia)를 돌아서 다시 그쪽에서 드로와(Troas)에 도착한 바울은 지체와 만납니다. 제자들은 바울의 시간에 맞춥니다. 일주일을 기다립니다. 내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 내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던 지체들과 만납니다. 늘 하나님의 시간에 내 시간을 드려야 하는 거에요. 제자들이 다 그런 거에요.
7
8절에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뜯고 으깨뜨려 가지고 고난의 사건을 우리는 성찬식으로 묘사해서 나를 대신해서 주님이 찢음을 당하셨다. 주일예배로 모였다는 첫 기록이에요. 바울이 설교를 했는데요 강론이 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거에요. 고린도교회가 바울을 비난한 것이 말이 너무 졸하다는 거에요. 말을 못 하면 설교라도 짧게 해야 하는데 설교를 길게 하는 거에요. 이곳에 언제 다시 올지 몰라서 없는 시간까지 내서 놀 수가 없어요. 집회 끝나고 나서 목장 특강도 한다고 그러고 어둠이 예배의 지장을 주지 않도록 등불을 많이 켰다고 하는데 너무 산소가 부족하고 열기가 화끈거리고 당연히 예배의 열기도 너무 뜨겁고 공기도 뜨겁고 해서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9
. ‘유두고’(
Eutychus)복되다는 이름의 행운 뜻이에요. 대충 일꾼이나 노예의 이름으로 많은 것이 유두고의 뜻이에요. 드로아 교회는 성도 중에 일꾼들과 노예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예배를 그렇게 세상과 교회 그 경계선상에 걸터앉아서 보는데 우리들교회에 와도 주차장 문턱에 걸터앉다가 떨어질 수 있어요. 예배는 언제나 앞자리에 앉아야 해요. 각자의 아픔과 고난으로 떨어져 다 죽을 삶이에요. 각자 날마다 떨어져 피곤해요. 입시 회사 결혼생활에서도 떨어지고 자기는 예배 드리러 갔는데 날마다 졸아요. 들은 말씀이 하나도 없어서 이렇게 졸고 있다고 그러는데도 지금도 졸아요. 여기 지금 여기도 유두고가 몇 명 있네요. 그러니까 날마다 핑계를 대는 거에요. 당신 나처럼 노동해 봤어? 얼마나 피곤한데. 나는 맨날 떨어진 거 밖에 없어. 졸아도 오길 바래요. 조금 있다가 살려줄 테니까. 왔다는 걸로 점수를 줄 테니까. 나는 피곤하니까. 그래서 예배가 다 중단됐어. 그러니까 떨어지고 여러분이 맨날 노력해도 맨날 떨어지는 게 뭔가요? 예배를 안 드리니까 떨어져. 이게 계속 로테이션 되는 거에요. 그래서 핑계대면서 날마다 중단되는 건 뭐에요? 큐티도 중단되고 예배도 중단되는 것입니다
10
. 11. 옳고 그름으로 율법적으로 생각하면 유두고/가 얼마나 연약해요? 율법적으로 판단만 하니까 결국은
나는 저들과 달라! 이러면서 맨날 거리 두기 해요. 그러니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유두고가 떨어진 그 약함의 자리로 오늘 내려갔다 그랬어요. 내려갔다! 심지어 죽은 몸인데 율법적으로는 포옹을 뜻하는 성경 중에서 가장 강한 단어를 택해서 구속사적인 공감 즉, 성령의 교통을 한 거에요. 원어로 보면 바울 자신이 그 몸을 거기에 떨어뜨렸다는 거에요. 거기에 무언가 생기를 불어넣고 밀어뜨리고 그리고 그 얘기는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묘사한 단어에요. ‘안고는 두 손으로 끌어안아서 붙든다는 의미인데 에스겔에게 머리털과 옷자락을 싸매라고 하는 상징적인 의미인데 바울이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얼마나 꼭 안았는지 그 강도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쓴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말했죠? ‘그의 죄가 나의 죄다나 역시 이렇게 떨어지는 인생이었어요. ‘내가 수 많은 그리스도인을 살인하고 죽인 인생이었어요이 청년에게도 동일하게 허락해주세요! 하나님과의 예배 그 연합을 중단하고 그 미물 만도 못한 이 지렁이 같은 인간을 구원하려고 내려왔어요. 나 혼자 떨어져 죽은 줄 알았는데 우리 예수님이 파라칼레오’, ‘파라클레토스자신의 몸을 찢어 보혈로 우리의 몸을 덮었습니다. ‘유두고가 바로 나은 거에요. 사도 바울이 죽은 시신을 끌어 안고 말합니다. 뭐라고 말했죠? ‘떠들지 말라. 떠들지 말라우린 이 떨어지는 사건 앞에서 다 떠들어요. 누구 탓인가? 누가 떨어뜨렸어? 소란스럽습니다. 나오미에게 사람들은 떠들었어요. ‘아이고 남편 죽고 아들 둘 죽고 꼴 좋다!’ 두 시간 동안을크다 아데미여!’ 죽음 앞에서 어떤 대답도 못하고 떠들어댔어요 그 더러운 시체를 꼭 끌어안았어요. 우리가 다른 사람 시체들을 살리려면 그냥 내려가서 꼭 끌어안아야 하는데 중단되었던 예배의 자리 떡상의 자리 주님의 아들과 딸의 자리까지 올리십니다. 말씀의 강론을 막을 수 없어요!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하게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더러운 십자가를 세상이 하지 못하는 적용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짜 적용이에요. 그 연약함과 아픔과 죄악을 내 강함이 아니라 내 연약함과 아픔과 죄악으로 안아주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안아 주심입니다
12
절에. 이렇게 비천한 인생이었던 유두고의 삶이 다른 사람의 약재료가 되며 다른 사람의 안아 주심이 됩니다. 한 게 아무 것도 없어요. 힘든 몸을 이끌고 예배의 자리로 나온 것뿐이에요. 정말 나는 평생에 노동자로 살았다. 갑자기 전세계에서 적지 않은 위로를 받는 거에요. 적지 않은 적지 않게 위로를 받는 거에요. 힘들게 예배에 나와서 졸은 거 밖에 없는데 여러분들이 목장에 졸아도 돼요. 결석만 하지 말아요. 나오기만 해요. 생명이 실존적으로 가깝지 않기에 우리는 생명보다 돈이 중요하고 명예가 중요하고 권위가 중요하고 내 앞에서 잘해준 의사선생님은 최곤데 주님은 보이지가 않아. 그래서 고맙지가 않아그래서 모든 사람이 고맙지가 않아서 피해의식 속에 불평을 하는 거에요. 이렇게 유두고처럼 피투성이가 되면 이게 마귀가 주는 착각이에요.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된다는 것이 성령의 생각이 구원의 생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던 분들은 그럼에도 지금 마음의 큰 상처를 입고 소동으로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믿음이 흔들려서 큰 회의로 오신 분들도 있을 거에요. 살아만 있으라. 살아내라고. 에스겔 16 6절에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그래서 구원을 누려라!’ 성령의 안아 주심은 피투성이인 여러분을 찾아가서 회복시켜줄 거에요.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어 주세요. 살아 남으셔야 돼요. 결론은 보호자가 자기를 지켜야 된다. 살아남아야 된다. 날마다 이렇게 욕을 먹으면 자괴감이 들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계세요. 살아 남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고난과 사건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고난에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적용#3)


-
살아남아야 되는데. "이제 다 끝났다!"며 떠들고 절망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를 안아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헤아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이라도 성령님의 팔을 붙잡기 위해 내려가 엎드리어 끌어안는 적용 중에 어디까지 되고 안됩니까?


안아 주심은 말씀을 해석하는 것만큼 안아주시는 거에요.



<Epilogue>

 

1)  파라칼레오는 핼라어로 옆에 불러놓고 외치고 부르짖으며 위로하다의 뜻이다

2)  파라클레토스는 핼라어로 보혜사 성령님이란 뜻이다

3)  나를 부르시는 자리에 자발적으로 묶여있는 사람이 제자다

4)  고난과 역경은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통과하는 것이다

5)  고난은 통과하면서 해석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야 한다

6)  불편 불만을 하는 사람 옆에는 군중은 있으나 지체는 없는 법이다

7)  말씀으로 주 품에 안기는 위로를 받아 해석되는 인생이 복 된 인생이다

8)  잘 해석해주고 말씀에 순종하면 성령의 안아 주심이 되는 것이다

9)  부도를 해석해서 통과하는 것인데 자꾸 뭔가를 극복해 내려고 하니까 안 되는 것이다

10) 내 사명이 무엇이고 내 사명의 무거움과 내가 받은 구원의 값을 아는 사람만 돈을 넘어설 수 있다.

11) 복음으로 말미암아 서로 믿게 되는 관계, 나를 믿어주고 내가 믿어주는성령의 안아 주심은 이해타산을 넘는 것인데 본인이 그런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지체가 없는 것이다

12) 난 저 사람이 너무 좋아. 저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거든과 같은 것들은 성령의 안아 주심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13) 어떤 소동이 와도 말씀으로 하나된 우리 공동체가 있으면 진정할 수 있는 이유는 나와 같이 죄와 싸우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에 평안이라는 매는 줄로 하나가 되게 하신 우리이기 때문이다

14) 그래서 목장에서 내 말을 할 수 있고 나와 같은 지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공동체에 붙어만 있는 것은 결국 성령님의 강하고 따뜻한 팔에 꼭 안기는 것이다

15) 나는 저들과 달라!’ 이러면서 맨날 거리 두기를 하니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16) 우리 예수님이파라칼레오’, ‘파라클레토스자신의 몸을 찢어 보혈로 우리의 몸을 덮었다

17) 가장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더러운 십자가를 세상이 하지 못하는 적용을 하셨는데 이것이 진짜 적용이다

18) 연약함과 아픔과 죄악을 내 강함으로가 아니라 내 연약함과 아픔과 죄악으로 안아주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안아 주심이다

19) 생명이 실존적으로 가깝지 않기에 우리는 생명보다 돈이 중요하고 명예가 중요하고 권위가 중요하고 내 앞에서 잘해준 의사선생님은 최곤데 주님은 보이지가 않아. 그래서 고맙지가 않아그래서 모든 사람이 고맙지가 않아서 피해의식 속에 불평을 하는 것이다  

20) 유두고처럼 피투성이가 되면 이게 마귀가 주는 착각이고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된다는 것이 성령의 생각이 구원의 생각이다.

21) 에스겔 16 6절에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그래서 구원을 누려라!’ 성령의 안아 주심은 피투성이인 여러분을 찾아가서 회복시켜줄 것이다

22) 하나님은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고난과 사건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고난에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23) 안아 주심은 말씀을 해석하는 것만큼 안아주시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10. 28. 09:33

[우리들교회 20211024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19: 32~ 41/ 성령의 진정)]

 

 

<사도행전 19:32~41>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The assembly was in confusion: Some were shouting one thing, some another. Most of the people did not even know why they were there)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The Jews pushed Alexander to the front, and some of the crowd shouted instructions to him. He motioned for silence in order to make a defense before the people)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But when they realized he was a Jew, they all shouted in unison for about two hours: "Great is Artemis of the Ephesians!)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The city clerk quieted the crowd and said: "Men of Ephesus, doesn't all the world know that the city of Ephesus is the guardian of the temple of the great Artemis and of her image, which fell from heaven?)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Therefore, since these facts are undeniable, you ought to be quiet and not do anything rash)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You have brought these men here, though they have neither robbed temples nor blasphemed our goddess)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If, then, Demetrius and his fellow craftsmen have a grievance against anybody, the courts are open and there are proconsuls. They can press charges)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If there is anything further you want to bring up, it must be settled in a legal assembly)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As it is, we are in danger of being charged with rioting because of today's events. In that case we would not be able to account for this commotion, since there is no reason for it)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After he had said this, he dismissed the assembly)

 

<Prologue>

 

소동이 정말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소동을 나눈 것 자체가 우리 수준에 맞게 성령께서 소동을 진정시켜 주셔서 진정이 되지 않으셨나요? 나누는 걸로 진정이 되셨죠? 오늘 성령의 진정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1.   무리의 분란 때문에 필요합니다. (32)

 

당시 에베소(Ephesus)의 야외 연극장은 24,000~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장 큰 극장이었어요.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이 대소사를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로 쓰였습니다. 데메드리오(Demetrius)의 선동을 듣고 바울을 따르는 세력에게 에베소의 우상 아데미(Artems)i가 무시당했다고 여긴 시민들이 분노하여 바울의 동료 가이오와 아르시다고를 붙잡아 처벌하고자 연극장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성경이 참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연설로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하며 모인 이유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극장에 모인 무리를 원어를 보면 에클레시아라고 불러요. 원래 이 단어는 특정 목적으로 모인 군중을 가리킵니다. 특히 나랏일을 시민들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모인 민회를 가리켰어요. 그런데 신약에서 교회를 표현할 때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예외로 에클레시아의 원래 뜻이 시민의 무리, 군중으로 쓰였습니다.

 

근데 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화합과 일치가 교회의 중요한 특징인데 이 화려한 에베소 극장에 모인 사람에게는 화합과 일치가 없습니다. ‘에클레시아인 교회같이 모였지만 군중은 하나가 되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당시 연극 장은 연극 공연뿐만 아니라 연설이나 강연회도 열렸죠. 그런데 오늘 31절에 연극 장에 모였다고 그랬어요. 참 인생은 연극 같지 않습니까? 맡겨진 역할을 하면서 살겠죠? 누구는 생업을 위해 시간을 쓰다가 가겠죠? 모두 남의 인생을 살다가 막이 내리면 허무하게 끝이 나는 것이죠.

 

지난 주에 쇼팽 국제 콩쿠르가 있었어요. 전 세계에서 500명이 지원하고 한국참가자가 결선에 올라간 12명 중에 들어갔어요. 근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연주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인생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붙어도 떨어져도 허무할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이 끝날 때까지도 가짜를 살았다면 결론도 없이 막이 내릴 것입니다.

 

믿음 없이 공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건 연극 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최고가 되면 공인인 거예요. 최고가 될 이유가 결국은 거기 끝에도 돈이 있지 않겠어요? 결국 누려야하겠다는 생각이 왜 안들겠어요? 잠깐인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있으면 있어서 없으면 없어서 죽어라 하고 자기 필요를 외칩니다.

 

그래서 에베소 군중의 특징은 한마디로 분란입니다. 서로 다른 여러 소리가 마구 섞여서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는 어지러운 소동을 말합니다. 바벨탑의 혼란과 분란이죠. 아무리 좋은 장소에 품격 있는 이름으로 모여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으면 분란만 일어납니다. 결국 자기가 왜 모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성경적인 가치관이 없으면 또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자기 소견이라는 것이 100% 죄인인 인간이 어찌 선한 것이 있겠어요? 죄의 바로미터가 바로 자기 소견인 거예요 그러니 어디나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 이예요.

 

바울은 청년 시절에 자기 옳은 소견대로 그리스도인들을 진멸했어요. 그게 자기 소견 이잖아요.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안 뒤에는 모든 것이 배설물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만난 바울과 에베소 성도들은 달라졌죠. 에베소에서 하나님 나라의 증인 된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죠? 연극배우가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고난을 당해도 내가 왜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하여 걸어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증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연극무대를 떠들며 외치다가 그렇게 속절없이 이 땅에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하며 막이 내릴 것입니다. 바울은 군중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니 한 사람, 두 사람이 하나님 나라로 입성합니다. 이 많은 가운데 이 소수의 사람이 바울을 돕고 일꾼이 되어 결국 2,000년 동안 이렇게 인류를 변화시킵니다. 내가 한 사람 오늘 전하는 그 사람이 인류를 변화시킬 사람 이예요.

 

 

(적용#1)

 

– 여러분은 연극무대에서 막이 내려도 갈 곳이 없는 가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갈 곳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까? 어떻게 막이 내리나요?  

 

 

2.   군중 심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33~34)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무리 중에 ‘아데미를 모욕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이다.’ 지적하는 소리가 있었어요. 그러니 위협을 느꼈겠죠? 몇 해 전 로마에서 쫓겨난 일이 반복될까 봐 두려웠을 것 이예요. 에베소인들은 유대교나 기독교나 똑같이 봐요. 유대교 분파로 나온 마이너 종교로 보는 거 예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유대인과 기독교인들과 다르다고 알리려 했어요. 그래서 자기 중에 말 잘하는 대표 알렉산더를 앞에 세워 변명을 하려 합니다.

 

그런데 아데미 여신과 우상에 대하여는 유대교도 같은 의견을 가져야 하는데 자기네 믿는 종교가 여호와 유일신인데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바울과 일행을 다른 부류로 취급하려는 태도는 비겁하고 기회주의 아닙니까? 그런데 에베소 군중은 알렉산더의 말을 들으려고도 안했어요. 오히려 알렉산더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자 마자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외칩니다. 무려 2시간이나 외칩니다.

 

그러니까 에베소 군중이나 그 안에서 유대인 군중이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니까 똑같이 미움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해요. 유대인 군중은 동족인 바울을 미워하고, 에베소 시민은 두려워합니다. 에베소 군중은 유대인을 미워하고 아데미는 두려워합니다.

 

거기 모인 개인들은 생각, 태도, 이권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소리를 내는데, 군중으로 모여 하나가 되니까 각자 고유한 판단이 마비되고 알 수 없는 군중의 기운에 휩쓸려 누구를 죽이려 하고 누구를 무조건 위하는 맹목적인 호흡으로만 표출합니다. 그래서 이유없이 미워하고 이유없이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입니다.

 

군중의 태도나 감정, 판단이 잘못되기가 너무 쉽습니다. 개인보다 군중이 훨씬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죠. 잘못된 일이라도 잘했다고 우기고,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하면 대중은 결국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이 오래가질 않아요. 잠깐 지나서 새로운 자극이 생기면 금새 옮겨갑니다.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 사람의 모임인 군중은 그보다 훨씬 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떤 무리 든 요란과 분란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딪힙니다. 하나님 없이 죄인들만 모이니 분란으로 끝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늘 네 편 내편 갈라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 군중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진정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진정시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개인이든 무리 든 이 분란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나는 또 우리 군중은 분란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내 인생이 분란으로 끝날 뻔한 인생 임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여친, 남친의 말을 듣고 결혼했다가 분란이 생기면 다 죽으려고 해요. 한마디에 다 이혼을 하고, 그래서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하는 것 이예요

 

우리는 서로 믿고 한 것이 아니라 찌질한 것 다 드러내고 하나님을 믿고 결혼했기에 사람이 아니라 벌레라는 다윗의 고백이 믿어지죠. 그래서 결혼 이후에 어떤 상황에도 놀라지 않고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혼을 할 수 없는 것 이예요. 이게 주 안에서 내가 벌레라는 것을 아니까.

 

지금 여러분 인생에 분란이 생겼다면 이것은 성령께서 ‘내가 여기 있다. 나를 찾아라. 의지해라!’ 여러분을 부르시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해요. 분란은 성령의 진정이 있다는 사인 이예요. 주님 없이는 영원한 분란 중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내 실체를 인정하고 늘 성령의 진정을 바라고 기대해야 합니다.

 

이 시대를 가리켜 민주주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이 시대에 절대적인 원칙이나 진리는 다수의 여론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결정하는 것이 보통 이예요 그러나 다수결이 항상 맞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공산주의, 민주주의, 하나님 없으면 다 똑같아요. 그래서 경계해야 합니다.

 

(적용#2)

 

– 지금 내가 외치는 소리가 군중 심리에 현혹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군중 심리에 현혹되어 지금 외치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지역 감정, 진영 논리, 주식, 입시, 경제 등 한 마디만 하면 못 들어주는 말이 있나요?

 

 

3.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35~41)

 

2시간이 넘게 지속되자 민회를 책임지는 서기장이 나서서 모인 무리를 진정 시킵니다. ‘진정 시키다’의 헬라어 단어는 제자리를 떠나 무질서하게 마구 튀어 오르는 것을 잡아서 다시 잘 넣어둔다는 뜻인데요. 잃어버린 질서를 회복시킨다는 뜻이 담겨 있어요.

 

36절에 가만히 있어서도진정이 되어서라는 말 이예요. 그러니까 진정은 질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금 얘기하는 것 이예요. 우리가 역할, 질서, 이게 소동을 막는 제일 큰 비결인 것 이예요. 당시 로마 민회 같은 지방 민주주의 요소를 줄이고 황제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을 썼기에 이 민회가 일으키는 소란을 가만 놔둘 리 없죠. 따라서 시 정부와 로마 정부 사이를 오가는 서기장은 자기 모든 것을 걸고 연극 장에 모인 무리를 진정시켜야만 했습니다. 연극 장을 혼란으로 빠뜨렸던 무리의 외침이 서기장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수그러들었어요.

 

서기장이 시민들에게 한 연설 내용은 크게 둘인데요. 첫째는 에베소 시민들이 아데미(Artemis)의 신전지기(guardian of the temple)라는 것을 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예요. 너희들이 말하지 않아도 이거는 함경북도 ~ 제주도까지 다 안다, 그러니까 지금 아데미를 높이는 것 이예요. 그러니까 좀 진정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

 

둘째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대표하는 사람들 즉, 두란노 서원에 날마다 모이는 사람들을 향해 시민들이 흥분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데, 이 팩트 체크에 들어가니까 신전이나 아데미 여신에 대해서 그들이 직접적으로 저지른 잘못이 없다는 것 이예요. 거기는 아데미한테 바치는 보물이 많아서 도둑들이 말도 못하게 많았어요. 워낙 들어오는 것이 많으니까, 그런데 그들이 도둑질도 안 했고 그들 때문에 온 도시가 분란을 일으킬 게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고린도에서 갈리오 총독이 바울을 잡아넣었을 때, 바울에게 부정한 일, 불량한 행동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이렇게 거짓말 하고, 도적질을 하면 안되는 거예요. 복음을 전한다는 이런 미명의 그런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어요.

 

근데 바울과 일행은 그런 일을 행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갈리오도 바울에게 무죄판결을 줬는데 데메드리오(Demetrius)가 대표하는 직공 조합이 피해 보상을 청구하려면 정식으로 민회의 고발 절차를 밟으라는 권고 이고요. 무리의 민회가 행정적인 시의회의 안건으로 등록하라는 것 이예요

 

당시 로마 제국은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시의회를 소집할 권리와 자유를 주었어요. 근데 이러한 배려에도 불법적인 집회를 가질 경우 처벌이 아주 엄격했어요. 그런데 서기장은 이 모임을 소요 사건이자 불법 집회라고 규정 했잖아요. 그리고 이 모임은 흩어져야 할 모임이라고 정의 내렸어요. 교회도 이 불법적으로 하지 말고 소동이 나도 성령의 소동이 되며 성령의 진정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해야하는데 우리가 이제 말씀이 왕 노릇을 못하면 교회도 자기 소견이 옳으니까 불법적으로 행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써서 암시했다고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진정한 에클레이시아는 화합과 일치가 있어야 하는데, 옳다고 하니까. 인권이 왕 노릇하면 다 맞는 얘기 잖아요? 그러니까 구속, 구원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날마다 싸울 일 밖에 없어요. 구원의 관점이 아니면 자기 의견이 옳잖아요? 내가 너무 의롭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화합과 일치인데요. 우리는 서기장이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점은 그가 연극 장에서 일어난 분란을 진정시켰다는 거예요.

 

잠언 16 4절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그냥 쓰임 받았어요. 바벨론 포로를 풀어준 바사의 고레스 왕처럼. 그러니까 이 세팅은 여호와께서 이걸 지으셨다고 그랬으니까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하나님의 섭리인 거죠.

 

선동 당한 군중 심리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도 사회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고, 현재 진행형 이잖아요. 정말 선동 당한 군중을 막는 일은 불가능해요. 그런데 보세요. 데메드리오는 선동만 해놓고 사라졌어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습니다. 이게 선동 꾼의 실체 예요. 교묘한 말로 무리를 선동해서 큰 분란만 일으켜 놓고 책임 소재가 생긴다 싶으면 자취를 감춥니다.

 

선동 꾼은 절대 자기 말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으면 안돼요. 남은 것은 선동된 무리인데 이들은 잠시 뒤의 일을 모르고 지금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아요. 알렉산더가 나서려고 했는데 알렉산더 정도로 절대 제압할 수 없어요. 그런데 민회의 책임자의 서기장의 말은 아무리 성난 군중이라도 끝까지 무시할 수 없어요. 서기장은 로마 정부의 권세를 대표 하잖아요. 그러니까 소동하는 것 같아도 뒤에는 다 이해타산이 있어요.

 

데메드리오도 완전히 노동자를 대표해서 은세공업자로 얘기를 하니까 이 사람들이 이해타산 때문에 다 부화뇌동 했는데 그 다음에는 막을 사람이 로마 대표, 그 사람은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하냐구요? 두 사람도 필요 없어요. 두려움 때문이지만 무리가 서기장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소동이 진정되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자기 목소리만 외치는 것이 소동이라면 외침을 멈추고 다른 사람 말을 듣는 것이 진정입니다. 소동을 하는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아요. 일단은 들으려고 하는 우리가 목장에서 듣는 훈련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듣는 거예요.

 

세상의 권세가 두려워 세상의 말을 들으면 세상의 진정으로 끝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성령의 진정이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큐티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우리가 매일 소동할 사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건이 없어도 우리 마음 자체가 늘 죄의 파동으로 소동을 일으키기에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습니다. 이 소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사람, , 담배, , 권력을 찾고 무엇이든 진정 시켜줄 것 같은 것을 찾아 늘 헤매고 방황하는 것이 하나님 떠난 인생의 모습 이예요.

 

그런데 그것을 찾는 과정이 얼마나 소동을 일으킵니까? 성령의 진정을 위해서 찾아가는 과정이 또 소동 이예요. 여러분들이 뭔가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움켜쥐었을 때, 그것들이 일으키는 소동은 또 얼마나 큽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내 실체가 보이고 내 죄가 드러나고 회개가 되고 그렇게 주님을 만납니다. 해석 없이 해결만 찾아 소동하던 마음이 드디어 말씀으로 해석되어 진정됩니다. 문제가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진정한 성령의 진정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인본적인 고정관념으로는 소동이 너무 싫고 진정이 너무 좋아요. 그러나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고요. 소동이 있어야 내 실체를 감추고 있던 포장이 벗겨져서 나를 볼 수 있게 돼요. 회개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진정이 되었다고 마냥 좋아서 안주해서는 안되고요. 다시 생기는 소동을 있어야 할 일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진정인 것 이예요.

 

바울을 보면 소동은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있어야 정상 이예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소동이 없다는 건은 내가 죽었다는 뜻 이예요.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고 소동도 진정도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과 거룩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동을 소동으로 여겨야 하는데 소동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됐어, 뭐 다 되겠지 뭐’ 소동을 소동으로 여겨야 해요. 그러면 진정도 성령의 진정이 되지 않아요. 소동이 진정되지 않는 것은 듣고 싶은 얘기만 듣기 때문 이예요. 이러니 대단한 소동이 왔는데도 이걸로 주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하는 거예요. 진짜 목장에서 이런 얘기를 잘 들으셔야 해요.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시면 안되요.

 

서기관은 해산 시키는 것 그것까지 한계 예요. 하지만 성령의 진정은 소동을 잠재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낳는 것이 목적인 것 이예요.

 

(적용#3)

 

– 소동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원칙을 지키라는 말이 얼마나 이해되십니까?

-여러분은 원칙을 지키십니까? 지금 흩어져야 할 모임에 있는 모임은 무엇입니까?

 

 

우리 수준에 맞게 소동이 일어나고 진정시켜 주신다.



 

<Epilogue>

 

1)  믿음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연극이다

2)  믿음 없이 살아가면 속절없이 슬픈 유언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3)  예베소 군중의 특징은 분란이다

4)  아무리 화려한 인생이라도 중심에 하나님이 없으면 분란이 일어난다

5)  죄의 바로미터가 자기 소견이니까 분란이 그칠 날이 없는 것이다

6)  하나님 없이 죄인들만 모이니 불란만 일어나는 것이다

7)  죄의 파동으로 소동이 일어난다

8)  말씀이 들리면 죄의 실체가 드러나고 분란이 진정된다

9)  말씀이 해석이 되어야 소동이 해결된다

10) 화합과 일치가 교회의 중요한 특징이다 

11) 모두 남의 인생을 살다가 막이 내리면 허무하게 끝이 나는 것이다

1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연주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인생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붙어도 떨어져도 허무할 것이다.

13) 이처럼 인생이 끝날 때까지도 가짜를 살았다면 결론도 없이 막이 내릴 것이다.

14) 믿음 없이 공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연극이다

15) 잠깐인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있으면 있어서, 없으면 없어서 죽어라 하고 자기 필요를 외치게 된다.

16) 아무리 좋은 장소에 품격 있는 이름으로 모여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으면 분란만 일어난다.

17) 교회를 다녀도 성경적인 가치관이 없으면 또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

18) 자기 소견이라는 것이 100% 죄인인 인간이 어찌 선한 것이 있겠나?

19) 죄의 바로미터가 바로 자기 소견인 것이므로 어디서나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20) 그리스도를 안 뒤에는 모든 것이 배설물이라고 한다

21)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연극무대를 떠들며 외치다가 그렇게 속절없이 이 땅에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하며 막이 내릴 것이다.

22)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니까 똑같이 미움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23) 군중으로 모여 하나가 되니까 각자 고유한 판단이 마비되고 알 수 없는 군중의 기운에 휩쓸려 누구를 죽이려 하고 누구를 무조건 위하는 맹목적인 호흡으로만 표출하게 된다

24) 그래서 이유없이 미워하고 이유없이 두려워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다.

25) 군중의 태도나 감정, 판단이 잘못되기가 너무 쉬워서 개인보다 군중이 훨씬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

26) 잘못된 일이라도 잘했다고 우기고,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하면 대중은 결국 믿게 된다는 것이다

27) 하지만 이 믿음이 오래가질 않는다. 잠깐 지나서 새로운 자극이 생기면 금새 옮겨가는 것이다.

28)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 사람의 모임인 군중은 그보다 훨씬 더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29) 어떤 무리 든 요란과 분란이 있으며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딪히게 된다.

30) 하나님 없이 죄인들만 모이니 분란으로 끝나는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늘 네 편 내편 갈라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 군중이다.

31) 성령께서 진정시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개인이든 무리 든 이 분란을 피할 길이 없다.

32) 이것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이며 군중은 분란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33) 하나님을 믿어야 내 인생이 분란으로 끝날 뻔한 인생 임을 인정할 수 있다.

34) 여친, 남친의 말을 듣고 결혼했다가 분란이 생기면 다 죽으려고 하고 말 한마디에 다 이혼을 하는 것이라서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다

35) 우리는 서로 믿고 한 것이 아니라 찌질한 것 다 드러내고 하나님을 믿고 결혼했기에 사람이 아니라 벌레라는 다윗의 고백이 믿어지게 되니까 결혼 이후에 어떤 상황에도 놀라지 않고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것이고 그래서 이혼을 할 수 없는 것은 주 안에서 내가 벌레라는 것을 아니까 그렇다

36) 여러분 인생에 분란이 생겼다면 이것은 성령께서 ‘내가 여기 있다. 나를 찾아라. 의지해라!’ 여러분을 부르시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37) 분란은 성령의 진정이 있다는 사인이며 주님 없이는 영원한 분란 중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내 실체를 인정하고 늘 성령의 진정을 바라고 기대해야 한다.

38) 역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소동을 막는 제일 큰 비결인 것이다 

39) 구속, 구원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날마다 싸울 일 밖에 없다

40) 구원의 관점이 아니면 자기 의견이 옳고 너무 의롭다 

41) 세상의 권세가 두려워 세상의 말을 들으면 세상의 진정으로 끝날 뿐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성령의 진정이 되는 것이다.

42) 사건이 없어도 우리 마음 자체가 늘 죄의 파동으로 소동을 일으키기에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다

43) 이 소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사람, , 담배, , 권력을 찾고 무엇이든 진정 시켜줄 것 같은 것을 찾아 늘 헤매고 방황하는 것이 하나님 떠난 인생의 모습인 것이다

44)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내 실체가 보이고 내 죄가 드러나고 회개가 되고 그렇게 주님을 만나게 된다.

45) 해석 없이 해결만 찾아 소동하던 마음이 드디어 말씀으로 해석되어 진정되는 것인데 문제가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진정한 성령의 진정이 일어난다

46) 다시 생기는 소동을 있어야 할 일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진정인 것이다

47) 우리 수준에 맞게 소동이 일어나고 진정시켜 주신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10. 22. 13:56

[우리들교회 20211017일 주일예배말씀 요약(사도행전19: 21~ 31/ 성령의 소동)]

 

 

<사도행전 19: 21~32>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After all this had happened, Paul decided to go to Jerusalem, passing through Macedonia and Achaia. "After I have been there," he said, "I must visit Rome also)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He sent two of his helpers, Timothy and Erastus, to Macedonia, while he stayed in the province of Asia a little longer)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About that time there arose a great disturbance about the Way)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silversmith)이 은으로 아데미(Artemis)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A silversmith named Demetrius, who made silver shrines of Artemis, brought in no little business for the craftsmen)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He called them together, along with the workmen in related trades, and said: "Men, you know we receive a good income from this business)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And you see and hear how this fellow Paul has convinced and led astray large numbers of people here in Ephesus and in practically the whole province of Asia. He says that man-made gods are no gods at all)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There is danger not only that our trade will lose its good name, but also that the temple of the great goddess Artemis will be discredited, and the goddess herself, who is worshiped throughout the province of Asia and the world, will be robbed of her divine majesty)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furious and began shouting: "Great is Artemis of the Ephesians!)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Soon the whole city was in an uproar. The people seized Gaius and Aristarchus, Paul's traveling companions from Macedonia, and rushed as one man into the theater)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Paul wanted to appear before the crowd, but the disciples would not let him)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Even some of the officials of the province, friends of Paul, sent him a message begging him not to venture into the theater)


<Prologue>

 

성령의 경영은 성령의 소동이 따라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주 서부집회를 잘 마치고 돌아왔어요.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요새 뉴스를 보면. 참 마음을 소동하게 하는 정말 소동의 시절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소동도 성령의 소동이 되는 줄을 믿습니다.

 

<말씀 요약>

 

1.   세상 소동으로 시작합니다.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이 일이 있은 후에는, 계속된 양육 후에 회심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깨끗한 곳에 더 상황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불태워진 그곳에 사명이 채워져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작정하여 후에 로마도 보아야하리라에서 작정은 내게 주신 사명입니다. 성령이 어떻게 사명을 주시나? 매일 주시는 말씀 안에서 받은 사명이 성령의 사명입니다. 진리의 성령이기에. 성령의 작정하심이 있으면 소동이 일어납니다. 잘 믿으면 소동이 일어납니다. 로마는 우리 백성들을 사자 밥이 되게 하고 핍박하여 죽였고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하게 했습니다. 이해가 안됩니다. 성령의 세력을 보았고 사명이 선포 된 그때 이 세대의 대적으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사단이 소동을 일으킵니다. 소동을 일으켜 대적하는 자도 함께 옵니다. 그때는 생명이 태동하여 자라고 사명감당하기에 소동이 옵니다. 예수님 태어나실 때. 점과 같이 낮아져서 오셨는데 세상이 소동을 했습니다. 헤롯 왕이 갓난아이를 죽였죠. 우리에게 소동은 생명이 일어나는 소동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소동이 생명에 깃들여 있습니다.

나누고 가는 집안은 망하지 않습니다.



(적용#1)

 

-여러분은 어떤 소동 가운데 있습니까? 사명 때문에 온 소동입니까? 욕심 때문에 온 소동입니까?



2.   세상 소동의 근원을 드러냅니다.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1절에 이 일후에23절에 그때쯤에 이 도는 너의 일을 말합니다. ‘the Way’ 매년 5월이 되면 큰 예배 축제가 열립니다.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신격화 했습니다. 7대 불가사이 중 하나로 전 세계가 모여 축제를 엽니다. 아데미 신상 앞에서 부적처럼 예배를 드립니다. 여행과 전쟁 때에도 예배를 드려야 하니까 여권갱신처럼 신상도 갱신합니다. 그래서 매년 에베소로 돈이 많이 들어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이니 금융의 중심이 되며 음란한 문화가 되며 타락한 도시가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난 도시가 됩니다. 물이 좋아서 물만으로 씻어도 화장품이 필요가 없습니다. 일류의 메카, 은 세공업자, 회장같은 사람이 세상의 도(way)의 대표자로 나옵니다. 소동은 주동자가 반드시 있습니다. 기득권층이 있었겠죠. 우상 만들어 살면서 풍족한 생활해왔다가 수입이 줄어들길래 보니까 바울이 강론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생업을 위해 기도하는데 풍족한 생활을 꿈꾸며 중요한 가치를 외치는 것이라며 데메드리오가 말하는 것입니다. 가업을 이었을 뿐인데 근면, 성실, 부지런함은 좋지만 그것들을 해도 결국 죄인으로 그것에 가려진 실체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죄인보다 더 큰 죄인입니다. 칭찬과 인정으로 더 두껍게 덮어줘서 볼 수 없게 합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신상을 만드는데 신과 사람을 위해 하는 열심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뭐니, 뭐니해도 머니인데요. 나도 남도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감춰진 돈 우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으로 섬길 만큼 돈을 벌었는데 벌이가 적어지자 소동이 일어났고 사람들끼리 모여서 소동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성령의 소동으로 구원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하는 진지한 사건입니다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좋아하는 사람의 위엄이 떨어진다 말합니다. 큰 사람은 아데미라고 말합니다. 소동의 근본적인 것은 무시입니다. 원인을 설명하는데 감동스럽게 보이기까지 하고 나라와 공정을 위해 데메드리오가 말한다. 내 체면이 상했고 무시 받았다고 하는데 그 끝에 돈이 있는 것인데도 돈 때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종교적 가치 때문이라고 하고 욕심 때문이 아니라 공의 때문이라며 포장을 합니다. 아데미의 위엄이 훼손될 것 때문이라고 포장합니다. 이 소동에는 주동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주동자가 없으면 소동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적도 한 사람이 중요한 것으로 선동의 말이 크게 들립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어야 하는데 세상과 돈이 똬리를 틀고 있으니까. ‘오징어 게임때문에 난리가 났어요. 게임의 내용이 잔인한데 빚을 지고 벼랑 끝에 있어서 참여합니다. 민주주의라고 강조하지만 참여자들을 나가지 못하게 이기고 이기려는 근성을 건드립니다. 이 죄 성에 공감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공감해서 마음을 빼앗겨 예수의 도를 향해 분기탱천합니다. ‘거룩이 아니고 행복이야! ‘라며 구별할 수 없는 혼란을 뜻합니다. 인간이 해보겠다고 바벨탑을 쌓는데 거기에 있는 혼잡과 같은 혼잡이 여기서도 일어납니다. 스데반 사건 때도 그랬습니다. 일제히 달려드는 것입니다. 복음과 십자가와 부활이 싫으니까. 인정과 돈이 더 좋은 것입니다. 예수의 도를 반대하기 위해 소동을 일으키는데 그것은 한 마음이 아니라 요동입니다. 세상의 말을 들으면 분노와 요동으로 끝납니다. 다 무시당하면 이혼으로 끝납니다. 목장의 말을 듣는 것은 세계적 대안 맞습니다. 목자가 형편 없어도 목자에 가는 사람은 삽니다. 하나님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샀기에 그렇습니다.




(적용#2)

 

-나는 어떨 때 무시 받았다고 생각이 드나요? 소동의 근원이 돈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가족이나 지체에게 분함이나 야망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여 부추기는 일은 무엇입니까?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소동을 일으키고 목장에서 나눔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상한 곳에서 소동을 일으킵니다. 인간은 죄인이다. 이것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싸움의 끝은 돈이 있습니다.  




3.   내가 죽는 것입니다.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같이 다닌 사람은 주의 도에 동참하여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를 말합니다. 수행하던 제자일 듯 합니다. 인민 재판을 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그때 백성들에게 들어가려고 합니다. 말씀 공동체에 있으면 잡혀가도 구하러 들어가도 축복입니다. 다 응답인 것입니다. 공감해주는 지체가 있기에 세상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철저히 기복이라서 목장을 격하시킵니다. 바울은 힘든 길을 갑니다. 모두 바울을 대적합니다. 이방인에게도 박해를 받습니다. 끝까지 갈 수 업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분쟁이 일어날 때 똑같이 하면 되지 않으니 소동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로마로 갈 수 없어서 기다립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성전에서 물건 파는 것도 뭐라하셨지만 소동을 일으키기보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침묵해야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침묵의 때인 것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한 자기 우상을 섬깁니다. 끝에는 돈 우상이 있습니다. 부들부들. 약육강식이죠. 결혼해도 남편이 무시되어서 무시하면 주먹이 날아오고 재판을 합니다. 이혼하죠. 남자는 체면이 상하면 무너집니다. 목자님이 힘들어하는 것이 목장 하면서 권찰한테서 무시 받는 것이라 합니다. 권찰이 내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생색내지 마세요. 큐티를 한 것은 남편입니다. 남편이 소동할 때는 밥 잘 챙겨주세요. 그러면 인정받아서 좋아합니다. 아내는 사랑의 언어로 감정을 공감해줘야 합니다. 남자는 선물하며 소동을 잠재우려고하죠. 믿음의 아내의 소망은 묵상으로 소동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결혼하더라도 믿음 없는 아내와 남편이랑은 당할 일밖에 없습니다.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외모보고 결혼하면 석달갑니다. 예수님이 태어날때 모든 유아들이 죽는 소동. 바라바를 놓고 예수를 죽이라 합니다. 우리는 그냥 상대 입장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동은 내가 십자가 지기 싫어서 일어납니다.  언제 십자가에 달릴까? 재력과 권세가 있으면 이 세상 사람 다 죽여서라도 이기려고 합니다. 결국 말씀 묵상하며 내 죄를 보는 것이 소동을 죽이는 것입니다. 마술사도 아내도 남편도 아닌 십자가를 거스르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내 속에 소동이 일어납니다. ‘잘못은 저 인간이 했는데 내가 왜 죽어?’ ‘왜 내가 손해를 봐야 돼? 소동은 맞서도 안되고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멈출 수가 없는데 자기 생각을 꺾고 제자들의 말을 들으려고 기다립니다. 내 생각을 꺾는 것이 십자가에서 죽어지는 것이고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상입니다. 예수와 함께 부활할 것을 알기에 죽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죽음으로 생명이 탄생됩니다




(적용#3)

 

-그래서 이 소동 속에 내 자아가 펄펄 살아있는 이 소동의 정체를 아셨어요? 누구 탓도 아니에요! 내가 죽어지지 않아서 그래. 그러면 죽어질 수 있겠습니까?



목장에서 나누고 가니까 다른 사람들을 살리게 되는 약재료가 됩니다.

무시 한번 당했다고 이혼하고, 나라가 있어야 살 수 있는데. 자기 명분에 겨워서 소동을 일으킵니다.

판사가 재판까지 가지 말고 빨리 끝내서 위자료라도 아끼라고 말합니다

동성애자, 젠더, 차별금지법이 통과가 됐는데 예수를 주장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차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구 절벽 시대인데 이렇게 동성애를 합법화하면 어떻게 합니까?

한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나라를 살리는 한 사람

이혼을 안하겠다는데 가정 문화가 다르니까. 싫다니까 이혼을 하라고 합니다. 기각 만 하면 살 텐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당면한 문제이기에 우리들 청년들이 얼마나 귀한 지 모릅니다.

우리들교회를 지켜주시고 있지만 한 발자국만 나가면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진영 논리, 지역감정이 앞서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가 여러분들 손에 달려있는데 혼자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Epilogue>

 

1)  성령의 소동은 세상의 소동으로 시작이 된다.

2)  세상에서 시작되면 복음을 전하는 광대한 문이 열렸고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을 알아야한다.

3)  소동의 근원을 알아서 내 끝에는 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4)  돈 욕심 내려놓으면 되는데 상대방에게 손가락질만 한다.

5)  별 인생이 없는데 내 안에 예수 밖에 없다고 찬양하고 기도해야 한다.

6)  마술 책이 불태워진 곳을 사명으로 채워야 한다

7)  살기 좋으면 타락하게 된다

8)  포장 전략이 세상 경영의 특기다

9)  이권 공유와 공감이 인기의 비결이다 (오징어 게임)

10) 세상을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11) 이세상은 인정과 돈이 좋은 것이다

12) 소동과 요란, 분란과 소요는 모두 이 세상의 말을 들은 결과다

13) 이 세상의 말을 들으면 모두 분노와 요란으로 끝난다

14) 무시한다고 소동을 일으키고 체면 때문에 나누지 못한다

15) 늘 나 때문에 놀라고 우는 것이다

16) 말씀 듣는 지체들 옆에 붙어 있는 것이 세상 소동에 떠내려가지 않는 비결이다

17) 모든 길 끝에 돈이 있으니 부들부들 떠는 것이다

18) 무시 받고 체면 상한 거시 분노의 이유인 것이다

19) 인정 받게 해 주면 모든 소동이 잠재워 진다

20) 내가 죽기 싫어서 내 속의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21) 내가 죽는 것이 소동 속에 생명 탄생의 비결이다

22)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할 수 있기에 내가 죽는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23) 내가 죽어지면 싸움과 소동이 끝나는 것이다

24) 한 사람이 죽기로 결정하면 소동이 잠잠해 진다

25) 내사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어야 한다

26) 내가 존을 좋아하니 소동이 끝나지 않는 것이다

27)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내 죄 못보고 죽지 않으면 소동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28) 계속된 양육 후에 회심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깨끗한 곳에 더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

29) 매일 주시는 말씀 안에서 받은 사명이 성령의 사명이다.

30) 진리의 성령이기에 성령의 작정하심이 있으면 소동이 일어나는데 잘 믿으면 소동이 일어난다

31) 상상할 수 없는 소동이 생명에 깃들여 있다.

32) 나누고 가는 집안은 망하지 않는다.

33)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어야 하는데 세상과 돈이 똬리를 틀고 있으니까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34) 복음과 십자가와 부활이 싫으니까 인정과 돈이 더 좋은 것이다.

35) 세상의 말을 들으면 분노와 요동으로 끝난다.

36) 다 무시당하면 이혼으로 끝나게 되며 목장의 말을 듣는 것은 세계적 대안 맞다.

37) 목자가 형편 없어도 목자에 가는 사람이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샀기에 그렇다.

38)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소동을 일으키고 목장에서 나눔도 못한다.

39) 그러니까 이상한 곳에서 소동을 일으키게 된다

40) 인간은 죄인이다로부터 시작해야한다.

41) 싸움의 끝에는 돈이 있다.  

42) 말씀 공동체에 있으면 잡혀가도 구하러 들어가도 축복이며 다 응답인 것이다.

43) 공감해주는 지체가 있기에 세상에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며 반면 철저히 기복이라서 목장을 격하시킨다.

44) 사람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한 자기 우상을 섬기게 된다.

45) 그 끝에는 돈 우상이 있다.

46) 아내는 사랑의 언어로 감정을 공감해줘야 하는데 남자는 선물하며 소동을 잠재우려고 하며 믿음의 아내의 소망은 묵상으로 소동을 잠재우는 것이다.

47) 결혼하더라도 믿음 없는 아내와 남편은 늘 당할 일밖에 없기에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48) 외모 보고 결혼하면 석 달 간다.

49) 우리는 그냥 상대 입장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50) 소동은 내가 십자가 지기 싫어서 일어난다. 

51) 재력과 권세가 있으면 이 세상 사람 다 죽여서라도 이기려고 한다.

52) 결국 말씀 묵상하며 내 죄를 보는 것이 소동을 죽이는 것이다.

53) 마술사도 아내도 남편도 아닌 십자가를 거스르는 사람은 바로 나다.

54) 내 속에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55) 소동은 맞서도 안되고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지는 것이다.

56) 내 생각을 꺾는 것이 십자가에서 죽어지는 것이고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상이다.

57) 예수와 함께 부활할 것을 알기에 죽어질 수 있는 것이며 그 죽음으로 생명이 탄생되는 것이다

58) 목장에서 나누고 가니까 다른 사람들을 살리게 되는 약재료가 되는 것이다.

59) 무시 한번 당했다고 이혼하고, 나라가 있어야 살 수 있는데 자기 명분에 겨워서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