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1. 10. 11. 10:36

[우리들교회 20211010일 주일예배말씀요약(에스겔32: 1~ 12/ 그에게 이르라/ 최대규목사)]

 

 

<에스겔/Ezekiel 32:1~12>

 

  1. 제 십 이년 십 이월 초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In the twelfth year, in the twelfth month on the first day,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2. 인자야 너는 애굽  바로에 대하여 애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열국에서 젊은 사자에 비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강에서 뛰어 일어나 발로 을 요동하여 그 강을 더럽혔도다 ("Son of man, take up a lament concerning Pharaoh king of Egypt and say to him: " 'You are like a lion among the nations; you are like a monster in the seas thrashing about in your streams, churning the water with your feet and muddying the streams)
  3. 나 주 여호와의 말이여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 오리로다("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 'With a great throng of people I will cast my net over you, and they will haul you up in my net)
  4. 내가 너를 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로 네 위에 앉게 할 것임이여 온 의 짐승으로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I will throw you on the land and hurl you on the open field. I will let all the birds of the air settle on you and all the beasts of the earth gorge themselves on you)
  5. 내가 네 고기를 여러 산에 두며 네 시체를 여러 골짜기에 채울 것임이여(I will spread your flesh on the mountains and fill the valleys with your remains)
 

 

  6 네 로 네 헤엄치는 땅에  대듯 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에 채우리로다(I will drench the land with your flowing blood all the way to the mountains, and the ravines will be filled with your flesh)

7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워 별로 어둡게 하며  구름으로 가리우며  을 발하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When I snuff you out, I will cover the heavens and darken their stars; I will cover the sun with a cloud, and the moon will not give its light)


8 하늘
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두움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All the shining lights in the heavens I will darken over you; I will bring darkness over your land, declares the Sovereign LORD)


9 내가 네 패망의 소문으로 열국 곧 너의 알지 못하는 열방에 이르게 할 때에 많은 백성의 마음을 번뇌케 할 것임이여(
I will trouble the hearts of many peoples when I bring about your destruction among the nations, among lands you have not known)


10 내가 그 많은 백성으로 너를 인하여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내 칼로 그들의 왕 앞에서 춤추게 할 때에 그 왕이 너를 인하여 심히 두려워할 것이며 네가 엎드러지는 에 그들이 각각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리로다(
I will cause many peoples to be appalled at you, and their kings will shudder with horror because of you when I brandish my sword before them. On the day of your downfall each of them will tremble every moment for his life)
 

 

  11 나 주 여호와가 말함이여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임하리로다(" 'For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 'The sword of the king of Babylon will come against you)

12 내가 네 무리로 용사 곧 열국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I will cause your hordes to fall by the swords of mighty men-- the most ruthless of all nations. They will shatter the pride of Egypt, and all her hordes will be overthrown)

 

<Prologue>

 

에스겔 1-3장 에스겔 소명 /4-24 남유다멸망/25-32장 남유다의 열국들이 망합니다. 애굽의 멸망은 4장에 걸쳐 말씀하십니다. 29-32절까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애굽의 죄가 컸고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죄가 컸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멸망에 회복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회복이 있으려면 멸망해야 합니다. 33절이후에는 심판에서 회복의 메시지인데 애굽의 멸망이 있습니다. 반드시 필요합니다.

 

<말씀 요약>

 

1.   말씀하신 애가를 이르라고 하십니다



1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에스겔에게 임한 말씀이 구체적인 날짜가 나옵니다. 여호야긴 왕과 백성이 포로 된 날짜부터 적은 것입니다. 날짜가 나온 것은 반드시 이루실 일이기에 정확히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은 포로 상황 가운데에서도 언제 어떻게 말씀 하실지 모르기에 말씀을 날마다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건이 올 때만 어떤 사람은 사건이 없을 때만 큐티를 한다고 합니다. 말씀을 보지 않아도 망하는 사건은 온다고 하십니다. 애굽이 망해도 에스겔에게 말씀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예수 믿는 나에게 임합니다. 택자이기에 말씀이 임합니다. 전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믿는 사람에게 해석을 주십니다. 무시되는 사람이라도 말씀이 임할 수 있습니다. 처가 댁에서 에스겔처럼 기도만 해주셔서 무시했는데 그것이 정말 큰 것이었습니다. 7번에 걸친 심판, 애굽의 왕 바로를 위해 애가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바로가 겪어야 될 심판이라고 하십니다. 바로는 큰 집이라는 뜻입니다. 큰 집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동생과 부모님이 돌아올 텐데 오히려 큰 집이 막고 서있을 경우가 있습니다. 큰집도 생각해보면 저희 아버지가 막내이신데 큰집을 보며 너나 잘 믿어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애가는 장례식 때 부르는 장송곡입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죽었다라는 뜻으로 망할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건재한 애굽인데 왜 애가를 부르라고 했을까요? 바로가 자신이 신이라고 하며 다닐지라도 하나님한테는 이미 망한 나라일 뿐입니다. 꽃다발을 받을 때 그 예쁜 꽃도 이미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지 않은 그 누구라도 멋있어 보이고 잘나 보여도 죽은 자와 같은 것입니다. 애굽이 부러워서 자기 연민(self-pity)의 한탄의 기도가 나옵니다. 기복적인 가치관이 깨어지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동경이 되기때문에 망한다는 말을 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괴롭고 연민의 애가를 부르고 싶어합니다. 바로에게는 완악함 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완악함은 항상 그가 듣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만큼 기회를 주신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떤 성경 인물보다 하나님의 표정을 많이 본 자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로는 완악 했습니다. 듣는 귀를 닫는 자였습니다. 완악한 것은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입니다. 늘 나에게 유익이 되는가를 머리 굴리는 것입니다. 그 완악함 때문에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도 애가를 불러야 합니다. 300년 후에 들릴 수 있기에 일러야 합니다안 그러면 내가 애굽의 삼킴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큐티하면 잘 꽂히는 말씀이나 언어가 있습니다. 왜 노래를 부르게 했을까? 꽂혔습니다. 왜 슬픈 노래? 혹시 이런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노래를 부르면 음악을 들으면 기억과 상관관계가 있어서 그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일이 있죠. 음악이라는 게 무의식의 기억을 담게 하십니다. 노래를 부르면 기억납니다.불신 결혼은 안돼요~’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서 기억나겠죠. 담임목사님 얼굴이 떠오르면서 불신 결혼은 안돼요.’ 이것이 굉장히 축복이 됩니다. 그발 강가에서 포로들이 노역하고 있을 때 애가를 부르며 위로를 얻습니다. 애굽을 바라보지만 애굽은 아니라는 말씀에 애굽을 따르지 않은 것에 감사함으로 힘이 되게 됩니다. 이것이 헛된 일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 노래가 바로 에게까지 이르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바로 왕 옆에 애굽을 끊지 못하는 남 유다 에게까지 전해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 멸망한 후 남은 자들을 위해 그달랴를 세웁니다. 이스마엘이 암살해버립니다. 바벨론이 세운 사람을 죽였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동요시킵니다. ‘우리는 다 죽을 거야하며 하난이라는 사람이 다 데리고 갑니다.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막아 섰습니다. 그들이 그 땅에 남아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애굽으로 도망치고 한번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대가 어수선합니다. 그럴수록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한 사람을 잘 따라야 합니다. 남유다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 듣고 큐티하는 것을 통해 교회를 떠난 분들을 위한 애가를 불러야 합니다.

목장을 떠난 분들도 공동체에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애굽을 따른 그 사람들도 망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에게도 수년간 경고의 말씀을 하신 분이 어머니입니다. ‘살 안 빼면 죽는다. 성인병 온다. 고혈압 온다. 가장이 건강해야 처자식 먹여 살리지. 살 빼야 한다그런데 저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처럼 완악한 사람입니다. 어린시절에 심방 가는 걸 좋아했어요. 심방이 끝나면 음식을 먹으니까요. 식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한 부목사가 살찌니까 좋아 보인다라고 말씀하셔서 저도 좋아 보이죠?’했는데. ‘최목사는 살이 찌니까 믿음 없어 보여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와서 이 한마디에 살을 빼고 있습니다. ‘적용을 해도 티가 안 나죠? 저도 7키로를 뺐는데 티가 안나요먹는 것으로 만족감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사실 어린시절 아토피를 앓아서 먹는 것을 잘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핍이 식탐으로 해결하려고 했고, 저를 우상 삼는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편한 것, 기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우상 삼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나를 주변 사람들도 우상 삼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나 밖에 관심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를 힘들게 하는 너가 문제다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적용#1)

 

-여러분이 동경하는 애굽은 어디이고 누구입니까? 그 곳이 멸망한다는 것이 속이 쓰리나요? 좋습니까?
-
거절을 당해도 10번이고 100번이고 찾아가야 할 애가를 불러줘야 할 바로는 누구인가?
-
여러분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그 경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더 나아가서 에스겔에게 부르라고 하신 애굽의 애가는 무엇일까요?

 

2.   자기 생각과 자기 실상이 다르다는 책망을 들어야합니다.



2.~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바로는 자신이 사자(Lion)라 여겼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는 흙탕물에 던져진 악어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과 사람의 얼굴로 되어있습니다. 바로를 상징합니다. 사자와 악어. 사자는 의인이라고 묘사되기도 하고 젊고 용맹하다고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착각에 빠져 삽니다. 착각도 좋은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왕따를 당했고 가스라이팅’(정신적 학대-심리적 지배) 당했는데. 그때는 당했다고 생각 못했다고 했습니다. 착각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을 수 있죠.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에 우리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기에 자기 죄를 보지 못합니다. 성경은 인간론이다. 큐티를 하면 볼 수 있습니다. 미취학, 취학, 청소년은 모든 부서가 동일한 본문으로 설교를 듣습니다. 제 딸이 5학년때 어느 날 설교가 좋다고 하기에 그래서 딸의 반응 무시한 채 30분동안 설교를 하고 누구 설교가 더 좋냐?’고 하니까 딸이 아빠 인정 중독이냐?’고 묻습니다. 큐티를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지혜와 분별이 생깁니다. 말씀을 볼수록 죄와 중독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집에서는 부모의 권세로 악어처럼 두려움과 차별의 흙탕물을 일으킵니다. 교회에서는 기복의 흙탕물, 연애하면서도 우위에 있는 사람이 흙탕물을 일으키게 되는데 돌이켜 회개할 것이 많습니다. 어제 가족 심방을 가게 됐습니다. 오늘 설교이지만. 두 마리의 악어가 싸우 듯 치열했습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자주 싸우시는 지? 매일 싸운다고 했고, 혹시 각인이 되어서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 있냐? 고민하더니 싸움이 점점 쎄지더니 싸움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저의 기억도 업그레이드 되지만 저한테 피해만 오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합니다. 이제는 지쳐서 회피를 해버리는 거죠. ‘그러면 너는 화목한 가정을 기대하지는 않니?’하니까 중학교 남자아이인데 눈물을 흘립니다. 눌러 놨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부모님도 싸움을 멈추고 얘기하시면서 어머니가 이런 기도를 하시더라구요.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아서 망하게 되는데 제가 회개를 하지 않아서 아이가 망하게 되지 않게 해달라고. 엄마는 회개할 생각 안하고 청소년부 목장에 맡기기만 하면 공동체에만 넘겨 놓고 상관치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회개를 하면서 맑은 물이 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그것이 애굽을 우상 삼았던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청소년부는 혼전순결서약예배를 드립니다. 성과 결혼에 대해서 흙탕물 같은 가치관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서약 예배를 드립니다. 말씀의 가치관이 흐르도록 애가를 부를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가치관의 결혼을 따르지 말라고 설교합니다. 악어는 물에 있을 때는 두렵지만 뭍에 드러날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바로는 자기의 업적을 자랑했겠지만,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풍족한 것을 누렸지만 애굽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악어의 단어는 용, , 바다 괴물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인데 대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높이는 환경, 낮추는 환경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 대적하는 것입니다. 점점 바로의 힘이 빠집니다.



6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 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을 채우리로다

7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출애굽 때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일강을 피로 물드는 재앙과 같은 것, ‘애굽의 빛을 꺼버리겠다하는 것도 해와 달과 모든 빛을 끄면서 암흑을 주신 것으로 흑암의 재앙과 같습니다. 스스로 빛이라고 생각했던 바로에게 주시는 메시지인데 어둠과 출애굽 흑암과 똑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모세의 명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으니까 바로에게 심판을 주시는 것도 있지만 애굽을 우상 삼는 이스라엘백성을 훈련하기 위함이다. ‘출애굽 했을 때 10가지 재앙으로 광야생활 40년을 애굽의 도움없이 조상들이 만나로 살았잖아. 그걸 기억 못하겠니?’ 지금 애굽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나를 의지하는 것이 너희가 살길이라는 것을 애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조상을 살려왔는데 지금이라고 너희를 살리지 못하겠니. 하며 애가를 부르게 하십니다. 바로를 우상 삼는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애가입니다. 예전과 그때와 지금도 그 메시지입니다. ‘광야 때, 포로생활 때, 애굽의 도움 없이도 살았던 것을 알지 못하겠니?’ 남편이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여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9 내가 네 패망의 소문이 여러 나라 곧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 이르게 할 때에 많은 백성의 마음을 번뇌하게 할 것임이여

10 내가 그 많은 백성을 너로 말미암아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내 칼이 그들의 왕 앞에서 춤추게 할 때에 그 왕이 너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할 것이며 네가 엎드러지는 날에 그들이 각각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리로다



하나님안에서 언약 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유익때문에 맺은 언약이기에 언제든 깨질 관계입니다. 내가 남편을 의지하는지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남편을 흔드시면 내가 누구를 의지하는지 알게 하십니다.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 하지만 알아도 끊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이런 존재입니다. 버림받고 수치를 당해야하지만 끊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적용#2)

-여러분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사건은 무엇인가요? 라떼는 말이야 하며 옛날 영광과 아픔에 갇혀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
나름대로 합리화하며 은밀하게 동맹을 맺고 있는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
자기 삶의 패망의 소식을 못 들은 애굽과 이스라엘의 결론이 무엇일까요?



3.   교만하여 칼에 베임을 당합니다.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오리로다

12 나는 네 무리가 용사 곧 모든 나라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애굽에게 이르게 되는데 바벨론이 예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가 애굽을 의지하기때문에 애굽을 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을 의지하면 나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큐티를 펼치면서 겸손 하려는 것이 있으면 은혜가 있는데 펼치지 않고 내 힘으로 하려는 교만이 있습니다. 애굽을 멸망하려는 이유는 미워서가 아니라 애굽의 교만을 잘라내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교만은 깨온이라는 단어인데 주어를 하나님으로 쓰면. 하나님의 위엄으로 단어가 번역이 됩니다. 주어로 사람을 붙이면 교만으로 번역이 된다고 합니다. 모든 환경들, , 위치, 직위, 얼굴, 외모 등 주어로 나를 붙이면 다 교만이 됩니다. 그 모든 것들의 주어로 하나님을 붙이면 하나님의 위엄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도구가 됩니다. 교만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회개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주님이 나를 높여 주시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이태근목사님 자제분인 민산집사님 재판할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기다리며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불현듯 민산집사를 보니까 몇 년 뒤에 내 아들이 여기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개도 되고 그래도 내 아들은 괜찮아하며 여러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곁의 지체에게 심판의 사건이 오면 내게 주시는 심판을 봐야 하는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교만함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칼이 임하는 사건이 왔습니다. 작년에 사춘기 때를 지나고 있던 딸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 일어나는 일이다 생각했는데. 작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려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평소 전화를 잘 안하는데 흐느끼면서 내가 너무 잘못 산 것같아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6학년인 딸의 손목에 칼자국이 나있는 사진을 본 것입니다. 그 사진을 보는데 마음이 확 내려앉았어요. 상처를 보니까 20개 가까이 되는 오래된 것도 있고 최근에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청소년부 사역하면서 그런 사진을 얼마나 많이 봤겠어요?’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고 하시는데 저는 이런 일은 우리 집에 일어나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했던 일이 딸에게 일어나니까 그때 본문은 그게 아니었는데 웃사의 이야기를 잠깐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웃사가 죽는 사건이 왔네요했습니다.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뒤에 보니까 저희 딸이 애정 욕구가 큰 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저희 부부는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저를 많이 돌아보게 됐습니다. 딸 아이의 탱크가 채워져도 모자란데 구멍이 있었던 것이죠. 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5살에 6살연상과 결혼했습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자신만 생각하는 탐심만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편하게 해줄 수 있겠다 생각하며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저를 다 맞춰줬었습니다. 26살에 첫 딸을 임신했습니다. 그럼 보통 함께 기뻐하는데 저는 자기한테 참 잘됐다. 축하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나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는 애정결핍으로 제가 조금만 사랑을 줘도 저한테 다 맞춰주고 저는 저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신기하고 예뻤는데 그 다음부터는 제 주제가가 빨리 커라가 주제가가 되었습니다. 딸 아이의 성장과정이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지금은 성장하고 보니까 딸이 많이 아팠더라구요. 나를 우상 삼는 것이 있으니까 딸 아이를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주신 딸도 선물이라고 생각 못하고 사는데 성도들을 보면서도 어떻게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목회를 했겠습니까? 내가 우상인 사람인데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을까? 저를 목회자로 쓰지 않으시면 안될까요? 하며 바로 같은 사람인 것이 인정이 되고. 목장 처방으로 저와 아내가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내려놓고 가고 있습니다. 딸의 눈으로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좋은 부부라고 믿음까지 주고 있다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딸의 사건이 아니었으면 잘라내야 할 교만을 보지도 못했을 존재입니다



(적용#3)


-
칼로 베임 당한 것 같은 아픔의 사건은 무엇인가요? 그 사건으로 잘려나간 교만과 쓴 뿌리와 불신, 중독과 죄악은 무엇인가요?
-‘
자녀가 인성 좋아졌네라고 말하고 있나요?

 


<Epilogue>

 

1)  말씀 보고 기도하지 않을 때마다 올라오는 세상 가치 맘몬 신, 외모 우상, 인정 중독이 있다.

2)  애굽의 가치관에 삼킴을 당하지 않으려면 애가를 부르라고 하신다

3)  탐심은 우상숭배다

4)  하나님과 연결되어있지 않은 그 누구라도 멋있어 보이고 잘나 보여도 죽은 자와 같은 것이다.

5)  애굽이 부러워서 자기 연민(self-pity)의 한탄의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6)  기복적인 가치관이 깨어지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데 동경이 되기때문에 망한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7)  완악한 것은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으로 늘 나에게 유익이 되는가를 머리 굴리는 것이며 그 완악함 때문에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8)  하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도 애가를 불러야 한다

9)  음악이라는 게 무의식의 기억을 담게 하시며 노래를 부르면 기억이 나게 된다

10)   어떤 청년이 왕따를 당했고 가스라이팅’(정신적 학대-심리적 지배) 당했는데 그때는 당했다고 생각 못했고 그냥 착각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을 수 있다

11)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에 우리의 불행이 시작된다.

12)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기에 자기 죄를 보지 못한다.

13)   성경은 인간론인데 큐티를 하면 볼 수 있다.

14)   큐티를 어릴 때부터 하게 되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지혜와 분별이 생긴다.

15)   말씀을 볼수록 죄와 중독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긴다.

16)   집에서는 부모의 권세로 악어처럼 두려움과 차별의 흙탕물을 일으키고 교회에서는 기복의 흙탕물, 연애하면서도 우위에 있는 사람이 흙탕물을 일으키게 되는데 돌이켜 회개할 것이 많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17)   청소년부는 혼전순결서약예배를 드리는데 성과 결혼에 대해서 흙탕물 같은 가치관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서약 예배를 드린다.

18)   말씀의 가치관이 흐르도록 애가를 부를 수 밖에 없다.

19)   세상가치관의 결혼을 따르지 말라고 설교한다

20)   악어는 물에 있을 때는 두렵지만 뭍에 드러날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21)   바로는 자기의 업적을 자랑했겠지만,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풍족한 것을 누렸지만 애굽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생각을 못했다.

22)   악어라는 단어는 용, , 바다 괴물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다

23)   대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높이는 환경, 낮추는 환경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 대적하는 것이다.

24)   지금 애굽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나를 의지하는 것이 너희가 살길이라는 것을 애가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25)   내가 너희 조상을 살려왔는데 지금이라고 너희를 살리지 못하겠냐?’ 하시며 애가를 부르게 하신다.

26)   평안할 때는 모르지만 알아도 끊지를 못하는 이런 존재다.

27)   버림받고 수치를 당해야 하지만 끊어낼 수 밖에 없다.

28)   어떤 경우에도 큐티를 펼치면서 겸손 하려는 것이 있으면 은혜가 있는데 펼치지 않고 내 힘으로 하려는 교만이 있다.

29)   애굽을 멸망하려는 이유는 미워서가 아니라 애굽의 교만을 잘라내려고 그러시는 것이다.

30)   교만은 깨온이라는 단어인데 주어를 하나님으로 쓰면. 하나님의 위엄으로 단어가 번역이 된다.

31)   주어로 사람을 붙이면 교만으로 번역이 된다

32)   모든 환경들, , 위치, 직위, 얼굴, 외모 등 주어로 나를 붙이면 다 교만이 된다.

33)   그 모든 것들의 주어로 하나님을 붙이면 하나님의 위엄이 빛을 발하게 되고 도구가 된다.

34)   교만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회개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다 

35)   이럴 떄 주님이 나를 높여 주시는 경험도 하게 된다.

36)   내 곁의 지체에게 심판의 사건이 오면 내게 주시는 심판을 봐야 하는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 교만함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10. 5. 11:02

[우리들교회 2021 103일 주일예배말씀요약(에스겔 28:11~ 26/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효숙 평원지기)]

 

 

<에스겔/Ezekiel 28:11~26>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 네가 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말미암아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20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1 인자야 너는 얼굴을 시돈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라

22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가운데에서 내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셨다 하라 내가 그 가운데에서 심판을 행하여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지라


23 내가 그에게 전염병을 보내며 그의 거리에 가 흐르게 하리니 사방에서 오는 칼에 상한 자가 그 가운데에 엎드러질 것인즉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겠고


24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방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2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모으고 그들로 말미암아 여러 나라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그들이 고국 땅 곧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에 거주할지라
 

 

  26 그들이 그 가운데에 평안히 살면서 집을 건축하며 포도원을 만들고 그들의 사방에서 멸시하던 모든 자를 내가 심판할 때에 그들이 평안히 살며 내가 그 하나님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11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12 "Son of man, take up a lament concerning the king of Tyre and say to him: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 'You were the model of perfection, full of wisdom and perfect in beauty.


13 You were in Eden, the garden of God; every precious stone adorned you: ruby, topaz and emerald, chrysolite, onyx and jasper, sapphire, turquoise and beryl. Your settings and mountings were made of gold; on the day you were created they were prepared.


14 You were anointed as a guardian cherub, for so I ordained you. You were on the holy mount of God; you walked among the fiery stones.


15 You were blameless in your ways from the day you were created till wickedness was found in you.
 

 

  16 Through your widespread trade you were filled with violence, and you sinned. So I drove you in disgrace from the mount of God, and I expelled you, O guardian cherub, from among the fiery stones.

17 Your heart became proud on account of your beauty, and you corrupted your wisdom because of your splendor. So I threw you to the earth; I made a spectacle of you before kings.


18 By your many sins and dishonest trade you have desecrated your sanctuaries. So I made a fire come out from you, and it consumed you, and I reduced you to ashes on the ground in the sight of all who were watching.


19 All the nations who knew you are appalled at you; you have come to a horrible end and will be no more.' "


20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21 "Son of man, set your face against Sidon; prophesy against her

22 and say: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 'I am against you, O Sidon, and I will gain glory within you. They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when I inflict punishment on her and show myself holy within her.


23 I will send a plague upon her and make blood flow in her streets. The slain will fall within her, with the sword against her on every side. Then they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24 " 'No longer will the people of Israel have malicious neighbors who are painful briers and sharp thorns. Then they will know that I am the Sovereign LORD.


25 "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When I gather the people of Israel from the nations where they have been scattered, I will show myself holy among them in the sight of the nations. Then they will live in their own land, which I gave to my servant Jacob.
 

 

  26 They will live there in safety and will build houses and plant vineyards; they will live in safety when I inflict punishment on all their neighbors who maligned them. Then they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their God.' "  

 

<Prologue>

 

여호와인 줄 알아야 여호와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두로(Tyre)에 대한 마지막 말씀입니다

항구도시로 부자였습니다. 두로와 시돈(Sidon) 형제나라에 철저한 패망이 있게 됩니다. 인정, 직업, 물질 등등 마지막에는 결국 멸망하게 되는데 이세상에서 멸망 당해도 영원한 천국으로 가야합니다

이방인 두로같은 인생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 요약>

 

1.   나의 고난은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도장’(the model of perfection)처럼 아름다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두로(Tyre)를 바라보는데도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도장이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저도 하나님의 도장으로 부르셨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삶에서 하나님을 길로 놓고 가야하는데 가족 신화와 우상으로 뭉쳐 있으니 애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과 친구들이 예수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같이 말씀을 드리게 돼서 감사합니다

내게 잘 해주시는 하나님만 알고 있었기에 고난을 해석할 힘이 없었습니다. 대학 때 고난으로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랐고 부잣집 남편과 결혼하여 두로같이 교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당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외도하는 남편이자 폭력적인 남편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외도녀를 보면서 질투와 혈기 등등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죄 된 모습에서 나의 진짜 신분을 회복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한 환난이 말씀이 들어가서 예수님으로 인한 환난이 되어 통곡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해서 마음이 편하고 싶고 살고 싶지 않다고 기도했습니다. 이혼할 수도 없고 갇힌 고난 가운데 내게 주시는 음성으로 큐티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중생활의 환경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공동체의 형제 의식이 커졌습니다. 혼자 내 가정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내 고난보다 내 죄가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힘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이뤄가는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명절마다 시댁에 갔었는데 남편은 외도녀와 해외여행을 다니다가 명절 당일 날 시댁에 왔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말씀을 들으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모든 종류의 고난은 다 주지 않으시는구나, 내 수준에 맞는 고난이었구나다른 사람에게 내 고난을 투명하게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을 따라 내 고난을 나누면서 보석을 닦아갔습니다. 음란, 시기, 질투가 홍보석(ruby) 같습니다. 저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 안에 당당함이 생겼습니다. 각자의 구속사라는 것이 인정이 되니 내연녀의 삶을 살아온 분들과 목장을 해가면서 더 감사했습니다


(적용#1)

 

-툭 치면 나오는 나의 고난이 무엇입니까?

-이 고난이 하나님의 완전한 도장 임이 인정되십니까? 

-그래서 이 도장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2.   네가 범죄 하였도다의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죄 고백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십니다. 하지만 죄는 죄입니다.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속사의 큐티가 안되면 죄 고백이 안됩니다. 처절한 고난을 지나온 지체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두로처럼 풍요하면 죄 짓는 환경입니다. 강포의 범위가 커지게 됩니다. 내가 즐긴 만큼 심판을 받게 됩니다. 동서의 권세와 엄마의 권세를 부렸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으신 목적대로 거룩하게 살아야하는데 더럽게 사니까 심판하십니다. 내 범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매일 큐티하면 범죄를 알게 되고 회개를 할텐데 명확하지 않으니 낙태, 이혼, 동성애 등등 어느정도 괜찮지 않나 생각했었습니다. 우리 가정에게는 고난이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죄 성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수준 안되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의 환난에 나는 걸어갈 수 없지만, 그 환난도 같이 걸어가 주시겠구나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도가 나서 남편을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적용#2)

 

-재물, 쾌락, 권세, 부모 형제, 친구, 자녀 등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마땅히 여기며 없는 자를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3.   무리가 여호와를 알게 하는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의 사건을 받을 때 영광을 받아 거룩하게 됩니다. 부도와 남편이 감옥 가는 사건으로 심판으로 거룩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들의 탈선에 무력감으로 하나님 밖에 바라볼수밖에 없었고 내 죄를 볼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아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대놓고 지은 죄가 없으니 나는 아들에게 사과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씀 듣고 회개하는 사람이 사과를 해야한다고 하니 그때서야 내가 사과를 해야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어린시절에 내 인생을 해석하지 못해서 사랑스러운 아이를 가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과를 할 당시에는 알아 듣는지 몰랐는데 그 후에 분노가 없어졌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할 분노를 나에게 하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기쁨없이 했던 것들이 기쁨으로 이렇게 살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생각했습니다


(적용#3)

 

-어떤 심판의 사건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까?

-심판의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애를 써서 고치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심판사건으로 다른 사람이 살아난 적이 있습니까?

 

 

4.   평안히 살게 됩니다.



야곱같은 우리들에게 주신 땅입니다. 말씀이 어떻게 우리 삶에 이루어져가는 것인지 나누고 가는 것은 나도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되는 훈련 같습니다. 영육간에 평안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영적 육적으로 도움을 받으니 세계적인 대안이 맞습니다. 큰아들의 여자친구가 혼전임신으로 유교 집안의 시댁식구들을 모시고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아들도 청년부 부목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하루를 버텨야 했던 예전에 비해 많이 편해졌지만 목장에 목원들 여러 명이 이혼을 했습니다. 그 사건들을 말씀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잘 양육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에 힘듭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맡은 직분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감사합니다. 두로같은 저도 돌아오게 하신 것처럼 힘들어하는 목원들도 평안히 살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
적용#4)

 

-무시와 멸시를 받는 환경에 있던 나를 주님이 평안히 살게 해주신 때는 언제입니까

-무엇이 찌르는 가시가 되어 나를 평안하지 못하게 합니까?

-예수 믿는 나 스스로를 멸시하며 목장을 피하고 가라앉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만 있으면 뭐하냐고 공동체 지체들을 멸시하지는 않습니까?

 

 

<Epilogue>

 

1)  큐티는 욕심을 가지치기하는 것이다

2)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평안히 살게 된다

3)  죄로 인한 환난이 말씀이 들어가서 예수님으로 인한 환난이 되어 통곡하게 된다.

4)  혼자 내 가정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알게 되고 내 고난보다 내 죄가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5)  힘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이뤄가는 것임을 알게 하신다.

6)  죄 고백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지만 죄는 죄이며 미워할 필요는 없다.

7)  구속사의 큐티가 안되면 죄 고백이 안된다.

8)  처절한 고난을 지나온 지체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알게 된다.

9)  두로(Tyre)처럼 풍요하면 죄 짓는 환경이며 강포의 범위가 커지게 되는 것이고 내가 즐긴 만큼 심판을 받게 된다.

10)   지으신 목적대로 거룩하게 살아야하는데 더럽게 사니까 심판하신다.

11)   큐티는 내 범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12)   매일 큐티하면 범죄를 알게 되고 회개를 할 텐데 명확하지 않으니 낙태, 이혼, 동성애 등등 어느정도 괜찮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13)   심판의 사건을 받을 때 영광을 받아 거룩하게 되므로 말씀 듣고 회개하는 사람이 사과를 해야한다

14)   말씀이 어떻게 우리 삶에 이루어져가는 것인지 나누고 가는 것은 나도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되는 훈련인 것이며 영육간에 평안히 살게 되는 비결이다.

15)   목장에서 영적 육적으로 도움을 받으니 세계적인 대안이 맞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9. 27. 11:05

[우리들교회 2021926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 (에스겔 25:1~ 7/인자야 암몬에게 예언하라/김태훈목사)]

 

 

<에스겔/Ezekiel 25:1~7>

 

1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2절 인자야 네 얼굴을 암몬 족속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예언하라("Son of man, set your face against the Ammonites and prophesy against them)

 

3절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Say to them, 'Hear the word of the Sovereign LORD.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Because you said "Aha!" over my sanctuary when it was desecrated and over the land of Israel when it was laid waste and over the people of Judah when they went into exile)

 

4절 그러므로 내가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 주리니 그들이 네 가운데에 진을 치며 네 가운데에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열매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therefore I am going to give you to the people of the East as a possession. They will set up their camps and pitch their tents among you; they will eat your fruit and drink your milk)

 

5절 내가 랍바를 낙타의 우리로 만들며 암몬 족속의 땅을 양 떼가 눕는 곳으로 삼은즉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I will turn Rabbah into a pasture for camels and Ammon into a resting place for sheep. Then you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6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나니(For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Because you have clapped your hands and stamped your feet, rejoicing with all the malice of your heart against the land of Israel,)

 

7 그런즉 내가 손을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 주어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therefore I will stretch out my hand against you and give you as plunder to the nations. I will cut you off from the nations and exterminate you from the countries. I will destroy you, and you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Prologue>

 

찔림을 받고 오픈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택자입니다. 에스겔은 그발 강가로 함께 떠나야하는데 에스겔은 젊은 제사장으로 훈련받고 예루살렘성전의 구조를 익혔으며 결혼도 했습니다. 하지만 재앙으로 남유다는 망합니다. 여호야긴왕과 함께 사로잡힙니다.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포로생활을 합니다. 제사장으로 섬기는데 재앙으로 산산조각이 납니다. 포로들틈에서 비참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사로잡혀 5년만인 30살에 하늘이 열리고 여호와의말씀이 임해서 말씀에 사로잡혀 22년동안 이스라엘 선지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망한 백성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수치 당하는 순간에 찾아가야 합니다파수꾼으로 부름 받은 에스겔이 열방에게 심판을 선포하게 됩니다.



<말씀 요약>

 

1.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 끝나야 열방의 심판이 끝납니다.

 

1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하늘이 열리면서 말씀이 임하고 말씀에 압도된 에스겔은 자기 뜻대로 살다가 자기 삶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살아있는 말씀이 객관적으로 구체적으로 직면으로 뚫고 들어옵니다. 구체적인 말씀이 내 삶에 다가오는 것이 큐티입니다.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가 담임목사님 별명이시죠. 에스겔의 제자인 우리도 목사님의 제자이니 에스겔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교회의 성도입니다.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사랑하는 자를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24절에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곁을 떠나지만 여호와의 앞에 섰고 말씀이 임하셨다고 합니다

 

2절 인자야 네 얼굴을 암몬 족속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예언하라("Son of man, set your face against the Ammonites and prophesy against them)

 

하나님은 에스겔을 부르실 때 인자야라고 부르십니다. 에스겔서에서 93번이나 부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인자야라고 부르셨을까사람의 아들인 인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피조물 인간을 뜻합니다. 비천한 죄인을 뜻합니다. 자기가 연약하고 비천하고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하나님이 부를 때마다 인지했다고 합니다. 위대한 선지자들도 하늘이 열려 하나님을 본 믿음의 선배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때마다 너 인자야하니까 에스겔이 자기 주제를 알고 엎드립니다. 우리에게도 정죄할 때마다 인자야라고 깨닫게 해주시는 사건을 주십니다. 그의 인생에서 낮아지고 비천한 일을 경험한 것입니다. 말씀으로 훈련 받는 것이 큐티입니다. 얼굴을 향하여 말한다는 건 대적해서 심판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은 누구를 향해 예언하냐 하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3절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Say to them, 'Hear the word of the Sovereign LORD.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Because you said "Aha!" over my sanctuary when it was desecrated and over the land of Israel when it was laid waste and over the people of Judah when they went into exile)



에스겔서가48장으로 되어있는데 하나님의 심판 순서를 알려줍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열방을 향한 심판-회복과 소망의 말씀인데 1~24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며 에스겔 아내가 죽은 다음부터인 25장은 주변 나라를 위한 심판이 옵니다. 내 옆에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사, 부모님, 이웃 등 객관적으로 보면 나보다 못하고 비열하고 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암몬(Ammon)은 놔두고 나만 심판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 놔두시냐고 원망의 기도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예수 믿는 너 때문에 네 옆에 암몬이 수고한다. 네가 먼저 변하길 원한다. 너의 죄를 보고 애통해 하고 비천한 인간임을 알게 되면 너의 지경을 넓혀주고 네 옆에 암몬을 심판해줄 것이다라고 말하십니다. 둘다 예수를 믿는다면 내가 먼저 변할 때 상대방도 하나님의 때에 변한다. 변하지 않으면 내 지경을 훨씬 더 넓혀 주실 것입니다. 진리가 있기에 내게 열쇠가 있습니다.

 

(적용#1)  

-여러분은 에스겔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큐티합니까언제 큐티가 안됩니까

-남이 변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먼저 변했더니 하나님이 사람과 환경을 변하게 하신 일이 있습니까?



2.   '아하 좋다(Aha!)'가 아니라 '오호라'를 외쳐야 합니다.



3절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Say to them, 'Hear the word of the Sovereign LORD.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Because you said "Aha!" over my sanctuary when it was desecrated and over the land of Israel when it was laid waste and over the people of Judah when they went into exile)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를 말씀을 알려주십니다. 얼굴을 내면으로 향하여 회개하는 것과 이스라엘 향하여 기도하는 것 그리고 그 골방의 기도가 열방을 향해 기도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괴롭게 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들에게도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이 멸망하고 탈레반이 장악하고 승리했습니다. 20년전 재수생 큐티모임 때 아프간전쟁 발발 시에 목사님의 애통해 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선교사들이 교회와 학교를 세우는 것이 진정으로 살리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생이었는데 그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고 순진한 생각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에서야 목사님 말씀이 맞다는 게 체휼됩니다.


악한 암몬 족속에게도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고 예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암몬에게 예언입니다

 

암몬은 이스라엘 이웃나라로 요단강 동편에 비옥하고 풍요로운 꿀과 같은 땅인데 그 지역에 암몬이 위치함으로 끝없이 갈등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의 둘째 딸이 근친상간하여 낳은 아들이 세운 나라로 친척 집안이었고 남 유다와 동맹을 맺습니다. 애굽과 손을 잡고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합니다. 동맹국과 맘대로 살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대군을 거느리고 유다와 암몬을 향해 진격합니다. 암몬의 수도 랍바와 남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있는데 바벨론 왕이 어디를 칠지 제비 뽑고 남 유다의 예루살렘을 쳐서 함몰 당합니다. 유다에 대한 시기로 불에 탔습니다. 내기 받을 이익만을 생각합니다. 결혼도 비슷합니다. 남이 죽어야 내가 살고 내가 부자가 되는 가치관이 이 세상 가치관입니다.남의 불행을 고소해 하면 심판하시는구나도 좋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 유다 백성이었어요. ‘잘됐다하는 죄가 아하 좋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 시대로 인해 박해를 받습니다. 교회와 예수이름이 조롱을 당하는데 내가 잘되는 거만 생각하는 것이 암몬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6
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나니(For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Because you have clapped your hands and stamped your feet, rejoicing with all the malice of your heart against the land of Israel,)

 

너무나 좋아해서 사로잡혀 죽는데 손뼉 치며 좋아했던 암몬은 쓰레기 구나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마음속 그 뿌리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봐야합니다. 친척 관계였죠. 소돔과 고모라심판에서 살아남아서 굴속에서 사는데 자기 아내는 죽고 두 딸 사위는 소돔에 거하여 다 죽습니다. 그래서 두 딸과 자기는 굴속에서 결혼시키지 않고 거기서 살다가 죽고 싶었는데. 아빠를 술 먹여 근친상간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대대로 이어진 것이 암몬입니다. 이스라엘이 종살이 하다가 출애굽 해줬고 약속 땅도 주신 걸 보니까 암몬 입장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으로 암몬은 죄 근원을 보지 못하고 현상만 보면서 조롱하고 손뼉 칩니다. 그냥 단순히 교제를 위해 위로 받기 위해서 만을 위하고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끝나면 죄 근원을 보지 못하고 넘어지게 됩니다. 죄 근원을 말씀을 통해 찾아야 합니다. 공동체와 말씀앞에 솔직하게 오픈할 때 치유될 것을 믿고 가야합니다. 유다 족속도 이런 죄가 있습니다 유다와 며느리 다말이 근친상간 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베레스 후손이 다윗 왕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죄를 고백하느냐, 회개하느냐, 용서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유다와 암몬의 차이입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한 유다의 고백이 있습니다. 다윗은 수하 장군 우레아의 아내이자 유부녀인 밧세바를 범하고 우레야를 죽인 것을 고백하고 통곡합니다. 암몬과 유다의 차이입니다. 우리 모두 연약합니다. 인스타그람, 열등감과 자기애-성장애 입니다. 부러워할 필요가 업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 갖고 나가서 만나면 열등감수치를 도돌이표 죄악에서 건져 주십니다.



오호라를 해야합니다. 유다 예루살렘 성전 동문에 고관들이 모여 예배 드립니다. 장차관 청와대 비서진 이런 사람들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 겉은 예배, 속은 나를 대적하고 멸시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 에스겔은 적용합니다. ‘화 있을지어다라고 외치니까 한사람이 말씀 앞에 죽어버립니다. 이때 에스겔은 아하 좋다라고 하지 않고 혀를 차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을 향해 오호라저 사람은 그렇게 심판하고 데려 가십니까?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오호라입니다. 내 옆에 가족, 직장동료, 선후배가 심판에 잡혀갈 때 아하 좋다가 아니라 오호라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해결이 아니라 탄식하길 원합니다. 나의 죄, 가족의 죄, 나라의 죄를 위해 회개하고 기도할 때 우리 이마에 구원의 표를 주십니다.



(적용#2) 

 

-여러분은 누구를 그토록 시기합니까왜 시기합니까

-내 마음속 죄악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오호라를 외치며 탄식하고 기도해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큐티 적용은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은 시기하지 않지만 친한 친구들에서는 시기를 합니다. 인정받고 성적이 좋으면 올라옵니다. 중고등학생때 점수 물어볼 때 내가 좋으면 너그러워지고 친구들을 위로해주고 나보다 더 좋은 애가 있으면 불편해지고 강박이 심했습니다. 남보다 잘하지 않으면 버림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잘나시고 기준이 높아서 칭찬받기가 힘들었습니다. 해외 주재원으로 5년간 살았는데. 문화 충격과 인종차별로 영향 받았습니다. 음란의 역사가 있는 암몬처럼 초등학교1학년 때 갔는데 옆집 형들이 있었는데 그 집에 성인 잡지와 만화가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접하게 되면서 음란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음란은 정죄감과 수치심과 열등감으로 뿌리내렸고. 잘못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우리들교회를 더 잘 섬기기 위해 유학을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더 출세하기 위해 유학 갔던 것을 고백합니다. ‘태훈아, 너는 고난이 없어서 어떡하니?’라고 담임목사님의 걱정 어린 마음을 뒤로하고 떠났던 것을 고백합니다. 고난 받기 싫어하고 떠난 암몬족속이 제 자신이었습니다. 내 죄때문에 탄식하는 목사님을 뒤로하고



3.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암몬은 남 유다가 멸망하니까 바벨론의 진노가 끝난 줄 알았습니다. 위협은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다도 망했으니까 잘 살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그런 생각을 뒤엎습니다. 암몬을 심판하십니다. 암몬의 동편은 아라비아 사막으로 유목민들이 있습니다. 먹을 게 없으니까 때때로 국경을 침범했습니다. 유목민은 걱정을 안했는데 예루살렘과 남유다가 멸망하고 5년뒤에 바벨론 왕의 지원을 받고 동방사람인 유목민들이 대대로 일어나 암몬사람을 칩니다. 쑥대밭이 됩니다. 바벨론의 허락 받고 암몬 땅을 침략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갑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암몬을 향한 심판인 것입니다

7 그런즉 내가 손을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 주어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therefore I will stretch out my hand against you and give you as plunder to the nations. I will cut you off from the nations and exterminate you from the countries. I will destroy you, and you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5년동안 꿀을 빨았지만 5년 뒤에 멸망을 할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100% 죄인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면 오호라하지 않아요. 심판을 당해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는 명령형이 아니라 너희가 진멸 당할 때 나를 알게 될 거고 만나게 될 거고 나를 알게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에 관심 없고 나태하고 음란해도 심판의 말씀을 끝까지 듣고 공동체에 붙어가고 회개하면 우리 우상을 끊어버리고 다시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엔딩이 아닙니다. 그래서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예수 만나게 하시고 내 눈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지금 너무나 힘든 때를 살고있는 청년들에게 이 때에도 에스겔처럼 오호라를 외치며 있으면 모든 심판 가운데 찾아오시고 영원한 소망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적용#3)

 

-‘아하 좋다   갑작스레 찾아온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입니까

-심판을 통하여 끊어지게  나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까 멀어졌습니까?

 

<Epilogue> 

1)  골방 큐티가 열방 전도로 뻗어나가게 하신다

2)  마음 속의 죄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 쿠티다

3)  히브리어로 벤아담이 人子인데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신다

4)  찔림을 받고 오픈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택자다.

5)  하늘이 열리면서 말씀이 임하고 말씀에 압도된 에스겔이 자기 뜻대로 살다가 자기 삶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게 되는데 살아있는 말씀이 객관적으로 구체적으로 직면으로 뚫고 들어오게 되는 것이며 구체적인 말씀이 내 삶에 다가오는 것이 큐티이다.

6)  말씀으로 훈련 받는 것이 큐티이다.

7)  예수 믿는 너 때문에 네 옆에 암몬이 수고한다. 네가 먼저 변하길 원한다. 너의 죄를 보고 애통해 하고 비천한 인간임을 알게 되면 너의 지경을 넓혀주고 네 옆에 암몬을 심판해줄 것이다

8)  둘다 예수를 믿는다면 내가 먼저 변할 때 상대방도 하나님의 때에 변한다.

9)  변하지 않으면 내 지경을 훨씬 더 넓혀 주실 것이므로 진리가 있기에 내게 열쇠가 있는 것이다.

10) 얼굴을 내면으로 향하여 회개하는 것과 이스라엘 향하여 기도하는 것 그리고 그 골방의 기도가 열방을 향해 기도하게 한다.

11) 예수님을 모르고 괴롭게 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기에 그들에게도 예언을 하라고 한다.

12) 악한 암몬 족속에게도 말씀이 필요하므로 말씀을 전하고 예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암몬에게 예언인 것이다

13) 내기 받을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결혼도 비슷하다.

14) 남이 죽어야 내가 살고 내가 부자가 되는 가치관이 이 세상 가치관이다.

15) 교회와 예수 이름이 조롱을 당하는 가운데 내가 잘되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 암몬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16) 너무나 좋아해서 사로잡혀 죽는데 손뼉 치며 좋아했던 암몬은 쓰레기 구나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마음속 그 뿌리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17) 암몬 입장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으로 암몬은 죄 근원을 보지 못하고 현상만 보면서 조롱하고 손뼉을 치는 것이다

18) 그냥 단순히 교제를 위해서, 위로 받기 위해서 만을 위하고 하면 안된다.

19) 그렇게 끝나면 죄 근원을 보지 못하고 넘어지게 된다.

20) 죄 근원을 말씀을 통해 찾아야 하며 공동체와 말씀 앞에 솔직하게 오픈할 때 치유될 것을 믿고 가야한다.

21) 중요한 것은 내 죄를 고백하느냐, 회개하느냐, 용서받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유다와 암몬의 차이다.

22) 다윗은 수하 장군 우레아의 아내이자 유부녀인 밧세바를 범하고 우레야를 죽인 것을 고백하고 통곡하는 것이 암몬과 유다의 차이다.

23) 우리 모두 연약하기에 나의 연약함을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 갖고 나가서 만나면 열등감수치를 도돌이표 죄악에서 건져 주신다.

24) 내 옆에 가족, 직장동료, 선후배가 심판에 잡혀갈 때 아하 좋다가 아니라 오호라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5) 문제해결이 아니라 탄식하길 원함으로 나의 죄, 가족의 죄, 나라의 죄를 위해 회개하고 기도할 때 우리 이마에 구원의 표를 주신다.

26) 큐티 적용은 반대로 하는 것이다

27) 우리는 100% 죄인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면 오호라하지 않게 되며 심판을 당해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28)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는 명령형이 아니라 너희가 진멸 당할 때 나를 알게 될 거고 만나게 될 거고 나를 알게 될 거라고 말씀하신다.

29) 구원에 관심 없고 나태하고 음란 해도 심판의 말씀을 끝까지 듣고 공동체에 붙어가고 회개하면 우리 우상을 끊어버리고 다시 만나 주시는 것이다.

30)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예수 만나게 하시고 내 눈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바라보게 하신다.

31) 지금 너무나 힘든 때를 살고있는 청년들에게 이 때에도 에스겔처럼 오호라를 외치며 있으면 모든 심판 가운데 찾아오시고 영원한 소망이 되어주실 것이다.

32)찔림을 받고 오픈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택자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9. 21. 12:10

[우리들교회 2021919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시편 24:1~10 영광의 왕/ 이태근목사)]

 

 

<시편 241 ~ 10>
 

1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The earth is the LORD's, and everything in it, the world, and all who live in it)

 

2절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for he founded it upon the seas and established it upon the waters)

 

3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Who may ascend the hill of the LORD? Who may stand in his holy place?)

 

4절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He who has clean hands and a pure heart, who does not lift up his soul to an idol or swear by what is false)

 

5절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He will receive blessing from the LORD and vindication from God his Savior)

 

6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Such is the generation of those who seek him, who seek your face, O God of Jacob (셀라/Selah)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Lift up your heads, O you gates; be lifted up, you ancient doors, that the King of glory may come in)

 

8절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Who is this King of glory? The LORD strong and mighty, the LORD mighty in battle)

 

9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Lift up your heads, O you gates; lift them up, you ancient doors, that the King of glory may come in)

 

10절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Who is he, this King of glory? The LORD Almighty-- he is the King of glory (셀라/Selah)

 

<Prologue> 

 

시편 24편은 영광의 왕을 찬양하는 시인데 제가 그런 인생을 살지 않았기에 입으로만 하는 설교가 될 것 같아서 설교를 준비하는 내내 마음이 힘들고 부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영광의 왕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아니면 원망과 불평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악을 쓰며 살아오시지는 않았습니까? 우리의 원망이 찬양이 되고 불평이 찬송이 되며 우리의 고난이 할렐루야~ 아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 요약>

영광의 왕을 찬양하려면,

 

 

1.   내 것이 아니고 다 주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1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절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그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꽃과 땅 거기에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 세계를 다 의미하고 세계화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모든 인류와 인간 사회를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면 발달할 할수록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집도 내 것이고.

차도 내 것이고 땅도 내 것이기에 다 여호아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삶으로 고백하려면 많은 사건들이 오고 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1~ 2절 말씀) 그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화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시며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한글 개혁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원문 1절과 2절 사이에는 접속사 왜냐 하면이 들어가 있습니다 당연히 집도 내 것이고 차도 내 것이고. 땅도 내 것이겠지만 그것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여호와에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시고. 강들 위에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3일째 하나님은 천지 창조를 통하여 첫째 날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둘째 날에 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래에 물을 나누셨는데 궁창 위의 물은 노아 홍수 이전까지 아마도 모든 피조물이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으로 모든 유해물질을 차단하고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주셨을 텐데 인간의 타락으로 노아의 홍수가 발생하자 창조 질서가 일부 깨지고 궁창 위의 물이 다 쏟아져서 환경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노아 홍수 이후로 인간의 수명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천지창조 첫째 날에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둘째 날에는 위와 아래의 물을 나누셨는데 셋째 날에는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또 물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이 부분을 설명하시면서 이처럼 나뉘어야 할 것이 있고 한 곳으로 모으고 드러나야 할 것이 있다고 하셨어요 한쪽은 모여서 바다와 강이 되고 또 한쪽은 뭍이 드러나므로 마른 땅이 되어야 합니다.

둘 다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고. 각자 알맞게 쓰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바다는 물이 모여서 더욱 풍성해지고 뭍은 드러나므로 마른 땅이 되어야 씨 가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사실 우리의 인생도 창조의 질서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내 인생 가운데 첫째 날과 둘째 날과 셋째 날이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땅이 혼동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뒤죽박죽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인생이 공허하고 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모으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나누는 것이 먼저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모으고 쌓고 더 긁어 모으고 쌓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기에 가진 것이 있어도 누리지 못하고 가진 것이 많아도 인생이 공허하고 허무합니다 내 인생 가운데 창조의 질서가 세워지지 않으면 내 마음과 생각 속에도 어두움과 빛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가 될 수 없기에 우리는 날마다 어둠의 생각과 빛의 생각을 나누어야 합니다.

 

갈등 충만이 성령 충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이 과연 빛의 생각인지 어둠의 생각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인생도 비로소 첫째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1~2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1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절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시며 강들 위에 건설 하셨도다.

 

무슨 말인가 하면 쉽게 설명해서 너희가 땅 위에 집을 짓고 문화를 만들고 도시를 건설했다고 해서 스스로 교만한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터가 바다 위에 세워졌고. 강들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입니다 해변가의 모래성도 쉽게 무너지는데 하물며 바다와 강들 위에 세워진 것들이 온전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언제든지 노아의 시대처럼 모든 땅을 받아야 잠기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개 언약을 통해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큰 걱정 없이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 약속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혜가 계속되면 그것은 나의 권리가 되고 나의 일상이 되기 때문에 집도 차도 땅도 내 것이고 자녀도 내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터를 바다와 강들 위에 세우고 건설했기에 유라굴로 강풍이 한 번 불면 276명을 태운 큰 배도 한순간에 파손될 수 밖에 없다고 지난주와 이번 주에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터를 반석 위에 세우지 않으면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은 그 기초가 너무나 허약하기에 한순간에 다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적용#1)


-여전히 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로만 주님의 것이라고 하며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은 없습니까?

-내 힘으로 쌓아 올렸지만 그 터와 기초가 너무 약해서 허망하게 무너진 것은 없습니까?

-내 인생 가운데 창조의 질서가 잘 세워지고 있습니까?



지난주 아들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이제 저의 주제가는 다른 인생을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목사가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인테리어 하는 집사님을 봐도 너무 재밌을 것 같고 따라다니면서 그 옆에 그거 하고 프로그램 코딩 짜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신기하고 하다못해 한동안 목사 그만하고 떡볶이 장사라도 하면 마음도 편하고 재미있겠다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목사의 직분을 가볍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제 오히려 목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되나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교회도 많고 훌륭한 목사님도 정말 많을 텐데 내 옷에 맞지 않는 옷을 너무 오랫동안 입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이 항상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습니다 물론 저도 부르심도 있었지만 또 한편에는 이제 어찌하다 보니 목사가 되었다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 빛과 어두움이 오랫동안 함께 공존을 했습니다 하지만 또 제가 5번 유형이다 보니 뭐든지 직접 해보고 결정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뭐든지 앉으나서나 생각만 하고 있기에 내가 아닌 아들 민산이를 통해서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또 제가 민산이한테 너 이거 해 봐라 저거 해 봐라 강요한 적이 저는 한 번도 없어요.



너는 부르심을 받지 말고 그냥 너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그런 후회도 없을 거라고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악한 생각 인지도 모르면서 혼자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바다는 물이 모여서 더욱 풍성해지고 뭍은 드러나므로 마른 땅이 되어야 씨 가진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소명 의식이 없고 오랫동안 딴 생각 쓸데없는 생각 더러운 생각을 하며 살았기에 물에 잠겨 있는 땅처럼 쓸모 없는 땅이 되어 인생이 공허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다가 망하는 인생이 될 뻔했습니다

 

영광의 왕을 찬양하려면,

 

 

2.   행위가 아닌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봅니다.

 

3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집니다 구약은 율법의 말씀이고 신약은 은혜의 말씀인데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까 생각할 때 구약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신약의 빛 아래에서 읽어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언제든지 죄만 지적할 뿐 말씀에 대한 은혜와 구원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구약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구약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고 신약은 이미 오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나의 이야기를 할 때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 살았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우리의 고난이 약재료가 되고 나의 상처가 별이 되어 예수님 만난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 되었잖아요? 쓸데없는 이야기는 가급적이면 줄이고 예수 만난 이야기를 많이 하는 복되고 즐거운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도 양대 산맥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첫 번째 산은 광야에 있는 시내(Sinai)산이고 두 번째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Zion)산입니다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산의 위엄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산이 아니에요 뒷동산이 아니에요. K2 에베레스트 산 그런 정도 목숨을 걸고 올라가야 하는 그런 산입니다 모세 자신도 내가 힘이 두렵고 떨린다고 했어요 출에굽기 19장 말씀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의를 경계하고 너희는 산과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 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니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이 산에 올라오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구약의 율법은 이처럼 어두움이 빛 가운데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빛 대신 예수님이 반드시 먼저 찾아 오셔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여호와의 사는 율법을 주신 시내산이 아니고 성전이 세워진 시온 산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자신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어린 양을 준비해 주신 곳이기도 합니다 율법을 주신 신의 산에는 오직 모세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여호와의 성전이 세워진 시온 산에는 과연 누가 올라갈 수 있을까요?



4절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첫 번째는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외적인 행위가 깨끗해야 한다는 거예요. 청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나는 이제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내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 것은 내 손을 더럽히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이 청결하여 뜻을 허탈한 데 두지 않아야 합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외적인 행위만 깨끗해서는 안 되고 그 마음과 뜻이 근본적으로 청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며 여자를 보고 음욕을 붙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했어요. 앞에 두 가지의 조건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인간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는 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신실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다시 3절에서 5절 말씀을 봅니다



3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절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절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율법이 있는 시내 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올라가지 못할 것 같고 성전이 세워진 시온 산은 자격이 안 돼서 올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3~4. 말씀은 행위가 아닌 은혜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나의 손이 얼마나 더러운 지를 알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나의 더러운 손을 씻고 깨끗한 손으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기 위해 시온산에 올라갔지만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해 주신 원리와 똑같습니다 나의 마음이 불결하여 허탄한 것을 계속 생각한다면 나의 더러워진 마음을 공동체와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창녀의 마음이 아닌 청결한 마음으로 여호와 산에 올라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5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의를 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의를 얻는 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는 의미이죠 더 확실한 증거가 6절 말씀에 나옵니다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3절에서 5절 말씀이. 만약 조건 행위 강조했다면 야곱의 하나님이 아닌 요셉의 하나님을 찾았을 텐데 성경은 언제든지 야곱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야곱의 뜻은 속이는 차이 이잖아요.



팥죽 한 그릇으로 형에서의 장자 권을 빼앗고 털가죽과 별미로 아버지 이삭을 기만하고 그렇게 속이는 인생을 살다가 외삼촌 라반에게 잘못 걸려서 20년간 종 노릇을 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너무 못 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보다 더 한 사람을 만나게 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야곱이 여자 좋아하고 돈을 좋아했기 때문에 남에게 책임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내가 누구인가를 간절히 찾고 있는데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자라고 분명히 세 가지 조건을 달아 놓았는데 그 결론이 요셉의 하나님이 아닌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나의 행위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갈 자는 없고 오직 은혜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산에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데리고 번제를 드리러 올라간 거예요 하지만 내 의로 어떻게 번제를 드리겠어요.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준비해 주셨다. 동일한 의미입니다 우리들 공동체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기까지 오시는 데에 또 여러분들은 어떤 인생을 사셨습니까? 내 손에 피를 묻히고 마음으로 음란을 행하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다가 나보다 더 강한 라반과 같은 사람을 만나 갖은 고생을 하고 인생을 낭비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우리들 공동체까지 찾아오셨습니까?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수고가 너무 많으셨습니다 내가 요셉처럼 살지 못했을지라도, 야곱처럼 속이는 인생을 살았을 지라도, 나의 피 묻은 손을 보며 회개하고 나의 창녀와 같은 마음을 회개하며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은 무섭고 두려운 신의 산이 아니고 은혜가 아니면 올라갈 수 없는 시온산입니다.

 

 

(적용#2)

-나의 피 묻은 손과 창녀 같은 마음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인이 되어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인생이 되었습니까?

-여전히 옳고 그름으로 쉬운 산이 아닌 신의 산을 올라가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높은 산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은혜로 사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행위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부르심을 받았으나 소명의식이 없고 언제라도 또 기회가 되면 목사의 직분을 내려놓고 그냥 주의 백성으로 살고 싶었기에 내 인생 가운데 창조의 질서가 세워지지 않고 땅이 혼동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기쁨 위에 있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사역을 하다가 여러 번의 치리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치리(治理)는 말씀이 아닌 지식으로 목자 모임을 인도하다가 받았고, 두 번째 치리는 말씀이 아닌 내 열심으로 다음 세대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가운데 내 생각 내 방법이 가장 옳은 것 같아서 담임 목사님과 동료 사역자들 앞에서 노트북을 들었다 놨다 드러났다 내려치다가 혈기를 부리다가 또 치리를 받았습니다.

세 번째 치리는 설교를 들어도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씀이 잘 깨달아지지 않으니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행위로 심판을 받는다고 이원론이 아닌 이원론으로 백보좌 심판을 설교하다가 또 치리를 받았습니다. 삼진 아웃이라는 말도 있는데 지난 10여 년 동안 세 번이나 치리를 받으면서 계속 붙어간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 체면이 있지도 않고 앞으로 내 인생에 이제 더 이상 치리는 받지 않겠다고. 내 의로 굳게 다짐을 했는데 작년에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또 네 번째 치리를 받았습니다 처음 치리를 받을 때는 억울한 것도 있었는데 치리를 이제 한 번 두 번 세 번 거기다 네 번까지 받다 보니 이제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이제 내가 무엇 뭔가를 잘못해서 치리를 받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전히 딴 생각을 하고 언제라도 그만 생각을 하고 은혜가 없고 행위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동료 사역자들과 소통이 안 되고 혼자 독불장군처럼 사역을 하다 보니 담임 목사님께서도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보좌 심판은 요한계시록 20 11-15절에 묘사되고 있으며 불신자들이 불 못에 던져 지기 전의 마지막 심판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20 7-15절로부터 이 심판이 천년왕국 이후, 그리고 사탄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불 못으로 던져진 이후에 발생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7-10). 펼쳐진 책들( 20:12)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과 행위와 말을 다 아시기 때문에 선한 행위든 악한 행위든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고, 주께서는 그 기록에 따라 각 사람에게 상이나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28:4; 62:12; 2:6; 2:23; 18:6; 22:12).

율법으로 저를 또 다스려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힘들게 산을 올라온 것 같습니다 산에서 내려가라고 한 번 두 번 미리 사인을 주시고 너 그러다가 정말 죽는다고 하셨는데 내가 스스로 율법이 돼서 여전히 옳고 그름을 따지며 시내산을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니 네 번의 치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너무 높이 올라와서 내려가는 길도 잃어버린 것 같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방황하고 있을 때 민산이가 아닌 저에게 큰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영광의 왕을 찬양하려면

 

 

3.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늘의 문도 열립니다.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절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웅장한 찬양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제 문들아 머리 들어라바로 이 곡이 그런 찬양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도 코로나 이전에는 한때 한참 많이 부를 때가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한 번도 부르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 코로나가 다 지나가고 다 함께 모여서 이 찬양을 부르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시죠.

시편 24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언제 이 시를 썼을까? 이렇게 학자들이 생각해 보면 아마도 오벳에돔의 집에서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에 부른 찬양시일거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7절 말씀 다시 봅니다.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원한 문들(ancient doors)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영원한 문들은 하늘 성수의 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여기서 들지어다는 능동 명령형이에요.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여기서 들릴지어다는 수동 명령형입니다. 즉 짧은 한 절이기는 하지만 이런 의미가 담겨있어요 내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늘의 문도 열리고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하늘의 문도 열리지가 않습니다. 문들이 자발적으로 머리를 들어 왕의 입성을 환영하는 장면이고 들릴지어다는 영광의 왕 앞에 문들이 필연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음을 강조합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 천부장들이 다 함께 모여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레위인들이 여호와의 언약계를 즐거이 매고 들어올 때에 다윗이 그 앞에서 기뻐 뛰며 춤추며 찬양을 했는데 사울의 딸 미갈이 그 모습을 창틀에 기대어 머리를 빼꼼이 내밀고 쳐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어찌 왕이 되어서 체통도 없이 계집종 앞에서 저렇게 몸을 드러내며 방탕하게 춤을 추냐?’고 심중에 자기 남편 다윗을 업신여겼다고 합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남편 다윗에게도 닫힌 마음이고 여호와 하나님께도 굳게 닫혀 있는 마음에 문들에게 머리를 들라는 것은 시적 표현인데 빼꼼이 문을 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문을 활짝 문짝 전체를 들어올리라는 표현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야 하늘의 문도 열립니다



다윗의 아내이지만 여전히 사울의 딸 미갈이 되어 자기 상처, 자기 연민으로 궁궐 안에 홀로 틀어박혀 얼굴만 빼꼼이 내밀고 공동체가 하나도 없이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비록 여전히 다윗의 아내이지만 여전히 가진 것도 많지만 집도 궁궐에서 살고 있지만 미갈의 인생이 참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장에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남편이 수치를 무릅쓰고 자기 나눔을 할 때 무슨 얘기를 하나 얼굴을 빼꼼이 내밀고 남편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계집종처럼 힘든 이야기를 조잘조잘할 때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들어야 합니다.

 

왜 남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 마음이 닫힌 마음이고 미갈과 같은 마음입니다 지난주에 한 청년으로부터 장문의 카톡이 왔습니다.



짧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에요.



자기의 죄패는 동성애인데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말씀을 듣고 있지만 교회에서 기도할 때마다 사용하는 수식어 하나 때문에 이제 자꾸 시험이 든다는 거예요 낙태와 간통에 대해서 기도할 때는 나라에 근간을 흔든다는 수식어를 쓰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꼭 동성애와 관련된 차별금지법 평등법 내는 그런 수식어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고 인구 절벽 때문에 그런 말을 사용하시는 것 같기도 한데 요즘 남녀가 결혼을 해도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 동성애와 관련해서만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꼭 그런 수식어를 써야 하는 건지 자꾸 시험에 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잘못하면 이제 논쟁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제 우리들 교회 등록하신 지 오래되셨고어떻게 공동체에 붙어 가려고 애쓰는 것을 또 잘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아드렸어요그랬더니 이제 잠시 후에 이제 진심 어린 답변과 기도에 감사하다는 댓글이 왔습니다. 그런데 또 잠시 후에 이런 댓글이 달렸어요.



하지만 나라의 근간을 흔든다는 흔드는 수식어가 제게는 이 나라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로 자꾸 들린다는 거예요. 만약에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비행 청소년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면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매일 매주 매월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또 제 마음은 어떻겠어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죄송하지만 교회에서 그런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톡이 왔습니다 많은 갈등 속에서 범민 속에서 정말 조심스럽게 자기의 의견을 남겨주셨기에 저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논쟁이 될까 봐 조심스럽기는 한데. 당연히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비행 청소년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면 적절하지 못한 표현인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동성애자들을 위해서 기도 하자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한 표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동성애 법을 막아달라고 기도하는 것까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수식어 하나에 걸려 있다기 보다는 여러 가지로 걸리는 부분이 있기에 가장 약한 고리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걸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 ‘여러 가지로 힘든 부분이 있을 텐데 그래도 공동체 떠나지 않고 공동체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이렇게 답을 찾으려고 하는 부분에 응원을 보냅니다 내가 어떻게 안 되는 부분을 주님께서 만져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답을 드렸습니다 문들라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능동태와 수동태로 명령을 해 주신 것처럼 먼저 내가 머리를 들어 마음의 문을 열고 내가 미처 다 열지 못하는 그 문을 주님께서도 함께 열어주시기를 온 성도가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9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절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앞절과 



거의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어요그만큼 중요하고 강조하고 싶은 강조할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23 ~ 24편은 찬양 시로 분류가 되지만 동시에 메시아 예언시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말씀의 언약궤라고 하지 않고 영광의 왕 만군의 여호와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전쟁에 능한 여호와라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시는 개선장군처럼 메시아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사역을 마치시고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을 양육하시고 제자들 앞에서 승천하실 때에 청군 천사가 함께 모여 행군 나팔을 불며 영광의 왕 만군의 여호와께서 사탄의 권세를 꺾으시고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께서 하늘에 있는 성전으로 이제 들어가시니 문들아 너의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천국 천사가 외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소의 문도 열리고 하늘의 문도 열린 것처럼 내 마음도 우리의 마음도 열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 20절 말씀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그 그와 더불어 먹고. 그와 더불어 먹으리라 다. 함께 기뻐하며 찬양하며 뛰어놀 때 자기 연민 자기 상처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얼굴만 빼꼼이 내밀고 있는 우리의 자녀와 식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먼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문 밖에 서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화가 나서 쾅쾅쾅 두드리지 말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도 사랑이 느껴지도록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의 노크소리가 되도록 자녀들의 방문 앞에서 또 남편의 방문 앞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닫힌 문이 열릴 때까지 문 밖에 서서 악쓰지 말고 고함치지 말고 우리의 소리가 음성이 되어 그 문이 열릴 때까지 함께 기도하는 저와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3)


-나의 마음은 열린 마음입니까? 닫힌 마음입니까?

-여전히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못하고 얼굴만 빼꼼이 내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함께 기뻐하며 찬양할 때 혼자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으로 문 밖에 서서 두드려야 할 나의 가족은 누구입니까?

  

 

<Epilogue> 


1) 영광의 왕을 찬양하려면 내 것이 아니고 다 주님의 것이 되어야 한다.

2) 영광의 왕을 찬양하려면 행위가 아닌 은혜를 구해야 한다

3)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늘의 문도 열린다.

4) 목적이 없는 인생을 살다가 허망한 인생을 살 뻔 했는데 이제는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되라고 하시며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5) 오늘 주신 말씀으로 명절 연휴를 잘 살아낼 수 있도록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가족이지만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먼저 포기하지 않도록 먼저 우리가 마음에 문을 열고 문 밖에 서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합시다 

6) 임으로 고백하지만 마음으로 고백하려면 고난을 통과하여야 한다

7)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야 첫째 날이 하나님의 무지개 약속과 언약이 되어 인생에 노아의 홍수가 없을 것이다

8) 은혜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어 교만해 지게 된다

9) 빛과 어둠이 나뉘어야 하는데 공존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10) 뭍이 드러나야 쓸모 있는 땅이 되는 것이다

11) 구약은 장차 오실 예수님 이야기이고 신약은 이니 오신 예수님 이야기다

12) 상처가 별이 되어 내가 예수 만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13) 시내 산은 무섭고 두려운 율법을 주신 산이며, 시온 산은 여호와 성전이 세워진 산이다

14)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1) 손 청결(외적 행위) (2)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는 마음과 뜻의 청결을 (3)인간과의 관계에서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청결함에 근간을 두는 것이다

15) 행위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다

16) 우리의 원망이 찬양이 되고 불평이 찬송이 되며 우리의 고난이 할렐루야~ 아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17) 천지창조 첫째 날에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둘째 날에는 위와 아래의 물을 나누셨는데 셋째 날에는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또 물이 드러나게 하셨다

18) 나뉘어야 할 것이 있고 한 곳으로 모으고 드러나야 할 것이 있다고 하셨다 19) 한쪽은 모여서 바다와 강이 되고 또 한쪽은 뭍이 드러나므로 마른 땅이 되어야 한다.

20) 둘 다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고 각자 알맞게 쓰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21) 바다는 물이 모여서 더욱 풍성해지고 뭍은 드러나므로 마른 땅이 되어야 씨 가진 열매를 맺을 수 있으므로 우리의 인생도 창조의 질서 속에 살아가야 한다.

22) 내 인생 가운데 첫째 날과 둘째 날과 셋째 날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땅이 혼동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뒤죽박죽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인생이 공허하고 허망할 수밖에 없다.

23) 하나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신 것인데 모으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나누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24) 이 땅에 살면서 모으고 쌓고 더 긁어 모으고 쌓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기에 가진 것이 있어도 누리지 못하고 가진 것이 많아도 인생이 공허하고 허무한 것이다

25) 내 인생 가운데 창조의 질서가 세워지지 않으면 내 마음과 생각 속에도 어두움과 빛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6)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가 될 수 없기에 우리는 날마다 어둠의 생각과 빛의 생각을 나누어야 한다.

27) 갈등 충만이 성령 충만이라고 했으니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이 과연 빛의 생각인지 어둠의 생각인지 구분할 수 없으므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28) 은혜가 계속되면 그것은 나의 권리가 되고 나의 일상이 되기 때문에 집도 차도 땅도 내 것이고 자녀도 내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29) 그 터를 바다와 강들 위에 세우고 건설했기에 유라굴로 강풍이 한 번 불면 276명을 태운 큰 배도 한순간에 파손될 수 밖에 없다

30) 우리가 그 터를 반석 위에 세우지 않으면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은 그 기초가 너무나 허약하기에 한순간에 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 

31) 바다는 물이 모여서 더욱 풍성해지고 뭍은 드러나므로 마른 땅이 되어야 씨 가진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오랫동안 딴 생각 쓸데없는 생각 더러운 생각을 하며 살았기에 물에 잠겨 있는 땅처럼 쓸모 없는 땅이 되어 인생이 공허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다가 망하는 인생이 될 뻔한 것이 우리 인생이다

32) 구약은 율법의 말씀이고 신약은 은혜의 말씀인데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

33)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까 생각할 때 구약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신약의 빛 아래에서 읽어야 한다.

34) 율법으로는 언제든지 죄만 지적할 뿐 말씀에 대한 은혜와 구원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구약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35) 구약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고 신약은 이미 오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다

36) 우리도 언제든지 나의 이야기를 할 때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 살았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우리의 고난이 약재료가 되고 나의 상처가 별이 되어 예수님 만난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37)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도 양대 산맥으로 나뉘어져 있다.

38) 첫 번째 산은 광야에 있는 시내(Sinai)산이고 두 번째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Zion)산인데 구약의 율법은 이처럼 어두움이 빛 가운데로 나아갈 수가 없었으며 빛 대신 예수님이 반드시 먼저 찾아 오셔야 한다는 이야기다

38) 여호와의 산에 오르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첫째 첫 번째는 손이 깨끗해야 하는 것, 즉 눈에 보이는 외적인 행위가 깨끗해야 한다는 것으로 청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39) 예수님을 믿는다고 나는 이제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내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 것은 내 손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40) 두 번째는 마음이 청결하여 뜻을 허탈한 데 두지 않아야 하는 것, 즉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외적인 행위만 깨끗해서는 안 되고 그 마음과 뜻이 근본적으로 청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41) 마지막 세 번째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앞에 두 가지의 조건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인간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었다. 42)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는 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신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43) 이것은 행위가 아닌 은혜를 강조하는 말씀인데 나의 손이 얼마나 더러운 지를 알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나의 더러운 손을 씻고 깨끗한 손으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라는 의미다

44) 나의 마음이 불결하여 허탄한 것을 계속 생각한다면 나의 더러워진 마음을 공동체와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고 창녀의 마음이 아닌 청결한 마음으로 여호와 산에 올라오라는 의미다

45) 의를 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의를 얻는 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내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는 의미다

46)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내가 누구인가를 간절히 찾고 있는데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자라고 분명히 세 가지 조건을 달아 놓았는데 그 결론이 요셉의 하나님이 아닌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47) 결국은 나의 행위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갈 자는 없고 오직 은혜로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48) 내 손에 피를 묻히고 마음으로 음란을 행하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다가 나보다 더 강한 라반과 같은 사람을 만나 갖은 고생을 하고 인생을 낭비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우리들 공동체까지 찾아오셨나?

49) 내가 요셉처럼 살지 못했을지라도, 야곱처럼 속이는 인생을 살았을 지라도, 나의 피 묻은 손을 보며 회개하고 나의 창녀와 같은 마음을 회개하며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다.

50)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은 무섭고 두려운 신의 산이 아니고 은혜가 아니면 올라갈 수 없는 시온산이다.

51) 부르심을 받았으나 소명의식이 없고 언제라도 또 기회가 되면 목사의 직분을 내려놓고 그냥 주의 백성으로 살고 싶었기에 내 인생 가운데 창조의 질서가 세워지지 않고 땅이 혼동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기쁨 위에 있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사역을 하다가 여러 번의 치리를 받았다.

52) 내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늘의 문도 열리고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하늘의 문도 열리지가 않는다.

53) 사울의 딸 미갈이 남편 다윗에게도 닫힌 마음이고 여호와 하나님께도 굳게 닫혀 있는 마음에 문들에게 머리를 들라는 것은 시적 표현인데 빼꼼이 문을 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문을 활짝 문짝 전체를 들어올리라는 표현이다

54) 내 마음이 열려야 하늘의 문도 열라는 것처럼 목장에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55) 남편이 수치를 무릅쓰고 자기 나눔을 할 때 무슨 얘기를 하나 얼굴을 빼꼼이 내밀고 남편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얘기이며 남편들도 마찬가지로 아내가 계집종처럼 힘든 이야기를 조잘조잘할 때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들어야 한다.

56) ‘왜 남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 마음이 닫힌 마음이고 미갈과 같은 마음인 것이다

57) 성소의 문도 열리고 하늘의 문도 열린 것처럼 내 마음도 우리의 마음도 열려야 한다 

58) 함께 기뻐하며 찬양하며 뛰어놀 때 자기 연민, 자기 상처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얼굴만 빼꼼이 내밀고 있는 우리의 자녀와 식구들이 너무나 많다

59) 먼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문 밖에 서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화가 나서 쾅쾅쾅 두드리지 말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도 사랑이 느껴지도록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의 노크소리가 되도록 자녀들의 방문 앞에서 또 남편의 방문 앞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닫힌 문이 열릴 때까지 문 밖에 서서 악쓰지 말고 고함치지 말고 우리의 소리가 음성이 되어 그 문이 열릴 때까지 함께 기도하는 저와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9. 14. 09:52

[우리들교회 2021912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27: 9~ 26/유라굴로 광풍/이태근목사)]

 

 

<사도행전 27: 9~ 26>
  

9절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Much time had been lost, and sailing had already become dangerous because by now it was after the Fast. So Paul warned them)

10절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Men, I can see that our voyage is going to be disastrous and bring great loss to ship and cargo, and to our own lives also)

11절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But the centurion, instead of listening to what Paul said, followed the advice of the pilot and of the owner of the ship)

12절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Since the harbor was unsuitable to winter in, the majority decided that we should sail on, hoping to reach Phoenix and winter there. This was a harbor in Crete, facing both southwest and northwest)

13절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When a gentle south wind began to blow, they thought they had obtained what they wanted; so they weighed anchor and sailed along the shore of Crete)

14절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Before very long, a wind of hurricane force, called the "northeaster," swept down from the island)

15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The ship was caught by the storm and could not head into the wind; so we gave way to it and were driven along)

16절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As we passed to the lee of a small island called Cauda, we were hardly able to make the lifeboat secure)

17절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When the men had hoisted it aboard, they passed ropes under the ship itself to hold it together. Fearing that they would run aground on the sandbars of Syrtis, they lowered the sea anchor and let the ship be driven along)

18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We took such a violent battering from the storm that the next day they began to throw the cargo overboard)

19절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On the third day, they threw the ship's tackle overboard with their own hands)

20절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When neither sun nor stars appeared for many days and the storm continued raging, we finally gave up all hope of being saved)

21절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After the men had gone a long time without food, Paul stood up before them and said: "Men, you should have taken my advice not to sail from Crete; then you would have spared yourselves this damage and loss)

22절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But now I urge you to keep up your courage, because not one of you will be lost; only the ship will be destroyed)

23절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Last night an angel of the God whose I am and whom I serve stood beside me)

24절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and said, 'Do not be afraid, Paul. You must stand trial before Caesar; and God has graciously given you the lives of all who sail with you)

25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So keep up your courage, men, for I have faith in God that it will happen just as he told me)

26절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Nevertheless, we must run aground on some island)

 

 

<Prologue>

 

하나님 아버지 일 년 365일이 평온하기를 원하지만 봄여름 가을겨울 날씨의 변화가 있는 것처럼 강풍이 불어올 때가 있습니다. 많은 지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어떻게 평정심을 찾고 일상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을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네 지난주 말씀에 다시 살펴야 할 마케도니아가 있고 신경 써야 할 로마가 있다고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4주간의 일정으로 미국으로 출국하셨습니다. 이제 출타하시면 부목사 입장에서는 살짝 방학 같은 느낌이 있는데 딴짓 하지 말라고 있으라는 의미로 주일 설교를 맡았습니다. 주신 말씀으로 민산이 이야기를 하고 다음 주는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민산의 아빠로 지금은 두 아이의 할아버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손주가 돌아다니다 보니 저의 공간이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들 부부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누운 이에게 빼앗기다 보니 제공 간은 침대만 남았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와서 살게 되었을 때 걱정되었습니다.

 

도로 4대가 되었고 20살짜리 아내가 4대 시집살이를 살게 되어 불쌍하였습니다. 며느리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생활을 잘하는 거예요 제가 요즘 시집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집에서 가장 큰 목소리 사람이 며느리입니다. 아이들 밥 먹이는 것으로 전쟁을 치르고 밑에 집에서도 그렇게 소리 지르냐고아이 키우다 보니 협박과 야단이 지속되는데 침대에 있으면 혼나는 것 같아 출근합니다. 이래저래 불편해 지긴 했습니다. 하나도 힘들지 않죠. 예전의 아내와 함께 민산이 잡으러 다니느라고 추격전 하던 걸 생각하면 배부른 시절입니다. 저도 너무 알기에 이래저래 감사한 것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풍랑과 강풍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도 유라 굴로 광풍(hurricane force called ‘Northeaster’)입니다. 그런데 매우 따스한 남풍이 높은 산에 만나면 남풍이 북풍으로 변하면서 북동풍이 내려치게 되는데 이 바람에 의해 배들이 밀려 파손되거나 650km나 되는 아프리카까지 떠내려가다가 배들의 무덤으로 유명한 곳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오늘 배경이 되는 그레데 섬(the island of Crete)은 제주도의 3배되는 크기이고 한라산보다도 높은 산입니다. 그래서 유라굴로 강풍은 동풍과 북풍이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매의 눈을 가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만났을 때’, ‘바람 피우고 있는 남편과 물증 잡은 아내가 만났을 때’, ‘아이와 문제 부모가 만났을 때유라굴로 강풍이 만들어집니다. 4대의 구조 속에서 비교적 잔잔한 일상을 보냈는데 만산이가 가출한 사건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분류심사원에 들어간 사건 19살 나이에 20살 여자친구를 임신시킨 사건 한번 강풍이 불기 시작하니 그칠 줄 몰랐습니다. 어찌하다가 광풍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말씀요약>

 

1.   말씀보다 전문가의 말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9절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절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절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보다 더 신뢰한다고 하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래도 배운 것도 많고 능력도 있고 비싼 외제차도 있는 그런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말씀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었기에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9절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여러 날이 걸렀다는 것인 여기까지 오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이 다른 죄수들과 바울을 로마로 압송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로마까지 가는 일은 험했습니다. 작은 배를 탔는데 조그마한 항구 연안지역을 돌기 때문에 무라시에 있는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작은 배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엄청난 뱃길입니다. 담임목사님이 경비행기로 태평양을 건널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범선을 사용했습니다.

 

바울 일행과 다른 죄수들을 태우고 출항했습니다. 곡물을 운반하는 법 선하는 276명의 승객과 선원 죄수 군인들이 그 배에 탔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맞바람을 맞으며 간신히 미항이라는 곳에 정박합니다. 오늘 9절 말씀이 시작되는데 금식하는 절기는 유대인의 속죄일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날짜로 9 10월 초인데 10 5일이었다고 합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9 15일 항해는 부담스럽게 생각했고 11월 항해는 자살행위로 여겼습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10절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절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냥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목장에서 목자의 말을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됩니다. 전공분야가 아니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내 인생에 유라굴로 광풍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며 산전수전을 겪었습니다.



3번이나 배가 부서졌습니다. 전공분야가 아니어도 산전수전을 겪은 목자와 초원 지기가 있기 때문에 곱씹을 말이 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어도 십자가를 길로 놓았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민산이가 한참 사고를 칠 때 중 고등부 사역자님들이 심방을 오겠다고 심방을 왔습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는 있기에 심방을 오면 아이들에게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도와줄 거고 함께 나누고 먼저 엄마 아빠가 적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데 목사인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게 싫었습니다. 심방을 받으려고 하니 불편하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른 일정을 잡아 심방을 가고 아내가 사역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민산이 문제를 제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방황하고 있지만 착한 아이였기에 제자리로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인 제가 백부장이 되어 다른 곳으로 혼자 심방을 다닌 것 같습니다. 그때는 작은 맞바람이 광풍이 될지 몰랐습니다.

 

 

(적용#1)


-내 인생 가운데 만난 유라굴로 광풍은 무엇입니까?

-말씀보다 전문가의 말을 더 신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선장이 되고 선주가 되고 백부장이 되어서 무리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때 그 처방을 내가 들었어야 했는데 지금와서 후회하고 회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실 백부장이 바울을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편의를 봐주었고 성도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시간을 주고 상당한 자유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은 것은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떠났기 때문입니다.

 

 

12절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미항에서 뵈닉스(Phoenix)로 옮겨 겨울을 지내자고 하는 거예요 뵈닉스도 같은 섬의 다른 항구입니다. 미항은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항구인데 여름 한철 휴가지로 보내기에 좋은데 겨울을 나기에는 불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65km 떨어져 있는 뵈닉스(Phoenix)로 가고자 했습니다.

 

전문적인 소견이 있어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여기보다 저기가 낮다고 이렇게 사는 것도 사는 거냐고 뵈닉스는 미항보다 더 큰 항구이고 술집도 있고 나이트클럽도 있고 놀이시설도 있고 편안한 곳으로 떠났는데 광풍을 만났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미항일 수 있습니다.

 

조금 불고 찬바람이 불더라도 가장 아름다운 항구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떠나니 광풍이 부는 것입니다. 요즘 직장에 가면 다 주식을 하고 비트코인을 한다고 합니다. 누구는 이렇게 대박을 쳤네 너도나도 비트코인을 한다고 하니 영끌 하자라고 하여 무리하게 항해를 하다가 광풍을 만납니다.

 

무조건 이것도 저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때와 시를 분별하지 못하면서 여기저기에 휩쓸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가 미항이라는 것을 알 때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도 많이 이야기해서 아실 테지만 늦은 나이에 저희 아버지는 다단계 ATM에 빠져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공했는데 저와 아내 너희들이 도와주지 않아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없을 때 제 아들을 가입시켰습니다. 자포자기하시지만 여전히 배의 돛을 달고 ATM 바다로 나가고 싶어 합니다. 돈을 투자한 게 아까워서 누님이 운영하는 가게로 가서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 돈으로 산 것이 많고 이것이 이제 노후보장이 될 것 같아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멀리멀리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적용#2)

-조금 불편하고, 찬바람이 부록, 비좁은 이곳이, 나에게 허락하신 가장 아름다운 항구, 미항이라는 고백이 있습니까?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헛된 욕심으로 무리한 항해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항에서 뵈닉스로 갈아타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자동차입니까, 집입니까, 학벌입니까, 주식입니까)



10년 전에 나온 영화 중에 최종 병기 활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명대사가 유행인데 두려움은 극복하면 될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성경에는 극복이라는 단어가 안 나옵니다. 극복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지 극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3.   순풍이 변하여 광풍이 되었습니다.

 

 

13절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절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백부장이 말씀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듣고 출항했을 때 돋을 달았습니다. 잠깐 불어오는 순풍 때문에 주식을 하고 전 재산을 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풍이 분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깨어있어야 합니다. 순풍 다음에 얼마 안 되어 유라굴로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15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절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절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배가 잠시 가우다(Cauda)라는 곳으로 떠밀려갔습니다. 그러니 섬 밑으로 내려가니까 북에서 내려오는 유라굴로 바람이 약해졌죠 선장과 선원이 간신히 끌어올립니다. 거루(lifeboat)는 작은 배를 의미합니다. 이번처럼 큰 광풍을 만나게 되면 부딪혀 파손될 수 있기에 끌어올려야 합니다. 파손되었을 경우 항구시설이 준비되어 있지 않는 곳에 착륙할 때 필요한 구명보트(lifeboat)입니다. 선장과 선원이 숙련된 방식으로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항해를 하면 반드시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이 사공들이 갑판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몰래 도망칠 궁리를 하다가 딱 걸렸습니다. 회사가 부도나고 남편이 바람나고 큰 광풍을 만나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면 함께 헤쳐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갑판 위의 배를 타고 무리로 종종 도망칠 때가 있습니다.

 

18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절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이튿날이 되어도 잠잠해지지 않고 선원들은 배로 가볍게 하기 위하여 짐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곡물과 수하물을 바다로 버린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라굴로 광풍이 기승을 부리니 더 가볍게 하기 위해 배의 기구를 뱃사람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바다에 내어 던집니다.

 

20절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두려움은 극복하면 될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더 깊이 빠져들 뿐 지금 내가 어디에 떠 있는지 바다 한가운데에서 떠 있는 상황이 왔습니다.

 

 

(적용#3)


-순풍이 변하여 강풍이 된 사건은 무엇입니까?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치며, 악을 쓰며, 피를 토하며, 마지막까지 내 힘으로 극복해 보려고 한적이 있습니까?

 

민산이의 사춘기는 아주 작은 바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중학생이 된 아들이 교복 바지의 통을 줄여달라고 하더라고요 아내가 옷 수선집에서 통을 줄여 가지고 왔는데 더 줄여달라고 막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충분히 좁은 것 같은데 그 당시 민산이가 그 얇은 다리가 막 겨우 정말 겨우 들어갈 정도로 마치 교복 바지를 레깅스처럼 입고 다녔어요.



그 당시에 그때는 이제 잔잔한 바람이 이제 유라굴로 광풍이 될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동료 사역자들이 심방이 오겠다고 했는데도 저는 그냥 혼자 거룻배 타고 다른 곳으로 신방을 갔습니다 잠깐 지나는 바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민산이가 워낙 워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사춘기가 지나면 민산이도 자기 자리로 돌아올 거라고. 얼마 후에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1456m 높은 산에서 한 번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고요 한 번 나가면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한 번 자면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살 소망이 없는 아이처럼 멍 때리고 있는 민산이를 보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 극복하려고 하니 민산이를 도와주기 보다는 사건을 더 크게 만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민산이가 45일 집을 가출한 사건도 그랬고. 민산이가 오토바이 문제로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도 제가 문제를 더 크게 확대시키니 아들이 아빠와 가정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세상으로 계속 해서 떠내려갔습니다



그러다가 차 털이 에 연루되어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고 청소년 법정에서 30일간 분류심사원에 이제 구금되는 사건까지 왔습니다 이제 그 정도 되니 이제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민산이는 군대 생활을 이제 군대 생활을 어떻게 하지. 군대 가면 어떻게 막 걱정 많이 했거든요.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D.P.(Deserter Pursuit/ 탈영병 추격조)가 유행이라고 하는데 민산이도 뭐 탈영병 아니면 간신 병사가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

생각을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는 기본적인 생활이 전혀 안 되니 분류심사원의 엄한 규율과 벌점 때문에 30일 후에 또 소년원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항에서 출발한 배가 가우다(Cauda)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가면서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올리고 선체를 둘러 감고 연장을 내리고 잠시 숨을 돌린 것처럼



민산이가 분류심사원에서 모범수로 판정을 받고 법정에서 판사님께 칭찬을 듣고 나는 그 판사한테 혼났는데 자기만 칭찬 듣고 무사히 이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분류심사원에서 출소하던 날 잠깐 교회에 들려 이제 온 가족이 담임 목사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고 민산이도 이제 30일간 분류심사원에서 큐티를 하며 자기의 간증 거리가 생겼습니다 순풍이 부니 돛을 단다고 그렇게 뵈니ㄱ스까지 순항할 줄 알았는데 그날 저녁 친구들과 어울리느냐고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친구들과 매운 음식에 술을 마시느라고 분류심사원에서 나온 첫 주 첫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민산이를 태운 배는 유라굴로 광풍에 계속해서 떠밀려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민산이가 저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무슨 얘기를 또 하려고 하나? 집에 들어가니 선뜻 말을 하지 못했어요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다고 합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지키고 싶다고. 자기가 아이와 여자친구를 책임지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민산이에게 수없이 돌을 던졌습니다. ‘네가 책임을 진다고? 네가 책임이라는 게 뭔지 알기나 해?’ 그렇게 화살을 민산이에게 쏟았습니다 순풍이 변하여 광풍이 되었을 때 3년 전 지금부터 딱 3년 전이에요 3년 전. 그때도 담임 목사님이 해외 집회로 출타 중에 계셨습니다. 목사님의 집회 일정이 늘어나시면서 돌아오는 주일날 이제 이태훈 목사가 주일 설교하라고 메일을 이틀 전에 소식을 받고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이제 민산이의 여자친구 임신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정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쁜 놈, 말을 하려면 며칠 있다가 주일 설교 끝나고 차라리 말을 하든지. 지금 이렇게 무작정 폭탄을 터뜨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저 혼자 이제 거룻배를 타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습니다 3년 전 주일 설교 때 이제 어떻게 강대 상에 이제 서야 할지 이제 정말 그냥 육지가 보이지 않는 바다에 홀로 떠 있는 기분이었어요. 이 자리가 그래서 그날 주일 설교 때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집사님들이 민산이의 기막힌 소식을 듣고 그냥 하는 한숨 소리가 그냥 딱 들리더니 그냥 적막감이 그때부터 이제 흘렀습니다 태풍의 중심지에 들어온 것처럼 개미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일부 예배 마치고 사역자실에 잠깐 올라갔는데 동료 사역자들도 눈을 안 맞추는 거에요. 다 이렇게 책상에 머리 받고 쳐다보지를 않아요. 주일 2부 예배도 숨막히는 적막감 속에서 설교를 마쳤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강당이 중앙 출입구에 서 있는데 막 성도님들도 선뜻 다가와서 인사하지 못하고 그냥 멀리 멀찍이서 살짝 보시고 막 가시고 그냥 강대상에서 설교할 때보다 설교 끝나고 예배당 뒤쪽 통로에서 그냥 이렇게 서서 인사하는 시간이 더 길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남자 집사님이 이제 나가 다가 오셔서 저에게 이렇게 한마디를 하시는 거예요 목사님, 왜 이리 힘들어 하세?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근데 순간 머리가 살짝 띵하더라고요 홀로 망망대해 바다 가운데 서 있는데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그렇지 맞아!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그런 마음이 정말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4.   광풍 가운데 이제는 안심하라고 합니다.

 

 

21절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절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이제는 안심하라고 합니다. 바람이 그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해 달 별이 보이지 않지만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져 눈이 풀리고 아비규환 절규를 하고 있지만 이제는 안심하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목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의 바람 시댁과의 갈등 경제적인 갈등 등 환경이 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있기에 안심하라고 합니다.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 손상이 없고 수치와 조롱을 각오하면 평안한데 그게 안되니 무서운 것이 많습니다. 배가 파손 되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 혼자 살자고 도망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3년 전 민산이의 유라골로 광풍이 불었을 때가 이때였습니다.

 

23절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절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도 두려워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도 두려워했다는 것이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두려움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산전수전 공중전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때에 맞는 처방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도 분명히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Caesar) 앞에 서야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하였으니. 나에게 주신 말씀이 있어야 두려움이 변하여 사명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같은 배를 탄 자기를 포함한 276명의 사람들에게 이제는 안심하라고.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줄을 믿는다고 확신에 찬 고백을 했습니다 



26절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민산이가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대학교도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조기 취업이 되어서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배는 파손되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셨는데 민산이에게 있어서 파손된 배는 뭘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민산이에게 파손된 배는 뭘까요 부서진 건? 민산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년의 때가 없이 바로 부부 목장의 집사가 되었습니다 청년의 때를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했어요. 청년부 목장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그냥 바로 아기 아빠가 되고 그냥 부부 목장의 집사가 되었습니다.



부부 목장의 목자와 권찰님은 두 분 다 이제 부서에서 오랫동안 중고등부 교사로 이제 섬기 시고 섬기고 계신 집사님들인데 민산이를 어렸을 때부터 이제 보셨거든요. 그런데 민산이가 부부 목장에 자기 목장이 딱 배정되는 그 첫날부터 단 한 번도 민산이라 부르지 않고 항상 민산 집사님 민산 집사님 민산 집사님 민산 집사님 하시는데 막 처음에는 뭐 옆에서 듣는 저도 어색한데 이제 그게 듣기가 좋더라고요. 어느 순간 한결같이 그렇게 불러주시면 좋은 거예요 그냥 민산 집사님 민산 집사님. 민산이가 이처럼 한 섬에 정착하고 감사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자랑질을 좀 할게요



민선이가 이제 대학교를 마칠 거라고 이제 상상을 못했어요. 집 앞에 있는 고등학교도 장기 미 출석과 퇴학 위기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막 민선이 졸업을 하는데 학교 교무실 모든 선생님이 기뻐하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데 어떻게 멀리 지방에 있는 대학교를 다닐까. 당연히 안 되는 거예요. 하지만 첫 등록금을 학교에 기부 하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제 했는데. 근데 벌써 이제 마지막 학기인데 교수님의 추천으로 조기 취업이 되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늦게 일어나서 학교를 빠진 적이 없어요 학교 생활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녔다기 보다는 이제 가정이 가장이 되었는데 그래도 대학교는 나와야 이제 처자식은 먹여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것도 힘들고 아빠 해봤어/

그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거 장난 아니야지난 3년 동안 6시 반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모란 역에서 7 40분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등록금도 3학년 6학기 동안 들어간 게 없어요.



처음에 낸 것도 돌려받았어요 나라에서 반절은 대준 것 같고 나머지는 이제 성적 장학금인지 뭔지 그렇게 저렇게 다 해결이 되고 해서 오직 매 학기 책값과 밥값만 들어갔습니다



방학 때는 알바를 해서 한 푼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모두 이제 아내한테 주고 얼마 전에는 이제 조기 취업이 되어 첫 월급을 받았는데 먼저 십일조를 떼고. 그런데 자기는 당연히 십일조 그냥 뭐 할 줄 알았대요 그냥 십일조. 그럼 딱 이렇게 할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할 줄 알았는데 딱 3초가 고민 되더래요. 3초 그러고선 그냥 더 고민하기 싫어서 십일조 이제 보내고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까지 용돈을 챙겨줬습니다 민산이의 두 아들 노은이와 지은이도 너무 건강하게 잘 자라요. 둘째 지운이를 낳고 둘째 낳고 이제 산부인과 병원에서 이제 퇴원 수술을 받는데 이제 그 퇴원 서류를 보니 아빠 나이가 이제 만으로 계산을 하니까 만으로 열아홉 살, 둘째 출산일때 엄마 나이가 만으로 스무 살로 되어 있더라고요. 둘째를 19-20살에 낳아서 그런지 둘째 지운이가 정말 건강합니다. 깜짝 놀라요 그냥 우량아에요. 깜짝 놀라요 비만은 아닌데 8개월 되었을 때 일어나고 9개월 되었을 때 걸어 다니고 첫 돌 되었을 때 거짓말 조금 못해서 막 뛰어다니는데 지금 13개월 됐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책 꽃이 위에 뭐가 있는지 책장을 타고 그걸 빼려고 하더라고요.



거짓말 같은 데 진짜예요 그런데 이제 민산이가 한 가정을 이루고 같이 살면서 이제 가장 감사했던 순간이 있을 거잖아요 이제 그날이 언젠가 하면 민산이가 어느 날 저에게 공지 문자를 전달을 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문자 내용을 보니 이제 자기가 속해 있는 목장과 마을이 교회 청소 담당인데 시간을 맞춰서 자기를 교회까지 데려다 달라 공지 문자를 보낸 거예요. ‘한 섬에 걸린다’(run aground on some island/어떤 섬에 죄초하다)는 것은 비록 배는 파손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말씀을 하신 것인데 민산이에게 파손된 배는 살아보지 못한 청년의 때이지만 부부목장이 민산이에게 한 섬이 되어서 이제는 순풍이 좀 분다고 돛을 달고 나갈 생각부터 하지 않고 지금이 더 머물러야 할 때인지 기다려야 할 때인지 아직 겨울인지 언제까지 좀 더 참고 기다려야 하는지를 분별해야하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항구 목장 미항에서 묶고 가니 첫 월급을 받았을 때보다 또 두 아이가 태어났을 때보다 나 오늘 교회 가서 교회 청소해야 하니 시간 맞춰서 데려가 달라고 한 것이 가장 기쁘고 마음에 남고 감사한 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말씀대로 다 된 것 같습니다 

 

 

(적용#4)

 

-해도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진 채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Epilogue>

1)  어찌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이 불었을까말씀보다 전문가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며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떠났기 때문인데 순풍이 변하여 얼마 후에 광풍이 되었다.

2)  하지만 오늘 주님께서 흔들리는 배 위에 있는 우리에게 이제는 안심하라고 하신다

3)  욕심의 배, 탐욕의 배, 세상 가치관으로 쌓은 모든 것이 파손되겠지만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생명을 보존할 거라고 약속해 주셨다.

4)  전공분야가 아니어도 산전수전을 겪은 목장공동체의 목자와 초원 지기가 있기 때문에 곱씹을 말이 있는데 그냥 하는 말이라고 해도 십자가를 길로 놓았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5)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떠나니 광풍이 부는 것이다.

6)  누구는 이렇게 대박을 쳤다며 너도나도 비트 코인을 한다고 하니 영끌 하자라고 하여 무리하게 항해를 하다가 광풍을 만나게 된다.

7)  무조건 이것도 저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때와 시를 분별하지 못하면서 여기저기에 휩쓸리지 말라는 것이다.

8)  최종 병기 활이라는 제목의 영화 중 명대사가 유행인데두려움은 극복하면 될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영화는 영화일 뿐 성경에는 극복이라는 단어가 안 나온다.

9)  성경에는 극복이라는 단어가 없으며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0) 순풍이 분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깨어있어야 한다.

11) 순풍 다음에 얼마 안 되어 유라굴로 광풍(hurricane force called ‘northeaster’)이 크게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12) 회사가 부도나고 남편이 바람나는 등 큰 광풍을 만나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면 함께 헤쳐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갑판 위의 배를 타고 무리로 종종 도망칠 때가 있다.

13) 두려움은 극복하면 될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더 깊이 빠져들 뿐 지금 내가 어디에 떠 있는지 바다 한가운데에서 떠 있는 상황이 왔다.

14) 남편의 바람, 시댁과의 갈등, 경제적인 갈등 등 환경이 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있기에 안심하라고 한다.

15)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 손상이 없고 수치와 조롱을 각오하면 평안한데 그게 안되니 무서운 것이 많게 되는 것이다.

16) 배가 파손 되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

17) 나 혼자 살자고 도망칠 곳이 없기 때문이다.

18) 두려움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두려움을 이야기하며, 산전수전 공중전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때에 맞는 처방을 할 수 있겠나?

19) 바울도 분명히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절망하지 않았다.

20)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Caesar) 앞에 서야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하였으니 나에게 주신 말씀이 있어야 두려움이 변하여 사명이 되는 것이다.

21) 한 섬에 걸린다’(run aground on some island/어떤 섬에 좌초하다)는 것은 배는 파손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말씀을 하신 것인데 민산이에게 있어서 파손된 배는 살아보지 못한 청년의 때이지만 부부목장이 민산이의 한 섬이 되어서 이제는 순풍이 좀 분다고 돛을 달고 나갈 생각부터 하지 않고 지금이 더 머물러야 할 때인지 기다려야 할 때인지 아직 겨울인지 언제까지 좀 더 참고 기다려야 하는지 분별해야 한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9. 6. 12:45

[우리들교회 202195일 주일예배 말씀요약 (사도행전 19: 21~22/ 성령의 경영)]

 

 

<사도행전 19: 21~ 22>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After all this had happened, Paul decided to go to Jerusalem, passing through Macedonia and Achaia. "After I have been there," he said, "I must visit Rome also.")

 

22절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He sent two of his helpers, Timothy and Erastus, to Macedonia, while he stayed in the province of Asia a little longer)

  

 

<Prologue>

 

 

아버지 하나님 수많은 우리가 경영을 하고자 합니다그런데 이 땅의 경영이 아닌 성령의 경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성령의 경영을 하기 원하오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지난주 성령의 세력이 쌓이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쌓이면 유지하기가 힘듭니다경영을 잘해야 해요. ‘경영하다는 사전에서 보면 기초를 닦고 계획을 세워 행하다입니다성령의 경영은 생각 못 한 경영을 하게 합니다바울은 쌓인 세력으로 마케도니아와 예루살렘 그리고 로마를 가기를 경영합니다작정했다고 합니다경영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성령의 경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1.   성령으로 인도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이 일이 있을 후에는 무엇이죠바울이 성령의 세력을 얻어 에베소(Ephesus)에서 말씀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힘 있게 흥왕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5만을 불태우는 위력을 보며 그러면 에베소 교회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닙니까? ‘오늘만 같아라하는 분들이 많죠 안디옥(Antioch)에서 시작한 선교가 수많은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거쳐 에베소에서 꽃을 피웠습니다과연 에베소였습니다성령의 인도는 정확했습니다 5만을 불태우면 성령이 임하는 개혁이 아닙니까?

 

복음을 제대로 경험했을 것입니다세계의 심장부 로마로 갈 비전을 보았습니다 거쳐라는 표현은 두루두루 방문하다는 뜻입니다바울의 전도여행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발칸반도의 북쪽인 마케도니아(Macedonia)와 아가야(Achaia)까지 전도하며 다시 로마까지 방문하겠다는 계획은 그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기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가고자 합니다예수의 심장을 가진 열정입니다여기서 누가는 방문할 계획을 작정하여라고 해요

 

이것을 경영이라고 했습니다작정이나 경영은 영안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푸뉴마라는 단어를 썼습니다경영을 바울의 영 안에 두었다는 것인데 바울의 영 혹은 성령의 영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으로 작정했을까요성령의 거절까지 겪어 여기까지 왔잖아요 아시아의 에베소에 가고 싶었지만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못 하게 하셨다고 했어요 아무리 핍박과 환란이 있어도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박해이고 전도를 막는 것입니다그래서 아덴(Athens)에서 떠났잖아요 성령이 막았어요 자신의 의지와는 달랐지만 자신의 계획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아시아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는 것을 경험했어요 성령의 뜻이 되게 기도하면서 에베소까지 왔어요 성령의 경영이었습니다성령 안에서 작정하고 결심하고 경영한 것 맞습니다바울이 가고 싶은 곳이 아닌 성령 안에서 가야 하는 사명지를 찾는 것이 경영입니다복음 전파를 했지만 되었다 함이 없어요 마케도니아는 다시 살펴야 하고 늘 내 친정 예루살렘은 신경 쓰이는 곳이고 반드시 보아야 하는 로마가 있습니다처음부터 로마를 가야는 아닙니다전하다 보니 로마 까자 갈 수 있습니다매일같이 하는 일을 잘해야 로마이고 미국도 갈 수 있습니다.

 

경영을 잘해야 하는데 소아시아 지역은 복음이 전파되었고 다른 전도자들도 복음을 전했던 까닭에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바울의 원칙이 있어요 그러니까 소아시아에서는 적합한 지역이 아닙니다날마다 세밀하게 인도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 12절에서 14절까지 보면은 이게 이제 원칙이에요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이러한 원칙 아래 하나님과 이 깊은 영적 교회 속에서 선교 전략을 경영했습니다. 바울의 경험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교훈이었고 성령의 원칙이 되었습니다선교나 전도의 과정에 처음과 마지막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세요 그러니까 바울의 경영의 목적은 효과적인 선교를 통한 교회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습니다 근데 바울이 지금 청춘입니까 늙어도 너무 늙었어요바울의 열정이 있을 만 해서 있는 게 아니에요.

 

바울은 이러한 원칙 안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안에서 선교의 원칙을 하나님과 공유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의 주체는 하나님이세요 바울의 경영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습니다 바울이 청춘입니까늙어도 너무 늙었습니다바울의 열정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57세인데 그때는 80~90세쯤 나이 입니다사역을 마무리할 시점이 지나도 한참 지났습니다.

 

23절부터 읽어 볼게요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나는 더욱 그러하도다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많고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육적인, 정신적인. 영적인 괴로움을 힘들게 골고루 지속적으로 당했어요

 

그렇게 고난 받으면서 서울에서 뉴욕보다도 더 먼 거리를 도보로 또는 배 타고 그렇게 다녔어요 이제는 안식하고 마무리 잘하고 전도한 것 유지만 해도 따라갈 자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결정도 성령 안에서 해야 하는 거예요 바로 말씀 안에서 하는 것이죠그러니까 날마다 듣는 강론과 큐티와 이렇게 나눔은 인도받는 큰 원칙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직전 본문 날마다 강론하고 날마다 큐티하고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예배하고날마다 교제하고 이렇게 목장 하니까 성령의 세력이 쌓이니까이 두란노서원의 강론 후에 지금 바울의 이제 경영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성령의 세력이 쌓이니까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거치고경영도 잘하고 통과도 잘합니다저는 이렇게 남편이 가기 전까지는 해외에 평생 한 번도 못 나갔어요 여행도 간 적이 없어요게다가 영어도 못해요.

 

그런데 제가 날마다 두란노 서원의 강론처럼 날마다 큐티하고 그러면서 제 자신의 부흥과 개혁을 맛보니까 이 에베소 같은 강남에서 회계 운동과 개혁이 일어나서 가정이 정화되기 시작했고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일 후에 제가 이제 교수들 순회 연주로 동부 서부로 미국을 갈 일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러면 제가 처음으로 미국에 초청을 받아 가니까너무 좋아해야 되겠는데 그때 또 제가 재수생 큐티 모임부터 하는 게 많아 가지고절대로 갈 마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남편이 날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내가 오라고 그래도 안 가근데 우리 남편 나를 꼭 이렇게 집에다 묶었잖아요.

 

집에 떡 있는 것처럼 안 나가는데 그러니까 이제 몰라도 한참 모르는 거죠. 마음이 없는데 어떤 미국의 기독교 신문사 사장님이 저를 만나자고 하는 거예요그래서 저한테 집회를 요청했어요저 같은 사람한테 집회를 요청하니까근데 그날 큐티 본문이 뭔 줄 알아요.

 

사도행전 17 1

우리가 배 타고 이탈리아로 갈 일이 작정됨을.

 

이탈리아가 로마잖아요지금으로 말하면 미국이잖아요너무 놀란 거예요그러니까 이거는 이제 무조건 가야 되는 거죠말씀 사역 때문에 사명을 주셨으니까그러니까 바로 이게 진리의 영, 성령의 영으로 제가 인도함을 받은 거잖아요.

 

3차 전도 시점에는 그 비슷하신 시기에 비롯한 그냥 말문이 딱 막히는 고민입니다육적인, 정신적인 괴로움을 지속적으로 당했습니다고난 받으며 서울에서 뉴욕으로 배 타고 걸으면서 갔어요 안식하고 전도하고 유지만 해도 잘하는 것 아닙니까날마다 듣는 강론과 큐티와 나눔은 인도받는 큰 원칙이 됩니다날마다 강론하고 날마다 큐티하고 교제하고 목장을 하니까 성령의 세력이 쌓이니까 두란노서원의 강론 바울의 경륜이 나오잖아요 어떤 문제가 와도 흔들리지 않고 경영도 잘하고 통과도 잘합니다.

 

저는 이렇게 남편이 (천국)가기 전까지 해외도 못 나갔습니다영어도 못합니다그런데 제가 날마다 두란노서원의 강론처럼 큐티하고 예배하니까 에베소 같은 강남에서 회개운동과 개혁이 일어나서 가정이 정화되기 시작했고 살아나가 시작했습니다동부 서부로 미국을 갈 일이 생겼어요바울도 경영을 해도 걸리지만 인도는 정확했습니다제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교수님들께 오며 가며 간증한 것 때문에 동부 서부를 여행하니까 분란이 일어납니다큐티하는 제 모습을 보고 간증하라고 해서 간증합니다연주회를 할 때마다 저를 소개를 해주어서 제가 연주회 끝나고 나서 간증할 수 있게 되어서 간증을 했고 유명한 사람이 왔으니 복음 방송이 나가게 되었고 코스타에 나가게 되었고 성령님이 나가게 해주셨습니다그러니까 뭐가 기도했는데 안 되었다고 하면 안됩니다하나님이 책임져주십니다이번에 가는 미국에서도 사도행전 설교를 하고 큐티하는데 가는 것입니다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성우 목사 보세요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에 엄마는 외도하고 나가고 이제 이런 약재료가 있잖아요그러니까 이게 장례식이고 저기 영접할 때마다 보통 이제 아버지 얘기만 하면 다 영접하는 거 있죠 우리 아버지 알코올 중독이고 우리 엄마 외도하시고 집 나가고 이런 얘기하면 그래서 요새 그냥 좀 재미를 참 많이 보는 거 같애저도 그냥 가기만 하면 우리 남편그냥 갑자기 의사인데 하루 만에 갔다 이 얘기만 하면 그러니까 우리가 이 말문이 딱 막히는 고난으로 사명이 되는 거예요 사명 그러니까 이렇게 좋은 유산을 주실 수가 있는 거죠최고의 유산을 줬다고 큐티 나눔에 이렇게 이제 우리 하는데 올렸는데 그러니까 저도 우리 남편의 이 고난 최고의 유산을 줘 가지고 평생 제가 써먹잖아요여러분 고난이 없으면 뭐 가지고 써먹겠어요그러니까 이게 사명으로 딱 발상의 전환을 하셔야 되는 거예요

 

 

(적용#1)

  

-여러분의 경영은 성령의 인도가 원칙입니까내 실력이 원칙입니까여러분에게 말문이 딱 막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그것으로 요동됩니까사명으로 인식됩니까?

 

 

2.   전파한 곳은 후속 관리(A/S)를 합니다.

 

A/S하는겁니다여기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입니다.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22절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먼저 3차 전도 여행을 마감하며 고린도와 에베소에 있었던 동안 못 가본 1 2 3차 여행 때 전도 해놓은 교회들을 다시 찾아보고자 한 것이죠.

 

왜 방문합니까글쎄 고린도(Corinth)하고 에베소(Ephesus)에서 거의 5년 동안 이렇게 날마다 강론하면서 제자 훈련을 시켜봤더니 너무 열매가 많은 거예요그러니까 자기가 그동안 그냥 막 3주일도 지나고 3주일만 복음 전하고 거쳤던 이 교회들을 생각하니까 너무 걱정이 되는 거죠바울은 늘 자신이 전도한 것의 성도들을 복음으로 낳은 자식으로 생각하고 늘 돌아보고자 합니다 잘 자라는지 악한 마귀기 틈타고 있지 않은지 가라지가 와서 악한 씨를 뿌리지 않는지 늘 염려합니다.

 

그래서 모든 서신서가 이단에 대한 염려가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찾아가고자 한 것이 특별히 마게도냐(Macedonia)와 아가야(Achaia)의 교회들입니다

 

 

 

 

마게도냐 지방에 빌립보(Philippi) 데살로니가(Thesalonica) 베뢰아(Berea) 암비볼리(Amphipolis) 이렇게 나오잖아요그리고 밑으로 쭉 내려와서 거기가 마게도냐 지방이고 밑에는 아가야 지방이고 아덴 고린도 겐그레아 뭐 이런 데가 있잖아요그러니까 발칸반도 저 위쪽이 마게도냐고 아래가 아가야고 그리고 이제 이쪽으로 이제 저기 애베소가 이렇게 보이죠.

 

에게해 보이죠그러니까 고린도 저쪽에 빌립보 새 교두보를 바울이 이렇게 전도를 이렇게 잘 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마게도냐와 아가의 교회들을 이제 첫 번째 찾아보기로 했는데이 마게도냐에서는 자주 옷감 장수인 루시아를 전도하고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고 그래서 매맞고 옥에 갇혀서 기도하고 찬송해서 옥문이 열린 빌립보가 있죠 우리가 복습을 합시다그리고 성령의 강론을 3주일하고 쫓겨난 데살로니가(Thesalonica)가 있고날마다 간절히 성경을 상고한 신사적인 베레아(Berea)가 있어요.

 

그리고 이 밑에 아가야에서는 새 것을 좋아해서 성령의 격분을 한 아덴과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아서 1 6개월 동안 가르친 고린도가 있죠.

좋아서 하는 자발적인 서원을 갚으면서 머리 깎은 겐그래아 등이 그 곳이에요 이제 또한 에베소 사역 중에 고린도 교회가 파가 갈라졌어요.

 

그래서 급히 에베소에 있으면서 고린도교회를 방문한 바울은 고린도 후서 이제 2 1절에 보면 그 돌아온 뒤에도 항상 이제 교회에 대한 염려가 끊이지 않았어요그래서 고린도 후서 11 28절에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아까 27절까지 바울의 그 열거했던 그 모든 고난이 있죠그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교회를 위하여서 눌리는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읽어보면 근심하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까지 했대요

 

그래가지고 그냥 그런데 성경에 고대로 바울 사도가 막 근심하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까지 했다는 이런 구절이 나오니까 참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침내 에베소 사역을 마감하면서 다시금 전도했던 그 보고 싶은 이방 교회로 A/S하러 지금 이제 떠난 거죠그런데 여기서 오늘 이렇게 세 곳을 거쳐가고 가고 보고자 하는 그 단어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보고 싶은 그곳은 안 좋아할 곳이 아니라 거쳐가야 하는 곳이라고

이 보고 싶은 것은 거쳐가야 하는 곳이라고 했네요 바울은 떠날 이 결심을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 합니다그래서 동역자이자 비서였던 디모데(Timothy)와 에라스도(Erastus)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냅니다마게도냐에 도착해서 바로 사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미리 가서 준비하라는 것이죠.

 

두 사람을 보내고바울은 얼마 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며 그 사약을 마무리해요 여러분들 내가 막 작정했다고시간적으로 경영했다고 막 서두르라는 게 아니에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항상 최선의 사명이 나만 나를 더 살펴야 합니다한 것이 싫고 다른 곳이 좋아서 떠나는 것은 성령의 작정이 아니에요 여기서든 저기서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자세가 성령의 작정입니다여기서 돕는 사람 ‘디아코네오라는 말은 전치사 디아와 먼지를 뜻하는 코니스의 합성인데 먼지가 일어날 만큼 막 분주하게 움직이고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다는 뜻이에요그래서 이 집사를 디아코노스라고 하는데요.

 

바로 디모데(Timothy)와 에라스도(Erastus)가 바로 이런 집사 같은 일꾼이었고 스데반(Stephan)이 바로 이런 이제 집사였죠 사실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로서 양육을 받고 있었는데 어느덧 동역자가 되어서 이제 단독으로 파견 받을 만큼 성숙한 신앙을 가지게 된 모양이에요. 에라스도(Erastus)는 이곳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데요 같은 인물이 디모데 후서 4장에 나오는데 그가 이곳에 엘라스도와 동일한 사람이라면 그는 고린도 시의 재물을 맡은 사람으로 바울의 회심하여 부르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에베소까지 함께 온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연보)을 가져 가야 하니까 재무 담당을 보내지 않았나 싶은데요 이것도 성령의 경영이라고 생각이 돼요여러분 아무리 전도를 하고 말씀이 좋아도 헌금 관리 잘못하면 모든 사역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다시 후속 관리로 이제 돌아보면서 가는 곳곳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을 요청했거든요 근데 헌금을 요청했지만은 본인은 절대로 헌금을 들고 가지 않아요그러니 사람을 잘 세워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다 성령의 경영입니다돈은 꾸지도 꿔 주지도 말아야 해요제가 그렇게 강조해도 공동체 묻지도 않고 이 돈 거래를 하시면 무조건 서로를 망치는 일입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꾸어도 꿔줘도 치리를 하죠 그래서 우리들 교회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항상 마지막에 돈이 있어요.

부부나 교회나 모두가하여튼 돈하고 연결되면 양쪽 다 흘러 떠내려가요반드시 공동체에 물어 보셔야 돼요 공동체가 허락하는 일이 또 있을 수가 있어요 여러분 이걸 지엄한 명령으로 들어야 돼요아니 돈 꿔줬다가 천국 못 가면 어떻게 해요.

 

제가 그냥 개척 때부터 이 얘기를 했습니다 재무담당 에라스도(Erastus)를 보냈다고 또 이렇게 제가 생각을 해봅니다그러니까 두 사람을 보내고 바울은 얼마 동안 더 있으며 아시아 사역을 마무리해요그래서 있으면은 얼마 동안 더 있으면 지체하다 머무르다는 뜻인데요이 단어는 그냥 시간을 보내면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붙들고 주의 깊게 사용하여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거를 말하는 거예요 구원을 위한 시간이죠 근데 이걸 시간에 대한 집착과는 다른 거예요그래서 어떤 부목자님의 나눔인데 자기는 죽기보다 싫은 게 시간에 대한 자기가 집착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아이들이 9시에 자기로 했으면 꼭 자야 된다는 거예요그러면 9시에 걔가 왜 자야 되냐 하면 그때부터 자기가 TV를 보거나 쉬어야 되기 때문에 그래가지고 9시부터 안 자면 그때부터 이제 아이들을 쪼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부목자 회의도 주일 예배 끝나고 이제 쉬어야 되는데 너무 싫다는 거예요그리고 또 부목자 모임에 들어갔는데 6시를 넘기면 또 싫다는 거예요싫은 것도 많아

 

그러니까 시간에 대한 집착 그랬더니 목자님이 이분이 또 교수님 아니겠어요제가 딱 그랬기 때문에 그 심정을 이해하는데요.

제가 깨달은 거는 저에 대해서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걸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9시에 안 잔다고 혼내지 마시고 놀아주세요 아빠하고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돼금방 지나가요그리고 빨리 재우는 방법은 읽어주는 거예요책 읽어주는 거야그리고 아이들한테 두뇌 활동해도 좋아요주로 이렇게 처방을 해 주시기 바래요 나도 그랬다

그렇게 해서 바울은 그 있는 시간을 아주 시간을 붙들고 알차게 썼다는 거예요.

 

고린도 전서 16 8 9절에 보면 왜 남았냐 하면 해마다 5월에 모이는 아덴의 축제를 이용해서 곳곳에서 모여드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에베소에 남았던 거예요그러니까 이 성령의 경영이 기가 막히잖아요그러면 그렇게 마게도냐(Nacedonia)하고 아가야(Achaia)에 가기로 그냥 결정한 게 너무 최고의 결정이잖아요그러면은 그냥 하나님 너 잘했다그럴 것 같아요여기 남았는데 이제 다음 주 본문에 나오겠지만 바울의 신변을 위협하는 은장색들의 소요 사건이 그냥 일어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결과적으로는 환란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어도 성령의 작정으로 인도받고 가면 그것이 성령의 경영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떠나는 결정을 해도 바울은 항상 복음 전파의 마지막까지 어디가 좋은가를 생각합니다.

 

전도를 해야 하지만 지금 있는 이곳도 가는 곳도 후속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장소나 상황이나 기분 따라 움직이면 일어나는 일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지금 머문 곳이 싫어서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게 우리의 일상입니다그런 마음으로 집이 싫어서 결혼하고 이 남편이 싫어서 똑같은 마음으로 이혼합니다 결혼도 후속 관리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A/S가 필요해요성령의 경영하심이 필요해요 연약하면 관리가 필요하고요인도함을 조금 더 받는 사람이 영치기 영치하면서 끌고 가야 해요그래서 이 세상에 좋은 이혼이란 없어요 먼지가 일어날 만큼 눈썹이 날리며 바쁘게 후속 관리를 해 보세요못 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적용#2)

 

-여러분은 전도하고 후속 관리 하십니까목장에서도 주 중 후속 관리를 하십니까결혼도 후속 관리를 합니까? ‘결혼했으면 끝이다라고 합니까좋은 이혼이라는 말에 동의합니까?

 

 

성령의 경영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원칙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후속 관리해야 돼요.

 

 

3.   뿌리를 잊으면 안됩니다.

 

이거는 예루살렘 교회 방문을 말해요그러니까 여기는 보고 싶은 곳이라기 보다 가야 할 곳이에요.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절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 것은 그가 전도했던 이 모든 결과를 보호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가서 이렇게 전도했다막 이단이라 그러고 막 오해할 수 있잖아요그래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모은 그 다음에 그 모은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죠 그리고 또 이제 유월절 이전에 도착해서 그 절기를 지키고자 하는 이런 이유가 있었어요 늘 바울은 이방 선교를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었지만 복음의 출발지인 예루살렘 교회 이 뿌리 잊지 않고 윗 질서로 인정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본 교회에 선교 보고 있지 않습니다어렵고 험난한 전도 여행을 마친 후에도 늘 예루살렘 교회를 잊지 않았어요 자신이 기독교인들을 잔멸해 했던 사람으로 끝까지 책임을 집니다 유대인에게는 배신자, 기독교에게는 잔멸자로 박해와 오해를 받지만 늘 자기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비결이었어요. 언제나 유대인의 회당으로 들어가서 강론하고 쫓겨나도 그 다음에 또 들어가고 왜냐하면 자기 같은 사람인 줄을 이해하니까두 곳에 대한 애정이 계속되는 걸 봐요 그래서 이렇게 친척 유대인들에게는 이제 복음을 강론하고, 잔멸했던 기독교인들에게는 그 육적인 부족을 끝없이 채워주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만성적인 기근으로 큰 곤란을 겪고 있었어요 게다가 로마 제국의 수탈과 기독교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여러 제약으로 항상 궁핍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리고 자기가 보기에도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지 못해요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어요그러니까 여기가 가난한 데는 그만큼 이유가 있는 거예요예루살렘 교회가 가난한 데 하나로 단결이 안 돼참 거기 열두 사도가 있는데도 하나가 안 되네본인은 자비 선교사이지만 모 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은 바울의 큰 미션이었어요그런데 세상에 훨씬 예루살렘 교회보다 워낙 형편이 안 좋지만은 복음을 들은 이방 교회는 너무 헌금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고린도 후서 8 1절서부터 5절까지 보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 너희가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마게도냐 교회가 뭔지 몰랐다가 사도행전 설교 들으면서 이제 뭔지 확실히 알았죠확실히 알았죠여러분들 너무 똑똑하시죠아까 이거 다 했던 것들이 마게도냐 교회예요 그래서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느니라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가난하지 않은데극심한 가난이 풍성한 열매를 넘치도록 하게 했대요내가 증언하노니그들이 힘들어 할 뿐 아니라 힘이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그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성경은 기가 막히지 않아요?

 

바울은 본인도 늙고 이 초로의 노인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자신의 고통과 박해에는 몹시 더욱 관대하고 너그러웠지만 성도의 궁핍과 가난 앞에서는 늘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예루살렘 방문 계획도 그렇게 가고자 했지만 여기도 또 차질을 빚게 됐어요우리가 이제 보다시피 환란과 결박이 또 기다리고 있죠그렇죠 성령의 경령이라고 늘 직진만 하는 게 아니에요 모두 벌써 두 번째 차질이 빚어져요.

 

그러니까 기도했는데 왜 이러냐?’고 하지 마세요.

 

오늘 아침에도 그런 편지를 잠깐 읽었는데. ‘내가 왜 성령 충만을 기도했는데 안 되나요?’ ‘왜 나는 큐티를 하는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은가요?’ ‘왜 나는 사람이 미운가요?’ 이런 거는 여기하고 거리가 멀지만, ‘기도했는데왜 이러냐?’고 하지 마세요기도했으면 믿으시면 됩니다그게 안 되는 거예요여러분들이 적용해 보세요여러분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받은 은혜를 잊지는 않았습니까부모님은 나를 태어나게 했기에 무조건 예수 믿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이 얼마나 있습니까아직도 신경만 쓰입니까? 신경만 쓰여도 예루살렘은 가야 되는 거예요신경이 쓰여도 예루살렘은 가야 되는 거야작정했잖아 이제 명절이야가까이 오면 벌써 스트레스가 오죠두통이 오고가야 될 걸 생각하니까 전도의 열매를 위해서 후속 관리도 해야하지만 그러니까 뿌리를 잊어서 하면 안 돼요

 

 

(적용#3)

 

-여러분의 뿌리는 무엇입니까받은 바 은혜를 잊지는 않습니까부모님은 나를 태어나게 했기에 무조건 예수 믿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이 얼마나 있습니까?

 

 

4.   계속 비전을 향해 가야합니다.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절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왜냐하면 네 번째는 계속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는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파할 계획에 경영하심이 여기 여기는 안 나왔지만 반드시 봐야 할 곳이 로마라고 그랬어요거쳐야 할 곳이 있고 가야 할 곳이 있지만 반드시 봐야 할 것 때문에 거치고 가야 할 곳이 있는 거예요 마지막 로마때문에 에베소 복음화에 성공한 바울은 이제 에게해 양편 연안의 명실상부한 복음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어요 아까도 봤지만 서편에는 빌립보 교회가 또 지중해 연안으로 연결되는 해상 교통의 요지에는 고린도 교회가 있습니다.

 

에게해의 동편에는 유럽에서 소아시아로 들어가는 길목 에베소 교회가, 빌립보 고린도 에베소 교회가 딱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로마에서 전 세계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 당시 모든 나라의 권력자들 로마로 다 몰려드는 거예요.

 

Pax-Romana 시대잖아요장사꾼은 장사꾼 대로 무사들도 명성을 얻기 위해 특별히 노예들도 자유를 얻기 위해 로마로 몰려들었어요.

 

17세기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뱅겔은 헬레니즘의 창시자 알렉산더도 로마 제국의 창시자도 감히 이런 생각을 못 했다고 했어요 이 작은 나라 팔레스타인의 작고 보잘것없는 할아버지 베냐민 사람인 바울보다 더 크고 위대한 꿈을 가졌던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했어요그러니까 내가 복음을 향한 꿈이 이 세상 어떤 경영보다 큰 경영이고 최고의 위대한 꿈인 줄 믿습니다 이게 정말 위대한 꿈이에요바울은 로마서에서 로마의 있는 너희에 대하여 빚진 자라는 의식을 가졌으며 그렇게 로마로 가기를 원했는데 계속 막혔어요.

 

그런데 좌절하지 않고 바울은 이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를 복음화시킨 것처럼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을 복음화 시키기 위하여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이고요거기서 더 나가서 땅 끝나라 이제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스페인까지 갈 것을 다짐했다 그러죠 그러니까 지구 끝까지 복음을 이렇게 전하고자 한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령의 경영에도 불구하고 또 바울이 자의에 의해서 로마로 가는 것을 또 허락치 않으셨어요성령의 경영을 다 막으셨어요

 

 

그래서 즉 AD 58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됐잖아요 그리고 이제 61년에 요새 우리 읽었죠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했어그래서 63년 석방되기까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또 이제 성령의 경영이라고 하냐 하면 너무나 바울의 목숨을 노리는 유대인의 위협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로마 군대를 이용하여 안전하게 보호 받고 결국에는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정말 섭리였어요그리고 이제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그 외에도 다시 로마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AD 67년에 체포되었고 결국 로마에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로마 행은 순교의 선물을 주십니다 바울의 마게도냐 행 예루살렘 행 로마 행의 경영과 작정이 모두 직진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생각만 해도 그렇게 경영할 것을 생각만 해도 오늘 경영했던 그 마음을 우리가 다 THINK해서 생각해봤잖아요

 

생각해 봤죠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런 바울울 너무 기뻐하시는 거예요성령의 경영이라면그것 자체가 응답이에요 우리는 되어진 것만 응답 같지만 안 된 것을 통해 하나님은 얼마나 복음을 전하셨는지 몰라요.

 

바울의 경영은 손해 보는 것 같았지만 지금 2000년이 지나도록 전 세계를 변화시킨 줄 믿습니다이런 믿음이 있어야 돼요근데 맨날 왜 승진이 안 되나왜 떨어지냐? 왜 죽냐? 왜 바람 피냐? 왜 이혼하냐?’ 그것 때문에 사명이 있다니까요 이 성령으로 인도받는 원칙을 지키면 그것이 성령의 경영이 되어서 그 다음에 자손들에게 싸울 것이 없는 복을 주실 것이에요.

 

물론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천하보다 귀한 구원의 복은 이거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축복이 자손 대대로 내려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지나간 사도행전을 복습하며 예수까지 했어요한 번 이렇게 정리를 해봤습니다.

 

막히는 게 최고이고 정말 밖에 나갈 것도 막히고 공부할 것도 막히고 교수 될 일도 막히고 다 막히고 우리 남편 하나 보살피고 살았는데 그것 때문에 성령의 경영을 이렇게 하게 하시잖아요할렐루야제가 이제 없는 동안에도 정말 여러분들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고 내가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모이고 더 열심히 하시면 제가 이 말씀이 위력이 있는 거죠 우리들 교회가 위력이 있는 거예요담임 목사 있을 때만 많이 모이고 없을 때는 확 줄고 그런 일은 없었지만은 정말 자립 신앙을 가지고 내가 주 안에서 홀로 서야 되는 거예요그리고 각자 성령의 경영을 하셔야 되는 거예요

 

 

(적용#4)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입니까우리가 성령의 경영과 작정만 해도 그 자체로 응답이신 것을 믿습니까?

 

 

<Epilogue>

 

1)  성령의 경영은 성령으로 인도받는 원칙으로 전파한 곳은 또 후속 관리(A/S)를 해야 된다

2)  성령의 경영은 뿌리를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3)  예루살렘 교회 방문은 복음의 뿌리이기에 싫어도 가야 할 곳인 것이다 

4)  성령의 경영은 계속 비전을 향해 이제 나가게 하신다 

5)  성령의 경영은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파할 이 계획에 경영하심 이다

6)  예수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도록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기 바란다

7)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8)  우리는 걱정-교만-인정 중독-이기심주식회사’ CEO

9)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다

10) 바울이 가고 싶은 곳이 아닌 성령 안에서 가야 하는 사명지를 찾는 것이 경영이다

11) 매일같이 하는 일을 잘해야 로마이고 미국도 갈 수 있는 것이다.

12) 바울의 경영의 목적은 효과적인 선교를 통한 교회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다

13) 날마다 듣는 강론과 큐티와 이렇게 나눔은 인도받는 큰 원칙이 된다

14) 날마다 강론하고 날마다 큐티하고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예배하고날마다 교제하고 이렇게 목장 하니까 성령의 세력이 쌓이는 것이다

15) 성령의 세력이 쌓이니까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거치고 경영도 잘하고 통과도 잘하는 것이다

16) 날마다 듣는 강론과 큐티와 나눔은 인도받는 큰 원칙이 된다

17) 날마다 강론하고 날마다 큐티하고 교제하고 목장하니까 성령의 세력이 쌓이니까 어떤 문제가 와도 흔들리지 않고 경영도 잘하고 통과도 잘하게 되는 것이다.

18) 여기서든 저기서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자세가 성령의 작정이다

19) 환란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어도 성령의 작정으로 인도받고 가면 그것이 성령의 경영인 줄 믿는다

20) 성령의 경영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원칙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후속 관리해야 한다.

21) 사도 바울이 유대인에게는 배신자, 기독교에게는 잔멸자로 박해와 오해를 받지만 늘 자기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비결이었디

22) 거쳐야 할 곳이 있고 가야 할 곳이 있지만 반드시 봐야 할 것 때문에 거치고 가야 할 곳이 있는 것이다

23) 복음을 향한 꿈이 이 세상 어떤 경영보다 큰 경영이고 최고의 위대한 꿈인 줄 믿는다

24) 성령의 경영이라면 그것 자체가 응답인 것이다

25) 성령으로 인도받는 원칙을 지키면 그것이 성령의 경영이 되어서 그 다음에 자손들에게 싸울 것이 없는 복을 주실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8. 31. 05:14

[우리들교회 2021829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9: 8~ 20/ 성령의 세력)]

 

<사도행전 19: 8 ~ 20>

 

8절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Paul entered the synagogue and spoke boldly there for three months, arguing persuasively about the kingdom of God)

 

9절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But some of them became obstinate; they refused to believe and publicly maligned the Way. So Paul left them. He took the disciples with him and had discussions daily in the lecture hall of Tyrannus)

 

10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This went on for two years, so that all the Jews and Greeks who lived in the province of Asia heard the word of the Lord)

 

11절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God did extraordinary miracles through Paul)

 

12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so that even handkerchiefs and aprons that had touched him were taken to the sick, and their illnesses were cured and the evil spirits left them)

 

13절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Some Jews who went around driving out evil spirits tried to invoke the name of the Lord Jesus over those who were demon-possessed. They would say, “In the name of Jesus, whom Paul preaches, I command you to come out”)

 

14절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Seven sons of Sceva, a Jewish chief priest, were doing this)

 

15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One day) the evil spirit answered them, “Jesus I know, and I know about Paul, but who are you?”)

16절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Then the man who had the evil spirit jumped on them and overpowered them all. He gave them such a beating that they ran out of the house naked and bleeding)

 

17절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When this became known to the Jews and Greeks living in Ephesus, they were all seized with fear, and the name of the Lord Jesus was held in high honor)

 

18절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Many of those who believed now came and openly confessed their evil deeds)

 

19절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A number who had practiced sorcery brought their scrolls together and burned them publicly. When they calculated the value of the scrolls, the total came to fifty thousand drachmas)

 

20절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In this way the word of the Lord spread widely and grew in power) 


<Prologue>

 

요즘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하늘이 섬길 세력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력 다툼을 하면 다 전쟁터가 됩니다. 아프간 사태도 보면 서로 다른 세력 간의 다툼입니다. 땅을 차지하고 돈을 차지하려고 싸우니 백성들이 죽어 나갑니다. 세상 세력과 다른 값을 환산할 수 없는 성령의 세력이 나옵니다. 거침없이 자라나 확장합니다. 어떻게 세력을 확장해야 할까요? 성령의 세력은, 



<말씀 요약>

 

1.   날마다 큐티하는 것입니다. 

 

 

8절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절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바울이 강론하고 권면하기 위해서 회당에 들어갑니다. 회당은 언제나 힘든 곳 이었습니다 배척과 무시와 비방을 당했습니다. 12 공동체로 세우셨기 이 공동체의 양육이 필요합니다. 양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에베소와 고린도에서 5년 동안 있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알려 주려니 담대함 없이는 권면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야말로 하나님 나라 자체이며 믿음이 복음이라는 하나님 나라는 바울의 간증과 더불어 강론했을 것입니다. 회당의 분위기 자체가 눈치 보고 위축되었는데 담대히 강론했다는 것입니다. 용기나 배짱이나 성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자는 죽는 거라고 했잖아요. 마지막처럼 사명으로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세력입니다석 달 반복해서 전했는데 데살로니가는 3주 동안 못 들었는데 에베소는 석 달을 들었네요.



당한 고난으로 양육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전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석 달 이상을 참지 못했어요. 한마디로 내가 정답이다. 내가 의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까? 석 달은 참고 듣는 시늉을 했지만 한계가 옵니다.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는 자가 비난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복음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답이잖아요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모욕합니다. 떳떳하게 비방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옳다는 인정을 받는다고 합니다. 구속사적 큐티가 안되고 그러면 하기 싫고 적극적으로 비난합니다바울은 떠났다고 합니다. 담대히 전한 까닭은 이 사람들 때문 아닙니까?



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를 놓쳤어요 내가 정답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결말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세웁니다. 싸울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진영논리로 싸울 시간에 새로운 전력을 짜보세요. 회당과 구별되는 말씀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내가 정답 임을 회당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고 예수님이 정답이라고 외쳐지는 두란노 서원(the lecture hall of Tyrannus)이 세워졌습니다. 서원에서 유명한 강사들이 주로 아침에 강의를 했고 두란노는 아마 서원 건물의 주인이거나 강사였을 것입니다. 그 제자들이 회당 대신 두란노(the lecture hall of Tyrannus)서원을 임대했어요 날마다 강론을 했는데 최초의 신학교라고 할 수 있는데 오전 11시부터 4시까지 그러니까 당시 에베소 사람들이 낮잠의 자며 한낮 쉬는 시간에 시에스타(Siesta/낮잠)라고 바울과 제자들은 쉬지 않고 들었습니다.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텐트 메이킹(Tent-making)를 해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아침에 일하고 자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일하는 거예요 복음을 전하는 것을 숨쉬기처럼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생각했으면 이렇게 못합니다. 성령의 임하심을 받았으니, 세력을 받았으니 사명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2년이나 날마다 걸었네요. 낮잠 시간, 찌는 더위,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사모하면 어디라도 가게 됩니다. 교회에서 큐티 모임을 하게 되었을 때 제가 수요예배 후에 졸린 오후 2시로 배정을 부탁했어요. 의아했죠. 하라고 해서 하는 건데 그렇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큐티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거 없이 오고 싶은 오고 가고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주여 해서 그 시간은 사모하지 않으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모하는 사람이 오니 별로 소문이 나쁘게 나지 않았습니다. 롱런(long-run)할 수 있었습니다. 사모하는 사람이 오니 저를 지켜주신 겁니다. 언제든지 그만두려고 하는데 모여들었습니다. 정말 예배를 사모하십니까? 사모하세요? 그러면 현장 예배 오셔야죠



10절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이게 성령님의 응답 아닙니까아시아 에베소를 중심으로 헬라인 유대인이 말씀을 듣는 역사가 일어나서 성령의 세력이 되어서 바울 사역의 절정이 되었어요 그 유명한 요한계시록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탄생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 리쿠스 계곡까지 퍼져서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교회가 생겼고 수세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교회들이 이때에 양육으로 생긴 거예요.

 

그동안 바울의 행적을 보면 십자가만을 보니 때가 차매 놀라운 부흥을 허락했어요 40년 후에 기록을 보면 아주 미신 같은 것이 곳곳에 영향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시아 사람 전체가 듣지는 못했지만 인정해 주셨다는 하나님의 격려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큐티하고 날마다 모이고 오고 싶은 사람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날마다 교회에서 구속사의 큐티를 강론했더니 제자리로 세워졌어요. ‘날마다가 중요합니다. 날마다 강론이고 큐티입니다. 큐티한 것을 가지고 매 주일 만나서 나누고 쉬지 않고 했어요. 그리고 지금 큐티 선교회 우리들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제가 늘 하다가 신학교에 가서 제자를 세워야겠다’. 이렇게 나눔을 했었죠 이러고 가면 그야말로 제자 훈련 안하면 남는게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큐티 선교회가 세워진 게 최고의 응답입니다 정말 성령의 세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날마다 큐티-기도-목장은 여러분에게 최고의 세력이 될 것입니다. 두란노서원도 날마다 사람들이 나누며 기도하며 성경을 알아가며 똑같지 않습니까? ‘내가 죄인인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습관이 되면 큰 세력이 됩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날마다가 중요합니다. 힘든 일을 당해도, 좋은 일을 당해도 날마다 강론을 하고 큐티하고 바울도 일을 당했고 저도 당했는데 날마다 강론하고 여러분도 큐티하고 나누고 이거 굉장한 것이고 세력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은 최고의 세력을 쌓고 있습니다.

 

(적용#1)


-여러분은 날마다 큐티, 날마다 기도, 날마다 예배, 날마다 목장 중에서 무엇이 안되십니까? 내 삶에 가장 덥고 힘든 시간에 나는 예배를 드리러 가고 있습니까? 피곤하다가 쉽니까? 

 

 

2.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십니다.

 

  

11절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믿음이 하나도 없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이제 에베소 회당에서 두란노서원으로 옮겼잖아요. 그러니까 이 두란노서원 교회가 진짜임을 보여주셔야 했잖아요 그래서 바울의 손으로 기적이 일어나게 하셨어요. 특히 에베소는 헬라 문화, 아시아 문화가 만나는 대도시였기 때문에 학문과 철학도 융성했지만 미신(superstition)과 마술(sorcery) 인기가 많아 가지고 유대인 마술사(sorcerer)들도 있었는데요. 이 마술사들이 바울의 손으로 행하는 놀라운 능력을 이렇게 보고는 막 그 놀라운 능력에 매료가 됩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제 큐티 모임도 진짜임을 좀 보여주셔야 했기 때문에 정말 수많은 가정이 그냥 이혼을 철회하고 오늘 손이 가고 발로 가는 섬김을 통해서 가정이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지난주 설교 때 매일 새벽 기도하고 성경 필사하고 예배만 드렸던 요한의 세례만 알던 어떤 제자 집사님 말씀을 설교 했었는데 그 집사님이 지난주 설교를 듣고 내가 문제였구나. 아내도 자녀도 아닌 내가 죄인이었구나를 깨닫고 설교 끝나자마자 스스로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고 거예요. 이혼 소송의 1차 조정 기간에도 정신과 상담을 받았지만 내가 왜 정신과 가냐고?’  3시간 동안 아내에게 설교했던 분이잖아요 그런데 이 설교를 듣고 손으로 그 능력을 행한 것이죠. 손으로 전화를 눌러서 우리가 강론을 마음으로 받았다면 이게 손으로 실천을 해야 돼요. 능력을 행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세력을 얻어 내 가정이 합쳐지고 중독이 끊어지고 생명이 이어지는 것이죠.



우리들교회는 이런 가정이 너무 많습니다 바울의 손처럼 우리도 고장 난 내 손과 발을 또 담배-도박-음란에 익숙한 내 손과 발을 말씀에 길들여 이 손으로 능력을 행해야 합니다. 끝까지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 그러니까 술 먹고 들어와 행패하는 남편의 밥 차려주는 손이 되며 게임만 하며 방에 에서 나오지 않는 아들의 방을 치워주는 손이 돼야 하며 또 경찰서에 불려간 아들에게 뒤통수를 치는 게 아니라 그 아들의 손을 꼭 잡아주는 손이 되야 하며 술 취해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부모들 또 자녀들 다 부둥켜 앉는 손이 되야 하며 내 자녀에게 또 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 고백하는 이 손들은 옳고 그름의 손이 아니라 능력의 손입니다. 바로 이게 놀라운 능력의 손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몸에 있는 손수건이나 그렇지만은 특별한 영적인 손수건이 아니라 이 말씀이 바울의 삶의 현장까지 적용되었다는 것이에요 이 앞치마와 손수건은 뭔가 하면요 아침에 텐트 메이킹 할 때 노동의 현장에서 썼던 그 물건이에요. 이 손수건과 앞치마 예요. 그러니까 이 얘기는 주일 뿐만 아니라 월화수목금토 내 삶의 현장에도 이 말씀이 적용될 때 손이 가고 발이 가는 병이 떠나고 악귀도 이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용#2)

 

-설교 듣고 큐티하며 권세가 느껴지는 말씀을 손으로 보내 보신 적이 있나요?

옮고 그름의 손이 아니라 능력의 손을 행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요?

 

 

3.   짝퉁 세력이 아닙니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단어를 생각해봤지만 짝퉁이라는 단어가 맞는 것 같습니다

 

 

13절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절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절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3절에 보니까 어떤 마술하는 사람. 그리고 14절에 스게와(Sceva)의 일곱 아들이에요 이들도 다 이제 바울 흉내를 내는 거예요 자세히 보면 우리가 이방 선교할 때 흔히 보던 귀신 들린 여자, 점치는 여자 종류가 달라요. 뭐가 다른가요? 이 마술하는 자와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다 유대인이 이라는 거예요  유대인이라는 말은 말씀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율법을 아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늘 바른 진리가 선포되면. 유사한 모조품들이 생겨납니다. 참 모조품들이 많이 생겨나요 우리 이거 분별해야 하는데 지난번에도 성령의 임하심은 분별이라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진짠 지 가짠 지를 분별을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많은 이단이 판을 치는 거잖아요 그 이단들도 다 예수 믿어 천국 간대요 전부 다 똑같이 얘기해요 그러니까 내가 장로교회에 다니다가 신천지 갔는데 다른 게 하나도 없더라 이래요. 그러니까 이제 겉모습만 보는데 진짜 이렇게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양의 탈을 쓴 이제 그 이리에 그런 이제 짝퉁이라고 할 수 있죠.

 

말씀에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어린 양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용의 세력이에요. 7과 가장 비슷한 666이라고 그랬잖아요. 게다가 말씀도 가지고 있고 게다가 능력도 있고.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비슷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더 양의 탈을 썼어요 진짜보다 우리가 늘 위로만 하면 너무 좋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막 화 있을 진저이러잖아요 이 독사의 자식들 하면 주님도 그러고 이제 야단칠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람이 죽게 생겼으니까 가지 말라고. ‘너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죽는다그래야지 낭떠러지에 가도 괜찮아.’ 그게 사랑이에요? 근데 다들 그렇게 착각을 합니다 자세히 보면 너무 다릅니다.

 

오늘 마술사는 13절에 악귀의 세력을 향해 뭐라고 말하냐 하면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그래서 여기 이제 명하노라는요 바울처럼 단호하게 명령하여서 귀신을 그냥 끊는 게 아니라 예수를 의지하여 애원하다 부탁하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예요 그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단호하게 명령을 해야 되는데 귀신과 타협하면서 애원을 하는 거예요 귀신은 단호하게 명령하며 쫓아내야 되요. 애원하면 안돼요. 음란 이런 거 애원하면 안 돼요. 쫓아내야 되는 거예요. 이 세상은 하나님 아니면 다 귀신이에요. 중간 지대가 없어요. 진짜 예를 들면 불륜인 줄 알면서도 단호히 끊지 않고 저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불륜을 행한다는 거예요.

 

유부남과 사귀는데 그 사람이 한 번만 자신과 만나주면 교회를 나가겠다고 또 한 번만 잠자리를 하면 교회를 나가겠다고 그러니까 이제 애원을 하는 거죠 서로가. 상대가 이쪽 저쪽이 다 지금 애원하는 거예요. 끊지를 못하니까 그리고 이제 그 유부남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자신 때문에 교회를 왔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 실족해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물론 구원을 향한 진심은 진짜 같을지 모르지만 바로 이것이 짝퉁이라는 거예요 귀신에게 애원하며 타협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유대인이지만 복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구원 예수 이름만 들어가면 그냥 분별을 다 이제 못해요.

 

교회 다니면서도 복음을 너무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한 사람의 성도가 중요한데 그런 게 문제가 안돼!’ 또 교회에서는 어떻게든지 다 와야 되니까. 그래서 귀신을 이렇게 쫓아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쉬우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니까 이 와중에서 핍박을 받고 그냥 그럴 때 이 말을 들어주면 좋겠죠 근데 끊어라그러면 그 사람하고 원수 되는 거죠. 바로 이런 거예요. 이런 거 처방 나가면 목자하고 원수되고 이러는 거예요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럴 때 악귀가 말을 하는 거예요. 성령이 말을 해야 되는데. 감히 악귀가 말을 합니다. 기도 응답이 아니라 악귀의 응답인 거죠. 악귀가 뭐라고 말을 합니까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이게 무엇입니까? 구원을 위한다고 하지만 예수 이름이라고 하지만 이 일이 구원과 상관없다는 것을 또 예수와 상관없다는 것을 마술사가 알고 그 일을 행하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알고 악귀도 알고 내 속의 악귀도 다 알고 있어요. 이미 답을 다 알고 있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다 알아요. 다 아니까 반대할 것이 뻔하니까 우리가 묻지 않아요. 물어도 목장에서 추상적으로 물으며 구원을 위해 한다고 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내가 이 일을 해야 되고 랄랄랄라 그러니까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면 묻기 꺼려지는 것들은 내 정욕을 위한 일입니다 틀린 줄 알면서도 죄인 줄 알면서도 내 욕심이 채워지니까 오픈할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멈춰야 합니다. 오픈해야 합니다 이 짝퉁으로 복음을 흉내내며 다니던 그들의 결국이 어떠했습니까?

 

16절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여기서 눌러는 주인이라는 단어와의 합성으로 주인이 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귀신과 타협해서 애원하다 보면 그 귀신이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의 주인이 되어서 나를 지배합니다. 결국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거예요유부남과의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은 이제 그 귀신의 지배를 이 원칙이 아니니까 이 악귀에 조정을 받은 거니까, 사단의 주인을 모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들어요 즉 구원을 빙자해서 음란을 행하면 그 음란이 내 삶을 지배해서 파멸로 이끌고 구원을 빙자해서 돈을 벌려고 했는데 이제 그 다음에는 돈의 지배를 받게 되고 구원을 빙자에 봉사를 했는데 그 봉사에 내 심신이 지치고 생색이 나고 그리고 오히려 좌지우지되니까 내 욕심을 채우려고 했던 그것에 오히려 다 지배당하고 말아요하나님 뜻이 아닌 건 결국 다 종 노릇하게 되어 있어요.

 

성령의 세력은 날마다 큐티하며 이제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서 손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 중심에서부터 자신의 죄인 됨을 모른 채 이 마술사처럼 손으로 행위만 따라하니까 결국 너도 죽고 나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처음에 비슷한 것 같지만 그 결과는너무 다릅니다 바울의 복음은 악귀를 쫓아내고 삶이 변화되고 주변이 함께 살아나는데 유사한 이 짝퉁 마술사의 복음은 처음에 비슷한 것 같지만 상하게 되고 벗은 몸으로 수치를 당하며 주변 사람들도 함께 죽고 도망가게 됩니다비슷한 것 같지만 생명은 세력을 얻고 비슷한 짝퉁은 썩어 버려지는 거죠. 여기 뭐 딴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 마세요 지금은 모르나. 후에는 알리라 그리고 그 죄에 대한 값을 결코 끝까지 받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 정욕을 지금 끊지 못했어 나가라 해야 되든 해야 되는데, ‘나가 주실래요?’ 그러면 귀신이 잘도 나가겠네요. 그러니까 그게 다 삶으로 연결되는 거예요

계속 타협하면서 나가 주실래요?’대신에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이래야 되는데 그러면 그냥 태도도 단호해야 되잖아요. 근데 다 여지를 주니까 그렇게 다 불륜이 행해지는 거예요.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라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그건 귀신에게 애원하는 거다

 

성령의 세력은 날마다 큐티하는 거죠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거예요. 그리고 절대로 이 짝퉁 세력을 분별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은 내가 가보니까 틀린 게 없더라’ 이딴 소리 마라 공 교회 협의에서 이단이라 그러면 이단인 줄 알아야 되는데 내가 보니까 여러분들이 뭘 아는데, 평신도들이 뭘 아는데?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해서 이단으로 정해 놨으면 그걸 이제 믿어야죠 근데 내가 보니까 이단도 예수 믿고 천국 간다그러더라. 처음에는 몰라요. 그런데 이 삶에서 귀신을 쫓아가는 역사가 일어나요. ‘불륜을 행해도 구원받았으면 된다. 한 번 회개했으면 된다 왜 자꾸 그렇게 정죄감 가지고 회개하냐?’ 이러니까 내가 불륜을 행하기에 도박을 행하기 편하잖아요그렇죠 귀신 편을 들어주니까 결국 그거예요 이단도 돈도 많다고 하니까 그냥 불륜 남녀가 돈도 많아 뭐든지 다 갖췄다고 하니까 진짜 같잖아요 그렇죠

 

 

(적용#3)

  

-귀신을 쫒지 못하고 나가 달라고 애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구원을 빙자해서 내 정욕을 치우고자 함은 무엇이 있습니까?

-반대할 것을 알고 목장에 묻지 않았던 일은 무엇입니까?

 

 

4.   자복하며 불태우는 것입니다. 



17절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절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절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절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우리가 대부분 내가 행하고 구하는 것들이 내 욕심인지 구원인지를 알 때도 있고 모를 때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이제 그렇게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막 도망가니까 내가 그거 좋아했다가 얼마나 두렵겠어요 그래서 흉내 내고 따라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본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이 일을 두려워할 때 믿은 사람들이 할 일이 있어요 18절에 보니까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렸다고 해요. 여기서 믿은 사람들은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의 강론을 이미 듣고 믿은 사람들이죠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 죄를 더 이상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또 실수하고 넘어지고 죄를 짓더라도 십자가 앞에 나와 이 교회 공동체에 나와 믿는 사람들의 모임, 내가 죄인인 공동체에 나와서 계속 자복하며 알리는 자들 이 바로 그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 믿은 사람들이 자복하며 이걸 알려야 되는 거예요 자복이라는 단어는 이게 공개적으로 밖으로 드러내어 자신의 죄를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숨기지 않고 낱낱이 고함을 말하는 단어예요. 그러니까 자기 죄를 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죠. 그러니까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두려워할 때 믿는 사람은 자복하여 회개하여 오픈하여 알리며 이제 불태우는 것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죠.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믿는 우리들이 지금 이제 뭐가 사건이 나고 이러고 저러고 하면 이 두려워하잖아요. 아이가 힘들어지고 그럴 때 믿는 우리들이 간증하며 수치를 나눌 때 세력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혼자서는 적용 못해요 내가 할 수 없으니 공동체에 말하고 또 그 공동체의 힘을 얻어 다시 내 속에 마술책들을 불태우고 그 불태운 것들을 또 공동체 앞에서 간증하고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불태워가니까 이 악하고 음란한 에베소 땅에 성령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되는 것이죠.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증거하니까. 연수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잖아요. 그런데 어느새 알리고 자복하고 함께 불태울 공동체가 이 악하고 음란한 에배소(Ephesus) 땅에 생긴 거예요

 

날마다 강론이 이렇게 놀라운 거예요 내가 분별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맹인이에요 내가 분별할 수 없기에 알리고 묻고 기도하고 또 공동체에 알리고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분별하게 해주시는 것이죠.

이처럼 자복하며 알릴 때 내가 이제 공동체에서 알리면 이것이 기복인지 귀신을 섬기는 것이었는지 마술을 행하던 일인지 깨닫게 되는 거예요.

 

내가 구원을 위해 자녀를 사랑한다고 행했던 일들이 자녀를 죽이는 일이었구나 내가 정말 귀신에게 애원했구나. 내가 자르라고 했던 일들이 모두 다 구원을 가로막는 일이었구나하는 것들을 공동체에 와서 자복을 해야지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날마다 이제 목장 예배 속에서 내 삶 속에 수많은 마술책을 불사르게 되는 거예요. 회개하며 오픈할 때 나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내가 그냥 오픈을 하면 그 오픈 자체가 내 애초의 얘기인데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세력을 얻게 된다는 거예요 그 목장이 세력을 얻고, 그런 교회가 세력을 얻고 이런 교회가 많아지면 나라가 또 세력을 얻잖아요. 그렇죠 여기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구원이 아니라 마술인지 깨달아 그 책을 불사르게 되는데 그 책값이 은5만이라고 그래요.

 

5만 은 지금 노동자 1당을 10만 원이라고 하고 하면 50 5만 원이라고 하면 25 50억쯤 되겠네요. 이거 어떻게 불태웁니까? 내가 보기엔 너무 아까운데 보기만 해도 너무 좋은데 그 유부남 유부녀를 어떻게 내가 불태웁니까? 돈도 많은데 외모도 있는데 내 보내? 그 연락처를 어떻게 불태웁니까? 수많은 드러나지 않은 이 죄악들을 핸드폰 하나 쫙 없애면 될 텐데. 나는 할 수 없죠. 나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자복하고 공동체에 알리고 이 일이 신기루다 마술이다 귀신이다. 그걸 깨달으니까 불태우게 되는 거죠. 근데 자세히 보면 이 불태우는 일도 모든 사람 앞에서 불태웠다 그러잖아요 모든 사람 앞에서. 그래서 목장에서 적용하고 그 다음 주일에는 꼭 확인하셔야 돼요. 19금 지웠어요? 어디 핸드폰 검사합시다 모든 사람 앞에서 불태웠다고 해요. 어떤 목자님이 이런 나눔을 했더라구요 의사인데 병원을 하루 쉬는 날이 있었는데 주식을 했대요. 막 스릴이 넘치고 재미있었는데 2008년도에 주식으로 말아먹고 그때부터 손을 안 댔는데 지난주는 그냥 주식에 빠졌대요 너무 재미있다 보니까 그냥 사람이 피폐해져가지고 그 와중에 목장에서 목원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정신이 주식에 쏠려서 난감해서 어떻게 대답해 줘야 될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진짜 교만하지 않고 믿음 생활 잘해야 되겠다. 이 목자 직분이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로구나. 목자 직분은 절대로 내려놓으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대요 그러니까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매주 이런 나눔을 하는 거죠 이게 바로 자복하며 알리며 불태우는 이런 적용인 거예요. 참 신기한 게 두란노서원 바로 옆에 즉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옆에 창녀촌이 있었대요. 또 두란노서원 뒤에는 아고라’(Agora)라는 큰 시장이 있었고 두란노 서원의 멀리 동쪽과 저쪽 서쪽에는 큰 감옥이 있었대요. 그러니까 우리가 늘 사단과의 싸움 속에서 사는데 아무리 말씀을 묵상해도 길을 나가면 유혹이 기다리고 있고. ‘감옥이냐? 전도하는 광장이냐?’는 내가 날마다 이렇게 결정을 해야 되는 거예요 네 이게 성령의 세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죠 주의 말씀이 힘이 있기 때문에 이 힘은 군사적인 힘을 말해요.

 

한 사람의 영웅적 힘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목사가 설교 하나 잘했다고 세력을 얻는 게 절대로 아니에요. 자복하고 알리고 불태우고 또 내일 자복하고 알리고 불태우고 또 다음 주일에 자복하고 알리고 불태우고 여러분 목장을 이렇게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귀신에게 그냥 딱 그냥 끌려갑니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지금 우리들교회가 되어가는 거 보세요. 이거 성령의 세력 아닙니까? 교회가 그렇게 가면 여러분들도 따라가야 세력이 쌓여지죠. 그런데 맨날 이거 바쁘고 저거 바쁘다고 (차일피일 미루게 되면) 귀신의 밥 되기가 딱 시간 문제인 거죠. 그래야지. 이렇게 사단의 나라가 힘을 잃고 하나님 나라가 힘을 얻어 뻗어나가죠 그 죄를 지어서 일보 후퇴해도 또 2보 전진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거지. 갑자기 우리가 성자가 돼서 뭘 어떻게 하는 게 아니에요 결코 임할 수 없었던 에베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이제 흥왕하여 세력이 뻗어나가는데 이거는 미완료형으로 지금도 계속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거를 말해주고 있어요 그 출발이 어디 예요?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바울로부터 그 바울이 두란노서원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면서부터 그리고 말씀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이제 바울이 또 매맞고 천부장 앞에서 이렇게 이제 간증하는데 다 자기를 때려 죽이려고 하는데 자기가 때려 죽이려고 (다메섹 도상에서) 가다가 주님 만났잖아요 오늘 목사님도 설교했지만 그러니까 자기의 죄를 생각하면 지금 그 유대인들을 바울은 용서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자기가 똑같이 그 죄를 믿는 사람들을 다 잔멸하고 때려주기를 그러니까 이게 자기의 죄를 늘 생각하기 때문에 바울로부터 이 사람은 숨 쉬기를, 복음 전하는 게 숨 쉬기예요. 그래서 이제 모두 말씀에서부터 출발을 하는 것이고 여기 힘이 있어 주의 말씀에 힘이 있어는 부사적으로 사용돼서 흥왕하여세력을 얻으니라라는 두 동사를 수식하는 전치사으로 봐야 되는데요 그러니까 주의 말씀이 힘 있게 행하며 주의 말씀이 힘 있게 세력을 얻고 그러니까 지금 성령의 세력은 바울의 이 신유의 능력 이게 아니고 말씀에 힘이 있다는 거예요 주의 말씀에 힘이 있어서 세력을 얻어가는 거예요 병 하나 고쳐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에베소 도시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동체가 큰 세력을 형성하여 힘 있게 자라나고 있음을 묘사하는데 이후에 이 에베소는 수세기 동안 디모데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의 사역지로서 아주 그냥 전통적인 소아시아 기독교의 부흥을 이끄는 아주 중심지가 되었어요. 놀랍지 않습니까? 에베소를 왜 그렇게 오고자 했는지 이해가 되시죠우리들교회를 보면 정말 말씀이 힘이 있는 것 증명이 돼요 아파도 실직해도 가정이 힘들고 아이들이 힘들어도 다들 세력이 있어요. 왜냐하면 다들 주의 말씀을 붙잡고 붙들고 살기 때문이죠 정말 일주일 동안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교회가 우리들교회예요 이걸 이 세상 어느 공동체에서 이렇게 끌고 가는가근데 다 세력이 있어요 교회전체가 세력이 있고 목장에 세력이 있습니다.

 

(적용#4)


-성령의 세력을 위해 자복하고 불태워야 할 알리고 태워 버려야 할 세상 권세와 능력 지식은 무엇입니까? 

 


<Epilogue>

 

1)  성령의 세력은 그래서 날마다 큐티하는 것이다

2)  성령의 세력은 우리가 날마다 큐티하면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신다

3)  하지만 우리는 짝퉁 세력을 분별해야 하며 그러려면 공동체에 자복하면서 늘 알리면서 불태우고 그래서 일보 전진, 일보 후퇴 2보 전진 하면서 한 발자국씩 성령의 세력을 늘려가야 될 줄 믿는다

4)  날마다가 습관이 되면 큰 세력이 된다

5)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알고 율법을 아는 사람이 유대인이다

6)  묻기가 꺼려지는 것은 내 안에 정욕이 있기 때문이다

7)  성령의 아닌 것에 전심전력하면 결국 그것에 종 노릇하게 된다

8)  말씀에 힘이 있어 세력을 얻어가는 것이다

9)  이 세상 세력은 각각 힘의 대결인 것이다

10) 믿음은 세상이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11) 성령의 세력은 이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 것이다

12)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야말로 하나님 나라 자체이며 믿음이 복음이다

13)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세력이다

14)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는 자가 비난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복음을 거절하는 것이다.

15) 성령의 임하심을 받았으니, 세력을 받았으니 사명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16) 사모하면 어디라도 가게 된다.

17) 날마다 큐티-기도-목장은 여러분에게 최고의 세력이 될 것이다.

18) 날마다 습관이 되면 큰 세력이 된다.

19) 무슨 일을 당해도날마다가 중요한 것인데 힘든 일을 당해도, 좋은 일을 당해도, 날마다 강론을 하고 큐티하고 바울도 일을 당했고 저도 당했는데 날마다 강론하고 여러분도 큐티하고 나누는 것이 굉장한 것이고 세력인 것이므로 여러분들은 지금은 최고의 세력을 쌓고 있는 것이다.

20) 우리가 강론을 마음으로 받았다면 이게 손으로 실천을 해야 되고 능력을 행해야 한다

21) 그때 성령으로부터 세력을 얻어 내 가정이 합쳐지고 중독이 끊어지고 생명이 이어지는 것이다.

22) 내 삶의 현장에도 이 말씀이 적용될 때 손이 가고 발이 가는 병이 떠나고 악귀도 이제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23) 유대인이라는 말은 말씀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율법을 아는 자들이라는 것인데 늘 바른 진리가 선포되면 유사한 모조품(짝퉁)들이 생겨난다

24) 성령의 임하심은 분별이라고 그랬는데 진짠 지 가짠 지를 분별을 못하니까 수많은 이단이 판을 치는 것이고 그 이단들도 다 예수 믿어 천국 간다면서 전부 다 똑같이 얘기한다

25) 내가 장로교회에 다니다가 신천지 갔는데 다른 게 하나도 없더라고 하니까 이제 겉모습만 보는데 진짜 이렇게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양의 탈을 쓴 이리에 그런 짝퉁이라고 할 수 있다.

26) 말씀에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어린 양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용의 세력으로 7과 가장 비슷한 666이라고 했는데 게다가 말씀도 가지고 있고 게다가 능력도 있으니까 너무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27) 게다가 양의 탈을 썼으니 진짜보다 우리가 늘 위로만 하면 너무 좋게 느껴지는 것이다

28) 그런데 예수님은  화 있을 진저’, ‘이 독사의 자식들하면서 야단칠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람이 죽게 생겼으니까 가지 말라고 너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죽는다그래야지낭떠러지에 가도 괜찮아.’ 그게 사랑일까?

29) 근데 다들 그렇게 착각을 하는데 자세히 보면 너무 다른 것이다.

30)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단호하게 명령을 해야 되는데 귀신과 타협하면서 애원을 하는 것이다

31) 귀신은 단호하게 명령하며 쫓아 내야지 애원하면 안된다

32) 음란 이런 것도 애원하면 안 되고 쫓아내야 되는 것이다.

33) 이 세상은 하나님 아니면 다 귀신으로 중간 지대가 없다.

34) 불륜인 줄 알면서도 단호히 끊지 않고 저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불륜을 행한다는 것이다

35) 실족해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물론 구원을 향한 진심은 진짜 같을지 모르지만 바로 이것이 짝퉁이라는 것이다

36) 그런 것이 귀신에게 애원하며 타협하는 것이다

37) 그러니까 유대인이지만 복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며 우리는 구원 예수 이름만 들어가면 그냥 분별을 못한다

38) 성령이 말을 해야 되는데 감히 악귀가 말을 하는 형상인데 이것은 기도 응답이 아니라 악귀의 응답인 것이다

39)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다 아니까 반대할 것이 뻔하니까 우리가 묻지 않는 것이고 물어도 목장에서 추상적으로 물으며 구원을 위해 한다고 말한다.

40) 구원을 위해서 내가 이 일을 해야 된다고 그러니까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면 묻기 꺼려지는 것들은 곧 내 정욕을 위한 일인 것이다

41) 틀린 줄 알면서도, 죄인 줄 알면서도 내 욕심이 채워지니까 오픈할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지만 멈춰야 하고 오픈해야 한다

42) 이 짝퉁으로 복음을 흉내 내며 다니던 그들의 결국이 어떠했나?

43) 우리가 귀신과 타협해서 애원하다 보면 그 귀신이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의 주인이 되어서 나를 지배한다.

44) 결국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유부남과의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은 원칙이 아니니까 그 귀신의 지배를, 이 악귀에 조정을 받은 것이므로 사단의 주인을 모신 것이기 때문에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45) 즉 구원을 빙자해서 음란을 행하면 그 음란이 내 삶을 지배해서 파멸로 이끌고 구원을 빙자해서 돈을 벌려고 했는데 이제 그 다음에는 돈의 지배를 받게 되고 구원을 빙자에 봉사를 했는데 그 봉사에 내 심신이 지치고 생색이 나고 그리고 오히려 좌지우지되니까 내 욕심을 채우려고 했던 그것에 오히려 다 지배당하고 마는 것이다

46) 하나님 뜻이 아닌 건 결국 다 종 노릇하게 되어 있다.

47) 성령의 세력은 날마다 큐티하며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서 손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 중심에서부터 자신의 죄인 됨을 모른 채 이 마술사처럼 손으로 행위만 따라하니까 결국 너도 죽고 나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48) 처음에 비슷한 것 같지만 그 결과는 너무 다른 것이다

49) 바울의 복음은 악귀를 쫓아내고 삶이 변화되고 주변이 함께 살아나는데 유사한 이 짝퉁 마술사의 복음은 처음에 비슷한 것 같지만 상하게 되고 벗은 몸으로 수치를 당하며 주변 사람들도 함께 죽고 도망가게 된다

50) 비슷한 것 같지만 생명은 세력을 얻고 비슷한 짝퉁은 썩어 버려지는 것이다

51) 여기 뭐 딴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 마시라. 지금은 모르나 후에는 알리라

52) 그리고 그 죄에 대한 값을 결코 끝까지 받게 되어 있다 

53) 계속 타협하면서나가 주실래요?’ 대신에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이래야 되고 태도도 단호 해야 되는데 다 여지를 주니까 다 불륜이 행해지는 것이다.

54)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라는 소리는 귀신에게 애원하는 것과 다름 없다 

55) 성령의 세력은 날마다 큐티하는 것이고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것으로 절대로 이 짝퉁 세력을 분별해야 되는 것이다 

56) 내가 보니까 이단도 예수 믿고 천국 간다그러니까 처음에는 모른다

57) 그런데 이 삶에서 귀신을 쫒아가는 역사가 일어난다, 불륜을 행해도 구원받았으면 된다. 한 번 회개했으면 되는데 왜 자꾸 그렇게 정죄감 가지고 회개하냐?’고 하니까 내가 불륜을 행하기에 도박을 행하기도 편한 것이다

58) 귀신 편을 들어주니까 결국 이단도 돈도 많다고 그러니까 그냥 불륜 남녀가 돈도 많아 뭐든지 다 갖췄다고 하니까 진짜 같은 것이다

59) 우리가 대부분 내가 행하고 구하는 것들이 내 욕심인지 구원인지를 알 때도 있고 모를 때도 있는 것이다.

60)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 죄를 더 이상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또 실수하고 넘어지고 죄를 짓더라도 십자가 앞에 나와 이 교회 공동체에 나와 믿는 사람들의 모임, 내가 죄인인 공동체에 나와서 계속 자복하며 알리는 자들 이 바로 그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 믿은 사람들이 자복하며 이걸 알려야 되는 것이다

61) 자복이라는 단어는 공개적으로 밖으로 드러내어 자신의 죄를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숨기지 않고 낱낱이 고함을 말하는 단어다.

62) 그러니까 자복은 자기 죄를 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63) 그러니까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두려워할 때 믿는 사람은 자복하여 회개하여 오픈하여 알리며 이제 불태우는 것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64) 아이가 힘들어지고 그럴 때 믿는 우리들이 간증하며 수치를 나눌 때 세력을 얻게 된다

65) 그러니까 혼자서는 적용 못하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없으니 공동체에 말하고 또 그 공동체의 힘을 얻어 다시 내 속에 마술책들을 불태우고 그 불태운 것들을 또 공동체 앞에서 간증하고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불태워가니까 이 악하고 음란한 에베소 땅에 성령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66)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증거하는데 연수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것인데 어느새 알리고 자복하고 함께 불태울 공동체가 이 악하고 음란한 에배소(Ephesus) 땅에 생긴 것이다

67) 날마다의 강론이 이렇게 놀라운 것이며 내가 분별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맹인이라고 할 수 있다

68) 내가 분별할 수 없기에 알리고 묻고 기도하고 또 공동체에 알리고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분별하게 해주시는 것이다.

69) 이처럼 자복하며 알릴 때 내가 공동체에서 알리면 이것이 기복인지 귀신을 섬기는 것이었는지 마술을 행하던 일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70) 내가 구원을 위해 자녀를 사랑한다고 행했던 일들이 자녀를 죽이는 일이었구나. 내가 정말 귀신에게 애원했구나. 내가 자르라고 했던 일들이 모두 다 구원을 가로막는 일이었구나라는 것들을 공동체에 와서 자복을 해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71) 그러면 우리는 날마다 목장 예배 속에서 내 삶 속에 수많은 마술책을 불사르게 되는 것이다.

72) 회개하며 오픈할 때 나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내가 그냥 오픈을 하면 그 오픈 자체가 내 애초의 얘기인데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세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73) 그 목장이 세력을 얻고, 그런 교회가 세력을 얻고, 이런 교회가 많아지면 나라가 또 세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74) 나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자복하고 공동체에 알리고 이 일이 신기루이고 마술이고 귀신인 것을 깨달으니까 불태우게 되는 것이다

75) 자세히 보면 이 불태우는 일도 모든 사람 앞에서 불태웠다고 그러는데 그래서 모든 사람 앞에서, 목장에서 적용하고 그 다음 주일에는 꼭 확인해야 한다

76)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매주 이런 나눔을 하는 것이 바로 자복하며 알리며 불태우는 이런 적용인 것이다

77) 자복하고 알리고 (마술책을)불태우고 또 내일 자복하고 알리고 불태우고 또 다음 주일에 자복하고 알리고 불태우는 것이다

78) 목장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귀신에게 그냥 끌려가게 된다

79) 맨날 이거 바쁘고 저거 바쁘고 차일피일 미루게 되면 귀신의 밥 되기가 딱 시간 문제인 것이다

80) 그래야 사단의 나라가 힘을 잃고 하나님 나라가 힘을 얻어 뻗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81) 죄를 지어서 일보 후퇴해도 또 2보 전진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것이지 갑자기 우리가 성자가 돼서 뭘 어떻게 하는 게 아닌 것이다

82) 결코 임할 수 없었던 에베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이제 흥왕하여 세력이 뻗어나가는데 이거는 미완료형으로 지금도 계속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거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83) 그 출발은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바울로부터 그 바울이 두란노서원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면서부터 그리고 말씀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84) 자기의 죄를 늘 생각하기 때문에 바울처럼 복음 전하는 게 숨 쉬기다

85) 성령의 세력은 바울의 신유의 능력이 아니고 말씀에 힘이 있다는 것으로 주의 말씀에 힘이 있어서 세력을 얻어가는 것이다

86) 믿음은 세상이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87) 성령의 세력은 이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8. 24. 10:44

[우리들교회 2021822일 주일예배 말씀요약(사도행전 19: 1~ 7/ 성령의 임하심)]

 

 

<사도행전 19: 1 ~ 7>
 

1절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While Apollos was at Corinth, Paul took the road through the interior and arrived at Ephesus. There he found some disciples)

2절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and asked them,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They answered, "No, we have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3절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So Paul asked, "Then what baptism did you receive?" "John's baptism," they replied)

 

4절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Paul said, "John's baptism was a baptism of repentance. He told the people to believe in the one coming after him, that is, in Jesus.")

 

5절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On hearing this, they were baptized into the name of the Lord Jesus)

 

6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When Paul placed his hands on them, the Holy Spirit came on them, and they spoke in tongues and prophesied)

 

7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There were about twelve men in all)

 

 


<Prologue>

 

우리가 땅의 씨앗을 뿌리면 생명을 맺습니다. 과학자들이 씨앗의 색깔과 수분 단백질 등의 성분을 백 프로 똑같이 만들어서 심었습니다. 그 씨앗이 (발아하여) 맺어졌었을까요? 아무리 양육을 해도 조건을 똑같이 해도 생명이 자라지 않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생명은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과 은혜는 가르친다고 되지 않습니다. 제자 양육은 성령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시간적 순서로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제자 양육은 성령에서 시작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개미처럼 수고해도 썩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었는데 예루살렘에 임하신 성령이었고 에베소에서 성령 강림이 임하시게 됩니다. 제자 양육과 이어지는 본문이기에 제자 양육은 성령의 임하심이 절대적입니다. 성령이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임하심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1.   구원에 분별에 절대적입니다. 

 

 

1절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바울(Paul)에게 아볼로(Apollos)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는 큰 하나의 역할을 했다고 보여지는데 원래 바울은 아시아의 에베소(Ephesus)로 가고 싶었지만 베드로의 구역 임을 의식해서 마게도니아(Macedonia) 유럽으로 갔습니다.

 

2차 여행 마지막에 들러서 강론했더니 유대인들이 오래 머물라고 청했지만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겠다고 했었고 돌고 돌아 다시 왔습니다. 어떻게 분별 했을까요?

 

고린도 후서(2 Corinthians) 7 10절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게 하는 것이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Godly sorrow brings repentance that leads to salvation and leaves no regret, but worldly sorrow brings death)

 

바울은 아볼로에 대해 살짝 근심을 한 것 같아요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하버드입니다 너무 탁월합니다. 그런데 이 신약 성경에 히브리서가 저자 미상이지만 아볼로 저자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히브리서를 쓸 정도이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의 문체가 다릅니다. 대단한 말씀입니다. 출애굽기(Exodus)-레위기(Leviticus)-신명기(Deuteronomy)의 주석을 달았는데 레위기에 단 주석은 아주 특별한 주석이라고 합니다. 구약을 좔좔 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볼로의 이름을 안 남겨주셨습니다. 디모데전후서도 바울이 썼는데 디모데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아볼로가 그곳의 후임으로 갔는데 말을 엄청 잘합니다. 바울과 비교하면서 아볼로에게 뻑이 갔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고린도교회에 파당을 가져왔습니다. 고린도 전서 2장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하나님만이 자라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아볼로를 유리그릇처럼 다루었다고 합니다.



편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동역을 했음에도 아볼로 이름이 바울의 마지막 로마서 16장에 안 나옵니다. 구속사를 잘 아는데도 한 마음이 안되었습니다. 아볼로의 언어와 명칭과 법이 그를 사로잡고 넘어가지 못하는 본인의 지식 때문에 여기까지 되었습니다. 그랬을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내가 바울보다 잘났다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아볼로에 대한 결론이지만 왜 이때가 에베소에 올 때일까요? 에베소가 아주 황금어장이지만 항상 십자가의 지혜와 타이밍을 분별하는 바울입니다. 고린도에서 가르치다 보니 두 도시가 비슷하고 돈 많고 음란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고 했고 양육의 시간을 내니 열매가 많았어요. 의로운 아덴(Athens)에서는 열매가 없어서 떠났잖아요. 그러니 이제 고린도(Corinth) 16개월 있었는데 에베소(Ephesus)에 복음이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가 떠난 에베소는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만 안다고 했잖아요.



에베소가 근심이 되어서 갈라디아(Galatia) 지방 다니는 중에 자기의 고향 길리기아(Cilicia) 다소(Tarsus)도 못 가고 급히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분별했습니다. 바울은 가고 싶은 에베소가 그때 베드로 사도 구역이라고 안 갔잖아요. 너무 가고 싶었는데 성령이 막았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에베소가 생각보다 전도가 안 되었어요 또 분별했습니다. 최고의 아볼로가 전할 때도 대단하게 여기니 그렇기도 했겠고 남의 터에 가는 것 같아서 안 갔습니다. 둘은 만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볼로가 인도받아 추천을 받고 고린도를 떠났고 바울은 에베소가 요한의 세례만 아는 것 같아 걱정되어 모두의 마음을 다 읽었잖아요.



복음을 전한다고 마구 가고 이러면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전할 때라고 성령이 올 때는 급히 갔습니다. 에베소가 거점지라는 것을 알고도 때마다 분별을 합니다. 모두 성령의 작별로 윈윈(win-win)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분별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볼로의 말을 듣고 좋다고 하니까 걱정되는 마음이 이해되십니까? 바울은 죽이려고 하고 아볼로는 좋다고 하는데 바울은 박해 받았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를 담당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탁월함은 있지만 2%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에 연관되기 때문에 분별해야 합니다성경은 인간론이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신 바울에 정확한 분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임하신 분별이 역사를 가지고 옵니다. 내 생각으로 한 판단이 한 영혼을 좌우합니다.



(적용#1)

 

-성령의 임하심으로 항상 분별하나? 내 생각으로 판단하나

-나는 주변 사람들이 편하다고 하나? 어려워하나나는 뒤끝이 있나? 없나?

 

  

2.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떤 제자를 만났는데 예수님의 제자를 의미하지만 아볼로의 제자인지 아시아를 관장하는 베드로 제자인지 모르는 제자를 말합니다. 만났다는 말은 찾았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 찾아가 만났습니다. 반기는 여러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있었다는 것인데 가장 최근에 떠난 사람이 아볼로잖아요? 그러니까 근심이 되어서 이 제자들부터 찾아가 만났습니다.

 

  

2절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제 진단을 해야 되죠. 질문으로 양육이 시작됩니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성령이 임하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도 없던 기록이 나옵니다. 늘 강론을 했잖아요 이곳에서는 성령을 받았는지 먼저 묻고 사역을 시작합니다. 아볼로 제자들이 교만했거든요. ‘너희가 도대체 누구 제자냐?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의 계심을 듣지 못했다바울의 근심이 맞았습니다. 바울이 만난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한 제자였습니다. 유심히 보니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과 성령의 받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결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없고 에베소가 힘든 곳이기 때문에 바울이 오자마자 확인을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같은 곳은 음란하고 그냥 세상 세력에 찌든 사단의 세력이 강하다라고 보는 곳이기 때문에 성령의 임하심이 없이는 에베소 같은 내 남편 자식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단의 나라가 너무 강하면 우리는 성령 없이는 그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 같은 저 인간의 마음에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럼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원한다고 받아 지나요성령을 돈의 사려고 했다고 책망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구제하고 헌금하면 성령 받나요? 돈으로 살 수도 간절히 원한다고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합니다. 믿을 때에 성령을 받습니다. 믿을 때라는 말은 조건이 아닙니다. 믿음이 조건이 되면 행위가 됩니다. 믿을 때라는 말은 동시적 동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일어납니다. ‘믿었다면 성령을 받았을 텐데 왜 나타나지 않느냐?’ 내가 예수를 믿었다면 동시에 성령의 열매와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아무리 탁월한 교회와 양육을 받아도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아니고 사람의 제자로 살아갈 뿐입니다어떤 제자들이 성령이 있는 것을 듣지 못한 것처럼 믿기 때문에 어떤 수치도 당할 수도 있는 것이고 죽기보다 싫은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서 아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분은 기도와 성경 필사에 전념하시는 제자 반열에 있는 분입니다. 실제로 아내가 마지막 왔을 때 정신과를 가자고 했는데 내가 왜 거기를 가냐고 3시간을 따지고 3시간을 반박하고 당신이 예수를 믿으면 나를 용서해야 한다고. 아내를 향해 용서와 사랑을 외치니까. 아내가 그 이후로 모든 연락을 끊고 이혼 서류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용서는 가해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도대체 누구 제자냐? 믿음이 무엇입니까? 나의 수치를 인정하고 죽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분은 그렇게 열심히 성경 필사를 하고 보고 경건하게 지내는데 아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이렇게 요새 간수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분이 고백했는데 죽기보다 싫은 것이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기보다 싫은 것이 정신과를 가는 것이고 나 자신을 직면하는 것, 자녀에게 아내에게 사과하는 것, 공동체에 고백하는 것은 믿음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집사님도 아내와의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죄인임을 생각해 본 적도 듣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오늘 내게 말해주는 말씀을 믿으시면 됩니다. 발버둥 치는 것도 말씀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효과적으로도 우시는 것입니다. 에베소보다 악한 시대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간파했습니다. 어떻게 간파 했나요? 험한 전도여행을 하고 핍박을 당하면서 아볼로를 분별했어요 그러니까 어떤 제자도 분별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하신 분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로서 제자로서 무서운 열심 뒤에 감추어진 빈자리 그것을 보았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한 이 질문은 실전적인 질문이고 그들의 수준을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목사에게 구원의 받으셨어요?’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적용#2)

 

-내 실체를 드러내 주었던 질문은 어떤 질문이었나

-지금 나에게 죽기보다 싫은 적용은 무엇인가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맞다고 말하는데 나 혼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성령을 받았나

-여러분은 누구의 제자인가? 내가 제일 기억나는 스승은?

 

 

3.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3절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절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절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분별을 제대로 한 거예요 삶의 능력도 적용도 자신의 수치를 드러냄도 없는 어떤 제자들을 향해 바울이 묻습니다 너희가 무슨 세례 받았느냐?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la)가 아볼로(Apollos)를 양육한 것처럼 바울은 이 어떤 제자들을 양육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양육은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계속해야 돼요. 질문을 통해 자신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핌으로 양육이 되어지는 거죠. 바울은 다시 질문합니다. ‘너희가 무슨 세례 받았냐?’그러니까 제자들이 아주 자신 있게. 요한의 세례요. 이거는 우리는 아볼로 제자입니다이거하고 똑같아요 이 대단한 아볼로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니까 그 대답을 듣고. 바울은 그 요한이 세례를 베풀며 어떤 말을 했는지 그들이 믿는 요한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요한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바울이 인용한 마태복음 3 11절을 보면

 

(마태복음/Mattew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I baptize you with water for repentance. But after me will come one who is more powerful than I, whose sandals I am not fit to carry.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

 

여기 성령 세례 나오죠. 요한의 세례는 물로 세례를 베풀어요 우리는 요한이 어떤 인물인지 요한의 세례가 어떠한지 지난번 설교에서 회개하라 독서의 자식들아를 묵상했어요 그런데 이 요한의 메시지가 아직 오지 않은 소리, 예배하는 자의 소리라면 예수님은 하나님나라 자체가 이제 이미 왔잖아요. 그렇죠 그게 예배하는 자고 이미 임한 메시지에요 그 능력의 차이는 비교할 수가 없죠.

 

세례 요한의 설교가 듣기에 의롭고 멋있어서 그에게 그렇게 열광하는 사람이 많아도 이 속 사람의 죄를 못 보기 때문에 아까 이혼 앞둔 분도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지금 하나님 나라가 내게 임했기 때문에 이 더러운 내 속을 찔러주는 임박한 설교이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요동이 되는 거예요. ‘뭐 할 거다라고 하는 것 때문에 요동되진 않아요지금 내 속을 찔러주니까 예수님의 세례는 물 세례가 아니고 성령과 불의 세례예요. 불은 심판이죠. 즉 예수님의 세례는 구원과 심판이 함께 임하는 세례예요무슨 말이죠? ‘내가 예수 믿으면 잘 된다가 아니라 내가 예수를 믿어 심판을 이제 받을 수 있는 거예요. 

 

회개합니다제가 독사의 자식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 임이 깨달아 지고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세례인 거예요 용서하고 깨끗하게 씻겨주는 세례와 동시에 태우고 심판하는 불의 세례입니다. 용서받아서 이혼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니라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내가 이혼을 당해도 할 말이 없어요. 이 심판 가운데에서도 이 심판이 내 죄보다 가벼운 것을 깨닫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세례예요 우리는 심판 싫어해요 날마다 용서 물 깨끗함만 좋아해요. 하지만 내 속의 쭉정이가 뼈 속까지 죄인인 내 속에 끝없는 죄악으로 이 땅에서 불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영원한 심판을 면하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혼이 막아져도 은혜이고 이혼을 당해도 은혜입니다 환경이 아니라 이렇게 불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상급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의 세례 성령 세례 불 세례를 아는 자들은 그러므로 내 죄 때문에 깨어진 과정을 보며 끝없이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게 돼요 왜냐하면 나로 인해 저 영혼까지 함께 불의 심판을 받기에 이 심판 속에 능히 나를 살릴 예수를 전하는 마음이 불붙듯 일어나며 갈급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혼을 하고 나서도 이렇게 적용을 해야 되는데 이혼하기 전에 그렇게 이혼을 해야 되겠다. 그래야 되겠어요. 하지만 요한의 세례만 아는 하는 자는 불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임이 자신임을 들어본 적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에요 이 땅에서 불의 세례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림을 경험하는 것은 축복이에요 그 불 세례 속에 내 죄가 깨달아져 회개한 자는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아프간 (Afghanistan) 보세요. 심판이 그렇게 갑자기 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전부 총살당하고 기가 막힙니다 우리가 지금 천국 문 앞에서 이렇게 되겠구나 그러기에 우리는 요한의 세례가 아닌 그 세례 요한이 외쳤던 예수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성령 세례란 정확한 복음인 예수님을 확실하게 아는 거예요 바울은 그 예수님을 정확하게 다시 설명하고 복음을 설명한 거예요 이는 바울이 수없이 강론했던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음과 부활하심 다시 사심과 승천하시며 다시 오시는 것을 믿는 것이죠. 그분의 말씀을 믿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나의 죄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읽어가기에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이것보다 정확한 성령 세례가 없습니다 구속사로 성경이 읽혀지는 거. 이게 성령 세례예요 세례란 죽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 세례란 십자가 지는 거예요. 이들이 어떤 제자인 이유는 아볼로의 가르침 이라기보다 아볼로도 어떤 제자도 지는 십자가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십자가를 지는 것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다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던져버리고 싶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각자의 자기 십자가를 져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이 사도행전 19장 이 본문은 교파마다 해석을 달리하는 아주 어려운 본문입니다. 요한의 세례 받았는데 다 또 세례를 받는다고 하니까 재세례파가 등장을 하고 저 뒤에 가서 보면 성령 받으려면 방언을 해야 된다고 그래서 오순절 교파가 나옵니다성령은 오순절에 처음 오신 것이 아니고 창세 전부터 계시며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실 것입니다. 성령 세례의 표적은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의 부류가 달라지는 것,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서울에서 초 중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 나왔지만 일류를 좋아하는 제가 함께하는 분은 여러분이에요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가 좋아서 이렇게 지금 가는 거예요 여러분은 누가 그렇게 좋으세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 물세례 성령 세례는 동시에 올 수도 있고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지만 성령 세례를 알려주기 위해서 바울이 가르친 것은 정확한 예수 그리스도 복음입니다.

 

  

(적용#3)


-내가 예수 믿으면 잘 된다가 아니라 내가 당한 불의 심판은 무엇인가?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나? 지금 던져버리고 싶은 십자가는 무엇인가?

-사건 앞에 나는 어떤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 임이 인정되나?

 

 

 

4.   방언과 예언을 합니다 

 

6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안수 직후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는데 여기에 쓰인 두 개의 동사의 시제는 모두 계속됨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형이에요 성경에서 방언이라는 말이 두 가지 의미로 쓰였는데 이제 성경을 목적으로 이제 바벨탑 사건의 저주를 풀어 주신 그 외국어 방언이 있고 개인의 신앙에 확신을 주기 위하여 주어진 은사로 주신 방언이 있어서 고린도전서 13 1절에서는 이것을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로 표현을 했어요. 천사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의 방언이고 사람의 방언은 외국어이지만 우리는 성령 받음을 생각할 때 그냥 방언이나 예언 또는 여러 기적 이걸 기적 같은 은사에만 관심을 가지기 쉬워요. 그래서 그런 가시적인 능력이 있어야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오순절도 그렇고. 그래서 저도 이거 가서 한번 경험을 했는데그래서 이렇게 방언을 받으라고 막 연습을 시키더라고요 랄랄랄라따라 시작을 하라고. ‘랄랄랄라그러면서 방언이 또 터지더라고요. ‘랄랄랄라시키는 데가 있고 코카콜라를 또 시키는 데도 있어요그걸 빨리 연습해보라고 이런 생각은 성령을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에너지로 여기는 것입니다 기준이 우리가 행하는 은사에 있으면 성령은 한낮 에너지나 자원이 되는 것이죠.

잘못된 이해입니다.



내 생각, 내 가치관, 외모만 취하던 세상 가치관에서 이제 내 삶이 말씀으로 해석이 되니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과 예언을 말하게 됩니다 방언은 제가 2장에서도 설명을 했었지만 이건 소통의 능력이에요 공감력 소통이 왜 중요하죠? 우리 영원히 타락하여 사단에 속한 사람들이라서 주님과 소통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매사 하나님의 마음 뜻을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 마음을 알려주신 거예요.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내 모든 고난과 고통이 이 죄인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허락한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이니까 소통이 안 되는 나를 주님과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 방언이에요. 그러면 그 주님의 마음을 어떻게 공감하죠? 말씀을 통해서 그래서 말씀으로 말하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이에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 이게 방언이니까 사단에 속한 세상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요 불신 결혼, 동성애가 말씀에 다 나와 있는데 인권이 우상이 되니까 절대로 못 알아들어요 고난이 축복이다. 문제 아이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 옳고 그름에 화신인 이 세상 사람들은 선악과 먹고 매일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이 구속사는 방언 중에 방언이에요. 그래서 우리들 교회 와서 말씀이 안 들린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도덕 설교 윤리 설교를 안 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게 성경을 읽었는데 이혼이 되고 잃으니까



이제 오셨잖아요 해결이 안 되니까 이게 축복이죠 하지만 성령이 임하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내가 또 말씀으로 전해드리는 기도를 하게 돼요 왜냐하면 세례를 통해 성령 세례를 통해 내 생각은 예수와 함께 죽고 이제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무엇인가요? 어디 가서 점 보는 예언이 아니에요 우리 사주 팔자 관상 너무 좋아합니다믿을 사주 팔자도 봐준대요. 사야 할 주식 팔아야 할 자리 봐주는 거래요. 문전성시를 이룬답니다. 오늘 뭘 살까요오늘 뭘 팔까요? 여기서 예언의 첫 자인 는 미리 ()’자가 아니고요. 맡길()’ 말씀 ()’이에요.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어요. 즉 예언은 뭐냐 하면은 감화력인데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소통이 일어나서 이 말씀을 맡아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내게 맡겨주신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여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 이것이 예언입니다. 바울을 통해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uilla)가 변화되고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아볼로(Apollos)가 변화되는 것 이것이 예언입니다.



이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내 삶의 이유를 말씀으로 해석하여 나와 같은 고난에 있는 자에게 권능으로 나아가 그 사람이 내가 깨달은 이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 이것이 예언이에요 그러니까 방언도 예언도 영혼 구원을 위함이며 성령이 임하시면 영혼 구원을 길로 놓고 가게 됩니다 결론은 날마다 말씀 묵상, 가정 중수다.  7절에 모두 12 사람쯤 되니라 열두 사람이 아니고 쯤 되니라 이거는 산수가 아니고 10이란 숫자가 중요하죠. 12는 회복의 숫자예요. 구약의 열두 지파 신약의 열두 사도를 예표합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가 다 무너지고 신약에 또 열두 사도가 세워졌잖아요. 우리가 죄를 지으면 무너졌지만. 하나님이 회복시키셔요. 12는 말씀을 맡은 공동체를 의미해요. 말씀을 맡은 공동체 무엇입니까? 목장이죠 12는 마지막 우리가 천국에 갈 때도 천국을 표현하는 숫자입니다. 천국 문이 열 둘이에요. 그 문에 열두 보석 열두 천사가 있죠. 생명나무 강가에 열두 열매가 맺혀요 요한계시록에 모이는 것은. 다 열 둘이에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나쁜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이 성령의 임하심은 그 열두 공동체 온전한 회복이에요. ‘목장의 마스코트로 7살 아이의 나눔을 시작으로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늘 우리가 여기 있어요하는 목원들의 얼굴을 보면 한 달 동안 월급을 못 받고 불치병이 하루하루 힘들고 이혼을 하고 싶고 의인인 남편을 향해 예수와 사는 것 같다는 이런 목장 모임이 열두 공동체예요.



청년부 큐페 온라인 조별 나눔에 7명이 들어왔는데. 6명이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가 약을 안 먹고 힘들어하는 그 한 명에게 모두가 약 잘 먹고 잘 넘어가야 한다고 처방을 내줬는데 그게 진짜 다 우리가 여기 있다’(We are all here)의 열두 공동체 아닌가요? ‘우리가 다 여기 있다는 잘나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공동체인 거예요. 구원받았는데 아픈 사람 안 아픈 사람 다 포함되는 구원받은 우리 건강한 사람이 우리인가요? 이 어떤 제자들이 열두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9절 열두 사람의 예수의 제자 온전한 회복 공동체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소통과 감화를 시키는 방언과 예언에 이 열두 공동체의 나눔을 들려드릴게요 



저는 우리들교회 청년부에 다니고 있는 청년이에요. 이번 청년부 큐페 때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고. 특히 성령의 죄수 목사님 설교를 듣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조 모임도 좋았고. 마지막 날은 무려 일곱 시간 동안 조 모임을 했어요. 저도 제가 신기해요.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목사님께 매를 씁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친했던 학교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애써 잊으려고 해봐도. 그 트라우마가 저를 계속 괴롭히고 저 스스로 더럽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때마다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실제로 세 번이나 이 간수처럼 자해를 하고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우리들교회 와서도 이 이야기를 하는 것 힘들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이었다고 생각이 되긴 합니다. 우리가 대면으로 이렇게 좀 해야 되는데. 그때가 계속 생각이 나고 괴로운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큐페 때 설교를 들으면서 그것을 말하지도 못하고 괴로워만 하고 있는 제 모습이 정말 귀신 들린 그 여종 같았어요



그런데 첫날 내 존재 자체가 귀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설교 말씀을 듣고 참 많이 울었어요 둘째 날 저녁에는 내가 갇혀 있는 깊은 감옥에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말씀이 참 위로가 되었고 내가 그동안 성폭행의 상처와 괴로움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것도. 고난 때문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 없었고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이 소통과 이제 감화를 못 받은 거죠 그죠. 이 사실이 깨달아졌어요 3년 만에 목장에서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큐페의 조모임 때 나누면서 처음 이야기를 했어요. 마침 그때 목사님이 줌으로 탐방을 오셔서 제 야기를 들으시고 물어봐 주시고 같이 울어 주셨어요. 같이 나눔을 하고 있던 언니 오빠들도 저를 위로해주고 같이 울어 주셔서 저도 펑펑 울면서 나눔을 했는데 이게 죄수 공동체구나간수처럼 자살을 하려고 했던 저에게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고 나니까 진짜 주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된 간수의 기쁨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선택 강의를 들으면서도 강사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버거워 했던 제 삶을 강사님도 겪었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괜찮다고 공동체에서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아만 있으면 된다고 하시는 말씀이 너무 위로가 되었어요 간증 패스티벌 때도 하나같이 말도 안 되게 살았던 청년 들이 저렇게 이야기를 하고 공동체에서 위로를 받으며 살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참 많이 울었어요.



이게 죄수 공동체의 위력이구나를 새삼 깨닫고 제가 우리들 교회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저는 제가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이제 평생 남자는 못 만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조 모임을 마치고 나서 같이 조 모임을 했던 형제가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호감을 보여줬어요 위로는 받았지만 아직 상처가 완전히 다 아물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다 했는데도 저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형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정말 큰 위로와 감격인 것 같아요 목사님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제가 청년 때 이런 교회를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평생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We are all here’이 말씀은 절대로 까먹지 않을 것 같아요.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꼭 목사님께 드리고 싶었어요 생명의 은인 같으세요. 우리들교회 청년부 너무 사랑하고 또 목사님 너무 사랑합니다우리들교회를 젊은 날에 와서 도무지 해결될 것 같은 아는 이런 문제가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고 평생 굴속에 있다가 간수처럼 맨날 칼 빼들고 자결을 흘렸다 말렸다 했는데. 예수의 세례를 이렇게 받게 되니까 이렇게 소통이 됐습니다.

 

 

(적용#4)


-소통하는 방언과 감화를 시키는 예언을 하나? 회복의 지름길이 온전한 12공동체 목장에 가는 것임을 아나? 나는 무엇이 회복되고 싶나 

 

 

<Epilogue>

1)  성령의 임하심은 구원을 위한 분별에 성령의 임하심은 절대적인 이유는 우리는 어떤 제자가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2)  우리는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

3)  성령 세례는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다.

4)  성령의 임하심은 그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것이며 십자가 지는 것이다

5)  성령의 임하심은 소통과 감화의 방언과 예언을 말한다

6)  성령의 임하심은 열두 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을 말한다

7)  나는 죽고 예수님은 살아나는 십자가를 기쁘게 지는 것이 성령의 임하심 성령 세례의 결론이다 

8)  제자 양육은 성령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시간적 순서로 말할 수 없다.

9)  성령의 제자 양육은 성령에서 시작된다.

10) 성령을 받지 못하면 개미처럼 수고해도 헛수고다.

11) 고린도 후서(2 Corinthians)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계를 이루게 하는 것이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Godly sorrow brings repentance that leads to salvation and leaves no regret, but worldly sorrow brings death)

12) 질문으로 양육이 시작되며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성령이 임하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13) 에베소 같은 곳은 음란하고 그냥 세상 세력에 찌든 사단의 세력이 강하다라고 보는 곳이기 때문에 성령의 임하심이 없이는 에베소 같은 내 남편 자식을 감당할 수 없다

14) 사단의 나라가 너무 강하면 우리는 성령 없이는 그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없다

15) 구제하고 헌금한다고 성령 받을 수 없고 돈으로 살 수도 간절히 원한다고 임하는 것이 아니다

16)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데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다.

17) 믿을 때라는 말은 조건이 아닌 것인데 믿음이 조건이 되면 행위가 된다.

18) 믿을 때라는 말은 동시적 동작을 가리키는 것이며 동시에 일어난다.

19) 내가 예수를 믿었다면 동시에 성령의 열매와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20) 아무리 탁월한 교회와 양육을 받아도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아니고 사람의 제자로 살아갈 뿐이다

21) 용서는 가해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22) 나의 수치를 인정하고 죽어지는 것이 믿음이다

23) 죽기보다 싫은 것이 인정이고 정신과를 가는 것으로 나 자신을 직면하는 것, 자녀에게 아내에게 사과하는 것, 공동체에 고백하는 것은 믿음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24) 양육은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계속해야 하는 것으로 질문을 통해 자신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핌으로 양육이 되어지는 것이다  

25) (마태복음/Mattew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I baptize you with water for repentance. But after me will come one who is more powerful than I, whose sandals I am not fit to carry.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

26)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지금 하나님 나라가 내게 임했기 때문에, 이 더러운 내 속을 찔러주는 임박한 설교이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고 요동이 되는 것이다

27) 예수님의 세례는 물 세례가 아니고 성령과 불의 세례인데 불은 심판이다

28) 예수님의 세례는 구원과 심판이 함께 임하는 세례다 

29) 내가 예수 믿으면 잘 된다가 아니라 내가 예수를 믿어 심판을 이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30) 예수님 세례는 회개합니다제가 독사의 자식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 임이 깨달아 지고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한다

31) 예수님 세례는 용서하고 깨끗하게 씻겨주는 세례와 동시에 태우고 심판하는 불의 세례인 것으로 용서받아서 이혼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니라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내가 이혼을 당해도 할 말이 없어요 이 심판 가운데에서도 이 심판이 내 죄보다 가벼운 것을 깨닫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32) 내 속의 쭉정이가 뼈 속까지 죄인인 내 속에 끝없는 죄악으로 이 땅에서 불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영원한 심판을 면하는 은혜다

33) 그래서 예수의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저는 어떤 불의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입니다

34)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혼이 막아져도 은혜이고 이혼을 당해도 은혜인 것이다

35) 환경이 아니라 이렇게 불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상급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36) 그러니까 예수의 세례 성령 세례, 불 세례를 아는 자들은 그러므로 내 죄 때문에 깨어진 과정을 보며 끝없이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37) 왜냐하면 나로 인해 저 영혼까지 함께 불의 심판을 받기에 이 심판 속에 능히 나를 살릴 예수를 전하는 마음이 불붙듯 일어나며 갈급하게 되기 때문이다

38) 이 땅에서 불의 세례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림을 경험하는 것은 축복인 까닭은 그 불 세례 속에 내 죄가 깨달아져서 회개한 자는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39) 성령 세례는 정확한 복음인 예수님을 확실하게 아는 것이다  

40) 성령세례는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음과 부활하심 다시 사심과 승천하시며 다시 오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41) 성령세례는 우리가 성경을 나의 죄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읽어가기에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이다.

42) 이것보다 정확한 성령 세례가 없다

43) 성령세례는 구속사로 성경이 읽혀지는 것이다

44) 세례는 죽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 세례는 십자가 지는 것이다

45) 십자가를 지는 것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다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던져버리고 싶은 길이기 때문이다 

46)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47) 사도행전 19장 이 본문은 교파마다 해석을 달리하는 아주 어려운 본문인데 요한의 세례 받았는데 다 또 세례를 받는다고 하니까 재세례파가 등장을 하고 저 뒤에 가서 보면 성령 받으려면 방언을 해야 된다고 그래서 오순절 교파가 나온다

48) 성령은 오순절에 처음 오신 것이 아니고 창세 전부터 계시며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실 것이다.

49) 성령 세례의 표적은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50) 물세례, 성령 세례는 동시에 올 수도 있고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지만 성령 세례를 알려주기 위해서 바울이 가르친 것은 정확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다.

51) 성경에서 방언이라는 말이 두 가지 의미로 쓰였는데 성경을 목적으로 바벨탑 사건의 저주를 풀어 주신 그 외국어 방언이 있고 개인의 신앙에 확신을 주기 위하여 주어진 은사로 주신 방언이 있다

52) 고린도전서 13 1절에서는 이것을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로 표현을 했다

53) 천사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의 방언이고 사람의 방언은 외국어이지만 우리는 성령 받음을 생각할 때 그냥 방언이나 예언 또는 여러 기적 이걸 기적 같은 은사에만 관심을 가지기 쉽다

54) 그래서 그런 가시적인 능력이 있어야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을 한다

55) 랄랄랄라따라 시작을 랄랄랄라그러면서 방언이 또 터지더라

56) 랄랄랄라시키는 데가 있고 코카콜라를 또 시키는 데도 있는데 그걸 빨리 연습해보라고 이런 생각은 성령을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에너지로 여기는 것이다

57) 기준이 우리가 행하는 은사에 있으면 성령은 한낮 에너지나 자원이 되는 것으로 잘못된 이해다.

58) 내 생각, 내 가치관, 외모만 취하던 세상 가치관에서 이제 내 삶이 말씀으로 해석이 되니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과 예언을 말하게 된다

59) 방언은 소통의 능력이다

60) 공감력과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영원히 타락하여 사단에 속한 사람들이라서 주님과 소통할 수가 없기에 우리는 매사 하나님의 마음 뜻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61)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 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62)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내 모든 고난과 고통이 이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려고 허락한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이라고 그러니까 소통이 안 되는 나를 주님과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 방언이다

63) 주님의 마음을 공감하는 방법으로 말씀을 통해서 말씀으로 말하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이다 

64)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 방언이니까 사단에 속한 세상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65) 그래서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66) 불신 결혼, 동성애가 말씀에 다 나와 있는데 인권이 우상이 되니까 절대로 못 알아 듣는다

67) 고난이 축복이다. 문제 아이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

68) 옳고 그름에 화신인 이 세상 사람들은 선악과 먹고 매일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들린다

69) 그래서 구속사는 방언 중에 방언이므로 우리들 교회에 와서 말씀이 안 들린다고 하는 것이다

70) 성령이 임하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내가 또 말씀으로 전해드리는 기도를 하게 된다

71) 왜냐하면 세례를 통해 성령 세례를 통해 내 생각은 예수와 함께 죽고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72) 예언의 첫 자인 는 미리 ()’자가 아니고 맡길()’ 말씀 ()’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다

73) 즉 예언은 감화력인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소통이 일어나서 이 말씀을 맡아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74) 내게 맡겨주신 말씀으로 내 삶을 해석하여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예언이다.

75) 바울을 통해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uilla)가 변화되고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아볼로(Apollos)가 변화되는 것이 예언이다

76) 이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내 삶의 이유를 말씀으로 해석하여 나와 같은 고난에 있는 자에게 권능으로 나아가 그 사람이 내가 깨달은 이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이 예언이다

77) 그러니까 방언도 예언도 영혼 구원을 위함이며 성령이 임하시면 영혼 구원을 길로 놓고 가게 된다 결

78) 론은 날마다 말씀 묵상, 가정 중수다.

79) 12는 회복의 숫자로써 구약의 열두 지파, 신약의 열두 사도를 예표한다

80) 구약의 열두 지파가 다 무너지고 신약에 또 열두 사도가 세워졌다

81) 우리가 죄를 지으면 무너졌지만 하나님이 회복시키신다

82) 12는 말씀을 맡은 공동체를 의미하는데 말씀을 맡은 공동체가 목장이다

83) 12는 마지막 우리가 천국에 갈 때도 천국을 표현하는 숫자다.

84) 천국 문이 열 둘인데 그 문에 열두 보석과 열두 천사가 있더.

85) 생명나무 강가에 열두 열매가 맺히며 요한계시록에 모이는 것은 다 열 둘이다

86)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나쁜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한다.

87) 그래서 이 성령의 임하심은 그 열두 공동체 온전한 회복이다.

88) 우리가 다 여기 있다는 잘나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공동체인 것이다

89) 구원받았는데 아픈 사람, 안 아픈 사람 다 포함되는 구원받은 우리 건강한 사람이 우리인가? 이 어떤 제자들이 열두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90) 소통과 감화를 시키는 것이 열두 공동체의 나눔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8. 17. 12:40

[우리들교회 2021815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6: 25~ 34/성령의 죄수)]

 

 

 

<사도행전 16: 25 ~ 34>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절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절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절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절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절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절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절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Prologue> 

 

아버지 안에 우리가 100% 죄인인데 참 그것을 모르고 또 죄인이라고 해도 성령의 죄수가 돼야지 될 터인데 주님 오늘 성령의 죄수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나라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닫힌 환경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은 광복 76주년이에요.

 

일제 강점기 당시 국민 전체가 감옥에서 죄수로 살았다고 할 수 있죠. 수많은 수탈 말고도 가장 큰 고통은 언어를 잃고 글자를 잃었다는 것이에요 저희 부모님은 일제 시대를 겪었기에 나라 없는 설움도 겪고 양과 부모님 모두 북한뿐 이라서 남한에 내려와서 고향 없는 설움도 겪어보았습니다 이것을 당해보지 않은 다음 세대는 도무지 모릅니다. 요즘 간첩이 버젓이 활동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프간의 수도 카불의 함락이 임박했다고 돼서 특별히 된 기사를 보았는데 30만의 군대가 7만의 탈레반에게 최신 장비를 가지고도 지금 자멸을 당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20여 년에 걸쳐서 1조를 지원했다고 해요.



그러니 월남전이 생생하게 기억이 됩니다. 1975 4 30일 이 지구상에서 월남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졌습니다. 100만 이상의 세계 4위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단, 10만 명의 월맹군 앞에 허무하게 무너졌지요. 간첩들과 월맹 사람들이 그때 월남의 각계 각층을 장악했어요. 천주교 불교 사이공대학 등 전부 군부대 지식인 언론계 교육계 대학가 등 불과 0.25%의 좌익 공산 세력이 자유 월남의 패망을 유도했어요 정말 그 아무것도 아닌 정말 독버섯 하나가 전체를 망가뜨렸다고 하는데, 독버섯인 줄은 모르죠. 그렇죠 그러면서 그때 다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남북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가 다 구호였어요.



그리고 미군 철수가 다 구호이고 그래서 결국은 한국군과 미군이 철수를 하고 월남과 월맹 평화 협정을 맺었어요 그리고 잠시 후에 쳐들어와서 나라가 없어졌는데 지금 아프간에서도 미군 철수를 계속 부르짖어서 그렇게 공개 처형을 하는 그 탈레반 인데도 불구하고 미군 철수를 얻어내서 한 2주일 미군 철수 앞두고 지금 이제 수도와 다른 데는 다 함락이 되고 카불 함락이 지금 코앞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가 막힌 기사가 별로 언론에 나오지를 않고 있어요 그래서 미안마 사건도 별로 언론에 나오지를 않고 있어서 저는 너무나 위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개척 때부터 하나도 빠지지 않고 송구영신 예배 때 애국가를 4절까지 꼭 부르고 있습니다.

 

제가 광복절 설교를 특별히 안 해도 될 것은 우리 교회는 매주일 가정주일을 알아서 지키기는 그것이 진배였기 때문인데요



성경은 구원의 책이기 때문에 개인 구원이 사회 구원으로 가게 하고 성경이 나를 읽고 가게 하기 때문에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은 자는 나라 걱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없어지면 예배를 못 드리잖아요. 그래서 청년부 수련의 주제인 ‘We are all here’ (우리가 모두 여기 있습니다)입니다. 이제 성령의 죄수가 되어서 우리가 모두 여기 있습니다. We are all here’에 대해서 오늘 이제 다시 한 번 이 본문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죄인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령의 죄수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말씀 요약>

  

1.   잘 듣습니다.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굳게 닫힌 감옥 문 위 바울(Paul)과 실라(Silas)를 막고 있는 한밤중이라도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죄수들이 들었다고 합니다. 들은 것이 중요한데 죄수들이 들었다고 합니다. 귀신들린 여종 고쳐주고 살점이 뜯겨 나가도 죄수들이 듣는 데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인데 성령이 도와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죄수들이 아니면 본능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종교부장까지 하면서 대표 기도까지 했습니다. 본질적으로 들리지 않았어요 제가 죄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감옥에는 육적인 죄인들이 많으니 듣는 것이 쉽습니다. 말을 할 수 없는 오픈이 있습니다. 유대인 같은 의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픈 못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바울도 식구들 이야기는 못하더라고요. 아덴 같은 식구는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죄수들이 바울의 말을 들어주었을 것 같으니 그 환경은 하나님이 세팅하신 환경입니다. 청년들 때문에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들어야 합니다. 신 결혼하라고 말하는 것은 죄인들의 공동체를 꾸리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만남이 최고의 만남입니다. 죄인과 의인의 만남은 소망을 이룰 확률이 반이 되지만 의인들끼리 만나면 기분 좋게 들어갔다가 죽어가는 것처럼 행복을 부르짖다가 구원을 놓치니 최악의 만남입니다. 세 만남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한 목사님 부모님 부부가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일이지만 불신자 남편을 만나서 재혼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면 행복해야 하면 감사해야 하는데 떠내려가서 이제 교회에서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목사인 전 남편을 원망하고 입만 열면 비난한다고 합니다.

 

아버지 목사도 집사와 재혼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힘들게 했으니 떠났습니다. 힘이 들어요 그런데 문제는 아들 목사가 신불 신간 양쪽과 모두 안 통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한계점의 고난이 오니까 이 가정을 떠나지 않고 드디어 구속사 말씀이 들려서 예배를 드리게 됐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아버지는 같이 예배를 안 드리신다는 거죠. 네 분 부모님 중에서 새어머니와 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목사라고 해도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면 가정을 파괴하게 됩니다. 율법이나 은혜나 강박이나 두려움이라고 해도 법 하나 때문에 가정을 파괴하면 정말 율법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친엄마는 같잖아요. 요새 엄마는 지키고 있잖아요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기가 막혀도 우리들교회 출석하는 것으로 은혜가 좀 더 크고 죄인임을 인정하기에 가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파이팅입니다. 내가 조금 이상하다고 떠나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최우선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결혼은 감옥생활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너도 죄인 나도 죄인 하면서 감당을 합니다. 서로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과거 가지고 싸워도 죄인 된 태도로 일관된 것입니다. 죄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우리들 청년이 이혼이 없습니다. 잘난 것이 없습니다. 목사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속 많이 썩였겠죠. 그렇다고 그렇게 사모가 그렇게 떠나면 됩니까? 어쩌면 그렇게 잘 삽니까? 그게 부럽죠 그렇죠? 용서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한쪽은 죄인이고 한쪽은 의인이면 죄인 쪽에서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합니다. 감옥에 와서도 내가 죄지은 것이 없다고 억울하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교회 다녀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 기도하지만 결혼하면 나 죄 없어가 대부분입니다. 다 속았다고 합니다. 가치관이 한쪽 죄인의 일이면 다르기 때문에 영적 전쟁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니까 문자적으로 낮아진 죄인인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왜 듣나요?



갇혀 있으니 듣습니다. 식구들도 망하고 갇혀있을 때는 기도와 찬송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한테 점수 주지 마세요. 영적 죄인들이 성도들이잖아요 영적 죄인들인 우리가 죄인이에요. 감옥에 갇혀서 죄를 모르는 진짜 죄인들에게 긴 기도와 찬송을 들려주어야 하는 사명이 있어요. 들릴 때가 오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있고 권세가 있으면 뛰쳐나갑니다. 가정은 최고로 지켜야 할 가치라고 어려서부터 알려주는 성경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습니다. 한국은 이혼율이 최고잖아요. 죄인들에게 주신 은혜는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은혜로 살아도 이제 사단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100% 사단의 나라 거기에서 영점 일 프로가 하나님 나라로 시작하니까 점점 줄어들고 하나님 나라는 점점 커지는 것 여기에서 성도는 늘 힘듭니다. 내가 한번 구원받으면 내가 형통하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점점 올라가서 커지려고 하니까 점점 축소되니까 내 하나님 어찌하여 버리시니까? 찬송하며 하나님 나라에 속하면서 아버지를 부르짖으면 그것이 은혜입니다.



돈도 없고 갈 데도 없으면 기도와 찬송을 듣게 됩니다. 망할 때가 말씀이 들릴 때라고 믿게 됩니다. 감옥에서 잘 살면 얼마나 잘 삽니까? 감옥에서 잘 사는 것은 기도와 찬송하는 것인데 거기서 힘들다고 탈옥하면 기도와 찬송을 들을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아내와 남편을 버리고 탈출하면 감옥에서 천상의 찬송을 들을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두고두고 될 일이 없어요 끝까지 참아도 이혼당하는 사람은 큰 계획이 있습니다. 이때가 구원의 때이므로 옥중 찬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남편과 통했던 적이 없습니다. 교회 다니니 자칭 죄인인데 무늬만 죄인이고 의인의 만남으로 시작했어요 남편은 모범생이잖아요. 그런데 저도 모범생이며 의인으로 둘 다 의인으로 지옥 갈 뻔했는데 감사하게도 남편의 전공이 음주였어요 그래서 다른 재미가 없어요 여자를 좋아하면 한 눈 팔면서 자유를 주었을 텐데 가두고 살았어요 놀 줄도 모르고 힘든 거예요 차라리 놀아서 자기한테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쉬웠을 텐데 술도 집에서 혼자 마셨어요



병원 가서도 원장님 하니까 거기다가 강박도 있었고 그런데 지금 거룩하게 음주라고 했지만 술을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술 주사가 있었어요. 큰 고난이었어요. 문자적으로 의인입니다. 저도 의인입니다. 참 두려움이라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혼하지 않은 것은 영육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치열했어요. ‘술 주사라는 것은 아주 종합적인 박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다 해당되고 그것은 말로 설명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므니다.’



제가 괜히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고 죽고 싶은 그 가정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좀 참아내세요 이렇게 성령의 죄수가 되어서 정말 의인으로 지옥 갈 뻔했는데 좋은 기회를 주시는 거라 말씀드리는 게 전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기적은 일방적인 주사를 들어낼 수 있는 기적인데 들으면서 기도하고 찬송했지요 그런데 기가 막힌 깨달음이 오는 거예요 아니 별일이 없었겠어요? 사단이 일제히 달려들면 효과적으로 도우시니까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나고 살아나게 하셨어요. 기가 막힌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이 세상 기쁨을 위해 성공하려고 살았던 제가 하나님 나라 쪽으로 가니까 조금씩 내려놓게 하셨어요 전혀 알지 못했던 기쁨입니다. 신기하게도 남편이 주사를 부릴수록 내 죄가 보였어요 사단에 속해있던 저였습니다. 거짓 포장 야망 차별 생색 생각지 못한 죄악이 드러나니까 눈물로 회개가 되면서 남편의 술 주사와 비교가 안 되는 죄와 비교가 안 되었습니다.



그러니 결혼의 감옥에 갇혔다고 불평과 인권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가정을 지킨 것이 감사합니다 겉으로 착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가증스럽고 그것을 누가 가르쳐 줍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생명을 내놓고 기도한 것이 설명이 안됩니다. 성령의 죄수가 맞습니다. 나의 죄를 성령이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날이 갑자기 옵니다. 늘 기다리는 것 같지만 갑자기 옥토가 흔들리고 문이 열립니다. 수동태 동사입니다. 옥에서 잘 기다리면서 자기 죄를 더 보며 내가 옥에 있는 것은 스데반이 죽은 나의 결론이라고 실라와 나누었습니다. 영적 시각이 생기게 됩니다. 새로운 가치관이 생기게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유함이 생기니 감옥이 옥이 아니니 갑자기 우리 남편의 죽음이 지진 같은 사건이었지만 죽음을 깨뜨리신 하나님 임재의 현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둘 다 의인이면 최악의 만남이고 앞이 안 보여요 기도와 찬송이 들리지 않아요 질그릇이 아니고 금 그릇이기 때문에 깨지지 않습니다. 남녀 둘 다 의인인 금 그릇이기 때문에 영혼이 안 보이고 영원한 심판으로 가게 됩니다.



또한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의인들인 유대인들처럼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늘 원망속에 있든지, 불평 속에 있던지 죄수들의 감옥이지만 특별 대우 받으면서 특별하게 있었다고 해도 잠시간의 행복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이 땅에서 잘 삽니까? 감옥에는 정치범부터 잡범까지 지진에서 죽으면 이상과 이하도 아닙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수가 아닌 공동체는 사건이 터지면 뛰쳐나갑니다. 죽음 앞에서 별 인생 없습니다.

 

 

(적용#1)

 

-내 인생의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 했나? 뛰쳐나갔나?

-여러분의 결혼생활은 죄인들의 만남인가? 죄인과 의인의 만남인가? 의인들의 만남인가?

 

 

2.   잘 묻습니다

 

27절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절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멸망의 사건이 아닌데 의인들은 다 조그만 사건이 오면 멸망의 사건이라고 하잖아요 죽는 사람 많습니다. 드러난 수치 이런 가난 때문에 자신을 직면하기가 어렵습니다. 간수에게는 죽을 일이 생겼어요 성도들이 간증하지만 식구들 중에서는 가문의 수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감옥에 있어도 죄수는 기도와 찬송을 듣고 풀리지만 거기서 조금 높은 사람은 자기가 조금 높다고 감시는 했지만 듣지 않고 잤습니다. 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벽 하나 사이로 평생 안 듣는 부모 자녀가 있습니다. 옥문이 열려도 살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죄인과 의인의 만남은 함께 가기 힘듭니다. 죄인과 죄인의 결혼이 너무 중요합니다. 자결이 100% 죄인이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 하기에 하는 것입니다. 길은 예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죄인과 의인의 만남은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고가 안 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의 결혼, 죄인의 결혼이 너무 중요합니다 당장 눈앞에 지진과 열린 문만 보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해요. 이후에 이루어질 구원이 전혀 안 보입니다 자결은 100% 죄인이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의인인데 억울해서 하는 게 자결이에요. 길은 예수 밖에 없는데 자꾸 다른 길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죽는 길이라고 합니다 지진의 사건은 바울의 결박을 풀어줄 뿐 아니라 자고 있던 간수도 깨우는 사건이에요바울의 목적은 자유케 되어서 이 옥을 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 자유로 스스로 갇힌 자가 되고 종이 되어 이 사건을 해석하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자결하려는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스스로 선택하여 복음의 종이 되는 것이죠. 자유를 부르짖다가 자유를 반납했어요 누구를 위해서요? 바울을 가두고 지킨 간수의 구원을 위해서요 이게 놀라운 기적 아니에요? 세상에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하는 적용을 길로 놓아야 성령의 죄수인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보고 마음이 열리니 옥문이 열렸는데 진짜 옆에 있던 그 죄수들 이 은혜를 받고 아무도 안 나갔다는 거예요. 한 명이라도 나갔으면 간수가 죽었죠



자기를 창고에 가두고 든든히 지켰던 그 간수를 위해서 안 나왔다고 자기가 양육한 모든 제자 동무 제자들이 죄수들이 다 안 나왔어 죄수들이 옥에서 나가기를 얼마나 소원했겠습니까?

그런데 옥문이 열렸는데 아무도 안 움직인 것은 매를 맞고 성령의 찬송을 한 바울 사도의 결론인 거예요



하나님이 인정하심이죠. 근데 저야말로 얼마나 자유를 원했고 나가기를 소원했습니까? 그런데 제가 자발적으로 갇혀 있게 되니 이야말로 기적 아닙니까?

남편이 죽어서 제가 달라졌습니까? 그전부터 제가 죄인인 걸 알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간수는 이런 고통을 물을 수 있는 공동체가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냐고요?

지금 간수는 혼자가 아니잖아요. 부하들이 있잖아요. 그럼 죄수들이 달아난 사건에 대해서 의논하고 좋게 하는 게 정상적인 절차 아니겠어요? 그래서 의논도 하지 않고 혼자 다 뒤집어 쓰고 자결하려고 왜 그럴까요? 그게 더 편한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묻지도 말하지도 않고 혼자 속으로 삭히고 혼자 해결하는 것이 아주 의롭고 그리고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그 외로운 사람의 전형이에요. 그러니 삶의 무게를 홀로 지려 했고 결국 의인의 그 끝은 자살 뿐이었습니다. 근래 최고위층 고위 관료들은 자살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21 OECD 국가 중에 지금 자살률이 1위라고 해요.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 대한민국에서그런데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의 자살이 이어지니 이게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동지들이 의인 공동체가 되다 보니까 아이러니칼하게도 말할 곳이 없는 거예요. 혼자 해결해라 하는 마음에 해결하겠다고 자살을 선택했어요. 그렇게 그냥 피로 나눈 뭐 동지 그냥 이르면서 뭐 랄랄랄라 했는데 그 무슨 비자금이 터지고 그러면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내가 죽어야 되는 건 바울은 스데반(Stephen)을 죽였어도 실라(Silas)와 둘이 있었어도 죄인 공동체에 있기에 세계적인 대안이 되어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니 옥문이 열리고 또 수많은 사람을 구원까지 했잖아요. 제가 갇혀 있었어도 죄인이 되고부터는 저에게 나가지 못해도 물을 공동체가 있었어요 그런데 의인들은 이 세상 권력을 다 거머쥐고도 만나는 사람들이 이해 타산적이기 때문에 삶의 낭떠러지에서 한 사람도 물을 사람이 없고. 답해줄 사람이 없고 구원해 줄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그것을 이 시대에 너무나 안타깝게 지금 보고 있어요 



누가 책임집니까? 우리가 책임져야지. 믿는 우리가 적용해 보세요. 여러분은 간수 공동체인가요? 바울 공동체인가요? 부부라도 간수 공동체라 자살을 생각하는 부부나 공동체가 허다 합니다주일 예배 후에 가족들이 적용 질문으로 예배 끝나자마자 목장을 좀 부부라 같이 해보시기를 바래요. 그렇게 한번 해보시면 자신의 목장 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나눔을 봤는데 이제 이분이 이제 정리해고를 당한 거예요 그때 소장님도 같이 그만두셨는데 그 부품을 납품하시던 그 사장님이 만나자고 그래서 만났더니 그때 그 소장님이 너무 금전적인 어려움을 얘기 하셔서 자기가 도울 수는 없지만 용기는 드리겠다고 만날 약속을 했는데 그 주일에 그 소장님이 자살을 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장님이 너무 이제 정죄감에 시달리는 거예요 내가 그거 안 도와줘서 죽었나? 그래, 이제 3년이 지나고 나서 이 분을 막 만나자고 그래서 그 얘기를 이렇게 들으면서 저는 공동체가 정리해고를 당해도 공동체가 있었고 아내와도 나누고 그랬는데 그 소장님도 사장님도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그래서 결국 나눌 수 있는 지체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하는구나. 한 사람 나눌 사람이 없어서 죽음을 선택하는구나 이걸 깨달았다고 이렇게 나누셨어요.



그래서 자기가 만나서 그냥 편하게 생각하시라고 그 얘기를 했더니 부담을 이분이 그냥 얘기를 했는데 부담을 내려놓으신 것 같다고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음의 그늘에 덮여 자살하려던 간수가 살고 죽는 거는 진짜 정말 이게 공동체 아니겠어요?

 


(
적용#2)

 

-여러분은 간수 공동체인가요? 바울 공동체인가요? 

   

 

3.   저절로 우리가 됩니다. “We are all here”

 

28절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옥문이 열렸듯이 마음이 움직인 간수는 몸을 움직여 바울이 있는 깊은 옥으로 뛰어들어갔어요. 무슨 소리를 들었죠. ‘우리가 다 여기 있다.’ ‘We are all here.’  이게 너무 기가 막히지 않아요? 자기가 그렇게 무시했던 죄수들인데, 그냥 우리가 다 여기에 있다정말.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죄수예요죄수들이 한 명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여러분이 목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이렇게 반도 아니고 다 목장 식구들이 우리가 다 여기 있어요.’우리가 다 여기 있어우리가 집사님 편에 성령의 죄수들이 되어 구원 때문에 움직이질 않았어. 이 소리를 들으니 그냥 알 수 없는 무서움에 떨린 거예요 마치 지금까지 짊어졌던 삶의 모든 무게를 내려놓는 것처럼 바울(Paul)과 실라(Silas) 앞에 엎드려서 바울 공동체의 위력입니다. 목장에 한 번 와서 다 꿇어 엎드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30절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하고 상관의 명령대로 깊은 옥의 차꼬까지 굳게 지키던 죄수 바울과 신라를 이제 극 존칭으로 주님이라고 묻습니다

 

 

31절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또 한 명의 성령의 죄수인 간수에게 내 인생의 구원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지체를 주십니다 말씀으로 나눌 수 있는 우리 공동체를 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들 지금 인생이 꽉 막힌 것 같아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라는 인생 최대의 질문을 거침없이 물을 수 있는 목장이 있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구원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목장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We are all here’가 있잖아요. 그 목장을 향해 뛰어들어가야 돼요 그것이 성령의 열림을 경험하는 비결이에요 바울의 대답은 질문만큼이나 간단했어요. 여러 많은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회개하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아주 간단하게 나를 위해 죽어 주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성령의 죄수는 서로서로 인생 최고의 질문과 답을 얻어냅니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의 외침이, ‘나 좀 살려주세요간수는 인생의 절망에 빠져서 구원을 열망했죠 ‘I am here. God is here’가 이제 ‘We are here’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그러니까 내가 주님을 만난 사람이 ‘We are all here’ 이게 안 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직 주님 죄수인 거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평소에 무시하면서 듣지도 않았던 바울 공동체이지만 각종 죄수들이 듣는 모습은 보았어요 든든히 그들을 지키라 했으니 이 사람이 상급 공무원인지 낮에 듣기는 했을 거예요. ‘뭐 이상한 말을 하나?’ 하니까 연구를 해야지. 중국에 가면 공안들이 다 그 설교하는 거 적어서 바치는 거예요. 들어두는 것이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목장에서 듣기 싫은 사람 듣기 싫은 다른 사람들에 매맞고 옥에 갇혀서 찬송 부르는 얘기 듣기도 싫다가 사건이 생기니까 그 무시했던 그들이 모두가 우리가 다 여기 있다이러는 거에요. 내가 그렇게 무시했던 그들이 우리가 다 여기 있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럴 땐 소리 질러도 돼요 그러니까 이 간수에게도 물을 수 있는 공동체인 우리가 생긴 순간인 거예요. 우리가 생겼어 우리가 다 여기 있다라고 외치는 공동체는 소도 잡고 말도 잡습니다

 

 

32절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절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절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사도행전에 한 번 나오는 큰 기쁨이 빌립보 간수의 집 안에 허락이 되었어요. 진짜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한 공동체인 우리가 저절로 되어서 관계가 열리고 집이 열려 성령의 교재가 있는 교회가 됩니다 공동체에서 다른 지체를 섬길 때 특별히 주시는 큰 기쁨은 다른 지체들을 섬길 때마다 이 땅에 가장 큰 섬김을 위해 오신 자기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섬김을 받는 자 섬기는 자가 다 함께 예수님 때문에 함께 기뻐하는 거예요 창조주 예수님이 나의 섬김 가운데 나타나는 거예요.



죄수들의 인생에는 그게 나타나요. 따라서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죄수 공동체는 우리가 되어서 모든 것이 열리고 벗어지고 움직이게 되는 성령의 열림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We are all here-우리가 다 여기 있습니다할렐루야!

 

그러니까 우리 평원님 새벽 기도를 듣고 어떤 분이 설교 리플을 달았어요. 평온한 환란이 제게는 어둠 바다에 등대 같습니다다 커서 사회생활 잘하던 두 아이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정신적으로 아파서 한 아이는 집에 있고 또 한 아이는 약 먹으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망해서 지금의 공동체에 왔는데 가난이 익숙해져서 견딜 만하니 자녀들의 아픔으로 힘듭니다 그러나 이제는 함께할 목장이 있어 견딜 수 있습니다 이 고난 끝에 행복이 아니라 천국이 있음이 믿어지니 감사합니다 먼저 겪고 말씀이 해주시는 이 평원님 계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분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서른이 넘은 딸들이 지금 다 아프고 다 망해서 왔는데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여러분들이 ‘We are all here’가 되겠습니까? 이런 고난 듣고 우리가 다 여기 있다그 말이 나오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개미에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누군가 와서 한 번 밟으면 끝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그 어마어마한 죄인 속에 역사하시는 그 보배를 가진 죄인들이 되셔야지, 성령의 죄수가 되셔야지, 열리고 더 앞으로 직행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진실과 구원은 너무 다른 거예요 진실과 구원은 다릅니다.

 

 

(적용#3)

-여러분의 목장은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목장입니까?

-여러분은 공동체에서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인데 어떻게 옥에서 매를 맞냐고 

이것은 팩트야, 진실이야, 하면서 그들을 고발하기 위해 묻습니까?


-인생 최고의 질문과 답인 구원을 위해 묻습니까?

-여러분은 섬김이 큰 기쁨입니까? 성공이 큰 기쁨입니까?

 

<Epilogue>

 

1)  성령의 죄수는 잘 듣는다 그리고 잘 묻는다

2)  저절로 우리가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열리게 된다

3)  어떻게 찬송하나?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가 되었고 전날에 한숨이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이것이 죄수들의 찬양이다

4)  그 나라에 가기까지는 늘 우리를 지켜 보신다

5)  자기가 의인이기에 남들은 무시하고 억울해서 절망 가운데 자포자기하고 열려있는 공동체를 우회하기에 감행하는 행위가 자살(자결)이다

6)  죄인공동체가 되어야 말이 통한다

7)  죄인들의 만남이 감옥인데 결혼도 감옥이다

8)  망할 때가 말씀이 들리는 때이므로 기뻐한다는 것이다

9)  가정이라는 감옥에서 말씀을 들어야지 세상으로 탈옥하면 망한다

10) 무늬만 죄인이고 속은 의인9모범생)이 우리다

11) 의인과의 만남이 최악의 만남이다

12) 외롭고 의로운 사람의 결론은 간수와 같이 자살이다

13) 성령의 죄수가 되어야 감옥 문이 열려도 안 움직이고 뛰쳐나가지 않는다

14) 성령의 열림을 경험하는 기회가 잇는 곳이 열려있는 목장 공동체이며 ‘We are all here’의 공동체다

15) 성령의 죄수로서 차별 없이 가는 곳이 천국이다

16) 신 결혼하라고 말하는 것은 죄인들의 공동체를 꾸리는 것이다.

17) (영적)죄인들의 만남이 최고의 만남이다.

18) (영적)죄인과 (육적)의인의 만남은 소망을 이룰 확률이 반이 되지만 의인들끼리 만나면 기분 좋게 들어갔다가 죽어가는 것처럼 행복을 부르짖다가 구원을 놓치니 최악의 만남이다.

19) 율법이나 은혜나 강박이나 두려움이라고 해도 법 하나 때문에 가정을 파괴하면 정말 율법으로 망하는 것이다.

20) 결혼은 감옥생활에서 시작하는 것이어서 너도 죄인, 나도 죄인 하면서 감당을 하는 것인데 서로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1) 과거 가지고 싸워도 죄인 된 태도로 일관된 것이며 죄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우리들 청년이 이혼이 없는 것인데 잘난 것이 없기 때문이다.

22) 가치관이 한쪽 죄인의 일이면 다르기 때문에 영적 전쟁이 치열하다.

23)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니까 문자적으로 낮아진 죄인인 죄수들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갇혀 있으니 듣는 것이다.

24) 식구들도 망하고 갇혀있을 때는 기도와 찬송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5) 사람한테 점수 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영적 죄인들이 성도들이기 때문인데 영적 죄인들인 우리가 죄인인 것이다

26) 감옥에 갇혀서 죄를 모르는 진짜 죄인들에게 긴 기도와 찬송을 들려주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27) 들릴 때가 오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있고 권세가 있으면 뛰쳐나가게 된다.

28) 가정은 최고로 지켜야 할 가치라고 어려서부터 알려주는 성경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29) 죄인들에게 주신 은혜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다.

30) 찬송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며 아버지를 부르짖으면 그것이 은혜다.

31) 돈도 없고 갈 데도 없으면 기도와 찬송을 듣게 되며 망할 때가 말씀이 들릴 때라고 믿게 된다.

32) 감옥에서 잘 살면 얼마나 잘 사나?  감옥에서 잘 사는 것은 기도와 찬송하는 것인데 거기서 힘들다고 탈옥하면 기도와 찬송을 들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33) 예수 믿는 아내와 남편을 버리고 탈출하면 감옥에서 천상의 찬송을 들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34) 이혼하지 않은 것은 영육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35) 성령의 죄수가 되어서 정말 의인으로 지옥 갈 뻔했는데 좋은 기회를 주시는 거라 말씀드리는 게 전달이 되는 것 같다.

36) 결혼의 감옥에 갇혔다고 불평과 인권을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가정을 지킨 것이 감사한 것이다

37) 나의 죄를 성령이 알려주셔야 하는데 그날이 갑자기 온다.

38) 늘 기다리는 것 같지만 갑자기 옥토가 흔들리고 문이 열리게 되는데 옥에서 잘 기다리면서 자기 죄를 더 보며 내가 옥에 있는 것은 스데반이 죽은 나의 결론이라고 실라와 나누었다.

39) 영적 시각이 생기게 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생기게 된다.

40) 둘 다 의인이면 최악의 만남이고 앞이 안 보이고 기도와 찬송이 들리지 않는다

41) 질그릇이 아니고 금 그릇이기 때문에 깨지지 않는다.

42) 남녀 둘 다 의인인 금 그릇이기 때문에 영혼이 안 보이고 영원한 심판으로 가게 된다.

43)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늘 원망속에 있든지 불평 속에 있던지 죄수들의 감옥이지만 특별 대우 받으면서 특별하게 있었다고 해도 잠시간의 행복 아니겠나? 얼마나 이 땅에서 잘 살겠나?

44) 감옥에는 정치범부터 잡범까지 지진에서 죽으면 이상과 이하도 아님 것이며 부부도 마찬가지다.

45) 죄수가 아닌 공동체는 사건이 터지면 뛰쳐나가게 되는데 죽음 앞에서 별 인생 없다.

46) 죄인과 의인의 만남은 함께 가기 힘들다

47) 죄인과 죄인의 결혼이 너무 중요한데 자결이 100% 죄인이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 하기에 하는 것이어서 길은 예수 밖에 없다.

48) 죄인과 의인의 만남은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고가 안 되어서 이 믿음의 결혼, 죄인의 결혼이 너무 중요하다

49) 당장 눈앞에 지진과 열린 문만 보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인데 이후에 이루어질 구원이 전혀 안 보이는 것이다

50) 자결은 100% 죄인이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의인인데 억울해서 하는 게 자결이다.

51) 길은 예수 밖에 없는데 자꾸 다른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죽는 길이라고 한다

52) 세상에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하는 적용을 길로 놓아야 성령의 죄수인 것이다

53) 다른 사람에게 묻지도 말하지도 않고 혼자 속으로 삭히고 혼자 해결하는 것이 아주 의롭고 그리고 습관이 되어버리는데 그것이 외로운 사람의 전형이다

54) 그러니 삶의 무게를 홀로 지려 했고 결국 의인의 그 끝은 자살 뿐이었다.

55) 근래 최고위층 고위 관료들이 자살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인들은 이 세상 권력을 다 거머쥐고도 만나는 사람들이 이해 타산적이기 때문에 삶의 낭떠러지에서 한 사람도 물을 사람이 없고. 답해줄 사람이 없고 구원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56) 지금 인생이 꽉 막힌 것 같아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라는 인생 최대의 질문을 거침없이 물을 수 있는 목장이 있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구원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57) 이런 목장이 우리에게 있다. ‘We are all here’가 있다. 그 목장을 향해 뛰어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성령의 열림을 경험하는 비결이다

58) 성령의 죄수는 서로서로 인생 최고의 질문과 답을 얻어낸다

59) 들어두는 것이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중요하다

60) 우리가 다 여기 있다라고 외치는 공동체는 소도 잡고 말도 잡는다

61) 진짜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한 공동체인 우리가 저절로 되어서 관계가 열리고 집이 열려 성령의 교재가 있는 교회가 된다

62) 공동체에서 다른 지체를 섬길 때 특별히 주시는 큰 기쁨은 다른 지체들을 섬길 때마다 이 땅에 가장 큰 섬김을 위해 오신 자기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섬김을 받는 자 섬기는 자가 다 함께 예수님 때문에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63) 창조주 예수님이 나의 섬김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64) 죄수들의 인생에는 예수님이 섬김 가운데 나타나기에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죄수 공동체는 우리가 되어서 모든 것이 열리고 벗어지고 움직이게 되는 성령의 열림이 따르게 되어 있다. ‘We are all here-우리가 다 여기 있다

65) 우리는 하나님이 그 어마어마한 죄인 속에 역사하시는 그 보배를 가진 죄인들이 되어야하고 성령의 죄수가 되어야 열리고 더 앞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66) 진실과 구원은 다른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21. 8. 13. 09:06

[우리들교회 202188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5:1~ 11/ 주 예수의 은혜로 /심한섭 목사)]

 

 

 

<사도행전 15: 1 ~ 11> 

 

1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절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절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절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절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절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절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절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절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Prologue>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쓸모 없는 저를 잊지 않으시고 은혜로 이 자리에 세우셔서 저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세우셨으니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죄송합니다. 바울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에베소의 편지에 보내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편지에 인사말을 인용해서 제가 너무나 사랑했던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바울이 에베소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여러분 얼굴을 떠올리면서 설교를 적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보이시죠. ..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심한섭 목사입니다. 오늘 본문은 목사님께서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의논이라는 두 번의 설교로 나누어서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저는 오늘 목사님께 그동안 평생 양육을 받아온 제자 입장에서 우리들 교회에 공동체였던 사람으로서 오늘 본문을 조금 자세한 설명은 목사님이 해 주셨기에 어떤 율법과 행위에 대한 은혜에 대한 이야기로 재구성해서 전하겠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것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잘난 척을 하겠습니다. 구원은 이미 받은 구원과 우리가 받아야 할 구원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이미 값없이 우리에게 준 구원을 칭의라고 합니다. 우리를 의롭게 칭하였다고 합니다.



이루어가야 할 구원의 여정 이것을 聖化라고 부릅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과 동시에 여전히 되었다 함이 없는 그런 인생 속에서 거룩이 됨을 소망하면서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聖化라고 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의미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 모두가 저와 여러분 모두가 여전히 계속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 교회가 역사를 가졌다고 말할 만큼 긴 시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휘문고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던 2006년 부활주일, 오랜 방황에 마침표를 찍으며 이승민 목사님으로부터 목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중 고등부 청년부 스텝으로 목자로 부목자로 그리고 분당 채플의 간사로 유년부 전도사로 지금은 사라진 주얼리 스쿨의 사역자로 섬겼습니다. 1회 큐티 페스티벌을 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젊었던 날들을 형제와 같은 지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백 명 수천 명의 교회성도 분들이 마치 하나의 몸인 것처럼 우리들 교회는 하나 되어서 움직였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어떤 분도 교회의 일을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의 예배를 위해서 자기 일처럼 헌신했습니다. 휘문고등학교에서 예배드릴 때 더운 강당에서 예배를 세팅해서 김승조 집사님을 포함해서 여러 집사님들이 헌신해 주셨습니다. 누구보다 수고했던 실장님이 되신 전선규 간사님과 스태프 분들 더운 강당에서 무거운 스피커와 악기들을 옮기면서 섬기던 우리 박종률 집사님과 찬양 팀 수련회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삶을 헌신했던 유병철 집사님과 형제자매들 손과 발이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고난의 투성이였지만 모든 부서에 아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들 헌신하셨던 부장 집사님들과 선생님들 스태프 분들 어린아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교회에서 밤을 새워서 큐티 페스티벌과 행사들을 주관했던 사실 엄청난 인재들이었지만 밤낮으로 수고해 주셨던 관계자분들 교회 사무실에서 온갖 행정 일들을 처리하던 간사님들 지금까지 이름도 빛도 없이 섬겨주신 집사님들 무엇보다 저와 함께했던 너무나도 사랑했던 목원들 여러분 모두와 함께했던 시간을 교회에 떠나있던 7년 동안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들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들교회 였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살고자 찾아왔던 교회에서 생명을 경험했고 소망을 맛보았습니다. 나의 인생을, 사람 살리는 인생이 되도록 변화시킨 하나님의 은혜를 예수의 은혜를 구원을 우리는 모두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서 살아남의 흔적 열매와 간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목적으로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양육해 주시는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출근할 대 퇴근할 때 밥을 먹을 때 화장실에서 그리고 잠을 잘 때도 우리는 말씀을 듣고 사모하며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양 떼와 같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한 공동체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수치와 제패를 알고 있었고 서로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조언과 필요한 처방을 했지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공격적 폭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더욱 힘든 일을 자처해 왔습니다. 교회의 일이라면 언제나 기꺼이 한 걸음에 어디서든 교회로 달려오고 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생각하며 회개했고 독사의 자식이라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각자의 지체가 되어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며 다음 목사님과 여러 전도사님과 같은 분들에게 양육을 받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믿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섬김을 나눈 우리들에게 여전히 양육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이미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가야 할 성화의 길, 아직도 되어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자라나야 할 이유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구보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맛보았고 목격했으며 경험했습니다.



어느 교회보다 많은 간증을 경험했고 살아났습니다. 엄청난 자부심과 자산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사도와 장로들입니다. 이들을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누구보다 영적인 자부심 있는 사람들, 공의회 멤버들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아직도 되었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여러분과 저와 우리들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느 부류의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화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어느 정도 원리와 신앙의 그런 것들을 깨달아서 이 집사님은 이렇구나, 저렇구나, 이렇게 알 수 있는 것 같은데 이분은 믿음이 있구나 이분은 믿음이 없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목자-권찰-초원-평원으로 섬기시면서 내가 이 정도면 믿음도 있고 된 것 같고 말씀 들으면 그런 것 같은데 왜 우리는 양육을 받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말씀 요약>

 

1.   여전히 율법과 행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지금 읽은 구절을 보면 안디옥교회 안에 다툼과 변론이 있습니다. 구원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어떤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들의 요지는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이것이 요지입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행위의 증표 없이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구별된 살도록 요구하신 하나님의 완전하고 거룩하신 법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알게 하고 무엇이 올바른 지 보여줍니다. 칼빈은 율법은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는 안내하는 규범과 같은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것이지 패하러 오신 것입니다. 삶의 방향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선하고 좋은 율법이 행위로서 우리의 구원까지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 인간은 율법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죗값을 대신 치름으로써 율법을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행위를 성취하는 방식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율법은 인간이 행해야 하는 일을 말해주고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율법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육의 것, 인간의 행위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행위를 통한 행위 구원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 지금 말씀드린 이야기가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처럼 들려서 지루해 할 수도 있습니다. 행위와 은혜는 참 뻔한 것 같은 이유는 2천 년 역사에 정말 오랫동안 많은 논쟁거리가 되어 왔고 다툼이 있는 주제입니다. 행위와 은혜는 미묘한 관계에 놓여있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행위와 율법에 얽매이는 것이 많습니다. 두 가지 정도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 행위와 은혜를 이해할 때 그 순서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아 제가 17년 만에 이 자리에 여러분 앞에 서서 여러분 참 뭐 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궁금하신 것도 많으실 텐데. 제 얘기를 다 하자면 이제 오늘 밤을 새야 되니까 제 아내가 이제 그 교회를 나가서 이제 그 사이에 제가 결혼도 하고 목사 안수도 받고 미국도 가고 또 이제 여러 가지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제 아내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아는 바가 없으시겠죠. 예 그래서 제 아내는 이제 제가 결혼할 때 정말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것은 물론 이제 하얀 피부 이런 것도 참 매력적이었죠. 하얀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얀 것이 참 이게 이 행위를 뛰어넘지를 못해가지고요. 아직 그. 하여튼 하얗고 참 예쁘고 정말 이렇게 자세히 볼수록 더 예쁘고 막 그런 사람인데 근데 정말. 제가 이제 아내를 좋아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정말 매력적이었고 정말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결혼을 하고 바로 미국에 갔거든요. 미국에 가서 살다 보니까 미국에서 한국이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가족이나 친지 분들께 도움을 청할 수도 있고 또 뭐 친구들이나 또 뭐 이렇게 여러 가지 주변에 사람들이 있지만 미국에 가서 보니까 이제 언어도. 한국 말처럼 그렇게 편하게 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한 데다가 주변에 뭐 가족도 없고 친지 가까운 곳에 어떤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그래서 이제 미국에서 둘이 살다 보니까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줄 알았던 아내가 세상 두려운 게 이제 너무 많은 사람인 겁니다.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로 늘 걱정하고 마음을 조리고 뭘 하나 살 때도 막 수십 가지 사이트를 뒤져보고 부작용을 다 따져보고 염려하고 사람들이 올려놓은 후기를 읽어보고 그리고 나서 또 구매할까 말까 막 고민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한마디 할 때도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너무 많아서 말 한마디도 쉽게 잘 못합니다. 막 이렇게 말을 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물론 이제 그런 모습이 참 귀여워 보이기도 했고 좋게 보면 아 참 신중한 사람인가 봐. 뭐 이렇게 봤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제게 참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저는 담임 목사님께 예전부터 두려움은 곧 욕심이다 이렇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에 와이프 아내의 그런 행동들이. 두려움과 염려로 이렇게 차 있는 그런 행동들이 야, 저 사람 저거 욕심이 많구나. 이제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 그러한 행동들이 고쳐 지기를 바랐습니다

 

한편, 제 아내는 불안과 두려움이 많은 반면에 저는 또 뭔가 제가 이렇게 저랑 예전에 이제 함께 사역해 보신 분들은 좀 아시겠지만 제가 뭔가 정해놓은 룰이나 어떤 기준이 딱 있으면 그게 어긋나는 일이 생기는 꼴을 잘 못 봅니다. 이제 강박적으로 그것에 이렇게 몰두해서 집착하고 막 그런 저만의 어떤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으로 상대방을 옥죄고 이렇게 해야 된다라는 어떤 저만의 그런 아주 고약한 율법이 있습니다 물건은 늘 제 자리에’. 이게 이제 제 인생의 주제가입니다 야 그런데 이제 하루는 이제 그런 저와 두려움쟁이인 제 아내와 이제 강박쟁이인 제가 미국에서 함께 사는데, 제 아내는 이제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 이제 참 재미있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요. 이 부엌 찬장에 보면은 이제 왜 양념통 같은 거 집어넣는 이게 찬장이 있잖아요. 그러면은 이제 이런 거를 요리할 때 이제 그런 양념 같은 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 와이프는. 찬장을 다 열고 요리를 해요. 찬장이 이렇게 쭉 있고 뭐 여기는 뭐 미림이 있고 뭐. 뭐 간장이 있고 설탕이 있고 이제 막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은 그 찬장 문을 다 열어놓고 온갖 양념을 다 꺼낸 다음에 요리를 해요 근데 이제 저는 어떻게 하냐 하면 간장을 꺼냈다가 바로 제 자리에 넣고 다시 닫고 또 필요하면 또 꺼냈다가 다시 넣고 또 닦고설탕이 필요하면 꺼냈다가 또 쓰고 다시 넣고 닫고 이렇게 해요 그럼 이제 제 아내는 다시 그 찬장을 다 열고 양념을 다 꺼내고 또 이제 요리를 하고 그러면 제가 이제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걸 또 다 제자리에 놓고 또 찬장을 닫고 이렇게 합니다 그니까 저의 강박이 발동하면 이제 혈기가 올라오고 그러다가 한 번씩 터지면 그 혈기는 저의 터진 혈기가 아내의 두려움을 마주합니다 강박쟁이와 두려움쟁이가 마주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이제 강박쟁이는 바로 혈기쟁이로 둔갑을 하고요. 그리고 두려움 쟁이는 울보가 됩니다 강박쟁이는 끝까지 그 문제의 원인을 캐고 물어서 너는 왜 그렇게 하냐고. 너는 왜 그렇게 해야 되냐고 따지고 싶어 하고 두려움 쟁이는 그런 강박쟁이가 질려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를 회피하고 싶어 합니다. 저와 제 아내가 서로의 어떤 각자의 두려움과 강박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저희들의 그러한 행위로 드러나는 문제가 결국 은혜로 밖에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음을 저희는 간과하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를 경험하게 해줬어야 되는데 오히려 두려움이 많은 제 아내에게 강박과 혈기로, 제 아내를 율법으로 대할 때가 많아서 아내의 구원과 은혜를 더 멀어지게 만들곤 했습니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 우리에게 우리 인간에게 율법과 행위라는 문제는 우리 삶에 아주 깊숙이 이런 식으로 아주 구체적인 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매일매일 우리가 걸려서 넘어지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머리로는 아 나는 율법적이지 않아. 그렇지 구원은 율법으로 행위로 얻어지는 게 아니지.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실상 여러분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시면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매일매일 율법적이고 행위 구원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 강박이 고쳐지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중독이 끊어지면저희 아내가 찬장 문을 다 닫으면 큐티를 매일 하면 부지런해지면 열심히 살면 무언가 내 행위가 변화되면 다시 말해서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 라는 식의 율법과 행위의 굴레를 우리가 사실은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아이죠 그죠.

 

숙제를 알아서 잘하면 훌륭한 아이입니다 노래도 있죠 산타 할아버지가 알고 계신데 누가 착한 앤지, 누가 나쁜 앤지, 그리고 오늘 그 오늘 밤에 그 심판이 이제 이루어집니다.

할아버지가 다녀가시면 모든 세상이 하도 나쁘고라는 율법과 행위의 굴레 안에서 돌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이 율법과 은혜에 서 그 미묘한 관계 속에 순서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행위를 올바르게 하는 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그런 문제들은 사실 거의 눈으로 보여지는 문제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더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행위는 은혜의 뒤에 따라 옵니다



우리 잠시 다 함께. 요한복음 15 5절을 좀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라



아멘 



행위는 열매입니다. 사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장 은혜로운 방식은. 포도나무인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그 임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먼저고 행위는 나중입니다 이 순서를 자꾸만 우리가 거꾸로 하려고 합니다.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행위로 지은 죄를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리고 이제 막 그런 행위로 지은 죄에 대한 나눔들 또한 많이 합니다. 행위의 죄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행위. 고치면 죄가 해결된다고 착각하기도 쉽습니다 음란을 행한 사람 또 도박을 한 사람 외도를 행한 사람. 중독에 빠진 사람. 또 혈기와 강박이 충천한 사람들 그리고 이런 모두가 우리가 이 행위를 고치는 것에 집중을 자꾸 합니다 행위가 끊어지면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인 것처럼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알코올 중독이라는 행위를 끊었다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다른 방식으로 말씀드리면 술 중독 여자 중독. 도박 중독을 끊어내면 내 배우자가 밖에 나가서 착실하게 돈을 잘 벌어오면 내 배우자가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들으면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행위가 변화되면 그러면 그 사람이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할례를 받았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고 행위만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순서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행위의 변화가 우선이 되면 다른 구원이 됩니다. 다른 복음이 됩니다. 구원은 기본적으로부터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따라서 행위의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위의 죄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혜의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은혜를 떠난 모든 것이 되었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제 와이프에게, 저희 아내에게 90세가 넘으신 할아버지가 계신데요. 이제 일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바르고 의로운 삶을 사셨다고 스스로 생각을 하십니다. 한국에 와서 기회가 될 때마다 와이프와 함께 할아버님을 만나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루는 사도행전 3전에 3장에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 본문을 가지고 죄인에 대한 설명을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청기를 끼시고 구십 대가 좀 넘으신 할아버님께서 굉장히 해맑은 표정으로 그 죄인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하시면서 이제 웃으셨습니다 어떻게 평생 법조인으로 바르게 살아오신 법을 지키면서 살아온 내가 죄인일 수 있는지 의아해 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이 지금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래 안 믿는 분들이 그렇지 뭐.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적용이라는 이름으로 행위 구원을 부추길 만한 말들을 또 꽤나 많이 합니다 요즘은 게임 안 하십니까. 요즘은 도박 안 하십니까 이제 술 끊으셨습니까. 이제 남편에게 잔소리 안 하십니까? 할례 받으셨습니까? 예수 없이 은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행위가 변화된다면 그것보다 또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남편 분께서 예수의 은혜를 전혀 경험하지 못하셨는데술이 끊어지고 모든 행위가 올바르게 변하셨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병원에 가볼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행위의 한계를 여전히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제 행위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못한 정말 대표적인 죄인입니다제가 행위로 지은 죄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악하고 이기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저는 선교사였고 신학생이었으며 또 목회자인 순간에도 여전히 제 말과 행동으로 거짓과 음란을 끊임없이 일삼는 야곱 같은 죄인입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아시는 많은 분들 중에는 야, 심한섭이 설교를 한다’. ‘저 죄인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저는 우리들 교회에 정말 대표 죄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삶의 행위를 생각하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제가 하나님께 지었던 죄를 생각하면. 자다가 잠을 깰 때가 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나도 형편없는 죄인이었음에 몸서리가 쳐질 때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지금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제가 이 설교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은혜 받은 자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은혜 받은 자이기 때문에 이 설교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다른 복음이 됩니다. 저는 제가 받았던 죄인인 제가 받았던 그 은혜를 잃으면 바로 육체의 율법과 예전의 행위만을 강조하던 삶으로 돌아갑니다 제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은혜를 잊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죄를 짓는 공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앞에 설교를 하며 이렇게 서 있지만. 저는 그저 끊임없이 죄를 짓는 강박쟁이일 뿐입니다 박사를 하고 공부를 하고 이제 어딘가에 설교하라고 저를 부르는 교회들도 생겼습니다 설교를 하러 가면 뒤에 강사 양력을 소개하면서 칼빈 박사 이렇게 써 놓습니다. 저를 소개할 때 하지만 저의 어떠한 학력과 보여지는 것으로 거룩한 척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일 순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박사가 아니라 박사 할아버지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이에 살 수 없는 사람인 것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 예수의 은혜가 아직 제가 죄인 되었을 때. 저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신 그 예수의 은혜가 제 안에 있어서 오늘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강박적인 제 모습을 고쳐달라고 기도합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배우자의 구원을 위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담임 목사님과 어머님에게 삶으로 배워온 것입니다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것 내 모든 것을 다 해서 내 사랑하는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면. 그런 마음이 생기는 순간 상대방의 율법과 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순간에 또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기 때문에 은혜를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제 아내를 사랑한다고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악한 행동을 다 끊어낸다고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없이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무서운 것입니다 순서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 은혜를 사모하는 것. 그것이 우리 행위의 모든 행위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으면 할례 받은 자의 삶을 소망하게 됩니다 



둘째로 율법은 인과 응보를 이야기합니다 할례를 받으면 구원받는다. 다시 말하면 무엇을 하면 복을 받고 안 하면 저주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기복 신앙이라고 부르지만 세상은 이것을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어떤 Give and Take의 원리로 작동됩니다. 내가 준 만큼 돌려받는 것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입니다 이러한 논리로 세상은 돌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 논리적인 인과 관계입니다 율법은 인과관계이고 합리적인 논리로 설명이 되지만 그러한 인간의 논리성과 합리성은 은혜를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오랜 시간 목자로 섬기고 전도사도 전도사로도 섬기고 이제는 목사까지 되었지만 여전히 제 안에 이렇게 율법의 행위를 뛰어넘지 못하는 기복 신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이제 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그럴 때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자기는 뭘 해 줬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제가 아내를 위해서 이제 뭘 했을 때 뭔가 이렇게 제가 아내를 위해서 뭔가 수고를 했을 때 나는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쟤는 나를 위해서 뭘 해주지 이런 생색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내가 줬으면 받아야 되는 게 언뜻 보기에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기복신앙이고 율법입니다 우리가 예수로부터 받은 은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복을 받는 거라면 이 예배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복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준 만큼만 받는 것이라면 이 자리에 구원을 얻는 만큼.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부부 관계 속에서 또 자녀를 대할 때 율법으로 대하고 기복으로 대하고 그것을 논리와 합리라고 표현하며 드리댑니다 그리고 그렇게 율법과 인과관계를 들이대는 사람이 관계에서 승리합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할 말이 없게 만듭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깁니다 이기고 또 이겨서. 내가 이만큼 했는데 너는 나에게 뭘 해줬지. 니가 해준 게 없으니 나도 해줄 게 없어. 이것이 세상이 승리하는 방식 율법의 행위의 방식입니다 나는 배우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내 자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율법은 논리를 가지고 이기려고 하지만 은혜와 복음은 절대로 이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으로 승리합니다

 



(적용#1)



-타인의 겉으로 보여지는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고 있나요? 남편과 아내, 자녀들의 행위의 문제가 고쳐지기만을 바라고 있나요? 아니면 그들이 말씀을 듣고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나요?

 

 

2.   우리가 기쁨 중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절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절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절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믿지 않는 자들이 믿게 된 간증을 들려줍니다. 그곳에 있는 형제들이 모두 기뻐합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로 사도와 장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다시 말해서 인간이 행한 율법에 관한 일이 아닌 은혜에 관한 일을 말합니다. 모두가 기쁨으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은혜의 일을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 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바리세파 사람들도 저희와 같은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저와 여러분 중에도 이런 바리세파의 모습이 있다는 말입니다. 일절에 등장한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의 주제가가 할례를 받지 않으면이었다면 지금 이 바리세파 사람들의 주제가는 마땅하니라입니다. 이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 이게 맞다. 저건 틀리다 이게 옳고 이게 그르다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를 뛰어넘지를 못합니다. 항상 그것을 따지느라고,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를 따지느라고, 공동체 안에서의 구원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참 가깝게 지내던 한 목사님께 제가 여쭤봤습니다. ‘목사님 저는 어떤 점이 목사님 보실 때 율법적인 것 같습니까?’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전혀 망설임이 없이 저에게 네 신 목사님은 늘 목사님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목사님 하고 싶은 말을 앞뒤 안 가리고 하시는 게 율법적이십니다. 이렇게 말해 주셨습니다 정말 부인할 수 없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율법을 행하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외치는 이 타이밍은 지금 예루살렘 공동체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함께 들으며 함께 구원을 기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온 공동체가 늘 구원 때문에 함께 즐거워하고 있는 이 순간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생각 때문에 공동체의 기쁨은 아랑곳 없이 마땅하니라. 이게 옳다. 이게 틀리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지금 이 기쁨의 순간에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저의 모습 같았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아 어떤 말을 하고 싶어지면 그걸 잘 참지 못하던 모습이 있습니다그렇게 항상 제 말을 나오는 대로 하던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들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 담임 목사님께 이제 정말 많은 여러 가지 혼이 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양육을 이제 정말 많이 받았는데요. 그 중에서 목사님께서 어느 날 저에게 한 서방 잠시 실례지만, 잠시 제가 목사님 성대모사를 잠깐 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더 생생하게 들려 드리기 위해서, ‘어머 한섭아! 너는 왜 이렇게 애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있니?’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있다. 내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있다.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정말 그런 거 같았습니다 정말 그런 거 같았습니다. 어쩔 때는 너무 좋다가도 갑자기 또 화가 날 때도 있구요. 근데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제 안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서 무언가가 제 율법과 제제 규범을 기준으로 그것이 틀려 보이면 무언가가 잘못돼 보이면 제 마음이 요동치고 울그락 불그락 하고 오르락 내리락 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마땅하니라라고 앞뒤 안 가리고 말하고 싶은 것이 제안에 늘 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께 양육을 받고도 여전히 바리세 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속고 남도 속고 그래서 우리들 교회에서 양육 받고 계신 여러분이 정말 부럽습니다 세상에 누가 이렇게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설교를 하는 사람에게 네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모르시겠지만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해야 여러분에게 속지 않고 그것을 말해줄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축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지금 여러분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살다가 결혼 생활을 하고 살다가 제 자신이 너무 괴로워서 제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도 알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안 될까? 나는 왜 또 넘어질까? 나는 왜 그렇게 훈련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이 모양이 모습일까? 나는 왜 율법이 극복되지 않을까? 나는 왜 행위를 건너 뛰질 못할까 그런데 여러분 나는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여러분이 왜 그런지 여러분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말해주고 들어주고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와 목사님이 계신 것이 그것이 여러분이 참 부럽습니다 잊지 않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 공동체 안에 저와 비슷한 분들이 좀 이런 질문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옳고 그른 것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세상이 옳고 그런 기준이 없이. 그게 어떻게 인생이 살아지냐? 그러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막 살아도 된다는 얘기냐. 옳고 그름이 없이 어떻게 살아야 되냐? 맞습니다 옳은 것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명확히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윤리가 성립되고 사회가 지속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애타게 찾고 따지시는 그 옳음이 있어야 옳고 그름은 있어야 한다그 옳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옳고 그름의 기준이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갑 없이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옳은 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인 바울의 행동도 옳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행동도 옳지 않았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도록 거짓을 일삼은 야곱의 행동도 옳지 않았습니다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의 행동은 정말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행동입니다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탐한 다윗의 행동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오른 것입니다. 마땅하지 않은 자들을 통해서 저 같은 죄인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일을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이제 옳고 그름은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예수의 복음 안에 있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옳으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가 드리겠습니다 예수가 옳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공동체가 구원의 기쁨으로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고 계십니까? 적용 질문 두 번째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공동체의 기쁨에 기꺼이 참여합니까? 그렇지 못한다면 왜 그렇습니까?

-지금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마땅한 지 아닌지를 내 기준과 내 생각 내 지식으로 판단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예수의 은혜로 얻은 구원만이 옳은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큰일 났습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됐는데. 저는 아직 3번 대지가 남았습니다. 빨리 하겠습니다

 

 

(적용#2)

 

-믿음이 있지만 여전히 생색과 기복으로 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스스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합니까? 그것이 율법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나는 공동체의 기쁨에 기꺼이 참여합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왜 그렇습니까?

-지금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마땅한 지 아닌 지를 내 기준과 생각과 지식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우리가 끊임없이 차별하기 때문입니다.

 

 

6절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절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절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절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절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장로들이 구원의 문제를 의논하러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바로 옆, 앞에서 목격하고. 제자가 되었던 이들이 여전히 이 문제의 구원의 문제에 확신이 없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되었다함이 없이 계속해서 거룩을 향해 구원과 양육의 길을 걸어가야 할 이유입니다 여기 6절에서 11절 사이에 베드로가 가장 눈에 띕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서 베드로는 바울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자기처럼 예수님을 직접 목격 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愛제자도 아니었던 사람이 구원을 잘못 이해했다고 자신에게 처방질을 하고 책망을 합니다. 베드로가 어쩌면 인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가 오늘 바울을 변호합니다 자기에게 싫은 소리를 쓴 소리를 하던 그 바울의 편에 섰습니다베드로는 지금 진정한 구원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차별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디아크리노라는 단어는 철저하게 분리하다. 혹은 의심하고 판단하다 이런 뜻입니다그러니까 철저하게 어딘가로부터 분리해내서 또 한 번 의심해보고 판단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차별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분리시키고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남들과 나를 구분하고 분리합니다. 나는 목자니까 나는 부목자니까. 목원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초원이고 평원이니까 나는 일반 목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픈 목원들과 나를 분리시키고. 그들을 판단합니다. ‘저 집사님. 너무 아파이런 말을 정말 자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7절에서 9절의 내용을 한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7절에서 9절의 내용을 자세히 보시면 여기서 베드로가 구원의 핵심을 설명하는데요 7절에서 9절의 내용 중에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함께 7절부터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7절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절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사람을 통해 된 일이 있습니까? 율법을 통해 된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어 증언하셨고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로 다시 말해서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그 하나님의 한량 없는 주의 은혜로. 우리는 목자가 되었고 부목자가 되었고 직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차별을 하십니까 저 집사님이 너무 아퍼. 우리 남편은 정말 이상하다. 우리 아내는 진짜 교만해 그래서요 나는 아프지 않습니까? 나는 이제 괜찮아진 것 같습니까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은혜를 받았던 순간은 제가 가장 아픈 사람이었음을 인정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 아닙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이 예배를 드리고 계신 모든 분들이 정말 아프고 상처투성이 모습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여러분이 꽤 괜찮고 이제 나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한 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누군가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구원의 차별이 없다는 말은 절대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차별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다른 이들의 마음도 깨끗하게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별이 없음은 관계의 회복으로만 나타납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했을 때,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했을 때, 내가 하나님처럼 안 될 게 뭐 있어? 하는 의구심을 품으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었습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못 난 게 뭐 있어? 내가 이런 얘기를 듣고 살아야 돼? 내가 저 사람한테 이런 취급을 당해야 돼?’ 이런 생각들로부터 모든 관계의 단절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차별이 없는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결국 관계 회복으로 그것이 나타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내가 내 남편보다 내 아내보다 내 자녀보다 내 동료보다 내 목원보다 내가 아프다고 손가락질 하는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나아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그들보다 먼저 깨끗게 하셨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내가 믿음이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자매들은 자들에게 형제들아라고 부르며 차별하지 않으며 끊어졌던 관계들을 회복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4번이나. 형제들아 라고 언급합니다. 베드로가 형제들아라고 부르는 이 순간에 제가 생각할 때 그 형제들을 향한 베드로의 차별 없는 사랑과 하나님의 차별 없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베드로의 마음 속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그 마음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던 바울의 그 마음에 어떻게 남을 나와 차별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무 자격 없이, 아무 조건 없이 구원을 받았는데 나 같은 죄인이 구원이 되었는데 어떻게 내 옆에 있는 남편과 아내를 저 사람은 아프고 이상하다며 차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차별 없는 구원을 이해하지 못해서 여전히 단절되어 있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마음 한 구석의 응어리가 남아 있습니다 저의 율법적인 모습과 옳고 그름을 따지는 모습 때문에 상처받은 형제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아마 그분들은 제가 자신에게 지금 이 말을 하고 계시는 줄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이 예배를 드리고 계시다면 정말 옳고 그름으로만 따지는 죄인 죄인이 저였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정말 교만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너무나 불편하고 싫은 사람이 있으십니까? 상처받고 상처 주고. 이제 안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보실 때 사람 되기는 글러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 줬는데 나한테 이 따위로 밖에 안 해. 이런 생각을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는 죽는 날까지 안 보기로 작정한 사람이 계십니까? 목장 모임 할 때 이 집사님만 안 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십니까? 이제 그런 분들을 한 명쯤 머릿속에 조용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3초만 셀게요. 한 번쯤 머릿속에 한 분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적용#3)

 

 -내가 차별하고 이방인처럼 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관계가 단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회복하고 싶지 않고 손 내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그 사람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까내가 그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고 인정하십니까?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열정적으로 교회를, 우리 우리들은 정말 열정적으로 교회를 섬겨온 사람들입니다. 주 안에서 생명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지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저와 여러분이 이전의 사랑과 회개의 감동을 잊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믿음은 있지만 사도와 장로들처럼 이제는 이것이 정말 맞는 건지 확신이 없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양육되어 나아가야 합니다.



이 설교는 여러분이 아니라 사실 저에게 하는 설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내 남편과 아내의 삶과 행위가 변하기 만을 바랄 뿐 정말 예수를 만나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포기해 버린 분들도 있을 겁니다 또 예전에 경험했던 은혜를 다 잊고 이제는 옳고 그름 만을 따지며 공동체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옆에 사람들을 차별하고 아픈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생각 없이 지내고 계신 분도 계실 겁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들교회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생명을 경험하고 죽음에서 살아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입니다 이제는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서 육이 아니라 성령의 일을 주목하고 옳고 그름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 있음을 믿으며 내가 더 아픈 사람이었다고. 내가 차별했다고. 용서를 구하며 먼저 관계 회복을 위해 손을 내미는 주 예수의 은혜로 앞으로도 변함없이 든든히 세워져 가는 우리들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여전히 양육되어져야 하고 거룩한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감히 제가. 마지막으로 감히 제가 여러분께 이런 도전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주. 예수의 은혜로 우리가 함께 경험했던 그 구원의 시간을 기억하시고. 더 힘차고 더 기쁘게 공동체의 기쁨에 참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Epilogue>

 

1)  구원은 이미 받은 구원과 우리가 받아야 할 구원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2)  이미 값없이 우리에게 준 구원을칭의라고 하며 우리를 의롭게 칭하였다고 한다.

3)  이루어가야 할 구원의 여정, 이것을聖化라고 부른다.

4)  풀어서 설명하면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과 동시에 여전히 되었다함이 없는 그런 인생 속에서 거룩이 됨을 소망하면서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과정 속에 있는데 이것을 聖化라고 하며 거룩하게 되는 의미다.

5)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 모두가 여전히 계속 가야 할 길이 있다

6)  나의 인생을, 사람 살리는 인생이 되도록 변화시킨 하나님의 은혜를 예수의 은혜를 구원을 우리는 모두 경험했기 때문이며 우리 안에서 살아남의 흔적 열매와 간증이 있기 때문이다.

7)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한 공동체가 되게 해주었다.

8)  우리는 수치와 제패를 알고 있었고 서로를 정죄하지 않았다.

9)  서로에 대한 조언과 필요한 처방을 했지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공격적 폭력적이지 않았으며 서로가 더욱 힘든 일을 자처해 왔다.

10)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믿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섬김을 나눈 우리들에게 여전히 양육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11) 이미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가야 할 성화의 길, 아직도 되어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12) 우리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자라나야 할 이유들을 말씀해 주신다.

13)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구보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맛보았고 목격했으며 경험했다.

14)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15) 행위의 증표 없이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데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16) 율법은 본래 선한 것으로 율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구별된 살도록 요구하신 하나님의 완전하고 거룩하신 법이다.

17)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알게 하고 무엇이 올바른 지 보여준다.

18) 존 칼빈은 율법은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는 안내하는 규범과 같은 역할을 강조했다.

19)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것이지 패하러 오신 것이다.

20) 율법은 삶의 방향 같은 것인데 문제는 이렇게 선하고 좋은 율법이 행위로서 우리의 구원까지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21) 죄인인 우리 인간은 율법을 완성할 수 없다.

22) 예수님이 죗값을 대신 치름으로써 율법을 완성시켜 주셨다.

23) 율법의 완성은 행위를 성취하는 방식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24) 율법은 인간이 행해야 하는 일을 말해주고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는 것을 말해준다.

25) 그래서 율법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육의 것, 인간의 행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26) 인간의 행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행위를 통한 행위 구원으로 이해하게 된다.

27) 행위와 은혜는 참 뻔한 것 같은 이유는 2천 년 역사에 정말 오랫동안 많은 논쟁거리가 되어 왔고 다툼이 있는 주제다.

28) 행위와 은혜는 미묘한 관계에 놓여있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행위와 율법에 얽매이는 것이 많다.

29) 두려움은 곧 욕심이다

30) 강박쟁이와 두려움쟁이가 마주치면 강박쟁이는 바로 혈기쟁이로 둔갑하고, 두려움 쟁이는 울보가 된다

31) 강박쟁이는 끝까지 그 문제의 원인을 캐고 물어서 너는 왜 그렇게 하냐고, 너는 왜 그렇게 해야 되냐고 따지고 싶어 하고 두려움쟁이는 그런 강박쟁이가 질려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를 회피하고 싶어한다.

32)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 우리에게 우리 인간에게 율법과 행위라는 문제는 우리 삶에 아주 깊숙이 이런 식으로 아주 구체적인 곳에 들어와 있다.

33) 율법과 행위는 매일매일 우리가 걸려서 넘어지는 쉽지 않은 문제다.

34) 구원은 율법으로 행위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모두들 알고 있지만 실상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매일매일 율법적이고 행위 구원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35)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 라는 식의 율법과 행위의 굴레를 우리가 사실은 잘 벗어나지 못한다

36)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은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아이인 것이다

37) 더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행위는 은혜의 뒤에 따라 온다

38) 행위는 열매인데 사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장 은혜로운 방식은 포도나무인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39) 예수님의 은혜 그 임재 안에 거하는 것으로 은혜가 먼저고 행위는 나중인데 다 이 순서를 자꾸만 우리가 거꾸로 하려고 한다.

40)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행위로 지은 죄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그런 행위로 지은 죄에 대한 나눔들 또한 많이 하게 되며 행위의 죄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행위도 고치면 죄가 해결된다고 착각하기도 쉽다

41) 음란을 행한 사람, 또 도박을 한 사람, 외도를 행한 사람, 중독에 빠진 사람, 또 혈기와 강박이 충천한 사람들 그리고 이런 모두가 우리가 이 행위를 고치는 것에 집중을 자꾸 한다

42) 행위가 끊어지면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인 것처럼 인데 쉽게 말해서 알코올 중독이라는 행위를 끊었다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다

43) 그 사람의 행위가 변화되면 그러면 그 사람이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44) 그 사람이 할례를 받았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45) 오히려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고 행위만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것이어서 순서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46) 행위의 변화가 우선이 되면 다른 구원이 되고 다른 복음이 된다.

47) 구원은 기본적으로부터 죄로부터의 구원이므로 행위의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위의 죄만을 생각하지만 은혜의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은혜를 떠난 모든 것이 되었음을 고백할 수 있다 

48) 우리는 종종 적용이라는 이름으로 행위 구원을 부추길 만한 말들을 또 꽤나 많이 한다 요즘은 게임 안 하십니까. 요즘은 도박 안 하십니까 이제 술 끊으셨습니까. 이제 남편에게 잔소리 안 하십니까? 할례 받으셨습니까?

49) 예수 없이 은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행위가 변화된다면 그것보다 또 무서운 것이 없는 것인데 만약에 여러분의 남편 분께서 예수의 은혜를 전혀 경험하지 못하셨는데, 술이 끊어지고 모든 행위가 올바르게 변하셨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병원에 가볼 일이다

50) 우리는 항상 이 행위의 한계를 여전히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51) 저는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제 행위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못한 정말 대표적인 죄인이다

52) 제가 이 설교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은혜 받은 자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은혜 받은 자이기 때문에 이 설교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다른 복음이 됩니다. 저는 제가 받았던 죄인인 제가 받았던 그 은혜를 잃으면 바로 육체의 율법과 예전의 행위만을 강조하던 삶으로 돌아갑니다 제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은혜를 잊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죄를 짓는 공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53) 그 예수의 은혜가 아직 제가 죄인 되었을 때, 저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신 그 예수의 은혜가 제 안에 있어서 오늘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강박적인 제 모습을 고쳐달라고 기도한다

54)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배우자의 구원을 위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55)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것 내 모든 것을 다 해서 내 사랑하는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면 그런 마음이 생기는 순간 상대방의 율법과 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56)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기 때문에 은혜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57) 제가 제 아내를 사랑한다고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악한 행동을 다 끊어낸다고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데 예수 없이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그것이야말로 무서운 것이다

58) 순서가 너무나도 중요한 것으로 예수를 사랑하는 것, 은혜를 사모하는 것, 그것이 우리 행위의 모든 행위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59)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으면 할례 받은 자의 삶을 소망하게 된다 

60) 법은 인과 응보를 이야기하는데 할례를 받으면 구원받는다, 다시 말하면 무엇을 하면 복을 받고 안 하면 저주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기복 신앙이라고 부르지만 세상은 이것을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61) 세상은 이렇게 어떤 Give and Take의 원리로 작동되므로 내가 준 만큼 돌려받는 것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인 것이다

62) 이러한 논리로 세상은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다시 말해서 할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 논리적인 인과 관계다

63) 율법은 인과관계이고 합리적인 논리로 설명이 되지만 그러한 인간의 논리성과 합리성은 은혜를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하다

64) 내가 줬으면 받아야 되는 게 언뜻 보기에 합리적인 것 같지만 이것이 기복신앙이고 율법인 것이다

65) 우리가 예수로부터 받은 은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66) 내가 예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복을 받는 거라면 이 예배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67) 내가 준 만큼만 받는 것이라면 이 자리에 구원을 얻는 만큼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68) 그런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부부 관계 속에서 또 자녀를 대할 때 율법으로 대하고 기복으로 대하고 그것을 논리와 합리라고 표현하며 드리댄다

69) 그렇게 율법과 인과관계를 들이대는 사람이 관계에서 승리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할 말이 없게 만들어 그렇게 우리는 이기고 또 이겨서 내가 이만큼 했는데 너는 나에게 뭘 해줬지? 네가 해준 게 없으니 나도 해줄 게 없어이것이 세상이 승리하는 방식 율법의 행위의 방식이다

70) 율법은 논리를 가지고 이기려고 하지만 은혜와 복음은 절대로 이기지 않으며 오히려 죽음으로 승리한다

71) 사도와 장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다시 말해서 인간이 행한 율법에 관한 일이 아닌 은혜에 관한 일을 말하는데 모두가 기쁨으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은혜의 일을 나누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리새 파 사람들이다.

72)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바리세파 사람들도 저희와 같은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믿는 저와 여러분 중에도 이런 바리세 파의 모습이 있다는 말이다.

73)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를 뛰어넘지를 못한다.

74) 항상 그것을 따지느라고,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를 따지느라고 공동체 안에서의 구원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를 못한다.

75) 온 공동체가 늘 구원 때문에 함께 즐거워하고 있는 이 순간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생각 때문에 공동체의 기쁨은 아랑곳 없이마땅하니라. 이게 옳다. 이게 틀리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지금 이 기쁨의 순간에 이 말을 하고 있다

76) 항상 제 말을 나오는 대로 하던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7) 너무 제 안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서 무언가가 제 율법과 제제 규범을 기준으로 그것이 틀려 보이면 무언가가 잘못돼 보이면 제 마음이 요동치고 울그락 불그락 하고 오르락 내리락 해지는 것이 있은데 이렇게 하는 게 마땅하니라라고 앞뒤 안 가리고 말하고 싶은 것이 제안에 늘 있다.

78) 옳고 그른 것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세상이 옳고 그런 기준이 없이. 그게 어떻게 인생이 살아지냐? 그러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막 살아도 된다는 얘기냐? 옳고 그름이 없이 어떻게 살아야 되냐? 맞다 옳은 것은 있어야 한다.

79)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명확히 있어야 윤리가 성립되고 사회가 지속된다. 그리고 여러분이 애타게 찾고 따지시는 그 옳음이 있어야 옳고 그름은 있어야 한다그 옳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옳고 그름의 기준이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갑 없이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옳은 것입니다

80) 스데반을 죽인 바울의 행동도,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행동도 옳지 않았다.

81)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도록 거짓을 일삼은 야곱의 행동도 옳지 않았고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의 행동은 정말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행동이다

82)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탐한 다윗의 행동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들의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오른 것이다.

83) 마땅하지 않은 자들을 통해서 저 같은 죄인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일을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84) 이제 옳고 그름은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예수의 복음 안에 있음을 생각하시기 바란다

85) 무엇이 옳으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가 옳다이다.

86) 베드로는 지금 진정한 구원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베드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87) 차별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분리시키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88)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남들과 나를 구분하고 분리한다.

89) 사람을 통해 된 일이 있나? 율법을 통해 된 일이 있ㄴ나?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어 증언하셨고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셨다.

90)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로 다시 말해서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그 하나님의 한량 없는 주의 은혜로, 우리는 목자가 되었고 부목자가 되었고 직분을 맡았는데 왜 자꾸 차별을 하나?

91) 저 집사님이 너무 아파, 우리 남편은 정말 이상해, 우리 아내는 진짜 교만해나는 아프지 않나? 나는 이제 괜찮아진 것 같나?

92)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93) 제가 살면서 가장 은혜를 받았던 순간은 제가 가장 아픈 사람이었음을 인정하던 순간이었다.

94) 이제는 여러분이 꽤 괜찮고 이제 나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95) 이와 같이 내가 누군가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구원의 차별이 없다는 말은 절대로 이해될 수 없다

96) 구원의 차별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다른 이들의 마음도 깨끗하게 하심을 믿는 것이다.

97) 그래서 차별이 없음은 관계의 회복으로만 나타난다.

98)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했을 때,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했을 때, 내가 하나님처럼 안 될 게 뭐 있어? 하는 의구심을 품으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99) 내가 저 사람보다 못 난 게 뭐 있어? 내가 이런 얘기를 듣고 살아야 돼? 내가 저 사람한테 이런 취급을 당해야 돼?’ 이런 생각들로부터 모든 관계의 단절이 시작된다.

100)            하지만 차별이 없는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결국 관계 회복으로 그것이 나타난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내가 내 남편보다 내 아내보다 내 자녀보다 내 동료보다 내 목원보다 내가 아프다고 손가락질 하는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나아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그들보다 먼저 깨끗게 하셨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내가 믿음이 있는 자가 되었다

101)            그래서 모든 자매들은 자들에게 형제들아라고 부르며 차별하지 않으며 끊어졌던 관계들을 회복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102)            아무 자격 없이, 아무 조건 없이 구원을 받았는데 나 같은 죄인이 구원이 되었는데 어떻게 내 옆에 있는 남편과 아내를 저 사람은 아프고 이상하다며 차별할 수가 있겠나?

103)            우리는 여전히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104)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내 남편과 아내의 삶과 행위가 변하기 만을 바랄 뿐, 정말 예수를 만나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포기해 버린 분들도 있을 것이다

105)            또 예전에 경험했던 은혜를 다 잊고 이제는 옳고 그름 만을 따지며 공동체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106)            옆에 사람들을 차별하고 아픈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생각 없이 지내고 계신 분도 계실 것이다.

107)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들교회이며 주 예수의 은혜로 생명을 경험하고 죽음에서 살아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다

108)            이제는 율법과 행위를 넘어서서 육이 아니라 성령의 일을 주목하고 옳고 그름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 있음을 믿으며 내가 더 아픈 사람이었다고, 내가 차별했다고, 용서를 구하며 먼저 관계 회복을 위해 손을 내미는 주 예수의 은혜로 앞으로도 변함없이 든든히 세워져 가는 우리들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109)            우리는 여전히 양육되어져야 하고 거룩한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