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9. 10. 18. 12:27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역대대한체육회장(KOC위원장총망라/25)]

 

 

 

대한올림픽위원회(KOC) IOC에 정식 가입하여 NOC(국가올림픽위원회)로서 태동한 시기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1년 전인 1947 6 20일 제41차 스톡홀름 IOC총회에서 승인 받은 때이다.

 

당초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를 염두에 두고 결성 및 승인된 KOC는 정부수립 7개월 전인 1948 1 30~2 5일 스위스 생모리츠(St. Moritz)에서 개최된 제5회 동계올림픽에 사상 최초로 한국선수단 5(감독 1, 선수 3, 매니저 1)을 파견하였다.

 

이어 정부수립 직전인 1948 7 29~8 14일 개최된 제14회 런던올림픽에는 69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동메달 2(한수안/복싱, 김성집/역도)를 획득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전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렸다.

 

런던1948올림픽 폐회식 다음날인 1948 8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조선올림픽위원회였던 KOC는 한글명칭이대한올림픽위원회로 바뀌었다.

 

그 후 “1964 9 8 KOC는 문교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사단법인체로 정식 출범함으로써 대한체육회에서 완전 분리된 독립기구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KOC 50년사 53 페이지)

 

초대 KOC위원장은 이상백 IOC위원이었다.

 

 

(London1948 올림픽 한국선수단 출정식/이상백 단장이 이승만대통령에게 출정 결단식 현장)

 

 

2년 후인 1966 4 14일 이상백 초대위원장이 별세하자 부위원장이었던 장기영 씨가 제2 KOC위원장 이 되면서, 상임위원 15명과 비상임위원 23명을 선출하여 체제를 재정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KOC(선수단 파견 주최) 1966년 방콕 제5회 아시안게임에서 대한체육회(우수선수 강화훈련 전담)와 선수단 구성과정부터 심한 갈등양상을 빚어 결국에는 방콕 현지에서 주도권 다툼으로 인한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한국 내에서는 당시 대한체육회, KOC 그리고 대한학교체육회로 3분화되어 있던 체육관할조직을 1968 3 1일 정부주도에 의해대한 체육회로 통폐합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KOC 자체는 새로 통합된 대한체육회의 특별기구로 개편되어 별도법인 격이 상실됨으로써 ‘KOC정관대신 ‘KOC규정을 가지고 대한체육회 내의 특별위원회 성격으로서 명목상의 업무를 보게 되었다.

 

따라서 4년 간(1964~1968) 사단법인이었던 KOC는 법인자격이 상실되어 그 이후부터 2008년까지 40년간 인사권과 재정권 등은 대한체육회에 귀속되었으며, KOC 사무국의 업무와 기능도 대한체육회 사무처에서 관장하여 왔다. KOC위원장은 KOC위원총회에서 별도로자체 경쟁선출하지 아니하고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된 인사를추천 및 선임하는 추대방식으로 선출하였다.

 

따라서 과거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됨과 동시에 KOC회장(위원장)이 되도록 정관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2009년에는대한체육회(KOC)’라는 명칭으로 재구성됨으로써 한글로대한올림픽위원회라는 우리말 명칭은 사라지고, 동시에 대한체육회의 영문명칭인 ‘Korea Sports Council’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KOC 1955년 이기붕 위원장을 초대 IOC위원으로 배출하였고, 이상백, 장기영, 김택수, 박종규, 김운용, 이건희(1996~2017), 박용성, 문대성(2008~2016: 8 년 임기의 선수자격 IOC위원) 위원, 유승민(2016~2024: 8년 임기 선수자격 IOC위원), 이기흥(2019~) 11명이 그 뒤를 이어 활동하였거나 활동 중에 있다 

 

196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체육회장은 곧 KOC위원장이기도 하였다.

 

대한체육회(KASA-KSC) KOC(대한올림픽위원회)의 분리독립문제는 최근까지도 첨예의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다가 2009 2월에 선출되어 취임한 박용성 제37대 대한체육회장은 이러한 논란을 잠재울 묘안을 제안하여 관철시켰다.

 

, 조직자체를 한글로는 기존의 대한체육회로 유지하되 영어로만 ‘KOC(Korean Olympic Committee)’로 단일명칭화 시킨 것이다.

 

그 여파로 대한체육회의 기존 영문명칭이었던 KASA(Korea Amateur Sports Association)과 제31~33대 김운용 대한체육회장이 영문 명칭을 변경하여 사용하여 오던 KSC(Korea Sports Council)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 오던 대한체육회의 방패문양이 새겨진 로고(Logo/Emblem)역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한편 KOC(Korean Olympic Committee)의 한글명칭이었던 대한올림픽위원회란 우리말 이름 또한 증발되어 사라진 형국이 되었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KOC의 기존 로고의 핵심문양이었던 태극이 변형되어 새로운 형태의 로고가 탄생하여 IOC의 로고 변경승인을 득한 후 사용해 오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 시점부터 IOC가 대한민국의 NOC로 인정해 왔던 KOC가 한글로는 대한체육이라 쓰고 영어로는 ‘Korean Olympic Committee’로 써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혹 퀴즈나 상식문제에 출제될 경우 제대로 염두에 두어야 정답을 말할 수 있다.



<대한체육회 연혁>

 

1920. 7.13

조선체육회 창립

1938. 7. 4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

1945.11.26

조선체육회 부활

1947. 6.20

대한올림픽위원회(KOC)설립 및 IOC 가입

1948. 9. 3

대한체육회로 개칭

1954. 3.16

사단법인 대한체육회 인가

1966. 6.30

태릉선수촌 건립

1968. 3. 1

대한체육회에 대한올림픽위원회 및 대한학교체육회 통합

1982.12.31

국민체육진흥법에 대한체육회를 특수법인으로 지정

1986. 9.20

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개최

1988. 9.17

24회 서울올림픽대회 개최

1996. 4.21

6 IOC 세계생활체육총회 개최

1997. 1.24

1997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1997. 5.10

2회 부산 동아시아경기대회 개최

1999. 1.30

4회 강원 동계아시아경기대회 개최

1999. 6.17

109 IOC총회 개최

2002. 9.27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개최

2003. 8.21

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2006. 3.31

2006 국가올림픽총연합회(ANOC)총회 개최

2007. 3.27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2007. 4.17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유치

 

2009.5.24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2015대회 유치

 

2009. 6.29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완전 통합

2016. 4.8 대한체육회(KOC회장: 김정행) 및 국민생활체육회(회장: 강영중) 대 통합 출범(김정행/강영중 공동 회장 체재)

 

2020.              대한체육회(KSOC)세계 각국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 총회개최(서울 코엑스)

 

 

<2016105일 회장선거 즈음 외신이 본 통합대한체육회 >

 

2016830일자 한 외신은 “한국 스포츠 및 올림픽 위원회, 평창2018 앞두고 새로운 지휘부 구성을 위해 시동 걸다”(Korean Sport and Olympic Committee set for new leadership ahead of Pyeongchang 2018)란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통합체육회 2016년 당시 지도부/출처: insidethegames)

 

 

대한체육 및 올림픽위원회(KSOC/Korean Sport and Olympic Committee)는 불출마 암시를 한 김정행 공동회장에 이어 강영중 현 공동회장도 회장선거 불출마의사를 확인한 가운데 새로운 지휘부구성 마련에 시동을 건 것처럼 보인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강회장과 김회장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한국생활체육협의회(KOCOSA: Korean Council of Sport for All)가 지난 20164월 통합(a merger)한 후 공동회장(joint leaders)으로 임명된 바 있다.

 

양측이 로잔느로 건너가서 IOC와 만났으며 엘리트 및 풀 뿌리 수준 스포츠를 함께 관장하는 한 개의 단체로 출범한 바 있다(created one body to administer over sport at both an elite and at a grassroots level)고 보도된 바 있다.

 

 

(2016년 당시 IOC 본부 전경/출처: IOC 홈페이지)

 

 

KOCOSA대표인 강회장과 KOC위원장인 김회장은 새롭게 출범한 통합체육회 공동수장(co-leaders)으로 임명된 바 있다고 전하고 있다.

 

 

KOC는 한국에서 엘리트 스포츠를 관장하고(oversees elite sport in the country)있으며 KOCOSA는 건강한 삶의 방식증진 프로그램을 포함한 일반대중 관련 스포츠 관장책임(matters regarding the general population with responsibilities including promoting a healthy lifestyle)을 맡고 있다고 보도된 비 있다.

 

규정에 의거하여(under rules) 2016 105일 예정되었던 통합체육회 회장선거에 출마하기 위하여서는 강회장이 공동회장자리에서 사임했어야 했다라고 보도되었다.

 

KSOC규정에 따르면 출마 희망 현 회장은 선거위원회가 구성되기 전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된다(The KSOC Code says an incumbent leader seeking Presidency must stand down before the Election Committee is formed)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KSOC이사회가 종료된 후 선거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도 강회장은 현 공동회장 직을 사임하자 않았었다.

 

강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소신을 피력한 바 있었다:

"From the start, I wasn't thinking about becoming President of the merged sports body." (처음부터 나는 통합체육회 회장이 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음)

"My job is to work until the new President is elected."(내 임무는 신임회장이 선출될 때까지 업무를 수행하는 것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회관)

 

 

 

 

 

Former table tennis star Ryu Seung-min, who was elected a member of the IOC Athletes' Commission during Rio 2016, has been appointed a KOSC Board member ©Getty Images(Thomas Bach IOC위원장과 유승민 신임 선수 IOC위원-유승민 위원은 KSOC의 이사로 임명되었음/출처: insidethegames)

 

 

 

 

IOC가 정치적 간섭으로 보이는 그 어떤 것에 대하여서도 엄격한 규칙을 적용할 것이라는 근거 하에 양대 스포츠 기구 통합이 KOC로 하여금 정부로부터의 자치권을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왔다.(Concerns had been raised that the merger could threaten the independence of the KOC from the Government, with the IOC having strict rules on anything it sees as political interference.)

 

 

스포츠 단체 통합(the merger)과 새로운 회장 임명(appointment of a new President)시기가 공교롭게도 평창2018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치르는 한국 스포츠 계의 주요한 시점(at a key time)에 도래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2016년 당시 김회장(72)은 건강상의 이유로 평창2018에 앞서 열리는 Rio2016에 불참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었다.

 

2015년 심장수술을 한 뒤로 건강이 안 좋아 지난 20167월 한국선수단 Rio2016올림픽 출정식(the national team launch)참석이래로 건강 문제로 시달리고 있었던 것으로도 보도된 바 있다

 

또한 KSOC 는 아테네2004 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 유승민(34) Rio2016올림픽 동안 선수 IOC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신임 KSOC당연직 이사로 임명되었다고 언급하였음을 보도하였다.

 


지금부터는 1970년대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임하였던 대한체육회장/KOC위원장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25 대한체육회장/KOC위원장故 박종규 회장<가운데>1979.2 1980.6대통령경호실장, IOC위원 역임)

 

 

 (26: 故 조상호 회장<가운데>1980.7-1982.7 6대 체육부장관/SLOOC사무총장 및 부위원장 /청와대 의전수석 등 역임//좌로부터 김운용 WTF총재, 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 조상호 장관,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에총무, SLOOC집행위원장 국제비서관이었던 필자)

 

 

 (27: 故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맨 우측>1982.7-1984.10 좌측은 중국의 하진량 IOC부위원장, 가운데는 필자)

 

 

 ( Sheikh Fahad 초대 OCA회장 겸 쿠웨이트 IOC위원, 필자, 故 정주영 회장)

 

 

(28: 노태우 제13대 대통령<-2>1984.10-1985.4, 故 이영호 체육부장관/-1, 필자/-2, 모리타니아 체육부장관/-1)

 

 

(29: 故 김종하 전 고합회장<우측>1985.4-1989.2/OCA부회장/대한핸드볼협회 회장 역임)

 

 

( 김종하회장, 필자/국제과장, 국제부장, 비서실장 및 국제사무차장역임)

 

 

 

 

(30: 故 김종렬회장<가운데>1989.2-1993.2/대한럭비연맹회장 역임,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선수촌장/-1, 필자/-1)

 

 

 

(31-33: 故 김운용회장<우측>1993.2-2002.3/IOC부위원장, WTF총재, 국기원장, GAISF회장, IOCTV분과위원장, 1999년 강원동계아시안게임 및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등 역임, 필자/좌측)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및 IOC총회 참석차 공항에 도착한 故 김운용KOC위원장 겸 IOC부위원장, 백성일 당시 비서실장, 필자)



 

(34: 이연택회장<좌측>2002.5-2005.2/총무처장관, 노동부장관, 청와대 행정수석,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역임, 필자/우측)



 

 (35: 김정길 회장<우측>2005.3-2008.4/행자부장관,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 등 역임, 필자/좌측)

 

 (36: 이연택회장: 35대 김정길회장 잔여임기/2008.5- 2009.2 9개월간)

 

(37: 박용성회장<가운데>/IJF회장 및 IOC위원/ 대한 유도회 회장 역임, 두산중공업회장, 중앙대학교이사장, 필자/-1, 故 이응식 전 공보실장/-1)
(2009.2-2012.2)



(38대 김정행 회장, 대한유도회장 및 용인대 총장 역임)

 

(좌로부터 제39대 공동대한체육회장 김정행, 이기흥 제40대회장, 강영중 공동회장)

 

(Athens2004올림픽 당시 국제카누연맹<ICF>회장<-2>사무총장 Jose Perunera IOC위원<-1> 이기흥 당시 대한카누협회장 겸 현 제40대 대한체육회장 겸 IOC위원<좌-2>, 필자<우-1>)

 

 

 

*References:

-NEWSIS(도표)

-이데일리(사진)

-insidethegames(사진)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10. 16. 22:56

[우리들교회 2019 1013일 주일말씀 요약(신명기 4:44~ 5:10/우리와 세우신 언약 //성승환목사)]

 

 

 

 

<신명기/Deuteronomy 4:44~5:10>

4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러하니라
45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the stipulations, decrees and laws)를 선포하였으니

46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그리하였더라 이 땅은 헤스본(Heshbon)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속하였더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를 쳐서 멸하고

47
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또 바산 왕 옥의 땅을 얻었으니 그 두 사람은 아모리 족속의 왕으로서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 살았으며

48
그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의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헤르몬 산까지요

49
요단 이쪽 곧 그 동쪽 온 아라바니 비스가 기슭 아래 아라바의 바다까지(as far as the Sea of the Arabah, below the slopes of Pisgah.)이니라

 
1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5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6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Prologue>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인데 이 자리에서 말씀듣기 원합니다.

우리들교회 사역자 면접을 볼 때 설교가 가장 쉽다고 했고 큐티가 가장 쉽다고 하여 성도들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다.

은혜는 큐티 잘하는 우리들교회 성도들이 알아서 받으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다.

 

 

<말씀 요약>


4
장은 십계명의 받은 장소와 때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세우신 언약은,

1. 광야의 때를 잘 견뎌야 한다.

오늘의 계명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때로 시작하지만 아직 약속의 땅에는 가지 못하고 도중에 받은 것이다.

44~46절은 '애굽에서 나온 후에'라고 두 번 반복한다.

그리고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우리가 말씀을 받는 때와 장소는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힘든 광야 시간을 살다가 받게 되는 십계명이 바로 그때 받은 것이다.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그때 받은 것이다.

우리들교회의 수많은 성도들과 평원 및 초원님들이 간증하는 하는 것을 보면 너무 힘든 광야의 시간 속에 살다가 우리들교회에 입성하게 되어서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 그 때에 말씀을 받고 또 살아나신 간증들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있는 이곳은 요단 동편 시온의 땅(벳브올 맞은편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아모리족속 왕 시혼(
Sihon king of the Amorites)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곳이다.

그리고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기에 승리의 장소에서 계명을 받은 것은 앞으로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 승리의 열쇠가 바로 여기 오늘 주시는 언약에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때론 순종하고, 불순종하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곤고한 오늘을 말씀을 붙잡고 또 힘든 오늘을 살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약한 우리는 이 계명을 혼자 받을 힘이 없고 지킬 힘도 없다.

그래서 이미 이곳에서 승리를 경험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목장공동체와 교회공동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에서 우리는 계명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을 약속의 땅이 아니라 광야에서 받는다고 한다.

말씀을 받아도 여전히 광야에 있다.

그리고 역시 수많은 시간이 지나야 한다.

3911개월도 안되고 40년이 지나야 한다고 했다.

서두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많이 잘난 척을 하였고 몸둘 바를 몰랐다.

계시록 설교를 하면서 룻기 말씀의 배려를 적용하며 큐티 신동이지 않느냐?’며 이야기 하였는데 성도님들이 참 많이 웃어 주었다.

이렇게 잘난 척 하다 선물로 치리를 받았다.

목자님과 초원님들을 보면서 너무 잘난 척을 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정중독이 있었는데 주눅이 드니 목자모임 들어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러던 중 담임목사님이 미국으로 안식 월에 들어 갔다,

그때부터 목자모임에 안 들어 갔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이 목보를 다 읽으시고 목자모임에 안 들어 간 것을 아셔서 치리를 받았다.

내가 광야 40년을 잘 견디고 있는지 힘든 싸움이지만 종의 자식에서 나와 사람을 살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광야에서 말씀 받고 살아난 평원, 초원, 목자님들이 그런 분들이다.

그런 분들과 함께 하는 것이 힘들었다.

광야에서 받은 말씀이 있는 사람이 사람 살리는 사명자이다

(적용)  

-내가 약속의 말씀을 받을 곳은 어디인가?

-목장에서 받는 처방에 언약 말씀으로 믿어지는지? 아니면 이 사람도 나와 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져 무시가 되지는 않는지?


2. 여기 살아있는 우리와 세우신 언약이다.

모세는 율법을 선포하면서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라고 한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내가 죄 가운데 있는 것과 죄를 깨닫게 해 주는 거울과 같은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느 날 저절로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들려야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게 해 주는 것이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어렵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어렵다

그러기에 죄는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들려야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알게 되고 그러기에 율법이 필요하다.

내가 율법을 잘 지켰기에 나는 죄인이 아니다가 아니고 내가 얼마나 죄인가운데 있는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 바로 율법이다.

이 율법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듣기도 싫고 배우기도 싫고, 행하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그러기에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날마다 힘이 든다.

지금 죄인인 나를 위해 세우신 것인데 하나님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러 계신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과거가 아닌 지금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고난의 광야에 관심이 있으시며 그래서 지금 우리와 세우신 언약이다.

그래서 4.5절에 우리가 대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어렵기(믿음의 분량이 안되기 때문)에 모세가 그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고 한다.

우리는 모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이 나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모세와 하나님 사이에서 말씀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담임목사님과 평원, 초원, 목자님들이 그러한 분들이다.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사이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통해 하시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제가 알고 있는 이 땅의 사람 중에 가장 죄인이 아닐 것 같은 한 분이 있는데 그 분은 담임목사님이다.

그런데 담임 목사님이 매주 설교를 하실 때 마다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흘리신다.

회개할 부분이 전혀 없으신 분 같으신데 그렇게 회개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신다.

누구보다도 죄인인 것을 아시기에 나와 하나님 사이에서 말씀을 주신다고 생각한다.

또 목자님들이 그러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죄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의인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말씀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무너지지만 말씀을 듣고 지키고 배우면서 지켜 행하기를 반복해야 한다.

이 말씀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답답할 정도로 이스라엘백성들이 얼마나 죄를 짓는지를 성경을 보면서 알수 있다.

오늘 이 계명을, 죄를 짓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운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과거의 일, 조상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여전히 광야에 있고 죄를 짓고 있는 우리에게 주신다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해야 한다.

 

(적용)

-오늘 이 계명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인정이 되는지? 아니면 말씀을 전하는 그 사람이 무시가 되는지?

2012년 우리들교회에 입성했는데 저는 꽤 유명한 양육강사로 생활한 사람이다.

양육교사출신인데 우리들교회에 와서 지금은 양육을 40주 분량의 시간으로 받지만 저는 그 당시 44주의 양육을 받았다.

토요일에 양육을 받던 중, 양육 모임에 10분 늦었는데 목사님 그냥 들어오지 말고 그냥 나가세요!’라고 하였는데, 저를 포함한 동기들은 다 놀랐을 것이다.

그 초원님은 기억 못하지만 저는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저는 시간 강박이 있고 원래 늦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날 이후 늦지 않았다.

저는 목사로 사역하면서 양육 받은 적이 없었다.

저는 양육을 하는 사역자였는데 누구한테 배워 한 것이 아니라 책 한 권을 읽고 가르쳤기에 누구한테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에 수치스럽기도 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 양육을 다 마치고 성도와 성도 한 분과 THINK를 하였는데 그때 깨달은 것들은 목사라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양육자이고, 또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양육자이고, 그것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나에게 양육해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운지를 아는 사람이 가르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집으로, 사업장으로 찾아갔으며 숙제를 하지 못하였을 때 안타까웠다.

그리고 양육을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불렸든 간에 어떤 삶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기 위해 양육이 필요한 것이다.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하기 위해서 혼자 안간힘을 쓰는 그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양육 받지 않으신 분은 꼭 받으시기 바란다.

양육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우리 살아있는 언약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적용)

-‘나는 이미 잘 알아라고 생각하며 양육을 피하고 있지는 않는지?

-또 양육자로서 부름 받고도 나는 아직 안 돼요라고 하는지?

-‘양육은 지켜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3.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약을 세우신다. (6)

1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십계명을 이해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우상을 십자가 앞에서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기초 위에 다른 계명들이 세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전제아래 십계명이 세워진다.

나의 신앙의 간증과 고백 위에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날마다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고 배우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이 많은 우상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회개하면 가야 하는 것이다.

 

(적용)

-하나님만을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이번 주에 목장에 가겠나?

 

<Epilogue>

 

거실에 십계명을 걸어 놓는 것보다 더 적용해야 할 것은 나의 출애굽을 간증하고 큐티하는 것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우상이란 하나님이 아닌 주()와 나의 유익과 필요와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십계명은 집에 걸어 놓는 액자가 아니다

십계명은 교회직분이 아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내 자신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

십계명을 가장 잘 지키는 것이란 목장에 가는 것이며 목장은 출애굽 간증이 있는 곳이다

목장의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큰 양육이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0. 15. 23:53

[대한민국 스포츠외교실록-한국의 역대 IOC위원계보 집중탐구 Update(24)]

 

 

 

 

 

1947620일 제41차 스톡홀름 IOC 총회에서 대한올림픽 위원회 (Korea Olympic Committee/KOC)IOC 회원국 NOC로서 승인을 받은 지 8년 만에 한국은 첫 IOC위원을 배출하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 밑에서 권세를 누리던 이기붕 부통령이 낙점을 받아 19556월 제51차 파리 IOC 총회에서 1대 한국 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52년부터 제17대 대한체육회장 겸 제6KOC위원장을 지내면서 1955년부터는 초대 IOC위원(4년 간)으로서도 활동했고 195511월에는 스포츠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헬름스 재단이 수여하는 공로상까지 받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IOC위원 족보/사진출처: 연합뉴스)

 

 

 

그가 4.19혁명의 와중에서 아들인 이강석으로부터 총탄을 맞고 쓰러진 뒤 이상백 박사가 위원 직을 승계하게 되었다.

 

 

이상백 제2 IOC위원은 농구선수출신으로 일제 시대부터 체육협회 이사를 지냈고 1937년 국제 빙상연맹(ISU) 일본대표로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등 많은 국제 스포츠 경험을 토대로 국제 스포츠 인맥이 두터운 편이었다.

 

 

특히 1947KOCIOC회원국 NOC 승인 과정에서 당시 IOC 부위원장이었던 미국의 Avery Brundage (6IOC 위원장 역임/1952-1972)와 오랜 친구로서 결정적인 막후 지원을 했던 공로자이기도 했다.

 

 

196410월 제63차 도쿄 IOC총회에서 한국의 2IOC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2년간 (1964-1966) 10KOC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2년간 IOC 위원으로서 코리아의 이미지를 국제 스포츠 계에 많이 전파하였다.

 

 

 

3대 한국 IOC위원은 [불도저/Bulldozer]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장기영씨였다.

 

 

언론인이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19676월 제66차 테헤란 IOC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되어 19774월까지 IOC 위원으로서, 1966-1968 2년간 제11KOC 위원장으로서 한국 스포츠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776월 제 79차 프라하 IOC 총회에서 4대 한국 IOC위원으로 선출된 김택수씨19776월부터 19834월까지 5 10개월 간 IOC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7419762년간은 대한체육회장 겸 제14KOC위원장을 역임하였고, 국제 신사로서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웠던 [멋쟁이 고급신사]로 국제 스포츠 계에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그는 19819월 독일 바덴바덴(Baden-Baden) 84IOC 총회에서 1988년 올림픽 유치 당시 서울 유치 활동에 회의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지적도 있었던 그는 19831983년 지병이었던 폐암으로 타계하였다.

 

 

1980년 선출된 제7Samaranch IOC위원장이 방한하여 KOC를 방문 당시 정주영KOC위원장과 면담 후 무교동 체육회관 10층 강당에서 올림픽 훈장을 추서(posthumous awarding of Olympic Order)하기도 하였다.

 

 

(Samaranch IOC위원장 방한에 따라 무교동 체육회관 9 KOC위원장 집무실에 모인 당시 한국 체육 계 거물 들/ 좌로부터: 이영호 체육부장관<옆모습>, 노태우 SLOOC위원장, Samaranch IOC위원장, 통역 중인 필자, 정주영 KOC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

 

 

 

 

당시 필자는 KOC 국제부 직원으로서 IOC위원장과 정주영KOC위원장 면담 및 올림픽훈장 추서 식 사회 겸 통역을 IOC 1공식언어인 불어로 진행한 바 있었다.

 

 

 

 

(1983년 故 김택수 IOC위원 올림픽훈장 추서 식 필자의 사회장면)

 

 

 

5대 한국 IOC위원은 19847월 제88LA IOC 총회 시 선출된 박종규씨198512월까지 15개월간의 최 단기 IOC위원으로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1988서울올림픽대회 준비에 따른 대 IOC 교섭 창구 및 외교채널 역할뿐만 아니라 대한사격연맹 회장과 대한체육회장 겸 재15KOC 위원장(1977-1980)으로 재임 시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1978년 제42 UIT세계 사격선수권대회를 국내에 유치하는 등 한국스포츠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국제스포츠 계, 특히 국제 사격 계에서는 [Pistol Park/피스톨 박]으로 유명하였으며, ANOC 회장 겸 IOC 집행위원으로서 세계 스포츠 계 세력 판도의 한 축을 뒤흔들었고 당시 라틴계 대부로서 활동한 바 있는 멕시코의 Mario Vazquez Rana회장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Vazquez Rana회장은 1980930일 독일의 Baden-Baden에서의 1988 서울올림픽 유치작전 時 라틴계 IOC 위원들의 표를 몰아주는 데 박종규 IOC 위원의 부탁으로 막후에서 도와줬던 숨은 공로자의 한 사람인 친한 파이며, 2006ANOC 총회 서울 유치에도 적극 지원하여 준 바 있다.

 

 

그는 필자의 국제스포츠외교활동을 높이 샀던 분으로 2008 Beijing개최 ANOC총회 개회식에서 206 NOC대표들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국제스포츠 외교훈장 격인 ANOC공로훈장(ANOC Merit Award)를 수여하는데 총대를 매셨던 고마운 분이었다.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겸 IOC집행위원이 필자에게 ANOC공로훈장을 수여하고 있다/2008 Beijing개최 ANOC총회 개회식장에서)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훈장수여에 이어 Jacques Rogge 당시 IOC위원장이 이어 ANOC공로 패를 수여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었던 김택수씨와 박종규씨는 제5공화국 출범 초기 신 군부로부터 부정축재 자로 몰리는 등 고초를 겪었던 바 있었다

 

 

하지만 박종규씨는 의리 파로서 신임이 두터워 그 와중에도 (1984.7-1985.12) IOC 위원으로 낙점 받아 지병인 간암으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타계하기 전까지 IOC 위원으로서 한국 스포츠 국제화와 스포츠외교중흥에 기여한 [큰 별]이다.

 

 

필자는 동독 베를린에서 개최된 1985년 제90IOC 총회 시 당시 노태우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조직위원회(SLOOC)집행위원장, 박종규 IOC 위원, 김운용 WIF 총재, 최만립 KOC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한기복 체육부 국제국장, 오지철 체육부 해외협력 과장 등과의 현지 체류 시, 박종규 IOC 위원과 사진도 함께 촬영하였고, 그 분의 개인사진도 찍어주기도 했는데, 동 베를린 IOC 총회가 그 분의 마지막 해외 출장이 되어 버렸다.

 

 

 

 

(좌로부터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박종규 IOC위원, 필자)

 

 

 

(1985 531일 동 베를린 개최 IOC참석 중 독일분단의 상징 Brandenburg gate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좌로부터 2번째가 필자, 이어 이영호 체육부장관부부, 박종규 IOC위원 부부, 김운용 WTF총재, 최만립 KOC부위원장, 한기복 체육부국제체육국장, 관계기관 국장)

 

 

 

 

타계한 박종규 위원의 뒤를 이어 6IOC위원으로 선출된 사람은 서계태권도연맹(WIF)총재를 역임하고 박종규 IOC위원이 청와대 경호 실장 시절 보좌관을 지냈던 김운용 박사, 1986년 제91차 로잔 IOC총회 시 한국의 제6IOC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한국 스포츠의 국제화 및 세계화를 통한 한국 스포츠외교의 [르네상스]시대를 활짝 열었다.

 

 

 

(Dr. Un Yong KIM)

 

 

 

1993-20029년간 대한체육회장 겸 제21KOC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1994년 제103차 파리 IOC총회에서 태권도를 올림픽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결정적이고 독보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필자와 김운용 KOC위원장 겸 前 IOC부위원장)

 

 

 

그는 한국어가 올림픽 대회사용 경기언어가 되고 한국선수단의 올림픽금메달 터전이 되도록 주춧돌을 놓았으며 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를 통하여 한국의 얼과 한민족의 문화를 전 세계에 심었다

 

 

그는 IOC TV 분과위원장, GAISF(국제경기연맹 총 연합회: General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s) 회장, ARISF(국제 승인종목연맹 총 연합회: Association of IOC Recognized 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s) 회장, World Games 창시자, IWGA(국제월드게임연합회: International World Games Association) 창설회장, FINO(국제 올림파프리카 재단: International Olympafrica Foundation) 창설회장, 동 재단 IOC 집행위원장, IOC부위원장, IOC 위원장후보 등 한국 스포츠 인사로서는 국제 스포츠 계에서 전대미문, 전무후무할 경이적이 도약을 이룩하였다.

 

 

 

(Vitaly Smirnov 러시아올림픽위원장 겸 IOC위원(좌측>과 김운용 IOC부위위원 겸 KOC위원장<우측>이 양국 NOC간 스포츠교류협정 체결 후 악수하고 있습니다. 뒷 줄 필자와 당시 장주호 KOC부위원장)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큰 몫을 하였고, 한국이 각종 국제종합 경기대회 및 총회 등을 유치하게 함으로써 [동방불패]란 명성도 얻게 되었다.

 

 

 

(Atlanta1996올림픽 참석차 Atlanta국제공항에 한국선수단과 도착한 김운용 당시 KOC위원장 겸 IOC부위원장)

 

 

 

그는 국제 스포츠 계에 한국의 위상을 우뚝 세운 거인임에는 틀림없다.

 

 

 

북한에도 김유순 IOC 위원의 뒤를 이어 장웅 ITF(국제태권도연맹: 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총재가 1996년 제105Atlanta 올림픽개최 IOC총회 時 한국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한날 한시에 IOC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 한 바 있다.  그는 1938년 생으로 2018년 말 80세 정년으로 은퇴하였으며 2019년부터 IOC명예위원으로 선출되었다.  

 

 

Thomas Bach IOC위원장과 개인적 친분관계가 두터운 그가 올림픽운동에 남아 2032년 한반도올림픽유치 및 개최까지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장웅 북한 IOC위원<우측>과 함께)

 

 

 

만약에 남북통일이 될 경우, 동서독의 통일 독일이 되었을 때(당시 서독 IOC 위원2: Will DaumeWalter Troeger, 동독1: Gunther Heinz) 3명이 되어 동독출신의 Gunther Heinz IOC 위원이 명예위원이 되어 총3명에서 2명으로 축소된 전례가 있었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193875일생)이 만 80세가 되었던 2018년에 남북통일이 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통일 독일의 판례(Precedent)를 따르게 될 수도 있었겠지만 2019년부터 IOC명예위원으로 선출됨으로 독일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운용 위원(1931319일생)과 이건희 의원(194219일생)의 경우, 2명 모두 1999년 이전에 선출되었으므로 정년은 80세이나 2000111차에 시드니 IOC 총회에서 제비 뽑기 결과에 의하면 2007년에 1/3, 2008년에 1/3, 2009년에 1/3에 해당하는 80세 정년 해당 IOC 위원들이 잔여 정년 임기에 한해 재신임 일괄투표를 거쳐 IOC 위원 직을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김운용 위원의 경우 2005IOC 위원 직을 사임한 바 있으며 그리고 그는 이제 고인이 되었다.

 

 

 

현행 올림픽헌장 상 원칙적으로 한 나라에 한 명 이상의 개인자격 IOC 위원을 선출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1999년 이전에 발행된 올림픽 헌장 (Olympic Charter) 2(Chapter2) IOC 관련 제201.4항을 보면 “한 나라 당 한 명 이상의 IOC 위원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IOC는 그렇지만 하계 또는 동계올림픽 대회를 개최한 나라에 대하여 제2 IOC위원을 선출할 수도 있다(There cannot be more than one member elected in a country, The IOC may, however, elect a second member in countries in which either the Game of the Olympiad or the Olympic winter Games have been held)." 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러한 예외 조항에 의거 1996년 제105차 애틀랜타 IOC 총회 시 한국의 제 2 IOC 위원으로 선출된 사람이 바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고 난 후 만 8년만의 한국스포츠외교의 결실이었다.

 

 

이제 올림픽 헌장에는 이러한 규정도 삭제되어 개인자격 IOC위원은 전 세계에 걸쳐 70명이 정원이며, 어떠한 경우의 IOC 위원 후보라 할지라도 그 후보는 IOC가 승인한 NOC가 있는 국가 출신이었어야 하고 1명 이상은 선출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반면, 2014 128~9일 모나코 개최 제127 IOC 임시총회에서 IOC위원들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승인된 40(20+20)개혁권고조항으로써향후 올림픽운동의 전략적 로드 맵”(Strategic Roadmap of the Future Olympic Movement) 38 3항에 의하면 개인자격의 IOC위원의 경우, 예외적으로 국적에 관계 없이 최대 5명까지 추가 선임할 수 있는 길을 터 놓기도 하였다.

 

 

“3: IOC총회에서는 국적 기준과 연계해 개인 위원들에 관한 한 최대 5건의 특별 예외(a maximum of five special case exceptions)적용 허용 (최대 5명까지 정년 최대4년 연장 가능)”

 

 

<이건희 IOC위원, Sydney2000올림픽 미국여자육상대표 Marion Jones에게 금메달수여>

 

 

 

 

 

 

 

올림픽 헌장에서 명시한 올림픽종목 국제연맹회장자격 IOC 위원 수는 국가별 인원수 제한과 무관한 관계로 한국인으로 유일무이한 올림픽종목 국제연맹회장인 조정원 WTF(세계태권도연맹: World Taekwondo Federation)총재가 20054월 마드리드에서 재선(2005-2009)에 이어 2009-2013 2013-2017 그리고 2019-2023 5선에 성공하였다.

 

 

또 조 총재의 국제 스포츠 계에서의 활동 역량과 신뢰도 및 인맥 구축에 충실하고 태권도가 2008년 이후 London2012, Rio2016, Tokyo2020올림픽에 이르기까지 6연속 올림픽정식종목으로 계속 그 지위가 보장되었으므로, 15(Quota) 내에서 결원이 생길 경우, 선별적으로 임기에 준하는 IOC위원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1999년이후 선출되는 IOC위원의 경우, 정년이 70세로 못박혀 1947년 생인 조 총재는 2019년 현재 만 72세로 연령제한에 막혀 더 이상 국제연맹자격 IOC위원선출 자격 가시권에서 벗어났다

 

 

 

[Any other candidature proposal must concern a personality who is a national of a country in which he has domicile or his main center of interests and in which there is a an NOC recognized by the IOC. No more than one member per country may be elected on the basis of such candidatures. The total number of members thus elected within the IOC at any one time may not exceed 70.] 이러한 문구를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 당시 김운용 IOC 부위원장이 IOC 위원 직을 사임하였으나 이건희 IOC위원이 개인자격 IOC 위원자격을 고수하고 있었으므로 어떠한 경우라도 한국으로부터 개인자격 IOC 위원이 더 이상 선출될 수 없는 현실에 봉착하였었다.

 

 

그러나 2017 8월 자진 사임한 이건희 IOC위원의 개인자격 IOC위원 자리가 생겨 1년 뒤인 2018 10 Buenos Aires개최 제133 IOC총회에서 이건희 IOC 위원 후임 IOC위원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국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대한성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박용성 IOC위원의 경우 개인자격이 아닌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자격(국제올림픽종목연맹회장자격 IOC 정원은 15)으로 국적과 관계없이 국제연맹 회장 임기 동안 한해서 선출된 국제연맹 IOC위원이었다.

 

 

따라서 박용성 IOC위원의 경우 IJF 회장 자리를 계속 유지하였다면 만70(2010)년까지 IOC위원으로서 활동하게 되어있었으나, Beijing2008올림픽을 1년 앞둔 2007 97 IJF내 반발 무마 카드로 IJF의 발전을 위하여 IJF회장 직을 전격 사퇴함으로 IOC위원자격도 동시에 내려 놓은 바 있다.

 

 

 

        (박용성 前 IOC위원 겸 前 IJF회장 겸 前 KOC위원장)

 

 

 

반면 ANOC 및 대륙 별 NOC 연합회(ANOCA, EOC, OCA, PASO ONOC)비롯한 206개 각국 NOC위원장 또는 집행위원 급 이상의 후보자가 15명 정원의 NOC 자격 IOC 위원으로 추천되어 절차를 거쳐 선출되는 길 역시 열려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 특출한 재주와 국제 스포츠 계에서의 오랜 기간 공들인 뛰어난 인맥관리,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IOC 내부로부터의 전폭적인 협조 없이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식으로 간주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 또는 통일 한국에서 미래의 IOC 위원을 꿈꾸는 사람의 경우 첫째 올림픽 종목 국제연맹 회장으로 피선된 뒤 오랫동안 각고의 노력과 스포츠 외교력으로 꽃피워내야 IOC 위원이 될 수 있겠다.

 

 

Beijing2008올림픽대회에서 선수자격으로 IOC위원 직(2008-2016)에 선출되었던 Athens2004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 前 동아대 교수가 대한민국 선수자격 IOC위원 제1호였다.

 

 

대한민국 제1호 선수자격 IOC위원(2008~2016)에 이어 제2호 선수자격 IOC위원(2016~2024)으로 Athens2004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 현 대한탁구협회장(2019~현재) Rio2016올림픽 기간 중 세계각국 선수들이 참여한 투표에서 문대성위원에 이어 선수자격 IOC위원으로 연이어 선출되었다.

 

 

 

(유승민 선수자격 IOC위원/출처: IOC website)

 

 



4명의 선수 IOC위원을 뽑았던 Rio2016 선거전에서는 유승민 선수를 포함 총 23명이 입후보 했으며 이들 중 유승민 선수는 투표집계결과 Beijing2009올림픽 독일의 여자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Britta Heidemann( 5815 표 중 1603표 획득)에 이어 2(1544표 획득)를 기록하며 선수자격 IOC위원으로 선출되어 맹활약 중이다.

 

 

또한 이기흥 대한체육회(KSOC)회장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NOC자격 IOC위원으로 당당히 선출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그는 2019 626일 열린 제134 IOC총회에서 총 10명의 후보에 대한 찬반투표 결과 전체 64표 중 기권2, 찬성57표를 획득하여 NOC자격 IOC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기흥 NOC자격 IOC위원/출처: IOC website )

 

 

 

이기흥 신임 IOC위원은 한국최초로 국가올림픽위원회(NOC)자격 IOC위원이자 대한민국 통산 11번 째 IOC위원으로 등극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개인자격 IOC위원, 국제연맹(IF)자격 IOC위원 및 선수자격 IOC위원이 이어 국가올림픽위원회(NOC)자격 IOC위원 카테고리 모두를 아우르는 IOC위원 보유국이 된 셈이다. 현재 대한민국 IOC위원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 등 2명이다.

 

 

*References:

-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윤강로 저)

-IOC website(사진)

-대한체육회(사진)

-연합뉴스(사진)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0. 11. 12:22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올림픽보이콧종지부완결판 동구권국가들의 서울1988올림픽참가결정배경(23)]

 

 

<올림픽보이콧종지부완결판-동구권국가들의 서울1988올림픽참가결정배경>

 

당시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국가들의 서울올림픽참가결정은 1981 9 30일 바덴바덴 IOC총회 이후 한국정부의 줄기찬 대 동구권국가 올림픽문호개방정책과 KOC의 유연한 친선우호 스포츠외교의 결실로 평가 받고 있다.

 

대한민국정부는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대통령의 서명이 포함된 문서로서 IOC회원국 및 올림픽가족 모두에 대한 한국방문 보장을 천명하였다.

 

이와 같은 한국정부의 미수교국에 대한 유연한 외교정책은 1984 LA올림픽까지 별다른 장애 없이 대한민국 스포츠외교의 주종을 이루어왔으나, 같은 해 5월 소련이 LA올림픽 불참을 선언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줄기찬 외교와 IOC ANOC 등의 긍정적인 반응은 1985년 멕시코시티개최 ANOC총회(멕시코 선언문 채택) 1986 4월 서울에서 개최된 ANOC총회를 계기로 커다란 진전을 보여 동구권국가들 대부분이 서울올림픽 참가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ANOC서울총회와 더불어 IOC가 주관한 남북체육회담과 이 회담을 통한 북한 측의 무리한 요구내용 등이 동구권국가들의 서울올림픽참가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하였다.

 

서울 ANOC총회 이후 동구권국가의 서울올림픽참가에 대한 결정적 계기는 1985년 동 베를린 개최 IOC총회 후 동독의 호네커(Honecker) 당서기와 에발트(Ewald) 체육 장관 의 서울올림픽참가 공식시사로 나타났다.

 

특히 1987 5월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IOC총회에서 한국은 미수교국이 서울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낼 경우 자국항공기의 서울국제공항 이착륙 허용을 보장함으로써 미수교국 특히 공산권국가 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동독이 서울올림픽참가를 천명하고, 1985년부터 소련 등 동구권국가들이 서울에서 개최된 각종 국제스포츠대회에 참가함으로써 이들 미수교국들의 서울올림픽에 대한 긍정적 자세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1985년 동 베를린 개최 IOC총회 당시: 좌로부터 노태우 SLOOC1988조직위원장-사마란치 IOC위원장-박종규 IOC위원-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

 

 

이 같은 한국 측에 유리한 분위기조성은 1987년 소련,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공식 NOC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고 당시 루마니아의 Siperco IOC부위원장이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서울올림픽 참가발표는 없었지만 사실상 서울올림픽참가를 전세계에 확인시켜주었다.

 

동구권 NOC대표단은 서울방문에서 나라별로 관심을 나타내면서 구체적인 협의사항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와 상의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은 선수단수송문제와 관련 자국선박 및 항공기에 의한 직접수송을 제의했고 한국 측은 이를 수락하였다.

 

또 동독은 서울올림픽참가 시 공산국이고 미수교국인 동독의 정식 국호, 국기, 국가사용을 타진하여 이에 대한 보장을 받고 참가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독은 특히 잠실주경기장의 5, 10, 20, 30m 상공의 풍속을 묻고 미사리 조정경기장의 바람세기와 파고 등 예기치 못한 세부사항을 질의 하는 등 이때 이미 확고한 참가의사를 간접적으로 확인시켜주었다.

 

소련, 동독과는 달리 불가리아는 1992년 소피아 동계올림픽 유치노력과 관련, 서울올림픽 참가를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었고, 헝가리는 서울올림픽의 체조, 펜싱경기장의 전광 스코어보드 설치권을 따내면서 이미 서울올림픽 참가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하였다.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이미 공식대표단 및 책임자 차원에서 수 차례 걸친 서울방문으로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여주었다.

 

Marian Renke 폴란드 체육부장관은 ANOC사무총장 자격으로 여러 차례 서울 방문을 통해 서울올림픽에 대한 호감을 갖기 시작했고, 루마니아의 Siperco IOC부위원장 역시 한국이 올림픽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수 차례에 걸친 서울방문에서 확인했다.

 

1987 9월 소련 수쿠미에서 개최된 사회주의국가 체육장관회의에서는 수 차례 계속된 한국과의 접촉과 사전조사결과에 의거 서울올림픽참가를 내부방침으로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쿠미회의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했으나 1987 12월과 1988 1 17일 사이에 IOC의 서울올림픽참가초청장에 대하여 모두 공식참가통보하기로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회주의국가들의 참가결정은 동독과 헝가리가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 IOC통보 1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물밑경쟁을 했었다는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독은 1987 12 21일 국가체육위원회가 서울올림픽참가를 결정하고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통보하기로 했으나 이를 알아차린 헝가리가 우편대신 팩스로 IOC에 통보함으로써 동독보다 3시간 앞서 등록 접수했다는 에피소드가 회자된 바 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10. 9. 10:32

[우리들교회 2019 106일 주일말씀 요약(사도행전 3:

11~ 26/성령의 권능)]

 

 

<Prologue>

 

행복을 쫓으니 불행이 온다.

성령의 권능이 어떻게 임하는지 찾아오셔서 마음 판을 두드려 주소서.

성령의 기적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을 통해 5천명이 돌아오게 되는데 부인과 아이까지 합치면 1~2만명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기적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도구다

기적은 한 사람이 경험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기적보다 예수님이 중요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무식하고 비천한 베드로가 성령 받고 이러한 권능의 설교를 했다면 성령 받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두 성령의 권능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령의 기적 이후 성령의 권능이 임한다. 성령의 권능을 살펴보겠다

 

<말씀 요약>


성령의 권능 첫 번째는,



1.
성령의 권능은 사람을 주목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목한다.

 

이 거지가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었다

'내 병이 완전히 나았을까? '‘떠나면 안돼!’ 하면서 바지가랑이를 붙들었다

예수를 죽인 그들이 오직 바라는 것이 기적이다.

그들은 기적에 열광하고 지혜까지 좋아했기에 솔로몬 행각에 저절로 모였다.

기적에 놀라서 따라왔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를 전할 기회를 얻었다.

성령의 기적을 베푸시는 이유는 오로지 예수를 전하도하기 위함이다

잘 되도 안 되도 속상해 할 필요가 없다. 그것 때문에 예수를 전해야 한다.

기도 응답 받고 예수님 전하지 않으면 도로 빼앗아 간다.

인생의 목적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성령의 기적은 예수로 돌아오게 한다.

이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이상히 여기느냐?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는 경건도 전능함도 없다

성령의 권능은 베드로는 감추게 하고 하나님만 높인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아..너희들 하나님의 택자 아니냐?

하나님의 백성이면 하나님이 하신 것 아니냐?.. 그런데 왜 우리를 보고 놀라느냐? 알다시피 나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후 낚시 하러 갔는데 그런 나를 왜 주목하냐고

유대종교지도자들은 백성의 시선으로 오직 자기들에게 향하게 하고자 했다

기도하는 모습도 보이고 주목하게 하고자, 옷도 거룩하게 또 거룩하게 치장했지만
베드로는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자 했다

초대교회가 자기들을 알리고자 했다면 또 자기가 영광 받고자 한다면 이미 1계명을 어기게 되어 다른 나머지 10계명도 모두 다 어기니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내가 전도했다고 하면서 주목 받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생색은 결국 시간이 지나서 민 낯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를 주목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권능이다.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겠다.

유대인이 가장 존경하는 아브라함의, 이삭의 하나님,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했다

종의 형체를 가졌으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고 한다

내가 주목 받을 일을 했는데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예수님이 그렇다고 이렇게 성경을 봐야 말씀이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것이다

늘 말씀 들으면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서 적용이 되는 것이다

예수가 구약에서 종으로 표현된 메시아를 입증하는 약속의 성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의 종으로 오신다고 선지자가 예고 하였다

잘 살고 잘 죽고 높이시어 영화롭게 하셨다

어떻게 영화롭게 하셨나?  

빌립보서 2, 그는 근본 본체이신 하나님이시지만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베드로 설교도 종의 형체를 가지신 예수 이름에 무릎을 꿇게 된 이야기다.

 

# 이번 주 나눔에, 지방에서 60, 담임목사 재직 중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사임 통보를 받았다. 갈 데가 생겨서, 서울에 올라와 우리들 교회에 등록했다. 아파트 청소, 말씀과 목장 나눔을 통해 구속사 사건으로 이해가 되니 온 가족이 기도하며 적응하고 있다. 평생 담임목사 하신 분이 청소를 하시니, 예수님 같은 것이다. 게다가 목사가 청소한다는 것은 어려운 적용이다.

 

#지난주 최씨 목자님 나눔을 보니, 노동 일이 가장 정신적으로 좋은 것이다. 부천에 가서 경비직 청소 두 가지 일인데 경비가 청소보다는 상위 직이었다. 한 계단 높은 게 높은 것이다. 경비는 주일을 못 지키기 때문에 청소를 하는데 약간의 갈등을 했지만, 목자도 해야 해서 청소를 시작했는데 천직인 것 같다. 우리들 간증한 게 용기가 되어 5개월 되었는데, 1000만원 벌었다. 하나님만 주목하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는 적용을 하니 건강해지고 돈도 벌었다.

 

(적용)

-나는 사람을 주목하나예수님을 주목하나?

-(다른 말로) 기적에 주목하나?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에 주목하나

 

2.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14-15,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빌라도가 나름 꾀를 써서 죄목이 큰 살인자 바라바와 비교했는데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었다.

자기 이익에 반하면 예수도 적인 것이다.

자기 이익에 맞으면, 살인자도 내 편인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줘야 한다.

십자가 얘기를 하려면, 죽인 일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나도 앉은뱅이도 고치고 살아난 일이 예수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그를 성하게 하였다.

내 능력이 아니다.

내가 고치지 않은 일에 증언이다.

예수님 승천하셨다.

이름만 가지고도 일으키셨다. 즉 하나님이 고치신 것이다.

예수의 이름은 예루살렘을 뛰어넘는 성경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름은 인격과 하는 일을 다 나타낸다.

우리는 개인 구원사건에 증인이 되어서, 이 세상에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한 몫 챙길 기회가 오지 않았을까?

시몬은 돈 벌 기회를 봤다.

베드로와 초대교회는 예수 권능이라고, 예수가 죽어주심으로 무식한 나를 통해 성령이 일하신 것이라고 전한다.

앉은뱅이는 나아서 뭐 하는가?  예배를 드려야 한다.

산 자의 하나님은 영원토록 예배의 대상이시다.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 치유의 기적을 가져온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배의 대상이시다

우리의 인생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한 것인데, 지속적으로 전하려면 말로는 할 수 없다.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 세상은 모두 이기려고 하다가 이기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인의 종말은 언제일지 모른다. 내일 일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지속적으로 주목 받지 않고 내가 한 것이 아니다라는 걸 얘기하려면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 보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구별된 모습이며 좁은 길이다

큐티와 예배는 좁은 길이다.

몸이 익어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큐티함으로 다른 사람과 구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성령의 권능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점점 찔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 오는 게 십자가이다.

교회 가는 것이 택자의 좁은 길이다

이 현 세대에서 예배 드리는 것은 좁은 길을 가는 것인데 이 예배 드리는 것이, 큐티하는 것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예수를 십자가에 잔인하게 못박았는지를 아는 것이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다

고난이 와야 예배가 사모된다

열심히 몸에 익어도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인정해야 가능하다

몸에 익어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큐티함으로 다른 사람과 구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내가 예수님을 못 밖은 것을 인정하며 예배에 설렘이 있게 된다

나는 모범생이라 죄 보기가 어려웠다. 죄를 못 보니까 혹독한 용광로에 들어가게 하셨다.

윤리 도덕만 생각하니, 모범적 태도가 존재론 적인 가해자가 된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탕이 돌탕보다 다른 사람을 더 어렵게 한다

그래서 집탕이 무서운 것이 맞다

의와 교만으로 꽉 차있고 드러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예배의 설렘이 없는 것이다.

너무 앉아있으니 다른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이다.

사기그릇에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자라가 성령님이 넘겨주셨다.

사기 그릇을 넘어가니 저 우주가 보이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못 넘던 사기그릇을 성령의 권능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점점 빛이 보이니까 내 죄가 보이는 것이다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빛으로 환해지니까 내 죄가 보이는 것이다

내 죄를 보기에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주님의 온전함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주님이 너무 빛나기에 점점 보이는 것이다

천국에 가야 그곳에 다다르는 것이다

넘어져도 넘어져도 목표를 찾았다.

내 죄를 보니까 설렘이 생겼다.

몸이 기억한 것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신 것 같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을 느낀다.

주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에 증인 되어야 한다

교회 나와도 같은 성령이 아니면 안 통한다

같은 식구라 해도, 같은 성령이 아니면 유대인하고 안 통하는 것이다.

같은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것을 봤는데도 안 믿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바울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까 더욱 좋은 것이며 천국 가고 싶다는 말이 인정이 된다.

오죽하면 바울이 골육이 끊어지더라도 믿기를 원한다고 했겠나?

바울도 자신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인정했기 때문에 일생 그의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적용)

-성령의 권능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인정이 되나?

 

3. 회개하면 복을 주신다.

 

17-18, 지금까지 죄를 통렬히 질책을 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신다.

너무 자책하지 말라. 모르고 지은 죄, 부지불식 간에 지은 죄 때문에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신데 너희가 안 죽였어도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님은 죽게 되어있으셨다.

이사야서에서도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예고 되고 있다

예레미야, 스가랴에서도 예고되어있었다.

꼭 너희 탓만은 아니다.

베드로가 십자가 사건을 성경대로 깨닫고 해석했다.

이때부터 제자들이 십자가와 죽으신 일이 가장 핵심내용임을 깨닫고 그렇게 성령이 설교로 사직했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복음의 중심으로 삼게 되었다.

주님의 죽으신 일이 하나님 구속사에 가장 핵심이다

성령의 설교가 안 들리면 모든 것이 분별이 안 되는 것이다.

무식하던 베드로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한다

매사에 권능이 임하지 않는다.

신과 불신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

지금 믿어야 된다.

날마다 말씀이 들리는 축복을 구하는 것이다.

너희 죄 없이 함은 받으라 새롭게 되는 날이 주께로부터 임할 것이다.

회개는 유턴이다

베드로의 설교 목적은 회개에 있다.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에 관한 설교로 5천명이 회개하도록 한 명 설교다

그야말로 Good News

명 설교복음의 핵심 원리를 전하는 것이다.

회개하면 복을 받는다.

회개만 하면 4가지 복을 받는데,

 

(1)죄 사함의 복

 

어떤 죄를 지었어도 기억하지 않으시며 내가 주님은 못 박았는데 주님이 대속재물로 담당해 죽으시는 것이다

 

(2)새롭게 되는 복(원기회복)

 

유쾌하게 되며 전 인격적인 변화로 전적으로 새로운 성품을 갖게 된다

자기도 모르는 죄 짐에 눌려 있다가 죄 없는 해방을 맞는다.

예수께 담당시켰다.

새 성품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며 이것을 금지하는 법이 없느니라)이다.

헬라어카이로스는 특별하게 주어진 때이다

하루하루의 삶은 구원 받는 기회를 주신 것이며 영원한 천국을 얻는 기회이다.

유대인은 누구보다 그 기회를 먼저 얻었지만 상실했다.

우리의 삶은 구원을 얻는 단 한번의 기회이다.

세월은 악하니 구원을 얻는데 만 필요하다는 것이다.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에베소서: 5: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십자가는 지혜, 타이밍인데 구원을 위해 쓰지 않는 것은 헛것이다.

 

# 지난주에 성령의 열매를 맺은 18살 청년의 이야기인데요. 억울하고 황당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남자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다가 경찰이 흑인을 총으로 실수로 죽였어요 검찰이 28. 배심원은 99년을 평결, 그런데 재판부는 10년을 선고.
야유하고 분노했어요 그런데 증인석에 있떤 18세의 보탐의 동생이 나와서 형의 원수 보면서 저는 당신을 한 명의 인생으로 사랑합니다.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만 축복하고 싶어요. 그것이 제 형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남은 삶은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해주세요. 제가 그를 안아 줄 수 있을까요? 울고 있던 여경..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고.. 정의와 .욕하던 법정이 스톱되었어요. 회개와 상관없이 이 브랜트은 죄사함을 받고 예수 믿으라고 한 거잖아요. 남은 인생 예수 믿고 헌신해라. 그래서 시민들도 다 울었고 판사도 울었고.. 브랜튼이 예수가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에요

 

 

(적용)

-삶은 구원 얻는 단 한 번의 기회라 생각하며 세월을 아끼나?  세월아 네월아 하며 허비하나?

 

내 시간이 구원을 위한 시간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 헛되다.

구원을 모르면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후회막급이다

설렘이 없어도 교회는 가야 한다.

교회 오는 것 자체가 천국이며 고난이 없어지면 교회에 가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다

 

(3) 재림 예수를 보내시는 복이다.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재림 예수를 보내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각자 다르다
개인의 종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다는 것이다

내가 가루로 흩어져도 찾아내신다.

 

(4)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

22-26절 모세는 출애굽 율법의 대표, 유대인을 구원할 메시아, 사무엘은 선지자 대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에게 씨로 말미암아 만물이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씨는 단수 예수님이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전했는데, 예수가 이 땅에 세우신 위대한 마지막 선지자라는 것이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를 예언했지만, 예수님은 성취시켰다

26절은 복음을 전하게 한 것은 그들의 악함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먼저 믿은 자에게 악함이 있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다.

대단한 선민의식이다.

12사도도 다 유대인이다.

성령강림도 유대에 우선했다.

모든 기회를 처음에 제공했는데 그 구원의 기회를 박차고 지금까지도 있다. 그렇기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도 예수의 섭리이다.

베드로가 너무 설명을 잘 해주고 있다.

비참해 겪은 만큼 성령을 받으면 사랑의 농도가 하늘 땅만큼 커지는 것이다.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만 보여야 한다

구속하신 주는 간 곳이 없고, 내 자랑과 내 고난에 치여서 풍부와 비천함이 늘 나에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은혜가 없게 되는 것이다.

유다는 자살하고 베드로는 저주를 했었기에 비참하게 낮아져서 더욱 처절하게 전한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목장에서도 개인이 아닌 예수님이 주목을 받아야 한다.

언제나 구속하신 주만 바라보아야지 그러지 않으면 나만 바라보라 해서 그 목장이 은혜가 없게 된다.

내자신의 고난에 그만 주목하고 오직 고난도 자랑도 주님께 주목하면
은혜가 끼치는 것이다

주님만 주목하면 이 말도 저 말도 은혜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성령의 권능이다

 

(적용)

-회개해서 받은 복은 무엇인가?

-재림 예수님을 주시는 복 중에 무슨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성령의 권능이다.

 

<Epilogue>

성령의 권능은 사람을 주목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주목하고, 내 고난과 자랑할 것이 있어도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면 복을 주신다고 한다.


내게 성령이 없으면 내 인생이 구원으로 연결되는 단 한번의 기회임을 알지 못한다

아브라함에게 씨로 말미암아 만물이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씨는 단수 예수님이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전했는데, 예수가 이 땅에 세우신 위대한 마지막 선지자라는 것이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를 예언했지만, 예수님은 성취시켰다

내 삶을 재림 예수님을 보게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복의 근원이 되고 아브라함의 씨.. 예수 씨가 우리가 되야 한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0. 7. 15:56

[2032년 올림픽포함 IOC 향후 동 하계올림픽개최지선별위원회(Future Host Commissions)구성발표 및 역할스케치]

 

 

2019년도 가을 IOC집행위원회가 신축 IOC본부 건물인 Olympic House에서 102~3일 양일 간 열렸습니다.

 

 (2019 10월 현재 IOC집행위원 15/Olympic House/출처: IOC website)

 

 

 

가장 핵심 안건으로 간주되는 향후 올림픽개최지 결정에 따른 IOC개최지 선별위원회구성문제가 논의되고 그 명단까지 확정되어 발표되었습니다.

 

따라서 2024년 동계청소년올림픽과 2030년 동계올림픽 및 2032년 하계올림픽개최지 선정에 따른 제반 절차와 과정을 아우르게 될 향후 올림픽개최지 선별위원회(Future Host Commissions)위원들의 면모 또한 중요한 주목거리로 부상하였습니다

 

우선 동계올림픽개최지 선별위원회 위원장으로는 2026년 동계올림픽평가위원회(Evaluation Commission)위원장으로 활동한 루마니아 ioc위원인 Octavian Morariu가 임명되었습니다.

 

 

 

Octavian Morariu will chair the Winter Commission ©Getty Images(출처: insidethegames)

 

 

 

하계올림픽 개최지선별위원회 위원장으로는 노르웨이 여성 ioc위원인 Kristin Kloster Aasen(58)가 임명되어 2032년 하계올림픽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Kristin Kloster Aasen, who was elected as an IOC member in 2017, will chair the Summer Commission ©IOC(2017 IOC총회에서 신임 IOC위원으로 선출될 당시/출처: IOC website)

 

 

두 개의 위원회는 동계위원회(위원장: 남성) 8, 하계위원회가 10(위원장: 여성)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양성비율 균형을 염두에 두어 동계위원회가 남녀 각각 4명씩 8, 하계위원회 역시 남녀 각각 5명씩 10명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IOC website 및 Gamesbids.com)

 

 

Thomas Bach IOC위원장은 향후 올림픽개최지선별위원회위원장 2명 지명과 함께 당초 외신에 회자되었던 2032년올림픽개최지조기선정시기가 2020년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Tokyo2020 개최 IOC총회에서 2032년 올림픽개최지 선정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IOC가 새롭게 출범시킨 향후 올림픽개최지 선별위원회(Future Host Commissions)는 한마디로 올림픽개최도시들 및 국가들에 대한 선별작업을 조정 통제하는 권한을 부여 받은 막강한 위원회로 발족된(agreed to create a potentially powerful Future Host Commissions to control the selection of cities and countries to stage the Games) 셈입니다

 

Thomas Bach IOC위원장은 동 위원회가 활동한 두 개의 스피드과정(two-speed process)에 대해 공개하였습니다.

 

따라서 동계올림픽개최지선별위원회는 2024년 동계청소년올림픽 및 2030년동계올림픽개최지 선별목적 달성을 위해 즉각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Bach IOC위원장은 하계올림픽개최지선별위원회는 동계위원회보다 개최의사를 이미 표명한 도시들과의 대화개재에 약간 여유 있는 행보를 보이게 될 것(more time to enter dialogue with cities)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동위원회의 역할은 올림픽개최지 선별과 관련 가능성 있는 개최지들과 관련하여 그들로 하여금 올림픽개최계획을 발전시키고 기회를 살리도록 반응함과 동시에 IOC집행위원회에 자문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능한 개최후보도시들로 하여금 중장기 개발계획에 걸 맞는 지속 가능한 제안과 대중지지와 잠재적 공공기관대상 컨설팅 및 결과에 대한 모니터링 등에 대한 자문(advice for hosts on sustainable proposals that fit long-term development plans, monitoring of public support and potential public consultations and outcomes)을 비롯하여 지역사회공동체와 청소년들을 위한 유산(legacy)성취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대회의 비전을 구체화 하도록 격려해 주는 것도 임무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 위원회는 향후 잠재적 개최지방문이 유익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하게 될 것(The Commissions will decide whether a potential visit to a host would be beneficial)이라고 합니다.

 

동 위원회에 적용될 행동강령관련 윤리규정 또한 상세한 내용을 구체화 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발표될 것(Rules of conduct will be put in place for the Commissions, with the IOC saying these will be published in the coming days with the full terms of reference)이라고 합니다.

 

*References:

-IOC website

-insidethegames

-Gamesbids.com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0. 4. 11:10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올림픽대회정치개입 역대사례 총망라 (22)]

 

 

<역대올림픽 정치개입 역대사례 총망라>

 

 

1916년 올림픽: 베를린이 개최지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취소

● 1932 LA올림픽: 만주 국의 참가신청을 IOC가 거부

● 1936년 베를린올림픽: 나치독일의 유태인 선수 및 관중의 경기장출입금지조치/아일랜드 올림픽 참가 보이콧

● 1940년 및 1944년 올림픽: 2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중단

● 1948년 런던올림픽: 아랍권의 보이콧위협으로 이스라엘을 올림픽에서 추방

● 1952년 헬싱키올림픽: 중국(중공) 초청에 항의하여 대만의 대회참가보이콧, 소련 40년만에 올림픽에 다시 참가

● 1956년 멜버른올림픽: 소련의 헝가리침공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 등의 대회불참/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운하점령으로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등의 대회 보이콧/중화민국(대만) 국기(청천백일기)게양에 항의하여 중공(중국)퇴장/동서독 단일팀 참가

● 1960년 로마올림픽: 대만의 IOC축출을 주장하며 중공(중국) IOC 탈퇴

● 1964년 도쿄올림픽: IOC가 남아공의 대회참가를 거부함/북한 및 인도네시아 개회식에서 선수단 철수

●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남아공 IOC에서 축출

● 1972년 뮌헨올림픽: 팔레스타인의검은 9월단이 올림픽선수촌을 습격 하여 이스라엘 선수 11명 피살, 대회 30여 시간 잠정 중단/IOC에서 로디지아 축출(1980년 로디지아는 짐바브웨로 개칭하여 IOC복귀)

●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뉴질랜드 럭비 팀의 남아공 원정에 항의하여 아프리카 26개국 대회 보이콧

●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격분하여 미국 등 서방진영 67개 국과 일부 공산국가 대회 보이콧

● 1984 LA올림픽: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복수혈전으로 소련 등 동구권 14개국 보이콧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은 정치적 보이콧이 배제된 온전한 올림픽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서진영이 분단국 수도인 대한민국 서울에서 평화와 화합의 지구촌 인류축제를 통해 올림픽에서 정치개입의 고리를 끊는 분수령적인 대회로 자리매김하였다

 

 

동시에 올림픽의 앞날에 서광을 비추어준 기념비적인 대회로 기록되게 되었다

 

북한은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무산으로 보이콧했으며, 에티오피아와 쿠바가 이에 동조한 바 있으나 상대적으로 미미한 숫자의 불참으로 ‘The Best Games to date’를 확고히 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이후 올림픽대회에 정치적 이해 관계로 인한 보이콧이라는 망령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스포츠에 대한 정치개입사례는 최근 올림픽유치경쟁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림픽유치를 위해 유치후보도시들은 해당국 대통령들을 유치 단 대표일원으로 포진하여 정치적 공세를 전개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정치개입을 이용한 올림픽대회 자국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외교는 정치와는 별개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치와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스포츠에도 정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외교 또한 상존한다. 우리는 이를 스포츠외교라고 한다.

 

따라서 스포츠외교는 각국 이 세계스포츠 계에서 실질적 위상강화와 비교우위를 점하고 스포츠외교를 통 한 국익극대화를 도모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고도의 전술·전략이자 가장 효과적인 추진동력이기도 하다.

 

추진동력이 제 기능을 다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서는 추진체 핵심 부분이 중추적 위치에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스포츠외교력과 위상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세계올림픽운동을 관장하고 통할하고 있는 IOC의 내각 격인 집행위원회 (15)는 최고의 위상과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막강한세계스포츠의 입법, 사법, 행정총괄집행부이다.

 

이러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지닌 IOC집행위원회에 한국인은 벌써 십 수 년째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앞으로도 여기에 들어가기에는 요원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스포츠 UN격인 국가올림픽 위원회총연합회(ANOC)에도 한국인 집행위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또한 올림픽 대회 경기를 총괄하는 하계올림픽종목 국제경기연맹연합회(ASOIF)에도, 동계올림픽종목 국제경기연맹연합회(AIOWF)에도, 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격인 GAISF에도 한국인 집행위원은 한 명도 없다.

 

그밖에 스포츠외교력의 또 다른 가늠자격인 스포츠 관련 국제기구본부도 대한민국 영토 내에 세계태권도(WT) 이외에는 전무하다.

 

현재 다양한 국제스포츠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스포츠외교관(IOC, OCA IFs )들은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 개인 차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폭적이고 실질적이면서 다양한 지원과 격려가 반드시 수반 되어야겠다.

 

또한 그 분들이 어렵게 닦아놓은 스포츠외교의 기반과 위치를 계승·발전 시켜 나아갈 차세대 스포츠외교관 후계자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게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

 

선배 스포츠외교관들과 동반 스포츠외교활동을 통해 인맥 및 외교역량을 넓혀줌으로써 대한민국 스포츠외교 의 미래를 대비 내지 준비해야 한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함께 펼쳐 나아갈 수 있는 '사수-조수'시스템으로 이끌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스포츠외교의 위상과 지속발전방안이 바로 정립되고 그 힘이 유지되면서 제대로 발휘되어야 대한민국의 국제스포츠경쟁력이 세계 속에서 발전적 우위를 차지하면서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0. 3. 18:39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올림픽대회에 정치력이 개입한 사례(21)]

 

 

<올림픽대회에 정치력이 개입한 사례>

 

‘평화 시 인류 최대제전으로 일컬어지고 있는지구촌 최대 수익창출의 보고(寶庫)이자 초대형 국가 백년대계 프로젝트로 각광 받아 왔다

 

국가 간의 첨예한총성 없는 전쟁각축대상목표물 제1호이기도 한올림픽대회가 지상 최고의 인기몰이와 더불어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써 흥행행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고공행진을 해 온지도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최근 30여년간 지속되어 온 것이며, 각광을 받기 전인 50여 년 동안에는 그야말로 정치와 인종차별, 분단국 문제, 동서 간의 냉전, 세력다툼 등으로 인한 정치적 분쟁이 올림픽대회 때마다 불거진 국제적 이슈들로 점철되기도 하였다.

 

1968년 제19회 멕시코시티올림픽에서는 아프리카국가들이 남아공과 로디지아(현짐바브웨)의 인종분리정책에 항의하여 대회참가를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IOC가 문제의 두 국가의 대회참가를 거부하였다.

 

이로써 남아공은 1970년 제70차 암스테르담 IOC총회에서 올림픽역사상 처음으로 축출된 NOC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남아공 NOC는 이후 21년만인 1991년 제97차 버밍엄 IOC 총회에서 재가입이 승인되어 다시 올림픽가족의 일원으로 복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또다시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이 문제가 되어 아프리카 26개국이 대회를 보이콧하였다.

 

아프리카국가들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앞서 뉴질랜드 럭비팀의 남아공 럭비 팀과의 원정경기계획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대회불참을 강행하였다.

 

1972년 제20회 뮌헨올림픽은나치올림픽으로 불린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처럼 유태인들이 시련을 당한 대회로 기록되었다.

 

 

 

 

 

팔레스타인 테러집단인검은 9월단은 대회 중반인 9 5일 올림픽선수촌에 난입하여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자동소총을 난사해 11명의 선수가 무참히 희생되었다.

 

올림픽은 30여 시간 중단되었다가 ‘3자위원회(Tripartite Commission: IOC, 국제경기연맹 및 국가올림픽위원회 대표들로 구성)’ 회의 결과대회는 반드시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결론을 도출하여 가까스로 남은 경기일정을 모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사건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간의 적대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만든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보복과 복수혈전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각종 테러사태를 촉발하였다.

 

따라서 국제스포츠경기 때마다 참가 선수단 신변안전보호라는 거추장스러운 책임을 대회개최국이 떠맡게 되었다.

 

인종차별문제와 함께 올림픽을 고통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분단국 문제였다.

 

1956년 제16회 멜버른 올림픽에 역사상 최초로 단일팀구성에 성공한 동독과 서독은 정치적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독일국가통일을 스포츠를 통해 먼저 성사시킨 셈이다.

 

그러나 동서독은 정치적으로 분단상태가 장기화 됨에 따라 쌍방간 상호 별개 국가로 체제가 굳어져 결국 1968년 제19회 멕시코시티올림픽부터 다시 따로 팀을 구 성하여 대회에 참가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동서독이 19891개의 독일로 통일되면서 동서독 선수단은 1964년 이래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다시금 하나의 독일국가 깃발 아래에 하나의 국가대표선수단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

 

대만을 IOC에서 축출하라는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1958 IOC를 탈퇴한 중국(당시는 중공)은 대만이 참가하는 국제경기에는 출전치 않겠다며 20여년 간 국제스포츠 계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다가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을 통하여 다시 국제스포츠무대에 등장하였다.

 

원래 1910년 창설된 중국 NOC 1979년 제81차 몬테비데오 IOC총회에서 IOC회원국으로 새롭게 승인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중화민국이란 국호와 청천 백일기를 국기로 등록하여 1960년부터 IOC회원국으로 올림픽운동에 참여하여 왔던 대만은 IOC의 중재협상 하에중화대북이란 호칭과 청색 및 홍색 매화 꽃 문양의 이중테두리 안에 청천백일기를 떼어낸 태양문양과 오륜을 합성한 새로운 NOC로고를 사용하는울며 겨자 먹기식 굴욕적 조건부 합의문에 동의함으로써 ‘2개의 중국이 올림픽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중국에 반환되기 전 영국의 조차 지였던 홍콩은 1951년 제46차 비엔나 IOC총회에서 NOC로서 IOC회원국으로 승인 받았으며, 중국에 반환된 이후인 지금도 별도의 NOC로서 올림픽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포르투갈로부터 중국에 반환된 마카오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NOC로서 승인 받아 아시안게임 등에는 선수단을 파견하는 등 아시아대륙 NOC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IOC는 아직까지 IOC회원국 NOC로서 승인은 유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IOC에 끊임없이 대만축출을 요구하자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때 캐나다정부는 올림픽헌장 규정을 위배하면서까지 대만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해 국제적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지금도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치 아니하여 간혹 국제대회 개최국 조직위원회가 대만을중화민국으로 표기하거나 청천백일기의 국기를 사용할 경우 또는 한 개의 국가로 인정하는 신분증발급(대만 교육부장관 등에 대한 장관예우성 신분증: ‘G’카드) 사례가 있으면 즉각적인 항의와 강력한 시정조치요구 등 민감하게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1953 NOC 창설 및 1957 IOC회원국 NOC 승인) 1964년 제18회 도쿄올림픽 때 호칭문제(한국은 KOREA, 북한은 NORTH KOREA)를 이유로 144명의 선수단을 철수시킨 바 있다.

 

“19682월 제67차 그레노블 IOC총회는 북한의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호칭 사용문제를 정식의제로 상정했으나, ‘남북통일 전까지 북한의 호칭은 올림픽대회에 관한 한 North Korea로 한다.’라는 브런디지 IOC위원장의 제의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끈질기게 호칭문제를 물고 늘어져 결국 1968 10월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제68 IOC총회에 서 그들의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 (KOC 50년사 중에서)

 

1952년 제15회 헬싱키올림픽부터 참가한 소련(현 러시아)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 스포츠를 통한 국력우위를 과시하려 했으나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격분한 서방진영(62개 국)의 대대적인 보이콧운동전개로 말미암아 그들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강대국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희생되었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 등 동구권국가들(14개국: 루마니아는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 중 불참운동에 동조하지 않고 유일하게 참가) 1984 LA올림픽을 보이콧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LA올림픽 불참국가 숫자는 소련의 보이콧에 동조한 14개국과 다른 이유로 불참한 리비아, 이라크 등 모두 20개국이었는데, 소련은 미국내 반소운동이 격렬하다는 이유로 불참을 선언하였고 대신우정대회(Friendship Games)’를 개최한 바 있다.

 

반면 중국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불참했지만 1984 LA올림픽에는 사상최대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함으로써 스포츠강대국대열에 올라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9. 10. 2. 13:18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스포츠외교관아카데미스포츠외교전문 대학원설립건의(RIOU벤치마킹)(20)]

 

 

<스포츠외교관아카데미 및 스포츠외교전문대학원 설립건의>

 

10년 전인 2009년 당시 미국의 차기 행정부 실세들이 공무원의 자질향상을 위한공무원아카데미설립을 추진한 바 있었다.

 

미국 뉴욕 타임즈(NYT)2009 1 7저급한 관료를 훌륭한 공무원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계획이라며 이는공무원양성을 위한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설립과 같다.”고 보도했었다.

 

공무원아카데미 설립은 그 당시 Obama 행정부의 국무장관 지명자인 Clinton, H. 상원의원이 주도하였다.

 

‘Biden, J.’ 부통령 당선자와 ‘Emanuel, R.’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도 법안에 찬성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4년제 학부과정으로 운영될 공무원아카데미는졸업 후 5년간 정부에서 일 할 것을 조건으로 학생 전원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한 바 있었다

 

정원은 한 학년에 1,200명 정도이며, 매년 2억 달러( 2,58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 진 바 있었다.

 

공무원아카데미 설립은 2005년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남부를 덮쳤을 때 정부의 미숙한 대응으로 인해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뒤부터 추진됐다.

 

법안의 공동발의자인 공화당의 Specter, A. 상원의원은미국사회에서 가장 뛰어나고 똑똑한 인재들이 정부에서 일하지 않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NYT는 상원의원 23명과 하원의원 123명이 이 법안을 후원하고 있으며, 당시Obama, B. 대통령 당선자는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이 확인된 바 있었다.

 

이상은 미국에서 Obama 행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그 당시 한 일간지 기사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외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나고 국제화 마인드로 무장된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렇게 능력 있고 스포츠를 애호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스포츠외교관아카데미상설기구 및 스포츠외교 전문대학원등을 설립·운영한다면 우리나라도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유능한 스포츠외교관 자원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4대 국제스포츠 메가 이벤트인 (1)하계올림픽/서울1988, (2)FIFA2002월드컵, (3)IAAF세계육상선수권대회/대구2011 (4)동계올림픽/평창2018을 세계 최초로 단 30년 만에 모두 성공적으로 유치하여 개최함으로써 그랜드슬램(Grand Slam)달성 TOP5국가 대열에 당당히 입성한 바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울1988올림픽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계 3대 국제스포츠 이벤트 개최에 따른 스포츠외교관의 해당 국제기구 자리매김은 터무니 없이 미미하거나 전무하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비롯하여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국제축구연맹(FIFA), 7개 국제동계종목연맹(IFs)에 이에 상응하는 스포츠외교관 진출이 미약하였는데 그 이유로는 대회개최 조직에만 심취한 점도 해당된다

 

하지만 대회유치와 준비과정에서 사전에 해당국제경기연맹과의 돈독한 관계정립을 통한 대한민국 스포츠외교관의 임원선출 등에 해당국내경기단체와 대회조직위원회 간에 유기적인 협업과 관심도의 결여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이와 관련 특화된 국내 스포츠외교관양성전문기구 및 스포츠외교전문대학원의 론칭(launching) 및 활성화를 통한 다양한 기회제공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국제기구들과의 긴밀한 연계를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중장기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RIOU에 대하여>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개발원 체육인재육성단 해외학위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러시아의 소치에 있는 Russian International Olympic University (RIOU)에서 운영 중인 Master of Sport Administration (MSA) 과정에 참여한 바 있는 참가자가 소개한 내용을 발췌 및 요약하였다:

 

 

<Russian International Olympic University/RIOU>

 

 

 

 

 

 

 

RIOU IOC Sochi 2014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그리고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ROC)의 협약에 의해 2009년에 설립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Olympic’이란 브랜드를 사용하는 대학으로 러시아 정부와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Putin 러시아대통령은 RIOU The Chairman of the RIOU Board of Trustees 직을 맡고 있으며 당시 러시아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이자 IOC위원이었던 Alexander Zhukov The Chairman of the RIOU Supervisory Board 직을 담당하였었다.

 

 

RIOU 2014 1기생을 시작으로 2016 6 3기생이 졸업을 하였으며 2016 9 4기생 배출 등 동계올림픽유산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장학금 제도>

 

 

 

 

RIOU의 장학금 제도는 러시아의 유명한 사업가인Vladimir Potanin이 세운Vladimir Potanin Foundation에서 지원이 되고 있으며

MSA에 입학허가서를 받은 학생들에 한하여 개별적으로 지원이 가능하며 총 2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의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고 한다

장학금은 학비, 숙박비, 그리고 생활비를 포함하고 있다.

 

 

 

 

<대학시설>

 

RIOU는 일반대학교와는 다른 구조의 캠퍼스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한 개의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강의시설은 최고의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부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Study RoomLecture Room이 있으며, 도서관은 스포츠전공서적들과 올림픽에 관한 서적들을 보유하고 있다.

 

 

 

 

 

 

<기숙사>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기숙사는 대학건물 뒤편에 위치한 Brevis Service Apartment이며 2 1실이고 방과 거실 겸 주방, 화장실,

드레스 룸으로 구분되어있다.

 

호텔형 서비스 아파트이기 때문에 이틀에 한번 청소를 해주므로 청결에 대한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또한 해변과 맞닿아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바닷가에 나가서 기분전환도 할 수 있다.

 

 

 

 

 

 

 

 

<교육과정>

 

 

 

RIOU MSA 과정은 총 10개월의 기간 동안 이론 및 현장수업 그리고 최종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교육과정 중 정규수업은 스포츠행정 이론과 실습에 중점을 두고 세미나와 발표수업을 통해 서로의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과목에 따라 3~6시간의 강의를 주 5일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이수해야 되는 수업시간 수와 학점은 총 1920시간, 그리고 총 60학점을 필수적으로 취득해야 한다.

 

현장학습 프로그램, 논문작성, 그리고 선택과목을 포함하여 8개의 모듈로 이루어져있으며, 정규과목은 모듈 별로 4~5 unit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과정은 영어로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교수들이 방문하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교수진은 영국Loughborough 대학 James Skinner 교수, Brunel University 대학Vassil Girginov 교수,

호주the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대학Tracy Taylor 교수, 미국Ohio University 대학Norm OReilly교수 등 약 20여명의 교수들이 강의를 위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현장학습 (Internship)>

 

 

RIOU의 현장학습 프로그램은 총 3회에 걸쳐서 Internship의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학생들에게 이론수업뿐만 아니라 스포츠행정가로서 필요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국제 스포츠 이벤트 조직위원회와 협력하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4년에는 소치 올림픽이 개최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조직위원회에서

Internship Program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당시 기본적으로 International Wheelchair & Amputee Sports 대회와

the Formula 1 Russian Grand Prix Racing에 참가 하였고

마지막 World Wheel Chair Curling Championship 에도 참가하도록 기회가

주어졌다.

 

인턴 기간 중 도핑컨트롤, 통역, 팀 지원, 대회운영 등, 로테이션으로 구성되어

모든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 일환으로 참가자 역시 Internship 당시 한국 대표팀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계기를 통해 참가자는 선수단과의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 하였다고 한다.

 

특히 휠체어 컬링 챔피언십과 세계 휠체어 컬링 대회에서는

대회 운영 전반에 대한 부분과 한국대표팀 인터뷰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현장학습 프로그램이었다고 공유한 바 있다

 

 

러시아 국제 올림픽 대학교(RIOU)에서는 Sochi2014동계올림픽 이후 러시아 체육인을 대상으로 석사 학위뿐만 다양한 단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다고 한다.

 

 

또한 2018 러시아 FIFA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면서 대학에서는 축구 분야의 국제 축구행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러시아 국제 올림픽 대학교(RIOUO)는 러시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독립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 및 운영하므로 올림픽관련 프로그램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분야로 범위를 넓혀가면서 그 입지를 굳혀가고 있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대학이라는 참가자의 평가가 있었다 (출처: http://www.sportnest.kr/2574 [스포츠둥지])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9. 10. 1. 11:53

[우리들교회 2019 929일 주일말씀요약(사도행전 3:1~10/ 성령의 기적)]

 



<Prologue>


성령 충만하여 방언이 터지니 성령의 설교가 이어지고 유대인이 반응해서 성령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니 오늘 기적이 나타난다.

성령공동체에서는 방언의 역사와 신유의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들교회가 말씀만 보고 있어도 암도 회복되고 가정도 회복되며 살아나는 역사, 살리는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목장에서 하는 일은 교제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살려야 하고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살아나니까 말씀대로 살고 싶어 지는 것이다.

육신의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은 내 마음이 변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변하는 기적을 주면서 말씀 공부를 시켜가는 것이 성령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병만 고치면 뭐 하겠나? 잠시 후에 죽을 인생 아닌가?

변화된 이후에 주일, 수요, 목장 오면서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수요 오전예배에 이 본당을 꽉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기적의 역사는 늘 일어난다.

오늘은 문자 그대로 못 걷는 자가 걷게 되었다.

그래서 성령의 기적에 대해 좀 더 살펴 보겠다.

 

<말씀 요약>


*
성령의 기적은,


1.
여전한 방식의 기도다. (1)


날마다 구원 받은 사람을 더하게 하시고, 온 백상에게 칭송을 받을 때 베드로가 성전에 기도하러 갔다.

이렇게 칭찬 받을 때와 구원 받은 사람을 더하게 하실 때가 위기이고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

사도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공동체에는 기도로 연결이 되고 있다.

베드로가 그렇게도 피곤해서 졸더니 이제 기도의 의미를 깨달았다.

9시는 오후 3시이다.

유대인의 관습으로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데 오전 6시 저녁 6시에는 기도를 해도 오후 3시까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은 힘든 시간이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니 충만해져서 설렘이 가득해지니 기도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기도라는 말이 32번이나 나오는데 그래서 기도행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진실한 기도를 하니까 기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2장에서 방언이 나오고 방언이 기사와 베드로의 설교가 이어지고 초대교회에 3천명이 더해져 세례 받는 부흥으로 이어졌다면 3장도 이 기적과 베드로의 설교와 부흥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패턴으로 가고 있다.

기적은 중요하다기 보다 주목시켜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자 하는 도구게 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삶과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주요 세 제자들 중의 두 사람이었다.

부름 받기 전에도 직업이 같은 동업자였다.

그리고 성전에 올라갈 새는 한 번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올라갔다는 헬라어에서 미완료 과거라고 한다

미완료 과거는 계속되었다는 뜻이고 부정과거는 단회적(單會的)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초대교인들은 아마도 유대교 예배와 자신들의 예배 등 두 번의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유대인의 관습을 좇아서 기도시간을 지켰다는 것이 적용이기도 했을 것이다.

9
시 기도시간은 후에 바울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유대교와 기독교는 지금까지 안 통하고 있다.

기독교 중에서도 천주교와 개신교. 개신교 중에서도 수없이 교파가 갈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날도 여전하게 올라가다가 기적을 일으키게 하셨다.

저도 남편이 하루아침에 간 그날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기도하게 하시니 그 자체가 기적이 되게 하셨다.

담대하게 풀어가게 하셨다.


[
적용]

-
여러분의 기도시간은 어떠신가? 무시로 하나? 정해놓고 하나?

-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내 목소리 톤이 내 감정에 좌우되지 않도록 기도하나?


(2-3
)

나면서 목 걷게 된’ (
crippled from birth)이란 것은 일생 걸어본 적이 없다는 표현인데 40년간 굳어진 그의 뼈가 도저히 펴질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메고 오니 운반 당하는 인생이다.

성전 문에 두고 구걸하는 일이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행해지던 일이었다. 한마디로 구걸이 직업이었다.

미문(gate called Beautiful) -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으로 헤롯이 다시 성전을 지으며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문을 매우 크고 아름답게 지었다. 그때부터 미문이라 했다.

성소도 보면 여인의 뜰은 가장 바깥 쪽에 있다.

영적으로 생각해보면 거룩한 성전 앞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급급한 체로 얼마간 물질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성전은 구걸을 하려니 성전을 등 뒤로 하고 앉았을 것이다.

성전을 뒤로 둔 채 세상을 향해서 사람들을 쳐다보며 시선을 다 뺏기고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 앉아있다.

겉으로는 교회에 오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끊임없이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구걸하는 모습이다.

쨍그랑 소리를 들으며 몇 푼 쥐어주어서 인생이 구걸의 인생으로 끝나게 하는 그런 삶이다.

나는 못해!’ 하면서 손발이 다 묶여져 있다.

곳곳에서 도움이 오면 좋아하고 도움이 안 오면 상처 받고 한다.

상처 받는 환경이 다 갖추어져 있다. 니들이 그럴 수가 있냐고 하면서

교회에는 몸만 오니 영적으로는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고 화려한 교회에 기생하면서 사탄에게 구걸하는 사람이다.

날마다로 표현되면서 구걸이 습관화 되어서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 마비된 상태이다.

날마다 교회에 오지만 장사하려 오든지 교제하려 오든지 하는 것이다

느그들이 내 상처를 알아?’가 주제가이다.

그때마다 짤랑짤랑 돈을 던져주는 것이다.

세상에 요구하는 것도 구걸이고 세상을 끊지 못하는 것도 구걸이다.

모든 중독도 세상에 대해 구걸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영적 앉은뱅이의 모습이다.

부부니깐, 부모니깐, 자식이니깐 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주어야 한다며 달라고 하는 모든 것이 구걸이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하면 그 분 또한 심각한 영적 앉은뱅이이다. 이런 것을 THINK를 해봐야 한다. 나에게 주는 음성이 무엇일까를...

목자 한 분이 청소를 하시는데 가장 힘든 것이 '최씨'라고 불리는 것이다. 잘 참다가 화가 나서 속으로 병신같은 xx라 했다. 목장에서 최씨라고

목장과 목사님의 죽어지내라는 처방에 힘이 되었다고 한다.

세상을 완전히 끊어내기가 힘들지만 목장이 있어서 이런 처방을 듣는 것이 기적이다.


[
적용]

-
내 자신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
교회는 가는데 교회는 뒤로하고 날마다 세상에 구걸하는 것은 무엇인지?

-
내가 교회에 와준다고 으스대지는 않나?



2.
급한 일보다 중요한 구원의 일이다.


(4-5
)

이런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가다가 봤다. 주목했다.

베드로와 요한의 깊은 애정과 관심은 사람들의 무관심에 젖어온 이 앉은뱅이에게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관심이 먼저이다.

앉은뱅이의 노예근성은 늘 육적으로 무엇을 얻을까?’하며 돈만 쳐다보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도 비트코인이나 주식시세만 쳐다 본다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구걸만 하는데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고 그러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 주일 성수하면서 돈이 잘 벌릴까?’ 하는 생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다니면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나.

40년을 다녀도 성경은 하나도 모르고 무엇을 얻을까?’만 생각하는 것이 앉은뱅이와 같은 우리의 모습이다.

얻을까?’만 생각하니 설교가 안 들린다.

교회에 와도 유치부만 왔다가 설교를 안 듣고 가는 부모도 있다.

미문 앞에 앉아서 계속 성전 오고 가는 사람만 보고 있다. 예배에는 통 관심이 없다

이타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40년이라도 교회에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베드로를 만났다.

자기가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그 모습 그대로 베드로가 와서 만나주었다.

묘한 성령의 기운이 있는 곳이 교회다

우리도 식구들을 오기만 하라고 하세요.


[
적용]

-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인가?  타인인가?

 
오늘 베드로를 보면 9시 기도시간에 가다가 도와야 할 일이 생겼다.

 

(적용) 기도하고 돕는 일 중에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까?


어떤 날은 기도를 해야 하고 어떤 날은 도와야 하고 때마다 다르다.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이 있다.

적용이 참 어렵다. 자기의 믿음의 분량대로 할 수 밖에 없다.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기도시간에 임박해서 가는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보고 멈추어 섰다. 성령님이 역사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네들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아니고 기도는 다른 사람들도 하는 것이고, 유대인의 강박관념은 9시 기도시간은 지켜야만 한다. 복을 받아야 하니까.

강박관념은 기복에서 나오는 것이다

율법이 이 세상 복으로 오는 것에 강박이 있어서 율법을 안 지키는 예수님을 정죄했다.

(
적용)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나에게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영혼 구원 때문에 걸어가는 인생이기에 영혼 구원이 가장 중요하며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때는 도와주는 것을 먼저 선택했다.

베드로와 요한의 태도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섬길까? 내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일까? 인데 섬기기로 작정하면 쉽다.

시간과 공간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
적용]

-
여러분은 기도하겠나? 구걸하는 자를 돕겠나?

-
구원의 시각으로 급한 일을 하겠나? 중요한 일을 하겠나?



3.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6-7
)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적선을 베풀 생각은 안하고 불구의 몸인 그를 향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한다.

무엇을 하고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베드로는 은 금이 없어도 끊임없이 줄 것만 있는 것(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have I give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을 보여준다.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실제로 졸면서 오다 보니 성령이 임해서 어느 날 말씀이 꽂힌다.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일어났다.

유대교의 은 금이라는 표현처럼 사치스러운 미문처럼 껍데기만 남아서 능력을 상실하여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태임을 유대교는 보여준다.

은 금이 없다고 하면서 베드로가 자기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이 형제 지체에게 은금을 준 것이 아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선포하자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힘을 얻었다.

나사렛이라고 지명을 붙인 것은 나사렛이 사람들에게 천시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 곳이 영광된 이름이 되었다.

그 예수님의 간증부터 나사렛 동네에서 살면서 목수의 아들로 간증이다.

갈릴리 출신 어부인 베드로도 자신의 간증까지 하게 하신다.

우리 인생이 모두 나사렛 출신이다. 예수님 앞에서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간증이 다 포함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죽음 가운데에서 살리시는 이름이다

걸으라고 말만하지 않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며 발과 발목이 힘을 얻도록 같이 있어주며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그에게 몇 푼을 돈을 주는 대신 그의 다리를 완전히 치유해서 걷게 하심으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영육간에 자립을 허락하셨다.

복음으로 힘을 얻도록 일어나도록 잡아주고 돈으로 며칠 연명하게 하는 것 대신 걷게

함으로 일어나서 자립하도록 하는 것이 자립신앙이다.

복음은 이런 위력을 갖는다.

어떤 비천한 환경에 처해 있어도일어나 걸으라!’ 고 하신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오해도 받아야 하고 기다려야 할 일이 있다.

모든 치료도 마찬가지이다.

나사렛 예수 이름을 주는 것이 40년 앉은뱅이를 살리는 방법이다.

40년 앉은뱅이로 살아야 이 사람은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40년 앉은뱅이의 대단한 고통에서 주어지는 고난이 약재료로 쓰인다

40
년이 길어 보여도 생각컨대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고 장차 이루어질 영광은 비교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냉정하게 생각되는 세월이지만 40년은 잠깐이다.

육적 앉은뱅이는 40년 만에 예수님을 만나지만 영적 앉은뱅이는 50년이 지나도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자녀의 자립심을 위해 기다려야 할 일이 많이 있다. 돈도 끊어야 하고 냉정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영적인 앉은뱅이는 정말 일어나기가 어렵다.

데려오다 보면 주님이 먼저 찾아주시고 베드로가 만나준다.

믿음이 있어서기 보다 어느 날 나사렛 예수의 이름과 오른 손 잡아 일으켜 주니 일어나는 날이 온다.

발과 발목이 힘을 얻으니 스프링처럼 뛰어서 걷게 되었다.

발과 발목 때문에 온몸이 병들 수가 있는 것이다.

그곳을 치료해야 하는데 40년간 어디를 치료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육적 소경보다 영적 소경이 무섭다.


[
적용]

-
여러분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시겠나? 은과 금의 힘으로 걸으시겠나?


4.
찬송의 기적이다.


(8-10
)

이 사람이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하나님을 찬송했다(praising God)는 것이다.

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찬송했다.

성령의 기적 중에 하나님 찬송이 가장 큰 기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큰 상급이기 때문이다.

참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까지 전인격적인 모든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직 이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그러니 낫는 것부터 감사하면 안 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가 일어난 것만 감사하면 하나님이 그 다음 진도를 안 빼신다.

하나님이 다 해주셔서 가정이 합쳐지고 문제가 해결이 되어도 교회에 안 나오면 말짱 도루묵이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제대로 된 감사가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보니 내가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주님을 만났구나하면서 앉은뱅이였던 것에 감사하고 날 성전 미문에 운반해준 사람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또한 믿게 되도록 도와준 사건과 사람들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찬송 안 되면 육적인 것에 머물러 불평을 한다.


낫는 것만 감사하면 근원적인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진정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에 대한 찬송과 모든 일상생활에 대한 감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드디어 성전에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갔다.

앉은뱅이가 하나님을 먼저 찬송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돈 받으면서 상처 받던 앉은뱅이가 걷고 뛰는 것보다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주동사이다

걷고 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부부가 서로 합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가 성전에 함께 들어가는 것, 즉 예배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성전에 부부가 함께 들어가 예배 보는 것이 기적이다

교회는 세상에 은 금을 공급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구제 동아리가 아니다

예배대신 구제가 중심이 되면 내 의가 하늘을 찌르게 된다

교회는 참된 예배(worship)를 드리는 예배와 생명공동체이다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 교회의 최종적 목적이다

힘들면 교회 오는 것이 설레고 편해지면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이 매너리즘이다

복음 선포가 와야 내 현재 이유를 알게 된다.

내 현재의 이유를 모르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다.

이 사람이 나면서 앉은뱅이라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못하는데 일어나서 걸으니 구걸을 못하게 되었다.

구걸이라는 직업이 없어졌다.

일어나서 감당해야 할 엄청난 훈련이 남아 있는 것이다.

좀 노력하다가 툭 떨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나 구걸할래'가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했어도 모든 것을 오픈하고 12번째 사도로 마티아/맛디아(Matthias)를 뽑으니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다.

여러분이 앉은뱅이라면 일어나기를 바라고, 베드로라면 앉은뱅이를 살리시기를 바란다.

의사도 힘들어하는 분들을 목자가 살려내고 있다.


<Epilogue>

성령의 기적은 여전한 방식의 기도이다.

급한 일보다 중요한 구원의 일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찬송의 기적이다.

하나님만 믿고 모든 것을 시작하고 하나님만 찬송하고 가면 앉은뱅이 살리는 능력이 생긴다

성령기적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목장처방은 성령님이 도와 주시는 가운데 내려지는 것이다

공동체기도를 통해 자기의 약재료를 내 놓으니까 금과 은이 없어도 얘기 나눔으로 기적이 창출되는 것이다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