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9. 10. 11. 12:22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올림픽보이콧종지부완결판 동구권국가들의 서울1988올림픽참가결정배경(23)]

 

 

<올림픽보이콧종지부완결판-동구권국가들의 서울1988올림픽참가결정배경>

 

당시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국가들의 서울올림픽참가결정은 1981 9 30일 바덴바덴 IOC총회 이후 한국정부의 줄기찬 대 동구권국가 올림픽문호개방정책과 KOC의 유연한 친선우호 스포츠외교의 결실로 평가 받고 있다.

 

대한민국정부는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대통령의 서명이 포함된 문서로서 IOC회원국 및 올림픽가족 모두에 대한 한국방문 보장을 천명하였다.

 

이와 같은 한국정부의 미수교국에 대한 유연한 외교정책은 1984 LA올림픽까지 별다른 장애 없이 대한민국 스포츠외교의 주종을 이루어왔으나, 같은 해 5월 소련이 LA올림픽 불참을 선언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줄기찬 외교와 IOC ANOC 등의 긍정적인 반응은 1985년 멕시코시티개최 ANOC총회(멕시코 선언문 채택) 1986 4월 서울에서 개최된 ANOC총회를 계기로 커다란 진전을 보여 동구권국가들 대부분이 서울올림픽 참가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ANOC서울총회와 더불어 IOC가 주관한 남북체육회담과 이 회담을 통한 북한 측의 무리한 요구내용 등이 동구권국가들의 서울올림픽참가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하였다.

 

서울 ANOC총회 이후 동구권국가의 서울올림픽참가에 대한 결정적 계기는 1985년 동 베를린 개최 IOC총회 후 동독의 호네커(Honecker) 당서기와 에발트(Ewald) 체육 장관 의 서울올림픽참가 공식시사로 나타났다.

 

특히 1987 5월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IOC총회에서 한국은 미수교국이 서울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낼 경우 자국항공기의 서울국제공항 이착륙 허용을 보장함으로써 미수교국 특히 공산권국가 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동독이 서울올림픽참가를 천명하고, 1985년부터 소련 등 동구권국가들이 서울에서 개최된 각종 국제스포츠대회에 참가함으로써 이들 미수교국들의 서울올림픽에 대한 긍정적 자세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1985년 동 베를린 개최 IOC총회 당시: 좌로부터 노태우 SLOOC1988조직위원장-사마란치 IOC위원장-박종규 IOC위원-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

 

 

이 같은 한국 측에 유리한 분위기조성은 1987년 소련,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공식 NOC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고 당시 루마니아의 Siperco IOC부위원장이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서울올림픽 참가발표는 없었지만 사실상 서울올림픽참가를 전세계에 확인시켜주었다.

 

동구권 NOC대표단은 서울방문에서 나라별로 관심을 나타내면서 구체적인 협의사항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와 상의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은 선수단수송문제와 관련 자국선박 및 항공기에 의한 직접수송을 제의했고 한국 측은 이를 수락하였다.

 

또 동독은 서울올림픽참가 시 공산국이고 미수교국인 동독의 정식 국호, 국기, 국가사용을 타진하여 이에 대한 보장을 받고 참가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독은 특히 잠실주경기장의 5, 10, 20, 30m 상공의 풍속을 묻고 미사리 조정경기장의 바람세기와 파고 등 예기치 못한 세부사항을 질의 하는 등 이때 이미 확고한 참가의사를 간접적으로 확인시켜주었다.

 

소련, 동독과는 달리 불가리아는 1992년 소피아 동계올림픽 유치노력과 관련, 서울올림픽 참가를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었고, 헝가리는 서울올림픽의 체조, 펜싱경기장의 전광 스코어보드 설치권을 따내면서 이미 서울올림픽 참가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하였다.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이미 공식대표단 및 책임자 차원에서 수 차례 걸친 서울방문으로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여주었다.

 

Marian Renke 폴란드 체육부장관은 ANOC사무총장 자격으로 여러 차례 서울 방문을 통해 서울올림픽에 대한 호감을 갖기 시작했고, 루마니아의 Siperco IOC부위원장 역시 한국이 올림픽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수 차례에 걸친 서울방문에서 확인했다.

 

1987 9월 소련 수쿠미에서 개최된 사회주의국가 체육장관회의에서는 수 차례 계속된 한국과의 접촉과 사전조사결과에 의거 서울올림픽참가를 내부방침으로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쿠미회의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했으나 1987 12월과 1988 1 17일 사이에 IOC의 서울올림픽참가초청장에 대하여 모두 공식참가통보하기로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회주의국가들의 참가결정은 동독과 헝가리가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 IOC통보 1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물밑경쟁을 했었다는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독은 1987 12 21일 국가체육위원회가 서울올림픽참가를 결정하고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통보하기로 했으나 이를 알아차린 헝가리가 우편대신 팩스로 IOC에 통보함으로써 동독보다 3시간 앞서 등록 접수했다는 에피소드가 회자된 바 있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