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19년 10월6일 주일말씀 요약(사도행전 3:
11~ 26/성령의 권능)]
<Prologue>
행복을 쫓으니 불행이 온다.
성령의 권능이 어떻게 임하는지 찾아오셔서 마음 판을 두드려 주소서.
성령의 기적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을 통해 5천명이 돌아오게 되는데 부인과 아이까지 합치면 1만~2만명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기적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도구다
기적은 한 사람이 경험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기적보다 예수님이 중요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무식하고 비천한 베드로가 성령 받고 이러한 권능의 설교를 했다면 성령 받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두 성령의 권능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령의 기적 이후 성령의 권능이 임한다. 성령의 권능을 살펴보겠다
<말씀 요약>
성령의 권능 첫 번째는,
1. 성령의 권능은 사람을 주목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목한다.
이 거지가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었다
'내 병이 완전히 나았을까? '‘떠나면 안돼!’ 하면서 바지가랑이를 붙들었다
예수를 죽인 그들이 오직 바라는 것이 기적이다.
그들은 기적에 열광하고 지혜까지 좋아했기에 솔로몬 행각에 저절로 모였다.
기적에 놀라서 따라왔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를 전할 기회를 얻었다.
성령의 기적을 베푸시는 이유는 오로지 예수를 전하도하기 위함이다
잘 되도 안 되도 속상해 할 필요가 없다. 그것 때문에 예수를 전해야 한다.
기도 응답 받고 예수님 전하지 않으면 도로 빼앗아 간다.
인생의 목적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성령의 기적은 예수로 돌아오게 한다.
이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이상히 여기느냐?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는 경건도 전능함도 없다
성령의 권능은 베드로는 감추게 하고 하나님만 높인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아..너희들 하나님의 택자 아니냐?
하나님의 백성이면 하나님이 하신 것 아니냐?.. 그런데 왜 우리를 보고 놀라느냐? 알다시피 나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후 낚시 하러 갔는데 그런 나를 왜 주목하냐고…
유대종교지도자들은 백성의 시선으로 오직 자기들에게 향하게 하고자 했다
기도하는 모습도 보이고 주목하게 하고자, 옷도 거룩하게 또 거룩하게 치장했지만
베드로는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자 했다
초대교회가 자기들을 알리고자 했다면 또 자기가 영광 받고자 한다면 이미 1계명을 어기게 되어 다른 나머지 10계명도 모두 다 어기니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내가 전도했다고 하면서 주목 받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생색은 결국 시간이 지나서 민 낯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를 주목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권능이다.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겠다.
유대인이 가장 존경하는 아브라함의, 이삭의 하나님,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했다
종의 형체를 가졌으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고 한다
내가 주목 받을 일을 했는데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예수님이 그렇다고 이렇게 성경을 봐야 말씀이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것이다
늘 말씀 들으면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서 적용이 되는 것이다
예수가 구약에서 종으로 표현된 “메시아”를 입증하는 약속의 성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의 종으로 오신다고 선지자가 예고 하였다
잘 살고 잘 죽고 높이시어 영화롭게 하셨다
어떻게 영화롭게 하셨나?
빌립보서 2장, 그는 근본 본체이신 하나님이시지만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베드로 설교도 종의 형체를 가지신 예수 이름에 무릎을 꿇게 된 이야기다.
# 이번 주 나눔에, 지방에서 60대, 담임목사 재직 중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사임 통보를 받았다. 갈 데가 생겨서, 서울에 올라와 우리들 교회에 등록했다. 아파트 청소, 말씀과 목장 나눔을 통해 구속사 사건으로 이해가 되니 온 가족이 기도하며 적응하고 있다. 평생 담임목사 하신 분이 청소를 하시니, 예수님 같은 것이다. 게다가 목사가 청소한다는 것은 어려운 적용이다.
#지난주 최씨 목자님 나눔을 보니, 노동 일이 가장 정신적으로 좋은 것이다. 부천에 가서 경비직 청소 두 가지 일인데 경비가 청소보다는 상위 직이었다. 한 계단 높은 게 높은 것이다. 경비는 주일을 못 지키기 때문에 청소를 하는데 약간의 갈등을 했지만, 목자도 해야 해서 청소를 시작했는데 천직인 것 같다. 우리들 간증한 게 용기가 되어 5개월 되었는데, 1000만원 벌었다. 하나님만 주목하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는 적용을 하니 건강해지고 돈도 벌었다.
(적용)
-나는 사람을 주목하나” 예수님을 주목하나?
-(다른 말로) 기적에 주목하나?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에 주목하나?
2.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14절-15절,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빌라도가 나름 꾀를 써서 죄목이 큰 살인자 ‘바라바’와 비교했는데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었다.
자기 이익에 반하면 예수도 적인 것이다.
자기 이익에 맞으면, 살인자도 내 편인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줘야 한다.
십자가 얘기를 하려면, 죽인 일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나도 앉은뱅이도 고치고 살아난 일이 예수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그를 성하게 하였다.
내 능력이 아니다.
내가 고치지 않은 일에 증언이다.
예수님 승천하셨다.
이름만 가지고도 일으키셨다. 즉 하나님이 고치신 것이다.
예수의 이름은 예루살렘을 뛰어넘는 성경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름은 인격과 하는 일을 다 나타낸다.
우리는 개인 구원사건에 증인이 되어서, 이 세상에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한 몫 챙길 기회가 오지 않았을까?
시몬은 돈 벌 기회를 봤다.
베드로와 초대교회는 예수 권능이라고, 예수가 죽어주심으로 무식한 나를 통해 성령이 일하신 것이라고 전한다.
앉은뱅이는 나아서 뭐 하는가? 예배를 드려야 한다.
산 자의 하나님은 영원토록 예배의 대상이시다.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 치유의 기적을 가져온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배의 대상이시다
우리의 인생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한 것인데, 지속적으로 전하려면 말로는 할 수 없다.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 세상은 모두 이기려고 하다가 이기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인의 종말은 언제일지 모른다. 내일 일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지속적으로 주목 받지 않고 ‘내가 한 것이 아니다’라는 걸 얘기하려면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 보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구별된 모습이며 좁은 길이다
큐티와 예배는 좁은 길이다.
몸이 익어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큐티함으로 다른 사람과 구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성령의 권능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점점 찔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 오는 게 십자가이다.
교회 가는 것이 택자의 좁은 길이다
이 현 세대에서 예배 드리는 것은 좁은 길을 가는 것인데 이 예배 드리는 것이, 큐티하는 것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예수를 십자가에 잔인하게 못박았는지를 아는 것이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다
고난이 와야 예배가 사모된다
열심히 몸에 익어도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인정해야 가능하다
몸에 익어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큐티함으로 다른 사람과 구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내가 예수님을 못 밖은 것을 인정하며 예배에 설렘이 있게 된다
나는 모범생이라 죄 보기가 어려웠다. 죄를 못 보니까 혹독한 용광로에 들어가게 하셨다.
윤리 도덕만 생각하니, 모범적 태도가 존재론 적인 가해자가 된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탕이 돌탕보다 다른 사람을 더 어렵게 한다
그래서 집탕이 무서운 것이 맞다
의와 교만으로 꽉 차있고 드러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예배의 설렘이 없는 것이다.
너무 앉아있으니 다른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이다.
사기그릇에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자라가 성령님이 넘겨주셨다.
사기 그릇을 넘어가니 저 우주가 보이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못 넘던 사기그릇을 성령의 권능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점점 빛이 보이니까 내 죄가 보이는 것이다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빛으로 환해지니까 내 죄가 보이는 것이다
내 죄를 보기에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주님의 온전함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주님이 너무 빛나기에 점점 보이는 것이다
천국에 가야 그곳에 다다르는 것이다
넘어져도 넘어져도 목표를 찾았다.
내 죄를 보니까 설렘이 생겼다.
몸이 기억한 것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신 것 같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을 느낀다.
주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에 증인 되어야 한다
교회 나와도 같은 성령이 아니면 안 통한다
같은 식구라 해도, 같은 성령이 아니면 유대인하고 안 통하는 것이다.
같은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것을 봤는데도 안 믿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바울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까 더욱 좋은 것이며 천국 가고 싶다는 말이 인정이 된다.
오죽하면 바울이 골육이 끊어지더라도 믿기를 원한다고 했겠나?
바울도 자신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인정했기 때문에 일생 그의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적용)
-성령의 권능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인정이 되나?
3. 회개하면 복을 주신다.
17-18절, 지금까지 죄를 통렬히 질책을 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신다.
너무 자책하지 말라. 모르고 지은 죄, 부지불식 간에 지은 죄 때문에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신데 너희가 안 죽였어도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님은 죽게 되어있으셨다.
이사야서에서도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예고 되고 있다
예레미야, 스가랴에서도 예고되어있었다.
꼭 너희 탓만은 아니다.
베드로가 십자가 사건을 성경대로 깨닫고 해석했다.
이때부터 제자들이 십자가와 죽으신 일이 가장 핵심내용임을 깨닫고 그렇게 성령이 설교로 사직했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복음의 중심으로 삼게 되었다.
주님의 죽으신 일이 하나님 구속사에 가장 핵심이다
성령의 설교가 안 들리면 모든 것이 분별이 안 되는 것이다.
무식하던 베드로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한다
매사에 권능이 임하지 않는다.
신과 불신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
지금 믿어야 된다.
날마다 말씀이 들리는 축복을 구하는 것이다.
너희 죄 없이 함은 받으라 새롭게 되는 날이 주께로부터 임할 것이다.
회개는 유턴이다
베드로의 설교 목적은 “회개”에 있다.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에 관한 설교로 5천명이 회개하도록 한 명 설교다
그야말로 Good News다
명 설교란 복음의 핵심 원리를 전하는 것이다.
회개하면 복을 받는다.
회개만 하면 4가지 복을 받는데,
(1)죄 사함의 복
어떤 죄를 지었어도 기억하지 않으시며 내가 주님은 못 박았는데 주님이 대속재물로 담당해 죽으시는 것이다
(2)새롭게 되는 복(원기회복)
유쾌하게 되며 전 인격적인 변화로 전적으로 새로운 성품을 갖게 된다
자기도 모르는 죄 짐에 눌려 있다가 죄 없는 해방을 맞는다.
예수께 담당시켰다.
새 성품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며 이것을 금지하는 법이 없느니라)이다.
헬라어”카이로스”는 특별하게 주어진 때이다
하루하루의 삶은 구원 받는 기회를 주신 것이며 영원한 천국을 얻는 기회이다.
유대인은 누구보다 그 기회를 먼저 얻었지만 상실했다.
우리의 삶은 구원을 얻는 단 한번의 기회이다.
세월은 악하니 구원을 얻는데 만 필요하다는 것이다.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에베소서: 5: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십자가는 지혜, 타이밍인데 구원을 위해 쓰지 않는 것은 헛것이다.
# 지난주에 성령의 열매를 맺은 18살 청년의 이야기인데요. 억울하고 황당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남자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다가 경찰이 흑인을 총으로 실수로 죽였어요 검찰이 28년. 배심원은 99년을 평결, 그런데 재판부는 10년을 선고.
야유하고 분노했어요 그런데 증인석에 있떤 18세의 보탐의 동생이 나와서 형의 원수 보면서 저는 당신을 한 명의 인생으로 사랑합니다.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만 축복하고 싶어요. 그것이 제 형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남은 삶은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해주세요. 제가 그를 안아 줄 수 있을까요? 울고 있던 여경..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고.. 정의와 .욕하던 법정이 스톱되었어요. 회개와 상관없이 이 브랜트은 죄사함을 받고 예수 믿으라고 한 거잖아요. 남은 인생 예수 믿고 헌신해라. 그래서 시민들도 다 울었고 판사도 울었고.. 브랜튼이 예수가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에요.
(적용)
-삶은 구원 얻는 단 한 번의 기회라 생각하며 세월을 아끼나? 세월아 네월아 하며 허비하나?
‘내 시간이 구원을 위한 시간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 헛되다.
구원을 모르면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후회막급이다
설렘이 없어도 교회는 가야 한다.
교회 오는 것 자체가 천국이며 고난이 없어지면 교회에 가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다
(3) 재림 예수를 보내시는 복이다.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재림 예수를 보내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각자 다르다
개인의 종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다는 것이다
내가 가루로 흩어져도 찾아내신다.
(4)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
22절-26절 모세는 출애굽 율법의 대표, 유대인을 구원할 메시아, 사무엘은 선지자 대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에게 씨로 말미암아 만물이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씨는 단수 예수님이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전했는데, 예수가 이 땅에 세우신 위대한 마지막 선지자라는 것이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를 예언했지만, 예수님은 성취시켰다
26절은 복음을 전하게 한 것은 그들의 악함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먼저 믿은 자에게 악함이 있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다.
대단한 선민의식이다.
12사도도 다 유대인이다.
성령강림도 유대에 우선했다.
모든 기회를 처음에 제공했는데 그 구원의 기회를 박차고 지금까지도 있다. 그렇기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도 예수의 섭리이다.
베드로가 너무 설명을 잘 해주고 있다.
비참해 겪은 만큼 성령을 받으면 사랑의 농도가 하늘 땅만큼 커지는 것이다.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만 보여야 한다
구속하신 주는 간 곳이 없고, 내 자랑과 내 고난에 치여서 풍부와 비천함이 늘 나에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은혜가 없게 되는 것이다.
유다는 자살하고 베드로는 저주를 했었기에 비참하게 낮아져서 더욱 처절하게 전한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목장에서도 개인이 아닌 예수님이 주목을 받아야 한다.
언제나 구속하신 주만 바라보아야지 그러지 않으면 나만 바라보라 해서 그 목장이 은혜가 없게 된다.
내자신의 고난에 그만 주목하고 오직 고난도 자랑도 주님께 주목하면
은혜가 끼치는 것이다
주님만 주목하면 이 말도 저 말도 은혜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성령의 권능이다
(적용)
-회개해서 받은 복은 무엇인가?
-재림 예수님을 주시는 복 중에 무슨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성령의 권능이다.
<Epilogue>
성령의 권능은 사람을 주목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주목하고, 내 고난과 자랑할 것이 있어도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면 복을 주신다고 한다.
내게 성령이 없으면 내 인생이 구원으로 연결되는 단 한번의 기회임을 알지 못한다
아브라함에게 씨로 말미암아 만물이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씨는 단수 예수님이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전했는데, 예수가 이 땅에 세우신 위대한 마지막 선지자라는 것이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를 예언했지만, 예수님은 성취시켰다
내 삶을 재림 예수님을 보게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복의 근원이 되고 아브라함의 씨.. 예수 씨가 우리가 되야 한다.
'말씀과 마음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들교회 2019년 10월20일 주일말씀요약(사도행전 4장1절로 22절 성령의 증인) (1) | 2019.10.21 |
---|---|
우리들교회 2019년 10월13일 주일말씀 요약(신명기 4:44~ 5:10/우리와 세우신 언약 //성승환목사) (0) | 2019.10.16 |
우리들교회 2019년 9월29일 주일말씀요약(사도행전 3:1~10/ 성령의 기적) (2) | 2019.10.01 |
우리들교회 2019년 9월22일 주일말씀요약(사도행전 2: 42~ 47/성령의 공동체) (1) | 2019.09.26 |
우리들교회 2019년 9월15일 주일말씀요약(누가복음 15:20~ 24/ 아버지 마음/진재혁 목사님 케냐 선교사) (0) | 2019.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