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19년 9월15일 주일말씀요약(누가복음 15:20~ 24/ 아버지 마음/진재혁 목사님 케냐 선교사)]
<Prologue>
진재혁 (Peter Jin/피터진)목사님께서 처음 미국을 가셨을 때 영어 때문에 힘드셨다.
맥도날드에 가서 콜라를 시켰는데 못 알아들어 커피가 나왔고 잘못 나왔다는 말을 하지 못해 쓴 커피를 억지로 마셨다.
영어 단어 중 애플파이(apple pie)란 단어가 미국인이 알아 듣는 유일한 단어라서 늘 상 질리도록 애플파이만 먹었다
누구에게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표현을 하는 당신의 눈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당신의 죄라면 당신은 사형 감입니다.’
탕자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허랑방탕한 삶의 결론은 인생의 흉년인데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the pods that the pigs were eating)도 없어서 못 먹는 신세로 전락하여 ‘궁핍과 굶주림과 곤비’만이 남아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탕자는 그 궁핍한 가운데 비로서 아버지와 집 생각이 나서 집으로 돌아 갈 것을 결정하고 돌아 오게 된다.
탕자의 비유 가운데 가장 중심 인물은 탕자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모습이다
보다 적절한 제목은 ‘탕자의 비유’보다는 ‘아버지의 비유’라고 생각된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마음,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눈다.
<말씀 요약>
1. 기다리시는 아버지(The Waiting Father)
돌아오는 아들이 보이는 장면에서 아들보다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보고 달려온다
어떻게 아버지가 멀리서(form a far distance)아들을 먼저 알아 볼 수가 있었을까?
기름지고 통통했던 아들이 피골상접, 엉망진창이 되어 옷도 더럽고 완전 바뀐 탕자의 모습을 가엾게 여기며(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그 아들이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기다리는 아버지이시다
어떤 상황, 어디든지 기다리시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아버지 품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창세기에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Adam, where are you?)’라고 물으시지만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모르셔서 묻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담이 어떤 상태인지 어디 있는지 잘 알고 계시는데 못 찾아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게 돌아오라’고 찾으시는 것이다
기다리시며 찾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케냐에서 예배도중에 아이를 화장실에 데려갔고 나오길 기다렸다. ‘거기 있어?’라며 아이가 몇 번이나 확인하며 질문했다. ‘아빠 여기 기다리고 있지.’ 여러 번 반복하니 뜨거운 것이 확 올라왔는데 그 순간 갑자기 암송 구절, ‘내가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하리라’ 라는 히브리서 말씀(13장5절)을 암송한 후에 제가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 이런 마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브리서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Keep your lives free from the love of money and be content with what you have, because God has said, "Never will I leave you; never will I forsake you.")
(여호수아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No one will be able to stand up against you all the days of your life. As I was with Moses, so I will be with you; I will never leave you nor forsake you.)
집으로 돌아오라(Come home!)로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힘들고 지치고 외롭고 인생 가운데 궁핍한 중에 우리를 계속 기다리시고 찾으신다
2. 달려오시는 아버지(The Running Father)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입을 맞추며 일직선으로 뛰어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눈썹을
휘날리시며 사람들의 편견과 체면은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아들(탕자)이 다가오는 것보다 달려오고 있는 아버지의 속도가 눈에 띄도록 빠르다
이러한 탕자 아버지의 모습에서 하나님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되고 빌립보서 2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빌립보서 2장)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but made himself nothing,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t to death-- even death on a cross!)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의 특권을 내려 놓으시고 종의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셨다
하늘의 모든 영광 가운데에서도 자기를 비우시고 그렇게 낮아 지셔서 달려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수치와 조롱을 감내하시고 십자가까지 달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로마병정, 그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수치와 고난의 십자가까지 그냥 그렇게 달려오셨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고 우리를 행한 아버지의 마음이시다
미국 초등학교 2학년학생 John으로 인해 어머님이 학교에 면담을 갔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해줬는데, 아이들이 두 가지 대답으로 나뉘었다. 겨울에 개미는 먹고, 베짱이는 죽었다. 다른 그룹은 개미가 베짱이와 나누어 먹고 사이 좋게 지냈다고 추론 가능한 얘기를 했지만 John은 듣지도 본적도 없는 답을 적었다. “개미가 자기가 모은 걸 베짱이에게 다 주고 자기는 죽었다.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이 그냥 달려오신 아버지의 마음이다.
3. 회복시키시는 아버지(The Restoring Father)
돌아온 탕자 아들이 두려움과 걱정 가운데 돌아 왔다. 그 전부터 아버지를 만나면 엎드려 할 말을 생각해 가며 아버지 집에 도착했다. 얘기하려는 순간 아버지는 탕자 아들이 ‘아버지’란 단어의 ‘아’자도 꺼내기도 전에 목을 얼싸 앉고(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입을 맞춘다(many kisses)
이는 할말을 대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자기의 제일 좋은 옷(the best robe)을 가져오라고 하여 탕자에게 옷을 입히며 손에 가락지를 끼웠고 돼지 치며 더럽고 상처 난 발에 신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마을과 이웃 사람들을 초청하여 화려하고 영광스런 잔치를 (23절: Bring the fattened calf and kill it. Let's have a feast and celebrate)벌여주었다
포플러나무 이야기에서처럼 집 나간 아들이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는 아들이 있다. ‘아버지 제가 몇 날 며칠에 돌아가고 싶은데 용서하신다면 역 앞이 서 있는 포플러 나무에 흰색 천을 걸어 주신다면 제가 돌아가겠습니다. 없으면 그냥 지나가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아들은 그 역에 다가오자 차마 눈을 뜨고 볼 용기가 없어서, 기차에 탑승한 앞사람에게 대신 확인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는 ‘흰색 천이 포플러나무 한 그루에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무에 다 걸려 있다’고 알려준다
아버지는 혹시 아들이 못 보고 그냥 지나갈까 봐 모든 나무에 천을 걸어 놓았던 것인데 아들이 돌아오도록 역 앞 포플러나무 이외에 모든 다른 나무에도 흰색 천을 둘러 돌아오는 아들에게 ‘다 필요 없다 오기만 해라. 다 용서해 줄 테니 돌아오기만 해라’라고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Just come home!’
회복시키시고 사랑하시며 돌아 오만 기다리다가 달려 오시고 그렇게 회복시키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시다
이렇게 끝나면 해피엔딩 인데 그 다음에 25절에 탕자 형인 맏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복음15장은 이 비유가 등장한 순간을 성경은 말씀하신다.
예수가 죄인과 세리들과 식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것을 안 좋게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입이 삐쭉삐쭉 나오는 불평하는 그들을 향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다
잃어 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를 통해 집 나간 탕자의 비유보다 더 중요하게 이 비유의 가장 중요한 Punch line(깜짝 놀라게 하는 말, 알맹이)은 집안에 있었던 또 다른 탕자 이 큰 아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심을 깨닫는다.
돌아온 탕자보다 오히려 집안에 있었던 또 다른 탕자 큰 아들을 향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날도 아버지 밭에서 열심히 수고한 큰 아들이 집에 돌아오니 풍악이 울리는 잔치가 벌어졌다.
동생이 살아서 돌아왔다.
맏아들은 노하여 잔치가 벌어지는 집안에 들어가길 꺼렸다.
수고하고 애쓰고 명을 어김이 없는 훌륭한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뜨거운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수고한 것만 생각하고 아버지의 뜨거운 마음을 몰라 기분 나빠하는 집탕이다
정작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의 마음을 알 수 없었던 바리새인들이다.
20절 아버지가 그를 측은히 그리고 불쌍히 여겼다.
창자가 끊어지고 뭉글어 지는 것 같은 아픔과 함께 오는 불쌍히 여김인 긍휼이다.
큰 아들을 볼 때마다 착하고 훌륭한 아들이지만, 아버지가 정말 원하는 것(네 동생이 어디 있는지 네 동생을 데려오면 좋겠다)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큰 아들은 아버지 마음과 함께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는 또 다른 탕자의 모습인 것이다
너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그것으로 똑같이 아프지 않는다면(그리스도가 아픈 것을 함께 아파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닐지 모른다. (You are not really Christian unless your heart is the same thing broken by the same thing which broke the heart of Christ.)
우리는 늘 상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닮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닮을 수 있을까?
주님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 되고,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주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 단기 선교 갔을 때 한 선교사님이 한 말이 기억난다.
‘너의 동기가 사랑이라면 너의 행동은 희생일 수 있다. (When your motive is love, your action may be sacrifice)
그러나 당신이 느끼는 것은 아픔이 아니라 기쁨일 것이다. (The only thing you are conscious of is joy)
(고린도 전서 13:1~3)
1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If I speak in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but have not love, I am only a resounding gong or a clanging cymbal)
2절: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If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can fathom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if I have a faith that can move mountains, but have not love, I am nothing.)
3절: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If I give all I possess to the poor and surrender my body to the flames, but have not love, I gain nothing)
아버지의 마음은 열방을 향한 세상을 향하여 ‘네 동생 어디 있느냐? 찾아와라!’ 하신다.
지구촌교회 부임 시, 꽤 많은 기자들은 목사님들이 크고 좋은 교회가면서 하나님 뜻 때문에 간다고 하는가?
그러나 언젠가 그렇지 않은 곳에 갈 때도 하나님 뜻대로 간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 뜻 가운데 저희 가족은 9년간의 지구촌 교회 사역을 끝내고, 아프리카 선교지인 케냐로 가는 것이 비전을 이루려는 것으로 불쌍히, 측은하게 여기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였다
열방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묵상하며 오래 전에 케냐를 떠나는데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 선교, 케냐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지게 될까 기도하며 방법을 찾았다.
디즈니 영화 라이언 킹, 아프리카 말로 심바를 언급하며 다독였다.
주사를 맞으러 가면서, 첫째 아이가 ‘왜 케냐를 가야 하냐?’고 질문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기 때문이야” 라고 했는데 이말을, 둘째에게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아버지의 마음, 우리를 향한, 열방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사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우리는 탕자 비유를 통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을 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마음에 가깝게 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pilogue>
‘네가 어디 있느냐?’고 긍휼이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기다려 주시며 달려오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피곤하고 곤하며 궁핍하고 아픈 우리가 아버지 집으로, 아버지 품으로 달려가 ‘나를 받아 주소서’ 하기를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고 따뜻하게 맞이하여 잔치까지 벌여 주신다
그 이름 불러 봅니다: ‘Abba(아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Father, Pere, Padre), 아버지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고 품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아버지 마음이 내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내 눈이 향하고 주님 마음이 계신 곳에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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