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9. 10. 21. 22:48

[우리들교회 2019 1020일 주일말씀요약(사도행전 41절로 22절 성령의 증인)]

 

<Prologue>

 

요즘 국감과 청문회에서 증인을 부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증인인데 변호사가 수십 명씩 난무한다

증인은 그 자리에 있었다라는 것만으로도 똑똑한 변호사보다는 절대적인 위력을 가진다

눈만 깜빡 해도 늘 이야기하듯이 증인은 학벌과 스펙이 상관이 없다

성령의 권능으로 설교했던 베드로와 사도들은 성령의 증인으로 우뚝 섰다

그런데 증인이 증인이 못 되도록 하는 것이 이 세상의 권세이고 정치다

요한복음 15 19절에 보면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리라것처럼 참된 교회의 생명 성 중 하나가 핍박이다.

 

<말씀요약>

성령의 증인은,

1. 성령의 증인은 핍박이 따른다.

 

(1-7)솔로몬의 행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성령의 권능에 대하여 설교를 하니 남자만 오 천명이나 모였고, 당연히 유대교 지도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그들은 바로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었다

 

그런데 죽인 예수가 부활했다고 하니 얼마나 싫었겠나?

 

그들은 로마 통치하에서 그들과 결탁하여 최고 부귀 영화를 누리며 권력유지에 힘쓰는 명문가로서 이 세상이 이렇게 살기 좋은 데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므로 부활 할까 봐, 천국 갈까 봐 걱정하는 자들이다.

 

로얄패밀리 안나스 대제사장 집안에 그 사위인 가야바가 대를 이었고 그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도록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며 예수님을 대신 죽도록 했다.

 

AD 36년 안나스와 아들 요나단, 데오필로스, 맛디야스 등 대 제사장들이 뒤를 이었다.

 

뒤를 이어 예수님을 죽이고 사도들을 핍박하는데 앞장 서도 이 세상이 권력으로 찬란히 살아 있다. 그 사람들은 영육간에 기득권이었다.

 

소위 명문가라고 하는 그 집안처럼 이 세상은 사단의 나라 맞다. 그들은 살아남아있다. 그것이 길어 보여도 잠깐이다.

 

60년이 길어 보여도 그 고난이 잠깐이기 때문이며 주님 재림 때까지 핍박 받고 괴로워도 결국 주님은 오신다.

 

우리는 그때에 너무 속고 있고 세상권세에 속고만 싶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할 목적으로 모였는데 부활교리가 세상가치관을 뒤흔들었고 당시 유대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부활의 소식은 온 세상 가치관을 둘러엎는 사건이었다.

 

바울 사도가 빨리 천국 가고 싶다고 빌립보서에서 이야기 했는데 이 말은 부활이 믿어져야 가능한 이야기다.

 

여러분은 이 땅에서 부활의 주님이 믿어져도 세상성공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나?

 

헌금하고 봉사하니 당연히 천국 간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잘 살아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원론이 이해가 안되면 안 되는 것이다

천국 갈 티켓 있다고 이 땅에서의 삶을 당장 포기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정말 부활 좋아하는 게 맞는가?

부활의 주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끝까지 지키신다.

이게 믿어져야 천국이 당장 사모된다.

사도들은 예수 이름으로 걷게 해놓고 물질의 보상을 받기는커녕 현장에서 갇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가두었지만, 4절에서, 말씀은 갇히지가 않았다고 한다.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걷게 해놓고, 물질 보상은커녕 감옥에 갇히는 일을 겪는데 말씀은 갇히지 않아서 오천 명이나 더 했다.

내가 갇혀야 더 하게 되는 것이다.

반원을 그리고 둘러 앉아 무슨 권세와 누구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가?’라며 예수님께도 같은 질문을 했었다


목사님도 평신도 때부터 너는 어느 교단으로 누구인데 큐티 모임 하느냐?’라는 질문을 이렇게 많이 들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이 정말 믿어져야 이해가 될 것이다

부활은 믿지만 이 땅에서 정말 잘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나?

설교가 아니라 앉은뱅이를 고쳤기 때문에 이런 압박이 들어온다.

나의 고난이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의 눈에만 나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데 성령의 증인도 사람을 위해 일하지만, 사람의 증인은 이타적 생각을 못한다.

자기 유익만이 유일한 이유다.

결국 자기를 위해,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의 증인이 되고 사람에게 충성하니까 다들 진영논리에 빠지는 것이다

100% 죄인의 인생은 이타적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이런 갇힌 현실로 불평할 게 아니라, 40년 간 낮추시고 힘들게 했지만 그 이유가 복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그 낮추심에 순종할 수 있는가?

나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주님은 명목상으로만 걸어놓고 사두개 파는 사두개 파를, 바리새 파는 바리새 파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구속사는 창조적인 생각이다.

하나님의 가장 창조적 생각은 점으로 오신 예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낮아짐은 굉장히 창조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이 구속사의 설교가 들리지를 않으니, 힘든 낮아짐이 너무 싫고 그 십자가를 너무 지기가 싫다.

십자가 없는 부활만 바라게 되니 성령의 증인이 되지를 못한다.

그래서 성령의 증인이 되기 위해선 핍박이 전공필수다.

바울을 본받고 싶은 사람? 이라고 했을 때 모두 손 안 들고 5학년짜리가 갇혀도 평안히 큐티 한 번 해봤으면 하고 했다는 것이다

핍박이 따름이 얼마나 성령의 증인이 될 길인지 모른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성령증인의 비결이다

 

(적용)

-갇힌 환경에서 갇히지 않은 경험이 있는가?

그곳에서 십자가를 지고 갈 때 갇히지 않은 말씀으로 자유함을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갇힌 환경이라 해도 십자가를 지고 갈 때 갇히지 않은 말씀과 희생과 자유함을 경험한 적 있는가?

 

 2. 성령 충만한 권세를 주신다.

 

(8)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겁쟁이였으나 성령의 권능을 받고 성령의 증인이 되어 달라졌다.

그에게, ‘성령 충만한 답고생 충만한 답은 다르다.

고생 얘기는 딱 듣기 싫다.

고생을 해도 성령이 충만한 권세를 누리는 게 우리의 모습이어야 한다.

 

(1) (성령충만이 권세로)예의를 지킨다.

(9) 반말하는 것 같지만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이여! 하며 올림말로 성령 충만함으로 존대하는 것이다.

진리는 스스로 절대적 권위를 지니지만 독선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이때에 지혜가 너무나 필요하다.

이 말을 해야 할까? 안 해야 할까? 이런 것이 필요한데 너희들이 부활도 예수도 안 믿는 못된 것들아!’라고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면 진리 자체가 틀어져 버리는 것이며 욕을 하다 보면 다 훼손되어 버리는 것이다.



 

(2) (성령 충만한 것으로) 악한 질문도 구원의 질문으로 바꾸어 대답한다.


 

무슨 권세와 누구 행위로 했느냐는 앉은뱅이의 치유에 대하여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착한 치유라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성령의 권능은 내가 예수님을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박은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인정이 되는 것이며 가치관이 달라진다

성령의 권능을 모르며 구속사 설교가 안 들린다

도덕과 윤리로 설교를 들으니까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진리의 성경을 듣다 보면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같이 겉으로 거룩한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가와야 자신이 예수님을 못박을 실체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속이고 속다가 인생을 보낸다

예수님의 능력이 영혼까지 구원하므로 그렇다

그런데 병자에게 행한 일은 단순히 육신의 일을 고친 것에 그치지 않고,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것인데 그래서 누구의 권세로?’라는 질문을 이것은 착한 일인데, 이것을 어떻게 구원이 되었는지?’ 하고 질문을 바꾸어 대답한다.

착한 일을 해도 지옥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은 예수님이 오기 전 까지 자기 실체가 드러날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착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착하지는 않으며 십자가에 자기를 못박아야 되는데 여기서 내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다 해야 말씀이 들리게 되는 것으로 구속사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예수이름에 순종하는 자가 착한 일을 하는 자이다.

단순히 앉은뱅이가 육신만 고쳐진 게 아니라 예수의 능력이 그의 영혼까지 구제할 것을 구체화한다.

그러면서, 누구 이름으로 그러냐고 할 때? 베드로는 착한 짓을 할 때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물으신다면' ‘내가 왜 이렇게 예수를 믿는 지?’라고 하면서 반응한다

화를 낼 때도 주제가 안 맞아도, ‘구원을 어떻게 받았냐고?’ 하면서 구원을 얘기하면 되는 것이다.

 

(3)(성령충만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한다

 

(13)예수의 이름만이 건강의 비결인데 예수는 죽이고 건강만 좇으면 어떻게 건강해 지나?

아플 때는 그럴 수도 있는데 아무 것도 안 하면서 건강이 우상인 것은 정신질환에 속한다

우리는 언젠가 아파서 죽을 인생이다

영육간에 아픔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다

 

한 유명 연예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그는 사회에 도발하던 사람이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할 줄 알았으나, 자살을 했다

자살이 어떤 특정인이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우린 건강해야 하는데 오직 예수이름 위에 건강해야 한다.

성령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이름보다 예수의 이름만이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

특히 베드로가 나사렛사람으로 밝힘은 예루살렘의 기적과 비교하여, 예수님의 출신은 너무 비루해 보여도 이젠 그 어떤 이름보다 영광스럽다는 걸 제대로 얘기하는 것으로 우리 성도들도 똑같은 무게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전하기에 너무 어려운 시대다.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은 모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살은 끝나는 게 아니라 이어지기에 심각하다.

출신이 비록 비천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높이신 영광스런 이름이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는 사람은 이미 성령이 증인이 될 수 있다

먹고 살만하니까 나사렛 예수 이름을 펼치지 않고 싫어하는 것이다

유명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면 모방을 이끌게 되며 예수 이름을 모르면 따라 하게 되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 이름을 거기다가도 전하자. 전도대회에 이런 사람들을 데려 와야 한다.

내가 사모하는 권세가 대 제사장의 권세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권세일지 모른다.

미모와 유명세를 가져도 자살을 하면, 자타를 죽이는 권세가 되는 책임이 있다.

내가 너무 존경하는 사람이 자살했을 때, 예수가 없으면 자살하고 따라가고 싶다.

이런 경우 빨리 치료 받아야 하며 예수이름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이럴 때 힘드시죠?’라고 말을 건네면 상대방은 울게 되는 것이다.

가정중수를 Killer Contents로 해야 하는 것이다

나사렛예수이름을 전하는 것은 성령 충만하면 당당하게 전해야 하는 것이며 이런 얘기를 해야 성령의 증인인 것이다

그 사람이 가는 곳 다 가고 싶게 되므로, 대한민국 최고의 비극은 가장 존경 받을 사람이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거 하나로 자살이다. 매년 그 이름을 모두 읊는다.

예수이름만이 건강의 비결인데, 얼마나 많이 따라 죽는 지 모른다.

감당하지 못할 권세를 달라는 게 얼마나 자타를 죽이는 책임감 없는 일인지 모른다.

미모가 없어야 할 사람이 성형으로 미모를 가지면, 가족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하나님이 주신 내 원판, 원판불변의 원칙을 준수해야 천국에서도 하나님이 알아 보신다

예수 이름이 없으면 남을 죽이는 권세가 된다

감당하지 못할 사람의 육적 강건과 미모는 남을 망치는 무거운 짐이 된다.

성령 충만한 권세는 내가 죽어지는 권세다.

 

(적용)

-사람 죽이는 권세를 사모합니까? 죽어지는 권세를 사모합니까?

-성령 충만한 권세로 예의를 지키나? 어떤 악한 질문도 구원의 질문으로 바꾸나?

-내 출신을 발표하며, 나사렛 예수 이름을 당당히 전하나?

 

3. 버린 돌을 머릿돌 되게 한다.

 

(11-12) 베드로는 시편 118, 마태복음 21장을 인용하며, 예수에 관하여 건축자들의 버린 돌 머릿 돌 인용을 한다. 베드로는 날마다 말씀으로 꿰는 얘기를 이제 한다.

 

 

말만하면 순종하는 한 집사님. 그랬더니 지금 머릿돌이 되셨다.

말씀이 줄줄줄 나온다.

누가 시골 여상 출신으로 생각하겠나.

머리 돌 되신 예수님을 못 알아보고 무관심하게 십자가에 목 밖아 죽인 바리새인, 그때도 그 예언을 했던 바 있다.

우리는 성공의 모든 발판이 되기만 하면 우세하게 밀고, 성공을 위해서는 친구도 아내도 가족도 다 버린다.

언젠가 성공의 날을 위해 목장예배도 교회도 나왔는데 그렇지 않게 되면 버리게 된다

버린 예수님이 모퉁이 머리 돌이 되신다

나의 시간이 구원의 시간이 안되고, 나를 위해 운동 공부하고 나를 위한 시간만 되면, 예수를 버리는 것으로 시간낭비다.

시간 낭비는 예수님을 천이 여기는 것이고, 권세를 구하면 예수님을 버리는 것이다.

고난 가운데 자포자기하는 것은 스스로 버린 돌, 버려진 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 이외에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바가 없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시고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되셔서 모퉁이 머리 돌이 되게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권세를 지키기 위해 사단의 말로로 치닫고 있었다.

나사렛 예수의 권세를 봤기에, 사도들은 의지하고 진짜 믿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실재적 증거에 의해 너무나 분명한 복음을 확실히 변증했다.

성령님의 지혜는 어떤 지혜보다 위에 있다.

여호와는 오직 여호와이시니, 사랑하라.

 

(적용)

-유일한 하나님만 섬기나? 하나님도 섬기나?

- 부모, 형제, 배우자, 남친, 여친, 직장에서 버림받은 이때가 머리 돌이 될 때임을 믿나?

다원론이 아니다. 말 못할 고난 중 스스로 버리지 않아 목자가 된 분이 너무 많다. 한 분은 온 가족이 ADHD 였는데, 의붓아빠가 맨날 구타하다가 절에도 오지 말고 교회나 가라고 하여 교회 온 목자다.

예수님 믿도록 혈기 반, 버럭 반으로 핍박한 아버지가 최고의 아버지다

 

좋은 아버지는 핍박으로 예수 믿게 해준 아버지다.

 

#회사도 인간관계가 안되니 항상 사장과의 불화로 관둔다. 마지막엔 분노폭발로, 사장 댁을 넘어 월담했다. 3미터 담을 넘었고 팔만 부러지는 사건이 되었다. 왜이리 화가 나는가? 매일같이 무시를 받았기에. 나도 잘하는 게 있는데.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장인 장모님이 안쓰럽게 바라봐주셨다. 공동체에서 들었던 말들이 기억났다.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고 하고, 분을 내고, 자유로운 영혼이다. 가장으로서 무책임하고 질서를 무시한 사람이라는 게 이제야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백수가 되어, 팔 나으면 어떤 직장에서도 참고 일하겠다고 기도했더니 - 진짜 회개 후라 그런지 너무 좋은 직장으로 갔다. 힘든 부분 여전하지만, 무시 받아도 이제는 화가 나지는 않는다. 온 가족이 ADHD 라 모두 잘 잊어먹으니 서로 챙겨준 적이 없다. 그래도 모두 불평하지 않고 나름 잘 찾아 쓰고, 그런대로 그냥 정신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약도 쓴다. 우리 교회 13년이나, 가족이 다 같이 목자가 되어 훨씬 쓰임 받게 되었다. 공동체에서 서로 인정하고 가니 모두 인정을 해주고, 갔다. 감추려니 병이었던 게 이제는 용납 받는다.

 

구원 이루어 줄 이름은 오직 예수 밖에 없다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 한다

오고 가는 AHHD가운데 싹트는 사랑이 있다

 

4.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13-16) 범인은 촌놈과 무식쟁이를 뜻하는데 평신도-평민-무식쟁이 베드로가 얼마나 무시 받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도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반박을 아무도 못하는 본문에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

예수 이름으로 고친 앉은뱅이가 증인으로 딱 있기 때문이며 40여년 이나 살아 왔기에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베드로와 요한이 촌놈이었기 때문이 아니며 부활하신 예수의 경험으로 성령이 임하여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증인은 비난할 말이 없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이 잘 살고 죽고 전파하고 치유하심은, 그 삶을 나누었던 경험으로 성령으로 임했기에 성령으로 살아났고 이제는 증인이 되었다.

그만두지 못하고 큐티모임이 지금까지 왔다.

그때 비난하던 사람들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비록, 명백한 증거가 있었어도. 욱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적용)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나의 체면 때문에 기득권 때문에 부인하는 것은?

 

5. 하나님 앞에서 보고 들은 것을 (누가 뭐래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말한다.

 

(17-21) 성경 박사들 앞에서 하나님 말을 들을까 너희 말을 들을까?

예수님의 이름만 쓰지 말라고 위협해도, 사도들은 우리가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 보고 들은 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라고 오히려 신문하는 격이다

3번이나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씀을 하게 하신다

땅 끝까지 사명 감당하는 것을 보여줌으로 살아난 사람의 말을 전한다

베드로가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리니 모든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나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핍박하던 사도 바울이 거기 있었기네 그 장면도 전한다

마찬가지로 큐티 사역도 끊어질 거였음에도 여기까지 왔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로 영광이 가야 한다. 모두가 그렇게 얘기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들 말을 듣는 것이 옳은 줄을 판단하라.

산헤드린 공회에 누가 이렇게 기록했을까?

(22
) 병 나은 사람이 40여세나 되었더라. 증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사십이면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오래 고생했던 사람이 주변에 왜 없었겠냐?.

증인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오직 병 나은 자를 증인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병 나음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한 것이다

표적은 표적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시는 것이다

 

(적용)

-내가 하나님 앞에서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살아난 간증인가? 하나님 앞에서 내 죄로 아파하는 간증인가?

 

나의 상처로 아파하고 내 죄 때문에 아파하는 것이 성령의 증인이다

나의 이 상처에서 보고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간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버린 돌 같은 사람이 증인이 되는 것이다

핍박이 오니 교회와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 고백 - 초등학생 엄마의 부모학교 간증이다. 남편이 일주일에 3만원 주는 고아야생활. 딸이 희귀 병으로 걸려 입 퇴원을 반복하다가 타미플루 먹고 귀신이 보인다고 자해하고 다 버린 돌이 아닌가? 이제 약 먹고 조금 나아서 교회에 간신히 나왔다. 등록한 일 주일 만에 1년 넘게 안 팔리던 집이 팔렸다. 딸을 못 다니게 하던 남편이 소년부 큐티회에 간 것을 트집잡아 너무 힘들었다. 주일을 범하고, 남편과 음란을 행한 제 삶의 결론임이 인정되었다. 이 모든 게 불신 결혼으로 예수님을 못 박았음이 깨달아졌다. 아빠를 무서워하는 딸을 설득시켜 예배에 왔는데 소년부 목사님이 바울 사도처럼 감옥 생활을 본받고 싶은 사람 손들라 했고, 딸은 감옥에서 평안하게 하루라도 큐티 한 번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일로 힘을 얻었다. 집에 와서 엄마는 지쳤는데 딸이, 아빠 방으로 가서, 교회가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간청하자 교회 가도 좋다라는 허락이 떨어져서 엄마! 아빠가 교회 가도 된대라고 영육간에 일어날 힘이 없던 딸아이가 목사님의 격려와 기도에 힘을 찾았다. 그런데 목장 중에 남편이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도 하고 그날 밤 합방도 했다. 부모학교, 목장에 붙어 있었더니 아픈 딸을 핍박하고 성령 충만해서...



 

<Epilogue>



 

성령의 증인은 핍박이 따른다.

성령 충만한 권세를 주신다.

예의를 지킨다.

악한질문도 구원의 질문으로 바꾼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의 명백한 증거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한다.

나의 상처로 아파하고 내 죄 때문에 아파하는 것이 성령의 증인이다

나의 이 상처에서 보고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간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버린 돌 같은 사람이 증인이 되는 것이다

핍박이 오니 교회와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구원 이루어 줄 이름은 오직 예수 밖에 없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