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에 해당되는 글 2234건

  1. 2024.05.13 한국 역대 IOC위원 중 제3대 백상 장기영 IOC위원 겸 한국일보창간사장에 대한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의 회고담 62
  2. 2024.05.11 IOC Culture and Olympic Heritage Newsletter May 2024 (OST: Olympic Story Telling by Prof. Rocky Kang-Ro YOON) 67
  3. 2024.05.10 IOC가 ANOC전임회장 Sheikh Ahmad에게 윤리강령위반죄로 15년 활동 및 자격정지처분을 내린 내막은? 63
  4. 2024.05.08 Macron프랑스 대통령, Xi Jinping중국국가주석의 Paris2024올림픽휴전(Olympic truce)지지에 감사 표명하다 63
  5. 2024.05.07 IOC윤리위원회, 3년 자격정지 중이던 Sheikh Ahmad 쿠웨이트 IOC위원에 대하여 15년 추가자격정지결정발표로 사실상 IOC위원직상실 기정사실 63
  6. 2024.05.06 태권도의 올림픽종목채택과정과 정식종목 잔류에 얽힌 이야기(故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창설 총재의 회고록) 63
  7. 2024.05.02 ANOC 및 Bach IOC위원장, 세계육상(World Athletics)의 Paris 2024올림픽 육상종목우승자에 대한 미화5만불 포상금 계획에 반대 의견 표명하다 84
  8. 2024.04.26 소련(러시아)의 세계적 스포츠외교관 Vitaly Smirnov IOC부위원장에 대한 회고(“김운용이 만난 거인들” 책에서) 83
  9. 2024.04.25 브라질의 불세출 스포츠외교관 아벨란제(Havelange) FIFA회장 겸 IOC종신위원에 대한 회고(김운용이 만난 거인들 책 중에서) 2
  10. 2024.04.24 독일올림픽위원회(DOSB) Karlsruhe를 2029년 World Games 개최후보도시로 지지하다 77
스포츠 외교2024. 5. 13. 09:34

[한국 역대 IOC위원 중 제3대 백상 장기영 IOC위원 겸 한국일보창간사장에 대한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의 회고담]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은 한국이 낳은 최고의 스포츠외교관 이었습니다.

그분의 스포츠외교활동을 30여년 간 지켜보고 중요 계기 마다 그분을 돕기도 하면서 그분의 내공을 이어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KOC명예총무-KOC위원장-대한체육회장-대한태권도협회장-국기원장-세계태권도연맹 창설 총재-IOC위원-IOC부위원장-ARISF회장-GAISF회장-World Games창설회장-IOC TV분과위원장-1999강원 동계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2002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등 국내스포츠기구(대한체육회-KOC-대한태권도협회-국기원)수장-국제연맹(WTF창설총재) 겸 국제스포츠연맹총연합회(ARISF-GAISF)회장 등 거의 모든 직책을 섭렵한 한국의 스포츠외교위상을 드높인 불세출의 스포츠 외교관이었습니다.

 

[ IOC 수석부위원장(2010.10.26) <언론-체육-정치 1 3역의 뜀박질>/장기영 제3대 한국 IOC위원 편]

 

장기영은 벌써 33년 전인 1977년에 사망한 까닭에 최근에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 여러 분야에서 선각자로 이름 석 자를 또렷이 남긴 거물이다. 그는 IOC 위원으로서도 필자의 직접 선배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많았다.

장기영은 1916년 서울 출신으로 1934년 선린상업을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들어갔다. 선린상업은 사립이지만 일본인-한국인이 섞여서 공부하는 학교였고, 또 야구명문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광복 후 1950년 한국은행 부총재로 승진하였으나 1952년에 사임하고 언론계에 투신, 조선일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뛰어난 수완으로 조선일보를 재건한 뒤 1954년 태양신문을 인수,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즈를 창간하여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래서 그가 거쳐 간 많은 의미 있는 자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일보 사장으로 기억되곤 한다.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은 참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예컨대 1957년 광교 근방에 TV방송국을 열기도 했다. 아쉽게도 화재로 없어졌는데 KBS 5·16 군사혁명정부가 들어선 후에 남산에 개국했으니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영의 식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장기영은 한국일보에 이어 1960년에 서울경제신문과 소년한국일보를, 그리고 1969년에는 일간스포츠를 창간했다. 모두 최초로 한국신문사에 한 획을 그은 일들이었다.

특히 일간스포츠 창간 때는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필자가 청와대에 있었던 까닭에 필자에게 도움 요청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음으로 양으로 많이 지원했다. 이때 계창호가 수고를 많이 한 기억이 난다. 1973 5월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때는 일간스포츠의 이태영 기자(그 후 중앙일보 부국장)가 담당하여 일간스포츠 1~2면을 독점, 선수 사진까지 모두 실은 일이 있었다. 이때는 축구의 장덕진 회장이 막 달릴 때라 태권도는 왜 못하느냐는 식으로 의욕적으로 해내곤 했다. 당시 이태영 기자는 밤을 새우며 기사를 썼다.

유난히 한국일보에는 필자의 중학교, 대학교 동문들이 많이 있었다. 이태영 기자도 여권 발급에 부친(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유명한 이길용 기자)문제로 하자가 있다고 해 필자가 보증을 서서 해결해 준 바 있다.

제일 처음 떠오르는 일은 5·16 군사혁명 기간 중 독일 뮌헨의 서커스단을 서울로 초청하는 것이었다. 이때는 무엇이든 잘 안 될 때인데 공보부가 도와주어 서울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고, 한국일보는 곧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만들어 한국의 여성미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나섰다.

미스코리아는 얼굴만 예뻐서도 안 되고, 체격, 국제성, 장기, 어학 등 종합적인 미()를 갖추어야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 당시 어려운 국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스코리아들은 미스 유니버스,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월드 등의 국제대회에 나가 5위 이내에 입상하는 사람도 나왔다. 미스코리아들의 국제 활동과 인연이 생긴 필자도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운영위원장이란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축사도 하고 한국일보 계획대로 지원해주는 일이다. 필자가 맡은 것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문제가 생겨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전격적으로 위촉된 것이었다.

장기영은 1961년 대한축구협회장과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되었으며 1966년 대한올림픽위원장을 맡았다. 1967년에는 IOC 위원이 되었는데 이때 사마란치도 같이 IOC 위원이 되었다. 즉 둘은 IOC 동기였던 셈이다.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즈는 서울올림픽과 선수촌의 공식 신문을 발행했고 사마란치는 올림픽이 끝난 후 장강재 회장을 한국일보로 예방하고 사의를 표했다. 그리고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코리아타임즈에서 부장급 1명씩(선재훈, 김영환, 김재설) IOC비용으로 로잔(Lausanne) IOC로 초대하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올림픽운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더 좋은 보도를 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1990년에는 다시 장강재 회장, 정태연(코리아타임즈) 사장, 선재훈, 김영환(당시 파리 특파원) IOC로 초청했다.

 

(20245월 현재 역대 한국 IOC위원 12/3대 한국 IOC위원이 백상 장기영 회장)

 


장기영 IOC 위원이 늘 KOC 행사에 와서 축사를 한 까닭에 김택수 위원장과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인 필자는 자주 만났다. IOC 위원은 원래 KOC(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IOC를 대표하는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 IOC 위원에게 자기나라 권익 대변이 우선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심지어 한국은 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면 희생양으로 삼기도 하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사마란치는 장기영 사망 후에도 동기생인 장기영 일가와는 인연을 올림픽을 통해 유지했다. 사마란치는 장기영 묘소에도 찾아갔는데 몇 년 후에 장강재 회장이 사망하자 다시 이 묘소를 찾기도 했다. 그리고 장재구, 장재국, 장재근 형제들과 장강재 회장 부인(문희)은 신라호텔에서 대접했고,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장재국 사장을 귀빈으로 초청하기로 했다. 88올림픽이 인연이 돼 코리아타임즈의 정태연 사장을 IOC의 신문분과위원으로 위촉한 바도 있다. 늘 사마란치는 장강재같이 인품이 좋은 사람이 IOC 위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장강재 회장은 사양했다. 툭하면 IOC 위원이 되겠다고 자가발전들을 하는 요즘과는 참 달랐다.

지금 로잔의 IOC박물관에는 어려운 가운데에도 100만 달러를 기부한 코리아타임즈, 한국일보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현관벽에 부착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장기영 IOC 위원의 흉상이 전시돼 있다. 100만 달러를 낸다고 해서 모두 흉상이 있는 것은 아닌데 장강재 회장의 효심을 사마란치가 받아들인 것이다. 사마란치가 로잔에 IOC박물관을 지을 때 필자에게 장강재 회장에게 기부를 부탁해 보라고 해서 롯데호텔에서 만나 상의를 했더니 쾌히 승낙했던 것이다. 장기영 위원의 흉상제작과 운반 등 실무는 정태연 사장이 처리했다.

장기영의 호는 백상이다. 체육을 중시했던 고인의 뜻을 따라 한국일보는 백상체육대상을 매년 수여하는데 필자도 축사하러 매년 갔고 이승엽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스타플레이어 대부분이 백상체육대상 수상자 출신이다. 또 백상예술대상도 있어 연예인들에게 영광을 주고 있다. 지금 백상예술대상은 어마어마한 갈라쇼(Gala Show)가 되었는데 백상체육대상은 그렇게 국가의 이름을 빛낸 선수들에게 큰 영광을 주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술대상이 부럽기도 하고 체육대상의 미흡함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백상체육대상이 계속 이어져 고맙기만 하다. 필자도 88서울올림픽 후에 아호 윤곡(允谷)을 따서윤곡여성체육대상을 매년 수여하고 있다.

1976
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필자는 KOC책임자로 뮌헨 공항에 도착하게 됐다. 그런데 알래스카의 강설로 비행기가 다섯 시간이나 지연돼 파리서 갈아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뮌헨 도착은 밤 8시쯤이 됐다. 그런데 우리 태권도 사범들과 함께 장기영 IOC위원이 서서 기다리고 있어 놀랐다.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장기영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인간적이다. 이때 함께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에 갔다. 호텔은 인스부르크와 티롤이 있었는데 하나는 IOC, 하나는 NOC호텔이었다. 필자를 호텔 조찬에 초대하기도 한 장기영은 매일 오징어를 입에 물고 다니기도 했다. 한식을 달라고 했는데 마침 주위에 한식당도 없었다. 그래서 태권도 사범인 이경명이 매일 아침은 한식을 준비해 드렸다.

곧이어 76년 여름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21회 하계올림픽이 있어 김택수 KOC 위원장과 필자는 한국선수단 60명을 끌고 몬트리올로 갔다. 한번은 IOC A, NOC B 카드가 귀빈석에 앉게 돼 있는데 장기영 위원과 김택수, 필자가 지정석에 앉고 박종규, 이낙선 등 경기단체 회장은 신분증 없이 대사관이 특석표를 사서 안내하는 바람에 자리가 좀 떨어졌다. 이에 박종규 회장이 화가 난 모양인지 IOC, KOC 놈들 운운하는 욕설이 들렸다. 그래서 필자가가서 이리 오도록 할까요라고 하니 장 위원이우리도 통제 받는데 놓아 두시오하고 경기가 끝난 후 거기까지 올라가서 말없이 악수만 하고 떠났다. 그 당시 박종규는 안하무인이었다. 김택수 회장은 자기 아들한테나 앉아서 악수하지 아무한테나 그럴 수 있느냐고 나중에 화를 내기도 했다.

1977 4월 이원경 KOC 부위원장과 함께 아이보리코스트에 있는 아비장에서 ANOC 총회가 킬라닌 IOC 위원장 주재로 있었다. 거기에 갔다 오니 장기영 위원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와 북아현동 사택으로 조문을 갔다.

장기영은 정치인, 언론인, 체육인, 문화인, 경제인으로 한국이 어려울 때 여러가지 역할을 했다. 장기영은 갔지만 그가 시작해 놓은 일은 여전히 역사로 굳건히 남아있다. 장기영은 1964년 정일권 내각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임명되어 3년 반 동안 산업의 근대화와 경제자립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힘을 썼다.

금리 현실화와 유리창 행정, 연탄의 흑백논쟁 등 숱한 일화를 남기면서 한국경제의 고도 성장에 기틀을 잡았다. 1966년 필자가 UN 대표부에 근무할 때 며칠 뉴욕을 방문해 경제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도 외환 환율 걱정을 하며 수시로 서울에 연락하는 등 아주 바빴다.

그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과 1965년 방미, 그리고 66년 태국 등 아시아 제국 방문에도 수행, 경제외교에도 힘썼다. ·일국교정상화를 위하여 막후에서 일하여 왔으며 한·일간 현안문제 타결을 위해 1969년 필자가 아직 청와대 있을 때 대통령 특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같은 해 한·일 협력위원회를 창설, 창립총회 부의장도 되었다.

1971
년 공화당 종로 지구당 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1973 9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기도 했다. 또 한국일보를 통한 나무심기운동으로 새빨간 산이 오늘의 푸른 산이 되는 기틀 만들기에 이바지했다. 언젠가 언급한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타고 귀경하다가 동그랗게 빨간 산 위에 서 있는 국기원을 보고 나무가 없다하자 한국일보는 5000그루를 심어주기도 했다. 지금 푸르른 국기원에는 장기영의 도움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10만 어린이 부모찾기 운동을 벌이는 등 민족분단의 서러움과 이산가족문제에도 비상한 관심을 쏟아왔는데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서울 측 공동위원장 대리로 취임, 남북 대화와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 데도 앞장섰다.

장기영의 시절에는 한 사람이 한 두 가지 일만 하면 안 될 때였다. 장기영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경제인, 정치가, 문화인, 체육인 그리고 언론인 어느 쪽으로 봐도 그는 한국 근대화를 이끈 대표적인 거인이었다.

IOC 수석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4. 5. 11. 12:12

IOC Culture and Olympic Heritage Newsletter May 2024 (OST: Olympic Story Telling by Prof. Rocky Kang-Ro YOON)

 

최근 IOC공식요청으로 기고한 글이 IOC공식 Newsletter 5월 특집호에 실렸습니다. 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IOC공식 Newsletter에 기고한 글인 셈입니다.

 

Paris 2024올림픽특집으로 올림픽 문화와 헤리티지 내용(ParisLausanne)을 상당히 짜임새 있고 비중 있고 정교하게 디자인한 그림과 설명으로 구성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균형 잡힌 기사와 내용으로 풍부한 읽을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필자는 Reminiscences of Paris and Tribute to the Former French President Jacques Chirac who loved most the Olympic Games in Paris”란 제목의 Paris와 관련된 추억과 에피소드를 진솔하게 기술하였는데 2008년 올림픽유치심사를 위한 IOC평가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으로 특히 Paris에서 현장실사 및 회의에서 경험했던 여러 가지 정담과 당시 Jacques Chirac프랑스 대통령 궁(Palais d”Elysee)예방 시 대통령이 칭찬하였던 제 불어 어휘에 대한 일화도 소개하였습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4. 5. 10. 00:25

[IOC ANOC전임회장 Sheikh Ahmad에게 윤리강령위반죄로 15년 활동 및 자격정지처분을 내린 내막은?]

 

 

20245월 들어 지난 30년이상 국제스포츠계 거물로서 OCA(30년간)와 추후 ANOC(10년간) 아시아와 전세계에 스포츠정치력을 과시해온 쿠웨이트의 Sheikh Ahmad의 몰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Sheikh Ahmad Al-Fahad Al-Sabah)

 

 

Sheikh Ahmad Al-Fahad Al-Sabah가 윤리규정위반으로 인해(for ethical violations)향후 15년 간 IOC내 그 어쩐 직함도 갖지 못하도록 금지조치가 실행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Christophe De Kepper IOC사무총장이 전체 IOC위원들에게 보낸 서한은 IOC집행위원회가 Sheikh Ahmad에 대하여 스위스 법정 건과 관련하여 내린 자격정지 및 금지 결정사항을 담고 있다고 Reuters가 보도하였다고 합니다.

 

53일 자 Christophe de Kepper IOC사무총장이 발송한 서한의 주요 골자는 “IOC집행위원회는 Sheikh Ahmad Al-Sabah가 자신의 IOC위원 선서에 대한 배임과 IOC의 권익을 위험에 처하게 하면서 IOC평판에 대한 피해를 포함하여 윤리원칙위반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하였다는 결정을 내렸음("The IOC Executive Board has decided to confirm the seriousness of Sheikh Ahmad Al-Sabah's breaches of ethical principles, including a betrayal of his IOC member oath, as well as the seriousness of the damage to the IOC's reputation, which has jeopardised its interests) “그리고 결과적으로 Sheikh AhmadIOC위원으로서 받는 모든 권리와 특권과 역할기능일체를 정지시키는 제재조치가 지난 2023727IOC집행위원회가 내린 첫 자격정지결정일로부터 시작하여 15년간 기간이 적용되어 발동 되었음(And consequently, to sanction Sheikh Ahmad Al-Sabah by suspending all the rights, privileges and functions deriving from his IOC membership for a period of 15 years starting from the date of the previous sanction decision by the IOC Executive Board on 27 July 2023.)

 

석유수출국기구(OPEC)사무총장을 역임한 Sheikh Ahmad2021년 스위스법정에서 문서 위조와 엉터리 중재 죄가 유죄로 입증된 바 있으며 제네바항소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바(found guilty of forgery and sham arbitration in Switzerland in 2021. The decision was upheld by the Geneva Court of Appeal) 있는 바 궁극적으로 IOC윤리위원회는 Sheikh Ahmad가 자신의 이익만을 획책하고자 벌인 구체적인 행위가 IOC위원으로서의 상당히 비 윤리적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의견 임”(Consequently, the IOC Ethics Commission is of the opinion that the specific conduct of Sheikh Ahmad Al-Sabah in orchestrating a sham arbitration solely for his own benefit constitutes highly unethical behaviour by an IOC member)이라고 IOC윤리위원회는 결정문에서 밝혔으며(the IOC Ethics Commission said in its decision) 2023IOC집행위원회의 3년 활동금지결정에 대하여 어필함으로 IOC위원 선서 역시 어겼다고 적시하였다(also violated his oath as a member by appealing last year's IOC Executive Board decision to ban him for three years)고 합니다.

 

 

Paris 2024올림픽이 폐막되는 811일 다음날인 2024812일면 61세가 되는 Sheikh AhmadIOC 징계가 종료되는 시점에 74세가 되는데(will be 74 when the latest penalty expires) 올림픽헌장규정에 따르면 연례 개최 IOC총회는 IOC위원 선서를 위반한 위원을 제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The Olympic Charter also allows the annual meeting of IOC members to expel a colleague for betraying their oath) 있다고 합니다.

 

그는2018년 제네바 법정에서 기소된 후 IOC위원직을 스스로 자격 정지한 바 있으며(self-suspended" as an IOC member after being indicted in Geneva in 2018) 2019ANOC회장직도 내려 논 바 있다고 합니다.

 

그는 20235OCA회장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IOC가 윤리 패널로부터의 권고안을 승인한 후 3년 활동정지처분을 받은 바(banned for three years in 2023 for his alleged involvement in the Olympic Council of Asia (OCA) elections, after the IOC approved recommendations from its ethics panel) 있다고 합니다.

 

2021년 스위스 형사법정에서 위조죄로 기소된 후 IOC위원직을 이미 스스로 자격 정지시킨 바 (already been self-suspended as a member of the IOC after being convicted of forgery by a Swiss criminal court in 2021, following which)있다고 합니다

 

20241, Sheikh Ahmad와 그의 영국인 변호사와 쿠웨이트인 조력자 및 제네바 소재 변호사 등은 그들이 10년 전 확정된 엉터리 중재 건을 획책함으로 20219월 유죄판결이 확정된 바 있었다(In January, Sheikh Ahmad, his former English lawyer, a Kuwaiti aide and a Geneva-based lawyer had their September 2021 convictions for orchestrating a sham arbitration case a decade ago upheld)고 합니다.

 

제네바 상고 판사는 Sheikh Ahmad의 징역형을 2년 집행유예 판결로 감형 시켜 주었다(Appeals judges in Geneva commuted the sheikh's prison sentence to two years' probation)고 합니다.

 

Sheikh Ahmad는 한 때 스포츠정치판의 가장 영향력 있는 큰 손 중 한 명으로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IOC의 요직(IOC 올림픽 솔리다리티 위원장으로 선수들과 각국 올림픽 위원회에게 재정 기금 지원 책임을 맡기도 하였음/ also in charge of the IOC's Olympic Solidarity Fund, which provides financial support to athletes and national Olympic committees)을 거쳤으며(onc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figures in sports politics, holding key positions in the IOC) 2023년에는 쿠웨이트 국방장관으로 임명되기까지 하였다9 being appointed Kuwait's defence minister last year)고 합니다

 

그는 2015~2017FIFA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아시아축구관계 임원에게 뇌물공여모의에 연루된 것으로 Brooklyn미국 연방 검사에게 추궁 당하자 FIFA집행위원 재선 후보자리를 철회하기도(also a senior official at world football's governing body FIFA from 2015-17, until he withdrew his candidacy for re-election when he was implicated by federal prosecutors in Brooklyn in a scheme to funnel bribes to football officials in Asia) 하였다고 합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잘못을 부인하였으며 기소되지는 않았다(He denied wrongdoing and was not charged, according to AP)고 합니다.

 

 

*References:

-insidethegames

-IOC website

-AP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4. 5. 8. 11:59

[Macron프랑스 대통령, Xi Jinping중국국가주석의 Paris2024올림픽휴전(Olympic truce)지지에 감사 표명하다]

 

 

2024 56일자 외신 보도 내용입니다.

 

Emmanuel Macron 프랑스대통령은 56,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을 포함한 모든 분쟁에 Paris 2024올림픽 가간 중 휴전이라는 아이디어를 지지해 준 것에 대하여(for backing his idea of a truce in all conflicts, including the war between Russia and Ukraine, during the Paris Olympics this summer) Xi Jinping중국국가주석에게 감사를 표명하였다고 AFP(Agence France-Presse)가 보도하였다고 합니다

 

 

 

Macron프랑스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휴전을 지향하는 모종의 작업이 가능한 기회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기도(also hinted at a possible opportunity to work towards a ceasefire between Russia and Ukraine) 하면서 아마도 이러한 것이 국제법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가운데 [갈등에 대한] 지속 가능한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작업의 기회가 가능할 수 있음”(Perhaps this could be an opportunity to work towards a sustainable solution [to the conflicts] in full respect of international law) 이라고 언급하였다고 합니다.

 

XiMacron두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도발행위중단에 아시아강대국이 영향력 행사를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9 amid repeated calls from France for the Asian powerhouse to use its influence to stop Russia's actions against Ukraine) Putin 러시아대통령에 대한 중국측의 계속되어온 지원에 대하여서도 논의하였다(also discussed China's continued support for Russian leader Vladimir Putin)고 합니다.

 

올림픽휴전(Olympic Truce)BC776년 고대 그리스의 전통에서 기원하는데(an ancient Greek tradition dating back to 776 BC) 고대 그리스어로 ékécheiria이며 그 뜻은 무기를 내려 놓는 것”(laying down of arms)으로 고대올림픽개최도시국가가 공격을 받지 않고 참가선수들과 관객들이 대회참가를 위해 안전하게 여행하고 평화롭게 귀국할 수 있도록 확고히 하기 위해 올림픽대회기간과 대회 전 선포되었다(declared before and during the Olympic Games to ensure that the host city state would not be attacked and that athletes and spectators could travel safely to the Games and return peacefully to their respective countries)고 합니다.

 

1992IOC는 근대올림픽기간동안 모든 국가들이 올림픽휴전원칙을 준수하도록 촉구하는 전통을 새롭게 재개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올림픽휴전은 19931025일자 UN결의안 48/11조와 세계평화와 안전관련UN 새천년선언에 의해 재확인되었다(reaffirmed by United Nations Resolution 48/11 of 25 October 1993 and the UN Millennium Declaration on World Peace and Security)고 합니다.

 

오늘날 전세계를 둘러싼 수 많은 군사적 갈등(many military conflicts around the world)이 상존하고 있는데 20222월이래로 우크라이나영토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전쟁과 시리아, 요르단 및 이란 같은 나라들이 연루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전쟁, 북한과의 잠복된 문제들(the latent problems with North Korea) 중국과 타이완간의 관계(the relations between China an Taiwan) 등이 그것이라고 합니다.

 

Paris로부터 하루 회담으로 시작하는(starting in Paris for a day of talks) 3개국 유럽순방 중(on a three-nation tour of Europe)Xi중국국가주석은 유럽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 Ursula von der Leyen 의장과의 3자회담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5년 만에 첫 유럽방문 중인 Xi주석은 Macron대통령이 자신의 어린시절 할머니와 휴가를 즐겼던 피레네지역방문을 포함하여 2일간 프랑스에서 체류하며(spend two days in France, including a visit to the Pyrenees, where Macron spent his childhood holidays with his grandmother) 이어 모스크바와 밀접한 행보를 보여준(shown their closeness to Moscow) 헝가리와 세르비아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References:

-insidethegames

-AFP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4. 5. 7. 00:54

[IOC윤리위원회, 3년 자격정지 중이던 Sheikh Ahmad 쿠웨이트 IOC위원에 대하여 15년 추가자격정지결정발표로 사실상 IOC위원직상실 기정사실]

 

 

IOC윤리위원회가 스위스 법정 항소심에서 사기죄가 확정되고 판결 결과를 IOC윤리위원회에 제출하는 것을 거부한 후(after his Swiss conviction of fraud was confirmed by the appeals court) 한때 국제스포츠계 파워 브로커 였던 Sheikh Ahmad 쿠웨이트 IOC위원에 대하여 15년 추가 자격정지조치를 내렸다고 합니다.

 

 

(Sheikh Ahmad와 그의 친동생 Sheikh Talal/출처: insidethegames)

 

 

이러한 추가 자격정지 결정으로 인해 Sheikh AhmadIOC위원으로의 논란의 소지가 많았던 시절은 종료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the suspension almost certainly ends Sheikh Ahmad’s controversial time as an IOC member)고 합니다.

 

세게스포츠계 가장 논란의 소지가 많았던 인물들 중 한명인 쿠웨이트의 Sheikh Ahmad Al-Fahad Al-Ahmed Al-Sabah412IOC윤리위원회의 결정사항이 5월 첫째 주말 공개되었는데 그 내용은 15년 추가 자격정지 결정(was suspended by the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s Ethics Commission for 15 years in a 12 April decision that was made public late last week)이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시기에 Sheikh Ahmad의 지위를 살펴보면 그는 30년간(1991~2021) OCA회장이었으며, 6년간(2012-2018) ANOC회장이었고, 1992년 이래로 IOC위원이며 2년간(2015-2017) FIFA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뇌물수수조사와 관련하여 사임한 바(he resigned related to a bribery investigation) 있다고 합니다.

 

그는 당초 Bach IOC위원장의 실세측근으로 알려져 있었으며(known as a confidant of IOC President Bach) 다양한 시기마다 쿠웨이트의 방대한 오일달러의 힘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해당 후보들을 지지할 수 있는 능력이 발휘하였는데(given his ability to support candidates in various area with Kuwait’s vast oil wealth) 그는 쿠웨이트 석유장관, 국방장관도 역임한 바 있으며, 국제스포츠계에서 핵심 영향력 보유자, 승부사 및 정치공작잔문가로 알려져 있었다(known as a key influencer, match-maker and operative in international sport)고 합니다.

 

Sheikh Ahmad와 다른 관련자들은 쿠웨이트내 쿠데타에 다른 인사들이 연루되었다는 조작된 허위 증거와 관련하여 2018년 형사 죄로 기소된 바 있으며(criminally charged in Switzerland in 2018 related to fraud concerning evidence faked to implicate others in a coup in Kuwait) 20219월 유죄판결을 받고 202312월 유죄가 확인되어 24개월 징역형 집행유예가 확정되었다(found guilty in September 2021, confirmed in December 2023 with a 24-month suspended sentence)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스위스 연방법원에 판결을 상고하였다(appealed the finding to the Swiss Federal Tribunal)고 합니다

 

IOC윤리위원회는 항소법원의 판결 원본 전체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받지 못했다(asked for a full copy of the decision of the appeals court, but did not receive it)고 합니다.

 

Sheikh Ahmad20235월 방콕 개최 OCA총회에서 자신의 친동생인 Sheikh Talal이 출마하여 승리하였지만 무효 처리된 OCA회장선거개입 캠페인을 하지 말라는 구체적 지시를 어긴 결과로 이미 IOC로부터 3년 자격정지처분을 받았던 바(for defying a specific directive of the IOC Ethics Commission not to campaign for his brother (Sheikh Talal) at the Olympic Council of Asia elections in 2023, where Talal won, but the election was nullified)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IOC윤리위원회는 Sheikh Ahmad가 사임 하지도 않고 2023IOC가 내린 자격정지조치도 무시하였음으로 퇴출될 수 있었다고 적시하였지만(noted that Sheikh Ahmad has not resigned, challenged his IOC suspension in 2023 and could be expelled):

 

A.  그럼에도 Sheikh Ahmad Al-Sabah가 범죄혐의기소절차가 시작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스스로 자가 자격정지하기로 합의하였음으로 IOC윤리위원회는 추가로 두 번째 자격정지조치를 향후 15년 더 연장할 것을 제안하는 바임”(However, since Sheikh Ahmad Al-Sabah agreed to suspend himself from the beginning of the criminal procedure in 2018 until 2023, the IOC Ethics Commission proposes to continue the sanction of full suspension for a further second suspension period.)

 

B.  IOC윤리위원회는, 비레의원칙을 존중하면서 Sheikh Ahmad Al-Sabah에게 부여되었던 모든 권리와 특권과 기능 및 역할 전부에 대하여 향후 15년간 완전히 정지시키는 것이 IOC의 평판과 신뢰도를 보호하는데 비례적이고 적절하다고 숙고하는 바임. 이러한 조치가 이전에 IOCㅂ집행위원회가 내린 결정의 연장선상에 있으므로 이러한 징계는 2023727일부터 시작되는 것임”(The Commission considers that, respecting the principle of proportionality, full suspension of all the rights, prerogatives and functions of Sheikh Ahmad Al-Sabah for fifteen (15) years is proportionate and appropriate to protect the IOC’s reputation and credibility. As this is the continuation of the previous decision taken by the IOC Executive Board, this sanction period will start from 27 July 2023.)

 

C.  “IOC윤리위원회는 이러한 자격정기기간 동안 Sheikh Ahmad Al-Sabah가 자신의 현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재선을 위한 제안에 필요한 윤리적 판단의 근거가 충족되지 않을 것임” (The IOC Ethics Commission notes that during this period of suspension, Sheikh Ahmad Al-Sabah will not fulfil the necessary ethical criteria to be proposed for re-election at the end of his current term.)

 

마지막 문장이 중요한 대목(the last sentence is important)인데 지금 60세인 Sheikh Ahmad1991211일 이전에 IOC위원으로 선출되었음으로 정상적 상황이라면 80세까지 임기가 유지될 수(could serve to age 80 under normal circumstances, since he was elected prior to 11 December 1999)있어서 이론상 잠재적인 IOC위원 복귀는 그가 75세가 되는 2039년 가능할 수 있는 것(meaning he could potentially return to the IOC in 2039, at age 75)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IOC윤리위원회의 결정 문안을 보면 Sheikh Ahmad의 복귀의 문을 닫고 있는데(the IOC Ethics Commission decision closes the door on his return) 그 자신의 경력과 쿠웨이트내의 富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올림픽운동내에서 사용한다는 것이 효과적으로 끝난 것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indicating his career (and his use of Kuwaiti wealth to advance interests) in the Olympic Movement is effectively over) 같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30년 넘게 국제스포츠계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영향력을 과시하였지만 결국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진리에 따라 화려했지만 뒤끝이 좋지 않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될 처지에 처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 Sheikh Ahmad의 권세에 편승하여 나름 세력을 구축해 오면서 그 배경을 누려왔던 잔당들도 서서히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 다음 수순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References:

-The Sports Examiner

-IOC website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4. 5. 6. 10:28

[태권도의 올림픽종목채택과정과 정식종목 잔류에 얽힌 이야기(故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창설 총재의 회고록)]

 

 

Sydney2000올림픽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대한민국국기인 태권도는 이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K-Sport의 진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때는 올림픽정식종목 잔류 위기가 있기도 했지만 24년이 지난 오늘날 태권도는 스포츠 개발도상 국가들에게 올림픽에서 단기간 내에 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신데렐라 스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어서 IOC도 이제는 태권도를 올림픽의 안전한 핵심 종목(Core Sport)으로 간주하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합니다.

 

다음은 故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창설 총재가 본 태권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2015년 필자에 증정한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책 첫 페이지에 친필로 쓴 글)

 

 

[김운용의 산고곡심(55)]태권도, 끊임 없는 개혁만이 올림픽 잔류의 길/2013 3.25]

 

【서울=뉴시스】'한류 1' 한국의 국기 태권도가 세계화에 성공하고 1994년 파리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850이라는 전무후무한 표차로 2000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지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대체적으로 다른 종목들이 100년에 이룬 것을 태권도는 20년 만에 올림픽 종목 채택을 해냈다고 한다.

태권도는 지난 12~13일 열린 스위스 로잔 IOC 집행위의 25개 올림픽 핵심 종목(Core Sport) 선정에서 근대5종과 함께 퇴출 종목 후보군에 올라 있었고 한 종목이 나오면 들어가기 위해 가라테, 야구· 소프트볼, 우슈, 스쿼시 등이 대기하고 있었다.

얼마 전 IOC 프로그램위원회 회의에서부터 선수가 별로 없고 여성 임원도 없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이 의외로 부적격 대상이 된 후 근대5종과 태권도는 잔류하고 제1회 올림픽부터 전통을 자랑해 온 레슬링이 전격 퇴출됐다.

IOC
집행위의 결정이 알려진 직후, IOC 집행부와 통화를 했더니 이번 결정은 9월 총회의 인준 사항이나 태권도에 대한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없고, 레슬링은 총회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모른다고 밝혀 잔류 가능성을 시사했다.

결정 직후, 나는 스위스 로잔에 나가 있는 세계태권도연맹(WTF)과 우리 정부 관계자로부터 감사하며 이제 한시름을 덜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일본의 한 스포츠신문은 태권도가 잔류하게 된 것은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각별히 부탁한 덕이라고 폄훼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레슬링 퇴출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 일본, 이란, 터키와 미국에서 분노를 불러일으켜 24시간 만에 6만명의 서명자가 페이스북 캠페인에 참여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2020년 올림픽을 보이콧하라는 탄원까지 있었다.

IOC
집행위원들도 놀라서 이번 결정이 최종은 아니라며 기회가 있다고 하고, 5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있는 IOC집행위에서 가라테, 스쿼시, 레슬링 등 세 종목을 9월 총회에 제안해 총회가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은 말하기도 했다. 무마하려는 분위기다.

로게 위원장도 국제레슬링연맹(FILA) 회장을 곧 만나 방법이 무엇인지 상의하겠다고 했다. 또 상트페테르부르크 IOC집행위 기간 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로게 위원장을 만나 직접 담판한다는 베스코프 대통령 보좌관의 담화가 나왔다.

겁 많은 로게가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거리다. 국제레슬링연맹은 태국에서 비상집행위를 열고 라파엘 마르티니티 회장을 불신임하고 올림픽 복귀를 위한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회장 대행체제에 들어간 국제레슬링연맹은 윤리위원회와 여성위원회도 만들었다.

팬암(Panam· 범아메리카)연맹 회장 마리오 바스케스 라나도 고대 올림픽부터 내려온 레슬링을 다른 인기 없는 종목은 놓아두고 이렇게 퇴출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며 올림픽운동은 옛날 본연의 것이 아니라며 PASO(범미스포츠기구) 40개국은 레슬링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IOC가 위선과 분열 상태에 있으며 이번 결정도 윗선에서 한 것이라고 힐난했다.

한국의 한류 1호인 태권도는 20년 동안 남들이 100년에 걸쳐 이룬 것을 해냈다. 자력으로 1972년 국기원을 건립하고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고 경기 규정을 만들고 세계화에 박차를 가해 세계 204개국에 7000만의 태권도 인구를 거느리게 됐다.

무도(武道)에서 무도스포츠로, 경기규칙도 세계가 받아줄 수 있게 현대화하고 안전을 위해 헤드 기어와 전자호구도 개발했다. 남의 경기를 보고 좋은 것을 따면서 1971년부터 개혁을 한 것이다.

 

분립해 있던 청도(엄운규무덕(홍종수창무(이남석지도(이종우한무(이교윤) 30개관도 통합하고 각 관이 각자하던 승단 심사도 국기원으로 통일하고, 국기원에 연수원을 창설하고 사범교육제도도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는 1000여명의 공수단 장병들이 태권도시범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두 번 시범경기를 했다. 특히 바르셀로나에서는 2종류의 시범경기가 결정돼 있는데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이 헌장을 수정하면서까지 태권도를 추가해줬다.

서울올림픽 준비 기간 방한하는 미국, 소련, 중국, ·서독, 영국, 스페인 등 전 세계 체육지도자와 IOC위원, 국제연맹회장들에게 태권도를 보여줬다.

사마란치 전 위원장도 서울올림픽 개최 준비 점검차 처음 서울을 방문했던 1982 410일 국기원을 찾았고 태권도 보급 현황을 보고받았다. 그리고 팬암·아시아·아프리카 등 모든 대륙게임에 태권도가 들어갔다.

레슬링은 IOC 내 보호세력이 없고 개혁도 하지 않았다는 평가인데 태권도는 1994년 파리 IOC총회에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을 때 후원해준 세력이 아직도 IOC집행위 안에 있다. 토마스 바흐(Thomas Bach), 세르미앙 능(Sermiang NG), 크레그 리디(Craig Reedie), 존 코츠(John Coates) 4명의 부위원장과 집행위원가 이번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잔류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국제 외교에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다.

1994
년 파리 IOC총회에서 트라이애슬론처럼 태권도에 남녀 1체급씩 채택하자는 것을 남녀 4체급씩 8체급으로 수정 제안하고 1개국 최대 4체급씩 출전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한국의 메달 독식에서 오는 역풍을 막으면서 최대 4개의 금메달을 딸 수 있게 안전장치를 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박용성 전 대한체육회장이 귀국 후에 태권도가 이번에 살아남았지만 안전하지 않고 계속 개혁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고 한다.

IOC
는 현대화와 개혁을 위해 스포츠 종목 물갈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태권도도 2017년 핵심 종목 선정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권도는 그동안 조직적인 체계와 분석적인 방법론에 의거해 현대 무도스포츠로 발전해오면서 30개로 분립됐던 관과 승단심사를 통일하고 현대적인 룰을 만들고 GAISF(1925)·CISM(1976)·FISU 등 각종 국제기구에 들어가고 1980년에 모스크바 IOC총회에서 승인을 얻으면서 국제화의 길을 달렸다.

1984
LA올림픽에서의 복싱 경기를 보고 스포츠의 안전을 위해 헤드기어를 도입하고 펜싱에서는 승부 판정의 투명성을 위해 전자호구를 따와 태권도에 적용했다. 그러면서도 태권도를 스포츠화했다고 해도 도장에 가면 무도정신과 전통을 유지하면서 발전하도록 한 무도스포츠다.

태권도는 한국을 사랑한 사마란치 전 위원장 시절에 거저 들어온 행운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끊임없는 개혁이 있어야 한다. 태권도라고 해서 레슬링처럼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태권도의 인기, TV방영, 마케팅, 보급, 진흥, 전통, 국제성 등에서 타 종목보다 앞서고 육상, 수영, 복싱, 펜싱, 농구, 배구, 가라테, 우슈 등 모든 종목과 경쟁하는 자세로 사랑받는 세계의 무도스포츠가 되도록 끊임없는 개혁이 절실하다.

[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4. 5. 2. 11:38

[ANOC Bach IOC위원장, 세계육상(World Athletics)Paris 2024올림픽 육상종목우승자에 대한 미화5만불 포상금 계획에 반대 의견 표명하다]

 

2024429일 외신 보도 내용(제목: ANOC, Bach continue pressure on World Athletics’s Paris plan)입니다

 

세계각국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ANOC: Association of National Olympic Committees) Thomas Bach IOC위원장은 세계육상(World Athletics)Pris2024올림픽 육상 세부종목 별 우승자들에게 미화 5만불씩의 포상금지급계획에 반대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이러한 포상금계획이 세계 육상에는 전혀 임팩트가 없지만(no impact on World Athletics) 다른 국제연맹들을 낙담 시킬 수 있다는 것(could discourage others)입니다.

 

ANOC는 아니나다를까 하계올림픽종목국제연맹 연합회(ASOIF: Association of Summer Olympic International Federations)의 세계육상연맹이 Paris2024올림픽 육상 종목 48개 세부메달종목 개인이나 팀이나 우승자 전원에게 각각 미화 5만불씩 포상금지급계획에 대하여 맹비난하는 데에 동조하였다(unsurprisingly sided the ASPOF in condemning the World Athletics plan to pay each of its 48 gold-medal winners – individuals or teams – $50,000 prizes for the Paris 2024 Games) 고 합니다

 

더구나 427() ANOC집행위원회회의 후 발표된 성명서에는 어떤 국제연맹도 올림픽메달리스트들에게 포상금지급을 해서는 안된다고 적시하였다고 합니다:

 

적절한 부분(in pertinent part)을 살펴보면 “ANOC집행위원히는 선수들의 출중한 경기력을 지지하고 인정하는 반면, 세계 육상이 육상 세부종목 최고성적거양선수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결정이 올림픽운동의 핵심에 명시하고 있는 올림픽솔리다리티(연대)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였음”(While the Executive Council fully supports athletes being recognised for their performances, it was agreed that the decision by World Athletics to award prize money for the highest achieving athletes at the Games threatens to undermine the principles of Olympic solidarity that sit at the heart of the Olympic Movement.) “ANOCIOC가 수입금의 90%를 각국올림픽위원회와 국제연맹들을 포함한 올림픽운동구성원들에게 재분배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재분배가 또한 더 부유한 국가들과 더 어려운 국가들간의 스포츠 격차를 줄여주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올림픽대회조직에 소요되는 경비와 206개 국가올림픽위원회 선수들 참가에 수반되는 비용감당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음”(ANOC recognises that the IOC redistributes over 90% of its revenue to the Olympic Movement, including to the NOCs and IFs, appreciates that this contributes to reducing the sporting gap between richer and poorer countries, and also significantly contributes to the costs relating to the organisation of the Olympic Games and the participation of athletes from the 206 NOCs.) “올림픽대회는 다른 국제스포츠이벤트와 비교 불가이며 모든 국가 선수들이 참가함으로 결집된 올림피즘은 보호되고 보존되어야 함” (The Olympic Games cannot be compared to any other event and the unique values of Olympism, embodied by athletes from all nations, must be protected and preserved.) “ANOC집행이사회는 선수들에 대한 포상금지급여부에 대한 결정은 오롯이 국가적 차원에 국한 되어야 하며 해당NOCs와 정부가 모든 종목에 걸쳐 해당국가의 국위선양목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최선임을 강조하였음”(The Executive Council emphasised that the decision whether to award prize money to athletes should remain at a national level and is best coordinated by NOCs and governments for the purposes of celebrating national achievements across all sports.)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427() Bach IOC위원장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세계 육상(World Athletics)의 관련 행동과 거리를 두면서 국제연맹들은 공평한 수준에서 소속회원국가단체들과 선수들 모두를 다뤄야 하며 기득권층과 특권이 적은 층 간의 간격에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The international federations have to treat all their member federations and their athletes on an equal basis and to try to balance this gap between the privileged and the less or under-privileged.) “올림픽운동의 각각의 기둥역할을 하는 조직체는 각자가 맡아야 할 역할이 있는 것임. 국제연맹이 책임이 무엇인 지와 국가올림픽위원회 책임이 각각 무엇인 지는 매우 명백한 것임”(Each pillar of the Olympic movement has its role to play. It's very clear what the responsibility of an international federation is and what the responsibility of a national Olympic committee is.)이라고 언급하였다고 합니다.

 

*관찰:

 

1)  ANOCIOC위원장의 상기 성명서나 발언 내용은 Paris 2024올림픽육상종목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선수들의 경기 참가를 배제하고 Paris 2024올림픽 육상 세부종목 우승자(금메달리스트)전원과 LA2028올림픽 육상 세부종목 모든 메달리스트들(--)에게 포상금을 확대하겠다는 독자적 노선을 승인하여(charted an independent path) 추진한 Sebastian Coe가 회장으로 있는 세계 육상의 방침에 대하여 통제할 수 있는 것이 확실히 없음(These statements will certainly do nothing to rein in World Athletics)

 

2)  ANOCIOC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육상을 제외한 나머지 국제연맹에 대하여 해당종목 선수들에게 포상금 지급을 자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국제연맹을 그리 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서 하지 않을 것임. ANOC(1)FIFA(2)세계 수영(World Aquatics) (3)국제체조연맹(FIG) 등 포상금지급여력이 있어 보이는 3개 국제연맹이 포상금지급을 하지 못하도록 목하 노력 중임

 

3)  하지만 이러한 스토리는 끝난 것이 아니라(This isn’t really over) 사실상 이제 시작되고 있는 것임(In fact, it’s just starting)

 

 

 

*References:

-The Sports Examiner

-AFP News

-IOC website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4. 4. 26. 00:56

[소련(러시아)의 세계적 스포츠외교관 Vitaly Smirnov IOC부위원장에 대한 회고(“김운용이 만난 거인들책에서)]

 

 

Vitaly Smirnov는 러시아 최고의 스포츠외교관으로 김운용 IOC부위원장과 어깨를 견주며 세계스포츠계를 장악했던 세계 스포츠 지도자이며 현재 IOC명예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좌로부터 Vitaly Smirnov 러시아 IOC부위원장 겸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위원장, 당시 KOC국제부장이었던 필자, 장주호 KOC부위원장,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KOC위원장, 김성규 KOC국제본부장/1990년대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국-러시아 NOC스포츠교류협정 체결 후)

 

 

[Vitaly Smirnov (2010. 11.2) 모스크바에서 소치까지 그가 뛰었다]

 

비탈리 스미르노프(Vitaly Smirnov) IOC 위원(구 소련-현 러시아)은 소련이 1952년 헬싱키(Helsinky)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스포츠를 통한 동서냉전을 시작할 때부터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그리고 2014년 민주화된 러시아의 소치(Sochi)의 동계올림픽 유치까지, 그 긴 여정 속에서 오늘의 러시아 스포츠가 있게 한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35년 시베리아의 하바롭스크(Khabarovsk)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시베리아로 곰 사냥을 가기도 하고, 필자에게는 곰 쓸개를 갖다주곤 했다.

그는 모스크바의 사회과학대학교의 체육교육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수영, 수구(Water-polo), 테니스, 복싱을 했고, 1970년에서 1975년까지 소연방 체육성의 제1차관, 1981년부터 1990년까지 러시아공화국(대통령 옐친)의 체육장관, 1990~1992년 소련 NOC 위원장, 1992~2001년까지 러시아 NOC 위원장도 지냈다. 소연방 붕괴로 체육에 대한 소련의 강력한 국가지원체제가 없어지자 스미르노프는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 러시아 NOC를 소생시키기 위해 무척 고생을 했다.

그의 진가는 제22회 올림픽,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조직위원회(위원장은 노비코프)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드러났다. 앞서 1971년에 IOC위원이 된 바 있는 그는 대부분의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장()은 정치지도자가 맡고 실제 실무책임은 수석부위원장이 도맡아 처리하듯 모스크바올림픽의 많은 중요한 임무를 완수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은 승리국가라는 자긍심에서 이제는 스포츠에서 제일이 되겠다는 의욕으로국가 스포츠체제로 나갔다. 1980년은 미·소 냉전시대로서 두 나라가 세계의 힘을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을 때였다. 소련은 스포츠를 통해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그때 돈 80억 달러를 투자해 모스크바올림픽을 준비했다. 그런데 소련에게나 IOC에게나 큰 시련이 닥쳐왔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미국의 카터(Carter) 대통령이 각국에 올림픽 보이콧을 요청한 것이다. 당시의 IOC 위원장인 킬라닌(Killanin) 경이 카터 대통령을 만나러 가기까지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부터 올림픽 보이콧의 역사가 시작됐고, 88서울올림픽 때도 국교가 없는 소련 등 동구권의 보이콧 방지를 위해 무척 노력해야 했다.

모스크바 올림픽 때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 등 참가를 하지 않은 나라도 있었지만 정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참가한 NOC도 있었다. 영국이 대표적인 예인데 현재 2012런던올림픽 조직위원장인 세바스찬 코(Sebastian Coe)가 당시 육상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서방의 보이콧으로 킬라닌 위원장은 참가국 수를 60개국 정도 예상했는데 결국 81개국 5000명이 참가했다. 반쪽 올림픽이지만 일단 시작하니 올림픽은 역시 올림픽답게 빛이 났고, 소련은 사회주의국가로는 처음으로 국력을 과시했다. 또한 IOC총회에서는 킬라닌(Killanin)의 뒤를 이어 사마란치가 IOC 위원장에 당선되어 올림픽 중흥의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사마란치에게 아디다스의 다슬러(Dassler) 회장이 상당한 지원자금을 썼다고 한다. 또 모스크바 IOC총회에서는 세계태권도연맹(WTF) IOC승인단체가 되었다.

이 무렵 IOC의 자금은 고작 100만 달러 정도였다. 이때부터 사마란치는 재정파탄 위기에 처해 있던 IOC를 본격적으로 마케팅(Marketing)하기 시작해 오늘날의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키워냈다. 모스크바올림픽 때 미국의 NBC 방송이 8000만 달러(76년 몬트리올올림픽은 미국 ABC 2500만 달러) TV방영권계약을 했지만 미국의 보이콧으로 방영권이 취소되어 큰 손해를 봤다. 이 때문에 88년 서울올림픽의 TV방영권 교섭이 미국 NBC의 각종 까다로운 보장 요구로 고전하게 된 것이다.

 

서울올림픽 준비기간에 스미르노프는 그라모프(Gramov) 장관, 가브릴린(Gavrilin) 차관에 눌려 상당히 조심성 있게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IOC를 통해 기지개를 폈고, 러시아의 정치적 격동기에도 살아남았다.

서울올림픽 준비 차 모스크바에 갈 때마다 공식적으로는 소련 체육성이 교섭 창구였지만 개인적으로 스미르노프의 인맥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문화성, 방송위원회 등이다. 타스(Tass)통신 사장이고 고르바초프(Gorbachev)의 공보비서가 된 이그나텐카(Ignatenka)도 그의 친구다. 스미르노프는 이때 옐친(Yeltsin)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의 체육장관이었는데 얼마 안 가서 옐친의 러시아공화국 정부 개편으로 자리를 잃었다. 소련이 공산체제에서 냉전을 거쳐 옐친, 푸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실각하고 큰 변천이 있었지만 스미르노프는 노비코프(Novikov)를 도와 모스크바올림픽을 성공시켰을 뿐 아니라 그 후 러시아 NOC 위원장도 맡아 소련붕괴 이후민주 자율 NOC’ 재건에 성공했다. 필자와는 여러 가지로 협조관계를 계속 이어왔다.

2002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유치를 전후해서 소련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워졌고, 모두들 서방국가로 나오려 했다. 스미르노프는 필자가 미국에 아는 사람이 많을 터이니 자기 친구의 여식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소개를 해줬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솔트레이크 사건 때 입에 오르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모스크바에서 전화가 왔다. 자기는 너무 공격의 목표가 되어있어 그것까지 표면화되면 더 어려우니 자기 부탁이라고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없는 필자가 뒤집어썼다.

2000
년 시드니올림픽 때 태권도가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되어 경기를 관장하고 있는데 스미르노프로부터 전화가 왔다. 중국과 러시아가 결승에 맞붙었는데 금메달 수가 모자라니 러시아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필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결국 중국이 금, 러시아는 은이 돼 버린 바 있다. 시드니는 서울올림픽 때 러시아가 1, 동독이 2, 미국이 3위를 할 때와는 달랐다. 국가가 돈을 대다가 고르바초프 체제의 재정파탄으로 NOC도 스폰서를 잡아야 운영이 가능한 처지가 된 것이다. 아이스하키 등 우수한 선수는 모두 미국 프로팀으로 가버리고 스폰서도 붙지 않고 스미르노프 혼자 악전고투를 했다. 그는 올림픽의 프로화에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사마란치가 애틀랜타올림픽에 미국농구 NBA의 드림팀을 출전시키려 했을 때 강력히 반대했다. 보통 선수와 경쟁이 안 되는 불공정하고, 올림픽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리를 추구하는 사마란치에게 이것이 통할 리 없었다.

88
올림픽 때 김대중 평민당 대표가 자오즈민과 안재형의 결혼성사를 사마란치에게 부탁했듯이 88올림픽 후 한국인 최초로 피아니스트 김혜정(필자의 딸)을 모스크바 음대에 유학을 보내는 데도 국교가 없는 상태라 사마란치가 소련문화성에 요청하고 스미르노프가 대부 역할을 했다. 김혜정이 소련문화성 오케스트라와 로즈데르벤스키(Rozdervensky) 지휘로 CD녹음을 한 것도 스미르노프가 노력한 결과였다.

스미르노프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일은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 발생했다. 즉 스미르노프의 무게 있는 역할이 올림픽운동을 살리고, 실패로 낙인 찍힌 로게(IOC 위원장) 주도의 첫 번째 올림픽을 살린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렇다. 한국이 김동성 사건으로 보이콧 얘기가 나올 때였는데 러시아는 피겨스케이팅 페어종목에서 프랑스 조의 감정적인 호소와 읍소로 금메달을 놓고 큰 갈등을 빚었다. 이게 문제가 돼 며칠을 끌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솔트레이크올림픽을 비난했다. 러시아팀이 즉각 철수하고 아테네올림픽에 불참한다고 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한국팀도 솔트레이크올림픽폐회식에 불참한다는 소문이 돌아 IOC 위원장인 로게를 긴장시켰다. 필자는 로게의 청으로한국은 지금까지처럼 성공적인(These Succesful) 올림픽 폐회식에 참가한다, IOC가 초안을 잡은 성명서를 발표했다가 무엇이 성공적이냐고 MBC 등 한국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사실 우방 미국에서 9·11테러 직후에 열린 올림픽이고,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신중해야 했다. 호주심판의 부당판정을 합법적으로 ISU IOC에 항의하고, 시정조치를 기해야지 보이콧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푸틴은 솔트레이크올림픽을 행정편파와 상업주의로 인한 실패한 대회라고 공격하고, 러시아의 여당은 선수를 귀국시키고 러시아의 알루미늄 회사 루살(RUSAL)은 법적소송을 건다고 협박했다. 이때 그 모든 것을 완화, 진정시킨 것이 당시 NOC 위원장은 아니었지만 IOC 위원이었던 스미르노프였다. 이때 스미르노프는 한국과 공동전선을 펴기 원했는데, 한국의 성명서 발표는 러시아가 보이콧을 안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나중에 로게는 필자가 솔트레이크올림픽을 살렸다고 공언까지 할 정도였다. 로게는 신속히 움직여 캐나다에도 금을 주고 실격된 러시아의 크로스컨트리 선수가 실격 전에 딴 은메달 2개를 회복시켰다.

2007
년 로게는 크렘린(Kremlin)에 초대받아 갔다. 과테말라 총회에서는 직접 참석한 푸틴이 원하는 대로 소치가 한국의 평창을 제치고 2014년 동계올림픽을 따갔다. 앞서 소치도 1990년에 이미 한 번 후보도시로 나온 적이 있다.

얼마 전 스미르노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미 삼아 들으라며 모스크바에서 한국 외교관이 찾아와서 평창지지를 호소하기에너희 나라에 IOC 위원의 대부분의 존경을 받고, 또 많은 외신기자들의 존경을 받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분이 있는데 왜 거기 가서 요청하지 자기에게 와서 말하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 외교관은 서울에 보고하겠다며 갔는데 이것을 스미르노프는 코미디라고 했다.

한참 전에 모 정부 고관이 문화행사로 모스크바를 가는데 스미르노프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전화를 걸었더니 스미르노프는 소치(Sochi) 회의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필자가좀 올라오라고 요청했더니 밤에 올라와 그 다음날 한국 고관을 영접해 주었다. 그렇게 급하게 만났는데 별 이야기는 없고 인사예방이었다고 했다.

스미르노프는 IOC 집행부에서 근 20년 봉사했고 소련의 국가체제 스포츠를 맡아 모스크바올림픽을 성공시켰다. 소련의 국책대로 임무를 잘 수행한 것이다. 소련 붕괴 후에는 민주 러시아의 스포츠를 연착륙시켰고 러시아가 원하던 하계올림픽에 이은 소치동계올림픽을 20년 걸려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IOC 내에서 아직도 영향력이 지대하다.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4. 4. 25. 09:49

[브라질의 불세출 스포츠외교관 아벨란제(Havelange) FIFA회장 겸 IOC종신위원에 대한 회고(김운용이 만난 거인들 책 중에서)]

 

아벨란제(FIFA회장 중 최고 거목으로 알려져 있으며 브라질을 빛낸 최고의 스포츠외교관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는 Rio 2016올림픽 기간 중인 2016816일 향년 100세로 영면에 들어 갔습니다.

 

그는 세계스포츠계 라틴 마피아의 주축 중 한 명으로 당시 최고의 실세 그룹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는 20221229(향년 82) 암 투병 중 사망한 축구황제 Pele와 함께 브라질을 세계스포츠계에 각인한 영웅들이었습니다.

 

 

(故人이 된 브라질 축구황제 Pelé와 브라질 출신으로 작고한 Havelange FIFA회장과 함께)

 

 

 [39화 아벨란제 IOC종신위원(2010/9.28)]

 

아벨란제 하면 오늘의 FIFA 월드컵을 이뤄 놓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축구세계선수권대회(FIFA World Cup)를 단일 종목이지만 올림픽에 버금가는, 지구촌을 열광시키는 스포츠 이벤트로 격상시킨 주인공이다. 웨파컵(European Cup)도 그 규모와 열기는 거대하다. 그러면서도 IOC의 라틴 4인방 중 아직도 IOC의 유일한 종신위원으로 건재하다. 지난달 튀니지(Tunisie)의 음잘리(Mzali) 위원 사망으로 아벨란제가 1966년 전에 지명된 유일한 종신위원으로 남게 됐다.

아벨란제는 1916년생으로 지금은 94세다. 젊었을 때 수영과 수구선수로 활약했기 때문에 그런지 노령인데도 수영이 건강법이다. 1936년에는 수영, 1952년에는 수구 선수로 두 번이나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의 특징은 영어보다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이나 연설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언론이 공격해도 신경 안 쓰고 무시해 버린다. 그것이 전 세계 신문을 보면서 큰 것, 작은 것 일일이 반응을 하는 사마란치와는 대조적이다.

아벨란제는 1974년 영국의 스탄리 라우스(Stanley Raus)의 뒤를 이어 FIFA 회장이 되었고 그전에 1955년에서 1963년까지 브라질 NOC 위원장도 역임했다. 그리고 1963년 당시는 한 번 선임되면 종신이었던 IOC 위원이 됐다. 아벨란제는 88서울올림픽에도 참석했다. 당시 FIFA는 지금의 라마다호텔(당시 뉴월드 호텔)에 배정됐는데 그 호텔은 다소 격이 떨어졌다. 그래도 아벨란제는 네비올로(Nebiolo)처럼 불평이나 법석을 떨지 않았다.

IOC
와의 관계는 대체로 협조적이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후로 출전 축구선수 자격문제로 크게 충돌하기도 했다. 결국은 월드컵에 중점을 두고 23세 이상 3명은 월드컵 참가선수를 올림픽에 참가시키도록 합의를 보았지만 한때 FIFA는 올림픽을 떠난다고 협박까지 했고, 사마란치도 떠나면 할 수 없다고 맞장을 뜨기도 했다. 육상이 빠지면 올림픽에 치명타지만 축구는 안 빠져 주었으면 해도 최악의 경우 견딜만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때만 해도 기본종목으로서 육상, 수영, 체조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FIFA
TV방영권도 형편없었고 올림픽과 달리 주관방송도 없어 ISL 같은 데서 맡아서 할 정도였다. 그러나 점차 스포츠마케팅이 융성해지고 미국에 축구팀이 생기고 미국월드컵이 열리는 등 규모가 커지면서 98년 프랑스월드컵 무렵에는 아벨란제가 축구를 올림픽에 버금가는 이벤트로 성장시켰다. 아벨란제는 IOC 안에서도 초연하게 무게 잡는 사람, 예의 바른 어른이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말을 많이 하거나 권모술수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불어로 발언하면 모두 열심히 경청했다.

한국과 관계가 생기게 된 것은 한국이 뒤늦게 2002 FIFA월드컵 유치에 나서 이미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과 대결할 때였다. 이미 아벨란제는 일본 편으로 알려져 있었고, 일본이 크게 유리하다고 예상된 상황이었다. 반면 유치의 선봉에 선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김영삼 정부의 전적인 지원을 배경으로 맹활약,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를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돼 가고 있었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에 의하면 한국은 유치 비용으로 340억 원을 모금했다고 한다. 다만 부산이 또 1995 OCA 총회에서 결정될 2002년 아시안게임을 전력투구할 때고 YS부산에 내가 해준 것이 없다며 밀어붙이고 있었다. 필자 입장에서는 둘 다 한국이 따야 되겠는데 아시안게임이 95년에 먼저 결정되고 FIFA월드컵은 그 후에 결정되니 일단 부산 먼저 결정짓고 월드컵은 그 다음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왔다 갔다 하다 둘 다 안 되면 정말 곤란한 것이었다. 당시 대한체육회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95년 브라질도 올림픽 유치를 내걸고 그 전주곡으로 리우데자네이루에 IOC총회를 유치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95
년 부다페스트 IOC총회에 가기 위해 취리히(Zurich)에서 1박을 했다. 비행기 연결 사정 때문이었다. 자정이 다 되어 서울에서 전화가 와 받아보니 청와대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YS) 지금 조깅나가셨는데 40분 후에 전화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40분 후에 걸었더니 YS가 이번 총회 때 사마란치에게 자기 부탁이라 하고 이건희를 꼭 IOC 위원에 등용시키라는 것이었다. 큰일났다 싶어 부다페스트 총회에 갔더니 마침 그 총회에서는 IOC위원을 하나도 선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그 대신 아벨란제와 파디야(Padilha) IOC 위원이 추진하고 있는 리우와 필자가 제안한 서울이 99 IOC총회를 놓고 로비를 벌이게 됐다. 필자는 나름대로 지지세력들을 점검하여 운동을 벌이는데 사마란치가 나를 부르더니 리우에 양보하고 다음해 FIFA월드컵 선정 때 도움을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아벨란제가 월드컵을 보장해주고 도와준다고 약속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곤란할 것이라는 답이 나왔다. 그래서 그럼 보장도 없으니 양보할 수 없다고 했더니그럼 할 수 없으니 한 번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섰다. 서울과 리우를 비교해서 리우는 범죄가 많다고 운운했더니 사마란치는당신이 서울에 살아서 그렇지 사실은 리우가 멋있는 도시라고 했다. 또 리우는 올림픽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힘을 보태고 나서는 곳이라 서울이 우선 총회라도 유치해서 로비를 하겠다 하니 사마란치는 입장이 곤란하다 했다.

곧이어 이탈리아의 카라로(Carraro) 위원이 와서 서로 타협하면 어떻겠느냐고 하기에 필자는우리(서울) 99년에 하고 2001년을 리우에서 하자고 아벨란제에 전하라고 했다. 그런데리우가 99, 서울이 2001년에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 아벨란제의 제안이라고 해 현실성 없이 더 진전이 안 되었다. 그 만큼 아벨란제는 융통성이 없었다.

결국 투표에 들어가 5535로 필자가 이겨 99년 총회는 서울에서 하게 됐다. 리우는 영화까지 만들어 왔는데 필자는 그런 이야기 못 들었다며 형평성을 이유로 영화는 상영하지 않기로 의사진행을 조정했다. 투표가 끝나자 아벨란제는 마이크를 잡고 서울 개최를 축하하고 훌륭한 총회를 치르기를 축원한다 했고, 필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역설하고 끝냈다. 승부가 끝나면 도로 친구가 되는 미덕이 스포츠의 특성이다.

1999
년 총회 때 아벨란제는 서울에 와서 즐거운 시간을 가겼고, 2000년 봄에는 리우에서 IOC집행위원회가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드니 남북동시입장을 필자가 제안해 IOC 차원의 지원을 결의했다. 이후 20년이 걸려 리우데자네이루는 룰라 대통령이 앞장서 2016년 올림픽을 따냈고, 앞서 2014 FIFA월드컵도 가져갔다. 아벨란제 평생의 헌신과 노력이 브라질 체육, 아니 좀 더 확대하면 브라질을 오늘날의 위치에 끌어 올린 것이다.

한국도 앞으로 실용주의와 공리에 입각해서 한 번에 한 탕하는 버릇을 버리고 실패해도 성공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찾아야 할 것이다.

1996
년 애틀랜타올림픽 축구 결승도 기억에 남는다. 애틀랜타에서 한 시간 거리의 조지아 대학 미식축구장에서 결승전이 열렸는데 당초 사마란치가 축구 시상을 가고 제1부위원장인 나는 농구경기 시상을 하러 가게 돼 있었다. 그런데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메달(로마올림픽 때 안 받은 것) 시상 때문에 갑자기 스케줄이 변경돼 사마란치가 농구장에 가고 필자는 당시 백성일 대한체육회 비서실장( KOC 국제본부장)을 대동하고 헬리콥터를 타고 조지아대학의 미식축구장 결승전을 지켜봤다. 경기 후 시상 때 우승팀 나이지리아, 2위 아르헨티나 팀에 메달을 일일이 수여했고 아벨란제가 국제연맹 회장으로서 나를 따라 다니면서 꽃을 선수들에게 주었다. 사마란치가 오기로 약속돼 있다가 내가 와서 기분이 나쁜지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영접도 없고, 나는 적당히 기다리다 시상만 했는데 나도 기분이 안 좋아서 최고 스피드로 시상을 했더니, 아벨란제가 “Not too fast(너무 빨리 하지 말아)”라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어쨌든 필자는 인사도 악수도 없이 다시 애틀랜타로 돌아왔다.

아벨란제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올림픽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제로(Zero)에 가까웠던 TV방영권 수입도 수십 억 달러에 이르게 해 놓고 은퇴했다. 1999년 서울 IOC총회 때는 서울이 이미 월드컵축구도 딴 상태였고, 2002부산아시안게임도 앞두고 있었다. IOC총회 유치는 리우가 서울에 패했지만 이미 당시 브라질은 올림픽을 향해 착착 준비 중이었다.

봄에 있었던 로잔에서의 임시총회 기간에 파운드(Pound) 위원과 필자가 일촉즉발까지 격돌한 것을 알고 아벨란제는 파운드와 필자, 젠리앙 헤 누즈만 위원의 미팅을 주선해 화해시키고 여러 사람에게 2001년 위원장 선거에 나를 밀어야 된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실제 2001년 선거 때는 아벨란제가 벨기에 혈통이 좀 섞여 있었다는 이유로 로게(Rogge)를 후원했다.

마지막 서신이 온 것은 필자의 2008년 특별사면 복권소식을 듣고축하한다. 이제 모든 것이 바로잡히고 원상회복이 되어 기쁘다는 말이었다. 비록 1999 IOC총회 유치, 2002년 월드컵축구 때문에 국가이익을 놓고 격돌은 했지만 아벨란제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스포츠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손색이 없다.

축구왕국을 일으키고, 브라질 NOC 위원장에서 IOC 위원으로 가는 여정에 2014년 월드컵, 2016년 남미 최초의 올림픽을 브라질이 개최하도록 이끌었다. 룰라 대통령 말대로 아벨란제는 브라질이 G20 시대에 들어가게 한 세계스포츠계의 거인인 것이다.

IOC 수석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4. 4. 24. 10:23

[독일올림픽위원회(DOSB) Karlsruhe2029World Games 개최후보도시로 지지하다]

 

 

415일 자 외신 보도 내용입니다.

 

독일올림픽체육회(DOSB: German Olympic Sports Confederation)Karlsruhe2029년 월드게임개최 후보지로 제안하였다고 합니다

 

  

 

4월 둘째 주 금요일 DOSB2029년 월드 게임(The World Games)잠재적 후보 도시와 관련한 결정사항을 국제월드게임협회(IWGA)에 서한으로 통보하였다고 합니다.

 

통보 전에는 KarlsruheHanover 두개 도시 모두 국제종합대회인 2029년 제13회 월드 게임을 독일에서 개최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한 바(expressed their desire to host the 13th edition of this multi-sport event in Germany) 있었다고 합니다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인 Karlsruhe는 독일스포츠역사에 중요한 한 획을 긋는 동 대회를 독일에서는 2005년 제7Duisburg 월드 게임에 이어 2번째로 개최하고자 하는 선두주자로 부상한 것이라고 합니다.

 

2029년 월드게임개최도시 결정이 임박해 보입니다

 

José Perurena IWGA회장은 독일 Karlsruhe유치신청에 매우 만족하며 4월 중 그들과 긴밀하게 협업할 것임. 우리의 현재 초점이 중국 Chengdu 2025 월드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차기 대회에 대하여도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고 매우 긍정적인 신호임. 이로써 미래를 위한 우리의 계획이 더욱 순조롭게 전진해 가는 것임” (We are very pleased with the Karlsruhe's bid and will be working closely with them in the coming weeks. "While our main focus is currently on the 2025 The World Games in Chengdu, China, it is reassuring and a very positive sign that we already have a lot of interest for the next edition. This makes it easier for us to plan for the future)

 

 

 

(José Perurena IWGA회장 및 IWGA사무총장인 Joachim Gossow과 함께)

 

 

Frank Mentrup 독일 Karlsruhe시장은 독일올림픽체육회(DOSB)Karsruhe2029년 월드게임개최지로 제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이러한 결정은 Karlsruhe가 대회 유치의 특별한 면모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임: 유럽의 심장부에서의 대회는 도시 및 지역 전체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지지를 받고 있음”(This decision shows that Karlsruhe was able to assert itself with the special profile of its bid: Games in the heart of Europe, supported by the entire social spectrum of the city and the region")이라고 심정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2029년 월드게임개최도시 최종결정은 IWGA가 내리게 되어 있는데 5월초 열리는 IWGA연례총회(AGM)에서 공식 인준을 받게 괼 것이라고 합니다

 

다가오는 월드 게임은 중국 Chengdu 에서 202587~17(11일 간) 개최될 예정입니다.

 

 

*References:

-insidethegames

-DOSB website

-IWGA website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