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9. 6. 13. 11:10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의 책 "프러포즈" 독후감 -말씀에

근거한 결혼관에 대한 직관적 통찰 (Intuition)/ 두란노 203]

 

불신결혼의 긍극적 결말이 멸망이라는 예화가 성경말씀 속에 여러 군데 속속 등장합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세상 형편이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일 때가 있는 것인데 Fact로 볼 때 이세벨은 시돈왕 엣바알(Ethbaal)의 딸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도 왕이고 시아버지도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이고, 남편도 아합 왕이고, 아들도 아하시야 왕이고, 딸인 아달리야도 유다로 시집가서 다 죽여 버리고 왕이 되었다.고 하니 이세벨은 그 당시 이 땅에서 왕 제조기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냥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세벨은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일 수 밖에 없는데 믿음으로가 아니라 바알 신봉자이고 세상신봉자이지만 대를 이어가면서 세상에서 계속 잘되는 것처럼 보여지니 우리가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갈멜산 대결 때처럼 굳건히 서서 이세벨에게 기별을 보내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고 놀라운 모습으로 선포를 하면 심판이 이세벨에게 임해서 백성들이 다 놀라 넘어졌을 것이고 그 원하는 힘 있는 개혁이 전국을 휩쓸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엘리야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순간적으로 무너져 낙담하고 있는 모습에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사실 엘리야가 절망하게 된 원인은 이세벨이 너무 갖춘 막강세력자라서 하나님에게서 찾을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여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 절망한 것으로 이 세대 막강 권력자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 오버랩 됩니다.

 

2019년 6월9일 우리들교회 김양재목사님의 주일설교말씀(열왕기상 19:1~8절/ 어루만지는주님) 중 북이스라엘의 불신결혼의 끝판왕인 아합과 이세벨은 무신론자(atheist)도 불가지론자(agnostic)도 아니며, 줏대 없는 아합이 이세벨의 치마 속에서 하나님의 감추어진 경륜을 보여 주며 정신차리라고 증거한 대선지자인 엘리야를  지명수배 체포령을 내릴 것을 조치하라는 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아합-이세벨부부는 부부금슬주의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말씀 없이 아합왕-이세벨 위정자 부부가 금슬만 너무 좋은 것이 민중을 도탄(塗炭)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같이 여호와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호와를 열렬히 배격하는 믿음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둘만 좋으면 되기에, 둘만 행복하면 되기에, 우리 집만 잘되면 되기에 이 아합-이세벨 부부의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가치관으로 인해 결국은 모두가 망하고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율법교육을 받은 아합왕이 율법을 전혀 모르는 이방출신 이세벨의 코치를 날마다 받는 격인데 둘이 너무 서로 좋아하니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코치대로 아합왕은 막무가내로 엘리야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개성을 중시하는 것이 하나님 자리에 있게 되면서 인권으로 연결되기에 동성애부터 이혼, 불신결혼까지 마음대로 하고 반대하면 차별이 되는 것임을 성경 말씀 속에서 증거하고 계십니다.

 

유명 출판사 SNS계정에 한 장의 그림이 제시되었는데 그 그림에는 “바벨탑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 "교만일까? 아니다. (중략) 바로 인권이다"라는 구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면서 모든 인간의 인권이 신격화되는 것이 바벨탑 사건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인권이 아니며 “주 다스리네”이다라고 게시물에 명기하였다고 합니다. 

 

이 게시물을 본 누리꾼들은 그 곳이 기독교 사이트(site)임에도 기독교 대표사이트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채 인권의 가치를 폄하한다고 악플을 많이 달았다고 합니다.

 

이 비판이 계속되니 기독교 사이트임에도 출판사는 하루 만에 그 해당 글을 삭제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언론의 자유가 유독 기독인들에게만 억압당하는 것 같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아이가 적성검사 성별 표시란에 (1), (2), (3)기타가 있었다고 하니 이렇게 인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라고 하십니다.

 

맥글라스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사람들은 신앙이 진짜 작동하는가를 묻는다며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야기(간증)를 해줌으로써 신앙이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믿음체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면서 성경의 진리를 현대적 상황에 맞게 번역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발굴해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얘기는 전도가 교회를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신앙이 작동하는 믿음 체계를 보여줌으로 이미지와 스토리로 복음을 번역하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들 교회의 죄를 보는 간증을 하는 것, 이게 스토리이며 그래서 그것이 신앙의 작동이고 이것을 전도라고 한다는 것으로 잘 살고 학력이 높을수록 인권이 왕 노릇 하는 것을 종종 본다고 하십니다/

 

이 땅 자체가 우상이기에 도저히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는 것이며 이세벨은 그 대표적인 모델로서 육이 너무 가득 차 있어서 영이 보이질 않는다고 하십니다.

 

디도서 3 5절 말씀처럼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는 말씀처럼 오직 성령의 사역만이 강퍅한 마음을 부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해 줍니다. 

 

칼로 총과 군대의 힘으로 절대로 누구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인 것 같습니다

 

엘리야의 믿음으로 행한 일의 결과는 긴급공게 체포령이 내려져 생명까지 위협 받을 지경으로 참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몸 속에 점 하나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의 낮아짐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숨겨진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셨다(Hidden Will of God, Revealed Will of God, Effective Power of God)고 하십니다.

 

 

구원의 열매가 많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참담할 때가 참 많았던 경우가 생기는데 결국 참담함을 느끼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숨은 죄 때문이며 결국은 참담함이 올 때마다 하나씩 그런 죄를 깨닫게 하셨다는 말씀이 은혜롭습니다.

 

 

*독후감/느낀 점과 소망:

 

이 책은 김양재 담임목사님의 결혼에 대한 목회철학과 가정중수 중요성의 가치관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려 동성애와 불신결혼과 이혼이 다 반사인 이 시대 결혼이 단순히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싫어지면 불쑥 헤어지는 즉흥적 삶의 일부가 아님을 가슴에 와 닿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해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배우자를 사람이 스스로 갈라서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 해 줍니다.

수긍이 갈 수 밖에 없는 결혼생활의 실체적 진실과 결혼의 거룩한 사명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생명의 진리말씀을 가슴에 와 닿도록 풍성하게 실제 사례를 곁들여 쉽게 풀어 가르쳐 인식시켜 주고 있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천하보다 귀한 두 영혼의 결합인데 서로의 반만을 각각 취해 하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의 연합이니 당연히 고통이 따르는 것이며 생살을 잘라내는 아픔과 새로운 것이 빈 곳으로 이식되는 또 다른 아픔이 함께 동반된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결혼의 참 원리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결혼이야말로 인간이 태어나서 겪는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과 희생을 해도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 가는 성숙의 훈련소 생활이 결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 온 맘 다해, 온 정성으로 서로 보듬어 주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지경이 넓어지는 계기가 됨을 가르쳐 주는 참 지혜의 보고입니다.

결혼생활에서 내 힘을 빼고 상대방을 서로 배려하며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해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기도를 통해 일용할 말씀과 함께 나눌 사랑의 양식을 공급 받는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일평생임을 믿고 살고 누리는 가정 공동체가 하나님의 가장 복된 은혜 공동체임을 깨닫고 말씀 안에서 이루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결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지만 강제사항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로 판단하고 따를 수 있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내 기대와 욕심을 가지치기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한 분명한 결혼관으로 정해 주신 배필을 찾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날마다 우리를 유혹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5~17/the cravings of sinful man, the lust of his eyes and the boasting of what he has and does) 으로 하는 결혼은 경계의 대상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세상의 죄는 행위뿐만 아니라 내 생각과 사고와 목표와 감정까지 송두리째 다 오염시키는 근원으로 결국 하나님이 없는 생각과 비전과 목표 세움은 죄의 부산물이 될 뿐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신()결혼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또 영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학벌과 용모와 재산과 가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묵상하고 간구하여 주시는 뜻을 물어 가슴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아스가 룻과의 결혼절차를 진행하면서 기업 무를 자 1순위가 아니었기에 양보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자유함이 생겼겠지만 룻과의 결혼에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익이 없어도 믿음으로 책임을 지는 보아스의 믿음은 빈 마음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결혼을 목적으로 고엘, 기업 무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무르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순서가 옳다는 것입니다.

결혼 자체를 목적으로 믿음을 보고 헌신하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기업이신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계보를 이어가는 것이 목적이 될 때 주님께서 정하신 만남으로 돕는 배필인 히브리어 에제르와의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44)이라는 말씀이 할렐루야입니다.

인격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성품이라고 하십니다.

영적 진실성의 결과는 인내이니 결혼생활에서 언제까지나 참아내는가가 인격이고 영성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죄인이므로 날마다 회개하며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는 것이니까요.

불신결혼은 부모의 책임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너희가 좋으면 알아서 결혼하라는 생각은 영적 책임회피이며 어려서부터 쥐새끼 때부터 말씀 안에서 신()결혼의 중요성을 자녀가 스스로 깨우치고 믿음 안의 결혼을 추구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4:18)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범사에 복을 받는 인생이고 자녀의 결혼을 위해 평생 준비하는 부모의 자세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 시대 결혼관의 복음입니다.

()결혼에는 타협이란 없는 것인데 결혼도 인생도 인간적인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택자의 결혼 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신결혼이 가장 큰 악인 이유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직접적으로 막기 때문(70)이라는 불신결혼의 폐해가 심각함을 알기를 소망합니다. 

결혼은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모든 것을 떠나는 것이며 부모를 떠나고 집을 떠나고 나의 이기심과 안일함, 고집과 쾌락 그 모든 것을 떠나야 한다’(128)주님이 우리와 결혼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먼저 주거 주셨듯이, 결혼도 우리가 죽어짐 없이는 부활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참된 결혼은 한 마디로 죽어짐이다’(132)남편이 아내의 복종의 언어에서 사랑을 느끼려면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남편을 인정한다는 말을 해 주어야 하며 내 몸을 내가 주관하지 않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복종해야 한다’(165)아내는 한마다로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면 되는 것이고 또 남편은 그런 것보다는 인정 받는 것으로 좋아한다는 것에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사랑과 복종의 언어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다’(166)지나간 사연과 상처에 집착하고 지나간 것을 고쳐 보려고 하는 것이 사탄의 먹이이니 과거 치유에 매달리지 말고 아예 끊어내며 내 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짐을 내가 지고자 할 때 복종의 언어, 사랑의 언어가 나오고 부부간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173)라는 말씀. 말씀은 모든 결혼 주례사에 포함되어야 할 이 시대 최고의 주례사 중 백미라고 생각됩니다.

아프리카 선교보다 어렵다는 재혼을 하기 전에 이혼, 재혼, 삼혼을 해도 별 인생이 없음을 깨닫고 신()결혼으로 하나님 보기기에 좋았더라의 삶을 믿고 살고 누리는 인생이 여정에서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선포하는 주님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어 복된 결혼관을 지구촌 가족 모두가 공유하기를 소망합니다.

()결혼으로 다 함께 할렐루야~”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