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19년 7월21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왕상 21:1~16/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경기도 의회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성 평등 조례 개정을 통과시켰다.
성 평등 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도록 하는 것으로 동성애자의 취업을 거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악한 성 평등 조례를 교묘하게 위장하여 만들었다.
성 평등 사업에 도민 혈세가 2조7천억 사용이 예정이다.
내일부터 아침, 점심, 저녁으로 수원에 있는 경기도 의회 앞에서 일인시위나 전단지 붙이는 것을 한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
여호와께서 금하신 것을 자행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아직 기회가 있다.
제가 3년전에 동성애 옹호자들이 세미나 하는 것을 들었는데, 너무 똑똑하고 헌법 개정하는 것은 지방자치제를 공략해야 한다고 하더라. 동성애 옹호자들이 이렇게 똑똑해서 몇 년 전부터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데 우리는 그저 ‘사탄아 물러가라 ’라는 말밖에 안하고 있다.
나. 말씀 요약
아합은 모든 것을 가졌다.
어떤 사람보다도 모든 것을 허락 받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주제를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인줄 알고 여호와께 금하신 것을 계속 넘보고 있다.
오늘 나봇의 포도원이 바로 금하신 곳인데, 하나님이 금하신 것에 반응하는 인간의 군상(群像)들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1. 탐내는 아합 (1-2)
1절 처음에 ‘그 후에’(some time later)는 지난 20장에 아합(Ahab)이 그릇된 긍휼로 괴수인 벤하닷(Ben-Hadad)을 살려주었고 그로 인해 ‘너는 벤하닷의 목숨을 대신 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받고 나서 근심하고 답답해서 사마리아로 돌아 온 후다.
그런데 왔지만 회개가 안 되니까 심판의 경고를 탐욕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아합을 또 보게 된다.
‘나봇’(Naboth)이라는 이름은 열매들이라는 의미로 ‘싹트다’는 동사에서 유래가 되었다.
‘이스르엘’(Jezreel)이라는 지명이 두 번이나 사용되고 있는데 한 번은 포도원(vineyard)의 소유자인 나봇의 출신지를 말하고, 또 하나의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뿌리시다.’라는 뜻으로 부근에 풍부한 수량이 있는 샘이 있었다.
하나님이 뿌려주시는 싹트는 열매들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곳은 비옥한 약속의 땅이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안한 모습의 나봇의 포도원이 등장하는 이 목가적인 곳에서 이세벨(Jezebel )이 이 믿음의 나봇을 죽이고 다시 똑 같은 그곳에서 아합의 아들 70명이 죽으면서 평강이 산산조각 났다.
나봇의 포도원이 왜 이렇게 선택이 되었을까?
그것은 그곳이 아합의 궁에서 가깝다는 것이 문제였다.
권력자의 눈에 띄어도 안 띄어도 쉬운 게 없다.
지난주 유명한 3선 국회의원의 자살소식이 있었다. 아주 똑똑해서 행정고시까지 패스한 그 분도 공무원 하다가 권력자 눈에 띄어 개국공신이 되었다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생각이다. 그분은 KBS에서 공모한 탤런트 시험에도 최종까지 갔는데 막혔다고 한다.’그대로 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1절부터 아합을 북이스라엘 왕이라고 하지 않고 사마리아의 왕이라고 하였는데 이미 평범한 백성 나봇의 왕으로는 자격을 상실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우리가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고 하지, 서울 대통령, 전라도 대통령으로 불린다면 이미 이상한 거 아닌가?
다른 성경 번역에 아람(Aram)과의 2번의 전쟁 이후에 3년간 전쟁이 없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그 내용을 인용한다면, 심판의 예언을 듣고 근심하고 답답하여 충격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어리석은 자는 망각의 동물이 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실제로 아합은 자기 힘이 아니었고 순전히 벤하닷이 술 취해서 이겼다. 그런데도 아람과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이긴 것이다. 십만 명의 군사를 이겼다.
이 사람은 불세출의 영웅 아닌가?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순신장군 정도 되나?
아합의 거리(street)가 들어서고 승승장구 해 보이는 것이 아합의 팩트아닐까? 그야 말로 악인의 형통으로 치닫게 되니 이 사람은 자기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므로 폭정을 일 삼고 사치로, 자기 과시로 모든 것을 잊고자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 심판 예언이 3년을 경과하고 있으니까 아합은 하나님에게도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니까 나를 심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외부적으로 그릇된 긍휼로 벤하닷을 살려준 아합이 이제는 내부적으로 악을 행하게 된다.
사마리아왕 아합은 국내 이스르엘(Jezreel)에 사치의 끝판왕인 상아궁으로 불렸던 별궁을 지어 겨울이면 그곳에서 지냈다.
부자들이 마지막으로 꽂히는 곳이 정원이라고 한다.
그런 아합이 자신의 별궁과 가까운 곳에 있던 나봇의 포도원을 보고 '여기다~.'라고 하는 자리가 나타난 것이다.
정원자리라고. 가슴이 뛰면서 탐을 내면서 갖지 못하면 큰 일 날 것 같이 구는 것이다.
'달라는 거 다 줄게, 땅 달라면 땅 주고 돈 달라면 돈 줄게. 나한테 줘.'(Let me have your vineyard to use for a vegetable garden, since it is close to my palace. In exchange I will give you a better vineyard or, if you prefer, I will pay you whatever it is worth." )라고 심판이 코 앞에 있는데 지금 별장 타령, 정원 타령을 하고 있는 아합이다.
러시아 대 문호 톨스토이의 그 유명한 ‘인생론’(Tolstoi’s On Life)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늑대를 만나서 급히 도망을 가다가 우물에 빠졌다. 다행히 삐죽하게 나온 나뭇가지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꿀을 따먹고 있는데 나무 한 쪽 끝에서는 생쥐 한 마리가 갉아먹고 있는데도 이 사람은 꿀 따먹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 인생론의 결론이다.
‘그러니깐 너의 포도원을 나에게 줘, 그것이 나의 푸른 정원이 되게 해.’라는 이 표현이 원문에 두 번 언급됨으로 벤하닷이 아합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처럼 그 요구할 때와 같은 표현을 썼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싶은 탐욕과 조급함은 아합도 벤하닷도 똑같다는 것이다. 신이나 불신이나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이제 갖고자 하는 탐욕은 믿어도 안 믿어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을 보게 된다.
자기가 죽을 시간, 심판 받을 시간이 재깍재깍 다가오고 있는데에도 지금 꿀을 빨아먹고 있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인생은 밑 둥지가 잘린 것과 같다.
시드는 것은 다 시간문제다.
그러니 누구의 책망이라도 잘 받아들이고 고치려고 하는 것이 심판을 예비하는 최고의 모습이기 때문에 여전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말씀 묵상이 최고로 심판을 예비하는 비결 아닐까?
여러분이 시간 낭비 같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장에도 안 들어가시고 교회도 가끔 가다 오면 바로 심판을 예비하는 비결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는 게 오늘 내일 죽어도 가장 심판을 예비하는 비결이다.
[적용]
-심판이 재깍재깍 다가오고 있는데 지금 눈 앞에 꿀 따먹으며 탐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2. 거절하는 나봇 (3-4)
나봇은 아합왕이 2절에서 포도원이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하며 그의 땅을 탐내니까 내 조상의 유산이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하면서 거절의 뜻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나봇은 ‘내 조상의 유산인데 여호와께서 금하신다’("The LORD forbid that I should give you the inheritance of my fathers.")고 대답하였다.
아주 심플한 얘기를 말씀에 의거해서 했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일개 평민이 왕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절대적인 명령과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거래는 신전국가에서 공정한 거래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나봇이 거래를 받아들인다면 로또 맞는 것이다.
뭐든 다 주겠다고 하고 유명한 정원이 되면 내 가게도 자리하나 받지 않을까? 나봇으로는 그것 하나 줌으로 어마어마한 승산이 있는 로또 맞는 것인데도 거절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별궁 근처에 땅을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게 하나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읽지 않으면 굉장히 불편, 부당해 보인다.
그러면 한 마디로 나봇은 왜 땅 파는 것을 거절했을까? 왜 거절했을까? 여호와께서 금하셨기 때문인데 왜 금하셨나?
땅은 기업(inheritance)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때 수십 년 광야생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얻게 된 땅이다.
이 땅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 약속의 기업이라 불려졌고 궁극적으로 소유권은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도, 매도, 착취가 다 금지되었는데 믿는 왕이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고 죄악된 방법으로 이를 탐내는 왕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봇이 거절을 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하는 이 포도원을 애굽의 산업을 상징하는 채소밭, 즉 정원으로 바꾸려는 아합의 행동은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한 국가의 왕인 아합이 자기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밥도 안 먹고 지금 땡깡을 부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불쌍하기까지 하다.
나봇은 이렇게 왕의 좋은 제안인 돈도 생기고 목숨도 부지할 수 있는 제안을 이렇게 쉽게 거절하는데 아합은 어찌하여 근심과 답답함(sullen and angry)이 계속되는가를 보고자 한다.
아합은 선지자의 책망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탐욕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러니 회개해야 하는 문제를 쾌락으로 풀어보고자 하니 되겠나?
자기 지위로 모든 것이 가하나 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구원 때문이다.
아합은 그런 생각이 없다.
이 포도원을 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지만 이것은 분명히 땅을 매도할 수 없다고 했다.
빌려 쓰는 게 아니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탐심이기 때문에 거절이 되지 않으면 더 큰 파멸인 것이다.
이것을 사고 팔고 했다면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짓을 했기에 여기에서 이쯤에서 아합 지파 하나 멸망하는 것으로 끝나야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작고 큰 것을 대봐야 한다.
또 한가지 이유는 아합이 자기 직분에 충실하지 못하다.
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때에는 이곳은 신전국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아합이 자신의 사명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직분에 충실할 수도 없고 직분에 충실하지 못한 이런 지도자는 권세를 가지고 죄의 유혹에 빠진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하는데 여자고 돈이고 다 말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정말 열심인 것 같다.
상아궁을 짓고 정원을 짓는다.
이것은 허영과 과시를 위한 자기 열심인 것이다.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기 위해서 갖은 책략을 다 꾸미는 것을 보면, 그것이 증거다. 지금 아람과의 전쟁이 끝났다면, 전쟁을 거친 백성들을 추스르고 복구하는 일을 해야 할 때 아닌가?
지금 상아궁과 격이 맞는 별장 만드는 일이 그리 급한 것이 아니다.
미관을 생각하면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기게 해주었는데도, 상아궁 짓는 것이 말이 되나?
왕이 백성의 이익을 위한 하나님의 법과 규례를 다 정해놓고 자기는 예외라고 하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전에는 모르는데 올라가고 보니 자기 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에게 명령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모르겠거니 자기의 권세를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다 망하는 것이다.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어렸을 때도 명령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 딸이고 아들이고 요새는 핵가족이다 보니 하나만 끼고 있으니 항상 예외가 있다. 이렇게 예쁜 내 딸, 내 아들 누가 뭐라 그래?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없는 사람이 참 문제인 것 같다.
사무엘상 8장 13-14절에서 사무엘은 왕정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왕이 백성들의 땅을 빼앗을 것이다. 백성들은 왕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으로 전락될 거다.’라고 했는데 그래도 백성들을 왕을 달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 땅을 뺏기는 상황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 요구하면 이렇게 당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저 또한 설교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것에 예외가 되어서 화장실 청소, 식당 봉사 등 예외라고 자타가 생각한다.
그러나 제가 설교준비 안하고 토요일에 매일 봉사하러 나온다면 저를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왜 제도 그런 생각을 하냐 하면, 평생 저희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했으니까 저도 보고 배운 게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합은 탐욕을 채우지 못하면, 이렇게 근심하고 답답한 표현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원어로 살펴보면,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고, 격분하고(sullen and angry)이런 뜻이라고 했다.
자살을 한 정치인도 굉장히 똑똑한 분이고 용으로 나신 분인데, 인터넷 강의로 독학을 하면서 분노조절장애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한다.
얼마나 분이 나셨으면 그렇게 바쁜 분이 자격증을 취득했겠나?
그렇지만 상담사 자격증을 가지면 뭐 하겠나?
그냥 가셨다.
복음이 나를 살리기 때문에 꼭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버려두지 마시고 죽을 거라는 발언을 하시면, ‘언제 죽을 거야? 어떻게 죽을 거냐.'라고 물어보시면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만두지 말고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죽을 거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여기에 데려오라.
그 국회의원이 한 번 이곳에 와보셨다면 그렇게 안 가셨을 거라 생각한다.
너무 안타깝다.
‘이혼 직전, 자살 직전’이 우리들의 전공이다.
그분도 3선 국회의원을 하려면 얼마나 곤욕을 치루었겠나?
자기가 순수한 사람인데 정치하다가 이렇게 됐다고 아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나 노래도 잘하시고 팝송을 어렸을 때 적어도 한 시간을 화장실 가서 불렀다고 한다. 탈렌트 시험도 붙지, 행정고시도 붙지, 서울 대학도 붙지, 도대체 안 붙는 게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유명한 사람 눈에 띄어서.. 탈랜트나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아합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저는 그래서 아합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아합이 가뭄 3년 6개월이 왔는데 얼마나 힘들었겠나?
가뭄도 힘든데 아합이 힘든 것은 엘리야 탓으로 돌리면서 엘리야를 죽이려고 쫓아 다니지 않았겠나? 이게 더 힘든 것이다.
똑같이 가뭄이 왔는데 엘리야는 이타적이지 않나?
그런데 아합은 엘리야가 말했다고 죽일 듯이 쫓아다니니 그게 병이 된 것이다. 미워하느라 뇌가 소진된 것이다.
가뭄보다 미움이 더 힘든 것 같지 않나?
게다가 섬기던 바알 선지자 850명이 죽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던 것 다 없어졌다. 우상단지 850개 없어진 것도 기가 막힌 데 벤하닷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인데도 거기도 이기고 구사일생 했는데 멘탈이 정상이었겠나?
정상 아닌 사람이 정치를 했으니 기가 막힌 것이다.
‘그 벤하닷의 생명을 대신할 것이다’는 심판의 예언으로 아합이 마음이 상해 화를 냈던 것처럼 지금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도 또 근심하고 답답해서 식음을 전폐(sulking and refused to eat )하고 있는 것이다.
나봇의 정당한 대답을 듣고도 자신의 탐욕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이 사람은 정답만 얘기하면 화를 낸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어 격분한다.
영적인 일에 둔감하고 고집과 탐욕이 있는 자들은 분노와 근심에 휩싸이기가 쉬운 것이다. 누가 말하면 듣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자기 속으로 숨고 위로 자를 찾고 내적인 충동으로 술로 도박으로 마약으로 다 피한다.
그리고 인제 밥도 안 먹고 땡깡을 부린다.
술 먹고 중독에 빠진 자들은 이유가 없는 사람이 없다.
지난 번 간증한 고집사도 외도로 끊임 없이 남친을 바꾸었지만 자기 속 우울감이 가장 큰 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누구 때문이 아니고 내 탓도 아니고 이렇게 직면을 해야 되는데 직면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예수님, 성경이 너무나 멋있는 것이다.
내 탓도 네 탓도 아니고 직면을 해서 원인을 찾아 내야 되는 것이다.
아합도 그랬지 않았을까? 늘 근심하고 답답해(sullen and angry) 한다.
이 사람이 이스라엘 왕인데도 말씀을 못 듣는다.
이것이 아버지 오므리의 우상숭배로 인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기는 듣기 싫어서 안 들었겠나? 안 들려서 듣지 못한 것이다.
장로와 백성들(all the elders and all the people)이 벤하닷의 제안을 듣지도 말고 허락하지도 말라고 했지만, 이 말도 안 들었다.
엘리야 말도 안 듣는다.
안 듣는다는 것은 못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럼 가만히 있으면 좋겠는데 죽이려고 한다.
자기한테 한마디라도 충고나 올바른 얘기를 해주기만 하면 죽이려고 한다. 엘리야도 죽이려 했고 나봇은 결국 죽였다.
자기가 원하는 것, 탐욕을 채우지 못하면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고 분노하고 화가 나고 또 격분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는 아합이 이렇게 우상숭배 하는 아버지 밑에서 왕자로 살면서 게다가 왕이 돼서 자기애 성 인격장애, 우울이 온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뇌 질환 르포인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의 저자 김영철 목사님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공감이 안 되고 감정이입 능력이 없는 자기애 성 인격 장애 (NPD) 환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반면교사가 되긴 했지만 사실 narcissism(자기애/자기도취)환자들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고학력, 공주병, 왕자 병 환자들이 많은데 완벽주의 사회적 지위도 있어서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 너무 힘든 것이다. 머리가 좋아서 상대방의 수를 읽고 논리로 자기 방어를 일삼으니까 답도 없고 약도 없다. 자기 중심 성이 이미 박혀있기 때문에 타인의 마음 따위는 안 보이는 것입이다. 공감이 안되니 남의 처지는 무시를 한다.
예를 들어서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누군가 직원이 아이디어를 딱 내면 그것을 다 듣고 있다가 ‘쓰레기 구만’이라고 이렇게 코멘트를 한 단다. 일주일 후 그 직원 앞에 나타나 그 직원이 냈던 아이디어를 자기 것처럼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젊을 때 고2,3때 만난 그녀와 5년 동거하다가 딸을 낳고 헤어졌는데, 분명 아이를 안아주는 사진도 나왔는데 자기 딸이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자소송을 하니깐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했는데 이 스티브 잡스가 타인의 업적을 훔치고 자신의 결점을 극단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혼외 자를 낳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무조건 내 의견이고 내 아이디어인 것이다. 극단적인 자기애 성은 정말 치료가 안 되는 것이 아니겠나? 나중에 인정을 했는데도 엄마와 아이를 기초수급 자로 살게 하고 엄마가 청소와 식당 일을 하는데도 500불만 생활비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 사람 정말 환자 아닌가? 자신의 약점을 극단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얘기해도 너 틀렸다고 왜? 이런 얘기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들린다. 극단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런 말을 듣거나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분노하고 격분하고 근심하는 것이 자기애 성 인격장애인데, 이 스티브 잡스는 천재이지 않나? 시장조사 장사하기 위해 이런 것 하지 않는다. 자기 의견이 최고다. 그래서 스마트폰도 둥글게 했다. 출시 직전인데 어마어마한 손해가 나고 출시 일도 늦어지는데 그는 자기가 생각하면 끝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손해를 봤는데도 대박을 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것을 도용했다고 소송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의 희생을 무릅쓰고 디자인 낸 것인데... 그분은 천재인데 그와 살면 어떻겠나? 돈이 많은데도 500불 밖에 주지 않았다.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모두가 안 통하는데 누구와 얘기를 했겠나? 그러면 '그러시면 안 돼요.' 하면서 싸워야 하겠나?
아합이 때마다 죽이려 하니 엘리야는 네 탓이야 해야 겠나?
이세벨처럼 무조건 들어줘야 하겠나?
엘리야가 아합을 사랑해서 평생을 쫓아 다녔지만 엘리야와 아합은 평생원수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엘리야 보고 문제가 있겠다고 해야 할까?
정말 엘리야에게는 사랑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 이럴 때 평생 원수가 좋은가?
평생 천생연분이 좋은가? 우리 정말 어렵습니다.
[적용]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을 거절했나? 원하다가 거절당했나?
두 개가 사실 좋은 것이다. 아예 거절을 못했는가? For example로 음란이냐, 불신결혼인가, 이혼인가. 생각을 해보라.
이런 것은 거절 당한 것이 축복인 것이다.
내가 불신결혼, 음란도, 이혼도 거절 당하는 것은 축복이다.
3. 탈취하는 이세벨(5-10)
해결사가 등장한다.
늘 영적이지 않으니 회피하고 늘어놓으면 이세벨이 짠하고 해결해주는 컨셉이다. 이세벨이 항상 마지막에 가서 해결해주니까 자기와 직면하지 않는 것이다. 이세벨은 항상 ‘아합이 최고다’라고 부르짖는다.
아합이 참 유약하다. 어떻게 보면 착할 수도 있다.
아합으로서는 ‘나봇에게도 거절을 당했어’ 하면서 이길 때는 언제고 질 때는 피해의식이 많아서 이러니까 이세벨은 '’당신이 최고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뭐라고 해도 당신이 최고야.’'라고 하니까 이것이 아합에게 정신 건강상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우리는 정신 건강 상 아무도 안 믿어줘도 부모는 믿어줘야 되고 배우자는 믿어줘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참 분량이 있는 것 같다.
이세벨은 사랑이 뭔지 모르는 ‘스카이 캐슬’형 엄마다.
아합이 유약하니까 이세벨의 말을 듣고 그런가 하면서 산 거 같다.
믿음도 없는데, 믿음도 없으니까 조선의 인조왕과 조귀인처럼. 그런 왕들이 많이 있다.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를 그리도 죽이려는 데에는 한 마음이 딱 되었다.
이세벨이 아합에게 맞추어 사는 게 이게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이세벨은 아내로서 아합의 슬픔을 위로하고 위안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합은 마치 아이가 엄마에게 이르듯이 ‘내가 나봇에게 가서 포도원을 팔라고 했더니만...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이세벨에게 고자질을 하고 있다.
꼭 엄마에게 일러 바치듯이 하니깐, 얼마나 아합이 이세벨에게 의존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18장에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멜산으로부터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니까 여호와가 참된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아합조차도 이제 엘리야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알에게 기울어져있던 북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어느 정도 돌아왔는데 이세벨 한마디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인다고 하니까 나봇의 포도원 사건도 마찬가지인 것이 나봇의 거절로 인해 도리어 아합은 북이스라엘 왕이라 그런가 억지로 할 생각은 안 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들어 누우면서 도리어 이것이 안정이 되가는 추세로 기다려지면은 이 땅을 갖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로서는 너무나 최고의 해결책인데, 그런데 안정되어 가는 이 시점에 해결사 이세벨이 등장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거절의 축복이 최고인데, 거절을 허락으로 바꿀 수 있는 계략과 권세가 있어서 이게 비극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새 핵가족이라서 ‘내 가족, 내 아들, 내 딸 누가 감히 건드려?’라는 추세다
그러니까 싸우면 제발 좀 내버려둬야 하는데 그 아내에게 남편에게 거절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 거절을 허락으로 바꿀 수 있는 계략과 권세가 있으면 네가 어떻게 우리 며느리한테 그럴 수 있어? 사위한테 그럴 수 있어? 아들한테 그럴 수 있어? 하면서 데려오지 말고 내버려두어야 한다.
계략과 권세를 쓰지 말라.
이세벨도 아합이 너무 유약하니까 때마다 도와주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나라도 좀 도와주자’라고 하니 뭔가 거꾸로 된 것이다.
믿는 아합이 이세벨을 인도해 가는 것이 아니고 안 믿는 이세벨이 아합을 계속 코치하고 있다.
일러바치는 것까지 좋았는데 지금 나봇이 내 포도원이라고, 내 포도원을 너한테 주지 않겠다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나봇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
조상의 유산이기 때문에 이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신다고 했지 내 포도원이니까 내가 주지 않겠다고 그렇게 얘기한 적은 없는 것이다.
고의적으로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과 다를 바가 없다.
하와가 ‘선악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 하셨는데 ‘죽을까 하노라?’로 바꾼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가감해서 끙끙 앓고 있는데 이것이 인격 장애가 아닌가 싶다.
나봇은 이름없는 평민이었지만 말씀을 지키려고 한 의인인 반면에 아합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아주 패역한 지도자임을 알 수 있다.
이제 해결사가 등장해서 이 말을 들었지 않나?
해결책이 또 등장한다.
7절.
남편 아합을 비꼬는 표현으로 ‘당신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것 맞아요?.’ 이 이세벨은 엣바알의 딸이잖아요? ‘아니 그까짓 것, 평민 땅 빼앗는 것, 죽이고 뺏으면 돼지.’ 하며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 왕이면 왕답게 처신하세요. 내가 포도원 찾아줄테니까, 뚝 그치고 식사해요!’ 너무 멋있다. 그래가지고 이것은 완전히 이스라엘 왕이다. 왕의 간절한 소원을 ‘내가 선물로 줄 테니까’, 이거 현모양처 아닌가?
사탄은 병 주고 약주고 수를 쓴다. 정말 분별이 어렵다. 그러므로 신 결혼이 중요하다.
8절서부터 보면 계략이 나온다.
아합의 이름으로 악한 음모가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문을 작성하고 아합의 옥쇄로 인봉을 했다.
부부가 한 몸이라고 공권력을 낭비하면 안된다.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9절에 보면,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절에 증인
이게 나봇의 죄목이다.
이스라엘 나라에 금식을 선포하는 것은 나라적인 재앙을 맞아서 공동체 속에 숨겨진 악행이나 죄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회개하는 것인데, 이 금식을 함으로 나봇이 심각한 죄를 지었다는 것처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율법대로 격식을 갖추기 위해 불량자 증인을 세우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높이 앉혔다.
정공법을 쓴다는 것이다.
돌로 쳐 죽이려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가담해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 어려워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는데 그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하니까, 이것은 돌로 쳐죽여야 할 죄인 것이다.
이세벨이 율법에 얼마나 정통 한가?
이방여자가 율법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가증하게 자기 개인적 욕심을 채우는데 철저히 이용했다.
똑똑한 사람은 주님 못 만나도 성경으로 얼마든지 욕심을 채운다.
그러니까 이런 비서, 아내가 최고 아닌가? 해결사.
[적용]
-여러분은 이런 이세벨 같이 해결사 배우자가 좋나?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배우자가 좋나?
다시 말하면, 여러분은 말은 그러지, 예쁜 여자, 나쁜 남자 좋아하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고리타분하게 생각해서 싫죠? 마음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4. 동조하는 장로와 귀족(elders and nobles)(11-16)
그의 성읍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8절에도 그 성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나봇을 죽인 사람이 그 곳에 살던 지도층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 나봇을 죽인 것이다.
12절, 이세벨의 지도대로 그대로 행했다.
그 사람들이 통보한 대상은 아합이 아니라 이세벨이다.
아무리 아합의 도장이 찍혔어도 이것은 이세벨이 한 것인 것을 다 안다. 이세벨에게 줄을 서고 있다.
이세벨 통치권에 아부하는 장로, 귀족들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막강한 왕의 권력을 거절했던 나봇이 얼마나 경건한 사람인지 얼마나 결백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을 장로, 귀족들 같은 이웃 사람들 한 사람도 나봇을 위해서 변호해주지 아니하고 다 나봇을 죽게 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 자살을 하는 것이다. 믿을 사람 없다.
15절에,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Get up and take possession of the vineyard of Naboth the Jezreelite that he refused to sell you.)는 영적인 땅 기업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가나안 여인이 거꾸로 아합보고 차지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영적인 용어도 잘 쓴다.
그리고 나봇이 죽었다(He is no longer alive, but dead.)고하는데 땅을 사고 팔고를 못하니까 자녀들까지 다 죽여야 상속자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온 일가족을 죽였다는 뜻이다. 엄청난 해결사다.
나봇의 집은 여호와가 금하신다고 포도원 안 팔았다고 순교자 집안이 되었다.
아합 집안이 후에 그곳에서 다 죽었지만 한 쪽은 순교자 집안이고 한 쪽은 처참한 심판을 당한 집안이다.
그래서 현재 고난은 잠깐이고 장차 이루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6절에
아합은 물어도 봐야 되는데 이세벨을 너무 믿어서, 그 것 생겼다고 하니깐 ‘응 알았어.’ 일어나 좋아서 간다.
그러나 성경은 여전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적용]
-여러분. 알면서도 동조하는 악은 무엇인가?
-동조하는 그룹에 있나?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목사님 간증>
제가 30 몇 년 전 남편 가기 전에 이 본문을 묵상할 때 적용한 이야기다.
남편 병원에서 다 살다가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사를 왔다. 시집살이와 병원 살이 총 12년 만에 처음으로 살림집이 생겨서 자유가 처음으로 생긴 것 같아 기가 막힌 것이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서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보면서 ‘이 핏덩이를 두고 어디 나갈 생각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열쇠 줄 생각하지 말라고. 집에서 언제든지 문 열어 주라고.’ 그러고 으름장을 놓고 나갔다.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자유가 없어야 하나? 생각하면서 큐티책을 폈는데 이 본문이었다. 나봇이 오직 여호와께서 금하셨기에 땅 팔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에 순종하여 땅을 안 팔아 죽더라. 그런데 사소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쫓는 것은 순교구나. 내가 나가고 싶고 할 일이 많아 보였지만 남편의 구원이 땅이고 기업이기에 구원을 위해 남편의 명령을 듣는 것은 죽어지는 순교의 적용이라고 생각하면서 제가 적용하기로 했다. 남편은 시간마다 제가 있는가 체크를 했다. 병원에서는 남편과 같이 있으니까 안 나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감옥도 아니고 혼자서 있으면서 안 나가기는 정말 힘들었다. 돈도 있으면서 안 쓰는 게 힘들잖아요? 이런 훈련을 하나님께서 시키셨다. 이세벨 집은 로얄 패밀리고 모든 것이 훌륭하고 왕들을 만들었지만 내가 아이들 교육으로 치맛바람 날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순교이고 구원을 이루는 일이라 생각하며 집에서 아이들 밥해주고 말자 적용하고 집에서 안 나갔기 때문에 제가 성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혼자 있으면서 안 나가는 것은 같이 있을 때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구원이 되었고 이 적용을 남들에게 나누었더니 그 당시 아시아 매거진에 이것이 영어로 번역되어 실렸었다. 이렇게 적용하시길 바란다. 나봇의 포도원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 하시지 마시고 적용하시면 된다.
다. Epilogue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에 반응하는 인간 군상은 탐내는 아합이 있고 거절하는 나봇이 있고 탈취하는 이세벨이 있다.
그리고 동조하는 장로와 귀족이 있는데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나?
죽임 당한 어린양처럼 나봇의 가정은 이 땅에서 설명할 길 없지만은 순교자의 집안이라고, 나봇의 포도원이라고 찬란하게 기록해주고 있다.
정말 현재 고난은 잠깐이다.
장차 이루어질 영광을 바라보고 여러분의 인생을 해석하시기 바란다.
[말씀 후 찬양]
<약한 나로 강하게>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기도제목>
이렇게 인생은 여러 군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스티브 잡스는 우리 인류에게 가장 이 길을 주고 갔지만, 가정에서 비교를 하지 말며 하나님은 아합도 있고 나봇도 있다.
우리는 정말 애통한 일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엘리야를 미워하면서 아합은 이세벨과 잘 산다. 우린 정말 해석을 할 수가 없다.
저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부부간에는 너무 잘 사는 것이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아니하고 나에게 붙여주신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우리 옆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저 사람은 이래서 좋은 거고 이 사람은 이래서 좋은 것이고. 구원 때문에 우리가 항상 오늘 나봇처럼 너무나 자기한테 유익이 많지만 하나님이 팔지 말라고 하니깐 심플하게 적용하는 것이 이렇게 순교를 해야 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인생이 짧기 때문에 나봇이 너무 당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귀하게 나봇의 포도원이라고 하신다.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심각한 상황 속에서 눈 앞에 꿀을 따먹으며 탐내고 있는 것 내려놓고, 금하시는 것 거절하고 해결사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찾게 해달라고.,내가 알면서도 동조하는 악이 없도록,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기도하자.
<기도하기 >
주님, 인생이 너무 힘드니까 눈 앞에는 꿀이래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인생에는 해결사 같은 이세벨이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으로 그렇게 누구 말도 안 듣는 아합이 어떤 말도 안 들리는 아합을 이세벨은 다루고 가지 않습니까? 우리는 너무 이래도 저래도 열등감이 들며 나는 믿는데, 아무도 다루지도 못하고 되는 것이 없나, 이세벨에 대해서 너무 놀랍고. 어떻게 아합은 이세벨에게 의지를 하며 갈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 나봇이 참 바보 같고. 여호와께서 팔지 말라고 해서 그냥 그 땅 안 판다고 심플하고 단순하게 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간다고 했는데 끝끝내 생색이 나고 내가 왜 이래야 되는가? 그리고 이제 힘든 것 쫌 그만하고 싶다고. 이 대단한 사람들이 계속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서 이 복음은 어디까지 들어가야 되는 것인가? 이 교회에 이런 복음이 없어서 이렇게들 믿는다고 하는데도 자살을 쉽게 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 아합과 이세벨 이런 사람들을 보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엘리야가 얼마나 이 부부를 보고 힘들었겠습니까? 우리 옆에 이렇게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내가 옳다고 얘기할 내놓을 것이 없어서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님, 참으로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면 그냥 금하면 되겠는데 왜 이렇게 쉬운 것을 온 나라가 전 세계가 일어나서 이것을 합법화하자고 하고, 주님 나봇처럼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벤하닷을 물리친 것처럼 주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주님! 우리에게 집에서나 나라에서나 힘들게 많은데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도와주시고.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부터 변하지 않아서 너무 잘 사는 사람도 많지만 비교하지 않게 도와주시고. 일생을 미움을 당하고 갈지라도 나봇처럼 순교자적인 마음으로 오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심판을 예비하는 비결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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