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18.06.14 우리들교회 구속사적 큐티란 무엇인가? 그리고 “눈 깜빡이 시인” 미즈노 겐조의 <말씀을 주세요 外> 스케치 1
  2. 2018.06.13 서울올림픽의 세계정치 진화선도(World Politics Evolution)의 획기적 전환점마련 공로(서울올림픽30주년 기념 제6탄)
  3. 2018.06.12 쇼킹 Sion2016주민투표결과 반대파장 IOC향후 동계올림픽흥행전선 먹구름 타결 책 모색 배경스케치
  4. 2018.06.11 우리들교회 “내 열심이 하늘을 찌르나?” 우리들교회 결산 나눔과 말씀요약 총정리
  5. 2018.06.11 서울1988올림픽 “Happy Ending” 사상최고올림픽(The Best Games Ever)평가 서울올림픽개최 30주년 기념 제5탄
  6. 2018.06.09 서울1988올림픽이 평창2018성공의 길을 안내하다(Seoul 1988’s on-going success story Points way forward for PyeongChang 2018)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제4편 스토리
  7. 2018.06.08 남북한 올림픽공동개최 줄다리기(Tug-of-War)협상타결조건의 변곡점과 성과(서울1988올림픽개최 30주년 기념) 제3편
  8. 2018.06.07 서울1988올림픽유치우여곡절(Ups and Downs)과 성공스토리(Success Story)올림픽개최 30주년 기념 제2편
  9. 2018.06.06 서울1988올림픽개최30주년 “쎄울 꼬레아!” (SEOUL COREA)의 유치성공 당시 대한민국 시대상 뒤돌아보기 1편
  10. 2018.06.06 우리들교회 주일설교 중 김양재목사님이 소개하신 우리들교회 목장 자기소개 "닉네임"(Nick Name)이야기 후기 스케치
말씀과 마음씀2018. 6. 14. 10:20

[우리들교회 구속사적 큐티란 무엇인가? 그리고 눈 깜빡이 시인미즈노 겐조의 <말씀을 주세요 外> 스케치]

 

 

우리들교회 게시판 자유나눔에 글을 안 올리는 것이 미덕(?)이 되어 버린 것 같아 글 올릴 때 마다 '묻자와 가로되'의 심정이 되곤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글 올리는 것이 자꾸만 이생의 자랑, 인정중독, 날 좀 보소’'의 죄를 짓는 것 같아 무척이나 망설여지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기도 한 바 있어 영적 자유함이 구속 받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은 시기질투 미움의 본능이 있기 마련이니 그냥 쿨하게 넘어가야 하는 것이 상책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은혜 받은 부분에 대하여서는 글을 올리라시는 2015년 당시 김양재목사님의 권면하심이 떠올라 오랜 만에 글을 올렸던 내용입니다. 

 

 

2015년 당시 영등포지역으로 이사온 이래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그날 큐티 본문에 입각한 새벽기도를 스마트폰으로 들으면서 출근하고 큐티내용을 여러 번 곱씹어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시간을 허락해 주시는 주님과 성령님께 감사 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큐티 본문을 읽어 숙지하고 출근 길에 새벽큐티 말씀을 청취하고 출근해서는 그날 그날의 큐티 본문을 영문성경으로 다시 한번 큐티를 하면서 생소한 지명에 대하여 찾아 보기도 하고 내용을 숙지한 다음 큐티내용을 스토리 텔링 식으로 요약해 보고 묵상하여 느껴지는 날마다 주시는 말씀의 메시지를 글로 써서 파일에 보관하기도 하였습니다.

 

 

2015 521일 새벽설교시간에는 우리들교회 최은광 목사님이 말씀을 인도하셨는데 너무나 주옥 같은 말씀이 흘러 넘치니 나도 모르게 여러 번 반복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죽는 날까지 되었다 함이 없이 말씀 보고 내 죄 보는 회개를 하는 것인데 그러므로 믿음은 예수님을 바라봄이 없이는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내가 설 수 없음을 깨닫고 사는 것이라는 구절이 구구절절 공감이 되고 은혜가 넘치는 대목입니다

 

 

그 전날(520/) 2회 우리들교회 목회자 세미나 과정 중 간증 페스티벌에서 어떤 참석자 사역자가 ‘구속사적 큐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김양재 목사님의 답변내용이 내공 깊고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적이면서 삶에서 그리고 평생 날마다 큐티에서 우러나오는 성령님의 명쾌하고 영혼을 꿰뚫기까지 하는 해석으로 들렸습니다.

 

   

                                       (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 목사님)

 

 

“구속사적 큐티란 날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보는 것 입니다.

 

나의 구원 이야기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교회와 같이 매일 말씀 보고 회개 하면서 말씀이신 예수님을 보면서 또 붙잡고, 또 붙잡고 열 번, 천 번 죄에서 다시 일어나 조금씩, 조금씩 죄를 정복해 가는 것이 바로 복음 안에서의 삶인 줄 믿습니다” Hallelujah^^

 

 

 (2014년 제1회 목회 세미나 모습)

 


 

 

 

말씀 없이는 흑암의 권세와 율법 아래에서 살면서 이 세상 가치관에 꽁꽁 묶여 단 한 걸음도 못 나가고 넘어지고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내가 바로 설 수 없음을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로마서 1017/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고 하시니 날마다 말씀 듣고 붙잡고 가는 사랑 주시는 주님의 은혜 속에서 이신칭의(以信稱義) ,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의 칭함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20세기 초반 영국 웨일즈 부흥회에서 어느 어린 소녀의 기도가 예수님 전도의 부흥을 열게 된 것처럼 날마다 나의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주님 사랑고백이 입에서,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끊임 없이 읊조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7살 때 홍역으로 전신마비가 되어 47세로 생을 마감하기 까지 40년동안 6평짜리 좁은 단 칸 방에서 누워 살면서 ‘감사는 나의 밥’ 이라며 오직 눈만 깜빡 꺼릴 수 있어 눈 깜빡이 시인이란 별명을 가진 <미즈노 겐조>의 시 두 편(새벽 큐티 설교 시 최은광 목사님 소개)이 심금을 울리는 아침나절입니다:

 

 

<말씀을 주세요>

 

‘주님, 말씀을 주세요

오늘의 말씀을 주세요

그 말씀으로 시련을 이기게 해 주세요’

 

 

<그렇지 않아요>

(1) ‘걸어가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걸어가시니까요’

 

 

(2) ‘고민을 하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함께 고뇌하시니까요'

 

 

(3) 기도 드리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나의 소원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기도하시니까요'

 

 

기복이 아닌 팔복을 간구하면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라디아서 5 22~23/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라는 9가지 성령의 열매가 우리들교회 공동체 안에서 맺혀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기업과 유업(inheritance)을 위하여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 나서 우리 주위에 빚지고 환난 당하고 원통한 한 영혼을 살리는데 죽어지고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점과 같이 낮아진 채로 찾아 오셔서 십자가 달리시어 보혈로써 나의 죄를 속량해 주시고 연약한 나를 위해 날마다 긍휼하심으로 기도해 주심에 감사 드리고 찬양 찬송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8. 6. 13. 16:27

[서울올림픽의 세계정치 진화선도(World Politics Evolution)의 획기적 전환점마련 공로(서울올림픽30주년 기념 제6)]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이후 올림픽대회에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올림픽보이콧(Olympic Boycott)이라는 망령은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따라서 서울올림픽 30주년을 맞이하는 2018년에 서울올림픽이 세계평화정착과 올림픽운동 일취월장의 Frontrunner로써 또한 평창2018동계올림픽의 한반도평화정착에 서광을 비추어줌으로 써 노벨 평화상 후보 자격이 차고도 넘친다고 사료됩니다.

 

 

 

1.    역대올림픽의 정치개입 사례:



1916년 올림픽: 베를린이 개최지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취소


1932 LA올림픽: 만주 국의 참가신청을 IOC가 거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나치독일의 유태인 선수 및 관중의 경기장 출입금지조치/아일랜드 올림픽 참가 보이콧




 

 



1940년 및 1944년 올림픽: 2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중단


1948년 런던올림픽: 아랍권의 보이콧위협으로 이스라엘을 올림픽에서 추방


1952년 헬싱키올림픽: 중국(중공) 초청에 항의하여 대만의 대회참가보이콧, 소련 40년 만에 올림픽에 다시 참가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소련의 헝가리침공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 등의 대회불참/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운하점령으로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등의 대회 보이콧/중화민국(대만) 국기(청천백일기)게양에 항의하여 중공(중국)퇴장/동서독 단일팀 참가


1960년 로마올림픽: 대만의 IOC축출을 주장하며 중공(중국) IOC 탈퇴


1964년 도쿄올림픽: IOC남아공의 대회참가를 거부/북한 및 인도네시아 개회식에서 선수단 철수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남아공 IOC에서 축출


1972년 뮌헨올림픽: 팔레스타인의 ‘검은 9월 단’이 올림픽선수촌을 습격하여 이스라엘 선수 11명 피살, 대회 30여 시간 잠정 중단/IOC에서 로디지아 축출(1980로디지아는 짐바브웨로 개칭하여 IOC복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뉴질랜드 럭비 팀의 남아공 원정에 항의하여 아프리카 26개 국 대회 보이콧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격분하여 미국 등 서방진영 67개 국과 일부 공산국가 대회 보이콧(반쪽 대회)

 


 

 



1984 LA올림픽: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복수혈전으로 소련 등 동구권 14개 국 보이콧 (반쪽 대회)

 


 




 

 

 

2.   서울1988올림픽은 올림픽 보이콧(Olympic Boycott) 종결 자: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은 정치적 보이콧이 배제된 온전한 올림픽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서진영이 분단국 수도인 대한민국 서울에서 평화와 화합의 지구촌 인류축제를 통해 올림픽에서 정치개입의 고리를 끊는 분수령과 동시에 올림픽의 앞날에 서광을 비추어준 기념비적인 대회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무산으로 보이콧했으며, 에티오피아와 쿠바가 이에 동조한 바 있으나 상대적으로 미미한 숫자의 불참으로 역대 최고올림픽’(The Best Games to date)을 확고히 하는 올림픽사의 의미심장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이후 올림픽대회에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보이콧이라는 망령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따라서 서울올림픽 30주년을 맞이하는 2018년에 서울올림픽이 세계평화정착과 올림픽운동 일취월장의 Frontrunner로써 또한 평창2018동계올림픽의 한반도평화정착에 서광을 비추어줌으로 써 노벨 평화상 후보 자격이 차고도 넘친다고 사료됩니다.

 

 

 


 4.
올림픽유치와 정치 파워 그리고 스포츠외교:


 

그러나 스포츠에 대한 정치개입사례는 최근 올림픽유치경쟁과정에서 나타난 바 있어 왔습니다.

 

 

올림픽유치를 위해 유치후보도시들은 해당국 대통령 또는 국왕을 유치 단 대표일원으로 포진하여 정치적 공세를 전개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정치개입’을 이용한 올림픽대회 자국유치에 열을 올려 온바 있었던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외교는 정치와는 별개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치와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스포츠에도 정치는 분명히 존재하며 마찬가지로 외교 또한 상존합니다.

 

 

우리는 이를 "스포츠외교"(Sport Diplomacy)라고 지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Thomas Bach IOC위원장은 북한의 평창2018 참가독려 성공의 비결(the secret of their success in encouraging North Korean participation)정치적 중립성(political neutrality)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Bach IOC위원장은 올림픽대회가 폭넓은 정치적 전개과정 전반을 무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발상("naïve" and "unrealistic" to believe the Olympic Games can ignore wider political developments)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이 엄격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claims they can do this while remaining strictly neutral)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음은 Bach IOC위원장의 요미우리 신문(The Yomiuri Shunbun)에 언급한 발언 내용입니다:

 

A. "This world is run by politics and not by sports organisations." (세계는 스포츠 기구들이 아니라 정치가 선도하고 있음)

 

B. "Therefore, to preserve the autonomy, we have to have a partnership and mutual respect. (따라서 자치 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우리는 파트너 관계와 상호 존중을 지켜가야 함)

 

C. "On the one hand, our respect for the priorities of politics, and on the other hand, their respect of the politics for the autonomy of the IOC, making them aware that we can only accomplish our mission if we have this autonomy, if we are politically strictly neutral. (한편으로는 정치의 우선선점 권 성향을 존중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IOC 자치 성 보존을 지향하는 정치적인 면 또한 존중함으로 우리가 자치 성을 보존하고 정치적으로 엄격하게 중립 성을 유지할 경우에 우리의 임무달성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주지시키고자 하는 것임)

 

D. "And what this means, you can see from the Korean issues.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한반도관련 제반 이슈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임)

 

E. "If we would not have been strictly politically neutral, we could never have achieved the joint march behind the one flag nor the joint women's ice hockey team."  (만일 우리가 엄격하게 정치적 중립 성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한반도 유일 깃발을 앞세운 남북한 공동입장이라든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구성성사는 달성불가였을 것임)

 

 




 

따라서 스포츠외교는 각국이 세계스포츠 계에서 실질적 위상강화와 비교우위를 점하고 스포츠외교를 통한 국익극대화를 도모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고도의 전술·전략이자 가장 효과적인 추진동력이기도 합니다.

 

추진동력이 제 기능을 다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서는 추진체 핵심부분이 중추적 위치에 자리매김하여야 함은 불문가지의 정석입니다.

 

 

추진동력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스포츠외교력과 위상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과는 대조적으로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며 스포츠외교 변방에 있다는 국제적 평가에 대한 중장기 전략과 대책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Reference:

 

1) Olympic Revolution by David Miller

2) 총성 없는 전쟁(윤강로 저서)

3) 하늘과 땅 동서가 하나로(박세직 저서)

 

 

 

*약력추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위원 겸 국제자문역(역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 겸 기획자문역 겸 위원장보좌역(역임)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부위촉 입학사정관(역임)

-대한민국 체육훈장 기린 장 수상 (2012)

 

 

 

<저서>

 

-War Without Gunfire/총성 없는 전쟁(국제 스포츠외교 현장 이야기)

-Sport Diplomacy Master Plan(스포츠외교마스터플랜)

-When Sport Meets the World Over Five Rings(스포츠 외교 영문 판 저서)

-Sport Diplomacy on the Scene(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 2012 2월 발간) 등 다수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8. 6. 12. 16:32

[쇼킹 Sion2016주민투표결과 반대파장 IOC향후 동계올림픽흥행전선 먹구름 타결 책 모색 배경스케치]

 

 

611일 한 외신기사제목은 “Sion2026 동계올림픽 유치철회 후 IOC, 유치도시들이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에 따른 긍정적 측면 살펴볼 것을 촉구하다” (IOC urges cities to see positives of hosting Winter Olympics and Paralympics after Sion 2026 withdrawal)였습니다.

 

 

 

IOC관계자들은 유치도시들에게 부정적 고정관념을 바꾸어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에 따른 긍정적 측면을 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urged cities to change their negative perception and see the positives of hosting the Winter Olympic and Paralympic Games)고 합니다

 

(3주간의 축제, 30년 간의 부채--à올림픽 낭비에 반대/프랑스어  입간판 내용)

 

 

610일 동계올림픽유치찬반 주민투표결과 발표에 따른Sion2026이 유치경쟁에서 철회 후(after Sion 2026 withdrew from the race following a referendum defeat yesterday) 스위스 Sion이 속한 발레 주(the Canton of Valais)정치인들이 다시는 이 지역에서 올림픽유치를 하는 일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the region may never bid again.) 경고와 함께 (IOC측의)탄원이 나온 것(the plea came)이라고 합니다

 

 

Canton주 전반에 걸쳐 유권자들이 행한 주민투표결과 US$ 1.01억 불(CHF 1억 스위스 프랑/ 1,100억원)의 기금재원방출을 거부한 후(after voters in a Canton-wide referendum rejected releasing funding of CHF100 million (£76 million/$101 million/€87 million) 이제 Sion2026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치는 붕괴되어(collapsed) 물 건너 간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Valais주 전역에 걸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을 제안된 자금사용 패키지(on the proposed funding package)반대투표를 하였는데 이는 그들의 세금의 일부가 인프라와 안전비용지불에 사용될 것임9 some of their tax money used to pay for infrastructure and security)을 인지하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Sion자체시민들의 경우 찬반여부 투표에서 61%에 해당하는 대다수가 반대투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발레 주 평의원(Valais State Councilor) Frédéric Favre는 투표부결 후 향후 발레 주가 또 다른 올림픽프로젝트를 경험할지 여부”(if Valais "will experience another Olympic project in the future" after the defeat)에 대해 장담하지 못하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인용되었다고 합니다

 

 

Sion유치도시의 유치철회(Sion's withdrawal)사태는 올림픽유치 및 전체적으로 올림픽운동에 일격을 당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가운데 아직 유치경쟁잔류 여부가 불투명하긴 하지만(although the status of several of them remains unclear) 나머지 6 2026년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치 신청도시들만 남게 되었다(, leaves six candidates in the race for the 2026 Winter Olympics and Paralympics)고 합니다

 

 

따라서 Sion은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치관련 주민투표가 부결된 가장 최근의 유럽도시가 되었으며 2013년에 2022년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치찬반여부 주민투표에서 결국 무너져버린 노르웨이 Oslo 주민들의 유치불허 전철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no bid has been given the green light in a public vote since Oslo in 2013 - an attempt which eventually collapsed anyway0이라고 합니다

 

 

Sion2026주민투표 불허방침발표 후 성명서를 통하여 IOC는 부결사태와 관련 올림픽대회 개최경비에 대한 시대에 뒤 떨어진 정보때문이라고 비난하였다(the IOC blamed the loss on "outdated information on the cost of the Games")고 합니다

 

 

다음은 Sir Craig Reedie영국 IOC위원 겸 WADA회장의 코멘트입니다:

 

 

A.  "You would think Switzerland would be an ideal destination for the Games and it is disappointing." (여러분은 스위스가 동계대회 이상적인 목적지라고 생각할 것인데 부결투표결과가 실망스러움)

 

B.  "The IOC must now make sure that all of the candidates have all the information they need going forward. (IOC는 모든 후보도시들이 그들이 유치경쟁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가 제공되도록 확고히 해야 할 것임)

 

C.  "It is also important to remind cities of how bidding for and hosting the Winter Olympics has the potential for great benefits and how it is an exciting opportunity for the city, the country and for sport in that nation." (동계올림픽유치지향목표와 더불어 개최도시들에게 엄청난 혜택이 부여될 잠재력과 더불어 개최도시와 개최국 그리고 개최국 스포츠발전을 위해 얼마나 신나는 기회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 역시 중요함)

 

 

 

Sir Craig Reedie said all candidates must be given all the information they need by the IOC ©Getty Images (Sir Craig Reedie/출처: insidethegames)

 

 

 

 

Sion2026유치도시의 주민투표 부결로 인해 유치과정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어 왔는데 특히 IOC신 규범개혁(New Norm reforms)을 통하여 유치경비와 개최비용 삭감을 위한 피나는 시도가 이루어 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게 생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80년대 올림픽운동 미래를 대비한 상업적 기반을 구축해 놓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 도사 급 스포츠 마케팅전문가(a sports marketing guru credited with laying the commercial foundations of the future of the Olympic Movement in the 1980s)Patrick Nally는 올림픽유치에 대한 기존관행은 이미 끝났으며(the traditional days of bidding were over) IOC는 이제 그 대신 올림픽대회개최에 적합한 맞춤도시를 선택해야 한다(the IOC should instead "select" a city tailored to host the Games)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다음은 Patrick Nally의 코멘트 발언 내용입니다:

 

A.  "I think we should forget bidding processes, you are not going to change people’s perception." (우리는 이제 연속적 유치과정에 대해 잊어버려야 하며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임)

 

B.  "The general public does not understand and the negative perceptions outweigh the positives. (일반대중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부정적 관념이 긍정적 측면을 압도하고 있음)

 

C.  "I cannot believe there will ever be a referendum that will go in their favour; the message is just not getting through to cities. (주민투표란 그들 선호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것으며; 해당 메시지가 유치도시들에게 골고루 전파되고 있지 않다라는 것임)

 

D.  "I think it should be a selection process rather than a bidding process. (생각하건대, 이제는 유치과정보다는 선택과정이 되어야 할 것임)

 

E.  "Cities should be elected in a manner which is financially sound, where the legacy plans are sound and take the risky elements of the bid away. (따라서 개최도시는 재정적 건전성이 있는 방식으로 선출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유산계획이 건전하고 유치위험요소들을 제거하는 방식이 바람직하기 때문임)

 

F.  "Bidding must change; the Games should be placed in the right place." (유치과정은 바뀌어야 함; 올림픽대회는 적절하고 올바른 장소에 자리매김되어야 함)

 

 

발레 주 평의원(Valais State Councilor) Frédéric Favre Valais주 거주자들의 54%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이 자금조달계획에 반대표(voted against the funding )를 던진 결과가 도출된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명한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투표참여율을 볼 때 투표주제가 모든 이의 관심을 끌었음을 보여준다손 치더라고 명백히 실망스럽다”(We are obviously disappointed with this result even if the participation rate shows that the subject interested everyone)

 

 

 

Local officials have warned Sion may never bid for the Winter Olympics and Paralympics again ©Getty Images (Sion시가지 모습/출처: insidethegmes)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IPC: International Paralympic Committee) 역시 성명서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추가적으로 반응하였다고 합니다:

 

A.  "The IPC is disappointed at the referendum result which has resulted in the Sion 2026 Executive Committee returning its mandate to organise the Olympic and Paralympic Winter Games. (IPC Sion2026 집행위원회가 결국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의무를 반환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실망함)

 

B.  "By voting against the releasing of funds, the citizens have denied Switzerland the opportunity to stage a spectacular sporting event that would have showcased the best of the country to a global audience and an event that would ultimately have transformed attitudes towards impairment and further driven social inclusion. (기금 방출여부 안건에 반대표결을 함으로써, 시민들은 스위스가 국가의 최고위상을 전 세계 관중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며 장애인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고 사회적 통합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장엄한 스포츠 제전 개최 기회를 거절한 것임)

 

C.  "At a time when reforms put in place to drive down the costs of staging the Olympic and Paralympic Winter Games are starting to deliver tangible results, residents of cities interested in staging the Games need only look as far as Pyeongchang 2018’s financial results to see that the Games can deliver a strong surplus." (개혁내용으로 인해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대회 개최비용 절감 실행방안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시기에, 대회개최에 관심 있는 도시들 거주자들은 대회개최가 탄탄한 흑자대회로 결산할 수 있다라는 평창2018의 재정적 결과 내역까지만이라도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임)

 

 

 

 

Switzerland has not hosted the Winter Olympics since 1948 ©Swiss Olympic

(스위스는 St. Moris1948이후 아직껏 동계올림픽을 치르지 못하고 있음/출처: 스위스 NOC)

 

 

 

이전에는 오스트리아의 Innsbruck가 지난 2017 10월 그러한 주민투표결과로 2026년 동계대회유치 좌절의 고통을 겪었던 가장 최근의 유치희망도시(the latest city to suffer such a defeat in October, killing their bid for 2026)였습니다

 

 

스위스 글라우뷘덴 주(the Canton of Graubünden) 거주자들의 총 60%에 해당하는 유권자들 역시 이전 라이벌 유치도시였던 Davos2026 유치도 무산(also voted against a former rival Swiss 2026 bid) 시킨 바 있다고 합니다.

 

 

2022년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치지향 스위스 글라우뷘덴 주(the Canton of Graubünden) Davos2022 주민투표도 유사하게 실패하였는바 이는 폴란드의 Krakow및 독일 뮌헨도 같은 운명이었다고 합니다

 

 

캐나다 Calgary 역시 금년 후반 또는 2019년 초반 중에 주민투표를 직면할 가능성이 농후한 편이며 스웨덴의 스톡홀름(Stockholm)과 이태리의 밀라노(Milan), 토리노(Turin) Cortina d”Ampezzo유치 역시 정치적 지지를 보장 받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좌절의 아픔을 격은 바 있는 Innsbruck가 소재한 국가인 오스트리아의 Graz와 함께 완전 문외한으로 간주되고 있는(currently considered a rank outsider) 터키의 Erzurum 및 일본의 Sapporp  3개 도시가 정도가 남아 있는 상태인데 삿포로의 경우 제반 정황상 2026년 대회 대신에 2030년 동계올림픽유치를 더 선호하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IOC는 오는 2019 9월 개최도시 선정 전인 금년10월 부에노스아이레스 개최 IOC총회에서 2026년 공식후보도시들을 승인하기로 되어 있다(due to approve official candidates)고 합니다.

 

 

*References:

-insidethegames

-Swiss Olympics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8. 6. 11. 22:04

[우리들교회 내 열심이 하늘을 찌르나?” 우리들교회 결산 나눔과 말씀요약 총정리]

 

 

신앙생활에서 성경지식과 말씀이해에 대한 요약정리로 내가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는 것은 곧,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오르겠다는 심보라고 생각되어 찔림이 걸어 들어오곤 했지만 아직도 이생의 자랑”(the boasting of what one has and does)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하고 날마다 회개합니다.

 

어제(2018 610) 주일 큐티 내용 중 베드로 후서(벧후 1:1~11)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니 감사, 감사합니다.

 

<벧후 1:5~7>

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For this very reason, make every effort to add to your faith goodness; and to goodness, knowledge;)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 (and to knowledge, self-control; and to self-control, perseverance; and to perseverance, godliness;

 

7: 경건형제 우애, 형제 우애에 사랑 공급하라(and to godliness, brotherly kindness; and to brotherly kindness, love)

 

 2011 1117, 난생처음 기독교입문과 함께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고 한 때, 두 때 그리고 다시 한 때 도합 4년이란 긴 세월을 꼬박 각종 우리들교회 특유의 빡쎈(?) 양육과 김양재목사님의 대박 설교말씀에 흠뻑 취해 교회공동체에 매진하였습니다.

 

주일예배 간증도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감사함으로 나눴습니다.

 

동시에 목사님 말씀이 꿀 송이 같이 달고 적지 못하고 듣지 못한 교인들과 공유하고자 말씀 나눔 십일조라는 나름 명목으로 설교말씀어록에 매달려 우리들교회 자유 나눔에 글 올리기에 취해서 살아왔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이 공동체 나눔이고 올바른 신앙생활이며 믿음의 가치관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특히 교회내부에서 너무 튀는 것으로 낙인 아닌 낙인(?)이 찍히고 있었나 봅니다.

 

2011~2014년 말까지 햇수로 4년 간 불철주야, 주야장창, 매번 자유 나눔에 글 올림을 지속하다가 드디어 2015 1월 초부터 글 올리는 것을 딱 끊고 주일성수와 목장공동체에만 붙어오며 칩거해 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믿음수준은 제자리 걸음입니다.

 

스멀스멀 매너리즘이 다가옵니다.

 

교회 자유 나눔 사이트에 글만 올리지 않으면 이생의 자랑이란 껍데기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교만의 옷도 벗겨지는 줄 알았습니다.

겸손과 지혜가 덤으로 오는 줄 알았습니다.

내게 걸어 들어온 고난이 모두 떠날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기복인 줄도 몰랐습니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나?"라고 하시는 목사님의 금주 설교말씀 대목이 내 믿음의 현주소를 찾아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씀이 '잘 버리고 잘 살고 잘 기다리라'는 또 하나의 보석창고의 진리어록으로 다가왔습니다.

 

30여 년간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며 수집해서 스포츠 박물관에 소장했던 모든 올림픽 관련 기념품을 미련 없이 모두 2018년 동계올림픽 빙상개최도시인 강릉시에 무상 기증함으로 덕지덕지 세계만방의 때묻은 욕심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2015 10월 프레스센터에서 평창2018동계올림픽 빙상개최도시 강릉시에 무상 기증 식/좌로부터 필자, 최명희 강릉시장)

 

 

이제는 잘 살고 잘 기다리는 훈련이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아들의 출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습니다.

 

오늘 부로 그것도 버리려고 합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는 세속적인 때가 묻어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모두 버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정말 오랜 만에 자유 나눔을 들여다 보다가 문득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모습도 버리려다가 오랜만에 정리한 2015년도 피날레(Finale) 두 주 분량의 주일설교말씀어록을 자유 나눔에 나누고 이제 시험에서 벗어 나고자 이제 그만 교회 홈페이지에는 올리지 않으려는 적용을 실천하고자 작심하였습니다.

 

날마다 욕심을 가지치기하고 한 가지씩 버리기를 원합니다. 

 

 

 

 

 

[우리들교회 김양재목사님 주일말씀어록(20151227)]

 

 

금주 주일(1227) 김양재 담임목사님의 예배말씀은 <로마서 12 1~2>로써 ‘영적 예배’란 주제의 설교 말씀이었습니다.

 

 

 

 

 (1227일 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목사님의 주일 설교모습)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 영적 진실성의 실화 예증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증거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나?’라는 말씀에 찔림이 옵니다

 

내게 걸어 들어오는 고난은 이 세상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 보라고 주신 하나님의 배려 중의 배려라고 깨우쳐 주시니 은혜롭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씀이 경건한 삶을 위해 썩어질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잘 버리고 잘 살고 잘 기다리라’는 진리의 어록으로 다가왔습니다.

 

지식과 지혜의 보물창고인 십자가의 사건을 해석하며 살아가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하시니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Sunday Christian’으로 주일예배만 사수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것이 주님을 예배당에 감금시키는 행위이며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영적 생활예배의 표본임을 상기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몸은 영이 거할 처소이므로 가장 영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성전이기도 한 우리 몸을 알코올로 술독을 만들거나 담배로 굴뚝을 만드는 행위가 얼마나 비 영적이고 불순종의 행위인지 실감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래서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나 봅니다

 

몸을 하찮은 것으로 알고 몸을 함부로 여기니까 극도로 자제하는 경건주의나 함부로 방치하여 몸을 내 던지는 쾌락주의 모두 양 극단의 폐해임을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몸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에 영적 주권을 주님께 이양해야 함에 ‘옳소이다’가 절로 나옵니다.

 

십일조(tithe)는 거룩한 신앙고백인데 수입자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의 실천이며 나머지 9/10도 거룩하게 사용함으로 주인이신 하나님께 주권이양 고백의 적용임을 알고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수입자체를 하나님께 기쁘게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라고 십일조의 진수를 정의해 주십니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과 감정과 표정도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로 알고 매 순간 삶에서 향기가 배어 나오게 되기를 원합니다

 

영적 예배는 내가 삶 가운데 죽어져 드려지는 것인데 내 자신이 산 제물이 되어 드리는 자의 삶이 담겨 있는 산 제사를 뜻하는데 형식만 갖추는 죽은 제사는 내용이 없어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결여된 헛것이라고 하십니다.

 

생활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삶에서 향기가 나게 되는 비결이라고 하십니다.

 

영적 예배는 온전한 헌신이며  reasonable worship, 즉 합당한 경배, 마땅한 섬김, 마땅한 예배로써 큐티, 가정예배, 공적 예배, 공동체 예배 그리고 생활예배를 통하여 삶의 영역에서 드리는 예배를 일컫는다고 정의해 주시니 깔끔하게 정리가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려면 몸을 드리려면 먼저 영혼의 구원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영적 예배가 회복되어야 사명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시면서 400년 간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의 때를 40년 간 광야훈련을 통해 씻어주신 것이 이 세대를 본 받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 베풀어주신 배려 중의 배려라고 일깨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시며 하나님의 교훈을 빛내고 닦기 위해 사건이 찾아 오면 날마다 말씀으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 견디고 사건을 해석함으로 성화에서 영화로 가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구원의 지혜로써 사건 해석을 위해 고난과 함께 허락된 환경이 걸어 들어온다고 하십니다.

 

‘원망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라는 간증 스토리 대목이 은혜롭습니다

 

몸을 드리기 위해 마음이 변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바꿔주셔야 가능한 것이며 마음에 탈이 나면 하나님의 진단과 처방으로 받아 마음의 변화를 꾀해야 하는데 이것이 큐티의 능력이라고 하십니다.

 

변화를 받아야 물질이 가고 물질이 가는 곳에 몸이 가고 마음이 가고 몸이 가면 다시 마음이 가는 법이므로 마음이 가야 올바르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말씀=씻는 물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 죄 가운데 있으면 평강이 없다고 하십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의 뜻이 있는 법이니 뜻을 행하면 기쁜 것이고 ‘그러므로 의 영적 생활’이 영위된다고 하십니다

 

남을 위한 경건의 연습을 통하여 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나타내기 위하여서는 욕심을 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영적 예배의 진수는 삶에 적용하여 쓰는 것인데 영적 예배를 통하여 복스런 소망으로 바뀌는 것이며 이것이 바라크의 복이고 그때에 비로서 진심으로 무릎 꿇고 주님께 기도 드리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가져갈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되찾을 수 없는 것이 삶이라고 하시니 욕심을 내려 놓고 경건한 삶을 위하여 잘 버리고 잘 살고 잘 기다리는 날마다가 되기를 기도 드리고 간구합니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8. 6. 11. 21:33

[서울1988올림픽 “Happy Ending” 사상최고올림픽(The Best Games Ever)평가 서울올림픽개최 30주년 기념 제5탄]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미국지역 TV중계권료가 $39백만 불에 ABC TV에 낙찰되었고 1984 LA올림픽 이후 미국광고시장이 활황세를 타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그 광고시장규모가 동계올림픽보다 2배 이상규모의 하계올림픽인 1988년 서울올림픽은 미국지역 올림픽 중계권료가 $10억 불에 이를 것이며 최소 $6~7억 불은 호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언론에 보도되었었습니다.

 

 

 

이것은 SLOOC(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Seoul Olympic Organizing Committee)측이 컨설턴트로 고용한 IMG(International Marketing Group)의 배리 프랭크(Barry Frank)가 미국과 한국의 시차로 인해 소위 미국의 황금 기간 대(Prime Time)에 주요 올림픽 종목경기 생중계방송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간과해 버린 상태에서 책정된 금액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슈는 곧 문젯거리로 부상되었고 또한 미국광고시장의 요구에도 부합하지 못해 올림픽 중계권료 협상 사상 최초로 같은 해에 개최되는 동계올림픽(Calgary1988)보다 액수가 적은 $3억 불로 NBC TV에 낙찰되고 말았습니다.

 

 

 

겨우 체면 유지용으로 SLOOC측이 설정한 추가발생 광고수입금 배분(Revenue-Sharing)제안만 NBC 측에 받아들여진 정도였습니다.

 

 

 

(미국 NBC TV Universal사는 서울1988올림픽에 이어 평창2018동계올림픽에도 미국지역 독점방영권 자로 참여하였으며 약 1조원의 중게권료를 IOC에 지불한 바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올림픽대회는 $55,600만 불( 6,67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실속만점의 대회로 평가 받았습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의 기금 수지계획 상 수입액을 당초 7,477억 원을 책정하였으나 이를 훨씬 상회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중 일부인 3,360억 원을 국민체육진흥을 위하여 설립된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현 국민체육진흥공단: KSPO/Korea Sports Promotion Foundation)에 증여하였습니다. 

 

 

 

서울올림픽은 20년 만에 동서양 양대 진영이 이념과 체제를 뛰어 넘어 함께 축복 속에서 참가한 평화와 화합과 전진의 올림픽으로 길이 기록되었습니다.

 

 

 

IOC의 마케팅 분야에서도 올림픽 한류’(Olympic Korean Wave)의 힘으로 새 지평을 열어준 마케팅 TOP프로그램의 발원지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애초 우려했던 테러 등 안전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안전 올림픽으로서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사마란치 IO위원장 서울올림픽 성공을 위하여 40여 차례나 방한한 바 있습니다. 사진은 이한 기자회견 중인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통역 중인 필자)

 

 

 

“The Most Universal and the Best Games Ever!”(가장 보편화한 역대 최고의 올림픽!)

 

 

 

이렇게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치러진 대회는 서울올림픽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서울올림픽은 동양의 태극(시작과 끝), 그리고 서양의 알파와 오메가(Alpha and Omega/시작과 끝)가 공존하는 극동의 타오르는 등불을 올림픽 성화에 점화하였습니다.

 

 

따라서 서울올림픽은 근대올림픽의 명실공히 진정한 의미의 부활을 가져다 준 축복과 영광(Blessings and Glory)의 대회로서 인류역사에 길이 보존되고 칭송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서울올림픽개최 30년 만인 2018년에는 평창에서 개최된 한반도 평화정착의 부싯돌이 된 동계올림픽 주최국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올림픽이여 영원하라!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8. 6. 9. 14:09

[서울1988올림픽이 평창2018성공의 길을 안내하다(Seoul 1988’s on-going success story Points way forward for PyeongChang 2018)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제4편 스토리]

 

 

아래 글은 평창2018개회식을 앞두고 평창동계올림픽 해외홍보확산을 위한 인터뷰내용입니다.

 

서울1988올림픽은 개최 전까지 대한민국 국교수교국이 60개국 남직한 상태에서 159개국이 참가하여 외교 대박(Diplomatic Jackpot)을 터뜨렸던 대한민국외교사와 한국스포츠외교사의 분기점이었습니다.

 

서울1988올림픽이후 봇물처럼 터진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 릴레이는 대한민국이 세계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첫 단추는 헝가리와의 수교였습니다.

 

서울1988올림픽은 그 당시 근 20년간 표류하고 위기에 빠졌던 올림픽과 올림픽운동을 일취월장의 화합과 대 단합 그리고 황금알 낳는 올림픽거위로 변모시킨 일등공신임에 틀림 없다고 자부합니다.

 

동서독의 통일이 서울1988올림픽 개최 다음해에 전격 성사되었으며 그 후 2년 뒤인 1991년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Michael Sergeyevich Gorbachev) 당서기장 겸 소련초대 대통령의 개혁(Perestroika) 개방(Glasnost)으로 이어지게 된 단초를 제공한 셈입니다.

 

(2008 Beijinng올림픽에서 조우한 구 소련 출신으로 당시 국제체조연맹<FIG>회장 겸 최단기 IOC위원으로 역임한 Yuri Titov회장과 함께)

 

 

소련 위성국가들 중11개 독립국가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러시아 · 우크라이나 · 벨로루시 · 몰도바 · 카자흐스탄 · 우즈베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 타지키스탄 · 키르키즈스탄 ·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젠 공화국으로, 1993년 그루지야가 가입함으로써 12개국으로 확대됨)들은 브레즈네프 독트린/(Brezhnev Doctrine)에 의해서 이어졌던 압박과 속박의 사슬을 1989 10 28일 바르샤바 조약기구 외무장관회의에서 브레즈네프 독트린이 공식적으로 폐지됨으로써 대거 자주독립하는 도화선으로 작용한 계기가 서울1988올림픽이라고 세계사 적으로 재 조명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1986 미국과 소련이 아이슬란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군축에 합의했다. 그해 소련 체르노빌에서 원자로가 폭발했다.

1988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에스토니아 등이 소련 정부에 독립을 요구했다.

1991 소련 인민대표회의가 모든 소비에트 공화국들의 독립을 허용하고, 이듬해 1 1일을 기해 소비에트 연방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출처: Daum백과)

 

 

따라서 서울올림픽은 동서 냉전 종식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30주년을 맞이한 금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어 그 의미와 기여도를 재 조명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필자가 서울1988하계올림픽과 평창2018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30년 세월을 이어 근무함으로써 대한민국 동 하계올림픽역사의 증인으로 2017년 중반기와 20181월 두 차례 서울올림픽기념관을 배경으로 미국 NBC TV와 같은 취지에서 유사한 인터뷰를 한 바 있습니다.

 

 

다음은 같은 맥락에서 해외언론대상으로 행한 영어 인터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In his final remarks during the Closing Ceremony, the then President of the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 Juan Antonio Samaranch declared the Seoul 1988 Olympic Games to be “the best and most universal Games in history”.

 

It is extraordinary to consider that 30 years on Seoul 1988 still has a legitimate claim to this title. One man who was at the heart of the first Olympic Games to take place on Korean soil, and finds himself in a similar position for the second, is certain that legacy – a word adored by the IOC – is key to this on-going success story.

 

“We deserved another gold medal for legacy, the Games gave people the idea of Korea as a developed country, it put us on the doorsteps of advanced countries,” said Rocky Kang-ro Yoon, who served as a special assistant to Executive President of the Seoul 1988 Organising Committee and is now special advisor to Hee-beom Lee, President of the PyeongChang 2018 Organising Committee (POCOG).

“Now PyeongChang 2018 will put Korea in the middle row of advanced countries.”

 

Yoon has first-hand experience of Seoul’s hard legacy benefits.

 

“I used to live in the Seoul Olympic Village Apartment,” he said. “At the time we desperately needed more residential blocks. So they served a real purpose. It became a really popular place to live, and eventually one of the most expensive areas in Seoul.”

 

For a city that was in transition, the ’88 Games came at a perfect moment. Infrastructure was needed, and provided, in the shape of the Olympic Express Highway, a vital transport artery for the growing metropolis. Large areas were gentrified, with landscaping, construction and water purification taking place in and around the Han River and Seoul Olympic Park even got its own version of London’s Hyde Park. Most crucially of all, particularly for the Olympic movement’s global image, money was left over.

 

“We had a black ink budget from the Games, a much higher surplus than  previous Games, US$350 million,” Yoon said. “We used it to create a Seoul Olympic Promotion Foundation, which acted like a bank for Korean sports.”

 

These tangible benefits were accompanied by something far more profound and ultimately, long-lasting.

 

“The Games did prompt the change in Korea to democracy, the June 29 declaration (1987) was made by Roh Tae-woo, the person who once served as President of the Seoul Olympic Games Organizing Committee (SLOOC) declared the Olympic Games open as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Yoon explained. “It was a stepping stone.”

 

This huge change, as welcome as it was, does make Yoon’s and his colleagues’ task in attempting to ensure PyeongChang 2018 replicates its predecessor’s success story a lot trickier to achieve.

 

“The government at the time was a de-facto dictatorship, so everyone, including the corporate enterprises, followed instructions,” Yoon said of Korea in 1988. “There was no conflict of interests, one word and everything was done.

 

“Now we are a democracy in full bloom, it is very difficult for the government to control anything.”

 

The financial situation was also markedly different 30 years ago. In 1988, the local organising committee (SLOOC) had control of the sale of sponsorship and TV rights – Yoon remembers travelling to New York with the late LEE Young-ho, then-Executive President of SLOOC and Sport Minister to ink a global sales agreement with the agency IMG on behalf of NBC TV and in so doing Minister LEE “became the first person to sign a piece of paper and bring Korea a huge amount of money without selling anything”.

 

“Everything went smoothly, we had financial and political support, everything was opulent but these days we are under tight financial conditions,” Yoon confirmed. “Under those terms, Seoul ‘88 was paradise compared to PyeongChang 2018.”

 

Yoon, whose life has been dominated by the Olympic Games for the past 35 years, has passed on to POCOG as many of the lessons he’s learned as he can. Readers of this article should be pleased by one of his instructions.

 

“Tight finance is very important but well-spent money is better,” Yoon said. “We cut corners where we can but we have to spend money. Press relations for instance, we need to treat journalists as VIPs, the evaluation of the Games is down to their pens.”

 

Despite the restrictions on finances and the burdensome bureaucracy that come with democracy, Yoon does believe that PyeongChang 2018 will be a resounding success. Not only because POCOG won’t be “hammering and painting” during the Opening Ceremonies, like some recent hosts, but also because he sees the role of the local organising committee as having changed significantly since the Seoul edition.

 

“The IFs (international federations) in a close collaboration with relevant POCOG FAs (functional areas) will come and operate all the venues and competitions, the IBC will be controlled by OBS likewise with counterparts of the POCOG,, no problem. At the same time, POCOG, we also provide crucial Games-time services and logistics: transport, accommodation, volunteers,” he said. 

 

And for the country itself, he sees similar PR benefits to those achieved in 1988 and all for a negligible cost.

 

“The budget spent on the Games is nothing, just imagine if you wanted to advertise a country on the BBC, NBC, the LA Times, The London Times, everywhere , you would spend 10-times more than the budget, but for the Games they all want to come and talk about us,” Yoon said.

 

“State of the art technologies will be shown through the Games. There will be cultural festivities available every day around the region. We have great natural surroundings of both the mountain and the ocean to enjoy.   It’s a great opportunity to sell the Korean brand.”

 

It is perhaps too much of an ask for PyeongChang 2018 to match Seoul 1988 blow-for-blow, but Korea’s second attempt at hosting the world’s biggest sporting spectacle, may just give the Olympic movement a timely boost and set the stage for a successful Asian swing.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8. 6. 8. 16:17

[남북한 올림픽공동개최 줄다리기(Tug-of-War)협상타결조건의 변곡점과 성과(서울1988올림픽개최 30주년 기념) 3편]

 

 

 

 

북한측이 서울올림픽관련 제1차 남북회담에 들고 나온 조건은 다음의 8가지였습니다:

 

 

1) 단일팀에 의한 북 남한 공동주최(Joint Hosting by North and South with a single national team),

 

 

2) 코리아 올림픽이란 통합 타이틀 사용(The amalgamated title Korea Olympic Games),

 

 

3) 평양과 서울간에 경기종목 평등분배(Sports Disciplines equally divided between Pyongyang and Seoul),

 

 

4) 양측 수도에서 개폐회식 동시개최(Simultaneous 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 in both Capitals),

 

 

5) 올림픽 헌장 하에 양측 도시들이 공동 보증서 작성(Host Cities to make joint guarantees to IFs under the Charter),

 

 

6) 모든 선수, 임원, 여행객들의 육, , 공을 통한 자유로운 교환(Free Exchange in Travel for all Athletes, Officials, Journalists, and Tourists by Air, Sea, or Land),

 

 

7) TV방영권수익금 재 분배(Redistribution of Television Profits)

 

 

8) 공동조직위원회 구성(The Formation of a Joint Organizing Committee)

 

 

 

이러한 일방적인 8가지 제안항목들은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라도 개선하여 발전시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IOC는 이 단계에서 개회식 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1) 올림픽 깃발을 앞 세우고 남북한 선수단이 공동 행진하는 것

 

(2) 마라톤 및 도로 사이클 경기 코스가 휴전선을 가로질러 남북한 지역을 관통하는 것

 

(3) 축구와 같은 단체종목의 예선전 몇 경기를 북한에서 개최하는 것

 

 

 

올림픽공동개최는 결코 IOC의 요망사항이 아니었을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1985년 로잔에서 열린 첫 번째 회담결과 최종 코뮤니케(Communique: 공동발표문)를 통해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니 1986 1월 회담을 속개하자고 하였습니다.

 

 

 

이후 3 차례 회담이 속개되었으나 의견차이를 좁히는데 실패하여 회담이 결렬된 셈이었지만 4차례 명분뿐인 회담으로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국가들이 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명분을 얻는 데는 성공하였습니다.

 

 

 

국제적인 안보전문가와 테러분석가들로부터 가장 위험한 시기는 올림픽이 열리기 전 2년 간 이라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이 시작되어 중국과 소련선수단이 도착하고 나면 서울은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지대로 변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한국은86 아시안게임 직후에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을 겪은 바 있었습니다.

 

 

 

불안감은 1986년 겨울과 1987년 여름 동안에 고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유혈시위가 세계 각국의 신문과 방송을 타고 톱기사로 장식되었고 극적인 사진들까지 줄곧 보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의 정치불안에 따른 염려와 과잉대응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소유한 미국에서 정점에 달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고 북한과 휴전상황에 놓여 있었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인 휴전선(DMZ)은 서울에서 불과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ABC TV 명 스포츠 해설가인 하워드 코셀(Howard Cosell)전쟁 중이나 다름 없는 국가에서의 올림픽 개최는 어불성설이라고 부정적 발언까지 나왔던 상황이었습니다.

 

 

 

 

 

(United States Sports Academy 시상식에서 조우한 Howard Cosell과 함께/1989)

 

 

 

 

 

또한 그는 160여 개국의 회원국 중 불과 60개국과만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있다니 말이나 될 법한가?라고 비난의 포문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은 1980 1212전두환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당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1980 7월 제22 IOC총회에서 8년 임기의 IOC위원장으로 선출된 사마란치(2011년 작고)로서는 이 모두가 고난과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마란치 IOC위원장 바르셀로나 집무실에서 개별 면담 후)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블록 국가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다른 곳으로 옮겨 개최해야 한다고 연일 비판을 해댔습니다.

 

 

 

1984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제4 ANOC총회에서 당시 소련 체육성 장관 겸 NOC위원장인 그라모프(Gramov)는 강한 어조로 서울올림픽 개최지 변경문제를 공론화하여 총회의 주요쟁점으로 몰고 가고 있었으며 열띤 공방이 계속되었던바 있었습니다.

 

 

 

 

(Mario Vazquez Rana ANOC PASO회장 겸 IOC집행위원과 멕시코 시티 집무실에서)

 

 

 

 

결국 친한 파인 마리오 바즈케즈 라냐(Mario Vaquez Rana) ANOC회장과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 IOC위원장 등의 서울올림픽 사수 전략이 대다수 NOC대표단의 호응을 받아 서울올림픽사수 멕시코선언문이 채택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서울올림픽 개최지 변경논란은 일단락되었습니다.

 

 

 

그 결과 1988년 서울올림픽은 동서진영이 모두 참가(159개국)하는 화합과 전진(Harmony and Progress)의 대회가 되었으며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이념과 정치 갈등을 넘어선 대회로 높이 평가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평창2018은 서울1988올림픽 30주년되는 해에 열렸습니다.

 

 

30년 전 그룹 Koreana가 서울1988올림픽 주제가로 부른 “Hand in hand’의 구성진 노랫말이 귓가에 쟁쟁합니다.

 

[Hand In Hand] (노래: Koreana)

(1)

See the fire in the sky

We feel the beating of our hearts together

This is our time to rise above
We know the chance is here to live forever

For all time

 

(Refrain: 후렴)

Hand in Hand we stand
All across the land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Hand in Hand we can
Start to understand
Breaking down the walls
That come between us for all time
Arirang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8. 6. 7. 06:49

[서울1988올림픽유치우여곡절(Ups and Downs)과 성공스토리(Success Story)올림픽개최 30주년 기념 제2편]

 

 

 

 

1947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우여곡절 끝에 IOC에 회원국으로 가입한지 31년만인 1978 924일부터 105일까지 서울올림픽유치의 근간이 된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태릉 국제종합사격장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한민족 사상 최초로 한반도에서 개최된 세계, 국제, 글로벌 공식행사였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사격연맹(UIT)의 당시 회원국들 중 비록 비수교국인 공산권 국가들이 불참하였지만 각 대륙에서 68개국 1,500여 명이란 규모의 지구촌 스포츠가족들이 장차 서울올림픽유치를 향한 한국의 스포츠조직력을 증거할 계기가 된 셈입니다.

 

 

 

 

1979년에는 새롭게 창설된 제1회 세계공기총사격선수권대회와 사격에 이어 두 번째 세계선수권대회인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하여 잠실에 신축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한국은 국제체육행사를 주최하는데 따르는 매력과 자심 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미국 팀 통역으로 참가한 외대 영어과 재학중인 필자와 미국 여자 공기총사격선수 Ashley)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유치하고 조직한 故 종규 당시 대한사격연맹회장은 1979 KOC위원장(추후 IOC위원 역임) 재직 시 박정희대통령에게 서울올림픽유치필요성과 당위성을 3가지로 요약 브리핑하여 내락 받았다고 합니다.

 

 

 

(1985년 동 베를린 IOC총회장에서 만난 SLOOC수뇌부와 사마란치 IOC위원장: 좌로부터 노태우 SLOOC위원장, 사마란치 IOC위원장, 박종규 IOC위원, 이영호 SLOOC집행위원장 겸 체육부장관)

 

 

 

첫째로 한국경제고도성장과 국가신인도 제고의 새로운 기점 마련이란 측면에서 1964년 도쿄올림픽개최당시 일본의 1인당 GNP $670 불 정도였으니 한국의 경제성장속도를 감안할 때 1988년에는 $2,000 불이 충분하다라는 판단이 섰다고 합니다.

 

 

 

일본도 1964년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경제발전이 대 도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 대열에 도약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조성되었던 전례를 강조하였습니다.

 

 

 

둘째로 대결 국면의 남북한관계에 있어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계기초석마련을 염두에 두었다고 합니다.

 

 

 

최대 우방국인 미국 시민들 조차도 한국은 한국동란 당시 의료진 이야기를 다룬

TV 시리즈드라마였던 MASH(Mobile Military Surgical Hospital: 이동육군외과병원)를 통해 전쟁참화에 찌 들린 나라 정도로 인식될 정도였고 따라서 한국을 모르는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북한의 집요한 허위날조 공세로 한국의 대외 이미지와 신인 도는 하한가수준이었습니다.

 

 

 

올림픽을 한국이 유치한다면 한국의 경제적 성장을 세계가 인정하는 것이고 외교 면에서 북한의 제3세계에 대한 공세를 원천 봉쇄하여 한국이 북한을 압도할 수 있는 기틀이 확고해 질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될 것이다라는 전망을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셋째로 세계 선진국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첫 단추 채우기의 안성맞춤이라고 설득하였다고 합니다.

 

 

 

국내외 한민족 모두를 자긍심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단합대회이자 한국을 전 세계에 홍보 할 수 있는 최고의 시너지 효과거양은 물론 실질적으로 온 세계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할 수있는 사회 제반 인프라 구축도 효과적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계기라는 점도 동시에 강조하면서 서울올림픽유치가 제3공화국을 결산하는 역사적 치적이 된다는 점도 생각해 주시라는 간곡하고 설득력 있는 화룡점정 적 브리핑덕분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쾌히 승낙을 받아내게 되었습니다.

 

 

 

올림픽유치경쟁과 관련된 시험적 사전 스포츠외교 활동은 1979년 푸에르토리코의 상환(San Juan)에서 열린 세계각국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에서 태동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올림픽유치를 임시로 승인한 뒤의 일이었는데 한국 스포츠외교관들은 ANOC IOC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국제 스포츠 계 판도를 정확히 집었으면 IOC가 얼마나 강력하고 ANOC는 친목 협력단체이지 IOC에 대한 압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단체라는 현실을 깨달았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당시 한국의 스포츠외교 눈높이였습니다. 

 

 

 

1979 921, 박정희대통령은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양대 게임유치를 시작하라는 계획을 최종 승인하여 주었습니다.

 

 

 

또한 제1086아시안게임도 함께 유치하여 88서울올림픽의 예비대회로 활용하도록 재가하였습니다.

 

 

 

1979 108일 당시 정상천 서울시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1988년 서울올림픽유치계획을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같은 해 박정희대통령이 1026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당함으로써 커다란 시련에 봉착하기도 하였습니다.

 

 

 

1980 714박종규 전 대통령경호실장이 KOC위원장 과 KASA(당시 대한체육회 영문명칭: Korea Amateur Sports Association)회장 자리에서 사임하고 후임으로 조상호 KOC부위원장이 임명되었습니다.

 

 

 

 

또한 1980 1027전두환 장군이 제9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88서울올림픽 유치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조상호 KOC위원장은 1980 925, IOC본부에 88올림픽유치신청마감일을 텔렉스로 문의해 본 결과 1980 1130일이라는 회신을 받고 유치작업을 재개하였습니다.

 

 

 

KOC 116 KOC긴급확대 상임위원회회의를 열고 유치에 대한 찬반토론을 거친 뒤 득실을 비교 분석한 결과 국가적으로 득이 된다는 결론을 도출한 KOC는 유치신청서를 제출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였습니다.

 

 

 

반면 서울시는 재정부담을 염려한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였지만 전두환대통령은 1130일 유치신청서에 최종 서명하였고 그 유치신청서는 IOC가 정한 마감시한 내에 제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KOC 121일 서울올림픽유치에 대한 지지입장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후 발 빼기 시도가 있었지만 전두환대통령은 유치경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건의를 받아들였고 이런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나선 것이 당시 노태우 정무2장관이었습니다.

 

 

 

노태우장관은 8월 말 체육 계, 외무부의 재외공관, 학 계 등 각 계의 의견을 종합하여 서울올림픽 유치의 승산과 당위성에 확신을 가지고 전두환대통령에게 특별 건의한 결과였습니다.

 

 

 

전두환대통령은 88올림픽은 기필코 서울로 유치해야 한다라는 단호한 결의를 보이면서 노태우장관이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에 구성된 88올림픽 유치특별대책반을 진두 지휘하도록 특명을 내렸습니다.

 

 

 

94일 개최된 비상대책회의는 노태우장관이 주재하였는데 이규호 문교부장관, 노신영 외무부장관, 박영수 서울시장, 이상주 청와대 문교수석비서관, 이선기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전상진 KOC부위원장이 참석하였습니다.

 

 

 

 

(1979 10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정상천 서울시장이 국내외 기자회견을 열고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있습니다. 직후 ‘10·26’으로 박정희가 피살되면서 무산됐던 유치 계획은 80년말 전두환 정권에 의해 재추진되면서 정주영에게 유치 민간위원장의 책임을 맡기게 됩니다. 맨 왼쪽부터 정주영 전경련 회장, 박충훈 무역협회장, 김택수 IOC 한국위원, 정 시장  <한겨레> 자료사진)

 

 

 

 

이 회의를 계기로 일본의 나고야를 막판의 세기적 역전승(52:27)을 가져 온 서울올림픽 유치활동은 노태우장관과 유치위원장을 맡은 정주영 현대그룹회장 그리고 박종규 KOC위원장 등에 의하여 주도되었습니다.

 

 

 

당시 WTF총재로서 국제스포츠 계 인사들과 잘 통하여 바덴바덴(Baden-Baden) 총회 장을 누비고 활동한 김운용 IOC부위원장도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박종규회장은 당시 IOC위원들에게 영향력이 지대한 Horst Dassler ADIDAS회장과 비밀회동을 갖고 실질적인 역전득표작전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습니다.

 

 

 

 

 

(1985년 동 베를린 개최 IOC총회 시 회동한 Horst Dassler와 이영호 SLOOC집행위원장 겸 체육부장관)

 

 

 

 

1981 9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의 기적은 박종규 대한사격연맹회장 겸 KOC위원장의 야망으로 시작되어 노태우장관이 총괄지휘하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을 비롯한 유치 단 멤버들의 불철주야 주도면밀하고도 역사적인 천둥번개작전(Thunderbolt Operation)에 의해 화룡점정 된 것입니다.

 

 

 

박종규회장의 꿈, 박정희대통령의 결심, 전두환대통령의 유치신청결단, 노태우 정무2장관의 확신 찬 진두지휘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정부의 지도층은 서울올림픽의 꿈의 불씨를 살려 찬란히 지피도록 견인차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바덴바덴 대첩의 기적은 그 후 개최되기까지 7년 간 숱한 우여곡절과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1988 917일 동서양이 한반도에 모두 모여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벽을 넘어서 올림픽을 통한 세계 대 단합과 인류화합의 합창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1981 930 IOC 총회에서 88올림픽 개최도시로 서울이 선정된 직후 정주영은 유치위원장으로 가장 먼저 ‘유치확정서’<올림픽개최도시 협약서/HCC>에 서명했다. <한겨레> 자료사진)<뒷줄 좌로부터: 최만립 KOC명에총무, 전상진 KOC부위원장, Mme. Monique Berlioux IOC 사무총장>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The World to Seoul, Seoul to the World)

그 과정에서 북한의 개최지 변경 공작, 아웅산 테러, 북한의 서울올림픽 공동개최 주장, 김포공항 테러, 국내 정치정세의 급변, 6.29 민주화 선언, 대통령 선거, KAL 858 폭파 사건 등 수 많은 위기와 질곡의 세월을 넘어 88서울올림픽은 20세기 최고의 올림픽으로 승화되고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18. 6. 6. 12:02

[서울1988올림픽개최30주년 쎄울 꼬레아!” (SEOUL COREA)의 유치성공 당시 대한민국 시대상 뒤돌아보기 1편]

 

 

 

1981 930일 서독 바덴바덴 IOC총회 겸 올림픽 콩그레스에서의 기적은 故 박종규 대한사격연맹회장 겸 KOC위원장의 야망으로 시작되어 노태우장관이 총괄지휘하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을 비롯한 유치 단 멤버들의 불철주야 주도면밀하고도 역사적인 천둥번개작전’(Thunderbolt Operation)에 의해 화룡점정 된 것으로 분석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박종규회장의 꿈, 박정희대통령의 결심, 전두환대통령의 유치신청결단, 노태우 정무2장관의 확신 찬 진두지휘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정부의 지도층은 서울올림픽의 꿈의 불씨를 살려 찬란히 지피도록 견인차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바덴바덴 대첩의 기적은 그 후 개최되기까지 7년 간 숱한 우여곡절과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1988 917일 동서양이 한반도에 모두 모여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벽을 넘어서 올림픽을 통한 세계 대 단합과 인류화합의 합창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아래 글은 서울올림픽유치당시 시대상의 생생한 경험담을 엮어 게재한 한겨레 신문 2018 62일 자 기사내용입니다:

 

 

[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20) ‘야망의 25-쎄울 꼬레아’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1987년 다큐드라마 <기업인> ‘정주영 편’ 제작 때 고석만 연출은 현대건설의 이라크 공사 현장까지 답사해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고자 애썼다. 수백수천명씩 집단으로 파견되던 노동자들이 대한항공의 군사독재식 통제에 반발해 현대쪽에서 국적기 이용을 중단한 일화도 확인했다. 사진은 70년대 중반 현대 노동자들이 대한항공을 타고 중동으로 떠나는 모습. 아산 정주영닷컴 제공)

 

 

 

‘제24 88올림픽대회’를 서울로 유치하겠다는 정부 방침 결정은 1979 9월 박정희 때였다. 1981 3월 실제로 조사단이 내한해 둘러보고 가자, ‘올림픽 망국론’을 주창하던 총리(남덕우)를 제키고 이규호 문교부 장관의 제안으로 전두환은 현대의 정주영을 88올림픽 유치 민간추진위원장에 임명한다. 정주영 위원장 밑에 각부 장관들이 전부 위원으로 들어 있었는데, 회의장에 나온 장관은 이규호뿐이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한국위원(김택수)조차도 불참, 서울시는 국장급을 한 사람 내보냈다. 조상호 체육회장, 최만립 총무 등은 체육회로서는 밑져야 본전이고, 또 혹여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수도 있다는 셈으로, 나와 있었다. 이때 정주영은 “모든 일은 인간이 계획할 탓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적자가 나도록 계획하면 적자가 나고 국가재정이 파탄이 나도록 계획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라며, 82명 아이오시 위원의 과반수 42명을 확보 못하랴” 하는 심정으로 도전에 나섰다.

 

 

 

(1979 10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정상천 서울시장이 국내외 기자회견을 열고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있다. 직후 ‘10·26’으로 박정희가 피살되면서 무산됐던 유치 계획은 80년말 전두환 정권에 의해 재추진되면서 정주영에게 유치 민간위원장의 책임을 맡긴다. 맨왼쪽부터 정주영 전경련 회장, 박충훈 무역협회장, 김택수 IOC 한국위원, 정 시장 등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81 9월 독일 바덴바덴으로 출발할 무렵, 정주영은 정부에서 지정한 추진위원 가운데 안이한 사고방식으로 여행이나 즐길 것 같은, 목적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일부위원을 빼고 대신 유창순, 이원경 등 유능한 몇몇 인사를 영입했다. 통역으로라도 따라가겠다는 김운용(대한태권도협회 회장)도 합류시켰다.

 

 

“사적으로는 몽준이가 독일어를 좀해서 쓸모가 있을까 해서 데리고 가고, 독일에서 유학시절을 보낸 다섯째 계수(고 정신영 기자의 부인 장정자 서울현대학원 이사장))도 함께 가자고 했다.” 정주영은 프랑크프르트 현대지사에 지시하여, 지점의 전 직원과 그 부인들, 주방 조리사들까지 이미 바덴바덴으로 아예 옮겨 현지 사무소와 임시 저택을 확보해 놓고 있었다.

 

 

 

 

 

(1983 <야망의 25> 제작 때 고석만 연출은 정주영의 ‘88서울올림픽 유치 내막’을 취재했다. 1981년 전두환 정부의 정략에 따라 ‘올림픽 유치 민간위원장’으로 임명된 정주영(오른쪽 셋째)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88올림픽 개최지 선정이 이뤄지는 독일 바덴바덴에 미국 유학을 막마친 아들 정몽준(맨왼쪽)과 현대상선 사장 정몽헌(왼쪽 둘째)을 비롯해 현대 지사 직원과 가족 등 인력을 총출동시켜 또 한번 ‘기적 같은 반전’을 이뤄냈다. 아산정주영닷컴 제공)

 

 

 

그때 아이오시 한국위원은 뒤늦게 도착해서 공공연하게 “서울은 세 표밖에 못 얻는다. 한 표는 내 표·한 표는 대만·한 표는 미국”이라며 찬물을 끼얹곤 한다. ‘꽃바구니 작전’도 체면문제라며 극구 만류한다. 하지만 준비단은 ‘정주영’ 이름으로 아침마다 각국 아이오시 위원의 호텔방에 꽃바구니를 돌렸다. 꽃바구니는 의외의 감사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에 힘입어 적극 공세에 들어갔다. 투표전략에서 주효했던 것은 전 세계 아이오시 위원들에 대한 세밀한 신상 파악으로 성향 분석을 하고 경쟁 유치 국인 일본 나고야의 활동 상황까지 조사해서 일대일 로비를 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중동 및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 아이오시 위원들에게도 겸허하게, 그리고 성심으로 개최 능력을 소개하고, 후진국도 언젠가는 올림픽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을 북돋아 넣었다. 호의적인 방향으로 그들을 선회시켰다. 우리 경제인들도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자기 호주머니 돈을 쓰면서 열심히 홍보에 나섰다. 정부 관리들에 비해 경제인들의 노력은 눈부실 정도였다. 100여명의 대표단은 현대 프랑크푸르트지사에서 온 조리사들이 해주는 밥을 먹으며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끼리 혼연일체가 되어, 각자 정성을 다해 목표를 향하는 것이다.

 

 

 

 

(1981 9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이 ‘서울 52, 나고야 27표를 얻어 서울이 압도적으로 1988년도 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정되었다’며 “쎄울 코레아”를 발표하는 장면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1 930일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사마란치 위원장 “쎄울 코레아”를 발표한 순간, 정주영 유치위원장과 조상호 KOC 위원장 사이에서 박영수 서울시장이 두 팔을 들고 환성을 지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마침내 81 9 30일 오후 4. 사마란치 아이오시 위원장이 프랑스어로 “쎄울 꼬레아!”를 선언했다. 모두, 너나할 것 없이 얼싸안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득표는 예상 46표보다 6표나 추가된 52표였다.

 

 

한국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섰으나 아직도 남북 대치중인 분단국, 한국이 예상을 뒤엎고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정된 소식에 세계가 놀라고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경제인들의 힘으로 획득한 쾌거였다. 정주영은 그때를 회고하며 “지극 정성을 다하면 못 이룰 일이 별로 없다”고 장담하곤 했다.

 

 

(1981 930 IOC 총회에서 88올림픽 개최도시로 서울이 선정된 직후 정주영은 유치위원장으로 가장 먼저 ‘유치확정서’에 서명했다. <한겨레> 자료사진)<뒷줄 좌로부터: 최만립 KOC명에총무, 전상진 KOC부위원장, Mme. Monique Berlioux IOC 사무총장>

 

 

 

 

 

훗날 독일 취재차 프랑크푸르트 현대 지사에 머물면서 뒷얘기를 집요하게 추적해봤다. “투표 하루 전, 은행에서 따블빽으로 세 덩어리를 짊어지고와 호텔방에 미리 준비해놓은 ‘007빽’ 58개를 쭉 벌려놓고, 딸라를 하나 가득 씩 쏟아 붓고 흔들며 탁탁탁탁 가득 차면 (세어보지 않아도 가방 크기와 돈의 액수는 정확하다) 뚜껑을 닫고 각자 배당에 따라 들고 나갔다.” 확인 할 수 없는 무책임한 회고담이지만, 정부가 못하는 일을 기업이 해냈다는 얘기다. ‘뇌물공화국’이란 불명예, 박정희 고도성장과 독재의 끝에 자리잡은 신 군부의 속성·성과주의는 ‘로비 문화’까지 흔들고 있었다. 뇌물의 일상화를 개탄해 보지만, 타성이 되어버린 현실이 무섭다. 특히 서민들에겐 두려운 일이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88서울올림픽 확정 이후 한국을 수십차례 방문하는 등 ‘친한파’로 유명해져 첫번째 ‘서울평화상’도 받았으나 훗날 ‘뇌물 스캔들’로 불명예 퇴진했다. 사진은 83년 고 김택수 아이오시 한국위원 별세 때로, 왼쪽부터 노태우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사마란치, 정주영 등이 함께 했다. 사진 윤강로의 스포츠세상 갈무리)

 

 

 

1983 4월 첫 기업드라마 <야망의 25> 3주째에 ‘자체 결방’한 이후 여러모로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아침, 집으로 난데없이 예쁜 포장의 케익 상자가 배달되었다. 열어보니 현대의 홍보실에서 보냈다. 반갑기보다는 겁이 더럭 났다.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다. <1공화국> 때 ‘안기부 조사 사건’ 이후 줄곧 감시의 눈길이 두려운 때라 더욱 그렇다. 아내의 생일까지 꿰고 있으니 어린 자식들은 어찌 보호해야 한단 말인가.

 

 

 

초여름의 햇살이 유독 밝다고 느꼈던 날 오후, 현대 홍보실 간부가 정동 방송사 앞 상가 1층의 제과점에서 기다린다는 전화가 왔다. 며칠 전에도 자료 점검 차 만났는데, 2층 커피숍이 아니고 빵집이라니…, 의아한 기분으로 만났다. “하하하, 시골에서 하지 감자를 첫 수확했다고 보내왔어요.” 탁자 밑에 ‘푸대 자루’가 있다. 느낌이 나쁘다. “맛있게 드세요” 하며 나가는 그를 붙잡고 자루를 풀렀다. 현금 다발이 감자처럼 뒤섞여 있다. 부드럽게, 그러나 준엄하게 타일렀다. 그리고 빵집을 나왔다. 하루 종일 찝찝했다. 밤늦게 집에 도착하니, 현대에서 왔다 갔다며 이번에는 꿀단지가 놓여 있다. 같이 살던 맘 좋은 동서 형님이 한마디 한다. “지리산 토종 꿀이라면 몇 백 만원 해~.

 

 

이튿날 아침 출근길에 새끼줄로 꼬아 묶은 꿀단지를 들고나가 텔레비전 담당 국장 책상 위에 턱 내려놓으며, 현대 쪽에 돌려주라 하고 나왔다. 그 꿀단지는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국장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보름이 지나서야 ‘그 놈’이 없어졌다. 그제서야 맘놓고 현대맨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삼성은 ‘이병철’ 배역을 맡은 정욱에게 안양골프장 회원권을 주고, 그가 운영하는 특수인쇄업체에 독점하청을 주었다고 귓속말로 자랑하곤 했다. ‘김우중’ 역의 조경환이 대우 초청으로 본사를 방문하면,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에 태워 곧바로 김우중 회장실로 모셨단다. 김우중은 모든 선약을 깨고 긴 시간 환담을 나누곤 했다. 그 다음 얘기는 함구한다.

 

 

정주영의 인생을 건 경영 결단은, 1980년 이른바 ‘9월 전쟁’으로 알려진 이란-이라크 분쟁 때 이라크를 선택한 것이다. 그 뒤 중동의 사업 판도는 크게 바뀌고,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도 달라졌다. 이라크에서 현대는 혈맹의 동지로 영향력이 대단했다.

 

 

1981년 ‘올림픽 유치’ 떠맡은 정주영
IOC
한국위원·장관들 모두 시큰둥
“모든 일은 인간이 계획할 탓” 도전

독일 현대지사 바덴바덴으로 총출동
추진위원·경제인·체육인도 ‘한솥밥’

IOC위원들 방에 아침마다 꽃바구니
사마란치 위원장 “쎄울 코레아” 반전
훗날 ‘따블백 달러 뇌물설’에 개탄도

83년 방송사 앞으로 찾아온 현대 간부
“농사지은 감자” 포대 가득 현금다발

87년 ‘기업인’ 다큐때 이라크 현장 취재
현대 파견 노동자들 ‘대한항공 탑승’ 거부
“승무원들의 군대식 집단통제에 모멸감”

 

 

 

1987년 다큐드라마 <기업인> 촬영 때, 수도 바그다드공항에서 카메라 장비가 압류되어 촬영을 포기할 위기였을 때, 현대의 전화 한 통으로 두 시간 만에 장비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바그다드 북쪽 유프라데스 강과 티그리스강을 잇는 키르쿠크~베이지~하디다 유전지대 550Km의 철도 공사 현장. 우리로 치면 압록강과 두만강을 뚫는 운하 같은 것이다. 이것을 기차로 연결하는 공사다. 바야흐로 중동 붐의 절정이다.

 

 

 

여기에 동원된 우리 노동자만 5천명. 바그다드는 그 유프라데스 강과 티그리스강이 합류하여 바다로 빠지는 옥토에 위치해 있다. 바그다드에서 육로로 6시간을 달리면 현장 캠프가 나온다. 마른 사막 언덕과 언덕 사이로 1개 연대 급의 막사 100여채가 천연요새처럼 진을 치고 있고, 모래바람은 끊임없이 날아와 캠프를 덮고 있다. 지금은 뚝 공사가 50% 이상 진척되고 있는데 꽤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상태라 한다. 2년 전 모두의 생각을 뒤집는 정주영식 역 발상이 있었다. 그것은 공사 전 수도공사를 먼저 시행하자는 것이다. 두 강을 잇는 초대형 수도관이 선행되는 것이다. 수도공사는 시방 서에도 없고 공사계획서에도 없는 것이다. 식수는 물론 공사용수의 부족 현상을 예견한 것이다. 수도공사 6개월째 건기를 만났다. 그때야 선견지명에 모두가 탄복했다 한다. 공사 착공은 1년 늦어졌으나 결과적으로 2년을 번 셈이었다.

 

 

 

 

다음날 아침 공사현장 촬영에 나섰다가 특이한 현상을 보았다. 5천명의 노동자가 배치된 현장에서 사람들을 발견할 수가 없다. 5천명을 550Km에 뿌려보아라. 차를 타고 5, 10분을 달려야 겨우 한 사람, 산소용접 불빛이 보이는, 이 적막감을 어찌 표현할 것인가? 뙤약볕과 모래 바람에 덮쳐진 엄청난 노동 하중,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고독이다. 처절한 외로움, 그곳이 중동이다.

 

 

(1978년 현대건설의 중동 공사 현장을 방문한 정주영(맨 가운데) 회장이 사원 운동회에서 파견 노동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산 정주영 닷컴)

 

 

 

그렇게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노동자 대부분은 고국으로 송금한다. 보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이곳에선 알 길이 없다. 부러 돈의 행방에 대해선 공통적으로 알려 들지 않는다. 편지 왕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국의 아내를 믿지 못한다. 대다수가 “아내가 바람났을 것이란 전재 하에, 귀국하면 어찌해서 내 사람으로 다시 만드나”를 고민하고 있다. 취재에 응한 노동자들마다 그런 병리현상에 시달린다. 회사는 이런 심각한 상황을 이해하고, 본사에 ‘인력개발본부’를 설치해놓고 중동으로부터 날아온 하소연을 정리해서 흥신소 요원처럼 탐문하고 뒷조사를 한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고국의 아내들은 의심하는 이상으로 타락하고, 황당할 정도로 사기를 당하고 있었다. 조사에 나선 직원들이 가슴을 치며 분개할 정도였다.

 

 

늦은 밤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몇 사람과 우정 어린 교감을 나눴다. 그 고독감의 첫 번째 증상은 말이 없는 것이다. 군대 막사처럼 줄줄이 침대와 개인 사물함이 있다. 의아한 것은 그 캐비넷 속에 크고 작은 사진들을 붙여놓는데 공통적으로 부인이나 아이들 대신 여자 탤런트들뿐이다. 사진 속에서 웃고 앉아 있는 탤런트 이경진은 그들에게 무엇인가.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오일달러’를 벌어 조국을 부흥시킨다는 중동 파견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캠프 중앙에 있는 노무과를 찾아갔다. 전체 사무직원 중 유일하게 ‘촌지’가 오가는 곳이라 한다. 노동자들이 1년 혹은 2년 현 장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대한항공(KAL)만 타지 않게 배려해달라’고 꼬불쳐둔 100달러 혹은 50달러를 ‘촌지’로 찔러준단다. 일종의 귀국 보너스로, 일주일의 유럽여행을 한 뒤 들어가는데, 대한항공을 타면 한국인 스튜어디스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항공사 직원이 탑승 전 공항 로비에서 노동자들에게 단체로 ‘앉어, 일어섯’ 명령을 한다는 것이다. 100여명의 질서와 절차를 위해서라지만, 다른 외국 승객들이 보고 있다. 미모를 뽐내는 스튜어디스들도 어김없이 ‘앉어, 일어섯’ 그리고 ‘번호’를 외치게 한다. 아주 숙달되어 있다.

 

 

우리 제작진도 귀국길 노동자들과 같은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해 보았다. 노동자들은 맨뒷좌석에 몰려 앉게 했다. 전 좌석에 적절히 섞어 앉히면 될 일을 한구석에 몰아넣으니 문제다. 무질서하다. 사들고 가는 중형 녹음기의 음향을 크게 틀어 제키고, 흡연도 예사롭게 해댄다. 스튜어디스 통제권을 벗어났다. 지금 노동자들은 화났다. 노동자 문제는 <야망의 25 >의 주요 과제다.

 

 

 

(현대그룹과 한진그룹은 1970~80년대 중동 특수를 함께 누렸으나 ‘국적기 탑승 거부 사태’와 5공화국 시절 ‘전두환 비자금 상납’을 둘러싼 오해로 악연을 맺기도 했다. 사진은 1982 7월 전경련 회장단이 대한항공 부산 사업본부를 방문했을 때로, 왼쪽부터 현대 정주영, 한진 조중훈, 삼성 이병철 회장 등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현대는 급기야 국적기 대한항공을 버린다. 한진은 이제야 당황한다. 현대와 한진의 해묵은 싸움의 발단이다. 정주영에게 전두환의 청와대로부터 숙제가 떨어졌다. 대기업에서 선별하여 정해진 시한까지 정해진 액수를 모금해오라는 것이다. 아주 흔한 일상처럼, 전화하고 수금하고 갖다 받치고…, 정주영이 한진 조중훈에게 전화해 전후사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조중훈 “얼마를 하면 될까요?, 정주영 “한 장이면 되지 않을까요?” 얼마 뒤, 조중훈이 청와대에 불려 들어가자 그의 얼굴에 수표뭉치가 던져지고, 험한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한 장’에 착오가 있었다. 10억’ 한 장을 ‘1억’ 한 장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그뒤 현대와 한진의 관계는 더욱 미묘해졌다. 정경유착 문제 또한 <야망의 25>의 핵심과제다.

 

 

건설시장은 난타전이다. 극동의 김 회장·대동의 박 회장·동아의 최 회장·대림의 이 회장이 모여 ‘공사 일감’ 하나를 두고 회의가 벌어졌다. 동아의 최 회장이 그 공사를 기어코 자기네가 해야겠다고 부득부득 우겨 다른 회장들의 양보를 차례로 받았는데 대림의 이 회장만 요지부동이다. 불꽃 튀는 설전 끝에 최 회장이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내가 고혈압인데…” 쓰러지듯 누워 버린다. 대림의 이 회장이 깜짝 놀라, 거두절미하고 “그래, 그 공사 너 가져” 했다. 그제서야 최 회장은 “음, 조금 낫군” 하면서 부스스 일어나는 것이다. 그뒤 최 회장이 답례의 저녁 식사 대접을 하려고 날을 잡았는데, 이 회장이 약속을 깨고 안 나왔다. 날이 어둑해지자 이 회장은 지프에 자갈을 한 가마니 싣고 가서는 최 회장 집에 실컷 던졌단다 . 그것으로 끝이다. 쿠데타나 정변과 다르게, 업계의 진흙탕 싸움은 샤워 한번 하고 나면 깨끗해진다. 늑대가 새끼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염소와 함께 지내야 한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847387.html#csidx75fb7cb2543ed63baef4f4feac1e377

 

*출처: 한겨레 신문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8. 6. 6. 11:08

[우리들교회 주일설교 중 김양재목사님이 소개하신 우리들교회 목장 자기소개 "닉네임"(Nick Name)이야기 후기 스케치]

 

 

 

 

 

주일(2016320)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목사님의 설교제목은 로마서 11절 내용을 담은 ‘자기소개’ 였는데 휘문채플 1부 예배에서 설교내용과 연관 깊은 것으로 사료되는 2016년도 가장 겸손한(?) 대박 표 우리들교회 부부목장 닉네임인 ‘9뤠기’에 대하여 소개해 주셨습니다.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양재 담임목사님)

 

 

 

 

휘문 1부 예배 드리며 말씀을 경청하며 적고 있는데 다름 아닌 그 당시우리부부목장 닉네임인 ‘9뤠기’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닉네임 소개설명 내용을 듣고 보니 2016 18() 제가 부 목자로서 첫 목장보고서에 올린 아래 글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말씀하여주셨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우리목장 소속 마을이 판교채플 청소와 식당 봉사 사역이 배당되어 목장예배가 그 다음주로 한 주 건너 뛰어 넘어가다 보니 그 주 목장 모임에서 목장 닉네임을 정해야 했습니다.

 

-4가지 목장 닉네임(nick name) 후보가 물망에 올랐습니다

 

 

1) 9원 목장’  

 

*닉네임 후보 I설명:

 

-종류와 장르는 다르지만 주님 안에서 각자 죄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아주 작고 비천한 죄인 신분임에 단돈 10원 보다 1원이 부족하여 9원밖에 안 되지만 ‘구원’(salvation)을 사모하고 말씀에 붙어가며 주님께 구원을 간구한다는 취지로 2014년 당시 남양주 목장닉네임을 다시 제안할 정도로 주님이 선사하신 선물로 생각되어 제안하였습니다.

 

 

*9(구원)닉네임의 유래:

 

-2014년 남양주목장에 속해 있을 당시 필자가 부목자로 섬기면서 목장 닉네임을 정한 바 있습니다

 

-당시 목자님의 창의적인 발의로 목 원 모두의 닉네임 후보 명칭을 카카오톡 채팅 방을 통해 신청한 후 제한 시간 내에 제출된 닉네임 후보를 놓고 스마트 폰 자동 투표 방식의 경합을 거쳐 제가 제안한 바 있는 ‘9원 목장’ 닉네임이 종 다수로 당첨된 바 있습니다.

 

 -거들떠보지도 않는 10원보다도 1원이 부족한 9원’은 구속사적인 ‘구원’(救援)과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homonym)입니다.

 

-크로노스(Chronos: 시계시간) 적 시각에서 보면 9원이 구원을 상징한다 할지라도 세상적으론 별 볼일 없고 쳐다볼 가치도 없는 그야말로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하찮은 금액이겠지만 영적으로, 구속사적으론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카이로스(Kairos: 사건시간) 적 시각에서는 환산 불가한 거금 그 이상일 것 같습니다.

 

-9(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상급이며 기적이고 최고의 가치관입니다.

 

-9(구원)은 죽도록 낮아지는 겸손을 추구하라시는 주님의 메시지로 알고 십자가를 길로 놓고 가는 9(구원)의 비밀을 깨닫고 적용하고 나눔을 통해 천하 그 무엇보다도 귀한 불쌍한 한 영혼 살리는 코드가 구원임을 알기를 소망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를 통해 진리가 자유케 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서 천국 공동체가 바로 목장 모임 자리에 있음을 알고 깨닫고 가기를 원합니다.

 

2) ‘쓰레기 목장’

 

    *닉네임후보 II 설명:

 

-구랍(舊臘) 김양재 목사님의 마지막 주일설교말씀 중 ‘버리고 살며 인내합시다’라는 깊은 뜻을 되새겨 세상에서 찌든 교만과 생색과 혈기와 이생의 자랑과 안목 및 육신의 정욕과 탐식과 시기와 질투 등이 주님 보시기에 쓰레기임이 분명하니 ‘쓰레기를 버리자’는 취지입니다

 

 

3)  ‘갑녀을남 목장’

 

 *닉네임후보 III설명:

 

-원래 ‘갑남을녀’가 대세인데 요즘 아내집사님들에게 눌려 사는 세대임을 풍자하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수퍼 갑질’ 풍조에 빗대어 제시한 재기발랄 한 취지입니다 

 

 

 

4) 9뤠기 목장

 

*닉네임 후보 IV설명:

 

 

-9원 목장’과 ‘쓰레기목장’을 절충하여 탄생한 하이브리드((hybrid) 형으로 ‘9레기’ 였는데  ‘그래?’를 강조하여 ‘고뤠? ‘라고 하듯 강조와 재미를 가미하여 ‘9뤠기’로 정하자는 취지입니다

 

 

-‘결국에는 승리합니다’라는 2016년도 우리들교회 슬로건(slogan)처럼 투표결과 결국에는 대다수가 지지하는 ‘9뤠기’인 우리목장 닉네임이 승리하여 당첨되었습니다.

 

-‘’9뤠기’에는 주님 보시기에 ‘구더기’, ‘쓰뤠기’ 만도 못했던 우리들 각자의 출애굽의 역사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시집살이를 비유한 ‘비단치마 속의 넝마’신세도 9뤠기’의 신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우리 처지와 일맥상통하며 오버랩(overlap)되어 불현듯 걸어 들어옵니다

 

 

 

 

    -201618일 서울 영등포 지역 부부목장이 2016년도 첫 목장 예배모임이어서 각자 소개 및 각자 죄 패와 고난의 출애굽이야기를 간단히 나누었습니다.

 

 

   

    -각자의 진솔한 나눔이 앞으로 일년 동안 부부목장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음 것같이 드러나리라’(히브리서 4:12~13)와 같이 함께 나누고 ‘주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겸손한 가운데 구원을 이루는 ‘9뤠기’목장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목장후기:

 

-선정된 우리목장 닉네임 결정과 관련하여 목장예배 당일(18) 큐티 말씀(히브리서 6:9~20/인내로 받는 약속)에서 주시는 메시지 중 ‘…너희에게는 이 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9)이라고 하시는 중에 우리목장 닉네임에 접속하라시는 계시로 느껴져 제안한다는 취지이기도 하였습니다.

 

 

  -목장예배 당일(1 8) 큐티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해 봅니다:

 

1) 이 세상에서 구원(salvation)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음을 상기시켜주십니다(6:9)

 

2) 하나님은 불철주야 우리 머리털까지도 헤아려 주시는데 우리의 모든 행위를 판단하시고 지체들을 돕는 손길과 마음 밭을 가늠하시어 하나님께로 향한 우리의 사랑과 섬김(our work and love)을 잊지 않으심을 일깨워 주십니다

 

3) 여전한 방식으로 부지런히 그리고 끝까지 믿음과 영적 진실성의 결과인 인내로써(through faith and patience) 우리의 소망을 확실히 하여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을 본 받을 것을 권면하십니다

 

4)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대로 복을 주시고 자손을 번성하게 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의 오래 참음의 열매로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하십니다

 

5) 맹세란 자신의 말에 대한 확인이고 모든 시시비비에 종지부를 찍어주는 최후확정(the oath confirms what is said and puts an end to all argument)이므로 하나님은 스스로 맹세하시어 소망을 찾아 피난처로 찾아온 우리에게 약속의 성취를 보증하심으로 위안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6) 이 소망은 마치 영혼의 닻과 같아서 흔들림 없이 견고하므로(We have this hope as an anchor for the soul, firm and secure) 휘장 뒤 성소 내부까지 들어가게 되는데(It enters the inner sanctuary behind the curtain) 이곳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보다 먼저 들어가시어 가장 위대하신 대제사장이 되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다고 하십니다

 

 

-2015년 상반기 우리들교회 새벽 큐티 설교 말씀 중 감동의 은혜가 깃든 예화로써 최은광목사님이 다음과 같이 소개한 내용을 다시 한번 되살려 봅니다.

 

 

7살 때 홍역으로 전신마비가 되어 살다가 47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40년 동안 6평짜리 좁은 단 칸 방에서 누워 살면서 ‘감사는 나의 밥’ 이라며 오직 눈만 깜빡 꺼릴 수 있어 눈 깜빡이 시인이란 별명을 가진 미즈노 겐조의 시 두 편(‘말씀을 주세요’와 ‘그렇지 않아요’)이 심금을 울렸습니다.

 

 

 

-감사함은 죽어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날마다 일용하고 즐겨 읊조리며 주님께 고백 드려야 할 매 순간의 번제이자 화목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회개:

 

 

-2016년 초 영등포 소재 101-1 '9뤠기 목장'에 배정되었는데 부목자로서 영적 게으름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금년 초부터 평창2018 동계올림픽 관련 잦은 출장을 핑계로 첫 목보만 달랑 올리고 이후 이어지는 목보를 목원 집사님에게 핑퐁하고 합리화하며 직분에 충실하지 않은 한 달란트(무나) 가진 종(둘로스)이 바로 제 자신임이 체휼되어 죄 고백합니다.

 

 

-'파울로스(Paulos)-둘로스(Douos)-아포스톨로스(Apostolos)'과정 중 둘로스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니 사도인 목자 직분이 허락되지 않음이 ‘자기소개’란 제목의 로마서 11 주일 설교말씀을 듣고 비로서 절절히 깨달아졌습니다. 회개합니다.

 

 

 

*적용:

 

-20166월 하순 평창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라도 '둘로스'()의 직분(부목자)에게 주어진 질서에 순종하여 목장 섬기기를 다 하겠습니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