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8. 6. 30. 15:57

[한국의 역대 IOC위원 계보 집중탐구 및 관련 한국스포츠외교맥락 현장스케치 Update]

 

 

 

 

 

 

1947620일 제41차 스톡홀롬 IOC 총회에서 대한올림픽 위원회 (Korea Olympic Committee/KOC)IOC 회원국 NOC로서 승인을 받은 지 8년 만에 한국은 첫 IOC위원을 배출하였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 밑에서 권세를 누리던 이기붕 부통령이 낙점을 받아 19556월 제51차 파리 IOC 총회에서 1대 한국 IOC 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52년부터 제17대 대한체육회장 겸 제6KOC위원장을 지내면서 1955년부터는 초대 IOC위원(4년 간)으로서도 활동했고 195511월에는 스포츠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헬름스 재단이 수여하는 공로상까지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건희 IOC위원의 경우 오랜 병상생활로 2017 811자로 IOC위원 직 자진사퇴사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사진출처: 대한체육회 제공)

 

 

 

 

그가 4.19혁명의 와중에서 아들인 이강석으로부터 총탄을 맞고 쓰러진 뒤 이상백 박사가 위원 직을 승계하게 되었습니다.

 

 

이상백 제2 IOC위원은 농구선수출신으로 일제 시대부터 체육협회 이사를 지냈고 1937년 국제 빙상연맹(ISU) 일본대표로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등 많은 국제 스포츠 경험을 토대로 국제 스포츠 인맥이 두터운 편이었습니다.

 

 

특히 1947KOCIOC회원국 NOC 승인 과정에서 당시 IOC 부위원장이었던 미국의 Avery Brundage (6IOC 위원장 역임/1952-1972)와 오랜 친구로서 결정적인 막후 지원을 했던 공로자이기도 했습니다.

 

 

196410월 제63차 동경 IOC총회에서 한국의 2IOC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2년간 (1964-1966) 10KOC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2년간 IOC 위원으로서 코리아의 이미지를 국제 스포츠 계에 많이 전파하였습니다.

 

 

 

3대 한국 IOC위원은 [불도저/Bulldozer]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장기영씨였습니다.

 

 

언론인이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19676월 제66차 테헤란 IOC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되어 19774월까지 IOC 위원으로서, 1966-1968 2년간 제11KOC 위원장으로서 한국 스포츠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776월 제 79차 프라하 IOC 총회에서 4대 한국 IOC위원으로 선출된 김택수씨19776월부터 19834월까지 5 10개월 간 IOC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그는 197419762년간은 대한체육회장 겸 제14KOC위원장을 역임하였고, 국제 신사로서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웠던 [멋쟁이 고급신사]로 국제 스포츠 계에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819월 독일 바덴바덴(Baden-Baden) 84IOC 총회에서 1988년 올림픽 유치 당시 서울 유치 활동에 회의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지적도 있었던 그는 19831983년 지병이었던 폐암으로 타계하였습니다.

 

 

1980년 선출된 제7Samaranch IOC위원장이 방한하여 KOC를 방문 당시 정주영KOC위원장과 면담 후 무교동 체육회관 10층 강당에서 올림픽 훈장을 추서(posthumous awarding of Olympic Order)하기도 하였습니다.

 

 

(Samaranch IOC위원장 방한에 따라 무교동 체육회관 9 KOC위원장 집무실에 모인 당시 한국 체육 계 거물 들/ 좌로부터: 이영호 체육부장관<옆모습>, 노태우 SLOOC위원장, Samaranch IOC위원장, 통역 중인 필자, 정주영 KOC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

 

 

 

 

당시 필자는 KOC 국제부 직원으로서 IOC위원장과 정주영KOC위원장 면담 및 올림픽 훈장 추서 식 사회 겸 통역을 IOC 1공식언어인 불어로 한 바 있습니다.

 

 

 

 

(1983년 故 김택수 IOC위원 올림픽훈장 추서 식 필자의 사회장면)

 

 

 

 

5대 한국 IOC위원은 19847월 제88LA IOC 총회 시 선출된 박종규씨198512월까지 15개월간의 최 단기 IOC위원으로서 활동한 바 있습니다.

 

 

 

그는 1988서울올림픽대회 준비에 따른 대 IOC 교섭 창구 및 외교채널 역할뿐만 아니라 대한사격연맹 회장과 대한체육회장 겸 재15KOC 위원장(1977-1980)으로 재임 시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1978년 제42 UIT세계 사격선수권대회를 국내에 유치하는 등 한국스포츠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78년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한국외국어대학교 각 언어권 통역으로 참여한 외대 HUFSans/우측 2번째가 필자)

 

 

 

 

국제스포츠 계, 특히 국제 사격 계에서는 [Pistol Park/피스톨 박]으로 유명하였으며, ANOC 회장 겸 IOC 집행위원으로서 세계 스포츠 계 세력 판도의 한 축을 뒤흔들었고 당시 라틴계 대부로서 활동한 바 있는 멕시코의 Mario Vazquez Rana회장과는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Vazquez Rana회장은 1980930일 독일의 Baden-Baden에서의 1988 서울올림픽 유치작전 時 라틴계 IOC 위원들의 표를 몰아주는 데 박종규 IOC 위원의 부탁으로 막후에서 도와줬던 숨은 공로자의 한 사람인 친한 파이며, 2006ANOC 총회 서울 유치에도 적극 지원하여 준 바 있습니다.

 

 

 

그는 필자의 국제스포츠외교활동을 높이 샀던 분으로 2008 Beijing개최 ANOC총회 개회식에서 206 NOC대표들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국제스포츠 외교훈장 격인 ANOC공로훈장(ANOC Merit Award)를 수여하는데 총대를 매셨던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겸 IOC집행위원이 필자에게 ANOC공로훈장을 수여하고 있다/2008 Beijing개최 ANOC총회 개회식장에서)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훈장수여에 이어 Jacques Rogge 당시 IOC위원장이 이어 ANOC공로 패를 수여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었던 김택수씨와 박종규씨는 제5공화국 출범 초기 신 군부로부터 부정축재 자로 몰리는 등 고초를 겪었던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종규씨는 의리 파로서 신임이 두터워 그 와중에도 (1984.7-1985.12) IOC 위원으로 낙점 받아 지병인 간암으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타계하기 전까지 IOC 위원으로서 한국 스포츠 국제화와 스포츠외교중흥에 기여한 [큰 별]입니다.

 

 

필자는 동독 베를린에서 개최된 1985년 제90IOC 총회 시 당시 노태우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조직위원회(SLOOC)집행위원장, 박종규 IOC 위원, 김운용 WIF 총재, 최만립 KOC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한기복 체육부 국제국장, 오지철 체육부 해외협력 과장 등과의 현지 체류 시, 박종규 IOC 위원과 사진도 함께 촬영하였고, 그 분의 개인사진도 찍어주기도 했는데, 동 베를린 IOC 총회가 그 분의 마지막 해외 출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좌로부터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박종규 IOC위원, 필자)

 

 

 

 

(1985 531일 동 베를린 개최 IOC참석 중 독일분단의 상징 Brandenburg gate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좌로부터 2번째가 필자, 이어 이영호 체육부장관부부, 박종규 IOC위원 부부, 김운용 WTF총재, 최만립 KOC부위원장, 한기복 체육부국제체육국장, 관계기관 국장)

 

 

타계한 박종규 위원의 뒤를 이어 6IOC위원으로 선출된 사람은 서계태권도연맹(WIF)총재를 역임하고 박종규 IOC위원이 청와대 경호 실장 시절 보좌관을 지냈던 김운용 박사, 1986년 제91차 로잔 IOC총회 시 한국의 제6IOC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한국 스포츠의 국제화 및 세계화를 통한 한국 스포츠외교의 [르네상스]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Dr. Un Yong KIM)

 

 

 

1993-20029년간 대한체육회장 겸 제21KOC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1994년 제103차 파리 IOC총회에서 태권도를 올림픽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결정적이고 독보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필자와 김운용회장)

 

 

 

그는 한국어가 올림픽 대회사용 경기언어가 되고 한국선수단의 올림픽금메달 터전이 되도록 주춧돌을 놓았으며 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를 통하여 한국의 얼과 한민족의 문화를 전 세계에 심었습니다

 

 

그는 IOC TV 분과위원장, GAISF(국제경기연맹 총 연합회: General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s) 회장, ARISF(국제 승인종목연맹 총 연합회: Association of IOC Recognized 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s) 회장, World Games 창시자, IWGA(국제월드게임연합회: International World Games Association) 창설회장, FINO(국제 올림파프리카 재단: International Olympafrica Foundation) 창설회장, 동 재단 IOC 집행위원장, IOC부위원장, IOC 위원장후보 등 한국 스포츠 인사로서는 국제 스포츠 계에서 전대미문, 전무후무할 경이적이 도약을 이룩하였습니다.

 

 

 

(Vitaly Smirnov 러시아올림픽위원장 겸 IOC위원(좌측>과 김운용 IOC부위위원 겸 KOC위원장<우측>이 양국 NOC간 스포츠교류협정 체결 후 악수하고 있습니다. 뒷 줄 필자와 당시 장주호 KOC부위원장)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큰 몫을 하였고, 한국이 각종 국제종합 경기대회 및 총회 등을 유치하게 함으로써 [동방불패]란 명성도 얻게 되었습니다.

 

 

 

 

(Atlanta1996올림픽 참석차 Atlanta국제공항에 한국선수단과 도착한 김운용 당시 KOC위원장 겸 IOC부위원장)

 

 

그는 국제 스포츠 계에 한국의 위상을 우뚝 세운 거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북한에도 김유순 IOC 위원의 뒤를 이어 장웅 ITF(국제태권도연맹: 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총재가 1996년 제105Atlanta 올림픽개최 IOC총회 時 한국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한날 한시에 IOC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 한 바 있습니다.  그는 1938년 생으로 2018년 말 은퇴하게 되고 2019년부터 IOC명예위원으로 올림픽운동에 남아 2032년 한반도올림픽유치 및 개최까지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여해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장웅 북한 IOC위원<우측>과 함께)

 

 

 

 

만약에 남북통일이 될 경우, 동서독의 통일 독일이 되었을 때(당시 서독 IOC 위원2: Will DaumeWalter Troeger, 동독1: Gunther Heinz) 3명이 되어 동독출신의 Gunther Heinz IOC 위원이 명예위원이 되어 총3명에서 2명으로 축소된 전례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193875일생)이 만 80세가 되는 금년 2018년 전에 통일이 될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우리는 통일 독일의 판례(Precedent)를 따르게 될 수도 있었겠지만 2019년부터 IOC명예위원으로 확정된 마당에 그럴 염려는 없어졌습니다.

 

 

 

 

김운용 위원(1931319일생)과 이건희 의원(194219일생)의 경우, 2명 모두 1999년 이전에 선출되었으므로 정년은 80세이나 2000111차에 시드니 IOC 총회에서 제비뽑기 결과에 의하면 2007년에 1/3, 2008년에 1/3, 2009년에 1/3에 해당하는 80세 정년 해당 IOC 위원들이 잔여 정년 임기에 한해 재신임 일괄투표를 거쳐 IOC 위원 직을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운용 위원의 경우 2005IOC 위원 직을 사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故人이 되었습니다.

 

 

 

현행 올림픽헌장 상 원칙적으로 한 나라에 한 명 이상의 개인자격 IOC 위원을 선출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999년 이전에 발행된 올림픽 헌장 (Olympic Charter) 2(Chapter2) IOC 관련 제201.4항을 보면 “한 나라 당 한 명 이상의 IOC 위원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IOC는 그렇지만 하계 또는 동계올림픽 대회를 개최한 나라에 대하여 제2 IOC위원을 선출할 수도 있다(There cannot be more than one member elected in a country, The IOC may, however, elect a second member in countries in which either the Game of the Olympiad or the Olympic winter Games have been held)." 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외 조항에 의거 1996년 제105차 애틀랜타 IOC 총회 시 한국의 제 IOC 위원으로 선출된 사람이 바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고 난 후 만 8년만의 한국스포츠외교의 결실이었습니다.

 

 

이제 올림픽 헌장에는 이러한 규정도 삭제되어 개인자격 IOC위원은 전 세계에 걸쳐 70명이 정원이며, 어떠한 경우의 IOC 위원 후보라 할지라도 그 후보는 IOC가 승인한 NOC가 있는 국가 출신이었어야 하고 1명 이상은 선출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반면, 2014 128~9일 모나코 개최 제127 IOC 임시총회에서 IOC위원들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승인된 40(20+20)개혁권고조항으로써향후 올림픽운동의 전략적 로드맵”(Strategic Roadmap of the Future Olympic Movement) 38 3항에 의하면 개인자격의 IOC위원의 경우, 예외적으로 국적에 관계 없이 최대5명까지 추가 선임할 수 있는 길을 터 놓기도 하였습니다.

 

“3: IOC총회에서는 국적 기준과 연계해 개인 위원들에 관한 한 최대 5건의 특별 예외(a maximum of five special case exceptions)적용 허용 (최대 5명까지 정년 최대4년 연장 가능)”

 

 

 

 

 

<이건희 IOC위원, Sydney2000올림픽 미국여자육상대표 Marion Jones에게 금메달수여>

 

 

 

 

 

 

 

 

 

 

 

올림픽 헌장에서 명시한 올림픽종목 국제연맹회장자격 IOC 위원 수는 국가별 인원수 제한과 무관한 관계로 한국인으로 유일무이한 올림픽종목 국제연맹회장인 조정원 WTF(세계태권도연맹: World Taekwondo Federation)총재가 20054월 마드리드에서 재선(2005-2009)에 이어 2009-2013 2013-2017 4선에 성공하였습니다.

 

 

 

또 조 총재의 국제 스포츠 계에서의 활동 역량과 신뢰도 및 인맥 구축에 충실하고 태권도가 2008년 이후 London2012, Rio2016, Tokyo2020올림픽에 이르기까지 6연속 올림픽정식종목으로 계속 그 지위가 보장되었으므로, 15(Quota) 내에서 결원이 생길 경우, 선별적으로 임기에 준하는 IOC위원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1999년이후 선출되는 IOC위원의 경우, 정년이 70세로 못박혀 1947년 생인 조 총재는 2018년 현재 만 71세로 연령제한에 막혀 더 이상 국제연맹자격 IOC위원 자격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Any other candidature proposal must concern a personality who is a national of a country in which he has domicile or his main center of interests and in which there is a an NOC recognized by the IOC. No more than one member per country may be elected on the basis of such candidatures. The total number of members thus elected within the IOC at any one time may not exceed 70.] 이러한 문구를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김운용 IOC 부위원장이 IOC 위원 직을 사임하였으나 이건희 IOC위원이 개인자격 IOC 위원자격을 고수하고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라도 한국으로부터 개인자격 IOC 위원이 더 이상 선출될 수 없는 현실에 봉착하였었습니다.

 

 

그러나 2017 8월 자진 사임한 이건희 IOC위원의 개인자격 IOC위원 자리가 생겨 오는 2018 10 Buenos Aires개최 제133 IOC총회에서 이건희 IOC 위원 후임 IOC위원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국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대한성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박용성 IOC위원의 경우 개인자격이 아닌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자격(국제올림픽종목연맹회장자격 IOC 정원은 15)으로 국적과 관계없이 국제연맹 회장 임기 동안 한해서 선출된 국제연맹 IOC위원이었습니다.

 

 

따라서 박용성 IOC위원의 경우 IJF 회장 자리를 계속 유지하였다면 만70세(2010)년까지 IOC위원으로서 활동하게 되어있었으나, Beijing2008올림픽을 1년 앞둔 2007 97IJF내 집단 반발 무마 카드로 IJF회장 직을 전격 사퇴함으로 IOC위원자격도 동시에 상실한 바 있었습니다.

 

 

 

                                        

                                      (박용성 前 IOC위원 겸 前 IJF회장)

 

 

 

 

반면 ANOC 및 대륙 별 NOC 연합회(ANOCA, EOC, OCA, PASO ONOC)비롯한 206개 각국 NOC위원장 또는 집행위원 급 이상의 후보자가 15명 정원의 NOC 자격 IOC 위원으로 추천되어 절차를 거쳐 선출되는 길 역시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특출한 재주와 국제 스포츠 계에서의 오랜 기간 공들인 뛰어난 인맥관리,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IOC 내부로부터의 전폭적인 협조 없이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식이 될 공산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 또는 통일 한국에서 미래의 IOC 위원을 꿈꾸는 사람의 경우 첫째 올림픽 종목 국제연맹 회장으로 피선된 뒤 오랫동안 각고의 노력과 스포츠 외교력으로 꽃피워내야 IOC 위원이 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향후 동·하계올림픽 대회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 중에서 인지도와 스포츠 외교력이 뒷받침 되어 매 올림픽 대회 기간 중 대회 참가 각국 선수들이 투표로 선출하는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될 경우 최대 8년 임기의 IOC 위원 직을 겸할 수 있겠습니다.

 

 

Beijing2008올림픽대회에서 선수자격으로 IOC위원 직(2008-2016)에 선출되었던 Athens2004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 前 동아대 교수가 대한민국 선수자격 IOC위원 제1호였습니다.

 

 

 

 

(2011년 당시 평창2018 동계올림픽 유치 당시 문대성IOC위원<우측>과 함께)

 

 

 

 

 

지난 20055월 중국 베이징에서 국제 배드민턴(WBF)회장으로 선출된 강영중 대한배드민턴연맹 회장도 2009 WBF회장으로 재선되었었고, 그 동안 국제 외교력을 인정받아 국제 스포츠 계의 인지도, 공헌도를 인정받은 경우 또 1명의 IOC위원 탄생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성취되지 못한 바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가능성 있는 대안은 NOC자격 IOC위원 선출입니다.

 

 

이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최소 4년 이상 국제 스포츠 계에서 괄목할만한 공적과 업적, 기여도와 인지도가 뚜렷이 각인될 경우, 또는 이미 국제 스포츠 계에서 검증 받고 인정받고 있는 인사들 중에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승적 차원에서 향후 국제 스포츠 외교 국가대표 후보로서 KOC가 적극 추천하고 스포츠외교 역량이 허락할 경우 빠르면 2018년 제133차 또는 2019년 제134IOC총회 시 NOC자격 추가 IOC위원이 선출될 수도 있으나 개인자격 IOC위원이 공석인 한국의 경우 NOC자격 또는 개인자격 IOC위원 중 신임 IOC위원이 선출될 가능성이 농후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유승민 후보는 2016 819(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선수촌 내 프레스 룸에서 발표한 IOC 선수위원 투표 결과 역대 두 번째로 한국인 선수자격 IOC위원에 선출된 바 있습니다.


유승민 후보는 투표에 나선 선수 5815명 중, 여기서 Britta Heidemann(독일·1603)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544표를 얻으며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바 있습니다.

 

 



 

유승민 IOC위원은 Beijing2008올림픽 기간 중 당선된 Athens2004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8년 임기의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바 있습니다.


선수위원은 일반 IOC위원과 임기만 다를 뿐 권리와 의무는 똑같으며 임기가 8년으로 제한된 선수위원의 경우 올림픽개최지 선정 및 올림픽정식종목 승인 등 IOC주요 사안에 대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2017 8월 자진 사임한 바 있으며 문대성 선수자격 IOC위원임기가 2016년 부로 종료됨에 따라 유승민 선수자격 IOC위원이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IOC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References:

-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윤강로 저)

-IOC홈페이지

-대한체육회 제공사진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