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20. 7. 10. 11:18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65(2032년 서울 평양 하계올림픽 서울시 유치특보 위촉과 추진 축인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별세)]


 

서울특별시 시장 박원순님(향년 65)께서 2020 7 9일 별세하였다. 2020429일 생전 처음 들어가 보는 서울시청 청사 2층에 위치한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2032년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서울시 유치특보(국제/Special Advisor) 위촉장을 수여 받고 환담하였다.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박원순서울시장은 꼼꼼하고 계획성 있는 구상으로 업무를 추진해 나가는 지도자의 인상을 풍겼다. 올림픽유치를 위한 첫 단추로 올림픽유치 관련 조직 발대식을 염두에 두고 필자에게 서울1988올림픽 유치 성공을 발표한 날짜를 아느냐?’고 묻자 필자가 1981930일 서독 Baden-Baden이라고 하자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느냐?’고 약간 놀랄 정도로 순수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2020년 4월2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필자에게 올림픽유치특보 위촉장을 수여하고 악수하고 있다)

 

이어서 930일은 의미가 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으니 앞당겨 행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었으며 당초 72일로 예정하였다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다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에게 경험을 살려 올림픽유치활동에 애써 줄 것을 당부하였고 비상근 자원봉사직인 올림픽유치특보에게 제도 상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여 송구하다고 하면서 배석한 담당국장에게 지원이 될 만한 방법을 강구하도록 지시하였다

박시장의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 느껴졌으며 고마웠다. 특히 서울-평양 공동 유치추진이 한반도 정세 상황 상 여의치 않으니 先 서울시 단독 유치, 後 서울-평양공동개최라는 Plan B가 합당한 계획으로 납득하고 있으며 그러한 방향으로 구상하고 있노라고 이야기 하였다

Plan B는 필자가 평소 국회 간담회 등지에서 여러 번 강조하며 대안으로 제안한 내용이기도 하다. 고인이 열정을 가지고 추진해 온 44년 만의 서울-평양2032올림픽유치가 그 빛을 발하여 성공함으로 고인의 유지에 부합되도록 추진되고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박시장과 필자는 1956년 원숭이 띠 갑장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도를 표한다. Rest in peace!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7. 10. 10:04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64(외대영어과입학, 스포츠외교관으로 가는 神의 한수)]

 

1976년 재수까지 하면서 적성에 안 맞는 서울공대 2번 낙방한 후, 마침 서울공대 전자공학과 재학중인 고교선배가 필자의 적성에 맞는다고 하면서 후기인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지원하라고 권고하였다.


영어에 남 다른 관심과 적성에 맞아 응시하였고 합격하였다.

외대 재학 중 영어과 과대표자격으로 용산 American High School로 찾아가 교장(Principal)과 만나 외대영어과 학생들과 미국 고3 여학생(Senior Students)들과의 Blind Meeting도 주선하였고 남영동에 있는 미국 군 관련 서비스기관인USO(United Services Organization)에서 3년 간 Volunteer로 활동하였다.




(필자가 9년 전 외대 영어대학 동문회 사무총장으로 추대되어 영어대학 연례총회 시 영어로 사회를 보던 모습과 아래사진은 2011년 총회 후 당시 외대총장(박철/-3)), 부총장(김인철 현 총장/-1), 영어대학동문회장(임경자 선배/-2) 및 엄홍길(한국 대표 산악인/-3) 외대동문과 윤용로 영어과 선배(기업은행장 및 외환은행장 역임) 필자(-1) 기념촬영)

 

재학 중 영어수필경시대회에서도 가작 수상하였다.



국제핸드볼심판강습회 통역 -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1회 공기총 세계선수권대회-박스컵 국제축구대회-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국내 개최 모든 국제스포츠대회에 외대통역단장 겸 미국 팀 통역으로 활동하였다.



덕분에 외대졸업식에서 USO에서 공로표창패를 수여 받기도 하였다.

 


외대 영어과 진학은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디자인하신 '신의 한수'(God's Providence)였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스포츠외교활동으로 부여되었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7. 8. 16:37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63(국제회의공식발언은 외국어실력에 내공 접목이 필수불가결)]

 

필자가 40년 간 IOC총회, ANOC총회, OCA총회, 올림픽대회 각국단장회의 등 국제스포츠관련 각종 회의에 대한민국회의 대표로 참석하면서 수 많은 제안과 발언을 공식적으로 하였다. 전임 IOC마케팅국장인 영국의 Michael Payne은 지금까지 공식회의 발언 개입 빈도수 면에서 필자가 기록 보유자(Rocky, you are a record holder in terms of the number of interventions.)이라고 평가해 주기도 하였다.


(Nagano1998 동계올림픽 기간 중 매일 아침 열리는 세계각국 선수단장회의에서 단골 발언자로 명성(?)을 떨쳤던 필자의 발언 모습)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스포츠외교관이자 필자의 스포츠 외교 Mentor인 고 김운용 IOC부위원장은 필자에게 자신도 국제스포츠 계에 10년이 지나고 나니까 국제회의 돌아가는 정황에 따른 말문이 트일 정도로 어려운 것이 국제회의에서의 발언이라고 개인적으로 토로할 정도다.


 

십 수차례 동하계올림픽 한국선수단 섭외임원으로 매일 아침 열리는 각국선수단장회의에서 단장대행자격으로 쏟아 내는 각양각색의 유용한 질문과 제안이 이어지자 미국 선수단 단장은 사석에서 필자 더러 자기보다 영어실력이 휠씬 출중하다고 혀를 내 두르며 칭찬을 받은 적이 왕왕 있었다.

 


겸연쩍기도 했지만 이처럼 아무리 원어민이라고 해도 회의 콘텐츠 성격이나 현장경험과 대처능력 등 상황 파악의 깊이가 수준급이 안 되면 한 마디의 적절한 회의 발언을 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국제회의 발언은 언어구사능력뿐만 아니라 내공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7. 7. 10:54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62(동계올림픽 한국스타들의 대 약진과 평창2018유치성공)]


 

Calgary1988동계올림픽에 시범종목으로 채택되 4년 후인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부터 정식메달종목으로 채택되어 대한민국동계올림픽 금메달의 보고가 된 효자종목 쇼트트랙(Short Track Speed Skating) 원조 금메달리스트 레전드(Legend)는 김기훈과 이준호다.


(좌로부터 이준호 선수, 필자, 김기훈 선수/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 시절)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 신규정식종목인 쇼트트랙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들과의 외신기가회견/좌로부터 이준호 금메달리스트, 통역 중인 필자, 김기훈 2관왕)

 

Lillehammer1994동계올림픽에서는 전이경선수가 여자쇼트트랙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어 한국 올림픽 여자 빙상 쇼트트랙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평창2014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시절 필자와 유치위원회 홍보대사인 전이경 4관왕)

 

김윤만선수는 Albertville1992에서 대한민국최초의 속도 빙상(Speed Skating) 종목 은메달리스트가 되었다.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 남자 속도 빙상 종목 은메달 획득 후 가진 외신기자회견장에서 김윤만 선수<우측>를 통역 중인 필자<좌측>)

 

그 후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남녀선수들의 금메달 행진이 이어 오다가 Vancouver2010동계올림픽에 이르러서는 남녀 속도 빙상 종목 금메달, 남녀 쇼트트랙 빙상 금메달, 김연아까지 가세하여 빙상 피겨 여자 개인종목 금메달까지 주렁주렁 올림픽금메달을 무더기로 국민들에게 선사하며 전세계에 한국 빙상의 세계르네상스시대를 활짝 열어주었다.

 

 (피겨스케이팅 여제 김연아 선수/Vancouver2010동계올림픽)


(김연아 선수와 필자의 만남/2007년 필자가 평창2014동계올림픽유치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시절 스포츠 관련 시상식장에서)

 


Vanouver2010동계올림픽의 쾌거는 곧바로 1년 후인 2011 7월 남아공 Durban IOC총회에서 평창2018의 동계올림픽유치성공까지 이어지는 신호탄이 되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빙상선수들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7. 6. 10:51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61(대한민국여성스포츠 스타 군단의 스포츠 K 한류)]


 

1982 New Delhi 아시안게임과 1984 LA올림픽은 필자가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에 특채 입사(1982)후 대한민국대표선수단 섭외임원으로 처음 참가했던 하계대회들이다.

 


 

뉴델리 주재 한국대사관 정원에서 대사께서 선수단 환영 가든 파티로 격려해 주시고 LA1984올림픽에서는 한인회-후원회-재미대한체육회에서 한인교포들이 열과 성을 다하여 선수단을 지원해 주고 응원해 주었다.


그 당시 수영선수로 출전했던 최윤희 선수(New Delhi 1982 아시안게임 금메달 3관왕)가 지금은 자랑스럽게 여성 선수출신 첫 문화체육부 제2차관이 되었다.


(New Delhi 1982아시안게임 당시 주 인도대사관저에서/좌로부터 최윤정선수, 필자, 최윤희 선수)

 

대한민국 양궁의 세계선수권대회 첫 금메달의 주인공인 김진호선수는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이다.


(LA1984 올림픽 한국선수단으로 참가한 세계여자양궁 여제 김진호 선수, 필자, 서향순 여자 양궁 LA 올림픽금메달리스트)


또한 동계올림픽 대한민국 빙상 쇼트트랙 첫 올림픽 4관왕인 전이경 선수는 싱가포르 국가대표 쇼트트랙 팀 Head Coach로 각각 활약 중이다.


(스위스 Lausanne 소재 올림픽박물관에서 전이경선수와 함께)


이들을 포함하여 기라성 같은 종목별 역대 스포츠 스타 군단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스포츠 K-한류가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이들에게 박수와 칭송과 존경을 보낸다. 대한민국 스포츠 여! 영원하라~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7. 5. 11:09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60(스포츠 연관 여성스타들 이야기)]

 

평생 스포츠외교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스포츠에 연관된 각 계 여성스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필자의 주제에 로맨스는 전무하였지만 친구로 지인으로의 좋은 추억의 인연이 되었음에 감사한다.

(태국 출신 1997Miss Universe와 함께)


서울1988올림픽성화채화를 위해 대회 1년 전인 1987 917일 그리스 올림피아로 대한항공전세기편을 타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경유지인 태국 방콕에 들렀을 때 환영 사절로 방콕국제공항으로 영접 나왔던 1987 Miss Universe로 뽑혔던 태국 여성, 1995 Miss Korea 최윤영(평창2010 2014 유치 홍보대사), 러시아 Odessa음대 교수이자 평창2010동계올림픽유치 홍보대사였던 신문희, 미국여자공기총대표선수 Ashley, 세계골프여제로 명성을 떨쳤던 Annika Sorenstam(스웨덴)등과의 추억의 사진을 통해 새록새록 그 시절을 반추한다.


(1995Miss Korea인 최윤영은 평창2010 및 평창2014동계올림픽유치 홍보대사로 활동하였다/좌로부터 헝가리 NOC부위원장, 필자, 최윤영, Pal Schmitt헝가리 IOC위원<추후 헝가리 대통령 역임>)


(러시아 Odessa음대 교수 출신으로 평창2010동계올림픽유치 홍보대사로 체코 프라하 IOC총회에 유치대표단과 함께 하였다)


(1979년 태릉 개최 제1회 세계공기총사격대회 미국 사격대표선수로 참가한 Ashley와 함께)


(한국이 낳은 세계여자피겨스케이팅 여제 김연아선수와 함께)


(세계여자골프 여제로 명성을 떨쳤던 스웨덴 출신의 Annika Sorenstam과 함께)

(일본 여자 피겨스케이팅 스타 안도 미키 선수와 함께)


(한국 여자 쇼트트랙 스케이팅 올림픽 최초의 4관왕 전이경선수와 함께)


(아시아 여자 수영 챔피언,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선수<현 문체부 2차관>LA1984올림픽 개회식장에서 함께)


(한국과 아시아가 낳은 최고의 여자농구 스타 박찬숙선수와 LA1984올림픽 후 귀국 기내 안에서/좌로부터 조승연 여자국가대표 농구팀 감독, 필자, 박찬숙 선수)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7. 4. 10:15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 실록59(Mario Vazquez Rana ANOC회장가족이야기)]

 

40년 간 국내외 스포츠외교활동을 하면서 전 세계 각지를 두루 탐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각양각색의 문화와 음식과 인종과 언어와 풍습을 접하였다.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터키 Istanbul의 전통시장 Bazaar 내 금 보석 가게 진열품)

 

그 덕분에 20여 개국 언어의 억양과 그 묘미를 통한 고유한 기질도 느낄 수 있었다. Mexico City에서1985년 열린 ANOC총회는 1979 ANOC창설당시부터 회장을 역임하였던 Mario Vazquez Rana(MVR)회장의 고향에서 개최되었는데 멕시코 최고 갑부 중 한 명인 그의 저택에서 당시 160여 개국 NOC대표들 및 IOC위원장과 IOC위원들을 포함한 전 세계 스포츠지도자들을 모두 초대한 성대한 환영리셉션을 베풀 정도의 규모였다.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Mexico City 저택 내 회장 개인집무실에서 함께)

 

MVR회장의 자녀 들도 함께 동석하였는데 둘째 딸인 Miriam Miss Mexico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모라고 생각되었다.


(Miriam Vazquez Rana 와 함께)


당시 미국 UCLA대학 유학생이라서 스페인어는 물론 영어도 능숙하였다. MVR회장부부도 필자를 한 가족처럼 친근하게 아껴 주고 간간히 Miriam의 근황도 알려 주기도 하였었다.


(MVR자녀들 및 사위와 함께/-3이 필자 우-3Miriam)

 

Miriam과는 운명 상 연분이 되지는 못 하였지만 MVR회장은 필자에게 ANOC공로훈장이 수여되도록 적극 추천 및 후원하여 주었고 2008 ANOC총회 개회식에서 한국 최초로 ANOC공로훈장 수상자의 명예를 선사하여 주었다


영원한 ANOC회장 MVR그 분의 영전에 이 사진들을 올려 드린다.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부부와 함께)


(좌로부터 최만립 KOC명예총무,필자,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부부)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7. 3. 10:22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 실록58(대만 스포츠외교관 역대 IOC위원현황)]

 

대만(Chinese Taipei) 스포츠 외교 거목 CK Wu IOC위원으로
전임 국제복싱연맹(AIBA)회장이었으며 현역 유일의 대만 IOC위원이었던 Ching-Kuo Wu(1946 1018일 생/ 73)가 의학적 소견에 따른 권고를 받고(on medical advice) 지난 2020 317 IOC위원직을 전격 사임하였다.


(좌로부터 Dr Nat Indrapana태국 IOC위원, 필자, C.K. Wu대만 IOC위원)

 

1988 IOC위원으로 선출된 CK Wu IOC위원은 32년 간 IOC위원으로 활동하여 왔으며, 그의 사임으로 IOC위원 총수는 202073일 현재 정확하게 100명이 되었다.

대만 초대 IOC위원이었던 Henry Hsu IOC위원 보좌관으로 IOC위원들에게 예의를 지키며 얼굴을 알려며 활동하다가 Hsu IOC위원이 명예퇴임하면서 Samaranch IOC위원장에게 자신의 후임 IOC위원으로 적극 추천하여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열린 IOC총회에서 IOC위원이 되었었다.


(좌로부터 필자, Henry Hsu 대만 초대 IOC위원, 김종열 대한체육회장)

 

이제 대만은 2 IOC위원을 끝으로 제3 IOC위원 임명이 되지 않아 IOC위원의 맥이 당분간 휴지기에 들어 간 셈이다. 2020 7월 열리는 Untact IOC Session에도 신임 IOC위원 후보 5명 명단에도 추천이 없는 상태다.


(Henry Hsu 대만 초대 IOC위원 부부와 함께)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7. 2. 11:02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57(역사적 남북한 NOC간 스포츠교류협정 체결 성사된 부산2002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스포츠외교사 측면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북한올림픽위원회(DPRK NOC)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간의 양측 스포츠교류협정체결 성사였다.

성사가 이루어진 배경은 당시 북한 NOC서기장 조상남과 필자와의 국제회의를 통해 다져진 막역한 인간관계와 진정성 있는 막후 교섭, 특히 조상남 서기장을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에 대한 설득에 힘 입어서 였다. 국가 간이 아니라 NOC간이라는 키워드와 이미 43개 각국 NOC들과도 교류협정이 쳬결되었음을 강조하였고 무엇보다도 그 당시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남북한 NOC교류협정 체결은 남측의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겸 KOC위원장과 북측의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겸 체육상 간에 조인 서명식을 통해 조인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조상남 북한 NOC부위원장 겸 서기장은 2004년 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 기회를 빌어 故 조상남 북한 NOC서기장의 명복을 빈다. Rest in Peace!

류성일 북한 NOC 서기장의 뒤를 이은 인물은 故 조상남 서기장으로 1959(돼지띠) 평안북도 철산리 태생으로 필자보다는 3년 연하이며 2003 5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개최 제12 ANOC 총회 시부터 교분을 맺어온 바 있었다. 故 조 서기장도 중국어와 영어도 잘하고 활달하고, 소신과 철학이 뚜렷하고, 논리 정연하여 토론에도 능했지만 의리파이며 다정다감하기도 했다.


(류성일 북한 NOC서기장과 함께/방콕1998 아시안 게임 양궁경기장에서)

 

필자(1956년 원숭이 띠)와는 나이 연배를 따져 형님, 동생 사이로 지내기로 약속하기도 할 정도였다.

 

(故 조상남 북한 NOC부위원장 겸 서기장은 2004년 말 심장마비로 사망함/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겸 체육상의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모습으로 2003년 말 교통사고로 타계하였다고 함)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참가 남·북한 선수단이 개·폐회식 공동행진(Joint Parade)과 관련 금강산에서 3차에 걸친 실무대표 회의 때 필자는 낮에는 남측 3인 실무대표의 일원에 불과했지만, 저녁만찬 테이블에선 수석대표(?)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석상에서는 양측 주장으로 열띤 대화가 이어졌지만 막상 만찬석상에서는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라서 필자가 총대를 메고 분위기 메이커 겸 이런저런 화제를 꺼내고 허심탄회한 만남의 장을 연출해 보기도 했다. 故 조 서기장 고향이 평북 철산리 바닷가라서, 필자가부산 아시안게임기간 중에 다시 만나면 형님으로서 뭘 사주고 싶은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날래 말하라우라고 이북 사투리로 묻자, 故 조 서기장은기라면 이왕이면 털게가 먹고 싶긴 한데, 귀하단 말씀이야, 가능 하갔소?”라고 받아들였다.

 

부산 아시안게임 기간 중, 부산 롯데호텔에서 오찬을 겸한 남·북한 NOC협의회의 시작 전에 필자는 평소에 비교적 친분이 두터웠던 박명철 북측 NOC위원장에게 지난날 금강산 회담 시 이야기를 상기시키면서, 털게를 대접해도 되겠냐고 예의를 차렸고, 박 위원장도거저 조 서기장 먹고 싶은 거라면 먹어야 되지 않캈어?”라고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그 후에도 국제회의 시 여러 번 만났고 필자가 2004년초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를 명예퇴직(국제담당사무차장1)한 후 필자 걱정도 많이 해주고 인간적이고 훈훈하고 자상하게 대해주었던 조상남 북한 NOC서기장은 그 후 후배에게 서기장 자리를 물려주고 부위원장 직을 맡을 참이었다고 한다. 2004 2월 그리스 아테네 개최 제14 ANOC 총회가 끝나가는 무렵, “공석이 될 서기장 후보를 이제야 찾았다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2004년 말 연합뉴스를 통해 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필자는 친동생이상의 가족 중 한 명이 죽은 것 같은 아찔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함께 느끼기도 하였다. 그렇게 졸지에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한 故 조상남 서기장 영전에 생전에 좋아했던 「털게」를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7. 1. 10:52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56(국제체육기자연맹/AIPS 회장 선거이야기)]

 

 

AIPS(Association Internationale de Presse Sportive/International Sport Press Association)는 전세계 스포츠 취재기자들이 회원인 국제 스포츠 언론계의 공인된 최고 권위의 기구로서 1993년 당시 영국 기자 출신인 Frank Taylor가 회장을, 이태리 기자 출신인 Massimo Dela Pergola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다.

 

 

(Frank Taylor 당시 AIPS회장과 함께)

 

 

1993 5월초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제56 AIPS 총회가 개최되었다. AIPS 회장 등 집행위원 선거가 있는 중요한 회의여서, 필자는 중국 상해에서 개최되는 제1회 동아시아 경기대회 한국선수단 섭외 임원으로 참가하기에 앞서 AIPS 부회장으로 입후보한 박갑철 ASPU 회장의 선거 지원을 하도록 당시 김운용 KOC 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별도 항공 스케줄에 의해 터키 이스탄불 현지로 날아갔다.

 

대세 판단에 뛰어난 박갑철 AIPS 부회장 후보는 당시 Frank Taylor AIPS 회장과 경쟁 후보인 터키 체육기자 출신이며 당시 NOC 사무총장인 Togay Bayatli 당시 터키 NOC 위원장과 손을 잡고 공동 연합전선을 전개하였다.

 

 

필자는 Togay AIPS 회장 후보와 박갑철 AIPS부회장 후보와 함께 모인 전략회의 석상에서 가능한 무혈입성, 즉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승리이므로 우선, 필자가 1987 AIPS 서울 총회 때부터 친분을 쌓았던 Pergola AIPS 사무총장과 Taylor 회장을 직접 면담해서 AIPS 회장 후보 사퇴를 종용하고 대신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여 예우하는 방향으로 설득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다.

 

 

 

(죄로부터 Togay Bayatli 터키 NOC위원장 겸 AIPS회장 후보<추후 AIPS회장당선>, 필자, 박갑철 ASPU회장 겸 AIPS부회장 후보<추후 AIPS부회장 당선>/터키 Istanbul AIPS총회 현장)

 

 

Pergola 사무총장은 별 이견이 없었으나 Taylor 회장은 필자가 선거 판 향방과 대세가 이미 기울었으니 명예롭게 퇴진하도록 간곡히 설득하자 조용히 경청하고 나서 필자의 손을 꼭 잡더니 “배려해줘서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영국인의 전통은 비록 싸움터에서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므로 미련 없이 결전을 치르겠다.”라고 하며 끝내 후보 철회를 하지 않았다. 투표 결과는 홈 그라운드에서 조직적으로 표를 장악한 Togay가 신임 AIPS 회장에 우선 당선되었고, 이어서 치른 AIPS 부회장 선거에서는 한국의 박갑철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경쟁 후보를 제치고 AIPS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다.

 

 

필자가 AIPS 각국 회의 대표에게 박회장 대신 영어로 유세 연설을 했지만 그 내용은 거의 박회장의 아이디어였다. 1987 AIPS 서울 총회 시부터 쌓아온 친분과 인간적 신뢰의 바탕 아래서. Togay회장이후 다시 이태리 체육기자출신인 Gianni Merlo AIPS후임회장으로 2020년까지도 장기 집권 중이다.

 

 

(Milano에서 좌로부터 필자, Sergey Bubka 우크라이나 NOC위원장 겸 IOC집행위원 부부, Gianni Merlo AIPS회장)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