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20. 6. 17. 19:02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45(2008올림픽 IOC평가위원활동과 중국인민대학교 객좌교수/Guest Professor)]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으로 5개 결선진출후보도시 방문 후 Lausanne IOC본부로 돌아가서 최종올림픽후보도시평가보고서를 공동으로 Draft하였는데 영어권 IOC평가위원이 보고서 작성을 리드하면서 Beijing2008후보도시 편에서 한사코 중국인권문제를 동 보고서에 기록할 것을 주장하였다.

 

(좌로부터 Carlos Nuzman브라질 IOC위원, Sergey Bubka우크라이나 IOC위원/선수위원장, 필자, Tomas Sithole 짐바브웨 IOC위원, Francisco Elizalde 필리핀 IOC위원/Lausanne IOC본부)

 

당시 외신에서 연일 대서특필하며 중국문제를 다뤘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아시아출신 IOC평가위원이었던 필자는 IOC평가위원회 평가단이 부여 받은 임무가 기술적 측면평가(technical assessments)로 한정되어 있고 정치적 측면은 취급하지 않도록(we are not supposed to touch upon the political aspects) 되어 있는 지침(guidelines)을 상기시키면서 보고서 어디에도 인권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함을 강조하였고 당시 Hein Verbruggen 평가위원장(UCI회장 겸 네덜란드 IOC위원)Samaranch IOC위원장이 필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Paris2008올림픽유치후보도시 현지실사 중 파리지하철 내부상황점검 중인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과 IOC평가위원인 필자)

 

때 마침 스위스 Lausanne Palace호텔에 와서 IOC평갸위원회 최종보고서 작성에 따른 예민한 부분에 대한 동정을 살피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던 Zhenliang HE IOC부위원장은 필자를 자신의 호텔 방으로 초대하여 경과에 대해 물었고 필자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결과를 설명해 주자 그는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좌측: Zaiqing YU 현 중국 IOC부위원장과 우측: Zhenlinag HE 당시 중국 IOC부위원장 겸 IOC문화분과위원장)

 

그로부터 몇 개월 후 Moscow개최 IOC총회 첫 날 투표에서 Beijing2008후보도시가 나머지 4개 결선진출후보도시들(Paris2008-Toronto2008-Istanbul2008-Osaka2008)을 누르고 2008년올림픽개최도시로 선출되었다.

이후 필자에 대해 무슨 이유(?)에서 인지 중국 방문 시마다 한 동안 VIP예우가 계속되었다. 그 일환인지 모르지만 필자는 중국 3대명문대학교(베이징-칭화-인민) Beijing2008올림픽 자원봉사자 교육 전담대학교인 인민대학교에 객좌교수(Guest Professor)로 위촉되어 4년간(2005~2008)특강과 다양한 자문초빙을 받아 활동하였다. 2003년 몽골명예박사학위와 더불어 “Prof. Rocky-Kang Ro YOON Ph.D.”로 호칭도 바뀐 셈이다.

IOC도 중국이 Beijing2008올림픽을 치르면 인권문제도 자연스럽게 대회유산(Games Legacy)로 체질 개선될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중국인민대학교 객좌교수 위촉장과 몽골명예박사학위증 및 중국 북경일보 올림픽특집호 필자 인터뷰 기사)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6. 16. 20:03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44(국제스포츠외교훈장 격인 ANOC공로훈장 대한민국최초수상)]

 

2008년 중국 Beijing개최 ANOC총회 개회식에서 대한민국최초 스포츠외교공로훈장 격인 ANOC공로훈장(ANOC Merit Award)를 수여 받았다.

 

 

1979년 창설된 ANOC(Association of National Olympic Committees)창설회장 겸 올림픽운동 조직에서 IOC위원장 다음으로 No.2의 실세인 멕시코 실력자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은 40년 가까이 전세계 NOC총 연합회 회장 겸 IOC Olympic Solidarity분과위원장 겸 IOC집행위원으로 명성을 떨쳤다.

 

(Mexico City 소재 ANOC회장 집무실에서 함께/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자녀들과 함께/-3이 미국 UCLA출신 Miriam)

 

그분(1932년 원숭이띠)은 필자(1956년 원숭이 띠)와 띠 동갑으로 그분 및 그분 가족들과 한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냈다.

필자가 20년 넘게 KOC회의 대표로 ANOC총회 단골대표로 참석하고 총회에서 비중 있는 발언을 자주 하면서 필자를 더욱 아껴주고 보살펴 주었다.

사실상 그분이 필자에게 ANOC공로훈장 후보로 KOC에서 추천하면 바로 시상하겠다고 언질을 준 것이 동기가 되어 당시 김정길 KOC위원장의 고마운 추천이 실현되어 ANOC공로훈장을 수상하게 되었다.

 

(2008 Beijing개최 ANOC총회 개회식에서 ANOC공로훈장 수상 후 김정길 KOC위원장과 축하 기념촬영)

 

훈장은 Rana회장이, 공로 패는 당시 Jacques Rogge IOC위원장이 수여하였다. 수상 이후 Rena Fasel 국제아이스하키연맹(IHHF)회장 겸 IOC집행위원과 Anita DeFrantz미국 여성 IOC부위원장이 특별히 축하해 주며 기념 촬영도 함께 하였다.

 

(좌측이 Rene Fasel IIHF회장 겸 스위스 IOC집행위원/우측 여성이 Anita DeFrantz 미국 IOC부위원장, 우측 끝은 중국인민대학교 학장)

 

앞으로 대한민국 차세대 스포츠외교관들 중 제2, 3 ANOC공로훈장 수상자가 나오길 소망한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6. 13. 10:11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43(평산 스포츠박물관 건립과 강릉올림픽박물관 무상기증 스토리)]

 

 

Athens2004올림픽에 즈음하여 스포츠외교의 중요성을 통감하여 최초로 스포츠외교를 연구하고 지원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International Sport Diplomacy Institute)을 설립하고 30여년 세월 동안 동 하계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IOC총회, ANOC총회, OCA총회 등 각종 국제 회의와 이벤트 등지에서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던 기념품들과 자료 및 스포츠 사료 등을 모두 함께 모아 전시할 공간을 창출하고자 물 맑고 공기 좋고 경관이 수려한 경기도 양평군에 전원주택과 함께 스포츠 박물관도 함께 짓게 되었다.

 

 

 

2003 7월 체코 프라하 IOC총회에서 있었던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첫 도전에서 안타깝게 역전패하였지만 2014년 동계올림픽 재 도전의 의지를 뜨겁게 불사르고 있었던 때라 전원주택 옆에 개인 스포츠 박물관을 자리매김함으로써 스포츠외교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의도한 바 있다.

 

 

 

(2004년 평산스포츠박물관 개장 당시 월간 신동아에 소개된 박물관 모습과 필자)

 

3수 도전 끝에 평창2018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치성공과 조직위원회(POCOG)에 몸을 담고 위원장 보좌역으로 근무 중 평창2018 올림픽빙상개최도시 강릉시의 강릉올림픽박물관 건립의 주춧돌이 되고자 2015 1028일 프레스센터에서 최명희 강릉시장에게 필자의 평산 스포츠박물관 소장 올림픽 수집기념품 전체를 통째로 무상 기증하였다. 기증과 기부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6. 12. 10:54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42(부산2002아시안게임유치현장과 부산명예시민위촉)]

 

 

1960년대 한국이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고도 국내 여건이 여의치 않아 눈물을 머금고 대회를 반납하여 태국의 방콕이 한국대신 아시안게임을 치러준 웃지 못할 한국스포츠외교사의 씁쓸한 비사가 있다.

1988 서울올림픽대회를 유치한 「바덴바덴 대첩」에 이은 1986 서울아시안게임 유치는 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확고히 하기 위한 전초전이자 실전 워밍업(Warming-up) 겸 리허설 성격이 짙었다.

따라서 1986 서울아시안게임은 그때까지의 역대 대회 중 조직·운영 등 모든 면에서 최고·최상·최대의 대회로 평가되었다.

그 당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우리나라 각 부분에 걸친 크고 작은 행사나 모임에서 심지어는 결혼식 주례사에서도 「′86,88 양대회의 성공을 위하여」란 문구는 필수불가결한 약방의 감초처럼 회자하였었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에 이어 중국의 수도 북경이 2000년 올림픽 유치를 염두에 두고 1990년 제11회 아시안게임을 유치하였고, 1994년 제12회 대회는 일본의 히로시마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원폭 이미지 개선을 위해 유치하였으며, 1998년의 제13회 대회는 태국의 방콕으로 개최지가 확정되었다. 그 무렵인 1993년 가을,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항도 부산이 2002 아시안게임 유치에 출사표를 던졌다. 유치 경쟁도시는 국제대회유치를 통해 국가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던 대만 제2의 도시 카오슝이었다.     

각국의 서열 2위 도시끼리의 유치 전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유치(bidding or bid)란 말은 일반적으로 대형프로젝트를 입찰경쟁을 통해 따온다는 의미로서 물·불 안 가리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목표달성을 위해 전략적 행동지침에 의해 사방팔방 뛰는 현대판 국가간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1981년 당시 서독의 Baden Baden에서의 1988 서울올림픽 유치도 이런 개념 아래서 현대 그룹의 총수였던 故 정주영 회장을 유치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예산·회계 범주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유치전을 치를 수 있도록 하였으며, 2002 FIFA 월드컵 축구대회 유치전을 위하여 구평회 LG 그룹 총수와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겸 FIFA 부회장 등을 중심을 유치위원회 수뇌부를 구성한 바 있다.   

 

 

(Zhenliang HE 중국 IOC부위원장과 환담 중인 정주영 대한체육회장 겸 KOC위원장, 가운데는 통역 중인 필자)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부산아시안게임 유치 위원회는 인맥이 두텁고 수완이 출중하며 성공한 사업가 출신의 우병택 부산광역시 의회 의장을 유치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도종이 국회의원, 이영 부산 상공회의소 상근 부회장, 박관용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재 당시 부산시장 또 강병준 부산·경남지역 민간방송회장 등을 비롯한 부산시 상공인들과 부산 출신 국회의원들 그리고 부산언론단체장들과 체육인들이 동참한 삼위일체의 유치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좌로부터: 이란 NOC사무총장, 필자, 우병택 유치위원장, 도종이 유치위 부위원장, 이란 NOC 임원)

 

 

우병택 유치위원장은 리더십, 판단력 그리고 순발력이 탁월했고 민간 기업들은 프로젝트 입찰경쟁 및 수주과정에서 예산, 회계상의 절묘한 실전적 유연성을 발휘하고 상대방을 제압할 줄 아는 노하우 등을 보여줬으며 부산광역시는 행정적 협조를 전폭적으로 제공하여 유치기금모금과정부터 유치 전문가 발탁, 유치활동, 유치 성공에 이르기까지 순탄하고 단합된 기상을 보여줬다.

 

필자는 당시 KOC(대한체육회) 국제부장 자격으로 아시안게임 유치 공식 채널인 KOC의 김운용 위원장 겸 IOC 부위원장과 함께 부산아시안게임 유치위원회 발족 시부터 유치활동지원 실무 총괄책임자로서 부산유치와 인연을 맺었다.

부산아시안게임 유치를 위한 한국 스포츠외교의 한마당은 이렇게 펼쳐졌다.

1982 9월초 KOC에 특채되어 1985년 입사 3년 만에 최연소·최단기간 과장으로 발탁된 관계로 당시 대한체육회 직원들로부터 관심과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입사하고 2개월 후 제9회 뉴델리 아시안게임 참가 한국 선수단 선발대, 섭외임원 겸 창립 OCA(아시아 올림픽 평의회: Olympic Council of Asia) 총회 회의 실무 대표로서 1993년 당시 10여 년간 각종 OCA 회의 조직 및 참가 등을 통해 회원국 NOC 대표들과의 뜨끈뜨끈한 친목도모, OCA 수뇌부 및 인맥들의 성향과 동향, OCA 헌장규정, 아시안게임 유치 전에 입각한 OCA 취향 등을 분석하고 있던 터라 OCA 실무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소위 「물 만난 고기」격이었다. 

IOC가 미국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부패 스캔들로 인해 시작된 IOC 개혁과정을 통해 1999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IOC 윤리규정(Ethical Code)에 명시된 올림픽대회유치 행동지침(Code of Conduct)과 같은 종류의 제약은 OCA가 주관하는 아시안게임의 유치과정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부산유치 당시인 1990년대에는 더욱 무풍지대였다.

따라서 유치과정에서 구사할 수 있는 작전이 무궁무진하였다.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있던 경쟁도시 카오슝의 경우도 별의별 방법과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득표작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김운용 KOC 위원장에게 건의해 쿠웨이트 소재 OCA 본부를 방문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애썼다.

세 치 혀로써 상대방을 제압하여 한민족 최초의 외교달인이신 「서희 장군」의 후손(필자의 아내가 달성 서씨임)으로 드디어 호랑이 굴로 뛰어들었다.

방콕을 거쳐 지루한 여정 끝에 OCA 본부가 있는 쿠웨이트에 도착하였다. OCA 창립 때부터 서로 잘 알고 스포츠외교적 우정 관계가 돈독했던 Abdul Muttaleb Ahmad OCA 사무국장이 공항으로 마중 나왔으며, 공항 귀빈실을 통해 제반 수속을 마친 후 준비된 대형 미국산 리무진을 타고 OCA 본부로 행했다.

 

 

(Muttaleb Ahmad, Anselmo Lopez 초대 IOC Olympic Solidarity 위원장, 필자)

 

 

당시 OCA로서는 ′86, 88 양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OECD 국가 반열 대상국가인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탄탄한 조직력 등을 감안해 볼 때 OCA의 재정 마련의 토대가 될 아시안게임 마케팅 등을 순조롭게 이끌어 낼 수 있는 대한민국의 후보도시인 부산광역시가 개최도시로 선정되는데 반대가 있을 수 없지만, 경쟁도시인 대만의 가오슝 대표단이 상당규모의 OCA 발전자금기탁, OCA 본부 전산화, OCA 회원국 선수단에 대한 왕복 항공료 및 체재비 완전부담 등의 파격적인 유치 공약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던 터라 OCA 측의 부산광역시 유치 협조를 약속 받는 정면승부는 같은 수준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좀처럼 실마리를 풀 수 없었다.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제2차 담판에 들어갔다. 다음날 필자는 작전을 바꿔 우선 개최도시 결정 OCA 총회를 홈 그라운드인 대한민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김운용 KOC 위원장 겸 IOC 부위원장의 국제적 스포츠 계의 파워, Samaranch IOC 위원장의 한국 및 김운용 박사에 대한 신뢰 등이 모두 동원되었다.

유치도시가 있는 국가에서 OCA 총회를 개최할 수 없다는 반론에 대하여 필자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개최권이 국가가 아닌 도시에 주어진다는 명분을 내세워, 유치도시인 부산광역시가 아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개최한다면 OCA 헌장규정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득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2002년 아시안게임 개최도시가 결정되는 1995 5 OCA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도록 합의되었다.

이 같은 불공평한(?) 합의에 대한 대만 NOC 측의 강력한 항의를 무마하기 위해 OCA 42개 전 회원국 NOC 사무총장이 참석하는 아시아 NOC 사무총장 세미나 개최권을 총회 2개월 전인 1995 3월경 대만 카오슝(高興)에 전격 부여하였다. 피장파장, 엎치락뒤치락 이었다.

각 회원국 NOC 사무총장은 NOC 위원장과 함께 개최도시 결정투표권을 행사하는 주체세력이기 때문에 OCA 서울총회 개최 2개월 전 대만 정부 그리고 NOC 및 카오슝 유치후보도시로서는 투표권자들에 대한 물량공세 등 득표작전을 아무런 제약 없이 무제한 효과적으로 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최대한 활용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김운용 KOC 위원장의 지침에 의거, 필자는 KOC 사무총장대행 자격으로 카오슝 개최 OCA 회원국 NOC 사무총장 세미나에 참석하여 한국대표역할을 하였다.

필자를 제외한 모든 참석대표들에 대한 각종 작업이 실시되었다. 세미나 마지막 날 새벽 2시경 필자와 절친한 NOC 대표가 필자객실로 찾아와서 작업의 내막을 귀띔해 주었다. 카오슝에서 귀국하여 김운용 위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한 후 이에 대비한 뒤집기 작전에 돌입하였다.

 

 

(김운용 KOC위원장에게 전략구상 보고 중인 필자)

 

 

김운용 위원장은 OCA 서울총회에 Samaranch IOC 위원장을 특별 초청하였고 Samaranch IOC 위원장은 총회 회의석상에서 ′86, 88 양 대회를 역대 최고의 대회로 개최한 대한민국과 KOC의 저력에 대하여 강조하면서 간접적으로 부산유치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OCA 총회 참석 및 카오슝 유치를 진두 지휘하는 리더 격인 Feng-shu CHANG 대만 NOC 위원장은 총회 전날 김포국제공항 도착기자회견을 통하여 2002 아시안게임 개최도시 선정과 관련, OCA 서울총회가 비밀투표로 개최도시를 선출한다면 카오슝이 당선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필자는 총회 전날 KOC 직원들과 함께 투표 대비 총회장 꾸미기 철야작업에 들어갔다. 이미 각 회원국에 대한 테이블 배치(Setting)가 완료된 상태에서, 각 회원국 NOC 대표들에게 「편안한(?) 투표 분위기」조성을 위한 테이블 재배치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국가별 영문 알파벳순으로 이미 배치한 각 테이블의 위치 중 대만 NOC가 회의장 중간 뒤쪽에 위치한 관계로 혹시 카오슝 측 작업에 관련된 NOC 대표들이 대만 NOC 대표들의 감시를 의식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기존 국가별 영문 알파벳을 바꿀 순 없어서 테이블을 세로 방향으로 길게 횡으로 늘려 기술적으로 대만 NOC 테이블이 맨 우측 앞 열에 오게 하는 데 성공했다.

총회 당일, 2002 아시안게임 개최도시 선정 투표에 앞서 양 후보도시의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먼저 카오슝 대표단이 이미 예견되었던 공약(OCA 발전기금기탁, 회원국 NOC 참가선수단 왕복항공료와 체재비 제공 및 카오슝 무료 전지훈련 제공 등)을 발표하자, 부산광역시 김기재 시장과 우병택 유치위원장이 필자를 급히 찾았다.

이들은 총회장 바깥 대기장소에서 필자에게 카오슝 유치 공약에 맞불을 놓을 수 있도록 영문 연설문을 수정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필자는 공통 해당 부분만 영어로 수정해 주었고 곧이어 부산 유치도시대표단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장내 정리정돈을 위한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곧이어 벌어질 투표방식에 대하여 OCA 측이 비밀투표로 진행할 것이라는 급박한 정보를 입수한 필자는 단상으로 달려가 김운용 KOC 위원장에게 OCA 헌장의 규정에 의하면 참석대표 1/3 이상이 찬성할 경우 투표방식을 거수방법(Showing hands)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고 보고하자, 즉시 조치를 취했고 OCA 회장은 A. de O'Sales OCA 규정위원장(홍콩)과 규정관련 협의 후, 각국 회의대표들의 의견을 묻자 1/3이 훨씬 넘는 대표들이 거수투표방식에 찬성했다. 이것이 막판 판세를 결정한 분수령이었다.

투표권이 없는 게스트나 옵저버, 유치 대표단들이 모두 총회장 밖에서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고, 필자는 OCA 총회 조직위 실무총괄책임자로서 투표권자들이면서 필자와 허물없이 막역한 친분 관계인 아시아대륙NOC 대표들의 테이블을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면서 거수투표방식결정에 대해 무언의 지지호소를 하고 다닌 것이 주효했다.

Sheikh Ahmad OCA 회장이 먼저 "부산을 개최도시로 선호하는 대표들은 손을 들라."("Anybody in favor of Busan, please raise your hands!")고 하자 42개국 NOC 대표들 중 38개국이 손을 들었으나, 맨 우측 앞 열에 앉아 있던 대만 NOC 대표 석 눈치를 보아가며 들쑥날쑥 손을 드는 바람에 두 번, 세 번씩 표를 세어야 했다.

대만 NOC 대표 석 재배치 효과도 일조한 순간이었다.

나머지 4개국 NOC 대표들은 용감하게 카오슝 지지를 표명하였다.

이미 부산광역시로 개최도시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우정 카오슝 지지 표명을 했다는 모 NOC 사무총장의 후일담도 있었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일본(동경, 히로시마)에 이어 수도가 아닌 도시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도시가 되었고 중국이 1990년 북경에 이어 2010년 수도가 아닌 광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세 번째 나라가 되었다.

OCA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마케팅 사업의 성공적 수행으로 상당한 재정적 수익을 보게 되어 아시안게임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진화를 시작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2개월 정도 앞두고 OCA는 부산시가 앞서 카오슝과 같은 내용의 유치공약 이행에 불성실하다는 생트집을 잡고 개최도시 이전 운운하며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개최된 OCA 집행위원회에서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BAGOC) 우병택 집행위원장 등 대회 준비상황 보고 차 참석한 대표단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BAGOC(위원장: 김운용 KOC 위원장 겸직)은 긴급 위원총회를 열고 이에 대한 수습에 나섰다.

총회에서는 한기복 BAGOC 사무총장과 BAGOC 국제자문역을 맡고 있는 필자를 수습대표로 결정하였다.

당시 Sydney 2000 올림픽 한국선수단 단장대행 겸 선발대장으로 시드니 현지에서 한국선수단 본단 현지 도착에 따른 통관 및 수송문제, 올림픽선수촌 입촌 절차, 올림픽대회 각 종목별 참가 선수 엔트리 확인 및 ID 카드 발급문제 등에 대해 시드니 조직위 부서별 책임자들과 최종 마무리 협상을 하고 있었던 필자는 본국에서 김봉섭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으로부터 이 내용을 전달받고 OCA와 이미 약속된 회의 장소인 싱가포르로 날아가 부산에서 합류한 한기복 BAGOC 사무총장과 사전 전략을 논의하였다.

 

 

(협상종결 담판을 짓기 위해 쿠웨이트로 날아가 OCA회장인 Sheikh Ahmad<-2> Muttaleb Ahmad OCA사무총장<-2>과 만났다. 필자<-1> 및 故 한기복 BAGOG 사무총장<-1>)

 

 

OCA와 합의된 내용의 핵심 골자는 BAGOC 측이 앞으로 남은 2년 기간 동안 OCA 부산아시안게임 마케팅사업에 적극 협조하기로 하고 합의내용 불이행 시 불이익 감수 협약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여 이를 양자가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제도적 장치 안에 두고 성공적 개최를 위하여 상호 간 협조체제를 강화하자는 내용이었다.

양자 간 협약서는 시드니올림픽 기간 중 OCA를 대표하여 OCA 회장과 사무총장 그리고 부산시 및 BAGOC을 대표하여 故 안상영 부산시장, KOC를 대표하여 김영환 명예총무가 각각 서명하였다.

이로써 부산아시안게임 개최지 변경 논의는 없었던 일로 일단락되었다.

우병택 BAGOC 집행위원장과 도종이 국회의원, 이영 부산시의회 의장 등은 부산아시안게임 유치 현장실무 주역이면서, 부산아시안게임 개최지 변경 위기 등 제반 문제 등을 스포츠외교차원에서 해결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필자를 「부산명예시민」으로 강력 추천하여 필자는 2000 10 28일 졸지에 한국인으로서 같은 나라인 한국의 부산명예시민(일반적으로 외국인을 명예시민으로 위촉한다-편집자 주)으로 위촉되는 진귀하고 영광스런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6. 10. 10:50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41(Beijing2008유치 IOC평가위원회 이슈 중국인권이슈와 인민대학교 객좌교수 Guest Professor)]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으로 5개 결선진출후보도시 방문 후 Lausanne IOC본부로 돌아가서 최종올림픽후보도시평가보고서를 공동으로 Draft하였는데 영어권 IOC평가위원이 보고서 작성을 리드하면서 Beijing2008후보도시 편에서 한사코 중국인권문제를 동 보고서에 기록할 것을 주장하였다.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대표단이 5개 결선진출후보도시 방문을 마치고 최종 평가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다시 스위스 Lausanne IOC본부에 모여서 논의 하고 있다/자로부터: Carlos Nuzman 브라질 IOC위원, Sergey Bubka 우크라이나 IOC위원, 필자, Tommy Sithole짐바브웨 IOC위원 및 Francisco Elizalde 필리핀 IOC위원)

 

당시 외신에서 연일 대서특필하며 중국문제를 다뤘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아시아출신 IOC평가위원이었던 필자는 IOC평가위원회 평가단이 부여 받은 임무가 기술적 측면평가(technical assessments)로 한정되어 있고 정치적 측면은 취급하지 않도록(we are not supposed to touch upon the political aspects) 되어 있는 지침(guidelines)을 상기시키면서 보고서 어디에도 인권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함을 강조하였고 당시 Hein Verbruggen 평가위원장(UCI회장 겸 네덜란드 IOC위원) Samaranch IOC위원장이 필자의 주장에 손을 들어 주었다.

 

(Hein Verbruggen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위원장과 필자가 Paris2008후보도시 현지실사 방문 중 파리 지하철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마침 스위스 Lausanne Palace호텔에 와서 동정을 살피고 있던 Zhenliang HE IOC부위원장은 필자를 방으로 초대하여 경과에 대해 물었고 필자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결과를 설명하자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Zaiqing YU 현 중국 IOC부위원장 및 당시 IOC부위원장이었던 Zhenliang HE와 함께)

 

 

몇 개월 후 Beining2008후보도시가 Moscow개최 IOC총회 투표에서 올림픽개최도시로 선출되었다. 이후 필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국 방문 시마다 한 동안 VIP예우가 계속되었다.

 

(Beijing2008올림픽 공식신문인 북경일보 올림픽특집호에 필자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그 일환인지 필자는 중국 3대 명문대학교(베이징-칭화-인민) Beijing2008올림픽 자원봉사 교육 전담대학교인 인민대학교에 객좌교수(Guest Professor)로 위촉되어 4년간(2005~2008) 특강과 다양한 자문초빙을 받아 활동하였다.

 

(중국인민대학교 객좌교수 위촉장)

 

IOC도 중국이 올림픽을 치르면 인권문제는 자연스럽게 대회 유산(Games Legacy)로 개선될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6. 9. 09:55

[스위스본부기반 올림픽종목국제연맹들(IFs)재정수지악화로 전체75%가 스위스정부 및 IOC융자제안수락 현장상황집중스케치]

 

 

2020 66일 자 한 외신보도에 따르면 스위스에 본부를 둔 올림픽종목 국제연맹들(IFs) 2/3에 해당하는 국제스포츠기구들이 스위스 정부 및 IOC가 공동으로 제공하는 융자제안(joint loan offer)을 수락하였다고 한다

 

 

하계올림픽종목국제연맹 연합회(ASOIF: Association of Summer Olympic International Federations)회장인 Francesco Ricci Bitti는 스위스 CNNMoney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융자제안 수락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음은 Ricci Bitti회장의 인터뷰 발언내용이다:

A.  "On the Government side we have two kinds of scheme." (정부측에서의 제안을 두 종류의 부류가 있음)

 

B.  "One is the temporary and permanent unemployment support scheme and the other is the free loan. (먼저 하나는 임시직 및 정식직원 실업에 따른 지원계획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로운 융자계획임)

 

C.  "We act in both directions and around two-thirds of IFs took the opportunity." (우리는 양 방향을 놓고 실행절차에 들어가고 있으며, 국제연맹들 2/3가 이 기회를 포착하고 있음)

 

공동지원계획(joint scheme)을 살펴보면 IOC 및 스위스정부가 각각 50%에 해당하는 융자금을 제공해 주는 것인데 이 계획은 513일 발표되었으며 이 융자제공의 목적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회들이 취소되었거나 연기되었던 국제연맹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 올림픽종목국제연맹들 중 50개가 넘는 국제스포츠기구들이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다.

IOC지원 패키지”(aid package)로 명명한 계획 하에 US$15천만불(4,500억원)규모의 기금을 풀어 국제연맹들(IFs)와 각국 NOCs 및 기타 이해당사자들(other stakeholders)를 대상으로 Tokyo2020올림픽 1년 연기개최로 인해 야기된 재정적 근심(financial concerns)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Franceesco Ricci Bitti/출처: insidethegames)

 

Tokyo2020올림픽정식종목 관할 33개 모든 국제연맹들 중 올림픽복싱종목 관할단체인 AIBA는 자격정지조치로 인해 제외된 상태이며 나머지 32 IFs IOC패키지로부터 자금을 수혈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국제사격경기연맹(ISSF: International Shooting Federation)과 국제역도연맹(IWF: International Weightlifting Federation) 및 국제핸드볼연맹(IHF: International Handball Federation)과 같은 몇몇 국제연맹들은 이러한 재정지원을 거절하였다.

 

1. IOC배당금 IFs 지분배분 액 기준 카테고리 별 순위분류 5개 그룹(Five Tiers of Distribution)


(1) 1순위 그룹(Tier 1): 육상(Athletics), 체조(Gymnastics), 수영(Aquatics)

(2) 2순위 그룹(Tier 2): 농구(Basketball), 사이클(Cycling), 축구(Football), 테니스(Tennis), 배구(Volleyball)

(3) 3순위 그룹(Tier 3): 양궁(Archery), 배드민턴(Badminton), 복싱(Boxing), 유도(Judo), 조정(Rowing), 사격(Shooting), 탁구(Table Tennis), 역도(Weightlifting)

(4) 4순위 그룹(Tier 4): 카누(Canoeing), 승마(Equestrian), 펜싱(Fencing), 핸드볼(Handball), 하키(Hockey), 요트(Sailing), 태권도(Taekwondo), 트라이애슬론(Triathlon), 레슬링(Wrestling)

(5) 5순위(Tier 5): 근대오종경기(Modern Pentathlon) Rio2016올림픽 신규종목인 골프(Golf)와 럭비(Rugby)

 

28개올림픽하계종목 을 관장하는 국제연맹들(IFs) 중 대체적으로 505에 해당하는 14개 개 국제연맹들의 재정살림살이에 먹구름이 보인다.

 

IOC Tokyo2020올림픽 1년 연기에 따른 국제연맹들과 206 NOCs들의 재정난을 지원하고자 2020 5월셋째 주 IOC집행위원회 개최 후 IFs NOCs 및 기타 스포츠 관련 단체들을 위하여 현재위기극복용으로 재난지원금 US1.5억불( 4,500억원)을 따로 챙겨둔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스위스 정부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연맹들(IFs)에게 지원을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올림픽 수익금 증대로 인해 국제연맹들과 NOCs들은 점점 더 IOC의 올림픽방영권 배분금에 너무 많이 의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IOC는 항상 재정적 불황기를 대비하여 일정 지분의 수입금을 군자금(war chest)조로 비축하여 왔다.

 

전세계에 자체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국제연맹들은 사실상 자신들의 재정상태를 명명백백히 공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28개 하계올림픽종목 국제연맹들 중 26IFs 가운데 3개 국제연맹들(농구, 승마 및 배구)의 경우 연례총회 재정보고서 요약 본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고 23 IFs들만 회계 재정보고서 내용 파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나머지 2 IFs(육상 및 근대오종)의 경우 재정보고서를 전혀 공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2. 연간 수입금 별 국제연맹 랭킹순위(IF ranking by annual revenue)/2018년 기준:

 

28개 국제연맹들 중 10 IFs의 연간 수입금규모가 US$1,000만불( 120억원)대에 해당하고 근대오종(Modern Pentathlon)의 경우는 해당정보파악이 불가하였다가 뒤늦게 자료가 밝혀진 바 있다. 아래 통계는 대부분 2018년도 분이고 3 IFs는 그나마 2017년도 분이었다. 2018년 기준 WT(태권도)의 경우 연간평균수입금 순위 17위로 US$1,019만불( 122.28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 $ 4.64 billion (2018) ~ Football (FIFA)/축구/$46,4억불( 5.568조원)
2. $102.2 million (2018) ~ Basketball (FIBA)/
농구/$1.022억불

3. $72.84 million (2018) ~ Tennis (ITF)/
테니스/$7,284만 불
4. $65.34 million (2017) ~ Volleyball (FIVB)/
배구/$6,534만불
5. $65.08 million (2018) ~ Equestrian (FEI)/
승마/$6,508만불
6. $55.00 million (2019) ~ Athletics (World Athletics; estimate)/
육상/$5,500만불( 660억원)
7. $41.86 million (2018) ~ Cycling (UCI)/
사이클/$4,186만불

8. $33.92 million (2018) ~ Aquatics (FINA)/
수영/$3,392만불( 470.4억원)
9. $33.46 million (2018) ~ Rugby (World Rugby)/
럭비/$3,346만불

10. $31.11 million (2018) ~ Judo (IJF)/
유도/$3.111만불

11. $25.79 million (2019) ~ Badminton (BWF)/배드민턴/$2,579만불
12. $21.35 million (2018) ~ Table Tennis (ITTF)/
탁구/$2,135만불( 256.2억원)
13. $19.89 million (2018) ~ Handball (IHF)/
핸드볼/$1,989만불

14. $17.32 million (2019) ~ Gymnastics (FIG)/
체조/$1,732만불
15. $14.08 million (2018) ~ Hockey (FIH)/
하키/$1,408만불
16. $11.89 million (2018) ~ Sailing (World Sailing: 3 entities)/
요트/$1,189만불
17. $10.19 million (2018) ~ Taekwondo (World Taekwondo)/
태권도/$1,019만불( 122.28억원)
18. $ 8.52 million (2018 pro-rated) ~ Boxing (AIBA)/
복싱/$852만불
19. $ 8.04 million (2018) ~ Triathlon (ITU)/
트라이애슬론/$804만불
20. $ 7.11 million (2018) ~ Rowing (FISA)/
조정/$711만불

21. $ 5.35 million (2017) ~ Shooting (ISSF)/사격/$535만불
22. $ 5.12 million (2017) ~ Wrestling (UWW)/
레슬링/$512만불
23. $ 6.35 million (2018) ~ Fencing (FIE)/
펜싱/$635만불
24. $ 4.10 million (2018) ~ Weightlifting (IWF)/
역도/$410만불
25. $ 3.81 million (2019) ~ Archery (World Archery)/
양궁/$381만불
26. $ 0.87 million (2018) ~ Canoe & Kayak (ICF)/
카누/$87만불
27. $0.584 million (2018)~Modern Pentathlon/
근대오종/5845백불

28. $ 0.58 million (2018) ~ Golf (IGF)/골프/$58만불

 

3. 국제연맹 별 재정건전성(비축자금/reserves vs. 지출/spending)<IF rankings by financial health>:

 

오늘날 더 중요한 것은 각 국제연맹이 연간 취하고 있는 금액보다는 수입금이 전혀 유입되고 있지 않아 줄어들고 있는 이러한 대유행(pandemic)시기를 대비하는 해당국제연맹의 재정 비축잔고(reserves)라고 할 수 있겠다.


국제연맹들(IFs)의 상대적 재정건전성(health of fiancé) IF재정비축고(reserves) 랭킹에 나타나 있으며 각 IF의 연간지출규모역시 2018년도 보고되었던 내용이다.

 

1. $ 2.74 billion reserves: Football (vs. $2.89 bil. spent in 2018)
2. $136.49 million reserves: Handball (vs. $12.13 mil. spent in 2018)
3. $121.68 million reserves: Volleyball (vs. $60.54 mil. spent in 2017)
4. $111.31 million reserves: Aquatics (vs. $47.53 mil. spent in 2018)
5. $ 74.78 million reserves: Rugby (vs. $109.64 mil. spent in 2018)
6. $ 59.98 million reserves: Equestrian (vs. $61.20 mil. spent in 2018)
7. $ 55.25 million reserves: Tennis (vs. $72.63 mil. spent in 2018)
8. $ 49.56 million reserves: Gymnastics (vs. $16.19 mil. spent in 2019)
9. $ 47.00 million reserves: Cycling (vs. $48.05 mil. spent in 2018)
10. $ 46.18 million reserves: Basketball (vs. $107.74 mil. spent in 2018)

11. $ 39.72 million reserves: Badminton (vs. $28.27 mil. spent in 2019)
12. $ 36.75 million reserves: Wrestling (vs. $8.89 mil. spent in 2017)
13. $ 30.26 million reserves: Fencing (vs. $9.08 mil. spent in 2018)
14. $ 29.54 million reserves: Weightlifting (vs. $9.19 mil. spent in 2018)
15. $ 17.68 million reserves: Canoeing (vs. $4.00 mil. spent in 2018)
16. $ 17.30 million reserves: Table Tennis (vs. $20.14 mil. spent in 2018)
17. $ 13.27 million reserves: Taekwondo (vs. $10.31 mil. spent in 2018)/
태권도 159억원
18. $ 13.22 million reserves: Rowing (vs. $7.36 mil. spent in 2018)
19. $ 11.51 million reserves: Triathlon (vs. $7.71 mil. spent in 2018)
20. $ 11.19 million reserves: Shooting (vs. $6.15 mil. spent in 2017)

21. $ 6.96 million reserves: Hockey (vs. $13.05 mil. spent in 2018)

22. $ 6.17 million reserves: Modern Pentathlon (vs. $4.29 mil. spent in 2018)
23. $ 5.30 million reserves: Sailing (vs. $13.99 mil. spent in 2018 [3 entities])
24. $ 4.82 million reserves: Judo (vs. $32.08 mil. spent in 2018)
25. $ 2.69 million reserves: Archery (vs. $7.10 mil. spent in 2019)
26. $ 0.40 million reserves: Golf (vs. $2.32 mil. spent in 2018)
27. $-16.93 million reserves: Boxing (vs. $7.00 mil. spent in 2018 [pro-rated])

(No information available for Athletics)

 

위에 표기된 재정비축 고는 경우에 따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도표 에 나타난 비축고 규모는 (1)관련 재단이나 기타 해당연맹과 연계된 기관으로부터의 예측 가능한 차용금(possible borrowings) 또는 선불 기금(advancements of funds) 또는 (2) IF고유의 TV중계권료, 스폰서 수입금 또는 세계선수권대회 개최 비(hosting fee) 미래 수입금(future revenues)<이미 받았거나 받을 예정 분>을 산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예산비축고로 표기된 수치는 어느 IFs가 순항하고 있으며 몇 몇 IFs는 곤경에 처해 있는지를 나타내 주는 유용한 잣대로 볼 수 있겠다:

 

A.  순항 중 (Sailing) 7 우량 IFs

 

연간 수입금 $3천 만불( 360억원)이상의 수입금규모 이며 재정비축 고 역시 양호하다


1) Football/축구

2) Handball/핸드볼

3) Volleyball/배구

4) Aquatics/수영

5) Rugby/럭비

6) Tennis/테니스

7) Basketball/농구.

 

B. 안정적 (Stable)인 것으로 간주되는 8 IFs

 

(1) Equestrian/승마

(2) Gymnastics/체조

(3) Cycling/사이클

(4) Badminton/배드민턴

(5) Weightlifting/역도

(6) Wrestling/레슬링

(7) Judo/유도

(8) Golf/골프


1) 승마(FEI) 및 유도(IJF)는 양호한 수입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출비용이 높은 편이다.

 

2) 사이클(UCI) 및 배드민턴(WBF)은 양호한 수입금을 확보하고 있으며 지출을 억제하고 있다.

3) 역도(IWF)와 레슬링(UWW)은 재정비축고는 탁월하지만 수입금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modest revenues)이라는 점이 미래 우려요인이다.

 

4) 골프(IGF)의 경우 프로골프투어 프로그램이라는 짭짭한 기금조달구조에 의해 탄탄하게 뒷받침되고 있다

 

C. 우려대상 (Concerned)7 IFs

 

(1) Fencing/펜싱

(2) Canoeing/카누

(3) Table Tennis/탁구

(4) Taekwondo/태권도

(5) Rowing/조정

(6) Triathlon/트라이애슬론

(7) Shooting/사격


1) 탁구(ITTF)는 탁월한 수입금확보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재정비축고 대비 상대적 비용지출비율이 높다.

 

2) 펜싱(FIE)의 경우 러시아 출신 IF(FIE)회장이자 수조원대 재벌로 알려진 Alisher Usmanov의 기부금에만 의존하면서(only on donations) 생존하고 있다.

 

3) 카누, 태권도, 조정, 트라이애슬론 및 사격 모두 지난 기간 중 $천 만불/ 120억원)에 턱걸이 할 정도로 얄팍한 수입금(thin revenues)규모 보고한 바 있으며 따라서 지출에도 조심하는 편(careful spenders)이지만 IOC TV배당금 몫 없이는 상당이 도전과제가 산적해 있을 것(deeply challenged)으로 예측된다

 

D. 걱정대상 (Worried) 5 IFs

.
(1) Hockey/
하키

(2) Sailing/요트

(3) Archery/양궁

(4) Boxing/복싱

(5) Modern Pentathlon/근대오종

1) 근대올림픽주창자로 전설적인 Pierre de Coubertin이 창시하여 발족한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근대오종종목은 올림픽정식종목 프로그램 존치 여부 조차 의심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실정이다

 

2) 복싱(AIBA)은 현재 곤경에 처해 있으며 IOC의 관점에서 복싱종목을 관장할만한 국제연맹(IF)으로 복귀조치 되지 않을 경우 확실히 해체대상으로 거론될 것이다.

 

3) 하키-요트-양궁 IFs는 모두 얼마 안 되는 얄팍한 재정비축고 수준이며 3 IFs의 생명 줄은 IOC TV방영권 배당금 몫에 걸려 있어(stay afloat) 보인다

 

4) 국제하키연맹(FIH)은 새롭게 출범시키기 위해 투자해 오고 있는 프로하키에 커다란 기대(high hope)를 하고 있다


E.
육상 (Athletics) 의 경우 관장국제연맹인 WA(World Athletics)는 지금껏 재정보고서(financial statement)를 발행한 적이 없으며 매년 보고된 $5,500만불( 660억원)로 과부족 수입금(under revenued) 상태지만 아마도 최상위 수준일 것으로 짐작된다.

 

캐나다출신 최 고참 IOC위원인 Dick Pound는 폭 넓게 인식되고 있는 우려로써 국제연맹들이 진실된 재정상태를 공개하고 있지 않으며 이에 대해 책임이 크다고 표현하였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28개 올림픽하계국제연맹들 중 26개종목으 나름 괜찮은 재정정보가 공유되었지만 이 들 중 절반 가량의 IFs는 미래재정에 관한 한 틀림 없이 이미 우려나 걱정 대상이다. 특히 Tokyo2020올림픽의 1년 연기개최로 인한 재정공백이 걱정인데 만일 2021년에도 재앙적으로 대회취소가 닥쳐올 경우 IFs들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4. 추가로 알려진 세계육상(World Athletics)의 재정상황

세계육상(World Athletics)는 지금까지 자체 재정을 공식적으로 공개한 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해당국제연맹관계자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2020 65일 한 인터넷 외신을 통해 세계육상의 최근 재정지출 및 재정비축상태에 대한 정보가 공개된 셈이다.

이러한 재정과련 정보문건은 2019 9월 카타르 Doha개최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앞서 열린 IAAF총회참석 대표들에게 제공된 바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공인회계로 처리된 재정명세서 세트는 아니고(not a set of audited financial statement) 2018년도분 수지잔고 및 활동상황 요약 보고서(a report of balances and activity summaries)내용이라는 것이다.

 

IAAF 2018년말 현재 재정비축(reserves)규모는 $45,246,758불로 하계올림픽종목 국제연맹들 중 11번 째였지만 2018년도 손실로 인해 연맹의 재정비축규모를 감소시켰는데 전년도손실액만 $64,801,522규모였었다고 한다.

2018년도 수입액은 $47,511,383불로 TV방영권 및 스폰서 수입지분이 94%에 해당하였는데 이 금액은 2017년도 기록된 수입액인 $40,540,000보다 $7백만불정도 상향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2017년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일로로 이어져 2018년도 지출액은 2017년도 $60,098,650불에서 $66,840,283으로 치솟았다.

2018년도 지출 금 내역을 살펴보면, 주요 항목으로 행정지출($1,734만불), 행사비용($1,673만불), 관련 지역 및 회원국 연맹활동보조지원금($1,044만불), 육상청렴기강기금($708만불), 육상종목발전 지향 활동비($305만불), 소통 및 프로모션 비용($134만불)을 비롯하여 기타 지출 비($1,086만불) 등으로 알려졌다

]

*References:

-insidethegames

-The Sports Examiner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6. 5. 16:20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40(체육부출범배경과 문화체육관광부 역대장관들 면모)]

 

 

 

한국스포츠외교사에 큰 획을 그었던 1981930일 당시 서독 바덴바덴(Baden Baden)에서의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유치는 한국스포츠외교의 가장 획기적이고 역사작인 쾌거로서 '바덴바덴 대첩'이라고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따른 두 마리 토끼(대회 성공적 조직과 홈팀 한국선수단의 우수성적거양)를 다 잡기 위하여 이듬해인 1982 320일 드디어 체육부가 정부조직법에 의거 사상 처음으로 출범하였다.

초대 체육부장관은 당시 노태우 정무장관이 임명되었다.


1.
체육부시절: 1982.3.20-1991.2.1

 

<전두환 정부 시절/5>

1대 체육부장관(초대): 노태우(1982.3.20-1982.4.28)/13대 대통령/SLOOC위원장/대한체육회장 등 역임

2: 이원경(1982.4.28-1983.10.15)/외무부 장관, KOC명예총무 등 역임

3: 이영호(1983.10.15-1986.1.8)/SLOOC집행위원장, 초대 체육부차관, 이화여대 교수 등 역임

4: 박세직 (1986.1.8-1986.8.27)/총무처장관, SLOOC위원장, 안기부장, 서울시장 등 역임

5: 이세기(1986.8.27-1987.7.14)/국회의원 등 역임

6: 조상호(1987.7.14-1988.12.4)/대한체육회장, SLOOC사무총장 및 부위원장, 청와대 의전수석 등 역임

<노태우 정부 시절/6: 1988.2. ~1993.2>

 

7: 김집(1988.12.5-1990.3.18)/대한체육회부회장, 태릉훈련원장 등 역임

8: 정동성(1990.3.19-1990.12.26)/국회의원 등 역임



2.
체육청소년부 시절: 1991.2.1-1993.3.5


9대체육청소년부장관(초대): 박철언(1990.12-1991.12)/정무장관 등 역임

10: 이진삼(1991.12-1993-2)/국회의원, 4성장군 등 역임


3. 문화체육부 시절: 1993.3.6-1998.2.1>/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가 통합

 

<김영삼 정부 시절>


 

11대 문화체육부장관(초대): 이민섭(1993.2.26-1994.12.23)/국회의원 등 역임

12: 주돈식(1994.12.24-1995.12.20)/신문사 주필, 청와대 수석 등 역임

13: 김영수(1995.12.21-1997.3.5)/청와대수석, 프로농구연맹총재 등 역임

14: 송태호(1997.3.6-1998.3.2)


4.
문화관광부 시절: 1998.3.3-2008.2.28


<
김대중 정부시절>

 


15대 문화관광부장관(초대): 신낙균(1998.3.3-1999.5.23)

16: 박지원(1999.5.23-2000.9.19)

17: 김한길(2000.9.20-2001.9.18)

18: 남궁진(2001.9.19-2002.7.10)

19: 김성재(2002.7.11-2003.2.26)

 

<노무현 정부시절>

 

20: 이창동(2003.2.27-2004.6.30)

21: 정동채(2004.7.1-2006.3.6)

22: 김명곤(2006.3.27-2007.5.7)

23: 김종민(2007.5.8-2008.2.28)


 

5. 문화체육관광부 시절 2008.2.29-2017 4

 

<이명박 정부 시절>


24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초대): 유인촌(2008.2.29-2011.1)

25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2): 정병국(2011.1-8)

26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3): 최광식(2011.9~2013.3)

 

<박근혜 정부 시절>

 

27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4): 유진룡(2013.3-2014.7)

*김종 차관 장관 직무대행: 2014.7.17-7.25

*김희범 장관 직무대행: 2014.7.25-8.20

28대 문화체육관관광부장관(5): 김종덕(2014.8-2016.9)

29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6): 조윤선(2016.9-2017. 4)

 

6. 문화체육관광부 문재인 정부<2017-2022>

 

30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7): 도종환(2017. 5-2019.4)

31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8): 박양우 장관(2019.4~현재)


지금부터 역대 체육관련 장관들의 활동모습을 살펴보겠다:


 

(노태우 초대 체육부장관 겸 제13대 대통령/청와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한국선수단 환영오찬)/아프리카 모리타니아 체육장관과 오찬 리셉션 환담 중인 노태우 당시 SLOOC위원장<2>, 이영호 체육부장관<1>, 모리타니아 체육장관<1> 및 불어통역 중인 필자<2>)

 

 

(SLOOC위원장 시절 노태우 초대 체육부장관과 통역 중인 필자/1985년 동 베를린 IOC총회 이후 해후한 김옥숙 영부인과 악수 중인 필자)

 

 

(이원경 제2대 체육부장관<가운데>, Mohamed Benjelloun 모로코 IOC위원/-2, 이영호 당시 체육부 초대차관/-1, IOC위원부인/2, 필자/-3, 1983)

 

 

 

(이영호 제3대체육부장관/Mont Blanc정상에서 1985/동 베를린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었던 Brandenburg 앞에서 좌로부터: 필자, 이영호 SLOOC집행위원장 겸 제3대 체육부장관부부, 박종규 IOC위원 부부,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박세직 제4대 체육부장관/SLOOC위원장자격, Lausanne 1987)

 

 

(5대 이세기 체육부장관/-1, Attarabulsi 리비아 IOC위원/-1, 필자/가운데, 1996, 애틀랜타 Korea House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선수촌에서 이세기 장관이 국회문화체육위원회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선수단 격려 방문)

 

(6대 조상호 체육부 장관/-3, 동베를린 IOC총회 1985/SLOOC대표단과 함께)

 

(7대 김집 체육부장관/-2, 1984 LA올림픽대회 선수촌, 선인원 태릉선수촌 지도위원/-1, 김성집 한국선수단장/-2, 필자/-1)

 

 (9/초대 박철언 체육청소년부 장관, 필자/ /1991년 호지민, 베트남)

(10: 2대 이진삼 체육청소년부장관/-2, 김종렬 KOC위원장/-1, 필자/-1, Albertville1992동계올림픽한국선수단 결단식)


 

(13/3대 김영수 문화체육부장관/-1, 필자/-1/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선수촌/KOC위원, 김영수장관, 박상하 KOC부위원장, 필자, 김숙자 여자감독)

 

 

(14/4대 송태호 문화체육부장관/가운데: Nagano1998 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 교민환영회)

 

 

(2007년 과테말라 IOC총회에 평창2014유치지원차 현지에서의 노무현대통령과 Maurice Herzog <사진 우측>프랑스 IOC위원 겸 알프스 안나 푸르나 최초 정상 정복한 알피니스트와의 통역 중인 필자)

 

 

(20/6대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1, Mario Pescante 이태리 IOC부위원장/-1, 필자/가운데, 2003년 프라하 IOC총회장)

 

(21/7대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1, 필자/-1/2004년 아테네 올림픽개회식장)

 

 

(22/8대 김명곤 문화관광부장관/-2, 배우 문성근/-2, 필자/-1: 2002년 금강산)

 

 

 (2010년 평창 드림프로그램에서 스키 강사를 맡은 제24/초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각국 청소년 참가자들)

 

 

(25대 정병국 장관이 양평군 국회의원시절 필자가 운영하는 평산 스포츠박물관 개장식에 참석하여 박물관 전시품을 감상하고 있다.)



(26대 최광식장관이 평창2018 유치공로로 체육훈장 기린장을 필자에게 수여하고 있다/2012)

 

 

*References: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사진자료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6. 1. 10:09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39(1970년대부터 2020년 현재 역대대한체육회장 및 KOC위원장활동현장갤러리)]

 

 

지금부터는 1970년대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임하였던 대한체육회장/KOC위원장을 사진으로 만나보자.


 

(25 대한체육회장/KOC위원장: 고 박종규 회장<가운데>1979.2 1980.6대통령경호실장, IOC위원 역임/26: 故 조상호 회장<가운데>1980.7-1982.7 6대 체육부장관/SLOOC사무총장 및 부위원장 /청와대 의전수석 등 역임///좌로부터 김운용 WTF총재, 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 조상호 장관,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에총무, SLOOC집행위원장 국제비서관이었던 필자))

 

 

(27: 故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맨 우측>1982.7-1984.10 좌측은 중국의 하진량 IOC부위원장, 가운데는 필자/ Sheikh Fahad 초대 OCA회장 겸 쿠웨이트 IOC위원, 필자, 故 정주영 회장)

 

 

 

(28: 노태우 제13대 대통령<-2>1984.10-1985.4, 고 이영호 체육부장관/-1, 필자/-2, 모리타니아 체육부장관/-1/29: 故 김종하 전 고합회장<우측>1985.4-1989.2/OCA부회장/대한핸드볼협회 회장 역임/필자: 국제과장, 국제부장, 비서실장 및 국제사무차장역임)

 

 

 

(30: 故 김종렬회장<가운데>1989.2-1993.2/대한럭비연맹회장 역임,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선수촌장/-1, 필자/-1/Barcelona1992올림픽 한국선수단메달리스 올림픽 챔피언 IOC핀 전수 식에서)

 

 

 

(31-33: 故 김운용회장<우측>1993.2-2002.3/IOC부위원장, WTF총재, 국기원장, GAISF회장, IOCTV분과위원장, 1999년 강원동계아시안게임 및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등 역임/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및 IOC총회 참석차 공항에 도착한 故 김운용KOC위원장 겸 IOC부위원장, 백성일 당시 비서실장, 필자)

 

 

(34: 이연택회장<좌측>2002.5-2005.2/총무처장관, 노동부장관, 청와대 행정수석,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역임과 필자/35: 김정길 회장<우측>2005.3-2008.4/행자부장관,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 등 역임, 필자/좌측)

 

 

(36: 이연택회장: 35대 김정길회장 잔여임기/2008.5- 2009.2 9개월간/37: 박용성회장<가운데>/IJF회장 및 IOC위원/ 대한 유도회 회장 역임, 두산중공업회장, 중앙대학교이사장, 필자/-1, 故 이응식 전 공보실장/-1)


(38대 김정행 회장, 대한유도회장 및 용인대 총장 역임)/좌로부터 제39대 공동대한체육회장 김정행, 이기흥 제40대회장, 강영중 공동회장)

 

 

(Athens2004올림픽 당시 국제카누연맹<ICF>회장<-2>사무총장 Jose Perunera IOC위원<-1> 이기흥 당시 대한카누협회장 겸 현 제40대 대한체육회장 겸 IOC위원, 필자)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5. 29. 17:29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30(Rocky Yoon과 몽골 명예박사학위)]

 

 

필자는 국제 스포츠계에서 「로키 윤(Rocky Yoon)」으로 호칭되어 왔다. Jacques Rogge IOC 위원장은 필자에게 국제회의에서 발언권을 줄 때 “Rocky, please”라고 한다. 로키라는 이름은 필자가 한국 외국어대학교 재학시절인 1970년대 후반 대통령 컵 국제축구대회(일명 박스컵; Park's Cup) 대학생 통역으로 활동할 당시 미국 올림픽 대표 축구팀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장충동 신라호텔이 생기기 전에는 Ambassador호텔이 제일 좋은 특급호텔이었고, 미국 올림픽 대표팀과 숙식을 같이하다시피 하면서 통역에 임했는데, 여러 날 같이 지내다 보니까 선수들이 주로 미국 대학생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필자와는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뷔페를 함께 먹고 나서 자연스럽게 장기자랑(Talent Contest)으로 이어졌고, 필자는 당시 흥행에 성공한(good box office) 미국 영화 중 Sylvester Stallone이 주연한 「Rocky」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이 몸을 단련하는 모습 중에 한 손으로 번갈아 가며 팔 굽혀 펴기(one-hand push-up)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한 손 팔 굽혀 펴기」 시범을 보여 주었다. 당연히 많은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무도 필자 흉내를 내지 못했다.

 

(동산고교 시절 평행봉과 철봉은 Fitness Center조차 없었던 어려운 시절 나의 복근과 가슴근육을 만들어준 고마운 운동기구였다)

 

 

그 다음부터 그 친구들은 필자를 「Rock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외국인과 교분을 맺다 보면, 우리말 이름은 그네들에게는 발음조차 어렵고 기억도 잘 못하기 때문에 편리하고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외국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필자는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Rok)과 윤(Yoon), Rok+Yoon=Roky=Rocky라는 등식도 성립되는지라 「로키 윤」을 필자 영어 이름으로 받아들였고, 국제 스포츠계의 인맥을 형성하면서 소개할 때, 또 명함에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필자 본명을 전 세계 스포츠인들은 로키 윤으로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한동안 외국으로부터 부재중인 필자를 찾는 국제전화가 걸려왔을 때, 「그런 사람 없다(There is no such person)」라고 KOC 직원들이 끊어버려 필자에게 중요한 연락을 해 왔을 때 곤란한 경우를 맞이한 적이 여러 번 있기도 했지만, 약간의 설명이 있은 후, KOC 내에서도 로키 윤이 드디어 유명(?)하게 되었다.

필자는 1982년 인도 New Delhi 아시아 경기대회 참가시절부터 유독 몽골 스포츠인들과 친하게 되었다. 징기스칸의 후예들이면서 우리 민족들과 얼굴모습이 너무 똑같은 그들, 우리가 어려서 몽골반점이라고 하는 푸른 반점이 우리 모두의 엉덩이에 나타났다 사라졌기 때문인지 몰라도, 항상 그들을 돕는 마음으로 만남과 모임을 갖곤 했다. 20여 년간 KOC 대표로서 올림픽대회를 포함한 각종 국제대회, 올림픽선수단장 회의,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Olympic Council of Asia) 총회 등 필자는 필사적으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한국과 아시아의 권익옹호를 위해 투쟁했고, 그 결과 여러 가지 면에서 명성도 날리고 본의 아니게 때로는 이익 상충(conflict of interest)면에서 약간의 악명(?)도 떨치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국제 스포츠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 것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하더라도, 즉시 오해를 풀고 나면 더 끈끈한 친구가 되는 것이 국제 스포츠계 관행 중 하나의 장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스포츠를 사랑한다. 한국인들은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다」라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가 회자된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임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국제 스포츠계에서, IOC 위원 등 지위 높은 인사들을 만날 때 항상 읊조리고 고개 숙이고 점잔을 빼고 겸손하게 처신하는 것이 그네들이 받아들이는 적절한 문화적 예의는 아닐 성싶다. 필자는 상대가 IOC 위원장이라 하더라도 기본적 예의 또는 매너만 지키면서 허물없이 친근하게 인사하고 전달할 메시지(Message)는 당당하고, 옹골차고, 차분하고, 확실하게 의사전달을 하면서, 유머도 함께 구사하는 편인데, 이러한 모습을 필자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시기심이 있는 한국인이 보게 되면, 건방지고, 나서기를 좋아하고, 가볍고, 진중하지 못하고 설치는 인간으로 둔갑해서 험담과 모함과 중상모략이 생성되곤 하여, 이제 필자는 한국인이 운집한 자리에선 되도록 외국 스포츠 인사들과 허심탄회하게 본연의 모습을 가능한 자제하게 되었다. 답답하고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몽골 스포츠계 인사들은 이러한 필자의 국제 스포츠계에서 발휘하는 실력과 거침없는 추진력, 성취도에 대해 상당한 공감과 찬사를 보냈었다. 그 결과로 필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 공동사무총장으로 파견 근무 후 KOC로의 복귀가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을 2003 9월 서울에서 개최된 OCA세미나에 참석 중이던 Zagdsuren 몽골 NOC 위원장과 Otogansagan 몽골 NOC 사무총장이 알고 나서 귀국 후 필자에게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몽골 NOC 집행위원회에서 논의 후 결정하였노라고 국제전화가 걸려왔으나 필자는 처음에는 반신반의(half in doubt) 하였다.

11월 초에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일정과 필자 몸 치수와 머리 둘레를 문의하는 공식 문서를 팩스(Fax)로 받고 나서야 실제상황(Real Situation)임을 직감하게 되었고 2003 1128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Bagabandi 몽골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몽골 올림픽위원회 연례총회 개회식 직후 거행된 몽골 올림픽 아카데미 명의의 명예박사학위 제1호를 수여 받는 영광을 누렸다.

 

 

(몽골 Ulanbataar에서 몽골 국립올림픽아카데미에서 제1호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Zagdsuren 몽골 NOC위원장과 함께)

 

 

 

(Bagabandi 당시 몽골대통령 등 몽골 VIP들이 참석한 가운데 명예박사학위 수여 소감을 발표하고 있는 필자)

 

(몽골국립올림픽아카데미 제1호 스포츠과학분야 명예박사학위 증)

 

 

(좌로부터 문동욱 당시 평창유치위 국제과장, 필자, Zagdsuren 몽골 NOC위원장, Magvan몽골 IOC위원)

 

 

(좌로부터 Magvan 몽골 IOC위원, 필자, 몽골명예박사학위수여의 가교역할을 한 Otogansagan 몽골 NOC 사무총장과 몽골 전통 게르 체험) 

 

(2000년 김운용 KOC위원장 겸 IOC부위원장과 몽골 첫 방문 시 몽골 전통 마을에서 전통환영주로  귀한 손님에게 제공하는 유명한 마유주<馬乳酒)/아이라그>를 필자 혼자만 오기로 끝까지 들이켰다/좌로부터 필자, Otogansagan 몽골 NOC 사무총장, Magvan몽골 IOC위원, 김움용 회장, 몽골 전통마을 촌장)

 

(좌로부터 Magvan 몽골 IOC위원, 몽골명예박사필자, Zagdsuren몽골 NOC위원장, 문동욱 평창유치위 국제과장<현 계명대 교수>)

 

 

Zadsuren 몽골 NOC 위원장은 필자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 배경에 대하여 지난 21년간 10차례 올림픽대회 및 각종 국제회의 시 KOC 대표로서 스포츠외교실무를 전담해 활동해 왔으며, IOC는 물론 국제 스포츠 계에서 조국인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 NOC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아시아대륙 발언권 강화 및 위상을 드높인 공적을 높이 평가 받아 왔으며 많은 아시아지역 국가 NOC 관계자, 특히 몽골 NOC 위원장을 포함한 Magvan 몽골 IOC 위원 등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몽골 NOC 집행위원회 및 총회에서 만장일치로(Unanimously) 필자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 건이 승인되었노라고 인사말에서 수여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가문의 영광」(Glory and Honor to my Family)이 아닐 수 없다.

 

 

 

(몽골명예박사학위 수여를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한 당시 Bagabani몽골대통령과 함께)

 

 

(이후 몽골방문 시 Bagabandi대통령 후임 H.E. Nambar Enkabayar 몽골 대통령과 함께)

 

 

이후, 2004 222-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는 세계 각국 올림픽위원회 총 연합회(ANOC) 총회에 각국 당 2명만 허용되는 몽골 NOC 대표자격으로 참가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사상 유례 없는(Unprecedented) 일로서 외국인 자격으로 몽골 자국 NOC위원으로 위촉한다는 공식통보를 받게 되었다.

이 사실은 뉴스임이 틀림없다. 동아일보와 Korea Times지 등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신문에 크게 보도되고, 언론에 알려지자 IOC 위원들을 포함한 많은 국제 스포츠계 인사들의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Message)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국경 없는 올림픽 운동의 전파자」(Borderless Olympic Movements Partner)라는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영어방송인 아리랑 TV에서 30분짜리 대담프로 출연요청도 왔다. 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당시, 체코 프라하 개최 IOC 총회에서 IOC 위원 전체를 매료시킨 훌륭한 영어 설명회(Presentation)를 주도했던 안정현 아리랑 TV 앵커(Anchor) 30분간 막힘 없는 프로그램을 함께 공유하기도 했다. 몽골은 필자에겐 잊을 수 없는 은혜의 나라다.

*칭기즈칸의 편지[김종래 님의 「밀레니엄맨」(해냄, 1998년간) 인용]

한국의 젊은이들아!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만 났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탓하지 말라.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 데

동원한 몽골 병사는 적들의 100분의 1, 200분의 1에 불과했다.

나는 배운 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칸이 됐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5. 26. 08:55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38(35대 김정길 대한체육회장과의 만남)]

 

필자가 1982 9월 대한체육회(KASA)/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외국어 특채로 입사한 이래 제27대 정주영회장-28대 노태우회장-29대 김종하회장-30대 김종열 회장-31-32-33대 김운용회장-34대 이연택회장에 이어 제35대 대한체육회장 겸 KOC위원장(25)김정길 회장(2005~2008)이 선출되었다. 김회장은 부산 거제 출신으로 제12대 및 제13대 국회의원-민주당 초대 원내총무-민주당 부총재-초대 행정자치부 장관-대통령정무수석-22대 및 제23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거쳐 2005년 대한체육회장 겸 제25 KOC위원장으로 재직하였으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2007 10~2008 4)직도 역임한 화려한 경력의 회장이었다. 2005년 회장선출 직후 강남 리츠칼튼호텔(현 르메르디앙서울 호텔)에서 삼고초려(?)하면서 KOC총무(사무총장)직을 권고하였다. 그 당시 필자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하던 자리였지만 당시 평창2010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대외공동사무총장이후 평창2014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으로 사실상 내정상태에 있었던 관계로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거듭 사양하였다. 당시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급기야 중앙일보에 지상발령을 냈지만 김정길회장은 3번째 회동에서 KOC총무도 겸직하라고 권했지만 필자는 KOC총무 발령이 먼저였다면 평창2014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겸직이 가능하겠지만 반대의 경우는 체육계의 반발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고사하였다. 그래서 나중에 내정된 KOC총무가 김상우 Cambrige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박사(전 국회의원)이었다. 김정길회장은 평창2014국제사무총장이던 필자를 나중에는 KOC위원 겸 KOC위원장 특보로 임명하였다. 김회장은 또한 당시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이 필자를 ANOC공로훈장 후보자로 낙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기꺼이 KOC후보자로 추천해 주었다. 그 결과 2008 Beijing 개최 ANOC총회 개회식장에서 한국최초로 ANOC공로훈장수여자가 되도록 적극 지원해 준 고마운 분이다, 다시 한번 이 지면을 통하여 김정길회장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07년 브라질 Rio de Janeiro개최 PASO총회 참석 중 김정길회장과 함께)

(좌로부터 김상우 KOC총무, 최만립 IONOS/APOSA회장, 김정길 KOC위원장, 평창2014국제사무총장인 필자/2007년 Rio개최 PASO총회)

 

(2007년 평창2014동게올림픽 및 패럴림픽 사전유치 활동으로 Rio 현지를 방문한 유치위와 KOC수뇌부: 좌로부터: 문부춘<작고> 평창2014유치위 기획실장, 김상후 KOC총무, 평창2014유치위 국제사무총장인 필자, 최만립 평창2014유치위 부위원장, 김정길 KOC위원장)

 

(2008 Beijing개최 ANOC총회 개회식에서 한국최초로 ANOC공로훈장을 수상한 필자와 함께 한 김정길 KOC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