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2. 6. 23. 23:33

1. 우슈에 대한 특별배려로 보이는 사례:

 

2005년 10월 난징에서 열린 제10회 중국전국체전개회식에서 Jacques Rogge IOC위원장은 우슈가 올림픽에서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후 3년 뒤 2008년에 이르자 43개국 128명의 우슈선수들이 '2008년 베이징 우슈 토너먼트란 묘한 타이틀아래 베이징 올림픽 참석차 베이징으로 날아왔다.

그 토너먼트는 IWUF와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이 '문화올림피아드' 프로그램의 일부로 공동주최한 경기라는 것이 IOC대변인의 설명이었다.



 

IOC president Jacques Rogge awards wushu medals on the third-to-last day of the Olympics. (IWUF)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올림픽 폐막 3일 전 우슈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기간 중 우슈종목 15개 세부종목이 바로 하루 전에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경기가 열렸던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8.21-23 3 일 간에 걸쳐 진행되었었다.

우슈경기는 오륜만 없는 베이징올림픽로고사용도 허용된 셈이었다.

우슈 토너먼트 각국 참가선수단은 올림픽선수촌에 체류토록 특별 배려된 셈이었다.

또한 우슈토너먼트 경기 결과도 미디어 지역에 설치된 Info 2008 단말기에 게시되었었다.

로게 IOC위원장, Liu Qi BOCOG위원장 및 Liu Peng 중국올림픽위원장 3인은 IWUF초청에 따라 경기장에 나타나 베이징올림픽 폐획 D-3일째인 8월22일 우슈 메달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서 우슈 토너먼트는 28개 올림픽 정식종목들과 같은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동시에 거행된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Gizelle Davies 당시 IOC대변인은 개최국 당사자들과 몇 년에 걸쳐 협의된 사항으로써 우슈 토너먼트로 함꼐 개최토록 합의된 사안이며 올림픽선수촌에 체류한 선수들에 대한 이슈는 없었노라고 답변한 바 있다.



 

The first question of the joint IOC/BOCOG press briefing on Aug. 20, 2008 was about wushu. (Beijing 2008)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IOC/BOCOG합동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우슈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자, 이제 우슈는 2011년 7월 IOC집행위원회가 2020년 올림픽정식종목 신규 후보종목 8개 중 하나로 선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IOC는 우슈가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서 스포츠 프로그램 또는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정리하고 있지만 난징 관계자들은 우슈를 문화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 위한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IWUF사무국에서는 로게 IOC위원장으로부터 우슈를 베이징올림픽과 유사한 조치를 지원하며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로써 '청소년 우슈 토너먼트'란 타이틀로 허용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한다라는 내용의 위원장 명의의 서한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IOC대변인은 난징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은 아직 결론난 것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우슈종목을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 포함될 것이라고 운을 띄는 것은 로게 IOC위원장만이 아니란다.
Zaiqing Yu 중국 IOC부위원장 겸 IWUF회장은 벌써 148개 IWUF회원국들에게 우슈의 승승장구 소식을 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Yu회장이 이미 금년 3월 말 경 주요회원국 연맹회장들에게 우슈가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
포함될 것이라고 통보해 주었다고 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2. 2년 사이에 중국여자선수 2명에게 IOC위원 직권 연속추천:

 

로게 IOC위원장은 2013년 IOC위원장 임기만료를 앞두고 유독 중국에게만 특혜성 조치로 해석될 만한 호의를 베풀고 있다.

중국에만 IOC위원장 직권으로 추천할 수 있는 'Active Athlete'이란 타이틀로 동료선수들이 선출하지 않는 선수 범주에 해당하는 IOC위원으로 중국선수출신 남녀 각각 1명씩 총 2명을 IOC위원으로 추천하는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

금년 초 스위스 로잔 IOC본부에서 개최된 IOC집행위원회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열리는 제124차 IOC총회에서 선출될 신임 IOC위원 지명자 (Nominee)후보 5명 명단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이들 5명은 IOC총회에서 찬성 50%+1표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무조건 신임 IOC위원으로 선출된다.

1) Pierre-Olivier Beckers, 벨기에 올림픽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the Belgian Olympic Committee)/NOC자격
2) Frank Fredericks, 현 IOC선수위원장(나미비아)로 금년에 선수자격 IOC위원 임기만료이지만 재 선출예정
3) Aicha Garad Ali, 지부티 NOC위원장(president of the Djibouti National Olympic and Sport Committee)/NOC자격
4) Lingwei Li(李玲蔚, born January 4, 1964), 중국 여자 배드민턴 세계 챔피언/Active Athlete자격으로 추정
5) Tsunekazu Takeda, 일본JOC위원장(president of the Japanese Olympic Committee)/개인자격으로 추정


이들 중 Lingwei Li는 중국출신 여자 배드민턴 세계 챔피언인데 3번 씩이나 세계선수권을 석권하였다고 하며 배드민튼 역사 상 최고의 셔틀러(shuttler) 중 한 명으로 인정 받아 선임 예정이라 한다.

불과 2년 전인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개최된 제122차 IOC총회에서도 중국 여자숏트트랙 세계챔피온이었던 양양(Yang Yang)선수들 IOC위원장 직권 '활발한 선수'(Active Athlete)란 명칭의 IOC위원으로 선출한 바 있다.
이는 2009년 80세로 정년 퇴임한 Zhenliang HE에 대한 배려로 이해 되었다.
원래 선수자격 IOC위원은 당해년도 올림픽대회 기간 중 각각 참가선수들이 투표로써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2011년에는 뉴질랜드의 요트선수 출신인 Barbara Kendall이 역시 중국의 양양선수 케이스로 IOC위원으로 영입 및 선출되었다.



Barbara KENDALL, MBE
Barabara Keddall(뉴질랜드) IOC위원


Yang YANG
Yang Yang(중국) IOC위원

이제 2012년에는 2010년 양양(Yang Yang/동계종목)에 이어또 다시 중국 배드민튼선수인 Lingwei LI(하계종목) 가 IOC위원 지명후보자로 결정되었다.
중국은 현재 NOC자격 IOC위원인 Zaiqing YU IOC부위원장(2008-2012)과 홍콩의 Timothy FOK IOC위원까지 포함하면 총 4명의 IOC위원 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만출신의 C.K. Wu IOC위원(ASOIF자격 IOC집행위원 예약 중)겸 AIBA회장까지 포함하면 중국 계 IOC위원 수는 5명에 이르러 스위스, 이탈리아에 이어 중국이 글로벌 스포츠외교 초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Zaiqing YU
Zaiqing YU(중국)IOC부위원장

Timothy Tsun Ting FOK
Timothy FOK(중국, 홍콩) IOC위원

Ching-Kuo WU 

Ching-Kuo  Wu(대만) IOC위원 겸 AIBA회장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23. 19:03

 

(국제우슈연맹로고)

 

<베이징의 속내/뒷이야기>

 

우슈가 2014년 제2회 난징 청소년올림픽(YOG)에 선보이기 위한 치밀한 공작이 집요하게 IOC수뇌부를 파고 들고 있다.

베이징이 2001년 제112차 모스크바  IOC총회에서 쟁쟁한 경쟁 후보도시들(파리, 토론토, 이스탄불, 오사카)을 제치고 2008년 올림픽개최도시로 선출되면서 그 야망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전통 무술인 우슈는 당시 자국에서 개최되는 2008년 올림픽에 스포츠로써 올림픽 종목으로 추가되는 것이 이상적인 아이디어라고 국제우슈연맹(IWUF) 수뇌부 임원들은 판단하였었다.

2001년 7월13일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이 2008년 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출되자 IWUF는 IOC 인정종목 관장 국제기구로 신청하여 2002년 제113차 솔트레이크시티 IOC총회에서 드디어 그 뜻을 이룸으로써 올림픽 운동의 정식일원이 되었다.

올림픽헌장 규정에 따르면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려면 7년 전에 신규정식종목으로 숭인되어야 했는데 시간 상 우슈는 베이징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IWUF임원들은 정식종목이 물 건너 간 것을 꺠닫고 그 대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IOC가 더 이상 시범종목 제도를 지속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최국의 프리미엄을 앞세워 우슈를 시범종목으로 포함되도록 로비를 하였다.

2005년 10월 난징에서 열린 제10회 중국전국체전개회식에서 Jacques Rogge IOC위원장은 우슈가 올림픽에서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후 3년 뒤 2008년에 이르자 43개국 128명의 우슈선수들이 '2008년 베이징 우슈 토너먼트란 묘한 타이틀아래 위해 베이징으로 날아왔다.

그 토너먼트는 IWUF와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이 '문화올림피아드 프로그램의 일부로 공동주최한 경기라는 것이 IOC대변인의 설명이었다.



 

IOC president Jacques Rogge awards wushu medals on the third-to-last day of the Olympics. (IWUF)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올림픽 폐막 3일 전 우슈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우슈종목 중 15개 세부종목이 하루 전에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경기가 열렸던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8.21-23  3 일 간에 걸쳐 진행되었었다.

우슈경기는 오륜만 없는 베이징올림픽로고사용도 허용된 셈이었다.

우슈 토너먼트 각국 참가선수단은 올림픽선수촌에 체류토록 특별 배려된 셈이었다.

또한 우슈토너먼트 경기 결과도 미디어 지역에 설치된 Info 2008 단말기에 게시되었었다.

로게 IOC위원장, Liu Qi BOCOG위원장 및 Liu Peng 중국올림픽위원장 3인은 IWUF초청에 따라 경기장에 나타나 베이징올림픽 폐획 D-3일째인 8월22일 우슈 메달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서 우슈 토너먼트는 28개 올림픽 정식종목들과 같은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동시에 거행된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Gizelle Davies 당시 IOC대변인은  개최국 당사자들과 몇 년에 걸쳐 협의된 사항으로써 우슈 토너먼트로 함꼐 개최토록 합의된 사안이며 올림픽선수촌에 체류한 선수들에 대한 이슈는 없었노라고 답변한 바 있다.



 

The first question of the joint IOC/BOCOG press briefing on Aug. 20, 2008 was about wushu. (Beijing 2008)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IOC/BOCOG합동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우슈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2014년 난징 YOG를 향하여>


자, 이제 우슈는 2011년 7월  IOC집행위원회가 2020년 올림픽정식종목 신규 후보종목 8개 중 하나로 선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IOC는 우슈가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서 스포츠 프로그램 또는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되자 않는다고 입장을 정리하고 있지만 난징 관계자들은 우슈를 문화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 위한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IWUF사무국에서는 로게 IOC위원장으로부터 우슈를 베이징올림픽과 유사한 조치를 지원하며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로써 '청소년 우슈 토너먼트'란 타이틀로 허용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한다라는 내용의 위원장 명의의 서한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IOC대변인은 난징 문화 및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은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성층권 분위기>

 

우슈종목을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 포함될 것이라고 운을 띄는 것은 로게 IOC위원장만이 아니란다. 
Zaiqing Yu 중국 IOC부위원장 겸 IWUF회장은 벌써 148개 IWUF회원국들에게 우슈의 승승장구 소식을 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Yu회장이 이미 금년 3월 말 경 주요회원국 연맹회장들에게 우슈가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
포함될 것이라고 통보해 주었다고 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IOC위원장의 중국사랑>

 

로게 IOC위원장은 2013년 IOC위원장 임기만료를 앞두고 유독 중국에게만 특혜성 조치로 해석될 만한 호의를 베풀고 있다.

중국에만 IOC위원장 직권으로 추천할 수 있는 'Active Athlete'이란 타이틀로 동료선수들이 선출하지 않는 선수 범주에 해당하는 IOC위원으로 중국선수출신  남녀 각각 1명씩 총 2명을 IOC위원으로 추천하는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

 금년 초 스위스 로잔 IOC본부에서 개최된 IOC집행위원회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열리는 제124차 IOC총회에서 선출될 신임 IOC위원 지명자 (Nominee)후보 5명 명단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이들 5명은 IOC총회에서 찬성 50%+1표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무조건 신임 IOC위원으로 선출된다.

1) Pierre-Olivier Beckers, 벨기에 올림픽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the Belgian Olympic Committee)/NOC자격
2) Frank Fredericks, 현 IOC선수위원장(나미비아)로 금년에 선수자격 IOC위원 임기만료이지만 재 선출예정
3) Aicha Garad Ali, 지부티 NOC위원장(president of the Djibouti National Olympic and Sport Committee)/NOC자격
4) Lingwei Li(李玲蔚, born January 4, 1964), 중국 여자배드민튼 세계 챔피언/Active Athlete자격으로 추정
5) Tsunekazu Takeda, 일본JOC위원장(president of the Japanese Olympic Committee)/개인자격으로 추정


이들 중 Lingwei Li(李玲蔚, born January 4, 1964)는 중국출신 여자 배드민터 세계 챔피언인데 3번 씩이나 세계선수권을 석권하였다고 하며 배드민튼 역사 상 최고의 셔틀러(shuttler) 중 한 명으로 인정 받아 선임 예정이라 한다.

불과 2년 전인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개최된 제122차 IOC총회에서도 중국 여자숏트트랙 세계챔피온이었던 양양(Yang Yang)선수들 IOC위원장 직권 '활발한 선수'(Active Athlete)란 명칭의 IOC위원으로 선출한 바 있다.


이는 2009년 80세로 정년 퇴임한 Zhenliang HE에 대한 배려로 이해 되었다.
원래 선수자격 IOC위원은 당해년도 올림픽대회 기간 중 각각 참가선수들이 투표로써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2011년에는 뉴질랜드의 요트선수 출신인 Barbara Kendall이 역시 중국의 양양선수 케이스로 IOC위원으로 영입 및 선출되었다.



Barbara KENDALL, MBE
Barabara Keddall(뉴질랜드) IOC위원


Yang YANG
Yang Yang(중국) IOC위원



이제 2012년에는 2010년 양양(Yang Yang/동계종목))에 이어또 다시 중국 배드민튼선수인 Lingwei LI(하계종목) 가 IOC위원 지명후보자로 결정되었다.
중국은 현재 NOC자격 IOC위원인 Zaiqing YU IOC부위원장(2008-2012)과 홍콩의 Timothy FOK IOC위원까지 포함하면 총 4명의 IOC위원 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Zaiqing YU
Zaiqing YU(중국)IOC부위원장

Timothy Tsun Ting FOK
Timothy FOK(중국, 홍콩) IOC위원




 

우슈의 경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야심찬 홍보와 로비가 태동되었었다.
오래 전에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SportAccord)회원단체로의 진입에 성공하여 국제적 인지도를 차근차근 높혀왔다.
유슈는 이미 IOC인정종목(IOC Recognized Sport)이며 1990년 창설한 국제우슈연맹(IWUF: International Wushu Federation)에 139개국 회원국을 두고 있다.
IWUF회장은 Zaiqing Yu 중국 IOC부위원장이 맡으면서 IOC위원들 득표로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상태다.


 

 

                                           (Zaiqing Yu 중국 IOC부위원장과 함께)


중국은 우슈를 2020년 리오 올림픽정식종목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2010년
우슈는 올림픽정식종목 후보대열에 들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이 수반되었다.
GAISF-SportAccord가 주괌하는 제1회 세계 격투기/무술 대회(World Combat Games)가 지난 2010년 8월27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되었다.
13개 격투기 국제연맹과 SportAccord가 주관하는 지난 제1회 대회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격투기 올림픽"(Combat Sports Olympics)인 셈이었다.
제1회 대회는 2010년 9월4일까지 8일간 계속되었다.
베이징은 2008년 올림픽이후 가장 큰 규모의 국제 스포츠행사를 개최한 셈이다.
13개 무술 및 격투기종목(13 marticla arts and combat sports)에 66개국에서 1,0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중국정부와 중국 스포츠 계가 우슈를 올림픽정식종목화하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행보다.

최근 더반 개최 IOC집행위원회에서 2020년 올림픽 신규추가 정식종목 후보종목으로 결정될 만큼 상당한 로비가 진행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슈/武术 (体育运动)

[자료출처: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우슈는 중국의 전통 무술로, 우슈란 무술의 중국 발음이다.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선사고대 인도의 무술을 응용하여 소림사에서 9년 동안이나 참선 후 승려들의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발전시킨 쿵후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경기이다. 오늘날 공식 경기에서는 태권도처럼 두 선수가 맞붙어 기량을 겨루는 종목이 아니라 혼자서 무술이 지닌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종목이며, 최근에는 실전성을 위해 산타라는 대련 경기도 일부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광복 후 전국 각처에서 우슈 수련장이 문을 열었으며, 1980년대에는 각종 경기단체가 생겨났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 경기 대회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는 태극권(太極拳), 남권(南拳), 장권(長拳)으로 나뉘어 남녀 도합 6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루었다.

<경기 종류 및 방법>

남자는 도(刀)·곤(棍)·술(術)을 포함한 장권(長拳)과 남권·태극권, 여자는 검(劒)·창(槍)술을 포함한 장권과 남권·태극권 등이 있다.

<장권>

남자는 도와 곤으로, 여자는 검과 창을 사용하여 기본 동작을 실시한다.

<남권>

양쪽 다리에 힘을 모아 양팔을 힘차게 쓰며 기합을 지르는 게 특징이다. 크고 절도 있는 동작이 필요하다.

<태극권>

신축성있게 기(氣)의 흐름을 조절하는 동작으로, 24가지 기본 동작으로 구성된다. 흔히 건강체조라고 한다.

<전 세계 무예/무술의 종류: 자료출처/위키 백과)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13. 17:47

지난 5월 하순 캐나다 퀘벡에서 개최되었던 SportAccord 칸벤션과 함께 열렸던 IOC집행위원회에서는 2020년 올림릭 개최도시선정을 위한 첫 단추로써 신청도시단계(Applicant City Phase)에서 후보도시단계(Candidate City Phase)로 변모하는 최종결선 진출도시리스트(Short List)를 발표한 바 있다.

퀘벡 개최 IOC집행위원에서는 2020년 올림픽 유치 결선진출 후보도시 세 곳을 확정하였다.

1) 도쿄: 1964년 올림픽을 치른 후 56년 만에 두 번 째 올림픽을 노리고 있다. 지난 2016년 올림픽유치경쟁과정에서는 후보도시들 중 가장 좋은 유치서류평가를 받고도 투표과정에서 리오에게 자리를 내 준 바 있어 2020년 올림픽 유치가 두 번쨰하는 재수 도전이다.

쯔나미 자연재앙(natural disaster)과 이로 인해 야기된 원전사고 등도 투표시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Homare Sawa, 2011 FIFA Women's World Player of the Year with her teammates and Tokyo 2020's Daichi Suzuki (Tokyo 2020)

 

2) 이스탄불(후보도시로써 오륜기를 장착한 IOC의 승인 받은 새로운 로고 미확정 중임)

이스탄불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접경지대에 위치하면서 유럽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따라서 터키 NOC도 EOC회원국이다.

필자가 2008년 올림픽 유치도시 IOC평가위원시절 이스탄불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Istanbul where the East and the West meet"(동서가 함께 만나는 곳,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경우 8년 전 올림픽유치경쟁 이후에 완공된 새로운 경기장들을 내 세워 3번 째로 리스트에 등재될 전망이다.

 

                  (필자가 2008년 올림픽유치 IOC평가위원시절 이스탄불 방문에 따른 현지언론보도)



이스탄불은 202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UEFA Championship)개최국으로 거의 확정단계인 까닭에 올림픽유치에 대하여 애매모호함이 대두되고 있다.

IOC나 유럽축구연맹(UEFA)모두 이구동성으로 두가지 다 가질 수는 없으니 양자택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터키 대통령은 UEFA측에 대고 거부의사를 표명함으로써 확실치도 않은 상태의 올림픽유치를 감행함으로써 축구에 열광하는 터키국민들의 분노를 유발할 정도로 여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은 매력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3) 마드리드:

스페인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개최후 2012년과 2016년 연거푸 올림픽유치에 실패하였고 절치부심 세번 째 삼수도전에 나서서 객관적으로는 유리한 입정일 수도 있겎으나 스페인 스포츠외교의 아버지 격인 사마란치 명예 IOC위원장이 2010년 4월21일 현지시각 오후 1시25분(한국시간 수요일 오후 8시25분) 노환 및 지병인 심장질환(관상동맥기능부전:coronary insufficiency)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퀴론(Quiron)병원에서 타계한 이후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의 스포츠외교 추진 동력은 구심점을 상실한 상태로 급격히 하향세지만 두 명의 IOC위원(IFs회장 자격)이 추가로 선출되어 보완이 되어 가고 있다.

최근 스페인의 경제상황 악화로세게적 신용등급 평가기관 중 하나인 피치(Fitch: Credit Rating Agency)는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당초  'A'에서 3단계 내린 'BBB'로 조정한 바 있다.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1998년 서울올림픽1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올림픽공원에서 미소짓고 있다.) 

 

도하(카타르)와 바쿠(아제르바이잔)는 그만 탈락하였다.

2004년 로잔개최 SportAccord 당시 개최된 IOC집행위원회에서는 2012년 올림픽 유치 결선진출 후보도시 리스트(Shortlist)를, 2008년 아테네개최 SportAccord에서는 2016년 올림픽 유치 결선진출 후보도시 리스트를 결정진 바 있다.
 

2020년 올림픽개최도시는 오는 2013년 9월7일 제125차 브에노스아이레스 IOC총회 첫 날 결정된다.

한편,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Oslo)는 2022년 동계올림픽유치결정을 하여 1952년 동계올림픽개최이래 두 번째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오슬로시의회 동계올림픽유치여부 결정 찬반투표에서 총59표 중 단 7표만 반대하여 절대과반수의 찬성을 받았고  노르웨이 국내경기연맹은 90%가 오슬로의 동계올림픽유치를 지지하였다고 Gerhard Heiberg 노르웨이 IOC위원 겸 IOC마케팅위원장(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역임)이 밝혔다.

 

                                   (오슬로에서 Gerhard Heiberg노르웨이 IOC위원과 함께)


 

노르웨이는 2016년 제2회 동계청소년올림픽(YOG)개최도시이기도 하다.

이외에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 후보 예상 미국도시들로는 Denver, Reno-Lake Tahoe 및 Bozeman, Montana가 거론되고 있다.

2024년 하계올림픽 유치희망 미국도시들로는 Dallas와 LA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캐나다의 토론토 역시 2024년 올림픽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토론토(Toronto)는 최근 1996년 및 2008년 올림픽 등 두 차례 도전한 바 있다.

토론토는 이미 2015년 범미주대회(Pan American Games)개최 도시로 결정되어 있어서 2024년 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경기장 건설 준비에 유리하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7. 09:30

<올림픽유치와 정치 파워 그리고 스포츠외교>

스포츠에 대한 정치개입사례는 최근 올림픽유치경쟁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림픽유치를 위해 유치후보도시들은 해당국 대통령들을 유치 단 대표일원으로 포진하여 정치적 공세를 전개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정치개입’을 이용한 올림픽대회 자국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외교는 정치와는 별개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치와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스포츠에도 정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외교 또한 상존한다.

우리는 이를 스포츠외교라고 한다

 

 

 

 

*Diplomacy vs. Politics (외교 대 정치)

 

1) Diplomacy is a kissing cousin of the Politics.(외교는 정치와 불가분의 친척이다.)

2) Politics of sport is sometimes more political than the politics of the politics.

(스포츠정치는 정치보다 더 정치적일 때가 왕왕 있다.)

3) Things you cannot obtain by war, you can attain by diplomacy.

(전쟁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외교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

4) The History is the Past Politics, and the Politics is the Present History.

  (역사란 과거의 정치사례기록이며, 정치는 현재 진행 중인 역사라고 보면된다.)

5) Politics is the Art of the Possible.

(정치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예술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개회식에서 역사적인 남북한선수단 공동행진 시 사용되었던 한반도 깃발 원본사진)

 

 

따라서 스포츠외교는 각국이 세계스포츠 계에서 실질적 위상강화와 비교우위를 점하고 스포츠외교를 통한 국익극대화를 도모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고도의 전술·전략이자 가장 효과적인 추진동력이기도 하다.

 

 

 (그리스 올림픽아는 고대올림픽의 발상지로써 이를 계승한 근대올림픽을 빛내주는 올림픽성화가 채화되는 곳이다)

 

추진동력이 제 기능을 다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서는 추진체 핵심부분이 중추적 위치에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추진동력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스포츠외교력과 위상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대최고 점수와 최고의 기량으로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로써  전 세계에 스포츠 한류를 크게 부각시킨 김연아선수의 자랑스런 모습)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7. 09:23

<역대올림픽의 정치개입 사례>

1916년 올림픽 : 베를린이 개최지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취소
1932 LA올림픽 : 만주 국의 참가신청을 IOC가 거부
1936년 베를린올림픽 : 나치독일의 유태인 선수 및 관중의 경기장 출입금지조치/아일랜드 올림픽 참가 보이콧
1940년 및 1944년 올림픽 : 2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중단
1948년 런던올림픽 : 아랍권의 보이콧위협으로 이스라엘을 올림픽에서 추방
1952년 헬싱키올림픽 : 중국(중공) 초청에 항의하여 대만의 대회참가보이콧, 소련 40년 만에 올림픽에 다시 참가
1956년 멜버른 올림픽 : 소련의 헝가리침공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 등의 대회불참/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운하점령으로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등의 대회 보이콧/중화민국(대만) 국기(청천백일기)게양에 항의하여 중공(중국)퇴장/동서독 단일팀 참가
1960년 로마올림픽 : 대만의 IOC축출을 주장하며 중공(중국) IOC 탈퇴
1964년 도쿄올림픽 : IOC가 남아공의 대회참가를 거부함/북한 및 인도네시아 개회식에서 선수단 철수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 남아공 IOC에서 축출
1972년 뮌헨올림픽 : 팔레스타인의 ‘검은 9월 단’이 올림픽선수촌을 습격하여 이스라엘 선수 11명 피살, 대회 30여 시간 잠정 중단/IOC에서 로디지아 축출(1980년 로디지아는 짐바브웨로 개칭하여 IOC복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 뉴질랜드 럭비 팀의 남아공 원정에 항의하여 아프리카 26개 국 대회 보이콧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격분하여 미국 등 서방진영 67개 국과 일부 공산국가 대회 보이콧

 

 


1984 LA올림픽 :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복수혈전으로 소련 등 동구권 14개 국 보이콧

 

 

 

 

● 1988년 서울올림픽은 올림픽 보이콧 종결 자: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은 정치적 보이콧이 배제된 온전한 올림픽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서진영이 분단국 수도인 대한민국 서울에서 평화와 화합의 지구촌 인류축제를 통해 올림픽에서 정치개입의 고리를 끊는 분수령과 동시에 올림픽의 앞날에 서광을 비추어준 기념비적인 대회로 기록되게 되었다.
북한은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무산으로 보이콧했으며, 에티오피아와 쿠바가 이에 동조한 바 있으나 상대적으로 미미한 숫자의 불참으로 역대 최고올림픽’(The Best Games to date)을 확고히 하는 올림픽사의 의미심장한 전환점이 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이후 올림픽대회에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보이콧이라는 망령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래서 서울올림픽은 위대하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7. 09:07

<서울올림픽의 해피엔딩(Happy Ending)>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미국지역 TV중계권료가 $39백만 불에 ABC TV에 낙찰되었고 1984 LA올림픽 이후 미국광고시장이 활황세를 타게 되자 그 규모가 동계올림픽보다 2배 이상규모의 하계올림픽인 1988년 서울올림픽은 미국지역 올림픽 중계권료가 $10억 불에 이를 것이며 최소 $6~7억 불은 호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것은 SLOOC(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Seoul Olympic Organizing Committee)측이 컨설턴트로 고용한 IMG(International Marketing Group)의 배리 프랭크(Barry Frank)가 미국과 한국의 시차로 인해 소위 미국의 황금 기간 대(Prime Time)에 주요 올림픽 종목경기 생중계방송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간과해 버린 상태에서 책정된 금액이어서 곧 문제가 되었고 또한 미국광고시장의 요구에도 부합하지 못해 올림픽 중계권료 협상 사상 최초로 같은 해에 개최되는 동계올림픽보다 액수가 적은 $3억 불로 NBC TV에 낙찰되고 말았다.

겨우 체면 유지용으로 SLOOC측이 설정한 추가발생 광고수입금 배분(Revenue-Sharing)제안만 NBC 측에 받아들여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올림픽대회는 $55,600만 불( 6,67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실속만점의 대회로 평가 받았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기금 수지계획 상 수입액을 당초 총 7,477억 원을 책정하였으나 이를 훨씬 상회하여 이중 일부인 3,360억 원을 국민체육진흥을 위하여 설립된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현 국민체육진흥공단: KSPO/Korea Sports Promotion Foundation)에 증여하였다. 

 

서울올림픽은 20년 만에 동서양 양대 진영이 이념과 체제를 뛰어 넘어 함께 축복 속에서 참가한 평화와 화합과 전진의 올림픽이며 IOC의 마케팅 분야에서도 올림픽 한류(Olympic Korean Wave)의 힘으로 새 지평을 열어준 마케팅 TOP프로그램의 발원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애초 우려했던 테러 등 안전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안전 올림픽으로서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이렇게 평가하였다.

The Most Universal and The Best Games Ever!(가장 보편화한 역대 최고의 올림픽!)

 

이렇게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치러진 대회는 서울올림픽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서울올림픽은 동양의 태극(시작과 끝), 그리고 서양의 알파와 오메가(Alpha and Omega/시작과 끝)가 공존하는 극동의 타오르는 등불을 올림픽 성화에 점화하여 근대올림픽의 진정한 부활을 가져다 준 축복과 영광(Blessings and Glory)의 대회로서 인류역사에 길이 보존되고 칭송 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은 서울올림픽개최 30년 만인 2018년에는 평창에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 주최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7. 09:00

<서울올림픽개최를 향한 남북한간 줄다리기(Tug-of-War)>

 

 

*서울올림픽과 관련한 북한측 8가지 요구사항 목록:

 

(1) 단일팀에 의한 북 남한 공동주최(Joint Hosting by North and South with a single national team)

(2) 코리아 올림픽이란 통합 타이틀 사용(The amalgamated title Korea Olympic Games)

(3) 평양과 서울간에 경기종목 평등분배(Sports Disciplines equally divided between Pyongyang and Seoul)

(4) 양측 수도에서 개폐회식 동시개최(Simultaneous 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 in both Capitals)

(5) 올림픽 헌장 하에 양측 도시들이 공동 보증서 작성(Host Cities to make joint guarantees to IFs under the Charter)

(6) 모든 선수, 임원, 여행객들의 육, , 공을 통한 자유로운 교환(Free Exchange in Travel for all Athletes, Officials, Journalists, and Tourists by Air, Sea, or Land)

(7) TV방영권수익금 재 분배(Redistribution of Television Profits)

(8) 공동조직위원회 구성(The Formation of a Joint Organizing Committee)

 

이러한 일방적인 8가지 제안항목들은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라도 개선하여 발전시킬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IOC는 이 단계에서 개회식 때 올림픽 깃발을 앞 세우고 남북한 선수단이 공동 행진하는 것과 마라톤 및 도로 사이클 경기 코스가 휴전선을 가로질러 남북한 지역을 관통하는 것과 축구와 같은 단체종목의 예선전 몇 경기를 북한에서 개최하는 것에 한해서 제안한 바 있다. 올림픽공동개최는 결코 IOC의 요망사항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1985년 로잔에서 열린 첫 번째 회담결과 최종 코뮤니케(공동발표문)를 통해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니 1986 1월 회담을 속개하자고 하였다.

 

이후 3 차례 회담이 속개되었으나 의견차이를 좁히는데 실패하여 회담이 결렬된 셈이었지만 4차례 명분뿐인 회담으로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국가들이 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명분을 얻는 데는 성공하였다.

 

국제적인 안보전문가와 테러분석가들로부터 가장 위험한 시기는 올림픽이 열리기 전 2년 간 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시작되어 중국과 소련선수단이 도착하고 나면 서울은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지대로 변할 것이었다.

 

한국은86 아시안게임 직후에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을 겪은 바 있었다. 불안감은 86년 겨울과 87년 여름 동안에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는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유혈시위가 세계 각국의 신문과 방송을 타고 톱기사로 장식되었고 극적인 사진들까지 줄곧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불안에 따른 염려와 과잉대응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소유한 미국에서 정점에 달했다.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고 북한과 휴전상황에 놓여 있었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인 휴전선(DMZ)은 서울에서 불과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라는 것이었다.

 

미국 ABC TV 명 스포츠 해설가인 하워드 코셀(Howard Cosell)전쟁 중이나 다름 없는 국가에서의 올림픽 개최는 어불성설이다. 또한 160여 개국의 회원국 중 불과 60개국과만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있다니 말이나 될 법한가?라고 비난의 포문을 열기도 하였다.

 

한국은 1980년 12월12 전두환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당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1980 7월 제22 IOC총회에서 8년 임기의 IOC위원장으로 선출된 사마란치(2011년 작고)로서는 이 모두가 고난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블록 국가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다른 곳으로 옮겨 개최해야 한다고 연일 비판을 해댔다.

 

1984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제4 ANOC총회에서 당시 소련 체육성 장관 겸 NOC위원장인 그라모프(Gramov)는 강한 어조로 서울올림픽 개최지 변경문제를 공론화하여 총회의 주요쟁점으로 몰고 가고 있었으며 열띤 공방이 계속되었었다.

 

결국 친한 파인 마리오 바즈케즈 라냐 ANOC회장과 사마란치 IOC위원장 등의 서울올림픽 사수 전략이 대다수 NOC대표단의 호응을 받아 서울올림픽사수 멕시코선언문이 채택되었다.

 

이것으로 서울올림픽 개최지 변경논란은 일단락되었다.

 

 

 

 

 

그 결과 1988년 서울올림픽은 동서진영이 모두 참가(159개국)하는 화합과 전진(Harmony and Progress)의 대회가 되었으며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이념과 정치 갈등을 넘어선 대회로 높이 평가 받게 되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5. 16:45

제1편 < 서울올림픽유치우여곡절(Ups and Downs)과 성공스토리(Success Story)>:

 

 

 

 

1947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우여곡절 끝에 IOC에 회원국으로 가입한지 31년만인 1978년 9월24부터 105일까지 서울올림픽유치의 근간이 된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태릉 국제종합사격장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한민족 사상 최초로 한반도에서 개최된 세계, 국제, 글로벌 공식행사였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사격연맹(UIT)의 당시 회원국들 중 비록 비수교국인 공산권 국가들이 불참하였지만 각 대륙에서 68개국 1,500여 명이란 규모의 지구촌 스포츠가족들이 장차 서울올림픽유치를 향한 한국의 스포츠조직력을 증거할 계기가 된 셈이다.

 

1979년에는 새롭게 창설된 제1회 세계공기총사격선수권대회와 사격에 이어 두 번째 세계선수권대회인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하여 잠실에 신축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한국은 국제체육행사를 주최하는데 따르는 매력과 자심 감을 실감하게 되었다.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유치하고 조직한 고 종규 당시 대한사격연맹회장은 1979KOC위원장(추후 IOC위원 역임) 재직 시 박정희대통령에게 서울올림픽유치필요성과 당위성을 3가지로 요약 브리핑하여 내락 받았다고 한다.

 

첫째, 한국경제고도성장과 국가신인도 제고의 새로운 기점 마련:

 

-1964년 도쿄올림픽개최당시 일본의 1인당 GNP $670 불 정도였으니 한국의 경제성장속도를 감안할 때 1988년에는 $2,000 불이 충분하다라는 판단이 섰다. 일본도 1964년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경제발전이 대 도약하기 시작하였다.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 대열에 도약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조성되었던 전례를 강조하였다.

 

둘째, 대결 국면의 남북한관계에 있어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계기초석마련:

 

-최대 우방국인 미국 시민들 조차도 한국은 한국동란 당시 의료진 이야기를 다룬 TV 시리즈

드라마였던 MASH(Mobile Military Surgical Hospital: 이동육군외과병원)를 통해 전쟁참화

에 찌 들린 나라 정도로 인식될 정도였고 따라서 한국을 모르는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북한의 집요한 허위날조 공세로 한국의 대외 이미지와 신인 도는 하한가수준이었다.

 

올림픽을 한국이 유치한다면 한국의 경제적 성장을 세계가 인정하는 것이고 외교 면에서 북한의 제3세계에 대한 공세를 원천 봉쇄하여 한국이 북한을 압도할 수 있는 기틀이 확고해 질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될 것이다라는 전망을 강조하였다.

 

셋째, 세계 선진국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첫 단추 채우기의 안성맞춤:

 

국내외 한민족 모두를 자긍심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단합대회이자 한국을 전 세계에 홍보 할 

수 있는 최고의 시너지 효과거양은 물론 실질적으로 온 세계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할 수있는 사회 제반 인프라 구축도 효과적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계기라는 점도 동시에 강조하면서 서울올림픽유치가 제3공화국을 결산하는 역사적 치적이 된다는 점도 생각해 주시라는 간곡하고 설득력 있는 화룡점정 적 브리핑덕분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쾌히 승낙을 받아내게 되었다.

 

올림픽유치경쟁과 관련된 시험적 사전 스포츠외교 활동은 1979년 푸에르토리코의 상환(San Juan)에서 열린 세계각국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에서 태동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올림픽유치를 임시로 승인한 뒤의 일이었는데 한국 스포츠외교관들은 ANOC IOC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라고 판단했다.

 

사실 국제 스포츠 계 판도를 정확히 집었으면 IOC가 얼마나 강력하고 ANOC는 친목 협력단체이지 IOC에 대한 압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단체라는 현실을 깨달았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시 한국의 스포츠외교 눈높이였다.  

 

1979 921, 박정희대통령은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양대 게임유치를 시작하라는 계획을 최종 승인하여 주었다.

 

박정희대통령이 서울올림픽유치목적으로 설정한 5가지 항목은 다음과 같았다:

 

(1) 한국의 경제발전과 국력과시

(2) 한국체육의 국제적 지위 향상

(3) 스포츠를 통한 세계 각국과의 우호증진

(4) 공산권 및 비동맹국가와의 외교관계 수립 여건 조성

(5) 국제적 체육행사를 통한 국민 일체감 제고

 

또한 제1086아시안게임도 함께 유치하여 88서울올림픽의 예비대회로 활용하도록 재가하였다.

 

1979 108 당시 정상천 서울시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1988년 서울올림픽유치계획을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같은 해 1026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당함으로써 커다란 시련에 봉착하기도 하였다.

1980년 7월14 박종규 전 대통령경호실장이 KOC위원장 과 KASA(당시 대한체육회 영문명칭: Korea Amateur Sports Association)회장 자리에서 사임하고 후임으로 조상호 KOC부위원장이 임명되었다.

 

또한 1980년 10월27 전두환 장군이 제9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88서울올림픽 유치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조상호 KOC위원장은 1980 925, IOC본부에 88올림픽유치신청마감일을 텔렉스로 문의해 본 결과 1980년 11월30이라는 회신을 받고 유치작업을 재개하였다.

 

 KOC 116 KOC긴급확대 상임위원회회의를 열고 유치에 대한 찬반토론을 거친 뒤 득실을 비교 분석한 결과 국가적으로 득이 된다는 결론을 도출한 KOC는 유치신청서를 제출할 것을 정부에 건의 하였다.

 

<KOC가 분석한 올림픽유치에 따른 득과 실>

 

*:

 

-국가의 대외 이미지 고양

-86아시안게임유치에 긍정적 영향

-유치경쟁에서 탈락해도 유치후보 국의 지위와 명예유지

-신청서제작 등 신청사실만으로도 경험축적의 기회

-타국에 유치 양보 권의 활용 가능

-올림픽 영구 개최지가 활발히 논의되는 시점에서 올림픽유치 신청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으므로 신청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음

 

*:

 

-유치신청서 제출 후 소극적인 태도를 가질 경우 국제 스포츠 사회에서의 신망실추에 대한 우려

-유치신청서 제출 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경우 경제 및 사회정책적 측면에서 국민의 호응 기대키 어려움

-한국의 분단 사실, 국제종합경기대회 개최 경험 일천, 재정능력부족 등으로 미루어 국제 스포츠 사회가 신청 사실을 시기상조로 보아 불신감 초래 우려

 

 

반면 서울시는 재정부담을 염려한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였지만 전두환대통령은 1130일 유치신청서에 최종 서명하였고 그 유치신청서는 IOC가 정한 마감시한 내에 제출되었다.

 

KOC 121일 서울올림픽유치에 대한 지지입장을 확인하였다. 그 후 발 빼기 시도가 있었지만 전두환대통령은 유치경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건의를 받아들였고 이란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나선 것이 당시 노태우 정무2장관이었다.

노태우장관은 8월 말 체육 계, 외무부의 재외공관, 학 계 등 각 계의 의견을 종합하여 서울올림픽 유치의 승산과 당위성에 확신을 가지고 전두환대통령에게 특별 건의한 결과였다.

 

전두환대통령은 88올림픽은 기필코 서울로 유치해야 한다라는 단호한 결의를 보이면서 노태우장관이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에 구성된 88올림픽 유치특별대책반을 진두 지휘하도록 특명을 내렸다. 94일 개최된 비상대책회의는 노태우장관이 주재하였는데 이규호 문교부장관, 노신영 외무부장관, 박영수 서울시장, 이상주 청와대 문교수석비서관, 이선기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전상진 KOC부위원장이 참석하였다.

 

이 회의를 계기로 일본의 나고야를 막판의 세기적 역전승(52:27)을 가져 온 서울올림픽 유치활동은 노태우장관과 유치위원장을 맡은 정주영 현대그룹회장 그리고 박종규 KOC위원장 등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당시 WTF총재로서 국제스포츠 계 인사들과 잘 통하여 바덴바덴 총회 장을 누비고 활동한 김운용 IOC부위원장도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종규회장은 당시 IOC위원들에게 영향력이 지대한 Horst Dassler ADIDAS회장과 비밀회동을 갖고 실질적인 역전득표작전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1 930 서독 바덴바덴에서의 기적은 박종규 대한사격연맹회장 겸 KOC위원장의 야망으로 시작되어 노태우장관이 총괄지휘하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을 비롯한 유치 단 멤버들의 불철주야 주도면밀하고도 역사적인 천둥번개작전(Thunderbolt Operation)에 의해 화룡점정 된 것이다.

 

박종규회장의 꿈, 박정희대통령의 결심, 전두환대통령의 유치신청결단, 노태우 정무2장관의 확신 찬 진두지휘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정부의 지도층은 서울올림픽의 꿈의 불씨를 살려 찬란히 지피도록 견인차 역할을 다하였다. 바덴바덴 대첩의 기적은 그 후 개최되기까지 7년 간 숱한 우여곡절과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1988년 9월17 동서양이 한반도에 모두 모여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벽을 넘어서 올림픽을 통한 세계 대 단합과 인류화합의 합창을 부르게 된 것이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The World to Seoul, Seoul to the World)

 

그 과정에서 북한의 개최지 변경 공작, 아웅산 테러, 북한의 서울올림픽 공동개최 주장, 김포공항 테러, 국내 정치정세의 급변, 6.29 민주화선언, 대통령 선거, KAL 858 폭파 사건 등 수 많은 위기와 질곡의 세월을 넘어 88서울올림픽은 20세기 최고의 올림픽으로 승화되고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

1) Olympic Revolution by David Miller

2) 총성 없는 전쟁(윤강로 저서)

3) 하늘과 땅 동서가 하나로(고 박세직 저)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6. 4. 12:05

오는 7월 런던올림픽 기간 중 총15명의 IOC집행위원회 위원들 중 1/3에 해당하는 5명의 IOC집행위원들이 새 얼굴들로 교체예정이다.

IOC-USOC 올림픽수입금 배분 방식 합의 도출로 IOC내부의 분위기도 더 이상 반미정서가 팽배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4명의 IOC부위원장 중 2명이 교체대상이다.

2004년에 IOC집행위원에 선출되어 4년임기를 마치고 다시 홈그라운드 스포츠 외교 잇점을 십분 살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열린 선거에서 한 단계 신분상승하는 IOC부위원장 직에 출마하여 무난히 당선된 바 있는 중국의 Zaiqing YU IOC부위원장이 8년 간의 IOC집행위원신분에서 내려온다.

이는 IOC규정상 IOC집행위원(부위원장 포함)직을  연속 최대 2회(4년 x 2회)8년이상 연임이 불가하므로 1년이상 건너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는 현재 여성 IOC집행위원으로 4년 간 활동한 모로코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출신인 Nawal El Moutawakel이 노리고 있다. 

 

       (사진 맨 우측이 Nawal El Moutawakel IOC 집행위원 겸 2016년 리오 올림픽 IOC조정위원장)

 

두번 째 IOC부위원장자리는 2009년에 당선되어 2013년까지 임기가 되어 있었던 이태리출신 Mario Pescante IOC부위원장이 2020년 로마올림픽유치후보 철회를 결정한 이태리 정부의 처사에 반발심리와 로마2020 유치위원장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명분으로 과감히 IOC부위원장 직을 2011년 로마2020 후보도시 철회발표와 동시에 임기 1년 앞두고 조기에 내 놓음으로써 생겨났다.

이 자리에는 2009년 IOC집행위원으로 처음 등극했던 영국출신 Craig Reedie가 관심을 표명하고 로비 중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측이 Craig Reedie 영국 IOC집행위원)

 

소식통에 따르면 Moutawaekl이나 Reedie 두 후보 모두 후보로서 특별한 반대기류가 없어 무난하다라는 평가이다.

2008년 6명의 IOC집행위원이 선출되었고 1년 임기가 남은 Reedie가 IOC부위원장 직에 출마하면 자동적으로 이들의 임기가 차매  계산 상 총 7명의 새로운 집행위원 얼굴들로 대거 물갈이 되는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여기에 부위원장 2명(YU 및 Pescsante)도 교체되므로 총 9명, 즉 IOC집행위원 15명 중 과반수가 넘는 인원이 교체되는 역대 최대의 물갈이 폭을 기록하게 된다.

먼저 Reedie(2009년 선출) 및 Moutawakel(2008년 선출)은 IOC부위원장 직으로 한 단계 상승하게 될 예정이다.
Richard Carrion 푸에르토리코 IOC집행위원이 2004년 및 2008년 두 차례 연속 선출로 IOC집행위원 직을 떠나게 되어 있어 이 세 자리를 놓고 우크라이나출신 Sergei Bubka IOC위원(IOC선수위원장 겸 IOC집행위원 역임), 스페인출신 Juan Antonio Samaranch Jr. 과테말라출신 Willi Kaltschmitt Lujan IOC위원, 태국출신 Nat Indrapana IOC위원 및 미국 흑인여성 올림픽 조정 동메달리스트출신 Anita DeFrantz(IOC 집행위원 및 부위원장등 8년/1992~2001 역임, 현 IOC여성과 스포츠 분과위원장) 등 5명이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사진 가운데가 Anita DeFrantz 미국 IOC위원)

IOC집행위원 15명 중에는 일반 선출직 이외에 4명의 4대 국제 스포츠기구  및 기관  대표 자격 당연직 선출대상 집행위원들이 있다.

즉, ANOC, ASOIF, AIOWF, IOC선수워원회가 그것에 해당한다.

먼저 80세 정년으로 IOC위원 직에서 물러나는 멕시코 출신의 Mario Vazquez Rana 전 ANOC회장 겸 IOC집행위원의 ANOC대표 몫 IOC집행위원자리는 이미 아일랜드출신 Patrick Hickey IOC위원 겸 EOC회장이 입도선매하여 런던 IOC총회에서 인준만 남겨두고 있다.

 

                                   (우측이 Patrick Hickey 아일랜드 IOC위원 겸 EOC회장)

 

두 번째로 ASOIF대표자격 IOC집행위원 한 석 역시 금년 물러나는 스위스 출신 Denis Oswald FISA회장 겸 ASOIF회장 겸 IOC집행위원으로부터 물려받는 자리가 되는 데 이 자리 역시 5월 말 SportAccrod 컨벤션기간 중 개최된 ASOIF총회 투표에서 28표 중 20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대만 출신 IOC위원 겸 AIBA회장이 점지되어 IOC총회 인준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좌측이 태국출신 Dr. Nat Indrapana IOC위원, 우측이 C.K. Wu 대만 IOC위원 겸 AIBA회장)

 

세 번째로 스위스 출신 Rene Fasel IIHF 및 AIOWF회장 겸 IOC집행위원(2008년 선출)은 AIOWF회장이므로 기관 대표자격으로 4년 더 연임될 전망이다. 

 

                                       

                         (우측이 Rene Fasel 국제 아이스하키연맹(IIHF)회장 겸 AIOWF 회장 겸 IOC집행위원)

 

네 번째 자리는 IOC선수위원장 몫의 당연직 IOC집행위원인데 금년 말 예정된 IOC선수위원장으로 새로 선출되는 선수출신 IOC위원이 이 자리를 승계할 전망이다.

이 모든 선거는 런던올림픽 개회식 전날 열리는 제 124차 IOC총회 최종일인 7월26일에 치러진다.

귀추가 주목된다.

이렇게 8명이나 되는 사상 최대 폭의  IOC집행위원 물갈이 경쟁에도 한국 출신 후보는 여전히 아무도 감히 접근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의 현주소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설상가상으로 박사논문 표절시비로 한국 선수출신 문대성 IOC위원조차 IOC윤리위원회 자격 심의 대상에 회부되어 가고있는 상태라고 하니 이를 두고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고 표현해야 맞는 것인지 헷갈린다.

대한민국의 스포츠외교는 최근 들어 여전히 국가대표선수들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성과에 일희일비하며 의지해야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 안타깝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2. 5. 10. 12:24

하계올림픽 종목 국제연맹 연합회(ASOIF: Association of Summer Olympic International Federations)차기회장이 탄생하였다.

 

 

1983년 결성된 ASOIF는 당시 이탈리아 출신 Primo Nebiolo IAAF(국제육상경기연맹)회장 겸 FISU(Federation Internationale du Sport Universitaire: 국제대학스포츠연맹)회장이 초대 회장으로 등극하여 사마란치 IOC위원장에 버금가는 파위를 과시한 바 있다.

 

                     (Mario Vazquez Rana ANOC전 회장과 고 Primo Nebiolo 초대 ASOIF회장)

 

1999년 작고한 이래 13년 간 ASOIF회장 직을 맡아 온 제2대 회장은 스위스 출신 Denis Oswald FISA(Federation Internationlae des Societes d'Aviron: 국제 조정경기연맹)회장으로 당연직 IOC집행위원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국제 스포츠 계 거물이고 임기는 금년 말까지다.

 

Mr Denis OSWALD

Denis OSWALD

Entry in the IOC 1991
Country SUI (Switzerland)
Born 09 May 1947, NEUCHATEL

 

오늘(5.10) 캐나다 퀘벡개최 SportAccord행사 중 열리는 ASOIF총회에서는 단일후보로 만장일치 당선이 확실시 되는 Fransesco Ricci Bitti ITF(Internationla Tennis Federation: 국제테니스연맹)회장이 제3대 ASOIF회장이다(2013-2017).

1942년 생으로국제연맹자격 IOC위원으로 선출(2006년)되어 활동 중이며 올해 벌써 70세가 된 이탈리아출신 Ricci Bitti 신임회장은 IOC위원 연령제한 규정으로 인해 IOC위원 직이 금년 말로 끝나게 되어 있어 당연직 IOC집행위원 자리는 ASOIF가맹 국제 연맹회장단 중 IOC위원을 겸하고 있는 인사들의 몫으로 예정되어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로는 ASOIF집행이사회 아사들 중 Sergey Bubuka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부회장 겸 우크라이나 IOC위원(NOC자격), C.K. Wu 국제복싱연맹(IBA)회장 겸 대만 IOC위원(개인자격), Pat McQuaid 국제사이클연맹(UCI)회장 겸 아일랜드 IOC위원(IF자격) 및 Marisol Casado(여성) 국제트라이애슬론(ITU)회장 겸 스페인 IOC위원(IF자격)등 4명이다.

<하계올림픽종목국경기제연맹연합회(ASOIF, 2012년 현재 총 28)>

 

 

1983년 결성되었으며 올림픽운동 유관기관들 및 기타 국제스포츠기구들 과의 협력체계를 공고히 하고, 회원연맹들의 공동관심사들은 조정 및 보 호한다.

회원연맹의 권위, 독립성, 자치성을 유지하면서 올림픽운동보호에 동참한다.

본부는 스위스 로잔에 있다.

 

<동계올림픽종목국제연맹연합회(AIOWF, 현재 총7)>

 

올림픽 프로그램종목 국제경기연맹들, 올림픽운동유관기관 및 GAISF 맹 국제스포츠기구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고유업무를 추진한다.

일반적으로는 동계종목, 구체적으로는 동계올림픽과 연관된 세부질의사 항들을 처리하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기구이다.

IOC 여러 분과위원회 및 기타 국제기구들에 동계종목대표 구성, 임명 및 공동대표단 선발 업무를 관장한다.

동계종목 경기일정조정 및 TV방영권 수입금 배분관련 제안사항을 IOC에 제출한다.

본부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다.

 

<인정종목국제경기연맹연합회(ARISF, 현재 총 33/야구 및 소프트볼 포함)>

 

1983년 결성되었으며 회원연맹들의 권위, 독립성, 자치성을 유지하면서 회원연맹들의 공통이익을 보호하고 조정업무를 관장한다.

올림픽헌장 및 규정을 엄수하지만 ARISF관련 규정이 올림픽헌장에 명시 된 원칙에 반하지 않도록 한다.

올림픽운동과 관련된 공동관심사에 대한 회원연맹들의 총체적 의견일치 를 결의한다.

IOC 주관 콩그레스, 프로그램 및 프로젝트 등에 적극 동참한다.

 

<국제경기연맹(IF)>

 

국제경기연맹(IFs)이란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스포츠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관장하는 국제적 비정부기관(NGO)으로, IOC가 인정·승인하는 기구이다. 각국 내에서 해당 스포츠를 관장하는 국가별 가맹경기단체(NFs)는 해당 국제 경기연맹(IF)에 가입되어 있다.

IF는 해당 스포츠를 관장할 때 고유의 독립성과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그 러나 IOC의 승인을 추구하는 IFs에서 재정하는 각각 고유의 법규, 실행규정, 활동내용 등은 올림픽헌장과 부합되어야 한다.

 

<IF의 사명>

 

세계 각종 스포츠종목 운영을 지속적으로 관리 및 감독할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올림픽정식종목 국제경기연맹의 경우 올림픽대회기간 중 해당종목의 실 질적인 조직과 운영을 책임진다.

모든 수준의 해당종목 선수들의 양성을 감독한다.

해당종목을 세계수준으로 관장하며 종목장려 및 개발에 힘쓴다.

해당종목의 행정을 관리하며 페어플레이규칙뿐만 아니라 경기의 정기적 개최를 보장한다.

올림픽대회조직과 운영을 포함하여 올림픽헌장과 올림픽운동과 관련한 제안사항 등을 IOC에 제출한다.

올림픽후보도시들의 경기시설, 기술적 능력 등과 관련된 의견을 IOC에 개진한다.

올림픽콩그레스 준비에 협력한다.

IOC분과위원회 활동에 참여한다.

 

<전 세계 국제경기연맹 현황>

 

해당그룹종목들(하계, 동계 및 인정종목 군)과 관련된 공통문제 등을 협 의하고 경기일정 등을 결정하기 위하여 종목별그룹연합체를 결성한다.

 

- ASOIF : 하계올림픽국제경기연맹연합회

- AIOWF : 동계올림픽국제연맹연합회

- ARISF : 인정종목국제경기연맹연합회

- SportAccord/GAISF :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

 

[윤강로 저서 "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 중에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