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1. 4. 18. 17:41
" 내일이면(4.21)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성공에 줄기차게 기여하시고 한국방문만 40여 차례 하시어 이 분야 진기록을 세우신 바 있는 故 사마란치 전 IOC위원장이 돌아 가신지 1주기가 됩니다.
1981년 9월30일 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지도 올해로 30주년이 되는 의미있는 금년에 서울올림픽공원 내에 사마란치 IOC위원장 흉상건립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다시한번 고개 숙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마란치 IOC명예위원장이 2010년 4월21일 현지시각 오후 1시25분(한국시간 수요일 오후 8시25분) 노환 및 지병인 심장질환(관상동맥기능부전:coronary insufficiency)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퀴론(Quiron)병원에서 타계한지 벌써 1주기가 되었다.

당시 현지시각 2010년 4월22일 목요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5시)바르셀로나 주정부 청사에서 추모식이 시작되었고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조문객 문상이 있었다.
당일 오후 6시(한국시간 4월23일 새벽1시)바르셀로나 대성당에서 장례식 및 추도 미사가 진행된 바 있다.

향년 89세.
2개월 28일 모자라는 향년 90세였다..(just a few months shy of his 90th birthday)



사마란치 IOC명예위원장은 1920년 7월17일(원숭이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1966년 IOC위원에 선출되었다.
1980년-2001년(21년 간) IOC위원장.
2001년 이후 IOC종신 명예위원장, IOC올림픽박물관 이사장, IOC 수집가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스페인어, 까딸루냐어, 영어, 불어, 초급 러시아어 및 독어구사.
부인 Maria Theresa Salisachs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개회식 전날 사망.
가족으로는 2001년 IOC위원으로 선출 된 Juan Antonio Samaranch, Jr(Juanito로 불리움) 과 딸 Maria Theresa와 손자/손녀.

                                   (2001년도 IOC위원에 선출 된 사마란치 쥬니어 Juanito와 함께)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1981년 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도시 결정과정 초반에는 휴전 중인 대한민국의 서울보다는 일본의 나고야 쪽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선호하였다가 유치 후반부부터 아디다스(Adidas)사의 다슬러(Horst Dassler: 작고)회장과 함께 서울 쪽으로 기울었다.

                                      (Horst Dassler 아디다스회장과 고 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

한국 유치 대표단의 신출귀몰한 '천둥번개 작전'(Thunderbolt Operation)에 힘 입어 서울이 나고야를 52:27로 누르고 승리하자 결국에는 열렬한 한국 매니어(Mania)가 되고 만다.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1988년 올림픽개최도시 발표식장에서 당시 불어로 한 발표장면을 회상하여 재현해 보자.

"Aujourd'hui, nous avons choisi la ville pour la 24eme Olympiade qui reviendra a la ville de Seoul(쎄울).
Seoul(쎄울) a gagne 52(cinquante deux) et Nagoya 27(vingt sept)."
(Today we have chosen the host city for the Games of the 24th Olympiad which will be hled in the city of "Seoul".
Seoul obtained 52 votes and Nagoya 27.)
(오늘 우리는 제24회 올림픽 개최도시를 선출하였다. 그 도시는 바로 "쎄울"(서울의 불어 식 발음)이다. "쎄울"은 52표를 나고야는 27표르 각가 획득하였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1981년 9월30일 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의 이 통쾌, 상쾌, 명쾌, 유쾌, 경쾌한 장면을 두고두고 길이길이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 역사적인 발표 장에는 고 정주영 유치위원장 겸 현대그룹회장, 유창순 총리, 박영수 서울시장, 고 조상호 KOC위원장, 최만립 KOC명예총무, 전상진 KOC부위원장 등 유치대표단 전체가 환호하는 장면이 TV화면에 비추어졌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환호하는 장면에 약간의 시차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국제 스포츠 계 인사에 의하면 사마란치 위원장이 불어로 투표결과룰 발표한데다, '서울'을 생전 들어보지도 못 했던 '쎄울"로 발음하자 초긴장 상태였던 우리 대표단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위의 사람들이 축하인사를 건네기 시작했을 때 비로서 짧은 간격(interval)을 두고 승리를 확인함과 동시에 환호성을 지른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1981년9월30일 역사적인 올림픽 개최국으로 결정 되었다.

1988년 10월2일 서울올림픽대회가 전례 없는 대 성공을 거두고 폐회식을 갖는 자리에서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서을 올림픽대회를 "20세기 최고의 올림픽대회'(The most Universal and Best Games Ever!)라고 극찬하였다.

위대한 대한민국! 서울 올림픽이여 영원하라!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35차례나 한국을 방문하여 방문횟수로 최다 신기록을 세운 장본인이 되었다.

근 30년 간 사마란치위원장을 지켜보고 함께 업무도 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본 바에 의하면 그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꼼꼼하다.(meticulous)
2. 섬세하다.(fine and delicate )
3. 치밀하다.(elaborate)
4. 정확하다.(accurate)
5. 매사 조심스럽다.(careful and cautious)
6. 정교하다.(exquisite)
7. 절도가 있다.(moderate)
8. 총명하다.(intelligent)
9. 영리하다. (clever)
10. 명민하다.(smart)
11. 외교적이다.(diplomatic)
12. 시간관념이 철두철미하다.(punctual and having perfect sense of timing)
13. 건강관리가 철저하다.(perfect control of health care, trying to be in good shape at all times)
14. 준비성이 확고하다.( thoroughly prepared)
15. 계산적이다.(calculative)
16. 냉철하다.(cool-headed)
17. 냉정하다.(calm)
18. 현실적이다.(realistic)
19. 빈틈이 없다.(shrewd and prudent)
20. 명예 지향적이다.(honor-chasing)
21. 정치적 수완가다.(politically skillful)
22. 반면 따뜻한 인간미도 있다.(warm-hearted)


   (1991년 바르셀로나 개최 ANOC총회 리셉션장에서)


사마란치위원장의 행적과 치적을 요약해 보자.

1.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올림픽 헌장(Olympic Charter)에서 과감히 삭제하였다.
2. 올림픽운동에 상업주의(commercialism)와 프로화(professionalism)를 접목시켰다.(Sham Amateurism/Shamateursim'사이비 아마추어'란 용어 탄생)
3. 반면에 올림픽에는 프로 아마를 총 망라하는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하게 되었다.
4. 이를 계기로 올림픽운동에 풍부한 재정적 연료(financial fuel)도 확보하였다.
5. IOC를 재정적 파산상태에서 부자기관으로 탈바꿈 시켰다.
6. 올림픽마케팅 및 TV중계권 수익금을 205개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국제연맹(IF)에 재 배분하였다.
7. 올림픽솔리다리티(Olympic Solidarity)를 통한 개발도상국 선수, 코치 및 행정가 등 훈련 및 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였다.
8. 각국 NOC재정지원으로 올림픽에 지구 촌 모든 나라가 100%참가토록 제도적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9. 여성참여지분(20%)을 높혔다.(1980년대부터 여성 IOC위원 선출하여 현재 17명의 여성IOC위원 활동 중)
10. 스포츠중재재판소(CAS: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설치 및 가동에 견인차역할을 하였다.
11. IOC 선수위원회를 신설하여 선수들이 IOC정책결정과정에 참여케 하였다. 
12. 올림픽박물관 건립기금모금에 견인차역할을 하였다.

   (고 박세직 SLOOC위원장이 올림픽박물관 건립기금을 Beitz독일 IOC부위원장/중앙에게 전달/우측이 사마란치 위원장)

13. 올림픽박물관초대 이사장으로 또한 IOC올림픽수집가 분과위원장으로 올림픽운동확산에 기여하였다.
14.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을 수습하고 광범위한 50개 항목 IOC개혁안을 마련하였다.(IOC위원들의 올림픽유치도시 방문금지조항 등)
15. IOC본부건물 신축 및 현대화를 이룩하였다.
16.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 역사상 최초의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을 성사시켰다.
17.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되도록 파격적이고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18. IOC위원자격을 귀족/왕족 및 고위 정치경력자 이외에 선수, 여성, 스포츠행정가, 기업인, 코치,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로 보편화 시켰다.
19. 올림픽을 스포츠경기위주에서 문화행사뿐만 아니라 교육적 가치까지 포함하도록 제도화 하였다.
20. 올림픽보이코트를 종식시켰다.
21. 올림픽사상 최초로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각국 참가공식초청장을 IOC가 직접 발송하였다.

                             (좌로부터 박세직SLOOC위원장, 사마란치, 김종하 KOC위원장, 김운용 IOC위원/서울올림픽개최국인 대한민국선수단 참가공식초청장을 김종하KOC위원장이 제1호로 받았다./로잔 IOC본부 1987년)

22. 서울평화상 제1호수상자다.



사마란치IOC위원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보았다.

1. 그는 뛰어난 스포츠지도자였다.(sport leader)
2. 그는 탁월한 사업가였다.(businessman)
3. 그는 억척스런 스포츠 운영자였다.(sport organizer)
4. 그는 불세출의 회의진행 달인이었다.(perfect chairman)
5. 그는 광적인 수집가였다.(collector)
6. 그는  예술적 심미안을 가진 조직 설계자였다.(operation architect)
7. 그는 저명한 은행가(Caixa은행총재 역임)였다.(banker)
8. 그는 수완 좋은 기금조성자였다.(fund-raiser)
9. 그는 올림픽대회가 황금알 낳는 거위로 탈바꿈 시킨 만능 기획자였다.(all-round planner)
10. 그는 외교관이었다.(diplomat)
11. 그는 평화주의자였다.(pacifist)
12. 그는 설득력있는 협상전문가였다.(negotiator)
13. 그는 노력가였다.(industrious person)
14. 그는 평생운동가였다. (life-time sportsman)
15. 그는 다개 국어구사자였다.(multi-lingual)
16. 그는  세계최다국 여행전문가였다.(global traveller:205개국)
17. 그는 팔방미인이었다.(Jack of all trades)
18. 그는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인물이었다.(a great human-being)
19. 그는 20세기 세계최고 스포츠 지존이며 올림픽 대부였다.(20th century sport supremo and Olympic God Father)
20. 그는 영원불멸의 올림픽맨이었다.(immortal Olympic man)


(사마란치 IOC명예위원장 가장 최근 모습)

1999년 제109차 서울IOC총회를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KOC위원장 지휘하에 총괄 조직하면서 사마란치 IOC위원장 그리고 Zweifel IOC사무총장 등과의 첫 공식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1999년 제109차 IOC서울총회참석한 IOC위원들)



  (제109차 IOC서울총회준비상황보고)

2000-2001 사마란치 IOC위원장재직 마지막 2년 간 2008년 올림픽 마지막 IOC평가위원으로 그 분의 마지막 올림픽 운동 공식업무를 참여하는 영광을 부여 받았다.


(2008년 올림픽공식후보도시 5개 방문 중 3번째인 토론토 현지실사 중 뉴스레터)


                          (2008년 올림픽IOC평가위원회 최종공식보고서 작성완료 후 IOC본부에서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함께/가운데는 당시 Tommy Sithole 짐바브웨 IOC집행위원/현재는 IOC국제협력국장으로 변신)



(2008년 올림픽 IOC실사평가단 베이징 방문/좌로부터 Elizalde필리핀 IOC위원 겸 IOC위원후보추천위원장, Bubka IOC선수위원장 겸 집행위원, 필자 등)

2007년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시절 과테말라 IOC총회를 앞두고 바르셀로나로 날아가서 그분 집무실에서 사마란치IOC명예위원장과 단둘이 면담하는 자리에서 평창유치성공 방안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고 건강을 챙기시도록  한국특산 한방 영양제인 '공진단' 100알을 드렸다.

스포츠외교의 달인이신 그 분의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평생 헌신하신 그 분의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사무쳤다.
세계최고 스포츠지존의 기운이 그 분 얼굴과 말투에 서려있었다.
그 분의 다정다감함을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스포츠외교 대 선배로서의 그 분의 진지함과 심오함이 온 마음을 사로 잡았다.
헤어지기 전 손을 부여 잡으며 취해 주신 사진촬영 포즈는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그분을 표지모델로 한 최초의 스포츠외교 관련 영문책(When Sport meets the World Over the Five Rings)을 그 분 영전에 바친다.



"My dear colleagues, I know I am near the end of my time. May I ask you to consider granting my country the honor and also the duty to organize the Games and the Paraylmpic Games in 2016."
(IOC동지여러분, 이제 내 인생도 종착역이 가까워오고 있군요. 부탁컨테 내 나라 스페인(마드리드)에서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영광과 의무를 부여해 주도록 호소하는 바 입니다.)
<2009년 10월 코펜하겐 개최 제121차 IOC총회 2016년 올림픽개최도시 선정 투표 직전 후보도시 마드리드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서의 마지막 공식연설내용 중>

사마란치 위원장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아, 님은 떠나 갔지만 우리는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근 30년 간 사마란치 IOC위원장 고인을 올림픽운동 속에서 지켜보고, 존경하고, 방한 시 줄 곳 통역도 해 본 장본인으로서 느끼는 마음, 비통하고 슬프다.


(사마란치 IOC위원장 서울 방문후 공항 기자회견에 앞서)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영면하소서!




 

<故 사마란치 IOC 명예위원장 사망 1주기>

(외신보도내용)
 

- 4월 21일 목요일, 고 사마란치 IOC 명예위원장의 사망 1주기이다.


- 21년간 IOC 위원장을 지냈던 고 사마란치는 2001년 명예위원장으로 물러났으며, 은퇴 며칠 후 수주간 입원했었으며 사망하기 전 때때로 병원신세를 진 바 있다.


- 은퇴 이후에도 스페인 스포츠계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마드리드의 두 차례 2012, 2016 올림픽 비드에도 적극 참여한 바 있다. 


- 고 사마란치 명예위원장은 올림픽 무브먼트의 재정건전성을 개선한 데 큰 공로를 세운 인물로, 대회 방송권과 스폰서쉽을 발전시켰으며, IOC의 수익을 선수들의 훈련과 올림픽 참여를 위한 투자로 재분배하는 Olympic Solidarity 기관을 강화시켰다. 

Samaranch Anniversary


Thursday marks the one-year anniversary of the death of former IOC president Juan Antonio Samaranch.

Samaranch stepped down as IOC president in 2001 after 21 years in the post, retaining the title of IOC honorary life president. Just days after his retirement, he was hospitalized for several weeks and had occasional hospital stays up until his death.

Even after his retirement, heart problems rarely slowed the sports administrator from Spain. He was active in Madrid’s bids for both the 2012 and 2016 Olympics.

Samaranch was also the man behind improving the financial health of the Olympic Movement, developing TV rights and sponsorship negotiations and strengthening Olympic Solidarity, the organ by which the IOC redistributes its revenue in order to ensure the training and participation of athletes at the Olympic Games.

Check back Thursday for an interview with Samaranch’s son, IOC member Juan Antonio Jr.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