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122편(나의 스포츠외교인생 국제통 그리고 더블 밀리언 마일러 대한항공
Double Million Miler OST)]
필자는 벌써 40년 가까이 국제 스포츠 업무만 주로 전담해왔다.
필자는 늘 그랬듯이 24년간 올림픽 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 종합대회만 24번 다녀오는
동안 한국선수단 사전조사단, 사전협의회의, 각국 선수단장
회의, DRM(Delegation Registration Meeting: 각국 선수단 도착 직전에 해당
선수단장 또는 지명자가 대회 조직위와 종목별 참가선수 엔트리 확정, ID 카드 최종 분류 및 확인, 숙박 세부사항 및 차량 등 수송 관련 배정 확인 및 인수, 선수촌
방 배정 및 열쇠 인수, 각 선수단 배정, 현지 보조요원
명단에 따른 사전 면접 및 상견례, 선수단 NOC 사무실/의무실/창고 등 배정 및 확보에 따른 세부 점검 사항 확인, 선수단 본단 및 후속 도착팀 현지 공항과 선수촌 간의 수송과 사격, 펜싱, 양궁, 근대 오종, 바이어슬론
선수들의 총기 및 활 등 무기로 분류되는 장비 반입에 따른 수속과 보관 절차 및 안전 관리 세부사항 사전 조치,
종목별 연습 일정 배정 및 해당 수송 계획 사전 확인, ID 카드 카테고리 별 출입 가능지역
코드 추가 확보, 선수 수에 비례한 등급 상향(up-grade) ID
카드 사전 인수, 선수단 추가 임대 차량에 대한 주차증 확보 등을 조직위 해당 부서와 사전에
일일이 확인 절차를 거쳐 최종 마무리하는 장시간의 종합 점검 협의회의) IOC 집행위와 참가국 선수단장
연석회의 등 한국 선수단의 대회 참가와 관련된 국제회의란 회의는 단 1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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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수단 국제종합대회파견
실무업무까지 취급하다 보니 시시콜콜 하지만, 현장에서는 모두 다 챙겨야 하고 챙기지 않으면 언젠가 불편하게
느껴질 사항을 평소에 메모해서 회의 성격에 걸맞는 항목별 질문 점검표(check-list)를 평소에
작성하곤 하였다.
해당 점검 표(Check-list) 내용이 숙지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해당 대회 조직위나 회의 주최 측에서 설명하는 포인트를
듣고 나면 왜 그렇게 질문하고 건의하고 따져봐야 하는 사항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 필자도 신기할 정도로 많아 마치 신들린 사람 마냥 질문 공세를
했다기 보다 퍼대곤 했다.
물론, 너무 많은 발언을 하다 보면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는 법이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는 법. 더구나, 배포한 매뉴얼
등을 분야별로 페이지마다 사전에 미리 체크하고 메모해서 역대 대회의 경험과 비교해서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과 애매모호하고(ambiguous) 어색한(awkward and clumsy) 부분들을
족집게처럼 집어내어 수준급 질문거리를 당당하고 권위 있게 때로는 유머를 섞고 엮어서 영어면 영어로, 불어면
불어로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신출귀몰(sudden appearance and disappearance)하게
풀어서 발언해 대니 웬만한 사전지식과 경험과 노련미 없는 답변자들은 백발백중 쩔쩔매다가 두루뭉술 넘어가든지, 확인해서
다음날 대답한다고 미루든지 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회의 참가가
즐겁고 보람찼다. 새벽 회의나 밤중까지 이어지는 회의도 마다하지 않았다. 회의라는 바다에 푹 빠져 「회의벌레」가 된 것 같았다. 「국제회의통」, 「총회꾼」으로 탈바꿈했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자연 각국 회의대표나 회의에 참석한 각국 선수단장은 당연히 필자를 진짜 한국 선수단장 아니면 KOC 사무총장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ANOC 총회, OCA 총회, EAGA 총회,
IOC 집행위 연석회의 등에서도 “게 버릇 남주나?” 식이었다. 때로는 IOC 해당 국장들을 곤란하게 하는 성격의 질문을 해대고
나면 회의가 끝나고 약간의 변명 성 항의를 받기도 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D93F455F77C5E00E)
(IOC 올림픽 관련 최고 실력가로 평가 받는 Gilbert
Felli IOC올림픽대회 수석국장과 필자)
불필요한 적을 1명 만드는 것은 아군 10명을 만드는 것보다 유익하지 못하다는 진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대회
기간 중에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부터 단장 회의가 있곤 했는데, 대회 기간 중에 특히 한국 선수단 본부임원(체육회 직원들)들은 새벽 1, 2시까지
담당업무를 매일같이 처리하다 보니 필자가 아침 단장 회의에 같이 가자고 하면 피곤한 나머지 모두 꺼리는 눈치였다.
필자도 사람인데 왜 피곤하지
않겠냐 마는 일일 단장 회의에서 건의 및 문의할 사항도 많고 전 세계에서 참석한 각국 선수단장들과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 친목도 다지고 정보 교환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니 「신선놀음」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오버하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이
모든 이야기는 실화이며 사실이고 실제로 기록도 있고 전 세계 역대 각국 선수 단장들 및 회의 대표들이 다 산증인들이다.
이러한 필자의 끈질김, 끈덕짐, 집요함, 철두철미함, 대담함, 거침없음, 유머스러움, 깐깐함 등이 어우러지다 보니 필자를 못마땅하게 보는 일부 한국인들이 진짜 내막도 모르면서 겉으로만 보면 필자의
언행이 나서기 좋아하고, 설치고, 잘난 척하고, 천방지축 겁없이 굴고, 이기적이고,
함부로 말하는 것으로 나쁘게 보고는 필자를 폄하하고, 비난하고, 헐뜯고 때로는 중상모략, 모함 등 여러 가지 어처구니없는 누명이
필자에게 덮어 쓰이곤 하는 바람에 마음 고생이 심한 기억이 떠 오른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8B64485F77C6370D)
하지만 그때마다 필자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선수단이 해결 못 하는 ID 카드 추가 발급, 임대차량
주차증(VAPPS: Vehicle Access Parking Permits) 추가 확보, 선수단 숙소 명당 위치 배치, 각종 추가 혜택 등 눈에 띄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물리적으로 보여주고 나면 없었던 일로 덮어지곤 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DE194C5F77C6910D)
그런 가운데 필자는 그런 모함
꾼들의 간사한 모략을 100% 다 피할 수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경우도 왕왕 있었고, 그런 여파로 필자는 결국 22년간 몸담았던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제담당사무차장(1급)을 끝으로 2004년 4월1일부로 졸업(명예퇴직)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 후 국제 스포츠 외교 연구원(International Sports
Diplomacy Institute)를 설립하고, 22년간 국제 스포츠 외교 현장에서 피
눈물 나도록, 억척스럽게, 수집하여 소장 전시한 개인 스포츠
박물관(평산 스포츠 박물관: 경기도 양평 국수리 소재/2004~2015)도 개장하고, 매일 아침 3시간 동안 전 세계 외신 기사 등을 발췌, 번역한 후 필요한 설명과
분석을 추가하여 다듬은 다음 국제 스포츠 동향이란 제목으로 원하는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대가 없이 무료로
e-mail을 전송하는 등 국제 스포츠 외교 관련 업무를 계속해왔다.
개인 1명이 아무리 방어를 잘해도 여러 명으로부터 계속 모함과 질시와 질투를 받게 되면 결국에는 견디기 힘든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 와중에 몽골에선 필자에게 바가반디(Bagabandi)
몽골 대통령 등 저명인사들이 운집한 가운데 울란바토르로 초청해서 명예박사학위도 수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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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좌-1에 Bagabandi 몽골대통령, 좌-2에
후임대통령인 Nambar Enkabayar 몽골대통령과
Ulanbataar개최 몽골 스포츠행사 시 배려해준 옆자리에서 함께)
게다가 몽골 NOC 위원 겸 국제 관계 자문역이란 직위도 부여해주고, 2004년 2월 아테네 개최 ANOC 총회에 각국에 2명씩만 주어지는 몽골국가회의 대표 자격도 정식으로 부여해 주기도 하였다.
유병진 관동대학교 전총장은
필자를 관동대학교 겸임 교수로 임명해 주시고,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필자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도 필자의 박물관 활동 등에 전폭적 지지(You have my full
support)를 보낸다는 공문까지 보내주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회에 IOC 위원장 특별 게스트로 정식 초청하여 VIP ID 카드(Gi) 차량 및 각종 의전 혜택까지 고루 배려해주어, 대회기간 내내 100여 명 이상의 IOC 위원들과 지속적으로 친분을 나눌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그동안 오랫동안
활동에 동참해왔던 많은 IOC 위원들, 국제연맹 회장들, 각국 NOC 위원장 및 사무총장들 등이 격려와 축하 메시지를 필자에게
보내주는 등 눈물겨운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어떤 국제연맹 회장은 국제연맹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도 해왔고, 심지어 북한의 장웅 IOC 위원
등은 필자가 북쪽에 있었으면 NOC 부위원장 겸 서기장(사무총장)도 떼 놓은 당상일 텐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함께 걱정해주기도 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FF5E495F77C74D0F)
(북한 장웅 IOC위원<2019년부터 IOC명예위원>과
함께)
또한, 올림픽 대회 및 국제행사에서 필자의 활약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었던 국내 일간지 스포츠 기자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필자에 대한 인터뷰 기사 등을 기꺼이 실어주면서 꽤 많은 지면을 여러 차례 할애해 주었다. 2004년 12월21일에는 2004년
체육기자의 밤 겸 이길용 체육 기자상 시상식에서 필자가 22년간 스포츠 외교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체육의 위상을 드높인 스포츠 외교관으로서의 공헌을 인정하는 한국체육기자연맹(KSPU: 박건만 회장/박광재 사무총장) 공로패를 주었으며 박갑철 ASPU 회장 겸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께서도 공로패를 수여해 주었다. 모두
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더욱더 분발하라는 격려와 채찍으로
알고 대한민국의 위상과 스포츠 외교력 증진을 위해 더욱 매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비록 2010년 동계올림픽 대회 유치 경쟁에서 국제적으로 무명이었던 강원도의 평창이
1차전에서 세계적 강호인 캐나다의 밴쿠버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통쾌하게 물리쳤으나(51:40:16)
과반수에 2표가 모자라 결국 2차전 결선에서
아깝게도 3표 차이(56:53)로 석패한 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는 대외 공동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으로 유치 활동 차 2002년 말부터 2003년 7월까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그 덕분에 지난 2003년 5월1일부로
대한항공 밀리언마일러 클럽(Million Miler Club: MMC)에 영광스럽게 등재되어 VIP 대우를 받아 오고 있으며, 대한항공 기내 잡지에도 인터뷰 기사가
실리는 등 그야말로 명실공히 확실한 「국제통」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ABD74E5F77C7990F)
이후 계속되는 평창동계올림픽유치활동과
스포츠외교활동 결과 2010년 무렵에는 대한항공 탑승 누적거리 합산 200만
마일을 달성하여 Double Million Miler가 되기도 하였다.
필자는 1982년 9월1일부로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 국제부에 처음 입사해서 2004년 4월1일까지 22년간 국제
업무만 줄곧 해왔다.
1982년 11월2일부터 12월6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9회 아시아 경기대회(The 9th New Delhi
Asian Games) 한국 선수단 선발대 및 국제 섭외임원으로 시작한 국제 종합 대회 참가가 이듬해인 1983년 2월11일부터 3월2일까지 당시 동유럽 공산국이었던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렸던 1983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83 Winter Universiad)에 한국 선수단 국제 섭외 및 경기 임원으로 이어졌고 또 다음해인 1984년 7월7일부터 8월16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23회 올림픽 대회(The Games of the 23rd
Olympiad LA 1984) 한국 선수단 선발대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으로 연결되었고 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에는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Olympic Council of Asia) 한국 측 회의 대표 자격으로 국제 외교 업무를 수행하였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대회(KOC 위원장 동반자
자격으로 국제 외교업무 수행), 1988 서울올림픽 대회(KOC 위원장
동반자 자격으로 국제외교 업무 수행),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섭외 임원겸 선수단장대행),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겸 선수단장대행),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2000년 시드니 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한국 선수단 선발대장 겸 국제 섭외 임원 겸 선수단장대행) 등 입사 이래 올림픽만 10개 대회에 스포츠 외교 전담 최전방 공격수로서
참가하였던 바 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아 경기대회를 비롯하여 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 1990년 제2회 삿포로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 경기대회, 1998년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 공동사무총장 자격으로 유치 활동) 시에도
같은 자격에 같은 업무를 수행하였다.
1999년 강원도에서 개최된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에는 대회 조직위 국제 자문역으로 참가국 선수단 단장회의를
주재하였고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시에는 한국 선수단 선발 대장 겸 국제섭외 임원 역할과 동시에 OCA 아시안게임 수석조정관(OCA Asian Games Chief
Coordinator: OCA 집행위원)으로서도 활동하였다.
또한, 1983년 소피아 동계 유니버시아드, 1987년 체코의 스트르브스키
플레소 동계 유니버시아드, 1987년 유고의 자그레브 하계 유니버시아드, 1995년 후쿠오카 하계 유니버시아드 등에도 참가하는 등 22년간
국제 종합대회만 24개 대회에서 국제외교 및 섭외와 관련된 각종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니 국제 업무에
관한 한 눈이 크게 뜨이고 귀가 활짝 열리고, 전공인 영어, 불어를
제외하고도 지구촌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외국어도 어느덧 7, 8개 국어를 어느 정도 뇌까릴
정도로 「국제통」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모든 기회를 부여해 주신 조국 대한민국과 스포츠 계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그뿐이랴, IOC총회, ANOC총회,
GAISF총회, OCA총회, AIPS총회, ASPU총회, 올림픽 콩그레스(Olympic
Congress), IOA(International Olympic Academy) 정규연수회,
EAGA(East Asian Games Association: 동아시아 대회 협의회) 총회, IOC 심포지엄, 세미나, 스키, 바이애슬론, 아이스하키, 레슬링, 배드민턴, 럭비 등 종목별 국제 및 아시아연맹총회, 각국 참가 선수단 단장 회의, 국제 스포츠 워크숍, IOC 실무협의회의, 전 세계 올림픽 박물관장회의, 올림픽 솔리다리티 세미나 등 각종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그야말로 종횡무진 활약하였다.
한국에서 개최한 각종 국제대회, 국제회의(1999년 IOC 서울
총회 조직 및 운영 총괄), 국제행사 등에 의전 담당하랴 통역하랴, 책자
만들랴, 발로 뛰고 엎어지기도 하고, 이리저리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국내외 다양한 직종, 직급, 직함의 사람들도 많이 접하다
보니, 나름대로 감도 잡히고, 틀도 잡히고, 노하우(KNOW-HOW)도 자리 잡히는 가운데 많은 IOC 위원들과 국제연맹 회장들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인맥(human
networking)도 쌓이게 되었다.
필자 인생의 마지막 스포츠외교
여정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 및 개최를 위해 그 동안 쌓은 국제스포츠 게 인맥과 노하우를 최대한 동원하고 발휘하여 2032년
한반도 올림픽 개최가 대한민국 스포츠외교의 최고의 결실이자 화룡점정이 되도록 헌신하기를 하나님께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