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20. 4. 15. 10:16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12편(Athens2004올림픽현지스포츠외교비화)]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이 부활되고 첫 대회가 개최된 이래 118년 만에 최초 개최지로의 귀환이어서 대회 슬로건이 'Welcome home(귀향 환영)' /' From Athens to Athens(아테네에서 아테네로)였다.

 

 

스포츠 외교는 단순히 올림픽 대회 및 국제스포츠기구총회 유치나 국제기구 임원피선을 위한 로비활동에만 국한되어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회(2004 813~829)에 자크 로게(Jacques Rogge) IOC 위원장의 특별 게스트(IOC Distinguished guest)자격으로 정식 초청받아 힐튼 호텔에 설치된 IOC 본부 호텔에 체류하면서 VIP ID 카드(Gi)를 발급받고, 차량도 신청만 하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혜택(T3)을 누리면서 IOC 총회 및 올림픽 대회 기간 동안 지속적인 한국스포츠외교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IOC 본부 호텔에 숙박하다 보니 매일 IOC 위원장을 포함한 전 세계 IOC 위원들, 국제경기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s :IFs)회장들, 전 세계 스포츠 지도자들과 번갈아 가면서 만나고 자연스럽게 조찬도 같이 하고, 경기장도 같이 가고,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늦은 저녁 무렵에는 칵테일도 한잔하면서 각종 정보와 근황 및 동향에 대하여 귀중하고도 신빙성 있는 교감을 갖는 기회를 많이 맞이하게 되었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여 ID 카드 발급을 위하여 IOC 본부 호텔인 아테네 힐튼호텔에 가보니 테러경계태세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IOC 위원장 초청장 사본을 보여 주고 나서야 힐튼호텔 뒤편 지하 1층에 위치한 등록 센터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ID 카드 발급을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 30분 후에 IOC 총회 개회식이 예정되어 있어, 그곳 책임자에게 IOC 위원장 초청장 서한을 제시하자 곧바로 IOC 위원장 집무실 책임자에게 확인하더니 IOC 총회 개회식에서 IOC 위원장이 필자를 기다린다는 전갈이 왔다고 했다.

 

 

통상적으로는 인터폴(Interpol) 등에 문의하는 등 안전 확인절차를 위해서 최소 3일 간의 대기시간이 소요되지만 예외 경우(exceptional case)로 분류하여 10여 분만에 그야말로 초고속 수속절차를 거쳐 그것도 애초 배정예정카드보다 격상된(upgraded: IOC 위원장의 특별 지시라고 함) Gi’ 카테고리(IOC 특별 게스트)로 발급받게 되었다.

 

 

 

아무튼 서둘러 힐튼호텔 건너편에 위치한 IOC 총회 개회식장으로 향했다.

 

IOC 위원들조차도 정식초청장을 지참하여야 출입이 가능했으나 Athens2004조직위원회 의전요원에게 IOC 위원장 초청장 서한을 보여 주자 워키토키(Walkie Talkie)로 누군가와의 교신을 한 후, 필자를 직접 에스코트(escort)까지 하면서 총회 개회식장 2층 좌석으로 안내했다.

 

마침 올림픽찬가(Olympic Hymn)가 울려 퍼지면서, 개회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주최국 그리스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부요인들과 IOC 위원들, 및 국제 스포츠 계 거물들이 모두 총 집결되어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세계 스포츠정상회담”(World Sports Summit)장을 방불케 하였다.

개회식 직후 베풀어진 리셉션(Reception) 장에서 많은 IOC 위원들과의 해후가 이루어졌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은 큰 키에 국제매너가 세련된 북한의 국제 스포츠외교통이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Athens2004올림픽 당시 장웅 북한 IOC위원과 함께)

 

 

 

그 사이 Jacques Rogge IOC 위원장이 리셉션 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 필자가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되었다.

 

 

 

(Jacques Rogge IOC위원장과 함께/Torino2006동계올림픽 당시)

 

 

 

"Mr. President, thank you most awfully for your kind invitation and for upgrading my accreditation!"(위원장님, 초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본인 ID 카드를 VIP급으로 격상시켜주신 배려에 정말 감사 드립니다.)

 

필자가 이렇게 말을 건네자, IOC 위원장은 간단하게 한마디로 압축해서 응답하였다.

Rocky, you are always our friend!"(로키, 귀하는 늘 우리의 동지일세!)

 

<양태영 체조 금메달 받을 수도 있었을 현장 스포츠외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 중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체조의 양태영 선수 금메달 유감 사건이었다.

 

필자는 당시 로게 IOC 위원장 특별 게스트 자격으로 초청받아 IOC 위원들 및 그들 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한국 선수단과는 무관한 신분이었던 관계로 직접 개입은 불가능했다.

 

 

마침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던 구소련(러시아) 출신 유리 티토프(Yuri Titov) 전 국제체조연맹(FIG) 회장(20여 년간 장기집권) 겸 前 IOC위원과 만나 서울올림픽 당시 즐거웠던 회고담 등을 나눈 다음날 「양태영 선수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IOC 본부 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필자와 Titov 前 회장은 조찬장에서 다시 조우했다.

 

 

Titov FIG회장 겸 前 IOCC위원은 필자에게 해줄 말이 있다며 조찬 장 한쪽 구석으로 가서 “양태영 선수의 금메달을 찾을 수 있으니, 내가 말해주는 방법을 시도해봐라.”고 조언해 주었다.

 

 

 

(4년 뒤인 2008 Beijing올림픽에서 재회한 Yuri Titov 전임 FIG회장)

 

 

 

2004년 당시 “국제체조연맹(FIG) 규정에는 ‘심판 판정 결과 번복 불가’란 항목이 수년 전부터 삭제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번복이 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 “우선 IOC FIG를 국제적으로 흔들어 놔야 한다. 그러려면 내일 당사자인 미국의 폴 햄(Paul Hamm) 선수의 시합이 있으니 관중석에서 한국 측 응원단이 금메달을 돌려 달라(Return Gold Medal to Korea!)는 현수막을 들고 흔들어대면 전 세계 TV 및 취재 보도진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되고, 그리하면 외신 기사로 다루어지게 될 것이며, 그러면 IOC FIG는 아테네 올림픽의 공정성과 대회 개최의 성공을 위해 타협점을 찾게 될 것이므로, 양태영 선수 금메달 건에 힘을 받게 되어 금메달을 되돌려 받든지 추가 금메달을 받든지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미국 비자 신청 시 문제점이 생길지 모르니 본인의 이름은 거명하지 말아달라고 필자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탁하면서 그야말로 위험을 무릅쓴 자문을 해 주었다.

 

필자는 KOC 관계자가 아닌 관계로 이러한 전략을 IOC 본부 호텔에서 만난 KOC 고위 임원을 통해 KOC 위원장 및 한국 선수단장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에 따른 후속 조치는 시의 적절하게 취해지지 않았다.

 

필자가 생각건대, 관중석에서 한국 응원단이 자발적으로 하는 평화적인 시위행위는 KOC도 한국선수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밑져야 본전」이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하는가 보다.

 

 

 

(좌로부터 Athens2004남자체조 개인종합 은메달리스트 김대은 선수, 떳떳하지 못한 표정의 Paul Hamm미국 금메달리스트, 양태영 동메달리스트)

 

 

 

 

그 이후 내외신 기자들이 양태영 금메달 사건을 연일 앞다투어 보도하고, 한국 내 여론도 네티즌을 중심으로 「양태영 금메달 되찾기」 쪽으로 가열되자, 대책회의를 열고 값비싼 수임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한국 내 유수한 법률사무소(Law Firm)를 경유하여 영국 법률사무소소속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고 스포츠 중재재판소에 정식으로 제소했다.

그러나 IOC 스포츠 중재재판소(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s)에 제소했던 양태영 선수 금메달 되찾기 소송은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억울하지만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리라.

 

이제부터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Locking the stable door after the horse is stolen)를 해야 한다고 지면을 통해 자문하기도 하였다

그래야 Beijing2008을 포함한 향후 올림픽 등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 제2, 3의 양태영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 향후 이러한 억울한 경우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처방은 뭐가 있고 어떻게 하면 될까? 

필자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고 쉬운 대비책을 제시하고 간접적으로 자문한 바 있었다.

 

유창한 영어나 불어도 필요 없다.

 

각 해당국제연맹(IFs)종목별 규정 집을 보면 판정 결과가 틀렸다고 판단될 경우 소청(appeal)할 수 있는 규정과 함께 각 연맹 별 영문 소청 양식이 별도로 구비되어 있다.

 

회원국 연맹은 누구라도 이러한 영문 소청 양식 사본을 얼마든지 사전에 취득, 지참할 수 있다.

 

국제연맹마다 소청 양식이 약간씩 다르겠지만 소청 신청 금(대개 20불미만)과 함께 소청 양식에 해당 종목과 해당 경기 참가 선수 명, 코치 명 및 서명, 그리고 날짜를 기입 필 한 후 해당 종목 경기장에서 그냥 감독관에게 제출하면 된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2부씩 영어로 무조건 경기 시작 전에 해당 종목과 관련된 소청 양식을 사전 대비용으로 작성해 가지고 몸에 지니고 있다가 소청의 경우가 발생할 경우 미리 작성 준비된 소청 양식 1부를 그 자리에서 제출하고 나머지 1부에는 제출 받은 감독관의 접수확인 서명 등을 받아 지참하고 있으면, 모든 소청 절차가 끝나게 되고 상응하는 결과를 떳떳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양태영 선수의 경우도, 만일 이러한 사전 준비가 있었더라면, 손쉽고 당당하게 점수가 수정되고, 당연히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나간 일에 대하여 누구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생산적이 아니다.

 

양태영 금메달 유감 사건을 거울삼아 앞으로는 이러한 눈뜨고 코 베이는 억울한 사태는 유비무환 정신으로 철저히 대비해 나가기를 소망한다.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IOC위원)겸 당시 대한카누협회 회장 현지 스포츠외교지원 실화실록>

 

당시 Jacques Rogge IOC위원장 특별 게스트(Gi) 자격으로 초청받아 AD카드를 비롯하여 공식차량서비스를 포함 Athens2004올림픽 IOC위원 전용본부호텔인 아테네 힐튼호텔에서 준 IOC위원 대우를 받아가며 체제하면서 IOC위원들과 날마다 스포츠외교활동을 전개할 시절이었다.

 

 

대회 기간 어느 날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를 역임한 최만립 당시 IANOS-APOSA국제생활체육연합회 회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요점은 아테네올림픽 한국대표선수단 임원으로 현지에 온 당신 이기흥 대한카누연맹회장에 대한 스포츠외교지원 요청이었다.

 

 

사연인 즉, 국제카누연맹(ICF: International Canoe Federation)회장 및 사무총장과 만나려고 이 메일과 전화통화 시도를 반복했지만 답신(feed-back)이 종무소식이니 이기흥회장이 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쾌히 승낙하고 이기흥회장이 필자투숙 힐튼호텔로 오면 즉시 만남을 주선하겠노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 당시 이기흥 대한카누협회장은 힐튼호텔로 방문하였으며 한국선수단 임원차량을 가지고 왔으므로 필자가 별도로 올림픽패밀리 배정차량을 요청할 필요가 없어 이회장 차량으로 즉시 올림픽 카누경기가 열리고 있는 카누경기장으로 향했다.

 

 

사전에 ICF회장 및 사무총장에게 별도의 연락을 취하지 않은 까닭은 올림픽 기간 중 그들의 핵심일상업무가 올림픽카누종목 경기운영 총괄지휘감독이기 때문에 그들은 무조건 카누경기장 임원실에 상주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ICF회장 및 사무총장은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GAISF(Global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Federations: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회장시절 항상 보좌했던 필자를 카누경기장 임원실로 이기흥회장과 함께 들어서자 먼저 필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좌로부터 Jose Perurena Lopez 당시 ICF사무총장, 이기흥 당시 대한카누협회회장/현 대한체육회장 겸 IOC위원, 당시 독일출신 ICF회장, 필자)

 

 

 

필자는 이기흥회장을 이들에게 소개하면서 돈독한 협조관계유치를 요청하였으며 Athens2004올림픽 직후인 2004년 가을에 한국에 초청토록 이기흥회장에게 제안하도록 자문하고 통역도 겸하였다.

 

 

대한카누협회입장으로는 국제연맹회장 및 사무총장이 방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카누 스포츠외교에 도움이 되는 프리미엄 급 국제스포츠외교활동이 되기 때문이었다.

 

ICF회장 및 사무총장에 대한 방한초청이 이루어졌지만 이회장은 필자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대한수영연맹회장이 되었다가 2017 2월 대한체육회장이 되었고 2019년에는 NOC자격 IOC위원이 되어 있었다.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회장은 필자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당시 ICF회장은 독일 출신이었으며 사무총장은 스페인 출신 Jose Perurena Lopez(1945.4.4일생)였는데 동 사무총장은 뒤이어 ICF후임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0년 뒤인 2011 IOC위원이 되어 4년 뒤 2015년에는 70 IOC위원정년에 이르렀지만 2014년 국제월드게임협회(IWGA: International World Games Association)회장에 당선됨으로 2015년 올림픽헌장 신 규정(Olympic Agenda2020)에 힘 입어 Thomas Bach IOC위원장의 후광으로 IOC위원임기가 4년 연장되었다.

 

 

그는 2019 IOC위원임기는 끝내지만 ICF IWGA회장 직은 유지하고 있다.

 

 

 

(좌로부터 Jose Perurena Lopez ICF IWGA회장 겸 스페인 IOC위원, 필자, Mariso Casado 국제트라이애슬론 연맹회장 겸 스페인 IOC위원)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4. 14. 09:49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11(올림픽표어Motto Upgrade제안과 올림픽신조(Olympic Creed) 및 오륜기Olympic Flag)]

 

1. 올림픽 표어(Olympic Motto) Upgrade제안 이야기

 

 

필자는 2006 4 27~29일 대명 홍천 비발디파크에서 개최된 KOC 주최 제18기 올림픽아카데미 정규과정이 있었다.

 

당시 홍양자 KOC 부위원장 겸 KOC 올림픽아카데미위원회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첫날 한승수 2014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강연1연사: 동계올림픽과 지역사회발전) 및 장주호 한국올림픽아카데미 회장(강연2연사: 올림피즘 교육)에 이어 강연3연사/발표자로서 참여한 바 있었다

 

필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략과 국제스포츠외교에 대하여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겸 2014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자격으로 강연을 하고 돌아왔다.

 

당시 18년째를 맞이한 KOC 올림픽아카데미 정규과정은 당시 김정길 KOC위원장이 축사내용에 소개한 대로 올림픽이 그 동안 사회, 문화, 교육, 철학 등 전 분야에 걸쳐 얼마나 인류발전에 기여해 왔는가를 강의와 토론을 통해 재조명하는 뜻 깊은 올림픽운동이론 및 현장교육 그리고 고찰시간을 갖게 하는 유익한 행사이기도 했다.

 

필자는 1986년 그리스, 올림피아(고대 올림픽발상지: 올림픽성화가 점화되는 곳)에서 개최된 국제올림픽아카데미(IOA) 5명으로 구성된 한국대표단장 격으로 참가하여 전 세계에서 모인 젊은 올림픽 학도들과 2주간 걸친 올림픽운동의 지혜와 국제친선토론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고 체험한 바 있다.

 

필자는 2014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당위성과 2010 유치 당시 비화 등 알려지지 않았던 따끈따끈한 현장이야기를 비롯하여 2007 7 4일 제119 IOC 총회에서 평창의 성공적 동계올림픽 유치를 달성키 위한 「과테말라 대첩」필승 전략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근대올림픽역사에 대하여 간략한 요약형식으로 되짚고 총괄적으로 재조명하는 유익한 시간을, 전국에서 참가 등록한 130명의 수강생(체육전공 대학생, 대학원생, 체육교사, 가맹경기단체 실무직원 등)들과 함께 나누기도 했다.

 

근대올림픽을 부활시킨 주역인 쿠베르탱 남작이 주창하여 Faster or Swifter, Higher, Stronger<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힘차게>)에 대한 필자의 생생한 스포츠외교현장 체험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2002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개최 ANOC(국가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 총회에 KOC 공식 회의대표 자격으로 참가하여 총회 4일째 IOC 집행위원회와의 연석회의(Joint Meeting Between IOC EB and NOCs) , 2001년도에 새로 선출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부여 받은 필자가 올림픽표어에 대하여 질문 겸 건의발언을 하였다.

 

필자의 건의내용은 기존 "Citius, Altius, Fortius"는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올림픽(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대회 정식종목은 육상, 사이클, 펜싱, 체조, 사격, 수영, 테니스, 역도, 레슬링 등 9개였음) 6회 대회인 1924년 파리올림픽 당시 처음 도입하여 사용되어 왔으나, 스포츠의 진화(evolution)와 올림픽정식종목의 다양화 및 다변화에 따라 올림픽표어 내용도 상응하는 조율(Fine-Tuning)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고 전제하였다.

 

이에 대한 예시 설명으로서 정교함, 정확성, 생동감이 부각되어 우승자를 가리는 사격이나 양궁, 피겨스케이팅 그리고 리듬체조 등에 “Citius, Altius, Fortius”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올림픽표어가 지향하는 메시지와 부합되지 않고 있음을 우선 적시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표어는 살리되, 새로운 올림픽표어의 출현이 보완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하자, 당시 Jacques Rogge IOC 위원장은 필자의 새로운 올림픽표어 내용을 제시하지 않겠느냐고 자못 궁금해했다.

필자는 평소 생각해 왔던 ‘V .I. P.’론을 꺼냈다: 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보다 명확하게, 보다 인상 깊게, 보다 정교하게)

 

이 새로운 올림픽표어()를 경청하고 난 뒤 Rogge IOC 위원장은 “귀하가 이 새로운 안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IOC는 검토할 용의가 있노라”(Unless you claim any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the IOC will consider it)고 답변한 바 있다.

 

 

 

 

 

동 회의가 모두 끝난 후 故 Mario Vazquez Rana ANOC 회장은 필자에게  Courbertin in the 21st Century(21세기 쿠베르탱)”이 탄생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는 요지의 현장이야기를 포함한, 제한된 시간에 여러 가지 스포츠외교 현장이야기 겸 강의를 끝내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게 되었다.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멕시코시티 집무실에서 함께)

 

 

수강생들의 수준 높은 질문이 서너 차례 있었고, 시간이 이미 초과한 필자의 강연을 마무리할 시점에서 수강생 자격으로 강연을 청취하던 모 대학의 저명한 교수 한 분이 끝으로 질문을 추가하였는데, 그분은 자신이 교육자로서 그릇된 지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도저히 교육적 양심상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서 그 진실을 밝히겠노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 내용인즉 “Citius, Altius, Fortius”가 단순히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라는 경기 중 경쟁적 특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서 「두뇌의 보다 빠른 회전으로 인한 지적 능력 향상, 보다 높은 이상을 갖게 되는 덕성함양, 그리고 보다 강건한 체력 달성」이므로 이는 전인교육의 표상인 「지·덕·체」의 완성지향 표어라는 요지의 항변이 있었다.

 

강연자로서 강단에 섰던 필자로서는 지난 24년간 수많은 각종 스포츠관련 IOC등 국제회의, 세미나를 비롯하여 10개 동·하계올림픽대회 참가 및 현장경험과 지식축적과정 등을 통해 각인하고 인식하고 체험하고 습득했던 정통 올림픽 이론을 그분이 「지·덕·체」란 교육표어에 접목시켜 기발한 발상으로 새로운(?) 학설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바람에 정말 난감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논쟁을 벌일 상황은 아니어서, 그 학설도 일리가 있으나, IOC 위원장을 포함한 전 세계 스포츠지도자, 행정가, 교수들이 운집한 가운데 이루어졌던 필자의 V. I. P.론 관련 발언임을 고려할 때, “다소 다른 이론이지만 그 취지는 100% 이해하겠고, 또 다른 쿠베르탱이 계시는군요.”라고 하면서 역시 논어 수리 편에 나오는 「三人行必有師」라, 스승 역할 하시는 분이 반드시 계시기 마련입니다."라고 사태를 수습하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2. 올림픽신조(Olympic Creed) 이야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대회의 참가의의는 승리하는데 있지 않고 참가하는데 있다”라는 올림픽 신조(Olympic Creed)를 곧잘 인용하여, 대회 참가성적 결과에 관계없이 참가 그 자체를 미덕으로 삼는 예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올림픽헌장내용에 올림픽 신조(Olympic Creed)조항이 삭제되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올림픽 신조가 어떻게 도입되었었는지는 다음내용을 보면 근원과 취지를 알게 될 것이다.

 

Pierre de Coubertin got the idea for this phrase from a speech given by Bishop Ethelbert Talbot at a service for Olympic Champions during the 1908 London Olympic Games. The Olympic Creed read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 Olympic Games in not to win but to take part, just a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is not the triumph but the struggle. The essential in not to have conquered but to have fought well.(쿠베르탱 남작은 1908년 런던올림픽대회 시 올림픽 챔피언들을 위한 미사에서 Ethelbert Talbot 주교가 사용한 어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내용이다. 올림픽 신조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승리가 아니고 각고의 노력이듯이 올림픽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참가하는 것이다. 필수불가결한 사항은 정복하는 것보다는 잘 싸우는 것이다.)

 

The creed and motto are meant to spur the athletes to embrace the Olympic Spirit and perform to the best of their abilities. (신조와 표어는 선수들이 올림픽정신을 포용해서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박차를 가하는데 그 취지가 있는 것이다.)

 

올림픽모토인 “Citius, Altius, Fortius/Faster, Higher, Stronger/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와 필자가 자크 로게 IOC 위원장에게 2002년 콸라룸푸르 개최 ANOC 총회 시 새롭게 공식적으로 현 올림픽모토를 조율하는 차원에서 제안한 바 있는 “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보다 생동감 있게, 인상적으로, 정확/정교하게) V. I. P.」도 가까운 장래에 올림픽운동의 또 다른 표어로 활용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3. 오륜기(Olympic Flag) 이야기

 

 

평화 시 인류 최대 제전(The Greatest Festival of Mankind in Peacetime)인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Olympic Flag)는 이제 「지구촌 통합 깃발 / Unified Global Flag」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오륜기는 존재 가치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

만일 IOC를 세계 주식시장에 상장시킬 수 있다면 항시 최고 우량주식으로 증권계를 평정할 수 있을 만큼 최고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존재(Entity)임에는 틀림없다.

흰 바탕에 청----녹색의 5개 고리가 그려진 엠블럼(Emblem/휘장)이 아로새겨진 오륜기는 근대 올림픽의 부활, 창시자(Renovator)인 쿠베르탱 남작의 작품이다.

1914년 디자인되어 같은 해 파리에서 개최된 올림픽 콩그레스(Olympic Congress)에서 처음 제안되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경기장(Stadium)에 게양된 것은 1920Antwerp 올림픽 대회 때부터다.

공식 규격은 가로 3m×세로 2m이며 고리지름은 60cm이나 필요에 따라 축소 또는 확대되어 사용된다.

오륜기의 5색 고리가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지속하였다.

당연히 청색은 유럽대륙(Europe), 황색은 아시아 대륙(Asia), 흑색은 아프리카 대륙(Africa0, 홍색은 미주 대륙(America), 녹색은 대양 주(Oceania)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지만 IOC는 이를 인정치 아니하였다.

IOC가 최근 발간한 「올림픽대회에 관한 상식」책자에 의하면 5개 고리는 5대륙을 대표하고, 흰색을 포함한 6가지 색은 전 세계 국가 국기 색깔 중 1가지 이상의 색이 모두 공통으로 사용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같이 모든 국기에 가장 많이 포함된 5색은 「참여하는 올림픽」의 이상을 잘 대변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쿠베르탱 남작의 선견지명이었을까?

이 다섯 고리는 인류화합을 향한 지대한 기여는 물론 1970년 이후 전 세계 유명 기업들이 올림픽 마크를 부착하기 위해 천정부지의 후원금을 지불해가면서까지 IOC의 문을 노크할 만큼 지상 최고의 현대판 「도깨비 방망이」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4. 13. 08:52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10(스포츠외교와 스포츠영어)]

 

스포츠외교는 축약해서 「안면장사/Face Business」라고도 한다.

오랫동안 얼굴을 익히고 스킨쉽(friendly networking)을 통한 인간적 네트워킹 구축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지만, 이들과 「안면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외국어 구사 능력은 물론 국제스포츠 계에서 통할 수 있는 전형적인 스포츠 용어 및 스포츠 영어 표현 숙지도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스포츠 계에서 보다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스포츠 외교력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작은 밀알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자 「스포츠 영어」장르도 소개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그리고 「힘은 키우는 자만의 전유물」이기도 하. 힘을 길러야 한다. 체력(Physical Power), 지력(Intellectual Power), 인내력(Endurance Power), 예지력(Foreseeability/ Predictability), 직관력(Intuition) 모두 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힘」의 근원은 포용력(Tolerance)이 아닐까?

 

[스포츠 영어에 대하여]

 

스포츠(Sport)1980년대 3S(Sport, Screen, Sex) 중 하나로서 정부 주도하에 문화 레저적 가치에 그 중점을 두어 프로 스포츠란 장르를 통하여 일반대중 곁에 더 가까이 다가선 바 있다.

그러나 복잡·미묘·다단한 21세기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스포츠는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직접 참여하든, 관전하든, 응원하든 간에 그것 없이는 우리의 삶 자체가 무미건조해 질뿐만 아니라 생활이 영위되지 못할 정도로 물, 공기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웰빙(Well-Being) 3 요소(SAW: Sport, Air, Water)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생활가치창출의 핵심적인 기능과 장르를 점하고 있는 스포츠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아가 국제적 접근과 스포츠 외교적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더 원활히 전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스포츠 영어」분야를 별도로 분류하여 재조명하고자 한다.

 

(필자 최초의 영문 스포츠외교현장실록/Barcelona소재 Samaranch IOC위원장 집무실에서-본 저서는 2007년 전체 IOC위원들을 포함하여 국제연맹회장단 및 주요국가올림픽위원회위원장 사무총장들에게 송부/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발행)

 

「스포츠 영어」를 불편 없이 이해하고 구사하려면 다음범주의 내용을 우선 숙지해야 할 것이다:

1) 국제스포츠기구 명/약어

2) 스포츠용어/경기용어

3) 스포츠 적 표현

4) 국제스포츠 계 통용되는 고정 표현

5) 국제스포츠 언론에 자주 사용되고 인용되는 표현

6) 스포츠 언어(Sport language)가 일상용어(Everyday words)로 전환되어 사용되는 표현

7) 국제스포츠회의 및 대회 참가에 필요한 표현 등

 

[스포츠에서 파생되어 우리 일상생활에 즐겨 쓰이는 표현모음]

 

(1) Fair-play"

(공명정대함)

(2) The ball is in your court"(테니스)

(당신이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다음 차례는 너다)

(3) Get on the ball"(농구, 야구)

(방심하지 말지어다)

(4) Ball of fire"(야구)

(정력가/ 한 잔의 브랜디/급행열차)

(5) Carry the ball"(야구, 농구)

(책임을 지다/선수를 치다/주도권을 잡다)

(6) Catch the ball before the bound"(야구, 농구)

(선수를 치다/기선을 제압하다)

(7) Hit the ball"(야구)

(착착 진행하다)

(8) That's the way the ball bounces"

(인생이란 다 그런 거란다)

(9) That's not the game"

(그건 정당한 수법이 아니다)

(10) "The same old game"

(똑같은 수법)

(11) None of your little games"

(그런 수에는 안 넘어갈 걸)

(12) I wish I knew what his game is"

(그 작자의 속셈은 뭘까/무슨 꿍꿍이 수작인지 모르겠구먼)

(13) Called game"(야구)

(중단된 경기)

(14) Game and (set)"(테니스)

(게임세트)

(15) Here's the game"

(농담하고 있네. / 놀고 있네.)

(16) Play the game"

(훌륭히 행동하다)

(17) The game is up"

(만사 다 틀렸다)

(18) The game of war"

(전략/戰略)

(19) The game of politics"

(정략)

(20) That's the name of game"

(그게 핵심일세)

(21) A game of inches"

(막상막하)

(22) A ball park figure" ※ ball park: 야구장

(대강의 어림수)

ex) Give me a ball park figure.(대충 어느 정도인지 말해 보구려)

(23) Ball park"

(야구장)

(24) Strike-out"(야구)

(삼진, 실패)

(25) Three strikes-out"

(구제할 여지가 없이 종쳤다네)

 

스포츠 언어가 실생활영어에 접목되어 자주 쓰이는 표현들이 많이 눈에 띈다.

 

2007년 당시 필자가 매월 발간되는 「SportsOn」월간지 내에 고정 섹션인「English in sport」란에 2개월간 기고한 바 있는 유용한 영어표현을 소개할까 한다.

 

아무리 어휘력과 표현력이 뛰어나고 Hearing이 출중해도 해당 영어 표현어구에 담겨진 속 이야기를 모르면, 「영어 천하장사」가 되지 못하는 법이.

 

스포츠외교일꾼으로서 진정한 「영어의 달인」의 경지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표현들도 숙지해두어야 하며, 국제스포츠외교 활동 시에도 좋은 보약이 된다.

 

 

스포츠 영어

 

◎ A Hop, Skip, and a Jump (뛰어 봤자 벼룩이지/근처의/가까이에)

 

- 이 표현은 육상경기의「삼단 뛰기」에서 유래한 것으로써,「삼단 뛰기」는 이 세 가지의 연속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이 표현은, 따라서, 사람이 삼단도약 하여 뛰어보았자 얼마나 되겠냐는 의 미에서 우리 속담의「뛰어봐야 벼룩이다」와 일맥상통한다. 즉 「근처의」「가까이에」라는 뜻이 된다. 비슷한 표현으로는「A Hop, Step, and a Jump」도 있다

 

ex) My home is located just a hop, skip and a jump from his domicile.

(나의 집은 그의 거처 바로 인근에 위치한다)

 

ex) My friend John who turned 60 recently is only a hop, skip and a jump away from medicare.

(최근 60세가 된 내 친구 존은 얼마 안 있어 연로자 의료보장제도 혜택을 받게 된다.)

 

◎ Make a pass(작업을 걸다/ 꼬시다)

 

- 이 표현은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의 Pass와는 관계가 없다. 차라리 이 어구는 Romance sex의 영역에 속한다. 어떤 여자한테 마음이 끌린 남자, 특히 저돌적인 남자라면, 사랑의 표시를 하고 싶어한다. 운동경기에서 골인(Goal in)을 하려면, 우선 Pass해야 하듯(make a pass), 사랑의 골인(Goal in)에도 pass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래서「make a pass」라고 하면 점잖치 못한 투로「치근거리다」「작업을 걸다」「꼬시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ex) They have been dating for four weeks, but John has never even made a pass at her.

(4주 동안이나 사귀는 사이건만, 존은 그녀를 전혀 치근덕대거나, 작업에 들어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 Julie was really impressed that he never made a pass at her.

(줄리는 그 남자가 결코 수작을 걸지 않는다는 사실에 정말 감동을 받았다)

 

◎ Out in the left field(생뚱맞은/엉뚱한)

 

- left field는 야구용어로 「외야의 좌익: 좌익수의 수비위치」가 원래의 뜻인데, 이 표현은 「완전히 잘못 생각한, 전혀 오해하고 있는, 틀린」(completely mistaken/ wrong)따위를 의미하는 속어 표현으로 되었다. 즉 사상이나 생각 또는 의견 따위가 대부분 사람들의 상식적인 것과는 엉뚱하게 다르거나, 틀렸을 경우에 쓰는 표현이다.

 

ex) Don't listen to him, He's out in the left field.

(그놈 얘기는 듣지도 마쇼. 생뚱맞은 놈이니까)

 

ex) Is this proposition out in the left field?

(이 제안에 전혀 상식에 어긋난 엉뚱한 내용인가요?)

 

◎ Name of the Game(골자/핵심/실상)

 

- 어떤 말 많은 사람이 자기가 본 재미있는 운동경기에 대해 친구에게 얘기를 해주고 있었다. 한점차로 끝날 때 까지 열전만도 다섯 차례였으며, 써브는 단연 자기가 응원하던 팀이 우세하였고 속공에선 상대팀이 다소 우세했다고 하였다. 상대팀 선수중 하나는 키가 작은데도 날렵 하더라는 등 경기 외적인 면까지 자세히 입에 침을 튀겨가며 얘기하고 있었다. 듣고 있던 친구가 「그런데 도대체 게임이름(name of the game)은 무엇이었는데? 배구였나, 테니스 복식이었나, 탁구였나? 또 최종스코어는 어떻게 됐나?」라고 물었다. 별의별 얘기는 다해놓고 정작 핵심(the crux of the matter)은 빼놓은 것이었다. name of the game은 「골자(the main idea)」또는 「실상(What′s really happening)」이라는 표현이 되었다.

 

ex) A : "I hear that several police are looking for this man"

(수명의 경찰관이 이 사내를 찾고 있다면서)

B : "Yes, that′s the name of the game"

(그래, 바로 그것이 핵심이라니까)

 

◎ Take off the gloves(인정사정 볼 것 없다)

 

- 복싱경기에서는 타격의 강도를 줄이기 위하여 복싱장갑(gloves)을 착용하고 경기에 임하도록 되어있다. gloves를 끼지 않고 때리면 진짜 치명적인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표현은 「노골적으로 싸우다, 본격적으로 맞서다」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표현으로는 「fight with gloves off(인정사정 볼 것 없이 치고 받다)가 있다

 

ex) A : "Did you hear that her father became angry last night?"

(그녀의 아버지가 어젯밤 노발대발했다며?)

B : "Yes. Her father has threatened to take off the gloves if I ever attempt to meet her again"

(알아. 그녀 아버지를 내가 다시 그녀를 다시 만날 요량이면 혼 구멍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네)

 

 

 

<세계 스포츠 계 비리(wrongdoings)유형 및 관련 영문어휘 및 용어 모음>

 

 

1)   11 Crisis Factors against Fair-Play(페어플레이에 반하는 위기요인 11가지):

 

 

(1) Corruption(부패)

 

(2) Doping (금지약물복용)

 

(3) Cheating(부정행위/속임수)

 

(4) Manipulation of Competitions(경기 조작)

 

(5) Match Fixing(승부조작/짬짬이)

 

(6) Illegal Betting(불법 도박)

 

(7) In & Out of-Competition Violence(경기 안팎 폭력행위)

 

(8) Unethical Behavior(비윤리적 처신)

 

(9) Misconduct(위법행위)

 

(10) Criminal Investigation(범죄조사)

 

(11) Whistle-Blowing(내부고발)

 

*FIFA used to be engulfed in scandal amid a series of corruption allegations, indictments and arrests. (FIFA는 일련의 부패혐의, 기소, 체포 등의 와중에 스캔들로 함몰되어 있었음)

 

 

2)   Offences범죄/위반//Charges혐의/13가지 Types(유형):

 

 

(1) Racketeering Conspiracy(협잡 및 갈취 음모)

 

(2) Wire Fraud Conspiracy(전자통신수단을 이용한 사기 음모)

 

(3) Money Laundering Conspiracy(돈 세탁 음모)

 

(4) Embezzlement(횡령/착복/유용)

 

(5) Misappropriation(착복/횡령)

 

(6) Misuse of public funds(공금유용)

 

(7) Breach/Betrayal of Trust(배임)

 

(8) Disservice(구박/학대/몹쓸 짓)

 

(9) Siphoning-off of Money for one’s Private Use(공금 사적 유용)

 

(10) Soliciting for Money(돈을 달라고 요구하기)

 

(11) Bribes and Kickbacks(뇌물 및 중간착취/intermediary exploitation)

 

(12) Blackmailing(공갈 협박)

 

(13) Breaches of confidentiality(비밀유지 위반)

 

 

 

[Elements to Restore Confidence and Value to a Product named Sport(스포츠 명칭을 지닌 품목에 신뢰와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요소들)

 

 

(1) Financial Resources(재정자원)

 

(2) Brand Resilience(브랜드 복원력)

 

(3) Ethical Culture(윤리 문화)

 

(4) Responsibility(책임감)

 

(5) Responsiveness(민감성/반응 성)

 

(6) Integrity Checks(청렴도 검증)

 

(7) Improved Governance(개선된 지배구조)

 

(8) Greater Transparency(보강된 투명성)

 

(9) More Accountability(증강된 의무감)

 

 

[The Spirit of the Olympic Agenda 2020]

 

 

(1) Flexibility (융통성)

 

(2) Sustainability (지속 가능 성)

 

(3) Good Governance (탄탄한 지배구조)

 

(4) Integrity(청렴 정직성)

 

(5) Transparency (투명성)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4. 12. 19:08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9(영어달인의 불어섭렵 고난의 행군/고진감래<苦盡甘來>)]

 

 

영어의 달인이 되려면…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 유학 한번 못해보고 ‘영어의 달인’(조선일보) 또는

토종영어 고수’(EBS TV)란 호칭까지 듣고 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과분하기도 하다.

 

 

 

(EBS TV초청 토종영어고수 영어정복기 방송출연 중인 필자)

 

 

그러나 진정한 ‘달인의 경지’에 미치기 위해서는 영어를 날마다 부담 없는 생활의 일부로 호흡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함으로써 평생 실전세계의 수많은 과정을 통해 단련하고, 수련하고, 무엇보다도 대기 중의 공기를 들여 마시듯,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다 보면, 그 과정이 곧 영어 수련이요, 그 자체가 훈련 겸 숙달이 된다. 이렇게 하여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과정의 열매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어느덧 주위에선 「영어 잘하는 부류」로 통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모든 외국어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우선 익숙한 기본 단어와 흥미로운 문형을 찾아서(search) 자연스럽게 외우고(memorize), 대화체 내용을 흉내 내고(mimic), 실전에 응용하다(apply)하다 보면, 그냥 걷는 습관처럼, 자전거타기처럼 저절로 몸에 배고(habituated) 입에서 흥얼거리게(murmur) 되고, 그러면 그 자체로서 평소에 외국인과의 막혔던 대화(dialogue)와 회화(conversation)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지 않을까?

“아픈 만큼 성숙하리니.(No pains, no gains.)....

“결코, 부담스러워하지 말지어다!(Never feel pressed!)

필자는 외국어 대학교 재학시절 영어를 전공하고 제2외국어는 「독일어」를 하다가 부전공으로 「불어」를 선택하였고, 각고의 노력 끝에 외국어 대학교 부설 동시통역대학원(영·불 동시통역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사실 제2외국어는 과목 자체도 필자를 포함한 대개의 경우, 시간 보내고, 시험 점수 잘 받아 이수학점을 성공 리(?)에 따는 것이 관건이었지, 2외국어 과목설치 취지대로 선택한 제2외국어를 능숙하게 독해하고 말하고 듣는다는 것은 거의 모든 이들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 실제상황이리라.

 

하물며, 머리에 털 나고 처음 접해보는 「불란서어」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요, 무모한 도전으로 실속 못 차린 객기로 느껴졌지만, 어쩌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는데(Dice is cast).

 

대학 2학년 때 시작하는 부전공 불어과목을 불어교육과 1년생들과 합반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난생처음 보는 불어 단어, 발음, 문장을 접할 때마다 두통과 멀미까지 느껴졌다.

 

당시 외대 불어과 주임교수이셨던 서정철 선생님께서 불어 부정관사 「un」이 포함된 문장을 읽어보라고 해서 나름대로 예습까지 해 온 터라 조심스럽게 자신만만하게 「앵」하고 읽었더니 「어디서 파리가 날라 다니냐」라고 하였고, 모든 학생들이 박장대소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그 후 아무리 발음 연습을 해도 「그 놈의 파리」는 나의 혓바닥과 목과 코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그럭저럭 이 눈치 저 눈치 보아가며 근근 적선으로 학점은 겨우 땄지만, 불어 부전공과목 강의 시마다 주눅이 들어서 「못살겠다. 꾀꼬리」를 하염없이 외쳐 대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수소문 끝에 회현동 신세계 백화점 뒤편에 있는 프랑스 문화원 부설 불어 학원인 「알리앙쓰 프랑세즈(Alliance Francaise」에 등록했다.

 

겨울 방학 3개월 동안 낮에는 기초교양불어과정인 「모제(Mauget)」라고 통칭하는 과목(Cours de Langue et de Civilisation Francaises)을 듣고, 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은 뒤 그 건물 내에 있는 도서실(biblioteque)에서 하루 종일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또 저녁때 수강할 불어회화코스(De vive voix)까지 예습까지 하면서 그야말로 불철주야 집중코스(Intensive course) 3개월간 맹진하고 나니까 비로소 불어의 본체를 깨닫게 됐다.

 

그 과정에서 꿈에 불어로 이야기하는 「현몽(Appearance in a dream)」현상까지 생기다 보니 비로소 생소하기만 했던 불어에 대해 애정도 생기고 수업시간에도 인정받다 보니 그때부터 필자에게 펼쳐진 불어의 세계는 실로 예전 같지 않더라는 실제 체험담을 지면을 통해 소개해 보는 것이다. 물론 나도 보통 사람인데 어찌 놀고 싶지 않았겠으며, 불어 공부 자체가 즐겁기만 했었겠는가? 하루에도 열두 번 때려치우고 싶고, 하품과 졸음과 지루함과 지리함이 늘 상 엄습해 왔지만, 이러한 「공부 방해 사탄」의 시련을 극기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가 치러야 할 최소한의 대가가 아닐성싶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어학은 배우고 익힌 문장과 단어를 무대 위의 배우처럼, TV 탤런트처럼 라디오 방송국의 성우처럼 상대방과의 실감나는 감정교류를 하듯 마치 역사의 한 인물처럼 그 감동, 그 느낌을 자기 목소리에 실어 크게 소리 내어 실감나게 실전처럼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연습하게 되면, 외국어를 관장하는 神이 반드시 감응하여 그대들을 기필코 도우리라!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천우신조(天佑神助 Heaven helps and God assists)란 이렇게 간절히 간구하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아래에 필자의 영어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신문에 났던 기사를 실어 보았다.

 

[2000 4 21일 금요일 - 「조선일보 9면」]

 

영어의 달인 시리즈 중 15번째 인물-윤강로 대한체육회 사무차장

 

대한체육회 국제담당 사무차장 윤강로씨는 한국 체육의 얼굴이다. 각종 체육관계 국제회의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 우리나라 입장을 전달하고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다. 82년 대한체육회에 입사한 뒤 매년 10여 차례, 지금까지 1500회 이상 각종 국제 대회와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왔다. 당연히 영어를 잘하지 않으면 안 될 위치다.

 

그러나 윤씨는 단 일 년도 외국에서 산 적이 없다. 윤씨는 외국어대 영어과 76학번. 아버지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어서 어릴 때부터 영어와 가까이 지냈다. 아버지가 그에게 가르친 것은 영어 단어나 문법이 아니었다. 영어를 대하는 자세.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틀리면 어떠냐? 틀리면서 배워나가는 게 외국어다.

 

 



"
기다리지 말고 부딪치고...
틀리면서 배워야 실력 붙어"
------------------------


나라마다 발음, 악센트 차이
살아 있는 영어 받아 들어야...

 

 

윤씨는 이후 현장에서 외국인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영어를 배웠다. 그래서 자기 영어를 ‘실전 영어’라고 부른다. 그는 대학 시절 미군 부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한 미군 가족이나 군속, 관광객을 위해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그들로부터 살아 있는 영어를 받아들였다. 판문점이나 경주 등 관광지를 돌며 우리나라 역사와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는 일은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대학 3학년 때 교내 영어 경시대회서 공동 1위를 차지한 것도 영어데 자신을 붙게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스컵(Park’s Cup) 축구대회가 꽤 큰 국제대회였지요. 그 대회와 세계 여자농구 선수권대회, 세계 사격선수권대회 등 국제 체육대회에서 통역을 맡으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쌓았습니다.” 윤씨 영어는 나라에 따라 발음과 악센트가 달라진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온갖 영어를 하다 깨달은 것이, “나라마다 다른 영어가 있다.”는 것. “어학은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 세계 누구와도 통할 수 있는 영어가 진짜 살아 있는 영어 아닙니까?

 

윤씨는 요즘 영어회화 책을 쓰고 있다. 제목은 ‘쪽집게 영어’라고 붙였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영어 표현을 쉽게 찾아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두 자녀에게도 “영어를 즐기라.”고 예기한다는 윤씨는 “잘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부딪쳐야 영어가 는다.”며 다시 한번 ‘실전 영어’를 강조했다.

 

 

아래 글은 <YBM SISA> English World(영어 세계)에 개재되었던 내용이다.


*Dreaming dreams in English(
영어로 꿈을 꾸어보세.)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 한번 나가보지 못한 '신토불이', '토박이', '토종' 영어학도였지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꿈속에서 외국인과 나도 모르게 거의 자유자재로 영어가 되더라고요. 그 이후 자신감과 함께 '한 영어'를 하게 된 셈이라고나 할까? 여러분들도 반드시 그런 날이 오게 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Sincerity moves heaven.)

"
영어에는 왕도가 없도다."(There is no royal road to learning English.) 이 말은 제가 중학교 시절 영어공부를 시작할 무렵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야기였어요. 전 그 시절 그래도 왕도를 찾아 다녔지만 남는 것은 '허송세월'(passing time idly/불어: la perte de temps/
le temps passé à ne rien faire)이란 단어뿐이었다.

그래서 터득해낸 방법이 영어 교과서는 물론 참고서에 나오는 단어, 숙어, 표현 등을 몽땅 외워버리는 것이었답니다. 그 결과 각종 영어시험 성적에서 제법 좋은 성적을 얻으면서 영어에 자신이 붙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재학시절 외국인교수와 대화하는 첫 수업시간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로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한심하게 생각했디.

*Mimicking and memorizing(
흉내 내고 암기해 따라 하기)

결국 다시 찾은 방법이 '외국인 찾아 삼 만리.' 그 당시(1970년대) 배낭여행 같은 낭만적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국내에서 당시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위치한 미국봉사기관인 U.S.O.(United Services Organization)홀홀 단신 찾아가 자원봉사자(Volunteer)로 용감하게 지원하여 매 주말마다 펄펄 살아 숨쉬는 실전영어를 익히게 되었다.

영어로 전화 받기, 때론 관광가이드로 판문점(JSA: Joint Security Area) 이나 경주 등 관광지를 돌며 갈고 닦았던 국사실력에 미리 준비한 영어시나리오로 설명과 해설을 겸한 떨리는 영어 브리핑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와 상황을 설명하는 일은 영어실력을 일취월장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미국 도처에서 온 미국인 그리고 영국인들의 여러 가지 다양한 액센트와 발음 그리고 어휘 구사력 등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마다 메모지, 수첩 등은 살아있는 표현을 현장에서 담아내는 '영어 보물 만들기'에 필요한 필수도구로써 혁혁한(?) 공헌을 한 셈이었다.

이러한 현장 학습 덕분에 저는 나라에 따라, 지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눈 높이 맞춤 식 영어를 구사하게 된 계기가 되어 대학과 군대제대 후 스포츠외교관으로 세계 각국 사람들과의 소통 시 어느 나라 어떤 사람과도 어휘수준과 소통가능 발음 등으로 무장 된 전천후 국제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습관은 USO자원봉사자 시절 많은 외국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의 발음을 흉내 내고 암기했던(mimicking and memorizing)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삼 인행 필 유 아사(三人行 必 有 我師)'(세 사람이 함께하면 반드시 그 들 중에 자기 스승이 있느니라.) 지구촌 국제소통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스승이요 친구가 되는 법이다
.
매번 메모해 둔 단어들을 시간 날 때마다 외우고 그 말을 했던 외국인의 발음과 액센트 그리고 인간미를 음미해 가며 떠올리고 흉내 내서 연습을 한 셈이다
.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Man propose, God dispose.(
모사재인<謀事在人>,성사재천<成事在天>/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Life is not about waiting when the storm is over, but about dancing in the storm. (인생이란 폭풍우가 멈추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폭풍우 속에서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이 아니겠는가? )



타고난 재능보다는 갈고 닦은 후천적 재능이 더 빛나고 우수해 지는 거 아니겠어요? 무엇이든 잘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즐기는 마음으로 갈고 닦아야 윤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 법이다.

식사를 거르면 배고픔이 따르고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피곤함이 따르듯이, 그날그날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하듯이, 그리고 외국어 공부를 하루라도 건너뛰면 허탈감이 생기도록 일상생활화 한다면 모든 외국어는 곧 모국어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며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Man Propose, God Dispose.>이니까.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4. 11. 11:14

[Tokyo2020올림픽조직위원회 CEO(Toshiro Muto) 2021년 올림픽개최여부도 불확실 의심 시사배경]

 

 

 

2020 410일 자 AP뉴스보도 제목은 “ Tokyo올림픽조직위원회 CEO Toshiro Muto, 2021년 올림픽개최 조차 의심에 처할 수 있음을 시사하다”(Tokyo Olympic CEO hints games could be in doubt even in 2021)이었다.

 

 

(Toshiro Muto/사진출처: 연합뉴스)

 

 

일본에서 확산이 두드러지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중에 Tokyo올림픽 CEO Toshiro Muto 410일 장시간 연기됨에도 불구하고 Tokyo올림픽이 2021년에 개최될 것이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he can’t guarantee the postponed Olympics will be staged next year — even with the long delay)고 언급하였다.

 

Shinzo Abe일본총리는 금주 바이러스와의 전쟁지향 국가비상사태를 선포(issued an emergency declaration)하였는데 그 동안 일본이 바이러스확산을 피했던 것처럼 보였던 후에 뒤늦게 취한 조치다.

 

원격 기자회견에서 통역사를 통해 행한 발언을 통하여 Toshiro Muto Tokyo올림픽 CEO어느 누구라도 내년 7월까지 바이러스퇴치 통제 가능성여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I don’t think anyone would be able to say if it is going to be possible to get it under control by next July or not)라고 운을 띄우면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명백한 답변을 줄 수 있는 확실한 입장이 아니다” (We’re certainly not in a position to give you a clear answer)라고 밝혔다.

 

2020 3월 하순 Tokyo올림픽은 2021 723일로, 패럴리픽은 824일로 연기되어 개최될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Abe총리는 코로나바이러스 늑장 대처로 비판 받아(criticized for being slow to act against the coronavirus) 오고 있다.

 

일본야당지도자들은 Abe총리가 바이러스의 심각성에 대해 경시하였다(downplayed the severity of the virus)고 시사하였으며 올림픽을 그저 2020년 내에 열리기를 원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Muto CEO우리는 올림픽개최를 1년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으며(We have made the decision to postpone the games by one year), 따라서 그 의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대회개최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며 내년에는 인류가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를 극복하도록 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So this means that all we can do is work hard to prepare for the games. We sincerely hope that come next year mankind will manage to overcome the coronavirus crisis)라고 덧붙였다.

 

 

Muto 2021년까지 대안(alternative plans)수립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이에 대해 대안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 우리의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Rather than think about alternatives plans, we should put in all of our effort), 인류는 모든 기술력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치료책으로 의약품, 백신 등을 개발하여야 한다” (Mankind should bring together all of its technology and wisdom to work hard so they can development treatments, medicines and vaccines)라고 답변하였다.

 

일본은 5,000명 바이러스 확진 판정환자 중 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일본은 세계에서 고령자 인구비율이 가장 높은(the world’s oldest population) 나라이며 COVID-19는 노령자들에게 특히 심각할(especially serious for the elderly)수 있다

 

Muto는 여러 차례 대회지연개최에 따른 추가지출비용(the added costs of postponing)에 대한 질의를 받았는데 일본 미디어가 추정하기로는 US$20억불~60억불(2.4조원~7.2조원)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이에 대해 추가비용가격표(the price tag)와 지불주체(who would pay)에 대해 언급하기는 너무 이른 시점이라고 답했다

 

Muto Tokyo올림픽조직위원회가 보험을 들었다고 인정하면서 “Tokyo2020올림픽을 위해 수 개의 보험증권에 가입하였지만 대회연기사유가 보험적용 이벤트 적격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Tokyo 2020 has taken out several insurance policies,” he said. “But whether the postponement of the games qualifies as an event that is covered is not clear yet)고 답변하였다.

 

Muto는 또한 금주 Fukushima현 공공전시가 취소된(taken off public display) 올림픽성화에 대한 질의에 대하여 답변하기 전 마이크를 가리고(an away-from-the-microphone talk) 조직위원회 대변인 Masa Takaya와 답변 전에 상의하였으며 올림픽성화봉송계획이 취소된 후, 올림픽성화는 Tokyo2020조직위원회 관리 하에 보관 중이며”(After the Olympic torch relay was canceled, the Olympic flame was put under the management of Tokyo 2020) “장래에는 어느 곳에서 전시될 가능성이 명백히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Tokyo2020조직위원회 관할 하에 있고 그 이슈에 대하여서는 더 이상 코멘트 하지 않겠다”(Obviously in the future there is a possibility it might be put on display somewhere. However, for now it is under the management of Tokyo 2020 and I’m not going to make any further comment on the issue)고 답변하였다.

 

IOC는 올림픽성화를 통하여 바이러스퇴치의 상징으로 활용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올림픽성화 전세계 순회투어를 생각하고 있다라는 의견제시가 있긴 하지만 전 세계 순회투어 자체가 여행제한조치가 풀릴 때까지 불가할 것으로 사료된다.

 

 

 

 

 

일본에서 올림픽성화를 빼가는 것은 어찌 보면 개최 올림픽대회 주최자들을 당혹스럽게 할 수 도 있는 발상이다.

 

 

*References:

-AP news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4. 10. 09:54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8(스포츠외교활동 화룡점정2008년올림픽IOC평가위원 활약과 4대 스포츠외교영예실록)]

 

 

 

동 하계올림픽 개최도시 결정은 IOC설립 및 존치 근본핵심목적인 동 하계올림픽개최를 실현하기 위하여 개최도시선출결정은 IOC의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일련의 과정들 중 첫 단추이다. 당초 IOC는 올림픽개최도시 선출투표에 앞서 IOC-IFs(국제연맹)-NOCs(국가올림픽위원회) 3자그룹으로 구성된 후보도시 현황파악 대표단(Fact-Finding Party)을 구성하여 해당 후보도시로 사전에 조사차 파견하였지만 아울러 투표권자인 IOC위원들도 향응이 뒤 따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버린 후보도시의 초청을 받아 임의로 현지방문을 하였었다. 그러한 관행으로 야기된 Salk Lake City2002동계올림픽유치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부패행위로 말미암아 전 세계 언론의 지탄대상이 되었던 IOC 1999년 제108 IOC임시총회를 개최하여 개혁안을 마련하였다.

 

 

동 개혁안에 준하여 IOC IOC위원 윤리 행동강령을 엄격히 적용함으로 IOC위원들의 올림픽후보도시 방문 전격금지 조치가 시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IOC는 올림픽개최신청 후보도시를 대상으로 별도의 IOC평가위원회(IOC Evaluation Commission)을 구성한 후 현지에 파견하여 객관적 현지실사조사를 추진하도록 후속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러한 동 하계올림픽후보도시 대상 IOC평가위원회에 대한민국최초로 필자가 2008년올림픽후보도시 대상 IOC평가위원(2000~2001)으로 선정되어 활동한 바 있다. 필자의 IOC평가위원 활동 이후 18년 만에 이루어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케이스는 3대 평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 재임한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장관이 2026년 동계올림픽후보도시 대상 IOC평가위원(2018~2019)으로 활동하였다. 이제 IOC는 기존의 IOC평가위원회실사단 제도를 변경하여 향후 올림픽개최지선별위원회”(Future Host Commissions)를 신설하였다. 물론 서울-평양 공동유치를 선포한 2032년 올림픽 개최지결정도 동 선별위원회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2019 103 IOC집행위원회 결정으로 IOC가 새롭게 출범시킨 향후 올림픽개최지 선별위원회(Future Host Commissions)는 한마디로 올림픽개최도시들 및 국가들에 대한 선별작업을 조정 통제하는 권한을 부여 받은 막강한 위원회로 발족된 셈이다. 또한 올림픽개최후보도시도 단수도시에서 복수도시 개최허용으로 개최도시(Host City)에서 개최지(Host)로 명칭도 변경되었다 Sydney2000올림픽대회에 앞서 현지에서 개최된 IOC 집행위원회에서는 2001년 결정할 2008년 하계올림픽 IOC 평가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구성된 위원들은 현역 IOC 위원 7(Hein Verbruggen-네덜란드, IOC 위원 겸 국제사이클연맹 회장, Francisco Elizalde 필리핀 IOC 위원, Craig Readie 영국 IOC 위원 겸 NOC 위원장, Carlos Nuzman 브라질 IOC 위원 겸 NOC 위원장, Tomas Sithole 짐바브웨 IOC 위원 겸 ANOCA 사무총장, Sergei Bubka IOC 집행위원(우크라이나) IOC 선수분과위원장, Mario Pescante 이태리 IOC 위원 겸 EOC 회장, IOC 사무국 대표로 Gillbert Felli 올림픽 대회 수석국장, 국제연맹 대표 3(Els Van Breda Vriesman 국제하키연맹회장( IOC 위원역임), Patrick Baumann 국제농구연맹 사무총장 및 Catrin Norinda 국제승마연맹 사무국장) 전문가(specialist) 대표 3(Simon Balderstone 환경전문가(호주), Bob Elphinston 경기 및 시설전문가(2000 시드니 올림픽 조직위원회 경기총괄 부위원장) 10개 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단장대행을 역임한 필자(Rocky Kang-Ro Yoon), 그리고 장애인올림픽 대표 1(Robert McCULLOUGH) 등 총 14명과 Jacqueline Barrett IOC 유치도시관련 팀장을 비롯한 3명을 합쳐 총 17명이었으나 Mario Pescante 이탈리아 IOC 위원은 도중에 사퇴하였다.  필자가 IOC 평가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간 배경은 다음과 같다.

IOC 집행위원회에서 직능 별 대표들을 선정하는 가운데 전문가그룹 대표후보자들 중 아시아대륙을 거명하며, 적임자가 없는 상태라고 Felli 국장이 사마란치 IOC 위원장에게 보고하자 당시 IOC 부위원장이었던 김운용 KOC 위원장이 「무슨 소릴 하고 있느냐? 한국의 Rocky Yoon이 있지 않느냐?」라고 강하게 Felli 국장을 힐난하며 필자를 추천하자, 그때야 Felli 국장 및 집행위원들은 필자를 미처 생각 못했노라고 인정하면서 적격자라고 평가 받아 뒤늦게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를 김운용 IOC 부위원장에게서 전해 들었다. IOC는 근본적으로 귀족 백인위주의 클럽으로 시작하였고, 근본적으로 유럽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로 분류되는 지역출신 사람들은 웬만큼 능력 있고, 기가 세고, 강심장을 갖고 세력 구축을 하면서 실력발휘를 하지 않는 한 IOC 등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식이다.

 

(두 번째 유치후보도시인 Osaka방문 시 Mori일본총리주최 리셉션장 에서 Mori총리< Tokyo2020올림픽조직위원장>과 함께)

 

 

 

따라서 김운용 IOC 부위원장의 경우는 특별한 예외이며 그만큼 능력과 실력과 세력을 겸비했다는 뜻이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 아시아가 배출한 역사상 최고의 불세출의 스포츠지도자임은 틀림없다.

 

필자가 아무리 실력과 능력과 경험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어도 당시 김운용 부위원장께서 IOC 집행위원회 회의석상에서 강력한 추천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IOC 30여개 분과위원회 중 가장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대표들로 포진된다는 IOC 올림픽대회 평가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예는 김운용 IOC 부위원장께서 「후배를 잘 키우지 않는다」는 항간의 주장과는 잘 맞지 않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기회를 빌려 작고하신 故 김운용 IOC 부위원장 영전에 필자가 국제무대에서 그 동안 축적된 모든 경험과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본격적으로 한민족의 저력과 「본때」를 보여주고 명성을 날리도록 추천해주신 배려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2000 915일부터 101일까지 개최된 시드니 올림픽대회 시작 전인 2000 829일자로 IOC에서는 필자의 IOC 평가위원회 위원 임명사실을 통보하면서 2000 925일 호주 시드니에서 IOC 올림픽대회 평가위원회 위원 상견례 겸 제1차 회의를 소집하였다.

 

올림픽대회 기간 중 시드니 Regent호텔 Ballroom에서 개최된 회의에는 당시 Samaranch IOC 위원장, Carard IOC 사무총장, Felli IOC 국장, Jacqueline Barrett IOC 유치도시 담당팀장과 IOC 평가위원장 직을 맡은 Verbruggen 네덜란드 IOC 위원 겸 국제사이클연맹(UCI) 회장을 비롯하여 Elizalde 필리핀 IOC 위원, Reedie 영국 IOC 위원, Pescante 이탈리아 IOC 위원, Nuzman 브라질 IOC 위원 등 평가위원 14명이 모두 참석하였다.

 

Samaranch IOC 위원장이 당부하는 인사말이 있었고 평가위원들 소개에 이어 IOC 평가위원회가 점검, 평가, 실사, 분석할 18개 분야에 대한 책임업무 분장이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주제3(Theme3/Customer and Immigration formalities; 세관 및 입국절차 세부사항)과 주제17(Theme17/Olympism and Culture; 올림픽대회 개폐회식, 올림픽 성화봉송, 시상식 등 제반 의전행사와 문화행사 등)이 책임분야로 지정되었고, 기타 분야는 공동 참여하도록 정해졌다.

 

 

(-6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 -7 Samaranch IOC위원장, -1 Gilbert Felli IOC올림픽 수석국장,-3이 한국최초 IOC평가위원으로 선정된 필자)

 

 

 

5개 유치후보도시에 속한 나라의 IOC 위원들은 투표권이 없으므로 이들 11(중국2, 일본2, 캐나다3, 터키1, 프랑스3) IOC 위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IOC 위원들은 IOC 평가위원회가 작성한 최종 평가위원회 보고서를 숙독한 후, 투표일인 2001 713일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었다.

유치후보도시 실사평가 방문을 모두 마치고 최종 보고서 작성을 위하여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 집결한 IOC 평가위원회 위원들은 Samaranch IOC 위원장의 따듯한 환영과 뼈를 깎는 듯한 길고 힘든 작업에 대하여 치하와 격려와 감사의 말을 들었다.

 

Samaranch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역대 올림픽대회 IOC 평가위원회 중 아무런 잡음도 없고 평가위원들 간의 화합과 친목 돈독 정도가 최고라고 들었노라고 칭찬하여주면서, 최종 보고서 작성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여 임하되, 정식 분량 보고서 외에 A4 한 장~두 장짜리 축약보고서도 함께 작성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유인 즉, IOC 위원들 대다수가 정식 분량의 최종평가 보고서를 숙독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바, 최소한 축약 본이라도 읽게 하려는 의도라고 간단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드디어 IOC 평가위원회 위원 전체가 IOC 본부 집행위원회 회의장에 모여 23일간 최종평가 보고서 작성작업에 돌입하였다.

 

 

 

(Samaranch IOC위원장이 IOC집행위원회 회의실에서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현지 실사 방문결과 보고서작성 후 필자에게 감사선물을 증정하고 있다)

 

 

 

5개 도시 별 18개 항목별 조사평가 내용은 각 유치도시 실사 방문기간 동안 중간 정리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사실에 입각한 기술적인 평가(technical assessment)를 그대로 반영시켰다.

 

회의 마지막 날에는 각 유치도시 별 최종평가 결론 내용 작성이었다.

 

이 결론 내용(Conclusion)은 유치도시 평가보고서의 핵이므로 정확하고 종합적인 검토와 촌철살인의 집약된 평가와 세심한 주의가 모두 요구되는 극도로 예민하고 첨예한 화룡점정 격의 한판이었다.

최종 결론 부분(Conclusion) 내용의 초안을 잡아야 하는데, 평소 영연방(Common Wealth) 세력인 영국의 Craig Reedie IOC 위원과 호주의 환경전문가인 Simon Balderstone이 이구동성(in unison)으로 본인들의 모국어가 영어이므로 초안 담당을 하겠노라고 선수를 치고 나왔다.

 

딱히 반대할 명분도 없고 해서 그대로 인정되었다.

 

자칭 영어가 모국어란 이들 두 전문가는 5개 유치도시 최종 결론 중 마지막으로 묘사되는 한 줄을 놓고, 어떤 도시에는 「will」을, 또 다른 도시에는 「would」를, 또는 「could」와 「can」을 뒤섞어서 표현하였다.

필자는 발언을 통해 「문법적으로 동사의 용법을 가지고 뉘앙스(nuance)를 무리하게 처리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한 단어가 주는 영향력(impact)을 공정하게 반영해야 하므로 「would」면 「would」로, will」이면 「will」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Verbruggen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위원들이 필자의 취지에 동의하여 「can」이나 「will」 대신 「could」와 「would」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같은 영연방국가인 캐나다의 유치후보도시인 Toronto2008을 의식한 듯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외신에 집중 거론되었던 중국의 인권문제를 Beijing2008 유치와 연관시켜 문건화하여 결론 맨 끝부분에 삽입할 것을 강력 주장하였다.

 

필자는 유일한 아시아대표로서 Beijing이 정치적인 사안으로 부당하게 공격받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해당 문건 삽입에 대하여 강력히 반대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자, 이 두 명의 전문가들은, “만일 외신이 집중 거론하고 있는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일언반구(a single word)의 표현도 결론 부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IOC 평가위원회가 여론을 전혀 반영시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라는 취지로 필자의 견해를 반박하였다. 그러면서 대안적인 표현으로서 “Should the Game be awarded to Beijing, the human rights issue would be an on-going debate in the period leading up to the Games(만일 2008년 올림픽대회 개최지가 북경으로 정해진다면, 인권문제는 대회 개최 시까지 끈질긴 토론거리로 쟁점화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제시하면서, 이 문구를 Beijing2008유치후보도시 결론 맨 마지막 부분에 넣어서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거운 정적(gloomy silence)이 회의실에 감돌았다. 필자는 Verbruggen 위원장에게 “우리 IOC 평가위원회는 IOC 집행위원회로부터 기술적인 측면(technical aspects)만 평가(evaluate)하도록 소임을 부여 받았으며, 정치적인 사안은 취급하지 말 것(The Commission is not allowed to touch upon any political issues)이란 지침을 받은 바 있고, 실제로 각 유치도시 실사평가 방문 말미에 행한 각국 기자회견 때마다, Samaranch IOC 위원장께서도 정치적 질문에 대하여 「우리 영역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더구나 대안으로 제시한 표현문구는 투표권 자들인 IOC 위원들에게 마치 Beijing2008에 표를 던져 개최도시로 선정이 되면 인권문제가 2008년까지 계속 골칫거리로 IOC를 괴롭힐 것이니, Beijing은 바람직한 개최도시 후보가 아니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것 같은데, 이는 불공정한 처사로서, 향후 감당치 못할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많으니, 이러한 문구는 절대 거론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향후 중국 측의 반발, 이로 인한 IOC 평가위원회 위원장으로의 책임추궁 등 위원장 본인의 신상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Verbruggen 위원장은 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Paris2008유치후보도시 중심부 지하철 Metro 현지 실사중인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과 필자)

 

 

 

따라서 이 문구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중국으로 보아서는 IOC 평가위원회 실사평가 방문과 연계되어 최종적으로 도출된 실사평가보고서 최종결론에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으로 미국을 비롯한 외신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인권문제(human rights issue)를 평가보고서 결론에 한 줄도 거론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사수(desperate defense)해 준 필자가 수훈 갑(Top Contributor)이 되어버렸다.

 

필자는 IOC 평가위원회 위원자격으로 2001년 제113차 모스크바 IOC 총회에 정식으로 초청받아 비즈니스클래스 왕복항공권과 IOC 본부호텔 숙식을 제공받으며, IOC 총회장 왼쪽에 마련된 단상에 난생처음 정식으로 IOC 공식자리에 앉아 IOC 위원들과 눈높이를 같이하였고 5개 후보도시 프레젠테이션과 투표결과를 지켜볼 수 있었다.

 

다시 시계를 돌려 5개 유치도시 실사 방문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유치도시의 IOC 총회에서의 설명회(Presentation) 순서는 무작위 추첨(random drawing)으로 결정하지만 유치도시 방문일정은 시간절약(time effective)과 항공 일정상의 방문 편의(for travel convenience sake)를 고려하여 잡는다. 보통 가장 먼 지역부터 시작하는 것이 관례로서 중국의 Beijing, 일본의 Osaka, 캐나다의 Toronto, 터키의 Istanbul, 그리고 프랑스의 Paris 순서로 실사방문일정이 짜졌다.

 

 

 

 

 

 

(네 번째 유치후보도시인 Istanbul 현지실사 방문 시 필자를 포함한 IOC평가위원들)

 

 

 

(다섯 번째 유치후보도시인 Paris2008 현지실사 중 유치위원회 관계자와 불어로 담소 중인 필자/Paris2008유치 뉴스레터)

 

 

 

IOC 평가위원 개별 항공일정 등이 IOC 사무국과 상호협의 하에 정해진 후 비즈니스클래스 왕복항공권이 사전에 지정항공사를 경유하여 지급되었다.

 

모든 IOC 평가위원들에게는 가장 먼 거리였지만 필자에게는 가장 가까운 거리인 Beijing2008에 도착한 날짜는 2001 221일 오후였다.

 

 

대한항공 직항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Beijing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중국 당국에서는 필자를 최고 VIP급으로 분류하여 일반 출입국 수속 대를 통하지 않고 번쩍이는 신문기자 카메라와 TV카메라 세례를 한편 받으면서 또 트랩까지 마중 나온 Tu Mingde 중국 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과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의 안내 겸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공항 귀빈실로 모심(?)을 당하였다.

 

 

중국 특유의 귀빈접대를 받으면서 TV 인터뷰를 마치자, 간이 공항입국 수속절차를 대리로 끝내고 필자의 짐을 찾은 뒤 곧바로 공항 귀빈 주차장에 준비된 고급 승용차로 안내되어 중국여성 의전요원이 자동차 앞자리에 수행 자격으로 앉고 필자 옆자리에는 Tu Mingde 중국 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이 동석하였다. 중국 공안에서 배려한 듯한 에스코트 선도차량이 필자가 탄 자동차를 인도하였다. 마치 중국 국빈이 된 느낌이었다.

 

2000년 당시만 해도 한국 주재 중국대사관으로부터 1년짜리 중국 복수비자 발급대상은 장관급 이상이었다. 필자는 2000 1225일자로 Liu Qi 북경시장 겸 2008년 하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공한을 받았다.

 

 

IOC 평가위원인 필자를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에 정식초청하며, 북경 체재기간 동안 Host로서 성의를 다하겠다는 내용과 비자발급 편의 안내문이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필자는 다음해 221 Beijing 도착이라서 2월 초순경 비자발급 신청을 할 작정으로 미루고 있었는데, 2월 중순 어느 날 한국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필자에게 예의를 차린 어조로 「중국 비자발급을 해드릴 테니 직접 오시지 마시고 직원에게 대신 심부름시키면 그 자리에서 발급해 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체육회 지정 여행사 직원에게 부탁하였고, 말 그대로 당일 그 자리에서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그것도 1년짜리 복수비자로. 여행사 직원 말에 의하면 한국인으로서 상당히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예우라고 놀라워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숙소인 베이징반점(Beijing Hotel)에 도착하고 안내된 방은 스위트(Suite)룸으로 VIP 용인 듯싶었다.

 

방에서 여장(travelling kit)을 풀고, 시간에 맞추어 동료 IOC 평가위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만찬 장으로 가서 다음날부터 진행될 평가실사회의에 대한 사전회의와 더불어 식사시간에 맞게 합류한 북경유치위원회 간부들과 상견례 겸 환담을 하였다.

 

다음날 아침 7시에 IOC 평가위원단 조찬 겸 내부회의에서 오전 830분부터 시작되는 첫 방문 지 첫 브리핑 대비 전략회의였다.

 

Verbruggen 위원장은 개별 평가위원 소관 주제와 관계없이 18개 모든 항목에 걸쳐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많이 해줄 것을 주문하였다.

 

필자의 전공은 질문 그 자체였다. 필자는 당시 20여 년간 10개의 동·하계올림픽대회, 동·하계아시안게임, IOC 총회, ANOC 총회, OCA 총회 참석 등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몸에 밴 각종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역대 올림픽조직위원회 및 국제 스포츠 계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은 그야말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무장된 사람이었다. 첫날 첫 회의 첫 주제부터 필자의 질문공세가 Beijing2008유치위원회 측 주제별 발제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나 보다.

 

두 번째 날 회의가 끝나고 저녁 리셉션 장에서 미모의 중국여성이 필자에게 다가와서 2일간의 회의를 브리핑 룸 옆방에서 폐쇄회로 TV모니터를 통해 생중계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의 눈부신(?) 활약상에 경의와 감탄을 표한다고 하고 나서, 다음날이 그 여성의 주제발표 순서인데, 질문할 내용을 미리 귀띔해주고 질문을 하더라도 쉽게 다루어 달라는 요청 아닌 애교 성 애원(?)이었다. 마음 약하고 부드러운(?) 남자인 필자는 그 여성의 주문대로 예상 질문내용도 미리 알려주고 질문도 쉽게 하였음은 불문가지이다.

 

회의 3일 차에는 강택민(장쩌민) 중국주석도 예방하여 악수도 하고 환담도 하고 사진도 함께 촬영했다. 국빈 급에게만 공개한다는 여름궁전(Summer Palace)과 천안문 근처의 자금 성(Forbidden city) 성곽 망루에도 안내되어 올라가 기념촬영도 하였다.

 

 

 

 

 

(Beijing국가주석 궁에서 장쩌민 중국국가주석과의 만남)

 

 

 

올림픽 경기장 예정지뿐만 아니라 교통통제센터, 기상센터, 수질관리센터, 첨단 디지털센터 등등 모든 곳에서 올림픽 개최 열기가 펄펄 끓고 있었다.

 

주제별 발제자들도 전세계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12억 인구 가운데 선별, 총동원하는 등, 발군의 영어 구사능력과 탁월한 지식 등에 힘입어 IOC 평가위원단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하였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부터 매일 아침 운동을 습관으로 삼아왔다. 태권도, 평행봉, 철봉, 달리기, 배드민턴, 팔 굽혀 펴기(push up), 윗몸 일으키기(sit up), 체조, 단전호흡 등을 즐기는 편이다.

 

 

 

 

Beijing에 체재하는 동안 아침 5시 반에 기상하여 호텔 내에 있는 아침 6시에 개장하는 헬스장(Fitness Center)으로 가서 Stretching 등으로 몸 풀고, 러닝 머신(running machine/Treadmill) 위에서 30분 이상 달리기를 한 후 땀이 비 오듯 하면 나머지 정리운동을 하고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도 한 뒤 객실로 돌아와 샤워하고 일정에 임하곤 했다.

 

 

유럽에서 중국까지 날아온 위원들이 대부분이어서 시차적응 등으로 아침 운동하는 위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날 아침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 장대높이뛰기(pole vault)의 세계기록 보유자인 「나는 인간 새」 Sergey Bubka IOC 집행위원 겸 IOC 선수분과위원장(우크라이나 NOC 위원장 겸직)이 헬스장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운동에 임하였다.

 

 

(5번째 마지막 유치후보도시인 Paris2008방문시 Jacques Chirac 프랑스대통령이 Palais d’Elysee대통령궁에서 IOC평가위원회 대표단을 초청 리셉션에서 필자와 악수하는 장면-이후 친필서명이 담긴 사진을 보내왔다)

 

 

 

헬스장에는 헬스 기구들 사이에 마침 실내용 짧은 거리 트랙(Track)이 구비되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Bubka와 함께 주행하는 모양이 되었다.

 

 

한참을 도는데, 아무리 필자가 운동을 습관화해 왔다고는 하지만 세계육상 선수권자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한국인 특유의 오기와 집념으로 숨이 턱까지 차올라 왔지만 소리 죽여 입으로 내쉬면서 지친 기색을 표출하지 않은 채 끝까지 Bubka 뒤를 따라붙자, 그제서야 Bubka도 내심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Bubka는 잠시 멈추고 필자에게 다가와 「몸의 균형을 맞추고, 한쪽으로 쏠린 근육 밸런스(balance)를 위해 트랙 반대방향으로도 뛰자」고 제의하였다.

 

 

필자는 힘이 들었지만 쾌히 응하고 Bubka 뒤를 다시 따라붙었다. 마치 「말아톤」을 하는 심정이었다.

 

「백만 불짜리 파트너」와 「끝내 주는」 운동을 한 셈이었다. Bubka는 정리운동을 하면서, 필자의 회의장에서의 활력적인 분위기 창출과 다양한 올림픽 관련 지식수준과 운동을 좋아하는 면이 모두 마음에 든다면서, 앞으로 IOC 평가위원 5개국 방문기간 동안 매일 아침 같이 운동하자고 제의하였다.

 

 

이러한 Bubka와 필자가 시작한 아침운동에는 Hein Verbruggen IOC 평가위원장, Gilbert Felli IOC 올림픽대회 총괄수석국장 등 4, 5명이 함께 참여하여, 5개국 평가 방문기간 동안 환자 발생 없는 강철 같은 IOC 평가위원군단으로서 정력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당시 Samaranch IOC 위원장의 평가에 의하면 잡음이 생기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업무수행을 훌륭히 치러낸 역대 가장 뛰어난 IOC 평가위원단이란 찬사도 들었다.

세 번째 방문 도시인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서는 쌀쌀하다 못해 겨울 날씨를 보이던 날 아침 일찍 Bubka가 필자 객실로 전화를 해왔다.

 

 

(Istanbul2008현지신문이 보도한 필자 등뒤에 부착한 Istanbul2008유치로고로 승리기원 코스프레장면)

 

 

 

(Toronto2008유치위원회가 IOC평가위원회 실사방문 기간 중 발행한 뉴스레터/사진 중 회색 패딩을 착용한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과 필자 외 평가위원들 및 Toronto2008관계자 들)

 

 

날씨가 춥지만 밖으로 나가서 뛰자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반바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로비에 등장한 필자에게, 밖이 너무 추우니 하다못해 목욕 타월 가운(bath robe)이라도 다시 입고 나오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타월 가운(gown)을 입고 토론토의 중심거리를 질주하였다.

 

 

 

(세 번째 유치후보도시인 Toronto2008현지방문 중 Cretien캐나다 총리주최 리셉션 장에서 좌로부터 김숙 당시 Toronto주재 한국총영사, 필자, Jean Cretien총리<1993~2003>, 김숙 총영사부인, 한국교민회장?)

 

(우로부터 김숙 주 Toronto한국총영사, 필자, 총영사부인, 한국교민여성회장?)

 

 

 

다섯 걸음마다 타월 가운이 벌어져서 다시 가운에 달렸던 허리끈을 동여매면서 뛰니까 이는 그야말로 코미디 영화촬영을 방불케 하였나 보다.

 

 

거리의 시민들도 웃고, 이후 그 장면은 IOC 평가위원단뿐만 아니라 토론토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에게도 한동안 회자하여 재미난 에피소드로 기억되었다.

 

이러한 해프닝이 생긴 후, Bubka는 필자의 외국명인 로키(Rocky) 이외에 옛 소련의 영웅,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따 「유리(Yuri)」라고 부르면서 모든 공개석상에서 동료 IOC 선수위원들뿐만 아니라 국제 스포츠 계 지도자들에게 필자를 자신의 「Twin Brother」라고 소개해오고 있다.

 

 

(IOC평가위원시절 필자와 Sergey Bubka IOC집행위원 겸 우크라이나 NOC위원장)

 

 

또 한 가지 추억은 필자와 함께 IOC 평가위원이었던 Els Van Breda Vriesman의 「오렌지색 양말(Orange Socks)」 사건이다. 필자는 오렌지색 넥타이를 공식만찬 등에서 즐겨 맨다. 이를 눈여겨본 Els 회장이 중국의 베이징과 일본의 오사카, 두 후보도시 방문 후 잠시 각자 귀국하여 3~4일 정도의 말미 후 세 번째 평가대상 후보도시인 캐나다의 토론토에 집결하자, Els 회장은 15명의 IOC 평가위원들이 재회한 자리에서 필자에게 선물을 준비해 왔노라고 하면서 「오렌지색 양말」을 펼쳐서 주면서,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반드시 착용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오렌지색은 네덜란드의 상징색깔로서 필자를 친 네덜란드화하자는 친화적 제스처였으므로, 필자도 이에 호응하여 기꺼이 착용하겠노라고 서약(?)하였다. 문제는 다음날 토론토 유치후보도시 방문 공식 공개일정 시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하였을 때 벌어졌다.

 

 

 

 

 

물론 출발 직전 Els 회장이 필자의 바지를 걷어보면서 「오렌지색 양말」 착용사실을 확인한 후, 이를 염두에 두었던 호주의 환경전문가인 Simon Balderstone IOC 평가위원이 캐나다 수상 및 VIP들과 캐나다 언론이 운집한 공식행사에서 필자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필자 바지를 슬쩍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짙은 색 바지 아래로 들어낸 오렌지색 양말은 그야말로 「휘황찬란」 그 자체였다. 참석한 모든 이들 눈을 즐겁게 하여 주었음은 물론 카메라 플래시(camera flash) 세례의 대상이 되었음은 불문가지이다.

 

그 사건 이후 토론토 유치후보도시의 의전담당 미모의 한 여성이 필자에게 오렌지색 넥타이 및 양말과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양복 왼쪽 주머니에 넣는 오렌지색 장식용 손수건(pocket handkerchief)을 선물하여 주었다.

 

따라서 필자는 스포츠 관련 만찬 등 행사 시 이 세 가지 오렌지색 물건 중 양말을 제외한 두 가지를 애용하게 되었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당시 강원도 평창의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설명회(Presentation)에서 공식 발표자 중 한 명이었던 필자는 이 오렌지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발표를 한 직후 네덜란드 IOC 위원 겸 황태자(Crown Prince) Prince Orange가 필자에게 다가와 “오렌지색 넥타이가 매우 인상적이며,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고 말해줌으로써 실제 투표 시 네덜란드 IOC 위원 3명 중 최소한 확실한 두 표는 확보하지 않았을까 유추해보기도 했다.

 

 

(2009 Copenhagen 개최 IOC총회에서 해후한 Prince Orange네덜란드 황태자 겸 IOC위원-현 네덜란드 국왕<좌측>과 담소 중인 필자)

 

 

 

각 유치후보도시 별 IOC 평가실사방문 최종 일정은 해당국 언론과의 단 1회뿐인 공식기자회견이다. 유치도시에 대한 실사 평가결과를 브리핑하여 주고 질의응답이 뒤따른다. 캐나다 토론토 유치 실사 최종일 숙소 호텔에서 기자회견장으로 가기 위하여 필자는 Hein Verbruggen IOC 평가위원장 및 몇몇 평가위원들과 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내내 작동이 잘 되었던 엘리베이터가 「동작 그만」으로 멈춰 서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30분이나 계속되어 갇혀버린 셈이 되었다. 모두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필자가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은 “이제 IOC 평가위원회(Evaluation Commission)를 대피위원회(Evacuation Commission)로 바꿔 불러야 할 것 같다.”였다. 필자의 이 말 한마디가 갇혀 불안에 떨던 10여명의 위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것 같다.

 

Hein Verbruggen IOC 평가위원장은 늦게 도착한 기자회견장에서 필자가 거명한 Evacuation Commission 이야기를 하면서 지각사유를 설명하였다.

 

 이것은 「복선의 배치」였다. 결국 가장 좋은 기술평가 점수를 받았던 것으로 여겨졌던 Toronto2008은 중국 Beijing2008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필자는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중국이 스포츠와 관련이 없는 인권 문제로 인해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자연발생적 평등권 보호 본능에 의해 사수(?)한 것이고 토론토나 파리 등 다른 후보도시를 겨냥한 것이 아닌 순수한 올림픽 패밀리의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입장의 발로였음을 밝혀둔다.

 

이러한 뒷이야기가 훗날 알려지자 중국 스포츠 계 지도자들은 그 후 필자를 중국, 북경의 2008년 올림픽 개최도시 선정에 있어서 숨은 공로자로서 드러내지 않은 예우를 해주고 있다.

 

2010년 평창의 동계올림픽 개최도시 결정 불과 1개월 전인 2003 6월 중순 당시 중국 NOC 신임사무총장 GU Yaoming 명의로 베이징에 공식 초청해 주어 중국 IOC 위원 및 NOC 관계자들과의 회동을 가능케 배려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가 중국에 만연하여 많은 이들이 중국 방문을 기피하는 시기였는데 김치성분이 체내에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체질인지라 서슴지 않고 SARS의 중심지역을 오로지 2010 당시 평창유치를 위해 용감하게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날아갔다. 막판 표 모으기에 뭔들 못하겠는가?

베이징공항에는 중국 NOC 여성 의전도우미와 영접요원이 필자를 맞이하였으며 예약된 5성급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필자는 아연실색하였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아무도 없다가 필자 도착사실이 통보되자 그제야 객실 열쇠를 주기 위해 두 명의 호텔 직원이 등장했으며, 8대의 호텔 엘리베이터도 단 1대만 가동되었고 필자가 유일무이한 승객인 것 같았다.

 

아침식사도 하루 전에 메뉴 예약을 하여 평소 100여 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조찬 장을 독점 전세 낸 듯이 혼자서 이용했던 진풍경을 체험하였다.

 

SARS 창궐지역을 무사히 다녀오고 1주일가량 뒤 노무현 대통령께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핵심 관계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프라하 현지 출발에 앞선 격려 오찬간담회를 베풀어 주셨는데 SARS 창궐지역 최근 열흘 이내 방문자는 애초 청와대 방문명단에서 제외되었다가 김진선 강원도지사(유치위원회 집행위원장)의 배려로 필자는 예외적으로 청와대 방문이 허용되었으나, 대통령과의 환영 악수 대상 명단에는 결국 배제되었다.

 

그리고 오찬 간담회에서는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된 뒤 행사 후에 노대통령과의 작별 악수는 나눌 수 있었다. 어쨌든 필자는 노대통령의 환영 악수 장면의 사진이 없다. 다행히 작별 악수 때에는 사진 촬영장면(아래)이 있었다.

 

 

 

 

그 후 필자는 중국 개최 국제스포츠관련행사에 공식 초청받는 일이 많아졌으며 2001 Beijing하계유니버시아드, 2005 5월에 개최된 2008 Beijing올림픽 유치기념 문화축전, 2005 10월에 4년마다 개최되고 있는 올림픽대회보다 참가규모가 더 방대한 중국전국체전(Nanjing) 등에 초청되어 준 국빈 급 예우를 받은 바 있다.

 

2005 5월에 베이징에서 개최된 2008 Beijing올림픽 유치기념 문화축전에 초청되어 참가한 필자는 함께 초청받은 장웅 북한 IOC 위원과 함께 베이징대, 청화대와 함께 중국 3대 대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민대학교이 객좌교수로 임명되어 임명장을 받고 특별 강연도 하는 등 가문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첫 번째 필자가 생각하는 가문의 영광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성공적 유치와 성공적 개최를 위한 길목에서 얽히고설켰던 국제 스포츠외교문제 해결 등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 10 28일 故 안상영 부산광역시장으로부터 수여 받은 (1)「제78호 부산명예시민증」이고, 두 번째는 2003 11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당시 바가반디 몽골 대통령 참석 하에 수여 받은 (2)「몽골 국립 올림픽 아카데미 제1호 명예박사학위」이며, 세 번째는 2005 5월 중국 3대 대학교인 (3) 인민대학에서의 「객좌교수」임명이며 네 번째는 한국최초로 국제적 스포츠외교활동을 인정 받아 206개국 국가올림픽위원회 대표들이 운집한 가운데 2008년 베이징개최 ANOC총회에서 수여 받은 (4) ANOC공로훈장 수상이다.

 

 

 

 

(몽골 국립올림픽아카데미에서 수여한 명예박사학위 증)

 

 

 

 

 

(중국 인민대학교 객좌교수 임명 및 추대 증서)

 

(2008년 베이징개최 ANOC총회 개회식 장에서 필자에 대한 ANOC공로훈장 수여 장면)

 

 

이 네 가지 스포츠외교로 일군 명예는 제 개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스포츠외교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은 영예이므로 이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4. 9. 11:37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유치스캔들(Scandal)여파와 IOC위원정년 70세 하향조정 개혁의 분기점]

 

 

1999년 일명 Salt Lake City 스캔들(Scandal)로 그 위상이 엉망진창이 되었던 IOC는 당시 비리에 연루된 IOC위원 10명을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심정으로 퇴출시키고 또 다른 10명의 IOC위원들에 대하여서는 공식경고를 주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당시 IOC로서는 절대 절명의 위기였다.
그 여파로 IOC IOC내부쇄신을 위하여 12개항에 달하는 IOC개혁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역경을 벗어나 새롭게 출발하지는 취지의 "새로운 지평"(A New Horizon) IOC공식 월간지 격인 1999년도 "Olympic Review"지 커버스토리(Cover Story)의 타이틀로 등장하였다.

 

 

1998 12,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가 촉발한 부패관련 주장이 불거짐에 따라 당시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즉각적으로 관련증거 수집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구성 6주일 후 IOC는 그 조사결과를 공표하고 연루된 IOC위원들의 징계를 IOC총회에 상정하였다. 그러한 IOC의 위기국면에서 4명의 IOC위원이 사퇴(resignation)하였고, 6명의 IOC위원이 퇴출(expulsion)되었으며, 10명의 IOC위원이 공식경고(official warning)를 받은 바 있다.

(IOC개혁 당시 故 사마란치 IOC위원장 캐리커쳐/caricature)


이러한 위기로 말미암아 IOC위원들은 IOC 기존제도의 현대화를 절감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1999년 동안 단시간 내에(in a very short space of time) 파격적인 결정사항(radical decisions) 등 다음의 12개 항을 결의하게 이르렀다:

 

1) 2006년 올림픽후보도시 선출 절차 개정과 IOC위원들의 후보도시 개별방문 폐지

2) 올림픽대회 시 올림픽대회참가 동료 선수들에 의한 15명 선수자격 IOC위원 선출

3) IOC위원 직 선출을 위한 IOC위원후보추천심의위원회(Nomination Commission for IOC membership) 신설

4) IOC위원의 위임재직기간(mandate)을 매 8년씩으로 하되 재선절차에 의한 재 선출허용 규정제정

5) IOC위원 정원을 최대 115명으로 제한

6) 위원장 임기 8년으로 제한하되 1회에 한해 4년만 추가 임기재선가능

7)국제연맹(IFs)자격 15, 국가올림픽위원회(NOCs)자격 15명 및 개인자격(individual members) 70명으로 IOC위원구성( 115)

8) IOC위원 연령제한 70세로 하향조정(Age limit lowered to 70)

9) IOC윤리원회(IOC Ethics Commission) 신설

10) 세계 반 도핑 기구(World Anti-Doping Agency/WADA) 신설

11)올림픽운동 수입금 내역(sources)과 사용에 대한 재정보고서 공표를 통한 재정투명성(financial transparency)확대

 12) IOC총회내용 보도진에 공개시작

 

1999 IOC 개혁 이후 IOC위원은 특권 귀족계급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고 공평무사하고 평등하고 차별대우가 없으며 일하는 무보수, 자원봉사, 선출 직 실무형 스포츠외교관으로 탈바꿈 되었다.




      (1999년 당시 전 세계 80개국 114 IOC위원 전체 사진/ 올림픽박물관)

                            (올림픽훈장 금장/올림픽박물관 소장)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4. 9. 11:02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7(태극기로 스포츠외교 휘날리다)]

 

(6편에서 계속)

 

태극기가 가장 많이 휘날리는 현장은 뭐니뭐니해도 스포츠와 관련된 행사(Events), 경기(Competitions), 시상식(Victory Ceremonies) 등이다.

 

 

(Atlanta1996올림픽 한국선수단 금메달리스트 기념촬영장면)

 

 

 

우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선수들의 유니폼(Uniform)에 부착된 태극마크를 떠올릴 수 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운동선수들의 숙원(long-cherished desire)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기까지 흘리는 피와 땀(blood and sweat)의 노력은 태극마크로 보상된다.

동·하계 올림픽대회(Winter and Summer Olympic Games; Olympics), 동·하계 아시아 경기대회(Winter and Summer Asian Games), 동·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Winter and Summer Universiade)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World Championships)등 대회 참가를 위해 선발된 국가대표선수단(Selected National Delegation/Team)은 출전을 앞두고 결단식(Inauguration meeting)에서 선수단장(Chef-de-Mission: Chief of Delegation)이 해당 경기단체(National Governing Body)또는 대한 올림픽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Korean Olympic Committee)으로부터 단기(Delegation Flag)로서 태극기를 인수받아 단상(platform)에서 그 태극기를 흔들면서 결전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다.

 

 

 

 

(Lillehammer1994동계올림픽참가 한국선수단 결단식 장면)

 

 

 

한국 선수단의 기수(Flag Bearer)는 대회 개·폐회식(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에서 태극기를 들고 선수단을 선도한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개회와 같이 종합대회에서는 선수단의 선수촌(Athletes Village/Olympic Village)에 도착한 다음날에 입촌식(Flag Raising ceremony 또는 Team Welcome Ceremony)을 갖게 되며, 입촌 시 해당국 선수단의 입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기게양식(National Flag Raising/Hoisting Ceremony)를 갖게 된다. 물론 국가연주(Playing of National Anthem)가 함께 수반된다. 개회식과 함께 대회가 시작되어 메달 수여식(Medal-Awarding Ceremony; Victory Ceremony)에서도 금, , 동메달리스트의 국기가 동시에 게양된다.

 

 

 

(Vancouver2010동계올림픽에서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되는 장면)

 

 

 

물론 국가연주는 금메달리스트 국가에 한한다. 이외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경우는, 선수가 금메달이 확정되고 나서 경기장을 돌면서 태극기를 휘날리기도 하고, 응원단에서도 응원(cheering)과 함께 태극기를 열렬히 흔드는 것이다.

 

 

필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1992년 제25회 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섭외 임원(Official in charge of International Relations) 겸 선발대장(Chief of Advance Party of Korean Delegation)겸 선수단장대행(Acting chef-de-Mission)으로 선수단 본진(Main Body of Korean Delegation)이 도착하기 열흘 전 현지에 도착하여 대회 조직위원회(OCOG; Organizing Committee of Olympic Games) 각 부서 관계자들과 한국선수단 입촌 및 대회 참가에 따른 세부 확인사항 최종 점검회의를 갖은 바 있다.

 

ID 카드 (Accreditation)발급, 선수단수송(Transportation), 선수촌 숙박(Accommodation), 의무관련사항(Medical Services), 통관(Customs Clearance Procedures), 의전(Protocol), 단장회의(Chef-de-Mission's meeting), 선수촌 식당메뉴(Menu of Olympic Village Restaurant), 차량배분(Allocation of Vehicles), 입촌식 절차(Procedures of Team welcome Ceremony)등에 대한 선수단 등록 종합 점검 회의(DRM; Delegation Registration Meeting)에서,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국기와 국가 호칭 문제였다.

 

 

 

 

 

 

왜냐하면, IOC 의전에서 대한민국은 KOREA(약어로 KOR)로 북한은 DPR KOREA(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약어로 PRK)로 되어 있는바, 비록 잘 훈련된 조직위원회 직원들이라 하더라도 현장에서의 혼돈으로 의전상 실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연주 시에도 중대한 착오가 생길 수 있었다.

 

더욱이 양측 남·북한 양측 국기는 그네들로서는 혼동되기 십상인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에, 한국 선수단 입촌식에 앞서 예행연습(rehearsal)을 갖자고 주장했고, 조직위원회 측의 배려로 다음날 한국 선수단 모의 입촌식(Mock Team Welcome Ceremony)를 하였는데, 그 당시 국기게양을 위해 태극기를 꺼내야만 했는데 엉뚱하게도 조직위원회 담당자가 인공기(북한국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도 주적(Main Enemy) 국기와 태극기를 혼동한다는 것은 국내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과실(Grave Mistake)로 심각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아찔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모의행사였고, 실제로 게양되기 직전에 발견되었기에 실제상황이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있을 정식 입촌식, 개·폐회식 시상식 등 많은 국기관련 의전행사를 고려하여, 조직위원회 측에 서면으로 정식 항의하였고, 선수촌 내에서 개최되는 일일 각국단장회의에서도 엄중항의 하였으며 조직위원회 측의 정중한 사과와 재발방지서면 약속이 뒤따랐다.

 

 

 

 

물론, 그 덕분에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기간 중 국가와 국기와 관련된 혼동은 한 건도 발생치 아니하였고, 그 후 대회조직위원회 의전 팀은, 이를 사과하고 대한민국국기를 길이 기리는 의미에서 대회 기간 중 규격에 맞추어 대형 태극기를 의전팀원들이 공동으로 손수 그려서 필자에게 선물하였다.

 

 

그 역사적인 태극기는 필자가 개장한 평산 스포츠 박물관(PyeongSan Sport Museum)에 전시돼 있다가 평창2018동계올림픽 후 설립예정인 강릉올림픽 박물관에 무상기증 올림픽수집품과 함께 강릉시청에서 전시배치를 위해 보관 중이다.

 

 

 

 

(필자가 강릉시에 기증했던 올림픽수집품 중 뺏지<Olympic Pins>일부가 평창2018 동계올림픽을 전후로 강릉에 설치된 평창2018올림픽 전시관에 전시된 바 있다)

 

 

 

(8편에 계속)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4. 8. 09:37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6(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Olympic Council of Asia)요약실록 및 OCA 규정위원장 및 OCA사무총장 도전실록)]

 

(5편에서)

 

1990 8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였다.

이 와중에서 Sheikh Fahad OCA 회장은 침공한 이라크 군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한 달 후인 1990 8월 중순 OCA 총회가 제10회 아시안게임 개최 도시인 중국의 Beijing에서 대회 직전에 열렸다.

Sheikh Fahad OCA 회장이 사망했으므로 선임 부회장인 스리랑카의 로이 데 실바(Roy de silva) OCA 회장 직무대행으로 OCA 총회를 주재하였다. 여러 명의 OCA 회장 후보 중에 사망한 Sheikh Fahad 회장의 친아들인 Sheikh Ahmad Al-Fahad Al-Sabah 쿠웨이트 NOC 위원장(이후 IOC 위원 직도 승계함)이 있었다.

 

(Sheikh Ahmad OCA회장과 함께)

 

Sheikh Ahmad 후보는 출마 당시인 1990년 만 29(1961년생)로서 당시 OCA 헌장 규정상 35세 이상이 되어야 하는 자격 조건에 문제가 있었지만 중동 국가 NOC 대표들과 친 쿠웨이트 인접국 NOC 대표들의 동조와 인도의 메타(Vice Air Chief Marshall Mehta) 사무총장 등의 교묘한 획책에 힘입어 1년 뒤인 91 9월 인도 New Delhi에서 OCA 특별 총회를 갖고 OCA 헌장 내용 중 회원국 대표들 1/3 이상이 찬성하면 자격 요건 1~2가지는 유예될 수 있다는 해당 규정을 적용시켜 Sheikh Ahmad를 적법한 후보로 만들어 놓고, 사전에 치밀하게 조직된 투표공작을 벌여 Sheikh Ahmad OCA 회장직마저 승계하였고 벌써 29년 째 거의 종신 OCA 회장으로 아시아올림픽운동의 최고 사령관으로 군림하고 오고 있다.

 

(Vice Air Chief Marshall Mehta 인도출신 OCA초대 사무총장과 함께)

 

필자는 4년간(1994-1998) OCA 규정위원을 역임하고, 불합리한 OCA 헌장 규정 개정 등을 통해 OCA를 개혁해 보려는 취지에서 1999 11, 쿠웨이트 개최 제18 OCA 총회에서 실시된 OCA 집행부 임원 선출 시 OCA 규정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여 홍콩의 A. de O'Sales 전 홍콩 NOC 위원장 겸 OCA 규정 위원장과 경선을 앞두고 있었으나, 적지 쿠웨이트에서 갖가지 방해 책동으로 인해 결국 Sheikh Ahmad OCA 회장과 차기를 위한 작전상 타협으로 후보 직을 사퇴하였다.

물론, 그 대신 OCA 집행위원인 아시안게임 수석조정관(Asian Games Chief Coordinator) 자리를 받는 조건으로. 그 이후 필자는 수석조정관 자격으로 2006년 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카타르 도하를 방문, 조직위원회 관계자들과의 협의, 경기장 시설 등 현지 점검 등 임무 수행을 하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2003 1월 역시 쿠웨이트에서 개최된 OCA 총회 시 OCA 창립 이후 최초로 OCA 사무총장으로 경선 출사표를 던졌으나, KOC 내부의 이해득실에 의한 사퇴종용과 평창2010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둔 한국으로서는 경쟁후보가 IOC 위원(인도의 Randhir Singh)이었던 한계상황으로 이 또한 후보 철회를 해야만 했다.

OCA 쪽으로는 오늘날까지도 주도권을 쿠웨이트로부터 쟁취하지 못하고 있지만 ASPU는 박갑철 회장 이후 다시 쿠웨이트가 2019년 현재 ASPU회장 직을 점유하였으나 2021년 예정된 ASPU차기회장 선거에서는 한국체육기자연맹(KSPU)현 회장인 정희돈 SBS기자가 유력하게 입도선매(?)한 상황으로 2019 8월 말 콸라룸푸르개최 ASPU총회 시 확인된 바 있다.

 

(20198월말 ASPU/AIPS Asia총회 시 열린 국제스포츠 서밋<Summit>에서 주제발표하고 있는 필자)

 

애초 규정에는 ASPU 회장을 4년씩 2차례(8)만 하도록 되어 있으나, 박갑철 ASPU 회장은 4차례나 연임한 바 있었다.

 

아시아 스포츠 언론 외교의 수장은 한국인이 주도해 왔다. 반면, 한국은 OCA 집행위원 급 임원이 전무하였다가 유경선 ASTU회장이 OCA환경과 스포츠분과위원장 자격으로 OCA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2019 3월 태국 방콕개최 제38 OCA총회에서는 유경선 분과위원장을 포함하여 유승민 선수자격 IOC위원(2016~2024) OCA선수관계분과위원장 자격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문대성 前 선수자격 IOC위원(2008~2016)역시 OCA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한국은 총 3명이 OCA집행위원 대열에 합류하였다.

 

4년 마다 OCA총회가 열리는데 향후 OCA 회장, 사무총장을 포함한 집행부 임원 선거 시 한중일 3각 연대체제를 전략적으로 가동하고 조직적으로 대비하여 한국이 OCA회장 또는 사무총장 국으로 아시아 스포츠외교의 실질적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가능하면 OCA 본부도 한국으로 가져오자. 꿈은 꾸는 자의 것이니까.

 

(7편에 계속)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0. 4. 7. 12:36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IOC위원되기까지 이회장과의 인연 Athens2004올림픽 에피소드]

 

이기흥 대한체육회(KSOC)회장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NOC자격 IOC위원으로 당당히 선출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그는 2019 626일 열린 제134 IOC총회에서 총 10명의 후보에 대한 찬반투표 결과 전체 64표 중 기권2, 찬성57표를 획득하여 NOC자격 IOC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기흥 NOC자격 IOC위원/출처: IOC website /좌로부터 José Perurena López Athens2004올림픽 당시 국제카누연맹<ICF>사무총장< ICF회장 겸 IWGA회장/IOC위원 역임>, 이기흥 당시 대한카누협회회장, ICF회장, 필자)

 

 

이기흥 신임 IOC위원은 한국최초로 국가올림픽위원회(NOC)자격 IOC위원이자 대한민국 통산 11번 째 IOC위원으로 등극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그는 대한근대오종연맹부회장 중 한 명으로 체육 계에 입문하였으며 이후 대한카누협회회장과 대한수영연맹회장을 거쳐 대한체육회장이 되었다.

 

Athens2004올림픽 당시 그는 아테네올림픽한국대표선수단임원 자격으로 아테네에 와서 최만립 IANOC-APOSA회장(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역임)을 경유 필자에게 이기흥 당시 대한카누협회회장이 국제카누연맹(ICF)회장 및 사무총장 면담을 부탁한 바 있다.

 

거듭된 이 메일 요청으로도 면담성사가 되지 않고 있다고 필자에게 토로하기도 하였는데 필자는 당시 Jacques Rogge IOC위원장 특별게스트자격으로 IOC본부호텔에 숙박하면서 올림픽 전 구역 출입 가능 AD카드소지와 IOC게스트 용 차량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마침 이회장이 한국선수단 차량을 가지고 와 그 차량 편으로 그와 함께 사전 연락이나 통보 없이 올림픽카누 경기장으로 갔다.

 

당연히 카누경기장에 있는 국제카누연맹(ICF)임원 실로 직행하여 그들과 아무런 제약 없이 만날 수 있었다. GAISF회장으로 활동했던 고 김운용회장을 단골로 수행했던 필자였기에 국제회의 시 안면이 많았던 그들은 먼저 필자의 이름(Rocky)을 먼저 부르며 반갑게 영접하여 주었다.

 

필자는 이회장을 적극적이고 호의적으로 소개해 주었으며 현장 통역과 사진사 역할까지 해 주면서 올림픽 이후 그 해 가을에 ICF회장 및 사무총장을 한국에 초청하는 것까지 이회장에게 권유하였었다.

 

 

(좌로부터 José Perurena López Athens2004올림픽 당시 국제카누연맹<ICF>사무총장< ICF회장 겸 IWGA회장/ IOC위원 역임>, 이기흥 당시 대한카누협회회장, ICF회장, 필자)

 

 

 

그들의 한국방문 시 이회장은 필자에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락을 취하지 않았으며 그 후로도 14년 간 일체 연락이나 접촉이 없다가 대한체육회장이 되어 평창2018 동계올림픽 관련 공식석상에서 마주쳐 형식적인 악수 정도만 나눴을 뿐이었다. 1년 후인 2019년 그는 드디어 NOC자격 IOC위원이 되어 있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개인자격 IOC위원, 국제연맹(IF)자격 IOC위원 및 선수자격 IOC위원에 이어 국가올림픽위원회(NOC)자격 IOC위원 카테고리 모두를 아우르는 IOC위원 보유국이 된 셈이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 IOC위원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2016~2024) 2명이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이회장은 지난 2016년 말 치렀던 대한체육회장 선거와 연관되어 동고동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소수의 Inner Circle그룹에 의존하여 지속적으로 자문을 받고 있다고 한다. 2020년 말 대한체육회장 재선을 희망하고 있는 이회장은 이제부터라도 폭 넓은 행보와 통 큰 도량으로 세계 스포츠 계를 상대로 일취월장하기 위해 국제적 경험과 식견이 출중한 한국 내 스포츠전문가들을 계파를 뛰어 넘어 발탁하여 소통하면서 대한민국체육의 미래를 설계하고 경영하기 위해서는 새 지평, 새 축복을 향하여 스포츠가 답”(New Horizons, New Blessings; Sport is the Answer.)임을 알고 실천하였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