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6편(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Olympic Council of Asia)요약실록 및 OCA 규정위원장 및 OCA사무총장 도전실록)]
(5편에서)
1990년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였다.
이 와중에서 Sheikh Fahad OCA 회장은 침공한 이라크 군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한 달 후인 1990년 8월 중순 OCA 총회가 제10회 아시안게임 개최 도시인 중국의 Beijing에서 대회 직전에 열렸다.
Sheikh Fahad OCA 회장이 사망했으므로 선임 부회장인 스리랑카의 로이 데 실바(Roy de silva)가 OCA 회장 직무대행으로 OCA 총회를 주재하였다. 여러 명의 OCA 회장 후보 중에 사망한 Sheikh Fahad 회장의 친아들인 Sheikh Ahmad Al-Fahad Al-Sabah 쿠웨이트 NOC 위원장(이후 IOC 위원 직도 승계함)이 있었다.
(Sheikh Ahmad OCA회장과 함께)
Sheikh Ahmad 후보는 출마 당시인 1990년 만 29세(1961년생)로서 당시 OCA 헌장 규정상 35세 이상이 되어야 하는 자격 조건에 문제가 있었지만 중동 국가 NOC 대표들과 친 쿠웨이트 인접국 NOC 대표들의 동조와 인도의 메타(Vice Air Chief Marshall Mehta) 사무총장 등의 교묘한 획책에 힘입어 1년 뒤인 91년 9월 인도 New Delhi에서 OCA 특별 총회를 갖고 OCA 헌장 내용 중 회원국 대표들 1/3 이상이 찬성하면 자격 요건 1~2가지는 유예될 수 있다는 해당 규정을 적용시켜 Sheikh Ahmad를 적법한 후보로 만들어 놓고, 사전에 치밀하게 조직된 투표공작을 벌여 Sheikh Ahmad가 OCA 회장직마저 승계하였고 벌써 29년 째 거의 종신 OCA 회장으로 아시아올림픽운동의 최고 사령관으로 군림하고 오고 있다.
(Vice Air Chief Marshall Mehta 인도출신 OCA초대 사무총장과 함께)
필자는 4년간(1994-1998) OCA 규정위원을 역임하고, 불합리한 OCA 헌장 규정 개정 등을 통해 OCA를 개혁해 보려는 취지에서 1999년 11월, 쿠웨이트 개최 제18차 OCA 총회에서 실시된 OCA 집행부 임원 선출 시 OCA 규정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여 홍콩의 A. de O'Sales 전 홍콩 NOC 위원장 겸 OCA 규정 위원장과 경선을 앞두고 있었으나, 적지 쿠웨이트에서 갖가지 방해 책동으로 인해 결국 Sheikh Ahmad OCA 회장과 차기를 위한 작전상 타협으로 후보 직을 사퇴하였다.
물론, 그 대신 OCA 집행위원인 아시안게임 수석조정관(Asian Games Chief Coordinator) 자리를 받는 조건으로. 그 이후 필자는 수석조정관 자격으로 2006년 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카타르 도하를 방문, 조직위원회 관계자들과의 협의, 경기장 시설 등 현지 점검 등 임무 수행을 하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2003년 1월 역시 쿠웨이트에서 개최된 OCA 총회 시 OCA 창립 이후 최초로 OCA 사무총장으로 경선 출사표를 던졌으나, KOC 내부의 이해득실에 의한 사퇴종용과 평창2010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둔 한국으로서는 경쟁후보가 IOC 위원(인도의 Randhir Singh)이었던 한계상황으로 이 또한 후보 철회를 해야만 했다.
OCA 쪽으로는 오늘날까지도 주도권을 쿠웨이트로부터 쟁취하지 못하고 있지만 ASPU는 박갑철 회장 이후 다시 쿠웨이트가 2019년 현재 ASPU회장 직을 점유하였으나 2021년 예정된 ASPU차기회장 선거에서는 한국체육기자연맹(KSPU)현 회장인 정희돈 SBS기자가 유력하게 입도선매(?)한 상황으로 2019년 8월 말 콸라룸푸르개최 ASPU총회 시 확인된 바 있다.
(2019년 8월말 ASPU/AIPS Asia총회 시 열린 국제스포츠 서밋<Summit>에서 주제발표하고 있는 필자)
애초 규정에는 ASPU 회장을 4년씩 2차례(8년)만 하도록 되어 있으나, 박갑철 ASPU 회장은 4차례나 연임한 바 있었다.
아시아 스포츠 언론 외교의 수장은 한국인이 주도해 왔다. 반면, 한국은 OCA 집행위원 급 임원이 전무하였다가 유경선 ASTU회장이 OCA환경과 스포츠분과위원장 자격으로 OCA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2019년 3월 태국 방콕개최 제38차 OCA총회에서는 유경선 분과위원장을 포함하여 유승민 선수자격 IOC위원(2016~2024)이 OCA선수관계분과위원장 자격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문대성 前 선수자격 IOC위원(2008~2016)역시 OCA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한국은 총 3명이 OCA집행위원 대열에 합류하였다.
4년 마다 OCA총회가 열리는데 향후 OCA 회장, 사무총장을 포함한 집행부 임원 선거 시 한중일 3각 연대체제를 전략적으로 가동하고 조직적으로 대비하여 한국이 OCA회장 또는 사무총장 국으로 아시아 스포츠외교의 실질적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가능하면 OCA 본부도 한국으로 가져오자. 꿈은 꾸는 자의 것이니까.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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