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3. 2. 5. 11:49

[우리들교회 주일예배말씀요약 (202325) 마태복음 51절에서4절로 (八福山에 갑시다 김양재 담임목사)]

 

 

<마태복음 5:1~4>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 온지라(And seeing the multitudes, he went up into a mountain: and when he was set, his disciples came unto him)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And he opened his mouth, and taught them, saying,)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y that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Prologue>

 

팔복 많이 받으세요-

디베랴 서쪽 막벨라 하틴산으로 추정(팔복산)

 

1.   제자가 돼야 한다(1~2)

 

가르치고 고치고 전파하는 사역을 하신 예수님

애아도’(헬라어)-보다, 알다, 관찰하다, 자각하다.

산이 없는 구릉 지역(평지 수훈)

누가-인자(평지에서 서서 가르치심)

6-제자들 가운데 12명을 사도로 세우시고 이 설교를 하셨다.

산상수훈 교훈은 마태가 시간 순으로 기록했다.

제자들이 3년 동안 양육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떠날 때도 자리다툼을 했다.

무리를 떠나 주님을 좇음(내리막이 아닌 오르막길이었다)

가장 큰 복은 말씀이 들리는 복으로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무리 가운데 있으면 먹을 것, 선물을 줄 텐데 무리가운데에서는 들을 말씀이 없다. 예수님께 올라가야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는 미완료과거로써 계속 팔복의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뜻이다. 제자훈련의 말씀은 혁명적 복의 개념으로 제자훈련에 역점을 두었다. 나는 교회를 통해, 또 소그룹을 통해 제자훈련을 했다.

나오기만 하면 신체적, 심리적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다. 모세도 그랬다. 감히 접근도 못했는데 천국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께 영육간에 친근하게 말씀이 들렸다.

 

(적용 질문)

 

Q1. 예배의 자리인 팔복산 현장 예배당에 올라와 예배하고 있나?

Q2. 팔복산에 올라오기를 방해하는 더 편하고 좋은 자리는 어디인가?

 

주일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반주를 자청했다.

결정적 순간에 내 신앙을 평가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2.   가난한 자가 가는 곳이다(3)

 

팔복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다. 원문은 시편 1장에 복 있는 사람과도 일맥상통한다. 복은 마카리오스, 바라크, 아쉐레로 표현된다

팔복은 인생의 일반적 한계를 넘어서는 단계에 이루어 지는 것이다

福이란 눈에 보기에 가득한 상태, 만족한 상태를 이른다

우리 주님은 입을 열어 제자를 가르치시자 마자, 복이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자’, ‘가난한 자 심령에서인데 일반적 생각으로는 복과 가난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복이 텅 빈 가난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아닌,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계속되는 모든 복들을 풀어주는 열쇠가 가난한 자의 복이다.

팔복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장차 이루어질 것에 대한 것을 가르쳐준다.

헬라어(가난; 페네스 물질적 개념) 프토코이(심령의 가난, 절대적 가난-웅크리다의 어원에서 유래)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를 수 있고 알아도 인정하지 않고 이를 물고 버티려고 하는 사람은 열등감으로 교만할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내가 가난해 져야지/ 하는 능동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데 성품으로 겸손한 것은 심령의 가난을 모르니까 겸손한 것이 아니다. 이미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다. 가난을 경험하지 않으면 겸손할 수 없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나는 곤고한 사람이고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다

시편69 다윗의 고난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자였지만 자신의 총명과 사랑스러움으로 사울에게 쫓겨 다녔다. 아들의 모함과 배신과 역모로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 인생은 이미 제자의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솔로몬은 하늘을 찌르는 열심으로 성전을 지었다. 그러다가 1000명의 여자를 거느리다가 여호와로부터 돌아섰다. 가난은 물질의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합리적인 유다가 행위 구원을 외친다.

내 자신의 가난에 절망하고 깨달았다면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하고 어디든지 쫓아가야 한다.

내가 주님의 뜻대로 못 사니 심령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주님 자체가 상급이 되었는데도 그렇게 못사니 심령이 가난하다.

날마다 애통할 일이 생긴다. 이혼을 하면 안 되고 죄인 줄 알면서도 안 되는 내 안의 것을 보면서 절망하는 것이 축복이고 상급이다.

우리는 가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가난하게사람들이 없어지게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환경으로, 심령이 가난하게 하기 위해서 괴롭히는 가족들로 인해서 내가 축복받은 인생이다.

 

(적용 질문)

 

Q1. 가난을 통해서 진짜 영생을 누릴 진짜 부자로 사시겠습니까?

택자로 돌이키기 위해 육이 무너지는 사건이 온다

Q2. 여러분은 심령이 가난하나? 그냥 가난한 가? 아니면 부자인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나?

Q3. 여러분이 가난해서 하나님이 쩔쩔매시면서 설명하시는 음성이 들리나?

 

 

3.   애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4)

 

애통은 상황이나 슬픈 장면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다. 압살롬이 죽었을 때 다윗이 슬피 울었을 때 요압이 그 눈물을 이해하지 못해 왕을 반역한 자를 위해서는 울고 충성한 자를 왜 미워하냐?’고 물었다. 다윗의 눈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육적으로 가난하면 원통해 한다. 질병에 걸려도 다 원통이다. 이게 너 때문이다. 자식, 남편, 시어머니 때문이다. 원통이 절통이 된다. 원통은 병이 낫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지옥을 산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사람의 위로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위로를 못 받는다. 나와 너의 구원을 위해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흘리는 눈물이 애통함이다. 죄 때문에 울어야 되는 것이 base로 깔려야 한다. 죄인이라는 말이 도무지 나와는 상관이 없다. 안 들리니 비난하고 조는 것이다. 병 낫기를 바라고 자기 고통에 갇혀 슬퍼하는 자와 같이 있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내 죄를 보면 애통하게 되고, 안 되는 그 사람 때문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 리라) 갈수록 그와 똑같은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이 나온다. 나에게 애통을 가르쳐주는 최고의 공로자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끈질긴 죄성을 계속 인정해야 하는데 자기 열심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어렵다

야곱은 20년 동안 자기 죄를 못 보았다. 하나님은 야곱의 문제를 제거하신 것이 아니다. 타락된 본성, 교만이 내 원수이다. 내 죄를 아는 것이 기도 응답이다.

캄캄한 곳에서 싸우시고 환도 뼈를 위골 시키셨다. 하나님을 붙들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내가 가게 하지 않겠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름을 물으셨다. why? 야곱이라고 대답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이겼다라는 의미의 이스라엘이 되었다

이기적인 이 세상에서 내 이기적인 죄성을 보라고 똑같은 에서와 라반을 붙여 주셨는데 미워했다. 내가 똑같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악함은 내 악함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내가 똑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다.

파라 칼레오(성령의 위로하심)-내 죄를 위해 애통하고 직면할 때 성령이 안아 주시고 위로해주신다.

애통이 크면 위로도 크다. 사람의 위로는 너무 얄팍하다.

토마스 왓슨-“복음적인 애통은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것이다.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상처가 난 사람과 같다. 모든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 애통이다참된 회개자는 낱낱이 죄를 고백하고 슬퍼한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위로, 성령의 위로를 받게 된다

 

(적용 질문)

 

Q1.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애통하나? 소중한 것을 상실해서 애통하나? 자신 때문에 절망하여 애통하나?

Q2. 공동체 안에서 위로를 받기만 하나? 위로를 전하는 통로가 되고 있나?

 

<공동체 고백>

박사님, 교수님인 여자. 맞선 상대를 100명을 만났다. 남편감은 중소기업의 영업팀장 이라고 듣고 결혼했다

남편이 다 맞춰주어서 결혼을 했는데 연봉을 속였더라. 돈을 안 가지고 왔다. 시어머니는 남자가 다 그렇다고 했다. 남편은 가난했었다. 그냥 싸웠다. 온라인으로 남편에게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따라고 했는데 알아보니 고졸. 아들이 이 아빠를 너무 좋아한다.  속인 자보다 속은 자가 죄가 더 큰 것이다

 

<Epilogue>

 

1)  가장 큰 복은 말씀이 들리는 복으로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2)  예수님께 올라가야 말씀을 들을 수 있다.

3)  결정적 순간에 내 신앙을 평가하기에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4)  팔복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다. 팔복은 인생의 일반적 한계를 넘어서는 단계에 이루어 지는 것이다

5)  福이란 눈에 보기에 가득한 상태, 만족한 상태를 이른다

6)  팔복 받은 자에게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며 이 세상이 아닌,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7)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계속되는 모든 복들을 풀어주는 열쇠가 가난한 자의 복이다.

8)  팔복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장차 이루어질 것에 대한 것을 가르쳐준다.

9)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를 수 있고 알아도 인정하지 않고 이를 물고 버티려고 하는 사람은 열등감으로 교만할 수 있다.

10)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내가 가난해 져야지하는 능동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데 성품으로 겸손한 것은 심령의 가난을 모르니까 겸손한 것이 아니며 이미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다.

11) 가난을 경험하지 않으면 겸손할 수 없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나는 곤고한 사람이고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다

12) 내 자신의 가난에 절망하고 깨달았다면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하고 어디든지 쫓아가야 한다.

13) 내가 주님의 뜻대로 못 사니 심령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14) 주님 자체가 상급이 되었는데도 그렇게 못사니 심령이 가난하다.

15) 날마다 애통할 일이 생긴다. 이혼을 하면 안 되고 죄인 줄 알면서도 안 되는 내 안의 것을 보면서 절망하는 것이 축복이고 상급이다.

16) 하나님이 축복하신 환경으로, 심령이 가난하게 하기 위해서 괴롭히는 가족들로 인해서 내가 축복받은 인생이다.

17) 육적으로 가난하면 원통해 하는데 질병에 걸려도 다 원통이고 이게 너 때문이며 자식, 남편, 시어머니 때문이기에 원통이 절통이 되어 원통은 병이 낫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지옥을 산다.

18)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사람의 위로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위로를 못 받는다.

19) 나와 너의 구원을 위해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흘리는 눈물이 애통함으로 죄 때문에 울어야 되는 것이 base로 깔려야 한다.

20) 죄인이라는 말이 도무지 나와는 상관이 없어 안 들리니 비난하고 조는 것인데 병 낫기를 바라고 자기 고통에 갇혀 슬퍼하는 자와 같이 있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21) 내 죄를 보면 애통하게 되고, 안 되는 그 사람 때문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 리라) 갈수록 그와 똑같은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되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이 나온다.

22) 나에게 애통을 가르쳐주는 최고의 공로자가 되는 것이며 자신의 끈질긴 죄성을 계속 인정해야 하는데 자기 열심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어렵다

23) 야곱은 20년 동안 자기 죄를 못 보았으며 하나님은 야곱의 문제를 제거하신 것이 아니며 타락된 본성, 교만이 내 원수이므로 내 죄를 아는 것이 기도 응답이다.

24) 이기적인 이 세상에서 내 이기적인 죄성을 보라고 똑같은 에서와 라반을 붙여 주셨는데 미워한 것은 내가 똑같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25) 상대방의 악함은 내 악함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것인데 내가 똑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다.

26) 파라 칼레오(성령의 위로하심)-내 죄를 위해 애통하고 직면할 때 성령이 안아 주시고 위로해주신다.

27) 애통이 크면 위로도 크지만 사람의 위로는 너무 얄팍하다.

28) 토마스 왓슨-“복음적인 애통은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것으로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상처가 난 사람과 같은데 모든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 애통이다

29) 참된 회개자는 낱낱이 죄를 고백하고 슬퍼하는 것이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위로, 성령의 위로를 받게 된다

30) 속인 자보다 속은 자의 죄가 더 큰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