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21. 1. 5. 16:20

[대한체육회장후보 경쟁에서 단일화를 위해 결단을 내린 윤강로출마자의 스포츠외교관인생외길과 스포츠 비전(Vision) 2021]


 

1982년 대한체육회 특채 입사를 기점으로 39년간 체육계에 몸담아 왔다. 그 긴 세월 동안 국내외 스포츠 동향을 살피고 스포츠 외교현장에서 대한민국 스포츠외교관으로 치열하게 활동해온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벌써 총 20여권의 책을 편찬한 바 있다.

 



 


2021년 시작되는 새로운 대한체육회 100년을 준비하고자 대한체육회장선거에 출마하고자 출사표를 던지기도 하였다.


정치적 성향의 대한체육회장선거 판에서 가능한 현 대한체육회장체재를 개혁에 동참할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루려고 두 차례 회동을 주선하고 조율하였으나 인간 속성 상 단일화는 사실상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대한체육회장 후보등록 마지막 날 공허한 후보 단일화를 지향하며 출마의 꿈을 접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온 IOC집행위원 한 분이 문자로 필자의 대한체육회장 출마 선거캠페인 근황을 묻기에 후보 단일화를 위해 살신성인하는 마음으로 후보직을 사퇴하였다고 알려주니 “It is noble of you”(그것은 고귀한 결단이요)라고 답신하여 주었다.




 

아래 내용은 필자의 대한체육회장 출마를 전제로 한 언론 매체에 보냈던 인터뷰를 통해 밝힌 필자의 스포츠외교인생과 향후 비전을 담은 것이다.

 

 

01.  2006 10월에는 국제스포츠무대 체험담을 담은총성 없는 전쟁을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올해 최근 "Thomas Bach IOC 위원장과 저자 윤강로"라는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두 단행본의 주요 내용과 차이점들을 명료하게 말씀하여 달라.

 

-2006년 출간한총성 없는 전쟁은 근대올림픽 개최 110주년과 필자의 출생 50주년을 맞이하여 펴낸, 아마도 그 장르와 범주에 있어서 세계최초일지도 모르는 필자 개인의 생생한 체험스토리를 통해 국제스포츠외교 무대를 실감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취지에서 출간하였다. 당시 전세계 203개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 National Olympic Committee)들도 동참하여 자국 국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올림픽의 날 달리기 대회(Olympic Day Run)」등 각종 기념행사를 6 23일 전후의 「올림픽 주간(Olympic Week)」에 개최함으로써 올림픽운동의 전 세계 확산에 IOC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필자는 공교롭게도 아니 신기하게도 「올림픽의 날」이자 「IOC 창립기념일/생일」이기도 한 양력 6 23(음력 5 18)에 태어났다. 필자가 지금까지 줄곧 올림픽운동 외길인생을 걸어온 것도 따지고 보면 언필칭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2005년은 UN IOC가 정한 「스포츠와 체육의 해(The year of Sport and Physical Education)」였으며 2006년은 쿠베르탱 남작이 부활시킨 근대올림픽대회 개최 110주년이 되는 해였다. 6 23일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창립 112주년이 되는 생일날이었다. 또한 필자의 양력 생일이기도 하다. 근대올림픽 개최 110주년과 필자의 출생 50주년을 맞이하여 펴낸, 아마도 그 장르와 범주에 있어서 세계최초일지도 모르는 필자 개인의 생생한 체험스토리를 통해 국제스포츠외교 무대를 실감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펴낸 책이었다.

 


 

-2020 10월 출간한스포츠외교론은 원래 8개월간 집필을 거쳐 탈고한  대한민국스포츠외교실록방대한 분량의 1/10정도에 해당하는, 말하자면시즌 1’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의 간략한 역사에 이은 IOC-NOC등에 대한 스포츠외교小史-스포츠외교개론-스포츠외교현장-평창3수 끝에 유치에 성공한 평창2010-2014-2018유치이야기-필자의 한국 최초 IOC평가위원 시절 숨 막히는 야사 및 여러 가지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 책에 담았다. 특히 토마스 바흐 현 IOC위원장이 신간 책스포츠외교론에 대하여 찬사 겸 추천 메시지를 보내 주어 책 출판이 더 한층 빛을 발하게 되었다. 필자는 위 두 권 뿐만 아니라 2012년에현장에서 본 스포츠외교론’(대경북스 출판)을 출간한 바 있고 영문 판 스포츠외교 및 올림픽운동 전반에 걸친 이론과 현장이야기를 담은 ‘When Sport Meets the World Over Five Rings’이란 책을 출간하여 당시 IOC위원장을 비롯한 전체 IOC위원-전체 국제연맹회장단-전 세계 주요각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주요 외신기자 등 세계스포츠지도자들 모두에게 배포한 바 있다, 그 외에스포츠영어(한국체육기자연맹)’, ‘스포츠외교 마스터플랜(체육인재육성재단)’ ‘국제스포츠동향집 5출간을 비롯하여 2008년 시작한 블로그(윤강로의 스포츠 세상)를 통하여 국제스포츠동향 및 스포츠외교관련 정보 등을 전파하며 국내 체육인 공동체가 국제스포츠동향에 친숙하도록 거의 날마다 핵심동향소식을 요약 및 분석하여 공유해 오고 있다.

 

02. 지난 11 16, 내년 1월에 치러지는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는데, 본인이 왜 적임자인지, 세가지 항목으로 구분하여 특장점들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밝혀 달라.

 

이번 선거는 세 가지 면에서 기존의 선거와 다르다고 본다. 첫째로 폭력의 문제로 인해 스포츠계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둘째로 정부에서는 엘리트 스포츠계를 악으로 보고 유럽식 클럽제도에 기반한 생활체육을 선보여 체육계의 전면적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실내 스포츠가 크게 위축되고 실외 스포츠도 무관중 경기 조건하에 부분적으로 치러지는 등, 전반적인 체육계의 위기 국면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에 비해 조정자, 관리자, 집행자의 이미지보다는 방안 창출자, 해결자, 리더의 역할이 중요해 졌다.

 

1)  첫째로, 윤강로는 선진 스포츠 현장을 누비며 쌓은 경험과 관록으로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한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들을 제시할 수 있다. 폭력의 문제는 냉전시대의 산물이며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엘리트주의의 부작용이다. 그런데 이것을 급격하게 바꾸는 혁명적 변화를 통해 뭔가를 이루려고 하면 현 세대의 선수들이 희생당하게 되고, 한국 스포츠계는 급속한 위축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외 각국의 사례들을 토대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며, 이것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마련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정보를 축적해 온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대한체육회 26년 근무(국제과장-비서실장-국제부장-기획조정실장-국제사무차장-KOC위원 겸 위원장 특보)하면서 우리나라 체육계의 모든 사안과 구조적 취약점과 개선 대상 국내외 핵심현안들을 누구보다 철저하고,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문제점-취약점에 대한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하고 발전 가능한 대안을 적시 적기에 적용하도록 제시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국내외 체육 현장친화적으로 행동하는 국내외 스포츠 계에서 검증된 후보이다.

 



2)  둘째로, 유럽의 클럽제에 기반한 생활 체육 육성안과 엘리트 선수 지원책은 꼭 하나는 없어지고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고 서로 상생하면서 더 나은 한국형 체육 제도를 만들어야 할 문제인데, 이에 대해 소통하면서 실행 안을 제출하여 정부와 같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기에는 세계 각국의 조언을 들을 창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체육 분야에만 몰두한 인물들보다 체육 외교 분야에 몸담아 온 윤강로가 더 적합하며, 밀어붙여 성취하는 리더쉽이 아닌 상생의 리더쉽을 가진 윤강로가 체육 단체 및 학부모, 정부의 3자 사이에서 최적의 조정안을 이끌어 내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스포츠국제무대에서 40년 가까이 쌓고 다져온 은 인맥과 토마스 바흐 현 IOC위원장을 비롯한 IOC위원들은 물론 국제연맹회장단들에게 현장에서의 실력과 경험과 신뢰를 바탕(IOC평가위원-ANOC공로훈장-OCA집행위원-중국 인민대학 객좌교수-몽골명예박사)으로 한국스포츠가 당면한 과제와 향후 해결요망 국제적 위상강화 및 가맹경기단체 임직원들에 대한 국제스포츠무대 진출 및 국제연맹과의 돈독한 관계 증진 등에 실질적 기여를 함으로써 체육을 본연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체육회다운 대한체육회로 새롭게 탈바꿈하도록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하여 세계로 뻗어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일무이한 국제통 후보이다. 특히 2032년 올림픽 서울-평양 공동유치를 실질적으로 리드하고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과의 일대일 직접 교섭과 설득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차별화된 스포츠외교관이다.

 


 (Thomas Bach IOC위원장 및 정주영대한체육회장 겸 KOC위원장과 함께)

 


3)셋째로, 대한체육회장은 앞으로 정부 예산을 받아서 실행만 하는 집행 기관에서 벗어나 바이러스 상황 속에서 체육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이를 정부에 적극적으로 제안하여야 할 것인데, 이런 구체적인 기획력과 실행력에 있어서도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증명된 실력이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존의 정치지향적이고 구태의연한 지위와 자리에 연연하는 패러다임 답습이 아니라 체육인들의 실질적 소망과 염원이 이루어지도록 체육인이 원하는 방향을 최대한 수렴하여 가맹경기단체는 물론 체육 동호인들이 실행 가능한 희망과 비전을 가지고 활약할 수 있도록 반영하겠다. 선순환적 전략적 가치를 최우선시하여 쌍방향 소통을 이루어 내도록 2021년부터 대한체육회의 새로운 100년 시작이 힘차게 도약하는 추진동력을 글로벌 마인드로 업그레이드하겠다. 그러한체육주도성장을 이루어내는 새로운 인물로 새 역사를 체육인들과 함께 쓸 수 있도록 하여 이 시대를 주도하는 테마로 스포츠가 답임을 글로벌 마인드로 증거 하겠다. 체육이란 사명을 띠고 체육계에 몸담으며 시작했다가 체육의 본연의 사명에 따라 섬기고 획기적 체육발전의 사명을 완수하면서 임기를 마칠 수 있는 내공 충만한 리더가 되겠다. 40년 가까이 국애외 체육계에서 크고 자라나 어마어마하게 내실 있는 봉사와 헌신을 할 수 있는 순도 100% 순수 평생 체육공동체 출신, 쌍방향 국내외 체육계 소통력 검증과 실행 가능성이 담보된 유일무이한 후보이다.

 

02.  지난 2004년 대한체육회 국제사무차장직을 끝으로 공직에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을 만들어 원장으로 취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민간에서 어떤 일들을 중점 연구하면서 실사구시 심혈을 기울였나?

 


 

-현업에서 물러나면 일하던 곳을 속세로 여기고 등지는 경우도 있으나 윤강로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아온 만큼 스포츠 미래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 활동을 해 왔다. 특히 엘리트스포츠와 생활 체육 간에 편을 가르고 하나를 악으로, 다른 하나를 선으로 보는 현재의 시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며, 대한체육회가 나서서 갈등을 조정하고, 한국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미래상을 마련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거듭하다가 대한체육회장에 출마하게 되었다. 대한체육회 명예퇴직 후 곧바로 비영리법인단체인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ISDI)을 설립하였는데, 주요 업무로는 국제스포츠동향이란 제목으로 매일 쏟아져 나오는 각종 스포츠 최신정보들을 정리하여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그곳은 국제스포츠외교현장에서의 경험과 인맥 그리고 각종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을 지속 발전 가능한 궤도에 자리매김하게 할 차세대 스포츠 외교 인력의 굳건함을 지켜 나가기 위한 선구자적 실험실로 활용하고 함께 나가자는 취지로 출발하였다. 2004년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설립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거의 매일 아침마다 각종 외신을 종합 발췌 요약하고, 분석을 요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평가, 분석 및 전망도 곁들인 국제스포츠의 종합분석 자료를 세계 스포츠 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장르 상 세계최초의 시도로써 유익하다는 평가를 얻었다. 2004 1년 동안은 매일, 2005년부터는 주간단위로 주로 체육계 인사들, 대한체육회 및 대한올림픽위원회 임직원들, 일간지 및 방송관련 스포츠기자들, 가맹경기단체 관계자들, 각 체육대학 교수들 및 체육 유관단체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300여 명에 달하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인터넷상의 이메일을 통해 완전 무료로 보낸 바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It takes more than pearls to make a necklace)”라는 말도 있듯이, 그냥 읽고 지나쳐버려 귀중했던 국제스포츠계 정보와 소식들이 그대로 사장되며 「국제스포츠외교사적 가치」의 중요성과 쓰임새가 세월 따라 소멸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후학들에게 「국제스포츠외교동향실록」으로서 선구자 격이며 독보적인(unique) 스포츠 역사적 기록물로서 계보를 이어가고자하는 필자의 소망과 열정이 함께 어우러져 제2, 3, 4탄 등도 그 빛을 보게 되었다. 2005년 이맘때보다 조금 이른 시점에 국제스포츠동향 보고서(2003.11~2005) 첫 작품을 이 세상에 선보인 바 있었다. 지난 14년여 동안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으로서 활동하면서 국내외 많은 분들의 응원과 도움에 힘입어 여러 가지 좋고 유익한 일들이 필자를 축복해 주었다. 「관동대학교 스포츠 레저학부 겸임교수」, 「몽골 국가올림픽아카데미 제1호 명예박사학위수여」, 「몽골 국가올림픽위원회 사상 최초 외국인 NOC 위원」, 「중국 인민대학교 객좌교수」, 「대한 철인3종 경기연맹 부회장」, 「국내 유일의 개인스포츠박물관 개관」, 「한국체육기자연맹 공로상 수상」, 2010-2014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2018년 평창유치성공과정에서 전세계 IOC위원 표심확보 실질적 최선봉장 역할 및 활동,「평창2018조직위원회 위원장 보좌역으로 성공적 조직 운영에 최첨단 자문 및 IOC최종보고서 영-불 최종감수자」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 겸 KOC위원장 특보」,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공로상 수상」, 「한국체육기자연맹 자문역 위촉」 등을 이룩할 수 있었다. 2015년 평창2018동계올림픽 빙상개최도시인 강릉시에 30여년 수집하여 평상스포츠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던 올림픽 및 스포츠관련 수집품 일체를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2018 4월 말 강릉올림픽박물관이 IOC올림픽박물관과 협력 단체로 등록 및 활동하도록 IOC위원장-올림픽박물관장-강릉시장 3자간의 사상초유의 양해각서(MoU)체결성사에 전방위로 기여함으로 평창2018 지속가능 유산 1호의 문을 활짝 열었다.

 


(IOC본부 현관에 설치된 근대올림픽 주창자 쿠베르탱 남작 제2IOC위원장 흉상 앞에서)

 


4. (02 항목과 부문 연관하여)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몰락한 이후 한국스포츠 외교의 영향력은 계속하여 하락세를 걷고 있는데, 이런 추세를 반전시킬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국제스포츠 무대에서의 활약상들을 회고하면서 그 설득력 높은 근거들을 몇 대목 선명하게 들려 달라.

 

-한국 스포츠계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한국의 외교적 위상이 줄어든 탓도 아니요,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려워져서도 아니다. 다만 국제무대에서 끊임없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을 지속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세계 체육계에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하고 키워 내야 한다. 그러나 국제 스포츠계는 결국 영어로 소통하는 곳이며, 영어 소통 능력이 부족하면 실력이 있어도 제 목소리를 의견을 내고 대안을 제시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국제단체나 기구도 마찬가지이며, 그 결과 영어에 약한 일본이나 중국의 발언권이 국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데 반해 영어권에 속하는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지도자들이 오히려 쉽게 국제기구의 수장이 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 국제 스포츠계에서 수 십 년간 역량을 쌓아 온 윤강로에게 대한체육회장직을 맡기는 것은 향후 대한민국 스포츠계가 세계 스포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를 잘하는 가맹경기단체를 비롯하여 전방위적으로 체육인을 국제 스포츠계에 데뷔시키도록 국제스포츠계 인맥 연결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성장 시켜야 하는데, 이런 역할도 자타가 공인하는 국제통인 윤강로가 적임자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는 영어를 잘 하는 심판진이 부족해 국제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부족하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이에 대한 타개책을 마련함으로 한국 체육계가 국제 체육계에서 저변 확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윤강로는 열심히 뛸 것이다. 13 2002년 국가올림픽위원회 총 연합회(ANOC) 콸라룸푸르 총회 시 IOC 집행위원회와 NOCs와의 연석회의 발언을 통해 당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에게 기존 올림픽모토(Olympic Moto) “Citius, Altius, Fortius"(Faster, Higher, Stronger: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를 근대올림픽 스포츠종목의 진화에 걸맞게 조율(Fine-Tuning)하여 V.I.P.(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 : 보다 생동감 있게, 보다 감명적으로, 보다 정확하게)로 과감히 바꿀 것을 공식 건의하였고 당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필자가 개인 지적재산권을 요구하지 않을 경우, 긍정적으로 고려할 용의가 있다.(Unless you claim your personal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we will positively consider it.)」고 답변하였다. 지난 20여 년간 한 차례도 빠지지 않아 개근상감인 ANOC 총회에서의 필자의 출석율과 총회 시 발언 내용 등은 물론 그동안 필자의 국제스포츠 외교무대에서의 궤적을 지켜보았고, 필자를 한 식구처럼 아껴주었던 당시 마리오 바스케즈 라냐 ANOC 회장 겸 멕시코 IOC 집행위원은 회의가 끝나면서, 필자가 단상으로 가서 작별인사를 건네자귀하는 21세기 쿠베르탱 일세.(You're the 21st Century Coubertin.)”라고 별명을 붙여 준 바 있다. 스포츠외교인생 40년간 성취한 국제외교실적과 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윤강로 스포츠외교인생 40년간 성취한 국제외교실적 10가지>


(1) 세계 최초로 김치(K-Food)를 올림픽선수촌 공식 메뉴로 채택 공로(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이후~현재까지

(2)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기간 중 한국최초로남북한NOC 간 스포츠교류협정 체결 막후 교섭 및 성사(남측: 이연택 KOC위원장/북측: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3) 세계 최초로 IOC금지약물리스트에서 카페인(Caffeine) 목록에서 제외토록 ANOC총회 공식 발언 3차례 후 성사(2003년 경)

(4) 세계 최초로 ANOC총회-IOC집행위원회 연석회의 석상에서 태권도의 올림픽공식종목 채택 당위성 최초 공식 건의(1980년 대)

(5) 세계 최초로 올림픽 표어(Motto) “Citius, Altius, Fortius”(Faster, Higher, Stronger)보완 Update 대체 표어(VIP: More Vividly, Impressively, Precisely) ANOC총회-IOC집행위원회에서 Rogge IOC위원장에게 제안 및 공식 긍정적 답변(2003년 개최 Kuala Lumpur ANOC총회)

(6) 한국 최초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대한체육회 IOC TOP마케팅 배당 지분 2배 이상으로 증액 실현(당시 IOC마케팅 대행사/Meridian) 대표 협상 및 타결(삼성의 TOP파트너 기업 참여 혜택/1997 이래)

(7) 아시안게임 사상 최초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OCA지불이행각서 체결 성사 및 그에 따른 미화2천만불( 240억원) 홍콩HSBC은행 위탁 예치 및 대회 종료 후 환불 시 상당 금액의 환차 이익 발생토록 기여

(8) 동계아시안게임 사상 최초로 1999년 강원 동계아시안게임 OCA지급수익금 OCA와 교섭 결과 미화300만불(36억원) 절감 및 선수촌 숙박 시설 중 전체침대대신 온돌방+(Korean mattress)대체 제공 각국선수단장설득 결과 미화 200만불( 24억원) 도합 60억원 대회 경비절감 직접 기여

(9) 올림픽 사상 최초로 평창2018동계올림픽 이후 빙상개최도시 강릉 시장과 Thomas Bach IOC위원장과 IOC 올림픽 박물관장 3자간 강릉올림픽박물관(GOM)이 스위스 로잔느 IOC본부에서 MoU체결 교섭 및 서명식 막후 교섭 및 체결 성사

(10) 한국 체육 역사 상 최초로 양평 소재 평산 개인스포츠박물관 건립 운영(2004~2015) 후 강릉시 요청으로 35년 간 수집 전시 중이던 올림픽 기념품 스포츠 관련 수집품 3만여점 강릉시에 무상 기증 (강릉올림픽박물관 용: 평창2018 유산 제1)   


 



05. 2020년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도쿄 하계 올림픽이 2021년으로 7월 개최로 순연되었다. 스포츠는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다.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한국의 협조가 양국 간 관계의 경색 국면을 해빙무드로 조성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일본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1년 연기된 도쿄2020올림픽 개최 실행계획으로 인해 최근 일본 미디어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Tokyo2020올림픽이 1년 연기됨으로써 현재 추산 치로는 약 2000억엔(US$ 19 2천만불/2.31조원)에다가 코로나바이러스 대책비용으로 약 1000억엔(US$ 9 6천만불/ 1 1520억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Tokyo2020올림픽을 2021년에 치르기 위해 일본은 예비비로 책정된 US$3억불( 3,600억원)이 가용 되느냐 에 따라 현재 책정된 대회 조직 예산 US$126억불(15.92조원)에 추가로 US$28.8억불(3.456조원)이 더 들게 된 셈이다. 올림픽정신과 이념은 순수하며 높은 차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웃 일본은 원전 사고를 덮고 자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올림픽을 이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분명 짚고 넘어갈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취소된다면 국제 스포츠계로서는 큰 낭패이며 이는 막아야 할 일임에는 틀림 없다. 양국 간 여러 갈등 상황을 고려해서 큰 틀에서 전면적인 협력이나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체육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방법적 차원의 협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06. 윤원장은 2032년 하계올림픽 서울평양 공동유치위원회 서울시유치특보(국제분야)를 맡고 있기도 하다. 성사 가능성을 높이려면 남북한 체육교류가 일단 활성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남북체육교류는 양국 정부나 민간 차원을 비롯해서 국제적으로도 매우 환영하고 있으며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희소하다. 이는 스포츠가 가진 순기능이며, 정치적 갈등 상황 속에서 인류 공동의 화합을 위한 전진을 앞당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2032년은 12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도 할 수 있으나 실제 실행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 체육 교류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최근에는 탁구를 통한 남북한 교류의 물꼬가 이어져 왔는데, 앞으로 이를 더 확장하기 위한 여러 실행방안들이 추가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일례로 남북한 대학생들 간 같이 참여할 수 있는 탁구 대회를 연다거나, 남북한 대학교간 교류 협력전 같은 형태의 민간 교류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각종 세계 대회나 올림픽 등에 남북한 공동팀을 만드는 문제도 지속 발전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더 나아가서 탁구 이외의 종목들에서도 이런 선례에 따라 교류와 협력의 계기가 생기도록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제안하고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07. 2003 12월에는 몽골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으로 선임됨으로써 세계스포츠 사상 처음 다른 국가의 올림픽위원이 된 기록을 남겼는데? 스포츠 강국인 한국이 다른 분야에 비해 스포츠 후진국인 국가들에 후원이나 지원이 빈약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좌상: 몽골 H.E. Bagabandi대통령 및 H.E. Nambar Enkabayer후임 대통령-징기스칸/좌하: Magvan몽골 IOC위원-몽골명에박사학위수여자인 필자-Zagdsuren몽골 NOC위원장-문동욱 대구 계명대 교수)

 

-타 국가에 대한 지원이 빈약하다는 것은 물질적인 지원을 말하는 것 같다. 사실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 그 이면에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웃 국가인 일본의 경우는 전범국 이미지 희석을 위해 많은 지원책을 개발도상국들에게 만들어 지원해왔고, 중국의 경우는 아시아 권, 혹은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패권국으로서의 위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개발도상국들에 의도적인 지원을 해 왔다. 그에 반해 한국은 여전히 남북한 대치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는 자국의 안정화가 국제적으로 더 중요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많은 스포츠 지도자들이 해외에 진출하여 개발도상국 팀들을 키워내고 있으며 이는 수많은 나라에 한국인 태권도, 양궁, 탁구, 축구 등 많은 종목 지도자들이 진출해 있음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돕는다는 것은 결국 능력이 될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은 실제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등 기구가 실행하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사업을 통해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사회봉사 사업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 한국은 경제적인 분야느 물론 스포츠계에서 상당한 실력을 갖춘 선진국이며 선도국이다. 앞으로 나누고 베푸는 리더쉽을 더 확장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08. 한국 체육계가 이전 보다 한층 혁신해야 할 대목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현실적 개선안들에 대한 복안들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여 달라개선안들에 대한 복안들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여 달라.


-우선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엘리트 스포츠계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불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시점에 와 있다. 이를 위해서 아래와 같은 세부 방안들을 제안한다.

(1) 합숙 훈련은 가족과의 단절을 가져와 청소년기의 균형감 있는 성장을 저해하고, 운동을 그만 두었을 때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데 정서적인 어려움을 가져 온다. 특별한 훈련 캠프를 제외하고 일상적인 합숙 훈련은 앞으로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지도자들에게 정기적인 폭력 예방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3) 또한 유럽식 클럽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생활체육 육성 방안의 경우는 경착륙 보다는 연착륙을 도모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유럽 선진국들에서도 엘리트 제도에 준하는 국가대표 훈련 센터나 혹은 스포츠 학교 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엘리트 제도를 없애야 할 악습으로 보면 안 되며, 생활체육을 활성화 하면서 그 중에서 직업적인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선수들을 지원하기 위한 엘리트 육성 방안이 병행되어야 한다.

(4) 코로나 상황 속에서 스포츠 계가 침체되어 가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수가 줄어들어 가면서 생기고 있는 빈 교실들을 활용한 탁구장, 헬스장, 태권도장 등 여러 실내 종목들을 위한 시설들을 늘려가면서 체육인들과 연계한 학교 체육 활성화, 혹은 전문화를 시도해야 한다.

 

09. 한국은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메달 위주의 엘리트 체육 중심 국가이다. 대조적으로 생활체육은 낙제점 수준이다. 국민건강증진 관점에서 어떻게 균형 잡을 것인지, 세부적 묘책들을 들려 달라.

 

-생활체육이 낙제점 수준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의 생활 체육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국민체육센터나 각종 지원시설도 증가하고 있고, 정부 예산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코로나 시대 2021년 체육 예산이 17594억원으로 최근 확정되었다. 이는 2020년 본예산 16961억원 대비 634(3.7%)증액된 것이다. 생활체육분야는 일부 체육시설 건립사업의 종료로 2020년 예산 대비 410억원이 줄어든 8727억원으로 편성되었지만 생활체육프로그램 등의 지원은 2020년 예산 대비 267억원(4.2%) 증액된 6658억원이 편성되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민들의 삶 전체가 아직도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선진국들은 오후 5시면 퇴근해서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퇴근 시간이 늦고 운동에 전념하기 위한 전반적인 시간 여유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유럽적 토양을 만들려면 이런 전반적인 삶의 질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강구할 대책이 있다면 우선 학교 체육 활성화를 제안하고 싶다. 유럽 선진국들은 학생들의 학습량이 적고 체육 교과의 경우 2-3시간 동안 충분히 운동하고 샤워도 할 수 있으나, 한국은 학업을 중시하며 체육 시간마저 자습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한 시간 내에 운동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이동하고, 다시 곧바로 공부를 해야 하는 현재의 체육시간 형태는 운동을 하기에 매우 열악하다. 그러므로 체육 시간을 더 늘리고 샤워 시설이나 체육 관련 부교재들 더 확충해야 한다. 생활체육의 경우는 배드민턴, 탁구, 태권도, 헬스 등 실내 스포츠 종목 위주로 많이 확대되고 있으나 최근 코로나로 인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앞으로 유럽식 클럽제가 도입되면서 각 종목별로 클럽을 후원하는 기업체가 연계된다면 자생적인 활성화가 가능해져 갈 것으로 기대된다.

 

10.(08항목과 부문 연관하여) 한국 스포츠 지도자들은 여전히 군대식 위계로 선수들을 관리 감독하는 후진적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선수 폭행이나 학대로 인해 비극적 선택을 하여 큰 충격을 던졌는데, 아직도 개선의 효과는 요원하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효과적 정책에 대해 조언하여 달라.

 

-우선 지도자 선발 과정에서 인 적성 검사를 해야 하며, 임용 전 필수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수 등의 제도를 통해 정기적인 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합숙 훈련 제도를 지양하고, 특별한 경우 외에는 합숙 훈련을 일상화 하지 않아야 하며, 지도자들의 급여를 현실화하여 처우 개선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11. 윤원장은 한국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불 동시통역) 출신으로 알고 있다. 여러 국제무대나 행사에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스포츠 외교에서 그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 않나?


-국제스포츠무대에서 외국어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포츠외교를 잘하려면 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다. 그렇지만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 사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미국인, 영국인 등 영어를 모국어로 완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모두 스포츠외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필자는 지난 40년 가까이 20여 차례 동·하계 올림픽대회에 참가한 바 있는데 주로 한국선수단 섭외임원 겸 선수단장 대행(각종 선수단 관련 국제회의, 단장회의 등에 단장 대리인 자격으로 붙박이 회의 대표 역할을 수행함)으로 또한 IOC 총회, ANOC 총회, OCA 총회, EAGA 총회, 외신 기자회견 등에도 200여 차례 빠짐없이 KOC 회의대표 및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 사무총장자격으로 단골대표로 평가 받을 만큼 활동함으로써 스포츠계에서 국제대회에 가장 많이 참석하고 발언도 제일 많이 한 국·내외 기록 보유자 중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리라고 확신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각종 스포츠관련 국제회의 등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대표, 영국대표들 중 발언 한 번 변변히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며 오히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대표들이 옹골찬 발언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모국어로서 한국말 잘하는 스포츠 문외한(특정 전문분야에 근무해 본 적이 없는)이 명문대 국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대한체육회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하여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15개 시·도지부 대표들이 모두 모인 전국체전 비교평가분석회의에 참가할 경우 그 우리말 회의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할 것이며, 더구나 연관된 발언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회의에 참석한 생소한 얼굴의 시·도 지부 대표들과 얼마나 효과적인 대화와 외교를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면 국제 스포츠외교 무대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을지 감이 잡히리라.   「스포츠외교는 안면장사」라는 진리 아닌 진리가 스포츠외교의 성격을 가장 효과적이고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물론, 안면이 잘 통하면서 영어 등 외국어 구사능력이 수준급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역대 한국 IOC 위원을 역임한 분 가운데 故 장기영 박사는 영어가 결코 수준급은 아니었지만 동료 IOC 위원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고 인기 있고, 신뢰감을 주는 국제 스포츠외교통으로 한국스포츠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인물이었다.   그러한 예는 지금도 즐비하다. 각 경기단체 인사들 중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힘깨나 쓰고 잘 통하는 분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이분들도 처음에는 영어 등 외국어 구사능력이 수준급이었던 사람들은 아주 드물며 오히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함으로서 실전용 외국어 실력이 갈고 닦여 자기고 모르게 늦깎이 외국어 구사자들로 변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故 김운용 박사가 대한체육회장/KOC 위원장 재직시절(1993~2002) 필자는 국제부장, 국제사무차장으로서 모시는 입장으로 국제 스포츠외교 무대에서 함께 활약했었다. 어느 날 김박사께서 필자에게본인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도 했고 영어 등 외국어에 관한 한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인데도 국제 스포츠 회의에 참가하기 시작하여 10년 지나니까 겨우 귀가 뚫리고 입이 트이더라라고 술회한 적이 있었다.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IOC위원 직에서 자진 사임한 뒤 그 시절 IOC에서 유일하게 활동 가능했던 한국 IOC 위원 청일점인 故 이건희 삼성그룹회장과 IOC 위원 선출 동기생인 북한의 장웅 IOC 위원 겸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 중 필자가 주선한 조선일보 등 한국 일간신문 특파원들과의 인터뷰에서 「스포츠외교 전문가 양성」과정을 일본의 「스시 전문가」의 그것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스시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0년간은 초밥을 손바닥 안에서 적절히 뭉치는데 전념해야 하고, 그 후 5년에서 10년간은 회를 적절한 두께로 뜨는 기술을 연마하며 그 후 15년 내지 20년의 초밥위에 회를 얹는 기술을 연마하는 기간을 지내야만 비로소 스시 전문가로서 인정받게 되는 것처럼 스포츠외교 전문가를 키우려면 국제 스포츠 무대에 15년 이상 꾸준히 내보내서 정성들여 투자하고 관리해야만 가능하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한 국가의 산림녹화사업을 예로 들면 키 크고 우람하게 자란 나무 몇 그루를 옮겨 심어 당장 그늘 만들고 산을 덮을 수는 있지만 바람과 벼락을 맞으면 뿌리 채 뽑혀 죽어버려 산림녹화사업이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될성부른 묘목을 선별해서 산 전체에 골고루 심고 정성스레 관리해 울창한 숲으로 가꿀 경우 산림 백년대계가 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스포츠외교 미래 군단을 양성하려면 단발마적, 실적 위주의 비효율성, 사후활용도가 미미한 외국어 연수과정을 중심으로 제한된 스포츠외교원 양성 계획보다는 KOC 국제업무전담 실무직원들과 가맹경기단체 국제업무 담당 직원들, 그리고 국제대회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선수 및 경기인들 중 분야별 스포츠외교요원 꿈나무 자원으로 선별하여 이에 상응하는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투자를 통한 중·장기 인재양성 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는 필자가 목격한 중국의 전설적인 스포츠외교통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루 쉥롱(Mme Lu Shengrong)여사는 필자가 국제 스포츠 무대에 진출하기 시작할 무렵인 1980년대 초, 중국 스포츠외교 실무자로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도 유이균 당시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의 국제배드민턴연맹(IBF) 임원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외교력 수행을 위해 故 박종철 대한배드민턴협회 사무국장의 요청에 따라 KOC의 경기단체 스포츠외교지원 차 참석한 아시아배드민턴연맹 총회 및 이사회 등에서 루 쉥롱 여사와 조우하게 되었다.   필자가 루 여사의 역할 등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자 루 여사는 중국올림픽위원회 및 중국국가체육위원회의 국제담당실무자로서 중국배드민턴연맹 회장 등 고위임원에 대한 영어 통역 등 국제업무를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그 후 필자는 1986년경 1988 서울올림픽대회 전시종목으로 채택되어 향후 올림픽정식종목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조직위 관계자 로비 차 방한한   영국올림픽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필자와 2008년 올림픽 IOC 평가위원으로 함께 활동하였고 현재 영국 IOC 위원인 Craig Reedie 당시 IBF 회장과 신라호텔에서 장장 4시간의 마라톤 담판을 벌여 배드민턴의 서울올림픽 전시종목 채택을 조건으로 당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을 IBF 집행위원도 거치지 않은 채 월반하여 파격적인 조건부 IBF 올림픽 부회장으로 특별 선출되도록 Reedie IBF의 언질을 받아내었으며 실제로 유이균 회장은 당시 최초의 한국인 국제 스포츠 단체 부회장으로 특별 선출되어 활동하였으며 그 대가로 유이균 회장은 배드민턴이 서울올림픽 전시종목이 되도록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배드민턴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정식종목이 되어 한국은 황혜영, 정소영, 박주봉, 김동문, 길영아, 하태권 선수 등 기라성 같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군단을 탄생하게 한 금밭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반면, 루 쉥롱 여사는 아시아는 물론 국제배드민턴 무대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안면도 익히고 차츰 중국의 회의대표로서 입지도 굳히기 시작하였으며 중국정부 및 올림픽위원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 결과 루 여사는 아시아연맹과 국제연맹에서 분과위원으로 집행이사로 부회장으로 결국에는 IBF 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업무실무자가 해당분야의 제1인자가 된 입지전적 변신에 성공하였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데 15년 가량 소요된 것이다.  루 쉥롱 IBF 회장은 이후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종목인 관계로 국제 스포츠 무대, 특히 IOC에서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국제연맹(IF) 회장자격의 IOC 위원이 되어 IBF 회장직을 그만 둘 때까지 IOC 위원으로서 중국 스포츠외교 권익을 위해 로비하였고 지금도 맹활약 중이다.  이는 필자가 스포츠외교요원 발굴 및 양성과정에 있어서 좋은 예가 되는 「성공신화」로 인용하는 실화이다.

 


 

12.(11항목과 부문 연관하여) 최근 외국인 코치나 감독들이 많이 부임하면서 국가대표 통역사들의 역할이 막중하다. 스포츠 통역사들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조언의 말씀을 들려준다면?(질문을 바꾸어서,  영어의 달인이 되려면 경험상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1) 영어의 달인이 되려면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 유학 한번 못해보고영어의 달인이란 호칭까지 듣고 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과분하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한달인의 경지에 미치기 위해서는 영어를 날마다 부담 없는 생활의 일부로 호흡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함으로써 평생 실전세계의 수많은 과정을 통해 단련하고, 수련하고, 무엇보다도 대기 중의 공기를 들여 마시듯,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다 보면, 그 과정이 곧 영어 수련이요, 그 자체가 훈련 겸 숙달이 된다. 이렇게 하여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과정의 열매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어느덧 주위에선 「영어 잘하는 부류」로 통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모든 외국어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우선 익숙한 기본 단어와 흥미로운 문형을 찾아서(search) 자연스럽게 외우고(memorize), 대화체 내용을 흉내 내고(mimic), 실전에 응용하다(apply)하다 보면, 그냥 걷는 습관처럼, 자전거타기처럼 저절로 몸에 배고(habituated) 입에서 흥얼거리게(murmur) 되고, 그러면 그 자체로서 평소에 외국인과의 막혔던 대화(dialogue)와 회화(conversation)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지 않을까?

“아픈 만큼 성숙하리니.”(No pains, no gains.)....

“결코, 부담스러워하지 말지어다!”(Never feel pressed!)

필자는 외국어 대학교 재학시절 영어를 전공하고 제2외국어는 「독일어」를 하다가 부전공으로 「불어」를 선택하였고, 각고의 노력 끝에 외국어 대학교 부설 동시통역대학원(·불 동시통역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사실 제2외국어는 과목 자체도 필자를 포함한 대개의 경우, 시간 보내고, 시험 점수 잘 받아 이수학점을 성공리(?)에 따는 것이 관건이었지, 2외국어 과목설치 취지대로 선택한 제2외국어를 능숙하게 독해하고 말하고 듣는다는 것은 거의 모든 이들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 실제상황이리라. 하물며, 머리에 털 나고 처음 접해보는 「불란서어」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요, 무모한 도전으로 실속 못 차린 객기로 느껴졌지만, 어쩌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는데(Dice is cast).

대학 2학년 때 시작하는 부전공 불어과목을 불어교육과 1년생들과 합반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난생처음 보는 불어 단어, 발음, 문장을 접할 때마다 두통과 멀미까지 느껴졌다. 당시 외대 불어과 주임교수이셨던 서정철 선생님께서 불어 부정관사 「un」이 포함된 문장을 읽어보라고 해서 나름대로 예습까지 해 온 터라 조심스럽게 자신만만하게 「앵」하고 읽었더니 「어디서 파리가 날라 다니냐」라고 하였고, 모든 학생들이 박장대소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라했고, 그 후 아무리 발음 연습을 해도 「그놈의 파리」는 나의 혓바닥과 목과 코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그럭저럭 이 눈치 저 눈치 보아가며 근근 적선으로 학점은 겨우 땄지만, 불어 부전공과목 강의 시마다 주눅이 들어서 「못살겠다. 꾀꼬리」를 하염없이 외쳐 대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수소문 끝에 회현동 신세계 백화점 뒤편에 있는 프랑스 문화원 부설 불어 학원인 「알리앙쓰 프랑세즈(Alliance Francaise」에 등록했다. 겨울 방학 3개월 동안 낮에는 기초교양불어과정인 「모제(Mauget)」라고 통칭하는 과목(Cours de Langue et de Civilisation Francaises)을 듣고, 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은 뒤 그 건물 내에 있는 도서실(biblioteque)에서 하루종일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또 저녁때 수강할 불어회화코스(De vive voix)까지 예습까지 하면서 그야말로 불철주야 집중코스(Intensive course) 3개월간 맹진하고 나니까 비로소 불어의 본체를 깨닫게 됐다. 그 과정에서 꿈에 불어로 이야기하는 「현몽(Appearance in a dream)」현상까지 생기다 보니 비로소 생소하기만 했던 불어에 대해 애정도 생기고 수업시간에도 인정받다 보니 그때부터 필자에게 펼쳐진 불어의 세계는 실로 예전 같지 않더라는 실제 체험담을 지면을 통해 소개해 보는 것이다. 물론 나도 보통 사람인데 어찌 놀고 싶지 않았겠으며, 불어 공부 자체가 즐겁기만 했었겠는가. 하루에도 열두 번 때려치우고 싶고, 하품과 졸음과 지루함과 지리함이 늘상 엄습해 왔지만, 이러한 「공부 방해 사탄」의 시련을 극기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가 치러야 할 최소한의 대가가 아닐성싶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어학은 배우고 익힌 문장과 단어를 무대 위의 배우처럼, TV 탤런트처럼 라디오 방송국의 성우처럼 상대방과의 실감나는 감정교류를 하듯 마치 역사의 한 인물처럼 그 감동, 그 느낌을 자기 목소리에 실어 크게 소리 내어 실감나게 실전처럼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연습하게 되면, 외국어를 관장하는 神이 반드시 감응하여 그대들을 기필코 도우리라!(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천우신조(天佑神助 Heaven helps and God assists)란 이렇게 간절히 간구하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1979년 외대 4학년 시절 USO행사에서 만난 당시 주한 미국대사 Willian Gleysteen, Jr.와 함께)

 

아래에 필자의 영어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신문에 났던 기사를 실어 보았다.

 

2000 4 21일 금요일 - 「조선일보 9면」

영어의 달인 시리즈 중 15번째 인물-윤강로 대한체육회 사무차장

 

대한체육회 국제담당 사무차장 윤강로씨는 한국 체육의 얼굴이다. 각종 체육관계 국제회의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 우리나라 입장을 전달하고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다. 82년 대한체육회에 입사한 뒤 매년 10여 차례, 지금까지 1500회 이상 각종 국제 대회와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왔다. 당연히 영어를 잘하지 않으면 안 될 위치다. 그러나 윤씨는 단 일 년도 외국에서 산 적이 없다. 윤씨는 외국어대 영어과 76학번. 아버지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어서 어릴 때부터 영어와 가까이 지냈다. 아버지가 그에게 가르친 것은 영어 단어나 문법이 아니었다. 영어를 대하는 자세.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틀리면 어떠냐. 틀리면서 배워나가는 게 외국어다.”

윤씨는 이후 현장에서 외국인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영어를 배웠다. 그래서 자기 영어를실전 영어라고 부른다. 그는 대학 시절 미군 부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한 미군 가족이나 군속, 관광객을 위해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그들로부터 살아 있는 영어를 받아들였다. 판문점이나 경주 등 관광지를 돌며 우리나라 역사와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는 일은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대학 3학년 때 교내 영어 경시대회서 공동 1위를 차지한 것도 영어데 자신을 붙게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스컵 축구대회가 꽤 큰 국제대회였지요. 그 대회와 세계 여자농구 선수권대회, 세계 사격선수권대회 등 국제 체육대회에서 통역을 맡으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쌓았습니다.” 윤씨 영어는 나라에 따라 발음과 악센트가 달라진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온갖 영어를 하다 깨달은 것이, “나라마다 다른 영어가 있다.”는 것. “어학은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 세계 누구와도 통할 수 있는 영어가 진짜 살아 있는 영어 아닙니까?”

윤씨는 요즘 영어회화 책을 쓰고 있다. 제목은쪽집게 영어라고 붙였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영어 표현을 쉽게 찾아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두 자녀에게도영어를 즐기라.”고 예기한다는 윤씨는잘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부딪쳐야 영어가 는다.”며 다시 한번실전 영어를 강조했다.

 

2) 자신 있는 모국어야말로 최상의 실전 외국어 (Mother tongue is the best foreign language)

필자가 대한체육회(Korea Sports Council) 및 대한 올림픽 위원회(Korean Olympic Committee) 국제과장(Director of International Relations) 5년차 시절인 1989년 당시 체신부 우표디자인 실장 겸 KOC(대한 올림픽 위원회) 문화위원(Cultural Commission Member)이었던 이근문 씨와 함께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Lausanne)에서 개최된 세계 스포츠 박물관장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f World sports Museum Director)에 참가했을 때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으로서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가 공통어로 쓰이는 국가인데, 지역별로 4개 국어 중 1개 국어가 중심 외국어로 사용되는바, 로잔 지역은 불어권 지역이므로, 호텔을 제외한 일반 상점에서는 불어가 통용된다. 그 당시, 이근문 위원은 포도가 먹고 싶다고 하면서, 거리에 있는 과일가게로 같이 가서 포도를 사는데 필자가 불어를 하니까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필자는 장난기도 발동하고, 평소 「모국어가 가장 뛰어난 외국어」라는 신념도 실험해 보고 싶은 취지에서, 이 위원한테 필자가 불어 한 마디 안하고 한국어만 사용해서 포도를 구입할 수 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말도 안 된다」면서, 만약 그리된다면, 그날 저녁식사와 와인 1병을 사기로 약속했다.


과일가게에 갔더니 전형적인 스위스 중년여성이 과일을 팔고 있어서, 그 여자에게안녕하세요?”하니까 그쪽에서는 “Bon Jour”하면서 “Qu'est que vous desirez?/What do you want?”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시침 뚝 떼고, 포도를 가리키면서아줌마, 이 포도 사고 싶은데 얼마죠?” 라고 천연덕스럽게 물었더니, 그 스위스 아줌마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Les raisins?/ 포도 말이유?”라고 되물었다. 필자는 손가락 1개를 내보이면서무슨 말인진 모르지만, 이 포도 1kg만 달란 말이에요!”라고 하니까 그 아줌마는 “un kilo?” 라고 하였고 필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요, 1킬로 달란 말이에요라고 하니, 저울에 1kg의 포도를 달아 종이에 둘둘 말아 주면서, “Huit francs! 8 스위스 프랑!”이라고 했고, 필자는얼마라구요? 8프랑?” 하니까, 손가락으로 8을 표시해 주고 옆에서 지켜보던 이 위원은 8프랑을 지불하면서, 의아해하면서, 신기해했다. 포도가게 스위스 아줌마는 “Merci! Au revoir!/ Thanks! See you again”이라고 인사했고 필자는그래요, 또 봐요.”라고 하면서, 프랑스 과일 상점에서의 포도구매는 불어 한마디 쓰지 않고 한국어로 100% 성공하였다. 아직 미심쩍은 표정의 이 위원은 호텔로 돌아와 필자에게 room maid 아줌마한테 불어로 실내화 한 켤레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였고, 필자는 한국어로쓰레빠를 달라고 해봐라.”고 하니까, 이 위원은 놀리지 말라고 하면서 다시 부탁하자, 필자는 마침 객실 옆을 지나가는 room maid아줌마에게, 내 발을 가리키면서아줌마, 이 아저씨한테 쓰레빠 한 켤레 좀 가져다 주시구레.”하니까 필자에게 “Les pantoufles?”하면서 곧바로 쓰레빠(slippers)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어때요? 한국말이 어설픈 영어나 불어보다 훨씬 더 자신만만하고 편하고, 효과적이지 않아요? 그날 저녁식사와 와인의 맛은 그야말로 죽여주게 맛있었구말구. 내기는 어디까지나 내기니까!


여러분들도 외국여행가서 말이 안 통할 경우, 우리말로 보디랭귀지(Body Language; 보다 정확히는 Sign Language)를 섞어서 사용해 보시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리라.

 

P.S. 화날 때 어설픈 외국어로 그대로 표현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니까 이 경우에는 차라리 늘 애용하셨던 우리의 고유한, 빵빵한, 휘황찬란한 한국말 욕지거리를 시원하게 해 보시라! 스트레스 확 풀리죠, 상대방이 잘못 알아들어 황당해하는 모습도 함께 즐겨가면서 말이다.

 

3) 생동감 있는 우리말과 번역 참 통역

 

필자는 우리말 표현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우리말 표현은 살아 숨 쉬듯 생동감 있게(vividly), 그 표현을 들으면 감동과 감흥이 함께 어우러져 감명 깊게(impressively), 또한 마음에 담긴 속내까지 은연중에 정확하게(precisely) 전달되는 지구상에서 인류가 떠들어대는 수천 가지 언어 중 한국어야말로 언어 중에 백미(Best of the Best)라고 자부한다. 정말이지 필자도 여러 개 외국어를 배우고 구사하고 있지만 한국어처럼 심오하고(profound) 심금을 울리는(touching heartstrings) 외국어를 듣고 느껴본 적이 없다.


이 세상의 어떠한 종류의 소리도 발음이 다 되고, 심지어 바람소리, 동물 울음소리 등도 우리말로 표현하고 발음해야 감칠맛(savory taste)도 나고 생동감(vividness)이 전해진다. 색깔표현은 그 어느 외국어도 우리말처럼 다양하게 묘사되질 않는다. 필자는 가끔 유행하고 있는 재미난 우리말 표현을 딱 들어맞고 감칠맛 나는 영어 표현으로 옮기는 시도를 많이 해본다. 한 가지 재미난 표현과 비슷한 영어표현을 찾는 데 34일이 걸린 적도 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가 그것이다. 번역은 대충 그 의미만 비슷하게 맞도록 뜻만 통하면 되지만, 참 번역은 느낌까지 살아 숨 쉬도록 옮겨야 하는 것이다. 34일 동안 틈만 나면 고민(?)에 빠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다.(Sincerity Moves Heaven). 4일째 되는 날 갑자기 하늘에서 계시(Revelation)가 마음속으로 전달되었다. 실제로 경험한 체험 이야기이다. 「노래는 노래로 풀거라.」이 계시를 받자마자 1960년대 영국의 4인조 록그룹인 비틀즈(Beatles)“Yesterday”의 선율(Melody)과 가사(Lyrics)가 즉시 떠올려졌다.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바로 이거다. 즉시 이를 응용한 표현이 탄생하였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 Love is not such an easy game to play


1970년대 미국의 지미 카터(Jimmy Cater)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故 박정희 대통령께서 당시 통역을 담당한 최광수 의전수석에게 「임자, 인권 좋아하시네를 영어로 생각해보도록 하시오」라고 주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책을 보고 알았다. 과연인권 좋아하시네를 뭐라고 영어로 통역했는지 필자로서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한 번 정확한 번역을 시도해 봤다.


필자가 1976년도 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입학시험을 치를 때 나온 문제가 머리에 떠올랐다. 「세상살이는 겉보기와는 다르다 = There is more to life than meets the eye」 이 표현에 대입하여 보았다. 「인권 좋아하시네 = Remember, there's more to 'human rights' than meets the eye


그러면 「못 먹어도 고!」란 표현을 참 번역한다면? 참 듣기는 쉽지만 번역하는 것이 간단치 않았다. 상황별로 응용해서 쓰면 여러 가지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예를 들면, 「내일 소풍은 못 먹어도 고야!」라고 한다면 「We're going on a picnic, rain or shine!」이라고 번역하면 되지만 모든 상황에서 공통으로 통용되도록 참 번역을 한다면? 다시「계시」(Revelation)가 내려왔다. 18세기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 겸 비평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유명한 글귀 「The show must go on!」이 떠올랐다. 정말이지 이 말이면 「못 먹어도 고!」와 거의 필적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대형서점에 가보면 영어회화, 영어표현과 관계된 영어책의 수와 종류가 100m 달리기가 가능할 정도로 「우후죽순(to spring up like so many mushrooms after rain)」처럼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도 「우리말 표현에 딱 들어맞는 영어 표현 3000가지」를 실생활과 현장 경험 등을 통해 취합해 놓고 출판하려고 벼른 지 이미 10년이 되어 가건만, 영어책 출판해서 공연히 이윤창출이 안 되면, 정성들인 출판사 쪽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10년째 보류 중(in suspension and reservation)이다.


필자가 대한 올림픽위원회 사무차장(Deputy Secretary General) 시절인 1999년도에 제109 IOC 총회를 서울서 개최키로 하고 실무 총괄 준비 및 조직 운영 책임을 맡았었다. 의전 요원(protocol personnel/assistants)을 선발키 위하여 서울에 있는 8대 유명 대학교에 해당학교로 국제적으로 국가를 빛낼 수 있는 외국어에 능통하고 용모 단정한 여대생 자원봉사자 선발을 의뢰하는 협조공문을 발송한 바 있다.


애초 참석 예정인 110명 정도의 IOC 위원 수행 통역과 안내 데스크 및 공항 의전 요원 등 150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했는데, 각 대학교에서 추천된 인원은 1,000여 명에 육박하였다. 다시 재조정하여 500명으로 줄이고, 최종 면접시험을 통해 150명만 선발키로 했다. 한 번 면접에 15분당 10명씩 15회에 걸쳐 외국어(영어, 불어, 서반아어, 독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로 필자가 주로 인터뷰를 하면서 채점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어, 불어, 서반아어 등은 필자가 직접 구사하면서 면접을 했고, 나머지 언어는 서류전형 및 신청자가 해당 외국어로 말하도록 하면서 능통 정도를 가늠했다. 필자는 깜짝 놀랐다. 지원자 500명 중 영어의 경우 대부분의 신청자들의 발음(pronunciation), 억양(accent and intonation) 및 유창함(fluency)이 거의 본토인 수준이었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고 흐뭇하게 생각했다. 필자의 학창시절에는 영어로 인사말과 자기소개 정도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영어 전공자가 그리 흔치 않았던 터라 지금과 비교해보니 격세지감(completely different age)으로 느껴졌다.


필자가 KOC 국제 업무를 맡으면서 수많은 VIP 통역과 번역을 도맡아 해 왔지만, 참 통역, 참 번역의 길은 멀고도 먼, 평생 연마하고 겸허히 노력해야만 그 참 경지에 들어서고 맛깔스런 우리말 표현과 잘 어우러진 외국어가 탄생하는 것이리라.


필자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를 위해 1993년부터 유치가 결정된 1995년까지 부산을 수십 차례 왕복하면서, 아시아 각국 올림픽위원회 수뇌부(office-bearers)들과 부산 아시아게임 유치위원장(우병택 제1대 부산광역시 의장 역임) 및 부산시장(김기재 국회의원 역임)의 예방 시 통역에 얽힌 일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우병택 유치위원장께서 외국 인사들과의 공식 만찬 시 인사말로 운을 떼었다. 「이렇게 협소한 자리에 왕림하여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들을 모시고….」 통역은 본토인의 발음을 방불케 하고 영어구사력도 뛰어난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온 여성 통역이었는데, 갑자기 영어 통역이 안 나오고 침묵이 흐른 것이다. 왜일까? 필자가 그 여성 통역을 의아하게 쳐다보자, 모기만한 소리로 「협소함이 무슨 뜻이죠?」라고 되묻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통역이든 번역이든 우선 우리말 어휘력과 표현력이 수준급이어야만 어떤 경우라도 통하는 것이다. 「통 하였느냐?


필자(외대 동시통역대학원 영·불과 2기 출신)는 최초로 모교인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 대학원의 곽중철 교수(·번역대학원장)의 부탁을 받고, ·번역 대학원생 특강을 나간 적이 있었다. 국제 스포츠 외교관행과 현장경험, 스포츠 용어 등에 대해 강의하였고, 끝날 무렵, 수강생들에게 사자성어 몇 가지를 물었으나, 10%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기타 전공 분야에는 뛰어난 소양과 어휘력과 순발력을 겸비하고 있겠지만, 고사성어나 흔히 쓰이는 압축된 표현 어휘는 등한시했거나, 관심 부족이리라.


영어표현을 우리말 표현으로 옮기는 것은 어느 정도 뜻이 통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말 표현을 감칠맛 나고 딱 들어맞는 영어 표현으로 구사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다. 「아픈 만큼 성숙하는 거야」를 영어로 옮겨보라고 하면 선뜻 나서는 이가 드물다. 그러나 「No pains, no gains」를 우리말로 옮기라고 하면 「고진감래」「고생 끝에 낙이 온다」등으로 나오지만 「아픈 만큼 성숙하는 거야」라고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말과 외국어를 균형 있게 반상에 올려놓은 경지라고 볼 수 있다.

 

「까라면 까! = Do as you are told!

「꼴값하고 있네 / 생긴 대로 놀고 있네 = That's just like you

「꼴리는 대로 하쇼! = Suit yourself!

「쪽 팔려! = It's downright insulting.

「호떡집에 불났어? = What's the big emergency?

「우째, 이런 일이? = How could I let this happen?

「꿈도 꾸지마! = Don't even think about it!

「눈에 띄네! = (It's)Eye-catching!

「끗발 오르고 있다구 = I'm on fire

「한판 붙자는 거야? = This means war!

「봐 주라! = Have a heart!

「손 좀 봐야겠구만 = I'll get my hands on you.

「첫 끗발이 개 끗발 = Just grabbing an early lead.

「살맛 나는 세상이군! = What a wonderful world!

「애 떨어질 뻔했잖아! = You scared me to death!

「몸이 오싹오싹하네 = I feel under the weather.

「너무 오버하지마! = Don't overdo it!

「가가 가가? = Is that her / him?

「뻥이야! = I was just kidding!

「똥개 훈련시키나? = Are you teaching us a little discipline or something?

「뿅 갔었다구! = I was spellbound the whole time!

「큰일 날 뻔했네 = It was a close call.

「꿇어! = At your feet!

「오메 좋은거! = My very favorite!

「같은 걸로 한잔씩 더 할라우? = Same all around?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수? = It's costing every blessed penny?

「그놈이 그놈/한통속 = Two of a kind.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 All's well that ends well.

「유구무언이여 = No comment.

「엿 먹이고 있구만 =It's like killing with kindness.

「잔머리 굴리지 마 = Think less.

「기가 막혀! = Speechless!

「불가근불가원 = Not to close, not too far

「헷갈리네! = I'm all mixed up!

「해가 서쪽에서 뜨겠는걸?! = This is a surprise!

「지금 아니면 국물도 없지라 = It's now or never. = This is once-in-a-life-time chance.

「겁먹을 것 없다네 = Have no fear!

「잘 자! 내 꿈꿔! = Sleep tight! have a dream of me!

「턱도 없지 = Far from it.= It's a far cry = Over my dead body, you can do that.

「아픈 만큼 성숙하는 거라네 = No pains, no gains.

「마음은 박남정, 몸은 김정구/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네 = I'm too young at heart.

「이래선 안 되는 줄 알아 = I know this isn't the way it should be.

「봄날은 간다 = That's the way the cookie crumbles.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 = I really hate myself doing this.

「왜 사니? = What are you living for?

「금시초문일세/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That's news to me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 Make it two.Me too」는 안 맞아요.

「오늘 어땠어요? = How was your day?

「어떻게 더 좋아?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 It couldn't be better.

「살아남게 될 거야 / 난 괜찮을 거라구 = I will survive.

「이 정도면 만족일세 = I can't complain.

「한 줄로 서세요 = Single file, please.

「잘 났어 정말! = You're too much!

「그래 싸다 싸! = You deserve it.

「감수해야지 = We deserve it.

「까무러치겠네 = I probably faint.

「느끼하구만! = That's disgusting.

「열 받네! = I'm so pissed off!

「그 친군 오락가락 한다네 = He's one day up and one day down.

「한물갔다구 = He's over the hill.

「꿈 깨! = Forget it.

「꿈이냐? 생시냐? = Is it real or dream?

「간발의 차이 = by the skin of the teeth

「본 놈이 임자라구 = Finders(are) keepers.

「지성이면 감천 = Dedication makes all the differences = Sincerity moves heaven

 

 

13. 태권도장과 탁구장 등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생계 위협에 몰린 민간 체육 시설들이 살아날 수 있는 상생 방안에 대해 실효성 높은 구체적 대안을 말씀하여 달라. 아울러 능력 출중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안들은?

 

-각 학교들과 연계한 방과 후 체육 교실 방안을 확산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해외 에이전시들에게 지속적으로 홍보 자료와 선수 명단을 보내고 한국 선수들을 해외로 보내는 것을 도와줄 특화된 전문기구를 체육회 내에 신설하고 인력을 확보하여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