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9. 12. 13. 11:05

[우리들교회 2019 128일 주일설교말씀 요약(누가복음 10:25~37/어떻게 성경을 읽으십니까? 강영안 교수)]

 [소제목: 독서법의 전통을 통하여 본 탄설(灘雪)의 성경 읽기와 묵상]

 

<Prologue>


기업가는 돈 벌 욕심이 있고 교수는 공부욕심이 있다.

그래서 좋은 주제로 강의해 달라고 제의가 들어오면 영락 없이 걸려들고 엮이게 된다

건강 문제로 스위스에 가서 있을 때, 1983년 스위스제네바에서 열린 도서(The Other Side of 1984/ 1984년 저편)토론회에서 저자(레슨유비긴)인 유럽선교사를 만나 “당신은 복음주의자입니까?(Are you evangelist?)라는 물음에 아니요라고 하였고, 그 이유를 묻자, ‘복음주의자는 성경을 안 읽는다더라고 하였다.

(1)복음주의자(Evangelist) Biblicism(성서주의)를 신봉하는 (2)성서주의자(Biblicist)가 있고 개혁신학전통의 흐름 안에서 기독교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를 지칭하는(3)개혁신학자(Reformed Theologian) 3부류로 구분된다.

복음주의자(Evangelist)가 강조하는 것은 전도, 회심, 성경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인데, 성경책을 읽지는 않고 단지 외우고 인용할 뿐이라고 한다라는 말에 놀랐다.

따라서 복음주의자가 “How can I be saved?”(내가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을까?)라는 관점인데 반하여 개혁신학자는 “How can I glorify God?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헬라어로 노미코스(nomicos)는 영어로 법률가(lawyer)로 표현되는 유대의 법률학자인데 유대의 법이란 율법을 의미하니까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하는 그는 율법학자, 율법전문가이다


오늘 성경본문에 의하면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대답대신 되물으시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우리들교회는 질문을 던지는 교회다

여호수아 서에서 김양재목사님은 이러한 적용질문을 던지면서 말씀을 풀어 나간다

삶의 답이신 예수님은 답을 주시는 것 같지만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하신다

근본적인 것이 답이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였다

요한복음(1:38)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궁금해서 찾아오는 요한의 두 제자에게 예수님의 첫 말씀이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What do you seek/want?)라고 질문을 건네신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께 랍비<선생님>, 어디서 머무십니까?’(Rabbi<which means Teacher>, where are you staying?)이라고 되묻자 예수님은 (39)이르시대 와서 보라(Come and you will see)라고 답하신다

누가복음 10 25절에 영생을 얻는 방법을 시험하고자 묻는(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율법교사(the expert in the law)에게 예수님은 26절에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What is written in the Law?" he replied. "How do you read it?")고 되물으신다

그 율법학자는 27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He answer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라고 대답한다

28절에 “그 말대로 행하면 살리라”("Do this and you will live.")하시면서 29절에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But he wanted to justify himself, so he asked Jesus, "And who is my neighbor?") 하고 재차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말씀요약>

오늘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한다.

우리들교회가 성경 읽기와 묵상을 통하여 건강한 교회가 되었음을 상기하면서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로 읽어야 하는지를 알아보겠다.

첫째, 성경은 제대로 읽으려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담은 책으로 읽어야 한다

노미코스(nomicos) 즉 율법전문가는 성경을 법전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육법전서나 학교의 교과서와는 다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인 구속사가 펼쳐진 책이다

성경은 천지창조에서 종말까지 구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성경은 구원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를 초대하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빚어가기 위한 책이다

디모데 후서 3:15~17에 보면 (1)성경의 기원은 성경이 어떤 책이며 누가, 어디서. 쓴 책임을 밝히는데 하나님의 숨결과 감동으로 쓰여진 것인데 원저자가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전하는 것으로 성경은 지혜를 만나는 책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주옵소서라고 하며 지혜를 구하였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회개와 바르게 함으로 교육하여 우리를 의로 인도하고 사람이 되도록 키워내는 책이다.

성경은 선한 일을 해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낸다

성경을 통하여 선한 일이 없다면 성경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목적은 성품을 변하게 하여 사람이 바꾸어 지도록 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이 삶을 통해 보게 만들도록 성경이 능력을 키워준다

예수님의 사역 동안 예수님의 질문은 305회가 되고, 겹치는 질문을 제외하면, 180여회나 된다.

질문은 생각을 유도하고 생각을 통하여 답을 구하는 방식이다.

우리들교회의 말씀 큐티가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세상의 지식을 담은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쓰인 책으로서 구원의 지혜를 얻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이다.

(적용질문 1)

-성경말씀을 어떻게 읽고 있나?

-복음주의자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말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나?

-큐티 본문을 통하여 나에게 주는 질문에 대하여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둘째, 성경으로 정보를 얻기 위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 한다

29절에 “내 이웃이 누굽니까?”라고 다시 질문을 하였다.

율법교사은 예수님의 답변에 “네, 제가 그리 하겠습니다”라고 순종의 자세를 보여야 했다.

우리들교회가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중 성경을 제대로 읽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12세기 한 수도사가 쓴 책에서 성경을 묵상하는 단계로서 (1)성경을 읽고 (2)묵상하고 (3)기도하고, (4)적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성경을 읽는 것은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이고, 묵상은 음식을 씹는 것이며, 기도는 음식 맛을 뽑는 것이고, 적용은 음식 맛을 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가지고 일상 속에서 실현하고 시련을 겪는 것이다.

과거의 성경 독서의 전통에는 질문이 없고. 질문이 없으니 성경이 나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말씀 묵상의 단계로 기도 묵상 실현(고난) 3단계로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들교회가 가르치는 말씀 묵상의 단계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성경읽기는 소리 내어 읽고,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들교회는 내 삶을 통해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을 통해 나의 삶을 해석하고 있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면 성경을 자기자신과 관련 지어서 읽어야 하는데 성경은 정보와 지식과 논리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내는 책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 인간으로 회복되도록 이끌어 주는 책인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면 자기자신에게 절실하게 읽어야 한다

중세기 대학에서는 비판적인 관점에서 책을 읽었다

유교전통인 주자학에서 주자(朱子)는 주희(朱熹)를 지칭하는데 子란 선생이란 뜻이므로 주선생을 의미한다

그의 독서법을 살펴보면 2가지로 볼 수 있는데 지식이나 시험을 위한 공부방법이 아니라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을 말하며 (1)위기지학(자기 자신을 세우는 공부) (2)위인지학(보이기 위한, 출세를 위한 공부)로 나뉜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보이기 위하고 출세를 위하여 공부한다

공자는 마음을 비우고 절실한 물음으로 문자에 집중하는 물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반구제기(反求諸己)란 돌이켜 허물을 자기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절기체험은 자기자신에게 철저히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중세 수도원의 수도자의 읽기 전통의 4단계를 보면,

(1) 말씀읽기(lexion): 음식에 비유하면 포도 알을 제 입 안에 넣는 것

(2) 말씀묵상: 포도 알의 즙을 입안에 넣고 씹는 것

(3) 말씀기도: 그 즙을 입안에 넣어 단 맛 자체를 맛보고 음미함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는 신비한 과정에 돌입하는 것

(4) 말씀적용: 그 맛으로 먹어 몸에 이롭도록 하는 것

 

Martin Luther 1539년 자신의 전집서문에 짧게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으로 기도-묵상-고난이 신학자로 만든다고 서술하였다.

묵상은 Hagar 동사는 으르렁거리다, 중얼거리다의 뜻으로 말씀을 씹어 단 맛을 보는 것으로 말씀을 입에 담아 중얼거리는 것이라고 했다.

말씀을 밀어붙이고 비비고 닦는 것으로 김양재 목사님의 시집살이 체험신학인 젖은 걸레, 마른 걸레, 기름걸레, 윤 내는 걸레묵상을 통해 온몸과 온 맘을 말씀에 집어 넣어 묵상의 경지에 올려 놓았다

성경말씀을 읽고 또 읽는(‘Read and Re-read’)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덴타찌오라고 하는 고난의 영적 싸움은 압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처럼 고통과 고난의 결과를 가져온다

신앙적인 깊이를 가꾸는 길은 (1) 깊은 기도생활 (2) 깊은 말씀 묵상 (3) 거룩한 독서(Lexio Divina)가 이어져야 하고 (4) 영적인 체험이 넓고 깊어야 한다

Martin Luther Calvin의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신학이다

2가지 지혜는 (1)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2) 나를 아는 지혜인데 이 두 가지가 상호적이다

그런 지식을 갖는 것이 신학으로 하나님을 이야기 하는 것을 지칭한다

하나님을 알고 감사하고 찬양으로 올려 드리는 것이다

Lexio Divina(거룩한 독서)-Redagio-Dedagio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1단계는 기도하기인데 독서백편의자현 ‘(讀書百遍義自見/ 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을 자연히 알 수 있다는 한자성어)처럼 성경을 100번 반복해서 읽으면 저절로 뜻이 드러난다.

거듭남이 없으면 백 번 읽어도 한 번 읽는 것만 못하다고 역설한 김양재 목사님의 책은 말 그대로 눈물을 쏟게 하는 최루탄 책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서 우리의 감정과 의지로 움직여 줘야 하므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2단계는 본문 읽기로써 (1)크게 소리 내어 읽고 (2)눈으로 읽고 (3) 또 마음으로 읽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같은 구절도 3번 읽어야 한다)

옛날 가장이 가장 듣기 좋은 소리 2가지는 (1)집안에서 책()읽는 소리와 (2) 논으로 물이 졸졸졸 흘러 들어가는 소리였다

공자가 논어에서 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역설하였다

소리 내어 읽으면 귀로-몸으로 듣고 깨달아 그 뜻이 튀어 나온다

필경 시는 벌집과 같다고 하는데 그것은 옮겨 적으면서 크게 소리 내어 읽기 때문이라고 한다  

늘 소리 내어 읽었다

소리 내어, 눈으로 숙달의 도에 이르고 마음으로 묵상한다

김양재목사님의 지론은 (1)기도 (2) 본문 읽기 (3) 적용인데 적용에 포함되는 요소가 질문인데 질문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

창세기 첫 질문은 뱀이 여인인 하와에게 정말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냐? 는 질문은 죽이는 질문이다

죄 지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 오셔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아예카?’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은 어머니처럼 자식을 걱정하여 살피는 살리는 질문이다

질문은 2가지 측면이 있다

Luther 4가지 질문은 ‘(1) 나는 무엇을 믿는가? (2)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3) 나는 무엇을 회개해야 하나? (4) 나는 무엇을 감사해야 하나?’ 이다

하나님은 아는 것이 내 자신을 제대로 알고 보게 되는 것이다

철학과 신학이 독일 경건주의에서부터 적용이 시작되었다.

적용을 못하면 안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읽고 있는 이디오피아 고관대작 내시에게 빌립이 읽고 계신 것을 이해하냐?’고 묻자 그 내시는 성령 하나님이 알려 주시지 않는 데 어떻게 이해하냐? 라고 적용하지 못함을 토로하였다

자기 자신과 관련시켜 적용하지 못하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체를 알면 부분을 알게 되고 부분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순환 관계인 것이다

해석학적 순환의 원리는 삶을 통해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과 삶을 해석하는 것이다

말씀을 먹어서 씹고 삼켜서 육과 영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에스겔 서에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김양재목사님처럼 남편과의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말씀을 통해 적용하는 것이 해석학적 순환의 원리다

주자가 이야기한 반구제기’(反求諸己)처럼 돌이켜 허물을 자기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과 및 관절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히브리서 4;12)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Nothing in all creation is hidden from God's sight. Everything is uncovered and laid bare before the eyes of him to whom we must give account) (히브리서 4:13)

이 같이 말씀을 제대로 읽고 기도하며 묵상해야 회복의 길로 가는 것이다

고난은 축복이란 신학적 이해가 함축되어 있는 말로 삶의 과정에서 겪은 고난이 결국 축복인 것을 묵상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고난과 고통을 심판이나 저주로 해석하는 부류도 있다

C.S. Lewis의 고난 해석과 상통에서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과의 사귐을 위해 고통을 주시는데 고통은 세속적 잘못된 마음을 텅텅 비워서 하나님으로 채우시려고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megaphone이 고난이다

(적용질문 2)

-성경이 자신을 읽게 하나?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고 있나?

-나는 성경을 읽을 때, 나에게 주는 말씀으로 여기고 있나?

-말씀 묵상을 음식에 비유할 때, 내가 잘 못하는 단계는 어느 단계인가?

셋째, 구속사의 틀 안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잘 아는 목사님은 자신이 일 년에 성경을 45번이나 통독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성경을 읽고 난 후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성경을 읽으면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구속사 품 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구속사 신학(Redemptive History)을 김양재 목사님이 잘 풀어 내고 있다

구속사적 신학이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셨고 인간이 타락하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어 대속하여 죄 사함을 주시고 종말론을 이야기 하는 것인데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6막으로 되어 있는 하나님의 드라마가 성경이다:

(1)인간 및 천지창조(2)인간 타락 (3)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러 아브라함을 통해 백성들을 불러 오셨고 (4)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십자가구원-부활-승천-영생으로 이어지고 (5) 교회세우게 하시고 (6)완성적 환경(재림)

구속사의 관점에서 세속사까지 관통해서 보는 것이다

말씀묵상이 곧 구속사다

구속사는 종말론 적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율법적이 아니라 연인에게 편지하는 듯한 삶의 관점에서 통찰하는 것이다

구속사는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펼쳐 가시는 드라마고 이야기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속사를 나의 구속사로 써 내려 가야 한다

힌두교를 신봉하는 인도 지식인은 인도에도 종교서적은 지천인데 성경은 종교서적 정도가 아니고 우주의 역사, 창조의 역사, 인류의 역사를 담은 독특한 것이며 세상 종교서적 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경은 온 우주와 인류를 위해 펼치는 드라마로써 나와 우리의 이야기로 함께 써가는 것이다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인데 그 길을 지나가던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는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누가복음 10:31~35)

이웃에 대한 철학적 개념은 공간적 인접성, 마음 적 인접성, 사회적 인접성이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시는 묘미를 몸소 보여 주신다

지금 나의 모습이기도 한 (1)강도 만난 사람, (2)고통 받는 사람, (3)도움이 필요한 사람/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그 사람의 예를 가지고 이웃의 정의를 이야기로 보여 주셨다

그럴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나를 치유해 주신다

예수님이 다시 질문 하신다: (36)네 생각에는 이 세 시림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전문가가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사마리아 인)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Go and do likewise) 하시니라” (37)

예수님은 근본적인 변화를 주신다

이웃 사람은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네가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강도 만난 사람, 고통 받는 사람에게 내가 바로 이웃이다

이웃은 되어 주는 것이 예수님의 구원의 관점이며 주님의 회복의 관점이다

읽기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웃사람이다

만일 이웃이 되어 주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쓸 데 없는 것이다

만일 성경을 푸는 유일한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읽기와 묵상의 완성은 사랑이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적용질문 3)

-나는 성경을 읽은 자로서 나의 성격은 어떠하다고 생각하나?
-
최근 내가 써 내려 가고 있는 나의(가정)구속사는 어떤 것인가?
-
예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이웃사랑 실천을 위하여 가족, 지체 중 손 내밀어야 할 그 이웃은 누구인가?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인 것인데 거룩이란 구별된다는 뜻이다

무엇이 다른가?

구별된다는 것은 헤어스타일과 옷 차림으로가 아니라 우리 삶에 있어서 가치관의 지향점의 실천이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보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은 각자의 삶의 영역에 우리를 보내셨다

세상에 보냄 받은 자란 삶의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하는 자이다

그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통해 사랑을 전달해 줄 수 있다.

말씀으로 회복되는 삶이 빚어지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삶을 드러내게 하여 하나님을 닮아 가는 삶이 되게 한다

부흥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Epilogue>

 

구속사적 고난이란 오늘 주신 말씀을 가지고 일상 속에서 실현하고 시련을 겪는 것이다.

과거의 성경 독서의 전통에는 질문이 없고, 질문이 없으니 성경이 나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말씀 묵상의 단계로 기도 묵상 실현(고난) 3단계로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들교회가 가르치는 말씀 묵상의 단계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성경읽기는 소리 내어 읽고, 눈으로 일고,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들교회는 내 삶을 통해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을 통해 나의 삶을 해석하고 있다.
오늘 말씀에서 말하는 나의 이웃은 강도 만난 자, 즉 나의 가까이서 고난 당하는 자가 내 이웃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고난 받는 자를 찾아가 만나서 그의 이웃이 되어 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들교회 성도들이 이와 같은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한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보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은 각자의 삶의 영역에 우리를 보내셨다

세상에 보냄 받은 자란 삶의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하는 자이다

그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통해 사랑을 전달해 줄 수 있다.

말씀으로 회복되는 삶이 빚어지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삶을 드러내게 하여 하나님을 닮아 가는 삶이 되게 한다

*부흥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김양재 목사님 결론)

 

Posted by 윤강로